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學諸家集註卷之三
소학제가집주 권3
敬身第三
경신 제3
〔集說〕陳氏曰 敬身者 敬以持身也 凡四十六章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敬身은 공경으로써 몸을 지니는 것이다. 모두 46장이다.
孔子曰 君子無不敬也 敬身為大 身也者親之枝也 敢不敬與 不能敬其身 是傷 其親 傷其親 是傷其本 傷其本 枝從而亡 仰聖模 景賢範 述此篇 以訓蒙士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 자신을 공경함은 큼이 된다. 자신이라는 것은 어버이의 가지이니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자신을 공경하지 못하는 것은 그 어버이를 해침이며, 그 어버이를 해치는 것은 그 근본을 해침이니 가지가 따라서 망한다. 성인의 모양을 우러르고, 현인의 법도를 향하여 이 편을 지어 어리석은 선비를 가르친다.
〔集說〕方氏曰 身之於親 猶木之有枝 親之於身 猶木之有本 相須而共體 此所以不敢不敬也 陳氏曰 仰猶慕也 景猶向也 聖賢之言 為天下後世法 故曰模範
[집설]방씨가 말하기를 몸의 어버이에 대해서는 나무의 가지가 있음과 같고, 어버이의 자신에 대해서는 서로 반드시 몸을 험께 한다. 이는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진씨가 말하기를 仰은 사모하는 것과 같다. 景은 향하는 것이다. 성현의 말은 천하후세의 법이 된다. 그러므로 模範이라고 말한 것이다.
丹書曰 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義勝欲者從 欲勝義者凶
「丹書」에 말하기를 敬이 나태함을 이기는 자는 吉하고, 나태함이 敬을 이기는 자는 滅하며, 義가 욕심을 이기는 자는 따르고, 욕심이 義를 이기는 자는 凶하다.
〔集解〕丹書見大戴禮 敬者主一無適之謂 怠惰慢滅亡也 義者天理之公 欲者人欲之私 從順也 眞氏曰 師尙父之告武王 不出敬與義之二言 盖敬則萬善俱 立怠則萬善俱廢 義則理為之主 欲則物為之主 吉凶存亡之 所由分也
[집해]「丹書」는 「大戴禮」에 보인다. 敬은 하나를 주장하여 감이 없는 것을 말한다. 怠惰는 오만하여 멸망하는 것이다. 義는 天理의 공정한 것이요 欲은 人欲의 사사로움이다. 從은 순히 하는 것이다. 진씨가 말하기를 스승인 尙父(강 태공)이 무왕에게 말한 것이 敬과 義의 두 말을 벗어나지 않았다. 대개 敬은 곧 모든 선을 갖추었는데 게으름을 세우면 곧 모든 선의 갖춤이 없어진다. 義는 곧 이치를 주장함이며, 욕심은 곧 물건을 주장함이니 吉凶과 存亡이 말미암아 나누어지는 바이다.
曲禮曰 毋不敬 儼若思 安定辭 安民哉
「曲禮」에 말하기를 공경하지 않음이 없게 하여 엄숙하고 정중하게 하여 생각하듯이 하며, 말은 안정되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
〔集解〕毋禁止辭 眞氏曰 毋不敬者 謂身心內外不可使有一毫之不敬也 其容貌必端儼而若思 其言辭必安定而不遽 以此臨民 民有不安者乎 此雖四言而修身治國之道略備 其必聖賢之遺言歟
[집해]毋는 금지하는 말이다. 진씨가 말하기를 毋不敬은 몸과 마음과 내외가 한 터럭의 공경하지 않음이 있게 해서는 안된다. 그 용모는 반드시 단정하고 삼가 하여 생각하듯이 하며 그 말은 반드시 안정되게 하여 급하지 말아야 한다. 이로써 백성에게 임하면 백성들이 편안하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이는 비록 네 마디 말이나 몸을 닦고, 나라를 다스리는 도를 대략 갖추었으니 반드시 성현이 남긴 말일 것이다.
敖不可長 欲不可從 志不可滿 樂不可極
오만함을 자라게 해서는 안되며, 욕심을 따라서 안되며, 뜻이 가득차서 넘치게 해서는 안되며 즐거움을 지극하게 해서는 안된다.
〔集解〕應氏曰 敬之反為傲 情之動為欲 志滿則溢 樂極則反 馬氏曰 傲不可長者 欲消而絶之也 欲不可縱者 欲克而止之也 志不可滿者 欲損而抑之也 樂不可極者 欲約而歸於禮也
[집해]응씨가 말하기를 敬의 반대가 傲가된다. 情의 움직임이 욕심이다. 뜻이 가득차면 곧 넘치고 즐거움이 지극하면 곧 (반대가 된다)뒤집어진다. 마씨가 말하기를 오만함이 자라지 않게 한다는 것은 욕심을 사라지게 하여 끊는 것이다. 욕심을 제멋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욕심을 극복하여 저지하는 것이다. 뜻을 가득 채울 수 없다는 것은 욕심을 덜어서 억제하는 것이다. 즐거움을 지극히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욕심을 요약하여 예로 돌아가는 것이다.
賢者狎而敬之 畏而愛之 愛而知其惡 憎而知其善 積而能散 安安而能遷
어진 자는 친히 하되 공경하고, 두려워하되 사랑하며 사랑하되 그 미워함을 알고, 미워하되 선함을 알고, 쌓되 흩어 편안한 바를 따라 편안하게 하여 옮길 수 있다.
〔集解〕朱子曰 此言賢者於其所狎能敬之 於其所畏能愛之 於其所愛 能知其惡 於其所憎 能知其善 雖積財而能散施 雖安安而能徙義 可以為法 與上下文禁戒之辭 不同 應氏曰 安安者 隨所安而安也 安者仁之順遷者 義之決
[집해]주자가 말하기를 이는 어진 자가 그 친한 바를 공경할 수 있고, 그 두려워하는 바를 사랑할 수 있고, 그 사랑하는 바를 미워할 줄 알고, 그 미워하는 바에 그 선함을 알며, 비록 제물을 쌓되 흩어 베풀 수 있고, 비록 편안함을 베풀어 편안하게 하되 의에 옮길 수 있어 본받을 수 있음을 말한다. 위, 아래의 글에 금지하고 경계하는 말과는 같지 않다. 응씨가 말하기를 安安은 편안한 바를 따라 편안한 것이다. 安은 仁을 순히 따라 옮기는 것이니 義의 결단함이다.
臨財毋苟得 臨難毋苟免 狠毋求勝 分毋求多
재물에 임해서는 구차히 얻지 말 것이며, 어려움에 임해서는 구차히 면하지 말아야 한다. 싸움에서는 이김을 구하지 말 것이며, 나눔에는 많음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集說〕陳氏曰 苟苟且 狠鬪狠 分分財 陳氏曰 毋苟得 見利思義也 毋苟免 守死善道也 狠毋求勝 忿思難也 分毋求多 不患寡而患不均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苟는 구차함이다. 狠은 개싸움이다. 分은 재산을 나누는 것이다. 진씨가 말하기를 구차하게 얻지 말며, 이익을 보면 의를 생각한다. 구차히 면하지 말라는 것은 죽음으로 선한 도를 지키는 것이다. 싸워서 이김을 구하지 말고, 분노에는 어려움을 생각한다. 나눔에 많음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적음를 근심하지 말고 고르지 못함을 근심하는 것이다.
疑事毋質 直而勿有
의심나는 일은 질정하지 말며, 나의 견해를 진술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선택하여 결단하기를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集解〕朱子曰 兩句連說為是 疑事毋質 卽少儀所謂 毋身質言語也 直而勿有 謂陳我所見聽 彼決擇 不可據而有之 專務强辨
[집해]주자가 말하기를 두 구절을 이어 말하는 것이 옳음이 되니 疑事毋質은 곧 『少儀』에 이른 바 자신의 말로 질정하지 말라는 것이고, 直而勿有는 내가 보고 들은 바를 진술하여 그가 결단하여 선택하고 근거하여 오로지 억지로 변명함에 힘씀이 있어서는 안됨을 말한 것이다.
孔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공자가 말하기를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에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 했다.
〔集解〕朱子曰 非禮者己之私也 勿者禁止之辭 是人心之所以為主 而勝私復禮之機也 私勝則動容周旋 無不中禮 而日用之間 莫非天理之流行矣
[집해]주자가 말하기를 非禮는 자기 사사로이 하는 것이다. 勿은 금지의 말이다. 이는 인심이 주인이 되는 까닭으로 사사로움을 이기고 예에 돌아가는 기틀이다. 사사로움을 이기면 곧 움직임이 예에 알맞지 않음이 없어 날로 쓰는 사이에 천리의 유행이 아님이 없다.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施於人
문을 나서면 큰 손님을 뵙듯이 하고, 백성 부리기를 큰 제사를 받들 듯이 하고 자기가 바라지 않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라.
〔集說〕朱子曰 敬以持己 恕以及物 則私意無所容 而心德全矣 陳氏曰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敬以持己也 己所不欲勿施於人 恕以及物也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敬으로써 자기를 지니고, 恕로써 다른 사람에게 미치면 곧 사사로운 뜻이 용납할 바가 없어 마음의 덕이 온전하다. 진씨가 말하기를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는 敬으로써 자기를 지니고 자기가 바라지 않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않고, 恕로써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것이다.
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雖之夷狄 不可棄也
평소에 처함은 공손히 하고 일을 맡아서는 공경하며, 사람과 함께 할 때는 마음을 다하면 비록 오랑캐에게 갈지라도 버릴 수 없다.
