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學諸家集註卷之五
『 소학제가집주』 권5
詩曰天生烝民 有物有則 民之秉彝 好是懿德 孔子曰 為此詩者 其知道乎 故有物必有則 民之秉彝也 故好是懿德 歷傳記接見聞 述嘉言 紀善行 為小學外篇
『詩經』에 말하기를 하늘이 뭇 백성을 내고, 일이 있으면 법칙이 있게 하고, 백성의 타고난 성품이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한다. 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이 시를 지은 자는 도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이 있으면 법칙이 있게 하고 백성들의 타고난 성품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여 모든 전하는 기록과 보고 들은 것을 모아서 「嘉言(아름다운 말)」을 서술하고, 善行을 기록하여 『小學』의 외편으로 삼았다.
〔集解〕朱子曰 詩大雅烝民之篇 烝衆也 物事也 則法也 彛常也 懿美也 有物必有法 如有耳目則有聰明之德 有父子則有慈孝之心 是民所秉執之常性也 故人之情無不好此懿德者 吳氏曰歷考前代之傳記 承接近代之見聞 凡言之善者 則述之 行之善者 則紀之 而為小學之外篇也
[집해]주자가 말하기를 詩는 大雅 烝民의 편이다. 烝은 많음이다. 物은 일이다. 則은 법이다. 彛는 떳떳함이다. 懿는 아름다움이다. 일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는 것이 마치 귀와 눈이 있으면 곧 귀 밝고, 눈 밝음의 덕이 있고, 부자가 있으면 사랑과 효의 마음이 있는 것과 같다. 이는 백성들이 잡는 바의 떳떳한 성품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정은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오씨가 말하기를 前代의 전하는 기록을 모두 상고하고 근대의 보고 들은 것을 이어 모아 무릇 말의 선한 것은 곧 그것을 서술하고, 행실의 선한 것은 곧 그것을 기록하여 『小學』의 외편으로 삼은 것이다.
嘉言第五
「嘉言(아름 다운 말)」 제5
〔集解〕吳氏曰 嘉言善言也 此篇述漢以來賢者所言之善言 以廣立敎明倫敬身也 凡九十一章
[집해]오씨가 말하기를 「嘉言」은 좋은 말이다. 이편은 漢나라 이래 어진 자들이 말한 바의 좋은 말을 서술하여 立敎, 明倫, 敬身을 넓힌 것이다. 모두 91장이다.
橫渠張先生曰 敎小兒 先要安詳恭敬 今世學不講 男女從幼便驕惰壞了 到長益凶狠 只為未嘗為子弟之事 則於其親已有物我 不肯屈下 病根常在 又隨所居而長 至死只依舊
장횡거 선생이 말하기를 어린아이를 가르침은 먼저 편안하고 고요함을 구하고, 공손하고 삼가며, 공경하고 두려워함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지금 세상은 학문을 강론하지 않아 남녀가 어려서부터 교만하고 게으르고 자람에 더욱 흉하고 사나움에 이르니 다만 해야 할 일찍이 자제의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곧 그 부모에게 이미 남과 나를 두어 즐겨 굽히고 낮추지 않아 병폐의 뿌리가 항상 존재하고, 또한 거처하는 바를 따라 자라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만 옛것에 의 의존할 뿐이다.
〔集說〕吳氏曰 橫渠地名 在鳳翔郿縣 先生名載 字子厚 安謂安靜 詳謂詳審 恭謂恭莊 敬謂敬畏 此四者 敎童幼之所當先也 驕惰者矜傲怠慢之謂 凶狠者暴惡麤戾之謂 親謂父母也 物我猶言彼此也 病根卽驕惰也
[집설]오씨가 말하기를 橫渠는 地名이니 鳳翔郿縣에 있다. 先生의 이름은 載이고, 자는 子厚이다. 安은 安靜(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함)이다. 詳은 자세하게 살핌이다. 恭은 공손하고 삼가는 것이다. 敬은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는 어린아이를 가르침에 마땅히 먼저 해야 할 바이다. 驕惰는 자랑하고 오만하며, 게으르고 소홀히 함을 말한다. 凶狠은 포악하고 거칠며 어긋남을 말한다. 親은 부모를 말한다. 物我는 그것과 이것(彼此)이라는 말과 같다. 病根은 교만하고 게으름이다.
為子弟則不能安灑掃應對 接朋友則不能下朋友 有官長則不能下官長 為宰相則不能下天下之賢
자제가 되어서는 곧 물 뿌리고 비질하는 것과 응대하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지 않고, 벗을 접해서는 곧 벗에게 낮출 줄 모르고, 관청의 우두머리에 있어서는 곧 상관에게 낮출 줄 모르고, 재상이 되어서는 곧 천하의 어진이 들에게 낮출줄 모른다.
〔增註〕安謂安意為之 下謂屈己下之 此言病根隨所居而長也
[증주]安는 뜻을 편안히 행하는 것이다. 下는 자기를 굽히고 낮추는 것이다. 이는 병의 부리가 거처하는 바에 따라 자람을 말하는 것이다.
甚則至於徇私意義理都喪也 只為病根不去 隨所居所接而長
심하면 사사로운 뜻을 따라 의리를 모두 잃음에 이른다. 이는 다만 병의 뿌리를 제거하지 못하여 거처하고 접하는 바에 따라 자라기 때문이다.
〔集解〕徇以身從物之謂
[집해]循은 몸으로써 사물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集說〕葉氏曰 後世小學旣廢 父母愛踰於禮 恣之驕惰 而莫為禁止 病根旣立 隨寓隨長 卒至盡失其良心 蓋有自來 學者所當察其病源 力加克治 則舊習日消 而道心日長矣
[집설]엽씨가 말하기를 후세에 『小學』이 이미 폐하고 부모의 사랑이 예를 넘어 마음 내키는 대로 교만하고 게을리하여 금지할 수 없다. 병의 뿌리가 이미 서면 붙어 자람을 다라 마침내 그 양심을 모두 잃음에 이르니 대개 스스로 오게 함이 있는 것이다. 배우는 자는 마땅히 그 병의 근원을 살핀 바로 힘을 더하고 잘 다스리면 곧 옛 습관이 날로 사라지고 도심이 날로 자랄 것이다.
楊文公家訓曰 童穉之學 不止記誦 養其良知良能 當以先之言為主
양문공이 가훈에 말하기를 어린 아이의 배움은 다만 기억하고 외울뿐만 아니라 그 良知(타고난 지혜)와 良能(타고난 재능)을 길러 마땅히 먼저의 말로써 주장을 삼아야 한다.
〔集說〕吳氏曰 文公名億字大年 浦城人 良知者本然之知 良能者本然之能 愛親敬長是也 程子曰 人之幼也 知思未有所主 則當以格言至論 日陳於前 使盈耳充腹 久自安習 若固有之者 後雖有讒說 搖惑不能入也
[집설]오씨가 말하기를 文公은 이름이 億이요, 字는 大年이니 浦城人이다. 良知는 본연의 지혜요, 良能은 본연의 재능이니 어버이를 사랑하고 연장자를 공경하는 것이 이것이다. 정자가 말하기를 사람이 어릴 때는 지혜와 생각이 주장하는 바가 있지 않으니 곧 격언과 지극한 논의를 날로 앞에 펼쳐서 귀를 태우고 배를 채우게 하여 오래 동안 스스로 익힘을 편안히 여겨 마치 고유의 것처럼 한다면 뒤에 비록 讒訴하는 말이 있을지라도 흔들리고 미혹함에 들지 않는다.
日記故事 不拘今古 必先以孝弟忠信禮義廉恥等事 如黃香扇枕 陸積懷橘 叔敖陰德 子路負米之類 只如俗說 便曉此道理 久久成熟 德性若自然矣
날로 옛 일을 기억하게 하고 지금과 옛날에 구애 받지 않고 반드시 孝弟, 忠信, 禮義, 廉恥 등의 일로서 우선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황향이 베개에 부채질 한 것과 육적이 귤을 품에 품은 것, 숙오의 숨은 덕, 자로가 쌀을 등에 진 것 따위를 다만 세속의 말과 같이 한다면 문득 이 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니 오래하고 익숙함을 이루면 덕성이 자연과 같아질 것이다.
〔集說〕吳氏曰 故事已往之事也 善事父母為孝 善事兄長為弟 盡己之謂忠 以實之謂信 禮者天理之節文 義者人心之裁制 廉卽辭讓之心 禮之發也 恥卽羞惡之心 義之發也 黃香扇枕之類 卽孝弟等事也 德性謂仁義禮智之性 而為本心之德者也 講說之熟 則德性自然而成矣 德性雖得於天 而成熟則在人 涵養成熟則若自然矣 ○黃香字文强盡心養親 暑則扇枕席 冬則以身溫被 陸積字公紀 年六歲見袁術術出橘 績懷三枚 拜辭墮地 術曰陸郞作賓客 而懷橘乎 績跪答曰欲歸遺母 術大奇之 叔敖蔿氏名艾 為兒時出遊 見兩頭蛇 殺而埋之 歸而泣 母問其故 對曰聞見兩頭蛇者死 嚮者見之 恐去母而死也 母曰蛇今安在 曰恐他人 又見殺而埋之矣 母曰吾聞有陰德者 天報以福 汝不死也 及長為楚相 子路嘗曰 昔事二親常食藜藿 為親負米百里之外 親沒之後 為楚大夫 從車百乘 積粟萬鍾 累茵而坐 列鼎而食 雖欲食藜藿 為親負米 何可得也
[집설]오씨가 말하기를 故事는 이미 지나간 일이다.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을 孝라 하고, 형과 연장자를 잘 삼기는 것을 弟라 하고, 자기를 다하는 것을 忠이라 하고 그것(忠)을 진실되게 하는 것을 信이라 말한다. 禮는 천리의 節文이고, 義는 인심을 절제하고 재단하는 것이다. 廉은 곧 사양하는 마음이니 禮의 발현이고, 恥는 곧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니 義의 발현이니 황향이 베개에 부채질한 따위는 곧 孝弟 등의 일이다. 德性은 仁, 義, 禮,智의 性을 말하는데 本心의 덕이 된다. 강론과 설명이 익숙해지면 곧 德性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德性은 비록 하늘에서 얻어지는 것이나 성숙하면 곧 사람에게 달렸으니 함양(기르고)하고 성숙(익숙)함을 이루면 곧 자연과 같아진다. ○黃香은 字가 文强인데 마음을 다해 부모를 봉양하여 더우면 곧 잠자리에 부채질하고 추우면 곧 몸으로써 옷을 따뜻하게 하였다. 陸積은 字가 公紀이다. 6세 때 袁術을 뵈었는데 원술이 귤을 내어주니 육적이 3개를 품에 품었다. 절하여 감사하는데 땅에 (귤이) 떨어졌다. 원술이 말하기를 육랑은 빈객이 되어서 귤을 품고 있는가? 육적이 꿇어 답하여 말하기를 돌아가 어머니에게 드리고자 함입니다. 했다. 원술이 크게 기이하게 여겼다. 叔敖는 蔿氏이니 이름은艾이다. 아이 때 나가 놀다 머리가 두 개인 뱀을 보고 죽여서 묻었다. 돌아가 울자 어머니가 그 이유를 물었다. 대답하기를 머리 두 개인 뱀을 보면 죽는다고 들었습니다. 지난번에 그것을 보았습니다. 어머니를 떠나서 죽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어머니가 말하기를 뱀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말하기를 다른 사람이 또한 볼 것을 두려워하여 죽여서 묻었습니다. 어머니가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陰德이 있는 자는 하늘이 복으로써 갚는다 하니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자라서 초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子路가 일찍이 말하기를 옛 날에 어버이를 섬기는데 항상 藜藿을 먹었고, 어버이를 위해 쌀을 백리의 밖에서 지고 와야 했다. 어버이가 돌아가신 후에 초나라 대부가 되어 수레 백대가 따르고 곡식을 쌓아놓은 것이 萬鍾이고 자리를 (여러 겹으로)쌓고 앉으며 솥을 늘어놓고 먹는다. 비록 藜藿을 먹고 어버이를 위해 쌀을 지고자해도 어찌 할 수 있겠는가 했다.
明道程先生曰 憂子弟之輕俊者 只敎以經學念書 不得令作文字 子弟凡百玩好 皆奪志 至於書札 於儒者事最近 然一向好著 亦自喪志
명도 정선생이 말하기를 자제의 가볍되 준수한 자를 걱정하는 것은 다만 경서를 배우고 책을 생각함을 가르치고, 문자를 짓게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자제의 모든 즐기는 것들이 모두 뜻을 빼앗으니 글과 편지에 이르러서는 儒者의 일에 가장 가깝다. 그러나 한 쪽을 향하여 좋아하고 집착하는 것은 또한 스스로 뜻을 읽는 것이다. 했다.
〔集說〕陳氏曰 先生名顥 字伯淳 河南人 文潞公題其墓曰 明道先生 蓋少年之輕浮俊秀者 惟敎以學經讀書 則可以收其放心 而於道知所向 若使作文字 則心愈放而離道遠矣 奪志謂奪其求道之志 書習字 札簡札 書札固儒者之一事 若專攻乎此 亦喪其求道之志也
[집설] 진씨가 말하기를 선생의 이름은 顥이고 字는 伯淳이니 河南 사람이다. 文潞公이 그 墓(묘지, 비석)에 적어 말하기를 명도 선생은 소년의 경박하거나, 준수한 이는 오직 경전을 배우고, 글을 읽어 그 놓아버린 마음을 거둠으로서 도에 향하는 바를 안다. 만약 문자(문장)를 짓게 하면 곧 마음을 더욱 놓아서 도를 떠남이 멀게 된다. 고 했다. 奪志는 그 도를 구하는 뜻을 빼앗김을 말한다. 書는 글자를 익히는 것이고, 札은 편지이니 편지를 쓰는 것은 진실로 儒者의 한 가지 일이지만 만약 오로지 이를 짓게 한다면 또한 그 구도의 뜻을 잃을 것이다.
伊川程先生曰 敎人未見意趣 必不樂學 且敎之歌舞 如古詩三百篇 皆古人作之 如關雎之類 正家之始 故用之鄕人 用之邦國 日使人聞之 此等詩 其言簡奧 今人未易曉 別欲作詩 略言敎童子灑掃應對事長之節 今朝夕歌之 似當有助
이천 정선생이 말하기를 사람을 가르칠 때 의지와 취향을 보지 못하게 하면 반드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노래와 춤을 가르치되 古詩 300편 같은 것은 모두 옛 사람들이 그것을 지었고, 關雎와 같은 종류는 집을 바로잡는 시작이다. 그러므로 鄕人(시골 사람)이 그것을 쓰게 하고, 나라가 그것을 쓰고, 날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듣게 한다. 이러한 등의 시은 그 말이 간략하고 오묘하여 지금 사람들이 쉽게 깨닫지 못하니 따로 시를 짓고자 한다. 개략적으로 童子가 물 뿌리고 비질하고, 應對하며, 연장자를 섬기는 예절을 말하고, 지금 아침저녁으로 그것을 노래하게 한다면 마땅히 도움이 있을 듯하다.
〔集說〕陳氏曰 伊川地名 先生名頤 字正叔 明道先生之弟 敎人趣指趣也 樂喜好也 關雎周南國風詩之首篇 關雎等詩 為敎於閨門之內 乃正家之始 故當時上下通用之 簡奧者辭簡約而意深奧也 以灑掃等事編為韻語 令朝夕詠歌之 庶見意趣而好學矣 朱子曰 嘗疑曲禮 衣毋撥 足毋蹶 將上堂聲必揚 將入戶視必下 等語 皆古人敎小兒之語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伊川은 地名이요, 先生의 이름은 頤이고, 字는 正叔이니 明道先生의 동생이다. 사람 가르치기를 뜻으로 한다는 것은 목적이다. 樂喜는 좋아함이다. 關雎는 『詩經』 周南 國風詩의 첫 편이다. 관저 등의 시는 閨門(집 안)안에서 가르침을 삼으니 곧 집을 바로 하는 시작이다. 그러므로 당시 상, 하가 통용하였다. 簡奧는 말이 간략하고, 뜻이 깊고 오묘한 것이다. 以灑掃等事는 엮어 韻語로 삼은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읆조리고 노래하게 하여 뜻을 보여 배움을 좋아하게 해야 한다. 주자가 말하기를 일찍이 「曲禮」에서 옷은 걷어 올리지 말고, 발은 달리지 말며, 장차 집에 오를 때는 소리가 반드시 나게 하며, 문을 들어가서는 보기를 반드시 낮게 하라는 등의 말은 모두 옛 사람이 어린아이를 가르침의 말과 비교하였다.
陳忠肅公曰 幼學之士 先要分別人品之上下 何者是聖賢所為之事 何者是下愚所為之事 向善背惡 去彼取此 此幼學所當先也
진 나라 충숙공이 말하기기를 어려서 배우는 선비는 먼저 인품의 상하로 어느 것이 어느 것이 성현이 하는 바의 일이고, 어느 것이 下愚가 하는 바의 일인지 분별해야 한다. 선을 향하고 악을 등지며, 그것을 없애고, 저것을 취하는 이것이 어린아이가 배우배울 때 마땅히 우선하여야 할 것이다.
〔集說〕吳氏曰 公名瓘字瑩中號了翁 忠肅諡也 延平人 言所當向而取者上品聖賢也 所當背而去者下品下愚也
[집설]오씨가 말하기를 公(충숙공)의 이름은 瓘이고 자는 瑩中이며, 호는 了翁이니 忠肅은 시호이다. 延平 사람이다. 마땅히 향할 바로 취하는 자는 상품의 성현이고, 마땅히 등져야 할 바로 없애는 자는 下愚이다.
顔子孟子亞聖也 學之雖未至 亦可為賢人 今學者若能知此 則顔孟之事 我亦可學
안자와 맹자는 성인의 다음이다. 배움이 비록 지극하지 않을지라도 또한 현인이 될 수 있다. 지금 배우는 자들이 만약 이같이 할 수 있으면 곧 안자와 맹자의 일을 내가 또한 배울 수 있다.
〔增註〕此下言聖賢之事 當向而取也 亞次也 學之謂學顔孟
[증주]이 아래의 말은 성현의 일로 마땅히 향하여 취해야 할 것이다. 亞는 다음이다. 學之는 안자와 맹자를 배우는 것을 말한다.
言溫而氣和 則顔子之不遷 漸可學矣 過而能悔 又不憚改 則顔子之不貳 漸可學矣
말이 따뜻하고 기색이 온화하면 곧 안자의 옮기지 않음을 점진적으로 배울 수 있다. 허물을 뉘우칠 수 있고, 도한 고치기를 꺼리지 않으면 안자의 두 번하지 않음을 점진적으로 배울 수 있다.
〔集說〕朱子曰 遷移也 貳復也 怒於甲者不移於乙 過於前者 不復於後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遷은 옮기는 것이다. 貳는 다시 이다. 甲에게 노한 것을 乙에게 옮기지 않고, 앞에서 허물지은 것을 뒤에 다시 하지 않는다. 했다.
知埋鬻之戱 不如俎豆 今慈母之愛 至於三遷 自幼至老 不厭不改 終始一意 則我之不動心 亦可以如孟子矣
묻음과 파는 놀이가 제기와 같지 않음을 알고, 지금 慈母의 사랑은 세 번 옮김에 이르고, 어림에서 늙음에 이르기까지 싫어하지 않고, 고치지 않아 마침과 시작을 한결같은 뜻으로 하면 나의 不動心이 또한 맹자와 같을 수 있다.
〔增註〕埋墓間之事 鬻市中之事 俎豆學宮之事 此則三遷之敎也 不厭謂學不倦 不改謂守不變
[증주]埋는 묘 사이의 일이고, 鬻은 시장 안의 일이다. 俎豆는 學宮의 일이니 이는 곧 세 번 옮긴 일이다. 不厭은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고, 不改는 지켜서 변하지 않는 것이다.
若夫立志不高 則其學皆常人之事 語及顔孟則不敢當也 其心必曰 我為孩童 豈敢學顔孟哉 此人不可以語上矣 先生長者見其卑下 豈肯與之語哉 先生長者不肯與之語 則其所與語 皆下等人也 言不忠信下等人也 行不篤敬下等人也 過而不知悔下等人也 悔而不知改下等人也 聞下等之語 為下等之事 譬如坐於房舍之中 四面皆墻壁也 雖欲開明不可得矣
만약 세운 뜻이 높지 않으면 곧 그 배움이 모두 보통 사람의 일이니 말이 안자와 맹자에 미치면 곧 감당하지 못한다 하고, 그 마음에 반드시 말하기를 나는 아이인데 어찌 감히 안자와 맹자를 배울 수 있겠는가? 한다. 이러한 사람은 위를 말할 수 없다. 선생과 연장자가 그 낮음을 보고 어찌 그와 더불어 말함을 즐겨하겠는가? 선생과 연장자가 더불어 말함을 즐겨하지 않으면 곧 그 더불어 말하는 바가 모두 하등의 사람이다. 말이 忠信하지 않음은 하등의 사람이고, 돈독하고 공경하지 않음을 행하는 것은 하등의 사람이다. 허물이 있으면서 고칠 줄 모르는 것은 하등의 사람이다. 뉘우치면서도 고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등의 사람이다. 하등의 말을 듣고, 하등의 일을 하는 것은 비유하면 마치 방 안이 4면이 모두 담과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 앉아 있는 것과 같아서 비록 개명하고자 하나 할 수 없다.
〔增註〕此言下愚之事 當背而去也 下等之語下等之事 皆蔽塞人心之墻壁也 開而明之 在立志以學聖賢而已
[증주]이는 下愚의 일을 말한 것이니 마땅히 등지고 없애야 할 것이다. 하등의 말과 하등의 일은 모두 사람의 마음을 가리고 막는 장벽이다. 열고 그 밝게 하는 것은 뜻을 세움으로써 성현을 배움에 달려 있을 뿐이다.
〔集解〕言偽而行薄 恥過而遂非 所聞所行無一不歸於下愚之習 耳目壅塞 中心昏蔽 一物無所見 一步不可行 欲求開明 何可得哉
[집해]말이 거짓되고 행동이 천하고 허물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잘못을 끝까지 하고, 듣는 바와 행하는 바가 한결같이 下愚의 습관에 돌아가지 않음이 없고, 귀와 눈이 막히고, 마음속이 어둡고 가려져 한 물건도 보는 바가 없어 한 걸음도 갈 수 없으니 開明을 구하고자 하나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馬援兄子嚴敦 並喜譏議而通輕俠客 援在交趾 還書誡之曰 吾欲汝曹聞人過失 如聞父母之名 耳可得聞口不可得言也
마원의 형의 아들 엄과 돈이 함께 (다른 사람을)꾸짖고 의론하기를 기뻐하고 가벼이 협객들과 통하였다(잘 지냈다). 마원이 교지에 있으면서 글을 보내 경계하여 말하기를 나는 너희들이 다른 사람 허물을 듣기를 마치 부모의 이름을 듣는 것처럼 하고, 귀로는 들을 수 있되 입은 말을 할 수 없는 듯이 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集說〕吳氏曰 馬援字文淵 茂陵人 嚴敦援兄二子名 譏譏誚 議議論 俠謂以權力俠輔人
[집설]오씨가 말하기를 馬援은 字가 文淵이고 茂陵사람이다. 嚴과 敦은 마원의 형의 두 아들의 이름이다. 譏는 나무라고 꾸짖음이다. 議는 의론함이다. 俠은 권력을 끼고서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말한다.
好議論人長短 妄是非政法 此吾所大惡也 寧死不願聞子孫有此行也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의론하고, 망령되이 정사와 법도를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내가 크게 미워하는 바이다. 차라리 죽을 지언정 자손들이 이 행실이 있다고 듣기를 원하지 않는다.
〔集解〕好議論人長短則招怨惡矣 妄是非政法則犯憲章矣 寧死不欲聞此者甚戒之之辭也
[집해]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의론하기를 좋아하면 곧 원망과 미움을 부른다. 妄是非政法은 곧 헌장(규범)을 범하게 된다. 寧死不欲聞此는 경계함을 심하게 하는 말이다.
龍伯高敦厚周愼 口無擇言 謙約節儉 廉公有威 吾愛之重之 願汝曹效之
용백고는 돈독하고 두루 삼가하여 입으로는 말을 잘못하지 않고, 겸손하고 검소하며, 청렴하고 공정하며 위엄이 있어 그를 사랑하고 존중하니 너희들은 그를 본받기를 원한다.
〔集解〕龍伯高名述京兆人 敦厚敦篤而重厚也 周愼周密而謹愼也 口無擇言則言無口過矣 謙約節儉則不為驕奢矣 廉公有威則不為私褻矣 此與好譏議事豪俠者 相反 故欲其效之也
龍伯高는 이름이 述이고, 京兆 사람이다. 敦厚는 돈독하고 중후함이다. 周愼은 두루 엄밀하고 삼가함이다. 口無擇言은 임에 허물이 없는 것이다. 謙約節儉은 교만하고 사치하지 않음이다. 廉公有威는 사사로이 친압하지 않음이다. 이는 (다른 사람을)나무라고 꾸짖고 의론하는 것을 좋아함과 호협을 섬긴다는 것과는 서로 반대이다. 그러므로 그를 본받기를 바란 것이다.
杜季良豪俠好義 憂人之憂 樂人之樂 淸濁無所失 父喪致客 數郡畢至 吾愛之重之 不願汝曹效也
두계량은 호탕하고 의협심이 있으며 義를 좋아 하고 다름 사람의 근심을 근심하고, 다른 사람의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맑으나 흐리나 잃어버리는 바가 없어 아버지 장례에 여러 군에서 모두 이르니 내가 그를 사랑하고 존중하되 너희들이 본받기를 바라지 않는다.
〔集說〕吳氏曰 季良名保 人有憂己亦為之憂 人有樂己亦為之樂 不辨淸濁待之 皆無所失 故父喪致客而數郡畢至 此正通輕俠客之事 故不欲其效之也
[집설]오씨가 말하기를 季良의 이름은 保이다. 다른 사람이 근심이 있으면 자기가 또한 그를 위해 근심하고,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이 있으면 자기가 또한 그를 위해 근심하여 맑고, 흐림을 가리지 않고 대하여 모두 잘못된 바가 없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장례에 이른 객이 여러 군에서 모두 이른 것은 이것이 바로 가볍게 협객을 통하는(협객과 잘 지내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를 본받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效伯高不得 猶為謹敕之士 所謂刻鵠不成尙類鶩者也 效季良不得 陷為天下輕薄子 所謂畵虎不成 反類狗者也
용백고를 본받다가 되지 못하여도 오히려 삼가는 선비는 될 것이니 이른바 고니를 새기려다 이루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집오리와 같을 것이다. 두계량을 본받다가 되지 못하여 천하의 경박한 자식이 됨에 빠질 것이니 이른바 호랑이를 그리려다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개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했다.
〔集解〕謹敕謂能修檢 輕薄謂不厚重 鵠鶩皆鳥而略相似 虎狗皆獸而大不同 故刻鵠類鶩 人猶不以為非 畵虎類狗 則人爭笑而招辱矣 終篇以此設踰所以 深警之也
[집해]謹敕은 닦고 검속할 수 있음이다. 輕薄은 후중하지 못함이다. 鵠鶩은 모두 새로 대략 서로 비슷하다. 虎狗는 모두 짐승인데 크게 같지 않다. 그러므로 고니를 깍다가 집오리와 같아져도 사람들은 오히려 잘못이라 여기지 않지만 호랑이를 그리다 개와 같이 되면 곧 사람들이 다투어 웃어 욕을 부른다. 마지막 편을 이로써 가설하여 비유한 까닭은 깊이 경계한 것이다.
漢昭烈將終 勅後主曰 勿以惡小而為之 勿以善小而不為
한 소열제가 장차 죽으려할 때 후주를 경계하여 말하기를 악이 적다하여 하지 말 것이며, 선이 적다하여 하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 했다.
〔集解〕昭烈漢帝 名備字玄德 勅戒也 後主昭烈之子名禪 勿以惡小而為之 謂禍之所生不在大 勿以善小而不為 謂慶之所積由於小 朱子曰 善必積而後成 惡雖小而可懼 亦此意也
[집해]昭烈은 漢 나라 황제(촉의 임금 유비)이니 이름은 備이고, 字는 玄德이다. 勅은 경계함이다. 後主는 昭烈의 아들이니 이름은 禪이다. 勿以惡小而為之는 재앙의 생겨나는 바가 큼에 있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勿以善小而不為은 경사의 쌓이는 바는 적음에 유래한다. 주자가 말하기를 선은 반드시 쌓인 후에 이루어지고 악은 비록 적더라도 두려워할 만하다. 한 것이 또한 이러한 뜻이다.
