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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

제66회 관운장은 한 자루 칼을 차고 모임에 가고, 복 황후는 나라를 위해 삶을 버리다.

by 최인표 2021. 1. 15.

第六十六回關雲長單刀赴會伏皇后為國捐生

66회 관운장은 한 자루 칼을 차고 모임에 가고, 복 황후는 나라를 위해 삶을 버리다.

 

卻說孫權要索荊州張昭獻計曰:「劉備所倚重者諸葛亮耳其兄諸葛瑾今仕於吳何不將瑾老小執下使瑾入川告其弟令勸劉備交割荊州?『如其不還必累及我老小,』亮念同胞之情必然應允。」權曰:「諸葛瑾乃誠實君子安忍拘其老小?」昭曰:「明教知是計策自然放心。」

각설하고 손권이 형주를 되찾으려하자 장소가 계책을 올려 말하기를 유비(유현덕)가 중하게 의지하는 이는 제갈공명일 뿐입니다. 그 형 제갈근이 지금 오에서 벼슬하고 있습니다. 제갈근 노소를 잡아 가두고 제갈근으로 하여금 서천에 들어 가 그 동생에게 고하고, 유비(유현덕)을 권하여 형주를 떼어 주게 하지 않으십니까? ‘만일 돌려주지 않는다면 반드시 연루가 우리 노소에 미칠 것이다.’한다면 제갈공명은 동포의 정을 생각하여 응락할 것이 틀림없습니다.”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제갈근은 제갈근은 곧 성실한 군자인데 어찌 차마 그 노소를 구금할 수 있겠는가?”하니 장소가 말하기를 분명하게 이 계책을 알게하면 자연히 마음을 놓을 것입니다.”했다.

 

權從之召諸葛瑾老小虛監在府一面修書打發諸葛瑾往西川去不數日到了成都先使人報知玄德玄德問孔明曰:「令兄來此為何?」孔明曰:「來索荊州耳。」玄德曰;「何以答之?」孔明曰:「只須如此如此。」

손권이 그것을 따라 제갈근의 노소를 거짓으로 부에 가두어 두고, 한편으로 글을 써 제갈근을 서천에 파견하여 가게 하였다. 몇일 되지 않아 성도에 이르러 먼저 사람을 시켜 유현덕에게 알렸다. 유현덕이 제갈공명에게 물어 말하기를 형님으로 하여금 여기로 가게 한 것은 무엇을 위해서입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형주를 돌려달라고 왔을 뿐입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어떻게 답해야 합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반드시 여차여차 해야 합니다.”했다.

 

計會已定孔明出郭接瑾不到私宅逕入賓館參拜畢瑾放聲大哭亮曰:「兄長有事但說何故發哀?」瑾曰:「吾一家老小休矣!」亮曰:「莫非為不還荊州乎因弟之故執下兄長老小弟心何安兄休憂慮弟自有計還荊州便了。」

계획이 이미 정해지자 제갈공명은 성곽에 나가 제갈근을 영접하였다. 사택에 가지 않고 곧 손님이 묵는 숙소에 들어 가 참배하기를 마치자 제갈근이 소리 내어 크게 울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형님은 일이 있으면 다만 말씀하지 무슨 이유로 슬퍼하십니까?”하니 제갈근이 말하기를 우리 집안의 노소는 끝장났구나!”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형주를 돌려주지 않아서입니까? (동생:제갈공명)의 이유로 인하여 형님의 집안의 노소가 잡혀갔는데 저(동생)의 마음이 어찌 편안하겠습니까? 형님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동생)에게 계책이 있으니 형주는 곧 돌려주겠습니다.”했다.

 

瑾大喜即同孔明入見玄德呈上孫權書玄德看了怒曰:「孫權既以妹嫁我卻乘我不在荊州竟將妹子潛地取去情理難容我正要大起川兵殺下江南報我之恨卻還想來索荊州乎?」孔明哭拜於地:「吳侯執下亮兄長老小倘若不還吾兄將全家被戮兄死亮豈能獨生望主公看亮之面將荊州還了東吳全亮兄之情!」

제갈근이 크게 기뻐하며 곧 제갈공명과 함께 들어가 유현덕을 뵙고 손권의 글을 올렸다. 유현덕이 보기를 마치고 노하여 말하기를 손권은 이미 여동생을 나에게 시집보냈으면서도 내가 형주에 있지 않은 틈을 타고 마침내 여동생과 아들을 몰래 데려갔으니 인정과 도리상 용납할 수 없습니다. 내가 바로 크게 서천의 군대를 일으켜 강남으로 달려 내려가 나의 한을 갚으려 하였는데 도리어 형주를 돌려달라고 하는가?”했다. 제갈공명이 곡하며 땅에 엎드려 말하기를 오 후가 저의 형님의 집안의 노소를 잡고 있으니 만약 돌려주지 않는다면 우리 형님의 모든 가족이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형님이 죽고 제가 어찌 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주공께서는 저의 얼굴을 보아 형주를 동오에 돌려주어 저의 형님의 사정을 온전히 살펴주실 것을 바랍니다.”했다.

 

玄德再三不肯孔明只是哭求玄德徐徐曰:「既如此看軍師面分荊州一半還之將長沙零陵桂楊三郡與他。」亮曰:「既蒙見允便可寫書與雲長令交割三郡。」玄德曰:「子瑜到彼須用善言求吾弟吾弟性如烈火吾尚懼之切宜仔細。」

유현덕이 두 번 세 번 기꺼워하지 않으니 제갈공명이 곡하며 청할 뿐이었다. 유현덕이 천천히 말하기를 이미 이 같이 되었으니 군사의 얼굴을 보아 형주의 절반을 나누어 돌려주는데, 장사, 영릉, 계양 삼군을 그에게 줄 것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이미 허락을 입었으니 곧 글을 써서 관운장에게 주어 삼군을 떼어 주게 하십시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자유(제갈근)는 그곳(형주)에 이르거든 좋은 말을 써서 내 동생(관운장)에게 청하십시오. 내 동생은 성질이 타는 불과 같아 내가 오히려 그를 두려워합니다. 간절히 자세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했다.

