第四十四回:孔明用智激周瑜,孫權決計破曹操
제44회 제갈공명은 지혜를 써서 주유를 격동시키고, 손권은 조를 깨트릴 계책을 결단하다.
卻說吳國太見孫權疑惑不決,乃謂之曰:「先姊遺言云:『伯符臨終有言:內事不決問張昭,外事不決問周瑜。』今何不請公瑾問之?」權大喜,即遣使往鄱陽請周瑜議事。原來周瑜在鄱陽湖訓練水師,聞曹操大軍至漢上,便星夜回柴桑郡議軍機事。使者未發,周瑜已先到。魯肅與瑜最厚,先來接著,將前項事細述一番。周瑜曰:「子敬休憂,瑜自有主張。今可速請孔明來相見。」
각설하고 오국태가 손권이 의혹하여 결단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에 일러 말하기를 “죽은 언니가 남긴 말에 ‘백부(손책) 죽을 때 한 말에 안의 일을 결단하지 못하면 장소에게 묻고, 밖의 일을 결단하지 못하면 주유에게 물으라.’했는데 지금 어찌 주유를 청하여 묻지 않는가?”했다. 손권이 크게 기뻐하여 곧 사자를 보내 파양에 가서 주유를 청하여 일을 의논하려 하였다. 원래 주유는 파양호에서 수군을 훈련시키고 있었는데 조조의 대군이 한상에 이르렀다는 것을 듣고 곧 밤을 새워 시상으로 돌아가 군사의 일을 의논하였다. 사자가 아직 출발하지 않았는데 주유가 이미 먼저 이르렀다. 노숙과 주유는 가장 친밀하여 먼저 와서 회합하고 앞의 일들을 자세하게 한번 설명하였다. 주유가 말하기를 “노숙은 근심하지 마시오. 제가 주장함이 있습니다. 지금 속히 제갈공명을 청하여 만나게 해 주십시오.” 했다.
魯肅上馬去了。周瑜方纔歇息。忽報張昭、顧雍、張紘、步騭四人來相探。瑜接入堂中坐定,敘寒溫畢。張昭曰:「都督知江東之利害否?」瑜曰:「未知也。」昭曰:「曹操擁眾百萬,屯於漢上,昨傳檄文至此,欲請主公會獵於江夏。雖有相吞之意,尚未露其形。昭等勸主公且降之,庶免江東之禍。不想魯子敬從江夏帶劉備軍師諸葛亮至此,彼因自欲雪憤,特下說詞以激主公。子敬卻執迷不悟。正欲待都督一決。」瑜曰:「公等之見皆同否?」顧雍等曰:「所議皆同。」瑜曰:「吾亦欲降久矣。公等請回。明早見主公,自有定議。」
노숙이 말에 올라 (제갈공명을 청하러)갔다. 주유가 막 쉬려 하는데 홀연히 장소, 고옹, 장굉, 보즐 네 명이 와 찿았다. 주유가 영접하여 당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아 날시 이야기를 하면서 인사를 마쳤다. 장소가 말하기를 “도독께서는 강동의 이해를 압니까?”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알지 못합니다.”했다. 장소가 말하기를 “조조가 무리 백만을 데리고 한상에 주둔하면서 어제 격문을 전하여 여기에 이르렀는데 주공을 청하여 강하에서 사냥할 것을 청하였습니다. 비록 서로 삼키려는 뜻이 있지만 아직 그 형상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저희들은 주공께서 항복하여 강동의 화를 면할 것을 청하였습니다. 생각지 않게도 노숙이 강하에서 유현덕이 군사 제갈공명을 데리고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조조에게) 설욕하고자 하여 특히 말로 주공을 격동시켰으나 노숙은 잘못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도독께서 한 번에 결단하기를 바랍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공들의 견해는 모두 같습니까?”하니 고옹 등이 말하기를 “의논한 바가 모두 같습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내가 도한 항복하고자 한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공들은 돌아기시기를 청합니다. 내일 일찍 주공을 만나 의논을 정하겠습니다.”했다.
昭等辭去。少頃,又報程普、黃蓋、韓當等一班戰將來見。瑜迎入,各問慰訖。程普曰:「都督知江東早晚屬他人否?」瑜曰:「未知也。」普曰:「吾等自隨孫將軍開基創業,大小數百戰,方纔戰得六郡城池。今主公聽謀士之言,欲降曹操,此真可恥可惜之事。吾等寧死不辱。望都督勸主公決計興兵。吾等願效死戰。」瑜曰:「將軍等所見皆同否?」黃蓋忿然而起,以手拍額曰:「吾頭可斷,誓不降曹!」眾人皆曰:「吾等皆不願降。」瑜曰:「吾正欲與曹操決戰,安肯投降?將軍等請回。瑜見主公,自有定議。」
장소 등이 하직하고 갔다. 잠시 후 또 정보, 황개, 한당 등 한 떼의 장수들이 와서 뵈었다. 주유가 맞아들이니 각각 안부를 물었다. 정보가 말하기를 “도독께서는 강동이 조만간에 다른 사람에게 속하게 된 것을 아십니까?”하니 주유가 말하기를 “알지 못합니다.”했다. 정보가 말하기를 “우리들은 손 장군을 따라 터를 잡고 나라를 세움으로부터 크고 작게 수백 번을 싸워 비로소 여섯 개군 성지를 얻었습니다. 지금 주공께서 모사들의 말을 듣고 조조에게 항복하고자 하시니 이는 참으로 부끄럽고 애석해 할 만한 일입니다. 우리들은 차라리 죽을지언정 욕되게 살지 않겠습니다. 도독께서는 주공을 권하여 군대를 일으킬 계책을 결단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기를 원합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장군들의 견해는 모두 같습니까?”하니 황개가 분연히 일어나 손으로 이마를 치며 말하기를 “내 머리를 자를 수 있어도 조조에게 항복하지 않기를 맹서합니다.”했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우리들은 모두 항복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나는 바로 조조와 결전하려는 것으로 어찌 즐겨 항복할 수 있겠습니까? 장군들께서는 돌아가시기를 청합니다. 제가 주공을 뵙고 의논을 정할 것입니다.”했다.
