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五十一回:曹仁大戰東吳兵,孔明一氣周公瑾
제51회 조인은 동오 군대와 크게 싸우고, 제갈공명은 주공근(주유)을 화나게 하다.
卻說孔明欲斬雲長。玄德曰:「昔吾三人結義時,誓同生死。今雲長雖犯法,不忍違卻前盟。望權記過,容將功贖罪。」孔明方纔饒了。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관운장을 베려하였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옛날 우리 세 사람이 결의할 때 같이 살고 죽자고 맹세하였습니다. 지금 관운장이 비록 법을 범하였으나 차마 앞의 맹세를 어길 수 없습니다. 임시로 허물을 기록해 두었다가 장차 공을 세워 죄를 대신하게 할 것을 바랍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비로소 용서하였다.
且說周瑜收軍點將,各各敘功,申報吳侯。所得降卒,盡皆發付渡江。大犒三軍,遂進兵攻取南郡。前隊臨江下寨,前後分五營。周瑜居中。
각설하고 주유는 군대를 거두고 장수를 점검하여 각각 공적을 평정하여 오후에게 보고하였다. 얻은 바의 항복한 병졸은 모두 강을 건널 수 있는 문서를 발부하였다. 크게 맛있는 음식을 삼군에게 내어주고 마침내 진군하여 남군을 공격하여 점령하게 하였다. 앞 부대가 강에 임하여 영채를 세우고 앞뒤로 다섯 개 군영으로 나누었다. 주유는 가운데 있었다.
瑜正與眾商議征進之策,忽報:「劉玄德使孫乾來與都督作賀。」瑜命請入。乾施禮畢,言:「主公特命乾拜謝都督大德,有薄禮上獻。」瑜問曰:「玄德在何處?」乾答曰:「現移兵屯油江口。」瑜驚曰:「孔明亦在油江否?」乾曰:「孔明與主公同在油江。」瑜曰:「足下先回,某自來相謝也。」
주유가 바로 무리들과 정벌하여 진군할 계책을 상의하는데 홀연히 보고하기를 “유현덕이 손건을 시켜 도독에게 축하하러 왔습니다.”했다. 주유가 들어오게 하였다. 손건이 예를 베풀기를 마치고 말하기를 “주공께서 저에게 명하시어 도독의 큰 덕을 감사하고 소박한 예물을 올리라.”하였습니다. 주유가 물어 말하기를 “유현덕은 어디에 있습니까?”하니 손건이 답하여 말하기를 “현재 군대를 옮겨 유강 어귀에 주둔하고 있습니다.”했다. 주유가 놀라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또한 유강에 있습니까?”하니 손건이 말하기를 “제갈공명과 주공은 함께 유강에 있습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그대는 먼저 돌아가시오. 내가 직접 가서 감사할 것입니다.”했다.
瑜收了禮物,發付孫乾先回。肅曰:「卻纔都督為何失驚?」瑜曰:「劉備屯兵油江,必有取南郡之意。我等費了許多軍馬,用了許多錢糧,目下南郡垂手可得;彼等心懷不仁,要就見成,須放著周瑜不死!」肅曰:「當用何策退之?」瑜曰:
주유가 예물을 거두고 손건이 먼저 돌아가게 하였다. 노숙이 말하기를 “방금 전 도독께서는 어찌하여 놀랐습니까?”하니 주유가 말하기를 “유현덕이 군대를 유강에 주둔시킨 것은 반드시 남군을 취하려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허다한 군마를 허비하고, 허다한 돈과 곡식을 써서 지금 남군에 손을 드리워 얻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들은 마음으로 不仁을 품고 지금 있는 그대로 나아가려 하니 내가 죽지 않는 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어떤 계책을 써서 물러나게 하려합니까?”하니 주유가 말하기를 “내가 직접 가서 그들과 말하겠습니다. 그들이 좋아하면 좋겠지만 좋아하지 않을 때는 그들이 남군을 취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먼저 유현덕을 죽여 막을 것입니다.”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제가 함께 가기를 원합니다.”했다. 이에 주유가 노숙과 함께 날랜 기병 삼천 명을 이끌고 유강 어귀로 들어갔다.
先說孫乾回見玄德,言周瑜將親來相謝。玄德乃問孔明曰:「來意若何?」孔明笑曰:「那裏為這些薄禮,肯來相謝。止為南郡而來。」玄德曰:「他若提兵來,何以待之?」孔明曰:「他來便可如此如此答應。」遂於油江口擺開戰船,岸上列著軍馬。
먼저 손건이 돌아 와 유현덕을 뵙고 주유가 장차 직접 와서 사례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유현덕이 이에 제갈공명에게 물어 말하기를 “오는 뜻은 무엇입니까?”하니 제갈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그 먼 곳에서 변변치 못한 선물 때문에 즐겨 사례하러 오겠습니까? 다만 남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그들이 만약 군대를 데리고 오면 어떻게 대우해야 합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그가 오면 곧 이렇게 저렇게 응답해야 합니다.”했다. 마침내 유강 어귀에 전선을 벌여놓고 강가에는 군마를 벌여 세웠다.