 

瑾求了書辭了玄德別了孔明登途逕到荊州雲長請入中堂賓主相敘瑾出玄德書曰:「皇叔許先以三郡還東吳望將軍即日交割令瑾好回見吾主。」雲長變色曰:「吾與吾兄桃園結義誓共匡扶漢室荊州本大漢疆土豈得妄以尺寸與人?『將在外君命有所不受』。雖吾兄有書來我卻只不還。」

제갈근이 글을 구하여 유현덕을 하직하고, 제갈공명과 헤어져 길을 나서 급히 형주에 이르렀다. 관운장이 중당에 들기를 청하여 손님과 주인의 인사를 나누었다. 제갈근이 유현덕의 글을 내어주며 말하기를 황숙(유현덕)께서 우선 삼군을 동오에 돌려줄 것을 허락하셨으니 장군께서는 즉시 인도해주시어 저로 하여금 잘 돌아 가 우리 주인을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했다. 관운장이 얼굴색을 바꾸며 말하기를 나와 나의 형님이 도원에서 결의하여 함께 한나라를 바로잡아 돕기를 맹서하였습니다. 형주는 본래 대 한의 강토인데 어찌 망녕되이 한 자, 한 치라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장수가 밖에 있을 때는 임금의 명을 받지 않는 바가 있습니다.’ 비록 나의 형님의 글이 있으나 나는 도리어 돌려주지 못합니다.”했다.

 

瑾曰:「今吳侯執下瑾老小若不還荊州必將被誅望將軍憐之!」雲長曰:「此是吳侯譎計如何瞞得我過!」瑾曰:「將軍何太無目面?雲長執劍在手曰:「休再言此劍上並無面目!」關平告曰:「軍師面上不好看望父親息怒。」雲長曰:「不看軍師面上教你回不得東吳!」

제갈근이 말하기를 지금 오 후가 나의 가족을 잡고 있는데 만약 형주를 돌려부지 않는다면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바라건데 장군께서는 불쌍하게 여기십시오.”했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이는 오 후의 간사한 계책인데 어찌 나를 속일 수 있으리오!”했다. 제갈근이 말하기를 장군께서는 어찌 너무 면목(체면)이 없습니까?”하니 관운장이 검을 손에 잡고 말하기를 두 말 하지 마시오! 이 검도 면목이 없습니다.” 했다. 관평이 말하기를 군사의 얼굴이 아름답지 않게 되니(체면을 보아) 아버지께서는 노기를 그치시기를 바랍니다.”했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군사의 면상(체면) 보지 않았다면 너는 동오에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을 것이다.”했다.

 

瑾滿面羞慚急辭下船再往西州見孔明孔明已自出巡去了瑾只再見玄德哭告雲長欲殺之事玄德曰:「吾弟性急極難與言子諭可暫回容吾取了東川漢中諸郡調雲長往守之那時方得交付荊州。」瑾不得已只得回東吳見孫權具言前事孫權大怒曰:「子瑜此去反覆奔走莫非皆是諸葛亮之計?」瑾曰:「非也吾弟亦哭告玄德方許將三郡先還又無奈雲長恃頑不肯。」孫權曰;「既劉備有先還三郡之言便可差官前去長沙零陵桂楊三郡赴任且看如何。」瑾曰:「主公所言極是。」

제갈근이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가득한 채 급히 하직하고 배를 타고 다시 서주(서촉)로 가서 제갈공명을 뵈려하였는데 제갈공명은 이미 둘러보러 간 뒤였다. 제갈근이 다시 유현덕을 뵙고 곡하며 관운장이 죽이고자하였던 일을 말하였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내 동생의 성격이 급하여 지극히 함께 말하기 어렵습니다. 자유(제갈근)는 잠시 돌아 가 있으면, 내가 동천과 한중의 여러 군을 취한 후 관운장으로 하여금 가서 지키게 한 후 그 때 비로소 형주를 내 주겠습니다.”했다. 제갈근이 부득이 동오로 돌아 가 손권을 뵙고 앞의 일을 모두 말하였다. 손권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자유(제갈근)가 여기를 떠나 바쁘게 달리기를 반복하게 한 것은 모두 제갈공명의 계책이 아니오?”했다. 제갈근이 말하기를 아닙니다. 내 동생이 또한 곡하며 유현덕에게 고하여 비로소 삼군을 우선 돌려 줄 것을 허락하였으나, 또한 관운장이 완고하여 기꺼이 하지 않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임 유현덕이 우선 삼군을 돌려 준다는 말이 있었으면 곧 관리를 보내 먼저 장사, 영릉, 계양 삼군에 부임하게 한 뒤 어떻게 하는지 볼 것이다.”했다. 제갈근이 말하기를 주공의 말한 바가 지극히 옳습니다.”했다.

 

權乃令瑾取回老小一面差官往三郡赴任不一日三郡差去官吏盡被逐回告孫權曰:「關雲長不肯相容連夜趕逐回東吳遲後者便要殺。」孫權大怒差人召魯肅責之曰:「子敬昔為劉備作保借吾荊州今劉備已得西州不肯歸還子敬豈得坐視?」肅曰:「肅已思得一計正欲告主公。」

손권이 곧 제갈근으로 하여금 노소(가족)을 데리고 돌아가게 하고, 한편으로 관리를 보내 삼군에 가서 부임하게 하였다. 하루가 되지 않아 삼군에 보냈던 관리들이 모두 나 돌아와 손권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관운장이 기꺼이 서로 용납하지 않고 밤새 동오에 돌아가도록 쫓아내면서 뒤처지는 자는 곧 죽일 것이다. 했습니다.”하니 손권이 크게 노하여 사람을 보내 노숙을 불러 그를 꾸짖어 말하기를 자경(노숙)이 옛날 유비(유현덕)의 보증인이 되어 우리 형주를 빌려주었습니다. 지금 유비(유현덕)가 이미 서주(서촉)를 얻었는데도 기꺼이 돌려주지 않습니다. 자경(노숙)은 어찌 앉아서 보고만 있습니까?”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제가 이미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하여 바로 주공께 말씀 드리려 하였습니다.”했다.