諸葛武侯戒子書曰 君子之行 靜以修身 儉以養德 非澹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
제갈 무후가 자식을 경계하는 글에 말하기를 군자의 행실은 고요함으써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써 덕을 기르고,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게 하지 못하고, 고요하지 않으면 고원함에 이를 수 없다. 했다.
〔集說〕吳氏曰 武侯名亮字孔明 諸葛其姓也 躬耕南陽 昭烈三顧而後 起為丞相 諡忠武 子名瞻字思遠 靜謂安靜 儉謂儉約 澹泊卽儉也 寧靜卽靜也 言靜則心不遂於物而可以修身 儉則心不汨於欲 而可以養德 非澹泊則必昏昧 而無以明其志也 非寧靜則必躁動 而無以致其遠也
[집설]오씨가 말하기를 武侯는 이름이 亮이고, 字는 孔明이다. 諸葛은 그 姓이다. 몸소 남양에서 밭 갈다가 소열이 세 번 돌아 본 후 일어나 승상이 되었다. 시호는 忠武이다. 자을 이름은 瞻이고, 자는 思遠이다. 靜은 安靜이다. 儉은 검소함이다. 澹泊은 곧 검소함이다. 寧靜은 곧 고요함이다. 말이 고요하면 곧 마음이 사물을 따르지 않아 몸을 닦을 수 있다. 검소하면 곧 마음이 욕심에 빠지지 않아 덕을 기를 수 있다. 담박하지 않으면 곧 반드시 어두워 그 뜻을 밝게하지 못한다. 고요하지 않으면 곧 반드시 마음이 조급히 움직여 그 멀리 이를 수 없다.
夫學須靜也 才須學也 非學無以廣才 非靜無以成學 慆慢則不能硏精 險躁則不能理性 年與時馳 意與歲去 遂成枯落 悲歎窮廬 將復何及也
대저 배움은 모름지기 고요함이다. 재질이 비록 배울 수 있을지라도 배우지 않으면 재질을 넓힐 수 없다. 고요하지 않으면 배움을 이룰 수 없고, 방자하고 게으르면 곧 연마하는 것이 정밀하지 못하고, 험하고 조급하면 곧 性을 다스릴 수 없다. 나이는 때와 더불어 치달리고, 뜻은 해와 함께 떠나서 마침내 말라 떨어지니 궁핍한 집을 슬퍼하고 탄식한들 장차 다시 어떻게 이를 수 있을 것인가? 라고 했다.
〔集說〕吳氏曰 須猶欲也 慆慢猶云怠慢也 硏究也 險躁猶云躁妄也 理治也 枯落猶物之枯槁搖落也 言學須欲靜而才須欲學也 才非學則拘於氣質而才無以廣 學 非靜則逐於物欲而學無以成 怠慢則理之精微不能硏究 躁妄則己之德性不能理治 年與時而俱馳 意與歲而俱往 遂與草木同枯落 而學無所成矣 雖悲歎 將復何及也 眞氏曰 孔明此書 眞格言也
[집설]노씨가 말하기를 須는 바람(欲)과 같다. 慆慢은 怠慢이라는 말과 같다. 硏은 궁구하는 것이다. 險躁는 성급하고 망녕됨이라는 말과 같다. 理는 다스림이다. 枯落은 사물이 말라서 흔들려 떨어지는 것이다. 배움은 모름지기 고요하고자 하고, 재질은 모름지기 배우고자 한다. 재질은 베우지 않으면 기질에 얽매여서 재질이 넓혀지지 않고, 배움은 고요하지 않으면 곧 물욕에 쫒겨서 배움을 이룰 수 없다. 태만하면 곧 이치의 정미함을 연구할 수 없고, 성급하고 망녕되면 곧 자기의 덕성을 다스릴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나이는 때와 더불어 같이 치달리고, 뜻은 해와 함께 같이 다서 마침내 초목과 같이 말라 떨어져 배움을 이루는 바가 없다. 비록 슬퍼하고 탄식한 들 장차 다시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 진씨가 말하기를 공명의 이글은 참으로 교훈이 될 수 있는 말이다.
柳玭嘗著書戒其子弟曰 壞名災己 辱先喪家 其失尤大者五 宜深誌之
유빈이 일찍이 글을 써서 그 자제를 경계하여 말하기를 명에를 무너뜨리고 자기에게 재앙이 들게 하고 선조를 욕보이고 家를 잃게 하는 것으로 그 잘못이 더욱 큰 것이 다섯이니 마땅히 깊이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
〔集說〕陳氏曰 玭字直 淸唐柳公綽之孫 仲郢之子 壞敗也 誌記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빈의 자는 直이니 청당 유공작의 손자이고, 仲郢의 아들이다. 壞는 무너뜨림이다. 誌는 기억함이다.
其一 自求安逸 靡甘澹泊 苟利於己 不恤人言
첫째 스스로 안일함을 구하여 담박함을 달게 여기지 않고, 구차하게 자기에게 이로운 것은 다른 사람의 말을 근심하지 않았다.
〔增註〕此言不勤儉之失 靡不也 恤憂也
[증주]이는 근검하지 못함의 잘못을 말한 것이다. 靡는 아님이다. 恤은 근심함이다.
其二 不知儒術 不悅古道 懵前經而不恥 論當世而解頤 身旣寡知 惡人有學
둘째 유술(유학)을 알지 못하고 옛 도를 기뻐하지 않으며 앞의 경전을 알지 못하고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지금의 세상을 망년도이 논하면서 웃음거리로 삼고, 자신은 이미 아는 것이 적으면서 다른 사람이 배움이 있는 것을 미워한다.
〔增註〕此言不好學之失 懵無知貌 頤口旁也 人笑則口旁解 言其於前聖之經無所知而不恥 於當世之事 妄議之為笑也
[증주]이는 배움을 좋아하지 않음의 잘못을 말한 것이다. 懜은 앎이 없는 모양이다. 頤는 입의 옆이다. 사람이 웃으면 곧 입이 옆으로 풀어진다. 앞의 성인의 경전을 아는 바가 없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지금의 일에는 망녕되게 의논하여 웃음거리로 삼는 것을 말한 것이다.
其三 勝己者厭之 佞己者悅之 唯樂戱談 莫思古道 聞人之善嫉之 聞人之惡揚之 浸漬頗僻 銷刻德義 簪裾徒在 廝養何殊
세 번째는 자기보다 나은 바를 싫어하고 자기를 잘 말하는 것을 기뻐하며 실없는 말을 즐기고 옛 도를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선을 들으면 그를 질투하고 다른 사람의 나쁜 것을 드러내며 점점 악에 물들어 덕과 의를 깍아 잃으니 衣冠을 헛되이 둔다면 노복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集說〕陳氏曰 此言不好善之失 嫉妬也 頗僻謂偏頗邪僻之行 浸漬頗僻漸染於惡也 銷刻德義斲喪其善也 簪裾猶言衣冠 廝養謂奴僕 徒空也 殊異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이는 선을 좋아하지 않음의 잘못을 말한 것이다. 嫉은 질투 함이다. 頗僻은 편벽되고, 잘못된 행동이니 浸漬頗僻은 점점 악에 물들어가는 것이다. 銷刻德義는 그 선함을 잃음이다. 簪裾는 衣冠을 말하고, 廝養은 奴僕이며, 徒는 공연함이다. 殊는 다름이다.
其四 崇好優游 耽嗜麯蘖 以啣盃為高致 以勤事為俗流 習之易荒 覺已難悔
네 번째는 유유자적함을 높이고 좋아하고, 술 마시기를 즐기고, 잔을 머금는 것으로서 고상한 풍취로 삼고, 일을 부지런히 하는 것을 속된 무리라 하고, 그것을 익힘이 거칠어짐을 쉽게 하여 깨달아도 뉘우침을 어렵게 한다.
〔增註〕此言好宴樂之失 崇尙也
[증주]이는 편안함을 좋아함의 잘못을 말한 것이다.
〔集解〕優游閑逸自如之謂 麯蘖酒也 高致謂高尙之風致 勤事勤於事業也 言好逸嗜酒 自以為高 反鄙勤事者為俗流 此心旣荒 雖知而不能悔也
[집해]優游는 한가하고 편안하고 자유로움을 말한다. 麯蘖은 술이다. 高致는 고상한 풍치이다. 勤事는 사업에 부지런한 것이다. 편안함을 좋아하고 술 마시는 것을 즐기는 것을 높다(고상하다) 하고 도리어 일에 부지런한자를 비루하다 여겨 속된 무리라 하니 이는 마음이 이미 거칠어져 비록 알더라도 뉘우치지 못한다.
其五 急於名宦 匿近權要 一資半級 雖或得之 衆怒群猜 鮮有存者
다섯 번째 벼슬하기에 조급하여 가만히 권세와 요로에 있는 자에게 붙어 하나의 품과 반의 등급을 비록 혹 얻을 지라도 무리들이 노하고, 무리들이 한하니 보존함이 있는 자가 드물다.
〔集說〕陳氏曰 此言好奔競之失 名宦顯士也 匿近陰附也 權要有權而當要路者 資猶品也 猜恨也 鮮少也 言雖或得官 終必失之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이는 분주히 경쟁함을 좋아하는 잘못을 말한 것이다. 했다. 名宦은 드러난 선비이다. 匿近은 몰래 붙임이다. 權要는 권세가 있고 중요한 자리를 담당함이다. 資는 등급(品)과 같다. 猜는 한함이다. 鮮은 적음이다. 비록 혹 관직을 얻을 지라도 끝내는 반드시 잃음을 말한다.
余見名門右族 莫不由祖先忠孝勤儉 以成立之 莫不由子孫頑率奢傲 以覆墜之 成立之難如升天 覆墜之易如燎毛 言之痛心 爾宜刻骨
내가 명망 있는 집안과 귀한 자를 보니 선조의 忠과 孝, 부지런함과 검소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 세우지 않음이 없다. 자손의 완고함, 경솔함과 사치, 오만으로 말미암아 엎고 떨어뜨리지 않음이 없다. 이루어 세움의 어려움은 하늘에 오르는 것 같고, 엎고, 떨어뜨림의 쉬움은 털을 태우는 것과 같다. 마음아파하면서 말하니 너는 마땅히 뼈에 새겨야 한다.
〔集解〕右族族之貴者 蓋古人以右為尊也 夫忠孝勤儉者 先世成家之本 頑率奢傲者 後人敗家之由 升天喩至難 燎毛喩至易 刻骨欲其記之 不忘也
[집해]右族은 혈족의 귀한자이다. 대개 옛날 사람은 오른쪽으로서 높음을 삼았다. 저 忠, 孝, 勤, 儉은 앞 세대에 家를 이루는 근본이다. 頑率奢傲는 후손들이 집안을 무너뜨리는 이유이다. 升天늠 지극히 어려움을 비유한 것이다. 燎毛는 지극히 쉬움을 비유한 것이다. 刻骨은 그것을 기억하여 잊지 않고자 하는 것이다.
〔增註〕刻骨猶言銘心
[증주]刻骨은 銘心(마음에 새김)과 같다.
范魯公質為宰相 從子杲嘗求奏遷秩 質作詩曉之
범노공 질이 재상이 되었는데 조카 고가 늘 관직(녹봉)의 품계를 올려 달라고 아뢰었다. 질이 시를 지어 그를 깨우쳤다.
〔集解〕質字文素大名人 周平章事事宋封魯國公 從子兄之子 杲名也 遷秩陞品也
[집해]質은 字가 文素이고, 大名 사람이다. 주나라의 평장사로 宋을 섬겨 노국공에 봉해졌다. 從子는 형의 아들이고, 杲는 이름이다. 遷秩은 품계(등급)을 올림이다.
其略曰 戒爾學立身 莫若先孝悌 怡怡奉親長 不敢生驕易 戰戰復兢兢 造操次必於是
대략 너의 배움과 몸을 세움을 경계함에 孝와 悌우선함 보다 나음이 없다. 온화하게 어버이와 어른을 받들어 감히 교만하고 게으름을 내지 말라. 두려워하고, 다시 조심하여 잠시의 사이에도 반드시 이 같이 하라. 했다.
〔集解〕怡怡和悅也 驕驕傲 易慢易 戰戰恐懼 兢兢戒謹 造次急遽苟且之時
怡怡는 화기애애함이다. 驕는 교만하고 오만함이다. 易(이)는 게으름이다. 戰戰은 두려워함이다. 兢兢은 경계하고 삼감이다. 造次는 급하고 구차한 때이다.
〔增註〕孝悌者 立身之本 是指孝悌也
[증주]孝悌믐 몸을 세우는 근본이니 이는 孝와 공손함을 가리킨다.
戒爾學干祿 莫若勤道藝 嘗聞諸格言 學而優則仕 不患人不知 惟患學不至
너의 배움과 녹을 경계함에는 도와 재능만 한 것이 없다. 일찍이 여러 격언을 들으니 배워서 넉넉하면 곧 벼슬하고,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음을 금심하지 말고, 배움이 지극하지 못함을 근심하라.
〔集解〕道謂當行之理 藝則禮樂射御書數之法也 格言至言 優有餘力也 戒以當勤道藝 而不患人之不知也
[집해]道는 마땅히 행해야 할 이치이다. 藝는 곧 예악과 활쏘기, 말 몰기, 수 헤아리기의 법이다. 格言은 지극한 말이다. 優는 남은 힘이 있는 것이다. 마당도와 예를 부지런히 하고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말라고 경계한 것이다.
戒爾遠恥辱 恭則近乎禮 自卑而尊人 先彼而後己 相鼠與茅鴟 宜鑑詩人刺
너에게 경계하노니 부끄러움과 욕을 멀리하라. 공손하면 곧 예에 가깝고, 스스로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 그를 먼저하고 나를 뒤로 하고, 상서와 모치에 시인이 풍자한 것을 마땅히 거울삼아야 한다.
〔集說〕朱子曰 恭致敬也 禮節文也 致恭而中其節 則能遠恥辱矣 陳氏曰 自卑尊人 先彼後己 皆致恭之事也 相鼠詩篇名 其辭曰 相鼠有體 人而無禮 人而無禮 胡不遄死 茅鴟逸詩也 二詩皆刺無禮也 鑑照也 刺譏諷也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恭은 공경하기를 지극히 하는 것이다. 예는 절문이다. 공손함을 지극히 하고 그 절도에 맞게 하면 곧 부끄러움과 욕을 멀리할 수 있다. 진씨가 말하기를 스스로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그를 먼저하고 나를 뒤로 하는 것은 무두 공손함을 지극히 하는 일이다. 相鼠은 『詩經』의 편 명이니 그 가사에 사람으로 예가 없고, 사람으로 예가 없으니 어찌 빨리 죽지 않는가? 했다. 茅鴟는 逸詩이다. 두 시가 모두 예가 없음을 풍자하였다. 鑑은 비춤이다. 刺는 나무라고 풍자함이다.
戒爾勿放曠 放曠非端士 周孔垂名敎 齊梁尙淸議 南朝稱八達 千載穢靑史
너에게 경계하노니 방탕하고 성기지 말라. 방탕하고 섬김은 단정한 선비가 아니다. 주공과 공자가 이름과 가르침을 드리웠는데, 제 나라와 양나라가 淸議를 숭상하고, 남조에서는 八達을 칭찬하여 천년을 지나도록 靑史를 더럽혔다.
〔集說〕陳氏曰 放放蕩 曠踈曠 端士正士也 周孔謂周公孔子也 齊梁皆都江南 故又稱南朝 淸議淸虛之談也 八達謂晉 胡毋輔之 謝鯤 阮放 畢卓 羊曼 桓彛 阮孚 光逸八人 終日淸談酣飮而為達也 當時雖稱之 而無禮無法 得罪名敎 其姓名久汚史冊 亦可賤矣 古史以竹 故曰靑史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放은 방탕함이다. 曠은 성기고 빈 것이다. 端士는 마른 선비이다. 周孔은 주공과 공자를 말한다. 제나라와 양나라는 모두 강남에 도읍하였다. 그러므로 도한 남조라 말한다. 淸議는 맑고 비어있는 이야기이다. 八達은 晉나라 호무보지, 사곤, 완방, 필탁, 양만, 환리, 원부, 광일의 여덟 사람이다. 종일토록 청담하고 흥겹게 술을 마심에 통달하였다. 당시에 비록 칭찬하였으되 예와 법이 없어 인륜의 가르침에 죄를 지어 그 성명이 오래 동안 사책을 더럽혔으니 또한 천할 만 한 것이다. 옛 역사는 대나무에 썼기 때문에 靑史라 말 하였다.
〔增註〕名敎謂人倫之敎 有實有名也
[증주]名敎는 인륜의 가르침을 말한다. 有는 실제 이름이 있는 것이다.
戒爾勿嗜酒 狂藥非佳味 能移謹厚性 化為凶險類 古今傾敗者 歷歷皆可記
너에게 경계하노니 술을 즐기지 말라. 미친 약으로 좋은 맛이 아니다. 삼가 도타운 性을 옮길(바꿀) 수 있고 흉하고 험한 류를 변화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기울어 무너지는 것을 차례차례 모두 기억할 수 있다.
〔集說〕陳氏曰 酒能亂性 是狂藥也 古今以之而傾覆喪敗者多矣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술은 性을 어지럽게 할 수 있어 이에 狂藥이라 한 것이다. 예나 지금에 그것(술)으로써 기울어 엎어지고 잃고 무너진 자가 많다.
戒爾勿多言 多言衆所忌 苟不愼樞機 灾厄(一作危)從此始 是非毁譽間 適足為身累
너에게 경계하노니 말을 많이 하면 무리들의 꺼리는 바 된다. 만약 중요한 사무를 삼가지 않는다면 災厄이 이로부터 시작된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헐뜯고 칭찬하는 사이에 단지 자신을 묶을 뿐이다.
〔增註〕戶之開闔由於樞 弩之張弛由於機 人之禍福榮辱由於言 故比言於樞機 以言而是非毁譽人 皆取禍召辱 秪足自累而已
[증주]문의 열고 닫음은 지도리(樞)에 말미암고, 쇠뇌의 당기고 느슨(푸는)하게 하는 것은 틀에 말미암는다. 사람의 재앙과 복, 영광과 욕이 말에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말을 樞와 機에 비유하여 말로써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과 사람을 헐뜯고 칭찬하는 모든 것이 화를 취하고, 욕을 부르니 스스로 매일 뿐이다.
〔集解〕毁者稱人之惡而損其眞 譽者揚人之善而過其實
[집해]毁는 다른 사람의 악을 말하여 그 참됨을 더는 것이요, 譽는 다른 사람의 선을 드러내어 그 실제보다 지나치게 하는 것이다.
擧世重交游 擬結金蘭契 忿怨容易生 風波當時起 所以君子心 汪汪淡如水
세상 사람들은 서로 사귀고 오고가는 것을 소중히 여겨 金蘭契를 맺는데 분함과 원망이 쉽게 생겨서 풍파가 때로 일어나기 때문에 군자의 마음은 도량이 넒고 말기가 물과 같아야 한다.
〔集說〕吳氏曰 易曰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 契合也 風波比忿怨 言世人結交 多以金蘭自比 不知一言不合 則忿怨之生 速如風波之起矣 汪汪深廣貌 記曰君子之交如水 小人之交如醴 君子淡以成 小人甘以壞
[집설]오씨가 말하기를 『周易』에 말하기를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그 날카롭기가 쇠를 자를 수 있고, 마음을 같이 하는 마음은 그 냄새가 蘭과 같다. 契는 합함이다. 風波는 분노와 원망에 비교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사귐을 맺는 것을 많이 金蘭으로써 스스로 비교하여 말한다. 한 마디 말이 합하지 않으면 곧 분노와 원망이 일어 빠르기가 바람과 파도의 일어남과 같음을 말지 못한다. 汪汪은 깊고 넓은 모양이다. 『禮記』에 말하기를 군자의 사귐은 물과 같도, 소인의 사귐은 단술과 같고, 군자는 담담함으로써 이루고, 소인은 단 것으로써 무너뜨린다.
擧世好承奉 昻昻增意氣 不知承奉者 以爾為玩戱 所以古人疾 蘧篨與戚施
세상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떠 받들려지기를 좋아하여 당당하게 意氣를 더하지만 떠받드는 자가 너로써 장남 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때문에 옛 사람이 미워하는 것은 籧篨와 戚施였다.
〔集說〕吳氏曰 疾憎惡也 蘧篨不能俯 疾之醜者也 戚施不能仰亦醜疾也 世人好承奉 自以為得 不知人之玩弄嬉戱 不出中心之敬也 以蘧篨戚施二者 為比盖深惡之也
[집설]오씨가 말하기를 疾은 憎惡이다. 蘧篨는 굽히지 못함이니 병의 나쁜 것이다. 戚施는 우러르지 못함이니 또한 나쁜 병이다. 세상 사람들이 받들어지기를 좋아하여 스스로 얻는다 여기고 다른 사람이 희롱하고 장난하여 마음 속의 공경함에서 나지 않았음을 알지 못한다. 蘧篨와 戚施 두 가지로써 깊이 미워함을 비유하였다.
擧世重游俠 俗呼為氣義 為人赴急難 往往陷囚繫係 所以馬援書 殷勤戒諸子
세상 사람들은 游俠을 소중하게 여겨서 세속에서 부르기를 氣와 義라 하고 사름들을 위하여 급하고 어려움에 나아가 자주 가두어짐에 빠져 매여진다. 때문에 마원이 글에서 은근하게 여러 자식을 경계하였다.
〔增註〕游俠之徒 輕身以徇人 似乎有氣有義而非正 故馬援之書曰 寧死不願聞子孫有此行也
[증주]유협의 무리는 몸을 가벼이 하여 다른 사람을 따라 氣와 義가 있는 듯 하나 바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원이 글에서 말하기를 차라리 죽을지언정 자손들이 이러한 행실이 있다고 듣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擧世賤淸素 奉身好華侈 肥馬衣輕裘 揚揚過閭里 雖得市童憐 還為識者鄙
세상 사람들은 맑고 소박함을 천하게 여기고 자신을 받들기를 화려하고 사치함을 좋아하고 살찐 말(을 타고)과 가벼운 갓옷을 입고 자랑스럽게 마을 지나고, 비록 시장에서 어린아이의 좋아함을 얻을 지라도 돌아가 아는 자는 천하게 여긴다.
〔增註〕揚揚自得之意 憐猶愛也 鄙猶賤也
[증주]揚揚은 자득의 뜻이다. 憐은 愛(사랑 함)와 같다. 鄙는 賤과 같다.
我本羇旅臣 遭逢堯舜理 位重才不充 戚戚懷憂畏 深淵與薄冰蹈之 唯恐墜 爾曹當憫我 勿使增罪戾 閉門斂蹤跡 縮首避名勢 勢位難久居 畢竟何足恃
내가 본래(객지를 떠돌다 한 때)몸을 붙인 신하로 요와 순의 다스림을 만나 지위는 중하지만 재주가 충분하지 않아 근심하고 두려워함을 품어 깊은 못과 얇은 얼음을 밟아 떨어(빠질)질 것을 두려워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나를 불쌍하게 여겨서 나로 하여금 죄와 어그러짐을 더함이 없게 하고, 문을 닫아 종적을 거두고, 머리를 조아려 명예와 권세를 피해야 한다. 권세와 지위는 오래 머물기 어려우니 끝내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集說〕陳氏曰 羇寄也 旅寓也 理治也 質旣相周復相宋 故自謂羇旅之臣 戚戚憂畏意 若蹈淵冰 言憂畏之甚也 戾亦罪也 戒其勿求遷秩以增罪戾 而又欲其深自斂避也 畢竟終也 盖富貴無常 終不足恃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羇는 寄(붙이다)와 같다. 旅는 寓(머물다)와 같다. 理는 다스림이다. 質이 이미 주나라에서 재상이 되었고, 다시 송에서 재상이 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나그네의 신하라고 말 한 것이다. 戚戚은 근심하고 두려워 함는 뜻이니 마치 못과 얼음을 밟은 것과 같다한 것은 근심하고 두려워함의 심함을 말한 것이다, 戾는 또한 罪이다. 벼슬과 녹봉의 등급을 옮기는 것을 구하는 것으로써 죄를 더하지 말라고 경계하고, 또한 깊이 스스로를 거두고 피하고자 한 것이다. 畢竟은 마침이다. 대개 富(경제적으로 부유한 것) 貴(벼슬이 높은 것)는 항상하지 않아 끝내 믿을 수 없다.
物盛則必衰 有隆還有替 速成不堅牢 亟走多顚躓至 灼灼園中花 早發還先萎 遲遲澗畔松 鬱鬱含晩翠 賦命有疾徐 靑雲難力致 寄語謝諸郞 躁進徒為耳
사물이 성대하면 곧 반드시 쇠퇴하고 융성함이 있으면 도리어 廢함이 있고, 빨리 이루면 견고하지 못하고, 빨리 달리면 많이 자빠지고 넘어진다. 밝게 빛나는 정원 가운데의 꽃은 밀찍 핀 것이 도리어 먼저 시들고 천천히 흐르는 시냇가 소나무는 무성하여 늦게까지 푸름을 머금는다. 주어진 운명은 빠르고 더딤이 있고, 靑雲(입신출세 하는 것)은 힘써 이루기 어려우니 말을 붙여 여러 사내에게 사절하니 조급하게 나아감은 헛되이 할 뿐이다.
〔集說〕陳氏曰 隆興也 替廢也 亟急也 顚躓蹉跌也 萎枯也 疾速也 徐遲也 靑雲比名位之高顯也 躁急也 徒空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隆은 興(일어남)이다. 替는 廢함이다. 亟은 급함이다. 顚躓은 발을 헛디뎌 넘어짐이다. 萎는 마름이다. 疾은 빠름이다. 徐는 느림이다. 靑雲은 이름과 지위가 높게 드러남이다. 躁 는 급함이다. 徒는 공연함이다.
康節邵先生誡子孫曰 上品之人不敎而善 中品之人敎而後善 下品之人敎亦不善 不敎而善 非聖而何 敎而後善 非賢而何 敎亦不善 非愚而何
강절 소선생이 자손을 경계하여 말하기를 상품의 사람은 가르치지 않아도 선하고, 중품의 사람은 가르친 후에 선하고, 하품의 사람은 가르쳐도 또한 선하지 않다. 가르치지 않아도 선함은 성인이 아니고 무엇이며, 가르친 후에 선함은 현인이 아니고 무엇이며, 가르쳐도 또한 선하지 않음은 어리석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集解〕先生名雍字堯夫康節諡也 河南人 熊氏曰 不敎而善 生而知之者也 敎而後善 學而知之者也 敎亦不善 困而不學者也
[집해]선생의 이름은 雍이고, 字는 堯夫인데, 康節은 시호이며, 河南 사람이다. 웅씨가 말하기를 가르치지 않아도 선함은 나면서 아는 자이다. 가르친 후에 선한 자는 배워서 아는 자이다. 가르쳐도 또한 선하지 않음은 힘들어도(곤궁하여도) 배우지 않는 자이다.
是知善也者 吉之謂也 不善也者 凶之謂也
선을 안다는 것은 吉함을 말하고, 선하지 않다고 함은 흉함을 말하는 것이다.
〔增註〕為善者 為吉人 為惡者 為凶人
[증주]선을 하는 자는 吉한 사람이 되고, 악을 하는 자는 凶한 사람이 된다.
吉也者 目不觀非禮之色 耳不聽非禮之聲 口不道非禮之言 足不踐非禮之地 人非善不交 物非義不取 親賢如就芝蘭 避惡如畏蛇蠍 或曰不謂之吉人 則吾不信也
吉하다는 것은 눈으로는 예가 아닌 색을 보지 않으며, 귀로는 예가 아닌 소리를 듣지 않으며, 입으로는 예가 아닌 말을 말하지 않으며, 발로는 예가 아닌 땅을 밟지 않는다. 사람으로 선하지 않음을 사귀지 않고, 사물로 의가 아니면 취하지 않으며, 현인을 친하기를 마치 芝蘭에 나아가듯 하고, 악을 피하기를 마치 뱀과 전갈을 두려워하듯이 하면 어떤 사람이 吉한 사람이 아니라 말하여도 나는 믿지 않을 것이다.
〔增註〕此一節 言為善者 為吉人
[집주]이 일절은 선을 하는(행하는) 자가 길한 사람이 됨을 말하였다.
凶也者 語言詭譎 動止陰險 好利飾非 貪淫樂禍 疾良善如讎隙 犯刑憲如飮食 小則隕身滅性 大則覆宗絶嗣 或曰不謂之凶人 則吾不信也
凶이라는 것은 말하는 것은 간교한 속임수이고, 행동거지는 음험하며 이로움을 좋아하고 잘못을 꾸미며, 음란함을 탐하고, 남의 재앙을 즐기며 어질고 선함을 미워하고 원수와 같이 여기며, 법을 범하기를 먹고 마시는 것처럼 하여 적으면 몸을 죽이고 性(선한 본성)을 없애며 크면 곧 종실을 엎고 후사를 끊는다. 혹 어떤 사람이 凶人이 아니라 말하면 곧 나는 믿지 않는다.
