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五十回:諸葛亮智算華容,關雲長義釋曹操
제50회 제갈공명의 지혜는 화용도의 일을 헤아리고, 관운장의 의리는 조조를 풀어주다.
卻說當夜張遼一箭射黃蓋下水,救得曹操登岸,尋著馬匹走時,軍已大亂。韓當冒煙突火來攻水寨,忽聽得士卒報道:「後梢舵上一人,高叫將軍表字。」韓當細聽,但聞高叫:「公義救我!」當曰:「此黃公覆也!」急教救起。見黃蓋負箭著傷,咬出箭桿,箭頭陷在肉內。韓當急為脫去濕衣,用刀剜出箭頭,扯旗束之,脫自己戰袍與黃蓋穿了,先令別船送回大寨醫治。原來黃蓋深知水性,故大寒之時,和甲墮江,也逃得性命。
각설하고 그날 밤 장요는 하나의 화살을 쏘아 황개를 물에 떨어뜨리고 조조를 구원하여 강변에 올라 말을 찾을 때 군대는 이미 크게 어지러워졌다. 한당이 연기를 무릅쓰고 불을 뚫고 와 수채를 공격하는데 홀연히 사졸이 보고하기를 “뒤 선박의 키 위에 한 사람이 크게 장군의 이름을 부릅니다.”했다. 한당이 자세히 들었으나 다만 “공의(한당)는 나를 구하라!”라고 크게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한당이 말하기를 “이는 황개이다!”하고는 급히 구원하게 했다. 황개가 화살에 맞아 상처를 입은 것을 보고 입으로 물어 화살대를 뽑았는데 화살촉은 살 안에 박혀 있었다. 한당은 급히 젖은 옷을 벗긴 후 칼을 써서 화살촉을 깍아 내고 깃발을 찢어 묶고 자기의 전포를 벗어 황개에게 주어 입게 한 후 먼저 다른 배에 태워 큰 영채로 돌려보내 의원이 치료하게 하였다. 원래 황개는 물의 성질을 깊이 알았기 때문에 큰 추위 때에 갑옷을 입은 채 강에 떨어졌으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卻說當日滿江火滾,喊聲震地。左邊是韓當,蔣欽,兩軍從赤壁西邊殺來;右邊是周泰,陳武,兩軍從赤壁東邊殺來;正中是周瑜,程普,徐盛,丁奉,大隊船隻都到,火須兵應,兵仗火威。此正是:三江水戰,赤壁鏖兵。曹軍著槍中箭,火焚水溺者,不計其數。後人有詩曰:魏吳爭鬥決雌雄,赤壁樓船一掃空。烈火初張照雲海,周郎曾此破曹公。
각설하고 그날 강에는 불이 치솟아 가득하고 함성이 땅을 진동하였다. 왼쪽에는 한당, 장흠 두 군대가 적벽 서쪽 가를 따라 추격하고, 오른쪽은 주태, 진무 두 군대가 적벽 동쪽 가를 따라 추격했다. 정 중앙에는 주유, 정보, 서성, 정봉 큰 부대의 배들이 모두 이르렀다. 불은 모름지기 군대에 호응하였고, 무기는 의 위세였다. 이것이 바로 삼강의 수전이고, 적벽의 큰 싸움이다. 조조의 군대는 창에 찔리고 화살에 적중 된 자, 불에 타고 물에 빠진 자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은 것이 있다. 시에 “위나라, 오나라는 싸워 자웅을 겨루고 적벽의 누선들이 한 번 쓸어 비었다. 치열한 불은 구름에 비치고 주유는 일찍 여기서 조조를 깨트렸다.” 했다.
又有一絕云:山高月小水茫茫,追歎前朝割據忙。南士無心迎魏武,東風有意便周郎。
또 한 절구가 있으니 “산은 높고 달은 아 물이 아득한데 지난 왕조 할거에 바쁨을 탄식한다. 남쪽 군사들은 조조를 받아들일 마음이 없고, 동풍은 주유에게 뜻을 두었다.”했다.