人報:「周瑜,魯肅,引兵到來。」孔明使趙雲領數騎來接。瑜見軍勢雄壯,心甚不安。行至營門外,玄德,孔明迎入帳中。各敘禮畢,設宴相待。玄德舉酒致謝鏖兵之事。
사람이 보고하기를 “주유, 노숙이 군대를 이끌고 이르렀습니다.”하니 제갈공명이 조자룡으로 하여금 기병 몇을 거느리고 가서 영접하게 하였다. 주유는 군대의 형세가 웅장한 것을 보고 미음이 매우 불안하였다. 행군하여 진영 문 밖에 이르자 유현덕과 제갈공명이 맞이하여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각자 예를 베풀기를 마치고, 연회를 베풀어 대접하였다. 유현덕이 술잔을 들고 격렬한 대규모 전투의 일에 대하여 감사를 표하였다.
酒至數巡,瑜曰:「豫州移兵在此,莫非有取南郡之意否?」玄德曰:「聞都督欲取南郡,故來相助。若都督不取,備必取之。」瑜笑曰:「吾東吳久欲吞併漢江,今南郡已在掌中,如何不取?」玄德曰:「勝負不可預定。曹操臨歸,今曹仁守南郡等處,必有奇計;更兼曹仁勇不可當;但恐都督不能取耳。」瑜曰:「吾若取不得,那時任從公取。」玄德曰:「孔明,子敬在此為證,都督休悔。」
술이 몇 차례 돌고 난 후 주유가 말하기를 “예주(유현덕)가 군대를 옮겨 여기에 있는 것은 남군을 취하려는 뜻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도독께서 남군을 취하려 한다는 것을 듣고 도우러 왔습니다. 만약 도독께서 취하지 않으시면 제가 반드시 남군을 취할 것입니다.”했다. 주유가 웃으며 말하기를 “우리 동오는 오래 동안 한강을 병탄하려 하였는데 지금 남군이 이미 손바닥에 있으니 어찌 취하지 않겠습니까?”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이기고 지는 것은 미리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조조는 돌아가고, 지금 조인이 남군 등지를 지키고 있는데 반드시 기이한 계책이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조인은 용맹을 겸하여 감당할 수 없으니 도독께서 취하지 못할까 두려울 뿐입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내가 만약 취하여 얻지 못한다면, 어느 때든 공(유현덕)이 취하는 것에 맡기겠습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제갈공명과 자경(노숙)이 여기에 있어 증명할 것이니 도독께서는 후회하지 마십시오.”했다.
魯肅躊躇未對。瑜曰:「大丈夫一言既出,何悔之有!」孔明曰:「都督此言,甚是公論。先讓東吳去取;若不下,主公取之,有何不可?」瑜與肅辭別玄德,孔明,上馬而去。玄德問孔明曰:「卻纔先生教備如此回答,雖一時說了,展轉尋思,於理未然。我今孤窮一身,無置足之地,欲得南郡,權且容身;若先教周瑜取了,城池已屬東吳矣,卻如何得住?」孔明大笑曰:「當初亮勸主公取荊州,主公不聽,今日卻忘耶?」玄德曰:「前為景升之地,故不忍取;今為曹操之地,理合取之。」孔明曰:「不須主公憂慮。儘著周瑜去廝殺,早晚教主公在南郡城中高坐。」玄德曰:「計將安出?」孔明曰:「只須如此如此。」玄德大喜,只在江口屯紮,按兵不動。
노숙이 주저하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주유가 말하기를 “대장부가 이미 한 마디 말을 내었으니 어찌 후회함이 있으리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도독의 이 말은 매우 옳고 공정한 논의입니다. 먼저 동오가 가서 취하는 것을 양보하셨다가 만약 함락시키지 못한다면 주공께서 취하는 것이 어찌 안 됨이(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했다. 주유와 노숙이 유현덕과 제갈공명을 하직하고 말에 올라갔다. 유현덕이 제갈공명에게 물어 말하기를 “방금 선생께서 나로 하여금 이 대답하게 하였는데 비록 한 때 말을 마쳤으나 이리저리 깊이 생각해보니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한 몸이 외롭고 곤궁하여 발을 둘 땅이 없기 때문에 남군을 얻어 임시로 몸을 의탁하려던 것이었습니다. 만약 먼저 주유로 하여금 취하게 한다면 성과 해자가 이미 동오에 속하는데 어떻게 얻어 머물 수 있겠습니까? 했다. 제갈공명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처음에 제가 주공에게 권하여 형주를 취하라 하였을 때 주공께서 듣지 않으셨는데 오늘은 잊으셨습니까?”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앞서는 경승(유표)의 땅이었기 때문에 차마 취하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조조의 땅이 되었으니 그것을 취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근심할 필요 없습니다. 어떻든 주유에게 가서 싸우게 하더라도 조만간에 주공으로 하여금 남군 성 안의 높은 자리에 계시게 할 것입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계책을 어떻게 내려 합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다만 이렇게 저렇게 하기만 하면 됩니다.”했다. 유현덕이 크게 기뻐하며 다만 강어귀에 주둔해 있으면서 군대를 살피며 움직이지 않았다.