〔集解〕之往也 夷東夷狄北狄 朱子曰 恭主容 敬主事 恭見於外 敬主乎中 之夷狄不可棄 勉其固守而勿失也
[집해]之는 가는 것이다. 夷는 東夷(동 쪽 오랑캐)이고, 狄은 北狄(북쪽 오랑캐)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恭은 포용을 위주로 하고, 敬은 일을 위주로 한다. 恭은 밖에 드러나고 敬은 마음속에서 주장한다. 之夷狄不可棄는 것은 굳게 지켜서 잃지 않음에 힘쓰는 것이다.
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 行矣 言不忠信 行不篤敬 雖州里行乎哉
말은 진실 되게 하고 행동은 공경을 두터이 하면 비록 만맥의 나라에 가더라도 행해야 한다. 말이 진실 되지 않고 행동에 공경을 돈독히 하지 않으면 비록 주리에서라도 행해야 한다.
〔集說〕陳氏曰 盡己之謂忠 以實之謂信篤厚 蠻南蠻 貊北狄 二千五百家為里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자기를 다하는 것을 忠이라 하고, 그것을 실제로 하는 것을 진실함이 두텁다고 말한다. 蠻은 南蠻이고 貊은 北狄이다. 2500家를 里라 한다.
君子有九思 視思明 聽思聰 色思溫 貌思恭 言思忠 事思敬 疑思問 忿思難 見得思義
군자는 9가지 생각할 것이 있으니 보는 것은 밝게 봄을 생각하고, 듣는 것은 막히는 바가 없을 것을 생각하고 얼굴색은 온화함을 생각하고, 행동거지는 공손함을 생각하며, 말은 진실을 생각하고, 섬김은 공경을 생각하고, 의심나는 것은 물음을 생각하고, 분노함에는 어려움을 생각하고 보는 것은 의를 생각한다.
〔集說〕朱子曰 視無所蔽則明無不見 聽無所壅則聰無不聞 色見於面者 貌擧身而言 思問則疑不蓄 思難則忿必懲 思義則得不苟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봄에 가리는 바가 없으면 곧 눈이 밝아 보지 못하는 바가 없고, 들음에 막히는 바가 없으면 곧 귀가 밝아 듣지 못하는 바가 없다. 色늠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고, 貌는 몸을 들어서 말한 것이다. 물음을 생각하면 의심이 쌓이지 않고, 어려움을 생각하면 곧 성냄을 반드시 징계하고, 의를 생각하면 곧 얻음이 구차하지 않다.
曾子曰 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斯遠暴慢矣 正顔色斯近信矣 出辭氣斯遠鄙倍矣
증자가 말하기를 군자가 도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이 셋이니 용모를 움직임은 이에 사나움과 오만함을 멀리하해야 하고, 안색을 바로하면 이에 믿음이 가까워진다. 말의 기운을 냄에는 이에 비루함과 이치를 배반함을 멀리 해야 한다.
〔集說〕朱子曰 貴猶重也 容貌擧一身而言 暴粗厲也 慢放肆也 信實也 正顔色而近信 則非色莊也 辭言語 氣聲氣也 鄙凡陋也 倍與背同 謂背理也 言道雖無所不在 然君子所重者 在此三事而已 是皆修身之要 為政之本 學者所當操存省察 而不可有造次顚沛之違者也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貴는 重(소중하게 여기다)과 같다. 容貌는 몸을 들어서 말한 것이요, 暴은 거칠고 사나운 것이다. 慠는 놓아 함부로 하는 것이다. 信은 진실된 것이다. 안색을 바로 하여 믿음을 가까이한다는 것은 곧 얼굴색을 꾸며하는 것이 아니다. 辭믄 말이다. 氣는 소리의 기운이다. 鄙는 모두 비루한 것이다. 倍와 背는 같은 것이니 이치에 어긋나는 것을 말한다. 道가 비록 있지 않는 바가 없으나 궁자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이 세 가지 일일 뿐임을 말한 것이다. 이는 모두 몸을 닦는 요점이고, 정사의 근본이 된다. 배우는 자는 마땅히 잡아 보존하고 살ㅎ펴야 할 바로 엎어지고 자빠짐의 사이에도 어겨서는 안 된다.
〔正誤〕人之容貌 鮮得和平 稟氣之剛者 多失之粗厲 稟氣之柔者 多失之放肆 故於動容貌之時 卽當遠夫粗厲放肆 而必致身於和平 人之顔色鮮得表裏如一 務於外飾者 色雖厲而內則荏 故於正顔色之時 卽當近乎信實 而不可務乎色莊 人之辭氣 鮮得適中 言之甚近者凡陋 不足聽 論之甚高者荒誕 不可詰 故於出辭氣之時 卽當遠乎凡陋背理 而必發言之無弊 此朱子改先註修身之驗 為修身之要之意 深得曾子切己 用力之旨
[정오]사람의 용모는 화평할 수 있음이 적다. 기질의 굳셈을 받으면 (화평함)을 잃어 거칠고 사나움이 많고, 기질의 柔함을 받으면 (화평함을) 잃어 방자함이 많다. 그러므로 용모를 움직일 때에는 곧 마땅히 거칠고, 사나우며, 방자함을 멀리하여 반드시 몸을 화평함에 이르게 해야 한다. 사람의 안색은 표리가 한결 같음이 적고, 밖을 꾸밈에 힘쓰니 안색이 비록 엄격하더라도 안은 곧 부드럽다. 그러므로 안색을 바르게 할 때에는 곧 마땅히 믿음과 진실을 가까이 하여 안색을 꾸밈에 힘써서는 안된다. 사람의 말의 기운은 알맞음이 적으니 말함이 매우 가까운 자는 모두 비루하여 들을 수 없고, 논함이 매우 높은 자는 헛되고 터무니없어 따질 수 없다. 그러므로 말의 기운을 낼 때에는 곧 마땅히 비루하고 이치에 배치되는 것을 멀리하고 반드시 말을 할 때의 병폐가 없어야 한다. 이는 주자의 앞 주인 수신의 경험이라 한 것을 고쳐 수신의 요체의 뜻으로 삼았으니 증자가 자기를 절제하고 힘을 씀의 가르침을 깊이 터득한 것이다.
曲禮曰 禮不踰節 不侵侮 不好狎 修身踐言 謂之善行
「曲禮」에 말하기를 예는 절도를 넘지 않으며, 침해하고, 업신여기지 않으며, 친압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몸을 닦고, 말을 실천하는 것을 말하니 善行이라 말한다.
〔集說〕陳氏曰 踰節則招辱 侵侮則忘讓 好狎則忘敬 三者皆叛禮之事 不如是則有以持其莊敬純實之誠 而遠於恥辱矣 吳氏曰 三者皆非禮 惟能修治其身 以踐行其言 是為善行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절도를 넘으면 곧 욕을 부르고, 침해하고 업신여기면 곧 사양함을 잊고, 친압하기를 좋아하면 곧 공경을 잊는다. 세 가지는 모두 예를 배반하는 일이다. 이 같지 않으면 곧 장엄하고, 공경하고, 순수하고, 진실함의 정성을 지녀 부끄러움과 욕됨을 멀리할 수 있다. 오씨가 말하기를 세 가지는 모두 禮가 아니니 오직 그 몸을 닦고 다스리는 것으로써 그 말을 실천하고 행하는 이것을 善行이라 한다.
樂記曰 君子姦聲亂色不留聰明 淫樂慝禮不接心術 惰慢邪僻之氣不設於身 體使耳目鼻口心知百體 皆由順正以行其義
[樂記]에 말하기를 군자는 간사한 소리와 어지러운 색을 귀와 눈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음란한 음악과 예를 더럽힘을 마음에 접하지 않으며, 게으르고 사벽한 기운을 몸에 베풀지 않으며 몸은 귀, 눈, 코, 입, 마음과 지각, 갖가지 몸으로 하여금 모두 순히 따르고 바르게 하는 것으로서 그 義를 행한다.
〔集解〕眞氏曰 君子之所以自養者 無他 內外交致其功而已 故姦聲亂色 不留聰明者 所以養其外也 淫樂慝禮 不接心術者 所以養其內也 外無聲色之誘 則內亦正矣 內無淫慝之惑 則外亦正矣 惰嫚之氣 自內出者也 邪僻之氣自外入者也 二者不得設於身體 則外而耳目鼻口四肢百體 內而心知 皆由順正以行其義 顔子四勿之功 可庶幾也
[집해]진씨가 말하기를 군자의 스스로 기르는 까닭은 다름이 없으니 안과 밖이 서로 그 공을 이룰 뿐이다. 그러므로 간사한 소리와 어지러운 색을 귀와 눈에 머물지 않게 하는 것은 그 밖을 기르는 까닭이다. 음란한 음악과 예를 더럽힘을 마음에 접하지 않게 하는 것은 그 안을 기르는 까닭이다. 밖으로 소리와 색의 유인함이 없으면 곧 안이 또한 바르게 된다. 안으로 음란하고 사특함의 미혹함이 없으면 곧 밖이 또한 바르게 된다. 게으르고 교만한 기운은 안으로부터 나오고, 사벽한 기운은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이다. 두 가지를 신체에 베풀지 않으면 곧 밖으로 귀, 눈, 코, 입, 4지와 온갖 몸과 안으로는 마음과 지각이 모두 순히 따르고 바름으로 말미암아 그 義을 행하니 顔子의 네 가지 하지 말아야 하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孔子曰 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愼於言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먹음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거처함에 편안함을 구하지 않으며, 일에 민첩하되 말을 삼가 하여 도가 있는 곳에 나아가 옳고 그름을 바로잡으니 배움을 좋아한다고 말 할만하다.