不說江中鏖兵。且說甘寧令蔡中引入曹寨深處,寧將蔡中一刀砍於馬下,就草上放起火來。呂蒙遙望中軍火起,也放十數處火,接應甘寧。潘璋,董襲,分頭放火吶喊。四下裏鼓聲大震。曹操與張遼引百餘騎,在火林內走,看前面無一處不著。正走之間,毛玠救得文聘,引十數騎到。操令軍尋路。張遼指道:「只有烏林,地面空闊,可走。」操逕奔烏林。
강안에서 벌어진 치열한 싸움은 말하지 않는다. 각설하고 감녕은 채중으로 하여금 인도하게 하여 조조의 영채 깊숙한 곳으로 들어 간 후 감녕이 채중을 한 칼로 베어 말 아래로 떨어뜨리고, 풀 위에 불을 질렀다. 여몽이 멀리서 준군에 불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고 수십 곳에 불을 지르고 감녕을 맞아 응원하였다. 반장, 동습이 머리를 나누어 불을 지르고 함성을 질렀다. 사방에서 북소리가 크게 울렸다. 조조와 장요가 백여 기를 이끌고 불타는 숲 안으로 달아나는데 앞을 보니 한 곳도 불이 붙지 않은 곳이 없었다. 바로 달아나는 사이에 모개가 문빙을 구원하여 수십기를 이끌고 이르렀다. 조조가 군대로 하여금 길을 찾게 하였다. 장요가 길을 가리키면서 “오직 오림만은 땅이 비고 넓으니 달아날 만하다.”했다. 조조가 재빨리 오림으로 달아났다.
正走間,背後一軍趕到,大叫:「曹賊休走!」火光中現出呂蒙旗號。操催軍馬向前,留張遼斷後,抵敵呂蒙。卻見前面火把又起,從山谷中擁出一軍,大叫:「凌統在此!」曹操肝膽皆裂。忽刺斜裏一彪軍到,大叫:「丞相休慌!徐晃在此!」彼此混戰一場,路望北而走。忽見一隊軍馬,屯在山坡前。徐晃出問,乃是袁紹手下降將馬延,張顗,有三千北地軍馬,列寨在彼;當夜見滿天火起,未敢轉動,恰好接著曹操。操教二將引一千軍馬開路,其餘留著護身。操得這枝生力軍馬,心中稍安。馬延,張顗二將,飛騎前行。不到十里,喊聲起處,一彪軍出。為首一將,大呼曰:「吾乃東吳,甘興霸也!」馬延正欲交鋒,早被甘寧一刀斬於馬下。張顗挺槍來迎,寧大喝一聲,顗措手不及,被寧手起一刀,翻身落馬。後軍飛報曹操。
달아나는 사이에 뒤에서 한 무리의 군대가 쫒아오면서 크게 외치기를 “조조 도적놈아 달아나지 말라!” 하는데 불 빛 속에서 여몽의 깃발이 나타났다. 조조가 군마를 재촉하여 앞을 향하면서 장요를 머물게하여 뒤를 끊고, 여몽을 막아 대적하였다. 그러나 앞에서 불길이 또 일어나니 산골짜기를 따라 한 무리의 군대가 쏟아져 나와 크게 외치기를 “능통이 여기에 있다!”하니 조조의 간담이 모두 찢어졌다. 홀연히 옆에서 한 무리의 군대가 이르러 크게 외치기를 “승상께서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서황이 여기에 있습니다.”했다. 그가 여기서 한바탕 혼전을 벌이면서 모두 북쪽을 향하여 달아났다. 홀연히 한 무리의 군마가 산자락에 주둔해 있는 것을 보았다. 서황이 나와 물어보니 곧 원소의 수하였다가 항복한 마연, 장의로 삼천 명의 북쪽 땅 군마를 데리고 영채를 나열하고 거기에 있었는데 그날 밤 불이 일어 하늘에 가득한 것을 보고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가 마침 조조를 만났던 것이다. 조조가 두 장수로 하여금 일천 명의 군마를 이끌고 길을 열게 하고 그 나머지는 머물러 자신을 지키게 하였다. 조조는 이 버티고 힘을 내게 하는 군마를 얻어 마음이 점점 편안해졌다. 마연, 장의 두 장수가 날듯이 말을 달려 앞으로 갔다. 십리를 못가 함성이 일어나면서 한 떼의 군대가 나왔다. 우두머리 한 장수가 크게 부르짖어 말하기를 “나는 곧 동오의 감흥패(감녕)이다!”하니 마연이 바로 싸우고자 하였으나 곧 바로 감녕의 한 칼에 베어져 말에서 떨어졌다. 장의가 창을 내밀고 와 맞이하였는데 감녕이 한 소리 크게 외치니 장의가 손을 놀리지도 못하고 감녕의 한번 내리친 칼에 몸이 뒤집어지면서 말에서 떨어졌다. 뒤에 있던 군사가 날듯이 조조에게 보고하였다.