卻說周瑜,魯肅回寨。肅曰:「都督如何亦許玄德取南郡?」瑜曰:「吾彈指可得南郡,落得虛做人情。」隨問帳下將士:「誰敢先取南郡?」一人應聲而出,乃蔣欽也。瑜曰:「汝為先鋒,徐盛、丁奉為副將,撥五千精銳軍馬,先渡江。吾隨後引兵接應。」
각설하고 주유와 노숙은 영채로 돌아왔다. 노숙이 말하기를 “도독께서는 어찌하여 쉽게 유현덕에게 남군을 취하는 것을 허락하였습니까?”하니 주유가 말하기를 “나는 손가락을 튕기는 시간이면 남군을 얻을 수 있으니 빈말로 선심을 쓴 것입니다.”하고는 이어 부하 장사에게 묻기를 “누가 용감하게 앞장 서 남군을 취하겠는가?”했다. 한 사람이 대답하며 나왔는데 곧 장흠이었다. 주유가 말하기를 “네가 선봉이 되고, 서성, 정봉은 부장이 되어 오천의 정예 군마를 뽑아 먼저 강을 건너라. 내가 뒤를 따라 군대를 이끌고 호응할 것이다.” 했다.
且說曹仁在南郡,分付曹洪守彝陵,以為犄角之勢。人報:「吳兵已渡漢江。」仁曰:「堅守勿戰為上。」驍騎牛金奮然進曰:「兵臨城下而不出戰,是怯也。況吾兵新敗,正當重振銳氣。某願借精兵五百,決一死戰。」仁從之,令牛金引五百軍出戰。丁奉縱馬來迎。約戰四五合,奉詐敗,牛金引軍追趕入陣。奉指揮眾軍一裏圍牛金於陣中。金左右衝突,不能得出。曹仁在城上望見牛金困在垓心,遂披甲上馬,引麾下壯士數百騎出城,奮力揮刀。殺入吳陣。徐盛迎戰,不能抵當。曹仁殺到垓心,救出牛金,回顧尚有數十騎在陣,不能得出,遂復翻身殺入,救出重圍。正遇蔣欽攔路,曹仁與牛金奮力衝散。仁弟曹純,亦引兵接應。混殺一陣,吳軍敗走,曹仁得勝而回。
각설하고 조인은 남군에 있으면서 조홍에게 분부하여 이릉을 지키게 하여 양쪽에서 적을 공격하려는 형세를 만들었다. 사람이 보고하기를 “오나라 군대가 이미 한강을 건넜습니다.”하니 조인이 말하기를 “굳게 지키고 싸우지 않은 것이 좋은 계책이다.”하고는 효기 우금이 떨치고 나아가 말하기를 “군대가 성 아래 이르렀는데 나가 싸우지 않는 것은 이는 겁내는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군대가 새롭게 패하였으니 바로 날카로운 기세를 다시 떨치는 것이 마땅합니다. 저에게 오백 명의 정예군사를 빌려주시면 죽음을 무릅쓰고 싸울 것을 원합니다.” 했다. 조인이 그것을 따라 우금으로 하여금 오백 명의 군대를 이끌고 나가 싸우게 했다. 정봉이 말을 달려 와 맞이하였다. 대략 사, 오합을 싸우고 정봉은 거짓으로 패한 척하니 우금이 군대를 이끌고 뒤를 쫓아 진으로 들어갔다. 정봉이 여러 군대를 지휘하여 우금을 진 안으로 끌어 들여 포위하였다. 우금이 좌충우돌하였으나 벗어날 수 없었다. 조인이 성 위에서 우금이 싸움터 한가운데서 곤궁한 것을 바라보고는 마침내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휘하 장사 수백 기를 이끌고 성을 나가 힘을 떨쳐 칼을 휘둘렀다. 오나라 진영에 힘있게 돌진 해 들어갔다. 서성이 맞아 싸웠는데 막아내지 못하였다. 조인이 싸움터 한가운데로 쇄도 해 들어 가 우금을 구하여 나오면서 돌아보니 아직도 수십 기가 진에 있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내 다시 몸을 뒤집어 세차게 돌진 해 들어가 구하여 여러 겹의 포위를 벗어나는데 마침 장흠이 길을 막고 있는 것을 만났다. 조인과 우금이 힘있게 쫓아 흩었다. 조인의 동생 조순이 또한 군대를 이끌고 호응하였다. 한바탕 섞여 싸우니 오나라 군은 패하여 달아나고, 조인은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다.
蔣欽兵敗,回見周瑜,瑜怒欲斬之,眾將告免。
장흠의 군대는 패하고 돌아가 주유를 뵈니 주유가 노하여 베어 죽이려 하였는데 여러 장수들이 면하여 줄 것을 말하였다.
瑜即點兵,要親與曹仁決戰。甘寧曰:「都督未可造次。今曹仁令曹洪據守彝陵,為犄角之勢。某願以精兵三千,徑取彝陵,都督然後可取南郡。」
주유는 곧 군대를 점검하여 직접 조인과 결전하고자 하였다. 감녕이 말하기를 “도독께서는 급작스럽게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조인은 조홍으로 하여금 이릉에 웅거하게 하여 양면작전의 태세를 만들고 있습니다. 제가 정예 군대 삼천 명으로 지름길로 가 이릉을 취하기를 원합니다. 도독께서는 그런 후에 남군을 취할 수 있습니다.”했다.
