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十一回:趙雲截江奪阿斗,孫權遺書退老瞞
제61회 조운(조자룡)은 강을 막아 아두를 빼앗고, 손권은 글을 보내 노만(조조)을 물러나게 하다.
卻說龐統、法正二人,勸玄德就席間殺劉璋,西川唾手可得。玄德曰:「吾初入蜀中,恩信未立,此事決不可行。」二人再三說之,玄德只是不從。次日,復與劉璋宴於城中,彼此細敘衷曲,情好甚密,酒至半酣,龐統與法正商議曰:「事已至此,由不得主公了。」便教魏延登堂舞劍,乘勢殺劉璋,延遂拔劍進曰:「筵間無以為樂,願舞劍為戲。」龐統便呼眾武士入,列於堂下,只待魏延下手,劉璋手下諸將,見魏延舞劍筵前,又見階下武士手按刀靶,直視堂上,從事張任亦掣劍舞曰:「舞劍必須有對,某願與魏將軍同舞。」
각설하고 방통과 법정 두 사람이 유현덕에게 자리에 나아간 사이게 유현덕을 죽이면 서천은 손에 침을 뱉는 것처럼 얻을 수 있다고 권하였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내가 처음 촉에 들어와 은혜와 신뢰를 정립하지 못하였으니 이 일은 결단코 행할 수 없다.”했다. 두 사람이 두 번, 세 번 설득하였으나 유현덕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다음 날 다시 유장과 성 안에서 연회를 하는데 피차가 세세한 내심을 얘기하여 정의 좋음이 매우 세밀하였다, 술이 반쯤 취하였을 때 방통과 법정이 상의하여 말하기를 “일이 이미 여기에 이르렀으나 주공의 허락을 얻지 못하였습니다.”하고는 위연을 시켜 당에 올라 검무를 추다가 현세를 타고 유장을 죽이게 하였다. 위연이 마침내 검을 뽑고 나아가 말하기를 “연회 사이에 오락으로 여길 것이 없으니 검무를 추어 놀이로 삼기를 원합니다.”했다. 방통이 곧 여러 무사를 불러들여 당 아래 벌려 세우고 위연이 손을 쓰기를 기다렸다. 유장의 여러 부하 장수들은 위연이 잔치 상 앞에서 검무를 추는 것을 보고 또 계단 아래 무사들이 칼자루를 어루만지며 당 위를 노려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곧 종사 장임이 또한 검무를 추며 말하기를 “검무를 출 때는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하니 내가 위장군과 함께 춤을 추고자 합니다.”했다.
二人對舞於筵前。魏延目視劉封,封亦拔劍助舞,於是劉瑰、冷苞、鄧賢各掣劍出曰:「我等當群舞,以助一笑。」玄德大驚,急掣左右所佩之劍,立於席上曰:「吾兄弟相逢痛飲,並無疑忌,又非鴻門會上,何用舞劍?不棄劍者立斬!」劉璋亦叱曰:「兄弟相聚,何必帶刀?」命侍衛者盡去佩劍。眾皆紛然下堂。玄德喚諸將士上臺,以酒賜之,曰:「吾兄弟同宗骨肉,共議大事,並無二心。汝等勿疑。」諸將皆拜謝。劉璋執玄德之手而泣曰:「吾兄之恩,誓不敢忘!」二人歡飲至晚而散。玄德歸寨,責龐統曰:「公等奈何欲陷備於不義耶?今後斷勿為此。」統嗟歎而退。
두 사람이 잔치 상 앞에서 춤을 추었다, 위연이 유봉에게 눈짓하니 유봉이 또한 검을 뽑아 춤을 도왔다. 이에 유괴, 냉포, 등현이 각각 검을 늘어뜨리고 나와 말하기를 “우리들이 마땅히 군무를 추어 한 웃음을 돕습니다.”했다. 유현덕이 크게 놀라 급히 좌우에 차고 있던 검을 늘어뜨리고 자리 위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 형제가 서로 만나 술을 마시며 의심하거나 꺼림이 없고, 또 홍문의 만남도 아닌데 어찌 검무를 쓰는가? 검을 버리지 않는 자는 목을 벨 것이다.”했다. 유장이 또한 질책하여 말하기를 “형제가 서로 모여 있는데 어찌하여 칼을 가지고 있는가?”하고는 시위하는 자로 하여금 모두 차고 있던 검을 없애게 하였다. 무리들이 모두 어지럽게 당에서 내려왔다. 유현덕이 여러 장수들을 불러 대에 올라오게 하고, 술을 내리며 말하기를 “우리 형제는 같은 종친의 골육으로 맹서한 것을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하였다. 두 사람(유현덕과 유장)이 즐겁게 술을 마시다 저녁에 이르러 헤어졌다. 유현덕이 영채에 돌아와 방통을 꾸짖어 말하기를 “공들은 어찌하여 나를 불의에 빠트리려 하는가? 지금 이후로는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마시오.”하니 방통이 탄식하고 물러났다.
卻說劉璋歸寨,劉瑰等曰:「主公見今日席上光景乎?不如早回,免生後患。」劉璋曰:「吾兄劉玄德,非比他人。」眾將曰:「雖玄德無此心,他手下人皆欲併西川,以圖富貴。」璋曰:「汝等無間吾兄弟之情。」遂不聽,日與玄德歡敘。
각설하고 유장이 영채로 돌아오니 유괴 등이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오늘 자리 위의 관경을 보았습니까? 일찍 돌아가 후환이 생기는 것을 면하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유장이 말하기를 “우리 형 유현덕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하니 여러 장수들이 말하기를 “비록 유현덕은 이런 마음이 없으나 그의 부하들은 모두 서천을 병탄하여 부귀를 도모하려 합니다.”했다. 유장이 말하기를 “너희들은 우리 현제의 정을 이간하지 말라.”하고는 마침내 다르지 않고 매인 유현덕과 즐거움을 나누었다.