操此時指望合淝有兵救應,不想孫權在合淝路口,望見江中火光,知是我軍得勝,便教陸遜舉火為號;太史慈見了,與陸遜合兵一處,衝殺將來。操只得望彝陵而走。路上撞見張郃,操令斷後。縱馬加鞭,走至五更,回望火光漸遠,操心方定,問曰:「此是何處?」左右曰:「此是烏林之西,宜都之北。」
조조가 이 때 합비의 군대가 구원하여 호응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손권이 합비로 가는 길을 입구에 있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하였다. (손권)은 강안에서 일어나는 불빛을 보고는 이는 우리 군대가 이기고 있는 것이라 여기고 곧 육손으로 하여금 불을 들어 신호하게 하였다. 태사자가 보고 육손과 군대를 한 곳에 합하여 치고 나아갔다. 조조가 이릉을 향하여 달아났다. 길 위에서 뜻 밖에 장합을 만나자 조조는 뒤를 끊게 하였다. (조조가)달리는 말에 채찍을 치면서 달아나다 오경에 이르자 돌아보니 불빛이 점점 멀어졌다. 조조의 마음이 비로소 안정되었다. (조조가)물어 말하기를 “이 곳은 어디인가?”하니 좌우가 말하기를 “여기는 오림의 서쪽, 의도의 북쪽입니다.”했다.
操見樹林叢雜,山川險峻,乃於馬上仰面大笑不止。諸將問曰:「丞相何故大笑?」操曰:「吾不笑別人,單笑周瑜無謀,諸葛亮少智。若是吾用兵之時,預先在這裏伏下一軍,如之奈何?」
조조는 수림이 무성하고 산천이 험준한 것을 보고는 곧 말 위에서 얼굴을 위로하고는 크게 웃기를 그치지 않았다. 여러 장수들이 물어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무엇 때문에 크게 웃습니까?”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다른 사람을 비웃은 것이 아니라 단지 주유가 꾀가 없고, 제갈공명의 지혜가 적음을 비웃었을 뿐이다. 만약 여기서 내가 군대를 운용하였다면 미리 먼저 여기에 한 부대의 군대를 숨겨두었을 것인데 어떠한가?”했다.
說猶未了,兩邊鼓聲震響,火光沖天而起,驚得曹操幾乎墜馬。刺斜裏一彪軍殺出,大叫:「我趙子龍奉軍師將令,在此等候多時了!」操教徐晃,張郃雙敵趙雲,自己冒煙突火而去。子龍不來追趕,只顧搶奪旗幟,曹操得脫。
말을 아직 마치지 않았는데 양쪽에서 북소리가 울리면서 화광이 하늘에 치솟아 일어나자 조조가 놀라 거의 말에서 거의 떨어질 뻔하였다. 비스듬히 한 떼의 군대가 쳐들어와 크게 소리치기를 “나는 조자룡으로 군사의 명을 받들어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래되었다!”했다. 조조가 서황과 장합으로 하여금 조자룡을 대적하게 하고, 자기는 연기를 무릅쓰고 불을 돌파 해 갔다. 조자룡은 뒤 쫒지 않고 다만 오로지 깃발을 빼앗기만 하니 조조가 탈출할 수 있었다.
天色微明,黑雲罩地,東南風尚不息。忽然大雨傾盆,濕透衣甲。操與軍士冒雨而行,諸軍皆有飢色。操令軍士往村落中劫掠糧食,尋覓火種。方欲造飯,後面一軍趕到。操心甚慌。原來卻是李典,許褚保謢著眾謀士來到。
하늘빛이 희미하게 밝아질 무렵 검은 구름이 땅에 깔리고 동남풍은 아직도 그치지 않았다. 홀연히 큰 비가 항아리를 기울인 것처럼 큰 비가 내려 옷과 갑옷이 젖었다. 조조와 군사들이 비를 무릅쓰고 행군하였는데 여러 군사들은 모두 주린 기색이 있었다. 조조는 군사를 시켜 촌락에 가서 양식을 약탈하고, 불씨를 찾아 가져오게 하였다. 막 밥을 지으려하는데 뒤쪽에서 한 군대가 쫓아 이르렀다. 조조가 매우 당황하였다. 원래 실상은 이전과 허저가 여러 모사들을 보호하여 이르렀다.
操大喜,令軍馬且行,問:「前面是那裏地面?」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군마로 하여금 또한 행군하게 하면서 묻기를 “앞 쪽은 어디인가?”했다.
人報:「一邊是南彝陵大路,一邊是北彝陵山路。」操問:「那裏投南郡江陵去近?」軍士稟曰:「取南彝陵過葫蘆口去最便。」操教走南彝陵。行至葫蘆口,軍皆飢餒,行走不上,馬亦困乏,多有倒於路者。操教前面暫歇。馬上有帶得鑼鍋的,也有村中掠得糧米的,便就山邊揀乾處埋鍋造飯,割馬肉燒吃,盡皆脫去濕衣,於風頭吹晒。馬皆摘鞍野放,咽咬草根。
사람이 보고하기를 “한 쪽은 남이릉으로 가는 큰 길이고, 한 쪽은 북이릉으로 가는 산길입니다.”했다. 조조가 묻기를 “어느 쪽이 남군과 강릉으로 가는데 가까운가?”하니 군사가 아뢰기를 “남이릉을 취하고 호로구를 지나가는 것이 가장 편합니다.”했다. 조조가 남이릉으로 달려가게 하였다. 행군하여 호로구에 이르니 군사들이 모두 주려서 가지 못하고, 말이 또한 지쳐서 길에 많이 엎어졌다. 조조는 앞 쪽으로 하여금 잠시 쉬게 하였다. 말 위에 나과를 맨 병사도 있고, 촌에서 약탈한 양식을 실은 병사도 있었는데 곧 산자락으로 나아가 마른 곳을 골라 솥을 묻고 밥을 짓고, 말을 갈라 고기를 구워 먹으며 모두 젖은 옷을 벗고 바람에 말리려 했다. 말은 모두 안장을 내려놓아 풀과 뿌리를 먹게 하였다.
