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十回:張永年反難楊脩,龐士元議取西蜀
제60회 장영년(장송)은 도리어 양수를 어렵게 하고, 방사원(방통)은 서천을 취할 것을 건의하다
卻說那進計於劉璋者,乃益州別駕,姓張,名松,字永年。其人生得額钁頭尖,鼻偃齒露,身短不滿五尺,言語有若銅鐘。劉璋問曰:「別駕有何高見,可解張魯之危?」松曰:「某聞許都曹操,掃蕩中原。呂布,二袁,皆為所滅;近又破馬超;天下無敵矣。主公可備進獻之物,松親往許都,說曹操興兵取漢中,以圖張魯。則魯拒敵不暇,何敢復窺蜀中耶?」
각설하고 유장에게 계책을 올린 자는 곧 익주별가인 성은 장이고, 이름은 송이며, 자는 영년이었다. 그 사람은 나면서 이마는 괭이 같고, 머리는 뾰족하며, 코는 납작하고 이빨은 드러났으며 키는 작아 오 척을 채우지 못하였으며 말하는 것은 구리종을 치는 것과 같음이 있었다. 유장이 물어 말하기를 “별가는 어떤 고견이 있어서 장노의 위태로움을 풀 수 있는가?”했다. 장송이 말하기를 “제가 들으니 허도의 조조가 중원을 소탕하고, 여포와 원소와 원술을 모두 없앴고, 최근에는 또한 마초를 깨트려 천하에 대적할 이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주공(유장)께서는 바치는 물건을 갖추시면 제가(장송)직접 허도에 가서 조조가 군대를 일으켜 한중을 취하도록 설득하는 것으로서 장노를 도모하게 하겠습니다. 곧 장노는 적을 막느라 겨를이 없을 것이니 어찌 감히 다시 촉을 엿볼 수 있겠습니까?”했다.
劉璋大喜,收拾金珠錦綺,為進獻之物,遣張松為使。松乃暗畫四川地理圖本藏之,帶從人數騎,取路赴許都。早有人報入荊州孔明 便使人入許都打探消息。
유장이 크게 기뻐하며 금, 구슬, 비단을 거두어 바치는 물건을 삼고 장송을 사신으로 삼아 보냈다. 장송은 곧 몰래 서천의 지리를 그린 지도를 감추고 몇 명의 기병을 따르게 하고 길을 취하여 허도에 나아갔다. 빠르게 어떤 사람이 형주에 들어가 제갈공명에게 보고하니 곧 사람을 시켜 허도에 들어 가 소식을 정탐하게 하였다.
卻說張松到了許都館驛中住定,每日去相府伺候,求見曹操。原來曹操自破馬超回,傲睨得志,每日飲宴,無事少出,國政皆在相府商議。張松候了三日,方得通過姓名。左右近侍先要賄賂,卻纔引入。操坐於堂上。松拜畢,操問曰:「汝主劉璋連年不進貢,何也?」松曰:「為路途艱難,賊寇竊發,不能通達。」操叱曰:「吾掃清中原,有何盜賊?」松曰:「南有孫權,北有張魯,西有劉備,至少者亦帶甲十餘萬,豈得謂太平耶?」
각설하고 장송은 허도의 숙소에 이르러 머물면서 매일 재상부에 가서 엿보며 조조를 만날 것을 청하였다. 원래 조조는 마초를 깨트리고 돌아 온 후로부터 거드름을 피우며 뜻을 얻어 매일 술을 마시며 일로 조금도 나가지 않고 국정을 모두 재상부에서 상의하고 있었다. 장송은 삼일을 기다린 후 비로소 성명을 알릴 수 있었다. 좌우 근시가 먼저 뇌물을 받은 후에야 겨우 인도하여 들어가게 하였다. 조조는 집 위에 앉아 있었다. 장송이 절하기를 마치자 조조가 물어 말하기를 “너의 주인 유장이 해를 이어 공물을 바치지 않은 것은 왜인가?”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길이 험하여 싣고 오기 어렵고, 도적이 훔쳐가기 때문에 통하여 이를 수 없었습니다.”했다. 조조가 질책하여 말하기를 “내가 중원을 슬어 맑게 하였는데 어떤 도적이 있다고 하는가?”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남쪽에는 손권이 있고, 북쪽에는 장노가 있으며 서쪽에는 유비가 있는데, 지극히 적은 자가 군대 십여 만 명을 거느렸으니 어찌 태평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했다.
操先見張松人物猥瑣,五分不喜;又聞語言衝撞,遂拂袖而起,轉入後堂。左右責松曰:「汝為使命,何不知禮,一味衝撞?幸得丞相看汝遠來之面,不見罪責。汝可急回去!」松笑曰:「吾川中無諂佞之人也。」忽而階下一人大喝曰:「汝川中不會諂佞,吾中原豈有諂佞者乎?」
조조는 장송의 인물이 추한 것을 보고는 거의 좋아하지 않고, 또 말하는 것이 종을 치는 것과 같음을 듣고는 마침내 소매를 떨치고 일어나 돌아 후당으로 들어갔다. 좌우가 장송을 꾸짖어 말하기를 “너는 사신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어찌 예를 알지 못하고 줄곧 화나게 하는가? 다행히 승상께서 네가 멀리서 온 얼굴을 보아 죄를 주지는 않으셨다. 너는 급히 돌아가야 할 것이다.”했다. 장송이 웃으며 말하기를 “우리 서천 중에는 아첨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없다.”했다. 갑자기 계단 아래서 한 사람이 크게 소리 질러 말하기를 “네가 서천 중에서 아첨하는 말을 잘 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였는데, 우리 중원에 어찌 아첨하는 말을 잘하는 자가 있겠는가?”했다.
松觀其人,單眉細眼,貌白神清。問其姓名,乃太尉楊彪之子楊修,字德祖,現為丞相門下掌庫主簿。此人博學能言,見識過人。松知脩是個舌辯之士,有心難之。脩亦自恃其才,小覷天下之士。當時見張松言語譏諷,遂邀出外面書院中,分賓主而坐,謂松曰:「蜀道崎嶇,遠來勞苦。」松曰:「奉主之命,雖赴湯蹈火,弗敢辭也。」修問:「蜀中風土何如?」松曰:「蜀為西郡,古號益州。路有錦江之險,地連劍閣之雄。回環二百八程,縱橫三萬餘里。雞鳴犬吠相聞,市井閭閻不斷。田肥地美,歲無水旱之憂;國富民豐,時有管絃之樂。所產之物,阜如山積。天下莫可及也!」
장송이 그 사람을 보니 완만한 눈썹에 눈이 가늘고 모습은 희며 정신은 맑았다. 그 성명을 물었었는데 곧 태위 양표의 아들 양수로 자는 덕조이니 현재 승상 문하에서 장고주부를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배움이 넓고 말을 잘하며 아는 것이 다른 사람보다 나았다. 장송은 양수가 말을 잘하는 선비임을 알고는 어렵게 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양수가 또한 스스로 그 재능을 믿고 천하의 선비를 얕보았다. 당시 장송이 풍자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는 드디어 밖의 서원 안으로 맞이하여 손님과 주인의 자리를 나누어 앉아 장송에게 말하기를 “촉도가 험난한데 멀리서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했다. 장송이 말하기를 “주공의 명을 받들었으니 비록 끓는 물에 들어가고, 불을 밟을지라도 감히 거절할 수 없습니다.”했다. 양수가 묻기를 “촉 중의 풍토는 어떠합니까?”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촉은 서쪽에 있는 군으로 예전에는 익주라 불렀습니다. 길은 금강의 험함이 있고, 땅은 검각산이 웅장합니다. 한바퀴 돌아오는 것은 이백팔 정이고, 가로와 세로는 삼만여 리입니다. (이웃의)닭이 울고 개가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리며 시장과 민가가 (이어져) 단절되지 않습니다. 땅은 비옥하고 해마다 가뭄과 홍수의 근심이 없어 나라는 부유하고 백성은 풍족하니 때로 관악기와 현악기의 음악이 연주됩니다. 생산되는 물건은 언덕과 산처럼 쌓여 있으니 천하가 (여기에)미칠 수 없을 것입니다.”했다.