〔集說〕朱子曰 不求安飽者 志有在而不暇及也 敏於事者 勉其所不足 謹於言者 不敢盡其所有餘也 然猶不敢自是 而必就有道之人 以正其是非 則可謂好學矣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不求安飽者는 뜻이 다른 곳에 있어 미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敏於事者는 그 부족한 바를 힘쓰고, 말을 삼가는 자이니 감히 그 남음이 있는 바를 다하지 못한다. 그러나 오히려 감히 스스로 옳다하지 못하고 반드시 도가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 그 옳고 그름을 바로 한다면 곧 배움을 좋아한다고 말할 만하다.
管敬仲曰 畏威如疾 民之上也 從懷如流 民之下也 見懷思威 民之中也
관경중이 말하기를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기를 질병과 같이 여기는 것은 백성들 중의 상급이고, 은혜로 회유하는 것을 따르기를 물 흐르듯이 여기는 것은 백성들 중의 하급이다. 회유하는 것을 보고 하늘의 위엄을 생각하는 것은 백성들 중의 중급이다.
〔集說〕吳氏曰 管敬仲齊大夫 名夷吾 威者謂天之威也 言民能畏天之威 如畏疾病 自然不敢為惡 此民之上者也 懷者謂人以恩惠懷之也 因人懷己而不顧禮義之 是非 從之如水流下 此民之下者也 若見人懷己 而能思畏天威 不敢輕易從之 此民之中者也
[집설]오씨가 말하기를 管敬仲은 제 나라 대부이니 이름은 夷吾이다. 威는 하늘의 위엄을 이른다. 백성들이 하늘의 위업을 두려워하기를 마치 질병과 같이 여기면 자연히 감히 악을 행하지 않으니 이는 백성 들 중의 상급임을 말한 것이다. 懷는 사람을 은혜로써 회유함을 말한다. 사람들이 자기를 회유함으로 인하여 예의의 옳고 그름을 돌아보지 않고 따르기를 물이 흘러 내려가는 듯이 하면 이는 백성 들 중의 하급인 자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자기를 회유하는 것을 보면 하늘의 위엄을 생각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가볍고 쉽게 따르지 않는 것은 이는 백성 들 중의 중급인 자이다.
右明心術之要
이상은 심술의 요체이다.
冠義曰 凡人之所以為人者 禮義也 禮義之始在於正容體齊顔色順辭令 容體正顔色齊辭令順 而後禮義備 以正君臣親父子和長幼 君臣正父子親長幼和而後 禮義立
「冠義」에 말하기를 사람의 사람이 되는 까닭은 禮와 義 때문이다. 禮와 義의 시작은 얼굴과 몸을 바로하고, 안색을 가지런히 하며, 말과 명령을 순히 하는데 달려 있다. 얼굴과 몸을 바로하고 안색을 가지런히 하며, 말과 명령을 순히 한 후에 禮와 義가 갖추어지니 이로써 君臣관계를 바로하고, 父子가 친하며, 長幼가 화합한다. 君臣관계를 바로하고 父子가 친하고 長幼가 화합 한 후에 禮와 義 확립된다.
〔集說〕吳氏曰 冠義禮記篇名 此言人之所以為人 而異於禽獸者 以其有禮義也 禮以飾身 義以制事 人之道也 其始則在乎正容體齊顔色順辭令而已 及夫容體正而遠暴慢 顔色齊而近信 辭令順而遠鄙倍 則人道全 而禮義備矣 禮義旣備 由是以正君臣親父子和長幼 及夫君臣正而上下之分定 父子親而慈孝之道隆 長幼和而遜順之意洽 則人道正而禮義立矣
[집설]오씨가 말하기를 「冠義」는 『禮記』늬 편명이다. 이는 사람이 사람이 되는 까닭으로 짐승과 다른 것은 그 禮 와 義가 있기 때문임을 말하였다. 禮로써 몸을 꾸미고, 義로써 일을 제재하는 사람의 道이다. 그 시작은 곧 얼굴과 몸을 바로하고, 안색을 가지런히 하며, 말과 명령을 순히 함에 있을 뿐이다. 얼굴과 몸을 바로하고 사납고 거침을 멀리하고, 안색을 가지런히 하여 믿음을 가까이하고, 말과 명령을 순히 하여 비루하고 (예에) 어긋남을 멀리함에 이르면 곧 사람의 도리가 온전하여 禮와 義가 갖추어진다. 禮와 義가 이미 갖추어지면 이로 말미암아 君臣관계가 바로잡히고 父子가 친하고, 長幼가 화합한다. 君臣관계가 바로잡혀야 상하가 나뉘어 정해지고, 父子가 친하여야 사랑과 효의 도가 융성하고, 長幼가 화합하여 손순의 뜻이 흡족하면 곧 사람의 도리가 바로잡혀 예와 의가 확립된다.
曲禮曰 毋側聽 毋噭應 毋淫視 毋怠荒 遊毋倨 立毋跛 坐毋箕 寢毋伏 歛髮毋髢替 冠毋免 勞毋袒 暑毋褰裳
『曲禮』에 말하기를 기우려 듣지 않으며, 소리를 크게 하여 대답하지 않으며, 곁눈질하지 않으며,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며, 거만하지 않으며, 한쪽 발로 서지 않으며, 앉을 때 키처럼 하지 않으며, 엎드려 자지 않으며, 머리를 거둠에는 다른 머리를 덧대지 않으며, 관을 벗지 않으며, 수고로워도 웃옷을 벗지 않으며, 더워도 아래옷을 걷지 않는다.
〔集說〕陳氏曰 聽必恭 側耳以聽非恭也 應答之聲 宜和平 告急者悖戾之所發也 淫視流動邪眄也 怠荒謂容止縱慢也 遊行也 倨傲慢也 立當兩足整齊 不可偏任一足也 箕謂兩展其足狀如箕舌也 伏覆也 髢孔氏謂髲也 垂如髲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들음은 반드시 공손해야 하니 귀를 기우려 듣는 것은 공손한 것이 아니다. 대답하는 소리는 마땅히 화평해야 하고, 말을 급하게 하는 자는 어그러져 나오는 것이다. 淫視는 눈동자를 움직여 곁눈질 하는 것이다. 怠荒은 행동거지가 방종하고 교만한 것이다. 遊는 가는 것이다. 倨는 오만한 것이다. 서는 것은 마땅히 부 발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치우쳐 한 발로 하지 않는다. 箕는 두 쪽으로 편 그 발의 형상이 마치 키의 혀와 같음을 말한다. 伏은 엎드리는 것이다. 髢는 공씨가 髲라고 말하였으니 늘어뜨린 것이 가발과 같다.
〔集解〕免去冠也 袒露臂也 褰揭也 以暑熱褰裳亦為不敬也
[집해]免은 관을 벗는 것이다. 袒은 어깨를 드러내는 것이다. 褰은 것는 것이다. 더위로써 아래옷을 걷는 것이 또한 공경하지 않는 것이다.
登城不指 城上不呼
성에 올라서는 가리키지 않고, 성위에서 소리쳐 부르지 않는다.
〔集說〕陳氏曰 有所指則惑見者 有所呼 則駭聞者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가리키는 바가 있으면 곧 보는 자를 미혹하게 하고, 소리쳐 부르는 바가 있으면 곧 듣는 자를 놀라게 한다.
將適舍 求毋固
장차 여관에 가려할 때 구하기를 고집하지 않는다.
〔集解〕戴氏曰 就舘者誠不能無求於主人 然執平日之所欲 而必求於人 則非為客之義
[집해]대씨가 말하기를 여관에 가는 자는 진실로 주인에게 구함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그러나 평소의 바라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구하면 곧 손님되는 義가 아니다.
將上堂 聲必揚戶外 有二屨言聞則入言 不聞則不入
장차 당에 올라가려할 때 소리는 문 밖에서 드러내고, 신이 두 켤레 있고 말이 들리면 곧 들어가서 말하고, 들리지 않으면 들어가지 않는다.
〔集解〕陳氏曰 揚其聲者 使內人知之也
[집해]진씨가 말하기를 그 소리를 들어내는 것은 안에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集成〕饒氏曰 二屨在戶外 知有客 言不聞恐有私議 須迴避不入
[집성]요씨가 말하기를 두 켤레의 신발이 문밖에 있으면 손님이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말이 들리지 않으면 혹 사사로운 의논이 있을 것을 두려워함이니 반드시 돌아가 피하고 들어가지 않는다.
將入戶 視必下 入戶奉扃 視瞻毋回 戶開亦開戶 闔亦闔 有後入者 闔而勿遂
장차 문에 들어갈 때 반드시 아래를 보고, 문을 들어가서는 빗장을 들어 제자리에 두고 돌아보지 않으며, 문이 열려 있으면 또한 문을 열고, 닫혀 있으면 또한 닫는데 뒤에 들어오는 자가 있으면 닫되 완전히 닫지 말아야 한다.
〔集解〕視下者不擧目也 扃門關之木 入戶之時 兩手捧戶 置扃之處 不敢放手 排闥也
[집해]視下者는 눈을 들지 않는 것이다. 扃은 문의 빗장나무이니 문에 들어갈 때 두 손으로 문을 들어 올려 빗장 자리에 두고 감히 손을 놓아 빗장을 밀치지 말아야 한다.
〔集說〕陳氏曰 視瞻不為回轉 嫌於干入之私也 開闔皆如前 不違主人之意也 遂闔之盡也 嫌於拒從來者 故勿遂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視瞻不為回轉은 들어감을 구함의 사사로움을 싫어해서이다. 열고 닫음을 모두 전과 같이 하여 주인의 뜻을 어기지 않는다. 遂는 닫는 것을 다하는 것이니 따라 오는 자를 막음을 싫어하기 때문에 닫지 않는 것이다.
