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五十七回:柴桑口臥龍弔喪,耒陽縣鳳雛理事
제57회 시상구에서 와룡(제갈공명)은 (주유의 죽음을)조문하고, 뇌양현의 봉추(방통)은 일을 다스리다.
卻說周瑜怒氣填胸,墜於馬下,左右急救歸船。軍士傳說:「玄德、孔明在前山頂上飲酒取樂。」瑜大怒,咬牙切齒曰:「你道我取不得西川,吾誓取之!」
각설하고 주유는 노한 기운이 가슴을 채워 말 아래로 떨어지니 좌우가 급히 구원하여 배로 돌아갔다. 군사들이 전하여 말하기를 “유현덕과 제갈공명이 앞 산 정상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고 있습니다.”했다. 주유가 크게 노하여 이를 꽉 다물고 갈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은 내가 서천을 얻지 못할 것이라 말하는데 나는 맹세코 서천을 취할 것이다.”했다.
正恨間,人報吳侯遣弟孫瑜到。周瑜接入,具言其事。孫瑜曰:「吾奉兄命來助都督。」遂令催軍前行。行至巴丘,人報上流有劉封,關平二人領軍截住水路。周瑜愈怒。忽又報孔明遣人送書至。周瑜拆封視之。書曰:「漢軍師中郎將諸葛亮,致書於東吳大都督公瑾先生麾下:自柴桑一別,至今戀戀不忘。聞足下欲取西川,亮竊以為不可。益州民強地險,劉璋雖暗弱,足以自守;今勞師遠征,轉運萬里,卻收全功,雖吳起不能定其規,孫武不能善其後也。曹操失利於赤壁,志豈須臾忘報讎哉?今足下興兵遠征,倘操乘虛而至,江南韭粉矣。亮不忍坐視,特此告知,幸垂照鑒。」
바로 원망하는 사이에 사람이 오 후가 동생 손유를 보내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주유가 영접하여 들이게 하고 그 일을 모두 말하였다. 손유가 말하기를 “내가 형님의 명을 받들어 와서 도독을 도우려 합니다.”하고는 마침내 군대를 재촉하여 앞으로 진군하게 하였다. 행군하여 파구에 이르니 사람이 상류에는 유봉과 관편 두 사람이 군대를 거느리고 물길(수로)을 끊고 주둔해 있다고 보고하였다. 주유가 더욱 노하였다. 홀연히 또 제갈공명이 사람을 시켜 보낸 글이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주유가 봉투를 뜯어보았다. 글에 말하기를 “한나라 군사 중랑장 제갈공명은 동오 대도독 공근(주유) 선생에게 글을 보냅니다. 시상군에서 한 번 이별한 후 지금까지 그리워하며 잊지 못하였습니다. 그대가 서천을 취하려 한다는 것을 들었는데 저는 가만히 불가하다고 여깁니다. 익주는 백성들이 굳세고 땅이 험하니 유장이 비록 어리석고 약하나 충분히 스스로를 지킬 수 있습니다. 지금 피로한 군사로 멀리 정벌하여 보급로가 만리나 되니 완전한 공을 거두는 것은 비록 오기라 할지라도 그 법을 정할 수 없고, 손무라 할지라도 그 뒤를 잘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 조조는 적벽에서 이로움을 잃었으나 뜻이 어찌 잠시라도 원수를 갚을 것을 잊었겠습니까? 지금 그대가 군대를 일으켜 멀리 정벌할 때 만약 조조가 빈틈을 타고 이르면 강남은 가루가 될 것입니다. 저는 차마 앉아서 볼 수 없어 특히 이를 말하여 알려드리니 밝게 살펴보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했다.
周瑜覽畢,長歎一聲,喚左右取紙筆作書上吳侯,乃聚眾將曰:「吾不欲盡忠報國,奈天命已絕矣。汝等善事吳侯,共成大業。」言訖,昏絕。徐徐又醒,仰天長歎曰:「既生瑜,何生亮?」連叫數聲而亡。壽三十又六歲。後人有詩歎曰:赤壁遺雄烈,青年有駿聲。絃歌知雅意,盃酒謝良朋。曾謁三千斛,常驅十萬兵。巴丘終命處,憑弔欲傷情。
주유가 보기를 마치고 길게 한 소리 탄식하고는 좌우를 불러 종이와 붓을 가져오게 한 후 오 후에게 올리는 글을 짓고는 곧 여러 장수를 모아 말하기를 “내가 진충보국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천명이 이미 끊어졌다. 너희들은 잘 오 후를 섬겨서 함께 대업을 이루도록 하시오.”했다. 말을 마치고는 혼절하였다. 천천히 깨어나서는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하고는 말하기를 “주유를 태어나게 하였으면서 어찌하여 제갈공명을 태어나게 하였는가?”하고는 연이어 몇 번 소리를 지르고는 죽었다. 나이는 삼십육세였다. 후세 사람이 기리는 시를 지어 말하기를 “적벽에서 빛나는 공적을 남겨 젊은 나이에 뛰어나다는 명성이 있었다. 거문고 퉁기며 노래하면 아름다운 뜻을 알았고, 술잔을 들면 좋은 벗에게 감사하였다. 일찍이 삼천 곡의 곡식을 요청하고, 항상 십만의 군대를 운용하였다. 파구는 생명을 마친 곳에서 조문하려하니 애달픈 정이 일어난다.” 했다.
周瑜停喪於巴丘。眾將將所遺書緘,遣人飛報孫權。權聞周瑜死,放聲大哭。拆視其書,乃薦魯肅以自代也。書略曰:「瑜以凡才,荷蒙殊遇,委任腹心,統御兵馬,敢不竭股肱之力,以圖報效?奈死生不測,修短有命;愚志未展,微軀已殞,遺恨何極!方今曹操在北,疆場未靜;劉備寄寓,有似養虎;天下之事,尚未可知。此正朝士旰食之秋,至尊垂慮之日也。魯肅忠烈,臨事不苟,可以代瑜之任。『人之將死,其言也善』。倘蒙垂鑒,瑜死不朽矣!」
주유의 영구를 파구에 안치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남긴 글을 가지고 사람을 시켜 재빠르게 손권에게 보고하였다. 손권이 주유가 죽었다는 것을 듣고 소리내어 크게 곡하였다. 봉투를 찢고 그글을 보니 곧 노숙을 추천하여 자신을 대신하게 하는 것이었다. 글을 요약해 보면 “제가 평범한 재능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고 성심을 위임받아 병마를 거느렸으니 감히 고굉의 힘을 다하는 것으로서 은혜 갚기를 도모하지 않겠습니까? 죽고 사는 것은 헤아릴 수 없고 목숨의 길고 짧은 것은 명이 있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어리석은 뜻을 미처 펴지 못하였는데 미천한 몸은 이미 죽음을 맞이하였으니 남은 한이 얼마나 지극하겠습니까? 바야흐로 지금 조조가 북쪽에 있어 국경이 아직 안정되지 못하였고, 유비(유현덕)가 (우리 땅에)붙어 있는 것은 마치 범을 기르는 것과 같음이 있으니 천하의 일은 오히려 알 수 없습니다. 이는 바로 조정의 벼슬아치들은 정무에 힘써 해진 후에 밥을 먹을 때이고, 지존께서는 생각을 드리울 때입니다. 노숙은 충성스럽고 지조가 굳은 사람으로 일을 대하여 구차하지 않으니 저(주유)를 대신하여 일을 맡을 만합니다. ‘사람이 장차 죽으려 할 때는 그 말이 선해진다.’합니다. 만일 (저의 말이) 거울이 될 수 있다면 저는 죽어도 (저의 뜻은) 썩어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했다.