修又問曰:「蜀中人物如何?」松曰:「文有相如之賦,武有伏波之才;醫有仲景之能,卜有君平之隱。九流三教,出乎其類,拔乎其萃者,不可勝記,豈能盡數!」修又問曰:「方今劉季玉手下,如公者還有幾人?」松曰:「文武全才,智勇足備,忠義慷慨之士,動以百數。如松不才之輩,車載斗量,不可勝記。」修曰:「公近居何職?」松曰:「濫充別駕之任,甚不稱職。敢問公為朝廷何官?」修曰:「現為丞相府主簿。」松曰:「久聞公世代簪纓,何不立於廟堂,輔佐天子,乃區區作相府門下一吏乎?」
양수가 또 물어 말하기를 “촉 중의 인물은 어떠합니까?”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문장으로는 상여의 부가 있고, 무예로는 복파의 재능이 있으며 의원으로는 중경의 잘 함이 있으며 점복으로는 군편의 은미함이 있습니다. 구류와 삼교의 그 류에서 나와 그 모임에서 뽑아 발탁된 자는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으니 어찌 모두 헤아릴 수 있으리오!”했다. 양수가 또 물어 말하기를 “지금은 유계옥(유장)의 수하로 공(장송)과 같은 이는 얼마나 있습니까?”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문무의 재능을 온전히 하고, 지혜와 용기를 충분히 갖춘 충의 강개한 선비가 몇 백 명이나 됩니다. 저와 같은 재능의 무리들은 수레에 싣고 말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했다. 양수가 말하기를 “공은 최근에 어떤 관직에 있었습니까?”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외람되이 별가의 임무에 있으나 매우 임무를 감당하기에 걸맞지 않습니다. 감히 묻노니 공(양수)은 조정에서 어떤 관직에 있습니까?”하니 양수가 말하기를 “현재 승상부의 주부입니다.”했다. 장송이 말하기를 “공의 가문은 대대로 벼슬한지 오래 되었다고 들었는데 어찌하여 조정에 서서 천자를 돕지 않고 구차하게 재상부의 문하의 일개 아전이 되었습니까?”했다.
楊修聞言,滿面羞慚,強顏而答曰:「某雖居下寮,丞相委以軍政錢糧之重,早晚多蒙丞相教誨,極有開發,故就此職耳。」松笑曰:「松聞曹丞相文不明孔孟之道,武不達孫吳之機,專務強霸而居大位,安能有所教誨,以開發明公耶?」修曰:「公居邊隅,安知丞相大才乎?吾試令公觀之。」呼左右於篋中取書一卷,以示張松。松觀其題曰:「孟德新書」。從頭至尾,看了一遍,共一十三篇,皆用兵之要法。
양수가 말을 듣고 부끄러움이 얼굴 가득하고 억지로 웃는 얼굴을 하고서 답하여 말하기를 “제가 비록 하급이나 승상께서 군정과 전량의 중대한 임무를 맡겨 조만간에 승상의 가르침을 입어 지극한 개발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 직책에 나아갔을 뿐입니다.”했다. 장송이 웃으며 말하기를 “제가 들으니 조 승상의 학문은 공자와 맹자의 도에 밝지 못하고 무예는 손자와 오기의 병법에 통달하지 못하였는데도 오로지 강한 패권을 힘써 큰 자리(승상의 자리)에 있으니 어찌 가르침으로 명공(양수)을 개발시킬 수가 있겠습니까?”했다. 양수가 말하기를 “공(장송)은 변경의 모퉁이에 있으면서 어떻게 승상의 큰 재능을 알 수 있습니까? 내가 시험 삼아 공에게 그것을 보여 주겠습니다.”하고는 좌우를 불러 상자 속에서 글 한 권을 가져오게 하여 장송에게 보였다. 장송이 그 제목을 보니 “맹덕신서”라 쓰여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훑어보니 십삼편으로 모두 군대를 운용하는 요령이었다.
松看畢,問曰:「公以此為何書耶?」修曰:「此是丞相酌古準今,倣孫子十三篇而作。公欺丞相無才,此堪以傳後世否?」松大笑曰:「此書吾蜀中三尺小童,亦能暗誦,何為『新書』?此是戰國時無名氏所作,曹丞相盜竊以為己能,止好瞞足下耳!」修曰:「丞相秘藏之書,雖已成帙,未傳於世。公言蜀中小兒暗誦如流,何相欺乎?」松曰:「公如不信,吾試誦之。」遂將「孟德新書」從頭至尾,朗誦一遍,並無一字差錯。修大驚曰:「公過目不忘,真天下奇才也!」後人有詩曰:古怪形容異,清高體疏。語傾三峽水,目視十行書。膽量魁西蜀,文章貫太虛。百家并諸子,一覽更無餘。
장송이 보기를 마치고 물어 말하기를 “공(양수)께서는 이것이 무슨 글이라 여깁니까?”하니 양수가 말하기를 “이는 승상께서 옛 것을 참작하고 지금에 기준하여 손자병법 십삼편을 모방하여 지은 것입니다. 공(장송)께서는 승상이 재능이 없다고 업신여기나 이 정도면 후세에 전해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했다, 장송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 이 글은 우리 촉 중의 삼척동자도 또한 외울 수 있는데 어찌 ‘신서’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전국시대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이 지은 것인데 조 승상이 훔쳐 자기의 능력으로 삼은 것이니 다만 그대를 만족시키기에 좋은 것일 뿐입니다.”했다. 양수가 말하기를 “승상이 비밀리에 감추어 둔 글이어서 비록 이미 질을 이루었으나 세상에 전해지지 못하였습니다. 공(장송)은 촉 중의 어린아이도 외우기를 흐르는 물과 같다고 속일 수 있습니까?”했다. 장송이 말하기를 “공(양수)이 만약 믿지 않는다면 내가 시험삼아 그것을 외우겠습니다.”하고는 드디어 “맹덕신서”를 가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낭랑하게 외웠는데 한자도 어긋남이 없었다. 양수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공(장송)의 눈이 지난 곳은 잊지 않으시니 참으로 천하의 지이한 재능입니다.”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은 것이 있는데 시에 “괴이한 모습이 특이하나, 맑고 높은 몸은 트여있었다. 말을 하면 삼협의 물을 기우리고 눈으로 본 것은 십행의 글이었다. 도량은 서촉에서 가장 넓고 문장은 태허를 꿰뚫었다. 백가와 제자들을 모두 보아 다시 남긴 것이 없었다.”했다.
當下張松欲辭回。修曰:「公且暫居館舍,容某再稟丞相,令公面君。」松謝而退。修入見操曰:「適來丞相何慢張松乎?」操曰:「言語不遜,吾故慢之。」修曰:「丞相尚容一禰衡,何不納張松?」操曰:「禰衡文章,播於當今,吾故不忍殺之。松有何能?」修曰:「且無論其口似懸河,辯才無礙。適修以丞相所撰「孟德新書」示之,彼觀一遍,即能暗誦。如此博聞強記,世所罕有。松言此書乃戰國時無名氏所作,蜀中小兒,皆能熟記。」操曰:「莫非古人與我暗合否?」令扯碎其書燒之。修曰:「此人可使面君,教見天朝氣象。」操曰:「來日我於西教場點軍,汝可先引他來,使見我軍容之盛,教他回去傳說:吾即日下了江南,便來收川。」 修領命。至次曰(日),與張松同至西教場。操點虎衛雄兵五萬,布於教場中,果然盔甲鮮明,衣袍燦爛;金鼓震天,戈矛耀日,四方八面,各分隊伍;旌旗颺彩,人馬騰空。松斜目視之。良久,操喚松指而示曰:「汝川中曾見此英雄人物否?」松曰:「吾蜀中不曾見此兵革,但以仁義治人。」
바로 장송이 하직하고 돌아가려 하였다. 양수가 말하기를 “공(장송)은 또한 잠시 관사에 머무시면 제가 다시 승상께 품의하여 공을 만나게 하겠습니다.”하니 장송이 감사하며 물러났다. 양수가 들어가 조조를 만나 말하기를 “지난번에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장송을 무시하셨습니까?”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말이 겸손하지 않아 내가 그를 무시하였다.”했다. 양수가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오히려 일개 예형도 용납하였는데 어찌하여 장송을 받아들이지 못하십니까?”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예형의 문장이 지금에 퍼져 있어서 내가 차마 그를 죽이 지 못하였다. 장송은 어떤 재능이 있는가?”하니 양수가 말하기를 “그가 물 흐르듯 하는 말을 잘하는 재주가 막힘이 없는 것을 논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제가 승상께서 편찬하신 ‘맹덕신서’를 보여 주었을 때 그가 한번 두루 살펴보고는 곧 외울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이 널리 듣고 잘 기억하는 것은 세상에 드물게 있는 것입니다. 장송은 이 글에 대해 곧 전국시대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이 지은 것으로 촉 중에서는 어린아이도 모두 익숙하게 기억할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옛 사람과 내가 우연히 부합된 것이 아니겠가?”하고는 그 글을 찢어 불살라 버리게 하였다. 양수가 말하기를 “이 사람을 만나시어 천조의 기상을 보게 하십시오.”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내일 내가 서쪽 훈련장에서 군대를 점검할 때 너는 먼저 그곳으로 (장송을)인도하여 우리 군대의 성대함을 보게 하고 그가 돌아갈 때 말을 전하기를 ‘우리가 강남을 함락시키면 곧 가서 서천을 거둘 것이다. 하라.” 했다. 양수가 명을 받았다. 다음 날이 되자 장송과 함께 서쪽 훈련장에 이르렀다. 조조는 호위군대 오만 명을 훈련장에 정렬하게 하니 과연 투구와 갑옷은 선명하고, 입은 포는 찬란하며, 징과 북소리가 하늘을 진동하고, 창은 햇빛에 번쩍이는데 사방팔방으로 각각 대오를 나누었다. 문채나는 깃발은 바람에 휘날리고 사람과 말은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장송은 째려보는 눈으로 보았다. 오래 후에 조조는 장송을 불러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며 말하기를 “너희 서천 중에 일찍이 리런 영웅을 본 적이 있는가?”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우리 촉 중에서는 일찍이 이런 군대를 본 적이 없고, 다만 인과 의로서 사람을 다스릴 뿐입니다.”했다.