毋踐屨 毋踖席 摳衣趨隅 必愼唯諾
다른 사람의 신을 밟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자리를 밟지 않으며, 옷을 잡고 모퉁이로 가며, 반드시 응답을 삼가 한다.
〔集解〕踐屨謂踏他人之屨也 踖席謂躡他人之席也 摳衣謂兩手提衣 與攝齊同義 趨隅由席角而升坐也 唯諾應辭 言旣坐定 又當謹於應對也
[집해]踐屨는 다른 사람의 신을 밟는 것을 말한다. 踖席은 다른 사람의 자리를 밟는 것을 말한다. 摳衣는 두 손으로 옷을 잡는 것을 말하니 당겨 가지런히 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趨隅는 자리 모퉁이로부터 올라가 앉는 것이다. 唯諾은 응대하는 말이다. 이미 자리 잡고, 또한 마땅히 응대함을 삼가야 한다는 말이다.
禮記曰 君子之容舒遲 見所尊者齊遫
『禮記』에 말하기를 군자의 용모는 펴지고 느리게 해야 하니 어른인 바를 뵈면 가지런하고 삼가야 한다.
〔集解〕陳氏曰 舒遲閑雅之貌 齊如夔夔齊慄之齊 遫者謹而不放之謂 見所尊者 則加敬
[집해]진씨가 말하기를 舒遲는 한가하고 좋은 모양이다. 齊는 夔夔齊慄(마음을 조심함)의 齊와 같다. 遫은 삼가 하여 놓지 않음을 말함이니 존경하는 이를 뵈면 곧 공경을 더한다.
足容重 手容恭 目容端 口容止 聲容靜 頭容直 氣容肅 立容德 色容莊
발 모양은 무겁게 하며, 손 모양은 공손히 하고, 눈 모양은 곁눈질 하지 않으며, 입 모양은 그치며, 소리의 모양은 고요하게 하며, 머리 모양은 곧게 하며, 숨 쉬는 모양은 엄숙하게 하며, 서는 모양은 덕성스럽게 하며, 얼굴색은 장엄하게 한다.
〔集解〕陳氏曰 重不輕擧移也 恭毋慢弛也 端毋邪視也 止不妄動也 靜不噦咳也 直不傾顧也 肅似不息也 德謂中立不倚 儼然有德之氣象也 莊矜持之貌也 朱子曰 足敬重以下 皆敬之目 卽此是涵養本原也
[집해]진씨가 말하기를 重은 가벼이 들어 옮기지 않는 것이다. 恭은 교만하고 해이하지 않는 것이다. 端은 곁눈질하지 않는 것이다. 止는 망녕되이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靜은 딸국질과 기침하지 않는 것이다. 直은 기우려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肅은 숨 쉬지 않는 듯 하는 것이다. 德은 가운데 서서 기대지 않아 엄연하여 덕의 기상이 있는 것이다. 莊은 스스로 억제하고 조심하는 모양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足敬重 이하는 모두 敬의 조목이니 곧 이것은 근본을 함양하는 근원이다.
曲禮曰 坐如尸 立如齊
「曲禮」에 말하기를 앉는 것은 시동처럼 하고, 서는 것은 재계하는 듯이 한다.
〔集說〕孔氏曰 尸居神位 坐必矜莊 坐法必當如尸之坐 人之倚立 多慢不恭 雖不齊 亦當如祭前之齊
[집설]동씨가 말하기를 尸는 신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앉음은 반드시 조심하고, 앉는 법은 반드시 마땅히 시동의 앉음과 같이 해야 한다. 사람이 기대섬은 오만함과 공손하지 않음이 많으니 비록 가지런하지 않을 지라도 또한 제사지내기 전의 가지런히 하는 것과 같이해야 한다.
少儀曰 不窺密 不旁狎 不道舊故 不戱色
『少儀』에 말하기를 은밀히 엿보지 않으며 두루 친압하지 않으며, 벗의 일을 말하지 않으며, 장난스런 표정을 하지 않는다.
〔集解〕窺密謂窺覘人隱密之處也 旁泛及也 旁狎謂泛與人褻狎也 道言也 道舊故謂言故舊之非也 戱弄也 戱色謂嬉笑 侮慢之容也
[집해]窺密은 사람의 은밀한 곳을 엿보는 것을 말한다. 旁 두루 미치는 것이다. 旁狎은 두루 다른 사람을 친압하는 것이다. 道는 말하는 것이다. 道舊故는 친구의 잘못을 말하는 것을 이른다. 戱는 희롱하는 것이다. 戱色은 장난하며 웃는 것이니 교만한 모습이다.
毋拔來 毋報往
갑자기 오지 말며, 갑자기 가지 말라
〔集成〕拔報皆疾也 人來往當有宿漸 不可猝也
[집성]拔, 報는 모두 빨리하는 것이다. 사람이 오고 감은 마땅히 오래하고 점진함이 있어야 하며 갑자기 해서는 안된다.
〔集說〕朱子曰 來往只是向背之意 此兩句文義 猶云其就義若渴 則其去義若熱 言人見有箇好事 火急歡喜去做 這樣人不耐久 少間心懶意闌 則速去之矣 所謂其進銳者 其退速也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來往은 다만 향배의 뜻일 뿐이니 이 두 구절의 뜻은 그 義에 나아가기를 마치 목마르듯이 하면 곧 義를 떠남이 마치 뜨거움을 만졌을 때 같다는 말과 같다. 사람이 개개의 좋아하는 일을 보고 급히 하고, 기뻐하여 가서 지으면 이 모양의 사람은 참기를 오래하지 못한다. 잠간 사이 마음이 게을러지고 뜻을 가로막으면 곧 속히 떠나니 이른바 그, 나아감이 날카로운 자는 그 물러남도 빠르다는 것이다.
毋瀆神 毋循枉 毋測未至
신을 업신여기지 않으며, 굽은 것을 따르지 않으며, 이르지 않은 것을 헤아리지 않는다.
〔集說〕陳氏曰 神不可瀆 必敬而遠之 言行過而邪枉 當改以從直 後復循襲 是二過矣 君子以誠自處 亦以誠待人 不逆料其將然也 未至而測之 雖中亦偽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신은 업신여길 수 없다. 반드시 공경하되 그것을 멀리하고, 말과 행동이 지나치고, 바르지 못하여 굽으면 마땅히 고치는 것으로서 곧음을 따르고, 뒤에 다시 따라 이으면 이는 두 번의 잘못이다. 군자는 誠으로써 자처하고 또한 誠으로서 사람을 대접하고, 장차 그러할 것으로 거슬러 헤아려서는 안된다. 이르지 않음에도 그것을 헤아리면 비록 적중했을 지라도 또한 거짓이다.
毋訾衣服成器 毋身質言語
의복과 만들어진 기물을 헐뜯지 말고, 의심나는 말을 자신이 질정하지 말아야 한다.
〔集說〕陳氏曰 訾毁其不善也 曲禮疑事毋質 與此質字義同 謂言語之際 疑則闕之 不可自我質正 恐有失誤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訾는 그 좋지 않음을 헐뜯는 것이다. 「曲禮」에 의심스러운 일을 자신이 질정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과 여기의 質자의 뜻이 같다.
論語曰 車中不內顧 不疾言 不親指
『論語』에 왈 수레 가운데에서는 안을 돌아보지 않으며 빨리 말하지 않으며, 친히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
〔集說〕朱子曰 內顧回視也 禮曰顧不過轂 三者皆失容 且惑人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內顧는 돌아보는 것이다. 예에 말하기를 돌아보는 것은 바퀴통을 지나지 않게 한다. 세 가지는 모두 모습을 잃게 하고 또한 사람을 미혹하게 한다.
曲禮曰 凡視上於面則敖 下於帶則憂 傾則姦
「曲禮」에 말하기를 무릇 보는 것이 얼굴보다 위이면 곧 교만하고, 대보다 낮으면 곧 근심하고, 기우려 보면 곧 간사한다.
〔集說〕呂氏曰 上於面者其氣驕 知其不能以下人矣 下於帶者其神奪 知其憂在乎心矣 視流則容側 必有不正之心存乎胸中矣 此君子之所以愼也
[집설]여씨가 말하기를 얼굴보다 위에 두면 그 기운이 교만하여 다른 사람에게 낮추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대보다 아래에 두면 그 정신을 빼앗겨서 그 근심이 마음에 있음을 안다. 흘려보면 곧 모습이 기울어 반드시 바르지 못함의 마음이 가슴 속에 둠이 있다. 이는 군자의 삼가는 이유이다.
論語曰 孔子於鄕黨 恂恂如也 似不能言者
『論語』에 말하기를 공자가 향당에서 진실되고 성실한 듯이 하고, 말을 잘 하지 못하는 듯이 하였다.
〔集說〕朱子曰 恂恂信實之貌 似不能言者 謙卑遜順 不以賢知先人也 鄕黨父兄宗族之所在 故孔子居之 其容貌辭氣如此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恂恂은 진실하고 성실한 모습니다. 似不能言은 겸손하여 낮추고 공손하고 순히 따라서 어질고 지혜로써 다른 사람을 앞서지 않았다. 鄕黨은 부형과 종족이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살면서 그 용모와 말의 기운이 이와 같았가.
其在宗廟朝廷 便便言 唯謹爾
그 종묘와 조정에 있어서는 말을 잘 하되 오직 삼가 하였을 뿐이다.
〔集說〕朱子曰 便便辯也 宗廟禮法之所在 朝廷政事之所出 言不可以不明辯 故必詳問而極言之 但謹而不放爾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便便은 말을 잘하는 것이다. 종묘는 예법이 있는 바이고, 조정은 정사가 나오는 곳이니 말을 분명하게 잘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자세하게 묻고, 지극히 말하고 다만 삼가 멋대로 하지 못할 뿐이다.
