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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

제67회 조조는 한중 땅을 평정하고, 장요의 위엄은 소요진을 진동시키다.

by 최인표 2021. 1. 21.

第六十七回曹操平定漢中地張遼威震逍遙津

67회 조조는 한중 땅을 평정하고, 장요의 위엄은 소요진을 진동시키다.

 

卻說曹操興師西征分兵三隊前部先鋒夏侯淵張郃操自領諸將居中後部曹仁夏侯惇押運糧草早有細作報入漢中來張魯與弟張衛商議退敵之策衛曰:「漢中最險無如陽平關可於關之左右依山傍林下十餘個寨柵迎敵曹兵兄在漢寧多撥糧草應付。」

각설하고 조조는 군대를 일으켜 서쪽을 정벌하면서 군대를 세 개부대로 나누어 앞 부대의 선봉은 하후연, 장합으로 하고, 조조 자신은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가운데 머물고, 뒤 부대는 조인, 하후돈이 맡아 식량과 말 먹이풀을 운반하였다. 재빨리 세작(첩자)이 한중에 들어가 보고하였다. 장노와 동생 장위는 적을 물리칠 계책을 상의하였다. 장위가 말하기를 한중에서 가장 험하기로는 양평관만한 것이 없습니다. 관의 좌우 산의 의지한 숲 옆에 십여 개의 책을 세우면 조조의 군대를 맞아 대적할 수 있습니다. 형님은 한녕에 있으면서 식량과 말 먹이 풀을 많이 내어 주십시오.”했다.

 

張魯依言遣大將楊昂楊任與其弟即日起程軍馬到陽平關下寨已定夏侯淵張郃前軍隨到聞陽平關已有準備離關一十五里下寨是夜軍士疲困各自歇息忽寨後一把火起楊昂楊任兩路兵殺來劫寨夏侯淵張郃急上得馬四下裏大兵擁入曹兵大敗退見曹操操怒曰:「汝二人行軍許多年豈不知兵若遠行疲困須防劫寨?如何不作準備?欲斬二人以明軍法眾宮()告免

장노가 말에 의지하여 대장군 양앙, 양임과 그 동생을 그날 출발하여 가게 하였다. 군마가 양평관에 이르러 영채를 세웠다. 하후연, 장합의 전군이 따라 이르러 양평관이 이미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관에서 십 오리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웠다. 이날 밤 군사들이 피곤하여 각자 쉬는데 홀연히 영채 뒤에 한 줌의 불이 일어나면서, 양앙, 양임의 군대가 두 길로 쇄도해 영채를 습격하였다. 하후연, 장합이 급히 말에 올랐으나 사방에서 대군이 몰려 들어오자 조조의 군대가 크게 패하여 물러나 조조를 만났다. 조조가 노하여 말하기를 너희 두 사람은 군대를 운용한 것이 여러 해인데 어찌 군대가 만약 멀리 행군하여 피곤하면 반드시 영채의 습격을 방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는가? 어찌하여 준비하지 않았는가?”하고는 두 사람을 목 베는 것으로서 군법을 밝히려 하였다. 여러 관리들이 면할 것을 고하였다.

 

操次日自引兵為前隊見山勢險惡林木叢雜不知路徑恐有伏兵即引軍回寨謂許褚徐晃二將曰:「吾若知此處如此險惡必不起兵來。」許褚曰:「兵已至此主公不可憚。」次日操上馬只帶許褚徐晃二人來看張衛寨柵三匹馬轉過山坡早望見張衛寨柵操揚鞭遙指謂二將曰:「如此堅固急切難下!」

조조가 다음 날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전대(앞 부대)가 되었는데 산세의 험악함과 수목이 무성하여 길을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복병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곧 군대를 이끌고 영채로 돌아 와 허저, 서황 두 장수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만약 이곳이 이처럼 험악한 것을 알았다면 반드시 군대를 일으켜 오지 않았을 것이다.”했다. 허저가 말하기를 군대가 이미 여기에 이르렀으니 주공께서는 수고로움을 꺼리지 마십시오.”했다. 다음 날 조조가 말에 올라 허저와 서황 두 사람을 데리고 와서 장위의 영채와 책을 보았다. , 사필의 말이 산기슭을 돌아 빠르게 장위의 영채와 책을 바라보았다. 조조가 채찍을 흔들어 멀리 가리키며 두 장수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 같이 견고하니 급히 함락하기 어렵겠구나!”했다.

 

言未已背後一聲喊起箭如雨發楊昂楊任分兩路殺來操大驚許褚大呼曰:「吾當敵賊徐公明善保主公!」說罷提刀縱馬向前力敵二將楊昂楊任不能當許褚之勇回馬退去其餘不敢向前徐晃保著曹操奔過山坡前面又一軍到看時卻是夏侯淵張郃二將聽得喊聲故引軍殺來接應於是殺退楊昂楊任救得曹操回寨操重賞四將自此兩邊相拒五十餘日只不交戰曹操傳令退軍賈詡曰:「賊勢未見強弱主公何故自退耶?操曰:「吾料賊兵每日提備急難取勝吾以退軍為名使賊懈而無備然後分輕騎抄襲其後必勝賊矣。」賈詡曰:「丞相神機不可測也。」