操坐於疏林之下,仰面大笑。眾官問曰:「適來丞相笑周瑜,諸葛亮,引惹出趙子龍來,又折了許多人馬,如今為何又笑?」操曰:「吾笑諸葛亮,周瑜,畢竟智謀不足。若是我用兵時,就這個去處,也埋伏一彪軍馬,以逸待勞;我等縱然脫得性命,也不免重傷矣。彼見不到此,我是以笑之。」
조조는 드문드문 한 숲의 아래에 앉아 얼굴을 쳐들고 크게 웃었다. 여러 관리들이 물어 말하기를 “지난번에 승상께서 주유와 제갈공명을 비웃었을 때 조자룡을 이끌어 내어 많은 인마를 잃었는데 지금 어찌하여 또 웃습니까?”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제갈공명과 주유를 비웃은 것은 결국 지혜와 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군대를 쓴다면 이곳에 한 떼의 군마를 매복시켜 편안히 있으면서 수고로운 자들을 기다렸다면 우리들이 설사 탈출하여 목숨을 건졌다할지라도 중상을 면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들이 여기에 이르지 못한 것을 보고 내가 이에 그들을 비웃은 것이다.”했다.
正說間,前軍後軍一齊發喊。操大驚,棄甲上馬。眾軍多有不及收馬者。早見四下火煙布合山口,一軍擺開。為首乃燕人張翼德,橫矛立馬,大叫:「操賊走那裏去!」諸軍眾將見了張飛,盡皆膽寒。許褚騎無鞍馬來戰張飛。張遼,徐晃二將,縱馬也來夾攻。兩邊軍馬混戰做一團。操先撥馬走脫,諸將各自脫身。張飛從後趕來。操迤邐奔逃,追兵漸遠,回顧眾將多已帶傷。
말하는 사이에 앞 뒤 군사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조조가 크게 놀라 갑옷을 버리고 말에 올랐다. 여러 군사들 중에 말을 거두지 못한 자가 많이 있었다. 사방에서 불과 연기가 산골짜기에 가득한데 한 군대가 전열을 갖추고 있었다. 우두머리는 곧 연 땅 사람인 장익덕(장비)으로 창을 빗겨들고 말을 세운 채 크게 고함치기를 “조조 도적은 어디로 달아나는가!”했다. 여러 군사들과 여러 장수들이 장비를 보고 모두 담이 서늘해졌다. 허저가 안장이 없는 말을 타고 장비와 싸웠다. 장요, 서황 두 장수가 말을 달려 와서 협공하였다. 양 쪽의 군마가 한데 뭉쳐 섞여 싸웠다. 조조가 먼저 말을 달려 탈출하고 여러 장수들이 각각 스스로 몸을 탈출하였다. 장비가 뒤를 쫓았다. 조조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달아나니 추격하는 군대다 점점 멀어지고, 여러 장수들을 돌아보니 많이 다쳤다.
正行間,軍士稟曰:「前面有兩條路,請問丞相從那條路去?」操問:「那條路近?」軍士曰:「大路稍平,卻遠五十餘里;小路投華容道,卻近五十餘里。只是地窄路險,坑坎難行。」操令人上山觀望,回報:「小路山邊有數處煙起。大路並無動靜。」操教前軍便走華容道小路。諸將曰:「烽煙起處,必有軍馬,何故反走這條路?」操曰:「豈不聞兵書有云:『虛則實之,實則虛之。』
행군하는 사이에 군사들이 아뢰어 말하기를 “앞에 두 갈래 길이 있는데 승상께서는 어느 갈래의 길로 가시려 합니까?”했다. 조조가 묻기를 “어느 갈래의 길이 가까운가?”하니 군사가 말하기를 “큰 길은 점점 평탄해지나 오십여리 멀고, 작은 길은 화용도로 들어가나 오십여리 가깝습니다. 다만 땅은 좁고 길음 험고, 구덩이 때문에 가기 어렵습니다.”했다. 조조가 사람을 시켜 산에 올라 바라보게 하였더니 돌아와 보고하기를 “작은 길 산 기슭 여러 곳에서 연기가 일어납니다. 대로는 아울러 동정이 없습니다.”했다. 조조가 앞에 있는 군대로 하여금 곧 화용도로 가는 작은 길로 가게 했다. 여러 장수들이 말하기를 “봉화 연기가 일어나는 곳은 반드시 군마가 있을 터인데 무슨 이유로 도리어 이 길로 가게 하십니까?”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병서에서 ‘비어 있으면 채워져 있는 것처럼 하고, 채워져 있으면 비어 있는 것처럼 하라.’한 것을 듣지 못하였는가?