瑜服其論,先教甘寧引三千兵攻打彝陵。早有細作報知曹仁,仁與陳矯商議。矯曰:「彝陵有失,南郡亦不可守矣。宜速救之。」仁遂令曹純與牛金暗地引兵救曹洪。曹純先使人報知曹洪,令洪出城誘敵。甘寧引兵至彝陵,洪出與甘寧交鋒。戰有二十餘合,洪敗走。寧奪了彝陵。至黃昏時,曹純,牛金兵到,兩下相合,圍了彝陵。
주유는 그 논의를 받아들여 먼저 감녕으로 하여금 삼천의 군대를 이끌고 이릉을 공격하여 쳤다. 세작이 있어서 조인에게 보고하니 조인은 진교와 상의하였다. 진교가 말하기를 “이릉을 잃으면 남군을 또한 지킬 수 없습니다. 속히 구원하는 것이 마땅합니다.”했다. 조인이 마침내 조순과 우금으로 하여금 몰래 군대를 이끌고 조홍을 구원하게 하였다. 조순이 먼저 사람을 시켜 조홍에게 알리고 조홍으로 하여금 성을 나와 적을 유인하게 하였다. 감녕이 군대를 이끌고 이릉에 이르니 조홍이 나와 감녕과 싸웠다. 싸운지 이십여합에 조홍이 패하여 달아났다. 감녕이 이릉을 빼앗았다. 날이 저물 때에 이르러 조순, 우금의 군대가 이르니 두 군대가 합하여 이릉을 포위하였다.
探馬飛報周瑜,說甘寧困於彝陵城中,瑜大驚。程普曰:「可急分兵救之。」瑜曰:「此地正當衝要之處,若分兵去救,倘曹仁引兵來襲,奈何?」呂蒙曰:「甘興霸乃江東大將,豈可不救?」瑜曰:「吾欲自往救之;但留何人在此,代當吾任?」蒙曰:「留凌公續(積)當之。蒙為前驅,都督斷後;不須十日,必奏凱歌。」瑜曰:「未知凌公續(積)肯暫代吾任否?」凌統曰:「若十日為期,可當之;十日之外,不勝其任矣。」
척후 기병이 주유에게 보고하여 감녕이 이릉 성 중에서 곤궁하다고 말하니 주유가 크게 놀랐다. 정보가 말하기를 “급히 군대를 나누어 그들을 구원해야 합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이 땅은 바로 요충에 해당하는 곳인데 만약 군대를 나누어 구원하러 갔을 때 만약 조인이 군대를 이끌고 습격해 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니 여몽이 말하기를 “감흥패(감녕)는 곧 강동의 대장이니 어찌 구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내가 직접 가서 구원하고자 한다. 다만 누구를 여기에 머물러 있게 하여 내 임무를 대신 맡게 하는 것이 마땅한가?”했다. 여몽이 말하기를 “능공적(능통)을 머물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여몽을 앞에 가게하고, 도독이 뒤를 끊으면 십일이 되지 않아 반드시 승전가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능통이 즐겨 잠시 내 임무를 대신하여 맡을지 알지 못하겠다.”하니 능통이 말하기를 “만약 십일을 기일로 하면 감당할 수 있으나 십일이 넘으면 그 임무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했다.
瑜大喜,遂留兵萬餘,付與凌統,即日起大兵投彝陵來。蒙謂瑜曰:「彝陵南僻小路,取南郡極便。可差五百軍去砍倒樹木,以斷其路。彼軍若敗,必走此路。馬不能行,必棄馬而走,吾可得其馬也。」
주유가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군대 만 여명을 남겨두어 능통에게 주고, 그날 큰 군대를 일으켜 이릉으로 갔다. 여몽이 주유에게 말하기를 “이릉 남쪽의 궁벽한 작은 길로 가서 남군을 취하는 것이 지극히 편합니다. 오백 명의 군대를 보내 나무를 베어 넘너뜨리는 것으로서 그 길을 끊어야 합니다. 그들은 군대가 만약 패한다면 반드시 이 길로 달아날 것인데, 말이 다닐 수 없어 반드시 말을 버리고 달아날 것이니 우리는 그 말을 얻을 수 있습니다.”했다.
瑜從之,差軍去訖。大兵將至彝陵,瑜問:「誰可突圍而入,以救甘寧?」周泰願往,即時綽刀縱馬,直殺入曹軍之中,逕到城下。甘寧望見周泰至,自出城迎之。泰言:「都督自提兵至。」寧傳令教軍士嚴裝飽食,準備內應。
주유가 그것을 따라 군대를 보냈다. 큰 군대가 장차 이릉에 이르려 할 때 주유가 묻기를 “누가 포위를 뚫고 들어가서 감녕을 구할 수 있는가?”했다. 주태가 가기를 원하므로 즉시 칼을 움켜쥐고 말을 달려 곧바로 조조 군대 안으로 세차게 치고 들어 가 빠르게 성 아래에 이르렀다. 감녕이 주태가 이르는 것을 바라보고는 스스로 성을 나가 그를 맞이하였다. 주태가 말하기를 “도독이 직접 군대를 데리고 이르렀습니다.”했다. 감녕이 군사들로 하여금 엄격하게 무장하고, 배불리 먹게 한 다음 안에서 호응할 것을 준비하게 하였다.
