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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

제64회 제강공명은 계책을 정해 장임을 잡고, 양부는 군대를 빌려 마초를 깨트리다.

by 최인표 2021. 1. 5.

第六十四回孔明定計捉張任楊阜借兵破馬超

64회 제강공명은 계책을 정해 장임을 잡고, 양부는 군대를 빌려 마초를 깨트리다.

 

卻說張飛問計於嚴顏顏曰:「從此至雒城凡守禦關隘都是老夫所管官軍皆出於掌握之中今感將軍之恩無可以報老夫當為前部所到之處盡喚出拜降。」

각설하고 장비는 엄안에게 계책을 물으니 엄안이 말하기를 여기서부터 낙성까지 무릇 관애를 지키는 것은 모두 이 노부의 관할이니 관군은 모두 손바닥 안에서 나옵니다. 지금 장군의 은혜를 입고도 갚을 길이 없었는데 노부가 앞장서면 이르는 곳마다 모두 불러내어 항복하게 하겠습니다.”했다.

 

張飛稱謝不已於是嚴顏為前部張飛領軍隨後凡到之處盡是嚴顏所管都喚出投降有遲疑未決者顏曰:「我尚且投降何況汝乎。」自是望風歸順並不曾廝殺一場

장비가 칭찬하고 감사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에 엄안을 앞장서게 하고, 장비는 군대를 거느리고 뒤를 따랐다. 이르는 곳마다 모두 엄안의 관할이어서 모두 불러내어 항복하게 했다. 머뭇거리고 의심하여 결단하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엄안이 말하기를 내가 오히려 또한 항복하였는데 하물며 너에게 있어서 이겠는가?”하니 이로부터 소문을 듣고 귀순하니 한바탕의 싸움도 하지 않았다.

 

卻說孔明已將起程日期申報玄德都教會聚雒城玄德與眾官商議:今孔明翼德分兩路取川會於雒城同入成都水陸舟車已於七月二十日起程此時將及待到今我等便可進兵。」黃忠曰:「張任每日來搦戰見城中不出彼軍懈怠不做準備今日夜間分兵劫寨勝如白晝廝殺。」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출발하는 기일을 유현덕에게 알리고 모두 낙성에 모이게 하였다. 유현덕은 여러 관리들과 상의하기를 지금 제갈공명과 익덕(장비)이 두 길로 나누어 서천을 취하려는데 낙성에 모여 함께 성도에 들어가자 합니다. 수륙의 배와 수레가 이미 칠월 이십칠일 출발하였으니 이때는 장차 이르기를 기다려야 하지만, 지금 우리들은 곧 진군할 수 있습니다.”했다. 황충이 말하기를 장임이 매일 와서 도전하면서 성 안에서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그 군대(장임의 군대)가 나태해져 준비를 하지 않고 있으니 오늘저녁에 군대를 나누어 영채를 습격하면 이기는 것은 대낮에 싸우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했다.

 

玄德從之教黃忠引兵取左魏延引兵取右玄德取中路當夜二更三路軍馬齊發張任果然不做準備漢軍擁入大寨放起火來烈燄騰空蜀兵奔走連夜趕報雒城城中兵接應入去玄德還中路下寨次日引兵直到雒城圍住攻打張任按兵不出攻到第四日玄德自提一軍攻打西門令黃忠魏延在東門攻打留南門北門放軍兵行走原來南門一帶都是山路北門有涪水因此不圍

유현덕이 그것을 따라 황충으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왼쪽으로 가게하고, 위연은 군대를 이끌고 오른쪽으로 가게하고, 유현덕은 중간 길로 갔다. 그날 밤 이경에 세 길의 군마들이 일제히 출발하였다. 장임이 과연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한군(유현덕의 군대가)을 거느리고 대 영채에 들어가 불을 놓으니 화염이 공중에 치솟았다. 촉의 군대가 달아나므로 밤새 뒤를 쫓아 낙성에 나아가니 성 안의 군대가 상황에 맞게 대응하여 들어갔다. 유현덕이 중도에 되돌아 가 영채를 세웠다. 다음날 군대를 이끌고 곧바로 낙성에 이르러 포위하고 공격하였다. 장임은 군대를 다독이며 나가지 않았다. 공격이 사일에 이르자 유현덕은 스스로 일 군을 데리고 서문을 공격하고, 황충과 위연은 동문을 공격하게 하고, 남문과 북문은 군대를 놓아주어 갈 수 있도록 남겨두었다. 원래 남문 일대는 모두 산길이고, 북문에는 부수가 있어서 이 때문에 포위하지 못하였다.

 

張任望見玄德在西門騎馬往來指揮打城從辰至未人馬漸漸力乏張任教吳蘭雷同二將引兵出北門轉東門敵黃忠魏延自己卻引軍出南門轉西門單迎玄德城內盡撥民兵上城擂鼓助喊

장임은 유현덕이 서문에 있으면서 말을 타고 왔다 갔다 하며 성을 치는 것을 지휘하는데 진시로부터 미시에 이르니 인마의 힘이 점점 지치는 것을 바라보았다. 장임은 오란과 뇌동 두 장수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북문을 나가 동문을 돌아 황충과 위연을 대적하게 하고, 자기는 군대를 이끌고 남문을 나가 서문을 돌아 홀로 유현덕을 대적하였다. 성안에서는 민병을 뽑아 성에 올라 북을 쳐서 함성을 돕게 하였다.

 

卻說玄德見紅日平西教後軍先退軍士回身城上一片聲喊起南門內軍馬突出張任逕來軍中捉玄德玄德軍中大亂黃忠魏延又被吳蘭雷同敵住兩下不能相顧玄德敵不住張任撥馬往山僻小路而走張任從背後追來看看趕上玄德獨自一人一馬張任引數騎趕來

각설하고 유현덕은 붉은 해가 서쪽으로 지는 것을 보고는 후군을 먼저 물리게 하였다. 군사들이 몸을 돌릴 때 성 위에서 한 조각 함성이 일어나면서 남문 안에서 군마가 치고 나왔다. 징임은 빠르게 군중으로 와 유현덕을 잡으려 하였다. 윤현덕의 군중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황충과 위연이 또한 오란과 뇌동에게 막혀 두 부대가 서로 돌아보지 못하였다. 유현덕은 장임에게 대적하였으나 막지 못하고 말을 뽑아 산 구석 작은 길로 달아났다. 장임이 뒤에서 쫓아와 점점 올라왔다. 유현덕은 한사람과 한 필의 말 뿐인데 장임이 몇 기를 이끌고 쫓아 왔다.