程普等別去。又未幾,諸葛瑾、呂範等一班兒文官相候。瑜迎入,講禮畢。諸葛瑾曰:「舍弟諸葛亮自漢上來,言劉豫州欲結東吳,共伐曹操,文武商議未定。因舍弟為使,瑾不敢多言,專候都督來決此事。」瑜曰:「以公論之若何?」瑾曰:「降者易安,戰者難保。」周瑜笑曰:「瑜自有主張。來日同至府下定議。」
정보 등이 헤어져 갔다. 또 얼마 되지 않아 제갈근, 여범 등 한 떼의 젊은 문관들이 안부를 물었다. 주유가 맞아들여 예를 마쳤다. 제갈근이 말하기를 “저의 동생 제갈공명이 한상으로부터 와서 예주(유현덕)가 동오와 동맹하여 함께 조조를 칠 것을 말하였으나 문무관의 상의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제 동생이 사신이 되었기 때문에 저는 감히 말을 많이 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도독께서 이 일을 결단할 것을 기다립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공론으로서 하는 것이 어떠합니까?”하니 제갈근이 말하기를 “항복하는 것은 쉽고 편안하고, 싸우는 것은 지키기 어렵습니다.”했다. 주유가 웃으며 말하기를 “저에게 주장이 있습니다. 내일 함께 관청에 이르러 의논을 정하겠습니다.”했다.
瑾等辭退。忽又報呂蒙、甘寧等一班兒來見。瑜請入,亦敘談此事。有要戰者,有要降者,互相爭論。瑜曰:「不必多言,來日都到府下公議。」眾乃辭去。周瑜冷笑不止。
제갈근 등이 하직하고 물러갔다. 홀연히 또한 여몽, 감녕 등 한 떼의 젊은이가 와서 뵈었다. 주유가 들어오기를 청하고, 또한 이 일을 얘기하였다. 싸움을 청하는 자도 있고, 항복하자는 자도 있어 서로 논쟁하였다. 주유가 말하기를 “반드시 많은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내일 모두 관청에 이르러 공적으로 의논할 것입니다.”하니 무리들이 곧 하직하고 갔다. 주유가 냉소를 그치지 않았다.
至晚,人報魯子敬引孔明來拜。瑜出中門迎入。敘禮畢,分賓主而坐。肅先問瑜曰:「今曹操驅眾南侵,和與戰二策,主公不能決,一聽於將軍。將軍之意若何?」瑜曰:「曹操以天子為名,其師不可拒。且其勢大,未可輕敵。戰則必敗,降則易安。吾意已決。來日見主公,便當遣使納降。」
저녁 때 쯤 노숙이 제갈공명을 인도하여 왔음을 보고하였다. 주유가 중문을 나와 맞아 들였다. 예를 마치고 주인과 손님으로 나누어 앉았다. 노숙이 먼저 주유에게 물어 말하기를 “지금 조조가 무리를 몰아 남침하였는데 강화하는 것과 싸우는 것 두 계책이 있는데 주공께서 결단하지 못하고 한 번 장군에게 들으려 합니다. 장군의 뜻은 어떠합니까?”하니 주유가 말하기를 “조조는 천자로 명분 삼으니 그 군사를 막을 수 없고, 또한 그 형세가 커서 가벼이 대적할 수 없습니다. 싸우면 곧 반드시 패하고, 항복하면 곧 편안합니다. 내 뜻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곧 마땅히 사신을 보내 항복해야 합니다.” 했다.
魯肅愕然曰:「君言差矣!江東基業,已歷三世,豈可一旦棄於他人?伯符遺言,外事付託將軍。今正欲仗將軍保全國家,為泰山之靠,奈何亦從懦夫之議耶?」瑜曰:「江東六郡,生靈無限;若罹兵革之禍,必有歸怨於我,故決計請降耳。」肅曰:「不然。以將軍之英雄,東吳之險固,操未必便能得志也。」
노숙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그대의 말은 잘못이오! 강동의 기업이 이미 세 세대를 지났는데 어찌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에게 버릴 수 있겠습니까? 백부(손책)께서 유언으로 밖의 일을 장군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지금 바로 장군에게 의지하여 국가를 보전하고자 하여 태산같이 기대고 있는데 어떻게 또한 나약한 이의 의논을 따르려 하십니까?”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강동 여섯 개 군은 백성이 무한한데 만약 전쟁의 화에 걸리게 되면 반드시 원망이 나에게 돌아옴이 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계책을 결단하여 항복을 청할 뿐입니다.”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장군 같은 영웅이 동오의 험고함을 이용한다면 조조는 반드시 뜻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했다.