卻說曹洪,曹純,牛金聞周瑜兵將至,先使人往南郡報知曹仁,一面分兵拒敵。及吳兵至,曹兵迎之。比及交鋒,甘寧,周泰分兩路殺出,曹兵大亂,吳兵四下掩殺。曹洪,曹純,牛金,果然投小路而走;卻被亂柴塞道,馬不能行,盡皆棄馬而走。吳兵得馬五百餘匹。周瑜驅兵星夜趕到南郡,正遇曹仁軍來救彝陵。兩軍接著,混戰一場。天色已晚,各自收兵。
각설하고 조홍, 조순, 우금은 주유의 군대가 장차 이를 것이라는 것을 듣고, 먼저 사람을 시켜 남군에 가 조인에게 보고하는 한편으로 군대를 나누어 적을 막게 하였다. 오나라 군대가 이름에 미쳐서 조홍의 군대가 그들을 맞이하였다. 싸움에 이르러서 감녕과 주태가 길을 나누어 싸우며 나오니 조홍의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오나라 군대가 사방에서 엄습하였다. 조홍, 조순, 우금이 과연 작은 길로 들어가 달아나는데 어지러운 나무들로 길이 막히자 말이 갈 수 없자 모두 말을 버리고 달아났다. 오나라 군대는 말 오백여필을 얻었다. 주유가 군대를 몰아 밤을 새워 쫓아 남군에 이르렀는데 마침 이릉을 구원하러 오는 조인의 군대를 만났다. 두 군대가 연이어 한바탕 섞여 싸웠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각자 군대를 거두었다.
曹仁回城中,與眾商議。曹洪曰:「目今失了彝陵,勢已危急,何不拆丞相遺計觀之,以解此危?」曹仁曰:「汝言正合吾意。」遂拆書觀之,大喜,便傳令教五更造飯;平明,大小軍馬,盡皆棄城;城上遍插旌旗,虛張聲勢,軍分三門而出。
조인이 성 안으로 돌아가 무리들과 상의하였다. 조홍이 말하기를 “지금 이릉을 잃어 형세가 이미 위급한데 어찌하여 승상이 남긴 계책을 보는 것으로서 이 위태로움을 풀지 않으십니까?”했다. 조인이 말하기를 “너의 말이 바로 내 뜻에 부합한다.”하고는 마침내 글을 뜯어보고는 크게 기뻐하여 곧 명령을 내려 오경에 밥을 지어 먹고, 날이 밝으면 크고 작은 군마들은 모두 성을 버리게 하였는데 성 위에는 둘레에 깃발을 꼿아 허장성세를 이루고 군대를 세 개의 문으로 나누어 나가게 했다.
卻說周瑜救出甘寧,陳兵於南郡城外。見曹兵分三門而出,瑜上將臺觀看。只見女牆邊虛插旌旗,無人守護;又見軍士腰下各束縛包裏。瑜暗忖曹仁必先準備走路,遂下將臺號令,分布兩軍為左右翼;如前軍得勝,只顧向前追趕,直待鳴金,方許退步。命程普督後軍,瑜親自引軍取城。對陣鼓聲響處,曹洪出馬搦戰。瑜自至門旗下,使韓當出馬,與曹洪交鋒。戰到三十餘合,洪敗走。曹仁自出接戰。周泰縱馬相迎。鬥十餘合,仁亦敗走,陣勢錯亂。
각설하고 주유가 감녕을 구출하여 군대를 남군 성 밖에 진쳤다. 조인의 군가 나누어 세 개의 문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주유가 장대에 올라 보았다. 여장 가에 헛되이 깃발을 꼿았으나 지키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았고, 또 군사들 허리에 각각 꾸러미를 묶고 있는 것을 보았다. 주유는 마음속으로 조인이 먼저 달아날 길을 준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마침내 장대를 내려와 두 군대를 나누어 포진하여 좌우익으로 삼고, 만약 앞의 군대가 승리하면 오로지 앞을 향하여 추격하고 징이 울려야 비로소 물러서는 것을 허락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정보에게는 후군을 감독하도록 명령하고, 주유 자신은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성을 취하려 하였다. 마주한 진에서 북 소리가 울리자 조홍이 말을 타고 나와 싸움을 걸었다. 주유가 스스로 진영 문 깃발 아래 이르러 한당으로 하여금 말을 타고 나가 조홍과 싸우게 했다. 싸움이 삼십여 합에 이르자 조홍이 패하여 달아났다. 조인이 스스로 나와 싸웠다. 주태가 말을 타고 달려와 서로 맞이하였다. 싸운 지 십여 합에 조인이 h한 패하여 달아나니 진의 기세가 어지러워졌다.
周瑜麾兩翼軍殺出,曹軍大敗。瑜自引軍馬追至南郡城下,曹軍皆不入城,望西北而走。韓當,周泰引前部盡力追趕。瑜見城門大開;城上又無人,遂令眾軍搶城。數十騎當先而入。瑜在背後縱馬加鞭,直入甕城。陳矯在敵樓上,望見周瑜親自入城來,暗暗喝采道:「丞相妙策如神!」
주유가 양 쪽의 군대를 지휘하여 힘 있게 돌진하여 나가니 조인의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주유가 스스로 군마를 이끌고 추격하여 남군 성 아래에 이르니 조인의 군대가 모두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북쪽을 향하여 달아났다. 한당, 주태가 앞의 부대를 이끌고 힘을 다하여 뒤쫓았다. 주유는 성문이 활짝 열려있고, 성 위에도 또한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마침내 여러 군대로 하여금 성을 빼앗게 하였다. 수십 명이 말을 타고 앞장 서 들어갔다. 주유는 뒤에 있으면서 말을 타고 채찍을 가하면서 곧바로 옹성에 들어갔다. 진교가 적루 위에 있다가 주유가 직접 성에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고 몰래 갈채를 보내며 말하기를 “승상의 현묘한 계책은 신과 같구나!”했다.
