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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

제51회 조인은 동오 군대와 크게 싸우고, 제갈공명은 주공근(주유)을 화나게 하다.

by 최인표 2020. 9. 7.

第五十一回曹仁大戰東吳兵孔明一氣周公瑾

51회 조인은 동오 군대와 크게 싸우고, 제갈공명은 주공근(주유)을 화나게 하다.

 

卻說孔明欲斬雲長玄德曰:「昔吾三人結義時誓同生死今雲長雖犯法不忍違卻前盟望權記過容將功贖罪。」孔明方纔饒了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관운장을 베려하였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옛날 우리 세 사람이 결의할 때 같이 살고 죽자고 맹세하였습니다. 지금 관운장이 비록 법을 범하였으나 차마 앞의 맹세를 어길 수 없습니다. 임시로 허물을 기록해 두었다가 장차 공을 세워 죄를 대신하게 할 것을 바랍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비로소 용서하였다.

 

且說周瑜收軍點將各各敘功申報吳侯所得降卒盡皆發付渡江大犒三軍遂進兵攻取南郡前隊臨江下寨前後分五營周瑜居中

각설하고 주유는 군대를 거두고 장수를 점검하여 각각 공적을 평정하여 오후에게 보고하였다. 얻은 바의 항복한 병졸은 모두 강을 건널 수 있는 문서를 발부하였다. 크게 맛있는 음식을 삼군에게 내어주고 마침내 진군하여 남군을 공격하여 점령하게 하였다. 앞 부대가 강에 임하여 영채를 세우고 앞뒤로 다섯 개 군영으로 나누었다. 주유는 가운데 있었다.

 

瑜正與眾商議征進之策忽報:「劉玄德使孫乾來與都督作賀。」瑜命請入乾施禮畢:「主公特命乾拜謝都督大德有薄禮上獻。」瑜問曰:「玄德在何處?」乾答曰:「現移兵屯油江口。」瑜驚曰:「孔明亦在油江否?」乾曰:「孔明與主公同在油江。」瑜曰:「足下先回某自來相謝也。」

주유가 바로 무리들과 정벌하여 진군할 계책을 상의하는데 홀연히 보고하기를 유현덕이 손건을 시켜 도독에게 축하하러 왔습니다.”했다. 주유가 들어오게 하였다. 손건이 예를 베풀기를 마치고 말하기를 주공께서 저에게 명하시어 도독의 큰 덕을 감사하고 소박한 예물을 올리라.”하였습니다. 주유가 물어 말하기를 유현덕은 어디에 있습니까?”하니 손건이 답하여 말하기를 현재 군대를 옮겨 유강 어귀에 주둔하고 있습니다.”했다. 주유가 놀라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또한 유강에 있습니까?”하니 손건이 말하기를 제갈공명과 주공은 함께 유강에 있습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그대는 먼저 돌아가시오. 내가 직접 가서 감사할 것입니다.”했다.

 

瑜收了禮物發付孫乾先回肅曰:「卻纔都督為何失驚?」瑜曰:「劉備屯兵油江必有取南郡之意我等費了許多軍馬用了許多錢糧目下南郡垂手可得彼等心懷不仁要就見成須放著周瑜不死!」肅曰:「當用何策退之?」瑜曰

 

주유가 예물을 거두고 손건이 먼저 돌아가게 하였다. 노숙이 말하기를 방금 전 도독께서는 어찌하여 놀랐습니까?”하니 주유가 말하기를 유현덕이 군대를 유강에 주둔시킨 것은 반드시 남군을 취하려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허다한 군마를 허비하고, 허다한 돈과 곡식을 써서 지금 남군에 손을 드리워 얻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들은 마음으로 不仁을 품고 지금 있는 그대로 나아가려 하니 내가 죽지 않는 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어떤 계책을 써서 물러나게 하려합니까?”하니 주유가 말하기를 내가 직접 가서 그들과 말하겠습니다. 그들이 좋아하면 좋겠지만 좋아하지 않을 때는 그들이 남군을 취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먼저 유현덕을 죽여 막을 것입니다.”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제가 함께 가기를 원합니다.”했다. 이에 주유가 노숙과 함께 날랜 기병 삼천 명을 이끌고 유강 어귀로 들어갔다.

 

先說孫乾回見玄德言周瑜將親來相謝玄德乃問孔明曰:「來意若何?」孔明笑曰:「那裏為這些薄禮肯來相謝止為南郡而來。」玄德曰:「他若提兵來何以待之?」孔明曰:「他來便可如此如此答應。」遂於油江口擺開戰船岸上列著軍馬

먼저 손건이 돌아 와 유현덕을 뵙고 주유가 장차 직접 와서 사례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유현덕이 이에 제갈공명에게 물어 말하기를 오는 뜻은 무엇입니까?”하니 제갈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그 먼 곳에서 변변치 못한 선물 때문에 즐겨 사례하러 오겠습니까? 다만 남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그들이 만약 군대를 데리고 오면 어떻게 대우해야 합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그가 오면 곧 이렇게 저렇게 응답해야 합니다.”했다. 마침내 유강 어귀에 전선을 벌여놓고 강가에는 군마를 벌여 세웠다.