二人互相爭辯,孔明只袖手冷笑。瑜曰:「先生何故哂笑?」孔明曰:「亮不笑別人,笑子敬不識時務耳。肅曰:「先生如何反笑我不識時務?」孔明曰:「公瑾主意欲降操,甚為合理。」瑜曰:「孔明乃識時務之士,必與吾有同心。」肅曰:「孔明,你也如何說此?」孔明曰:「操極善用兵,天下莫敢當。向只有呂布、袁紹、袁術、劉表敢與對敵。今數人皆被操滅,天下無人矣。獨有劉豫州不識時務,強與爭衡。今孤身江夏,存亡未保。將軍決計降曹,可以保妻子,可以全富貴。國祚遷移,付之天命,何足惜哉!」
두 사람이 논쟁할 때 제갈공명은 다만 소매에 손을 넣고 냉소할 뿐이었다. 주유가 말하기를 “주유는 무엇 때문에 비웃습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저는 다른 사람에 대해 웃은 것이 아니라 노숙이 시무를 알지 못함에 대하여 웃었을 뿐입니다.” 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도리어 내가 시무를 알지 못한다고 웃습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주유가 조조에게 항복하고자 주장하는 것은 매우 이치에 합당합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제강공명께서는 곧 시무를 아는 선비로 나와 마음을 같이 함이 틀림없습니다.”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제갈공명 당신이 어떻게 이런 말을 합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조조는 지극히 군대를 잘 운용하니 천하에 감당할 이가 없습니다. 지난날에는 다만 여포, 원소, 원술, 유표만이 감히 조조에게 대적하였습니다만, 지금 몇몇 사람들은 모두 조조에게 멸망당하여 천하에 사람이 없습니다. 다만 유예주(유현덕)만이 시무를 알지 못하고 억지로 승패를 다투었을 뿐입니다. 지금 외로운 몸으로 강하에 있으면서 목숨을 보존하지 못할 처지에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계책을 결단하여 조조에게 항복하면 처자를 보호할 수 있고, 부귀를 온전히 할 수 있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옮겨지는 것(손씨에서 조씨에게로 옮겨 가는 것)은 하늘에 달려있는 것인데 무엇이 애석하리오!” 했다.
魯肅大怒曰:「汝教吾主屈膝受辱於國賊乎!」孔明曰:「愚有一計。並不勞牽羊擔酒,納土獻印;亦不須親自渡江;只須遣一介之使,扁舟送兩個人到江上。操若得此兩人,百萬之眾,皆卸甲捲旗而退矣。」瑜曰:「用何二人,可退操兵?」孔明曰:「江東去此兩人,如大木飄一葉,太倉減一粟耳。而操得之,必大喜而去。」
노숙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너는 우리 주인이 무릎을 꿇고 국적에게 욕을 받게 하려는가!”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나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아울러 양을 끌고 술을 지며, 땅을 비치고 인수를 올리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한 모름지기 직접 강을 건너지 않고 단지 일개 사신을 보내는데 조각배에 두 사람을 보내 강상에 이르게 하면 됩니다. 조조가 만약 이 두 사람을 얻으면 백만의 무리가 모두갑옷을 풀고, 깃발을 말아 물러갈 것입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어떤 두 사람을 써서 조조의 군대를 물러나게 할 수 있습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강동이 이 두 사람을 보내는 것은 큰 나무에 이파리 하나가 날리는 것과 같고, 큰 창고에서 하나의 곡식이 줄어드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조조는 그들을 얻으면 반드시 크게 기뻐하며 갈 것입니다.” 했다.
瑜又問果用何二人 孔明曰:「亮居隆中時,即聞操於漳河新造一臺,名曰銅雀,極其壯麗;廣選天下美女以實其中。操本好色之徒,久聞江東喬公有二女,長曰大喬,次曰小喬,有沈魚落雁之容,閉月羞花之貌。操曾發誓曰:『吾一願掃平四海,以成帝業;一願得江東二喬,置之銅雀臺,以樂晚年,雖死無恨矣。』今雖引百萬之眾,虎視江南,其實為此二女也。將軍何不去尋喬公,以千金買此二女,差人送與曹操。操得二女,稱心滿意,必班師矣。此范蠡獻西施之計,何不速為之?」
주유가 또한 과연 어떤 두 사람을 쓸 것인지를 물으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제가 융중에 살 때 곧 조조가 장하에 새로 한 대를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이름을 동작이라 하며 그 장려함이 지극하고, 천하의 미녀를 널리 뽑아 그 안을 채웠다고 합니다. 조조는 본래 색을 좋아하는 무리로 강동의 교공이 딸 둘을 두었는데 장녀는 대교이고, 차녀는 소교로 물고기가 가라앉고 날아가던 기러기가 떨어지는 얼굴이어서 달이 숨고 꽃이 부끄러워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들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조조가 일찍이 맹서하여 말하기를 ‘한 가지 소원은 내가 사해를 쓸어 평정하여 제업을 이루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 소원은 강동의 이교(대교와 소교)를 얻어 동작대에 두고, 만년에 즐긴다면 비록 죽을지라도 한이 없다.’ 했습니다. 지금 비록 백만의 무리를 이끌고 범의 눈으로 강남을 보고 있지만, 실제는 이 두 딸 때문입니다. 장군께서는 어찌 교공을 찾아 가서 천금으로서 이 두 여자를 사서 사람을 시켜 호송하여 조조에게 주지 않습니까? 조조는 이 두 여자를 얻으면 마음에 걸맞고 뜻에 차서 반드시 군대를 되돌릴 것입니다. 이는 범려가 서시를 바친 계책인데 어찌하여 속히 행하지 않으십니까?” 했다.