孫權覽畢,哭曰:「公瑾有王佐之才,今忽短命而死,孤何賴哉?既遺書特薦子敬,孤敢不從之?」既日便命魯肅為都督,總統兵馬;一面教發周瑜靈柩回葬。
손권이 보기를 마치고 곡하며 말하기를 “공근(주유)은 왕좌의 재능이 있었는데 지금 명이 짧아 죽었으니 내가 누구에게 의지할 수 있겠는가? 이미 글을 남겨 특별히 자경(노숙)을 추천하였으니 내가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고는 그날로 곧 노숙을 도독으로 삼고 병마를 총괄하여 통솔하게 하는 한편으로 주유의 영구를 운구하여 돌아와 장례하게 하였다.
卻說孔明在荊州,夜觀天文,見將星墜地,乃笑曰:「周瑜死矣。」至曉,白於玄德。玄德使人探之,果然死了。玄德問孔明曰:「周瑜既死還當如何?」孔明曰:「代瑜領兵者,必魯肅也。亮觀天象,將星聚於東方。亮當以弔喪為由,往江東走一遭,就尋賢士佐助主公。」玄德曰:「只恐吳中將士加害於先生。」孔明曰:「瑜在之日,亮猶不懼;今瑜已死,又何患乎?」乃與趙雲引五百軍,具祭禮,下船赴巴丘弔喪。於路探聽得孫權已令魯肅為都督,周瑜靈柩已回柴桑。孔明逕至柴桑,魯肅以禮迎接。周瑜部將皆欲殺孔明,因見趙雲帶劍相隨,不敢下手。孔明教設祭物於靈前,親自奠酒,跪於地下,讀祭文曰: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형주에 있으면서 밤에 천문을 보았는데 장수의 별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이에 웃으며 말하기를 “주유가 죽었구나.”하고는 새벽에 이르러 유현덕에게 말하였다. 유현덕이 사람을 시켜 탐지해 보니 과연 (주유가) 죽었다. 유현덕이 제갈공명에게 물어 말하기를 “주유가 이미 죽었으니 또 어떻게 하려 하겠습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주유를 대신하여 군대를 거느릴 자는 반드시 노숙일 것입니다. 제가 하늘의 상을 관찰해보니 장수의 별이 동쪽에 모이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조문하는 것을 핑계삼아 강동에 가서 돌아다니며 한 번 만나보고, 나아가 현명한 선비를 찾아 주공을 돕게하겠습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다만 오나라 안의 장수들이 선생을 해칠까 두렵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주유가 살아 있을 때도 제가 오히려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지금 주유가 이미 죽었는데 또한 무엇을 근심하겠습니까?”했다. 이에 조운(조자룡)과 오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제례를 갖추어 배를 타고 파구에 나아가 조문하였다. 길에서 탐지하여 들으니 손권이 이미 노숙을 도독으로 삼았다는 것과 주유의 영구가 이미 시상군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았다. 제갈공명이 지름길로 시상군에 이르니 노숙이 예로서 영접하였다. 주유의 부장들이 모두 제갈공명을 죽이려하여 하였으나 조운(조자룡)이 검을 차고 따랐기 때문에 감히 손을 쓰지 못하였다. 제갈공명이 제물을 영구 앞에 진설하게하고 직접 술을 올린 후 땅에 무릎을 꿇고 제문을 읽었다. 제문에 말하기를
「嗚呼公瑾,不幸夭亡,修短故天,人豈不傷?我心實痛,酹酒一觴。君其有靈,享我烝嘗!弔君幼學,以交伯符;仗義疏財,讓舍以居。弔君弱冠,萬里鵬摶;定建霸業,割據江南。弔君壯力,遠鎮巴丘;景升懷慮,討逆無憂。弔君風度,佳配小喬;漢臣之婿,不愧當朝。弔君氣概,諫阻納質;始不垂翅,終能奮翼。弔君鄱陽蔣幹來說;揮灑自如,雅量高志。弔君弘才,文武籌略;火攻破敵,挽強為弱。想君當年,雄姿英發。哭君早逝,俯地流血。忠義之心,英靈之氣。命終三紀,名垂百世。哀君情切,愁腸千結。惟我肝膽,悲無斷絕。昊天昏暗,三軍愴然。主為哀泣,友為淚漣。亮也不才,丐計求謀。助吳拒曹,輔漢安劉。掎角之援,首尾相儔。若存若亡,何慮何憂?嗚呼公瑾!生死永別!朴守其貞,冥冥滅滅。魂如有靈,以鑒我心。從此天下,更無知音!嗚呼痛哉!伏惟尚饗!」
“아! 공근(주유)이 불행히도 젊은 나이에 죽었다. 단명한 것은 하늘이 한 것이나 사람으로 어찌 애달파 하지 않겠는가? 내 마음이 진실로 아파 술 한 잔을 부어 제사합니다. 그대의 혼령이 있다면 내 제사를 흠향하십시오. 그대 벼슬하지 않았을 때를 조상하니 백부(손권)와 교유하면서 의로움에 기대 재물을 멀리하고 집을 내어주고 살게 하였습니다. 그대 약관이었을 때를 조상하니 만리를 날아오르는 뜻을 모아 패업을 세워 강남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대 씩씩한 힘이 있을 때를 조상하니 멀리 파구에 진을 쳐 경승(유표)을 두려워하게 하고 역적을 토벌하여 근심이 없게 하였습니다. 그대의 풍채와 태도를 조상하니 아름다운 소교를 짝하고 한나라 신하의 사위가 되었으니 지금의 조정에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대의 기개를 조상하니 인질 보내는 것을 간쟁하여 막아 처음에는 날개를 늘어뜨리지 못하였으나 마지막에는 날개를 떨칠 수 있었습니다. 그대 파양에 있을 때 조상하니 장간이 와서 유세할 때 (술잔을)흔들어 씻고 태연하여 아름다운 도량과 높은 뜻이 있었습니다. 그대의 넓은 재주를 조상하니 문무와 계략에 뛰어나 호광으로 적을 깨트리고 강한 것을 당겨 약하게 하였습니다. 그대의 올 해를 생각하면 웅장한 자태는 꽃부리가 피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대 일찍 죽음에 곡하고 땅에 엎드려 흘리는 피는 충의의 마음이요 꽃다운 신령스러움의 기운입니다. 목숨은 삼십육년이나 이름은 백 세대에 드리울 것입니다. 그대 정이 간절함을 슬퍼하고, 마음이 서글퍼 천 개로 맺혔습니다. 내 간담을 생각하니 슬픔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하늘이 어둡고 삼군이 슬퍼합니다. 주군이 슬퍼 눈물 흘리고 벗이 눈물을 줄줄 흘립니다. 저(제갈공명)는 재주가 없어 계책을 구걸하고 꾀를 청하였습니다. 오를 도와 조조를 막고 한나라를 도와 유씨를 편안하게 하였습니다. 양쪽에서 협공하는 도움으로 머리와 꼬리가 서로 짝이 되었습니다. 살았거나 죽었거나 무슨 근심을 그리합니까? 아! 공근(주유)여! 살고 죽어 영원히 하오! 소박하게 그 절개를 지키다 어두운 곳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혼과 령이 있어 내 마음의 거울이 됩니다. 이제부터 천하에는 음악을 아는 이가 없을 것이오! 아! 슬프다! 엎드려 생각하니 흠향하십시오.”했다.