 

人報:「周瑜魯肅引兵到來。」孔明使趙雲領數騎來接瑜見軍勢雄壯心甚不安行至營門外玄德孔明迎入帳中各敘禮畢設宴相待玄德舉酒致謝鏖兵之事

사람이 보고하기를 주유, 노숙이 군대를 이끌고 이르렀습니다.”하니 제갈공명이 조자룡으로 하여금 기병 몇을 거느리고 가서 영접하게 하였다. 주유는 군대의 형세가 웅장한 것을 보고 미음이 매우 불안하였다. 행군하여 진영 문 밖에 이르자 유현덕과 제갈공명이 맞이하여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각자 예를 베풀기를 마치고, 연회를 베풀어 대접하였다. 유현덕이 술잔을 들고 격렬한 대규모 전투의 일에 대하여 감사를 표하였다.

 

酒至數巡瑜曰:「豫州移兵在此莫非有取南郡之意否?」玄德曰:「聞都督欲取南郡故來相助若都督不取備必取之。」瑜笑曰:「吾東吳久欲吞併漢江今南郡已在掌中如何不取?」玄德曰:「勝負不可預定曹操臨歸今曹仁守南郡等處必有奇計更兼曹仁勇不可當但恐都督不能取耳。」瑜曰:「吾若取不得那時任從公取。」玄德曰:「孔明子敬在此為證都督休悔。」

술이 몇 차례 돌고 난 후 주유가 말하기를 예주(유현덕)가 군대를 옮겨 여기에 있는 것은 남군을 취하려는 뜻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도독께서 남군을 취하려 한다는 것을 듣고 도우러 왔습니다. 만약 도독께서 취하지 않으시면 제가 반드시 남군을 취할 것입니다.”했다. 주유가 웃으며 말하기를 우리 동오는 오래 동안 한강을 병탄하려 하였는데 지금 남군이 이미 손바닥에 있으니 어찌 취하지 않겠습니까?”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이기고 지는 것은 미리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조조는 돌아가고, 지금 조인이 남군 등지를 지키고 있는데 반드시 기이한 계책이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조인은 용맹을 겸하여 감당할 수 없으니 도독께서 취하지 못할까 두려울 뿐입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내가 만약 취하여 얻지 못한다면, 어느 때든 공(유현덕)이 취하는 것에 맡기겠습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제갈공명과 자경(노숙)이 여기에 있어 증명할 것이니 도독께서는 후회하지 마십시오.”했다.

 

魯肅躊躇未對瑜曰:「大丈夫一言既出何悔之有!」孔明曰:「都督此言甚是公論先讓東吳去取若不下主公取之有何不可?」瑜與肅辭別玄德孔明上馬而去玄德問孔明曰:「卻纔先生教備如此回答雖一時說了展轉尋思於理未然我今孤窮一身無置足之地欲得南郡權且容身若先教周瑜取了城池已屬東吳矣卻如何得住?」孔明大笑曰:「當初亮勸主公取荊州主公不聽今日卻忘耶?」玄德曰:「前為景升之地故不忍取今為曹操之地理合取之。」孔明曰:「不須主公憂慮著周瑜去廝殺早晚教主公在南郡城中高坐。」玄德曰:「計將安出?」孔明曰:「只須如此如此。」玄德大喜只在江口屯紮按兵不動

노숙이 주저하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주유가 말하기를 대장부가 이미 한 마디 말을 내었으니 어찌 후회함이 있으리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도독의 이 말은 매우 옳고 공정한 논의입니다. 먼저 동오가 가서 취하는 것을 양보하셨다가 만약 함락시키지 못한다면 주공께서 취하는 것이 어찌 안 됨이(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했다. 주유와 노숙이 유현덕과 제갈공명을 하직하고 말에 올라갔다. 유현덕이 제갈공명에게 물어 말하기를 방금 선생께서 나로 하여금 이 대답하게 하였는데 비록 한 때 말을 마쳤으나 이리저리 깊이 생각해보니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한 몸이 외롭고 곤궁하여 발을 둘 땅이 없기 때문에 남군을 얻어 임시로 몸을 의탁하려던 것이었습니다. 만약 먼저 주유로 하여금 취하게 한다면 성과 해자가 이미 동오에 속하는데 어떻게 얻어 머물 수 있겠습니까? 했다. 제갈공명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처음에 제가 주공에게 권하여 형주를 취하라 하였을 때 주공께서 듣지 않으셨는데 오늘은 잊으셨습니까?”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앞서는 경승(유표)의 땅이었기 때문에 차마 취하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조조의 땅이 되었으니 그것을 취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근심할 필요 없습니다. 어떻든 주유에게 가서 싸우게 하더라도 조만간에 주공으로 하여금 남군 성 안의 높은 자리에 계시게 할 것입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계책을 어떻게 내려 합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다만 이렇게 저렇게 하기만 하면 됩니다.”했다. 유현덕이 크게 기뻐하며 다만 강어귀에 주둔해 있으면서 군대를 살피며 움직이지 않았다.

