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五十六回:曹操大宴銅雀臺,孔明三氣周公瑾
제56회 조조는 동작대에서 크게 잔치를 열고 제갈공명은 세 번째 주공근(주유)을 화나게 하다.
卻說周瑜被諸葛亮預先埋伏關公,黃忠,魏延三枝軍馬,一擊大敗。黃蓋、韓當急救下船,折卻水軍無數。遙觀玄德,孫夫人車馬僕從,都停住於山頂之上,瑜如何不氣?箭瘡未癒,因怒氣沖激,瘡口迸裂,昏絕於地;眾將救醒,開船逃去。孔明教休追趕,自和玄德歸荊州慶喜,賞賜眾將。
각설하고 주유는 제갈공명이 미리 관운장, 황충, 위연의 세 데의 군마를 매복에 걸려 일격에 크게 패하였다. 황개, 한당이 급히 구원하여 배에 타는데 죽은 수군들이 헤아릴 수 없었다. 멀리 유현덕, 손부인의 거마와 시종들이 모두 한 정상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았으니 주유가 어찌 화를 내지 않겠는가? 화살에 맞은 상처가 낫지 않은 곳이 노한 기운의 충격으로 인하여 상처가 벌어지면서 땅에 정신을 잃었다. 여러 장수들이 구원하여 깨어나자 배에 태워 도망하였다. 제갈공명이 쫓지 못하게 하고 자신은 유현덕과 형주에 돌아가 축하하고 여러 장수들에게 상을 내렸다.
周瑜自回柴桑。蔣欽等一行人馬自歸南徐報孫權。權不勝忿怒,欲拜程普為都督,起兵取荊州。
주유는 시상군으로 돌아왔다. 장흠 등 일행과 인마가 남서로 돌아가 손권에게 보고하였다. 손권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정보를 도독으로 삼고 군대를 일으켜 형주를 취하려 하였다.
周諭又上書,請興兵雪恨。張昭諫曰:「不可。曹操日夜思報赤壁之恨,因恐孫、劉同心,故未敢興兵。今主公若以一時之忿,自相吞併,操必乘虛來攻,國勢危矣。」顧雍曰:「許都豈無細作在此。若知孫、劉不睦,操必使人勾結劉備。備懼東吳,必投曹操。若此,則江南何日得安?為今之計,莫若使人赴許都,表劉備為荊州牧。曹操知之,則懼而不敢加兵於東南。且使劉備不恨於主公。然後使心腹用反間之計,令曹劉相攻,吾乘隙而圖之,斯為得耳。」 權曰:「元歎之言甚善。但誰可為使?」雍曰:「此間有一人,乃曹操敬慕者,可以為使。」權問何人。雍曰:「華歆在此,何不遣之?」權大喜,即遣齎表赴許都。歆領命起程,逕到許都求見曹操。聞操會群臣於鄴郡,慶賞銅雀臺,歆乃赴鄴郡侯見。
주유가 또한 글을 올려 군대를 일으켜 복수할 것을 청하였다. 장소가 간하여 말하기를 “안 됩니다. 조조가 밤낮으로 적벽의 한을 갚을 것을 생각하고 있으나 손권과 유현덕이 마음을 같이하고 있는 것을 두려워하여 감히 군대를 일으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주공께서 만약 한 때의 분노 때문에 서로 병탄한다면 조조가 반드시 빈틈을 타고 와서 칠 것이니 나라의 형세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했다. 고옹이 말하기를 “허도의 세작이 어찌 여기에 없겠습니까? 만약 손권과 유현덕이 화목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조조는 반드시 사람을 시켜 유현덕과 결탁하려 것입니다. 유현덕은 동오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반드시 조조에게 들어갈 것입니다. 만약 이 같다면 곧 강남이 어느 날에 편안함을 얻겠습니까? 지금의 계책으로는 사람을 허도에 보내 유현덕을 형주목을 삼게 표를 올리는 것이 낫습니다. 조조가 그것을 안다면 곧 두려워하여 감히 동남쪽에 군대를 가하지 못할 것이고, 또한 유현덕으로 하여금 주공을 원망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런 후에 심복으로 하여금 반간계를 써서 조조와 유현덕이 서로 공격하게 하고, 우리가 틈을 타서 도모한다면 이에 (형주를)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원탄(고옹)의 말이 매우 좋다. 다만 누구를 사신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하니 고옹이 말하기를 “이 사이에 한 사람이 있으니 곧 조조가 공경하는 자로 사신으로 삼을 만합니다.”했다. 손권이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다. 고옹이 말하기를 “화흠이 여기에 있는데 어찌하여 그를 보내지 않습니까?”하니 손권이 크게 기뻐하여 곧 표를 가지고 허도에 나아가게 하였다. 화흠이 명령을 받고 길을 나서 지름길로 허도에 이르러 조조를 만날 것을 청하였다. (고옹은)조조가 여러 신하들을 업군에 모아 동작대의 낙성을 축하하고 포상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화흠은 곧 업군에 나아가 뵙기를 기다렸다.
操自赤壁敗後,常思報仇;只疑孫劉併力,因此不敢輕進。時建安十五年春,造銅雀臺成。操乃大會文武於鄴郡,設宴慶賀。其臺正臨漳河。中央乃銅雀臺,左邊一座名玉龍臺,右邊一座名金鳳臺,各高十丈。上橫二橋相通,千門萬戶,金碧交輝。
조조는 적벽에서 패한 후로부터 항상 원수를 갚을 것을 생각하였는데 다만 손권과 유현덕이 힘을 합칠 것을 의심하여 감히 가벼이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건안 십오년 봄 ‘동작대’를 지어 이루어졌다. 조조는 곧 업군에 문무관을 모아 축하하는 연회를 열었다. ‘동작대’는 장하에 맞닿아 있었다. 중앙은 곧 ‘동작대’이고, 왼쪽에 자리잡은 하나는 ‘옥룡대’라 이름하고, 오른 쪽에 자리잡은 하나는 ‘금봉대’라 이름하였는데 각각 높이는 십장이었다. 위에는 가로로 두 개의 다리로 서로 통하였는데 많은 문은 금빛과 푸른빛이 서로 빛났다.