孔明祭畢,伏地大哭,淚如湧泉,哀慟不已。眾將相謂曰:「人盡道公瑾與孔明不睦,今觀其祭奠之情,人皆虛言也。」魯肅見孔明如此悲切,亦為感傷,自思曰:「孔明自是多情,乃公瑾量窄,自取死耳。」後人有詩嘆曰:臥龍南陽睡未醒,又添列曜下舒城。蒼天既已生公瑾,塵世何須出孔明?
제갈공명이 제사를 마치고 땅에 엎드려 크게 곡하는데 눈물이 샘 솟듯하여 슬픔을 그치지 못하였다. 열 장수들이 서로 일러 말하기를 “사람들이 모두 공근(주유)과 제갈공명이 화목하지 못하다고 말하는데 지금 그 제사하는 정을 보니 사람들이 모두 허언을 한 것이다.”했다. 노숙은 제갈공명의 슬퍼함이 간절한 것을 보고는 또한 서글픔을 느껴 스스로 생각하기를 “제갈공명은 이처럼 정이 많은 사람인데 곧 공근(주유)의 도량이 좁아 스스로 죽음을 취할 뿐이었다.”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기려 말하기를 “와룡이 남양에서 잠자다 미처 깨어나지 않았는데 또 별이 사성에 내렸다. 푸른 하늘이 이미 공근(주유)을 내시고 풍진 세상에 다시 제갈공명을 내시었는가?”했다.
魯肅設宴款待孔明。宴罷,孔明辭回。方欲下船,只見江邊一人道袍竹冠,皂縧素履,一手揪住孔明大笑曰:「汝氣死周郎,卻又來弔孝,明欺東吳無人耶?」孔明急視其人,乃鳳雛先生龐統也。孔明亦大笑。兩人攜手登舟,各訴心事。孔明乃留書一封與統,囑曰:「吾料孫仲謀必不能重用足下。稍有不如意,可來荊州共扶玄德。此人寬仁厚德,必不負公平生之所學。」統允諾而別。孔明自回荊州。
노숙이 연회를 베풀어 정성껏 제갈공명을 대접하였다. 연회를 마치고 제갈공명은 하직하고 돌아갔다. 막 배를 타려하는데 강변에서 한 사람을 만났는데 도포를 입고 대나무 관을 쓰고 검은 띠를 매고, 흰신을 신고, 한 손으로 제갈공명을 꽉 잡고는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너는 주유를 화 내게하여 죽게 하고는 또 와서 조문하니 제갈공명은 동오에 사람이 없다고 업신여기는가?”했다. 제갈공명이 급히 그 사람을 보니 곧 봉추선생 방통이었다. 제갈공명이 또한 크게 웃었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배에 올라 각각 마음속의 일을 말하였다. 제갈공명이 곧 글 한 통을 방통에게 주면서 부탁하여 말하기를 “내가 손중모(손권)를 헤아려보니 반드시 그대를 중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뜻과 같지 않다면 형주에 와 함께 유현덕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너그럽고 인자하며 덕이 두터우니 반드시 공이 평생동안 공부한 것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했다. 방통이 허락하고 헤어졌다. 제갈공명이 형주에 돌아왔다.
卻說魯肅送周瑜靈柩至蕪湖,孫權接著,哭祭於前,命厚葬於本鄉。瑜有兩男一女,長男循,次男胤。權皆厚恤之。魯肅曰:「肅碌碌庸才,誤蒙公瑾重薦,其實不稱所職。願舉一人以助主公。此人上通天文,下曉地理;謀略不減於管樂,樞機可並於孫吳。往日周公瑾多用其言,孔明亦深服其智。見在江南,何不重用?
각설하고 노숙은 주유의 영구를 호송하여 무호에 이르니 손권이 (영구를)받아 영구 앞에서 곡하고 제사하고 본래 고향에 후하게 장례하게 하였다. 주유는 두 아들과 한 딸이 있었는데 장남은 순이고, 차남은 윤이었다. 손권이 모두 두터이 구휼하였다. 노숙이 말하기를 “저(노숙)는 평범하고 용렬한 재주로 잘못 공근(주유)의 거듭된 천거를 입었으나 그 실제는 직책에 걸맞지 않습니다. 한 사람을 천거하는 것으로서 주공을 돕게 하려 합니다. 이 사람은 위로는 천문에 통달하고 아래로는 지리를 깨달았으며, 계략으로는 관중과 악의보다 덜하지 않고 일의 핵심으로는 손자와 오기와 나란히 할 만합니다. 지난날 주공근(주유)은 그의 말을 많이 채용하였고, 제갈공명이 또한 깊이 그 지혜를 인정합니다. 강남에 있는데 어찌하여 중용하지 않으십니까?” 했다.
權聞言大喜,便問此人姓名。肅曰:「此人乃襄陽人。姓龐,名統,字士元,道號鳳雛先生。」權曰:「孤亦聞其名久矣。今既來此,可即請來相見。」於是魯肅邀請龐統入見孫權,施禮畢。權見其人濃眉掀鼻,黑面短髯,形容古怪,心中不喜。乃問曰:「公平生所學,以何為主?」統曰:「不必拘執,隨機應變。」權曰:「公之才學,比公瑾何如?」統笑曰:「某之才學,與公瑾大不相同。」權平生最喜周瑜,見統輕之,心中愈不樂,乃謂統曰:「公且退;待有用公之時,卻來相請。」
손권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곧 이 사람의 성명을 물었다. 노숙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곧 양양 사람입니다. 성은 방이고, 이름은 통이며, 자는 사원이며, 도호는 봉추선생입니다.”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내가 또한 그 이름을 들은 지 오래되었다. 지금 이미 여기에 왔으니 곧 청하여 만날 수 있다.”했다. 이에 노숙이 방통을 맞이하여 들어와 손권을 만나 예를 베풀기를 마쳤다. 손권이 그 사람을 보니 눈썹은 짙고, 코는 치켜 들렸으며 얼굴은 검고 수염은 짧아 모습이 기괴하니 마음속으로 기뻐하지 않았다. 곧 물어 말하기를 “공은 평생동안 공부한 바는 무엇을 위주로 하였습니까?”하니 방통이 말하기를 “반드시 구애받지 않고 기틀을 따라 알맞게 변화하였습니다.”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공의 재능과 학문은 공근(주유)과 비교하여 어떠합니까?”하니 방통이 웃으며 말하기를 “나의 재주와 학문은 공근(주유)과 크게 서로 같지 않습니다.”했다. 손권이 평생동안 주유를 가장 좋아하였기 때문에 방통을 가볍게 여겨 마음속으로 더욱 즐거워하지 않았다. 이에 방통에게 일러 말하기를 “공은 또한 물러나 공을 등용할 때를 기다리시면 청할 것입니다.”했다.