 

卻說周瑜魯肅回寨肅曰:「都督如何亦許玄德取南郡?」瑜曰:「吾彈指可得南郡落得虛做人情。」隨問帳下將士:「誰敢先取南郡?」一人應聲而出乃蔣欽也瑜曰:「汝為先鋒徐盛丁奉為副將撥五千精銳軍馬先渡江吾隨後引兵接應。」

각설하고 주유와 노숙은 영채로 돌아왔다. 노숙이 말하기를 도독께서는 어찌하여 쉽게 유현덕에게 남군을 취하는 것을 허락하였습니까?”하니 주유가 말하기를 나는 손가락을 튕기는 시간이면 남군을 얻을 수 있으니 빈말로 선심을 쓴 것입니다.”하고는 이어 부하 장사에게 묻기를 누가 용감하게 앞장 서 남군을 취하겠는가?”했다. 한 사람이 대답하며 나왔는데 곧 장흠이었다. 주유가 말하기를 네가 선봉이 되고, 서성, 정봉은 부장이 되어 오천의 정예 군마를 뽑아 먼저 강을 건너라. 내가 뒤를 따라 군대를 이끌고 호응할 것이다.” 했다.

 

且說曹仁在南郡分付曹洪守彝陵以為犄角之勢人報:「吳兵已渡漢江。」仁曰:「堅守勿戰為上。」驍騎牛金奮然進曰:「兵臨城下而不出戰是怯也況吾兵新敗正當重振銳氣某願借精兵五百決一死戰。」仁從之令牛金引五百軍出戰丁奉縱馬來迎約戰四五合奉詐敗牛金引軍追趕入陣奉指揮眾軍一裏圍牛金於陣中金左右衝突不能得出曹仁在城上望見牛金困在垓心遂披甲上馬引麾下壯士數百騎出城奮力揮刀殺入吳陣徐盛迎戰不能抵當曹仁殺到垓心救出牛金回顧尚有數十騎在陣不能得出遂復翻身殺入救出重圍正遇蔣欽攔路曹仁與牛金奮力衝散仁弟曹純亦引兵接應混殺一陣吳軍敗走曹仁得勝而回

각설하고 조인은 남군에 있으면서 조홍에게 분부하여 이릉을 지키게 하여 양쪽에서 적을 공격하려는 형세를 만들었다. 사람이 보고하기를 오나라 군대가 이미 한강을 건넜습니다.”하니 조인이 말하기를 굳게 지키고 싸우지 않은 것이 좋은 계책이다.”하고는 효기 우금이 떨치고 나아가 말하기를 군대가 성 아래 이르렀는데 나가 싸우지 않는 것은 이는 겁내는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군대가 새롭게 패하였으니 바로 날카로운 기세를 다시 떨치는 것이 마땅합니다. 저에게 오백 명의 정예군사를 빌려주시면 죽음을 무릅쓰고 싸울 것을 원합니다.” 했다. 조인이 그것을 따라 우금으로 하여금 오백 명의 군대를 이끌고 나가 싸우게 했다. 정봉이 말을 달려 와 맞이하였다. 대략 사, 오합을 싸우고 정봉은 거짓으로 패한 척하니 우금이 군대를 이끌고 뒤를 쫓아 진으로 들어갔다. 정봉이 여러 군대를 지휘하여 우금을 진 안으로 끌어 들여 포위하였다. 우금이 좌충우돌하였으나 벗어날 수 없었다. 조인이 성 위에서 우금이 싸움터 한가운데서 곤궁한 것을 바라보고는 마침내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휘하 장사 수백 기를 이끌고 성을 나가 힘을 떨쳐 칼을 휘둘렀다. 오나라 진영에 힘있게 돌진 해 들어갔다. 서성이 맞아 싸웠는데 막아내지 못하였다. 조인이 싸움터 한가운데로 쇄도 해 들어 가 우금을 구하여 나오면서 돌아보니 아직도 수십 기가 진에 있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내 다시 몸을 뒤집어 세차게 돌진 해 들어가 구하여 여러 겹의 포위를 벗어나는데 마침 장흠이 길을 막고 있는 것을 만났다. 조인과 우금이 힘있게 쫓아 흩었다. 조인의 동생 조순이 또한 군대를 이끌고 호응하였다. 한바탕 섞여 싸우니 오나라 군은 패하여 달아나고, 조인은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다.

 

蔣欽兵敗回見周瑜瑜怒欲斬之眾將告免

장흠의 군대는 패하고 돌아가 주유를 뵈니 주유가 노하여 베어 죽이려 하였는데 여러 장수들이 면하여 줄 것을 말하였다.

 

瑜即點兵要親與曹仁決戰甘寧曰:「都督未可造次今曹仁令曹洪據守彝陵為犄角之勢某願以精兵三千徑取彝陵都督然後可取南郡。」

주유는 곧 군대를 점검하여 직접 조인과 결전하고자 하였다. 감녕이 말하기를 도독께서는 급작스럽게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조인은 조홍으로 하여금 이릉에 웅거하게 하여 양면작전의 태세를 만들고 있습니다. 제가 정예 군대 삼천 명으로 지름길로 가 이릉을 취하기를 원합니다. 도독께서는 그런 후에 남군을 취할 수 있습니다.”했다.