諸葛亮多謀,故使人於山僻燒煙,使我軍不敢從這條山路走,他卻伏兵於大路等著。吾料已定,偏不教中他計!」諸將皆曰:「丞相妙算,人所不及。」遂勒兵走華容道。此時人皆飢倒,馬盡困乏。焦頭爛額者扶策而行,中箭著槍者勉強而走。衣甲濕透,個個不全。軍器旗旛,紛紛不整。大半皆是彝陵道上被趕得慌,只騎得禿馬,鞍轡衣服,盡皆拋棄。正值隆冬嚴寒之時,其苦何可勝言。
제갈공명은 꾀가 많다. 그러므로 사람을 시켜 궁벽한 산에서 불을 피우고 연기를 올려 우리 군대로 하여금 감히 이 산길을 따라 가지 못하게 하고, 한편으로 큰 길에 복병을 두려는 것이다. 내가 헤아려 이미 정하는 한편으로 다른 계책에 빠지지 않게 할 것이다! 했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말하기를 “승상의 현묘한 계산은 다른 사람이 미칠 수 없습니다.”하고는 마침내 군대를 지휘하여 화용도로 갔다. 이 때 사람들이 모두 주림으로 엎어졌고, 말도 모두 피로하였다. 머리를 그슬리고 이마를 덴 자는 지팡이에 의지하여 가고, 화살에 맞은 자와 창에 찔린 자는 간신히 달려갔다. 옷과 갑옷이 젖어 모든 것이 온전하지 않았다. 무기와 깃발은 어지러워 정돈되지 않았다. 태반이 모두 이릉으로 가는 길에서 추격을 당하자 당황하여 맨 머리로 말을 타고 안장, 고삐, 의복을 모두 버렸다. 때는 한겨울로 매우 추운 때여서 그 괴로움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操見前軍停馬不進,問是何故。回報曰:「前面山僻路小,因早晨下雨,坑塹內積水不流,泥陷馬蹄,不能前進。」操大怒,叱曰:「軍旅逢山開路,遇水疊橋,豈有泥濘不堪行之理!」傳下號令,教老弱中傷軍士在後慢行,強壯者擔土束柴,搬草運蘆,填塞道路,務要即時行動;如違令者斬。眾軍只得都下馬,就路旁砍伐竹木,填塞山路。操恐後軍來趕,令張遼,許褚,徐晃,引百騎執刀在手,但遲慢者便斬之。
조조는 앞의 군사가 말을 세우고 나아가지 않는 것을 보고 무엇 때문인지를 물었다. 돌아와 보고하여 말하기를 “앞 쪽에 산이 후미지고 길이 좁으며 어제 밤 비가 내려 구덩이에 물이 고이고 흐르지 않아 진흙에 말발굽이 빠져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했다. 조조가 크게 노하여 질책하여 말하기를 “군대는 산에 막히면 길을 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쌓아야 하는데 어찌 진창으로 향군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치가 있는가!”하고는 명령을 내려 “늙고 약하고, 중상을 입은 군사들은 뒤에서 천천히 걷게 하고, 강건한 자는 흙을 지고, 섶을 묶게 하고, 풀과 갈대를 운반하여 도로를 메꾸는데 반드시 지금 즉시 행동하라. 만약에 명령을 어기는 자는 베어 죽일 것이다.” 했다. 여러 군사들이 모두 말에서 내려 길옆으로 가 대나무와 나무를 제어 산길을 메꾸었다. 조조는 뒤에서 군대가 쫓아오는 것을 두려워하여 장요, 허저, 서황으로 하여금 손에 칼을 둔 백 명의 기병을 이끌게 하고 다만 늦는 자는 곧 베어 죽이게 했다.