 

權問何計肅曰:「今屯兵於陸口使人請關雲長赴會若雲長肯來以善言說之如其不從伏下刀斧手殺之如彼不肯來隨即進兵與決勝負奪取荊州便了。」孫權曰:「正合吾意可即行之。」闞澤進曰:「不可關雲長乃世之虎將非等閒可及恐事不諧反遭其害。」孫權怒曰:「若如此荊州何日可得!」便命魯肅速行此計肅乃辭孫權至陸口召呂蒙甘寧商議設宴於陸口寨外臨江亭上修下請書選帳下能言快語一人為使登舟渡江江口關平問了遂引使入荊州叩見雲長具道魯肅相邀赴會之意呈上請書雲長看畢謂來人曰:「既子敬相請我明日便來赴宴汝可先回。」

손권이 무슨 계책인지를 물으니 노숙이 말하기를 지금 육구에 군대를 주둔학고, 사람을 시켜 관운장을 회합에 참석하도록 천합니다. 만약 관운장이 기꺼이 온다면 좋은 말로 그를 설득하고, 만일 따르지 않는다면 숨겨놓았던 도부수가 그를 죽이게 하면 도비니다. 만약 그가 기꺼이 오지 않으면 따라 곧 진군시켜 승부를 결단하여 형주를 탈취합니다.”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바로 내 뜻에 부합하니 즉시 행할 수 있다.”했다. 감택이 나와 말하기를 안 됩니다. 관운장은 곧 당대의 범 같은 장수로 호락호락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을 알맞게 하지 않으면 도리어 해를 만날까 두렵습니다.”했다. 손권이 노하여 말하기를 만약 이 같다면 형주는 어느 날 얻을 수 있단 말인가?”하고는 곧 노숙에게 명하여 속히 이 계책을 실행하게 하였다. 노숙이 이에 손권을 하직하고 육구에 이르러 여몽, 감녕을 불러 상의하고, 육구 영채 밖 임강정 위에 베풀고 초청하는 글을 써서 부하 가운데 말솜씨가 뛰어난 한 사람을 뽑아 사자로 삼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너게 하였다. 강 입구에서 관평이 묻고는 마침내 사자를 인도하여 형주에 들어가 관운장을 만나게 하니 노숙이 회합에 초대한다는 뜻을 모두 말하고 초청하는 글을 올렸다. 관운장이 보기를 마치고 온 사람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미 자경(노숙)이 청하였으니 내가 내일 곧 연회에 갈 것이다. 너는 먼저 돌아가라.”했다.

 

使者辭去關平曰:「魯肅相邀必無好意父親何故許之?」雲長笑曰:「吾豈不知耶此是諸葛瑾回報孫權說吾不肯還三郡故令魯肅屯兵陸口邀我赴會便索荊州吾若不往道吾怯矣吾來日獨駕小舟只用親隨十餘人單刀赴會看魯肅如何近我。」平諫曰:「父親奈何以萬金之軀親蹈虎狼之穴恐非所以重伯父之寄託也。」雲長曰:「吾於千槍萬刀之中矢石交攻之際匹馬縱橫如入無人之境豈憂江東群鼠乎!」馬良亦諫曰:「魯肅雖有長者之風但今事急不容不生異心將軍不可輕往。」雲長曰:「昔戰國時趙人藺相如無縛雞之力於澠池會上覷秦國君臣如無物況吾曾學萬人敵者乎既已許諾不可失信。」良曰:「縱將軍去亦當有準備。」雲長曰:「只教吾兒選快船十隻藏善水軍五百於江上等侯看吾紅旗起處便過江來。」平領命自去準備

사자가 하직하고 갔다. 관평이 말하기를 노숙의 초대는 좋은 뜻이 아님이 틀림없습니다. 아버지는 무엇 때문에 그것을 허락하셨습니까?”하니 관운장이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어찌 알지 못하겠는가? 이는 제갈근이 돌아 가 손권에게 보고하여 내가 기꺼이 삼군을 돌려주지 않음을 말하였기 때문에 노숙으로 하여금 육구에 군대를 주둔하고 나를 회합에 초대하여 형주를 찾으려는 것이다. 내가 만약 가지 않는다면 내가 겁을 낸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내일 홀로 작은 배를 타고 가는데 다만 십여 명만을 따르게 하고 칼 한 자루를 차고 회합에 나아가 노숙이 아를 어떻게 가까이하는지(어떻게 대하는지)를 볼 것이다.”했다. 관평이 간하여 말하기를 아버지께서는 어찌 만금의 몸으로서 친히 호랑이와 승냥이의 굴을 밟으려 하십니까? 백부의 부탁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닐까 두렵습니다.”했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내가 천개의 창과 만개의 칼 안에서 화살과 돌이 서로 칠 때도 홀로 말 한 마리에 타고 종횡으로 달려 사람이 없는 경계와 같이 하였는데 어찌 강동의 쥐새끼 무리를 근심하겠는가!”했다. 마량이 또한 간하여 말하기를 노숙이 비록 장자의 기풍이 있으나 지금은 일이 급하면 다른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군께서는 가벼이 가셔서는 안 됩니다.”했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옛날 전국시대 조나라 사람 인상여는 닭을 묶을 힘도 없었지만 면지의 회합에서 진나라의 임금과 신하 보기를 물건이 없는 듯이 여겼거늘 하물며 내가 일찍이 만인을 대적하는 법을 배움에 있어서랴. 이미 내가 허락하였으니 신의을 잃을 수 없다.”했다. 마량이 말하기를 장군은 가시더라도 준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했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나의 아들로 하여금 빠른 배 열 척을 뽑아 좋은 수군 오백 명을 감추어 강 위에서 기다리라. 내가 붉은 깃발을 드는 것을 보면 곧 강을 건너오라.” 했다. 관평이 명령을 받고 준비하러 갔다.

 

卻說使者回報魯肅說雲長慨然應允來日准到肅與呂蒙商議:「此來若何?」蒙曰:「彼帶軍馬來某與甘寧各人領一軍伏於岸側放砲為號準備廝殺如無軍來只於庭後伏刀斧手五十人就筵間殺之。」

각설하고 사자가 돌아 와 노숙에게 보고하기를 관운장이 개연히 응락하고 내일 이를 것이라 보고하였다. 노숙과 여몽이 상의하기를 여기에 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니 여몽이 말하기를 그가 군마를 이끌고 온다면 저와 감녕이 각각 일군씩을 거느리고 강 옆에 숨어 있다가 포를 쏘는 소리를 신호로 삼아 싸움을 준비하고, 만일 군대가 오지 않는다면 다만 뜰 뒤에 도부수 오십 명을 숨겨두었다가 연회에 참석하는 사이에 그를 죽이겠습니다.”했다.