是日,曹操頭戴嵌寶金冠,身穿綠錦羅袍,玉帶誅履,憑高而坐。文武侍立臺下。
이날 조조는 머리에 보석을 박은 금관을 쓰고 몸에는 녹금라포를 입고 옥대를 두르고 붉은 신을 신고 높은 곳에 의지하여 앉았다. 문무관이 동작대 아래에서 시립하였다.
操欲觀武官比試弓箭,乃使近侍將西川紅錦戰袍一領,挂於垂楊枝上,下設一箭垛,以百步為界。分武官為兩隊。曹氏宗族俱穿紅,其餘將士俱穿綠。各帶雕弓良箭,跨鞍勒馬,聽候指揮。操傳令曰:「有能射中箭垛紅心者,即以錦袍賜之。如射不中,罰水一良。」號令方下,紅袍隊中,一個少年將軍驟馬而出。眾視之,乃曹休也。休飛馬往來,奔馳三次,扣上箭,拽滿弓,一箭射去,正中紅心。金鼓齊鳴,眾皆喝冞。曹操於臺上望見大喜,曰:「此吾家千里駒也!」方欲使人取錦袍與曹休,只見(綠)袍隊中,一騎飛出,叫曰:「丞相錦袍,合讓俺外姓先取,宗族中不宜攙越。」
조조는 무관들이 활쏘기를 겨루는 것을 보고자 하여 이에 근시를 시켜서 붉은 비단 전포 한 벌을 가져오게 하여 늘어진 버들가지 위에 걸고, 아래는 하나의 활 쏘는 대를 쌓았는데 백보를 한계로 하였다. 무관들을 두 무리로 나누었다. 조씨의 종족들은 모두 붉은 색을 입고, 그 나머지 장사들은 모두 녹색 옷을 입게 하였다. 각각 조각된 활과 좋은 화살을 지니고 안장 위에 앉아 말을 멈춘 채 지휘를 기다렸다. 조조가 명을 전하여 말하기를 “활을 쏘아 화살이 과녁의 붉은 중심을 맞출 수 있는 자는 곧 금포를 내리겠다. 만일 화살을 맞추지 못한다면 벌로 물 한 잔을 마셔야 한다.”했다. 명령을 내리자 홍포대 중에서 한 소년 장군이 말을 달려 나왔다. 무리들이 그를 보니 곧 조휴였다. 조휴가 날듯이 말을 달려 왔다갔다하며 세 번을 달리다 화살을 활에 걸고는 시위를 가득 당겨 하나의 화살을 쏘았더니 과녁 붉은 중심에 적중하였다. 징과 북이 일제히 울리며 무리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조조가 대 위에서 바라보고는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는 우리 집안의 천리구이구나!(뛰어난 놈이구나!)”하고는 바야흐로 사람을 시켜 금포를 가져다 조휴에게 주려하는데 녹포대 중에서 말을 탄 한 사람이 날듯이 나와 고함쳐 말하기를 “승상의 금포는 우리 외성이 먼저 취하는 것에 양보하는 것이 합당하고 종족이중에서 차례를 지키지 않고 뛰어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했다.
操視其人,乃文聘也。眾官曰:「且看文仲業射法。」文聘拈弓縱馬一箭,亦中紅心。眾皆喝采,金鼓亂鳴。聘大呼曰:「快取袍來!」只見紅袍隊中,又一將飛馬而出,厲聲曰:「文烈先射,汝何得爭奪?看我與你兩個解箭!」曳滿弓,一箭射去,也中紅心。眾人齊聲喝采。視其人,乃曹洪也。洪方欲取袍,只見綠袍隊裏又一將出,揚弓叫曰:「你三人射法,何足為奇!看我射來!」眾視之,乃張郃也。郃飛馬翻身,背射一箭,也中紅心。四枝箭齊齊的攢在紅心裏。眾人俱道:「好射法!」郃曰:「錦袍須該是我的!」
조조가 그 사람을 보니 곧 문빙이었다. 여러 관리들이 말하기를 “또한 문중업이 활 쏘는 법을 봅시다.”했다. 문빙이 활을 집어 말을 달리며 하나의 화살을 쏘니 또한 과녁의 묽은 가운데 적중하였다. 무리들이 모두 박수를 치고 징과 북이 어지럽게 울렸다. 문빙이 크게 부르짖어 말하기를 “빨리 금포를 가져오라!”하였다. 그 때 홍포대 중에 또한 한 장수가 말을 달려 나와 성남 소리로 말하기를 “문열(조휴)이 먼저 쏘았는데 너희들이 어찌하여 빼앗는가? 나와 너는 둘이서 활을 쏘아보자!”하고는 활을 가득 당겨 하나의 화살을 쏘아 보내니 붉은 중심에 적중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그 사람을 보니 곧 조홍이었다. 조홍이 막 포를 취하고자 하는데 녹포대 안에서 또한 한 장수가 나와 활을 흔들며 외쳐 말하기를 “너희 세 사람의 활을 쏘는 법이 어찌 충분히 기이하다 할 수 있겠는가? 내가 활 쏘는 것을 보라!”했다. 여러 사람들이 그를 보니 곧 장합이었다. 장합이 날 듯이 말을 달리며 몸을 뒤집어 등 뒤에서 하나의 화살을 쏘니 과녁 중앙에 적중하였다. 네 개의 화살이 가지런하게 과녁 붉은 중심에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훌륭한 화살 쏘는 법입니다.”하니 장합이 말하기를 “금포는 반드시 나의 것이라!”했다.