統長歎一聲而出。魯肅曰:「主公何不用龐士元?」權曰:「狂士也,用之何益?」肅曰:「赤壁鏖兵之時,此人曾獻連環策,成第一公(功)。主公想必知之。」權曰:「此時乃曹操自欲釘船,未必此人之功也。吾誓不用之。」魯肅出謂龐統曰:「非肅不薦足下,奈吳侯不肯用公。公且耐心。」統低頭長歎不語。
방통이 길게 탄식하고 나갔다. 노숙이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방사원(방통)을 등용하지 않았습니까?”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미친 선비이다. 그를 등용하는 것이 무슨 이익이겠는가?”하니 노숙이 말하기를 “적벽의 치열한 전투 때 이 사람이 일찍이 연환책을 바쳐 첫째가는 공을 이루었습니다. 주공께서는 반드시 그것을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이 때는 곧 조조가 스스로 배에 못을 박고자 하였으니 반드시 이 사람의 공은 아니다. 나는 맹세코 그를 등용하지 않을 것이다.”했다. 노숙이 나와 방통에게 일러 말하기를 “제가 그대를 천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 후께서 즐겨 공을 등용하지 않으십니다. 공께서는 또한 참으십시오.”했다. 방통이 머리를 숙이고 길게 탄식하며 말하지 않았다.
肅曰:「公莫非無意於吳中乎?」統不答。肅曰:「公抱匡濟之才,何往不利?可實對肅言,將欲何往?」統曰:「吾欲投曹操去也。」肅曰:「此明珠暗投矣。可往荊州投劉皇叔,必然重用。」統曰:「統意實欲如此,前言戲耳。」肅曰:「某當作書奉薦。公輔玄德,必令孫劉兩家,無相攻擊,同力破曹。」統曰:「此某平生之素志也。」乃求肅書,逕往荊州來見玄德。
노숙이 말하기를 “공은 오 안에 뜻이 없는 것입니까?”하니 방통이 답하지 않았다. 노숙이 말하기를 “공은 세상을 바로잡고 구제할 재능을 지녔으니 어디에 간들 이롭지 않겠습니까? 진실로 저의 말에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니 장차 어디로 가고자 하십니까?”했다. 방통이 말하기를 “나는 조조에게 나아가려 합니다.”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이는 밝은 구슬이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형주로 가 유황숙에게 들어가시면 중용될 것이 틀림없습니다.”했다. 방통이 말하기를 “저의 뜻이 실제로는 이와 같고자 하고, 앞에 한 말은 희롱하는 말일 뿐입니다.”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제가 마땅히 글을 써서 추천할 것입니다. 공이 유현덕을 돕는다면 반드시 손씨와 유씨 두 집안이 서로 공격하지 않고 힘을 합쳐 조조를 깨트릴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방통이 말하기를 “이는 저의 평생의 뜻입니다.”하고는 곧 노숙의 글을 청하여 지름길로 형주에 가 유현덕을 만났다.
此時孔明按察四郡未回。門吏傳報江東名士龐統,特來相投。玄德久聞統名,便教請入相見。統見玄德,長揖不拜,玄德見統貌陋,心中亦不悅,乃問統曰:「足下遠來不易?」統不即取出魯肅書并孔明投呈,但答曰:「聞皇叔招賢納士,特來相投。」玄德曰:「荊,楚稍定,苦無閒職。此去東南數百里,有一縣名耒陽縣,缺一縣宰,屈公任之。如後有缺,卻當重用。」
이 때 제갈공명은 사 군을 살펴보러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문지기가 강동의 명사 방통이 특히 와서 들어왔다고 보고하였다. 유현덕이 방통의 이름을 들은지 오래되었으므로 들어오게 하여 만났다. 방통이 유현덕을 보고는 길게 읍하였으나 절하지 않았다. 유현덕은 방통의 모습이 비루한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또한 좋아하지 않았다. 이에 방통에게 물어 말하기를 “그대가 멀리서 오기가 쉽지 않았겠습니다.”하니 방통이 노숙의 글과 제갈공명의 글을 내어 곧 올리지 않고 거리낌없이 말하기를 “황숙(유현덕)이 현명한 이를 부르고 선비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듣고 특히 와서 들어 온 것입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형, 초지역이 점점 안정되어 괴로우나 빈자리가 없습니다. 여기는 동남쪽으로 수백 리 떨어진 곳에 한 현이 있으니 이름이 뇌양현인데 현재(현의 관리)가 빠져 있으므로 도리에 맞지 않지만 공이 그것을 맡으시오. 만약 후에 빠진 곳이 있으면 마땅히 중용할 것입니다.”했다.
統思玄德待我何薄,欲以才學動之;見孔明不在,只得勉強相辭而去。統到耒陽縣,不理政事,終日飲酒為樂;一應錢糧詞訟,並不理會。有人報知玄德,言龐統將耒陽縣事盡廢。玄德怒曰:「豎儒焉敢亂吾法度!」遂喚張飛分付:「引從人去荊南諸縣巡視。如有不公不法者,就便究問。恐於事有不明處,可與孫乾同去。」
방통은 유현덕이 어찌 나를 야박하게 대우하는가 생각하고는 재능과 학문으로서 그를 움직이려 하였으나 제갈공명이 있지 않은 것을 보고는 부득이 억지로 하직하고 갔다. 방통은 뇌양현에 이르러 정사는 다스리지 않고 종일토록 술을 마시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았고, 전량(조세)과 소송은 모두 다스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유현덕에게 보고하기를 “방통이 뇌양현의 일을 모두 폐하였습니다.”하고 말하니 유현덕이 노하여 말하기를 “못난 선비가 어찌 감히 나의 법도를 어지럽게 하는가!”하고는 마침내 장비를 불러 분부하기를 “따르는 사람을 이끌고 형남 여러 현을 순시하라. 만약 공정하지 않고, 법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곧 따져 묻게 하였다. 아마도 정사에 밝지 않은 곳이 있다면 손건과 함께 가면 된다.”했다.