 

計會已定次日肅令人於岸口遙望辰時後見江面上一隻船來梢公水手只數人一面紅旗風中招颭顯出一個大字來船漸近岸見雲長青巾綠袍坐於船上傍邊周倉捧著大刀八九個關西大漢各跨腰刀一口魯肅驚疑接入亭內敘禮畢入席飲酒舉盃相勸不敢仰視雲長談笑自若

계획이 정해졌다. 다음 날 노숙은 사람을 시켜 강변에서 멀리 바라보게 하였다. 진시 후반 쯤 강 위에 한 척의 배가 오는 것을 보았는데 뱃사공과 갑판원 이 몇 명이었고, 한 쪽에는 붉은 깃발이 바람 속에 휘날리는데 하나의 큰 자가 드러났다. 배가 점점 강가에 가까워지니 관운장이 푸른 건을 쓰고 녹색의 전포를 입은 채 배 위에 앉아 있었고, 옆에는 주창이 큰 칼을 들고 있었으며, 팔 구명의 관서 대한이 각각 허리에 칼 하나를 차고 있는 것을 보았다. 노숙이 놀라고 의심하면서 영접하여 정자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예를 베풀기를 마치고 자리에 들어 가 술을 마시는데 잔을 들어 서로 권하였으나 감히 쳐다보지 못하였다. 관운장은 담소하며 태연자약하였다.

 

酒至半酣肅曰:「有一言訴與君侯幸垂聽焉昔日令兄皇叔使肅於吾主之前保借荊州暫住約於取西川之後歸還今西川已得而荊州未還得毋失信乎?」雲長曰:「此國家大事筵間不必論之。」肅曰:「吾主只區區江東之地而肯以荊州相借者為念君侯等兵敗遠來無以為資故也今已得益州則荊州自應見還乃皇叔但肯先割三郡而君侯又不從恐於理上說不去。」

술이 얼큰해지자 노숙이 말하기를 한 마디 말을 군후께 드릴 것이 있는데 들어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지난날 (관운장의)형님인 황숙께서 저(노숙)를 시켜 우리 주군의 앞에서 형주를 빌려 잠시 머물 것을 보증하게 하시고, 서천을 취한 후에 돌려 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서천을 이미 얻었으나 형주를 돌려주지 않으시니 신의를 잃은 것이 아니겠습니까?”했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이는 나라의 대사이므로 연회 사이에 논의해서는 안 됩니다.”하니 노숙이 말하기를 나의 주공은 다만 작은 강동의 땅뿐임에도 기꺼이 형주를 빌려준 것은 그대 군후무리들의 군대가 패하고 멀리서 와서 의지할 곳이 없는 것을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미 익주를 얻었으니 곧 형주를 돌려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에 황숙(유현덕)께서는 다만 삼군을 먼저 할양하신다 하였는데 군후께서 또한 따르지 않으시니 이치상 맞지 않을까 두렵습니다.”했다.

 

雲長曰:「烏林之役左將軍親冒矢石戮力破敵豈得徒勞而無尺土相資今足下復來索地耶?」肅曰:「不然君侯始與皇叔同敗於長坂計窮力竭將欲遠竄吾主矜愍皇叔身無處所不愛土地使有所託足以圖後功而皇叔愆德隳已得西川又占荊州貪而背義恐為天下所恥笑惟君侯察之。」雲長曰:「此皆吾兄之事非某所宜與也。」肅曰:「某聞君侯與皇叔桃園結義誓同生死皇叔即君侯也何得推托乎?」

관운장이 말하기를 오림의 전투에서 좌장군이 친히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협력하여 적을 깨트렸으니 어찌 헛수고만 하고, 한 자 땅의 의지함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그대가 다시 와서 땅을 찾으려합니까?”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군후가 처음 황숙과 같이 장판에서 패하여 계책은 막히고 힘은 다하여 장차 멀리 도망하려할 때 우리 주공은 황숙 자신이 처할 바가 없는 것을 안쓰럽고 불쌍하게 여겨 토지를 아끼지 않고, 의탁할 바가 있게 하여 충분히 후에 공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황숙께서는 덕을 허물고 우호를 위태롭게 하였습니다. 이미 서천을 얻고 또한 형주를 점령하여 욕심으로 의리를 저버리니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두렵습니다. 군후께서는 그것을 살피십시오.”했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이는 모두 나의 형님의 일로 내가 마땅히 줄 바가 아닙니다.”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군후와 황숙은 도원에서 결의하여 살고 죽는 것을 함께하기로 맹세했다고 합니다. 황숙은 곧 군후이니 어찌 핑계를 대어 거절하십니까?”했다.

 

雲長未及回答周倉在階下厲聲言曰:「天下土地惟有德者居之豈獨是汝東吳當有耶?」雲長變色而起奪周倉所執大刀立於庭中目視周倉而叱曰:「此國家之事汝何敢多言可速去!」倉會意先到岸口把紅旗一招關平船如箭發奔過江東來雲長右手提刀左手挽住魯肅手佯推醉曰:「公今請吾赴宴莫提起荊州之事吾今已醉恐傷故舊之情他日令人請公到荊州赴會另作商議。」

관운장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주창이 계단아래 있다가 노한 소리로 말하기를 천하의 토지는 덕이 있는 이가 소유한다. 어찌 유독 너희 동오가 소유하는 것만 마땅하다고 하는가?”했다. 관운장이 얼굴색을 바꾸면서 일어나 주창이 잡고 있던 큰 칼을 잡아 뜰 가운데 세우고, 주창을 보며 질책하여 말하기를 이는 나라의 일인데 네가 어찌 감히 말을 많이 하는가! 속히 떠나라!”했다. 주창이 뜻을 알고는 먼저 강변에 이르러 붉은 깃발을 잡아 한 번 휘둘렀다. 관평의 배가 화살과 같이 강동으로 건너왔다. 관운장은 오른 손에 칼을 잡고, 왼손으로는 노숙의 손을 막으며 거짓으로 취한척하며 말하기를 공은 지금 나를 연회에 청한 것이니 형주의 일을 제기하지 말아주시오. 내가 지금 이미 취하였으니 옛 정을 해칠까 두렵습니다. 다른 날 사람을 시켜 공을 형주의 회합에 이르기를 청할 터이니 다시 상의하십시다.”했다.