〔增註〕此一節 言為惡者為凶人
[증주]이 일 절은 악을 행하는 자가 凶人이 됨을 말한 것이다.
傳有之曰 吉人為善惟日不足 凶人為不善亦惟日不足 汝等欲為吉人乎 欲為凶人乎
전하는 말에 吉人은 선을 행함이 날로 부족하다 하고, 凶人은 선하지 않음을 행함이 날로 부족하다 하니 너희들은 吉人이 되고자 하는가? 凶人이 되고자 하는가?
〔集解〕吉人為善以下四句 今見書泰書篇 惟日不足言 終日為之而猶以為不足也 上旣歷陳善惡吉凶禍福之明驗 終篇則使其自擇而取舍之 其警之也 深矣
[집해]吉人爲善 이하 4구는 지금 『書經』 泰誓 편에 보인다. 惟日不足言은 종일토록 그것(선)을 행하되 오히려 부족하다 여긴다. 위에서 이미 차례로 선, 악, 길, 흉, 화, 복의 분명한 징험을 말하고, 마지막 편은 곧 그 스스로 가려서 취하고 버리게 하니 그 경계함이 깊다.
節孝徐先生訓學者曰 諸君欲為君子 而使勞己之力 費己之財 如此而不為君子 猶可也 不勞己之力 不費己之財 諸君何不為君子 鄕人賤之 父母惡之 如此而不為君子 猶可也 父母欲之 鄕人榮之 諸君何不為君子
절효 서선생이 배우는 자를 가르쳐 말하기를 너희들이 군자가 되고자 하여 자기의 힘을 수고롭게 하고, 자기의 재물을 허비하는 이 같이 하고서 군자가 되지 않는 것은 오히려 그럴 수 있다. 자기의 힘을 수고롭게 하지 않고, 자기의 재물을 허비하지 않는데 너희들은 왜 군자가 되지 않는가? 마을 사람이 그것을 천하게 여기고 부모가 미워하는 이 같이 하여 군자가 되지 않는 것은 오히려 그럴 수 있다. 부모가 바라고 마을 사람이 영광스럽게 여기는데 너희들은 왜 군자가 되지 않는가?
〔集解〕先生名積字仲車節孝諡也 山陽人
[집해]선생의 이름은 積이고 字는 仲車이니 節孝는 시호이다. 山陽 사람이다.
又曰 言其所善 行其所善 思其所善 如此而不為君子 未之有也 言其所不善 行其所不善 思其所不善 如此而不為小人 未之有也
또 말하기를 그 선한 바를 말하고, 그 선한 바를 행하고, 그 선한 바를 생각하는 이 같이 하고서 군자가 되지 않음은 있지 않다. 그 선하지 않는 바를 말하고 그 선하지 않는 바를 행하고, 그 선하지 않는 바를 생각하는 이 같이 하고서 소인이 되지 않음은 있지 않다.
〔集解〕君子小人之分 在乎口之所言 身之所行 心之所思而已 言行見乎外心 思存乎中 三者皆善 則為君子也必矣 三者皆不善 則豈不為小人哉
[집해]군자와 소인의 나누어짐은 입의 말하는 바와 몸의 행하는 바와 마음의 생각하는 바에 달렸을 뿐이니 언행은 마음 밖에서 나타나고, 생각은 마음속에 보존되니 3가지 모두가 선하면 곧 군자가 되는 것이 틀림없다. 3가지 가모두 선하지 않으면 곧 어찌 소인이 되지 않겠는가?
胡文定公與子書曰 立志以明道希文 自期待
호문정공이 아들에게 준 글에 말하기를 명도와 희문으로써 뜻을 세우기를 스스로를 기대한다.
〔集解〕公名安國字康侯文定諡也 建安人 三子寅字明仲 寧字和仲 宏字仁仲 明道程純公也 朱子稱其十四五歲 便學聖人 鄒文忠公浩 稱其得志 能使萬物各得其所 藍田呂氏 稱其自任之重 寧學聖人 而未至 不欲以一善成名 寧以一物不被澤為己病 不欲以一時之利為己功 此明道之志 希文范文正公也 朱子稱其自做秀才時 其志便以天下為己任 歐陽文忠公 稱其少有大節於富貴貧賤毁譽歡戚 無一動其心 嘗曰士當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此文正公之志也 宜乎胡公敎子 立志以二公自期待焉
[집해]公의 이름은 安國이고, 字는 康侯이며 文定은 시호이다. 建安사람이다. 세 아들은 寅은 字가 明仲이고, 寧은 字가 和仲이고, 宏은 字가 仁仲이며, 明道는 程純公이다. 주자가 그 14, 5세에 곧 성인을 배웠다고 칭찬하였고, 추 문충공 호는 그 뜻을 얻음을 칭찬하여 만물이 각기 그 자리를 얻게 되었다 하였고, 남전여씨는 스스로 맡음을 중요하게 여김을 칭찬하여 차라리 성인을 배우다 이르지 못할지언정 한 가지 선으로써 이름을 이루고자 하지 않으며, 차라리 한 가지 물건으로써 은택을 입히지 못함을 자기의 병폐로 삼을지언정 한 때의 이로움으로써 자기의 공을 삼고자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는 明道의 뜻이다. 希文은 范文正公이다. 주자는 그 스스로 빼어난 재주를 지을 때를 말하여 그 뜻이 곧 천하로써 자기의 임무로 삼았다고 했다. 歐陽 文忠公은 젊을 때부터 부귀와 빈천, 헐뜯음과 명예, 기쁨과 슬픔에 큰 절개가 있어 한 번도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고 말 했다. 일찍이 말하기를 선비는 마땅히 먼저 천하의 근심을 근심하고, 뒤에 천하의 즐거움을 즐거워하였다. 고 했다. 이는 문정공의 뜻이다. 마땅히 호공이 자식들이 뜻을 세울 것을 가르치기를 두 공으로써 기대한 것이다.
立心以忠信不欺 為主本
마음을 세움은 忠信으로써 하여 속이지 않는 것을 주된 근본으로 삼는다.
〔集說〕陳氏曰 心者身之主也 不欺卽忠信之謂 人不忠信則事皆無實 為惡則易 為善則難 故立心 必以是為主本焉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心은 몸의 주인이니 속이지 않음을 곧 忠信이라 말한다. 사람이 忠信하지 않으면 곧 일이 모두 실제가 없어 악을 행하기는 곧 쉽고 선을 행하기는 곧 어렵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로써 주된 금본느오 삼아야 한다.
行己 以端莊淸愼 見操執
자기를 행함은 단정하고, 엄숙하며 맑고, 삼가는 것으로써 지켜야 한다.
〔增註〕操執 皆守也 端正莊肅淸白謹愼 惟有守者能之
[집주]操와 執은 모두 지킴이다. 단정하고 엄숙하며, 맑고 삼가는 것은 오직 지킴이 있는 자라야 할 수 있다.
臨事 以明敏果斷 辨是非
일에 임하여 분명하고 민첩하며 과감히 결단할 수 있어야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다.
〔集說〕熊氏曰 事有是非 惟明敏 可以立見 惟果斷 可以早決
[집설]웅씨가 말하기를 일에는 옳고 그름이 있으니 오직 맑고 민첩하여야 견해를 세울 수 있고, 오직 과감히 결단하여야 일찍 결단할 수 있다.
又謹三尺 考求立法之意而操縱之 斯可為政不在人後矣
또 세 자(죽간에 쓴 법률)를 삼가고 법을 세우는 뜻을 상고하고 찾아서 법의 뜻에 근본해야 한다. 이에 政事를 행함이 다른 사람 뒤에 있지 않을 수 있다.
〔增註〕此言為政之方 操縱謂本法意 原人情而適寬嚴之宜也
[집주]이는 정사를 하는 방법을 말한 것이다. 操縱은 법의 뜻에 근본하고, 인정에 근원하여 너그럽고 엄함의 마땅함에 알맞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集解〕三尺古者以三尺竹簡 書法律 故稱法律為三尺
[집해]三尺은 옛날에 3자의 죽간에 법률을 썼기 때문에 법률을 三尺이라 말한다.
汝勉之哉 治心修身 以飮食男女為切要 從古聖賢 自這裏做工夫 其可忽乎
너는 힘쓰라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닦는 것을 먹고 마시고, 남녀로써 절실하고 중요하게 여긴다. 옛날부터 성현이 이곳으로부터 공부를 시작하였으니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增註〕飮食男女人之大欲存焉 一念之偏不能自克 則陷其身於惡 而不可振矣 故治心修身 必以是為切要 古之聖賢 如禹之菲飮食 湯之不邇聲色 皆從此 做工夫者也
[증주]음식과 남녀는 사람의 크게 있고자 하는 것이니 한 순간의 치우침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면 곧 몸이 악에 빠져서 떨칠 수 없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닦음은 반드시 이로서 절실하고 요긴한 것으로 삼는다. 옛날의 성현은 마치 우가 음식을 박하게 한 것과 탕이(나쁜)음악과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았으니 모두 이를 따라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古靈陳先生 為仙居令 敎其民曰 為吾民者 父義母慈兄友弟恭子孝 夫婦有恩 男女有別 子弟有學 鄕閭有禮 貧窮患難親戚相救 婚姻死喪隣保相助 無墮惰農業 無作盜賤 無學賭博 無好爭訟 無以惡陵善 無以富呑貧 行者讓路 耕者讓畔 斑白者不負戴於道路 則為禮義之俗矣
고령 진 선생이 仙居 令이 되어 그 백성을 가르쳐 말하기를 나의 백성이 된 자는 아버지는 의롭고, 어머니는 사랑하고, 형은 우애로우며, 동생을 공손하고, 자식은 효도해야 한다. 부부는 은혜가 있으며, 남녀는 분별이 있고, 자제는 배움이 있고, 마을에는 예가 있으며, 빈궁하고 환난에는 친척이 서로 구제하며, 혼인과 장례에는 이웃이 서로 도우며 농사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도둑질 하지 않으며 도박을 배우지 않으며, 쟁송을 좋아하지 않으며, 악으로써 선을 업신여기지 않으며, 부유함으로써 가난한 이를 삼키지 않으며, 길 가는 자는 길을 양보하고 밭가는 자는 밭두둑을 양보하며, 나이 많은 이가 도로에서 지고, 이지 않으면 곧 예의의 풍속이 된다고 했다.
〔集說〕陳氏曰 古靈地名在福州 先生名襄字述 古仙居台州屬邑 義謂能正其家 有恩謂貧窮相守 若棄妻不養 夫亡改嫁是無恩也 有禮謂歲時相往來 及燕飮叙齒之類 患難謂水火盜賊之類 墮廢墜也 賭博財也 博局戱也 陵侵欺也 呑兼幷也 讓路謂少避長 輕避重之類 讓畔謂地有界畔 不相侵奪也 朱子曰 古靈諭俗一文 平正簡易 許多事都說盡 可見他一箇大胸襟包得許多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古靈은 地名이니 福州에 있다. 先生의 이름은 襄이고, 字는 述이다. 古仙居는 台州의 속읍이다. 義는 그 집을 바르게 할 수 있음을 말하고, 有恩은 빈궁함을 서로 지킴이니 처를 버리고 봉양하지 않는 것과 지아비를 잃고 개가하는 것과 같은 것은 은혜가 없는 것이다. 有禮는 歲時에 서로 오고가며, 잔치에 이르러 술 마실 때 나이를 차례하는 것 따위이다. 患難은 홍수, 화재, 도적따위 이다. 墯는 폐하고 떨어지는 것이다. 賭는 재물을 가지고 내기하는 것이고, 博은 바둑, 장기 등이다. 陵은 침범하고 속임이다. 呑은 겸병함이다. 讓路는 젊은이가 어른을 피하고, 가벼운 것이 무거운 것을 파하는 따위이다. 讓畔은 땅에 두둑을 경계하여 서로 침범하고 빼앗지 않는 것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古靈은 풍속을 한 문장으로 비유한 것이니 고르고 바르면서 간단하되 허다한 일들을 모두 말하여 다른 하나의 큰 가슴속에 허다함을 포함하고 잇음을 볼 수 있다.
右廣立敎
이상은 가르침을 세움을 넓힌 것이다.
司馬溫公曰 凡諸卑幼事無大小 毋得專行 必咨稟於家長
사마온공이 말하기를 낮고 어린이는 일의 크고 작음이 없이 오로지 행할 수 없고, 반드시 가장에게 물어야 한다.
〔集說〕陳氏曰 公姓司馬名光字君實 陜州夏縣人 贈溫國公 諡文正 咨謀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公의 姓은 司馬이고, 이름은 光이며, 字는 君實이니 陜州 夏縣 사람이다. 죽은 후 溫國公에 봉해졌고, 시호는 文正이다. 咨는 꾀함이다.
凡子愛父母之命 必籍記而佩之 時省而速行之 事畢則返命焉
모든 자식은 부모의 명을 사랑하여 반드시 장부에 기록하여 차고, 때로 살펴서 속히 행하고 일을 마치면 곧 복명한다.
〔增註〕籍簿也 佩謂服於身 省察也 視也
[증주]籍은 장부이다. 佩는 몸에 다는 것을 말한다. 省은 살핌이니 보는 것이다.
〔集解〕返命復命也
[집해]返命은 復命이다.
或所命有不可行者 則和色柔聲 具是非利害而白之 待父母之許 然後改之 若不許 苟於事無大害者 亦當曲從 若以父母之命為非 而直行己志 雖所執皆是 猶為不順之子 況未必是乎
혹 명한 바가 행할 수 없음이 있는 것은 곧 온화한 기색과 부드러운 소리로 시비와 이해를 갖추어 말하고 부모의 허락을 기다린 후 바꾼다. 만일 허락하지 않고 만약 일에 큰 해침이 없는 것도 또한 곡진히 따르고, 만약 부모의 명이 잘 못되어도 곧 바로 자기의 뜻을 행하는 것이 비록 모두 옳음을 잡았을 지라도 오히려 순종하지 않는(不順)자식이 되는데, 하물며 옳은 일이 아님에 있어서랴!
〔增註〕備陳是非利害之兩端而稟白之 欲父母自喩也
[증주]備는 시비와 이해의 두 실마리를 나열하여 말을 올리는 것이니 부모가 스스로 깨닫게 하고자 한 것이다.
橫渠先生曰 舜之事親有不悅者 為父頑母嚚 不近人情 若中人之性 其愛惡若無害理 必姑順之
횡거선생이 말하기를 순이 어버이를 섬김에 기뻐하지 않음이 있었던 것은 아버지는 고집 세고 어머니는 어리석어 人情에 가깝지 않아서이다. 만약 중간정도 사람의 성품이 만약 사랑하고 미워함이 도리를 해침이 없다면 반드시 우선 따라야 한다.
〔集解〕舜盡事親之道 宜得親之悅矣 而親猶不悅者 為其頑嚚 不近人情也 然舜克諧以孝 終至瞽瞍底豫 況中人之性者 人子可不姑順從以悅其心乎
[집해]순이 어버이 섬김의 도를 다하여 마땅히 어버이가 기뻐해야 함에도 어버이가 오히려 기뻐하지 않은 것은 고집 세고 어리석어 人情에 가깝지 않아서 이다. 그러나 순이 화함으로서 孝하여 마침내 고수가 기뻐함을 이룸에 이르렀데, 하물며 중간정도 사람의 성품인자가 사람의 자식으로 우선 순종하는 것으로써 그 마음을 기쁘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若親之故舊所喜 當極力招致 賓客之奉 當極力營辦 務以悅親為事 不可計家之有無 然又須使之不知其勉强勞苦 苟使見其為而不易 則亦不安矣
만약 어버이의 친구로 기뻐(좋아)하는 바는 마땅히 힘을 다하여 불러 이르게 하고, 손님의 받듦을 마땅히 힘을 다해 모셔서 힘쓰기를 어버이가 기뻐함으로써 일을 삼아 집의 (재물이)있고, 없음을 헤아려서는 안된다. 그러나 또한 모름지기 힘쓰고 수고로움을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 만일 그 행함이 쉽지 않음을 보면 곧 또한 편안하지 않다.
〔集解〕故舊所喜謂親之故舊中所喜者 賓客之奉謂酒殽之類
[집해]故舊所喜는 어버이의 친구 가운데 기뻐(좋아)하는 자이다. 賓客之奉은 술과 안주 따위이다.
羅仲素 論瞽瞍底豫 而天下之為父子者定云 只為天下無不是父母
나중소가 고수가 기뻐함에 이른 것으로 천하의 부자 된 자가 定해졌다. 는 말을 논하여 말하기를 다만 천하에 옳지 않은 부모가 없기 때문이라 하였다.
〔集說〕陳氏曰 仲素名從彦 豫章人 底致也 豫悅樂也 定者子孝父慈 各止其所而無不安其位之意也 孟子嘗曰 舜盡事親之道 而瞽瞍底豫 瞽瞍底豫而天下之為父子者定 羅氏讀之而謂云只為 天下無不是底父母 蓋孝子之心與親為一 凡親之過皆己之過 自不見父母有不是處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仲素는 이름이 從彦이고, 豫章 사람이다.
了翁聞而善之曰 唯如此而後 天下之為父子者定 彼臣弑其君 子弑其父 常始於見其有不是處耳
요옹이 듣고서 그것을 좋게 여겨 말하기를 오직 이와 같은 후에 천하의 부자된 자가 정해진다. 저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그 아비를 죽이는 것은 항상 그 옳음에 처하지 않음이 있다고 보는데서 비롯되었을 뿐이다.
〔集說〕陳氏曰 了翁陳忠肅公也 了翁聞羅氏之言 又推其極而言之 盖臣子弑逆 常起於一念之差 以君父所為不是也 若知天下無不是底君父 惡有弑逆之事哉 眞氏曰 罪己而不非其親者 仁人孝子之心也 怨親而不反諸己者 亂臣賊子之心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了翁은 陳忠肅公이다. 요옹이 나씨의 말을 듣고 또한 그 지극함을 미루어 말한 것이다. 대개 신하와 자식이 죽이고 거스르는 것은 항상 한 생각의 어긋남에서 일어나니 임금과 아비의 하는 바가 옳지 않다하기 때문이다. 만약 천하에 임금과 아비가 옳지 않음에 이름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어찌 죽이고 거스르는 일이 있겠는가? 진씨가 말하기를 자기가 지은 죄로 그 어버이를 비난하지 않는 것은 仁人과 효자의 마음이다. 어버이를 원망하고 자기에게 돌이키지 않는 자는 亂臣賊子의 마음이다.
伊川先生曰 病臥於床 委之庸醫 比之不慈不孝 事親者亦不可不知醫
이천 선생이 말하기를 병으로 침상에 누워 용렬한 의사에게 맡기는 것은 자애와 효하지 않음에 견줄 수 있고, 어버이를 섬기는 자가 또한 의술을 알지 않을 수 없다.
〔集說〕陳氏曰 委猶付託也 夫病死生所係 而委之庸醫 未有不致害者也 故子有疾而委之庸醫 比之不慈 親有疾而委之庸醫 比之不孝 子能知醫則可以養親 故曰事親者亦不可不知醫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委는 부탁과 같다. 대저 병은 죽고 삶이 달린 바이니 용렬한 의사에게 맡기는 것은 해침에 이르지 않음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자식이 병이 있어 용렬한 의사에게 맡기는 것은 자애롭지 않음에 견줄 수 있고, 어버이가 병이 있어 용렬한 의사에게 맡기는 것은 효하지 않음에 견줄 수 있다. 자식이 의술을 알 수 있으면 곧 어버이를 본양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어버이를 섬기는 자는 또한 의술을 알지 않을 수 없다 한 것이다.
橫渠先生嘗曰 事親奉祭 豈可使人為之
횡거 선생이 일찍이 말하기를 어버이를 섬기고, 제사를 받드는 것을 어찌 다른 사람을 시켜 할 수 있겠는가? 했다.
〔集說〕陳氏曰 事父母奉祭祀 皆當親為之 葉氏曰 使人代為 孝敬之心 安在哉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부모를 섬기고, 제사를 받드는 것은 모두 마땅히 직접해야 한다. 했고, 섭씨가 말하기를 사람을 시켜 대신 하게 한다면 孝와 敬의 마음이 어디에 있겠는가?
伊川先生曰 冠昏喪祭禮之大者 今人都不理會 豺獺皆知報本 今士大夫家多忽 此厚於奉養 而薄於先祖 甚不可也
이천 선생이 말하기를 관례, 혼례, 제례의 큰 것을 지금 사람들이 모두 이해하지 못한다. 승냥이와 수달도 모두 근본을 갚을 줄 아는데 지금 사대부가는 많이 소홀히 한다. 이는 봉양을 두터이 하고, 선조를 야박하게 함이니 할 수 없음이 심하다.
〔集說〕陳氏曰 冠以責成人 昏以承宗事 喪以愼終 祭以追遠 理會謂講而行之 孟春獺祭魚 季秋豺祭獸 皆有報本之意 可以人而不如獸乎 此字指報本言 奉養謂奉養其親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관례로써 成人을 책임지우고, 혼례로써 종사를 계승하고, 상례로써 마침을 산가하고, 제례로써 먼 것을 추모한다. 理會는 강론하고 행함이다. 맹춘(정월)에는 수달이 물고기를 제사하고, 季秋(9월)에 승냥이가 짐승을 제사함은 모두 근본을 갚음의 뜻이 있다. 사람으로 짐승만 같지 않을 수 있겠는가? 報本이라는 글자는 근본을 갚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奉養은 그 어버이를 봉양함을 말한다.
某嘗修六禮大略 家必有廟 廟必有主 月朔必薦新 時祭用仲月 冬至祭始祖 立春祭先祖 季秋祭禰 忌日遷主祭於正寢 凡事死之禮 當厚於奉生者
내가 일찍이 六禮를 대략적으로 공부하였는데 家에는 사당이 있고, 사당에는 만드시 신주가 있다. 매월 초하루에는 반드시 새로운 것을 올리고 時祭에는 지내는 제사는 각계절의 가운데를 쓴다. 동지에는 시조에게 제사하고, 입춘에는 선조를 제사한다. 季秋에는 아버지 사당에 제사하고, 忌日에는 신주를 옮겨 正寢에서 제사한다. 모든 죽은 이를 섬기는 예는 마땅히 살아있음을 받드는 것 보다 두터이 해야 한다.
〔集說〕陳氏曰 六禮冠昏喪祭鄕飮酒士相見之禮也 主木主 所以依神也 新謂新物也 禰父廟也 遷徙也 正寢猶正堂也 月朔一月之 時四時 天道之變 冬至陽生之始 立春物生之始 季秋物成之始 忌日親之死日 君子於此 必有悽愴怵惕之心 故因之而行追遠之禮 此言祭禮之大略 司馬溫公曰 國家時祭用孟月 私家不敢用 故用仲月 朱子曰 始祖之祭 似國家之禘 先祖之祭似祫 古無此 伊川以義起 某當初也祭 後來覺得僭 今不敢祭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六禮는 冠, 昏, 喪, 祭, 鄕飮酒, 士相見의 禮이다. 主는 木主(나무 신주)이니 신이 의지하는 것이다. 新은 새로운 물건을 말한다. 禰는 아버지의 사당이다. 遷은 옮김이다. 正寢은 正堂(대청)과 같다. 月朔은 월의 처음이다(초하루). 時는 四時이니 천도가 변함이다. 冬至는 陽이 생겨나는 시작이다. 立春은 사물이 생겨나는 시작이고, 季秋는 사물이 이루어지는 시작이다. 忌日은 어버이가 죽은 날이니 군자가 이에 반드시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므로 인하여 먼 것을 추모하는 예를 행한다. 이는 제레의 대략을 말한 것이다. 사마온공이 말하기를 국가의 時祭는 孟月(봄, 여름 가을, 겨울이 시작하는 달)을 쓰고, 私家는 감히 쓰지 못한다. 그러므로 仲月(각 계절의 가운데 달)을 쓴다. 주자가 말하기를 시조의 제사는 국가의 禘제사와 비슷하고 선조의 제사는 祫제사와 비슷한데 옛날에는 이것이 없었다. 이천이 義로써 일으키니 내가 당초에는 제사하다 뒤에 와서 참람함을 깨닫고 지금에는 감히 제사하지 못한다.
人家能存得此等事數件 雖幼者可使漸知禮義
사람의 집이 보존하고, 이러한 등의 일을 몇 건을 보존할 수 있으면 비록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점차적으로 禮義을 알게 할 수 있다.
〔增註〕存謂行之久而不廢也
[증주]存은 행함이 오래되어 없어지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司馬溫公曰 冠者成人之道也 成人者將責為人子為人弟為人臣為人少者之行也 將責四者之行於人 其禮可不重與
사마온공이 말하기를 冠禮는 成人이 되는 길이다. 成仁은 장차 다른 사람의 이들이 되고 다른 사람의 동생이 되고,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고, 젊은이가 되는 행동을 책임지우는 것이다. 장차 네 가지의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책임 지우려는 것이니 그 禮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集解〕所謂成人者 非謂膚革異於童穉也 將責以孝悌忠順之行也 豈不重乎哉
[집해]이른 바 成人은 피부와 가죽이 어린아이와 다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장차 孝弟忠信의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어찌 중하지 않겠는가?
冠禮之廢久矣 近世以來人情尤為輕薄 生子猶飮乳已加巾帽 有官者或為之製公服而弄之 過十歲猶總角者蓋鮮矣 彼責以四者之行 豈能知之 故往往自幼至長 愚騃如一 由不知成人之道故也
冠禮의 폐해짐이 오래이다. 근세 이래 人情이 더욱 가볍고 박절하여 아이를 낳으면 아직 젖을 먹이면서 이미 巾과 帽를 씌우고 관직에 있는 자는 혹 그를 위해 공복을 지어 노리개로 한다. 10세가 지나도 총각 같은 자는 적다. 그를 네 가지 행동을 책임지워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주 어림으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어리석기가 한결 같은 것은 成人의 道를 알지 못함에 말미암기 때문이다.
〔集解〕巾帽士庶所服者 有官謂宋世因父祖任朝官 或郊祀覃恩 或遺表恩澤 子孫雖在襁褓 得授以官 故製公服而戱弄之也 鮮少也 騃癡也
[집해]巾帽는 士庶가 입는 것이다. 有官은 송나라 때 父祖가 조정의 관리에 임명됨으로 인하여 혹은 郊社의 은혜가 미치고, 혹은 신하가 죽을 때 임금에게 글을 올린 글의 은택으로 자손이 비록 강보에 있을지라도 관직을 준다. 그러므로 공복을 지어 장난감으로 함을 말한다. 鮮은 적음이다. 騃는 癡(어리석다)이다.
古禮雖稱二十而冠 然世俗之弊 不可猝變 若敦厚好古之君子 俟其子年十五以上 能通孝經論語 粗知禮義之方 然後冠之 斯其美矣
古禮에 비록 20세에 冠禮한다 말할 지라도 그러나 세속의 폐단은 갑자기 바꿀 수 없다. 만약 도탑고 옛것을 좋아하는 군자가 그 자식의 나아가 15세 이상이 되기를 기다려 『孝經』과 『論語』에 능통하고 거칠지만 예의의 방향을 한 후에 冠禮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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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集解〕猝急也 溫公以古禮急難盡 復若子弟年十五以上能通孝經論語 略知禮義 然後冠之可也
猝은 急(갑자기)이다. 온공이 古禮로써 갑자기 다하기 어렵다하고, 다시 만약 자제의 나이가 15세 이상으로 『孝經』과 『論語』에 능통하고, 대략 禮의 뜻을 안 연후에 冠禮하는 것이 옳다고 한 것이다.
古者父母之喪 旣殯食粥 齋衰䟽食水飮 不食菜果
옛날에 부모의 喪에는 이미 殯한(빈소를 마련한 후) 후 죽을 먹고, 齊衰(재최, 자최) 상복을 입고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나물과 과일을 먹지 않는다.
〔增註〕衰喪服也 緝其旁及下際曰齊衰 言父母之喪 旣殯始食粥 若齊衰之喪 旣殯得䟽食水飮 異於父母之喪也
[증주]衰는 상복이다. 그(상복) 옆과 아래 단을 바느질 한 것을 齊衰라 한다. 부모의 상에는 이미 殯(대렴 후 빈소를 설치하다.)하고, 처음 죽을 먹으며 만약 齊衰의 상이면 殯한 후 거친 밥과 물을 마실 수 있다. 부모의 상은 다르다.