 

玄德正望前儘力加鞭而行忽山路一軍衝出玄德馬上叫苦:「前有伏兵後有追兵天亡我也!」只見來軍當頭一員大將乃是張飛原來張飛與嚴顏正從那條路上來望見塵埃起知與川兵交戰張飛當先而來正撞著張任便就交馬戰到十餘合背後嚴顏引兵大進張任火速回身張飛直趕到城下張任退入城拽起弔橋

유현덕은 앞을 향해 힘을 다하여 채찍질하며 가는데 홀연히 산길에서 일 군이 치고 나왔다. 유현덕이 말 위에서 비명을 지르며 말하기를 앞에는 복병이 있고, 뒤에는 추격하는 군대가 있으니 하늘이 나를 죽이려하는구나!”하면서 오는 군대의 우두머리인 한 사람의 대장을 보니 바로 장비였다. 원래 장비와 엄안은 바로 사이길로 오고 있다가 먼지가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고는 서천의 군대와 서로 싸우는 것인 줄 알았다. 장비는 앞장 서 오다 바로 장임을 만나자 곧 나아가 서로 싸웠다. 싸운 지 십여 합에 이를 때 뒤에서 엄안이 군대를 이끌고 크게 진격했다. 장임이 급히 몸을 돌렸다. 장비가 날듯이 뒤쫓아 성 아래에 이르렀다. 장임은 물러나 성에 들어가 조교를 거두어 올렸다.

 

張飛回見玄德曰:「軍師泝江而來尚且未到反被我奪了頭功。」玄德曰:「山路險阻如何無軍阻當長驅大進先到於此?」張飛曰:「於路關隘四十五處皆出老將嚴顏之功因此一路並不曾費分毫之力。」遂把義釋嚴顏之事從頭說了一遍引嚴顏見玄德玄德謝曰:「若非老將軍吾弟安能到此?」即脫身上黃金鎖子甲以賜之嚴顏拜謝

장비는 돌아 가 유현덕에게 말하기를 군사께서 소강으로 오고 있는데 아직 이르지 못하여 도리어 나에게 최고 공을 빼앗겼습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산길이 험한데 어떻게 군대가 막는 것 없이 길게 말을 몰아 크게 진군하여 먼저 여기에 이를 수 있었는가?”했다. 장비가 말하기를 길에 관애가 사십다섯 곳인데 모두 노장군 엄안의 공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한 길도 일찍이 나눈 터럭의 힘을 허비하지 않았습니다.” 하고는 드디어 엄안을 의롭게 풀어준 일을 처음부터 두루 말하고, 엄안을 인도하여 유현덕을 뵙게 하였다. 유현덕이 사례하며 말하기를 만약 노장군이 아니면 내 동생이 어떻게 여기에 이를 수 있었겠습니까?”하고는 곧 몸에 있던 황금 쇠고리 갑옷을 벗어 주었다. 엄안이 사례하였다.

 

正待安排宴飲忽聞哨馬回報:「黃忠魏延和川將吳蘭雷同交鋒城中吳懿劉瑰又引兵助戰兩下夾攻我軍抵敵不住黃二將敗陣投東去了。」

바로 연회를 베풀고 술 마시기를 기다리는데 홀연히 탐지하는 군사가 돌아 보고하기를 황충과 위연이 화천의 장수 오란, 뇌동과 싸우는데 성 안에서 오의, 유괴가 또 군대를 이끌고 싸움을 도와 양쪽에서 협공하니 우리 군대가 적을 막아내지 못하여 황충과 위연 두 장군이 패하여 진을 동쪽으로 옮겨 갔습니다.”했다.

 

張飛聽得便請玄德分兵兩路殺去救援於是張飛在左玄德在右殺奔前來吳懿劉瑰見後面喊聲起慌退入城中吳蘭雷同只顧引兵追趕黃忠魏延卻被玄德張飛截住歸路黃忠魏延又回馬轉攻吳蘭雷同料敵不住只得將本部軍馬前來投降玄德准其降收兵近城下寨

장비가 듣고 곧 유현덕에게 군대를 두 길로 나누어 달려 가 구원할 것을 청하였다. 이에 장비는 왼쪽에 있고, 유현덕은 오른 쪽에 있으면서 달려갔다. 오의와 유괴는 뒤에서 함성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황급히 물러나 성안으로 들어 갔다. 오란과 뇌동은 다만 군대를 이끌고 황충과 위연을 뒤쫓다가 유현덕과 장비에게 막혀 돌아가는 길이 막혔다. 황충과 위연이 또한 말을 돌려 공격으로 전환하였다. 오란과 뇌동은 적을 막지 못할 것이라 헤아리고 (유현덕의)본부 군마 앞에 가 항복하였다. 유현덕은 그 항복을 허락하고 군대를 거두어 성 가가운 곳에 영채를 세웠다.

 

卻說張任失了二將心中疑慮吳懿劉瑰曰:「兵勢甚危不決一死戰如何得兵退一面差人去成都見主公告急一面用計敵之。」張任曰:「吾來日領一軍搦戰詐敗引轉城北城內再以一軍衝出截斷其中可獲勝也。」吳懿曰:「劉將軍相輔公子守城我引兵衝出助戰。」 約會已定

각설하고 장임은 두 장수를 잃고 마음속으로 의심하고 근심하였다. 오의와 유괴가 말하기를 군대의 형세가 매우 위급하니 한 번 죽음으로 싸을 것을 결단하지 않고 어떻게 군대를 물릴 수 있겠습니까? 한편으로 사람을 성도에 보내 주공을 뵙고 급함을 고하는 한편으로 계책을 써서 대적해야 합니다.”했다. 장임이 말하기를 내가 내일 일 군을 거느리고 도전하고, 거짓으로 패하여 성 북쪽으로 유인하여 돌면 성 안에서 다시 일군으로 치고 나와 그 가운데를 끊는다면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했다. 오의가 말하기를 유장군(유괴)은 공자를 도와 성을 지키고 있으면 내가 군대를 이끌고 치고 나와 싸움을 돕겠습니다.”하여 약속이 정해졌다.