言未畢,紅袍隊中一將飛馬而出,大叫「足稱異!看我奪射紅心!」眾視之,乃夏侯淵也。淵驟馬至界口,紐回身一箭射去,正在四箭當中。金鼓齊鳴。淵勒馬按弓大叫曰:「此箭可奪得錦袍麼?」只見綠袍隊裏,一將應聲而出,大叫:「且留下袍與我徐晃!」淵曰:「汝更有何射法,可奪我袍?」晃曰:「汝射紅心,不足為異。看吾單取錦袍!」
말을 마치지 않았는데 홍포대 안에서 한 장수가 날듯이 말을 달려 나와 크게 외치기를 “족히 (활 쏘는 법이)기이하다 할만하다. 내가 활을 쏘아 과녁의 붉은 중심을 맞추는 것을 보라!”했다. 무리들이 그를 보니 곧 하후연이었다. 하후연이 말을 달려 경계에 이르러 몸을 돌려 하나의 화살을 쏘니 바로 네 개 화살 가운데에 적중하였다. 징과 북이 일제히 울렸다. 하후연이 말고삐를 당겨 활을 어루만지며 크게 외쳐 말하기를 “이 화살은 금포를 빼앗을 만한가?”하였다. 그 때 녹포대 안에서 한 장수가 대답하며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크게 소리치기를 “또한 멈추고 금포는 나 서황에게 주어야 한다.”했다. 하후연이 말하기를 “너희들은 다시 어떤 활쏘기 법이 있어서 내 금포를 빼앗을 수 있겠는가?”했다. 서황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과녁의 중앙에 화살을 쏜 것은 기이할 것이 못된다. 내가 간단히 금포를 가지는 것을 보라!”하고는
拈弓搭箭,遙望柳條射去,恰好射斷柳條,錦墜地。徐晃飛取錦袍,披於身上,驟馬至臺前聲喏曰:「謝丞相袍!」曹操與眾官無不稱羨。晃纔勒馬要回,猛然臺邊躍出一個綠袍將軍,大呼曰:「你將錦袍那裏去?早早留下與我!」眾視之,乃許褚也。晃曰:「袍已在此,汝何敢強奪!」褚更不回答,竟飛馬來奪袍。
활을 잡아 화살을 재워 멀리 버드나무 가지를 향하여 쏘아 보내니 바로 화살이 버드나무 가지를 끊어 금포가 땅에 떨어졌다. 서황이 재빨리 금포를 집어 몸에 걸치고는 말을 달려 대 앞에 이르러 인사하여 말하기를 “승상! 금포 감사합니다.”했다. 조조와 여러 관리들이 칭찬하지 않음이 없었다. 서황이 곧바로 말고삐를 당겨 말을 돌리는데 돌연 대 옆에서 한 녹포장군이 뛰어나오면서 크게 외쳐 말하기를 “너는 장차 금포를 가지고 가려느냐? 빨리 그대로 두고 나에게 주도록 하라!”하였다. 무리들이 글르 보니 곧 허저였다. 서황이 말하기를 “금포가 이미 여기에 있는데 네가 어찌하여 감히 억지로 빼앗으려 하는가!”하니 허저가 다시는 대답하지 않고 마침내 말을 달려 와 금포를 빼앗으려 하였다.
兩馬相近,徐晃便把弓打許褚。褚一手按住弓,把徐晃拖離鞍轎。晃急棄不了弓,翻身下馬,褚亦下馬,兩個揪住廝打。操急使人解開。那領錦袍己是扯得粉碎。操令二人都上臺。徐晃睜眉怒目,許褚切齒咬牙:各有相鬥之意。操笑曰:「孤特視公等之勇耳。豈惜一錦袍哉?」便教諸將盡都上臺,各賜蜀錦一疋。諸將各各稱謝。操命各依位次而坐。樂聲競奏,水陸並陳。文官武將輪次把盞,獻酬交錯。
두 말이 가까워지니 서황이 곧 활을 잡아 허저를 쳤다. 허저가 한 손으로는 활을 막으면서 말안장에서 떨어지도록 서황을 잡았다. 서황이 급히 활을 버리고 몸을 뒤집어 말에서 내리니 허저가 또한 말에서 내려 두 사람이 꽉 붙잡고 치고받으며 싸웠다. 조조가 급히 사람을시켜 떨어지게 하였다. 이 한 벌의 금포는 이미 찢어져 가루가 되었다. 조조가 두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대에 오르게 하였다. 서황이 부릅뜬 노한 눈을 하였고, 허저는 이를 꽉 깨물고 갈며 각각 서로 싸울 뜻이 있었다. 조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나는 다만 두 사람의 용맹을 보려하였을 뿐이었는데 어찌 한 벌의 금포를 아까워하겠는가?”하고는 곧 여러 장수들을 모두 대에 오르게 하고, 각각 촉에서 나는 비단 한 필씩을 내렸다. 여러 장수들이 각각 감사하였다. 조조가 각각 지위에 따라 앉게 하였다. 음악이 다투어 연주되고 수륙에서 나는 음식이 차려졌다. 문관과 장수들이 차례로 잔을 잡고 술을 올리고 서로 권하였다.
操顧謂眾文官曰:「武將既以騎射為樂,足顯威勇矣。公等皆飽學之士,登此高臺,可不進佳章以紀一時之勝事乎?」眾官皆躬身而言曰:「願從鈞命。」
조조가 여러 문관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무장들은 이미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것으로서 즐거움을 삼아 충분히 무예와 용맹을 드러내었다. 공들은 학문으로 배를 불린 선비로 이 높은 대에 올랐으니 아름다운 문장을 지어 올려 한 때의 좋은 일을 기념하지 않겠는가?”하니 여러 문관들이 몲을 굽히고 말하기를 “명을 따르겠습니다.” 했다.