一聲梆子響,兩邊弓弩齊發,勢如驟雨。爭先入城的,都【左手部,右為顛】入陷坑內。周瑜急勒馬回時,被一弩箭,正射中左肋,翻身落馬。牛金從城中殺出,來捉周瑜。徐盛,丁奉,二人,捨命救去。城中曹兵突出,吳兵自相踐踏,落塹坑者無數。程普急收軍時,曹洪,曹仁分兵兩路殺回。吳兵大敗。幸得凌統引一軍從刺斜裏殺來,敵住曹兵。曹仁引得勝軍進城,程普收敗軍回寨。
한 소리 방자가 울리자 양쪽에서 궁노를 일제히 발사하니 기세가 비가 쏟아지는 것과 같았다. 다투어 성에 들어가던 군사들이 구덩이 안에 빠졌다. 주유가 급히 고삐를 당겨 말을 돌릴 때 하나의 쇠뇌 화살에 왼쪽 옆구리에 적중하자 몸을 뒤집으며 말에서 떨어졌다. 우금이 성 안에서 힘차게 달려 나와 주유를 잡았다. 서성과 정봉 두 사람이 목숨을 걸고 구원해 갔다. 성 안에서 치고 나오니 오나라 군대가 스스로 서로 밟고, 구덩이에 떨어진 자가 헤아릴 수 없었다. 정보가 급히 군대를 거둘 때 조홍, 조인이 군대를 나누어 두 길로 쳐들어 오자 오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다행히 능통이 한 군대를 이끌고 비스듬히 치고 들어 와 조인의 군대를 막았다. 조인이 승리를 거둔 군대를 이끌고 성에 들어가니 정보가 패한 군대를 이끌고 영채로 돌아갔다.
丁、徐二將救得周瑜到帳中,喚行軍醫者用鐵鉗子拔出箭頭,將金瘡藥敷掩瘡口,疼不可當,飲食俱廢。醫者曰:「此箭頭上有毒,急切不能痊可。若怒氣沖激,其瘡復發。」程普令三軍緊守各寨,不許輕出。三日後,牛金引軍來搦戰,程普按兵不動。牛金罵至日暮方回,次日又來罵戰。程普恐瑜生氣,不敢報知。第三日,牛金直至寨門外叫罵,聲聲只道要捉周瑜。程普與眾商議,欲暫且退兵,回見吳侯,卻再理會。
정봉과 서성 두 장수가 주유를 구하여 장막 안에 이르러 종군 의원을 불러 쇠 겸자를 써서 화살촉을 뽑고 금창약을 상처의 터진 자리에 발랐으나 아픔을 간당할 수 없어 마시고 먹을 수 없었다. 의원이 말하기를 “이 화살촉에는 독이 있으니 단 번에 병이 나을 수 없습니다. 만약 노한 기운이 솟구치면 그 상처가 다시 터질 것입니다.”했다. 정보가 삼군으로 하여금 각 영채를 엄중히 지키게 하고, 가벼이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삼일 후 우금이 군대를 이끌고 와 싸움을 걸었으나 정보는 군대를 살펴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우금이 욕하다 날이 저물다 비로소 돌아가고, 다음날 또 와서 욕을 하여 싸움을 걸었다. 정보는 주유가 성을 낼 것을 두려워하여 감히 보고하지 못하였다. 제 삼일에 우금이 곧바로 영채 문 밖에 이르러 큰 소리로 욕을 하는데 소리 소리마다 말하는 것이 주유를 잡으러 왔다는 것일 뿐이었다. 정보가 무리들과 상의하여 잠시 군사를 물려 돌아가 오후를 뵙고 다시 결말을 내려하였다.
卻說周瑜雖患瘡痛,心中自有主張;已知曹兵常來寨前叫罵,卻不見眾將來稟。一日,曹仁自引大軍,擂鼓吶喊,前來搦戰。程普拒住不出。周瑜喚眾將入帳問曰:「何處鼓譟吶喊?」眾將曰:「軍中教演士卒。」瑜怒曰:「何欺我也!吾已知曹兵常來寨前辱罵。程德謀既同掌兵權,何敢坐視?」遂命人請程普入帳問之。普曰:「吾見公瑾病瘡,醫者言勿觸怒,故曹兵搦戰,不敢報知。」瑜曰:「公等不戰,主意若何?」普曰:「眾將皆欲收兵暫回江東。待公箭瘡平復,再作區處。」
각설하고 주유는 비록 상처의 통증이 근심되었으나 마음속으로는 스스로 주장할 것이 있었고, 이미 조인의 군대가 항상 영채 앞에 와서 큰 소리로 꾸짖는 것을 알았으나 여러 장수들이 와서 아뢰지 않았다.
瑜聽罷,於床上奮然躍起曰:「大丈夫既食君祿,當死於戰場,以馬革裏屍還,幸也!豈可為我一人,而廢國家大事乎?」言訖,即披甲上馬。諸軍眾將無不駭然,遂引數百騎出營前。望見曹軍已布成陣勢,曹仁自立馬於門旗下,揚鞭大罵曰:「周瑜孺子,料必橫夭,再不敢正覷我兵!」
주유가 듣기를 마치고 침상에서 분연히 뛰어 일어나 말하기를 “대장부가 이미 임금의 록을 먹었으니 마땅히 전쟁터에서 죽어 말가죽으로 시체를 싸서 돌아가는 것은 행운이다! 어찌 나 한 사람을 위하여 국가의 큰일을 폐할 수 있겠는가?”했다. 말을 마치고는 곧 갑옷을 입고 말에 올랐다. 여러 군의 장수들이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마침내 수백 명의 군대를 이끌고 진영의 앞에 나섰다. 조인의 군대를 바라보니 이미 진세를 펴 이루었고, 조인이 스스로 말을 타고, 진영 깃발 아래 서서 채찍을 휘두르며 크게 욕하며 말하기를 “주유 어린놈은 반드시 횡사하였을 것이니 다시 감히 우리 군대를 바로 보지 못하였을 것이다!”했다.