 

次日張任引數千人馬搖旗吶喊出城搦戰張飛上馬出迎更不打話與張任交鋒戰不十餘合張任詐敗遶城而走張飛盡力追之吳懿一軍截住張任引軍復回把張飛圍在垓心進退不得正沒奈何只見一隊軍從江邊殺出當先一員大將挺槍躍馬與吳懿交鋒只一合生擒吳懿戰退敵軍救出張飛視之乃趙雲也飛問:「軍師何在?」雲曰:「軍師已至想此時已與主公相見也。」

다음 날 장임이 수천의 인마를 이끌고 깃발을 흔들고 함성을 지르며 성을 나가 도정하였다. 장비가 말에 올라 나가 막으며 다시 말하지 않고 장임과 싸웠다. 싸움이 십여 합이 되지 않아 장임이 거짓으로 패하여 성을 돌아 달아났다. 장비는 힘을 다하여 추격하였다. 오의의 일군이 막자 장임이 군대를 이끌고 다시 돌아 와 장비를 잡아 가운데에 두고 둘러싸니 나아가지도 물러나지 못하였다. (장비가)어떻게 할 수 없는데 한 부대의 군이 강변을 따라 달려 나왔다. 앞장 선 한 명의 장수가 창을 내밀고 말을 뛰게 하여 오의와 싸웠다. 단지오의를 사로잡으니 싸우던 적군이 물러나고 장비를 구해 나왔다. 그를 보니 바로 조운(조자룡)이었다. 장비가 묻기를 군사께서는 어디에 계시는가?”하니 조운(조자룡)이 말하기를 군사께서는 이미 이르렀습니다. 이때에 이미 주공과 서로 만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했다.

 

二人擒吳懿回寨張任自退入東門去了張飛趙雲回寨中見孔明簡雍蔣琬已在帳中飛下馬來參軍師孔明驚問曰:「如何得先到?」玄德具述義釋嚴顏之事孔明賀曰:「張將軍能用謀皆主公之洪褔也。」

두 사람이 오의를 사로잡아 영채에 돌아왔다. 장임은 스스로 동문으로 들어갔다. 장비, 조운(조자룡)은 여챙 안으로 돌아가 제강공명을 만났는데 간옹, 장완이 이미 장막 안에 있었다. 장비가 말에서 내려 군사를 뵈었다. 제갈공명이 놀라 물어 말하기를 어떻게 먼저 도달할 수 있었는가?”하니 유현덕이 엄안을 의리로 풀어주었던 일을 모두 말하였다. 제갈공명이 축하하여 말하기를 장 장군(장비)이 꾀를 쓸 수 있었으니 모두 주공의 홍복입니다.”했다.

 

趙雲解吳懿見玄德玄德曰:「汝降否?」吳懿曰:「我既被捉如何不降?」玄德大喜親解其縛孔明問:「城中有幾人守城?」吳懿曰:「有劉季玉之子劉循輔將劉瑰張任劉瑰不打緊張任乃蜀郡人極有膽略不可輕敵。」孔明曰:「先捉張任然後取雒城。」:「城東這座橋名為何橋?」吳懿曰:「金雁橋。」

조운(조자룡)이 오의를 압송하여 유현덕을 뵈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너는 항복하겠는가?”하니 오의가 말하기를 제가 이미 사로잡혔는데 어찌 항복하지 않겠습니까?”했다. 유현덕이 크게 기뻐하며 직접 그 묶인 것을 풀어주었다. 제갈공명이 묻기를 성 안에는 몇 사람이 성을 지키고 있는가?”하니 오의가 말하기를 유계옥의 아들 유순, 돕는 장수 유괴, 장임이 있습니다. 유괴는 중요하지 않고, 장임은 곧 촉군 사림인데 지극히 담략이 있으니 가벼이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먼저 장임을 잡은 후 낙성을 취해야겠습니다.”하고는 묻기를 성 동쪽의 놓여 있는 다리 이름은 무어라 합니까?”하니 오의가 말하기를 금안교입니다.”했다.

 

孔明遂乘馬至橋邊遶河看了一遍回到寨中喚黃忠魏延聽令曰:「離金雁橋南五六里兩岸都是蘆葦蒹葭可以埋伏魏延引一千槍手伏於左單戳馬上將黃忠引一千刀手伏於右單砍坐下馬殺敗彼軍張任必投山東小路而去張翼德引一千軍伏在那裏就彼處擒之。」又喚趙雲伏於金雁橋北:「待我引張任過橋你便將橋拆斷卻勒兵於橋北為之勢使張任不敢望北而走退投南去卻好中計。」調遣已定孔明自去誘敵

제갈공명이 마침내 말을 타고 다리 가에 이르러 강물을 둘러 두루 살펴보고 돌아 와 영채 안에 이르러 황충과 위연을 불러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금안교로부터 남쪽 오리 떨어진 곳은 양쪽 강변이 모두 갈대이니 매복할 만합니다. 위연은 일천 명의 창을 든 군사를 이끌고 왼쪽에 매복하였다가 단지 말 위의 장수를 찌르라. 황충은 일천 명의 칼 든 군사를 이끌고 오른 쪽에 매복해 있다가 단지 말에서 떨어지는 이를 베시오. 그 군사가 무너지면 장임은 반드시 산 동쪽의 작은 길로 들어 갈 것이다. 장익덕(장비)은 일천 명의 군대를 이끌고 그 안에 매복해 있다가 그 곳에 (장임이)이르면 그를 사로잡으시오.”했다. 또 조운(조자룡)을 불러 금안교 북쪽에 매복해 있으시오. 내가 장임을 유인하여 다리를 지나기를 기다리다 곧 다리를 끊고 다리 북쪽에서 군사를 정돈하며 멀리서 돕는 형세를 삼으면, 장임은 감히 북쪽을 향해 달아나지 못하고 물러나 남쪽으로 가게 될 것이니 계책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했다. 지시하여 정한 후 제갈공명은 스스로 적을 유인하러 갔다.