時有王朗,鍾繇,王粲,陳琳一班文官,進獻詩章。詩中多有稱頌曹操功德巍巍,合當受命之意。曹操遂一覽畢,笑曰:「諸公佳作,過譽甚矣。孤本愚陋,始舉孝廉。後值天下大亂,築精舍於譙東五十里,欲春夏讀書,秋冬射獵,以待天下清平,方出仕耳。不意朝廷徵孤為點軍校尉,遂更其意,專欲為國家討賊立功,圖死後得題墓道曰:『漢故征西將軍曹侯之墓』,平生願足矣。念自討董卓,剿黃巾以來,除袁術,破呂布,滅袁紹,定劉表遂平天下。身為宰相,人臣之貴已(極),又復何望哉?如國家無孤一人,正不知幾人稱帝,幾人稱王。或見孤權重,妄相忖度,疑孤有異心,此大謬也。孤常念孔子稱文王之至(德),此言耿耿在心。但欲孤委捐兵眾,歸就所封武平侯之職,實不可耳。誠恐一解兵柄,為人所害;孤敗則國家傾危,是以不得慕虛名而處實禍也。諸公必無知孤意者。」眾皆起拜曰:「雖伊尹、周公,不及丞相矣。」後人有詩曰:
이 때 왕랑, 종요, 왕찬, 진림 등 한 떼의 문관이 있어 시와 문장을 바쳤다. 시 가운데 조조의 공덕이 빼어남을 칭송하고, 명을 받아야 합당하는 뜻이 많이 있었다. 조조가 마침내 한 번 살펴보기를 마치고 웃으며 말하기를 “여러 공들의 아름다운 작품은 지나치게 칭찬함이 심합니다. 내가 본래 어리석고 비루하나 처음에 효와 청렴으로 천거되었고 후에는 천하가 크게 어지러진 것을 만나 초 땅 동쪽 오십 리에 정사를 쌓고 봄과 여름에는 글을 읽고 가을과 겨울에는 활을 쏘고 사냥하며 천하가 맑고 편안해지는 것을 기다리다 바야흐로 나가 벼슬하였을 뿐이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조정이 나를 불러 점군교위를 삼으니 마침내 그 뜻을 바꾸어 오로지 국가를 위하여 도적을 성토하고 공을 세워 죽은 후에 비석의 제액에 ‘漢故征西將軍曹侯之墓(한 나라 정서장군 조후의 묘)’라고 쓰여지기를 바라는 것이 평생의 바람으로 충분합니다. 생각해보면 동탁을 토벌함으로부터 황건적을 무찌른 이래로 원술을 없애고, 여포를 깨트리며 원소를 없애며 유표를 평정하여 마침내 천하를 편안하게 하였습니다. 나는 재상이 되어 다른 사람의 신하로 귀함이 이미 지극하고 또한 다시 무엇을 바라겠는가? 만약 국가에 나 한 사람이 없다면 바로 몇 사람이나 황제를 칭하고, 몇 사람이나 왕을 칭하였을지 알지 못합니다. 혹 내 권세가 중하다 여기고 망녕되이 다른 사람의 뜻을 미루어 헤아려 나에게 다른 마음을 가졌다고 의심하니 이는 큰 잘못입니다. 나는 항상 공자가 문왕의 지극한 덕을 칭송하였던 것을 생각하였는데 이 말은 진실로 마음에 있습니다. 다만 내가 맡은 군대를 버리고 봉함을 받은 무평후의 직책으로 돌아가는 것은 진실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실로 한번 병권을 놓으면 다른 사람에게 해침을 당할 것이고, 내가 패하면 곧 국가가 기울고 위태로워질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 때문에 헛된 명예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화에 대처하려는 것입니다. 여러 공들은 내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했다. 무리들이 모두 일어나 절하며 말하기를 “비록 이윤, 주공이라 할지라도 승상께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은 것이 있다. 시에
周公恐懼流言日,王莽謙恭下士時。假使當年身便死,一生真偽有誰知!
‘유언비어가 떠도는 날을 주공은 두려워하였고, 왕망은 낮은 선비였을 때 겸손하고 공손하였다. 가령 그때 몸이 곧 죽었다면 일생에 걸친 참과 거짓을 누가 알 수 있으리오!’했다.
曹操連飲盃,不覺沈醉,喚左右棒過筆硯,亦欲作銅雀臺詩。剛纔下筆,忽報:「東吳使華歆表秦劉備為荊州牧,孫權以妹嫁劉備,漢上九郡大半已屬備矣。」操聞之,手腳慌亂,投筆於地。程昱曰:「丞相在萬軍之中,矢石交攻之際,未嘗動心;今聞劉備得了荊州,何故如此失驚?」操曰:「劉備人中之龍也,生平未嘗得水。今得荊州,是困龍入大海矣。孤安得不動心哉!」程昱曰:「丞相知華歆來意否?」操曰:「未知。」昱曰:「孫權本忌劉備,欲以兵攻之;但恐丞相乘虛而擊,故今華歆為使,表薦劉備。以安備之心,以塞丞相之望耳。」
연이어 술을 마신 조조는 깨듣지 못하는 사이에 깊이 취하여 좌우를 불러 붓과 벼루를 가져오게 하고 또한 동작대 시를 지으려 하였다. 막 붓을 대어 쓰려하는데 홀연히 보고하기를 “동오가 화흠으로 하여금 표로 아뢰었는데 유현덕을 형주목으로 삼고, 손권은 누이를 유현덕에게 시집보내 한수 상류 아홉 개 군의 태반이 이미 유현덕에게 속하였습니다.”했다. 조조가 그것을 듣고 손과 발이 황망하여 어지러워져 붓을 땅에 떨어뜨렸다. 정욱이 말하기를 “숭상께서는 만군의 안에 있으면서 화살과 돌이 서로 공격할 때도 일찍이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셨는데 지금 유현덕이 형주를 얻었다는 것을 듣고는 무엇 때문에 이 같이 놀라십니까?”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유현덕은 사람 가운데의 용으로 평생동안 일찍이 물을 얻지 못하였다. 지금 형주를 얻은 것은 곤궁한 용이 큰 바다에 들어간 것이다. 내가 어찌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했다. 정욱이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화흠이 온 뜻을 알고 있습니까?”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알지 못한다.”했다. 정욱이 말하기를 “손권이 본래 유현덕을 꺼려서 군대로 공격하려하였으나 다만 승상께서 빈틈을 타고 칠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지금 화흠으로 하여금 사신을 삼아 표로 유현덕을 천거한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유현덕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승상의 바람을 막으려는 했을 뿐입니다.”했다.