朝與下大夫言 侃侃如也 與上大夫言 誾誾如也
조정에서 하대부와 함께 말할 때는 侃侃하게 하고, 상대부와 더불어 말할 때는 誾誾하게 하였다.
〔集說〕朱子曰 此君未視朝時也 王制諸侯上大夫卿下大夫五人 許氏說文 侃侃剛直也 誾誾和悅而諍也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이는 임금이 아직 조회를 보지 않은 때이다. 「王制」에 제후의 상대부는 경이고, 하대부는 다섯 사람이다. 허씨의 『說文』에 侃侃은 강직함이다. 誾誾은 온화하되 간쟁하는 것이다.
孔子食不語 寢不言
공자는 밥 먹을 때 말하지 않았고, 잠잘 때 말하지 않았다.
〔集說〕朱子曰 答述曰語 自言曰言 范氏曰 聖人存心不他 當食而食 當寢而寢 言語非其時也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답하여 말하는 것을 語 라하고, 스스로 말하는 것을 言이라 한다. 범씨가 말하기를 성인이 마음을 보존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마땅히 먹을 때 먹고, 마땅히 잠잘 때 잠자니 말하는 그 때가 아니다.
士相見禮曰 與君言 言使臣 與大人言 言事君 與老者言 言使弟子 與幼者言 言孝悌于父兄 與衆言 言忠信慈祥 與居官者言 言忠信
「士相見禮」에 말하기를 임금과 함께 말할 때는 신하를 부릴 것을 말하고, 大人과 더불어 말 할 때는 임금 섬기는 것을 말하고, 늙은이와 말하는 자는 제자를 부릴 것을 말하고, 어린애와 말하는 자는 부형에게 효도하고 우애한다, 여럿이 말할 때는 忠信과 자애로움을 말하고, 관에 있는 자와 더불어 말할 때는 忠信을 말한다.
〔集說〕陳氏曰 大人卿大夫也 老者人之父兄 幼子人之子弟 衆謂庶人 居官者謂上士至庶人在官者 言使臣 則以禮言 事君則以忠 言使弟子 則以慈愛 祥猶善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大人은 경, 대부이다. 老者는 다른 사람의 父兄이다. 幼子는 다른 사람의 子弟이고, 衆은 서인을 말한다. 居官는 上士에서 庶人에 이르기까지 관직에 있는 자이다. 言使臣은 곧 예로써 말하는 것이요, 事君은 곧 충으로써 하고, 言使弟子는 곧 자애로서 하고, 祥은 선과 같다.
論語曰 席不正不坐
『論語』에 말하기를 자리는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았다.
〔集說〕謝氏曰 聖人心安於正 故於位之不正者 雖小不處
[집설] 사씨가 말하기를 성인의 마음이 바름에서 편안하다 그러므로 자리의 바르지 않는 것에 비록 작을 지라도 처하지 않는 자이다.
子見齊衰者 雖狎必變 見冕者與瞽者 雖褻必以貌
공자는 상복을 입은 자를 보면 비록 친압할 지라도 반드시 얼굴색을 변하였고, 면류관을 쓴 자와 눈 먼 자를 보면 비록 평소일지라도 반드시 예를 갖추었다.
〔集解〕齊衰喪服 狎謂素親 狎變謂變色 冕有爵者 瞽無目者 褻謂燕見 貌謂禮貌 范氏曰 聖人之心 哀有喪 尊有爵 矜不成人
[집해]齊衰는 상복이다. 狎은 평소에 친한 것이고, 狎變은 얼굴색을 바꾸는 것이고, 冕은 작위가 있는 것이다. 瞽는 눈이 없는 것이다. 褻은 평소에 보는 것이다. 貌는 예의 있는 모양이다. 범씨가 말하기를 성인의 마음은 상이 있음을 슬퍼하고, 작위가 있음을 높이고, 완전하지 못한 사람을 불쌍하게 여겼다.
凶服者式之 式負版者
(수레를 타고 가다)흉복(상복)을 입은 이를 만나면 수레 가로대에 의지하여 경의를 표시하고, (수레를 타고 가다)나라의 지도와 호적을 진자를 만나면 수레 가로대에 의지하여 경의를 표시하였다.
〔集說〕朱子曰式車前橫木 有所敬則俯而憑之 負版持邦國圖籍者 式此二者 哀有喪 重民數也 人惟萬物之靈 而王者之所天也 故周禮獻民數於王 王拜受之 況其下者敢不敬乎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式은 수레 앞의 가로댄 나무이니 공경할 바가 있으면 곧 굽혀서 의지한다. 負販은 나라의 지도와 호적을 지닌 자이다. 式은 이 두 가지이니 상이 있음을 슬퍼하고 백성의 수를 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사람은 만물의 신령스러운 것이고, 왕 노릇하는 자의 하늘이다. 그러므로 『周禮』에 왕에게 백성의 수를 바치면 왕이 절하고 받는데 하물며 그 아래의 자가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禮記曰 若有疾風 迅雷甚雨 則必變 雖夜必興 衣服冠而坐
『禮記』에 말하기를 만약 빠른 바람과 빠른 우레와 심한 비가 내리면 곧 반드시 얼굴색을 변하였고, 비록 밤일 지라도 반드시 일어나 옷을 입고 관을 쓰고 앉았다.
〔集說〕陳氏曰 迅疾也 變謂變其容色 興起也 必變興 皆所以敬天之怒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迅은 빠른 것이다. 變은 그 얼굴 을 바꾸는 것이다. 興은 일어남이다. 판드시 얼굴색을 바꾸고 일어나는 것은 모두 하늘의 노여움을 공경하기 때문이다.
論語曰 寢不尸 居不容
『論語』에 말하기를 잠 잘 때는 시체처럼 하지 않으며 집에 거처할 때는 모양을 내지 않았다.
〔集說〕朱子曰 尸謂偃臥似死人也 居居家 容容儀 范氏曰 寢不尸 非惡其類於死也 惰慢之氣 不設於身體 雖舒布其四體 而亦未嘗肆耳 居不容 非惰也 但不若奉祭祀見賓客而已 申申夭夭是也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尸는 누운 것이 죽은 사람과 같음을 말한다. 居는 집에 거처하는 것이다. 容은 容儀이다. 범씨가 말하기를 寢不尸는 죽은 사람과 비슷함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게으름의 기운을 신체에 베풀지 않고, 비록 그 4체를 펼지라도 또한 일찍이 함부로 하지 않았을 뿐이다. 居不容은 게으르지 않아서 다만 제사를 받드는 것과 빈객을 만나는 것과는 같지 않을 뿐이니 얼굴을 펴고 온화하게 하였다는 것이 이것이다.
子之燕居 申申如也 夭夭如也
공자는 한가하고 일이 없을 때 얼굴을 펴고 온화하게 하였다.
〔集說〕朱子曰 燕居閒暇無事之時 楊氏曰 申申其容舒也 夭夭其色愉也 ○程子曰 今人燕居之時 不怠惰放肆 必太嚴厲 惟聖人 便自有中和之氣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燕居는 한가하고 일이 없을 때이다. 양씨가 말하기를 申申은 그 얼굴을 펴는 것이고, 夭夭는 그 얼굴빛을 즐거운 듯이 하였다.
曲禮曰 並坐不橫肱 授立不跪 授坐不立
「曲禮」에 말하기를 나란히 앉았을 때 팔을 옆으로 하지 않으며 서 있는 이에게 줄 때는 꿇지 않으며, 앉은 이에게 줄때는 서지 않는다.
〔集說〕陳氏曰 橫肱則妨並坐者 不跪不立 皆謂不便於受者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팔을 가로로 하면 나란히 앉은 자를 방해하고, 꿇지 않고 서지 않는 것은 모두 받는 자가 불편함을 날한다.
入國不馳 入里必式
나라에 들어갈 때는 치달리지 않고 마을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공손히 한다.
〔集說〕陳氏曰 入國不馳 恐車馬躪躒人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나라에 들어갈 때 치달리지 않는 것은 수레와 말에 사람이 짓밟히고 움직이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集成〕馬氏曰 石慶入里門 不下車而其父責之 張湛望里門 則步而君子多之 則入里必式者 父母國之道也
[집성]마씨가 말하기를 석경이 마을 문에 들어갈 때 수레에서 내리지 앉자 그 아비가 꾸짖었고, 張湛이 마을 문을 바라보이자 곧 걸어서 가니 군자들이 잘했다하니 곧 마을에 들어가면 반드시 경의를 표하는 것이 부모 나라에 대한 도리이다.
少儀曰 執虛如執盈 入虛如有人
『少儀』에 말하기를 빈 것을 잡는 것을 가득 찬 것을 잡는 듯이 하고 빈 자이레 들어가는 것을 사람이 있는 듯이 해야 한다.
〔集說〕陳氏曰 執虛器如執盈滿之器 入虛室如入有人之室 敬心常存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빈 기물을 잡는 것을 가득 담긴 기물 잡듯이 하고, 빈 방에 들어가는 것을 사람이 있는 방에 들어가듯이 하는 것은 공경하는 마음을 항상 보존하려는 것이다.
禮記曰 古之君子 必佩玉 右徵角 左宮羽
『禮記』에 말하기를 옛날의 군자는 반드시 옥을 차는데 오른 쪽은 徵과 角이고 왼쪽은 宮과 羽이다.