忽報張魯整頓兵馬,將犯葭萌關。劉璋便請玄德往拒之。玄德慨然領諾,即日引本部兵望葭萌關去了。眾將勸劉璋令大將緊守各處關隘,以防玄德兵變。璋初時不從,後因眾人苦勸,乃令白水都督楊懷,高沛二人,把守涪水關。劉璋自回成都。玄德到葭萌關,嚴禁軍士,廣施恩惠,以收民心。
홀연히 장노가 병마를 정돈하여 장차 가맹관을 침법하려 한다고 보고하였다. 유장이 곧 유현덕을 청하여 가서 막을 것을 청하였다. 유현덕이 흔쾌히 승낙하고 그날 본부의 군대를 이끌고 가맹관을 향하여 갔다. 여러 장수들이 여러 장수들이 유장에게 대장으로 하여금 각 곳의 요충지를 굳게 지켜 유현덕 군대의 변고를 막을 것을 권하였다. 유장은 처음에는 따르지 않았으나 후에는 여러 사람들이 애써 권하였기 때문에 이에 백수도독 양회와 고패 두 사삼으로 하여금 부수관을 지키게 하였다. 유장은 성도로 돌아 왔다. 유현덕은 가맹관에 이르러 군사를 엄히 감독하고 은혜를 널리 베푸는 것으로서 민심을 수습하였다.
早有細作報入東吳。吳侯孫權會文武商議。顧雍進曰:「劉備分兵遠涉山險而去,未易往還。何不差一軍先截川口,斷其歸路,後盡起東吳之兵,一鼓而下荊襄?此不可失之機會也。」權曰:「此計大妙!」
세작이 재빨리 동오에 보고하였다. 오 후 손권이 문무관을 모아 상의하였다. 고옹이 나와 말하기를 “유비(유현덕)가 군대를 나누어 멀리 험한 산을 지나갔으나 아직 돌아오지 못하였습니다. 어찌 한 부대를 보내 먼저 서천의 입구를 끊어 그 돌아오는 길을 끊은 후에 동오의 군대를 모두 일으켜 북을 한 번 쳐 형주와 양양을 점령하지 않으십니까? 이는 잃어서 안 되는 기회입니다.”하니 손권이 말하기를 “이 계책이 크게 현묘하구나!”했다.
正商議間,忽屏後一人大喝而出曰:「進此計者可斬之!欲害吾女之命耶?」眾驚視之,乃吳國太也。國太怒曰:「吾一生唯有一女,嫁與劉備。今若動兵,吾女性命如何?」因叱孫權曰:「汝掌父兄之業,坐領八十一州,尚自不足,乃顧小利而不念骨肉!」孫權諾諾連聲,答曰:「老母之訓,豈敢有違!」遂叱退眾官。國太恨恨而入。孫權立於軒下,自思:「此機會一失,荊襄何日可得?」
바로 상의하는 사이에 홀연히 병풍 뒤에서 한 사람이 크게 소리치며 나와 말하기를 “이 계책을 올린 자는 죽여야 할 것이다. 내 딸의 목숨을 해치려 하는가?”했다. 무리들이 놀라 그를 보니 곧 오 국태였다. 국태가 노하여 말하기를 “내 일생에 오직 딸을 하나 두어 유비(유현덕)에게 시집보냈다. 지금 만약 군대를 움직이면 내 딸의 목숨이 어떻게 되겠는가?” 하고는 손권을 질책하여 말하기를 “너는 아버지와 형의 기업을 이어 앉아서 팔십일 주를 거느리고서도 오히려 부족하게 여겨 작은 이익을 보고 골육을 생각하지 않는구나!”했다. 손권이 연이어 예예하면서 답하여 말하기를 “노모의 가르침을 어찌 감히 어김이 있겠습니까?”하고는 마침내 여러 관리들을 질책하여 물리쳤다. 국태가 분노하고 원망하며 들어갔다. 손권은 집 아래에 서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 기회를 한 번 잃으면 형주와 양양을 언제 얻을 수 있을 것인가?”했다.
正沉吟間,只見張昭入問曰:「主公有何憂疑?」孫權曰:「正思適間之事。」張昭曰:「此極易也。今差心腹將一人,只帶五百軍,潛入荊州,下一封密書與郡主,只說國太病危,欲見親女,取郡主星夜回東吳。玄德平生只有一子,就教帶來。那時玄德定把荊州來換阿斗。如其不然,一任動兵,更有何礙?」權曰:「此計大妙!吾有一人,姓周名善,最有膽量;自幼穿房入戶,多隨吾兄。今可差他去。」昭曰:「切勿洩漏。只此便令起行。」
바로 침음하는 사이에 장소가 들어가 뵙고 물어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어떤 근심과 의심이 있으십니까?”하니 손권이 말하기를 “요즘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했다. 장소가 말하기를 “이는 지극히 쉬운 일입니다. 지금 심복 장수 한 사람을 시켜 오백 명의 군대를 데리고 몰래 형주에 들어가게 하여 한 통의 밀서를 군주에게 주시되 국태의 병이 위태로워 딸을 만나기를 원한다 하시면 군주께서는 밤을 새워 동오에 돌아오실 것입니다. 유현덕은 평생에 다만 한 아들을 두었을 뿐이니 (그 아들을)데리고 오게 하면 그 때 유현덕은 형주와 아두를 바꾸러 몰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한 번 군대를 움직이는 데 다시 무슨 의심이 있겠습니까?”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이 계책이 크게 현묘하구나! 나에게 한 사람이 있으니 성은 주요 이름은 선이니 가장 담량이 있고, 어려서부터 방을 뚫고 집에 들어가며 내 형을 따름이 오래되었습니다. 지금 그를 보낼 수 있습니다.”했다. 장소가 말하기를 “절대로 누설되어서도 안 됩니다. 곧 가게 해야 합니다.”했다.