〔集解〕䟽食謂以麤米為飯 水飮謂不食漿酪也
[집해]䟽食는 거친 쌀로서 밥을 지은 것이다. 水飮은 장과 우유를 먹지 않는 것이다.
父母之喪旣虞卒哭 䟽食水飮 不食菜果 期而小祥 食菜果 又期而大祥 食醯醬
부모의 상에 이미 虞제사하고 졸곡한 후에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나물과 과일을 먹지 않는다. 期年(1년)으로 小祥을 지나면 나물과 과일을 먹고, 또 1년으로 大祥을 지나면 초와 육장을 먹는다.
〔集說〕吳氏曰 虞祭名葬之日 日中而虞 遇柔日再虞 遇剛日三虞 虞之為言安也 以魂氣無所不之 故三祭以安之 三虞後遇剛日曰卒哭 自是哀至不哭 猶朝夕哭也 期周年也 祥吉也 自喪至此凡十三月 為初忌日也 又期而大祥 自喪至此凡二十五月 為第二忌日也 醯醋也
[집설]오씨가 말하기를 虞는 장례하는 날 제사이름이니 날(장례하는 날) 가운데 虞제사(初虞)하고 柔日을 만나면 再虞하고, 剛日에 三虞한다. 虞는 편안함을 말한다. 魂氣가 가지 않는 바가 없다. 그러므로 세 번 제사하는 것으로써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三虞 후에 剛日을 만나 (지내는 제사를) 卒哭이라 한다. 이로부터 슬픔을 지극히 하되 곡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침, 저녁은 곡한다. 期 는 1년이다. 祥은 길함이다. 상으로부터 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13개월이니 첫 忌日이 된다. 또 期(1년)로 大祥이니 상으로부터 이에 이르기까지 25개월이니 두 번째 忌日이다. 醯는 식초이다.
中月而禫 禫而飮醴酒 始飮酒者先飮醴酒 始食肉者先食乾肉 古人居喪 無敢公然食肉飮酒者
(大祥 후) 1달을 사이하여 禫祭를 지내고 禫祭 후 단 술을 마신다. 처음 술을 마시는 자는 먼저 단술을 마시고, 처음 고기를 먹 자는 먼저 마른 고기를 먹는다. 옛 사람은 상을 당하여 감히 공연히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는 자가 없었다.
〔集說〕陳氏曰 中月間一月也 禫祭名 大祥之後間一月而禫 禫者澹澹然平安之意 自喪至此凡二十七月也 酒一宿熟曰醴 醴酒味薄 乾肉味澀也 始飮酒食肉而先飮醴酒食乾肉者 以人子之心哀情未盡 不忍遽御醇厚之味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中月은 1달을 사이함이다. 禫은 제사 이름이니 大祥 후 1달을 사이하여 지내는 禫祭한다. 禫은 澹澹 하고 평안함의 뜻이니 상으로부터 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27개월이다. 술을 한번 열로 묵힌 것을 醴라 하고, 醴酒(단 술)는 맛이 소박하고, 乾肉은 맛이 껄끄럽다. 처음 술을 먹고 고기를 먹되 먼저 단술을 마시고, 건육을 먹는 것은 사람의 자식의 마음으로 슬픈 실정이 다하지 못하여 차마 대번에 순정하고 진한 맛을 사용(御)하지 못해서이다.
漢昌邑王奔昭帝之喪 居道上不素食 霍光數其罪 而廢之
한 나라 창읍왕이 소제의 喪에 달려가면서 길 위에 있으면서 素食(채소로 만든 음식)하지 않으니 곽광이 그 죄를 헤아리면서 그를 페하였다.
〔集說〕吳氏曰 昌邑王名賀 霍光字子孟 昭帝崩無子賀嗣位 淫昏無度 光時為大將軍 奏太后廢賀 為海昏侯
[집설]오씨가 말하기를 창읍왕은 이름이 賀이고, 곽광은 字가 子孟이다. 소제가 죽고 아들이 없어 賀가 자리를 이었는데 음란하고 어리석으며 법도가 없어 곽광이 그 때 대장군이 되어 태후에게 賀를 폐할 것을 아뢰어 海昏候로 삼았다.
晉阮籍負才放誕 居喪無禮 何曾面質籍於文帝坐曰 卿敗俗之人 不可長也 因言於帝曰 公方以孝治天下 而聽阮籍以重哀飮酒食肉於公座 宜擯四裔 無令汚染華夏
晉 나라 阮籍이 재주를 믿고 허황되며, 상에 처하여 예가 없었다. 하증이 문제가 있는 자리에서 면전에서 완적을 바로잡으려하여 말하기를 경은 풍속을 무너뜨린 사람이니 오래 할 수 없다. 하고는 황제에게 말하기를 公이 바야흐로 효로써 천하를 다스리려는데 완적이 어버이 상을 당하고서 公座에서 술을 마시고, 고기 먹음을 허락하였으니 마땅히 四裔로 물리쳐서 華夏를 더러움으로 물들지 않게 하십시오. 했다.
〔集說〕吳氏曰 阮籍字嗣宗 何曾字穎考 質謂正言之 文帝司馬昭也 時為晉公後 其子武帝立 始上尊號 卿指籍公 指昭也 聽猶許也 重哀謂親喪 擯斥也 四裔四夷 華夏中國也
오씨가 말하기를 완적은 字가 嗣宗이고, 하증은 字가 潁考이다. 質은 말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문제는 司馬昭이다. 때에 晉公이 돤 후 그 아들 문제가 서서 비로서 존호를 올렸다. 卿은 籍公을 가리킨다. 指는 昭이다. 聽은 許(허락)이다. 重哀는 어버이 상이다. 擯은 배척함이다. 四裔는 四夷이다. 華夏는 중국이다.
宋廬陵王義眞 居武帝憂 使左右賈魚肉珎羞 於齋內別立廚帳 會長史劉湛入 因命臑酒炙車螯 湛正色曰 公當今不宜有此設 義眞曰旦甚寒 長史事同一家 望不為異 酒至湛起曰 旣不能以禮自處 又不能以禮處人
송나라 여릉왕 의진이 무제의 상을 당하여 좌우로 하여금 물고기와 고기, 맛있는 음식을 사게 하고, 집 안에 따로 부엌의 장막을 세웠다. 마침 장사 유담이 들어옴을 만났다. 인하여 술을 데우고, 차오(바다 조개)를 굽게 하니 담이 얼굴색을 바로하고 말하기를 공은 마땅히 지금 이러한 베품이 있는 것은 마땅하지 못하다. 하니 의진이 말하기를 아침이 매우 춥다. 장사는 一家를 같이 섬기니 이상하게 여기지 말 것을 바랍니다. 했다. 술이 이르니 담이 일어나면서 말하기를 이미 예로써 스스로 처하지 못하고, 또한 예로써 다른 사람도 처하지 못하게 합니다. 했다.
〔集解〕陳氏曰 義眞宋武帝裕之子 居憂卽居喪 珍羞美食 湛字弘仁 吳氏曰 臑當作㬉古暖字 炙燒也 車螯海蛤也
[집해]진씨가 말하기를 의진은 송 무제 유의 아들이다. 居憂는 곧 喪중에 있음이다. 珍羞는 맛이 좋은 음식이다. 炙는 사르는 것이다. 車螯는 海蛤(대합 비슷한 조개)이다.
隋煬為太子 居文獻皇后喪 每朝令進二溢逸米 而私令外取肥肉脯鮓 置竹筒中 以蠟閉口 衣襆裹果而納之
수나라 양제가 태자가 되어 문헌황후의 상을 당하였다. 매일 아침 쌀 두 웅쿰을 올리게 하되 사사로이 밖에서 살찐 고기와 젓갈을 취하여 대나무 통 안에 두고서 밀랍으로 입구를 막고 보자기로 싸서 들여오게 하였다.
〔集解〕煬帝名廣 文獻皇后文帝后獨孤氏也 溢謂二十四分升之一也 衣襆卽今之袱也
[집해]煬帝는 이름이 廣이다. 文獻皇后는 文帝의 황후이니 獨孤氏이다. 溢은 한 되의 24분의 일이다. 衣襆(幞)은 곧 지금의 보자기이다.
〔增註〕溢一手所握也
[집주]溢은 한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이다.
湖南楚王馬希聲 葬其父武穆王之日 猶食雞臛 其官屬潘起譏之曰 昔阮籍居喪食蒸肫 何代無賢
호남 초왕 마희성이 그 아버지 무목왕을 장례하는 날에 오히려 닭고기 국을 먹으니 그 관속인 반기가 그것을 기롱하여 말하기를 옛날에 완적이 상을 치르면서 찐 돼지고기를 먹었는데 어느 시대인들 어진이가 없겠는가? 했다.
〔集說〕吳氏曰 五代馬殷據湖南長沙之地 武穆王卽殷也 雞臛雞肉羹也 蒸肫蒸熟猪也 何代無賢 反辭以譏之也
[집설]오씨가 말하기를 五代시대 마음이 호남 장사의 땅에 웅거하였다. 무목왕은 곧 殷이다. 雞臛은 닭고기 국이다. 蒸肫은 쪄서 익힌 돼지이다. 何代無賢은 말을 반대로 하는 것으로써 그를 기롱한 것이다.
然則五代之時 居喪食肉者 人猶以為異事 是流俗之弊 其來甚近也 今之士大夫 居喪食肉飮酒 無異平日 又相從宴集 靦然無愧 人亦恬不為怪 禮俗之壞 習以為常 悲夫
그러한 즉 五代의 때는 상을 치르면서 고기를 먹는 것을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한 일로 여겼으니 이는 흐르는 풍속의 폐단이 그 유래가 매우 가까운 것이다. 지금의 사대부가 상을 치르면서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는 것이 평소와 다음이 없고, 또 서로 따라 연회하고 모여 보아도 사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사람들이 또한 편안하여 괴이하게 여기지 않으니 예속의 무너짐이 길들여짐으로써 떳떳함이 되었으니 슬프다!
〔集說〕陳氏曰 承上文潘起之譏 而言五代梁唐晉漢周也 靦面見人之貌 恬安也 怪異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윗글 반기의 기롱을 이었고, 五代는 梁, 唐, 晉, 漢, 周이다. 靦面은 사람을 보는 모양이다. 恬은 편안함이다. 怪는 다름이다.
乃至鄙野之人 或初喪未斂 親賓則齎酒饌往勞之 主人亦自備酒饌 相與飮 啜 醉飽連日 及葬亦如之 甚者初喪作樂以娛尸 及殯葬則以樂導輀車而號泣隨之 亦有乘喪卽嫁娶者 噫習俗之難變 愚夫之難曉 乃至此乎
이에 비루한 野人에 이르러서는 혹 초상에 염하지 않고, 친척과 손님(문상객)이 술과 안주를 가지고 가서 위로하면 주인이 또한 스스로 술과 안주를 갖추고 서로 같이 마시고 취하며, 배부기를 날을 이어 장례에 미치도록 또한 그 같이 한다. 심한자는 초상에 음악을 연주하는 것으로써 시신을 즐겁게 하고, 장례에 이르러서는 곧 음악으로써 장례수레를 인도하게하고 소리쳐 울면서 그것을 따르며, 또한 상중에 곧 시집가고 장가드는 자가 있다. 아 습속의 변하기 어려움과 어리석은 사람의 깨우치기 어려움이 곧 여기에 이르렀는가?
〔集說〕輀車 喪車也
[집설]輀車는 상례 수레이다.
凡居父母之喪者 大祥之前皆未可飮酒食肉 若有疾暫須食飮 疾止亦當復初 必若素食不能下咽 久而羸憊恐成疾者 可以肉汁及脯醢或肉少 許助其滋味 不可恣食珍羞盛饌及 與人燕樂 是則雖被衰麻 其實不行喪也 唯五十以上血氣旣衰 必資酒肉扶養者 則不必然耳
무릇 부모의 상을 당한 자는 대상 전에 모두 술 마시고, 고기를 먹을 수 없다. 만약 병이 있어 잠깐 동안 (고기를)먹고, (술을) 마시다 병이 나으면 또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되 만약 반드시 거친 밥을 먹다 목구멍을 내려가지 않고, 오래하여 파리해지고 병이 들것을 두려워하는 자는 육즙과 마른 고기, 젓갈, 혹은 고기를 조금 먹어 그 맛을 돕도록 허락하나 방자하게 진수성찬을 먹음과 다른 사람과 함께 잔치해서는 안된다. 이는 곧 비록 상복을 입었으나 그 실제는 상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50세 이상으로 혈기가 이미 쇠퇴하여 반드시 술과 고기에 의지하여 부양하는 자는 곧 반드시 그러하지 않을 뿐이다.
〔集解〕羸瘦也 憊疲也 有病瘦憊恐致傷生 故權食肉汁及乾脯肉醬 以助滋補 若肆意饗食珍美殽饌及預宴席 則與無喪之人 何異哉
羸는 파리함이다. 憊는 피곤함이다. 병이 있어 파리하고 피곤하여 삶을 해침에 이르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임시로 육즙과 마른 고기, 육장을 먹음으로써 보양을 돕는다. 만약 뜻을 함부로 하고 진귀하고 좋은 안주와 반찬을 대접하는 연회의 자리에 미치면 곧 상을 당하지 않은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其居喪聽樂及嫁娶者 國有正法 此不復又反論
그 상을 당하여 음악을 듣고, 시집가고 장가드는 자는 나라에 바른 법이 있으니 여기서는 다시 또한 논하지 않는다.
〔增註〕法謂法律
[증주]法은 법률을 말한다.
父母之喪中 門外擇樸陋之室 為丈夫喪次 斬衰寢苫枕塊不脫絰帶 不與人坐焉 婦人次於中門之內別室 撤去帷帳衾褥華麗之物
부모의 상중에는 문 밖에 소박하고 누추한 방을 가려서 丈夫(상주)가 거처하는 곳으로 하고, 상복을 입고 짚으로 만든 거적에 자며, 흙덩이를 베고 絰帶(首絰과 腰絰)를 벗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함께 앉지 않으며, 부인은 자리는 중문 안의 별실인데 휘장과 이불과 요와 화려한 물건을 철거한다.
〔集解〕樸樸素 陋隘陋 斬衰以極麤麻布為之 下邊不緝也 苫藁薦 塊土塹
[집해]樸은 소박함이다. 陋는 좁고 누추함이다. 斬衰는 지극히 거친 삼베로 만드니 아래 변을 바느질하지 않는다. 苫는 짚으로 만든 거적이고, 塊는 흙구덩이 이다.
〔增註〕麻在首曰絰 在腰曰帶 撤亦去也 皆哀痛之至 有所不安而然
[증주]麻(삼)가 머리에 있는 것을 絰이라 하고 허리에 있는 것을 帶라 한다. 撤은 또한 제거하는 것이니 모두 애통함이 지극하여 편안하지 않는 바가 있어 그러한 것이다.
男子無故不入中門 婦人不得輒室男子喪次
남자는 이유 없이 중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며, 부인은 문득 남자 집상하는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다.
〔增註〕居喪內外之辨 當然也
[증주]상을 치르면서 내외를 분별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다.
晉陳壽遭父喪 有疾使婢丸藥 客往見之 鄕黨以為貶議 坐是沈滯 坎坷終身 嫌疑之際 不可不愼
진 나라 진수가 아버지의 상을 당했을 때 병이 있어 여종으로 하여금 환약을 만들게 하였다. 손님이 가서 그것을 보고 마을(鄕黨)이 낮추고 억압할 것을 의논하였기 때문에 자리(관직)가 이에 침체되어 불우하게 몸을 마쳤으니 의심할 만 즈음에는 삼가지 않을 수 없다.
〔集解〕陳壽字承祚巴西人 貶議謂貶抑而論議也 沈滯淹滯也 坎坷不遇也
[집해]진수의 字는 承祚이니 巴西 사람이다. 貶議는 낮추고 억압함을 말한다. 沈滯는 오래도록 모무는 것이다. 坎坷는 불우함이다.
父母之喪不當出 若為喪事及有故 不得已而出 則乘樸馬 布裏鞍轡
부모의 상에는 마땅히 나가지 않으며, 만약 상의 일과 특별한 사정을 위하여 부득이하게 나갈 때는 곧 꾸미지 않은 발을 타고, 포로 안장과 고삐를 감싼다.
〔集解〕樸馬樸素之馬
[집해]樸馬는 꾸미지 않은 말이다.
世俗信浮屠誑誘 凡有喪事 無不供佛飯僧 云為死者 滅罪資福 使生天堂 受諸快樂 不為者必入地獄 剉燒舂磨 受諸苦楚 殊不知 死者形旣朽滅 神亦飄散 雖有剉燒舂磨 且無所施 又況佛法未入中國之前 人固有死而復生者 何故都無一人誤入地獄 見所謂十王者耶 此其無有而不足信也 明矣
세속이 불교를 믿고 속임에 유인되어 무릇 喪事가 있으면 부처에게 바치고, 승려에게 밥 먹이지 않음이 없는데 말하기를 죽은 자를 위해 죄를 없애고 복을 도와 천당에 나게 한다 하고, 여러 쾌락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지옥에 들어가 자르고, 사르고, 방아 찧고, 갈아서 여러 괴로움을 받는다고 하니 자못 알지 못하겠다. 죽은 자는 형상은 이미 썩어 없어지고, 정신은 또한 휘말려 흩어지니 비록 자르고, 사르고, 방아 찧고, 갈아도 또한 베풀 바가 없는 것이다. 또 하물며 佛法이 중국에 들어오기 전에도 사람이 진실로 죽었다가 다시 산자가 있었는데 무슨 이유로 모두 한 사람도 잘못 지옥에 들어가 이른바 十王을 본 자가 없었다. 이는 그 있지 않음을 믿지 못함이 분명하다.
〔集解〕浮屠釋氏也 刀剉火燒碓舂碾磨 極言其苦之甚也
[집해]浮屠는 석씨(불교)이다. 찰로 자르고, 불로 사르고, 방아 찧고, 맷돌로 가는 것은 그 괴로움의 심함을 극언한 것이다.
〔增註〕形形體 神神魂 佛法入中國始於漢明帝 前此之時人死而復生者固有矣 未嘗聞有入地獄見十王者 以未有佛法 惑人本無天堂地獄故也 後世有死而復生云入地獄見十王者 乃佛法所惑耳
[증주]形은 형체이다. 神은 정신과 혼이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거은 한 나라 명제 때 시작되었다. 이 전(불교가 들어오기 전) 때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난자가 진실로 있었지만 일찍이 지옥에 들어가 十王을 본 자는 있지 않았으니 곧 불교가 미혹한 바 일뿐이다.
顔氏家訓曰 吾家巫覡符章 絶於言議 女曹所見 勿為妖妄
「안씨가훈」에 말하기를 우리 집은 무격과 부적, 점, 상징을 말하고 의논하는 것을 끊었음은 너희들이 본 바이니 요망함을 하지 말라.
〔集說〕陳氏曰 顔氏名之推北朝人 作家訓 巫女巫 覡男巫 符章卽書 符拜章之術 皆妖怪妄誕之事也
[집설]진시가 말하기를 顔氏는 名이름이 推이니 北朝人이다. 가훈을 지었다. 巫는 여자 무당이고, 覡은 남자 무당이다. 符章은 곧 글이니 符는 글에 절하는 술책이니 모두 요망하고 괴이하며 허탄함의 일이다.
伊川先生曰 人無父母 生日當倍悲痛 更安忍置酒張樂以為樂 若具慶者 可矣
이천 선생이 말하기를 사람이 부모가 없으면 생일에 마땅히 두 배로 슬프니 다시 어찌 차마 술을 두고, 음악을 연주하는 것으로 즐거움으로 삼겠는가. 만약 具慶( 양친이 모두 생존해 있는)일 때는 괜찮다.
〔集解〕人子生日 思念父母鞠育之劬勞 益增悲痛 又安忍宴樂哉 具慶謂二親俱存也
[집해]사람의 생일에 부모가 기름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더욱 슬프다. 도한 어찌 차마 연회하고 즐길 수 있겠는가? 具慶은 양친이 모두 생존해 있음을 말한다.
呂氏童蒙訓曰 事君如事親 事官長如事兄 與同僚如家人 待群吏如奴僕 愛百姓 如妻子 處官事如家事 然後能盡吾之心 如有毫末不至 皆吾心有所未盡也
여씨의 「동몽훈」에 말하기를 임금 섬기기를 어버이 섬기는 것처럼 하고, 관장(관청 우두머리) 섬기기를 형 섬기는 것처럼 하고, 동료와 함께 하기를 집의 사람들과 같이 하며, 여러 관리(아전?) 대하기를 종과 같이 하며 백성을 사랑하기를 처자와 같이하며, 관청의 일을 처리하기를 집의 일과 같이 한 후에 나의 마음을 다 할 수 있다.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이르지 못함이 있으면 모두 내 마음에 다하지 못하는 바가 있다.
〔集說〕陳氏曰 呂氏名本中字居仁 宋正獻公之曾孫 作童蒙訓 盡吾之心致其誠而已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여씨는 이름이 本中이고 字는 居人이니 송나라 정혼공의 손자이다. 「童蒙訓」을 지었다. 盡吾之心은 그 정성을 다할 뿐이다.
或問簿佐令者也 簿所欲為令 或不從 柰何 伊川先生曰 當以誠意動之 今令與簿不和 只是爭私意
어떤 이가 묻기를 簿는 令을 돕는 이이다. 簿가 令이 하고자 하는 바를 혹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이천 선생이 말하기를 마땅히 성의로써 움직이게 해야 한다. 지금 令과 簿가 화합하지 않는 것은 단지 사사로운 뜻을 다투기 때문일 뿐이다.
〔集解〕簿者縣之佐 令者縣之長 誠意動之者 盡誠心以感之也
[집해]簿는 縣의 보조하는 이이다. 令은 현의 우두머리이다. 誠意動之는 정성스러운 마음을 다하는 것으로써 그를 감동시킴이다.
令是邑之長 若能以事父兄之道事之 過則歸己 善則惟恐不歸於令 積此誠意 豈有不動得人
令은 읍의 우두머리이다. 만약 부형을 섬기는 도로써 그를 섬길 수 있고, 허물이 있으면 곧 자기에게로 돌리고 선이 곧 令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는 이 정성스러운 뜻이 쌓이면 어찌 감동하여 사람을 얻지 못함이 있겠는가?
〔集解〕推事親事兄之道以事令 又能引過於己 推功歸之 積誠之久 彼豈有不感動者乎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섬기는 도를 미루어 令을 섬기고, 또 허물을 자기에게로 이끌고, 미루어 공을 돌리는 성성을 쌓음이 오래면 그가 어찌 감동하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集成〕葉氏曰 過則歸己 善則歸令 非曰姑為此以悅人 蓋事長之道 當如是也
[집성]섭씨가 말하기를 허물은 곧 자기에게로 돌리고, 선은 곧 令에게 돌린다는 것은 우선 이로써 사람을 기쁘게 함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개 어른을섬기는 도가 마땅히 이 같아야 하는 것이다.
明道先生曰 一命之士 苟存心於愛物 於人必有所濟
명도선생이 말하기를 한 번 命받은(낮은 직급) 선비가 만약 마음이 사물을 사랑함에 둔다면 다른 사람에게 반드시 구제받는 바가 있다.
〔集解〕熊氏曰 周禮一命受職 卽今之第九品也 一命雖小 誠能以愛物為心 則惠利亦有以及人矣
[집해]웅씨가 말하기를 「周禮」 한 번 명하여 관직을 받는다 하니 곧 지금의 제 九品이다. 一命은 비록 적은 것이나 정성으로 사물을 사랑함으로써 마음을 삼으면 은혜와 이익이 또한 다른 사람에게 미칠 수 있다.
〔增註〕一命猶然 況居大位者乎
劉安禮問臨民 明道先生曰 使民各得輸其情 問御吏 曰正己以格物
유안례가 백성에게 임함을 물으니 병도 선생이 말하기를 백성으로 하여금 각기 그 실정을 다하여야 한다 하고, 아전(吏) 다스림을 물으니 말하기를 자기를 바로 하는 것으로써 사물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集說〕陳氏曰 安禮字立之明道弟子 輸猶盡也 平易近民 使下情各得上達 則所以處之者 自無不當矣 御治也 格正也 范氏曰 未有己不正而能正人者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安禮는 字가 立之이니 明道의 弟子이다. 輸는 盡(다함, 지극히 함)와 같다. 배성을 쉽고 가까이하여 아랫사람의 실정이 각기 윗사람에게 도달하게하면 곧 대처하는 것이 스스로 마땅하지 않음이 없다. 御는 다스림이다. 格은 바로잡음이다. 범씨가 말하기를 자기가 바르지 않고서 다른 사람을 바르게 할 수 있는 이는 있지 않다.
伊川先生曰 居是邦 不非其大夫 此理最好
이천 선생이 말하기를 이 나라에 살면서 그 대부의 허물을 의논하지 않는 이 다스림이 가장 좋다.
〔集說〕朱氏曰 下訕上則無忠敬之心 不非之者謂不議其過惡也
[집설]주씨가 말하기를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비방하면 곧 충성과 공경의 마음이 없는 것이다. 不非之는 그 허물과 악을 논의하지 않는 것이다.
童蒙訓曰 當官之法 唯有三事 曰淸 曰愼 曰勤 知此三者 則知所以持身矣
「童蒙訓」에 말하기를 관직을 담당하는 법은 오직 세 가지 일이 있으니 淸(맑음), 愼(삼감), 勤(부지런 함)이니 이 세 가지를 말면 곧 몸을 지니는 이유를 알 것이다.
〔集解〕淸謂淸廉不汚 愼謂謹守禮法 勤謂勤於職業 能是三者 則能修己而可以治人矣
[집해]淸은 청렴하여 더럽지 않음이다. 愼은 직업에 부지런함이니 이 세 가지를 잘할 수 있으면 곧 자기를 닦아 다른 사름을 다스릴 수 있다.
當官者凡異色人 皆不宜與之相接 巫祝尼媼襖之類 尤宜踈絶 要以淸心省事為本
관직을 담당한자는 무릇 업무를 힘쓰지 않는 자는 모두 마땅히 더불어 서로 접하지 않는다. 무축과 여승, 매파 따위와는 더욱 멀리하고 끊는 것이 마땅하고, 마땅히 맑은 마음으로서 일을 살펴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集說〕陳氏曰 異色人謂不務常業之人 巫祝皆事鬼神者 尼女僧 媼牙婆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異色人은 떳떳한 업에 힘쓰지 않는 사람이다. 巫祝은 모두 귀신을 섬기는 자이다. 尼 는 여승이이고, 媼牙는 할머니이다.
〔增註〕此輩一接之 內則伺意以納賄 外則誑人以行私 善敗事害政 故當一切禁絶 淸心謂不以物欲累心 省事謂不作無益之事
[증주]이들을 한 번 접하면 안으로는 곧 뜻을 엿보아 뇌물을 들이고, 밖으로는 사람을 속이는 것으로서 사사로움을 행하여 잘 일을 무너뜨리고 정사를 해친다. 그러므로 마땅히 모두 금지하고 끊어야 한다. 淸心은 物欲 때문에 마음을 매이지 않음이다. 省事는 이익이 없는 일을 하지 않음이다.
後生少年乍到官守 多為猾吏所餌 不自省察 所得毫末 而一任之間 不復敢擧動 大抵作官嗜利 所得甚少而吏人所盜不貲矣 以此被重譴 良可惜也
후생소년이 잠간 관직에 이르면 많이 교활한 아전의 낚시 미끼가 됨을 스스로살피지 못하여, 얻는 바는 터럭 끝이되 한번 맡기는 사이에 다시 감히 거동하지 못한다. 대저 관리가 되어 이익을 즐기면 얻는 바는 매우 적고 아전들이 훔치는 바를 헤아리지 못한다, 이 때문에 무거운 죄를 입게 되니 참으로 애석해 할만하다.
〔集說〕陳氏曰 猾狡猾 餌釣餌 不敢擧動為吏所制也 不貲不可量也 譴罪責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猾은 교활함이다. 餌는 낚시 먹이 이다. 不敢擧動은 아전에게 제어 당하는 것이다. 不貲는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譴은 죄를 책임지우는 것이다.
當官者先以暴怒為戒 事有不可 當詳處之 必無不中 若先暴怒 只能自害 豈能害人
관직을 맡은 자는 먼저 사납게 노함을 경계삼아야 한다. 일이 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면 마땅히 자세히 대처하여 반드시 알맞지 않음이 없게 해야 한다. 만약 먼저 사납게 노하는 것은 다만 자신을 해칠 수 있을 뿐으로 어찌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겠는가?
〔增註〕暴怒怒之暴也 中中理也
[증주]暴怒는 노함을 사납게 하는 것이다. 中은 이치에 알맞음이다.