말을 마치기도 전에 뒤에서 한 소리 함성이 일어나면서 화살이 비오듯 쏟아졌다. 양앙과 양임이 두 길로 나누어 쇄도해 왔다. 허저가 크게 외쳐 말하기를 내가 도적을 대적할 터이니 서공명(서황)은 주공을 잘 보호해 주시오.”라는 말을 마치고는 칼을 가지고 말을 타고 앞을 향하여 힘껏 두 장수를 대적하였다. 양앙, 양임이 허저의 용맹을 감당할 수 없어서 말을 돌려 돌아가니 그 나머지는 감히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였다. 서황이 조조를 보호하면서 달려 산기슭을 지나는데 앞쪽에서 또한 일군이 이르렀다. 알고 보니 하후연, 장합 두 장수가 함성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군대를 이끌고 와서 상황에 대응한 것이다. 이에 양앙, 양임을 싸워 물리치고 조조를 구하여 영채로 돌아갈 수 있었다. 조조가 네 장수에게 많은 상을 주었다. 이로부터 양쪽에서 서로 막아 오십여 일이지날 때까지 서로 싸우지 않았다. 조조는 명령을 내려 군대를 물렸다. 가후가 말하기를 적의 형세가 아직 강약을 보지 못하였는데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스스로 물러나려 하십니까?”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적병이 매일 대비하는 것을 헤아려보니 급히 이기기 어렵다. 내가 군대를 물리는 것으로서 명분을 삼아 적으로 하여금 게으르게 하여 대지가 없게 한 후에 가벼운 무장을 한 기병을 나누어 그 뒤를 습격한다면 반드시 적을 이길 수 잇을 것이다.”했다. 가후가 말하기를 승상의 신묘한 생각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했다.

 

於是令夏侯淵張郃分兵兩路各引輕騎三千取小路抄陽平關後曹操一面引大軍拔盡起楊昂聽得曹兵退請楊任商議欲乘勢擊之楊任曰:「操詭計極多未知真實不可追趕。」楊昂曰:「公不往吾當自去。」楊任苦諫不從楊昂盡提五寨軍馬前進只留些少軍士守寨是日大霧迷漫對面不相見楊昂軍至半路不能行且權紮住

이에 하후연, 장합으로 하여금 군대를 두 길로 나누게 하고, 각각 가벼운 무장을 한 기병 삼천을 이끌고 작은 길로 양평관의 뒤를 치게 하고, 조조는 한편으로 대군을 이끌고 영채를 빼 모두 일어났다. 양앙은 조조의 군대가 물러났다는 것을 듣고 양임과 상의하여 형세를 타고 그들을 치려 청하였다. 양임이 말하기를 조조는 속이는 계책이 지극히 많아 진실을 알지 못하니 쫓아서는 안 됩니다.”했다. 양앙이 말하기를 (양임)이 가지 않으면 내가 마땅히 스스로 갈 것입니다.”하니 양임이 애써 간하고 따르지 않았다. 양앙은 다섯 영채의 군마를 모두 데리고 전진하게 하고, 다만 작은 군사만을 머물러 영채를 지키게 하였다. 이날 큰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얼굴을 대하여도 서로 알아보지 못하였다. 양앙의 군대가 중도에 이르러 행군하지 못하고 임시로 주둔하였다.

 

卻說夏侯淵一軍抄過山後見重霧垂空又聞人語馬嘶恐有伏兵急催人馬行動大霧中誤走到楊昂寨前守寨軍士聽得馬諦響只道是楊昂兵回開門納之曹軍一擁而入見是空寨便就寨中放起火來五寨軍士皆棄寨而走比及霧散楊任領兵來救與夏侯淵戰不數合背後張郃兵到楊任殺條出路奔回南鄭楊昂待要回時已被夏侯淵張郃兩個占了寨柵背後曹操大隊軍馬趕來兩下夾攻四邊無路楊昂欲突陣而出正撞著張郃兩個交手被張郃殺死敗兵回投陽平關來見張衛原來衛知二將敗走諸營已失半夜棄關奔回去了曹操遂得陽平關并諸寨

각설하고 하후연의 일군은 산 뒤를 지나다 짙은 안개가 공중에 드리워진 것을 보았고, 또 사람의 말소리와 말의 울음소리를 듣고 복병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급히 인마의 행군을 재촉하였는데 큰 안개 속에 잘못 달려 양앙의 영채 앞에 이르렀다. 영채를 지키는 군사가 말발굽이 울리는 것을 듣고는 다만 양앙의 군대가 돌아오는 것으로 알고 영채의 문을 열고 받아들였다. 조조의 군대가 일제히 몰려 들어가 영채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는 곧 영채 안에 나아가 불을 질렀다. 다섯 영채의 군사들이 모두 영채를 버리고 달아났다. 안개가 흩어지자(개이자) 양임이 군대를 이끌고 구원하러 와 하후연과 싸웠으나 몇 합되지 않아 뒤에서 장합의 군대가 이르렀다. 양임은 한 줄기 길로 나가 달아나 남정으로 돌아갔다. 양앙은 돌아가려 하였으나 이미 하후연, 장합 두 명에게 영채와 책을 점령당한 뒤였다. 뒤에서 조조의 큰 부대의 군마가 쫓아 왔다. 양쪽에서 협공하니 사방으로 길이 없었다. 양앙이 진을 치고 나가려 하였으나 바로 장합을 맞닥뜨렸다. 둘이 싸우다 장합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패함 군사들이 양평관에 돌아와 장위를 뵈었다. 원래 장위는 두 장수가 패하여 달아나고, 여러 진영을 이미 잃었다는 것을 알고 밤중에 양평관을 버리고 달아나 돌아갔다. 조조가 마침내 양평관과 여러 영채를 얻었다.