 

卻說劉璋差卓膺張翼二將前至雒城助戰張任教張翼與劉瑰守城自與卓膺為前後二隊任為前隊膺為後隊出城退敵孔明引一隊不整不齊軍過金雁橋來與張任對陣孔明乘四輪車綸巾羽扇而出兩邊百餘騎簇擁搖指張任曰:「曹操以百萬之眾聞吾之名望風而逃令汝何人敢不投降?」

각설하고 유장은 탁응과 장임 두 장수를 보내 앞서 낙성에 이르러 싸움을 돕게 하였다. 장임은 장익과 유괴로 하여금 성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는 탁응과 앞 뒤 두 부대를 삼았는데 장임은 앞 부대가 되고, 탁응은 뒤 부대가 되어 성을 나가 적을 물리치려 했다. 제갈공명은 한 부대의 정돈되고, 훈련되지 않은 군대를 이끌고 금안교를 지나와 장임과 진을 마주하였다. 제갈공명이 바퀴 네 개 달린 수레를 타고 윤건을 쓰고, 우선을 들고 나왔는데 양 쪽으로 백여 기가 빽빽하게 둘러싸 호위하고 있었다. (제갈공명이)멀리서 장임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조조는 백만의 무리로서도 내 이름을 듣고 바람에 휩쓸리듯 달아났는데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투항하지 않는가?”했다.

 

張任看見孔明軍伍不齊在馬上冷笑曰:「人說諸葛用兵如神原來有名無實!」把槍一招大小軍校齊殺過來孔明棄了四輪車上馬退走過橋張任從背後趕來過了金雁橋見玄德軍在左嚴顏軍在右衝殺將來張任知是計急回軍時橋已拆斷了欲投北去只見趙雲一軍隔岸排開遂不敢投北逕往南遶河而走

장임은 제갈공명의 군대 대오가 정돈되지 않은 것을 보고는 말을 탄 채 냉소를 지으며 말하기를 사람들이 말하기를 제갈공명의 군대를 운용하는 것이 신과 같다.’ 하더니 원래 이름만 있고 실제는 없구나!”하고는 창을 잡고 부르니 대소의 군교들이 일제히 쇄도해 왔다. 제갈공명이 사륜거를 버리고 말에 올라 물러나 달려 다리를 지났다. 장임이 뒤를 쫓아 왔다. (장임이)금안교를 지나니 유현덕의 군대가 왼쪽에 있고, 엄안의 군대가 오른 쪽에 있다가 치고 달려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장임이 이것이 계책임을 알고는 급히 군대를 돌릴 때 다리는 이미 끊어진 뒤였다. 북쪽으로 가려하다가 조운(조자룡)의 일군이 강변을 사이하고 전개해 있는 것을 보고 마침내 감히 북쪽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재빨리 남쪽으로 강을 돌아 달아났다.

 

走不到五六里早到蘆葦叢雜處魏延一軍從蘆中忽起都用長槍亂戳黃忠一軍伏在蘆葦裏用長刀只剁馬蹄馬軍盡倒皆被執縛步軍那裏敢來張任引數十騎望山路而走正撞著張飛張任方欲退走張飛大喝一聲眾軍齊上將張任活捉了原來卓膺見張任中計已投趙雲前降了一發都到了大寨

달리기를 오, 육리가 되지 않아 곧 갈대가 무성한 곳에 이르렀다. 위연의 일 군이 갈대 안으로부터 홀연히 일어나 모두 긴 창을 잡고 어지러이 찔렀다. 황충의 일군이 갈대 속에 숨어 있다가 긴 칼을 써서 말의 발굽을 베었다. 마군(기병)이 모두 엎어지니 모두 잡아 묶었다. 보군(보병)이 어찌 감히 올 수 있겠는가? 장임이 수십 기을 이끌고 산로를 향하여 달려가다 바로 장비를 만났다. 장임이 막 물러나 달아나려하는데 장비가 크게 한 소리 외치니 여러 군사들이 일제히 나와 장임을 산 채로 잡았다. 원래 탁응이 장임이 계책에 빠진 것을 보고 이미 조운(조자룡) 앞에 나아가 항복하였으므로 한 번에 모두 큰 영채에 이르게 되었다.

 

玄德賞了卓膺張飛解張任至孔明亦坐於帳中玄德謂張任曰:「蜀中諸將望風而降汝何不早投降?」張任睜目怒叫曰:「忠臣豈肯事二主乎?」玄德曰:「汝不識天時耳降即免死。」任曰:「令日便降久後也不降可速殺我!」玄德不忍殺之張任厲聲高罵孔明命斬之以全其名後人有詩讚曰

유현덕이 탁응에게 상을 주는데 장비가 장임을 압송하여 이르렀다. 제갈공명 또한 장막 안에 있었다. 유현덕이 장임에게 일러 말하기를 촉 중의 여러 장수들이 바람에 휩쓸리 듯 항복하는데 너는 어찌하여 일찍 항복하지 않았는가?”하니 장임이 눈을 부릅뜨고 노한 눈으로 외쳐 말하기를 충신이 어찌 즐겨 두 주인을 섬기겠는가?”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네가 천시를 알지 못할 뿐이다. 항복한다면 곧 죽음을 면할 것이다.”했다. 장임이 말하기를 오늘 항복하게 하여도 오래 후에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니 속히 나를 죽이라!”했다. 유현덕이 차마 그를 죽이지 못하였다. 장임이 성난 소리로 크게 욕하였다. 제갈공명이 그의 목을 베는 것으로서 명예를 온전히 하게 하였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기려 말하기를

 

烈士豈甘從二主張君忠勇死猶生高明正似天邊月夜夜流光照雒城

열사가 어찌 달게 두 임금을 따르겠는가?/ 장임의 임금에 대한 충용은 죽어 오히려 살아났도다./높고 밝음은 바로 하늘가의 달과 같아/ 밤마다 흐르는 빛이 낙성을 비추었다./”했다.