操變色視之。松全無懼意,楊脩頻以目視松。操謂松曰:「吾視天下鼠輩猶草芥耳。大軍到處,戰無不勝,攻無不取。順吾者生,逆吾者死。汝知之乎?」松曰:「丞相驅兵到處,戰必勝,攻必取,松亦素知。昔日濮陽攻呂布之時,宛城戰張繡之日;赤壁遇周郎,華容逢關羽;割鬚棄袍於潼關,奪船箭於渭水:此皆無敵於天下也。」操大怒曰:「豎儒焉敢揭吾短處!」喝左右推出斬之。楊脩諫曰:「松雖可斬,奈從蜀道而來入貢,若斬之,恐失遠人之意。」
조조는 얼굴색이 변하면서 그를 보았다. 장송이 전혀 두려워하는 뜻이 없으니 양수가 급히 장송에게 눈짓하였다. 조조가 장송에게 말하기를 “내가 천하의 쥐새끼 무리들 보기를 초개와 같이 여겼다. 대군이 이르는 곳마다 싸워 이기지 못함이 없었고, 공격하여 취하지 못함이 없었다. 나를 따르는 자는 살고, 나를 거스르는 자는 죽는다. 너는 그것을 아는가?”하지 장송이 말하기를 “승상께서 군대를 몰아 이르는 곳마다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취한다는 것을 제가 또한 평소 알고 있었습니다. 지난 날 보양에서 여포를 공격할 때, 완성에서 장수와 싸울 때와 적벽에서는 주랑(주유)를 만났고, 화용도에서는 관우(관운장)을 만났습니다. 동관에서는 수염을 자르고 포를 벗었으며 위수에서 는 배를 빼앗아 화살을 피하였습니다. 이는 모두 천하에 대적함이 없는 것이었습니다.”했다. 조조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식견없는 선비가 어찌 감히 나의 단점을 들추는가?”하고는 좌우에게 소리쳐 끌어 내 죽이게 하였다. 양수가 간하여 말하기를 “장송은 비록 죽이는 것이 옳으나 촉도를 따라 와 공물을 바쳤는데 만일 그를 죽인다면 멀리 있는 사람들의 뜻을 잃을까? 두렵습니다.”했다.
操怒氣未息。荀彧亦諫,操方免其死,令亂棒打出。松歸館舍,連夜出城,收拾回川。松自思曰:「吾本欲獻西川州縣與曹操,誰想如此慢人!我來時於劉璋之前,開了大口;今日怏怏空回,須被蜀中人所笑。吾聞荊州劉玄德仁義遠播久矣,不如逕由那條路回。試看此人如何,我自有主見。」
조조의 노한 기운이 그치지 않았다. 순욱이 도한 간하니 조조가 비로소 그 죽을 면하게 하고 몽둥이로 어지럽게 쳐서 나가게 했다. 장송이 객사로 돌아와 밤을 이어 성을 나가 수습하고 사천으로 돌아갔다. 장송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본래 서천의 주와 현을 바쳐 조조에게 주려하였는데 누가 이처럼 오만한 사람인줄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내가 올 때 유장의 앞에서 큰 소리를 쳤는데 오늘 좋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반드시 촉 중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다. 내가 형주의 유현덕은 인의가 멀리까지 전해진 것을 들은 것이 오래되었으니 돌아가는 길에 이 사람이 어떠한 지를 보아 내가 스스로 주장을 삼는 것이 낫겠다.”했다.
於是乘馬引僕從望荊州界上而來。前至郢州界口,忽見一隊軍馬,約有五百餘騎,為首一員大將,輕裝軟扮,勒馬前問曰:「來者莫非張別駕乎?」松曰:「然也。」那將慌忙下馬,聲喏曰:「趙雲等候多時。」松下馬答禮曰:「莫非常山趙子龍乎?」雲曰:「然也。某奉主公劉玄德之命,為大夫遠涉路途,鞍馬馳驅,特命趙雲聊奉酒食。」
이에 말을 타고 종들을 이끌고 형주의 경계를 향하여 갔다. 영주 경계 앞에 이르렀을 때 홀연히 한 무리의 군마를 보았는데 대략 오백여 기 정도 되고 한 명의 대장은 가벼운 무장을 하고, 말을 몰아 앞에 와 물어 말하기를 “오고 있는 이는 장 별가 아닙니까?”했다. 장송이 말하기를 “그러합니다.”하니 장수가 황망히 말에서 내려 인사하며 말하기를 “조운(조자룡) 등이 기다린 지 오래되었습니다.”하니 장송도 말에서 내려 답례하여 말하기를 “상산 조자룡이 아닙니까?”하니 조운(조자룡)이 말하기를 “그러합니다. 제가 주공 유현덕의 명을 받들고 먼 길을 말 달려오신 대부를 위해 특히 저로 하여금 애오라지 술과 음식을 받들 게 하였습니다.”했다.
言罷,軍士奉跪酒食,雲敬進之。松自思曰:「人言劉玄德寬仁愛客,今果如此。」遂與趙雲飲了數杯,上馬同行。來到荊州界首,是日天晚,前到館驛,見驛門外百餘人侍立,擊鼓相接。一將於馬前施禮曰:「奉兄長將令,為大夫遠涉風塵,令關某灑掃驛庭,以待歇宿。」松下馬與雲長,趙雲同入館舍,講禮敘坐。須臾,排上酒食,二人慇懃相勸。飲至更闌,方始罷席,宿了一宵。
말을 마치자 군사들이 무릎을 꿇고 술과 음식을 받드니 조운(조자룡)이 공경히 그것을 올렸다. 장송이 스스로 생각하여 말하기를 “사람들이 유현덕은 객에게 너그럽고 어질고 아낀다고 말하더니 지금 과연 이 같구나.”했다. 마침내 조운(조자룡)과 술을 몇 잔 마시고 말에 올라 같이 갔다. 형주 경계에 이르렀는데 날이 저물었다. 관역 앞에 이르렀는데 역 문 밖에 백여 명의 사람들이 시립하여 북을 치고 영접하는 것을 보았다. 한 장수가 말 앞에서 예를 베풀며 말하기를 “형님의 명령을 받들어 먼 먼지 길을 오신 대부를 위하여 관모(관운장)로 하여금 역의 뜰을 청소하는 것으로서 대접하고 쉬게 하였습니다.”했다. 장송은 말에서 내려 관운장, 조운(조자룡)과 함께 관사에 들어가 에를 베풀고 앉았다. 잠깐만에 술과 음식을 차리고 두 사람이 은근히 (술과 음식을)권하였다. 술을 마시다 밤이 깊어지자 비로소 자리를 파하고 하룻밤을 묵었다.
次日早膳畢,上馬行不到三五里,只見一簇人馬到。乃是玄德引著伏龍,鳳雛,親自來接。遙見張松,早先下馬等候,松亦慌忙下馬相見。玄德曰:「久聞大夫高名,如雷灌耳。恨雲山迢遠,不得聽教。今聞回都,專此相接。倘蒙不棄,到荒州暫歇片時,以敘渴仰之思,實為萬幸!」松大喜,遂上馬並轡入城。至府堂上各各施禮,分賓主依次而坐,設宴款待。
다음 날 아침밥을 먹고 말에 올라 삼, 오리를 가지 못하였는데 한 떼의 인마가 이르는 것을 보았다. 바로 유현덕이 복룡(제갈공명), 봉추(장통)을 이끌고 직접 와서 영접하였다. 멀리 장송을 보고는 바로 말에서 내려 기다리니 장송이 또한 황망히 말에서 내려 만났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대부의 높은 명성이 우레처럼 귀에 들려온 지 오래되었습니다. 구름 낀 산이 아득히 멀어 가르침을 듣지 못한 것을 한 하였습니다. 지금 도읍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듣고 여기서 서로 만났습니다. 만약 버리지 않음을 입는다면 황주에 이르러 잠시 쉬면서 몹시 동경하고 사모하는 생각을 펼 수 있다면 진실로 다행일 것입니다.”했다. 장송이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말에 올라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성에 들어갔다. 부의 집에 올라 각각 예를 베풀고 손님과 주인을 나누어 차례에 의해 앉아 연회를 베풀고 정성껏 대접하였다.