 

張衛楊任回見張魯衛言二將失了隘口因此守關不住張魯大怒欲斬楊任任曰:「某曾諫楊昂休追操兵他不肯聽信故有此敗任再乞一軍前去挑戰必斬曹操如不勝甘當軍令。」張魯取了軍令狀楊任上馬引二萬軍離南鄭下寨

장위와 양임이 돌아가 장노를 뵈었다. 장위는 두 장수가 좁은 길목(요해처)를 잃었고, 이 때문에 관을 지키지 못하였다고 말하였다. 장노가 크게 노하여 양임을 죽이려 하였다. 양임이 말하기를 제가 일찍이 양앙을 간하여 조조의 군대를 쫓지 알게 하였습니다. 그가 기꺼이 듣지 않았기 때문에 이 패전이 있었습니다. 저에게(양임) 다시 일군을 주시면 앞으로 가 도전하여 반드시 조조를 죽이겠습니다. 만일 이기지 못한다면 군령을 달게 받겠습니다.”했다. 장노는 군령장을 쓰게 하였다. 양임이 말에 올라 이만의 군대를 이끌고 남정을 떠나 영채를 세웠다.

 

卻說曹操提軍將進先令夏侯淵領五千軍往南鄭路上哨探正迎著楊任軍馬兩軍擺開任遣部將昌奇出馬與淵交鋒戰不三合被淵一刀斬於馬下楊任自挺槍出馬與淵戰三十餘合不分勝負淵佯敗而走任從後追來被淵用拖刀計斬於馬下軍士大敗而回

각설하고 조조는 군대를 데리고 진군하려하여 먼저 하후연으로 하여금 오천의 군대를 거느리고 남정으로 가는 길 위를 정탐하게 하였는데 바로 양임의 군마를 맞닥뜨리자 두 군대가 진을 쳤다. 양임이 부장 창기를 보내 말을 타고 나가 하후연과 싸우게 하였는데 싸운 지 삼합이 되지 않아 (창기는)하후연의 한 칼에 죽임을 당하여 말 아래 떨어졌다. 양임이 스스로 창을 내밀고 말을 타고 나와 하후연과 싸운 지 삼십여 합이 지나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하후연이 거짓으로 패하여 달아나니 양임이 뒤를 쫓아왔다. 하후연은 칼을 끌고 패주하는 것처럼하다 갑자기 되돌아 적을 치는 계책을 써서 (양임을) 베어 죽여 말에서 떨어뜨렸다. 군사들이 크게 패하여 돌아갔다.

 

曹操知夏侯淵斬了楊任即時進兵直抵南鄭下寨張魯慌聚文武商議閻圃曰:「某保一人可敵曹操手下諸將。」魯問是誰圃曰:「南安龐德前隨馬超投降主公後馬超往西川龐德臥病不曾行現今蒙主公恩養何不令此人去?

조조는 하후연이 양임을 죽였다는 것을 알고 즉시 군대를 진격시켜 곧바로 남정에 이르러 영채를 세웠다. 장노는 황급히 문무관을 모아 상의하였다. 염포가 말하기를 제가 한 사람을 추천하니 조조의 부하 여러 장수들과 대적할 수 있습니다.”했다. 장노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영포가 말하기를 남안의 방덕은 앞서 마촐르 따라 주공에게 투항하였는데 후에 마초가 서천으로 갈 때 방덕은 병이 들어 일찍이 가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주공의 은혜와 기름을 입었는데 어찌 이 사람으로 하여금 가지 않게 하십니까?”했다.

 

張魯大喜即召龐德至厚加賞勞點一萬軍馬令龐德出離城十餘里與曹兵相對龐德出馬搦戰曹操在渭橋時深知龐德之勇乃囑諸將曰:「龐德乃西涼勇將原屬馬超今雖依張魯未稱其心吾欲得此人汝等須皆與緩鬥使其力乏然後擒之。」

장노가 크게 기뻐하며 곧 방덕을 불러 이르게 하고는 후하게 상을 주어 위로하고, 일만의 군마를 점검하여 방덕으로 하여금 나가게 하였다. 성으로부터 십여리 떨어진 곳에서 조조의 군대와 서로 대치한 후 방덕은 말을 타고 나와 도전하였다. 조조는 위교에 있을 때 방덕의 용맹을 깊이 알았으므로 이에 여러 장수들에게 부탁하여 말하기를 방덕은 곧 서량의 용맹한 장수로 원래 마초에게 속해 있었다. 지금 비록 장노에게 의지하고 있으나 아직 그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나는 이 사람을 얻고 싶다. 너희들은 모름지기 모두 그와 싸우기를 느슨하게 하여 그 힘을 쓰게 한 후에 그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했다.

 

張郃先出戰了數合便退夏侯淵也戰數合退了徐晃又戰三五合也退了臨後許褚戰五十餘合亦退龐德力戰四將並無懼怯各將皆於操前誇龐德好武藝曹操心中大喜與眾將商議:「如何得此人降?賈詡曰:「某知張魯手下有一謀士楊松其人極貪賄賂今可暗以金帛送之使譖龐德於張魯便可圖矣。」操曰:「何由得入南鄭?詡曰:「來日交鋒詐敗佯輸棄寨而走使龐德據我寨我卻於夤夜引兵劫寨龐德必退入城卻選一能言軍士扮作彼軍雜在陣中便得入城。」