〔集解〕陳氏曰 徵角宮羽以玉聲 所中言也 徵為事 角為民 故在右 右為動作之方也 宮為君 羽為物 君道宜靜 物道宜積 故在左 左乃無事之方也 不言商者 或以西方肅殺之音 故遺之歟
[집해]진씨가 말하기를 徵, 角, 宮, 羽는 옥 소리로서 알맞은 바를 말한 것이다. 徵은 일이 되고, 角은 백성이 된다. 그러므로 오른 쪽에 둔다. 오른 쪽은 동작의 방법이 된다. 宮은 임금이 되고, 羽는 물건이 되니 임금의 도는 마땅히 고요해야 하고, 사물의 도는 마땅히 쌓아야 한다. 그러므로 왼쪽에 있으니 왼쪽은 곧 일이 없음의 방향이다. 商을 말하지 않은 것은 혹 서쪽방향이 가을의 쌀쌀함이 초목을 말려 죽이는 소리이기 때문에 뺏을 것이다.
趨以采齊 行以肆夏 周還中規 折還中矩 進則揖之 退則揚之 然後玉鏘鳴也 故君子在車 則聞鸞和之聲 行則鳴佩玉 是以非辟之心 無自入也
달려갈 때의 노래는 采齊의 시로써 절제하고, 걸어갈 때의 노래는 肆夏의 시로써 절도 있게 하고, 한 바퀴 돌 때는 規에 맞게 하고 꺽어 돌 때는 矩에 맞게 한다. 나아가면 곧 읍하고 물러나면 곧 드러낸 후에 옥이 쟁쟁하고 울린다. 그러므로 군자가 수레에 있으면 곧 방울 소리를 듣고 가면 곧 패옥을 울린다. 이 때문에 잘못되고 간사한 마음이 저절로 들어옴이 없어진다.
〔集解〕陳氏曰 采齊肆夏 皆詩篇名 規者為圓之器也 矩者為方之器也 朱子曰 周旋是直去卻回來 其回轉處 欲其圓如規也 折旋是直去了 復橫去 其橫轉處 欲其方如矩也 陳氏曰 趨時歌采齊之詩以為節 行時歌 肆夏之詩以為節 進而前則其身略俯如揖然 退而後則其身微仰 故曰揚之 進退俯仰皆得其節 故佩玉之鳴鏘然 可聽也 鸞和鈴也 吳氏曰 常所乘之車 鸞在衡和在軾 若田獵之車 則和在軾 鸞在馬鑣也 方氏曰 心內也而言入 何哉 盖心雖在內 有物探之而出 及其久也 則與物俱入 故以入言焉
[집해]진씨가 말하기를 采齊와 肆夏는 모두 『詩經』의 편명이다. 規는 원을 만드는 기구이고, 矩는 네모를 그리는 기구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周旋은 곧바로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니 그 도는 곳이 그 둥글기가 規와 같고자 한 것이다. 折旋은 곧 바로 가다가 다시 옆으로 가는 것이니 그 가로 도는 곳이 네모나기가 矩와 같고자 한 것이다. 진씨가 말하기를 달릴 때의 詩歌는 采齊의 시로 써 절도를 삼고 걸어 갈대의 詩歌는 肆夏의 시로써 절도를 삼는다. 나아감에 (몸을)앞으로 하면 곧 그 몸이 대략 굽혀져 읍하는 것 같고, 물러남에 (몸을) 뒤로 하면 곧 그 몸이 조금 우러르게 된다. 그러므로 드러낸다고 말한 것이다. 나아가고 물러나고, 굽히고 우러르는 것이 모두 그 절도를 얻는다. 그러므로 찬 옥의 쨍하는 울림을 들을 수 있다. 鸞和는 방울이다. 오씨가 말하기를 항상 타는 바의 수레는 방울(鸞)은 가로대에 있고, 방울(和)는 수레 앞턱 가로나무에 있다. 만약 사냥하는 수레는 곧 방울(和)은 수레 앞턱 가로나무에 있고, 방울(鸞)은 말의 재갈에 있다. 방씨가 말하기를 마음은 안인데 들어간다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 대개 마음이 비록 안에 있으나 사물이 그것을 찾아내고, 그 오램에 이름이 있으면 곧 사물과 함께 들어간다. 그러므로 들어간다고 말한 것이다.
射義曰 射者進退周還 必中禮 內志正 外體直然後 持弓矢審固 持弓矢審固然後 可以言中 此可以觀德行矣
「射義」에 말하기를 射는 나아가고 물러나고 돌아감이 반드시 예에 알맞으며, 안으로는 뜻이 바르고 밖으로는 몸을 곧게 한 후에 활과 화살을 자세하게 보고 견고하게 잡고, 활과 화살을 자세하게 보고 견고하게 잡은 후에 명중 시킬수 있음을 말한 것이니 이것으로 德行을 관찰 할 수 있다.
〔集說〕吳氏曰 射義禮記篇名 進退者升降之節 周還者揖讓之容 中禮合乎射之禮節也 內志正然後 持弓矢審 外體直然後 持弓矢固 唯固也 故其力能至 唯審也故其巧 能中於 此而觀則其德行可見矣
[집설]오씨가 말하기를 「射義」는 『禮記』의 편명이다. 進退는 올라가고 내려옴의 절차이고, 周還 은 읍하고 사양하는 모습이다. 中禮는 활 쏘는 예절에 합당한 것이다. 안으로 뜻을 바르게 한 후에 활과 화살을 잡아 자세히 살피고, 밖으로 몸을 곧게 한 후에 활과 화살을 굳게 잡는 것은 오직 견고하기 때문에 그 힘이 이를 수 있고, 오직 자세히 살피기 때문에 공교로워 적중할 수 있다. 이로 관찰하면 곧 그 덕행을 볼 수 있다.
右明威儀之則
이상은 威儀의 법을 밝혔다.
士冠禮 始加祝曰 令月吉日 始加元服 棄爾幼志 順爾成德 壽考維祺 介爾景福
「士冠禮」에 처음 (관)을 씌워 주면서 축하하여 말하기를 이 달 길한 날에 처음 어른의 관과 옷을 입으니 너의 어린 뜻을 버리고 너의 덕을 이룸을 순히 따르면 오래 살아 길하고 너의 큰 복을 크게 할 것이다.
〔集解〕士冠禮 儀禮篇名 禮男子二十而冠 將冠則筮日筮賓 及冠則有三加之禮也 始加用緇布冠 祝者賓所祝之辭也 令吉皆善也 元服首服也 幼志童心也 祺祥也 介景皆大也 言當月日之善 加爾首服 爾當棄其童幼之心 順成爾德 則必有壽考之祥 而大受其大福矣
[집해]「士冠禮」는 『儀禮』의 편명이다. 『禮記』에 남자가 20세이면 관을 쓰고, 관을 쓰려할 때는 곧 날을 점치고, 손님을 점치고 관례 날에 이르면 곧 三加의 예가 있다. 처음에는 치포관을 쓴다. 祝은 손님이 축하하는 바의 말이다. 令과 吉은 모두 좋은 것이다. 元服은 머리에 쓰는 것이다. 幼志는 童心이다. 祺는 길함이다. 介와 景은 모두 큼이다. 월과 날의 좋음을 당하여 너의 머리에 씌움을 더하니 너는 마땅히 그 어린이의 마음을 버리고 너의 덕을 순히 따라 이루면 곧 반드시 오래 삶의 길함이 있으니 크게 그 큰 복을 받음을 말한 것이다.
再加曰 吉月令辰 乃申爾服 敬爾威儀 淑愼爾德 眉壽萬年 永受胡福
再加에 말하기를 길한 달 좋은 때에 거듭 너에게 의복을 더하니 너는 위의를 공경하여 너의 덕을 잘 삼가 하면 만년토록 장수하고 길이 오래동안 복을 받을 것이다.
〔集說〕陳氏曰 再加用皮弁 辰時也 申重也 有威而可畏 謂之威 有儀而可象 謂之儀 淑善也 眉壽老人 以秀眉為壽徵也 胡猶遐也 言當時月之吉 重加爾服 爾當敬爾威儀而善謹爾德 則必有眉壽萬年 而永享遐福矣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再加에는 皮弁을 사용한다. 辰은 대이다. 申은 거듭함이다. 위엄으로 두려워할 만한 것이 있는 것을 威라 말하고, 거동하여 형상할 만한 것이 있는 것을 儀라 말한다. 淑은 선함이다. 眉叟는 노인이니 아름다운 눈썹으로서 장수의 상징으로 삼는다. 胡는 遐(멀다)와 같다. 때와 월의 길함을 당하여 거듭 너에게 쒸우니 너는 마땅히 너의 威儀를 공경하고 너의 덕을 잘 삼가 하면 곧 반드시 만년토록 장수함이 있어 길이 오래 동안 복을 누릴 것이다.
三加曰 以歲之正 以月之令 咸加爾服 兄弟具在 以成厥德 黃耈無疆 受天之慶
三加에 말하기를 해가 좋고 달이 좋을 때 모두 너에게 의복을 더하니 형제가 모두 생존해 있고, 그 덕을 이룸으로써 늙어 머리카락과 얼굴색이 변할 때까지 끝없이 장수하여 하늘의 경사를 받으라.