罵猶未絕,瑜從群騎內突然出曰:「曹仁匹夫!見周郎否!」曹軍看見,盡皆驚駭。曹仁回顧眾將曰:「可大罵之!」眾軍厲聲大罵。周瑜大怒,使潘璋出戰。未及交鋒,周瑜忽大叫一聲,口中噴血,墜於馬下。曹兵衝來,眾將向前抵住,混戰一場,救起周瑜,回到帳中。
욕하기를 오히려 그치지 않으니 주유가 여러 기병 안으로부터 갑자기 나와 말하기를 “조인 필부구나! 주유를 보았는가!”했다. 조인의 군대가 보고 모두 크게 놀랐다. 조인이 여러 장수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크게 욕하라!”하니 여러 군사들이 사나운 소리로 크게 욕하였다. 주유가 크게 노하여 반장을 시켜 나가 싸우게 했다. 싸움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유가 홀연히 크게 한소리를 부르짖고는 입으로 피를 내뿜고 말에서 떨어졌다. 조인의 군대가 치고 오니 여러 장수들이 앞을 향해 막으면서 한바탕 섞여 싸우면서 주유를 구하여 일으켜 돌아가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程普問曰:「都督貴體若何?」瑜密謂普曰:「此吾之計也。」普曰:「計將安出?」瑜曰:「吾身本無甚痛楚;吾所以為此者,欲令曹兵知我病危,必然欺敵。可使心腹軍士去城中詐降,說吾已死。今夜曹仁必來劫寨。吾卻於四下埋伏以應之,則曹仁可一鼓而擒也。」程普曰:「此計大妙!」隨就帳下舉起哀聲。眾軍大驚,盡傳言都督箭瘡大發而死,各寨盡皆挂孝。
정보가 물어 말하기를 “도독의 귀한 몸은 어떠합니까?” 주유가 몰래 정보에게 말하기를 “이는 나의 계책이다.”하니 정보가 말하기를 “어떤 계책을 쓰려하십니까?”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내 몸은 본래 크게 아팠던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이렇게 하였던 까닭은 조인의 군대로 하여금 내 병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게 하여 반드시 적을 속이고자 하였던 것이었다. 심복 군사로 하여금 선 안에 가서 거짓으로 항복하고, 내가(주유) 이미 죽었다고 말하게 하면 오늘 밤 조인은 반드시 와서 영채를 칠 것이다. 내가 사방에 매복하였다가 그에 대응하면 곧 조인은 북소리 한 번으로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했다. 정보가 말하기를 “이 계책이 크게 현묘하군요!”하고는 계책에 따라 장막 아래 나아가 슬피 우는 소리를 내었다. 여러 군사들이 크게 놀라 모두 도독이 화살에 맞았던 상처가 크게 덧나 죽었다는 말을 전하면서 각각의 영채가 모두 상복을 입었다.
卻說曹仁在城中與眾商議,言周瑜怒氣沖發,金瘡崩裂,以致口中噴血,墜於馬下,不久必亡。
각설하고 조인은 성안에서 무리들과 상의하면서 주유가 노한 기운이 치솟아 금창이 찢어져 입으로 피를 뿜고 말에서 떨어졌으니 오래지 않아 반드시 죽을 것이라 말하였다.
正論間,忽報:「吳寨內有十數個軍士來降。中間亦有二人,原是曹兵被擄過去的。」曹仁忙喚入問之。軍士曰:「今日周瑜陣前金瘡碎裂,歸寨即死。今眾將皆已挂孝舉哀。我等因受程普之辱,故特歸降,便報此事。」
논의하는 사이에 홀연히 보고하기를 “오나라 영채 안에서 수십 명의 군사들이 와서 항복함이 있습니다. 그 중에 또한 두 사람은 원래 조조의 군대였다가 과거에 포로로 잡혔던 적이 있었다합니다.”했다. 조인이 황망히 불러들여 물었다. 군사가 말하기를 “오늘 주유가 진 앞에서 금창이 찢어져 영채에 돌아오자 말자 죽었습니다. 지금 여러 장수들이 모두 이미 상복을 입고 곡을 합니다. 우리들은 정보에게 욕을 받았기 때문에 특히 항복하려 왔으니 곧 이 일을 보고해 주시오. 했습니다.”했다.