於是密遣周善,將五百人,扮為客商,分作五船;更詐修國書,以備盤詰。船內暗藏兵器。周善領命,取荊州水路而來。船泊江邊,善自入荊州,令門吏報孫夫人。夫人命周善入,善呈上密書。夫人見說國太病危,灑淚動問。周善拜訴曰:「國太好生病重,旦夕只是思念夫人。倘去得遲,恐不能相見。就教夫人帶阿斗去見一面。」夫人曰:「皇叔引兵遠出,我今欲回,須使人知會軍師,方可以行。」周善曰:「若軍師回言道:『須報知皇叔,候了回命,方可下船』,如之奈何?」夫人曰:「若不辭而去,恐有阻當。」周善曰:「大江之中,已準備下船隻。只今便請夫人上車出城。」
이에 비밀리에 주선에게 오백 명을 거느리고 가게 하였더니 객상으로 분장하여 다섯 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다시 거짓 국서를 지어 자세하게 캐묻는 것에 대비하였다. 배안에는 무기를 숨겨두었다. 주선이 명을 받고 형주 수로로 갔다. 배를 강변에 정박하고 주선이 형주에 들어 가 문지기로 하여금 손부인에게 알리게 하였다. 손 부인이 주선을 들어오게 하니 주선이 밀서를 올렸다. 손부인이 국태의 병이 위급하다는 말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동정을 물었다. 주선이 절하고 하소연하여 말하기를 “국태는 매우 병이 중하여 아침저녁으로 (손)부인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떠나기를 늦춘다면 서로 만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부인께서 아두를 데리고 와 한번 보이라 하셨습니다.”했다. 손부인이 말하기를 “황숙께서 군대를 이끌고 멀리 나가 있으니 내가 지금 돌아가려 해도 반드시 사람을 시켜 군사가 알게 한 후에 비로소 갈 수 있습니다.”했다. 주선이 말하기를 “만약 군사에게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면 ‘반드시 황숙에게 보고하여 명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후에 바야흐로 배를 탈 수 있습니다.’한다면 어떻게 하십니까?”했다. 부인이 말하기를 “만약 하직하지 않고 간다면 막음이 있을까 두렵습니다.”했다. 주선이 말하기를 “대강의 안에 이미 탈 배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곧 손 부인께서 수레를 타고 성을 나갈 것을 청합니다.”했다.
孫夫人聽知母病危,如何不慌;便將七歲孩兒阿斗,載在車中;隨行帶三十餘人,各跨刀劍上馬離荊州城,便來江邊上船。府中人欲報時,孫夫人已到沙頭鎮,下在船中了。
손부인은 어머니의 병이 위태로운 것을 알고 어떻게 당황하지 않겠는가? 곧 일곱 살 아이인 아두를 데리고 수레를 타고 삼십여 명을 따르게 하였는데 각각 도와 검을 차고 말에 올라 형주성을 떠나 강병에 이르러 배를 탔다. 부중의 사람이 보고하려 할 때 손부인은 이미 사두진에 이르러 배를 탄 뒤였다.
周善方欲開船,只聽得岸上有人大叫:「且休開船,容與夫人餞行!」視之,乃趙雲也。原來趙雲巡哨方回,聽得這個消息,吃了一驚,只帶四五騎旋風般沿江趕來。周善手執長戈,大喝曰:「汝何人,敢當主母!」叱令軍士一齊開船,各將軍器出來,排列在船上。風順水急,船皆隨流而去。趙雲沿江趕叫:「任從夫人去。只有一句話拜稟。」
주선이 막 배를 출발시키려는데 언덕 위에서 어떤 사람이 크게 부르짖어 말하기를 “배를 출발시키지 말고 손부인과 전별하기를 허용하시오.”했다. 그를 보니 곧 조자룡이었다. 원래 조운(조자룡)은 사방을 순찰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는 놀라 사오 기를 데리고 회오리바람처럼 배를 따라 강변을 뒤쫒아 왔다. 주선이 손에 긴 창을 잡고 크게 외쳐 말하기를 “너는 누군데 감히 주모를 막는가?”하고 군사를 질책하여 일제히 배를 출발시키니 각 장수들이 무기를 가지고 나와 배위에 진열하였다. 바람은 순히 불고 물살이 빠르게 흐르니 배가 모두 흐름을 따라 갔다. 조운(조자룡)이 강변을 따라 쫒아가며 외치기를 “손부인은 자유롭게 가십시오. 다만 한마디 말을 올리려 합니다.”했다.
周善不睬,只催船速進。趙雲沿江趕到十餘里,忽見江灘斜攬一隻漁船在那裡。趙雲棄馬執槍,跳上漁船。只兩人駕船前來,望著夫人所坐大船追趕。周善教軍士放箭。趙雲以槍撥之,箭皆紛紛落水。離大船懸隔丈餘,吳兵用槍亂刺。趙雲棄槍在小船上,掣所佩「青釭劍」在手,分開槍搠,望吳船湧身一跳,早登大船。吳兵盡皆驚倒。
주선이 주목하지 않고 다만 배를 재촉하여 빠르게 나아갔다. 조운(조자룡)이 강을 따라 뒤 쫒아 십여 리를 갔을 때 홀연히 강여울에 비스듬히 묶여 있는 한척의 어선을 묶여 있는 것을 보았다. 조운(조자룡)이 말을 버리고 창을 잡아 뛰어 어선에 올랐다. 두 사람(어부와 조자룡)이 배를 타고 앞으로 오는데 손부인이 앉아 있는 큰 배를 향해 뒤 쫒아갔다. 주선이 군사들로 하여금 화살을 쏘게 하였다. 조운(조자룡)이 창을 내미니 화살이 모두 어지럽게 물에 떨어졌다. 큰 배와 거리가 일장 쯤 되었을 때 오나라 군사가 창을 어지럽게 써서 찔렀다. 조운(조자룡)이 작은 배 위에서 창을 버리고 차고 있던 청홍검을 왼손에 쥐고 푹 찌르는 창을 헤치면서 오나라 배를 향하여 몸을 뽑아 한번 뛰어 재빠르게 큰 배에 올랐다. 오나라 군대가 모두 놀라 엎어졌다.