瑜曰:「操欲得二喬,有何證驗?」孔明曰:「曹操幼子曹植,字子建,下筆成文。操嘗命作一賦,名曰銅雀臺賦。賦中之意,單道他家合為天子,誓取二喬。」瑜曰:「此賦公能記否?」孔明曰:「吾愛其文華美,嘗竊記之。」瑜曰:「試請一誦。」孔明即時誦銅雀臺賦云:
주유가 말하기를 “조조가 두 교(대교, 소교)을 얻고자 한다는 것을 누가 증명할 수 있습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조조의 어린 아들 조식은 자가 자건인데 붓을 들면 문장을 이룹니다. 조조가 일찍이 하나의 부를 짓게 하였는데 ‘동작대 부’라는 것입니다. 부의 안에 있는 뜻은 오직 다른 가를 합하여 천자가 되는 것과 두 교(대교, 소교)를 취할 것을 맹세하는 것입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이 부를 공(제갈공명)은 기억하고 있습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제가 그 글의 화려하고 아름다움을 사랑하여 일찍이 그것을 기억하였습니다.” 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시험삼아 한 번 외울 것을 청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즉시 동작대 부를 외웠는데 글은
從明后以嬉游兮,登層臺以娛情。見太府之廣開兮,觀聖德之所營。建高門之嵯峨兮,浮雙闕乎太清。立中天之華觀兮,連飛閣乎西城。臨漳水之長流兮,望園果之滋榮。立雙臺於左右兮,有玉龍與金鳳。攬二喬於東南兮,樂朝夕之與共。俯皇都之宏麗兮,瞰雲霞之浮動。欣群才之來萃兮,協飛熊之吉夢。仰春風之和穆兮,聽百鳥之悲鳴。雲天互其既立兮,家願得乎雙逞。揚仁化於宇宙兮,盡肅恭於上京。惟桓文之為盛兮,豈足方乎聖明?
“현명한 임금을 따라 노닐어, 층대를 오르니 마음이 즐겁도다. 태부가 널리 열린 것을 보니 성스러운 덕으로 지은 것이네. 높이 세워진 문은 우뚝우뚝하고, 궁문 양쪽의 누대는 푸른 하늘에 떠있네. 하늘 가운데 아름다운 건물 서 있고, 나는 것 같은 누각은 서쪽 성에 이어졌다. 장수가 멀리 흘러가는 것을 내려다보고, 멀리 정원의 과일이 주렁주렁 익어간다. 좌우에 쌍대를 세우니 옥룡대, 금봉대가 있네. 동남쪽에서 대교와 소교를 데려와 아침저녁으로 함께 즐기세. 웅장한 천자의 도읍 굽어보니 구름과 노을 흐르는 것을 보네. 뭇 인재 모여들어 기뻐하는 것이, 문왕의 곰이 나는 좋은 꿈에 부합한다. 봄바람이 화목하기를 우러르는 것은 온갖 새 애달게 지저기는 소리 들으려함이라. 천자의 궁궐을 이미 세웠으니 집안의 바람 빠르게 이루어짐이라. 우주에 인으로 교화를 펼치니 모두 도읍 향해 엄숙히 공격하리라. 오직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의 성대함이여, 어찌 성스럽고 현명함에 견줄 수 있겠는가?
休矣!美矣!惠澤遠揚。翼佐我皇家兮,寧彼四方。同天地之規量兮,齊日月之輝光。永貴尊而無極兮,等君壽於東皇。御龍旂以遨遊兮,迴鸞駕而周章。恩化及乎四海兮,嘉物阜而民康。愿斯臺之永固兮,樂終古而未央!
훌륭하도다! 아름답도다! 은택이 멀리 드날렸다. 우리 황실을 보조함이여 저 사방을 편안하게 한다. 천지의 법을 같이하여 해와 달의 빛남을 같이 하였다. 길이 높고 귀하여 다함이 없으니 임금의 수명은 동쪽과 봄을 맡은 신과 같다. 용 깃발 단 수레 몰아 유유히 노님이여 봉황 수레 타고 천하를 두루 살핀다. 은혜로운 교화 사해에 미치니 재물은 넉넉하고 백성은 편안하다. 이 동작대 길이 견고할 것을 바라니 끝까지 즐겨 다함이 없으리라!
周瑜聽罷,勃然大怒,離座指北而罵曰:「老賊欺吾太甚!」孔明急起止之曰:「昔單于屢侵疆界,漢天子許以公主和親,今何惜民間二女乎?」瑜曰:「公有所不知。大喬是孫伯符將軍主婦,小喬乃瑜之妻也。」孔明佯作惶恐之狀,曰:「亮實不知。失口亂言,死罪!死罪!」瑜曰:「吾與老賊誓不兩立!」孔明曰:「事須三思,免致後悔。」瑜曰:「吾承伯符寄託,安有屈身降操之理?適來所言,故相試耳。吾自離鄱陽湖,便有北伐之心,雖刀斧加頭,不易其志也。望孔明助一臂之力,同破曹操。」孔明曰:「若蒙不棄,願效犬馬之勞,早晚拱聽驅策。」瑜曰:「來日入見主公,便議起兵。」
주유가 듣기를 마치고, 발연 크게 노하여 자리를 떠나 북쪽을 가리키며 꾸짖어 말하기를 “늙은 도적이 나를 속임이 너무 심하구나!”하니 제갈공명이 급히 일어나 그를 저지하여 말하기를 “옛날 흉노의 선우가 여러 번 경계를 침범하니 한나라 천자는 공주를 시집보내는 것으로서 화친하였는데 지금 어찌 민간의 두 여자를 아끼십니까?”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공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대교는 손책 장군의 아내이고, 소교는 곧 나의 아내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거짓으로 황공한 모습을 지으며 말하기를 “제가 진실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잘못된 말을 하였으니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나는 늙은 도적과 함께 설 수 없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일은 반드시 세 번 생각하여야 후회함에 이름을 면할 수 있습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내가 손책의 부탁을 받았는데 어찌 몸을 굽혀 조조에게 항복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지금 와서 말하신 것은 서로 시험했을 뿐입니다. 내가 스스로 파양호를 떠난 것은 북벌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니 비록 칼과 도끼가 머리에 더해질지라도 그 뜻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제갈공명께서 한 팔의 도움으로 함께 조조를 깨트릴 것을 바랍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만약 버리지 않으신다면 개와 말의 수고로움을 본 받아 조만간에 손을 마주하고 지휘를 듣기를 원합니다.” 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내일 들어가 주공을 뵙고 곧 군대 일으키기를 의논할 것입니다.”했다.