操喝令人馬沿棧而行,死者不可勝數。號哭之聲,於路不絕。操怒曰:「生死有命,何哭之有!如再哭者立斬!」三停人馬,一停落後,一停填了溝壑,一停跟隨曹操。過了險峻,路稍平坦。操回顧止有三百餘騎隨後,並無衣甲袍鎧整齊者。操催速行。眾將曰:「馬盡乏矣,只好少歇。」操曰:「趕到荊州將息未遲。」又行不到數里,操在馬上揚鞭大笑。眾將問:「丞相何又大笑?」操曰:「人皆言周瑜,諸葛亮足智多謀,以吾觀之,到底是無能之輩。若使此處伏一旅之師,吾等皆束手受縛矣。」
조조가 인마에게 큰 소리로 명령하여 잔도를 따라 가게 하였는데 죽은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크게 우는 소리가 길에 끊이질 않았다. 조조가 노하여 말하기를 “살고 죽는 것은 명이 있는데 어찌하여 울고 있는가! 만약 다시 우는 자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베어 죽일 것이다!” 삼정의 인마 중에 일정은 뒤에 떨어지고, 일정은 구학을 메꾸고, 일정은 조조를 뒤따랐다. 험준한 곳을 지나자 길이 점점 평탄해졌다. 조조가 멈추어 돌아보니 삼백여 기가 뒤따라오는데 모두 갑옷과 무기를 정돈하여 갖춘 자가 없었다. 조조가 빠르게 갈 것을 재촉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말하기를 “말이 모두 지쳤으니 조금 쉬는 것이 좋겠습니다.”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달려 가 형주에 이른 후 쉬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했다. 또한 몇 리 가지 않아 조조가 말 위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크게 웃었다. 여러 장수들이 묻기를 “승상께서는 왜 또 크게 웃습니까?”하니 조조가 “사람들은 모두 주유와 제갈공명이 지혜가 충분하고 꾀가 많다 말하는데 내가 그들을 관찰해보니 이는 무능한 무리이다. 만약 이 곳에 한 부대의 군사를 숨어 있게 하였다면 우리들은 모두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묶이게 되었을 것이다.”했다.
言未畢。一聲砲響,兩邊五百校刀手擺開,為首大將關雲長,提青龍刀,跨赤兔馬,截住去路。操軍見了,亡魂喪膽,面面相覷。操曰:「既到此處,只得決一死戰!」眾將曰:「人縱然不怯,馬力已乏,安能復戰?」程昱曰:「某素知雲長傲上而不忍下,欺強而不凌弱;恩怨分明,信義素著。丞相昔日有恩於彼,今只親自告之,可脫此難。」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한 소리 포가 울리며 양쪽에서 오백 명의 교도수들이 벌여 섰는데 우두머리 대장은 관운장으로 청룡도를 가지고 적토마에 걸터앉아 가는 길을 막았다. 조조의 군대가 보고 혼이 달아나고 담을 잃어 얼굴을 서로 보았다. 조조가 말하기를 “이미 이곳에 이르렀으니 한 번 죽음으로 싸워 결단할 뿐이다!”했다. 여러 장수들이 말하기를 “설사 사람들은 겁내지 않더라도 말의 힘이 이미 다하였으니 어찌 다시 싸울 수 있겠습니까?”했다. 정욱이 말하기를 “제가 알기로는 평소 관운장은 윗사람에게 오만하고, 아랫사람에게는 차마하지 못하고, 강한 자는 억누르지만 약한 이를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은혜와 원한이 분명하고 신의가 평소에 드러났습니다. 승상께서는 옛날 그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지금 친히 말슴하시면 이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操從其說,即縱馬向前,欠身謂雲長曰:「將軍別來無恙?」雲長亦欠身答曰:「關某奉軍師將令,等候丞相多時。」操曰:「曹操兵敗勢危,到此無路,望將軍以昔日之情為重。」雲長曰:「昔日關某雖蒙丞相厚恩,然已斬顏良,誅文醜,解白馬之圍,以奉報矣。今日之事,豈敢以私廢公?」操曰:「五關斬將之時,還能記否?大丈夫以信義為重。將軍深明春秋,豈不知庾公之斯追子濯孺子之事乎?」
조조가 그 말을 따라 곧 말을 달려 앞으로 나가 몸을 굽히고 관운장에게 말하기를 “장군께서는 별고 없으셨습니까?”했다. 관운장이 또한 몸을 굽히고 답하여 말하기를 “제가 군사의 명령을 받들어 승상을 기다린 지 오래되었습니다.”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나의 군대는 패하고 형세는 위태로운데 이곳에 이르렀으나 길이 없으니 장군께서는 옛날의 정을 중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했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옛날 제가 비록 승상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나 이니 안량을 베고, 문추를 죽이고, 백마의 포위를 푸는 것으로서 같았습니다. 오늘의 일로 어찌 감히 사사로움 때문에 공적인 일을 폐하겠습니까?”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다섯 관문에서 장수를 베었을 때는 도리어 기억하지 못합니까? 대장부는 신의로서 중함을 삼습니다. 장군께서는 『춘추』에 깊이 밝은데도 어찌 유공지사가 자탁유자를 쫒았던 일을 알지 못합니까?” 했다.