操點頭曰:「是也。」昱曰:「某有一計,使孫、劉自相吞併,丞相乘間圖之,一鼓而二敵俱破。」操大喜,遂問其計。程昱曰:「東吳所倚者,周瑜也。丞相今表奏周瑜為南郡太守、程普為江夏太守,留華歆在朝重用之、瑜必自與劉備爲讐敵矣。我乘其相倂而圖之、不亦善乎?』
조조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하기를 “옳다.”하니 정욱이 말하기를 “저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으니 손권과 유현덕으로 하여금 스스로 서로 병탄하게 하고 승상께서는 틈을 타서 도모하면 한 번의 북을 치는 것으로 두 적을 모두 깨트릴 수 있습니다.”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그 계책을 물었다. 정욱이 말하기를 “동오가 기대고 있는 자는 주유입니다. 지금 승상께서는 표로 아뢰어주유는 남군태수로 삼고, 정보는 강하태수로 삼으며, 화흠은 머물게 하여 조정에서 중용하면 주유는 반드시 스스로 유현덕과 원수로 대적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서로 싸우는 틈을 타서 그들을 도모하는 것이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했다.
操曰 「仲德之言、正合孤意。」遂召華歆上臺 重加賞賜。當日筵散 操卽引文武回許昌 表奏周瑜爲總領南郡太守 程普爲江夏太守。封華歆爲大理少卿 留在許都。使命至東吳 周瑜・程普各受職訖。周瑜既領南郡,愈思報讎,遂上書吳侯,乞命魯肅去討還荊州。孫權乃命肅曰:「汝昔保荊州與劉備,今備遷延不還,等待何時?」肅曰:「文書上明白寫著,得了西川便還。」權叱曰:「只說取西川,至今又不動兵,不等老了人!」肅曰:「某願往言之。」遂乘(船)投荊州而來。
조조가 말하기를 “중덕(정욱)의 말이 내 뜻에 부합한다.”하고는 마침내 화흠을 불러 대에 올라 많은 상을 내렸다. 그날 연회가 끝나자 조조는 곧 문무관을 이끌고 허창에 돌아가 표로 주유를 총령남군태수로 삼고, 정보는 강하태수로 삼을 것을 아뢰었다. 화흠은 봉하여 대리소경으로 삼고 억류하여 허도에 있게 하였다. 사신으로 하여금 동오에 이르게 하여 주유, 정보는 각각 직책을 받았다. 주유는 남군을 다스리게 되자 더욱 원수를 갚을 것을 생각하여 마침내 오후에게 글을 올려 노숙을 (형주에)보내 형주를 돌려받을 것을 청하였다. 손권은 곧 노숙에게 명하여 말하기를 “너는 옛날 형주를 유현덕에게 빌려주는 것을 보증하였는데 지금 유현덕은 미루며 돌려주지 않으니 어느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문서상으로 써서 드러난 것이 명백하니 서천을 얻으면 곧 돌려줄 것입니다.”했다. 손권이 질책하여 말하기를 “다만 서천을 취한 후라고 말만 하고, 지금 또한 군대를 움직이지 않으니 늙기를 기다리는 것인가?”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제가 가서 말하기를 원합니다.”하고는 마침내 배를 타고 형주에 들어갔다.
卻說玄德與孔明在荊州廣聚糧草,調練軍馬,遠近之士多歸之。忽報魯肅到,玄德問孔明曰:「子敬此來何意?」孔明曰:「昨者孫權表主公為荊州牧,此是懼曹操之計。操封周瑜為南郡太守,此欲令我兩家自相吞併,他好於中取事也。今魯肅此來,又是周瑜既受太守之職,要來索荊州之意。」玄德曰:「何以答之?」
각설하고 유현덕과 제갈공명은 형주에 있으면서 널리 식량과 풀을 모으고 군마를 훈련시키니 멀고 가까운 지역의 선비들이 많이 돌아왔다. 홀연히 노숙이 이르렀다는 것이 보고되자 유현덕이 제갈공명에게 물어 말하기를 “자경(노숙)이 여기에 온 것은 무슨 뜻입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지난번에 손권이 표로 주공을 형주목으로 삼았으니 이는 조조의 계책일까 두렵습니다. 조조가 주유를 봉하여 남군태수로 삼았는데 이는 우리 두 집안으로 하여금 스스로 서로 병탄하게 하고, 그들은 안에서 일을 취하기를 좋게하려 해서입니다. 지금 노숙이 여기에 오는 것도 또한 주유가 이미 태수의 직책을 받았기 때문에 와서 형주를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뜻입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어떻게 답해야 합니까?”했다.