趙雲入艙中,見夫人抱阿斗於懷中,喝趙雲曰:「何故無禮!」雲插劍聲喏曰:「主母欲何往?何故不令軍師知會?」夫人曰:「我母親病在危篤,無暇報知。」雲曰:「主母探病,何故帶小主人去?」夫人曰:「阿斗是吾子,留在荊州,無人看覷。」雲曰:「主母差矣:主人一生,只有這點骨血。小將在當陽長阪坡百萬軍中救出。今日夫人卻抱將去,是何道理?」夫人怒曰:「量汝只是帳下一武夫,安敢管我家事!」雲曰:「夫人要去便去,只留下小主人。」夫人喝曰:「汝半路輒入船中,必有反意!」雲曰:「若不留下小主人,縱然萬死,亦不敢放夫人去。」
조운(조자룡)이 선창 안으로 들어가니 품에 아두를 안고 있던 손 부인이 조운(조자룡)에게 큰 소리로 말하기를 “무슨 일로 무례한가?”하니 조운(조자룡)이 검을 꼿은 뒤 인사하고 말하기를 “주모께서는 어디로 가시려 합니까? 무슨 이유로 군사에게 알리지 않았습니까?”했다. 손 부인이 말하기를 “나의 어머니가 병이 들어 위독하여 알릴 겨를이 없었습니다.”했다. 조운(조자룡)이 말하기를 “주모께서 병문안 하시는데 무슨 이유로 소주인을 데리고 갑니까?”했다. 손 부인이 말하기를 “아두는 나의 아들인데 형주에 머물러 둔다면 돌볼 사람이 없습니다.”했다. 조운(조자룡)이 말하기를 “주모께서 잘못한 것입니다. 주인께서는 일생 한 점 골육이 있을 뿐입니다. 제가(조자룡) 당양 장판파에서 백만 명의 군대 안에서 구출하였습니다. 오늘 손 부인께서 안고 가는 것은 무슨 도리입니까?”했다. 손부인이 노하여 말하기를 “생각해보면 너는 다만 일개 무부일 뿐인데 어찌 감히 우리 집안의 일을 관리하려하는가?”했다. 조운(조자룡)이 말하기를 “부인이 가시려하면 가시겠지만 다만 소주인은 남겨두십시오.”했다. 손 부인이 외쳐 말하기를 “너는 중간에 배 안으로 들어왔으니 반드시 배반하려는 뜻이 있구나!”하니 조운(조자룡)이 말하기를 “만약 소주인을 남겨두지 않으시면 설사 만 번 죽을지라도 또한 감히 손 부인을 놓아 줄 수 없습니다.”했다.
夫人喝侍婢向前揪捽,被趙雲推倒,就懷中奪了阿斗,抱出船頭上。欲要傍岸,又無幫手;欲要行兇,又恐礙於道理;進退不得。夫人喝侍婢奪阿斗,趙雲一手抱定阿斗,一手仗劍,人不敢近。周善在後艄挾住舵,只顧放船下水。風順水急,望中流而去。趙雲孤掌難鳴,只護得阿斗,安能移舟傍岸?
손 부인이 시비를 향하여 붙잡으라 소리치니 조운(조자룡)이 (시비들을)밀어 넘어뜨리고 품속의 아두를 빼앗아 안고 뱃머리로 나갔다. 강 가로 가려하나 도와주는 이가 없고, 흉함(죽이고자)을 행하고자 하나 도리에 막힐까 두려워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하였다. 손부인이 시비에게 아두를 빼앗으라 소리쳤으나 조운(조자룡)은 한 손으로는 아두를 안고, 한 손으로는 검을 잡으니 사람들이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하였다. 주선은 뒤 고물에 있으면서 방향타를 끼고 배를 몰아 내려갈 뿐이었다. (배는)순풍을 타고 급한 물결을 따라 중류를 향해 갔다. 조운(조자룡)은 외로운 손바닥은 소리내기 어려워(외로운 처지) 다만 아두를 보호할 뿐이니 어찌 배에서 강가로 옮겨 갈 수 있겠는가?
正在危急,忽見下流頭港內一字兒排出十餘隻船來,船上麾旗擂鼓。趙雲自思:「今番中了東吳之計!」只見當頭船上一員大將,手執長矛,高聲大叫:「嫂嫂留下姪兒!」原來張飛巡哨,聽得這個消息,急來油江夾口,正撞著吳船,急忙截住。
바로 위급할 때 홀연히 하류 두항 안에 一자로 배열한 십여 척의 배가 오는 것을 보았는데 배 위에는 깃발이 펄럭이고 북을 치고 있었다. 조운(조자룡)이 “이 번에는 동오의 계책에 빠졌구나!”라 생각했다. 뱃머리 위에 한 명의 대장이 손에 긴 창을 잡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가)큰 소리로 외쳐 말하기를 “형수는 조카아이를 남겨두시오!”했다. 원래 장비는 순찰을 하고 있다가 소식을 듣고는 급히 유강의 좁은 입구에 와 있었는데 바로 오나라 배를 만나지 황급히 막은 것이다.
當下張飛提劍跳上吳船。周善見張飛上船,提刀來迎,被張飛手起一劍砍倒,提頭擲於孫夫人前。夫人大驚曰:「叔叔何故無禮?」張飛曰:「嫂嫂不以俺哥哥為重,私自歸家,這便無禮!」夫人曰:「吾母病重,甚是危急。若等你哥哥回來,須誤了我事。若你不放我回去,我情願投江而死!」
바로 장비가 검을 가지고 오나라 배위에 뛰어 올랐다. 주선이 장비가 배에 오르는 것을 보고 칼을 가지고 맞이하였으나 장비가 손의 칼을 휘둘러 한 칼에 베어 넘어뜨리고 머리를 가져다 손 부인의 앞에 던졌다. 손 부인이 놀라 말하기를 “작은 아버지는 무엇 때문에 무례를 범하시오?”했다. 장비가 말하기를 “형수는 나의 형님을 중하게 여기지 않고 사사로이 집(친정)에 돌아기시니 이것이 무례입니다.”했다. 손부인이 말하기를 “내 어머니의 병이 중하여 매우 위급합니다, 만약 그대 형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면 반드시 내 일을 글치게 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나를 놓아 돌아기지 못하게 한다면 나는 진정 강에 몸을 던져 죽기를 원합니다.”했다.