 

瑜服其論先教甘寧引三千兵攻打彝陵早有細作報知曹仁仁與陳矯商議矯曰:「彝陵有失南郡亦不可守矣宜速救之。」仁遂令曹純與牛金暗地引兵救曹洪曹純先使人報知曹洪令洪出城誘敵甘寧引兵至彝陵洪出與甘寧交鋒戰有二十餘合洪敗走寧奪了彝陵至黃昏時曹純牛金兵到兩下相合圍了彝陵

주유는 그 논의를 받아들여 먼저 감녕으로 하여금 삼천의 군대를 이끌고 이릉을 공격하여 쳤다. 세작이 있어서 조인에게 보고하니 조인은 진교와 상의하였다. 진교가 말하기를 이릉을 잃으면 남군을 또한 지킬 수 없습니다. 속히 구원하는 것이 마땅합니다.”했다. 조인이 마침내 조순과 우금으로 하여금 몰래 군대를 이끌고 조홍을 구원하게 하였다. 조순이 먼저 사람을 시켜 조홍에게 알리고 조홍으로 하여금 성을 나와 적을 유인하게 하였다. 감녕이 군대를 이끌고 이릉에 이르니 조홍이 나와 감녕과 싸웠다. 싸운지 이십여합에 조홍이 패하여 달아났다. 감녕이 이릉을 빼앗았다. 날이 저물 때에 이르러 조순, 우금의 군대가 이르니 두 군대가 합하여 이릉을 포위하였다.

 

探馬飛報周瑜說甘寧困於彝陵城中瑜大驚程普曰:「可急分兵救之。」瑜曰:「此地正當衝要之處若分兵去救倘曹仁引兵來襲奈何?」呂蒙曰:「甘興霸乃江東大將豈可不救?」瑜曰:「吾欲自往救之但留何人在此代當吾任?」蒙曰:「留凌公續()當之蒙為前驅都督斷後不須十日必奏凱歌。」瑜曰:「未知凌公續()肯暫代吾任否?」凌統曰:「若十日為期可當之十日之外不勝其任矣。」

척후 기병이 주유에게 보고하여 감녕이 이릉 성 중에서 곤궁하다고 말하니 주유가 크게 놀랐다. 정보가 말하기를 급히 군대를 나누어 그들을 구원해야 합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이 땅은 바로 요충에 해당하는 곳인데 만약 군대를 나누어 구원하러 갔을 때 만약 조인이 군대를 이끌고 습격해 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니 여몽이 말하기를 감흥패(감녕)는 곧 강동의 대장이니 어찌 구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내가 직접 가서 구원하고자 한다. 다만 누구를 여기에 머물러 있게 하여 내 임무를 대신 맡게 하는 것이 마땅한가?”했다. 여몽이 말하기를 능공적(능통)을 머물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여몽을 앞에 가게하고, 도독이 뒤를 끊으면 십일이 되지 않아 반드시 승전가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능통이 즐겨 잠시 내 임무를 대신하여 맡을지 알지 못하겠다.”하니 능통이 말하기를 만약 십일을 기일로 하면 감당할 수 있으나 십일이 넘으면 그 임무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했다.

 

瑜大喜遂留兵萬餘付與凌統即日起大兵投彝陵來蒙謂瑜曰:「彝陵南僻小路取南郡極便可差五百軍去砍倒樹木以斷其路彼軍若敗必走此路馬不能行必棄馬而走吾可得其馬也。」

주유가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군대 만 여명을 남겨두어 능통에게 주고, 그날 큰 군대를 일으켜 이릉으로 갔다. 여몽이 주유에게 말하기를 이릉 남쪽의 궁벽한 작은 길로 가서 남군을 취하는 것이 지극히 편합니다. 오백 명의 군대를 보내 나무를 베어 넘너뜨리는 것으로서 그 길을 끊어야 합니다. 그들은 군대가 만약 패한다면 반드시 이 길로 달아날 것인데, 말이 다닐 수 없어 반드시 말을 버리고 달아날 것이니 우리는 그 말을 얻을 수 있습니다.”했다.

 

瑜從之差軍去訖大兵將至彝陵瑜問:「誰可突圍而入以救甘寧?」周泰願往即時綽刀縱馬直殺入曹軍之中逕到城下甘寧望見周泰至自出城迎之泰言:「都督自提兵至。」寧傳令教軍士嚴裝飽食準備內應

주유가 그것을 따라 군대를 보냈다. 큰 군대가 장차 이릉에 이르려 할 때 주유가 묻기를 누가 포위를 뚫고 들어가서 감녕을 구할 수 있는가?”했다. 주태가 가기를 원하므로 즉시 칼을 움켜쥐고 말을 달려 곧바로 조조 군대 안으로 세차게 치고 들어 가 빠르게 성 아래에 이르렀다. 감녕이 주태가 이르는 것을 바라보고는 스스로 성을 나가 그를 맞이하였다. 주태가 말하기를 도독이 직접 군대를 데리고 이르렀습니다.”했다. 감녕이 군사들로 하여금 엄격하게 무장하고, 배불리 먹게 한 다음 안에서 호응할 것을 준비하게 하였다.