雲長是個義重如山之人,想起當日曹操許多恩義,與後來五關斬將之事,如何不動心?又見曹軍惶惶皆欲垂淚,越發心中不忍。於是把馬頭勒回,謂眾軍曰:「四散擺開。」這個分明是放曹操的意思。操見雲長回馬,便和眾將一齊衝將過去。雲長回身時,曹操已與眾將過去了。雲長大喝一聲,眾軍皆下馬,哭拜於地。雲長愈加不忍。正猶豫間,張遼驟馬而至,雲長見了,又動故舊之情;長歎一聲,並皆放去,後人有詩曰:曹瞞兵敗走華容,正與關公狹路逢。只為當初恩義重,放開金鎖走蛟龍。
관운장은 단지 의리를 산과 같이 중하게 여기는 사람일 뿐으로 그날 조조의 허다한 은혜와 후에 다섯 관문을 지나면서 장수를 벤 일을 생각해 내었으니 어떻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겠는가? 또 조조의 군대가 불안해 떨면서 모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이에 말머리의 고삐를 잡아 돌아서서 여러 군사들에게 말하기를 “사방으로 흩어져 길을 열어라.”했다. 이는 분명히 조조를 놓아주려는 의사였다. 조조가 관운장이 말을 돌리는 것을 보고 곧 여러 장수들과 함께 일제히 뚫고 지나갔다. 관운장이 몸을 돌렸을 때 조조는 이미 여러 장수들과 함께 지나간 후였다. 관운장이 크게 한 소리를 지르니 여러 군사들이 모두 말에서 내려 땅에 엎드려 울었다. 관운장이 더욱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망설이는 사이에 장요가 말을 모아 이르자 관운장이 보고 또 친구의 정이 움직여 길게 한 소리로 탄식하고 나란히 모두 놓아 보냈다. 우세 사람이 시를 지은 것이 있는데 시에 ‘조조의 군대가 패하여 화용도로 달아나다 관운장과 좁은 길에서 만났다. 처음의 은헤와 의리를 중하게 여겨 쇠사슬을 열어 교룡이 달아나게 하였다.’ 했다.
曹操既脫華容之難,行至谷口,回顧所隨軍兵,止有二十七騎。比及天晚,已近南郡,火把齊明,一簇人馬攔路。操大驚曰:「吾命休矣!」只見一群哨馬衝到,方認得是曹仁軍馬。操纔心安。曹仁接著,言:「雖知兵敗,不敢遠離,只得在附近迎接。」操曰:「幾與汝不相見也!」
조조가 화용도의 어려움에서 벗어난 후 행군하여 골짜기 입구에 이르러 돌아보니 따르는 군병이 다만 이십칠 기 뿐이었다. 날이 저물 즈음 남군에 가까워졌는데 불이 일제히 밝아지면서 한 떼의 인마가 길을 막았다. 조조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내 목숨은 끝이구나!”하는데 한 무리의 정찰병이 치고 이르는 것을 보고 바야흐로 조인의 군마임을 알았다. 조조가 겨우 안심하였다. 조인이 연이어 말하기를 “비록 군대가 패하였음을 알았으나 감히 멀리 떨어지지 못하고 다만 근처에 있으면서 영접하였을 뿐입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거의 너와 서로 만나지 못할 뻔하였구나!”했다.
於是引眾入南郡安歇。隨後張遼也到,說雲長之德。操點將校中傷者極多,操皆令將息。曹仁置酒與操解悶。眾謀士俱在座。操忽仰天大慟。眾謀士曰:「丞相於虎窟中逃難之時,全無懼怯;今到城中,人已得食,馬已得料,正須整頓軍馬復仇,何反痛哭?」操曰:「吾哭郭奉孝耳!若奉孝在,決不使吾有此大失也!」遂搥胸大哭曰:「哀哉,奉孝!痛哉,奉孝!惜哉,奉孝!」眾謀士皆默然自慚。
이에 무리를 이끌고 남군에 들어가 편안히 쉬었다. 뒤를 따라 장요가 이르러 관운장의 덕을 말하였다. 조조가 점검 해보니 장교 중에 상한 자들이 매우 많았다. 조조는 모두 쉬게 하였다. 조인이 술을 두고 조조와 근심을 풀었다. 여러 모사들이 모두 자리에 있었다. 조조가 홀연히 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통곡하였다. 여러 모사들이 말하기를 “승상께서 호랑이 굴 안에서 어려움을 만났을 때 전혀 두려움과 겁이 없었고, 지금 성 안에 이르러 사람들은 이미 먹을 것을 얻었고, 말은 사료를 얻었으니 바로 모름지기 군마를 정돈하여 원수를 갚을 수 있는데 어찌하여 도리어 통곡하십니까?”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나는 곽봉효(곽가) 때문에 곡할 뿐이다! 만약 곽가가 있었다면 결단코 나로 하여금 이런 큰 잘못이 있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했다. 마침내 가슴을 치며 크게 울며 말하기를 “슬프다, 곽가여! 아프구나, 곽가여! 애석하구나, 곽가여!”했다. 여러 모사들이 모두 말없이 스스로 부끄러워하였다.