 

魯肅魂不附體被雲長扯至江邊呂蒙甘寧各引本部軍欲出見雲長手提大刀親握魯肅恐肅被傷遂不敢動雲長到船邊卻纔放手早立於船首與魯肅作別肅如癡似呆看關公船已乘風而去後人有詩讚關公曰藐視吳臣若小兒單刀赴會敢平欺當年一段英雄氣尤勝相如在澠池。」

노숙은 혼이 몸에 붙어있지 않고 관운장에게 끌려 강변에 이르렀다. 여몽, 감녕이 각각 본부의 군대를 이끌고 나가려하다 관운장이 손에 큰칼을 들고 직접 노숙을 잡고 있는 것을 보고 노숙이 상할 것을 두려워하여 마침내 감히 움직이지 못하였다. 관운장은 뱃 가에 이르러 겨우 손을 놓고 재빨리 뱃머리에 서서 노숙과 작별하였다. 노숙은 바보처럼 관공(관운장)의 배가 바람을 타고 떠나는 것을 보았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관공(관운장)을 기려 말하기를 오나라 신하를 얕보아 어린애처럼 여기더니/ 칼 한 자루를 가지고 회합에 나가서도 업신여기네./ 그해 한 토막 영웅의 기운은 /민지에 있던 인상여보다 낫네./” 했다.

 

雲長自回荊州魯肅與呂蒙共議:「此計又不成如之奈何?」蒙曰:「可申報主公起兵與雲長決戰。」肅即使人申報孫權權聞之大怒商議起傾國之兵來取荊州忽報曹操又起三十萬大軍來也權大驚且教魯肅休惹荊州之兵移兵向合淝濡須以拒曹操

관운장은 형주로 돌아왔다. 노숙과 여몽은 함께 의논하기를 이 계책이 또한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하니 여몽이 말하기를 주공에게 보고하고, 군대를 일으켜 관운장과 결전해야 합니다.”했다. 노숙이 곧 사람을 시켜 손권에게 보고하였다. 손권이 그것을 듣고 크게 노하여 나라가 기우려 군대를 일으켜 가서 형주를 취할 것을 상의하였다. 홀연히 조조가 또한 삼십만 대군을 일으켜 온다고 보고하였다. 손권이 크게 놀라 또 노숙으로 하여금 형주와 싸우는 것을 막고 군대를 옮겨 합비와 유수로 향하게 하고, 조조를 막게 하였다.

 

卻說操將欲起程南征參軍傅幹字彥材上書諫操書略曰:「幹聞用武則先威用文則先德威德相濟而後王業成往者天下大亂明公用武攘十平其九今未承王命者吳與蜀耳吳有長江之險蜀有崇山之阻難以威戰愚以為且宜增修文德按甲寢兵息軍養士待時而動今若舉數十萬之眾屯長江之濱倘賊憑險深藏使我士馬不得逞其能奇變無所用其權則天威屈矣惟明公詳察焉。」

각설하고 조조가 남정하러 출발하려하는데 참군 부간, 자는 언림이 글을 올려 조조에게 간하였다. 글을 간추리면 제가(부간) 들으니 무력을 씀에는 곧 위엄을 먼저 보이고, 문을 쓸 때는 곧 덕을 먼저 베풀고, 위엄과 덕이 서로 이루어진 후에 왕업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과거 천하가 어지러워졌을 때 명공(조조)께서 무력을 써서 그것을 물리쳐 열 가운데 아홉을 평정하셨습니다. 지금 아직 왕의 명을 받들지 않은 자는 오와 촉뿐입니다. 오에는 장강의 험함이 있고, 촉에는 숭산의 막힘이 있으니 위엄으로서 싸우기는 어렵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또한 마땅히 더욱 문덕을 닦아 갑옷을 풀고 전쟁을 종식시키며, 군대를 쉬게 하고 선비를 길러 때를 길러 움직여야 합니다. 지금 만약 수십만의 무리를 들어 장강의 가에 주둔하였다가 만약 도적이 험함에 의지하여 깊이 숨어 우리 군사로 하여금 그 능력을 통하지 못하게 하여 기이한 변화에 그 방편을 쓸 바가 없게 한다면 곧 하늘 같은 위엄이 굽혀지게 될 것입니다. 명공(조조)께서는 이를 자세히 살피십시오.”했다.

 

曹操覽畢遂罷南征興設學校禮文士於是侍中王粲杜襲衛凱和洽四人議欲尊曹操為魏王中書令荀攸曰:「不可丞相官至魏公榮加九鍚位已極矣今又進陞王位於理不可。」曹操聞之怒曰:「此人欲效荀彧耶!」荀攸知之憂憤成疾臥病十數日而卒亡年五十八歲操厚葬之遂罷魏王事

조조가 보기를 마치고 마침내 남정을 그만두고 학교를 개설하고 문사를 부르고 예로 대우하였다. 이에 시중 왕찬, 두습, 위개, 화흡 네 사람이 조조를 높여 위왕을 삼고자하는 것을 의논하였다. 중서령 순유가 말하기를 안 됩니다. 승상의 관직이 위공에 이르렀고, 영예는 구석을 더하였으니 지위가 이미 지극합니다. 지금 또 왕의 지위에 오른다는 것은 이치상 해서는 안 됩니다.”했다. 조조가 그것을 듣고 모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이 순욱을 본받으려 하는구나! ”하니 순유가 그것을 알고는 근심하고 분해하다가(울분에 차) 병이 들었다. 병이 든 지 십수일 만에 죽었는데 나이는 오십팔세였다. 조조가 후하게 장례하고 마침내 위왕의 일을 그만두었다.