〔集說〕吳氏曰 三加用爵弁 正猶善也 咸悉也 黃謂髮白而變黃 耈老人面凍梨色 如浮垢 皆壽徵也 無疆猶言無窮也 言當歲月之正 悉加爾以三者之服 當爾兄弟無故之時 以成就其德 爾德旣成 則必有無窮之壽 而受天之福慶矣
[집설]오씨가 말하기를 三加에는 爵弁을 쓴다. 咸은 모두이다. 黃은 머리카락이 희다가 누렇게 변하는 것이고, 耈는 노인의 얼굴이 언 배의 색이 되어 때와 같은 것이니 모두 장수를 상징한다. 無疆은 무궁하다는 말과 같다. 세월의 좋음을 당하여 너에게 모두 세 가지의 의관을 더하니 너의 형제가 무고함의 때를 당하여 그 덕에 나아가 이루라. 너의 덕이 이미 이루어지면 곧 반드시 무궁함의 장수함이 있어 하늘의 복과 경사를 받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
曲禮曰 為人子者 父母存 冠衣不純素 孤子當室 冠衣不純采
「曲禮」에 말하기를 자식된 자는 부모가 생존해 있으면 관을 흰색으로 선 두르지 않고 아버지를 잃은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었어도 관에 채색한 선을 두르지 않는다.
〔集說〕孔氏曰 冠衣冠飾也 衣純領緣也 呂氏曰 當室謂為父後者 不純采者 雖除喪 猶純素 惟當室者行之 非當室者 不然也
[집설]공씨가 말하기를 冠衣는 관을 꾸미는 것이다. 衣純은 옷깃에 선 두르는 것이다. 여씨가 말하기를 當室은 아버지의 뒤가 되는 것이다. 不純采는 비록 상복을 벗었더라도 오히려 흰색으로 선을 두른다. 오직 아버지의 뒤가 된 자만이 그것을 행하고 아버지의 뒤가 된 자가 아니면 그렇지 않다.
論語曰 君子不以紺緅飾
『論語』에 말하기를 군자는 감청색과 추색으로써 꾸미지 않는다.
〔集說〕朱子曰 君子謂孔子 紺深靑揚赤色 齊服也 緅絳色 三年之喪 以飾練服也 飾領緣也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공자를 이른다. 紺은 진한 청색에 붉은 색이 나타나는 것이니 재계할 때 입는 옷이다. 緅는 검붉은 색이니 삼년의 상에 선을 둘러 꾸민 옷이다. 飾은 옷깃에 선 두른 것이다.
紅紫不以為褻服
홍색과 자색은 평상복을 만들지 않는다.
〔集說〕朱子曰 紅紫間色不正 且近於婦人女子之服也 褻服私居服也 言此則不以為朝祭之服 可知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紅과 紫색은 사이색이니 정색이 아니고 또한 부인과 여자의 옷에 가깝다. 褻服은 평소에 입는 옷이다. 이는 곧 조회와 제사의 옷이 될 수 없음을 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當署 袗絺綌 必表而出之
더위를 당해서는 가는 갈포와 거친 갈포로 만든 홑옷을 입고 반드시 겉으로 내었다.
〔集說〕朱子曰 袗單也 葛之精者曰絺 麤者曰綌 表而出之謂先著裏衣 表絺綌而出之 於外欲其不見體也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袗은 홑옷이다. 갈포의 정미한 것을 絺라하고, 거친 것을 綌이라 한다. 表而出之는 먼저 속옷을 입고 겉에 갈포 옷을 입되 밖으로 내는 것이니 밖에 그 몸을 보이지 않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去喪 無所不佩
상을 마치고는 몸에 차지 않는 바가 없었다.
〔集說〕朱子曰 君子無故玉不去身 觿礪之屬 亦皆佩也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일이 없으면 옥을 몸에서 떼어 놓지 않으니 송곳, 숫돌과 같은 것이 또한 모두 차는 것이다.
孔子羔裘玄冠 不以吊
공자는 양 갖옷과 검은 관을 쓰고 조문하지 않았다.
〔集說〕陳氏曰 喪主素 吉主玄 弔必變服 所以哀死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상에는 흰색을 주로하고, 길함에는 검은색을 주로 하니 조문에는 반드시 옷을 바꾸는 것은 죽음을 슬퍼하기 때문이다.
禮記曰 童子不裘不帛 不屨絇
『禮記』에 말하기를 동자는 갖옷과 비단 옷을 입지 않고, 신은 신코를 꾸미지 않는다.
〔集解〕不裘不帛為太溫也 絇卽屨頭之綦 用以為行戒者 不屨絇未習行戒也
[집해]갖옷과 비단옷을 입지 않는 것은 크게 따뜻하기 때문이다. 絇는 곧 신발 머리의 끈이니 사용하여 다니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不屨絇는 다님에 익숙하지 않음을 경계한 것이다.
孔子曰 士志於道 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
공자가 말하기를 선비가 도에 뜻을 두고서 나쁜 옷과 거친 밥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함께 논의할 수 없다.
〔集解〕朱子曰 心欲求道而以口體之奉 不若人為恥 其識趣之卑陋甚矣 何足與議於道哉 愚謂 惡衣謂麤舊衣服 惡食謂䟽食菜羹之類 漢志謂 學以居位曰士 然四民中有志於學者 亦得稱為士也 夫衣取蔽形 食取充腹 貴賤上下各有其制 士之仕者 列於公卿大夫後 其祿俸有限 未仕者所入 豈能豊洽 乃恥惡衣惡食 而欲求華麗甘肥 以徇時濟欲 其不至於昧 天理喪廉恥 取非義以充之者 幾希矣故 先儒謝氏曰 恥惡衣惡食 學者之大病 善心不存 盖原於此 嗚呼有志為士者 尙其戒哉
[집해]주자가 말하기를 마음으로 도를 구하고자 하면서 입과 몸의 봉양으로서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음을 부끄러워한다면 그 지식과 지향함의 비루함이 심한 것이다. 어찌 함께 도를 논의할 수 있겠는가? 내가 말한다. 惡衣는 거칠고 오래된 옷을 말하고, 惡食은 거친 음식과 나물국 따위를 말한다. 『漢書』 志에서 말하기를 배움으로써 지위에 있는 것을 士라 하나 사민(사,농,공,상) 가운데 배움에 뜻을 둔자는 또한 士라 할 수 있다. 대저 옷은 해진 형상을 취함이고, 食은 배를 채움을 형상한 것이니 귀하고 천함이 각기 그 제도가 있다. 士 의 벼슬하는 자는 公卿大夫의 뒤에 나열하고, 그 녹봉에 한계가 있다. 벼슬하지 않은 자가 어찌 풍성하고 흡족할 수 있어서 惡衣와 惡食을 부끄러워
右明衣服之制
이상은 의복의 제도를 밝힌 것이다.
曲禮曰 共食不飽 共飯不澤手
「曲禮」에 말하기를 함께 음식을 먹을 때 배부르게 하지 않고, 함께 밥 먹을 때 손을 비비지 않는다.
〔集解〕食者所食非一品 飯者止飯而已共食 而求飽非讓道也
[집해]食은 먹는 바가 하나의 품목이 아니다. 飯은 밥뿐이어서 이미 함께 먹되 배부름을 구하는 것은 사양하는 도리가 아니다.
〔集成〕張子曰 不澤手 必有物以取之 不使濡其手
[집성]장자가 말하기를 不澤手는 반드시 물건으로써 취하고 그 손을 젖게하지 않는 것이다.
毋摶飯 毋放飯 毋流歠
밥을 모으지 않으며, 밥을 크게 뜨지 않으며, 소리내며 길게 마시지 않는다.
〔集解〕取飯作摶 則易得多 是欲爭飽也 放飯大飯也 流歠長飮也
[집해]밥을 취(떠서)하여 뭉치면 곧 많음을 얻기 쉬우니 이것은 배부름을 다투고자 하는 것이다. 放飯은 밥을 크게 하는 것이다. 流歠은 길게 마시는 것이다.
毋咤食 毋齧骨 毋反魚肉 毋投與狗骨 毋固獲
밥을 소리 내어 입맛 다시며 먹지 않으며, 뼈를 씹지 않으며, 생선과 고기를 도로 놓지 않으며 개에게 뼈다귀를 던져주지 않으며, 굳이 잡지 않는다.
〔集說〕陳氏曰 咤食謂食而叱咤 孔氏謂以舌口中作聲 毋咤恐似於氣之怒也 毋齧嫌其聲之聞也 毋反魚肉不以所餘反於器 鄭云謂己歷口 人所穢也 毋投與狗骨 不敢賤主人之物也 固獲謂必欲取之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咤食는 밥을 먹으면서 입맛을 다시는 것을 말한다. 공씨는 혀와 입 가운데서 소리를 내는 것이니 입맛 다시지 않는 것은 기색의 노함과 비슷함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毋齧은 그 소리 들림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毋反魚肉은 남은 바로써 그릇에 돌리지 않는 것이다. 정시가 말하기를 이미 입을 지나서 사람들이 더러워 하는 것이라 말했다. 毋投與狗骨은 감히 주인의 물건을 천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固獲은 반드시 취하고자 함을 말한다.
毋揚飯 飯黍 毋以箸
밥을 휘젖지 말며 기장밥은 젓가락을 쓰지 않는다.
〔集解〕揚謂散其熱氣 嫌於欲食之急也 毋以箸貴其匕之便也
[집해]揚은 그 열기를 흩는 것을 말하니 먹고자 함의 급함을 싫어해서이다. 毋以箸는 그 숟가락의 편함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毋嚃羹 毋絮羹 毋刺齒 毋歠醢 客絮羹 主人辭不能烹 客歠醢 主人辭以窶
국을 훅 들이마시지 말며, 국을 간 맞추지 말며, 이를 쑤시지 말며, 젓갈을 마시지 말며 객이 국에 간을 맞추면 주인은 잘 조리하지 못하였음을 사과하고 객이 젓갈을 마시면 주인은 가난함을 사과한다.