張飛領了言語,與孫乾同至耒陽縣。軍民官吏,皆出郭迎接,獨不見縣令。飛問曰:「縣令何在?」同僚覆曰:「龐縣令自到任及今,將百餘日,縣中之事,並不理問,每日飲酒,自旦及夜,只在醉鄉。今日宿酒未醒,猶臥不起。」
장비가 말을 듣고는 손건과 함께 뇌양현에 이르렀다. 군민과 관리들이 모두 외곽에 나와 영접하는데 유독 현령이 보이지 않았다. 장비가 물어 말하기를 “현령은 어디에 있는가?”하니 동료들이 거듭 말하기를 “방 현령은 부임한 이래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백 여일인데 현 안의 일은 모두 묻고 다스리지 않고, 매일 술을 마시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취해 있을 뿐입니다. 오늘도 술에 취해 깨어나지 않아 아직도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했다.
張飛大怒,欲擒之。孫乾曰:「龐士元乃高明之人,未可輕忽。且到縣問之。如果於理不當,治罪未晚。」飛乃入縣,正廳上坐定,教縣令來見。統衣冠不整,扶醉而出。飛怒曰:「吾兄以汝為人,令作縣宰,汝焉敢盡廢縣事?」統笑曰:「將軍以吾廢了縣中何事?」飛曰:「汝到任百餘日,終日在醉鄉,安得不廢政事?」
장비가 크게 노하여 그를 잡고자 하였다. 손건이 말하기를 “방사원(방통)은 곧 고명한 사람이니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또 현에 이르러 물어보고 만약 과연 다스림이 마땅하지 않을 때 죄를 다스려도 늦지 않습니다.”했다. 장비가 곧 현에 들어가 정청 위에 앉으니 현령이 와서 뵈었다. 방통은 옷과 관을 정돈하지도 않고 취한 채 나왔다. 장비가 노하여 말하기를 “나의 형님이 너를 사람으로 여겨 현재로 삼았는데 네가 어찌 감히 현의 일을 모두 폐하였는가?”하니 방통이 웃으며 말하기를 “장군께서는 내가 현 안의 어떤 일을 폐하였다고 여깁니까?”하니 장비가 말하기를 “네가 부임한 이래로 백 여일이 지났는데 종일토록 취해 있었으니 어찌 정사를 폐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가?”했다.
統曰:「量百里小縣,些許公事,何難決斷?將軍少坐,待我發落。」隨即喚公吏,將百餘日所積公務,都取來剖斷,吏皆紛然齎抱案卷,上廳訴詞。被告人等,環跪階下。統手中批判,口中發落,耳內聽詞,曲直分明,並無分毫差錯,民皆叩首拜伏。不到半日,將百餘日之事,盡斷畢了,投筆於地,而對張飛曰:「所廢之事何在?曹操,孫權,吾視之若掌上觀文,量此小縣,何足介意!」
방통이 말하기를 “헤아려보니 백리는 작은 현이라 공적인 일이 적은데 결단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장군께서 조금 앉아 계시면서 내가 일을 처리하는 것을 기다리십시오.”하고는 곧 공리를 불러 백 여일동안 쌓인 공무를 가져오게 한 뒤 모두 취하여 나누고 결단하겠다. 관리들이 분주하게 공문서들을 안아다 가져와 청에 올려 소송을 처리하게 하였다. 피고인 등이 계단 아래 둘러앉았다. 방통이 손으로는 판단하여 결재하고, 입으로는 일을 처리하며 귀로는 송사를 듣는데 일의 옳고 그름이 분명하여 모두 터럭의 어긋남도 없으니 백성들이 모두 머리를 찧으며 엎드려 절하였다. 한나절도 되지 않아 백 여일의 일을 모두 결단하기를 마치고 붓을 땅에 던지고 장비를 대하여 말하기를 “페한 바의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조조, 손권도 내가 그들 보기를 손바닥 위의 손금을 보듯이 하는데 이 작은 현을 헤아리는 것이 신경 쓸 일이 있겠습니까?”했다.
飛大驚,下席謝曰:「先生大才,小子失敬。吾當於兄長處極力舉薦。」統乃將出魯肅薦書。飛曰:「先生初見吾兄,何不將出?」統曰:「若便將出,似乎專藉薦書來干謁矣。」飛顧謂孫乾曰:「非公則失一大賢也。」遂辭統回荊州,見玄德,具說龐統之才。玄德大驚曰:「屈待大賢,吾之過也!」飛將魯肅薦書呈上。玄德拆視之。書略曰:「龐士元非百里之才,使處治中別駕之任,始當展其驥足。如以貌取之,恐負所學,終為他人所用,實可惜也。」
장비가 크게 놀라 자리에서 내려와 사과하며 말하기를 “선생은 큰 재능을 지녔는데 제가 공경하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마땅히 형님께 힘을 다하여 천거하겠습니다.”했다. 방통이 이에 노숙의 추천서를 꺼냈다. 장비가 말하기를 “선생이 처음 내 형님을 뵈었을 때 왜 내보이지 않았습니까?”하니 방통이 말하기를 “만약 곧 내 보였다면 마치 오로지 추천서에 의지하여 와서 뵙기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했다. 장비가 손건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공이 아니었다면 하나의 크게 현명한 이를 잃을 뻔하였습니다.”하고는 마침내 방통을 하직하고 형주에 돌아가 유현덕을 뵙고는 방통의 재능을 모두 말하였다. 유현덕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크게 현명한 이를 굴욕적으로 대우하였으니 나의 잘못이다.”했다. 장비가 노숙의 추천서를 올렸다. 유현덕이 봉투를 열었다. 글은 대략적으로 “방사원(방통)은 백리의 재능이 아니니 치중별가의 임무를 맡게 하시면 비로소 그 뛰어난 재능을 펼 수 있습니다. 만일 모습으로서 그를 취한다면 배운 바를 저버리고 마침내 다른 사람에게 등용될 것이 두려우니 실로 애석해 할 만합니다.”했다.