張飛與趙雲商議:「若逼死夫人,非為臣下之道。只護著阿斗過船去罷。」乃謂夫人曰:「俺哥哥大漢皇叔,也不辱沒嫂嫂。今日相別,若思哥哥恩義,早早回來。」說罷,抱了阿斗,自與趙雲回船,放孫夫人五隻船去了。後人有詩讚子龍曰:昔年救主在當陽,今日飛身向大江。船上吳兵皆膽裂,子龍英勇世無雙!又有詩讚翼德曰:長阪橋邊怒氣騰,一聲虎嘯退曹兵。今朝江上扶危主,青史應傳萬載名。
장비와 조운(조자룡)이 상의하기를 “만약 손부인을 핍박하여 죽게 한다면 신하 된 자의 도리가 아니다. 단지 아두만을 보호하고 배는 자나가게 하고 그만두자”하고는 이에 손부인에게 말하기를 “나의 형님은 대 한의 황숙이나 형수를 욕되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서로 헤어지지만 만약 형님의 은혜와 의리를 생각한다면 일찍 돌아오십시오.”했다. 말을 마치고는 아두를 안고 조운(조자룡)과 배로 돌아가고, 손부인과 다섯 척의 배는 놓아 가게 하였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자룡(조자룡)을 찬양하여 말하기를 “옛날에는 당양에서 주인을 구하였고/ 오늘은 대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배 위의 오나라 군사 모두 담이 찢어지고/ 자룡(조자룡)의 꽃다운 용맹은 세상에 짝할 이 없구나!/”했고, 또 시를 지어 장익덕(장비)를 찬양하여 말하기를 “장판교 가에서 노한 기운은 하늘로 뻗혀 오르고/ 한 소리 범 같은 포효는 조조의 군대를 물리쳤다./ 오늘 강 위에서 위태로운 주인을 도우니/ 청사(역사)에 기록되어 만년이 지나도 이름이 전하리./”했다.
二人歡喜回船。行不數里,孔明引大隊船隻接來。見阿斗已奪回,大喜。三人並馬而歸。孔明自申文書往葭萌關,報知玄德。
두 사람이 기뻐하며 배를 돌렸다. 간지 얼마되지 않아 제갈공명이 큰 규모의 배들을 이끌고 영접해 왔다. 아두를 빼앗아 돌아오는 것을 보고는 크게 기뻐하였다. 세 사람이 말 머리를 나란히 하여 돌아왔다. 제갈공명이 문서를 만들어 가맹관에 가서 유현덕에게 보고하였다.
卻說孫夫人回吳,具說張飛與趙雲殺了周善,截江奪了阿斗。孫權大怒曰:「今吾妹已歸,與彼不親,殺周善之讎,如何不報!」喚集文武商議,起軍攻取荊州。
각설하고 손 부인이 오나라에 돌아와 장비와 조운(조자룡)이 주선을 죽이고 강을 막고 아두를 빼앗은 것을 모두 말하였다. 손권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지금 내 누이가 이미 돌아왔으니 그들과는 친척이 아니고 주선을 죽인 원수이니 어떻게 갚지 않으리오!”하고는 문무관을 불러 모아 군대를 일으켜 형주를 공격하여 취할 것을 상의하였다.
正商議調兵,忽報曹操起軍四十萬來報赤壁之讎。孫權大驚,且按下荊州,商議拒敵曹操。人報「長史張紘辭疾回家,今已病故,有哀書上呈。」權拆視之,書中勸孫權遷秣陵,言秣陵山川有帝王之氣,可速遷於此,以為萬世之業。
군대 이동을 상의할 때 홀연히 조조가 군대 사십만을 일으켜 적벽의 원수를 갚으러 온다고 보고하였다. 손권이 크게 놀라 형주를 내버려두고 조조를 막아 대적할 것을 상의하였다. 사람들이 보고하기를 “장사 장굉이 병을 사칭하고 핑계로 집에 돌아갔는데 지금 자기 병을 이유로 애서를 바쳤습니다.”했다. 손권이 봉투를 뜯고 보니 글 안에서 손권에게 말릉으로 옮길 것을 권하면서 말릉은 산천에 제왕의 기운이 있으니 속히 이곳으로 옮기는 것으로서 만세의 기업으로 삼을 수 있음을 말하였다.
孫權覽書哭謂眾家曰:「張子網勸我遷居秣陵 , 吾如何不從?」即命遷治建業,築石頭城。呂蒙進曰:「曹操兵來,何於濡須水口築塢以拒之。」諸將皆曰:「上岸擊賊,跌足入船,何用築城?」蒙曰:「兵有利鈍,戰無必勝。如猝然遇敵,步騎相促,人尚不暇及水,何能入船乎?」權曰:「『人無遠慮,必有近憂』。子明之見甚遠。」便差軍數萬築濡須塢。曉夜併工,刻期告竣。
손권이 글을 보고 곡하며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장굉이 나에게 장자망(장굉)이 나에게 말릉에 옮겨 살 것을 권하니 내가 어찌 따르지 않겠습니까?”하고는 곧 건업으로 수도를 옮기도록 하고 석두성을 쌓게 했다. 여몽이 나와 말하기를 “조조의 군대가 오고 있으니 유수 어귀에 오(보루)를 쌓아 막아야 합니다.”했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말하기를 “강가에 올라 적을 치고, 재빨리 배에 들어가면 되는데 어찌 성을 쌓음을 쓰겠습니까?”했다. 여몽이 말하기를 “군대에는 날카로움과 무딤이 있고, 싸움에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갑자기 적을 만난다면 보병과 기병이 서로 재촉하면 사람들이 오히려 물에 이를 겨를이 없을 것이니 어찌 배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사람이 원대한 생각이 없다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다.’했으니 자명(여몽)의 견해가 매우 원대하다.”하고는 곧 군대 수만 명을 보내 유수에 오(보루)를 쌓게 하였다. 밤낮으로 공사를 다투어 서둘러 (공사를)마쳤다.