장합이 먼저 나가 싸운 지 몇 합에 곧 물러났다. 하후연이 싸운 지 몇 합에 물러났다. 서황이 또 싸운 지 삼, 오합에 물러났다. 잠시 후 허저가 싸운 지 오십여 합에 또한 물러났다. 방덕은 힘껏 네 장수와 싸웠으나 모두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않았다. 각각의 장수들이 모두 조조의 앞에 방덕의 무예가 훌륭하다고 자랑(칭찬)하였다. 조조가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여러 장수들과 상의하기를 어떻게 이 사람을 항복시킬 수 있겠는가?”하니 가후가 말하기를 저는 장노 부하 중에 한 모사인 양송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뇌물을 지극히 탐냅니다. 지금 몰래 돈과 비단을 구에게 보내면 곧 방덕을 장노에게 참소할 것이니 곧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어디를 통해 남정에 들어 갈 수 있겠는가?”하니 가후가 말하기를 내일 싸우다가 거짓으로 패하여 거짓으로 영채를 버리고 달아나 방덕으로 하여금 우리 영채를 점거하게 하였다가 우리가 밤중에 군대를 이끌고 영채를 습격한다면 방덕은 반드시 물러나 성에 들어 갈 것입니다. 한 명의 말 잘하는 군사를 뽑아 그 군대로 가장하여 섞여 진중에 섞여 있으면 곧 성에 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操聽其計選一精細軍士重加賞賜付與金掩心甲一付令披在貼外穿漢中軍士號衣先於半路上等侯次日先撥夏侯淵張郃兩枝軍遠去埋伏卻教徐晃挑戰不數合敗走龐德招軍掩殺曹兵盡退龐德卻奪了曹操寨柵見寨中糧草極多大喜即時申報張魯一面在寨中設宴慶賀

조조는 그 계책을 듣고 한 세심한 군사를 뽑아 많은 상을 내리고 황금으로 만든 가슴을 가리는 갑옷 한 벌을 주면서 (옷을)헤치고 맨살에 입게 하고, 밖에 한중 군사의 번호가 달린 옷을 입게 하여 먼저 길 중간에서 기다리게 하였다. 다음 날 먼저 하후연과 장합 두 갈래 군대를 시켜 멀리서 매복하게 하고 서황으로 하여금 도전하게 하고 몇 합되지 않아 패하여 달아났다. 방덕이 군대를 불러 습격하여 죽이니 조조의 군대가 모두 물러났다. 방덕이 조조의 영채와 책을 빼앗았다. 영채 안에 식량과 말 먹이 풀이 매우 많은 것을 보고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장노에게 보고하는 한편으로 영채 안에서 연회를 베풀고 축하하였다.

 

當夜二更之後忽然三路火起正中是徐晃許褚左張郃右夏侯淵三路軍馬齊來劫寨龐德不及提備只得上馬衝殺出來望城而走背後三路兵追來龐德即喚開城門領兵一擁而入

그날 밤 이 경이 지나고 홀연히 세 길로 불이 일어나는데 한 가운데는 서황, 허저이고, 왼쪽은 장합, 오른쪽은 하후연이었다. 세 길의 군마들이 일제히 와서 영채를 습격하였다. 방덕은 준비를 못하여 말에 올라 치고 나가 성을 향해 달아났다. 뒤에서 세 길의 군대가 쫓아 왔다. 방덕은 곧 성문을 열라 소리치고, 군대를 거느리고 싸여 (성에) 들어갔다.

 

此時細作已雜到城中逕投楊松府下謁見具說:「魏公曹丞相久聞盛德特使某送金甲為信更有密書呈上。」松大喜看了密書中言語謂細作曰:「上覆魏公但請放心某自有良策奉報。」打發來人先回便連夜入見張魯說龐德受了曹操賄賂賣此一陣張魯大怒喚龐德責罵欲斬之閻圃苦諫張魯曰:「你來日出戰不勝必斬!」龐德抱恨而退

이 때 세작(첩자)은 이미 섞여 성안에 이르러 재빨리 양송의 부에 들어 가 알현하고 모두 말하기를 위공(조조), 조승상이 성대한 덕을 들은 지 오래되어 특별히 나로 하여금 황금으로 만든 갑옷을 보내 신표로 삼게 하고, 다시 밀서를 올리게 하였습니다.”했다. 양송이 크게 기뻐하며 밀서의 말을 보고는 세작(첩자)에게 일러 말하기를 위공에게 보고하여 마음을 놓으시라 청하시오. 저에게 좋은 계책이 있으니 갚아 드릴 것입니다.”하고는 온 사람을 먼저 돌아가게 하고 곧 밤에 들어가 장노를 만나 방덕이 조조에게 뇌물을 받고 한바탕 싸움을 팔았다고(일부러 져 주었다고) 말하였다. 장노가 크게 노하여 방덕을 빌러 꾸짖고는 그를 죽이려 하였다. 염포가 임써 간하였다. 장노가 말하기를 너는(방덕) 내일 싸우러 나가라. 이기지 못하면 반드시 죽일 것이다.”했다. 방덕이 한을 품고 물러났다.