玄德看畢,正在嗟歎,忽報孔明回。玄德接入,禮畢。孔明先問曰:「龐軍師近日無恙否?」玄德曰:「近治耒陽縣,好酒廢事。」孔明笑曰:「士元非百里之才,胸中之學,勝亮十倍。亮曾有薦書在士元處,曾達主公否?」玄德曰:「今日方得子敬書,卻未見先生之書。」孔明曰:「大賢若處小任,往往以酒糊塗,倦於視事。」玄德曰:「若非吾弟所言,險失大賢。」隨即令張飛往耒陽縣請龐統到荊州,玄德下階請罪。統方將出孔明所薦之書。玄德看書中之意,言鳳雛到日,宜即重用。玄德喜曰:「昔司馬德操言:『伏龍,鳳雛,兩人得一,可安天下。』今吾二人皆得,漢室可興矣。」遂拜龐統為副軍師中郎將,與孔明共贊方略,教練軍士,聽候征伐。
유현덕이 보기를 마치고 놀라고 감탄할 때 홀연히 제갈공명이 돌아왔다고 보고하였다. 유현덕이 맞아 들여 예를 마쳤다. 제갈공명이 먼저 물어 말하기를 “방통군사는 최근에 별고 없었습니까?”하니 유현덕이 말하기를 “최근에 뇌양현을 다스렸는데 술을 좋아하여 일을 폐하였습니다.”하니 제갈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사원(방통)은 백 리의 재능이 아니고, 가슴에 품은 학문은 저보다 열 배는 뛰어납니다. 제가 일찍이 사원(방통)에게 준 추천서를 준 것이 있는데 주공께서 보셨습니까?”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오늘 막 자경(노숙)의 글을 보았으나 선생의 글을 보지 못하였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크게 현명한 이가 작은 임무를 맡으면 자주 술로서 감추고 일을 보기를 게으르게 합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만약 내 동생이 말하지 않았다면 크게 현명한 이를 잃을 뻔하였습니다.”하고는 마침내 장비를 시켜 뇌양현에 가서 방통을 청하여 형주에 오게 하고 유현덕은 계단 아래로 내려가 죄를 청하였다. 방통이 제갈공명이 추천한 글을 내어 주었다. 유현덕이 글 중의 뜻을 보니 봉추(방통)이 이르는 날에 즉시 중용하라는 말이었다. 유현덕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옛날 사마덕조가 말하기를 ‘복룡, 봉추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을 얻으면 천하를 편안하게 할 수 있다.’하였는데 지금 내가 두 사람을 모두 얻었으니 한나라를 흥기시킬 수 있을 것이다.”했다. 마침내 방통을 부군사 중낭장을 삼고 제갈공명과 함께 방책과 계략을 돕고, 군사를 훈련시키며 정벌을 기다리게 하였다.
早有人報到許昌,言劉備有諸葛亮,龐統為謀士,招軍買馬,積草屯糧,連結東吳,早晚必興兵北伐。曹操聞之,遂聚謀士商議南征。荀攸進曰:「周瑜新死,可先取孫權,次攻劉備。」操曰:「我若遠征,恐馬騰來襲許都。前在赤壁之時,軍中有訛言,亦傳西涼入寇之事,今不可不防也。」荀攸曰:「以愚所見,不若降詔,加馬騰為征南將軍,使討孫權;誘入京師,先除此人,則南征無患矣。」操大喜,即日遣人齎詔至西涼召馬騰。
어떤 사람이 재빨리 허창에 이르러 유비(유현덕)가 제갈공명과 방통을 모사로 삼아 군대를 모으고 말을 사들이며 마초를 쌓고 식량을 저장하며, 동오와 연결하여 조만간에 반드시 군대를 일으켜 북쪽을 정벌할 것이라 보고하였다. 조조가 그것을 듣고 마침내 모사를 모아 남쪽을 정벌할 것을 상의하였다. 순유가 나와 말하기를 “주유가 죽었으니 먼저 손권을 취하고 다음으로 유비(유현덕)을 쳐야 합니다.”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만약 멀리 가서 정벌할 때 마등이 와서 허도를 엄습할 것이 걱정된다. 전에 적벽에 있을 때 군중에 유언비어가 있었는데 또한 서량이 들어와 노략질하는 일을 전하는 것이었다. 지금 방비하지 않을 수 없다.”했다. 순유가 말하기를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마등을 정남장군으로 삼는다는 조서를 내리고, 손권을 토벌하게 하여 경사로 들어오게 유인하여 먼저 이 사람을 제거하면 곧 남쪽을 정벌하는 것에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그날 사람을 시켜 조서를 가지고 서량에 이르러 마등을 부르게 하였다.
卻說騰字壽成,漢伏波將軍馬援之後。父名肅,字子碩,桓帝時為天水闌干縣尉;後失官流落隴西,與羌人雜處,遂娶羌女生騰。騰身長八尺,體貌雄異,稟性溫良,人多敬之。靈帝未年,羌人多叛,騰招募民兵破之。初平中年,因討賊有功,拜征西將軍,與鎮西將軍韓遂為兄弟。
각설하고 마등은 자가 수성이니 한나라 복파장군 마원의 후예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숙으로 자는 자석이니 환제 때 천수군 난간현 위가 되었다. 후에 관직을 잃고 농서에 흘러들어가 강족 사람들과 섞여살다가 마침내 강족의 여자에게 장가들어 마등을 낳았다. 마등은 키가 여덟 자로 몸의 모습이 웅장하고 기이하며 품성이 온화하고 선하여 사람들이 많이 존경하였다. 여제 말년에 강 족 사람들이 많이 배반하였는데 마등이 민병을 모집하여 깨트렸다. 초평 중년에 도적을 토벌하는데 공이 있었기 때문에 정서장군의 벼슬을 받았고 진서장군 한수와 형제가 되었다.
當日奉詔,乃與長子馬超商議曰:「吾自與董承受衣帶詔以來,與劉玄德約共討賊,不幸董承已死,玄德屢敗。我又僻處西涼,未能協助玄德。今聞玄德已得荊州,我正欲展昔日之志,而曹操反來召我,當是如何?」馬超曰:「操奉天子之命以召父親,今若不往,彼必以逆命責我矣。當乘其來召,竟往京師,於中取事,則昔日之志可展也。」
조서를 받든 그날 맏아들 마초와 함께 상의하여 말하기를 “내가 동승과 의대로 조서를 받은 이래로부터 유현덕과 함께 도적을 토벌할 것을 약속하였는데 불행히도 동승은 죽었고, 유현덕은 여러 번 패하였다. 내가 또한 궁벽한 서량에 있어 유현덕에게 협조할 수 없었다. 지금 들으니 유현덕이 이미 형주를 얻었다 하므로 내가 바로 지난날의 뜻을 펴려 하였는데 조조가 도리어 나를 부르니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했다. 마초가 말하기를 “조조는 천자의 명을 받드는 것으로서 아버지를 부르니 지금 만약 가지 않는다면 그들은 반드시 명을 거스른 것으로서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마땅히 그 부름을 타고 경사에 가서 일을 취한다면 곧 옛날의 뜻을 펼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馬騰兄子馬岱諫曰:「曹操心懷叵測,叔父若往,死(恐)遭其害。」超曰:「兒願盡起西涼之兵,隨父親殺入許昌,為天下除害,有何不可?」騰曰:「汝自統羌兵保守西涼,只教次子馬休,馬鐵并姪馬岱隨我同往。曹操見有汝在西涼,又有韓遂相助,諒不敢加害於我也。」超曰:「父親若往,切不可輕入京師。當隨機應變,觀其動靜。」騰曰:「吾自有區處,不必多慮。」
마등의 형의 아들 마대가 간하여 말하기를 “조조가 마음에 품은 것을 헤아리기 어려운데 숙부께서 만일 가신다면 그 해침을 만날까 두렵습니다.”했다. 마초가 말하기를 “제가 모든 서량의 군대를 일으켜 아버지를 따라 허창에 몰려 들어가 천하를 위하여 해를 제거하는 것이 어찌 잘못됨이 있겠는가?”했다. 마등이 말하기를 “너는 스스로 강족의 군대를 통솔하여 서량을 지키고, 다만 차자 마휴, 마철과 조카 마대만 나와 같이 가자. 조조는 네가 서량에 있고, 또한 한수가 서로 돕고 있는 것을 본다면 진실로 감히 나에게 해를 가하지 못할 것이다.”했다. 마초가 말하기를 “아버지께서 만약 가신다면 절대로 가벼이 경사에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마땅히 상황에 따라 그 동정을 살펴야 합니다.”하니 마등이 말하기를 “내 스스로 변통함이 있으니 많이 근심할 필요 없다.” 했다.