卻說曹操在許都,威福日甚。長史董昭進曰:「自古以來,人臣未有如丞相之功者。雖周公,呂望,莫可乃也。櫛風沐雨,三十餘年,掃蕩群凶,與百姓除害,使漢室復存,豈可與諸臣宰同列乎?合受魏公之位,加『九錫』以彰功德。」你道那「九錫」:一,車馬;二,衣服;三,樂縣;四,朱戶;五,納陛;六,虎賁;七,鈇鉞;八,弓矢;九,秬鬯圭瓚;侍中荀彧曰:「不可。丞相本興義兵,匡扶漢室,當秉忠貞之志,守謙退之節。君子愛人以德,不宜如此。」曹操聞言,勃然變色。董昭曰:「豈可以一人而阻眾望?」遂上表請尊操為魏公,加九錫。荀彧歎曰:「吾不想今日見此事!」
각설하고 조조는 허도에 있으면서 위엄과 복록이 날로 높아졌다. 장사 동소가 나아가 말하기를 “옛날부터 다른 사람의 신하로 승상의 공과 같은 이는 있지 않았습니다. 비록 주공 여망일지라도 미칠 수 없습니다. 바람에 머리를 빗고, 빗물에 목욕한지 삼십 여년 만에 여러 흉한 이들을 소탕하고 백성과 함께 해를 제거하여 한나라 황실을 다시 보존하게 하였으니 어찌 여러 신하, 재상들과 같은 반열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위공의 지위를 받아 ‘구석’을 더하는 것으로서 공덕을 드러내는 것이 합당합니다.”했다. 저 ‘구석’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첫째는 거마(수레)이고, 둘째는 의복, 세 번째는 악현(음악), 네 번째는 주호(붉은 문이 달린 집), 다섯 번째는 납계(처마 밑에 놓아 밟고 오르게 하는 섬돌), 여섯 번 째는 호분(용사/문을 지키는 군사), 일곱째는 부월(작은 도끼와 큰 도끼), 여덟 번째는 궁시(활과 화살), 아홉 번째는 거창규찬(검은 기장으로 만든 제사용 술과 제기)입니다. 시중 순욱이 말하기를 “안 됩니다. 승상께서는 본래 의병을 일으켜 한나라를 바로잡고 도왔으니 충정의 뜻을 잡음에 해당하니 겸손히 물러남의 절도를 지켜야 합니다. 군자는 덕으로 사람을 아껴야하니 이 같이 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했다. 조조가 말을 듣고 갑자기 얼굴색이 변하였다. 동소가 말하기를 “한 사람 때문에 여러 사람의 바람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했다. 마침내 표를 올려 조조를 높여 위공이라 하고 구석을 더할 것을 청하였다. 순욱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오늘 이런 일을 보게될 줄은 생각하지 못하였구나!”했다.
操聞深恨之,以為不助己也。建安十七年冬十月,曹操興兵下江南,就命荀彧同行。彧已知操有殺己之心,託病止於壽春。忽曹操使人送飲食一盒至。盒上有操親筆封記。開盒視之,並無一物。彧會其意,遂服毒而亡。年五十歲。後人有詩歎曰:文若才華天下聞,可憐失足在權門。後人漫把留侯比,臨歿無顏見漢君。
조조가 듣고 자기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여겨 깊이 원망하였다. 건안 십칠년 겨울 십월 조조는 군대를 일으켜 강남으로 내려가면서 순욱에게 명하여 함께 갔다. 순욱은 조조가 자기를 죽이려는 마음이 있는 것을 알고는 병을 핑계로 수춘에서 머물렀다. 홀연히 조조가 사람을 시켜 음식 한 그릇을 보냈다. 그릇 위에는 (조조가)직접 쓴 ‘봉’자가 있었다. 그릇 뚜껑을 열고 보니 하나의 물건도 없었다. 순욱이 그 뜻을 알고는 마침내 독을 마시고 죽으니 나이가 오십세였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한 것이 있는데 시에 “문약(순욱)의 뛰어난 재능은 천하에 떨쳤는데/불쌍하구나! 발을 잘못 디뎌 권문에 있었다. 뒷사람들은 한가로이 유후(장량)에 비유하나/죽음에 임하여 한나라 임금 뵐 낯이 없다./”했다.
其子荀惲,發哀書報曹操。操甚懊悔,命厚葬之,諡日敬侯。
그 아들 순운이 애서를 내어 조조에게 알렸다. 조조가 매우 후회하면서 후하게 장례하게하고, 시호를 일경후라 했다.
且說曹操大軍至濡須,先差曹洪領三萬鐵甲馬軍,哨至江邊。回報云:「遙望沿江一帶,旗旛無數,不知兵聚何處。」操放心不下,自領兵前進,就濡須口排開軍陣。操領百餘人上山坡,遙望戰船,各分隊伍,依次排列。旗分五色,兵器鮮明。當中大船上青羅傘下,坐著孫權。左右文武,侍立兩傍。操以鞭指曰:「生子當如孫仲謀!若劉景升兒子豚犬耳!」
각설하고 조조의 대군이 유수에 이르러 먼저 조홍으로 하여금 삼만의 철갑마군을 거느리고 강변을 순찰하게 하였다. 돌아와 보고하기를 “멀리 강에 맞붙은 일대를 바라보니 깃발이 헤아릴 수 없고, 군대가 어디에 모여 있는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했다. 조조가 마음 놓고 내려가지 못하고 스스로 군대를 거느리고 전진하여 유수 어귀에 나아가 군대의 진을 쳤다. 조조가 백여 명을 거느리고 산언덕에 올라 멀리 전선을 바라보니 각각 대오를 나누어 차례에 의하여 늘어 서 있었다. 깃발은 오색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무기는 선명하였다. 한 가운데 큰 배 위 청라솔 아래 손권이 앉아 있는데, 좌우에는 문무관이 양 옆에 모시고 서 있었다. 조조가 채찍으로 가리키며 말하기를 “자식을 낳는다면 마땅히 손중모(손권) 같아야 하고, 유경승(유표)의 아들과 같다면 돼지와 개일 뿐이다.”했다.