 

次日曹兵攻城龐德引兵衝出操令許褚交戰褚詐敗龐德趕來操自乘馬於山坡上喚曰:「龐令名何不早降?龐德尋思:「拏住曹操抵一千員上將!」遂飛馬上坡一聲喊起天崩地塌連人和馬入陷坑去四壁鉤索一齊上前活捉了龐德押上坡來曹操下馬叱退軍士親釋其縳問龐德肯降否龐德尋思張魯不仁情願拜降曹操親扶上馬共回大寨故意教城上望見人報張魯德與操並馬而行魯益信楊松之言為實

다음 날 조조의 군대가 성을 공격하니 방덕이 군대를 이끌고 치고 나갔다. 조조는 허저로 하여금 싸우게 하였다. 허저가 거짓으로 패한 척 하자 방덕이 쫓아 왔다. 조조가 스스로 말을 타고 산기슭에서 불러 말하기를 방령명(방덕)은 어찌하여 빨리 항복하지 않는가?”하니 방덕이 생각하기를 조조를 잡으면 일천 명의 상장수를 막는 것이다.”하고는 마침내 날듯이 말을 몰아 기슭으로 올라가는데 한 소리 함성이 일었는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 하더니 사람과 말이 함께 넘어져 구덩이에 빠졌다. 네 벽에서 갈고리 달린 끈이 일제히 앞으로 나와 방덕을 사로잡아 언덕 위로 압송해 왔다. 조조가 말에서 내려 군사를 꾸짖어 물리치고 직접 그 묶인 것을 풀어주고 방덕이 기꺼이 항복할지를 물었다. 방덕은 장노가 인하지 않음을 생각하고는 항복할 것을 청하였다. 조조가 직접 부축하여 말을 타게하고 함께 큰 영채로 돌아가는데 일부러 성 위에서 바라보게 하였다. 어떤 사람이 장노에게 방덕과 조조가 말을 나란히 하고 갔다고 보고하였다. 장노가 더욱 양송의 말이 진실이라고 믿었다.

 

次日曹操三面豎立雲梯飛砲攻打張魯見其勢已極與弟張衛商議衛曰:「放火盡燒倉廩府庫出奔南山去守巴中可也。」楊松曰:「不如開門投降。」張魯猶豫未定衛曰:「只是燒了便行。」張魯曰:「我向本欲歸命國家而意未得達今不得已而出奔倉廩府庫國家之有不可廢也。」遂盡封鎖

다음 날 조조는 세 방향에서 운제(사다리)를 세우고 포를 날리며 공격하였다. 장노는 그 형세가 지극한 것을 보고 종생 장위와 상의하였다. 장위가 말하기를 불을 놓아 곡식창고와 재물창고를 모두 태우고 남산으로 나가 파중으로 가 지키는 것이 옳습니다.”했다. 양송이 말하기를 성문을 열고 항복하는 것이 낫습니다.”하니 장노가 머뭇거리며 정하지 못하였다. 장위가 말하기를 불태우고 곧 가야합니다.”했다. 장노가 말하기를 나는 예로부터 국가에 귀의하고자 하였는데 뜻을 아직 이루지 못하였다. 지금 부득이 나가 달아나지만 곡식창고와 재물창고는 국가의 소유이니 폐할 수 없다하고는 마침내 모두 봉쇄하였다.

 

是夜二更張魯引全家老小開南門殺出曹操教休追趕提兵入南鄭見魯封閉庫藏心甚憐之遂差人往巴中勸使投降張魯欲降張衛不肯楊松以密書報操便教進兵松為內應操得書親自引兵往巴中張魯使弟衛領兵出敵與許褚交鋒被褚斬於馬下敗軍回報張魯魯欲堅守楊松曰:「今若不出坐以待斃矣某守城主公當親與決一死戰。」

그날 밤 이경 장노는 전 가문의 노소를 이끌고 남문을 열고 쇄도해 나갔다. 조조는 뒤쫓지 못하게 하고, 군대를 데리고 남정에 들어가서 장노가 봉하여 닫은 창고를 보고는 마음으로 매우 불쌍하게 여겨 마침내 사람을 보내 파중에 가 항복을 권하게 하였다. 장노가 항복하려 하였으나 장위는 기꺼워하지 않았다. 양송이 비밀리에 조조에게 글을 보내 곧 진군하면 양송은 안에서 응할 것이라 하였다. 조조는 글을 보고 직접 군대를 이끌고 파중에 갔다. 장노는 동생 장위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 대적하여 허저와 싸우게 하였으나 허저에게 죽음을 당하여 말에서 떨여졌다. 패한 군대가 돌아가 장노에게 보고하니 장노는 굳게 지키려 하였다. 양송이 말하기를 지금 만약 나가지 않으면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제가 성을 지킬 터이니 주공께서는 직접 한번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야 합니다.”했다.

 

魯從之閻圃諫魯休出魯不聽遂引軍出迎未及交鋒後軍已走張魯急退背後曹兵趕來魯到城下楊松閉門不納張魯無路可走操從後追至大叫:「何不早降!」魯乃下馬投拜操大喜念其封倉庫之心優禮相待封魯為鎮南將軍閻圃等皆封列侯於是漢中皆平曹操傳令各郡分設太守置都尉大賞士卒惟有楊松賣主求榮即命斬之於市曹示眾後人有詩歎曰妨賢賣主逞奇功積得金銀總是空家未榮華身受戮令人千載笑楊松

장노가 그것을 따랐다. 염포는 장노에게 나가지 말도록 간하였다. 장노가 듣지 않고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나가 맞이하였다. 아직 싸움에 이르지도 않았는데 후군은 이미 달아났다. 장노가 급히 물러나니 뒤에서 조조의 군대가 쫒아 왔다. 장노가 성 아래 이르렀는데 양송은 문을 닫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노는 도망할 수 있는 길이 없고, 조조가 뒤에서 쫒아 이르러 크게 외쳐 말하기를 어찌 빨리 항복하지 않는가!”했다. 장노가 이에 말에서 내려 항복하였다.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그 창고를 봉한 마음을 생각하여 높은 예로 대접하고 장노를 봉하여 진남장군으로 삼았다. 염포 등은 모두 열후에 봉하였다. 이에 한중이 모두 평정되었다. 조조가 명령을 내려 각 군에 나누어 태수를 두고, 도위를 두며 사졸들에게 크게 상을 주었다. 오직 양송만은 주인을 팔아 영예를 구하였다 하여 곧 시가에서 목을 베어 무리들에게 보였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여 말하기를 어진 이를 해치고 주인을 팔아 기이한 공을 세웠는데/금은을 쌓았으나 모두 헛되었다./가문은 영화롭지 못하고, 자신은 죽음을 받았고/사람들로 하여금 천년이 지자도 양송을 비웃게 하였구나./”했다.