〔集說〕陳氏曰 羹之有菜 宜用挾 不宜以嚃取食之也 絮就器中調和也 口容止 不宜以物刺於齒也 醢宜醎 歠之以其味淡也 客或有絮羹者 則主人以不能烹飪為辭 客或有歠醢者 則主人以貧窶乏味為辭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국의 나물이 있는 것은 마땅히 끼우는 것(젓가락)을 쓰고 들이 마심으로써 먹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絮는 그릇 안에서 조화로움에 나아가는 것이다(맛을 맞추는 것이다). 입의 모양은 움직이지 말아야하고 물건을 가지고 이를 찌르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젓갈은 마땅히 짜야하는데 그 것을 마시는 것은 그 맛이 싱겁기 때문이다. 손님이 혹 국을 마심이 있으면 곧 주인은 잘 삶겨지지 않음을 사과하고 손님이 젓갈을 마시는 자가 있으면 곧 주인은 빈궁하여 맛이 없다고 말해야 한다.
濡肉齒決 乾肉不齒決 毋嘬炙
젖은 고기는 이로 끊고, 마른 고기는 이로 끊지 않으며 구운 고기를 깨물지(한 입에 넣지) 않는다.
〔集說〕陳氏曰 濡肉殽胾之類 乾肉脯脩之類 決斷也 不齒決則當治之以手也 孔氏曰火灼曰炙 一擧而倂食曰嘬 是貪食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濡肉은 안주와 고깃점 같은 것이다. 乾肉은 얇게 저며 말린 고기류이다. 決은 끊는 것이다. 이로 끊지 않으면 곧 마땅히 손으로 다스려야 한다. 공씨가 말하기를 불에 사른 것을 炙라 한다. 한 번에 들어서 한꺼번에 먹는 것을 嘬라 하니 이는 먹는 것을 탐하는 것이다.
少儀曰侍食於君子 則先飯而後已 毋放飯 毋流歠 小飯而亟之 數噍毋為口容
「少儀」에 말하기를 군자를 모시고 먹으면 곧 먼저 밥을 먹고 뒤에 그치니 밥을 크게 뜨지 말며, 마시지 말며, 밥을 적게 하여 자주하고, 여러 번 씹어서 입을 놀림이 되지 않게 한다.
〔增註〕君子三達尊之稱
[증주]군자는 三達尊을 말한다.
〔集說〕陳氏曰 先飯猶嘗食之禮也 後已猶勸食之意也 放飯流歠見前 小飯則無噦噎之患 亟之謂速咽下 備或有見問之言也 數噍毋為口容 言數數嚼之 不得弄口以為容也
[집해]진씨가 말하기를 先飯은 밥을 맛보는 예이다. 後已는 밥을 권하는 뜻이다. 放飯流歠은 앞에 보인다. 밥을 적게 한다는 것은 곧 딸국질하고 목매는 근심을 없게 하는 것이다. 亟之는 빨리 목으로 넘기는 것이니 혹 보고 물음의 말이 있을 것을 대비한 것이다. 數噍毋為口容은 여러 번 씹어서 입을 놀리는 것으로서 모습을 삼을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論語曰 食不厭精 膾不厭細
『論語』에 말하기를 밥은 정미한 것을 싫어하지 않았고, 회는 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集說〕朱子曰 食飯也 精鑿也 牛羊與魚之腥聶而切之為膾 食精則能養人 膾麤則能害人 不厭言以是為善 非謂必欲如是也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食는 밥이다. 精은 쌀을 쓿는 것이다. 소, 양과 물고기의 생고기를 저미고 자른 것을 膾라고 한다. 밥은 정밀하면 사람을 기를 수 있고, 회는 거칠면 곧 사람을 해칠 수 있다. 不厭은 이로써 좋음을 삼았음을 말한 것이니 반드시 이 같이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食饐而餲 魚餒而肉敗不食 色惡不食 臭惡不食 失飪不食 不時不食
밥이 상하여 쉰 것과 생선의 썩고, 고기가 썩은 것은 먹지 않았다. 색이 나쁜 것은 먹지 않고, 냄새가 나쁜 것은 먹지 않고, 잘못 익힌 것은 먹지 않고, 때가 아닌 것은 먹지 않는다.
〔集說〕朱子曰 饐飯傷熱濕也 餲味變也 魚爛曰餒 肉腐曰敗 色惡臭惡 未敗而色臭變也 飪烹調生熟之節也 不時五穀不成 果實未熟之類 此數者 皆足以傷人 故不食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饐는 밥이 열과 습기에 상한 것이다. 餲는 맛이 변한 것이다. 생선이 문드러지는 것을 餒라고 한다. 고기가 부패한 것을 敗라 한다. 色惡臭惡는 부패 하지는 않았으되 색과 냄새가 변한 것이다. 飪은 삶아 날 것을 익혀 조리하는 절도이다. 不時는 오곡이 여물지 않고, 과일이 익지 않은 것 따위이다. 이 여러 개는 모두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먹지 않는 것이다.
割不正不食 不得其醬不食
자른 것이 바르지 않는 것은 먹지 않고, 그 장을 얻지 못하면 먹지 않는다.
〔集說〕朱子曰 割肉不方正者不食 造次不離於正也 食肉用醬 各有所宜不得則不食 惡其不備也 此二者 無害於人 但不以嗜味 而苟食耳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고기를 자른 것이 반듯하지 않는 것은 먹지 않는 것이니 잠시라도 바름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고기를 먹을 때 장을 쓴다는 것은 각기 마땅한 바를 얻지 못함이 있으면 곧 먹지 않는 것이니 그 갖추지 않음을 미워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사람을 해치지 않지만 다만 맛을 즐김으로써 구차히 먹지 않을 뿐이다.
肉雖多 不使勝食氣 唯酒無量 不及亂
고기가 비록 많으나 밥의 기운을 이기지 않게 하고, 오직 술만은 양이 없어 어지러움에 이르지 않았다.
〔集說〕朱子曰 食以穀為主 故不使肉勝食氣 酒以為人合懽 故不為量 但以醉為節而不及亂耳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밥은 곡식을 위주로 하였다. 그러므로 고기로 하여금 밥의 기운을 이기지 못하게 하고, 술은 사람을 기뻐함에 부합하다 여겼으므로 양을 정하지 않았다. 다만 취함을 절제함으로써 어지러움에 이르지 않을 뿐이다.
沽酒市脯 不食
시장에서 산술과 포는 먹지 않았다.
〔集說〕朱子曰 沽市皆買也 恐不精潔 或傷人也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沽와 市는 모두 사는 것이다. 정경하지 못하여 혹 사람을 상할 것을 두려워 한 것이다.
不撤薑食 不多食
생강 먹는 것을 거두지 않았으나 많이 먹지 않았다.
〔集解〕朱子曰 薑通神明去穢惡 故不撤不多食 適可而止也
[집해]주자가 말하기를 생강은 신명을 통하고, 더러움과 악을 제거하기 때문에 거두지 않았고, 많이 먹지 않고 알맞음에 그쳤다.
禮記曰 君無故不殺牛 大夫無故不殺羊 士無故不殺犬豕 君子遠庖廚 凡有血氣之類 弗身踐翦也
『禮記』에 말하기를 임금은 이유 없이 소를 죽이지 않으며, 대부는 일없이 양을 죽이지 않으며, 사는 이유 없이 개와 돼지를 죽이지 않으며 군자는 부엌을 멀리하였다. 무릇 살아 있는 것은 자신이 밟고 베지 않는다.
〔集說〕陳氏曰 故謂祭祀及賓客饗食之禮也 庖宰殺之所 廚烹飪之所 身親也 踐當作翦 殺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故는 제사와 빈객에게 음식을 올리는 예이다. 庖는 가축을 도살하는 곳이다. 廚는 삶는 곳이다. 身은 친히 하는 것이다. 踐은 마땅히 翦이라 써야 하니 죽이는 것이다.
樂記曰 豢豕為酒非以為禍也 而獄訟益繁 則酒之流生禍也 是故 先王因為酒禮 壹獻之禮 賓主百拜 終日飮酒而不得醉焉 此先王之所以備酒禍也
『禮記』에 말하기를 돼지를 기르고 술을 빚는 것은 재앙이 되지 않으나 옥의 쟁송은 더욱 번다하니 곧 술의 흐름이 화를 생겨나게 한다. 이 때문에 선왕은 酒禮를 만듦으로 인하여 한번 술을 올리는 禮에 손님과 주인이 백번 절하여 종일토록 술을 마시되 취하지 않게 하였다. 이는 선왕이 술의 화를 대비하였기 때문이다.
〔集說〕吳氏曰 豢養也 為猶造也 獄訟益繁謂小人乘醉 相侵以致獄訟 滋多也 一獻士之饗禮也 百拜言多也 一獻之禮 而賓主至於百拜 終日飮酒 而終不得醉 其所以備飮酒之禍者至矣
[집설]오씨가 말하기를 豢은 기름이다. 爲는 造와 같다. 獄訟益繁은 소인이 취함을 타고 서로 침해하는 것으로써 옥송에 이름이 불어남이 많다. 一獻은 사의 올리는 예이다. 百拜는 많다는 것이다. 한 번 올림의 예로 손님과 주인이 백번 절함에 이르러 종일토록 술을 마시되 끝내 취하지 않으니 그 때문에 술을 마심의 화를 대비한 것이 지극하다.
孟子曰 飮食之人 則人賤之矣 為其養小 以失大也
『맹자』에 말하기를 마시고 먹기만 하는 사람은 곧 사람들이 천하게 여길 것이니 그 작은 것을 기름으로서 큰 것을 잃는다.
〔集解〕飮食之人 專養口腹者也 小謂口體 大謂心志
[집해]마시고 먹기만 하는 사람은 오로지 입과 배를 기르는 자이다. 小는 입과 몸을 말하고, 大는 마음과 뜻을 말한다.
右明飮食之節
이상은 마시고 먹는 절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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