 

一日曹操帶劍入宮獻帝正與伏后共坐伏后見操來慌忙起身帝見曹操戰慄不已操曰:「孫權劉備各霸一方不尊朝庭當如之何?」帝曰:「盡在魏公裁處。」操怒曰:「陛下出此言外人聞之只道吾欺君也。」帝曰:「君若肯相輔則幸甚不爾願垂恩相捨。」

하루는 조조가 검을 차고 궁에 들어갔는데 헌제가 복황후와 함께 앉아 있었다. 복황후는 조조가 오는 것을 보고 황망히 몸을 일으켰다. 황제가 조조를 보고 두려워하기를 그치지 못하였다. 조조가 말하기를 손권, 유비(유현덕)이 각각 한 지방의 우두머리가 되어 조정을 높이지 않으니 어떻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까?”했다. 황제가 말하기를 모두 위공이 판단하여 처리함에 달려 있습니다.”하니 조조가 노하여 말하기를 폐하께서 이런 말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들으면 내가 임금을 업신여긴다고 말할 것입니다.”하니 황제가 말하기를 그대가 만약 기꺼이 도와주신다면 곧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당신이 은혜를 베풀어 버리기를 원하지 않습니다.(은혜를 드리워 버리지 않기를 원합니다.)”했다.

 

操聞言怒目視帝恨恨而出左右或奏帝曰:「近聞魏公欲自立為王不久必將篡位。」帝與伏后大哭后曰:「妾父伏完常有殺操之心妾今當修書一封密與父圖之。」帝曰:「昔董承為事不密反遭大禍今又恐泄漏朕與汝皆休矣!」后曰:「旦夕如坐針氈似此為人不如早亡妾看宦官之忠義可託者莫如穆順當令寄此書。」乃即召穆順入屏後退去左右近侍帝后大哭告順曰:「操賊欲為魏王早晚必行篡奪之事朕欲令后父伏完密圖此賊而左右之人俱賊心腹無可託者欲汝將皇后密書寄與伏完量汝忠義必不負朕。」順泣曰:「臣感陛下大恩敢不以死報臣即請行。」

조조가 말을 듣고 노한 눈으로 황제를 보고 분개하고 원망하며 나갔다. 좌우의 어떤 사람이 황제에게 말하기를 최근에 들으니 위공이 스스로 서서 왕이 되고자 한다 하니 오래지 않아 반드시 (왕의) 지위를 빼앗을 것입니다. ”했다. 황제와 복황후가 크게 울었다. 황후가 말하기를 (황후)의 아버지 복완은 평소 조조를 죽이려는 마음이 있으니 첩(황후)이 지금 글 한 통을 써서 비밀리에 아버지에게 주어 그것을(조조를 죽이는 일) 도모하게 하게 하겠습니다.”했다. 황제가 말하기를 옛날 동승은 일이 탄로나 도리어 큰 화를 만났는데 지금 또한 누설되어(탄로나) 짐과 당신(황후)모두 끝일 것이오!”했다. 황후가 말하기를 아침저녁이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으니 이 같으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일찍 죽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황후)이 환관의 충의를 보니 부탁할만한 자는 목순 만한 이가 없으니 이 글을 부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했다. 이에 곧 목순능 불러 병풍 뒤로 들어오게 하고 좌우 근시를 물러나게 하였다. 황제와 황후가 크게 울면서 목순에게 말하기를 조조 도적이 위왕이 되고자 하니 조만간에 반드시 찬탈의 일을 행할 것이다. 짐은 황후의 아버지 복완으로 하여금 비밀리에 이 도적을 도모하게 하고자 하나 좌우의 사람들이 모두 도적의 심복이라 부탁할 만한 자가 없다. 너는 황후의 밀서를 가지고 복완에게 전해 주게 하고자 한다. 너의 충의가 짐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했다. 목순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신이 폐하의 큰 은혜를 받았는데 감히 죽음으로서 갚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이 곧 가기를 청합니다.”했다.

 

后乃修書付順順藏書於髮中潛出禁宮逕至伏完宅將書呈上完見是伏后親筆乃謂穆順曰:「操賊心腹甚眾不可遽圖除非江東孫權西川()二處起兵於外操必自往此時卻求在朝忠義之臣一同謀之內外夾攻庶可有濟。」順曰:「皇丈可作書覆()帝后求密詔諳遣人往吳蜀二處令約會起兵討賊救主。」伏完即取紙寫書付順順乃藏於頭髻內辭完回宮

황후가 이에 글을 써서 목순에게 부탁하였다. 목순이 글을 머리털 안에 감추고 몰래 황궁을 나와 지름길로 복완의 집에 이르러 글을 바쳤다. 복완이 황후의 친필임을 보고는 곧 목순에게 일러 말하기를 조조 도적의 심복이 매우 많으니 대번에 도모할 수 없다. 다만 강동의 손권과 서천의 유비(유현덕) 두 곳이 밖에서 군대를 일으켜야만 하고, 조조는 반드시 스스로 갈 것이다. 이 때 도리어 조정에 있는 충의의 신하들을 구하여 함께 도모해야 한다. 안팎이 협공하면 거의 이룰 수 있을 것이다.”했다. 목순이 말하기를 황제의 장인께서는 복황후에게 글을 써서 밀조를 청하고, 몰래 사람을 오와 촉 두 곳에 보내 군대를 일으킬 약속을 하게 하시면 도적을 토벌하고 황제를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복완이 종이를 가져다 글을 써서 목순에게 주었다. 옥순이 이에 머리 상투 안에 감추고 복완을 하직하고 궁에 돌아왔다.

 

原來早有人報知曹操操先於宮門等侯穆順回遇曹操操問:「那裡去來?」順答曰:「皇后有病命求醫去。」操曰:「召得醫人何在?」順曰:「還未召至。」操喝左右遍搜身上並無夾帶放行忽然風吹落其帽操又喚回取帽視之遍觀無物還帽令戴穆順雙手倒戴其帽操心疑令左右搜其頭髮中搜出伏完書來操看時書中言欲結連孫劉為外應操大怒執下穆順於密室問之順不肯招操連夜點甲兵三千圍住伏完私宅老幼並皆拏下搜出伏后親筆之書隨將伏氏三族盡皆下獄平明使御林軍郗慮持節入宮先收皇后璽綬