孔明與魯肅辭出,相別而去。次日清晨,孫權升堂。左邊文官張昭、顧雍等三十餘人;右邊武官程普、黃蓋等三十餘人。衣冠濟濟,劍佩鏘鏘,分班侍立。
제갈공명과 노숙이 하직하고 나가 서로 이별하고 갔다. 다음날 동틀 무렵 당에 올랐다. 왼쪽에는 문관인 장소, 고옹 등 삼십여 명이 있었고, 오른 쪽에는 무관으로 정보, 황개 들 삼십여 명이 있었다. 의관은 위엄이 있고, 허리에 찬 검을 쟁그렁 거리며 문반과 무반으로 나뉘어 모시고 섰다.
少頃,周瑜入見。禮畢,孫權問慰罷。瑜曰:「近聞曹操引兵屯漢上,馳書至此,主公尊意若何?」權即取檄文與周瑜看,瑜看畢,笑曰:「老賊以我江東無人,敢如此相侮耶!」權曰:「君之意若何?」瑜曰:「主公曾與眾文武商議否?」權曰:「連日議此事,有勸我降者,有勸我戰者。吾意未定,故請公謹一決。」瑜曰:「誰勸主公降?」權曰:「張子布等皆主其意。」
잠시 후 주유가 들어 와 뵈었다. 예를 마치고 손권이 안부를 묻기를 마쳤다. 주유가 말하기를 “근래 들으니 조조가 군대를 이끌고 한상에 주둔하고 글을 보내 여기에 이르렀다 하니 주공의 높은 뜻은 어떠합니까?”했다. 손권이 곧 격문을 가져와 주유에게 주어 보게 하였는데 주유가 보기를 마치고 웃으며 말하기를 “늙은 도적이 우리 강동에 사람이 없다 여겨 감히 이 같이 업신여기는구나!”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하니 주유가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일찍이 여러 문무관과 상의하지 않으셨습니까?”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연일 이일을 의논하였는데 나에게 항복을 권하는 자가 있고, 나에게 싸우기를 권하는 자가 있었다. 내 뜻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주유를 천하여 결단하려 한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누가 주공에게 항복을 권하였습니까?”하니 손권이 말하기를 “장소 등이 모두 그 뜻을 주장하였다.” 했다.
瑜即問張昭曰:「願聞先生所以主降之意。」昭曰:「曹操挾天子而征四方,動以朝廷為名,近又得荊州,威勢愈大。吾江東可以拒操者,長江耳。今操艨艟戰艦,何止千百?水陸並進,何可當之?不如且降,更圖後計。」瑜曰:「此迂儒之論也!江東自開國以來,今歷三世,安忍一旦廢棄!」權曰:「若此計將安出?」
주유가 곧 장소에게 물어 말하기를 “선생께 항복의 뜻을 주장하는 까닭을 듣기를 원합니다.”했다. 장소가 말하기를 “조조는 천자를 끼고 사방을 정벌하는데 조정으로서 명분삼아 움직입니다. 최근에는 또한 형주를 얻어 위엄과 세력이 더욱 커졌습니다. 우리 강동이 조조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장강뿐입니다. 지금 조조가 무장한 전함이 다만 천백뿐이겠으며, 수군과 육군이 아울러 진군한다면 어찌 당해 낼 수 있겠습니까. 또한 항복하여 다시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이는 세상물정에 어두운 융통성 없는 학자의 논의 일뿐이구나! 강동이 개국한 이래로 지그 세 세대를 지났는데 어찌 차마 하루아침에 폐하여 버릴 수 있겠는가!”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이런 계책과 같은 것은 장차 어찌 내겠는가?” 했다.
瑜曰:「操雖託名漢相,實為漢賊。將軍以神武雄才,仗父兄餘業,據有江東,兵精糧足,正當橫行天下,為國家除殘去暴,奈何降賊耶?且操今此來,多犯兵家之忌:北土未平,馬騰、韓遂為其後患,而操久於南征,一忌也;北軍不諳水戰,操捨鞍馬,仗舟楫,與東吳爭衡,二忌也;又時值隆冬盛寒,馬無蒿草,三忌也;驅中國士卒,遠涉江湖,不服水土,多生疾病,四忌也:操兵犯此數忌,雖多必敗。將軍擒操,正在今日。瑜請得精兵數千,進屯夏口,為將軍破之!」
주유가 말하기를 “조조가 비록 한나라 재상을 사칭하였으나 실제는 한나라의 도적이 되었습니다. 장군께서는 신 같은 무예와 영웅의 재능으로 부형이 남긴 사업에 의지하여 강동을 점거하여 소유하셨는데 군대는 정예롭고 양식이 충분하니 마땅히 천하를 돌아다니며 국가를 위해 잔인함과 사나움을 제거해야 하는데도 어찌하여 도적에게 항복하시려 합니까? 또한 조조가 지금 여기에 와 군대를 운용하는 이가 꺼리는 것을 많이 범하였습니다. 북쪽 땅이 아직 평정되지 않아 마등, 한수가 그 후환이 되었는데도 조조가 오래 동안 남쪽을 정벌하고 있으니 첫째 꺼리는 것입니다. 북쪽의 군사는 물에서 싸우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데도 조조가 안장과 말을 버리고 배와 노에 의지하여 동오와 싸우려하니 두 번째 꺼리는 것입니다. 또 때는 한겨울이어서 매우 춥고, 말을 먹일 마른 풀이 없으니 세 번째 꺼리는 것입니다. 중국의 사졸을 몰아 멀리서 강과 호수를 건너니 물과 땅이 맞지 않아 질병이 많이 생기니 네 번째 꺼리는 것입니다. 조조의 군대가 이 몇 개의 꺼리는 것을 범하였으니 비록 군대가 많다하나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장군께서 조조를 사로잡는 것은 바로 오늘에 달렸습니다. 저는 정예 군사를 얻어 진격하여 하구에 주둔하여 장군을 위해 그를 깨트릴 수 있기를 청합니다.” 했다.