 

曹操已得東川主簿司馬懿進曰:「劉備以詐力取劉璋蜀人尚未歸心今主公已得漢中益州震動可速進兵攻之勢必瓦解知者貴於乘時時不可失也。」曹操歎曰:「人苦不知足既得隴復望蜀耶?劉曄曰:「司馬仲達之言是也若少遲緩諸葛亮明於治國而為相關張等勇冠三軍而為將蜀民既定據守關隘不可犯矣。」操曰:「士卒遠涉勞苦且宜存恤。」遂按兵不動

조조가 동천을 얻었다. 주부 사마의가 나와 말하기를 유비(유현덕)는 힘을 속이는 것으로서 유장을 취하였으나 촉 사람들은 오히려 마음이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지금 주공께서 이미 한중을 얻어 익주가 진동합니다. 속히 진군하여 공격하면 형세상 반드시 와해될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때를 타는 것을 귀하게 여겨 때를 잃지 않습니다.”했다. 조조가 탄식하여 말하기를 사람이 만족할줄 모르는 것을 병폐로 여긴다. 이미 농을 얻었는데 다시 촉을 바라겠는가?”했다. 유엽이 말하기를 사마중달(사마의)의 말이 옳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나라를 다스림에 밝은 제갈량(제갈공명)이 재상이 되고, 관운장과 장비 등은 용맹으로 삼군의 우두머리로 장수가 되고, 촉의 백성들이 안정되면 관애(요충지)를 지키면 범할 수 없을 것입니다.”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사졸들이 멀리서 와 노고로우니 또한 마땅히 구휼해애야 한다.”하고는 군대를 정비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卻說西川百姓聽知曹操已取東川料必來取西川一日之間數遍驚恐玄德請軍師商議孔明曰:「亮有一計曹操自退。」玄德問何計孔明曰:「曹操分軍屯合淝懼孫權也今我若分江夏長沙桂陽三郡還吳遣舌辯之士陳說利害令吳起兵襲合淝牽動其勢操必勒兵南向矣。」玄德問:「誰可為使?伊籍曰:「某願往。」玄德大喜遂作書具禮令伊籍先到荊州知會雲長然後入吳到秣稜來見孫權先通了姓名權召籍入

각설하고 서천의 백성들은 조조가 이미 동천을 취하였다는 것을 들어 알고 반드시 와서 서천을 취할 것으로 생각하여 하루 사이에 몇 번이나 두루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유현덕이 군사를 청하여 상의하였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저에게 한 계책이 있으니 조조는 스스로 물러 갈 것입니다.”했다. 유현덕이 무슨 계책인지를 물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조조는 군대를 나누어 합비에 주둔한 것은 손권을 두려워해서입니다. 지금 우리가 만약 강하, 장사, 계양 삼군을 나누어 오에 돌려주고, 말 잘하는 선비를 보내 이롭고 해로움을 말하여 오나라로 하여금 군대를 일으켜 합비를 습격하게 하여 그 형세에 영향을 미친다면 조조는 반드시 군대를 돌려 남쪽으로 향할 것입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누구를 사자로 할 수 있는가?”하니 이적이 말하기를 제가 가기를 원합니다.”했다. 유현덕이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글을 쓰고 에를 갖추어 이적으로 하여금 먼저 형주에 이르러 관운장을 만나본 후 오에 들어가게 하였다. 말릉에 이르러 가서 손권을 가서 뵙고 먼저 성과 이름을 통보하였다. 손권이 이적을 불러 들였다.

 

籍見權禮畢權問曰:「汝到此何為?籍曰:「昨承諸葛子瑜取長沙等三郡為軍師不在有失交割今傳書送還所有荊州南郡零陵本欲送還被曹操襲取東川使關將軍無容身之地今合淝空虛望君侯起兵攻之使曹操撤兵回南吾主若取了東川即還荊州全土。」權曰:「汝且歸館舍容吾商議。」

이적이 손권을 뵙고 예를 마치자 손권이 물어 말하기를 네가 여기에 이른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하니 이적이 말하기를 지난 번 제갈자유(제갈근)에게 장사 등 삼군을 취하는 것을 받들게 하였으나 군사가 있지 않아 떼어드리지 못하여 지금 글을 전해 돌려드립니다. 소유하였던 형주, 남군, 영릉도 본래 돌려드리려 하였으나 조조에게 동천을 빼앗겨 관장군(관운장)이 몸을 의탁할 땅이 없어졌습니다. 지금 합비가 비었으니 군후(손권)께서 군대를 일으켜 쳐서 조조로 하여금 군대를 거두어 남쪽으로 돌아가게 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인(유현덕)이 만약 동천을 취한다면 곧 형주 모든 땅을 돌려드리겠습니다.”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당신이 또 객사로 돌아가 있으면 내가 상의를 할 것이다.”했다.