 

卻說曹洪曹純牛金聞周瑜兵將至先使人往南郡報知曹仁一面分兵拒敵及吳兵至曹兵迎之比及交鋒甘寧周泰分兩路殺出曹兵大亂吳兵四下掩殺曹洪曹純牛金果然投小路而走卻被亂柴塞道馬不能行盡皆棄馬而走吳兵得馬五百餘匹周瑜驅兵星夜趕到南郡正遇曹仁軍來救彝陵兩軍接著混戰一場天色已晚各自收兵

각설하고 조홍, 조순, 우금은 주유의 군대가 장차 이를 것이라는 것을 듣고, 먼저 사람을 시켜 남군에 가 조인에게 보고하는 한편으로 군대를 나누어 적을 막게 하였다. 오나라 군대가 이름에 미쳐서 조홍의 군대가 그들을 맞이하였다. 싸움에 이르러서 감녕과 주태가 길을 나누어 싸우며 나오니 조홍의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오나라 군대가 사방에서 엄습하였다. 조홍, 조순, 우금이 과연 작은 길로 들어가 달아나는데 어지러운 나무들로 길이 막히자 말이 갈 수 없자 모두 말을 버리고 달아났다. 오나라 군대는 말 오백여필을 얻었다. 주유가 군대를 몰아 밤을 새워 쫓아 남군에 이르렀는데 마침 이릉을 구원하러 오는 조인의 군대를 만났다. 두 군대가 연이어 한바탕 섞여 싸웠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각자 군대를 거두었다.

 

曹仁回城中與眾商議曹洪曰:「目今失了彝陵勢已危急何不拆丞相遺計觀之以解此危?」曹仁曰:「汝言正合吾意。」遂拆書觀之大喜便傳令教五更造飯平明大小軍馬盡皆棄城城上遍插旌旗虛張聲勢軍分三門而出

조인이 성 안으로 돌아가 무리들과 상의하였다. 조홍이 말하기를 지금 이릉을 잃어 형세가 이미 위급한데 어찌하여 승상이 남긴 계책을 보는 것으로서 이 위태로움을 풀지 않으십니까?”했다. 조인이 말하기를 너의 말이 바로 내 뜻에 부합한다.”하고는 마침내 글을 뜯어보고는 크게 기뻐하여 곧 명령을 내려 오경에 밥을 지어 먹고, 날이 밝으면 크고 작은 군마들은 모두 성을 버리게 하였는데 성 위에는 둘레에 깃발을 꼿아 허장성세를 이루고 군대를 세 개의 문으로 나누어 나가게 했다.

 

卻說周瑜救出甘寧陳兵於南郡城外見曹兵分三門而出瑜上將臺觀看只見女牆邊虛插旌旗無人守護又見軍士腰下各束縛包裏瑜暗忖曹仁必先準備走路遂下將臺號令分布兩軍為左右翼如前軍得勝只顧向前追趕直待鳴金方許退步命程普督後軍瑜親自引軍取城對陣鼓聲響處曹洪出馬搦戰瑜自至門旗下使韓當出馬與曹洪交鋒戰到三十餘合洪敗走曹仁自出接戰周泰縱馬相迎鬥十餘合仁亦敗走陣勢錯亂

각설하고 주유가 감녕을 구출하여 군대를 남군 성 밖에 진쳤다. 조인의 군가 나누어 세 개의 문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주유가 장대에 올라 보았다. 여장 가에 헛되이 깃발을 꼿았으나 지키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았고, 또 군사들 허리에 각각 꾸러미를 묶고 있는 것을 보았다. 주유는 마음속으로 조인이 먼저 달아날 길을 준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마침내 장대를 내려와 두 군대를 나누어 포진하여 좌우익으로 삼고, 만약 앞의 군대가 승리하면 오로지 앞을 향하여 추격하고 징이 울려야 비로소 물러서는 것을 허락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정보에게는 후군을 감독하도록 명령하고, 주유 자신은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성을 취하려 하였다. 마주한 진에서 북 소리가 울리자 조홍이 말을 타고 나와 싸움을 걸었다. 주유가 스스로 진영 문 깃발 아래 이르러 한당으로 하여금 말을 타고 나가 조홍과 싸우게 했다. 싸움이 삼십여 합에 이르자 조홍이 패하여 달아났다. 조인이 스스로 나와 싸웠다. 주태가 말을 타고 달려와 서로 맞이하였다. 싸운 지 십여 합에 조인이 h한 패하여 달아나니 진의 기세가 어지러워졌다.

 

周瑜麾兩翼軍殺出曹軍大敗瑜自引軍馬追至南郡城下曹軍皆不入城望西北而走韓當周泰引前部盡力追趕瑜見城門大開城上又無人遂令眾軍搶數十騎當先而入瑜在背後縱馬加鞭直入甕城陳矯在敵樓上望見周瑜親自入城來暗暗采道:「丞相妙策如神!」

주유가 양 쪽의 군대를 지휘하여 힘 있게 돌진하여 나가니 조인의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주유가 스스로 군마를 이끌고 추격하여 남군 성 아래에 이르니 조인의 군대가 모두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북쪽을 향하여 달아났다. 한당, 주태가 앞의 부대를 이끌고 힘을 다하여 뒤쫓았다. 주유는 성문이 활짝 열려있고, 성 위에도 또한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마침내 여러 군대로 하여금 성을 빼앗게 하였다. 수십 명이 말을 타고 앞장 서 들어갔다. 주유는 뒤에 있으면서 말을 타고 채찍을 가하면서 곧바로 옹성에 들어갔다. 진교가 적루 위에 있다가 주유가 직접 성에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고 몰래 갈채를 보내며 말하기를 승상의 현묘한 계책은 신과 같구나!”했다.