 

玄德感歎不已令收其屍首葬於金雁橋側以表其忠次日令嚴顏吳懿等一班蜀中降將為前部直至雒城大叫:「早開門受降免一城生靈受苦!」劉瑰在城中大罵嚴顏方待取箭射之忽見城上一將拔劍砍翻劉瑰開門投降玄德軍馬入雒城劉循開西門走脫投成都去了玄德出榜安民殺劉瑰者乃武陽人張翼也

유현덕이 감탄하기를 그치지 않고 그 시신과 머리를 거두어 금안교 옆에 장례하게 하는 것으로서 그 충성을 표시하였다. 다음 날 엄안, 오의 등 한 떼의 촉 중 항복한 장수들이 앞장서서 곧바로 낙성에 이르러 크게 외치기를 빨리 문을 열고 항복하여 한 성의 백성들이 괴로움 받는 것을 면하라!”했다. 유괴가 성 안에 있다가 크게 욕하였다. 엄안이 막 화살을 취하여 그를 쏘려하는데 홀연히 성 위에 한 장수다 나타나 검을 뽑아 유괴를 벤 후 성문을 열고 투항하였다. 유현덕의 군마가 낙성에 들어가니 유순이 서문을 열고 달아나 성도에 들어갔다. 유현덕은 방을 붙여 백성을 안정시켰다. 유괴를 죽인 자는 곧 무양 사람 장익이었다.

 

玄德得了雒城重賞諸將孔明曰:「雒城已破成都只在目前惟恐外州郡不寧可令張翼吳懿引趙雲撫外水定江陽犍為等處所屬州郡令嚴顏卓膺引張飛撫巴西德陽所屬州郡就委官按治平靖即勒兵回成都取齊。」

유현덕은 낙성을 얻고 여러 장수들에게 많은 상을 주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낙성을 이미 깨트렸으니 성도가 눈앞에 있습니다. 다만 밖에 있는 주군이 편안하지 않을까 두려울 뿐입니다. 장익, 오의로 하여금 조운(조자룡)을 인도하게 하여 외수를 어루만지며, 강양과 건위 등의 곳에 소속된 곳을 안정시키게 하고, 엄안, 탁응으로 하여금 징비를 인도하여 파서를 어루만지고 덕양에 소속된 주군을 위무하게 하고, 관리를 뽑아 죄를 물어 다스려 공평하게 바로잡으며 군대를 이끌고 성도로 돌아 가 일제히 취해야 합니다.” 했다.

 

張飛趙雲領命各自引兵去了孔明問:「前去有何處關隘?」蜀中降將曰:「止綿竹有重兵守禦若得綿竹成都唾手可得。」孔明便商議進兵法正曰:「雒城既破蜀中危矣主公欲以仁義服眾且勿進兵某作一書上劉璋陳說利害璋自然降矣。」孔明曰:「孝直之言最善。」便令寫書遣人逕往成都

장비와 조운(조자룡)이 명령을 받고 각자 군대를 이끌고 갔다. 제갈공명이 묻기를 앞으로 어떤 관애가 있는가?”하니 촉 중의 항복한 장수들이 말하기를 다만 면죽만이 많은 군사들이 지키고 있을 뿐이니 만약 면죽을 얻는다면 성도는 손에 침을 뱉는 것처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곧 진군을 상의하였다. 법정이 말하기를 낙성을 이미 깨트렸으니 촉 중이 위태롭습니다. 주공께서 인의로서 무리를 복종시키려 하시니 진군하지 마십시오. 제가 글을 한 통 써서 유장에게 올려 이로움과 해로움을 진술하면 유장은 자연히 항복할 것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효직(법정)의 말이 가장 좋습니다.”하고는 곧 글을 쓰게 하여 사람을 시켜 빠른 길로 성도에 가게 하였다.

 

卻說劉循逃回見父說雒城已陷劉璋慌聚眾官商議從事鄭度獻策曰:「今劉備雖攻城奪地然兵不甚多士眾未附野穀是資軍無輜重不如盡驅巴西梓潼民過涪水以西其倉廩野穀盡皆燒除深溝高壘靜以待之彼至請戰勿許久無所資不過百日彼兵自走我乘虛擊之備可擒也。」劉璋曰:「不然吾聞拒敵以安民未聞動民以備敵也此言非保全之計。」正議間人報法正有書至劉璋喚入呈上書璋拆開視之其略曰

각설하고 유순은 도망하여 돌아가 아버지를 뵙고 낙성이 이미 함락되었음을 말하니 유장이 황급히 여러 관리들을 모아 상의하였다. 종사 정도헌이 계책을 올려 말하기를 지금 유비(유현덕)이 비록 성을 치고 땅을 빼앗았으나 군대가 매우 많지 않고, 군사들이 아직 붙지 않았으며, 들의 곡식에 의뢰하며, 군대에 치중(병참)이 없습니다. 파서와 재동의 백성들을 모두 몰아 부수 서쪽으로 지나게 하는 것(옮기는 것)이 낫습니다. 그 창고와 들의 곡식을 모두 불태워 없애고, 도랑(해자)을 깊게 파고, 보루를 높게 쌓고 고요히 기다려야 합니다. 그들이 싸움을 걸어도 허락하지 않기를 오래하면 의뢰할 바가 없어 백일이 지나지 않아 그 군사들은 저절로 달아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 빈틈을 타서 공격하면 유비(유현덕)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했다. 유장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나는 적을 막는 것으로서 백성을 편안히 한다는 것은 들었지만 백성을 움직이는 것으로서 적을 방비한 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다. 이 말은 보존하는 계책이 아니다.”했다. 바로 상의하는 사이에 어떤 사람이 법정에게서 글이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유장이 불러들이니 글을 올렸다. 유장이 봉투를 뜯어 보았다. 그 글을 대략적으로 보면

 

前蒙遣差結好荊州不意主公左右不得其人以致如此今荊州眷念舊情不忘族誼主公若能幡然歸順量不薄待望三思裁示

앞서 형주에 보내 우호를 맺게 하셨으나 주공 좌우에 그 사람(알맞은 사람)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같음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형주는 옛 정을 생각하고 친족의 도리를 잊지 않았습니다. 주공께서 만약 빨리 귀순하신다면 박하게 대우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라건데 여러 번 생각하시고 결단하시어 보이십시오. 했다.”