飲酒間,玄德只說閒話,並不提起西川之事。松以言挑之曰:「今皇叔守荊州,還有幾郡?」孔明曰:「荊州乃暫借東吳的,每每使人取討。今我主因是東吳女婿,故權且在此安身。」松曰:「東吳據六郡八十一州,民強國富,猶且不知足耶?」龐統曰:「吾主漢朝皇叔,反不能占據州郡;其他皆漢之蟊賊,卻都恃強侵占地土;惟智者不平焉。」玄德曰:「二公休言。吾有何德,敢多望乎?」松曰:「不然,明公乃漢室宗親,仁義充塞乎四海。休道占據州郡,便代正統而居帝位,亦非分外。」玄德拱手謝曰:「公言太過,備何敢當?」
술을 마시는 사이에 유현덕은 다만 한가한 얘기만 할 뿐 아울러 서천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장송이 말로서 도전하여 말하기를 “지금 황숙(유현덕)께서 형주를 지키고 있는데, 아직 몇 개의 군을 소유하고 있습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형주는 곧 잠시 동오에게서 빌린 것이므로 매번 사신들이 올 때마다 돌려 달라 합니다. 지금 우리 주공은 동오의 사위이기 때문에 임시로 이곳에 있으면서 몸을 의탁하고 있습니다.”했다. 장송이 말하기를 “동오는 육군 팔십일주에 근거하여 백성은 강하고 나라는 부유한데 오히려 또한 만족할 줄을 알지 못합니까?”했다. 방통이 말하기를 “우리 주공은 한나라 황실의 황숙인데 오히려 주와 군을 점거하지 못하였고, 기타는 모두 한나라에 해가 되는 사람으로 모두 강함을 믿고 땅을 침범하여 점령하였으니 지혜로운 자는 공평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두 공(제갈공명과 방통)은 말을 하지 마십시오. 내가 무슨 덕이 있어 감히 많은 것을 바라겠습니까?”했다. 장송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공(유현덕)은 곧 한나라 황실의 종친으로 인의가 사해에 가득합니다. 주와 군을 점거하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곧 정통을 대신하여 황제의 지위에 있어도 또한 분수를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했다. 유현덕이 손을 맞잡고 사례하며 말하기를 “공(장송)의 말은 크게 지나칩니다. 비(유현덕)가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했다.
自此一連留張松飲宴三日,並不提起川中之事。松辭去,玄德於十里長亭,設宴送行。玄德舉酒酌松曰:「甚荷大夫不棄,留敘三日;今日相別,不知何時再得聽教。」言罷,潸然淚下。張松自思:「玄德如此寬仁愛士,安可捨之?不如說之,令取西川。」乃言曰:「松亦思朝暮趨侍,恨未有便耳。松觀荊州,東有孫權,常懷虎踞;北有曹操,每欲鯨吞;亦非可久戀之地也。」玄德曰:「故知如此,但未有安跡之所。」松曰:「益州險塞,沃野千里,民殷國富;智能之士,久慕皇叔之德;若起荊,襄之眾。長驅西指,霸業可成,漢室可興矣。」玄德曰:「備安敢當此?劉益州亦帝室宗親,恩澤布蜀中久矣。他人豈可得而動搖乎?」
이로부터 한 마음으로 장송과 술을 마시는 연회를 삼 일간 열었으나 서천의 일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장송이 하직하고 가니 유현덕은 십리를 따라 나가 연회를 베풀고 환송하러 갔다. 유현덕이 술잔을 들고 장송에게 말하기를 “대부께서 버리지 않으시고 삼일을 머물다가 오늘 서로 이별하게 되었으니 어느 때 다시 가르침을 들을 수 있을지 알지 못하겠습니다.”하는 말을 마치고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장송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유현덕이 이처럼 너그럽고 어질며 선비를 사랑하니 어찌 버릴 수 있겠는가? 그를 설득하여 서천을 취하게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하고는 곧 말하기를 “제가 또한 아침저녁으로 달려가 모실 것을 생각하였으나 편하게 들을 귀가 있지 않는 것을(그러할 수 없는 것을) 한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가 형주를 보니 동쪽으로는 손권이 있어 항상 범이 웅크리고 있는 듯하고, 북쪽으로는 조조가 있어 매양 고래처럼 삼키고자 하니 또한 오래 동안 생각할 수 있는 땅이 아닙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옛날에 이 같음을 알았으나 다만 편안히 자리할 만하 곳이 있지 않습니다.” 했다. 장송이 말하기를 “익주는 험하여 막혔고, 비옥한 들이 천리여서 백성들은 많고 나라는 부유합니다. 지혜롭고 능력 있는 선비들은 황숙(유현덕)의 덕을 사모한지 오래되었으니 만약 형주와 양양의 무리를 일으켜 길게 서쪽을 향하여 몰아온다면 패업을 이루고 한나라 황실을 흥기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제(유현덕)가 어찌 감히 이를 감당하겠습니까? 유익주(유장) 또한 황실의 종친으로 은택이 촉 중에 펴진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찌 동요시킬 수 있겠습니까?”했다.
松曰:「某非賣主求榮;今遇明公,不敢不披瀝肝膽。劉季玉雖有益州之地,稟性暗弱,不能任賢用能;加之張魯在北,時思侵犯,人心離散,思得明主。松此一行,專欲納款於操;何期逆賊,恣逞奸雄,傲賢慢士,故特來見明公。明公先取西川為基,然後北圖漢中,收取中原,匡正天朝,名垂青史,功莫大焉。明公果有取西川之意,松願施犬馬之勞,以為內應。未知鈞意若何?」玄德曰:「深感君之厚意。奈劉季玉與備同宗,若攻之,恐天下唾罵。」松曰:「大丈夫處世,當努力建功立業,著鞭在先。今若不取,為他人所取,悔之晚矣。」玄德曰:「備聞蜀道崎嶇,千山萬水,車不能方軌,馬不能連轡;雖欲取之,用何良策?」
장송이 말하기를 “제가 주인을 팔아 영예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명공을 만나 감히 간담을 피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계옥(유장)이 비록 익주의 땅을 소유하고 있으나 본성이 어둡고 유약하고, 현명한 이에게 맡기고 능력있는 사람을 등용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장노가 북쪽에 있으면서 때로 침범할 것을 생각하고 인심이 떠나고 흩어져 어진 임금을 만날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한 번 가서 오로지 조조에게 귀순하고자 하였으나 어찌 역적이 간사하게 굴고 현명한 이에게 오만하고 선비를 업신여길 줄 알았겠습니까? 그러므로 특히 와서 명공(유현덕)을 뵌 것입니다. 명공(유현덕)께서는 먼저 서천을 취하여 기틀을 삼은 후에 북쪽으로 한중을 도모하고 중원을 거두어 취하여 조정을 바로잡으면 이름이 역사에 드리울 것이니 공이 이보다 큼이 없을 것입니다. 명공(유현덕)께서는 과연 서천을 취할 뜻이 있다면 저는 개와 말의 수고움을 베푸는 것으로서 내응할 것을 원합니다. 귀하의 뜻은 어떠합니까?”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그대의 두터운 뜻을 깊이 감사드립니다. 유계옥(유장)과 나(유현덕)는 같은 종친인데 만약 그를 친다면 천하가 침을 뱃고 꾸짖을 것을 두려워합니다.”했다. 장송이 말하기를 “대장부가 세상에 처하여 노력하여 공을 세우고 대업을 확립하는 것은 손대기를 남보다 먼저 함에 달려있습니다. 지금 만약 취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취하게 될 것이니 후회하여도 늦을 것입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제가 들으니 촉도는 산길이 험하고 천개의 산과 만개의 물이 있어 수레는 바퀴를 굴리지 못하며(수레가 다니지 못하며) 말은 고삐를 나란히 할 수 없으니 비록 그것을 취하고자 하여도 어떤 좋은 계책을 쓸 수 있겠습니까?”했다.
松於袖中取出一圖,遞與玄德曰:「松感明公盛德,敢獻此圖。便知蜀中道路矣。」玄德略展視之,上面盡寫著地理行程。遠近闊狹,山川險要,府庫錢糧,一一俱載明白。松曰:「明公可速圖之。松有心腹契友二人:法正,孟達。此二人必能相助。如二人到荊州時,可將心事共議。」玄德拱手謝曰:「青山不老,綠水長存。他日事成,必當厚報。」松曰:「松遇明主,不得不盡情相告,豈敢望報乎?」說罷作別。孔明命雲長等護送數十里方回。
장송이 소매 속에서 한 지도를 꺼내 유현덕에게 전해주며 말하기를 “제가(장송) 명공(유현덕)의 성대한 덕에 감동하여 감히 이 지도를 바칩니다. 곧 촉 안의 도로를 알 수 있습니다.”했다. 유현덕이 대략 펴서 그것을 보니 윗면에 지리와 길들을 모두 그린 것이었다. 멀고 가까움, 넓고 좁음, 산천의 험함과 요해처, 창고와 전량이 일일이 갖추어 실은 것이 분명하였다. 장송이 말하기를 “명공(유현덕)께서는 속히 도모해야 합니다. 저에게는 마음으로 합한 벗 두 사람이 있는데 법정, 맹달입니다. 이 두 사람은 반드시 도울 수 있습니다. 만일 두 사람이 형주에 이르렀을 때 마음의 일을 가지고 함께 논의할 만합니다.” 했다. 유현덕이 손을 맞잡고 사례하며 말하기를 “청산은 늙지 않고, 녹수는 길이 흐릅니다. 다른 날 일이 이루어지면 반드시 후하게 갚을 것입니다.”했다. 장송이 말하기를 “제가 현명한 주인을 만나 지극한 정을 서로 고하지 많을 수 없었으니 어찌 감히 갚음을 바라겠습니까?”라는 말을 마치고 작별하였다. 제갈공명이 관운장 등으로 하여금 수십 리를 호송하게 하고는 비로서 돌아갔다.