 

一聲梆子兩邊弓弩齊發勢如驟雨爭先入城的左手部右為顛入陷坑內周瑜急勒馬回時被一弩箭正射中左肋翻身落馬牛金從城中殺出來捉周瑜徐盛丁奉二人捨命救去城中曹兵突出吳兵自相踐踏落塹坑者無數程普急收軍時曹洪曹仁分兵兩路殺回吳兵大敗幸得凌統引一軍從刺斜裏殺來敵住曹兵曹仁引得勝軍進城程普收敗軍回寨

한 소리 방자가 울리자 양쪽에서 궁노를 일제히 발사하니 기세가 비가 쏟아지는 것과 같았다. 다투어 성에 들어가던 군사들이 구덩이 안에 빠졌다. 주유가 급히 고삐를 당겨 말을 돌릴 때 하나의 쇠뇌 화살에 왼쪽 옆구리에 적중하자 몸을 뒤집으며 말에서 떨어졌다. 우금이 성 안에서 힘차게 달려 나와 주유를 잡았다. 서성과 정봉 두 사람이 목숨을 걸고 구원해 갔다. 성 안에서 치고 나오니 오나라 군대가 스스로 서로 밟고, 구덩이에 떨어진 자가 헤아릴 수 없었다. 정보가 급히 군대를 거둘 때 조홍, 조인이 군대를 나누어 두 길로 쳐들어 오자 오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다행히 능통이 한 군대를 이끌고 비스듬히 치고 들어 와 조인의 군대를 막았다. 조인이 승리를 거둔 군대를 이끌고 성에 들어가니 정보가 패한 군대를 이끌고 영채로 돌아갔다.

 

徐二將救得周瑜到帳中喚行軍醫者用鐵鉗子拔出箭頭將金瘡藥敷掩瘡口不可當飲食俱廢醫者曰:「此箭頭上有毒急切不能痊可若怒氣沖激其瘡復發。」程普令三軍緊守各寨不許輕出三日後牛金引軍來搦戰程普按兵不動牛金罵至日暮方回次日又來罵程普恐瑜生氣不敢報知第三日牛金直至寨門外叫罵聲聲只道要捉周瑜程普與眾商議欲暫且退兵回見吳侯卻再理會

정봉과 서성 두 장수가 주유를 구하여 장막 안에 이르러 종군 의원을 불러 쇠 겸자를 써서 화살촉을 뽑고 금창약을 상처의 터진 자리에 발랐으나 아픔을 간당할 수 없어 마시고 먹을 수 없었다. 의원이 말하기를 이 화살촉에는 독이 있으니 단 번에 병이 나을 수 없습니다. 만약 노한 기운이 솟구치면 그 상처가 다시 터질 것입니다.”했다. 정보가 삼군으로 하여금 각 영채를 엄중히 지키게 하고, 가벼이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삼일 후 우금이 군대를 이끌고 와 싸움을 걸었으나 정보는 군대를 살펴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우금이 욕하다 날이 저물다 비로소 돌아가고, 다음날 또 와서 욕을 하여 싸움을 걸었다. 정보는 주유가 성을 낼 것을 두려워하여 감히 보고하지 못하였다. 제 삼일에 우금이 곧바로 영채 문 밖에 이르러 큰 소리로 욕을 하는데 소리 소리마다 말하는 것이 주유를 잡으러 왔다는 것일 뿐이었다. 정보가 무리들과 상의하여 잠시 군사를 물려 돌아가 오후를 뵙고 다시 결말을 내려하였다.

 

卻說周瑜雖患瘡痛心中自有主張已知曹兵常來寨前叫罵卻不見眾將來稟一日曹仁自引大軍擂鼓吶喊前來搦戰程普拒住不出周瑜喚眾將入帳問曰:「何處鼓譟吶喊?」眾將曰:「軍中教演士卒。」瑜怒曰:「何欺我也吾已知曹兵常來寨前辱罵程德謀既同掌兵權何敢坐視?」遂命人請程普入帳問之普曰:「吾見公瑾病瘡醫者言勿觸怒故曹兵搦戰不敢報知。」瑜曰:「公等不戰主意若何?」普曰:「眾將皆欲收兵暫回江東待公箭瘡平復再作區處。」

각설하고 주유는 비록 상처의 통증이 근심되었으나 마음속으로는 스스로 주장할 것이 있었고, 이미 조인의 군대가 항상 영채 앞에 와서 큰 소리로 꾸짖는 것을 알았으나 여러 장수들이 와서 아뢰지 않았다.

 

瑜聽罷於床上奮然躍起曰:「大丈夫既食君祿當死於戰場以馬革裏屍還幸也豈可為我一人而廢國家大事乎?」言訖即披甲上馬諸軍眾將無不駭然遂引數百騎出營前望見曹軍已布成陣勢曹仁自立馬於門旗下揚鞭大罵曰:「周瑜孺子料必橫夭再不敢正覷我兵!」

주유가 듣기를 마치고 침상에서 분연히 뛰어 일어나 말하기를 대장부가 이미 임금의 록을 먹었으니 마땅히 전쟁터에서 죽어 말가죽으로 시체를 싸서 돌아가는 것은 행운이다! 어찌 나 한 사람을 위하여 국가의 큰일을 폐할 수 있겠는가?”했다. 말을 마치고는 곧 갑옷을 입고 말에 올랐다. 여러 군의 장수들이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마침내 수백 명의 군대를 이끌고 진영의 앞에 나섰다. 조인의 군대를 바라보니 이미 진세를 펴 이루었고, 조인이 스스로 말을 타고, 진영 깃발 아래 서서 채찍을 휘두르며 크게 욕하며 말하기를 주유 어린놈은 반드시 횡사하였을 것이니 다시 감히 우리 군대를 바로 보지 못하였을 것이다!”했다.