 

劉璋大怒扯毀其書大罵:「法正賣主求榮忘恩背義之賊!」逐其使者出城即時遣妻弟費觀提兵前去把守綿竹費觀保舉南陽人姓李名嚴字正方一同領兵當下費觀李嚴點三萬軍來守綿竹益州太守董和字幼宰南郡枝江人也上書於劉璋請往漢中借兵璋曰:「張魯與吾世讎安肯相救?」和曰:「雖然與我有讎劉備軍在雒城勢在危急脣亡則齒寒若以利害說之必然肯從。」璋乃修書遣使前赴漢中

유장이 크게 노하여 그 글을 찢어버리고 크게 욕하여 말하기를 법정이 주인을 팔아 영예를 구하고, 은혜를 잊고 의리를 저버린 도적이구나!”하고는 그 사자를 내쫓아 성을 나가게 하고 즉시 처제 비관을 보내 군대를 거느리고 면죽을 지키게 했다. 그 때 비관과 이엄이 삼만의 군대를 점검하여 면죽에 와 지켰다. 익주 태수 동화는 자가 유재이니 남강 지강 사람으로 유장에게 글을 올려 한중에 가 군대를 빌릴 것을 청하였다. 유장이 말하기를 장노와 우리는 대대로 원수인데 어찌 즐겨 구원하겠는가?”했다. 동화가 말하기를 비록 우리와 원수진 것이 있으나 유비(유현덕)의 군대가 낙성에 있어 형세의 위급하기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격입니다. 만약 이해로서 설득한다면 틀림없이 즐겨 따를 것입니다.”했다. 유장이 이에 글을 써서 사자를 한중에 보냈다.

 

卻說馬超自兵敗入羌二載有餘結好羌兵攻取隴西州郡所到之處盡皆歸降惟冀城攻打不下刺史韋康累遣人求於夏侯淵淵不得曹操言語未敢動兵韋康見救兵不來與眾商議:「不如投降馬超。」參軍楊阜哭諫曰:「超等叛君之徒豈可降之?」康曰:「事勢至此不降何待?」

각설하고 마초는 군대가 패하자 강족 땅에 들어가 이년 쯤 지나서 강족 군대와 우호를 맺고 농서의 주군을 공격하여 취하였다. (마초의 군대가)이르는 곳마다 모두 항복하였는데 오직 기성만은 쳐도 떨어지지 않았다. (양주)자사 위강이 여러 번 하후연에게 사람을 보내 구원을 청하였다, 하후연은 조조의 말을 듣지 못하여 감히 움직일 수 없었다. 위강은 구원군이 오지 않는 것을 보고 무리들과 상의하기를 마초에게 투항하는 것이 낫다.”하니 참군 양부가 곡하며 간하여 말하기를 마초 등은 임금을 배반한 무리인데 어찌 항복할 수 있겠습니까?”하니 위강이 말하기를 일의 형세가 이에 이르렀으니 항복하지 않고 무엇을 기다리겠는가?”했다.

 

阜苦諫不從韋康大開城門投降馬超超大怒曰:「汝今事急請降非真心也!」將韋康等四十餘人盡斬之不留一人有人言:「楊阜勸韋康休降可斬之。」超曰:「此人守義不可斬也。」復用楊阜為參軍阜薦梁寬趙衢二人超盡用為軍官楊阜告馬超曰:「阜妻死於臨洮乞告兩個月假歸葬其妻便回。」

양부가 정중하게 간하여도 따르지 않았다. 위강은 성문을 크게 열고 마초에게 투항하였다. 마초가 대노하여 말하기를 네가 지금 일이 급하여 항복을 청하는 것은 진심이 아니구나!”하고는 장차 위강 등 사십여 명을 모두 죽이게 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않으려 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양부는 위강을 권하여 항복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그를 죽여야 합니다.”했다. 마초가 말하기를 이 사람은 이 사람은 의리를 지켰으니 죽일 수 없다.“하고는 다시 양부를 등용하여 참군으로 삼았다. 양부가 양관과 조구 두 사람을 추천하니 마초가 모두 등용하여 군관으로 삼았다. 양부가 마초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양부)의 처가 임조에서 죽었는데 이 개월의 휴가를 주시면 돌아 가 그 처를 장례하고 곧 돌아올 것을 청합니다.“했다.

 

馬超從之楊阜過歷城來見撫彝將軍姜敘敘與阜是姑表兄弟敘之母是阜之姑時年已八十二當日楊阜入姜敘內宅拜見其姑哭告曰:「阜守城不能保主亡不能死愧無面見姑馬超叛君妄殺郡守一州士民無不恨之今吾兄坐據歷城竟無討賊之心此豈人臣之理乎?」言罷淚流出血

마초가 그것을 따랐다. 양부가 역성을 지나가서 무이장군 강서를 만났다. 강서와 양부는 고종형제였다. 강서의 어머니는 곧 양부의 고모로 그 때 나이가 이미 팔십이세였다. 그날 양부가 강서의 집 안으로 들어가 그 고모를 뵙고 곡하며 말하기를 제가(양부) 성을 지키다 지키지 못하여 주인이 죽었는데도 죽지 못하여 고모를 뵐 면목이 없습니다. 마초는 임금을 배반하고 망녕되이 군수와 한 주의 사민을 죽였으니 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내 형이 역성에 웅거하고 있으면서도 끝내 도적을 토벌할 마음이 없으니 이것이 어찌 다른 사람의 신하된 도리이겠습니까?”했다. 말을 마치고 눈물을 흘리는데 피가 나왔다.

 

敘母聞言喚姜敘入責之曰:「韋使君遇害亦爾之罪也又謂阜曰:「汝既降人且食其祿何故又興心討之?」阜曰:「吾從賊者欲留殘生與主報冤也。」敘曰:「馬超英勇急難圖之。」阜曰:「有勇無謀易圖也吾已暗約下梁寬趙衢兄若肯興兵二人必為內應。」敘母曰:「汝不早圖更待何時誰不有死死於忠義死得其所也勿以我為念汝若不聽義山之言吾當先死以絕汝念。」

강서의 어머니가 말을 듣고 강서를 불러들여 질책하며 말하기를 위사군(위강)께서 해를 만난 것은 또한 너의 죄이다.”하고, 또 양부에게 말하기를 너는 이미 항복한 사람으로 그 녹을 먹고도 무슨 이유로 또 마음에 토벌할 것을 일으키는가?”하니 양부가 말하기를 제가 도적을 따르는 것은 남은 삶으로 주인의 원한을 갚고자 해서입니다.” 했다. 강서가 말하기를 마초는 용맹하여 급히 도모하기 어렵습니다.”하니 양부가 말하기를 용맹이 있어도 꾀가 없으니 쉽게 도모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미 몰래 양관, 조구와 약속해 두었습니다. 형이 만약 즐겨 군대를 일으킨다면 두 사람이 반드시 안에서 응할 것입니다.”했다. 강서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는 빨리 도모하지 않고 다시 무슨 때를 기다리는가? 누군들 죽지 않겠는가? 충의에 죽는다면 죽음이 그 자리를 얻는 것이다. 나를 생각하지는 말라. 네가 만약 의산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내가 마땅히 먼저 죽어 너의 생각을 끊겠다.”했다.