張松回益州,先見友人法正。正字孝直,右扶風郡人也,賢士法真之子。松見正,備說:「曹操輕賢傲士,只可同憂,不可同樂。吾已將益州許劉皇叔矣。專欲與兄共議。」法正曰:「吾料劉璋無能,已有心見劉皇叔久矣。此心相同,又何疑焉?」
장송이 익주로 돌아 가 먼저 벗 법정을 만났다. (법정은)자가 효직이니 우부풍군 사람으로 어진 선비 법진의 아들이다. 장송이 법정을 만나 “조조는 어진이를 가벼이 여기고 선비를 오만하게 대하니 함께 근심할 수는 있으나 함께 즐길 수는 없습니다. 내가 이미 익주를 유황숙(유현덕)에게 (주기로)허락하였습니다. 오로지 형(법정)과 함께 논의하고자 합니다.”고 갖추어 말했다. 법정이 말하기를 “내가 유장이 무능하다고 생각하여 이미 마음으로 유황숙(유현덕)을 뵙고자 하는 마음을 둔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이 마음이 서로 같으니 또한 무엇을 의심하겠습니까?”했다.
少頃,孟達至。達字子慶,與法正同鄉。達入,見正與松密語。達曰:「吾已知二公之意。將欲獻益州耶?」松曰:「是欲如此。兄試猜之,合獻與誰?」達曰:「非劉玄德不可。」三人撫掌大笑。松(法)正謂松曰:「兄明日見劉璋,當若何?」松曰:「吾薦二公為使,可往荊州。」二人應允。
잠시 후 맹달이 이르렀다. 맹달의 자는 자경이니 법정과 같은 마을 출신이다. 맹달이 들어와 법정과 장송이 비밀 말을 나누는 것을 보았다. 망달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두 동의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장차 익주를 바치려 하는가?”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옳음이 이 같습니다. 형이 시험삼아 그것을 생각해 보아 누구에게 주는 것이 합당하겠습니까?”하니 맹달이 말하기를 “유현덕이 아니면 안됩니다.”했다. 세 사람이 박수를 취면서 크게 웃었다. 법정이 장송에게 말하기를 “형이 내일 유장을 만나면 어떻게 할 것이오?”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내가 두 공을 추천하여 사신으로 삼아 형주로 가게할 것입니다.”하니 두 사람이 응락하였다.
次日,張松見劉璋。璋問:「幹事若何?」松曰:「操乃漢賊,欲篡天下,不可為言。彼已有取川之心。」璋曰:「似此如之奈何?」松曰:「松有一謀,使張魯,曹操必不敢輕犯西川。」璋曰:「何計?」松曰:「荊州劉皇叔,與主公同宗,仁慈寬厚,有長者風。赤壁鏖兵之後,操聞之而膽裂,何況張魯乎?主公何不遣使結好,使為外援?可以拒曹操張魯矣。」璋曰:「吾亦有此心久矣。誰可為使?」松曰:「非法正,孟達,不可往也。」璋即召二人入,修書一封,令法正為使,先通情好;次遣孟達領精兵五千,迎玄德入川為援。
다음 날 장송이 유장을 만났다. 유장이 묻기를 “주관하였던 일은 어떠한가?”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조조는 곧 한나라의 적으로 천하를 찬탈하고자 하니 말 할 것이 없습니다. 그는 이미 서천을 취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했다. 유장이 말하기를 “이 같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저에게 한 꾀가 있으니 장노와 조조로 하여금 반드시 감히 가벼이 서천을 범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했다. 유장이 말하기를 “무슨 계책인가?”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형주의 유황숙은 주공과 같은 종친으로 인자하고 너그럽고 장자의 기풍이 있습니다. 적벽의 큰 전쟁 후 조조가 그것을 듣고 담이 찢어졌는데 하물며 장노 이겠습니까?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사신을 보내 우호를 맺고 밖에서 후원하게 하지 않으십니까? 조조와 장노를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유장이 말하기를 “내가 또한 이러한 마음을 가진지 오래되었다. 누구를 사신으로 삼을 수 있는가?”했다. 장송이 말하기를 “법정과 맹달이 아니면 갈이가 없습니다.”하니 유장이 곧 두 사람을 불러 들여 글 한 통을 써서 법정을 사신으로 삼아 먼저 우호의 정을 통하게 하고, 다음으로 맹달에게 정병 오천을 거느리고 가서 유현덕을 맞아 서천에 들어와 후원하게 하였다.
正商議間,一人自外突入,汗流滿面,大叫曰:「主公若聽張松之言,則四十一州郡,已屬他人矣!」松大驚;視其人,乃西閬中巴人,姓黃,名權,字公衡,現為劉璋府下主簿。璋問曰:「玄德與我同宗,吾故結之為援;汝何出此言?」權曰:「某素知劉備寬以待人,柔能克剛,英雄莫敵。遠得人心,近得民望。兼有諸葛亮,龐統之智謀,關,張,趙雲,黃忠,魏延為羽翼。若召到蜀中,以部曲待之,劉備豈肯伏低做小?若以客禮待之,又一國不容二主。今聽臣言,則西蜀有泰山之安;不聽臣言,則主公有累卵之危矣。張松昨從荊州過,必與劉備同謀。可先斬張松,後絕劉備,則西川萬幸也。」璋曰:「曹操,張魯到來,何以拒之?」權曰:「不如閉境絕塞,棎(深)溝高壘,以待時清。」璋曰:「賊兵犯界,有燃眉之急;若待時清,則是慢計也。」遂不從其言,遣法正行。又一人阻曰:「不可!不可!」
상의하는 사이에 한 사람이 밖으로부터 튀어 들어와 얼굴 가득 땀을 흘리며 크게 외쳐 말하기를 “주공께서 만약 장송의 말을 들으신다면 곧 사십일 주군은 다름 사람에게 속할 것입니다.”했다. 장송이 크게 놀라 그 사람을 보니 곧 서낭중 파 사람으로 성은 황이고, 이름은 권이며, 자는 자형으로 현재 유장부의 주부를 하고 있었다. 유장이 물어 말하기를 “유현덕과 나는 같은 종친이기 때문에 우호를 맺어 원군으로 삼으려 하는데 너는 어찌하여 이 말을 하는가?”했다. 황권이 말하기를 “저는 평소에 유비(유현덕)가 너그러움으로서 사람을 대하고,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는 영웅으로 대적할 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멀리는 인심을 얻고 가까이는 백성들의 바람을 얻었으며, 겸하여 제갈량(제갈공명), 방통의 지모와 관운장, 장비, 조운, 황충, 위연이 있어 우익을 삼았습니다. 만약 (유현덕을)불러 촉에 이르렀을 때 부하로서 대우하면 유비(유현덕)가 어찌 즐겨 무릎을 꿇고 비위를 맞추겠습니까? 만약 빈객의 예로 대우하면 또한 한 나라에 두 임금이 있는 것이니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신의 말을 들으신다면 곧 서촉은 태산의 편안함이 있을 것입니다. 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곧 주공께는 누란의 위태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장송이 지난번에 형주를 지나왔으니 반드시 유비(유현덕)와 함께 도모하였을 것입니다. 먼저 장송을 죽인 후에 유비(유현덕)와 단절한다면 곧 서천에게는 큰 행운일 것입니다.” 했다. 유장이 말하기를 “조조와 장노가 온다면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하니 황권이 말하기를 “국경을 막고 요새를 끊고 해자를 깊게 파고 보루를 높이 쌓는 것으로서 때가 맑아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했다. 유장이 말하기를 “적병이 경계를 범하여 눈썹이 불타는 위태로운 급함이 있는데 만약 때가 맑아지기를 기다린다면 곧 이는 게으른(늦은) 계책입니다.” 하고는 그 말ㄴ을 따르지 않고 법정을 (형주의 유현덕에게)보내 가게 하였다. 또 한 사람이 막으며 말하기를 “안 됩니다. 안됩니다.”했다.