曹仁大喜,隨即商議今夜便去劫寨,奪周瑜之屍,斬其首級,送赴許都。陳矯曰:「此計速行,不可遲誤。」曹仁遂令牛金為先鋒,自為中軍,曹洪,曹純為合後,只留陳矯領些少軍士守城,其餘軍兵盡起。初更時出城,逕投周瑜大寨。來到寨門,不見一人,但見虛插旗槍而已。情知中計,急忙退軍。四下砲聲齊發,東邊韓當,蔣欽殺來,西邊周泰,潘璋殺來,南邊徐盛,丁奉殺來,北邊陳武,呂蒙殺來。曹兵大敗,三路軍皆被衝散,首尾不能相救。
조인이 크게 기뻐하며 곧 오늘 밤 가서 (주유)의 영채를 빼앗고 주유의 시체를 빼앗아 그 수급을 베어 허도에 보낼 것을 상의하였다. 진교가 말하기를 “이 계책은 속히 행동해야 하고 늦추어 잘못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했다. 조인이 마침내 우금을 선봉으로 삼고, 스스로는 중군이 되어 조홍, 조순을 후군으로 삼았다. 다만 진교에게는 작은 군사를 거느리고 성을 지키도록 머물게 하고 그 나머지 군사들은 모두 일으키게 하였다. 초경 때에 성에서 나와 지름길로 주유의 큰 영채에 들어갔다. 영채의 문에 이르렀는데 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다만 비어 있는 영채에 깃발과 창만이 꼿혀 있을 뿐이었다. 조인은 계책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급히 군대를 물렸다. 사방에서 포성이 일제히 일어나면서 동쪽에는 한당과 장흠이 달려 나오고, 서쪽에는 주태와 반장이 달려 나오고, 남쪽에는 서성과 정봉이 달려 나오고, 북쪽에서는 진무와 여몽이 달려 나왔다. 조인의 군대는 크게 패하고 세 길의 군대가 모두 흩어져 앞과 뒤가 서로 구원할 수 없었다.
曹仁引十數騎殺出重圍,正遇曹洪,遂引敗殘軍馬一同奔走。殺到五更,離南郡不遠,一聲鼓響,凌統又引一軍攔住去路,截殺一陣。曹仁引軍刺斜而走,又遇甘寧大殺一陣。曹仁不敢回南郡,逕投襄陽大路而行。吳軍趕了一程,自回。
조인이 수십 기를 이끌고 거듭된 포위망을 세차게 돌진하여 나가다 바로 조홍을 만나 마침내 패잔군과 말을 이끌고 함께 달아났다. 오경까지 세차게 달아나 남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르자 한 소리 북이 울리고 능통이 또한 한 부대를 이끌고 가는 길을 막으며 한바탕 힘을 다해 죽였다. 조인이 군대를 이끌고 옆으로 달아나는데 또 감녕이 한바탕 크게 죽였다. 조인이 감히 남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름길로 양양의 큰길로 나아갔다. 오나라 군대가 일정을 쫒다가 스스로 돌아왔다.
周瑜,程普收住眾軍,逕到南郡城下,見旌旗布滿,敵樓上一將叫曰:「都督少罪!吾奉軍師將令,已取城了。吾乃常山趙子龍也。」
주유와 정보가 여러 군대를 거두어 지름길로 남군성 아래 이르니 깃발이 가득 펼쳐진 것을 보았는데 적루 위의 한 장수가 소리쳐 말하기를 “도독께서는 탓하지 마십시오! 내가 군사의 명령을 받들어 이미 성을 취하였습니다. 나는 곧 상산 조자룡입니다.”했다.
周瑜大怒,便命攻城。城上亂箭射下。瑜命且回商議,使甘寧引數千軍馬,逕取荊州;凌統引數千軍馬,逕取襄陽;然後卻再取南郡未遲。
주유가 크게 노하여 곧 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성 위에서 어지럽게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주유가 돌아 가 상의할 것을 상의하여 감녕으로 하여금 수천의 군마를 이끌고 지름길로 형주를 취하게 하고, 능통은 수천의 군마를 이끌고 지름길로 가 양양을 취한 후 다시 남군을 취하여도 늦지 않을 것이다 했다.
正分撥間,忽然探馬飛來報說:「諸葛亮自得了南郡,遂用兵符,星夜詐調荊州守城軍馬來救,卻教張飛襲了荊州。」又一探馬飛來報說:「夏侯惇在襄陽,被諸葛亮差人齎兵符,詐稱曹仁求救,誘惇引兵出,卻教雲長襲取了襄陽。」二處城池,全不費力,皆屬劉玄德矣。」周瑜曰:「諸葛亮怎得兵符?」程普曰:「他拏住陳矯,兵符自然盡屬之矣。」周瑜大叫一聲,金瘡迸裂。正是:幾郡城池無我分,一場辛苦為誰忙。未知性命如何,且看下文分解。
바로 군대를 나누는 사이에 홀연히 척후병이 와서 보고하여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스스로 남군을 얻고는 마침내 병부를 써서 밤에 거짓으로 형주를 지키는 군마가 와서 구원하게 하고는 장비로 하여금 형주를 습격하게 하였습니다.”했다. 또 한 척후병이 와서 보고하여 말하기를 “하후돈이 양양에 있었는데 제갈공명이 사람을 보내 병부를 가지고 조인이 구원을 요청한다고 사칭하여 하후돈이 군대를 이끌고 나오기를 유인하고 관운장으로 하여금 양양을 습격하여 취하게 하였습니다. 두 곳의 성과 해자는 온전히 힘을 허비하지 않고 모두 유현덕에게 속하였습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어떻게 병부를 얻었는가?”하니 정보가 말하기를 “그가 진교를 사로잡았을 것이니 병부가 자연히 모두 그에게 속하게 되었을 것입니다.”했다. 주유는 크게 한 소리를 지르고 금창이 찢어졌다. 바로 이러하다 몇 개 군의 성과 해자가 나의 몫이 없으니 한바탕 고생은 누구를 위해 분주하였던가. (주유의)생명이 어떠할지 알지 못하겠구나.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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