權矍然起曰:「老賊欲廢漢自立久矣,所懼二袁、呂布、劉表與孤耳。今數雄已滅,惟孤尚存。孤與老賊,誓不兩立!卿言當伐,甚合孤意。此天以卿授我也。」瑜曰:「臣為將軍決一血戰,萬死不辭。只恐將軍狐疑不定。」權拔佩劍砍面前奏案一角曰:「諸官將有再言降操者,與此案同!」言罷,便將此劍賜周瑜,即封瑜為大都督,程普為副都督,魯肅為贊軍校尉。如文武官將有不聽號令者,即以此劍誅之。
손권이 기운차게 일어나 말하기를 “늙은 도적이 한나라를 없애고 스스로 즉위하고자 한 것이 오래되었다. 두려워하는 바는 원소, 원술, 여포, 유표와 나일 뿐이었다. 지금 여러 영웅들이 이미 사라지고 오직 나만이 아직 보존하고 있다. 나와 늙은 도적은 맹세코 양립할 수 없다! 경이 마땅히 정벌할 것을 말하니 나의 뜻에 매우 부합한다. 이는 하늘이 경을 나에게 준 것이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신은 장군을 위하여 한번 혈전을 결단하여 만 번을 죽어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장군께서 여우의 의심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할 뿐입니다.”했다. 손권이 차고 있던 검을 뽑아 앞의 상소문을 두는 책상모서리를 베며 말하기를 “여러 관리와 장수들 들 중에서 다시 조조에게 항복을 말하는 자는 이 책상과 같이 될 것이다.”하는 말을 마치고 곧 이 검을 주유에게 내리고는 곧 주유를 봉하여 대도독으로 삼고, 정보를 부도독으로 삼고, 노숙을 찬군교위로 삼았다. 만일 문무관들이 장차 명령을 듣지 않는 자가 있다면 곧 이 검으로서 그를 죽이라 하였다.
瑜受了劍,對眾言曰:「吾奉主公之命,率眾破曹。諸將官吏來日俱於江畔行營聽令。如遲誤者,依七禁令五十四斬施行。」言罷,辭了孫權,起身出府。眾文武各無言而散。
주유가 검을 받고 무리에 대하여 말하기를 “내가 주공의 명령을 받들어 무리를 거느리고 조조의 군대를 깨트릴 것이다. 여러 장수와 관리들은 모두 내일 강가 진영에 가서 명령을 들으시오. 만일 늦거나 잘못하는 자는 칠금령의 오십네가지 목을 베는 법에 의하여 시행할 것입니다.”하는 말을 마치고는 선권을 하직하고 몸을 일으켜 부를 나갔다. 여러 문무관들이 각각 말없이 흩어졌다.
周瑜回到下處,便請孔明議事。孔明至。瑜曰:「今日府下公議已定,願求破曹良策。」孔明曰:「孫將軍心尚未穩,不可以決策也。」瑜曰:「何謂心不穩?」孔明曰:「心怯曹兵之多,懷寡不敵眾之意;將軍以軍數開解,使其了然無疑,然後大事可成。」瑜曰:「先生之論甚善。」
주유는 돌아와 하처에 이르자 곧 제갈공명을 청하여 일을 의논하려 하였다. 제갈공명이 이르자 주유가 말하기를 “오늘 관청에서 공식적인 의논이 이미 정하여졌으니 조조를 깨트릴 좋은 계책을 청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손 장군의 마음이 아직 안정되지 못하여 계책을 결단할 수 없습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다고 이릅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마음에 조조의 군대가 많음을 겁내어 적은 무리로 많은 무리를 대적할 수 없다는 뜻을 품고 있으니 장군께서는 군대의 수로서 설명하여 그로 하여금 의심이 없게 한 후에야 대사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선생의 논의가 매우 좋습니다.”했다.