璋視之,乃帳前從事官王累也。累頓首言曰:「主公今聽張松之言,自取其禍。」璋曰:「不然。吾結好劉玄德,實欲拒張魯也。」累曰:「張魯犯界,乃癬疥之疾;劉備入川,乃心腹之大患。況劉備世之梟雄,先事曹操,便思謀害;後從孫權,便奪荊州。心術如此,安可同處乎?今若召來,西川休矣!」璋叱曰:「再休亂道!玄德是我同宗,他安肯奪我基業?」便教扶二人出。遂命法正便行。法正離益州,逕取荊州,來見玄德。參拜已畢,呈上書信。玄德拆封視之。
유장이 그를 보니 곧 장전종사관 왕루였다. 왕루가 모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주공께서 지금 장송의 말을 따른 따르는 것은 스스로 화를 취하는 것입니다.”했다. 유장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내가 유현덕과 결호하는 것은 진실로 장노를 막고자 하는 것이다.”했다. 왕루가 말하기를 “장노가 경계를 법하는 것은 곧 버짐의 병이고, 유비(유현덕)가 서천에 들어오는 것은 심장과 배에 생긴 큰 병이다. 하물며 유비(유현덕)은 세상의 효웅으로 먼저 조조를 섬기다 후에는 손권을 따르다 형주를 빼앗았습니다. 시기하는 마음이 이와 같으니 어찌 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만약 불러 오게 되면 서천은 끝일 것입니다.”했다. 장노가 질책하여 말하기를 “다시 어지러운 말을 하지 말라. 유현덕은 나와 같은 종친인데 그가 어찌 즐겨 나의 기업을 빼앗겠는가?”하고는 곧 두 사람을 부축하여 나가게 했다. 마침내 법정으로 하여금 가게 하였다. 법정이 익주를 떠나 빠른 길로 형주에 가 유현덕을 만났다. 절을 하기를 마치고 편지를 올렸다. 유현덕이 봉투를 찢어서 글을 보았다.
書曰:「族弟劉璋,再拜致書於玄德宗兄將軍麾下:久伏電天,蜀道崎嶇,未及齎貢,甚切惶愧。璋聞『吉凶相救,患難相扶。』朋友尚然,況宗族乎?今張魯在北,旦夕興兵,侵犯璋界,甚不自安。專人謹奉尺書,上乞鈞聽。倘念同宗之情,全手足之義,即日興師剿滅狂寇,永為脣齒,自有重酬。書不盡言,耑候車騎。」
글에 “종족 동생 유장은 두 번 절하고 유현덕 종친의 형인 장군 휘하에 글을 보냅니다. 오래 동안 높은 명성의 사람에게 감복해 왔습니다만 촉도가 가파르고 험하여 공물을 가지고 이르지 못하였으니 매우 부끄럽습니다. 제가(유장) 들으니 ‘길흉은 서로 구원하고, 환난에는 서로 돕는다.’합니다. 벗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종족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지금 장노가 북쪽에 있으면서 아침저녁으로 군대를 일으켜 나의 나라를 침범하니 매우 편안하지 않습니다. (글을)전하는 사람을 보내 삼가 편지글을 받들게 하여 들어주실 것을 구합니다. 만약 같은 종친의 뜻을 생각하신다면 수족(형제)의 뜻을 온전히하여 즉시 군대를 일으켜 미친 도적을 없애 길이 순치의 관계가 된다면 저절로 많은 갚음이 있을 것입니다. 글로는 말을 다할 수 없으니 오로지 수레를 기다립니다.”했다.
玄德看畢大喜,設宴相待法正。酒過數巡,玄德屏退左右,密謂正曰:「久仰孝直英明,張別駕多談盛德。今獲聽教,甚慰平生。」法正謝曰:「蜀中小吏,何足道哉?蓋聞馬逢伯樂而嘶,人遇知已而死。張別駕昔之言,將軍復有意乎?」玄德曰:「備一身寄客,未嘗不傷感而歎息。思鷦鷯尚存一枝,狡兔尚藏三窟,何況人乎?蜀中豐餘之地,非不欲取;奈劉季玉係備同宗,不忍相圖。」法正曰:「益州天府之國,非治亂之主,不可居也。今劉季玉不能用賢,此業不久必屬他人。今日自付與將軍,不可錯失。豈不聞『逐兔先得』之說乎?將軍欲取,,某當效死。」玄德拱手謝曰:「尚容商議。」
유현덕이 보기를 마치고 크게 기뻐하며 연회를 베풀고 법정을 대접하였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유현덕이 자우를 물리치고 은밀히 법정에게 말하기를 “오래동안 효직(법정)의 영명함과 장별가(장송)의 말 잘하는 것과 성대한 덕을 우러러왔습니다. 지금 가르침을 들을 수 있다면 평생의 위안이 될 것입니다.”했다. 법정이 사례하며 말하기를 “촉 중의 하급 관리가 어찌 말할 만한 것이 있겠습니까? 대개 들으니 말은 백락(손양)을 만나면 울고,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만나면 (그를 위해)죽는다고 합니다. 장별가가 예전에 한 말에 장군께서는 다시 뜻이 있습니까?”하니 유현덕이 말하기를 “내 한 몸이 다른 사람에게 손님이 되어 밥을 얻어먹고 있어 일찍이 슬퍼하여 탄식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뱁새도 오히려 둥지 지을 한 가지가 있고, 교활한 토끼가 오히려 세 개의 굴을 감추어두는데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 이겠습니까? 촉은 풍요로운 땅이라 취하고자 하지 않는 것이 아니나 유계옥(유장)은 나와 같은 종친이어서 차마 도모하지 못합니다.”했다. 법정이 말하기를 “익주는 하늘의 곳간인 나라로 어지러움을 다스리는 군주가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 지금 유계욕(유장)은 어진 이를 등용하지 못하니 이 기업이 오래하지 못하고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속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스스로 장군에게 주어졌으니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찌 ‘토끼를 쫓아 먼저 잡으라.’는 말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장군께서 취하고자 하신다면 저는 마땅히 목숨을 바치겠습니다.”했다. 유현덕이 손을 맞잡고 사례하며 말하기를 “좀 더 상의해 보겠습니다.”했다.
當日席散,孔明親送法正歸館舍。玄德獨坐沉吟。龐統進曰:「事當決而不決者,愚人也。主公高明,何多疑耶?」玄德問曰:「以公之意,當復何如?」統曰:「荊州東有孫權,北有曹操難以得志。益州戶口百萬,士廣財富,可資大業。今幸張松、法正為內助,此天賜也。何必疑哉?」
그날 자리를 파하자 제갈공명이 직접 법정을 환송하여 관사로 돌아가게 했다. 유현덕은 홀로 앉아 망설였다. 방통이 나아가 말하기를 “일은 마땅히 결단해야 하고 결단하지 않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주공께서는 고명하신데 어찌 많이 의심하십니까?”하니 유현덕이 물어 말하기를 “공의 생각으로는 다시 어떻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까?”하니 방통이 말하기를 “형주의 동쪽에는 손권이 있고, 북쪽에는 조조가 있어 뜻을 얻기 어렵습니다. 익주는 호구가 백만명으로 땅은 넓고 재물은 풍부하니 대업의 바탕으로 삼을 만합니다. 지금 다행히 장송과 법정이 안에서 돕는다하니 이는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어찌 의심하십니까?”했다.
玄德曰:「今與吾水火相敵者,曹操也。操以急,吾以寬;操以暴,吾以仁;操以譎,吾以忠;每與操相反,事乃可成。若以小利而失大義於天下,吾不為也。」龐統笑曰:「主公之言,雖合天理,奈離亂之時,用兵爭強,固非一道;若拘執常理,寸步不可行矣。宜從權變。且兼弱攻昧,逆取順守,湯,武之道也。若事定之後,報之以義,封為大國,何負於信?今日不取,終被他人取耳。主公幸熟思焉。」玄德乃恍然曰:「金石之,言,當銘肺腑。」
유현덕이 말하기를 “지금 내가 물과 불처럼 대적하는 자는 조조입니다. 조는 급한 것으로서 하고, 나는 너그러움으로서 하고, 조조는 사나움으로서 하고 나는 인으로서 하고, 조조는 속임수로 하고, 나는 충으로 하여 매번 조조와 서로 반대로 하였기 때문에 일이 곧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만약 작은 이익 때문에 천하에 대의를 잃는 것은 내가 하지 않습니다.” 했다, 방통이 웃으며 말하기를 “주공의 말은 비록 천리에 부합하나 어지러운 때를 떠나고 군대를 써서 강함을 다투는 것은 진실로 한 가지 방법은 아닙니다. 만약 떳떳한 이치에 구속되고 고집하시면 한 치의 발걸음도 갈 수 없습니다. 마땅히 임시변통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약한 것은 겸병하고 어두운 것은 치며, 거스르는 것은 취하고 순히 따르는 것을 지키는 것이 탕왕과 무왕의 도입니다. 만약 일이 정해진 후에 의리로 갚고 큰 나라를 봉한다면 어찌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 되겠습니까? 오늘 취하지 않는다면 끝내 다른 사람이 취하게 될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깊이 생각하시면 다행이겠습니다.”했다. 유현덕이 이에 문득 깨닫고 말하기를 “금석같은 말을 마땅히 폐부에 새기겠습니다.”했다.