於是馬騰乃引西涼兵五千,先教馬休,馬鐵為前部,留馬岱在後接應,迤灑望許昌而來,離許昌二十里屯住軍馬。曹操聽知馬騰已到,喚門下侍郎黃奎分付曰:「目今馬騰南征,吾命汝為行軍參謀,先至馬騰寨中勞軍,可對馬騰說:西涼路遠,運糧甚難,不能多帶人馬。我當更遣大兵,協同前進。來日教他入城面君,吾就應付糧草與之。」
이에 마등은 곧 서량 군대 오천 명을 이끌고 마휴를 선봉으로 하고, 마철을 전부로 삼고, 마대는 뒤에 있으면서 상황에 따라 대응하게 하고 구불구불 허창을 향해 행군하여 허창에서 이십 리 떨어진 곳에 군마를 주둔하였다. 조조는 마등이 이미 이르렀다는 것을 들어 알고는 문하시랑 황규를 불러 분부하여 말하기를 “지금 마등이 남쪽을 정벌하고 있으니 내가 너로 하여금 행군참모로 삼아 먼저 마등의 영채에 가 군사를 위로하고, 마등에 대하여 말하기를 ‘서량은 길이 멀어 군량을 운반하기 매우 어려워 인마를 많이 데려 오지 못하였을 것이다. 내가 다시 큰 군대를 보내 협동하여 전진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내일 그들로 하여금 성을 들어오게 하여 임금을 뵙게 하면 내가 나아가 응대하여 식량과 말먹이 풀을 줄 것이다.’하라.”했다.
奎領命,來見馬騰。騰置酒相待。奎酒半酣而言曰:「吾父黃琬死於李傕,郭汜之難,嘗懷痛恨。不想今日又遇欺君之賊。」騰曰:「誰為欺君之賊?」奎曰:「欺君者操賊也。公豈不知之而問我耶?」騰恐是操使來相探,急止之曰:「耳目較近,休得亂言。」奎叱曰:「公竟忘卻衣帶詔乎?」騰見他說出心事,乃密以實情告之。奎曰:「操欲公入城面君,必非好意。公不可輕入。來日當勒兵城下。待曹操出城點軍,就點軍處斬之,大事濟矣。」
황규가 명을 받고 가서 마등을 만났다. 마등은 술을 내어 대접하였다. 황규가 술이 얼큰해지자 말하기를 “나의 아버지 황완은 이곽과 곽사의 난 때 죽어 일찍이 통한을 품고 있었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오늘 또한 임금을 속이는 도적을 만났습니다.”했다. 마등이 말하기를 “임금을 속이는 도적은 누구입니까?”하니 황규가 말하기를 “임금을 속이는 자는 조조 도적입니다. 공은 어찌하여 그것을 알지 못하고 나에게 묻습니까?”하니 마등은 이것이 조조가 (자신을)정탐하게 한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여 급히 저지하며 말하기를 “귀와 눈이 비교적 가까우니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했다. 황규가 질책하여 말하기를 “공은 끝내 의대조를 잊었습니까?”했다. 마등은 그의 말이 마음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는 곧 비밀리 실정을 고하였다. 황규가 말하기를 “조조는 공이 성에 들어 가 임금을 뵙게하고자 하는데 반드시 좋은 뜻이 아닐 것입니다. 공께서는 가벼이 들어가지 마십시오. 내일은 마땅히 군대를 지휘하여 성 아래에 가십시오, 조조가 성을 나와 군대를 점검하기를 기다렸다가 군대를 점검하는 곳에서 그를 죽인다면 큰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했다.
二人商議已定,黃奎回家,恨氣未息。其妻再三問之,奎不肯言。不料其妾李春香,與奎妻弟苗澤私通。澤欲得春香,正無計可施。妾見黃奎憤恨,遂對澤曰:「黃侍郎今日商議軍情回,意甚憤恨,不知為何?」澤曰:「汝可以言挑之曰:『人皆說劉皇叔仁德,曹操奸雄,何也?』看他說甚言語。」
두 사람은 상의가 정해지자 황규는 집으로 돌아가는데 한스러운 기운이 그치지 않았다. 그 처가 두 번, 세 번 물었으나 황규는 즐겨 말하지 않았다. 뜻 밖에도 그의 첩 이춘향과 황규의 처남 묘택이 사통하고 있었다. 묘택이 이춘향을 얻고자 하였으나 바로 계책을 베풀만 한 것이 없었다. 첩(이춘향)이 황규가 분해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마침내 묘택을 마주하고 말하기를 “황시랑이 오늘 군의 실정을 상의하고 돌아와 매우 분해하는데 무엇 때문인지 알지 못합니까?”했다. 묘택이 말하기를 “네가 말로서 떠보아 말하기를 ‘사람들이 모두 유황숙이 어진 덕이 있고, 조조는 간웅이라 말하는데 어떻습니까?’해서 그가 어떻게 말을 하는지 보시오.”했다.
是夜黃奎果到春香房中。妾以言挑之。奎乘醉言曰:「汝乃婦人,尚知邪正,何況我乎?吾所恨者,欲殺曹操也。」妾曰:「若欲殺之,如何下手?」奎曰:「吾已約定馬將軍,明日在城外點兵時殺之。」
이날 밤 황규가 과연 춘향의 방에 이르렀다. 첩(이춘향)이 말로서 떠 보았다. 황규가 취하여 말하기를 “너는 곧 부인인데도 오히려 간사함과 바름을 아는데 하물려 나에 있어서이겠는가? 내가 한하는 바는 조조를 죽이려 하는 것이다.”했다. 첩(이춘향)이 말하기를 “만약 그를 죽고자 한다면 어떻게 손을 쓰려합니까?”하니 황규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마장군(마등)과 내일 성밖에서 군대를 점검할 때 그를 죽이기로 약속하였다.”했다.
妾告於苗澤,澤報知曹操。操便密喚曹洪,許褚分付如此如此;又喚夏侯淵、徐晃分付如此如此。各人領命去了,一面先將黃奎一家老小拏下。
첩(이춘향)이 묘택에게 말하니 묘택이 조조에게 보고하여 알렸다. 조조는 곧 비밀리에 조홍과 허저를 불러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분부하고, 또 하후연, 서황을 불러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분부하였다. 각각의 사람들이 명을 받고 갔다. 한편으로 먼저 황규 한 가문의 노소를 모두 잡아 가두었다.