當官處事 但務著實 如塗摖文字 追改日月 重易押字 萬一敗露 得罪反重 亦非所以養誠心事君不欺之道也
관직을 담당하여 일을 처리함은 단지 거짓으로 하지 않음을 힘쓰고, 공문서의 글자를 뭉개거나 긁어내고, 뒤에 日, 月을 고치고, 서명을 거듭 고치다 만일 잘못되어 드러나면 죄를 얻음이 도리어 무거워진다. 또한 성실한 마음으로 임금을 섬기고, 속이지 않음의 도를 기르는 까닭이 아니다.
〔集解〕著實謂不作偽 摖挑取也 塗摖文字謂塗挑舊字也 追改日月謂去舊判而換之也 重易押字謂去舊署而改之也 非惟得罪 實且欺心 豈事上之道哉
[집해]著實은 거짓을 짓지 않음을 말한다. 摖는 가리고 취함이다. 塗摖文字는 옛 글자를 덧칠하고 가리는 것이다. 追改日月은 옛 판정을 없애고, 그것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重易押字는 옛 서명을 없애고 그것을 고치는 것을 말한다. 비단 죄를 얻을 뿐만 아니라 실제 또한 마음을 속임이니 어찌 윗사람을 섬기는 도이겠는가!
王吉上䟽曰 夫婦人倫大網 夭壽之萌也 世俗嫁娶太蚤 未知為人父母之道而有子 是以敎化不明 而民多夭
왕길이 상소하여 말하기를 부부는 인륜의 큰 벼리이니 요절하고 장수하는 싹이다. 세속에서 시집가고, 장가는 것이 크게 빨라서 다른 사람의 부모되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자식을 둔다. 이 때문에 교화가 분명하지 않아 백성들이 많이 요절한다.
〔集說〕陳氏曰 吉字子陽琅邪人 夭壽命之短長也 萌芽也 古者二十而嫁 三十而娶 後世反是嫁娶太蚤 故民多夭 未知為人父母之道而有子 故敎化不明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吉은 字가 陽이고, 琅邪사람이다. 夭壽는 목숨의 짧고 김이다. 萌은 싹이다. 옛 날에는 20세로 시집가고, 30세로 장가든다. 후세에 이와 반대로 시집감과 장가듦이 지나치게 빠르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많이 요절하고, 다른 사람의 부모가 되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자식을 두기 때문에 교화가 밝지 못하다.
文中子曰 婚娶而論財 夷虜之道也 君子不入其鄕 古者男女之族 各擇德焉 不以財為禮
문중자가 말하기를 예를 갖추어 부부가 되면서 재물을 논하는 것은 오랑캐의 방도이다. 군자는 그 마을에 들어가지 않는다. 옛날에는 남, 여의 친족들이 각기 덕을 가리고, 재물로써 예를 삼지 않았다.
〔集說〕陳氏曰 文中子姓王名通字仲淹 隋之大儒也 門人私諡曰文中子 南方曰夷北方曰虜 不入其鄕不與之共處也 德謂男女之性行 財謂男之聘財 女之資裝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文中子는 姓이 王이고, 이름은 通이며, 字는 仲淹이니 隋나라의 큰 유학자이다. 門人들이 사사로이 시호하여 文中子라 했다. 남쪽을 夷라 하고, 북쪽을 虜라 한다. 不入其鄕은 함께 자리하는 것이다. 德 은 남, 여의 성품과 행실을 말한다. 財는 남자의 맞이하는 재물과 여자의 혼수를 말한다.
早婚少聘 敎人以偸 妾媵無數 敎人以亂 且貴賤有等 一夫一婦 庶人之職也
조혼은 어려서 (아내를)맞이하고, 사람 가르치기를 경박하게 하고, 잉첩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은 사람 가르치기를 음란함으로써 한다. 또한 귀함과 천함에 차등이 있다. 한 지아비와 한 지어미는 庶人의 직분이다.
〔集說〕陳氏曰 偸薄也 媵從嫁者 亂眞氏謂 內或陷子弟於惡 外或生僮僕之變 是也 等謂妾媵之等數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偸는 薄(가볍다)이다. 媵은 따라 시집가는 것이다. 亂는 진시가 말하기를 안으로는 혹 자제가 악에 빠지고, 밖으로는 혹 종의 변(반란)을 낸다는 것이 이것이다. 等은 잉첩의 등급과 수이다.
司馬溫公曰 凡議婚姻 當先察其婿與婦之性行及家法何如 勿苟慕其富貴
사마온공이 말하기를 무릇 혼인을 의논함에는 마땅히 먼저 그 사위와 부인의 성품과 행동과 가법이 어떠한지를 보아야하고, 단지 그 부귀를 사모해서는 안된다.
〔增註〕婦家曰婚 婿家曰姻 苟但也
婦家(며느리 집)를 婚이라 하고, 婿家를 姻이라 한다. 苟는 但(단지)이다
〔集解〕婚姻之道 不但擇婿婦之德 尤須審其父祖以來之家法也
[집해]혼인의 도는 단지 사위와 며느리의 덕을 택할 뿐만 아니라 더욱 반드시 그 부조 이래의 家法을 살펴야 한다.
婿苟賢矣 今雖貧賤 安知異時不富貴乎 苟為不肖今雖富盛 安知異時不貧賤乎
사위가 진실로 어질다면 지금 비록 가난하고 천하여도 어찌 다른 때 부귀하지 않을 것을 알겠는가? 진실로 불초하지만 지금 비록 부유함이 성대할지라도 다른 때 빈궁하고 천하지 않을 것을 알겠는가?
〔增註〕此言婿之性行當察也 苟誠也
[증주]이는 사위의 성풍과 행실을 마땅히 살펴야 함을 말한 것이다. 苟는 진실로 이다.
婦者家之所由盛衰也 苟慕一時之富貴而娶之 彼挾其富貴 鮮有不輕其夫 而傲其舅姑 養成驕妬之性 異日為患 庸有極乎
며느리는 집의 번성하고 쇠퇴함을 말미암는 바이니 진실로 한 때의 부귀를 사모하여 장가들면 그가 그 부귀를 끼고 그 지아비를 가벼이 여기고, 그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에게 오만하게 하지 않는 이가 적어 교만하고 질투하는 성질을 기르고 이루어 다른 날 근심이 됨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增註〕此言婦之性行當察也 婦賢則家道盛 不賢則家道衰 故曰所由盛衰
[증주]이는 며느리의 성품과 행실을 마땅히 살펴야 함을 말한 것이다. 며느리가 어질면 家道가 이루어지고 어질지 않으면 가도가 쇠퇴한다. 그러므로 이루고 쇠퇴함이 말미암는 바라 말한 것이다.
借使因婦財以致富 依婦勢以取貴 苟有丈夫之志氣者 能無愧乎
가령 부인의 재물로 인하여 부유함을 이루고, 부인의 형세에 의지함으로써 귀함을 취할지라도 만일 뜻과 대장부의 지조와 기개가 있는 자이면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겠는가?
〔集說〕陳氏曰 富貴有命 不可必得 假使因依於婦而得之 豈丈夫之所為乎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부귀는 명이 있으니 반드시 얻을 수 없다. 가령 며느리에게 의지하여 얻는다면 어찌 장부의 할 바 이겠는가?
安定胡先生曰 嫁女必須勝吾家者 勝吾家則女之事人 必欽必戒 娶婦必須不若吾家者 不若吾家則婦之事舅姑 必執婦道
안정 호선생이 말하기를 딸을 시집보냄은 반드시 우리 집보다 나은 자여야 하고, 우리 집보다 나으면 곧 여자의 사람을 섬김이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삼가할 것이다. 부인에게 장가듦에는 반드시 내 집만 같지 않아야 한다. 내 집만 같지 않으면 반드시 부인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섬김이 반드시 부인의 도를 잡을 것이다.
〔集說〕陳氏曰 安定地名先生名瑗字翼之泰州人 欽欽敬 戒戒謹 吳氏曰 女婦之性大率畏慕富盛而厭薄貧賤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安定은 地名이다. 先生은 이름이 瑗이고, 字는 翼之이니 泰州 사람이다. 欽응 공경함이다. 戒는 경계하고 삼감이다. 오씨가 말하기를 여자와 부인의 성품은 대개 부귀를 두려워하고 사모하고, 빈천을 싫어하고 가볍게 여긴다.
或問孀婦於理 似不可取 如何 伊川先生曰 然凡取以配身也 若取失節者 以配身 是己失節也
어떤 사람이 묻기를 도리에 남편 없이 혼자 사는 여자를 취할 수 없을 듯 한데 어떠합니까? 이천 선생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무릇 장가든다는 것은 자신을 짝하는 것이다. 만일 절개를 잃은 자를 취하여 자신의 짝으로써 한다면 이는 자기가 절개를 잃는 것이다.
〔集解〕娶婦共承宗廟以傳嗣續 若娶失節者 為配則與己之失節 同矣
[집해]부인에게 장가든다는 것은 함께 종묘를 받드는 것으로써 후사를 이어가는데 만약 절개를 잃은 자에게 장가들어 짝으로 삼는다면 곧 자기의 절개를 잃는 것과 같은 것이다.
又問或有孤孀貧窮無託者 可再嫁否 曰只是後世怕寒餓死 故有是說 然餓死事極小 失節事極大
또 묻기를 혹 외로운 과부가 빈궁하고 의탁할 자 없어 두 번 시집가는 것은 가능합니까? 불가능합니까? 말하기를 다만 이는 후세에 추위와 굶어 죽는 것을 두려워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굶어 죽는 일은 지극히 적고, 절개를 잃는 일은 지극히 크다.
〔集解〕餓死極小謂人誰不死 欲求守節有甚於求生也 失節極大謂失身再嫁 中心羞惡無以自立於天地之間 雖生何益哉
[집해]餓死極小는 사람은 누구나 죽지 않는가! 절개 지키기를 구하고자 하는 것은 삶을 구하는 것보다 심함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失節極大는 자신을 잃고 두 번 시집가면 마음속의 부끄러움이 하늘과 땅 사이에 스스로 서지 못하니 비록 살더라도 무는 이익이 있겠는가?
顔氏家訓曰 婦主中饋 唯事酒食衣服之禮耳 國不可使預政 家不可使幹蠱 如有聰明才智 識達古今 正當輔佐君子 勸其不足 必無牝鷄晨鳴 以致禍也
안씨 가훈에 말하기를 며느리는 음식 올리는 것을 주관하며, 오직 술과 밥, 의복 예를 일삼을 뿐이다. 나라는 정사에 참여시키지 말아야 하며, 집에서는 일을 주간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총명과 재중, 지혜가 있어 고금을 알고 통달하면 바로 마땅히 군자(남편)를 보좌하여 그 부족함을 권할 뿐이니 반드시 암탉이 새벽에 는 것으로서 재앙이 이름이 없게 해야 한다.
〔增註〕進食曰饋 居中饋食婦人主之 幹猶主也 蠱事也 牝鷄晨鳴 婦人預政 幹蠱之喩也 婦人預政 幹蠱則有敗亡之禍矣
[증주]음식을 올리는 것을 饋라 한다. 머물면서 음식을 먹이는 것은 부인이 주관한다. 幹은 主(주장하다, 주관하다)와 같다. 蠱는 일이다. 牝鷄晨鳴과 婦人預政은 일을 주관함을 비유한 것이다. 일을 주관하면 곧 패망의 재앙이 있다.
江東婦女略無交遊 其婚姻之家 或十數年間未相識者 唯以信命贈遺 致慇懃焉
강동의 부녀는 외부 사람을 끊고 함께 하지 않아, 그 혼인한 집은 혹 10여년간 서로 알지 못하고 오직 서신과 선물로서 은근함을 다한다.
〔增註〕略無交遊絶不與外人 往還也 信命以言 贈遺以物 皆所以通慇懃之意
[증주]略無交遊는 외부 사람을 끊고 함께 하지 않음이다. 往은 돌아감이다. 信命은 말로서 함이고, 贈遺는 물건으로써 함이니 모두 은근함의 뜻을 통함이다.
鄴下風俗 專以婦持門戶 爭訟曲直 造請逢迎 代子求官 為夫訴屈 此乃恒代遺風乎
鄴下의 풍속은 오로지 부인이 집을 지키고, 옳고, 그름을 다투고 소송하는 일, 밖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일, 자식을 대신하여 관직을 구하는 일, 지아비를 위하여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을 하니 이는 곧 恒과 代지방의 유풍이다.
〔集說〕陳氏曰 鄴下古之相州 造請謁人於外 逢迎謂延客於家 恒代燕趙之間地名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鄴下는 옛 날의 相州이다. 造淸은 밖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逢迎은 집에서 손님을 맞는 것이다. 恒代는 燕과 趙의 사이에 있는 땅이름이다.
〔集成〕陳氏曰 千里不同風 其氣有剛柔 百里不同俗 其習有善惡
[집성]진씨가 말하기를 천리가 풍속을 같이하지 않고, 그 기질에 剛과 柔가 있고, 백리로 풍속을 같이 하지 않으니 습속에 선악이 있다.
夫有人民而後有夫婦 有夫婦而後有父子 有父子而後有兄弟一家之親 此三者而已矣 自玆以往至于九族 皆本於三親焉 故於人倫為重也 不可不篤
대저 인민이 있은 후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는 후에 부자가 있고, 부자가 있은 후 현제와 一家의 친척이 있으니 이 세 가지일 뿐이다. 이로부터 九族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三親에 근본 하다. 그러므로 인륜에서 중한 것이니 돈독히 하지 않을 수 없다.
〔集說〕陳氏曰 三親夫婦父子兄弟也 九族高曾祖父己身子孫曾玄九者及旁親也 篤厚也 三親於人倫為重 不厚則無所不薄矣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三親은 부부, 부자, 형제이다. 九族은 고조, 증조와 부, 자기 지산의 자, 손, 현손의 아홉 가지와 방계의 친척이다. 篤은 두터움이다. 三親은 인륜에서 중하므로 돈독하지 않으면 곧 가볍게 여기지 않음이 없다.(정이 없지 않는 바가 없다.)
兄弟者分形連氣之人也 方其幼也 父母左提右挈前襟後裾 食則同案 衣則傳服 學則連業 遊則共方 雖有悖亂之人 不能不相愛也
형제는 形은 나누었지만 기는 이어있는 사람이다. 그 어렸을 때는 부모가 왼 쪽으로 (형을)끌고, 오른 쪽으로는 (동생을)끌며, 앞으로는 (형이) 옷깃을 끌고 뒤로는 (동생이) 옷의 뒷자락을 당기며 밥은 곧 같은 상에서 먹고, 옷은 곧 돌려 입으며 배움은 업을 이으며, 놀면 곧 방향을 같이한다. 비록 어긋나고, 어지럽히는 사람일지라도 서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集解〕兄弟同出於父母 故形分而氣同
[집해]형제는 같이 부모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形은 나무어지나 氣는 같은 것이다.
及其壯也 各妻其妻 各子其子 雖有篤厚之人 不能不少衰也
자람에 이르러서는 각기 그 아내를 아내로 하고, 그 자식을 자식으로 하여 비록 돈독함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조금 쇠퇴하지 않을 수 없다.
〔集說〕吳氏曰 及其有室家也 則各妻其妻 有嗣息也 則各子其子 物我相形 偏私漸起 雖有純篤謹厚之人 而親愛之情 不能不衰替也
[집설]오씨가 말하기를 그 가정이 있음에 이르러서는 곧 각기 그 아내를 아내로 하여 이을 자식을 두면 곧 각기 그 자식을 자식으로 하여 남과 내가 서로 형상하여 편벽되고 사사로움이 점점 일어나 비록 순수하고 돈독하며, 삼가고 도타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친척을 사랑하는 정이 쇠퇴하여 바꾸지 않을 수 없다.
娣姒之比兄弟 則䟽薄矣 今使䟽薄之人 而節量親厚之恩 猶方底而圓蓋 必不合矣 唯友悌深至 不為傍人之所移者 免夫
동서의 형제에 비하면 곧 통함이 엷으니 지금 통함이 엷은 사람으로 하여금 친하고 도타움의 은혜를 절제하고 헤아리게 하는 것은 오히려 네모난 바닥에 둥근 뚜껑을 하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합하지 못한다. 오직 우애와 공경함이 깊고 지극하여 형제의 처가 옮기는 바를 하지 않으면 (소원해지는 것을)면할 수 있다.
〔集說〕吳氏曰 娣姒謂兄弟之妻 長婦曰姒 幼婦曰娣 節量謂節制量度也 傍人則娣姒也
[집설]오씨가 말하기를 娣姒는 형제의 처를 말한다. 長婦를 姒라 하고, 幼婦를 娣라 한다. 節量은 절제하고 한도를 헤아림을 말한다. 傍人은 곧 娣姒이다.
柳開仲塗曰 皇考治家 孝且嚴 朝望弟婦等 拜堂下畢 卽上手低面 聽我皇考訓誡 曰人家兄弟 無不義者 盡因娶婦入門 異姓相聚 爭長競短 漸漬日聞 偏愛私藏 以致背佩戾 分門割戶 患若賊讎 皆汝婦人所作 男子剛腸者幾人 能不為婦人言所惑 吾見多矣 若等寧有是耶 退則惴惴 不敢出一語為不孝事 開輩抵此賴之 得全其家云
유개중도가 말하기를 동아가신 아버지가 집을 다스리기를 효도하고, 또한 엄격하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는 동생과 며느리들이 당(마루) 아래서 절하기를 마치면 곧 손을 위로하고 얼굴을 낮게 하여 우리 돌아가신 아버지의 훈계를 들었다. 말하기를 인가의 형제는 의가 아님이 없다. 모두 장가들어 며느리가 가문에 들어옴으로 인하여 다른 성이 서로 모여 장점을 다투며, 단점을 다투어 날로 들음에 점점 무젖어 편벽되이 사랑하고 사사로이 쌓는 바가 있어 등지고 어그러짐에 이르러 가문을 나누고, 집을 갈라 근심하기를 도적과 원수와 같이하는 것은 모두 너희 며느리들이 지은 바이다. 남자가 강직한 의지를 가진 자가 몇 사람이 있어 부인의 말에 미혹한 바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미혹되는 경우를)많이 보았다. 너희들이 어찌 이것이 있겠는가? 하였다. 물러나면 곧 두려워하여 감히 효하지 않은 일을 한 마디 말도 내지 않으니 우리 집은 이에 의지하여 그 집안을 논전할 수 있었다.
〔集說〕陳氏曰 開字仲塗大明人 父沒稱皇考 朝謂朔朝 上手擧手也 漸漬謂讒言如水之浸潤不驟也 偏愛各有所厚也 私藏各有所蓄也 若汝也 惴惴恐懼之貌 抵此猶言至今 云語辭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開는 字가 中塗이니 大明 사람이다. 돌아가진 아버지를 皇考라 말한다. 朝는 초하루 아침을 말한다. 上手는 손을 드는 것이다. 漸漬는 참소하는 말이 마치 물이 무젖어서 치닺지 않는 것이다. 偏愛는 각기 돈독히 하는 바가 있음이다. 私藏은 각기 쌓는 바가 있음이다. 若은 너이다. 惴惴는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抵此는 지금이라는 말과 같다. 云은 어사이다.
伊川先生曰 今人多不知兄弟之愛 且如閭閻小人得一食 必先以食父母 夫何故 以父母之口 重於己之口也 得一衣必先以衣父母 夫何故 以父母之體 重於己之體也 至於犬馬亦然 待父母之犬馬 必異乎己之犬馬也 獨愛父母之子 却輕於己之子 甚者至若仇敵 擧世皆如此 惑之甚矣
이천 선생이 말하기를 지금 사람들은 많이 형제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 또한 여염의 소인들이 한번 한 번 먹음을 얻으면 반드시 먼저 부모에게 먹이니 대저 무엇 때문인가? 부모의 입으로써 자기의 입보다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의 옷을 얻으면 반드시 먼저 부모에게 입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부모의 몸으로써 자기의 몸보다 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개와 말에 이르러서도 또한 그러하여 반드시 자기의 개와 말을 다르게 한다. 유독 부모의 자식을 사랑함이 자기의 자식보다 가벼이 여기고, 심한 자는 원수 같음에 이르는 것은 세상을 들어 모두 이와 같으니 미혹함이 심한 것이다.
〔增註〕夫愛父母之口體犬馬 重於己之口體犬馬者 天理之明也 愛父母之子 輕於己之子者 人欲之蔽也 推其所明而達之於其所蔽 則盡道矣
[증주]대저 부모의 입과 몸, 개와 말을 사랑하는 것을 자기의 입과 몸, 개와 말보다 사랑하는 것은 천리의 맑음이다. 부모의 자식을 사랑함이 자기의 자식을 사람함보다 가볍게 여기는 것은 인욕의 가리움이다. 그 밝은 바로 미루어 그 가리운 바에 도달하는 것은 곧 그 도를 다하는 것이다.
橫渠先生曰 斯干詩言 兄及弟矣 式相好矣 無相猶矣 言兄弟宜相好 不要相學 猶似也 人情大抵 患在施之不見報則輟 故恩不能終 不要相學 己施之而已
횡거 선생이 말하기를 斯干의 시에 말하기를 형과 동생은 서로 좋아하되 서로 같아져서는 안된다. 하니 형제는 마땅히 서로 좋아할 것이요 서로 배워 같아질 필요는 없다. 인정은 대개 베품에 대해 보답 받지 못하면 곧 그침을 근심한다. 그러므로 은혜를 끝까지 하지 못하니 서로 배움을 요구하지 말고 자기가 베풀 뿐이다.
〔集解〕斯干小雅篇名也 斯此也 干水涯也 好愛也和也 輟止也 朱子曰 此築室旣成 宴飮以落之 因歌其事也 不要相學言不要相學其不好處也 如能兄友其弟 弟却不恭其兄 兄豈可學弟之不恭而遂忘其友 但當盡其友而已 如弟能恭其兄 兄却不友其弟 弟豈可學兄之不友而遂忘其恭 但當盡其恭而已
[집해]斯干은 『詩經』 小雅의 편명이다. 斯는 이것이다. 干은 물가이다. 好는 사랑함이고, 화함이다. 輟은 그침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이는 집짓기를 이미 이루고 잔치하는 것으로써 그것을 낙성함으로 인하여 그 일을 노래한 것이다. 不要相學은 그 좋아하지 않는 곳을 서로 배울 것은 필요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만일 형은 그 동생을 사랑하는데 동생이 그 형을 공경하지 않으면 형이 어찌 동생의 공손하지 않음을 배워서 마침내 그 사랑을 잊을 수 있겠는가? 다만 마땅히 그 우애를 다할 뿐이다. 동생이 그 형을 공경하는데 형이 그 동생을 사랑하지 않으면 동생이 어찌 형의 우애하지 않음으로 마침내 그 공경함을 잊을 수 있겠는가? 다만 마땅히 그 공경을 다할 뿐이다.
〔增註〕式語辭
[집주]式은 어사이다.
伊川先生曰 近世淺薄以相歡狎 為相與以無圭角 為相歡愛 如此者安能久 若要久 須是恭敬 君臣朋友皆當以敬為主也
이천 선생이 말하기를 근세에 천박함으로써 서로 기뻐하고 친압하고, 서로 더불어 모를 제거하고 둥글게 함이 없이 서로 기뻐하고 사랑하니 이 같은 자가 어찌 오래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오래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에 공경해야 하니 군신과 붕우가 모두 마땅히 공경으로써 주장해야 한다.
〔增註〕歡狎謂歡好而褻狎也 無圭角謂去方而為圓也
[증주]歡狎은 기뻐하고 좋아하여 친압함을 말한다. 無圭角은 모서리를 없애고 둥글게 함이다.
橫渠先生曰 今之朋友擇其善柔 以相與拍肩執袂以為氣合 一言不合怒氣相加 朋友之際 欲其相下不倦 故於朋友之間 主其敬者 日相親與 得效最速
횡거선생이 말하기를 지금의 벗은 그 선하고 아첨하는 이를 선택하고, 서로 더불어 어깨를 부딪치고 옷소매를 잡는 것으로써 뜻과 기가 합한다고 여기고, 한 마디 말이 합하지 않으면 성난 기운을 서로 더한다. 벗 사이에는 서로 사양하고자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붕우의 사이에 그 공경을 주장하는 자가 날로 서로 친하여 효과를 얻음이 가장 빠르다.
〔增註〕善柔謂善為柔媚 氣合謂意氣相合 相下謂彼此相讓 效卽忠告善道之益也
[증주]善柔는 아첨을 잘함을 말한다. 氣合은 뜻과 기운이 서로 합함을 말한다. 相下는 그것과 이것이 서로 사양함을 말한다. 效는 선도의 더함에 나아갈 것을 충고함이다.
童蒙訓曰 同僚之契 交承之分 有兄弟之義 至其子孫 亦世講之 前輩專以此為務 今人知之者 蓋少矣 又如舊擧將 及嘗為舊任按察官者 後己官雖在上 前輩皆辭避坐下坐 風俗如此 安得不厚乎
「童蒙訓」에 말하기를 동료의 합함과 新舊의 교대의 사이는 현제의 의가 있고, 그 자손에 이르러서는 또한 대대로 강구해야 하며 선배는 오로지 이로써 힘써야 한다. 지금 사람들은 그것을 아는 자가 적다. 또한 옛날에 추천한 擧主 와 舊任의 안찰관을 맡은 자가 후에 자기의 관직이 비록 위에 있을 지라도 선배는 모두 사양하고 피하여 아래 자리에 앉는다. 풍속이 이 같으니 어찌 돈독하지 않겠는가?
〔集解〕契合也 交承新舊交代也 分際也 擧將擧主也
[집해]契는 합함이다. 交承은 新舊의 교대함이다. 分은 즈음이다. 擧將은 擧主이다.
范文正公為參知政事時 告諸子曰 吾貧時與汝母養吾親 汝母躬執爨 而吾親甘旨 未嘗充也 今而得厚祿 欲以養親 親不在矣 汝母亦已早世 吾所最恨者 忍令若曹享富貴之樂也
범문정공이 참지정사가 되었을 때 여러 아들에게 알려 말하기를 내가 가난할 때 너희들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를 봉양하여 너희 어머니가 직접 불을 지폈으되 내 어머니가 맛있는 음식이 일찍이 충분하지 않았다. 지금 많은 녹을 받아 어머니를 봉양하고자 하나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다. 너희들 어머니 또한 일찍 세상을 떠나 내가 가장 한탄하는 바이니 차마 너희들로 하여금 부귀의 즐거움을 누리게 할 수 있겠는가?
〔集說〕陳氏曰 公名仲淹字希文蘇州吳縣人 公二歲而孤 親謂母也 爨炊爨也 甘旨美味也 早世早沒也 若曹汝輩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公의 이름은 仲淹이고, 字는 希文이니 蘇州 吳縣 사람이다. 공이 두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親은 어머니를 말한다. 爨은 불 때 밥 짓는 것이다. 甘旨는 좋은 맛이다. 早世는 일찍 죽는 것이다. 若曹는 너희들이다.
吾吳中宗族甚衆 於吾固有親踈 然吾祖宗視之 則均是子孫 固無親踈也 苟祖宗之意 無親踈則饑寒者 吾安得不恤也 自祖宗來 積德百餘年 而始發於吾 得至大官 若獨享富貴而不恤宗 異日何以見祖宗於地下 今何顔入家廟乎 於是恩例俸賜 常均於族人 幷置義田宅云
내가 오현 안에 사는 종족이 매우 많고, 나에게 진실로 친하고 소원함이 있다. 그러나 우리 祖宗으로 그것을 보면 곧 이 자손을 고르게 하니 진실로 친하고 소원함이 없는 것이다. 만약 조종의 뜻이 친하고 소원함이 없다면 곧 주림과 추위에 떠는 자를 내가 어찌 구휼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조종으로부터 이래로 덕을 쌓은 지 100여년이되 나에게서 비로소 펴져서 大官(大臣)에 이를 수 있었는데 만약 홀로 부귀를 누리고 종족을 구휼하지 않는 다면 다른 날 어찌 지하에서 조종을 뵙고, 지금은 어찌 사당에 얼굴을 들일 수 있겠는가? 이에 은례(은혜로운 사례)와 봉급과 내림을 친족 사람들에게 늘 고르게 내리고 아울러 義田과 집을 둘 것이다. 했다.
〔增註〕恩例異數也 俸賜常典也
[증주]恩例는 다른 수이다. 俸賜는 떳떳한 법이다.
〔集說〕范氏義莊 人日食米一升 歲衣縑一匹 嫁娶喪葬 皆有給
[집설] 범씨의 義莊늠 사람이 매일 쌀 한 되를 먹고, 1년에 비단 1필을 입는다. 시집가고, 장가들고, 초상과 장례에 모두 주는 것이 있다.