次日,操喚曹仁曰:「吾今暫回許都,收拾軍馬,必來報讎。汝可保全南郡。吾有一計,密留在此,非急休開,急則開之。依計而行,使東吳不敢正視南郡。」仁曰:「合淝,襄陽,誰可保守?」操曰:「荊州託汝管領;襄陽吾已撥夏侯惇守把。合淝最為緊要之地,吾命張遼為主將,樂進,李典為副將,保守此地。但有緩急,飛報將來。」
다음 날 조조가 조인을 불러 말하기를 “나는 지금 잠시 허도에 돌아가 군마를 수습하여 반드시 와서 원수를 갚을 것이다. 너는 남군을 보전해야 한다. 나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는데 비밀로 여기에 남겨 둘 터이니 급하지 않으면 열지 말고, 급하면 곧 열어보라. 계책에 의하여 행하면 동오가 감히 남군을 바로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했다. 조인이 말하기를 “합비와 양양은 누가 지킬 수 있습니까?”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형주는 너에게 관리하도록 부탁하고, 양양은 내가 이미 하후돈을 뽑아 지키라. 하였다. 합비는 가장 중요한 땅이어서 내가 장용에게 명하여 주된 장수로 삼고, 악진, 이전을 부장으로 삼아 이 땅을 지키게 하였다. 다만 늦고, 급한 일이 있으면 전령으로 보고하라.”했다.
操分撥已定,遂上馬引眾奔回許昌。荊州原降文武各官,依舊帶回許昌調用。曹仁自遺曹洪據守彝陵,南郡,以防周瑜。
조조가 조를 나누어 정한 후 드디어 말에 올라 무리를 이끌고 달려 허창에 돌아갔다. 형주는 원래의 항복한 문무의 각 관리는 데리고 허창에 돌아가 옛날 관직에 의하여 등용하였다. 조인은 스스로 조홍을 보내 이릉, 남군에 웅거하여 지키는 것으로서 주유를 방비하게 하였다.
卻說關雲長放了曹操,引軍自回。此時諸路軍馬,皆得馬匹、器械、錢糧,已回夏口;獨雲長不獲一人一騎,空身回見玄德。孔明正與玄德作賀,忽報雲長至。孔明忙離坐席,執盃相迎曰:「且喜將軍立此蓋世之功,與普天下除大害。合宜遠慶賀。」
각설하고 관운장은 조조를 놓아주고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이 때 여러 길의 군마가 모두 말, 기계, 동과 곡식을 얻어 하구로 돌아왔는데 유독 관운장만은 한 사람, 말 한필도 얻지 못하고 빈 몸으로 돌아가 유현덕을 뵈었다. 제갈공명은 바로 유현덕과 축하하였는데 홀연히 관운장이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제갈공명이 황망히 자리를 떠나 잔을 들고 맞이하여 말하기를 “또한 장군께서도 이 세상을 덮을 공을 세워 널리 천하의 큰 해를 제거한 것이 기쁩니다. 마땅히 멀리 나가 축하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했다.
雲長默然。孔明曰:「將軍莫非因吾等不曾遠接,故而不樂?」回顧左右曰:「汝等緣何不先報?」雲長曰:「關某特來請死。」孔明曰:「莫非曹操不曾容道上來?」雲長曰:「是從那裏來。關某無能,因此被他走脫。」孔明曰:「拏得甚將士來?」雲長曰:「皆不曾拏。」孔明曰:「此是雲長想曹操昔日之恩,故意放了。但既有軍令狀在此,不得不按軍法。」遂叱武士推出斬之。正是:拚將一死酬知已,玫(致)令千秋仰義名。未知雲長性命如何,且看下文分解。
관운장은 말이 없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장군께서는 우리들이 멀리 나가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즐거워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하고는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너희들은 어찌하여 먼저 보고하지 않았는가?”했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저는 와서 죽음을 청할 뿐입니다.”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조조가 화용도로 오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요?”했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그 길을 따라 온 것은 맞습니다. 제가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벗어나 달아나게 하였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그러면 어떤 장사들을 잡아 왔습니까?”하니 관운장이 말하기를 “모두 잡아오지 못하였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이는 관운장이 조조의 옛날 은혜를 생각하여 일부러 놓아주었다합니다. 이미 군령장이 여기에 있으니 군법을 살피지 않을 수 없을 뿐입니다.”했다. 마침내 무사를 불러 끌어내어 베어 죽이게 하였다. 바로 이러하다. 서슴없이 자기를 알아 준 이를 위해 한 번 죽으려 하니, 천추에 의로운 이름을 우러르게 하였다. 관운장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겠구나.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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