乃復入見孫權。權曰:「公瑾夜至,必有事故。」瑜曰:「來日調撥軍馬,主公心有疑否?」權曰:「但憂曹操兵多,寡不敵眾耳。他無所疑。」瑜笑曰:「瑜正為此,特來開解主公。主公因見操檄文,言水陸大軍百萬,故懷疑懼,不復料其虛實。今以實較之:彼將中國之兵,不過十五六萬,且已久疲,所得袁氏之眾,亦止七八萬耳,尚多懷疑未服。未(夫)以久疲之卒,狐疑之眾,其數雖多,不足畏也。瑜得五萬兵,自足破之。願主公勿以為慮。」權撫瑜背曰:「公瑾此言,足釋吾疑。子布無謀,深失孤望。獨卿及子敬與孤同心耳。卿可與子敬、程普,即日選軍前進。孤當續發人馬,多載資糧,為卿後應。卿前軍倘不如意,便還就孤。孤當親與曹賊決戰,更無他疑。」
이에 다시 들어가 손권을 뵈었다. 손권이 말하기를 “주유가 밤에 이른 것은 반드시 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하니 주유가 말하기를 “내일 군마를 동원하는데 주공의 마음에 의심함이 있습니까?”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단지 조조의 군대가 많고, 적은 것으로 많은 것을 대적할 수 없음을 근심하였을 뿐이다. 달리 의심하는 것은 없다.”했다. 조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제가 바로 이를 위하여 특히 와서 주공께 해명하는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조조의 격문에 수, 육 대군이 백만이라 말한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의심과 두려움을 품고, 다시 그 허실을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실제로서 그것을 비교하겠습니다. 그가 거느린 중국의 군대는 십오륙 만에 지나지 않으며 또한 이미 피로해진지 오래되었고, 원씨의 무리를 얻은 것이 또한 다만 칠팔 만뿐인데다 오히려 의심을 품고 복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래 동안 피로한 병졸과 의심이 많은 무리들은 그 수가 비록 많다할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오만의 군대를 얻으면 그들을 깨트리기에 충분합니다. 주공께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했다. 손권이 주유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주유의 이 말은 내 의심을 풀기에 충분하다. 장소는 꾀가 없어 깊이 나의 바람을 앓었다. 유독 경과 노숙과 나만이 마음을 같이 할 뿐이다. 경은 노숙, 정보와 함께 오늘 군대를 선발하여 전진하라. 나는 마땅히 이어 인마를 동원하고, 재물과 식량을 많이 싣고 경을 위해 뒤에서 응원할 것이다. 경의 전군이 혹 뜻과 같지 않을 때는 곧 나에게 돌아오시오. 내가 마땅히 직접 조조 도적과 결전할 것이니 다시 다른 의심은 없다.” 했다.
周瑜謝出,暗忖曰:「孔明早已料著吳侯之心。其計畫又高我一頭。久必為江東之患,不如殺之。」乃令人連夜請魯肅入帳,言欲殺孔明之事。肅曰:「不可。今操賊未破,先殺賢士,是自去其助也。」瑜曰:「此人助劉備,必為江東之患。」肅曰:「諸葛瑾乃其親兄,可令招此人同事東吳,豈不妙哉?」
주유가 사례하고 나와 속으로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이미 오후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고, 그 계획이 또한 나보다 낫구나. 오래되면 반드시 강동의 근심이 될 것이니 그를 죽이는 것이 낫겠다.”하고는 곧 사람을 시켜 밤을 세워 노숙을 청하여 막사로 들어오게 하고는 제갈공명을 죽이고자 하는 일을 말하였다. 노숙이 말하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조조 도적을 깨트리지 못하였는데 먼저 어진 선비를 죽인다면 이는 스스로 그 도움을 제거하는 것입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이 사람은 유현덕을 도와 반드시 강동의 근심이 될 것입니다.”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제갈근은 곧 그의 친형이니 이 사람을 불러 함께 오를 섬기게 한다면 어찌 오묘하다 하지 않겠습니까?”했다.
瑜善其言。次日平明,瑜赴行營,升中軍帳高坐。左右立刀斧手,聚集文官武將聽令。原來程普年長於瑜,今瑜爵居其上,心中不樂;是日乃託病不出,令長子程咨自代。瑜令眾將曰:「王法無親,諸君各守乃職。方今曹操弄權,甚於董卓囚天子於許昌,屯暴兵於境上。吾今奉命討之,諸君幸皆努力向前。大軍到處,不得擾民。賞勞罰罪,並不徇縱。」
주유가 그 말을 좋게 여겼다. 다음날 날이 밝자 주유가 진영가 중군의 장막에 올라 높은 자리에 앉았다. 좌우에 도부수를 세우고, 문관과 무장을 모아 명령을 받게 하였다. 원래 정보가 주유보다 연장이었는데 지금 주유의 벼슬이 그 위에 있어 마음속으로 즐거워하지 않아, 이날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고 장자 정자로 하여금 자신을 대신하게 하였다. 주유가 여러 장수에게 명령하여 말하기를 “왕법에는 사사로이 친한 이가 없으니 여러 분들은 각기 맡은 직책을 지키고 직무에 충실하시오. 지금 조조가 권세를 농단하는 것이 동탁이 천자를 허창에 가두었던 것보다 심하고, 사나운 군대를 경계에 주둔시켰다. 내가 지금 명을 받들어 토벌하니 여러 분들은 모두 노력하여 앞을 향한다면 다행이겠습니다. 대군이 이르는 곳마다 백성을 소란스럽게 해서는 안 됩니다. 수고한 자는 상을 주고, 죄를 지은 자에게 벌을 줄 것이며 아울러 정실에 따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했다.
令畢,即差韓當、黃蓋,為前部先鋒,領本部戰船,即日起行,前至三江口下寨,別聽將令;蔣欽、周泰,為第二隊;凌統、潘璋,為第三隊;太史慈、呂蒙,為第四隊;陸遜、董襲為第五隊;呂範、朱治為四方巡警使。催督六隊官軍,水陸並進,剋期取齊。
명령을 마치고 곧 한당, 황개를 보내 앞 부대의 선봉으로 삼아 본부의 전선을 거느리고 그날 일어나 가게 하여 삼강 구 앞에 이르러 영채를 세우고, 따로 장수의 명령을 받게 하였다. 장흠, 주태를 제 이대로 삼고, 능통, 번장을 제 삼대로 삼고, 태사자, 여몽을 제 사대로 삼고, 육손, 동습을 제 오대로 삼고, 여범, 주치를 사방 순찰사로 삼았다. 육 대의 관군을 재촉하고 감독하여 물과 당으로 나란히 진군하여 정해진 기한 내에 모이게 하였다.