忽一聲響動,南船一齊飛奔過來。濡須塢內又一軍出,衝動曹兵。曹操軍馬退後便走,止喝不住。忽有千百騎趕到山邊,為首馬上一人,碧眼紫髯。眾人認得正是孫權。權自引一隊馬軍來擊曹操。操大驚,急回馬時,東吳大將韓當,周泰兩騎馬直衝將上來。操背後許褚縱馬舞刀,敵住二將,曹操得脫歸寨。許褚與二將戰三十合方回。操回寨,重賞許褚,責罵眾將:「臨敵先退,挫吾銳氣!後若如此,盡皆斬首!」
홀연히 한 소리가 울리면서 남쪽에서 배들이 일제히 날듯이 달려 왔다. 유수 오 안에서 또 한 떼의 군대가 나와 조조의 군대를 쳤다. 조조의 군마가 물러나 달아나니 멈추라 소리쳐도 막을 수 없었다. 홀연히 천백기가 뒤 쫒아 와 산자락에 이르렀는데 선두에서 말을 탄 한 사람은 푸른 눈에 자줏빛 수염을 하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바로 이가 손권임을 알았다. 손권이 스스로 한 부대를 이끌고 와 조조를 쳤다. 조조가 크게 놀라 말을 돌릴 때 동오의 대장 한당과 주태 두 사람이 말을 타고 곧바로 치고 올라오려 했다. 조조의 뒤에서 허저가 말을 달리고 칼을 휘두르며 두 장수를 대적하여 막으니 조조가 탈출하여 영채로 돌아갔다. 허저가 두 장수와 삼십합을 싸우고 돌아갔다. 조조가 영채에 돌아와 허저에게 많은 상을 주고 여러 장수들을 꾸짖어 말하기를 “적을 맞이하고 먼저 물러나 나의 예기를 끊었구나! 후에도 만약 이 같다면 모두 머리를 벨 것이다.” 했다.
是夜三更時分,忽寨外喊聲大震。操急上馬,見四下裏火起,卻被吳兵劫入大寨。殺至天明,曹兵退五十餘里下寨。操心中鬱悶,閒看兵書。程昱曰:「丞相既知兵法,豈不知『兵貴神速』乎?丞相起兵,遷延日久,故孫權得以準備。夾濡須水口為塢,難於攻擊。不若且退兵回許都,別作良圖。」
이날 밤 삼경 쯤 홀연히 영채 밖에서 함성이 크게 울렸다. 조조가 급히 말에 올랐는데 사방에서 불이 일어나고 오나라 군대의 습격하여 크게 영채에 들어온 것을 보았다. 날이 밝자 조조의 군대는 오십여 리를 물러나 영채를 세웠다. 조조는 마음속이 우울하여 한가롭게 병서를 보고 있었다. 정욱이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이미 병법을 알고 있는데 어찌 ‘병귀신속(군대는 신과 같이 빠르게 하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을 알지 못하십니까? 승상께서 군대를 일으키고 머뭇거린 날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손권이 준비할 수 있었고, 유수 어귀에 오(보루)를 만들어 공격하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군대를 물려 허도에 돌아갔다가 따로 좋은 계책을 마련하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操不應。程昱出。操伏几而臥,忽聞潮聲洶湧,如萬馬爭奔之狀。操急視之,見大江中推出一輪紅日,光華射目;仰望天上,又有兩輪太陽對照。忽見江心那輪紅日,直飛起來,墜於寨前山中,其聲如雷。猛然驚覺,原來在帳中做了一夢。帳前軍報道午時。曹操教備馬,引五十餘騎,逕奔出寨。至夢中所見落日山邊,正看之間,忽見一簇人馬,當先一人,金盔金甲。操視之,乃孫權也。
조조가 대답하지 않으니 정욱이 나갔다. 조조가 안석에 기대 누웠는데 홀연히 물결이 용솟음치는 소리를 들었는데 수많은 말이 다투어 달리는 형상 같았다. 조조가 급히 보니 대강 안에 하나의 붉은 해가 밀려 나오는데 빛이 눈을 쏘므로 하늘 위를 우러러 바라보니 또한 두 개의 태양이 상대하여 비추고 있었다. 홀연히 강 중앙에서 붉은 해가 곧바로 날아와 영채 앞 산중에 떨어지는데 그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갑자기 놀라 깨고 보니 원래 장막 안에 있으면서 꾼 한 바탕의 꿈이었다. 장박 앞의 군사가 오시임을 보고하였다. 조조가 말을 준비하게 하고 군대 오십여 기를 이끌고 지름길로 달려 영채를 나와 꿈속에서 보았던 해가 떨어진 산자락에 이르러 바로 볼 때 활연히 한 떼의 인마를 보았는데 앞장 선 한 사람은 금빛 투구와 갑옷을 입고 있었다. 조조가 그를 보니 곧 손권이었다.