司馬溫公曰 凡為家長必謹守禮法 以御群子弟及家衆 分之以職 援之以事而責其成功 制財用之節 量入以為出 稱家之有無 以給上下之衣食及吉凶之費 皆有品節而莫不均一 裁省冗費 禁止奢華 常須稍存嬴餘 以備不虞
사마온공이 말하기를 무릇 가장이 되어 반드시 예법을 삼가고 지킴으로서 여러 자제와 종을 다스리고, 그들을 직분으로서 나누고 일을 주어 그 공을 이룸을 책임지게 한다. 재물을 쓰는 절차를 만들어 들어오는 것을 헤아려 나가는 것을 삼고 집의 있고 없음을 저울질 하는 것으로써 상, 하의 의식과 길, 흉의 비용을 주니 모두 마땅함이 있게 하여 고르게 하지 않음이 없었다. 쓸데없는 비용을 재량하여 살피고 사치와 화려함을 금지하여 항상 반드시 조금 남음이 있게 하여 헤아리지 못 한 일에 대비해야 한다.
〔集說〕陳氏曰 禮先王之禮 法國家之法 御統也 家衆婢僕輩也 職如主庖廩掌田園之類 事如治産業給征役之類 量入以出入多則出多 入少則出少也 稱家以給 有則豊 無則儉也 吉凶謂冠婚喪祭之事 品節言其當 均一言其平 冗雜也 嬴剩也 備防也 不虞謂不可虞度之事 如水火盜賊之類 此皆制財用之節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禮는 선왕의 예이다. 法은 국가의 법이다. 御는 통솔함이다. 家衆은 종들이다. 職은 부엌과 창고를 주관하고, 밭과 정원을 담당하는 따위다. 일은 산업을 다스리고, 조세와 부역을 나가는 따위이다. 量入以出은 들어옴이 많으면 곧 냄을 많이 하고 들어옴이 적으면 냄을 적게 하는 것이다. 稱家以給은 있으면 곧 풍성하게 하고 없으면 곧 검소하게 하는 것이다. 吉凶은 관, 혼, 상, 제의 일을 말한다. 品節늠 그 마땅함을 말한다. 均一은 그 고르게 함을 말한다. 冗은 잡됨이다. 嬴은 남음이다. 備는 막음이다. 不虞는 헤아릴 수 없는 일이니 홍수와 화재, 도적과 같은 종류이니 미는 모두 재물을 씀의 절검함을 제재함이다.
右廣明倫
이상은 明倫을 넓힌 것이다.
董仲舒曰 仁人者正其誼 不謀其利 明其道不計其功
동중서가 말하기를 仁人은 그 도리를 바로하고, 그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며, 그 도리를 밝히되 그 공을 헤아리지 않는다.
〔集解〕仲舒廣川人 仁者心之德 仁人者心無私欲而有其德者也 義者心之制事之宜 道者事物當然之理也
[집해]仲舒는 廣川사람이다. 仁은 마음의 덕이고, 仁人은 마음에 사사로운 욕심이 없고, 덕이 있는 자이다. 義 는 마음에 일의 마땅함을 제재함이다. 道 는 사물의 마땅히 그러함 이치이다.
〔增註〕朱子曰 道是大綱說 義是就一事上說 正誼未嘗不利 明道豈必無功 但不先以功利為心耳
[집주]주자가 말하기를 道는 大綱(큰 벼리)을 말하고 義는 한 가지 일 위로 나아감을 말한 것이고, 도리를 바로 함이 일찍이 이롭지 않음이 없으니 도를 밝힘이 어찌 반드시 공이 없겠는가? 다만 먼저 공과 이익으로써 마음 삼지 않을 뿐이다.
孫思邈曰 膽欲大而心欲小 智欲圓而行欲方
손사막이 말하기를 膽力은 크게 하고자 하고 마음은 적게(세심) 하고자 하며, 지혜는 원만하게 하고자 하고 행동은 반듯하게 하고자 한다.
〔集解〕思邈京兆人 朱子曰 膽大是千萬人吾往之意 心小只是畏敬 蓋志不大則卑陋 心不小則狂妄 圓而不方則流於譎詐 方而不圓則執而不通矣 葉氏曰 膽大則敢於有為 心小則密於察理 智圓則通而不滯 行方則正而不流也
[집해]思邈은 京兆 사람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膽大는 내가 가는 뜻을 천만인이 옳다 하는 것이요, 心小는 다만 이에 두려워하고 공경할 뿐이다. 대개 뜻이 크지 않으면 곧 비루하고 마음이 적지(세심하지) 않으면 곧 몹시 방자하고 오만하며, 원만하되 모나지 않으면 곧 속임에 흐른다. 모나되 원만하지 않으면 곧 집착하여 통하지 않는다. 섭씨가 말하기를 담대하면 곧 훌륭한 일을 함에 용감하고, 마음이 세심하면 곧 이치를 살핌에 정밀하고, 지혜가 원만하면 곧 통하여 막히지 않는다. 행동이 방정하면 곧 바르게 하여 흐르지 않는다.
古語云 從善如登 從惡如崩
옛말에 이르기를 선을 따름은 오르는 듯이 하고, 악을 따름은 무너지듯이 한다.
〔集說〕陳氏曰 古語國語 升高曰登 墜下曰崩 朱子曰 善者天命所賦之本然 惡者物欲所生之邪穢 眞氏曰 從善如登善難進也 從惡如崩惡易陷也 進於善則為聖為賢 而日趨於高明 陷於惡則為愚為不肖 而日淪於汚下矣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古語는 『國語』이다.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을 登이라 말하고, 낮은 곳에 떨어지는 것을 崩이라 한다. 주자가 말하기를 善은 천명이 준 바의 본래 그러함이고, 악은 물욕이 생겨나는 바의 간사하고 더러운 것이다. 진씨가 말하기를 從善如登은 선에 나아가기 어려운 것이다. 從惡如崩는 악에 빠지기 쉬움이다. 선에 나아가면 곧 성인이 되고, 현명한 이가 되며, 날로 높고 밝음에 치달리고, 악에 빠지면 곧 어리석음이 되고, 不肖함이 되어 날로 더럽고 낮음에 잠긴다.
孝友先生朱仁軌 隱居養親 嘗誨子弟曰 終身讓路 不枉百步 終身讓畔 不失一段
효우 선생 주인궤가 은거하여 어버이를 봉양하는데 일찍이 자제를 가르쳐 말하기를 종신토록 가는 길을 양보하고도 백보를 굽히지(돌아가지) 않았으며, 종신토록 밭 두둑을 양보하되 한 자락의 잃음이 없었다고 했다.
〔集解〕仁軌字德容亳州人 路行路 畔田界也 言人終身讓路 而終無百步之枉 終身讓畔 而終無一段之失也
[집해]仁軌는 字가 德容이니 亳州사람이다. 路는 가는 길이다. 畔은 밭의 경계이다. 사람이 종신토록 길을 양보하되 끝내 백보의 굽힘(돌아감)이 없었고, 종신토록 밭두둑을 양보하되 한 자락의 잃음이 없었음을 말한 것이다.
〔集成〕孝氏曰 不枉不失 盖引而進之之諭 非計功謀利之謂也
[집성]효씨가 말하기를 굽히지 않고, 잃지 않았다는 것은 대개 인도하여 나아갈 것을 깨우친 것이니 공을 헤아리고, 이익을 도모함을 말한 것이 아니다.
濂溪周先生曰 聖希天 賢希聖 士希賢
염계 주선생이 말하기를 성인은 하늘(되기를)을 바라고, 어진이는 성인(되기)을 바라고, 선비는 어진 이(되기)를 바란다.
〔集說〕吳氏曰 濂溪地名先生名敦頤 字茂叔 道州人 朱子曰 希望也
[집설]오씨가 말하기를 濂溪는 땅이름이고, 선생의 이름은 敦頤이며, 字는 茂叔이니 道州 사람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希는 바람이다.
伊尹顔淵大賢也 伊尹恥其君不為堯舜 一夫不得其所 若撻于市 顔淵不遷怒 不貳過 三月不違仁
이윤과 안연은 큰 어진 이 이다. 이윤은 그 임금이 요순이 되지 못하고, 한 사람이라도 그 자리를 얻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여 마치 시장에서 종아리를 맞는 것 같이 여겼다. 안연은 노함을 옮기지 않았고, 두 번 잘못하지 않았으며, 3개월을 仁에 어긋나지 않았다.
〔集解〕伊姓尹字也名摯 相湯伐桀 若撻于市言恥之甚也 朱子曰 遷移也 貳復也 三月言其久 仁者心之德 不違仁者無私欲 而有其德也 此皆賢人之事也
[집해]伊는 姓이요 尹은 字이며, 이름은 摯이다. 탕이 걸을 토벌하는 것을 도왔다. 若撻于市는 부끄러움이 심함을 말한 것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遷은 옮김이다. 貳는 다시이다. 三月은 그 오램을 말한다. 仁은 마음의 덕이니 仁을 어기지 않는 자는 사사로운 욕심이 없어 그 덕을 소요한다. 이는 모두 어진 사람의 일이다.
志伊尹之所志 學顔淵之所學
이윤의 뜻한 바를 뜻으로 삼고, 안연이 배운 바를 배운다.
〔集解〕朱子曰 此言士希賢也
[집해]주자가 말하기를 이는 선비가 현인이 되기를 바란 것이다.
過則聖 及則賢 不及則亦不失於令名
지나치면 곧 성인이 되고, 미치면 현인이 되고, 미치지 못하여도 곧 아름다운 이름은 잃지 않는다.
〔集成〕朱子曰 三者隨其用力之淺深 以為所至之遠近 不失令名以其有為善之實也
[집성]주자가 말하기를 세 가지는 그 힘을 씀의 얕고 깊음을 따라서 이르는 바의 멀고 가까움을 삼는다.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다는 것은 선을 행함의 실제가 있는 것이다.
聖人之道 入乎耳存乎心 蘊之為德行 行之為事業 彼以文辭而已者 陋矣
성인의 도는 귀로 듣고 마음에 보존하며, 그것을 쌓으면 덕행이 되고, 그것을 행하면 사업이 되니 그것으로써 文辭로 할뿐이면 비루한 것이다.
〔集解〕蘊積也 聖人之道入耳存心 積於中 為德行者 道之體也 發於外 為事業者道之用也 若夫文所以載道 苟徙騁葩藻 以為文辭則其卑陋甚矣
[집해]蘊은 쌓음이다. 성인의도가 귀에 들어오면 마음에 보존하고, 마음 속에 쌓아 덕행을 하는 것은 도의 體 이다. 밖에 드러남을 사업으로 삼음은 도의 用이다. 만약 대저 文은 도를 실어야 하니 문채 있는 문장으로써 文辭를 삼으면 비루함이 심한 것이다.
仲由喜聞過 令名無窮焉 今人有過不喜人規 如護疾而忌醫 寧滅其身而無悟也噫
중유는 (자신의) 허물 듣는 것을 기뻐하여 아름다운 명예가 무궁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허물이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간함을 기뻐하지 않으니 마치 병을 고치려하면서 의사를 꺼리다 정녕 그 몸을 멸하고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구나, 아!
〔集說〕朱子曰 喜其得聞而改之 陳氏曰規規諫 悟悔悟 噫傷痛聲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그 (허물을)듣고 고칠 수 있음을 기뻐한 것이다. 진씨가 말하기를 規는 도리로써 간하여 고침이다. 悟는 뉘우치고 깨달음이다. 噫는 상하여 아파하는 소리이다.
明道先生曰 聖賢千語萬語 只是欲人將已放之心約之 使反復入身來 自能向上去 下學而上達也
명도선생이 말하기를 성현의 천 마디 만 마디 말이 다만 사람이 장차 놓아버린 마음을 거두고 돌이켜 다시 자신의 몸에 들어오게 하고자할 뿐이니 스스로 위를 향해 가서 아래로 사람의 일을 배우고 위로 천리에 도달할 수 있다.
〔集說〕陳氏曰 約猶收也 下學而上達 下學人事而上達天理也 朱子曰 所謂反復入身來 不是將己縱出底 收拾轉來 只是知求 則心便在 便是反復入身來 又曰能求放心 則志氣淸明 義理昭著而可以上達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約은 거둠과 같다. 下學而上達은 아래로 사람의 일을 배우고 위로 천리에 도달하는 것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이른바 反復入身來는 이미 놓아 나간 것을 거두어 오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를 구할 줄 알면 곧 마음에 문득 있어 이를 돌이켜 다시 몸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또 말하기를 놓은 마음을 구할 수 있으면 곧 志氣가 맑고 밝아 의리가 밝게 드러나 천리에 도달할 수 있다.
〔集成〕朱子曰 求放心乃為學根本田地 能如此向上 更做窮理工夫 方見所存之心 所具之理不是兩事 隨應自然中節 方是儒者事業
[집성]주자가 말하기를 놓은 마음을 구하는 것은 곧 배움의 근본이 되는 땅이다. 이 같이 위를 향할 수 있으면 다시 궁리공부를 짓는다면 보존할 바의 마음과 갖추어야 할 바의 이치가 두 일이 아님을 보게 되어 따르고 응함이 자연히 절도에 알맞아 질 것이니 이것이 儒者(유학을 공부하는 사람)의 일에 해당할 것이다.
心要在腔子裏
마음은 요컨대 몸속에 있다.
〔集說〕朱子曰 心之為物 至虛至靈 神妙不測 常為一身之主 以提萬事之綱 而不可有頃刻之不存者也 一不自覺而馳騖 飛揚以徇物欲於軀殼之外 則一身無主 萬事無綱 雖其俯仰顧眄之間 盖已不自覺其身之所在矣 又曰敬便在腔子裏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마음의 물건 됨은 지극히 虛하고 지극히 신령스럽고, 신묘하여 헤아리지 못하지만 항상 한 몸의 주인이 되어 만 가지 일의 벼리를 끌어 잠간의 사이에도 보존하지 않음이 있을 수 없다. 한 번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치달려 잘난 체하고 거만하여 몸의 밖에서 물욕을 따르면 곧 한 몸의 주인이 없어 만 가지 일이 벼리가 없으니 비록 그 굽어보고 우러러보고 돌아보고, 한 눈으로 보는 사이에 대개 이미 자기 스스로 그 몸의 있는 바를 깨닫지 못한다. 또 말하기를 공경은 곧 몸 안에 있는 것이다.
伊川先生曰 只整齊嚴肅則心便一 一則自無非辟之干
이천 선생이 말하기를 다만 몸가짐을 바로하고 엄숙히 하면 곧 마음이 바로 전일해 지고, (마음이)전일해 지면 곧 저절로 잘못되고, 사특함의 범(犯)함이 없다.
〔集解〕整齊嚴肅如正衣冠尊瞻視之類 一專一也
[집해]整齊嚴肅은 옷과 관을 바로하고, 존경하여 바라보는 것 따위와 같은 것이다. 一은 전일함이다.
〔增註〕盧氏曰 外面整齊嚴肅則內面便一 內面一則外面便無非辟之干
[증주]노시가 말하기를 밖으로 정제엄숙하면 곧 안이 전일해지고, 내면이 전이하면 곧 외면이 잘못되고 사특함의 범함이 없어진다.
伊川先生 甚愛表記 君子莊敬日彊 安肆日偸之語 盖常人之情 纔放肆則日就曠蕩 自檢束則日就規矩
이천 선생이 『禮記』 「表記」 편의 군자가 씩씩하고 공경하면 날로 굳세어지고, 편안하고 함부로 하면 날로 게을러진다는 말을 몹시 사랑하였다. 대개 보통 사람의 실정은 조금 만 방자하고 함부로 하면 곧 날로 비고, 방탕한 곳으로 나아가고, 스스로 검속하면 곧 날로 법도에 나아가게 된다.
〔集解〕表記禮記篇名 偸惰也 周氏曰 莊敬可以言君子 安肆亦言君子者 盖謂雖為君子 果莊敬則日入於彊 或安肆則日入於偸矣
[집해]「表記」는 『禮記』의 편명이다. 偸는 게으름이다. 주씨가 말하기를 씩씩하고 공경함으로써 군자를 말할 수 있고, 편안하고 함부로 하는 것으로써 군자를 말할 수 있는 것은 대개 비록 군자라 말할 수 있을 지라도 과감히 씩씩하고 공경하면 곧 날로 굳셈에 나아가고, 혹은 편안하고 함부로 하면 곧 날로 게으름에 들어가게 된다.
人於外物奉身者 事事要好 只有自家一箇身與心 却不要好 苟得外物好時 却不知道自家身與心 已自先不好了也
사람이 음식, 의복, 궁실로 몸을 받드는 자는 일 마다 좋음을 요구하면서 스스로는 한 개 몸과 마음에 있어서는 도리어 좋음을 요구하지 않으니 진실로 외물을 얻어 좋아할 때는 도리어 스스로의 몸과 마음은 자기 스스로 먼저 마음을 거두지 못함을 알지 못한다.
〔集說〕陳氏曰 外物之奉身者 如飮食衣服宮室之類 身不外謂身不檢心 不好謂心不收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外物之奉身은 음식, 의복, 궁실 따위이다. 身不外는 몸이 마음을 검속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不好는 마음을 거두지 못함을 말한다.
伊川先生曰 顔淵問克己復禮之目 孔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이천 선생이 말하기를 안연이 克己復禮의 조목을 물었는데 공자가 말하기를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에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 하였다.
〔集說〕朱子曰 克勝也 己謂身之私欲也 復反也 禮者天理之節文也 目條件也 非禮者己之私也 勿者禁止之辭 是人心之所以為主 而勝私復禮之機也
[집설]주자가 말하기를 克은 이김이다. 己는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이다. 復은 돌이킴이다. 禮는 천리에 대한 규정이다. 目은 조건이다. 非禮는 자기의 사사로운 욕심이다. 勿은 금지하는 말이다. 이는 인심의 주인 되는 까닭인 바로 사사로운 욕심을 이기고 예를 회복하는 기틀이다.
四者身之用也 由乎中而應乎外 制乎外 所以養其中也 顔淵事斯語 所以進於聖人 後之學聖人者 宜服膺而勿失也 因箴以自警
네 가지의 쓰임은 (마음)속으로부터 밖으로 응하여 밖을 제재하는 것이니 그 마음속을 기르는 까닭이다. 안연이 이 말에 종사하였기 때문에 성인에 나아가고, 뒤에 성인을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가슴으로 드러내어 잃지 말아야하기 때문에 훈계하는 말로써 스스로 경계한 것이다.
〔增註〕視聽言動皆身之用 由心而出者也 非禮勿視聽言動 所以制外而養心也 事從事也 服著也 膺胸也 奉持而著之心胸之間也 朱子曰 由中應外泛言其理如此耳 制外養中 方是說做工夫處
[증주]視, 聽, 言, 動은 모두 몸의 작용이니 마음으로 말미암아 나온 것이다. 非禮勿視聽言動은 밖을 제제하여 마음을 기르는 것이다. 事는 종사함이다. 服은 드러냄이니 받들고 지녀서 심장과 가슴의 사이에 드러냄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마음속으로부터 밖에 응한다는 것은 그 이치가 이 같음을 범연히 말했을 뿐이다. 밖을 제재하고 안을 기른다는 것은 바야흐로 공부할 곳을 말한다.
〔集解〕進於聖人 進步幾及之意
[집해]성인에 나아간다는 것은 진보하여 거의 미친다는 뜻이다.
其視箴曰 心兮本虛 應物無迹 操之有要 視為之則 蔽交於前 其中則遷 制之於外 以安其內 克己復禮 久而誠矣
그 視箴에 말하였다. 마음은 본래 虛하니 사물에 응함에 자취가 없다. 그것을 잡음에는 요령이 있으니 보는 것을 법칙으로 삼는다. 가리움이 앞에서 교차하면 그 마음속은 곧 옮겨지니 밖에서 그것을 제재하여 안에서 그것을 편안히 해야 한다. 사욕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면 오래되면 조용히 힘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增註〕心之體本自虛明 而其用則隨物而應 無有形迹 操而存之之要 以視為則而已 盖物欲之蔽 交接於前 則心隨之以遷 此非禮之視 所以當制也 誠者從容不勉者也 朱子曰人之視聽言動 視最在先 為操心之準則
[증주]마음의 體는 본래 스스로 虛하고 밝으며, 그 작용은 곧 사물을 따라 응하여 형태와 자취가 있지 않으니 잡아서 그것을 보존하는 요령은 보는 것으로써 법을 삼을 뿐이다. 대개 물욕의 가리움은 앞에서 교차하면 곧 마음이 그것을 따름으로써 옮긴다. 이는 예가 아닌 것을 보기 때문에 마땅히 제재해야 하는 것이다. 誠은 조용하여 힘쓰지 않는 것이다. 주자가 말하였다. 사람의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보는 것이 가장 앞에 있음은 이는 마음을 잡는 준칙이 되기 때문이다.
其聽箴曰 人有秉彛 本乎天性 知誘物化 遂亡其正 卓彼先覺 知止有定 閑邪存誠 非禮勿聽
그 聽箴에 말하였다. 사람이 떳떳함을 잡음이 있는 것은 天性에 근본한 것이다. 마음의 지혜(지식?)가 사물의 변화에 유혹되어 마침내 그 바름을 잃는다. 뛰어난 저 선각자는 그침을 알아 정함이 있었으니 사특함을 막고 성실함을 보존하여 예가 아니면 듣지 말아야 한다.
〔增註〕性卽理也 人之秉彛 乃得於天之正理也 聽非禮 則心之知為物所引誘 與之俱化 而正理遂亡矣 惟彼先覺之人 卓然自立 知其所當止 而志有定向 故能防閑其邪妄於外 而存其實理於內 自然非禮勿聽也
[증주]性은 곧 理이다. 사람의 떳떳함을 잡음은 곧 하늘의 바른 이치에서 얻어진다. 들음이 예가 아니면 곧 마음의 지혜가 사물의 이끌고 유인하는 바가 되어 더불어 모두 변화하여 바른 이치가 마침내 없어지는 것이다. 오직 저 먼저 깨달은 사람만이 우뚝하게 스스로 서서 그 마땅히 그쳐야 할 바를 알고, 뜻이 정해진 방향이 있다. 그러므로 밖에서 사특하고, 망녕됨을 막고, 안에서 진실된 이치를 보존할 수 있어 자연히 예가 아닌 것을 듣지 않을 수 있었다.
其言箴曰 人心之動 因言以宣 發禁躁妄 內斯靜專 矧是樞機 興戎出好 吉凶榮辱 惟其所召 傷易則誕 傷煩則支 己肆物忤 出悖來違 非法不道 欽哉訓辭
그 言箴에 말하였다. 사람 마음의 움직임은 말로 인하여 펴진다. 말을 할 때 조급하고 망녕된 것을 금하여야 안으로 이에 (마음이) 고요하고, 전일해 지는데 하물며 이는 중요한 대목이니 전쟁을 일으키고, 좋음을 내고, 길함과 흉함, 영광과 욕이 오직 그 (말이)부르는 바이다. (말을)가볍고 쉽게 하면 곧 허탄해지고, (말을)가볍고 번잡하게 하면 곧 지리해지며, 자기를 함부로 하고, 남을 거역하고, 내는 말이 어긋나면 오는 말이 어그러지니 법이 아니면 말하지 말아야 한다. 공경하라 가르치는 말이여!
〔增註〕宣布也 人心有動於內 因言以宣於外 所謂言者心之聲也 發發言也 言不煩躁則心安靜 言不妄誕則心專一 矧況也 樞機喩言 說見范魯公詩戎兵也 好善也 謂言能興戎出好 且召吉凶榮辱也 傷於輕易則妄誕 傷於煩多則支離 己放肆則忤於人 出者逆則來者違 四者言之病也
[증주]宣은 폄이다. 사람의 마음은 안에서 움직임이 있고, 말로 인하여 밖에서 펴지기 때문에 이른 바 말을 마음의 소리라 한다. 發은 발언함이다. 말을 번거롭고 조급하게 하지 않으면 곧 마음이 안정되고, 말을 망녕되고 허탄하게 하지 않으면 곧 마음이 한결 같아진다. 矧은 하물며 이다. 樞機는 말을 비유한 것이다. 설명이 범노공의 시 「戌兵」에 보인다. 好는 좋아함이니 말은 전쟁을 일으키고, 좋음을 낼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또 吉凶과 榮辱을 부른다. 가볍고 쉬움에 (말이)상하면 곧 망녕되고 허탄해지고, 번잡하고 많음에 상하면 (말이) 지리해지고, 내가 함부로 하면 곧 다른 사람에게 거슬리고 내는 말을 거슬리게 하면 오는 말이 어긋난다. 네 가지는 말의 병폐이다.
其動箴曰 哲人知幾 誠之於思 志士勵行守之 於為順理則裕 從欲惟危 造次克念戰兢 自持習與性 成聖賢同歸
그 動箴에 말하였다. 밝은(지혜로운)사람은 기미를 알아 생각을 진실 되게 하고, 志士는 힘써 행하여 그것을 지킨다. 이치에 순종하면 곧 여유롭고 욕심을 따르면 오직 위태로울 뿐이니 잠시의 사이에도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스스로 습관과 본성을 잡아 성현과 함께 돌아감을 이루어야 한다.
〔增註〕思者動於心也 惟知幾之哲人 能誠之為者 動於身也 惟勵行之志士 能守之 二者雖不同 然皆順理則安裕 從欲則危險也
[증주]思는 마음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오직 기미를 아는 哲人만이 성실히 하여 몸에서 움직일 수 있고, 오직 힘써 행하는 지사만이 지킬 수 있다. 두 가지는 비록 같지 않으나 모두 이치에 순종하면 곧 편안하고, 여유롭고, 욕심을 따르면 곧 위험하다.
〔集解〕朱子曰 程子之箴發明親切 學者尤宜深玩
[집해] 주자가 말하였다. 정자의 경계를 발명함이 친절하니 배우는 자는 더욱 마땅히 깊이 완색해야 한다.
伊川先生言 人有三不幸 少年登高科一不幸 席父兄弟之勢為美官二不幸 有高才能文章三不幸也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불행이 있으니 나아가 어릴 때 높고 좋은 관직에 오르는 것이 첫 번째 불행이고, 아버지와 형제의 권세에 의지하여 좋은 관직에 오르는 것이 두 번째 불행이고, 높은 재능이 있고, 문장을 잘 쓰는 것이 세 번 째 불행이다.
〔增註〕幸猶慶也 少年登高科者學未優 藉勢為美官者人不稱 有高才能文章者 恒無德以將之 此三者 皆不足以致遠 故謂之不幸
[증주]幸은 慶(경사)과 같다. 少年登高科는 배움이 아직 뛰어나지 않음에도 권세를 빌어 좋은 관직에 오르는 것이니 사람이 칭찬하지 않는다. 높은 재능이 있고, 문장을 잘 짓는 자는 항상 덕으로써 나아감이 없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멀리까지 이를 수 없다. 그러므로 불행하다고 말한 것이다.
橫渠先生曰 學者捨禮義 則飽食 終日無所猷為 與下民一致 所事不踰衣食之間 燕遊之樂耳
횡거 선생이 말하였다. 배우는 자가 예와 의를 버리면 곧 배불리 먹고 종일토록 꾀하는 바가 없고, 백성과 더불어함께 돌아와 종사하는 바가 衣食의 사이와 잔치하고 노는 즐거움뿐임을 넘지 않을 뿐이다.
〔集說〕陳氏曰 捨棄也 猷為謀猷作為也 一致猶言同歸 踰過也
[집설]진씨가 말하기를 捨는 버림이다. 猷為謀는 作爲와 같다. 一致는 같이 돌아간다는 말과 같다. 踰는 지남이다,
范忠宣公 戒子弟曰 人雖至愚 責人則明 雖有聰明 恕己則昏 爾曹但常以責人之心責己 恕己之心恕人 不患不到聖賢地位也
범 충선공이 자제를 경계하여 말하기를 사람이 비록 어리석을 지라도 다른 사람을 꾸짖음에는 맑고, 비록 총명함이 있어도 자기를 용서하면 곧 어두워진다. 너희들은 다만 항상 다른 사람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기를 꾸짖고,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면 성현의 지위에 이르지 못함을 근심하지 않아도 된다.
〔集說〕陳氏曰 公名純二 字堯夫 忠宣諡也 文正公之子 朱子曰 恕是推去的 於己不當下恕字 若欲脩潤其語 當曰以愛己之心愛人 吳氏曰 恕字之義 范公盖以寬恕為言也
[집설]진씨가 말하였다. 公은 이름은 純二이고, 字는 堯夫이며, 忠宣은 시호이고 文正公의 이들이다. 주자가 말하였다. 恕는 이를 미루어 간다는 것이 정확하니 자기에게 恕라는 글자는 마땅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 그 말을 닦고, 윤택하게 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써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고 말해야 한다. 오씨가 말하였다. 恕字의 뜻은 범공이 대개 너그러움으로써 恕를 말한 것이다.