次日,馬騰領著西涼兵馬,將次近城,只見前面一簇紅旂,打著丞相旗號。馬騰只道曹操自來點軍,拍馬向前。忽聽得一聲砲響,紅旗開處,弓弩齊發。一將當先,乃曹洪也。馬騰急撥馬回時,兩下喊聲又起。左邊許褚殺來,右邊夏侯淵殺來,後面又是徐晃領兵殺至,截斷西涼軍馬,將馬騰父子三人困在垓心。
다음날 마등이 서량의 병마를 거느리고 장차 성에 가까이 가고 있는데 다만 전면에 한 무리의 붉은 깃발만이 펄럭이는데 승상의 깃발도 걸려 있었다. 마등은 다만 조조가 스스로 와서 군대를 점검하려는 것으로 생각하고 말에 박차를 가하여 앞을 향해 나갔다. 홀연히 한 번의 포 소리가 울리고 붉은 깃발이 열리는 곳으로 활과 쇠뇌가 일제히 발사되었다. 한 장수가 앞으로 나오는데 곧 조홍이었다. 마등이 급히 말을 돌릴 때 양 쪽에서 함성이 또한 일어났다. 왼쪽에는 허저가 쇄도해 오고, 오른 쪽에는 하후연이 쇄도해 오고, 뒤쪽에는 또한 서황이 군대를 이끌고 돌진해 와 서량의 군마를 막으니 마등 부자 세 사람이 싸움터 한 가운데서 곤궁에 처하게 되었다.
馬騰見不是頭,奮力衝殺。馬鐵早被亂箭射死。馬休隨著馬騰左衝右突,不能得出。二人身帶重傷,坐下馬又被箭射倒,父子二人俱被執。曹操教將黃奎與馬騰父子,一齊綁至。黃奎大叫:「無罪!」操教苗澤對證。馬騰大罵曰:「豎儒誤我大事!我不能為國殺賊,是乃天也!」操命牽出。馬騰罵不絕口,與其子馬休,及黃奎一同遇害。後人有詩讚馬騰曰:父子齊芳烈,忠貞著一門。捐生圖國難,誓死答君恩。嚼血盟言在,誅奸義狀存。西涼推世冑,不愧伏波孫。
마등은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는 힘을 떨쳐 들이쳤다. 마철이 먼저 어지럽게 쏘아지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 마휴가 마등을 따라 좌충우돌하였으나 벗어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중상을 입고 말 아래 앉아 있다가 도한 화살에 맞아 엎어져서 부자 두 사람이 모두 잡히게 되었다. 조조가 황규와 마등 부자를 데려오게 하니 일제히 묶여 이르렀다. 황규가 크게 외치기를 “죄가 없소!”하니 조조가 묘택을 시켜 증명하게 하였다. 마등이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썩은 선비가 큰 일을 잘못되게 하였구나! 내가 나라를 위하여 도적을 죽이지 못한 것은 이는 곧 하늘의 뜻이구나!”했다. 조조가 끌고 나가게 했다. 마등이 꾸짖는 말을 그치지 않고 그 아들 마휴와 황규 일동이 해침을 당하였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기려 말하기를 “부자가 나란히 꽃다운 절개를 이루어 충정이 한 가문에 드러났다. 나라의 어려움을 도모하여 삶을 버리니 죽음을 맹서하여 임근의 은혜에 답하였다. 피로 맹서한 말이 아직도 남아 있고, 간적을 죽이자는 의로운 글이 아직도 있다. 서량에서는 세상을 이어갈 사람으로 추대되었으니 복파의 후손으로서 부끄럽지 않네.”했다.
苗澤告操曰:「不願加賞,只求李春香為妻。」操笑曰:「你為了一婦人,害了你姐夫一家,留此不義之人何用!」便教將苗澤,李春香與黃奎一家老小並斬於市。觀者無不歎息。後人有詩歎曰:苗澤因私害藎臣,春香未得反傷身。奸雄不相容恕,枉自圖謀作小人。
묘택이 조조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상을 주시는 것을 원하지 않고 다만 이춘향을 처로 삼을 것을 청합니다.”했다. 조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너는 일개 부인을 위하여 너의 누나의 남편 일가를 해쳤으니 이런 불의한 사람을 어떻게 등용하리오!”하고는 곧 묘택을 끌어내어 이춘향과 황규 일가 노소를 모두 거리에서 죽이게 하였다. 보는 자들이 탄식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후세 사람들이 시를 지어 탄식하여 말하기를 “사사로운 이유로 충성스러운 신하를 해쳤으나, 이춘향을 얻지도 못하고 도리어 자신을 해쳤네. 간웅이 용서하지 않으니 자신을 굽혀 소인이 되기를 도모하였다.”했다.
曹操教招安西涼兵馬諭之曰:「馬騰父子謀反,不干眾人之事。」一面使人分付把住關隘,休教走了馬岱。
조조가 서량의 병마를 불러 깨우쳐 말하기를 “마등 부자가 모반한 것은 여러 사람들이 간여한 일이 아니다.”하는 한편 사람으로 하여금 관문의 좁은 곳을 지켜 마대가 달아나지 못하게 하라고 분부하였다.
且說馬岱自引一千兵在後。早中許昌城外逃回軍士,報知馬岱。岱大驚,只得棄了兵馬,扮作客商,連夜逃遁去了。曹操殺了馬騰等,便決意南征。忽人報曰:「劉備調練軍馬,收拾器械,將欲取川。操驚曰:「若劉備收川,則羽翼成矣。將何以圖之?」
각설하고 마대는 스스로 일천 명의 군대를 이끌고 뒤에 있었다. 아침 중에 허창성 밖에서 도망하여 돌아 온 군사들이 마대에게 보고하여 알렸다. 마대가 크게 놀라 병마를 버리고 상인으로 변장한 후 밤을 이어 도망해 갔다. 조조가 마등 등을 죽이고는 곧 남쪽을 정벌할 것을 결의하였다. 홀연히 사람이 보고하여 말하기를 “유비(유현덕)가 군마를 훈련시키고, 병기를 수습하여 장차 서천을 취하려 합니다.”했다. 조조가 놀라 말하기를 “만약 유비(유현덕)가 서천을 거둔다면 곧 날개를 이룬 것이다. 장차 어떻게 도모해야 하는가?”했다.
言未畢,階下一人進言曰:「某有一計,使劉備,孫權不能相願;江南,西川皆歸丞相。」正是:西川豪傑方遭戮,南國英雄又受殃。未知獻計者是誰,且看下文分解。
말을 마치지도 않았는데 계단 아래서 한 사람이 나와 말하기를 “저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으니 유비(유현덕)와 손권이 서로 도울 수 없게 하시면 강남과 서천이 모두 승상께 돌아갈 것입니다. 바로 이러하다. 서천의 호걸들이 바야흐로 죽임을 만났으니 남쪽 나라의 영웅들이 재앙을 받았다. 계책을 올린 자들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겠다.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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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회 유현덕은 지혜로 손부인을 격동시키고, 제갈공명은 두 번째로 주공근(주유)를 화나게 하다. (0) | 2020.11.02 |
제54회 오국태가 절에서 신랑을 보고, 유황숙이 신방에서 아름다운 짝을만나다. (0) | 2020.1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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