 

伊籍退出權問計於眾謀士張昭曰:「此是劉備恐曹操取西川故為此謀雖然如此今因操在漢中乘勢取合淝亦是上計。」權從之發付伊籍回蜀去訖便議起兵攻操:()魯肅收取長沙江夏桂楊三郡屯兵於陸口取呂蒙甘寧回又去餘杭取凌統回

이적이 물러나가자 손권은 여러 모사에게 계책을 물었다. 장소가 말하기를 이는 유비(유현덕)이 조조가 서천을 취할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꾀를 낸 것입니다. 비록 이와 같으나 지금 조조가 한중에 있기 때문에 형세를 타고 합비를 취하면 또한 이는 좋은 계책입니다.”했다. 손권이 그것을 따라 이적에게 (문서를)발부하여 촉으로 돌아가게 하고, 곧 군대를 일으켜 조조 공격하는 것을 의논하여 노숙으로 하여금 장사, 강하, 계양 삼군을 거두어 취하게 하고, 육구에 주둔하게 하였다. 여몽과 감녕을 불러 돌아오게 하고, 또 여항을 보내 능통을 돌아오게 하였다.

 

不一日呂蒙甘寧先到蒙獻策曰:「現今曹操令廬江太守朱光屯兵於皖大開稻田納穀於合淝以充軍實今可先取皖城然後攻合淝。」權曰:「此計甚合吾意。」遂教呂蒙甘寧為先鋒蔣欽為合後權自引周泰陳武董襲徐盛為中軍時程普黃蓋韓當在各處鎮守都未隨征

하루가 되지 않아 여몽, 감녕이 먼저 이르렀다. 여몽이 계책을 올려 말하기를 지금 조조는 여광태수 주광으로 하여금 환성에 주둔하게 하고, 크게 벼 밭을 열고, 곡식을 합비에 받아들여 군비를 충실히 하였습니다. 지금 먼저 환성을 취한 후 합비를 공격해야 합니다.”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이 계책이 매우 내 뜻에 부합한다.”하고는 마침내 여몽, 감녕을 선봉으로 삼고, 장흠, 반장은 뒤에서 합하게 하였다. 손권 자신은 주태, 진부, 동습, 서성을 이끌고 중군이 되었다. 그 때 정보, 황개, 한당은 각 곳을 지키게 하여 모두 정벌에 따르지 않게 하였다.

 

卻說軍馬渡江取和州逕到皖城皖城太守朱光使人往合淝求救一面固守城池堅壁不出權自到城下看時城上箭如雨發射中孫權麾蓋權回寨問眾將曰:「如何取得皖城?」董襲曰:「可差軍士築起士山攻之。」徐盛曰:「可豎雲梯造虹橋下觀城中而攻之。」呂蒙曰:「此法皆費日月而成合淝救軍一至不可圖矣今我軍初到士氣方銳正可乘此銳氣奮力攻擊來日平明進兵午未時便當破城。」

각설하고 군마가 강을 건너 화주를 취하고 빠르게 환성에 이르렀다. 환성태수 주광은 사람을 시켜 합비에 가 구원을 청하게 하고, 한편으로 성과 해자를 굳게 지키며 벽을 견고하게 하여 나가지 않았다. 손권이 성 아래 이르러 볼 때 성 위에서 화살이 비 같이 발사되어 손권의 수레에 달린 대장기에 적중하였다. 손권은 영채로 돌아 와 여러 장수들에게 물어 말하기를 어떻게 하면 환성을 얻을 수 있겠는가?”하니 동습이 말하기를 군사를 보내 토산을 쌓고 공격해야 합니다.”했다. 서성이 말하기를 운제(성을 오를 때 쓰는 사다리)를 세우고 홍교를 만들어 성 안을 내려다보며 공격해야 합니다.”했다. 여몽이 말하기를 이 법은 모두 날과 달을 써야(지나야) 이루어지니 합비의 구원군이 한 번 이르면 도모할 수 없습니다. 지금 아군이 처음 이르러 사기가 바야흐로 날카로우니 바로 이 날카로운 기운을 타고 힘을 떨쳐 공격해야 합니다. 내일 날이 밝으면 진군하면 오시에서 미시면 곧 성을 깨트릴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權從之次日五更飯畢三軍大進城上矢石齊下甘寧手執鐵練冒矢石而上朱光令弓拏手齊射甘寧撥開箭林一練打倒朱光呂蒙親自擂鼓士卒皆一擁而上亂刀砍死朱光餘眾多降得了皖城方纔辰時張遼引軍至半路哨馬回報皖城已失遼即回兵歸合淝

손권이 그것을 따랐다. 다음 날 오경에 밥 먹기를 마치고 삼군이 진군했다. 성 위에서 화살과 돌이 일제히 쏟아져 내렸다. 감녕은 철련을 잡고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올랐다. 주광이 궁노수로 하여금 일제히 화살을 쏘게 하니 화살 숲을 헤치고 한번 주광을 쳐서 떨어뜨렸다. 여몽은 직접 북을 쳤다. 사졸들이 모두 우르르 몰려가 어지러이 칼을 휘둘러 주광을 베어 죽였다. 나머지 무리들이 많이 항복하였는데 환성을 얻었는데 겨우 진시였다. 장요가 군대를 이끌고 중간쯤 이르렀을 때 정찰하는 기병이 돌아와 환성이 이미 함락되었다고 보고하였다. 장요는 곧 군대를 돌려 합비로 돌아갔다.