알고보니 재빨리 어떤 사람이 조조에게 보고하였다. 조조는 먼저 궁문에서 기다렸다. 목순이 돌아가다 조조를 만났다. 조조가 묻기를 어디에 갔다 오는가?”하니 목순이 답하여 말하기를 황후께서 병이 있어 의원을 구할 것을 명하여 갔습니다.”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부른 의원은 어디에 있는가?”하니 목순이 말하기를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했다. 조조가 좌우에게 소리쳐 두루 몸을 수색하게 하였으나 모두 숨긴 것이 없자 놓아 가게 하였다. 홀연히 바람이 불어 (머리에 쓴)관이 떨어졌다. 조조가 또한 불러 세우고는 관을 취하여 그것을 보았으나 두루 보아도 물건이 없자 관을 돌려주고 쓰게 하였다. 목순이 두 손으로 그 관을 거꾸로 썼다. 조조가 마음으로 의심하여 좌우로 하여금 그 머리카락 안을 찾게 하였더니 복완의 글을 찾아내어 왔다. 조조가 이를 보니 글 안에 손권, 유현덕과 연결하여 밖에서 응할 것을 말하였다. 조조가 크게 노하여 목순을 잡아 밀실에서 물으니 목순이 기꺼이 말하지 않았다. 조조는 밤을 새워 군대 삼천을 점검하여 복원의 개인 집을 포위하고 늙은이에서 어린애까지 모두 잡고, 복황후가 직접 쓴 글을 찾아내고 이어서 복씨 삼족을 모두 감옥에 가두었다. 날이 밝자 어림군 치려로 하여금 부절을 지니고 궁에 들어 가 먼저 황후의 새수(황후의 직인)를 거두게 하였다.

 

是日帝在外殿見郗慮引三百甲兵直入帝問曰:「有何事?」慮曰:「奉魏公命收皇后璽。」帝知事泄心膽皆碎慮至後宮伏后方起慮便喚管璽綬人索取玉璽而出伏后情知事發便於殿後椒房內夾壁中藏躲

이날 황제는 외전에 있다가 치려가 삼백 영의 군대를 이끌고 바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황제가 묻기를 무슨 일이 잇는가?”하니 치려가 말하기를 위공(조조)의 명을 받들어 황후의 직인을 거둡니다.”했다. 황제는 일이 누설되었음을 알고 심장과 쓸개가 모두 부서졌다. 치려가 후궁에 이르니 황후가 막 일어났다. 치려가 곧 새수(황후의 직인)을 관리하는 사람을 불러 옥새를 찾아 가지고 나갔다. 복황후는 일이 발각된 사정을 알고는 곧 전 뒤 초방 안 벽 안에 숨었다.

 

少頃尚書令華歆引五百兵入到後殿問宮人:「伏后何在?」宮人皆推不知歆教甲兵打開朱戶尋覓不見料在壁中便喝甲士破壁搜尋歆親自動手揪后頭髻后曰:「望免我一命!」歆叱曰:「汝自見魏公訴去!」后披髮跣足二甲士推擁而出

조금 지나 상서령 화흠이 오백의 군대를 이끌고 후전에 이르러 궁인에게 묻기를 복황후는 어디에 계시는가?”하니 궁인 모두 알지 못하였다. 화흠이 군대로 하여금 주호를 쳐서 열 개하고 찾았으나 보이지 않자 벽 안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곧 갑사에게 외쳐 벽을 부수고 찾게 하였다. 화흠이 직접 손을 움직여 황후의 머리 상투를 모아(머래채를 잡아) 끌고 나왔다. 황후가 말하기를 내 한 목숨을 면할 것을(내 한 목숨 살려주기를) 바라오!”했다. 화흠이 질책하여 말하기를 너는 스스로 위공을 뵙고 말래 보시오!”했다. 황후는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맨발로 두 갑사에게 밀려(끌려) 나왔다.

 

原來華歆素有文名向與邴原管寧相友善時人稱三人為一龍華歆為龍頭原為龍腹管寧為龍尾一日寧與歆共種園蔬地見金寧揮鋤不顧歆拾而視之然後擲下又一日寧與歆同坐觀書聞戶外傳呼之聲有貴人乘軒而過寧端坐不動歆棄書往觀寧自此鄙歆之為人遂割席分坐不復與之為友後來管寧避居遼東常帶白帽坐臥一樓足不履地終身不肯仕魏而歆乃先事孫權後歸曹操至此乃有收捕伏皇后一事後人有詩歎華歆曰華歆當日逞兇謀破壁生將母后收助虐一朝添虎翼罵名千載笑龍頭

알고 보니 화흠은 평소 문필로 이름이 있어 과거 병원, 관녕과 서로 좋은 벗이었다. 그 때 사람들이 세 사람을 일컬어 일룡이라 하였는데 화흠은 용머리가 되고, 병원은 용의 배가 되고, 관녕은 용의 꼬리라 하였다. 하루는 관녕과 화흠이 함께 채전에 채소를 심으려 호미로 땅을 파다 금을 보았다. 관녕은 호미를 휘두르느라 돌아보지 않았고, 화흠이 주워 보고는 던져버렸다. 또 하루는 관녕과 화흠이 같이 앉아 글을 보고 있을 때 문밖에서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데 어떤 귀인이 가마를 타고 지나고 있었다. 관녕이 단정히 앉아 움직이지 않았으나 화흠은 글을 버리고 가서 보았다. 관녕은 이로부터 화흠의 사람됨이 비루하다고 여겨 마침내 자리를 갈라 나누어 앉고는 다시 더불어 벗하지 않았다. 훗날에 관녕은 피하여 요동에서 살면서 항상 흰 관을 쓰고, 한 루에 앉고 누웠으며, 발은 땅을 밟지 않고 죽을 때까지 위나라에서 벼슬하지 않았다. 하흠은 곧 손권을 섬기다 후에는 조조에게 귀의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황후를 체포하는 한 일이 있었던 것이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화흠을 한탄하여 말하기를 화흠이 그날 흉측한 일을 저질러/벽을 부수고 산채로 모()후를 잡았다./사나움을 도와 하루아침 범에게 날개를 달아주니/더러운 이름 천년이 지나도 용머리를 비웃는다./” 했다.

 

又有詩讚管寧曰﹕「遼東傳有管寧樓人去樓空名獨留笑殺子愉貪富貴豈如白帽自風流。」

또 시로 관녕을 기린 것이 있는데 말하기를 요동에 관녕의 루가 있다 전하는데/사람은 떠나고 루의 빈이름 홀로 남았다./그대 구차히 부귀 탐하는 것을 비웃었으니/어찌 흰 관을 쓰고 바람 따라 흐르는 것과 같겠는가?/”했다.