於是遂請孔明同議,起兵西行。孔明曰:「荊州重地,必須分兵守之。」玄德曰:「吾與龐士元,黃忠,魏延,前往西川;軍師可與關雲長,張翼德,趙子龍,守荊州。」孔明應允。於是孔明總守荊州;關公拒襄陽要路,當青泥隘口;張飛領四郡巡江;趙雲屯江陵,鎮公安。玄德令黃忠為前部,魏延為後軍。玄德自與劉封關平在中軍,龐統為軍師,馬步五萬,起程西行。
이에 마침내 제갈공명을 청하여 함께 군대를 일으켜 서쪽으로 가는 것을 의논하였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형주는 중요한 땅이니 반드시 군대를 나누어 지켜야 합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나와 방사원(방통), 황충, 위연은 앞서 서천으로 가고, 군사는 관운장, 장익덕(장비), 조자룡과 함께 형주를 지키십시오,”했다. 제갈공명이 승낙하였다. 이에 제갈공명은 형주를 총괄하여 지키는데 관공(관운장)은 양양의 요로를 막아 청니의 좁은 입구를 담당하고 장비는 사군을 거느리고 (장)강을 순찰하며 조운(조자룡)은 강릉에 주둔하여 공안을 지키게 했다. 유현덕은 황충을 전군으로, 위연을 후군으로 삼고, 유현덕 자신은 유봉, 관평과 함께 중군에 있고, 방통을 군사로 삼아 기병과 보병 오만을 일으켜 서쪽으로 가는 길을 행군하기로 했다.
臨行時,忽廖化引一軍來降。玄德便教廖化輔佐雲長,以拒曹操。是年冬月,引兵望西川進發。行不數程,孟達接著,拜見玄德,說劉益州令某領兵五千遠來迎接。玄德使人入益州,先報劉璋。璋便發書告報沿途州郡,供給錢糧。璋欲自出涪城親接玄德,即下令準備車乘帳幔,旌旗鎧甲,務要鮮明。主簿黃權入諫曰:「主公此去,必被劉備所害。某食祿多年,不忍主公中他人奸計,望三思之。」張松曰:「黃權此言,疏間宗族之義,滋長寇盜之威,實無益於主公。」璋乃叱權曰:「吾意已決,汝何逆吾!」
막 행군하려할 때 홀연히 료화가 일 군을 이끌고 와서 항복하였다. 유현덕은 곧 료화로 하여금 관운장을 보좌하여 조조를 막게 하였다. 이해 겨울 군대를 이끌고 서천을 향해 출발하였다. 행군하여 얼마가지 못하여 맹달이 잇달아 와 유현덕을 뵙고 유익주(유장)가 저로 하여금 오천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멀리서 오는 것을 영접하라 하였다고 말하였다. 유현덕은 사람을 시켜 익주에 들어 가 먼저 유장에게 알리게 하였다. 유장은 곧 글을 보내 연도의 주와 군에 알리고 돈과 식량을 공급하게 하였다. 유장은 스스로 부성에 나가 직접 유현덕을 영접하려 하여 명령을 내려 수레와 장막, 깃발, 갑옷, 투구를 힘써 선명한 것으로 준비하라고 하였다. 주부 황권이 들어가 간하여 말하기를 “주공께서 여기에 간다면 반드시 유비(유현덕)에게 해침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황권) 녹을 먹은 지가 여러 해가 되었으니 차마 주공이 다른 사람의 간사한 계책에 빠지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 번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했다. 장송이 말하기를 “황권의 이 말은 종족의 의를 멀리하고 이간하는 것으로 도적의 위세를 자라나게 하는 것이니 진실로 주공에게 이익이 없습니다.”했다. 유장이 곧 황권을 질책하여 말하기를 “내 뜻은 이미 결정되었는데 네가 어찌 나를 거스르려 하는가?”했다.
權叩首流血,近前口啣璋衣而諫。璋大怒,扯衣而起。權不放,頓落門牙兩個。璋喝左右,推出黃權,權大哭而歸。
황권이 머리를 (땅에) 찧어 피가 흐르고 가까이 앞으로 가 입으로 유장의 옷을 물며 간하였다. 유장이 크게 노하여 옷을 찢고 일어났다. 황권이 놓지 않으니 앞니 두 개가 부러져 떨어졌다. 유장이 좌우에게 소리쳐 황권을 끌고 나가게 하니 황권이 크게 울면서 돌아갔다.
璋欲行,一人叫曰:「主公不納黃公衡忠言,乃欲自就死地耶?」伏於階前而諫。璋視之,乃建寧愈元人也,姓李,名恢。叩首諫曰:「竊聞『君有諍臣,父有諍子』。黃公衡忠義之言,必當聽從。若容劉備入川,是猶迎虎於門也。」璋曰:「玄德是吾宗兄,安肯害吾?再言者必斬!」叱左右推出李恢。張松曰:「今蜀中文官各顧妻子,不復為主公效力;諸將恃功驕傲,各有外意;不得劉皇叔,則敵攻於外,民攻於內,必敗之道也。」璋曰:「公所謀深於吾有益。」
유장이 가려하는데 한 사람이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공께서 황공 형(황권)의 충언을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스스로 죽을 땅에 나아가려 하십니까?”하고는 계단 앞에 엎드려 간하였다. 유장이 그를 보니 바로 건녕 유원사람으로 성은 이씨이고, 이름은 회였다. 머리를 찧으며 간하여 말하기를 “저으기 들으니 ‘임금은 간쟁하는 신하를 두어야 하고, 아버지는 간쟁하는 아들을 두어야 한다.’고 합니다. 황공 형(황권)의 충의로운 말을 반드시 듣고 따라야 마땅합니다. 만약 유비(유현덕)가 서천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한다면 이는 호랑이를 문에 맞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했다. 했다. 유장이 말하기를 “유현덕은 나의 종친 형인데 어찌 나를 해치겠는가? 다시 말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다.”하고는 좌우를 질책하여 이회를 끌어내게 하였다. 장송이 말하기를 “지금 촉 중의 문관들은 각각 처자만 돌보고 다시 주공을 위해 힘쓰지 않고, 여러 장수들은 공을 믿고 교만하고 오만하여 각각 밖에만(다른 곳에) 뜻을 두고 있습니다. 유황숙(유현덕)을 얻지 못한다면 곧 적은 밖에서 치고, 백성은 안에서 칠 것이니 반드시 패하는 길입니다.”했다. 유장이 말하기를 “공(장송)이 도모한 바가 깊어 나에게 유익함이 있다.”했다.
次日,上馬出榆橋門。人報「從事王累,自用繩索倒弔於城門之上,一手執諫章,一手仗劍,口稱如諫不從,自割斷其繩索,撞死於此地。」劉璋教取所執諫章觀之。其略曰:「益州從事臣王累,泣血稽首:竊聞『良藥苦口利於病,忠言逆耳利於行』。昔楚懷王不聽屈原之言,會盟於武關,為秦所困。今主公輕離大郡,欲迎劉備於涪城,恐有去路,而無回路矣。倘能斬張松於市,絕劉備之約,則蜀中老幼幸甚,主公之基業亦幸甚!」
다음 날 말을 타고 유교문을 나갔다. 그 때 사람이 보고하기를 “종사 왕루가 스스로 노끈을 써서 성문 위에 거꾸로 매달렸는데 한 손에는 간하는 글을 잡고 한손에는 검을 들고, 만일 간하는 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스스로 그 노끈을 잘라 이 땅에 부딪혀 죽겠다고 말합니다.”했다. 유장이 잡고 있던 간하는 글을 집어 보았다. 그 글을 요약하면 “익주 종사 신 왕루는 피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립니다. 가만히 들으니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위에는 이롭다.’합니다. 옛날 초나라 회왕이 굴원의 말을 듣지 않고 무관에서 회맹하였다가 진나라에게 곤궁함을 당하였습니다. 지금 주공께서 가벼이 대군을 떠나 유비(유현덕)를 부성에 맞아들이시려 한다면 가는 길을 있어도 돌아오는 길이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만약 장송을 시장에서 목 베고, 유비(유현덕)와의 약속을 끊으신다면 촉의 늙은이와 어린이들이 매우 다이고, 주공의 기업이 또한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했다.
劉璋看畢,大怒曰:「吾與仁人相會,如親芝蘭,如何數侮於吾耶!」王累大叫一聲,自割斷其索,撞死於地。後人有詩歎曰:倒挂城門捧諫章,拚將一死報劉璋。黃權折齒終降備,矢節何如王累剛!
