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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

소학집주 발

by 최인표 2020. 8. 19.

小學集註跋

古者小學 始敎八歲之蒙 想其為言易知而其為敎易入也 三代之盛 其法必備 規模條制列於職官 而秦火之餘 其書不傳 晦菴夫子 閔人道之不立 嗟為學之無本 遂以聖人立敎之遺意 蒐輯經史 編為小學之書 由是小學之敎 復明於天下 誠垂世之大訓也

옛 날에 소학은 8세의 몽매한 이를 가르침에서 시작되었다. 생각하건데 그 말함을 쉽게 알고 그 가르침에 쉽게 들어 가게하기 위함 일 것이다. 삼대가 융성할 때는 그 법이 반드시 갖추어져 규범의 조목과 제도가 職官에 나열되어 있었을 것이되 진나라의 불태움(焚書坑儒)의 나머지 그 글이 전해지지 않았다. 晦庵 선생이 사람의 도리가 확립되지 않음을 걱정하고 학문을 함의 근본이 없음을 탄식하여 마침내 성인이 가르침을 세우는 남은 뜻을 에서 수집하여 엮어 소학의 글로 삼았다. 이로부터 소학의 가르침이 다시 천하에 밝혀져 진실로 세상의 큰 가르침이 드리워졌다.

 

第次輯之書 出入古今 其精深簡奧之言 必有訓釋然後 其義可明 此集註之說 不得不作於後也 夫子以後 註家相踵 各有成書 然讀之者 咸病其不盡合於經意也 吾友德水李侯叔獻 謝事而歸 講道海山之陽 造士之規 悉擧成法 揭是書為入德之門 而且憂註說多門 莫歸于正

순서를 따라 모은 글이 옛날과 지금을 드나들고 정밀하고 깊으며 간략하고 오묘한 말이되 반드시 가르침과 해석이 있은 후에 그 뜻이 밝아(분명해)질 수 있으니 이에 주석에 모은 말을 후세에 짓지 않을 수 없었다. 夫子(선생) 이후로 주석한 사람들이 서로 따라 각기 글을 이룸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읽는 자는 모두 의 뜻에 모두 부합하지 않음을 병폐로(아쉽게) 여겼다. 내가 벗 덕수 이씨 이숙헌(율곡 이이)이 벼슬에서 물러나서 돌아가 海山의 남쪽에서 도를 강론하고 인물을 양성하는 규범을 모두 들어 법을 이루고 이 글을 들어 덕에 들어가는 문으로 삼고, 도한 주석의 말이 종류가 많아 바름에 돌아갈 수 없음을 근심하였다.

 

乃取諸家 刪繁萃要 集長去短 一以不反乎經旨 明白平實 而或詳或略 又以互相發焉 可謂執群言之兩端 而善於折衷者矣 間送于一二執友 與之詳訂 雖以渾之愚 亦得以反復焉 嗚呼 聖賢之書 何莫非服膺踐實之要 而小學之敎 加之幼穉之初 發良知而示趍向 正蒙養而培本原 先諸事為 無非家庭日用之常 童子受一日之敎 擧足之始 已立於循蹈之地 非如大學之方 兼有玩索之功 業廣而思深也

이에 여러 학자의 말을 취하여 번잡한 것은 깍고, 요긴한 것은 모아 장점은 모으고 단점은 제거하여 한결같이 경전의 뜻에 위배되지 않고 명백하면서 평이 하고 진실 되게 하여 혹은 자세하게 하고 혹은 간략히 하고, 또 서로 발명되게 하였으니 이른 바 여러 말의 두 끝을 잡고 잘 절충하였다고 할 만하다. 최근에 한 두 執友(동지)에게 보내 함께 자세히 정정하니 비록 어리석은 나라도 또한 반복할 수 있었다. ! 성현의 글이 어찌 가슴에 담아 실천하는 요점이 아님이 없겠는가마는 소학의 가르침을 어릴 때 더하여 良知를 계발하고 향함을 보여 바르게 어린이를 기르고 근본을 배양하여 여러 가지 일과 행위를 우선하니 가정의 날로 씀의 평상이 아님이 없다. 동자가 하루의 가르침을 받고 발을 드는 시작에 이미 따라 실천함의 자리에 서게 하니 대학의 방법은 깊이 연구하는 공을 겸함이 있어 이 넓고 생각이 깊은 것과는 같지 않다.

 

然則讀是書者 不難於解其義 而專於習其事 不貴於說話鋪 而主於深體力行 要使明倫敬身之意 浹洽於中 淪肌浹髓 日用之間事親從兄 卽見孝悌之當然 如着衣嚼飯 無待於外求 則所謂涵養純熟 根基深厚者 可得而言也

그러한 즉 이 글을 읽는 자가 그 뜻을 해석하기에 어렵게 여길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일을 익혀서 말을 펼침을 귀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깊이 체득하고 힘써 행함을 주장해야 한다. 요컨대 明倫敬身의 뜻을 마음속에 무젖게 하여 피부에 빠지고, 골수에 무젖게 하여 날로 쓰는 사이에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따르는 것이 효와 공경을 당연하게 여겨 마치 옷을 입고 밥을 씹으며 밖에서 구함을 기다리지 않으면 곧 이른바 순수하고 익숙함을 함양하여 근본과 기반이 깊고 두텁다고 말할 수 있다.

 

童子固宜服事純實如是 至於過時而學 失序追補者 尤不可以不知此意也 渾晩暮收拾 根本不立 竊有感於夫子妙敬無窮之旨 每以嘗試責勉之工程 自訟於心者久矣 叔獻書來 徵跋文於余 旣不敢辭 則書其說 以諗之云 昌寧成渾跋

동자가 진실로 의복을 마땅하게 하고 일을 순수하고 성실하게 하기를 이 같이 해야 한다. 때를 지나 배움에 이르고, 차례를 잃고 따라 돕는 자는 더욱 이러한 뜻을 알지 못해서는 안된다. 내가 늦어서 수습하여 근본이 서지 않고 가만히 부자의 오묘한 공경과 다하지 않음의 가르침에 감동함이 있어서 매번 일찍이 시험하고 꾸짖으며 힘쓰는 공정으로써 스스로 마음에 쟁송한 것이 오래 되었다. 숙헌의 글을 보내 나에게 발문을 구하니 이미 감히 사양할 수 없어 말을 써서 고 한다.

창녕 성혼이 跋文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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