權見操至,也不慌忙,在山上勒住馬,以鞭指操曰:「丞相坐鎮中原,富貴已極,何故貪心不足,又來侵我江南?」操答曰:「汝為臣下,下尊王室。吾奉天子詔,特來討汝!」孫權笑曰:「此言豈不羞乎?天下豈不知你挾天子,令諸侯?吾非不尊漢朝,正欲討汝以正國家耳!」
손권이 조조를 보고 이르렀는데 당황하지 않고 산 위에서 말고비를 당겨 말을 세우고는 채찍을 들어 조조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중원에 자리하고 있어 부유함과 귀함이 이미 지극한데 무슨 이유로 탐하는 마음에 부족하게 여겨 또한 우리 강남을 침범하였습니까?”했다. 조조가 답하여 말하기를 “너는 신하가 되어 왕실을 높이지 않습니까? 내가 천자의 명을 받들어 특히 와서 너를 토벌하는 것이다.” 했다. 손권이 웃으며 말하기를 “이 말을 어찌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가? 천하에서 네가 천자를 끼고 제후에게 명령하는 것을 알지 못하겠는가? 내가 한나라 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너를 토벌하는 것으로서 국가를 바로잡고자 했을 뿐이다.”했다.
操大怒,叱諸將上山捉孫權。忽一聲鼓響,山背後兩彪軍出:右邊韓當,周泰,左邊陳武,潘璋。四員將帶三千弓弩手亂射,矢如雨發。操急引眾將回走。背後四將趕來甚急。趕到半路,許褚引眾虎衛軍敵住,救回曹操。吳兵齊奏凱歌,回濡須去了。
조조가 크게 노하여 여러 장수를 질책하여 산에 올라 손권을 잡으려 하였다. 홀연히 한 소리 북소리가 울리고 산 뒤에서 두 떼의 군대가 나왔는데 오른쪽엔 한당과 주태이고, 왼쪽에는 진무와 반장이었다. 네 명의 장수가 삼천의 궁노수를 데리고 어지럽게 활을 소니 화살이 비 오는 것과 같았다. 조조가 급히 여러 장수를 이끌고 돌아 달아났다. 뒤에서 네 명의 장수들이 매우 급하게 쫓아왔다. 반쯤 쫓아 왔을 때 허저가 많은 호위군을 이끌고 대적하여 막고 조조를 구하여 돌아갔다. 오나라 군대가 일제히 승리를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며 유수로 돌아갔다.
操還營自思:「孫權非等閒人物。紅日之應,久後必為帝王。」於是心中有退兵之意。又恐東吳恥笑,進退未決。兩邊又相拒了月餘,戰了數場,互相勝負。直至來年正月,春雨連綿,水港皆滿,軍士多在泥水之中,困苦異常。操心甚憂。當日正在寨中,與眾謀士商議。或勸操收兵;或云目今春暖,正好相持,不可退歸。操猶豫未決。忽報東吳有使齎書到。操啟視之。書略曰:「孤與丞相,彼此皆漢朝臣宰。丞相不思報國安民,乃妄動干戈,殘虐生靈,豈仁人之所為哉?即日春水方生,公當速去。如其不然,復有赤壁之禍矣。公宜自思焉。」
조조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손권은 대수롭게 볼 인물이 아니다. 붉은 해가 응하니 오랜 후에 반드시 제왕이 될 것이다.”했다. 이에 마음속으로 군대를 물릴 뜻이 있었으나 또한 동오가 비웃을까 두려워하여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을 결정하지 못하였다. 양쪽(조조와 손권)이 서로 대치한 지 한 달여 동안 몇 차례 싸웠으나 서로 이기거나 졌다. 곧 새해 정월이 되자 봄비가 연이어 내려 물이 강어귀에 가득하니 군사들이 많이 진흙물 속에 있어 어렵고 고됨이 보통이 아니었다. 조조는 마음으로 매우 근심하였다. 그날 영채 안에 있으면서 여러 모사들과 상의하였다. 어 떤 사람은 조조에게 군대를 거두자고 권하였고, 어떤 사람은 지금 막 봄이 되어 따뜻해지니 서로 대치하고 물러나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조조가 아직도 결정하지 못하였다. 홀연히 동오에서 사자가 글을 가지고 왔다고 보고하였다. 조조가 글을 열어 보니 글에서 말하기를 대략 “나와 승상은 피자가 모두 한나라 조정의 신하입니다. 승상은 보국안민(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을 생각하지 않고 곧 망녕되이 움직여 전쟁을 일으켜 백성들을 잔인하게 학대하니 어찌 어진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봄 물이 바야흐로 생겨나니(흐르니) 공은 속히 돌아가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적벽의 화가 있을 것입니다. 공은 마땅히 스스로 이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했다.
書背後又批兩行云:「足下不死,孤不得安。」曹操看畢,大笑曰:「孫仲謀不欺我也。」重賞來使,遂下令班師,命廬江太守朱光,鎮守皖城,自引大軍回許昌。孫權亦收軍回秣陵。權與眾將商議:「曹操雖然北去,劉備尚在葭萌關未還。何不引拒曹操之兵,以取荊州?」張昭獻計曰:「且未可動兵。某有一計,使劉備不能再還荊州。」正是:孟德雄兵方退北,仲謀壯志又圖南。不知張昭說出甚計來,且看下文分解。
글 뒤에 또한 두 줄을 덧붙여 말하기를 “그대가 죽지 않으면 내가 편안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했다. 조조가 보기를 마치고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손중모(손권)는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다.”하고는 온 사신에게 많은 상을 주고는 마침내 군대를 돌리라 명령하고 여강태수 주광에게 명하여 완성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허창으로 돌아갔다. 손권이 또한 군대를 거두어 말릉으로 돌아갔다. 손권과 여러 장수들이 상의하기를 “조조는 비록 북으로 돌아갔으나 유비(유현덕)는 아직 가맹관에 있으면서 돌아오지 않았다. 어찌 조조를 막은 군대를 이끌고 형주를 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니 장소가 계책을 올려 말하기를 “또 군대를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저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으니 유비(유현덕)로 하여금 다시 형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했다. 바로 이러하니 맹덕(조조)의 용맹한 군대가 막 북쪽으로 물러났고, 중모(손권)의 장대한 뜻은 또한 남쪽을 도모하려 한다. 장소가 어떤 훌륭한 계책을 말할지 알지 못하겠구나.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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