 

且說華歆將伏后擁至外殿帝望見后乃下殿抱后而哭歆曰:「魏公有命可速行!」后哭謂帝曰:「不能復相活耶?」帝曰:「我命亦不知在何時也!」甲士擁后而去帝搥胸大慟見郗慮在側帝曰:「郗公天下寧有是事乎!」哭倒在地郗慮令左右扶帝入宮

각설하고 화흠이 복황후를 끌고 외전에 이르렀다. 황제가 황후를 바라보고는 곧 전에서 내려가 황후를 껴안고 곡하였다. 화흠이 말하기를 위공의 명이 잇으니 속히 가야 할 것이오.”하니 황후가 울면서 황제게 말하기를 다시 살려 줄수 없겠습니까?”했다. 황제가 말하기를 내 목숨 또한 어느 때 있을지 알지 못하오.”했다. 갑사가 황후를 둘러싸고 가니 황제가 가슴을 치면서 크게 목놓아 울었다. 치려가 옆에 있자 황제가 말하기를 치공! 천하에 어찌 이러한 일일이 있단 말이오!”하고 곡하며 땅에 엎어졌다. 치려가 좌우로 하여금 황제를 부축하여 궁에 들어가게 하였다.

 

華歆拏伏后見操操罵曰:「吾以誠心待汝等汝等反欲害我耶吾不殺汝汝必殺我。」喝左右亂捧打死隨即入宮將伏后所生二子皆酖殺之當晚將伏完穆順等宗族二百餘口皆斬於市朝野之人無不驚駭時建安十九年十一月也後人有詩歎曰:「曹瞞兇殘世所無伏完忠義欲何如? 可憐帝后分離處不及民間與夫。」

화흠은 황후를 잡아 조조를 만났다. 조조가 욕하며 말하기를 나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너희들을 대우하였는데 너희들은 도리어 나를 해치려하는가? 내가 너를 죽이지 않는다면 너희들은 반드시 나를 죽일 것이다.”하고는 좌우에게 몽둥이로 때려죽이게 하고는 곧 궁에 들어 가 복황후가 낳은 두 아들을 데려와 모두 독주를 먹여 죽였다. 저물녘에 복완, 목순 등 종족 이백여 명을 끌어내어 모두 저자에서 죽였다. 조정과 재야의 사람들이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때는 건안 십구년 십일월이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여 말하기를 조만(조조)의 흉악함은 세상에 없는 것이고,/복완의 충의로도 어찌할 수 없구나./불쌍하구나. 황제와 황후가 이별하니/민가의 지아비보다 못하구나./”했다.

 

獻帝自從壞了伏后連日不食操入曰:「陛下無憂臣無異心臣女已與陛下貴人大賢大孝宜居正宮。」獻帝安敢不從於建安二十年正月朔就慶賀正旦之節冊立曹操女曹貴人為正宮皇后群下莫敢有言

헌제는 복황후를 잃고부터 연일 밥을 먹지 않았다. 조조가 들어 와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금심하지 마십시오. (조조)은 다른 마음이 없습니다. 신의 딸이 이미 폐하의 귀인인데 크게 어질고 효성스러우니 정궁에 머무는 것이 마땅합니다.”했다. 헌제가 어찌 감히 따르지 않겠는가? 건안 이십년 정월 초하루에 설날을 축하하는 날에 조조의 딸 조 귀인을 책봉하여 정궁의 황후로 삼았다. 무리들이 감히 말하는 이가 없었다.

 

此時曹操威勢日甚會大臣商議收吳滅蜀之事賈詡曰:「須召夏侯惇曹仁二人回商議此事。」操即時發使星夜喚回夏侯惇未至曹仁先到連夜便入府中見操操方被酒而臥許褚仗劍立於堂門之內曹仁欲入被許褚當住曹仁大怒曰:「吾乃曹氏宗族汝何敢阻當耶?許褚曰:「將軍雖親乃外藩鎮守之官許褚雖疏現充內侍主公醉臥堂上不敢放入。」曹操聞之歎曰:「許褚真忠臣也!」

이 때 조조의 위엄과 권세가 날로 높아졌다. 대신을 모아 오나라를 거두고, 촉을 멸망시킬 일을 상의하였다. 가후가 말하기를 모름지기 화후돈, 조인 두 사람을 불러 돌아오게 하여 이 일을 상의하십시오.”했다. 조조는 즉시 사자를 출발시켜 밤을 새워 불러오게 하였다. 하후돈은 아직 이르지 않고, 조인이 먼저 이르러 밤을 이어 곧 부중에 들어 가 조조를 뵈려 하였다. 조조는 바야흐로 술에 취하여 누웠고, 허저가 검을 차고 당문 안에 서 있었다. 조인이 들어 가려하니 허저가 막았다. 조인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나는 곧 조씨의 종족인데 네가 어찌 감히 막는가?”하니 허저가 말하기를 장군이 비록 친척이나 곧 밖의 변경을 지키는 관리이고, 허저(저는)는 비록 소원하나 현재 안의 시위를 채우고 있습니다. 주공께서 취하여 당 위에 누웠으니 감히 함부로 들이지 못합니다.”했다. 조조가 그것을 듣고 탄복하여 말하기를 허저는 참으로 충신이로다!”했다.

 

不數日夏侯惇亦至共議征伐惇曰:「吳蜀急未可攻宜先取漢中張魯以得勝之兵取蜀可一鼓而下也。」曹操曰:「正合吾意。」遂起兵西征正是方逞兇謀欺弱主又驅勁卒掃偏邦未知後事如何且看下文分解

몇 일 되지 않아 하후돈이 또한 이르자 함께 정벌을 상의하였다. 하후돈이 말하기를 오와 촉을 급히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마땅히 먼저 한중의 장노를 취하고, 승리를 얻은 군대로 촉을 취한다면 북을 한번 쳐서 함락할 수 있습니다.”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바로 내 뜻에 부합한다.”했다. 마침내 군대를 일으켜 서쪽을 정벌하였으니 바로 이러하다. 바야흐로 크게 흉악한 꾀를 써서 약한 임금을 속이니(업신여기니) 또한 굳센 군대를 몰아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를 쓸어 내었다. 뒤의 일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겠으니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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