孔明曰:「若肅提起荊州之事,主公便放聲大哭。哭到悲切之處,亮自出來解勸。」計會已定,接魯肅入府,禮畢,敘坐。肅曰:「今日皇叔做了東吳女婿,便是魯肅主人,如何敢坐?」玄德笑曰:「子敬與我舊交,何必太謙?」肅乃就坐。茶罷,肅曰:「今奉吳侯鈞命,專為荊州一事而來。皇叔已借住多時,未蒙見還。今既兩家結親,當看親情面上,早早交付。」玄德聞言,掩面大哭。肅驚曰:「皇叔何故如此?」玄德哭聲不絕。孔明從屏後出曰:「亮聽之久矣。子敬知吾主人哭的緣故麼?」肅曰:「某實不知。」孔明曰:「有何難見?當初我主人借荊州時,許下取得西川便還。仔細想來:益州劉璋是我主人之弟,一般都是漢朝骨肉。若要興兵去取他城池時,恐被外人唾罵;若要不取,還了荊州,何處安身?若不還時,於尊舅面上又不好看。事出兩難,因此淚出痛腸。」孔明說罷,觸動玄德衷腸,真個搥胸頓足,放聲大哭。魯肅勸曰:「皇叔且休煩惱,與孔明從長計議。」孔明曰:「有煩子敬,回見吳侯,勿惜一言之勞,將此煩惱情節,懇告吳侯,再容幾時。」肅曰:「倘吳侯不從,如之奈何?」孔明曰:「吳侯既以親妹聘嫁皇叔,安得不從乎?望子敬善言回覆。」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만약 형주의 일을 제기한다면 주공께서는 곧 크게 소리내어 우십시오. 곡함이 슬프고 간절함에 이르면 제가 나와 그만 둘 것을 권하겠습니다.”했다. 계책이 이미 정해지자 노숙을 맞아 부에 들어 가 예를 마치고 앉았다. 노숙이 말하기를 “오늘 황숙께서 동오의 사위가 되셨으니 곧 이는 저의 주인인데 어떻게 감히 앉을 수 있겠습니까?”했다. 유현덕이 웃으며 말하기를 “자경(노숙)과 나는 사귀진가 오래 되었는데 하필 크게 겸손하십니까?”하니 노숙이 곧 자리에 앉았다. 차 마시기를 마치고 노숙이 말하기를 “지금 오후의 명을 받들어 오직 형주 한 가지 일을 위하여 왔습니다. 황숙께서 이미 빌려 머문 지가 오래 되었는데 아직 돌려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미 두 집안이 혼인을 하여 친한 정과 얼굴을 보아서도 빨리 돌려주십시오.”했다. 유현덕이 말을 듣고 얼굴을 가리고 크게 울었다. 노숙이 놀라 말하기를 “황숙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 같이 합니까?”하였으나 유현덕은 우는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제갈공명이 병풍 뒤에서 나오며 말하기를 “제가 들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자경(노숙)은 우리 주인이 곡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저는 참으로 알지 못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유현덕이 우는 이유를 아는데)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처음 우리 주인이 형주를 빌렸을 때 서천을 취하면 곧 돌려주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익주의 유장은 우리 주인의 동생으로 일반적으로 모두 한나라의 골육입니다. 만약 군대를 일으켜 가서 그의 성지를 취하였을 때 다른 사람이 침을 뱃고 욕을 할 것입니다. 만약 취하지 않고 형주를 돌려준다면 어느 곳에서 몸을 편안히 하겠습니까? 만약 돌려주지 않았을 때 처남의 얼굴을 또한 잘 보지 못할 것입니다. 일이 두 가지 어려움에 빠졌으니 이로 인하여 눈물을 흘리고 마음을 아파하는 것입니다.” 했다. 제갈공명이 말을 유현덕의 진심을 불러일으켜 정말로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 노숙이 권하여 말하기를 “황숙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강공명과 길이 할 계책을 신중히 의논하겠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자경(노숙)에게 번거로움이 있으니 돌아가 오후를 뵙고 말 한마디의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고 이 번뇌와 실정을 간절히 오후에게 고하여 다시 어느 정도를 정해 주십시오.”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만약 오후가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합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오후는 이미 친누이를 황숙께 시집보냈으니 어찌 따르지 않겠습니까? 자경(노숙)께서는 공경히 좋은 말로 아뢰어 주시기를 바랍니다.”했다.
魯肅是個寬仁長者,見玄德如此哀痛,只得應允。玄德、孔明拜謝。宴畢,送魯肅下船。逕到柴桑,見了周瑜,具言其事。周瑜頓足曰:「子敬又中諸葛亮之計也!當初劉備依劉表時,常有吞併之意,何況西川,劉璋乎?似此推調,未免累及老兄矣。吾有一計,使諸葛亮不能出吾算中。子敬便當一行。」肅曰:「願聞妙策。」瑜曰:「子敬不必去見吳侯,再去荊州對劉備說:孫,劉兩家,既結為親,便是一家;若劉氏不忍去取西川,我東吳起兵去取;取得西川時,以作嫁資,卻把荊州交還東吳。」肅曰:「西川迢遞,取之非易。都督此計,莫非不可?」
노숙, 이 사람은 너그럽고 어진 덕망있는 사람이라 유현덕이 이 같이 애통해 하는 것을 보고는 허락하였다. 유현덕과 제갈공명이 감사하였다. 연회를 마치자 노숙을 배에 태워 보냈다. 곧 시상군에 이르러 주유를 만나 그 일을 모두 말하였다. 주유가 발을 구르며 말하기를 “자경(노숙)은 또 제갈공명의 계책에 빠졌구려! 당초 유현덕은 유표에게 의지하였을 때 항상 병탕하려는 뜻이 있었는데 어찌 하물며 서천의 유장이겠습니까? 이는 핑계를 대어 미르는 것이니 허물이 노형(노숙)에게 미침을 면하지 못할 듯합니다. 나에게 한 계책이 있으니 제갈공명으로 하여금 나의 계산속을 빠져나오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자경(노숙)은 곧 한번 가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신묘한 계책을 듣기를 원합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자경(노숙)은 가서 오후를 뵐 필요 없이 다시 형주에 가서 유현덕을 대하여 말하기를 손씨와 유씨 두 집안이 이미 혼인을 맺어 친척이 되었으니 곧 이는 한 집안입니다. 만약 유씨(유현덕)가 차마 가서 서천을 취하지 못한다면 우리 동오가 군대를 일으켜 가서 취하고, 서천을 취하였을 때 혼수품으로 삼고 형주를 동오에 돌려 달라 하시오.”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서천은 매우 멀어 그것을 취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도독의 이 계책은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했다.