 

罵猶未絕瑜從群騎內突然出曰:「曹仁匹夫見周郎否!」曹軍看見盡皆驚駭曹仁回顧眾將曰:「可大罵之!」眾軍厲聲大罵周瑜大怒使潘璋出戰未及交鋒周瑜忽大叫一聲口中噴血墜於馬下曹兵衝來眾將向前抵住混戰一場救起周瑜回到帳中

욕하기를 오히려 그치지 않으니 주유가 여러 기병 안으로부터 갑자기 나와 말하기를 조인 필부구나! 주유를 보았는가!”했다. 조인의 군대가 보고 모두 크게 놀랐다. 조인이 여러 장수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크게 욕하라!”하니 여러 군사들이 사나운 소리로 크게 욕하였다. 주유가 크게 노하여 반장을 시켜 나가 싸우게 했다. 싸움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유가 홀연히 크게 한소리를 부르짖고는 입으로 피를 내뿜고 말에서 떨어졌다. 조인의 군대가 치고 오니 여러 장수들이 앞을 향해 막으면서 한바탕 섞여 싸우면서 주유를 구하여 일으켜 돌아가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程普問曰:「都督貴體若何?」瑜密謂普曰:「此吾之計也。」普曰:「計將安出?」瑜曰:「吾身本無甚痛楚吾所以為此者欲令曹兵知我病危必然欺敵可使心腹軍士去城中詐降說吾已死今夜曹仁必來劫寨吾卻於四下埋伏以應之則曹仁可一鼓而擒也。」程普曰:「此計大妙!」隨就帳下舉起哀聲眾軍大驚盡傳言都督箭瘡大發而死各寨盡皆挂孝

정보가 물어 말하기를 도독의 귀한 몸은 어떠합니까?” 주유가 몰래 정보에게 말하기를 이는 나의 계책이다.”하니 정보가 말하기를 어떤 계책을 쓰려하십니까?”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내 몸은 본래 크게 아팠던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이렇게 하였던 까닭은 조인의 군대로 하여금 내 병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게 하여 반드시 적을 속이고자 하였던 것이었다. 심복 군사로 하여금 선 안에 가서 거짓으로 항복하고, 내가(주유) 이미 죽었다고 말하게 하면 오늘 밤 조인은 반드시 와서 영채를 칠 것이다. 내가 사방에 매복하였다가 그에 대응하면 곧 조인은 북소리 한 번으로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했다. 정보가 말하기를 이 계책이 크게 현묘하군요!”하고는 계책에 따라 장막 아래 나아가 슬피 우는 소리를 내었다. 여러 군사들이 크게 놀라 모두 도독이 화살에 맞았던 상처가 크게 덧나 죽었다는 말을 전하면서 각각의 영채가 모두 상복을 입었다.

 

卻說曹仁在城中與眾商議言周瑜怒氣沖發金瘡崩裂以致口中噴血墜於馬下不久必亡

각설하고 조인은 성안에서 무리들과 상의하면서 주유가 노한 기운이 치솟아 금창이 찢어져 입으로 피를 뿜고 말에서 떨어졌으니 오래지 않아 반드시 죽을 것이라 말하였다.

 

正論間忽報:「吳寨內有十數個軍士來降中間亦有二人原是曹兵被擄過去的。」曹仁忙喚入問之軍士曰:「今日周瑜陣前金瘡碎裂歸寨即死今眾將皆已挂孝舉哀我等因受程普之辱故特歸降便報此事。」

논의하는 사이에 홀연히 보고하기를 오나라 영채 안에서 수십 명의 군사들이 와서 항복함이 있습니다. 그 중에 또한 두 사람은 원래 조조의 군대였다가 과거에 포로로 잡혔던 적이 있었다합니다.”했다. 조인이 황망히 불러들여 물었다. 군사가 말하기를 오늘 주유가 진 앞에서 금창이 찢어져 영채에 돌아오자 말자 죽었습니다. 지금 여러 장수들이 모두 이미 상복을 입고 곡을 합니다. 우리들은 정보에게 욕을 받았기 때문에 특히 항복하려 왔으니 곧 이 일을 보고해 주시오. 했습니다.”했다.