 

敘乃與統兵校尉尹奉趙昂商議原來趙昂之子趙月現隨馬超為裨將趙昂當日應允歸見其妻王氏曰:「吾今日與姜敘楊阜尹奉一處商議欲報韋康之讎想吾子趙月現隨馬超今若興兵超必先殺吾子奈何?」其妻厲聲曰:「雪君之父大恥雖喪身亦不惜何況一子乎君若顧子而不行吾當先死矣。」趙昂乃決次日一同起兵姜敘楊阜屯歷城尹奉趙昂屯祁山王氏乃盡將首飾資帛親自往祁山軍中賞勞軍士以勵其眾

강서가 이에 통병교위 윤봉, 조위와 상의하였다. 알고 보니 조앙의 아들 조원이 현재 마초를 따라 비장이 되어 있었다. 조앙은 그날 응락하고 돌아 가 그 처 왕씨를 보고 말하기를 내가 오늘 강서, 양부, 윤봉과 한 곳에서 상의하면서 위강의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 생각해보니 우리 아들 조월이 현재 마초를 따르고 있는데 지금 만약 군대를 일으킨다면 마초는 반드시 먼저 우리 아들을 죽일 것이니 어떻게 해야겠소?”했다. 그 처가 노한 소리로 말하기를 그대 아버지의 큰 부끄러움을 씻는 것은 비록 몸을 잃어도 또한 아깝지 않은데 하물며 한 아들이겠습니까? 그대가 만약 아들을 돌아보아 행하지 않는다면 내가 마땅히 먼저 죽을 것입니다.”했다. 조앙이 이에 결단하였다. 다음날 닝동이 군대를 일으켰다. 강서, 양부는 역성에 주둔하고, 윤봉, 조앙은 기산에 주둔하였다. 왕씨는 곧 머릴 꾸미고 재물을 모두 가지고 직접 기산의 군중에 가 군사들에게 상주고 위로하는 것으로서 그 무리를 격려하였다.

 

馬超聞姜敘楊阜會合尹奉趙昂興兵舉事大怒即將趙月斬之令龐德馬岱盡起軍馬殺奔歷城來姜敘楊阜引兵出兩陣圓處楊阜姜敘衣白袍而出大罵曰:「叛君無義之賊!」馬超大怒衝將過來兩軍混戰姜敘楊阜如何抵得馬超大敗而走馬超驅兵趕來背後喊聲起處尹奉趙昂殺來超急回時兩下夾攻首尾不能相顧

마초가 강서, 양부가 윤봉, 조앙과 만나 군대를 일으켜 거사한 것을 듣고는 크게 노하여 곧 조월을 목 베어 죽이고 방덕, 마대로 하여금 군마를 모두 일으켜 역성에 달려가게 했다. 강서와 양부가 군대를 이끌고 나왔다. 두 군대가 둥글게 진을 친 곳에 양부와 강서가 흰 전포를 입고 나와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임금을 배반한 의리없는 도적아!”하니 마초가 크게 노하여 치고 지나가니 두 군대가 섞여 싸웠다. 강서와 양부는 어떻게 해도 마초를 막지 못하고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 마초가 군대를 몰아 쫓아 왔다. 뒤에서 함성이 일어난 곳에서 윤봉과 조앙이 쇄도해 왔다. 마초가 급히 (군대를)돌릴 때 양쪽에서 협공하니 앞과 뒤가 서로 돌아 볼 수 없었다.

 

正鬥間斜刺裏大隊軍馬殺來原來是夏侯淵得了曹操軍令正領軍來破馬超超如何當得了三路軍馬大敗奔回走了一夜比及平明到得冀城叫門時城上亂箭射下梁寬趙衢立在城上大罵馬超將馬超妻楊氏從城上一刀砍了下屍首來又將馬超幼子三人並至親十餘口都從城上一刀一個剁將下來

바로 싸우는 사이에 (옆에서)비스듬히 큰 부대의 군마가 쇄도해 왔다. 알고 보니 이는 하후연이 조조의 군령을 받고 바로 군대를 거느리고 마초를 깨트리러 온 것이었다. 마초가 어떻게 감당하다 대패하여 달려 돌아가는데 하룻밤을 달렸다. 달이 밝을 때 쯤 기성에 이르러 문에(성문을 열라) 소리칠 때 성 위에서 화살이 어지럽게 쏟아져 내렸다. 양관, 조구가 성 위에 서서 크게 마초를 꾸짖으며 마초의 처 양씨를 성 위에서 한 칼에 베어 시신과 머리를 던지고, 또 마초의 어린 아들 세 사람과 가까운 친척 십여 명을 모두 성 위에서 한 칼에 한 명씩 베어 떨어뜨렸다.

 

超氣噎塞胸幾乎墜下馬來背後夏侯淵引兵追趕超見勢大不敢戀戰與龐德馬岱殺開一條路走前面又撞見姜敘楊阜殺了一陣衝得過去又撞著尹奉趙昂殺了一陣零零落落剩得五六十騎連夜奔走四更前後走到歷城下守門者只道姜敘兵回大開城門接入超從城南門邊殺起盡洗城中百姓至姜敘宅拏出老母母全無懼色指馬超而大罵超大怒自取劍殺之尹奉趙昂全家老幼亦盡被馬超所殺昂妻王氏因在軍中得免於難

마초는 목이 메이고 가슴이 막혀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하였다. 뒤에서 하후연이 군대를 이끌고 뒤를 쫓았다. 마초는 (하후연의 군대) 형세가 큼을 보고는 싸우려하지 못하고 방덕, 마대와 죽음으로 한 갈래 길을 열어 달아났다. 앞 쪽에서 또한 뜻 밖에 강서와 양부를 마주쳐 한바탕 죽이며 치고 지나가니 또 윤봉, 조앙을 마주쳐 한바탕 죽였다. 이리저리 흩어지고 남은 오십여 기가 밤새 달아났다. 사경을 전후하여 역성 아래 이르니 문을 지키는 자가 다만 강서의 군대가 돌아온 것으로 생각하여 크게 성문을 열고 맞아 들였다. 마초는 성 남문 가를 따라 급습하여 성 안의 백성을 모두 씻었다.(죽였다.) 강서의 집에 이르러 (강서의)노모를 끌어내었다. (강서의)노모가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마초를 가리키며 크게 꾸짖었다. 마초가 크게 노하여 스스로 검을 뽑아 그를 죽였다. 윤봉과 조앙의 전체 잡안의 늙은이와 어린이들 또한 마초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조앙의 처 왕씨는 군중에 있었기 때문에 난을 면할 수 있었다.