呂滎公嘗言 後生初學 且須理會氣象 氣象好時 百事是當 氣象者辭令容止輕重疾徐足以見之矣 不惟君子小人於此焉分 亦貴賤壽夭之所由 定也
여형공이 일찍이 말하였다. 후생이 처음 배울 때는 또한 모름지기 기상을 성찰(살펴야)하여야 한다. 기상이 좋을 때 온갖 일이 이에 마땅해진다. 氣象은 말과 행동거지의 가볍고, 무겁고, 빠름과 느림을 볼 수 있다. 오직 군자와 소인만이 이에서 나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귀천과 장수, 단명의 말미암는 바가 정해진다.
〔增註〕理會謂省察矯揉之辭 令出諸口 容止見諸身 乃德之符也 故端重安徐者為君子為貴為壽 輕浮躁疾者為小人 為賤 為夭
[증주]理會는 省察하여 잘못을 바로잡는 말을 말한다. 令 은 입에서 나오고, 容止는 몸에 드러나니 곧 덕의 부절(신표)이다. 그러므로 단정하고, 후중하며, 편안하고 느리게 하는 것이 군자가 되고, 귀함이 되고, 장수함이 된다. 가볍고, 경박하며 조급하고 빨리하는 것은 소인이 되고, 천함이 되고, 단명함이 된다.
攻其惡 無攻人之惡 盖自攻其德 日夜且自點檢 絲毫不盡 則慊於心矣 豈有工夫點檢他人耶
(자신의)그 악을 다스리고 다른 사람의 악을 다스림이 없어야 한다. 대개 스스로 그 덕을 다스려서 낮과 밤에 또한 스스로 점검하여 실 끝이라도 다하지 않으이 있으면 곧 마음에 만족하지 않는다. 어지 공부와 점검이 다른 사람에게 있겠는가?
〔集說〕陳氏曰 攻專治也 攻其惡無攻人之惡 孔子之言也 盖發語辭 士之檢身 一念之惡未盡去 卽有愧於心矣 何暇責人哉
[집설]진씨가 말하였다. 攻은 다스림을 오로지 함이다. “攻其惡無攻人之惡”은 공자의 말이다. 盖는 발어사이다. 선비의 자신을 검속함은 한 생각(순간)의 악이라도 모두 제거하지 않으면 곧 마음에 부끄러워함이 있다. 어찌 다른 사람을 꾸짖을 겨를이 있겠는가?
大要前輩作事多周詳 後輩作事多闕略
대개 전배(선배)들이 일을 지음은 두루 자세히 함이 많고, 후배들의 일을 지음은 빠지고 소략함이 많다.
〔集解〕大要猶言大抵
[집해]大要는 大抵(대체로 보아)라는 말과 같다.
〔增註〕周則無闕 詳則不略 用心勤密則作事多周詳 用心踈怠則作事多闕略
[증주]두루하면 곧 빠짐이 없고, 자세하면 곧 소략하지 않다, 마음을 씀이 부지런하고 주밀하면 곧 일을 지음에 두루하고 자세함이 많다. 마음을 씀이 거칠고(적고) 게으르면 곧 일을 지음이 빠지고 소략함이 많다.
恩讎分明 此四者非有道者之言也 無好人三字 非有德者之言也 後生戒之
恩讎分明(은혜와 원수의 나눔을 분명히 밝힌다.)의 이 네 글자는 도가 있는 자의 말이 아니다. 無好人(좋은 사람이 없다.)의 세 글자는 덕이 있는 자의 말이 아니다. 후생(후배)은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集解〕孔子曰 以德報德 以直報怨 若有怨必思報復 豈有道者哉 孟子云 人性皆善 人皆可以為堯舜 若鄙薄當世以為無好人 豈有德者哉 此後生小子當戒也
[집해]공자가 말하였다. “덕으로써 덕을 갚고, 정직으로써 원수를 갚는다.” 하니 만약 원한이 있어 반드시 보복할 것을 생각한다면 어찌 도가 있는 자이겠는가? 맹자가 말하였다. “사람의 본성은 모두 착하다. 사람이 모두 요와 순이 될 수 있다.”하니 만약 비루하고 경박한 지금의 세상에서 좋은 사람이 없다고 여기면 어찌 덕이 있는 자이겠는가? 이는 후생(후배)과 어린 아이들이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張思叔座右銘曰 凡語必忠信 凡行必篤敬 飮食必愼節 字畵必楷正
장사숙의 좌우명에 말하였다. 무릇 말을 함에는 반드시 忠과 信이 있어야 하고, 무릇 행동함에는 반드시 경을 두터이 해야 하고, 음식은 반드시 절도를 삼가고, 글자를 씀에는 반드시 치우치거나(기울거나) 사특하지 말아야 한다.
〔集說〕陳氏曰 思叔名繹 河南人 伊川弟子 銘者自警之辭 愼謂不苟食 節謂不恣食 楷謂不草率 正謂不偏邪
[집설]진씨가 말하였다. 思叔은 이름이 繹이며, 河南사람이니 伊川의 제자이다. 銘은 스스로 경계하는 말이다. 愼은 구차하게 먹지 않음을 말한다. 節은 함부로 먹지 않음을 말한다. 楷는 아무렇게(경솔하게, 거칠게) 쓰지 않음을 말한다. 正은 편벽되고 사특하지 않음을 말한다.
容貌必端莊 衣冠必肅整 步履必安詳 居處必正靜
용모는 반드시 단정하고 장엄하게 하고, 의관은 반드시 엄숙하고 정제하며, 걸음걸이는 반드시 편안하고 고르게 하며, 거처는 반드시 정숙해야 한다.
〔集解〕容貌擧一身而言 端莊端正莊嚴也 衣冠所以正容儀 肅整者嚴肅齊整也 足容重 故當貴乎安詳 居處恭 故必在乎正靜也
[집해]容貌는 한 몸을 들어 말한 것이요, 端莊은 단정하고 莊嚴함이다. 衣冠은 容儀를 바르게 함이다. 肅整은 엄숙하고 가지런히 정돈함이다. 발은 무거움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마땅히 편안하고 고르게 함을 귀하게 여긴다. 거처는 공경 하기 때문에 반드시 바르고 고요함에 있다.
作事必謀始 出言必顧行 常德必固持 然諾必重應 見善如己出 見惡如己病
일을 함에는 반드시 시작을 도모하고, 말을 함에는 반드시 행함을 돌아보고, 평상의 덕을 반드시 굳게 잡아야 하며,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은 반드시 무겁게 응답하며, 선을 보기를 자기가 이 선이 있기를 바라는 것처럼 하고 악을 보기를 자기도 이 악이 있는 것처럼 두려워해야 한다.
〔集說〕陳氏曰 事謀於始則無後悔 言顧其行則非空言 常德平常之德 持之固則不失 然諾皆應辭 應之重則思踐 如己出冀己亦有是善也 如己病恐己亦有是惡也
[집설]진씨가 말하였다. 일을 시작에서 도모하면 곧 뒤에 뉘우침이 없고, 말을 할 때 그 행함을 돌아보면 곧 빈 말을 하지 않는다. 常德은 평소의 덕이니 그것을 잡기를 굳게하면 곧 잃지 않는다. 然과 諾은 모두 응대하는 말이니 응대하기를 무겁게 한다는 것은 곧 실천을 생각하는 것이다. 如己出은 자기가 또한 이 선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如己病은 자기가 또한 이 악이 있을까 두려워함이다.
凡此十四者 我皆未深省 書此當坐隅 朝夕視為警
무릇 이 14가지는 내가 모두 깊이 살피지 못하고 이를 글로 써서 앉는 자리 모퉁이에 두고 아침저녁으로 보고 경계로 삼았다.
〔集解〕熊氏曰 座右銘凡十四言 不過卽其日用言動之間 出入起居之際 大要以敬為主 曰愼節 曰楷正 曰端莊 曰肅整 曰安詳 曰正靜 曰固持 曰重應 非敬其能然乎 作事謀始一動不忘敬也 出言顧行一語不忘敬也 程門敎人以敬為先 思叔此銘 學者所當佩服而深省也
[집해]웅씨가 말하였다. 좌우명은 모두 14가지 말은 곧 그 날로 쓰는 말과 행동의 사이와 나고 들며, 생활해 가는 즈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 큰 요점은 敬으로써 주장하고 愼節, 楷正, 端莊, 肅整, 安詳, 正靜, 固持, 重應이니 敬이 아니라면 그럴 수 있겠는가? 作事謀始는 하나의 행동에도 敬을 잊지 않음이다. 出言顧行은 한 마디 말도 敬을 잊지 않음이다. 程子의 문하에서 사람을 가르침은 敬으로써 우선하니 사숙의 이 銘은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옷에 매달아서 깊이 살펴야 할 것이다.
胡文定公曰 人須是一切世味 淡薄方好 不要有富貴相 孟子謂堂高數仞 食前方丈 侍妾數百人 我得志不為 學者須先除去此等 常自激昻 便不到墜墮
호 문정공이 말하였다. “사람은 모름지기 일체의 세상일이 욕심이 없어야 비로소 아름다우며 부유하고 높은 벼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맹자는 집의 높이가 여러 길이고, 앞에 차려 놓은 음식이 사방 1장에 차려지고, 모시는 시녀가 수백 명을 내가(할 수 있게) 뜻을 얻었을 지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니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먼저 이러한 것을 제거하고 항상 스스로 분발하여야 문득 떨어짐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集解〕世味如飮食衣服居室之類 淡薄謂食取充腹衣取蔽形居室取蔽風雨也 富貴相卽所謂堂高數仞食前方丈侍妾數百人之類 八尺曰仞 方丈謂食饌列於前者方一丈也 除去此等卽富貴相也
[집해]世味는 음식, 의복, 거실 같은 따위이다. 淡薄 은 음식은 배를 채움을 취하고, 옷은 형상을 가림을 취하고, 거실은 비와 바람을 가림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富貴相은 곧 이른 바 집의 높이가 여러 길이며, 앞에 음식이 사방 1장에 차려지고, 시녀가 수백 명되는 종류이다. 8자를 仞(길 인)이라 한다. 方丈은 앞에 차려놓은 음식이 사방 1장임을 말한다. 除去此等은 곧 부유하고 높은 벼슬이다.
〔增註〕激昻猶奮發也 墜墮皆落也 不以富貴為事 常自激昻而為善 則不淪於汚下矣
[증주]激昂은 분발과 같다. 墜墮는 모두 떨어짐이다. 부귀로써 일삼지 않고 항상 분발하여 善으로 삼으면 곧 더럽고 낮음에 빠지지 않는다.
嘗愛諸葛孔明 當漢末 躬耕南陽不求聞達 後來雖應劉先主之聘 宰割山河 三分天下 身都將相 手握重兵 亦何求不得 何欲不遂 乃與後主言 成都有桑八百株 薄田十五頃 子孫衣食自有餘饒 臣身在外 別無調度 不別治生 以長尺寸 若死之日 不使廩有餘粟 庫有餘財 以負陛下 及卒果如其言 如此輩人 眞可謂大丈夫矣
일찍이 사랑하던 제갈공명은 한 나라 말기를 당하여 남양에서 몸소 밭 갈며 (좋은 명성이) 들리기를 구하지 않았다. 후에 와서 비록 유 선주(유비)의 초빙에 응하여 산하를 주재하고 갈라서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자신은 將相의 자리에 있고, 손에는 군대를 잡았으니 또한 무엇을 구한들 얻지 못하였으며, 무엇을 하고자 한들 이루지 못하였겠는가? 이에 후주(유선: 유비의 아들)와 말하기를 “성도에 뽕나무 800그루와 거친 밭 15경이 있으니 자손의 의식이 스스로 넉넉합니다. 臣 의 몸이 밖에 있어 따로 경영하고 헤아림이 없으며, 따로 삶을 다스림으로써 한 자 한 치도 늘이지 않았습니다. 만약 죽는 날 창고에 남은 곡식과 창고에 남은 재물이 있게 함으로써 폐하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죽음에 이르러 과연 그 말과 같았다. 이 같은 사람들을 참으로 大丈夫라고 말할 만하다.
〔集說〕陳氏曰 南陽地名 先主漢昭烈也 嘗三顧武侯於草廬之中 宰宰制 割分割 三分天下謂昭烈居蜀 曹操居中原 孫權居江南 分天下為三國也 都猶居也 握猶掌也 成都郡名 百畝為頃 饒亦餘也 躬耕南陽 若將終身 及為將相 志惟興漢 孟子稱大丈夫 貧賤不能移 富貴不能淫 武侯有之矣
[ㅈ비설]진시가 말하였다. 南陽는 지명이다. 先主는 한 나라 昭烈이다. 일지기 武侯(제갈공명)를 초가집 가운데에서 3번 방문하였다. 宰는 일을 맡겨 처리함이다. 割은 나눔이다. 三分天下는 昭烈은 촉에 자리하고, 조조는 중원에 자리하고, 손권은 강남에 자리하여 천하를 나누어 삼국이 됨을 말한다. 都는 자리함이다. 握은 掌(손바닥, 일을 다루는 솜씨)과 같다. 成都는 郡의 이름이다. 100畝가 1頃이 된다. 饒는 또한 남음이다. 남양에서 몸소 밭 갈며 장차 몸을 다하려는 듯이 하다가 장수와 재상이 됨에 이르러서는 뜻이 오직 한 나라를 일으킬 뿐이었으니 맹자가 대장부를 말하기를 “貧賤이 옮기지 못하고, 부귀가 미혹하게 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武侯가 그것을 소유하였다.
〔集解〕調度營計也
[집해]調度는 경영하고 헤아림이다.
范益謙座右戒曰 一不言朝廷利害邊報差除 二不言州縣官員長短得失 三不言衆人所作過惡 四不言仕進官職趨時附勢 五不言財利多少厭貧求富 六不言淫媟戱慢評論女色 七不言求覓人物干索酒食
범우겸의 좌우계에 말하였다. 첫째는 조정의 이해와 변방의 보고, 사람을 파견한 것과 관직 임명을 말하지 않는다. 둘째는 주현의 관원(지방관)의 장단점과 얻음과 잃음을 말하지 않는다. 셋째는 여러 사람이 지은 잘못을 말하지 않는다. 넷째는 벼슬과 관직에 나아가고 시세에 따라 권세에 붙음을 말하지 않는다. 다섯째는 재물과 이익의 많고 적음과 가난을 싫어하고 부유함을 구함을 말하지 않는다. 여섯째는 음란하고 깔보며, 희롱함, 논평과 여색을 말하지 않는다. 일곱째는 사람과 물건을 구하고, 술과 음식을 구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集說〕陳氏曰 益謙名冲 利害謂事有利有害也 邊報邊境之報也 差差使 除除官 無心失理為過 有心悖理為惡 媟狎也 淫媟戱慢皆邪僻之事 覓干索皆求也
[집설]진씨가 말하였다. 益謙은 이름이 冲이다. 利害는 일에 이로움과 해가 있음을 말한다. 邊報는 邊境의 보고이다. 差는 差使(어떤 일을 처리하도록 관에서 사람을 보냄)이다. 除는 관작에 임명함이다. 마음에 없이(실수로) 이치를 잃는 것을 過라 하고, 마음에 있어(의지를 갖고) 이치에 어긋남을 惡(오)이라 한다. 媟은 친압함(깔봄)이다. 淫, 媟, 戱, 慢은 모두 사특하고 편벽된 일이다. 覓, 干, 索은 모두 求함이다.
又曰 一人附書信 不可開拆沈滯
또 말하였다. 첫째는 어떤 사람이 서신을 부탁하면 열거나 뜯고, 묵혀서는 안 된다.
〔集解〕熊氏曰 發人私書 拆人信物 甚者至為仇怨 凡人所附書物 當為附至 及人託往問訊干求 若或悖理 或己力不及 則當至誠辭之 苟己諾其言 則須與達之也
[집해]웅씨가 말하였다. 다른 사람의 사사로운 글을 펴거나 다른 사람의 신물을 쪼개는 것은 심한 것은 원수가 됨에 이른다. 무릇 다른 사람이 보내는 바의 글과 물건은 마땅히 부쳐 이르게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부탁으로 가서 문안하고 구하는 것 가운데 만약 혹 이치에 어긋남이 있고, 혹 자기의 힘이 미치지 못하면 곧 마땅히 지극한 정성으로 사양해야 한다. 만일 자기가 그 말을 허락하였다면 반드시 주어 도달하게 해야 한다.
〔增註〕開拆則干人之私 沈滯則誤人之託
[증주]열어보면 곧 다른 사람의 사사로움을 구하는 것이고, 지체시키면 다른 사람의 부탁을 그르치는 것이다.
二與人並坐 不可窺人私書
둘째 다른 사람과 함께 앉아서 다른 사람의 사사로운 글을 엿보아서는 안된다.
〔增註〕窺竊視也
[증주]規는 훔쳐 보는 것이다.
〔集解〕熊氏曰 凡見人得私書 切不可往觀及注目竊視 若幷坐 目力可及 則移身以避 或置几案亦不當取觀 若其人令看 方可一視 書中之事 亦不可於他處說也
[집해]웅씨가 말하였다. 무릇 다른 사람의 사사로운 글을 볼 수 있었다면 절대로 가서 보는 것과 눈을 모아서 훔쳐보아서는 안 된다. 만일 함께 앉아서 문의 힘이 미칠 만하면 곧 몸을 옮기는 것으로써 피하고, 혹 책상에 두었다면 또한 마땅히 취해 보아서는 안 된다. 만일 그 사람이 볼 수 있게 한다면 막 한 번 볼 수 있고, 글 가운데의 일을 또한 다른 곳에 말해서는 안 된다.
三凡入人家 不可看人文字
셋째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는 다른 사람의 문자를 보아서는 안 된다.
〔集解〕熊氏曰 文字如書簡及記事錢穀簿冊之類 凡入人家 切不可翻看也
[집해]운씨가 말하였다. 문자는 서간과 기사, 돈과 곡식의 장부책과 같은 것이다. 무릇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는 절대로 뒤져 보아서는 안 된다.
四凡借人物 不可損壞不還
넷째 부릇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빌리면 부서뜨리거나 돌려주지 않아서는 안 된다.
〔集解〕熊氏曰 凡借人書冊器用 當須愛護過於己物 畢卽歸還 切不可損壞及沈沒也
[집해]웅씨가 말하였다. 무릇 다른 사람의 서책과 기물을 빌리면 마땅히 반드시 아끼고 보호하기를 자신의 물건보다 지나치게 하고, 마치면 곧 돌려보내야 하고 절대로 부서뜨리고 물에 빠트림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
五凡喫飮食 不可揀擇去取
다섯째 무릇 음식을 먹음에는 마음에 드는 것을 가려서 버리고 취해서는 안 된다.
〔集解〕謂揀擇以去其不可意者而取其可意者
[집해]揀擇은 그 뜻에 맞지 않는 것을 없애고, 그 뜻에 맞는 것을 취하여 가림을 말한다.
〔集解〕熊氏曰 凡飮食若非生硬臭惡與犯己宿疾之物 皆可食也 豈有不可食而揀擇哉
[집해]웅씨가 말하였다. 무릇 음식이 만일 날것(덜 익어서)이어서 단단하거나, 나쁜 냄새가 나는 것과 자기의 오랜 병을 범하는 물건이 아니면 모두 먹을 수 있다. 어찌 먹을 수 없다하여 가릴 수 있겠는가?
六與人同處 不可自擇便利
여섯째 사람과 같이 자리하여 스스로 편안하고 이로움을 가려서는 안 된다.
〔集解〕熊氏曰 凡與人同處 夏則先擇凉處 冬則先擇暖處 及共食 多取先取皆無德之一端也
[집해]웅씨가 말하였다. 무릇 다른 사람과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 여름에는 곧 먼저 서늘한 곳을 가리고, 겨울에는 곧 먼저 따뜻한 곳을 가리고, 함께 밥 먹을 때 많이 취하고 먼저 취하는 것은 모두 덕이 없는 한 단서이다.
七見人富貴 不可歎羨詆毁
일곱째 다른 사람이 부귀한 것을 보고 부러워하거나 탄식하고, 흉보거나 헐뜯어서는 안 된다.
〔集解〕見人富貴 若生歎羨 則有貪欲之心 若加詆毁則有妬嫉之意 皆非君子之為也
[집해]다른 사람의 부귀를 보고 만약 탄식하고 부러워하면 곧 탐욕의 마음이 있는 것이다. 만약 흉보고 헐뜯음이 있다면 곧 질투하는 뜻이 있음이니 모두 군자의 할 것(행실)이 아니다.
凡此數事有犯之者 足以見用意之不肖 於存心修身 大有所害 因書以自警
무릇 이 몇 가지 일의 범함이 있는 자는 뜻을 씀의 현명하지 못함을 나타내기에 충분하니 마음을 보존하고, 몸을 닦음에 크게 해치는 바가 있기 때문에 글을 써서 스스로 경계한다.
〔集說〕吳氏曰 以上數者 雖若細事 然於存心修身 甚有所害 故書之以為戒也
[집설]오씨가 말하였다. 위의 몇 가지는 비록 작은 일 인듯하나 마음을 보존하고 자신을 닦음에 매우 해치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글로 써서 경계로 삼은 것이다.
胡子曰 今之儒者 移學文藝 干仕進之心 以收其放心 而美其身 則何古人之不可及哉 父兄以文藝令其子弟 朋友以仕進相招 往而不返 則心始荒而不治 萬事之成 咸不逮古先矣
호자가 말하였다. 지금의 유학을 배우는 자들이 문예를 배우고, 벼슬에 나아감을 구하는 마음을 옮겨서 그 놓은 마음을 거두는 것으로써 그 자신을 아름답게 한다면 어찌 옛 사람에 미치지 못하겠는가? 부형은 문예로써 그 자제를 훈계하고 벗은 벼슬하는 것으로써 서로 부르고 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곧 마음이 시초에 황폐해지고 다스려지지 않아 모든 일의 이룸이 모두 옛 선인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集解〕胡子名宏字仁仲
[집해]호자는 미음이 宏이고 字는 仁仲이다.
〔增註〕言今之儒者 學文藝而干仕進 其用心最勤 能移此心 以存心修身 雖古人亦可及也 往而不返謂心馳逐於文藝仕進 而不知返也 心者萬事之本 心旣荒故萬事之成 皆不及古之人矣
[증주]지금의 유학을 배우는 자들이 문예를 배워 벼슬에 나아가기를 구하는 그 마음 씀이 가장 부지런하다. 이 마음을 옮기는 것으로써 마음을 온전히 하고 몸을 닦을 수 있다면 비록 옛 사람일지라도 또한 미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往而不返은 마음이 문예와 벼슬에 치달려서 돌아옴을 알지 못함을 말한다. 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인데 마음이 이미 황폐해졌기 때문에 모든 일의 이룸이 모두 옛 사람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顔氏家訓曰 夫所以讀書學問 本欲開心明目 利於行耳
안씨 가훈에 말하였다. 대저 글을 읽고, 학문하는 까닭은 본래 마음을 열고, 눈을 밝게 하여 행실에 이롭게 하고자 해서이다.
〔集解〕熊氏曰 夫學在乎知行二者而已 能知而不能行 與不學同 然欲行之 必先知之也 故必讀書學問 開心明目而後 可利於行耳
[집해]웅씨가 말하였다. 대저 배움은 知와 行 두 가지일 뿐이니 잘 알고서 잘 행하지 못하는 것과 배우지 않음은 같다. 그러나 행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글을 읽고 학문하여 마음을 열고 눈을 밝게 한 후에야 행함에 이로울 수 있을 뿐이다.
未知養親者 欲其觀古人之先意承顔 怡聲下氣 不憚劬勞 以致甘腝 惕然慙懼 起而行之也
대저 어버이를 봉양할 줄 모르는 자는 옛 사람의 (부모의)뜻을 먼저하고 (부모의)얼굴(안색)을 받들며 소리를 온화하게 하고, 기운을 낮추며, 수고로움을 꺼리지 않으며 달고 삶아 부드러운 음식을 이르게 하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삼가고 부끄러워하며 두려워하여 일으켜서 그것을 행하고자 한다.
〔集解〕人子養親 先意而承順顔色 怡聲而低下其氣 所謂養志也 不憚己之疲勞 以營奉甘軟之飮食 所謂養口體也 此皆古人之所行者 今因讀書學問而知之 故必惕然慙懼 興起而必欲行之也
[집해] 사람의 자식이 어버이를 봉양하는 것은 뜻을 먼저하고, 안색을 받들고 따르며, 소리를 온화하게 하고 그 기운을 낮추는 것을 이른 바 養志(뜻을 봉양함)라고 한다. 자기의 지치고 수고로움을 꺼리지 않고 달고 부드러운 음식을 받드는 것을 이른 바 입과 몸을 봉양하는 것이라 한다. 이는 모두 옛 사람들의 행한 것이다. 지금 글을 읽고 학문하여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반드시 삼가고,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여 일으켜서 반드시 그것을 행하고자 한다.
未知事君者 欲其觀古人之守職無侵 見危授命 不忘誠諫以利社稷 惻然自念 思欲効之也
임금을 섬길 줄 알지 못하는 자는 그 옛 사람이 직책을 지키고 능멸함이 없으며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고 정성으로 간함을 잊지 않음으로써 사직을 이롭게 함을 관찰하고서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정성을 다하여 그것을 본받고자 하는 것이다.
〔增註〕守職有官守者修其職 有言責者盡其忠也 見危授命知有君而不知有身也
[증주]守職은 관직이 있는 자는 그 직책을 닦고, 言責(임금의 잘못을 간하는)이 있는 자는 그 忠을 다하는 것이다. 見危授命은 임금이 있음은 알되 자신이 있음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素驕奢者 欲其觀古人之恭儉節用 卑以自牧 禮為敎本敬者身基 瞿然自失 斂容抑志也
평소에 교만하고 사치한자는 옛 사람의 공손하고 검소하며, 절약하여 씀과 (자신을)낮춤으로써 스스로 처함과 예는 가름침의 근본이며, 경은 몸의 바탕이 됨을 관찰하고는 깜짝 놀라 태도를 거두고, 뜻을 억제하고자 한다.
〔增註〕自牧自處也 禮以律人 敬以立己 瞿然自失貌 收斂其容 抑下其志 則不驕奢矣
[증주]自牧은 自處함이다. 예로써 사람을 규율하고, 경으로써 자기를 세움(확립하며)이다. 瞿然은 스스로 모양을 잃음이다. 抑은 그 뜻을 낮춤이니 곧 교만하고 사치하지 않음이다.
素鄙悋者 欲其觀古人之貴義輕財 少私寡慾 忌盈惡滿 賙窮卹匱 赧然悔恥 積而能散也
평소에 비루하고 인색한 자가 옛 사람의 의를 귀하게 여기고 재물을 가벼이 여기며, 사사로움을 적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며, 넘침을 꺼리고, 뒤엎음을 미워하며 궁핍한 이를 진휼하며, 모자라는 이를 가엾게 여기는 것을 관찰하고는 얼굴을 붉히고 부끄러워하면서 뉘우치고 부끄러워하여 쌓은 것을 흩어 버리고자 한다.
〔集說〕陳氏曰 盈則溢 故可忌 滿則覆 故可惡 匱乏也 赧然慚而面赤之貌 積財而能散施 則不鄙悋矣
[집설]진씨가 말하였다. 盈은 곧 넘침이다. 그러므로 꺼릴 만하다. 滿은 곧 엎음이다. 그러므로 미워할 만하다. 匱는 궁핌함이다. 赧然은 부끄러워 하여 얼굴이 붉어지는 모양이다. 쌓은 재물을 흩어 베풀 수 있으면 곧 비루하고 인색함이 아니다.
素暴悍者 欲其觀古人之小心黜己 齒敝舌存 含垢藏疾 尊賢容衆 苶然沮喪 若不勝衣也
평소에 사나운자가 옛 사람의 마음을 적게 하고, 자기를 물리고 억제하며, 이는 부서져도 혀는 보존되며, 때를 머금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감추며, 어진 이를 높이고 무리를 포용함을 관찰하고는 (사나운 기운을)멈추고 막아 마치 옷을 이기지 못하는 듯이 하고자 한다.