瑜笑曰:「子敬真長者也。你道我真個去取西川與他?我只以此為名,實欲去取荊州,且教他不做準備。東吳軍馬,收川路過荊州,就問他索要錢糧,劉備必然出城勞軍。那時乘勢殺之,奪取荊州,雪吾之恨,解足下之禍。」魯肅大喜,便再往荊州來。玄德與孔明商議。孔明曰:「魯肅必不曾見吳侯,只到柴桑和周瑜商量了甚計策,來誘我耳。但說的話,主公只看我點頭,便滿口應承。」計會已定,魯肅入見,禮畢,曰:「吳侯甚是稱讚皇叔盛德,遂與諸將商議,起兵替皇叔收川。取了西川,卻換荊州,以西川權當嫁資。但軍馬經過,卻望應些錢糧。」
주유가 웃으며 말하기를 “자경(노숙)은 참으로 덕망이 있습니다. 당신은 내가 참으로 가서 서천을 취하여 그에게 줄 것이라 말합니까? 나는 다만 이로서 명분을 삼고, 실제로는 가서 형주를 취하려 할 때 그들로 하여금 준비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동오의 군마가 서천을 거두려면 형주를 지나야 하는데 유현덕에게 군자금과 식량을 요구하면 유비(유현덕)은 성을 나와 군대를 위로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때 형세를 타고 그를 죽이고 형주를 탈취하면 우리의 한을 갚고 당신의 화도 풀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노숙이 크게 기뻐하며 곡 다시 형주에 갔다. 유현덕과 제갈공명이 상의하였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노숙은 오후를 뵙지 않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다만 시상군에 이르러 주유와 계책을 상의하고 와서 우리를 유인하려는 것일 뿐입니다. 다만 그가 하는 말에 주공께서는 제가 머리를 끄덕이는 것을 보면 곧 승낙하십시오.”했다. 계책이 이미 정해졌을 때, 노숙이 들어 가 뵙고 예를 마치자 말하기를 “오후께서는 황숙의 성대한 덕을 매우 칭찬하고, 마침내 여러 장수들과 상의한 뒤 군대를 일으켜 황숙을 대신하여 서천을 거두게 하였습니다. 서천을 취한 후 형주와 바꾸어 서천을 혼수품으로 여기겠다. 다만 군마가 지날 때 군자금과 식량을 제공해 줄 것을 바란다 했습니다.” 했다.
孔明聽了,忙點頭曰:「難得吳侯好心!」玄德拱手稱謝曰:「此皆子敬善言之力。」孔明曰:「如雄師到日,即當遠接稿勞。」魯肅暗喜,宴罷辭回。玄德問孔明曰:「此是何意?」孔明大笑曰:「周瑜死日近矣!這等計策,小兒也瞞不過!」玄德又問如何?孔明曰:「此乃『假途滅虢』之計也。虛名收川,實取荊州。等主公出城勞軍,乘勢拏下,殺入城來,攻其無備,出其不意也。」玄德曰:「如之奈何?」孔明曰:「主公寬心,只顧準備窩弓以擒猛虎,安排香餌以釣鰲魚。等周瑜到來,他便不死,也九分無氣。」便喚趙雲聽計:「如此如此,其餘我自有擺布。」玄德大喜。後人有詩歎曰:
제갈공명이 듣고는 여버 번 머리를 끄덕이고 말하기를 “오후의 좋은 마음을 얻기가 어렵구나!”하니 유현덕이 손을 맞잡고 가사하며 말하기를 “이는 모두 자경(노숙)이 말을 잘해 준 힘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만일 정예 군대가 이르는 날에는 곧 마땅히 멀리 나가 영접하고 음식을 내어 병사들을 위로할 것입니다.”했다. 노숙이 속으로 기뻐하면서 연회를 마치자 하직하고 갔다. 유현덕이 제갈공명에게 물어 말하기를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하니 제갈공명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주유가 죽을 날이 가까워졌구나! 저들의 계책은 어린아이를 속이는데 지나지 않습니다.”하니 유현덕이 또한 어떠한 것인지를 물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이는 곧 ‘假道滅虢(길을 빌려 괵 나라를 멸망시킨다.)’의 계책입니다. 서천을 거둔다는 헛된 명분으로 실제는 형주를 취하려는 것입니다. 주공께서 성을 나가 군사를 위로할 때 현세를 타고 사로잡고 성에 쇄도해 들어가 그 대비가 없을 때 뜻하지 않게 공격하려는 것입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니 주공께서는 마음을 느긋하게 하시고 오직 함정을 파서 사나운 호랑이를 사로잡고, 향기로운 먹이를 준비하여 오어를 낚시질하는 것만 생각하십시오. 주유가 온다면 그가 곧 죽지는 않겠지만 거의 기운이 없을 것입니다. 했다. 곧 조운(조자룡)을 불러 계책을 들려주기를 “이러저러 하면 그 나머지는 내가 스스로 계획할 것이다.”했다. 유현덕이 크게 기뻐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탄복하는 시를 지은 것이 있는데 시에
周瑜決策取荊州,諸葛先知第一籌。指望長江香餌穩,不知暗裏釣魚鉤。
‘주유가 계책을 결단하여 형주를 취하려 하는데, 제갈공명이 먼저 알고 첫 번째 계책을 쓴다. 장강을 바라고 향기로운 미끼를 숨기니 몰래 숨긴 낚시 바늘을 알지 못한다.’ 했다.
卻說魯肅回見周瑜,說玄德,孔明歡喜不疑,準備出城勞軍。周瑜大笑曰:「原來今番也中了吾計!」便教魯肅稟報吳侯,並遣程普引兵接應。周瑜此時箭瘡已漸平愈,身軀無事,使甘寧為先鋒,自與徐盛,丁奉為第二;淩統,呂蒙為後隊。水陸大兵五百萬,望荊州而來。周瑜在船中,時復歡笑,以為孔明中計。前軍至夏口,周瑜問:「荊州有人在前面接否?」人報:「劉皇叔使糜竺來見都督。」瑜喚至,問勞軍如何。糜竺曰:「主公皆準備安排下了。」
각설하고 노숙이 돌아와 주유를 만나 유현덕과 제갈공명이 기뻐하며 의심하지 않고 준비하여 성을 나와 군대를 위로하겠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주유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알고 보니 이번에는 우리 계책이 적중하겠구나!”하고는 곧 노숙으로 하여금 오후에게 보고하게 하고, 아울러 정보를 보내 군대를 이끌고 대응하게 하였다. 주유는 이 때 화살에 맞은 상처가 점점 고르게 나아 몸에 일이 없어지자 감녕을 선봉으로 삼고, 스스로는 서성과 정봉을 두 번째(중군)가 되게하고, 능통와 여몽은 뒷 부대가 되게 하였다. 수륙의 대군 오백만이 형주를 향해 갔다. 주유는 배 안에 있으면서 때로 다시 기뻐하며 웃으며 제갈공명이 계책에 빠졌다 여겼다. 앞의 군대가 하구에 이르자 주유가 묻기를 “형주는 어떤 사람이 앞에서 영접하고 있는가?”하니 사람이 보고하기를 “유황숙이 미축을 보내 도독을 만나게 하였습니다.” 했다. 주유가 불러 이르게 하고 군대를 어떻게 위로할 지를 물었다. 미축이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모든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했다.