유장이 보기를 마치고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나와 어진 사람이 서로 만나는 것은 지초와 난초의 향기 같은 친함인데 어찌하여 여러 번 나를 모욕하는가?”하니 왕루가 크게 한 소리를 부르짖고 스스로 그 새끼를 끊어 땅에 부딪혀 죽었다. 후세 사람들이 시를 지어 탄식하여 말하기를 “성문에 거꾸로 매달려 간하는 글을 받들고, 서슴없이 한번 죽어 유장에게 보답하였다. 이 부러진 황권이 끝내 유비(유현덕)에게 항복하였으니 화살 같은 절개가 어찌 왕루의 굳셈만 같음이 있겠는가?”했다.
劉璋將三萬人馬往涪城來。後軍裝載資糧錢帛一千餘輛,來接玄德。
유장은 삼만 명을 데리고 부성으로 갔다. 뒤따르는 군대는 식량과 돈, 비단을 실은 수레에 싣고 가서 유현덕을 영접하였다.
卻說玄德前軍已到塾沮,所到之處,一者是西川供給;二者是玄德號令嚴明,如有妄取百姓一物者斬;於是所到之處,秋毫無犯。百姓扶老攜幼,滿路瞻觀,焚香禮拜。玄德皆用好言安慰。
각설하고 유현덕의 전군은 이미 숙저에 이르렀는데 이르는 곳마다 첫째는 서천에서 공급하였고, 두 번 째는 유현덕의 명령이 엄격하고 밝아 망녕되이 백성의 한 물건이라도 취하는 자는 죽이게 하였다. 이에 이르는 곳마다 추호도 범하는 자가 없었다. 백성들이 늙은이는 부축하고, 어린애는 손을 잡고 길에 가득 나와 바라보며 향을 피우고 예로 절하였다. 유현덕이 모두 좋은 말을 써서 위로하였다.
卻說法正密謂龐統曰:「近張松有密書到此,言於涪城相會劉璋,便可圖之。機會切不可失。」統曰:「此意且勿言。待二劉相見,乘便圖之。若預走洩,於中有變。」
각설하고 법정이 비밀리에 방통에게 일러 말하기를 “최근에 장송의 밀서가 여기에 이른 것이 있는데 부성에서 유장을 만날 때에 도모할만하다고 말했습니다. 기회를 절대로 잃어서는 안 됩니다.”했다. 방통이 말하기를 “이 뜻을 또한 말하지 마시오. 두 유가(유현덕과 유장)만나는 것을 기다렸다가 편의에 따라 도모할 것이오. 만약 사전에 누설되면 중간에 변란이 있을 것입니다.” 했다.
法正乃秘而不言。涪城離成都三百六十里。璋已到,使人迎接玄德。兩軍皆屯於涪江之上。玄德入城,與劉璋相見,各敘兄弟之情。禮畢,揮淚訴告衷情。
법정이 이에 숨기고 말하지 않았다. 부성은 성도에서 삼백육십리 떨어져 있었다. 야장이 도착하여 사람을 시켜 유현덕을 맞이하였다. 두 군대는 모두 부강 가에 주둔하였다. 유현덕이 성에 들어 가 유장과 서로 만나 각각 형제의 정을 나누었다. 예를 마치고 눈물을 흘리며 충정을 말하였다.
飲宴畢,各回寨中安歇。璋謂眾官曰:「可笑黃權王累輩,不知宗兄之心,妄相猜疑。吾今日見之,真仁義之人也。吾得他為外援,又何慮曹操張魯耶?非張松則失之矣。」乃脫所穿綠袍,並黃金五百兩,令人往成都賜與張松。
연회를 마치고 각각 영채로 돌아 가 편안히 쉬었다. 유장이 여러 관리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황권과 왕루의 무리들이 종친 형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망년되이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는 것은 비웃을 만하다. 내가 오늘 그를 만나보니 참으로 인의의 사람이다. 내가 그를 얻어 밖의 도움을 얻는다면 또한 어찌 조조와 장노를 근심할 것인가? 장송이 아니었다면 그를 잃었을 것이다.”하고는 곧 입었던 녹포를 벗어 아울러 황금 오백 량을 가지고 사람을 시켜 성도에 가서 장송에게 주게하였다.
時部下將佐劉瑰,冷苞,張任,鄧賢等一班文武官曰:「主公且休歡喜。劉備柔中有剛,其心未可測,還宜防之。」璋笑曰:「汝等皆多慮。吾兄豈有二心哉!」眾皆嗟歎而退。
이 때 부하 장교인 유괴, 냉포, 장임, 등현 등 한 무리의 문무관리들이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기뻐하지 마십시오. 유비(유현덕)는 부드러우나 마음 속에는 굳셈이 있어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으니 돌아가 방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했다. 유장이 웃으며 말하기를 “너희 들 모두는 근심이 많다. 나의 형이 어찌 두마음을 품었겠는가!”하니 무리들이 모두 탄식하며 물러갔다.
卻說玄德歸到寨中。龐統入見曰:「主公今日席上見劉季玉動靜乎?」玄德曰:「季玉真誠實人也。」統曰:「季玉雖善,其臣劉瑰,張任等皆有不平之色,其間吉凶未可保也。以統之計,莫若來日設宴,請季玉赴席;於衣壁中埋伏刀斧手一百人,主公擲杯為號,就筵上殺之;一擁入成都,刀不出鞘,弓不上弦,可坐而定也。」玄德曰:「季玉是吾同宗,誠心待吾,更兼吾初到蜀中,恩信未立,若行此事,上天不容,下民亦怨。公此謀,雖霸者亦不為也。」統曰:「此非統之謀;是法孝直得張松密書,言事不宜遲,只在早晚當圖之。」
각설하고 유현덕은 영채에 돌아갔다. 방통이 들어가 뵙고 말하기를 “주공께서 오늘 자리에서 유계옥(유장)의 동정을 보았습니까?”하니 유현덕이 말하기를 “계옥(유장)은 참으로 성실한 사람입니다.”했다. 방통이 말하기를 “계옥(유장)은 비록 선하나 그 신하인 유괴, 장임 등은 모두 불평하는 기색이 있었으니 그 사이에 길흉을 보증할 수 없습니다. 저의(방통) 계책으로 내일 연회를 베풀고 계옥(유장)을 자리에 나오도록 청하고, 벽 사이에 도부수 일백 명을 숨겨두었다가 주공께서 잔을 던지는 것을 신호로 삼아 연회 자리에서 그를 죽이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고 한꺼번에 성도에 들어가면 칼을 칼집에서 뽑지 않고, 활을 시위를 걸지 않고 앉아서 평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계옥(유장)은 나와 같은 종친으로 진실된 마음으로 나를 대하였습니다. 게다가 내가 처음 촉에 이르러 은혜와 신뢰가 아직 정립되지 않았는데 만약 이 일을 행한다면 위로는 하늘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아래로는 백성이 원망할 것입니다. 공의 이 꾀는 비록 패도를 추구하는 자라 하더라도 또한 하지 않을 것입니다.”했다. 방통이 말하기를 “이는 저의 꾀가 아니라 법요직(법정)이 장송의 비밀 글을 얻었는데 일은 마땅히 지연해서는 안 되니 조만간 마땅히 도모해야 한다고 했다. 합니다.”했다.
言未已,法正入見,曰:「某等非為自己,乃順天命也。」玄德曰:「劉季玉與吾同宗,不忍取之。」正曰:「明公差矣:若不如此,張魯與蜀有殺母之讎,必來攻取。明公遠涉山川,驅馳士馬,既到此地,進則有功,退則無益。若執狐疑之心,遷延日久,大為失計。且恐機謀一洩,反為他人所算。不若乘此天與人歸之時,出其不意,早立基業,實為上策。」龐統亦再三相勸。正是:人生幾番存厚道,才臣一意進權謀。未知玄德心下如何,且看下文分解。
말을 마치기도 전에 법정이 들어와 뵙고 말하기를 “우리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곧 곧 천명을 따르는 것입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유계옥(유장)과 나는 종친으로 차마 취할 수 없다.”하니 법정이 말하기를 “명공(유현덕)께서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같이 하지 않으신다면 장노에게는 촉이 어머니를 죽인 원수이기 때문에 반드시 와서 공격하여 취할 것입니다. 명공(유현덕)께서는 멀리 산천을 건너 군사와 말을 몰아 달려와 이미 이 땅에 이르렀으니 나아가면 곧 공이 있고 물러나면 곧 이익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의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일이 늘어져 오래하면 크게 계책을 잘못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계책이 한 번 누설된다면 도리어 다른 사람에게 헤아려지는 바가 될 것이 두렵습니다. 이 하늘과 사람이 따르는 때를 타는 것이 낫고, 불의에 나가 빨리 기업을 확립하는 것이 실로 상책이 됩니다.”했다. 방통이 또한 두 번, 세 번 권하였다. 바로 이러하다. 사람이 태어나 몇 번이나 두터운 도를 보존하려 하는데, 재능있는 신하들은 한 뜻으로 임시변통의 계책을 올린다. 유현덕의 마음이 어떠할지 알지 못하니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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