〔集說〕陳氏曰 暴猛暴也 悍强悍也 黜己自退抑也 齒敝舌存喩强死而弱生也 含垢謂包含人之垢穢 藏疾謂藏隱人之過惡 苶然沮喪貌 謂自沮喪其暴悍之氣也
[집설]진씨가 말하였다. 暴는 사나움이다. 悍은 강한 사나움이다. 黜己는 스스로 물러나고 누룸이다. 齒敝舌存은 강함은 죽고, 약함은 사는 것을 비유하였다. 含垢는 사람의 때와 더러움을 포함함을 말하고, 藏疾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숨김을 말한다. 苶然은 저지하여 (기운을)잃음이니 스스로 그 사나운 기운을 막아 잃음을 말한다.
素怯懦者 欲其觀古人之達生委命 强毅正直 立言必信 求福不回 勃然奮厲 不可恐懼也
평소에 겁내고 나약한 자는 옛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떳떳한 이치에 통달하여 목숨을 맡기고 굳세고 정직하며 말을 세우면 반드시 믿어지며 복을 구하되 간사하지 않음을 관찰하고는 분발하고 떨쳐 힘써서 두려워하지 않고자 한다.
〔集說〕陳氏曰 怯畏怯也 懦懦弱也 達生委命謂通達生死之常理 而付之於命也 毅强忍也 不回不為回邪之行也 勃然奮厲貌謂奮發振厲 以去其怯懦也
[집설]진씨가 말하였다. 怯은 두려워하고 겁냄이다. 懦는 나약함이다. 達生委命은 삶과 죽음의 떳떳한 이치를 통달하여 운명에 그것을 붙이는 것을 말한다.
歷玆以往 百行皆然 縱不能淳 去泰去甚 學之所知 施無不達 世人讀書 但能言之 不能行之 武人俗吏 所共嗤詆 良由是耳
이를 차례로 하여 가면 모든 행위가 그러하니 가령 꾸미지 못할 지라도 큼과 심함을 버리고 배워 아는 바를 베풀어 통달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글을 읽어 다만 그것을 말만하고 행하지 못하니 무인과 속된 관리가 함께 비웃고 꾸짖는 바이니 진실로 이에 말미암을 뿐이다.
〔增註〕玆指上文六者而言 皆然謂皆如此取法古人也 人能勇於力行 雖或未至盡善 而氣習偏駁泰甚者 亦必克而去之 學之所知者 能力行之 自無不達也 達卽周子所謂行之利也
[증주]玆는 윗글 여섯 가지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皆然은 모두 옛 사람을 본받음을 취함이 이 같음을 말한다. 사람이 힘써 행함에 용감하면 비록 혹 지극히 선함에 이르지 못하여 기질과 습관이 편벽되고 어긋남이 크게 심한 자일지라도 또한 반드시 이겨서 제거할 수 있으니 그것을 배워 아는 자는 힘써 행하여 스스로 통달하지 못함이 없다. 達은 곧 周子의 이른 바 행함의 이로움이라는 것이다.
又有讀數十卷書 便自高大 凌忽長者 輕慢同列 人疾之如讎敵 惡之如鴟梟 如此以學求益 今反自損 不如無學也
또 수십 권의 글을 읽음이 있어 곧 스스로 높고 크다 하여 어른을 업신여기고 소홀히 하며 같은 반열을 가볍고 하찮게 여겨 사람들이 원수와 적같이 미워하며 솔개와 올빼미처럼 싫어한다. 이 같이 배움으로써 이익을 구해야 하는데도 지금 도리어 스스로 덜어서 배우지 않는 것만 못하다.
〔集解〕熊氏曰 此言借讀書 為名而矜己傲人者 夫不能使人親愛而使人疾惡 是學本求益 今反自損也 鴟梟惡鳥也
[집해]웅씨가 말하였다. 이는 글을 읽음을 빌려서 명예로 삼으며 자기를 자랑하고 다른 사람에게 오만하게 하는 것을 말하였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친하고 사랑하게 하지 않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미워하게 하니 이는 배움이 본래 이익을 구하기 위함인데도 지금 도리어 스스로 덜고 있음을 말 한 것이다. 鴟梟는 나쁜 새이다.
伊川先生曰 大學孔氏之遺書 而初學入德之門也 於今可見古人為學次第者 獨賴此篇之存 而其他則未有如論孟者 故學者必由是 而學焉 則庶乎其不差矣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大學』은 공씨(공자)의 남긴 글로 처음 배우는 자가 덕에 들어가는 문이다. 지금 옛 사람들이 배움을 삼는 순서를 볼 수 있는 것은 유독 이 편의 보존함에 의지하고, 기타는 곧 『論語』와 『孟子』 같은 것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들은 반드시 이로 말미암아 배우면 곧 거의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集說〕陳氏曰 大學之書 古之大學所以敎人之法 孔子誦而傳之 以詔後世 而初學入德之門也 為學次第 謂格物致知 誠意正心 修身齊家 治國平天下 先後之序也 是指大學而言 朱子曰 先讀大學 去看他經 方見得此是格物致知事 此是誠意正心事 此是修身事 此是齊家治國平天下事也
[집설]진씨가 말하였다. 『大學』의 글은 大(太)學에서 사람을 가르치던 법이다. 공자가 외우고 전함으로써 후세를 가르치니 처음 배우는 자가 덕에 들어가는 문이다. 배움을 하는 차례는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의 선후 차례이다. 이는 『大學』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주자가 말하였다. 먼저 『大學』을 읽고 다는 경전을 읽어 가면 바야흐로 이것이 격물치지(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앎에 이르는)의 일이며, 이것이 誠意正心(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올바르게 가짐)의 일이며, 이것이 修身(스스로를 수양하는 일)의 일이며 이것이 齊家(집을 바로 다스리고) 治國(나라를 다스림) 平天下(천하를 안정되고 고르게 함)의 일임을 볼 수 있다.
凡看語孟 且須熟讀玩味 將聖人之言語切己 不可只作一場話說 看得此二書 切己終身儘多也
무릇 『論語』와 『孟子』를 보고, 또 모름지기 익숙히 읽고 맛을 음미하여 성인의 말을 가지고 자기에게 간절히 해야 하고 다만 하나의 이야기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 두 책을 보고 자기에게 절실히 하면 몸을 마치도록(죽을 때 까지) 다할 것이 많다.(?)
〔集解〕朱子曰 論語一書無所不包 而其示人者 莫非操存涵養之要 孟子七篇無所不究 而其示人者類多 體驗擴充之端 須熟讀玩味以身體之 方是切實也 輔氏曰 讀書者 能將聖賢言語切己 則不枉費工夫 而終身行之有餘矣
[집해]주자가 말하였다. 『論語』 한 책은 포함하지 않음이 없어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잡아 보존하고, 함양함의 요점이 아님이 있다. 『孟子』 7편은 궁구하지 않은 바가 없어 사람에게 보여주는 종류가 많아 몸에 징험하고 확충하는 단서이니 모름지기 익숙히 읽고 음미하여 몸으로써 체득하여야 바야흐로 이에 절실한 것이다. 보씨가 말하였다. 글을 읽는 자는 성현의 말을 가지고 자게에게 절실히 하면 공부를 굽히고 허비하지 않아 종신토록(죽을 때 까지) 행하여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讀論語者 但將弟子問處 便作己問 將聖人答處 便作今日耳聞 自然有得 若能於論孟中 深求玩味 將來涵養 成甚生氣質
『論語』를 읽는 자는 다만 제자가 물은 곳을 가지고 곧 자기의 물음을 일으키고, 성인이 답한 곳을 가지고 곧 오늘 귀로 들음을 삼으면 자연히 얻음이 있을 것이다. 만약 『論語』와 『孟子』 가운데서 깊이 찾아 음미하고 가져와 함양하면 보통이 아닌 기질을 이룰 것이다.
〔集解〕朱子曰 孔門問答 曾子聞得之言 顔子未必與聞 顔子聞得之語 子貢未必與聞 今都聚在論語 後世學者 豈不大幸也 輔氏曰 若能將弟子問處 作自己問 聖人答處 作己所聞 則不徒誦其言 必將求其意 不徒求其意 必將見於行 其進於聖賢也 不難矣 ○葉氏曰 甚生猶非常也
[집해]주자가 말하였다. 공자 문하의 문답에 증자가 들었던 말은 안자가 반드시 참여하여 듣지 않았고, 안자가 들었던 말은 자공이 반드시 참여하여 듣지 않았다. 지금 모두 모아 『論語』에 있으니 후세의 베우는 자들이 어찌 크게 다행하지 않겠는가? 보씨가 말하였다. 만약 제자들이 물은 곳을 가지고 자기의 물음을 일으키고, 성인이 답한 곳으로 자기의 들은 바로 하면 곧 한갓 그 말을 외우지 않아도 반드시 장차 그 뜻을 찾을 것이고, 한갓 그 뜻을 찾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장차 행함에 드러나 성현에 나아갈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섭씨가 말하였다. 甚生은 非常(평범하지 않음)과 같다.
橫渠先生曰 中庸文字輩 直須句句理會過 使其言 互相發明
횡거 선생이 말하였다. 『中庸』의 문자들은 바로 모름지기 구절마다 이해해 가서 그 말로 하여금 서로 발명하게 해야 한다.
〔集解〕朱子曰 張子此言 眞讀書之要法 不但可施於中庸也 熊氏曰 一句有一句之義 其初須是逐句理會 然一書前後之言 皆互相相發 又必參互考之 方見大指也
[집해]주자가 말하였다. 장자의 이 말은 참된 독서의 중요한 법이니 다만 『中庸』에 베풀 수 있을 뿐만은 아니다. 웅씨가 말하였다. 한 구절은 한 구절의 뜻이 있으니 그 처음에 모름지기 이 구절을 따라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한 글의 앞뒤의 말은 모두 서로 발명되니 또한 반드시 참고하여 서로 고찰하여야 바야흐로 큰 뜻을 볼 수 있다.
六經須循環理會 儘無窮 待自家長得一格 則又見得別
六經은 모름지기 돌아가면서 이해하면 의리가 무궁함을 다하여 자신의 한 품격이 자람을 얻으면 곧 또한 다른 것을 보고 얻음을 기대할 수 있다.
〔集解〕六經易詩書周禮禮記春秋也 循環謂周而復始也 儘無窮謂義理無窮盡也
[집해]六經은 『易經』, 『詩經』, 『書經』, 『周禮』, 『禮記』, 『春秋』이다. 循環은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시작함을 말한다. 儘無窮은 의리가 끝없이 다함을 말한다.
〔增註〕長一格謂學有進也 學進則所見益高矣
[증주]長一格은 배음이 나아감이 있음을 말한다. 배움이 진전이 잇으면 곧 소견이 더욱 높아진다.
呂舍人曰 大抵後生為學 先須理會所以為學者何事 一行一住一語一黙(嘿) 須要盡合道理
여 사인이 말하였다. 대저 후배가 배움을 함에는 먼저 모름지기 배움을 삼는 까닭이 무슨 일인지를 이해하고, 한번 행동함과 한번 머뭄과 한 번 말함과 한번 침묵하는 것이 모름지기 모두 도리에 부합하여야 한다.
〔集說〕陳氏曰 舍人呂本中也 嘗為中書舍人 理會者猶言識得也 蓋學所以為道也 如下文行住語黙 須要盡合道理 及求古聖賢用心 竭力從之是已 非為作文章取官祿計也 後生為學 先須識得此意 然後志定而德業可成矣
[집설]진씨가 말하였다. 舍人은 여본중이니 일찍이 중서사인이 되었다. 理會는 알고 터득함이란 말과 같다. 대개 배움이란 도를 행하기 위함이니 아래 글의 行, 住, 語, 黙과 같으니 반드시 도리에 모두 부합해야 한다. 옛 성현의 마음 씀을 찾음에 이르면 힘을 다하여 그를 따르는 것이 이것이니 문장을 짓고, 관직을 취하고, 녹봉을 헤아리기 위함이 아니다. 후배들이 학문을 할 때는 먼저 모름지기 이 뜻을 알아 터득한 후에 뜻이 안정되어 덕업을 이룰 수 있다.
學業則須是嚴立課程 不可一日放慢 每日須讀一般經書一般子書 不須多 只要令精熟 須靜室危坐 讀取二三百遍 字字句句須要分明 又每日須連前三五授 通讀五七十遍須令成誦 不可一字放過也 史書每日須讀取一卷 或半卷以上 始見功 須是從人授讀 疑難處便質問 求古聖賢用心 竭力從之
학업은 곧 반드시 과정을 엄정히 확립하여 하루도 방만하게 해서는 안 된다. 매일 모름지기 일반 경서(성인이 지은 글)와 일반자서(현인이 지은 글)를 읽되 모름지기 많이 하지 않아도 다만 정밀하고 익숙히 해야 하니 반드시 조용한 방에서 몸을 바르게 하고 앉아 처음부터 끝까지 2, 300번을 읽어 글자와 구절을 모름지기 분명하게 해야 한다. 또 매일 전에 3일, 5일의 수업을 연이어 50번 또는 70번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하여 반드시 외움을 이루게 해야 하고, 한 글자도 놓아 지나쳐서는 안 된다. 역사책은 매일 반드시 한 권 혹은 반권 이상을 취하여 읽어야 비로소 공(일)이 보이니 반드시 이에 사람을 따라 수업하고 읽되 의심나고, 어려운 곳은 곧 질문하여 옛 성현의 마음을 씀을 찾아서 힘을 다하여 따라야 한다.
〔增註〕經書聖人之書 子書賢人之書 史書紀事之書 質正也 經書子書必讀之精熟反覆玩味 然後文義可通 史書必讀一卷半卷以上 然後事之本末可見 皆必從師友 授而讀之 有疑難 則取正審問 乃不差也 如是以求古聖賢所以用心 而盡力從之 道將為我有矣
[증주]經書는 성인의 글이고, 自書는 현인의 글이며, 史書는 일을 기록한 글이다. 質은 바름이다. 경서와 자서는 반드시 읽기를 정밀하고 익숙히 하며 반복 음미한 후에 글의 뜻을 통할 수 있다. 사서는 반드시 한 권, 또는 반권 이상을 읽은 후에야 일의 근본과 지엽을 볼 수 있으니 모두 반드시 스승과 벗을 따라 수업하여 읽어야 한다. 의문과 어려움이 있으면 곧 바로잡고 자세하게 물어야 곧 어긋나지 않는다. 이 같음으로써 옛 성현의 마음 씀을 찾아서 힘을 다하여 그를 따르면 도가 장차 나에게 행해짐이 있을 것이다.
夫指引者 師之功也 行有不至 從容規戒者朋友之任也 決意而往 則須用己力 難仰他人矣
대저 가르치고 인도하는 것은 스승의 일이다. 행함이 지극하지 않음이 있으면 조용히 법도에 따라 경계하는 것은 벗이 임무이다. 뜻을 결단하여 가는 것은 곧 반드시 내 힘을 씀이니 다른 사람을 믿기 어렵다.
〔集解〕仰恃也 指導汲引 則在於師 切磋勸勉則在於友 若夫勇往精進 自强不息 則在於自己 而難倚恃師友矣
[집해]仰은 믿음이다. 指導하고 이끔은 곧 스승에게 있고, 자르고 갈고 힘쓰기를 권하는 것은 벗에게 있으니 만약 용감하게 가고, 정밀하게 나아가서 스스로 힘써 쉬지 않는 것은 곧 자기에게 있어 스승과 벗에게 기대고 믿기 어렵다.
〔增註〕高彦先云 修學須是出於本心 不待父母先生督責 造次不忘 寢食在念 然後可成功
[증주]고언선이 말하였다. 학문을 닦음은 반드시 본신에서 나와서 부모와 선생의 감독과 질책을 기다리지 않으니 잠시라도 잊지 않으며, 잠자고 밥 먹음에도 생각이 있은 후에야 공을 이룰 수 있다.
呂氏童蒙訓曰 今日記一事 明日記一事 久則自然貫穿 今日辨一理 明日辨一理 久則自然浹洽
여씨 「童蒙訓」에 말하였다. 오늘 한 가지 일을 기록ㅎ하고 내일 한 가지 일을 기록하여 오래면 곧 자연히 꿰뚫고, 오늘 한 가지 이치를 분별하고, 내일 한 가지 이치를 분별하여 오래면 곧 자연히 마음과 이치가 서로 함양된다.
〔增註〕久謂日日如此無閒斷也 貫穿通透也 理卽事中之理 辨謂辨其是非 浹洽則心與理相涵矣
[증주]久는 나날이 이 같이 하여 사이하고 끊어짐이 없는 것이다. 貫穿은 모두 뚫음이다. 理는 곧 일 가운데의 이치이고, 辨은 그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이다. 浹洽은 곧 마음과 이치가 서로 함양됨이다.
〔集解〕此致知之事也
[집해] 이는 앎에 이르는 일이다.
今日行一難事 明日行一難事 久則自然堅固
오늘 한 가지 어려운 일을 행하고, 내일 한 가지 어려운 일을 행하여 오래면 자연히 견고하게 된다.
〔增註〕堅固則身與事相安矣
[증주]堅固는 곧 몸과 일이 서로 편안함이다.
〔集解〕此力行之事也
[집해]이는 힘써 행함의 일이다.
渙然冰釋 怡然理順 久自得之 非偶然也
확 풀림이 얼음이 사라지듯이 하고 기쁘게 이치에 따름이 오래면 저절로 터득함이 우연이 아니다.
〔集說〕陳氏曰 釋消也 林氏曰 渙然解散如春冰之釋 怡然喜悅而衆理皆順
[집설]진씨가 말하였다. 釋은 사라짐이다. 임씨가 말하였다. 확 풀려 흩어짐이 마치 봄에 얼음이 풀리는 듯이 하고, 기뻐하여 여러 가지 이치를 모두 따른다.
前輩嘗說後生 才性過人者 不足畏 惟讀書尋思推究者 為可畏耳 又云讀書只怕尋思 盖義理精深 惟尋思用意 為可以得之 鹵莽厭煩者 決無有成之理
선배가 일찍이 후배에게 말하였다. 재주와 성품이 다른 사람보다 나은 자는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글을 읽고 찾아 생각하며 미루어 연구하는 자는 두려워 할만하다. 또 말하였다. 글을 읽음은 다만 찾아 생각함을 두려워할 뿐이니 대개 의리가 정밀하고 깊으며, 오직 찾아 생각하고 뜻을 써야 터득할 수 있음이 되니 경박하고 구차하며 번잡함을 싫어하는 자는 결코 이룰 리가 없다.
〔集解〕鹵莽輕脫苟且之謂 熊氏曰 人有才貴乎有學 非學無以充其才 有學貴乎有思 非思無以充其學 故後生可畏者 非以其才之難 旣能學而又能思者難也 夫義理散在簡冊之中 聖賢之言 不可以粗看 不可以淺窺 若鹵莽厭煩 則何由知聖賢用心 而窮其義理乎
[집해]鹵莽는 경박하고 구차함의 말이다. 웅씨가 말하였다. 사람이 재주를 소유하고 배움이 있음을 귀하에 여긴다. 배우지 않으면 그 재주를 채울 수 없다. 배움이 있으면 생각함을 귀하게 여긴다. 생각하지 않으면 그 배움을 채울 수 없다. 그러므로 후배가 두려워 할 만함은 그 재주의 어려움이 때문이 아니라 이미 배우고 또한 생각하는 자가 어려운 것이다. 대개 의리는 簡冊의 속에 흩어져 있고, 성현의 말은 대강 보아서는 안 되며, 얕게 엿 보아서도 안 되며. 만약 경박하고 번잡함을 싫어한다면 곧 무엇을 따라(어떻게) 성인의 마음 씀을 알아서 그 의리를 궁구할 수 있겠는가?
顔氏家訓曰 借人典籍 皆須愛護 先有缺壞 就為補治 此亦士大夫百行之一也
안씨 가훈에 말하였다. 다른 사람의 책을 빌리면 모두 반드시 애호하고, 먼저 빠지거나 해짐이 있으면 나아가 깁고 고쳐야 한다. 이는 또한 사대부의 모든 행실 중의 하나이다.
〔集解〕借人器物 皆須保護 況書籍乎 或先損壞 卽為修補完好 實士君子之一行也
[집해]다른 사람의 기물을 빌리면 보두 반드시 보호하는데 마물며 서적이겠는가? 혹 먼저 덜고 해진 것은 곧 고치고 완전하게 해야 하는 것은 진실로 선비와 군자의 한 가지 행실이다.
濟陽江祿讀書未竟 雖有急速 必待卷束整齊 然後得起 故無損敗 人不厭其求假焉
濟陽縣의 강록은 책을 읽다가 마치지 못하고 비록 급하고 빠름이 있어도 반드시 책을 묶고, 정리하여 가지런히 한 후 일어났다. 그러므로 덜고 무너짐이 없었으니 사람들이 그가 구하고 빌리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集解〕濟陽縣名 讀書雖遇急事 必整束而起 此亦可見其處事敬謹 宜乎人不厭其求借也
[집해]濟陽은 縣의 이름이다. 글을 읽다가 비록 급한 일을 만나도 반드시 정돈하고 묶고 일어났다. 이는 또한 그 일을 처리함의 공경하고 삼감을 보임이니 다른 사람이 그 구하고 빌림을 싫어하지 않음은 마땅하다.
或有狼藉几案 分散部秩(帙) 多為童幼婢妾所點汚 風雨虫鼠所毁傷 實為累德 吾每讀聖人書 未嘗不肅敬對之 其故紙 有五經詞義 及聖賢姓名 不敢他用也
혹 책상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고, 책의 권질이 나누어 흩어져 많이 아이들과 비첩들의 더럽히는 바 되고, 비, 바람, 벌레, 쥐에게 훼손 된 바 되니 진실로 덕에 누가 된다. 내가 매번 성인의 글을 읽으면서 일찍이 엄숙하고 공경히 대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그 옛 종이에는 5경의 말과 뜻과 성현의 성명이 있어 감히 다른데 쓰지 않았다.
〔集解〕狼藉草而臥去則穢亂 故物之散亂曰狼藉 部秩書冊卷帙也 汚毁經書 實累大德 故顔氏書 以為世戒 且云舊紙 有經書之文 聖賢之姓名 皆不敢別用 所以廣敬也
[집해]승냥이가 풀을 깔고 누웠다가 가면 곧 더러워지고 어지럽게 된다. 그러므로 물건의 흩어져 어지러운 것을 狼藉라 한다. 部秩은 서책의 卷帙이다. 경서를 더럽히고 어지럽게 하는 것은 실로 큰 덕에 누가 된다. 그러므로 안씨가 글로써 대대로 경계한 것이다. 또 말하였다. 옛날 종이에는 경서의 글과 성현의 성과 이름이 있어 모두 감히 다른 데 쓰지 못하니 경을 넓힌 것이다.
明道先生曰 君子敎人有序 先傳以小者近者 而後敎以大者遠者 非是先傳以近小而後 不敎以遠大也
명도선생이 말하였다. 군자가 사람을 가르침은 차례가 있으니 먼저 작은 것과 가가운 것으로써 전하고 후에 크고 먼 것을 가르친다. 이는 먼저 가깝고 작은 것으로써 전한 후에 먼 것과 큰 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 아니다.
〔增註〕小者近者謂灑掃應對之節 大者遠者謂明德新民之事
[증주]小者近者는 물뿌리고 비질하며, 응대하는 절차를 말하고, 大者遠者는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을 말한다.
明道先生曰 道之不明 異端害之也 昔之害近而易知 今之害深而難辨 昔之惑人也 乘其迷暗 今之入人也 因其高明
명도선생이 말하였다. 도의 밝지 않음은 이단이 그를 해치기 때문이다. 옛 날의 해침은 가까워서 알기 쉬웠는데 지금의 해침은 깊어서 분별하기 어렵다. 옛 날의 사람을 미혹하게 함은 그 혼미하고 어두움에 편승하였으나 지금의 사람에게 들어감은 그 높고 밝음에 기인한다.
〔集解〕道者聖人之道也 異端非聖人之道 而別為一端 如楊墨老佛是也 葉氏曰 昔之害謂楊墨 今之害謂佛氏 淺近故迷暗者為所惑 深微故高明者反陷其中
[집해]道는 성인이 말이다. 異端은 성인의 도가 아니고 따로 한 가지 단서가 되니 양주, 묵적, 노장, 불교 같은 것이 이것이다. 섭씨가 말하였다. 昔之害는 양주와 묵적을 말하고, 今之害는 불교를 말한다. 얕고 가깝기 때문에 혼미하고 어두운 자가 미혹하게 되고, 깊고 은미하기 때문에 높고 밝은 자가 도리어 그 안에 빠진다.
自謂之窮神知化 而不足以開物成務 言為無不周徧 實則外於倫理 窮深極微 而不可以入堯舜之道 天下之學 非淺陋固滯則必入於此
스스로 말하기를 신묘함을 궁구하고 변화를 안다 하되 사물을 열고 일을 이룸에는 부족하고, 말은 두루하지 않음이 없다 말하나 실제는 곧 윤리를 벗어난다. 깊음을 다하고 은미함을 지극히 하되 요순의 도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천하의 학문이 얕고 좁으며 굳게 막힘이 아니면 곧 반드시 여기에 들어간다.
〔集說〕陳氏曰 言為夏氏以為所言所為也 佛氏自謂通神明之德 知變化之道 語大包法界 語小入微塵 或陳說道德 指陳心性 皆朱子所謂彌近理 而大亂眞者也 開物謂人所未知者開發之 成務謂人之欲為者成全之 如三皇五帝造書契 敎稼穡制衣裳宮室之類是也 倫理謂父子君臣夫婦長幼朋友之倫 有親義別序信之理也 堯舜之道 卽倫理也 淺陋固滯如刑名術數之說 記誦詞章之習皆是 道不明 天下之學 不入於淺陋固滯 必入於佛氏之空寂
진씨가 말하였다. 言爲를 하씨는 말하는 바와 하는 바로 여겼다. 佛氏는 스스로 말하기를 신명의 덕에 통하고 변화의 도를 하고, 크게 말하면 법계를 포함하고, 적게 말하면 미진에 들어가며 혹은 도덕을 펴 말하고, 심성을 가리켜 말하니 모두 주자의 이른바 매우 이치에 가까워서 참됨을 크게 어지럽히는 것이다. 開物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바를 개발함을 말한다. 成務는 사람의 하고자함을 이루어 온전히 함을 말함이니 마치 三皇五帝가 書契(글자)를 만들고 농사, 옷 만드는 법, 궁실 따위를 만드는 법을 가르진 것 같은 것이 이것이다. 倫理는 父子, 君臣, 夫婦, 長幼, 朋友의 차례이다. 요와 순의 도가 곧 윤리이다. 淺陋固滯는 형벌의 이름과 술수의 말이니 기억하여 외우는 詞章(시가와 문장)의 익힘과 같은 것이다 모두 이것이다. 도가 밝지 않아 천하의 학문이 얕고 좁으며 굳게 막힘에 들지 않으면 반드시 불교의 空寂에 들어간다.
自道之不明也 邪誕妖妄之說競起 塗生民之耳目 溺天下於汚濁 雖高才明智 膠於見聞 醉生夢死 不自覺也
도의 밝지 않음으로부터 간사하고 허탄하며 요망한 학설이 다투어 일어나 백성의 귀와 눈을 막아 천하를 더럽고 흐림에 빠트리니 비록 재주가 높고 지혜가 밝을 지라도 보고 들음을 더럽혀 취한들 살다가 꿈꾸듯 죽어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增註〕楊墨老佛皆邪誕妖妄之說也 塗猶塞也 溺猶陷也 膠猶泥也 覺悟也 言其迷溺之深 如醉如夢 自生至死而不悟也
[증주]양주와 묵적, 老莊과 불교가 모두 사특하고 허탄하며 요망한 학설이다. 塗는 塞(막음)과 같다. 溺은 陷(빠지다)과 같고, 膠은 泥(더럽혀지다)와 같다. 覺은 깨달음이다. 혼미하고 빠짐의 깊음이 취한 듯하고, 꿈꾸는 듯하여 나면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깨닫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是皆正路之蓁蕪 聖門之蔽塞 闢之而後可以入道
이는 모두 바른 길이 풀이 무성하여 거칠어짐이니 성인 문하의 가리고 막힘을 연 후에 도에 들어갈 수 있다.
〔集說〕吳氏曰 正路喩聖道 蓁草盛貌 蕪荒也 闢開也 言學者欲由聖道入聖門 必先除其蓁蕪 開其蔽塞 則大道廓如 而人可得而行也
[집설]오씨가 말하였다. 正路는 성인의 도를 비유한 것이다. 蓁은 풀이 무성한 모양이고, 闢은 여는 것이다. 배우는 자가 성인의 도로부터 성인의 문하에 들어가고자 함에 반드시 먼저 그 풀이 무성하고 거칠어짐을 제거하고, 그 가리고 막힘을 열면 곧 큰 도가 넓혀져서 사람이 터득하여 행할 수 있다.
右廣敬身
이상은 敬身을 넓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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