 

曹仁大喜隨即商議今夜便去劫奪周瑜之屍斬其首級送赴許都陳矯曰:「此計速行不可遲誤。」曹仁遂令牛金為先鋒自為中軍曹洪曹純為合後只留陳矯領些少軍士守城其餘軍兵盡起初更時出城逕投周瑜大寨來到寨門不見一人但見虛插旗槍而已情知中計急忙退軍四下砲聲齊發東邊韓當蔣欽殺來西邊周泰潘璋殺來南邊徐盛丁奉殺來北邊陳武呂蒙殺來曹兵大敗三路軍皆被衝散首尾不能相救

조인이 크게 기뻐하며 곧 오늘 밤 가서 (주유)의 영채를 빼앗고 주유의 시체를 빼앗아 그 수급을 베어 허도에 보낼 것을 상의하였다. 진교가 말하기를 이 계책은 속히 행동해야 하고 늦추어 잘못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했다. 조인이 마침내 우금을 선봉으로 삼고, 스스로는 중군이 되어 조홍, 조순을 후군으로 삼았다. 다만 진교에게는 작은 군사를 거느리고 성을 지키도록 머물게 하고 그 나머지 군사들은 모두 일으키게 하였다. 초경 때에 성에서 나와 지름길로 주유의 큰 영채에 들어갔다. 영채의 문에 이르렀는데 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다만 비어 있는 영채에 깃발과 창만이 꼿혀 있을 뿐이었다. 조인은 계책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급히 군대를 물렸다. 사방에서 포성이 일제히 일어나면서 동쪽에는 한당과 장흠이 달려 나오고, 서쪽에는 주태와 반장이 달려 나오고, 남쪽에는 서성과 정봉이 달려 나오고, 북쪽에서는 진무와 여몽이 달려 나왔다. 조인의 군대는 크게 패하고 세 길의 군대가 모두 흩어져 앞과 뒤가 서로 구원할 수 없었다.

 

曹仁引十數騎殺出重圍正遇曹洪遂引敗殘軍馬一同奔走殺到五更離南郡不遠一聲鼓響凌統又引一軍攔住去路截殺一陣曹仁引軍刺斜而走又遇甘寧大殺一陣曹仁不敢回南郡逕投襄陽大路而行吳軍趕了一程自回

조인이 수십 기를 이끌고 거듭된 포위망을 세차게 돌진하여 나가다 바로 조홍을 만나 마침내 패잔군과 말을 이끌고 함께 달아났다. 오경까지 세차게 달아나 남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르자 한 소리 북이 울리고 능통이 또한 한 부대를 이끌고 가는 길을 막으며 한바탕 힘을 다해 죽였다. 조인이 군대를 이끌고 옆으로 달아나는데 또 감녕이 한바탕 크게 죽였다. 조인이 감히 남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름길로 양양의 큰길로 나아갔다. 오나라 군대가 일정을 쫒다가 스스로 돌아왔다.

 

周瑜程普收住眾軍逕到南郡城下見旌旗布滿敵樓上一將叫曰:「都督少罪吾奉軍師將令已取城了吾乃常山趙子龍也。」

주유와 정보가 여러 군대를 거두어 지름길로 남군성 아래 이르니 깃발이 가득 펼쳐진 것을 보았는데 적루 위의 한 장수가 소리쳐 말하기를 도독께서는 탓하지 마십시오! 내가 군사의 명령을 받들어 이미 성을 취하였습니다. 나는 곧 상산 조자룡입니다.”했다.

 

周瑜大怒便命攻城城上亂箭射下瑜命且回商議使甘寧引數千軍馬逕取荊州凌統引數千軍馬逕取襄陽然後卻再取南郡未遲

주유가 크게 노하여 곧 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성 위에서 어지럽게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주유가 돌아 가 상의할 것을 상의하여 감녕으로 하여금 수천의 군마를 이끌고 지름길로 형주를 취하게 하고, 능통은 수천의 군마를 이끌고 지름길로 가 양양을 취한 후 다시 남군을 취하여도 늦지 않을 것이다 했다.

 

正分撥忽然探馬飛來報說:「諸葛亮自得了南郡遂用兵符星夜詐調荊州守城軍馬來救卻教張飛襲了荊州。」又一探馬飛來報說:「夏侯惇在襄陽被諸葛亮差人齎兵符詐稱曹仁求救誘惇引兵出卻教雲長襲取了襄陽。」二處城池全不費力皆屬劉玄德矣。」周瑜曰:「諸葛亮怎得兵符?」程普曰:「他拏住陳矯兵符自然盡屬之矣。」周瑜大叫一聲金瘡迸裂正是幾郡城池無我分一場辛苦為誰忙未知性命如何且看下文分解

바로 군대를 나누는 사이에 홀연히 척후병이 와서 보고하여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스스로 남군을 얻고는 마침내 병부를 써서 밤에 거짓으로 형주를 지키는 군마가 와서 구원하게 하고는 장비로 하여금 형주를 습격하게 하였습니다.”했다. 또 한 척후병이 와서 보고하여 말하기를 하후돈이 양양에 있었는데 제갈공명이 사람을 보내 병부를 가지고 조인이 구원을 요청한다고 사칭하여 하후돈이 군대를 이끌고 나오기를 유인하고 관운장으로 하여금 양양을 습격하여 취하게 하였습니다. 두 곳의 성과 해자는 온전히 힘을 허비하지 않고 모두 유현덕에게 속하였습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어떻게 병부를 얻었는가?”하니 정보가 말하기를 그가 진교를 사로잡았을 것이니 병부가 자연히 모두 그에게 속하게 되었을 것입니다.”했다. 주유는 크게 한 소리를 지르고 금창이 찢어졌다. 바로 이러하다 몇 개 군의 성과 해자가 나의 몫이 없으니 한바탕 고생은 누구를 위해 분주하였던가. (주유의)생명이 어떠할지 알지 못하겠구나.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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