調撥已畢,諸將各自收拾船隻軍器起行。程咨回見父程普,說周瑜調兵,動止有法。普大驚曰:「吾素欺周郎懦弱,不足為將;今能如此,真將才也!我如何不服?」遂親詣行營謝罪。瑜亦遜謝。
부대 배정을 마치자 여러 장수들이 각각 전석과 무기를 수습하여 일어나 갔다. 정자가 돌아가 아버지 정보를 뵙고 주유가 군대를 이동하고, 움직이며 그치는 것이 법이 있었음을 말하였다. 정보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내가 평소 주유가 유약하여 장수되기에 부족하다고 업신여겼는데 지금 능통하기가 이 같으니 참으로 장수의 재능이구나! 내가 어떻게 복종하지 않겠는가?”하고는 마침내 직접 군영에 나아가 사죄하였다, 주유가 겸손히 또한 감사하였다.
次日,瑜請諸葛瑾,謂曰:「令弟孔明有王佐之才,如何屈身事劉備?今幸至江東,欲煩先生不惜齒牙餘論,使令弟棄劉備而事東吳,則主公既得良輔,而先生兄弟又得相見,豈不美哉?先生幸即一行。」瑾曰:「瑾自至江東,愧無寸功。今都督有命,敢不效力?」即時上馬,逕投驛亭來見孔明。孔明接入,哭拜,各訴闊情。
다음 날 주유가 제갈근을 청하여 밀러 말하기를 “아우인 제갈공명을 왕을 보좌할만한 재능이 있는데 어찌하여 몸을 굽혀 유현덕을 섬기는가? 지금 다행히 강동에 이르렀으니 선생께서는 입에서 나오는 논의를 아끼지 말아 아우로 하여금 유현덕을 버리고 동오를 섬기면 곧 주공께서는 좋은 보좌를 얻게 되고, 선생께서는 형제가 또한 서로 만날 것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선생께서는 곧 한 번 가기를 바랍니다.”했다. 제갈근이 말하기를 “제가 강동에 이르고 나서부터 한 치의 공도 없음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지금 도독의 명이 있으니 감히 힘을 드러내지 않겠습니까?”하고는 곧 말에 올라 빨리 역참의 정자에 들어가 제갈공명을 만났다. 제갈공명이 영접하여 들인 후 곡하며 절하고 각기 지난 이야기들을 모두 하였다.
瑾泣曰:「弟知伯夷、叔齊乎?」孔明暗思:「此必周郎教來說我也。」遂答曰:「夷、齊,古之聖賢也。」瑾曰:「夷、齊雖至餓死首陽山下,兄弟二人亦在一處。我今與你同胞共乳,乃各事其主,不能旦暮相聚,視夷、齊之為人,能無愧乎?」孔明曰:「兄所言者,情也;弟所守者,義也。弟與兄皆漢人。今劉皇叔乃漢室之冑,兄若能去東吳,而與弟同事劉皇叔,則上不愧為漢臣,而骨肉又得相聚,此情義兩全之策也。不識兄意以為何如?」
제갈근이 울며 말하기를 “아우는 백이, 숙제를 아는가?”하니 제갈공명이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는 반드시 주유가 보내 나를 설득하게 한 것이다.”하고는 마침내 답하여 말하기를 “백이와 숙제는 옛날의 성현입니다.”하니 제갈근이 말하기를 “백이와 숙제는 비록 수양산 아래서 굶어죽음에 이르렀지만 형제 두 사람이 또한 한 곳에 있었다. 내가 지금 너와 태를 같이하고, 같은 젖을 먹었지만 곧 각기 그 주인을 섬기고 있어 아침저녁으로 서로 모일 수 없으니 백이와 숙제를 보기에 사람됨이 부끄러움이 없겠는가?”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형님이 말씀 하신 바는 정이고, 제가 지키는 바는 의입니다. 저와 형님은 모두 한나라 사람입니다. 지금 유황숙(유현덕)은 곧 한나라 황실의 후손이니 형님께서 만약 동오를 떠나 저와 같이 유황숙을 섬긴다면 곧 위로는 한나라 신하가 되어 부끄럽지 않고, 골육(형제가)이 또한 서로 모일 수 있을 것이니 이는 정과 의 두 쪽이 완전해질 수 있는 계책입니다. 형님의 뜻이 어떠한지 알지 못하겠습니다.”했다.
瑾思曰:「我來說他,反被他說了我也。」遂無言回答,起身辭去,回見周瑜,細述孔明之言。瑜曰:「公意若何?」瑾曰:「吾受孫將軍厚恩,安肯相背?」瑜曰:「公既忠心事主,不必多言。吾自有伏孔明之計。」正是:智與智逢宜必合,才和才角又難容。畢竟周瑜何計伏孔明,且看下文分解。
제갈근이 생각하기를 “내가 와서 그를 설득하다가 도리어 그가 나를 설득하겠구나.”했다. 마침내 대답하지 않고 몸을 일으켜 하직하고 갔다. 돌아가 주유를 만나 제갈공명의 말을 자세하게 말하였다. 주유가 말하기를 “공의 뜻은 어떠합니까?”하니 제갈근이 말하기를 “내가 손장군의 두터운 은혜를 받았는데 어찌 즐겨 배반하겠습니까?”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공이 이미 충심으로 주공을 섬기시니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나는 제갈공명의 계책에 감복함이 있습니다.”했으니 바로 이러하다. 지혜와 지혜가 만났으니 반드시 합하는 것이 마땅하고, 재주와 재주가 다투니 또한 용납하기 어렵구나. 마침내 주유는 어떤 계책으로 제갈공명을 복종시킬 것인가.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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