瑜曰:「皇叔何在?」竺曰:「在荊州城門相等,與都督把盞。」瑜曰:「今為汝家之事,出兵遠征;勞軍之禮,休得輕易。」糜竺領了言語先回。戰船密密排在江上,依次而進。看看至公安,並無一雙軍船,又無一人遠接。周瑜催船速行。離荊州十餘里,只見江面上靜蕩蕩的。哨探的回報:「荊州城上,插兩面白旗,並不見一人之影。」瑜心疑,教把船傍岸,親自上岸,乘馬帶了甘寧,徐盛,丁奉一班軍官,引親隨精軍三千人,逕望荊州來。
주유가 말하기를 “황숙은 어디에 있습니까?”하니 미축이 말하기를 “형주성 문에 있으면서 도독과 술잔을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지금 너의 집안의 일을 위하여 군대를 내어 멀리 가서 정벌하는 것이니 군사를 위로하는 예가 가벼워서는 안 됩니다.”했다. 미축이 말을 듣고 먼저 돌아갔다. 전선이 빽빽하게 강 위에 늘어서 차례대로 나아갔다. 이제 곧 공안에 이르는데 한 척의 군선도 없고, 또한 한 사람도 영접하는 이가 없었다. 주유가 베를 재촉하여 빨리 갔다. 형주로부터 십여 리 떨어졌는데 강 위는 고요하고 물 만 출렁이고 있었다. 정찰을 나갔던 이들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형주성 위에는 두 장의 흰 깃발만 꼿혀 있고, 한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유가 마음으로 의심하여 배를 강가에 대라하고 직접 스스로 강변에 올라 말을 타고, 감녕, 서성, 정봉과 한 떼의 군관을 데리고 친히 정예군사 삼천 명을 이끌고 빠르게 형주를 향해 갔다.
既至城下,並不見動靜。瑜勒住馬,令軍士叫門。城上問是誰人。吳軍答曰:「是東吳周都督親自此。」言未畢,忽一聲梆子響,城上一齊都豎起鎗刀。敵樓上趙雲出曰:「都督此行,端的為何?」瑜曰:「吾替汝主取西川,汝豈猶未知耶?」雲曰:「孔明軍師已知都督『假途滅虢』之計,故留趙雲在此。吾主公有言:『孤與劉璋,皆漢室宗親,安忍背義而取西川?若汝東吳端的取蜀,吾當披髮入山,不失信於天下也。』」
성 아래 이르렀는데 아무런 동정도 보지 못하였다. 주유가 말고삐를 당겨 말을 세우고는 군사를 시켜 문을 열라 소리치게 하였다. 성 위에서 누구인지를 물었다. 오나라 군대가 답하기를 “이는 동오 주도독이 친히 여기에 오셨다.”하는데 말을 마치기도 전에 홀연히 한 소리 방자가 울리니 성 위에서 일제히 모두 창과 칼을 세웠다. 적 루 위에서 조운(조자룡)이 나와 말하기를 “도독께서 여기에 행차 한 것은 단적을 무엇을 위해서 입니까?”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나는 너의 주인을 대신하여 서천을 취하려는데 네가 어찌 오히려 알지 못하는가?”했다. 조운(조자룡)이 말하기를 “제갈공명 군사께서는 이미 도독의 ‘假途滅虢(길을 빌려 괵나라를 멸한다.)’의 계책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를 여기에 있게 한 것입니다. 우리 주공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와 유장은 모두 한 나라 황실의 종친인데 어찌 차마 의리을 배반하고 서천을 취할 수 있겠는가? 만약 너희 동오가 곧바로 촉을 취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머리를 풀고 산에 들어가 천하에 신의를 잃지 않을 것이다.’ 했습니다.”했다.
周瑜聞之,勒馬便回。只見一人打著令字旗,於馬前報說:「探得四路軍馬,一齊殺到:關某從江陵殺來,張飛從秭歸殺來,黃忠從公安殺來,魏延從彝陵小路殺來:四路正不知多少軍馬。喊聲遠近震動百餘里,皆言要捉周瑜。」瑜馬上大叫一聲,箭鎗復裂,墬於馬下。正是:一著掑高難對敵,幾番算定總成空。不知周瑜性命如何,且看下文解。
주유가 그것을 듣고 말고삐를 당겨 말을 돌려 곧 돌아갔다. 그 때 한 사람이 ‘令’자가 쓰여진 깃발을 들고 말 앞에 서 보고하여 말하기를 “네 길로 군마가 일제히 쇄도해 오는 것을 탐지하였고, 관모(관운장)은 강릉으로부터 달려오고, 장비는 제귀로부터 달려오고, 황충은 공안으로부터 달려오고, 위연은 이릉으로부터 작은 길로 달려옵니다. 네 길은 바로 군마의 많고 적음을 알 수 없습니다. 함성은 멀고 가까이서 백여 리를 진동하는데 모두 주유를 잡으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했다. 주유가 말 위에서 한 소리 크게 부르짖었는데 화살에 맞았던 상처가 다시 터져 말 아래로 떨어졌으니 바로 이러하다. 한 수라도 단단히 잡음이 높으면 대적하기 어려우니 몇 번이나 헤아려 정함이 모두 헛되었다. 주유의 생명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겠구나. 또 아래 글에서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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