 

次日夏侯淵大軍至馬超棄城殺出望西而逃行不得二十里前面一軍擺開為首的是楊阜超切齒而恨拍馬挺槍刺之阜兄弟七人一齊來助戰馬岱龐德敵住後軍阜等七人皆被馬超殺死阜身中五槍猶然死戰後面夏侯淵大軍趕來馬超遂走只有龐德馬岱六七騎後隨而去

다음날 하후연의 대군이 이르자 마초는 성을 버리고 쇄도해 나가 서쪽을 향하여 도망하였다. 간 지 이십 리가 되지 못하여 앞쪽에 일군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우두머리는 곧 양부였다. 마초는 이를 갈고 한하며 말을 박차 창을 내밀어 그를 찔렀다. 양부의 형제 일곱 명이 일제히 와서 싸움을 도왔다. 마대, 방덕이 후군을 대적하여 막았다. 양부 등 일곱 명은 모두 마초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양부 자신은 다섯 번 창에 적중되었으나(찔렸으나) 여전히 죽음 무릅쓰고 싸웠다. 뒤에서 하후연의 대군이 쫓아오자 마초가 마침내 달아나는데 다만 방덕, 마대 등 육, 칠기만이 뒤를 따라갔을 뿐이었다.

 

夏侯淵自行安撫西諸州人民令姜敘等各各分守用車載楊阜赴許都見曹操操封阜為關內侯阜辭曰:「阜無捍難之功又無死難之節於法當誅何顏受職?」操嘉之卒與之爵

하후연은 직접 서쪽 여러 주에 가서 인민을 위로하고, 강서 등으로 하여금 각각 나누어 지키게 한 후 수레를 써서 양부를 싣고 허도에 나아가 조조를 뵈었다. 조조는 양부를 봉하여 관내후로 삼았다. 양부가 사양하여 말하기를 저는 난을 막은 공이 없고, 또 목숨을 바치는 절개도 없으니 법에는 죽임에 해당하는데 무슨 얼굴로 관직(작호)을 받겠습니까?”했다. 조조가 아름답게 여기고 마침내 작을 주었다.

 

卻說馬超與龐德馬岱商議逕往漢中投張魯張魯大喜以為得馬超則西可吞益州東可以拒曹操乃商議欲以女招超為婿大將楊柏諫曰:「馬超妻子遭慘禍皆超之貽害也主公豈可以女與之?」魯從其言遂罷招婿之議或以楊柏之言告知馬超超大怒有殺楊柏之意楊柏知之與兄楊松商議亦圖馬超之心

각설하고 마초와 방덕, 마대가 상의하여 지름길로 한중에 가 장노에게 들어갔다. 장노가 크게 기뻐하면서 마초를 얻었으니 곧 서쪽으로 익주를 병탄하고, 동쪽으로 조조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겨 이에 딸을 마초에게 주어 사위로 삼을 것을 상의하였다. 대장 양백이 간하여 말하기를 마초의 처자가 참화를 만난 것은 모두 마초가 해를 끼친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딸을 그에게 주려하십니까?”하니 장노가 그 말을 따라 마침내 사위로 삼는 논의를 그만두었다. 어떤 사람이 양백의 말을 마초에게 알렸다. 마초가 크게 노하여 양백을 죽이려는 뜻을 가졌다. 양백이 그것을 알고 형인 양송과 상의하여 또한 마초를 도모하려는(죽이려는) 마음을 가졌다.

 

正值劉璋遣使求救於張魯魯不從忽報劉璋又遣黃權到權先來見楊松:「東西兩川實為脣齒西川若破東川亦難保矣今若肯相救當以二十州相酬。」松大喜即引黃權來見張魯說脣齒利害更以二十州相謝魯喜其利從之巴西閻圃諫曰:「劉璋與主公世讎今事急求救詐許割地不可從也忽階下一人進曰:「某雖不才願乞一旅之師生擒劉備務要割地以還。」正是方看真主來西蜀又見精兵出漢中未知其人是誰且看下文分解

바로 이런 때를 맞이하여 유장은 장노에게 사자를 보내 구원을 청하였으나 장노가 따르지 않았다. 홀연히 유장이 또 황권을 보내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황권은 먼저 왔던 양송을 만나 말하기를 서천과 동천 두 천은 실로 순치(입술과 이)가 되니 서천이 만약 깨트려지면 동천을 또한 지키기 어렵습니다. 지금 만약 즐겨 구원한다면 마땅히 이십 주로 갚을 것입니다.”하니 양송이 크게 기뻐하며 곧 황권을 인도하여 장노를 만나 입술과 이의 이해를 말하고, 다시 이십 주로 사례하겠다는 것을 말하였다. 장노가 그 이로움을 기뻐하여 그것을 따랐다. 파서의 염포가 간하여 말하기를 유장과 주공은 대대로 원수인데 지금 일이 급하여 구원을 청하면서 거짓으로 땅을 떼어준다고 허락한 것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했다. 홀연히 계단 아래서 한 사람이 나와 말하기를 제가 비록 재능은 없으나 한 부대의 군대를 청하여 유비(유현덕)을 사로잡고 땅을 떼어주도록 하고 돌아오기를 원합니다.”했으니 바로 이러하다. 비로소 참된 주인이 서촉에 오는 것을 보았는데 또 정예 군대가 한중에서 나오는 것을 보겠구나.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겠으니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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