 

孫權入皖城淩統亦引軍到權慰勞畢大犒三軍重賞呂蒙甘寧諸將設宴慶功呂蒙遜甘寧上坐盛稱其功勞酒至半酣淩統想起甘寧殺父之讎又見呂蒙誇美之心中大怒目直視良久忽拔左右所佩之劍立於筵上曰:「筵前無樂看吾舞劍。」甘寧知其意推開席桌起身兩手取兩枝戟挾定縱步出曰:「看我筵前使戟。」呂蒙見二人各無好意便一手挽牌一手提刀立於其中曰:「二公雖能皆不如我巧也。」說罷舞起刀牌將二人分於兩下

손권은 환성에 들어가고, 능통이 또한 군대를 이끌고 이르렀다. 손권은 위로하기를 마치고, 크게 음식을 삼군에게 내리고 여몽과 감녕 등 여러 장수들에게 많은 상을 주고, 연회를 베풀어 공을 축하하였다. 여몽은 감녕에게 윗자리를 양보하고 그 공과 수고로움을 매우 칭찬하였다. 술이 반쯤 취하였을 때 능통은 감녕이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는 것을 생각해내고, 또한 여몽이 그를 자랑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크게 노하여 눈을 부릅뜨고 똑바로 보기를 오래하다가 갑자기 좌우가 차고 있던 검을 뽑아 연회석에 서서 말하기를 연회에 음악이 없으니 내가 검무를 보여주겠다.”하니 감녕이 그 뜻을 알고 자리의 탁자를 밀어 열고 몸을 일으켜 두 손으로 양지극을 취하여 끼고 빠른 걸음으로 나와 말하기를 나는 연회석 앞에서 극을 쓰는 것을 보여주겠습니다.”했다. 여몽은 두 사람이 각각 좋은 뜻이 없는 것을 보고는 곧 한 손에 방패를 끌어당기고(잡고) 한 손에는 칼을 잡고 그 가운데 서서 말하기를 두 공이 비록 잘 하지만 모두 나의 공교로움보다는 못할 것입니다.”하는 말을 마치자 칼과 방패를 들고 춤을 추어 두 사람이 양쪽으로 나누어지게 하였다.

 

早有人報知孫權權慌跨馬直至筵前眾將見權至方各放下軍器權曰:「吾常言二人休念舊讎今日又何如此?凌統哭拜於地孫權再三勸止至次日起兵進取合淝三軍盡發

재빠르게 어떤 사람이 손권에게 보고하였다. 손권이 황급히 말을 타고 곧바로 연회석에 이르렀다. 여러 장수들은 손권이 이르는 것을 보고 비로소 각기 무기를 내려놓았다. 손권이 말하기를 내가 평소 두 사람은 옛 원수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였는데 오늘 어찌하여 이같이 하였는가?”하니 능통이 곡하며 땅에 엎드렸다. 손권이 두 번 세 번 그만둘 것을 권하였다. 다음 날에 이르러 군대를 일으켜 나아가 합비를 취하려 삼군이 모두 출발하였다.

 

張遼為失了皖城回到合淝心中愁悶忽曹操差薛悌送木匣一個上有操封傍書云:「賊來乃發」。是日報說孫權自引十萬大軍來攻合淝。」張遼便開匣觀之內書云:「若孫權至李二將軍出戰樂將軍守城。」張遼將教帖與李典樂進觀之樂進曰:「將軍之意若何?張遼曰:「主公遠征在外吳兵以為破我必矣今可發兵出迎奮力與戰折其鋒銳以安眾心然後可守也。」

장요는 환성을 잃고 합비에 돌아가 마음속으로 근심하고 번민하였다. 홀연히 조조가 설제를 보내 나무 궤 한 개를 보냈는데 위는 조봉이 있고, 옆의 글에 이르기를 적이 오니 곧 출발하라.”했다. 이날 보고하기를 손권이 스스로 십만 대군을 이끌고 와서 합비를 공격합니다.”고 말하였다. 장요가 곧 궤를 열고 보았다. 안에 있는 글에 이르기를 만약 손권이 이르면 장요와 이전 두 장군은 나가 싸우고, 악진 장군은 성을 지키라.”했다. 장요가 서첩을 이전과 악진에게 주어 보게 하였다. 악진이 말하기를 장군의 뜻은 어떠합니까?”하니 장요가 말하기를 주공께서 멀리 정벌하여 밖에 있으니 오나라 군대는 우리를 깨트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지금 군대를 동원하여 나가 맞아 힘을 떨쳐 싸워 그 예기를 꺽는 것으로서 무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 후에야 지킬 수 있습니다.”했다.

 

李典素與張遼不睦聞遼此言默然不答樂進見李典不語便道:「賊眾我寡難以迎敵不如堅守。」張遼曰:「公等皆是私意不顧公事吾今自出迎敵決一死戰。」便教左右備馬李典慨然而起曰:「將軍如此典豈敢以私憾而忘公事乎? 願聽指揮。」張遼大喜曰:「既曼成肯相助來日引一軍於逍遙津北埋伏待吳兵殺過來可先斷小師橋吾與樂文謙擊之。」李典領命自去點軍埋伏

이전은 평소 장요와 화목하지 않아 장요의 이 말을 듣고 묵묵히 대답하지 않았다. 악진은 이전이 말하지 않는 것을 보고 곧 말하기를 적은 많고 우리는 적어 맞아 싸우기 어려우니 굳게 지키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장요가 말하기를 공들은 모두 사사로운 뜻으로 공적인 일을 돌아보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스스로 나가 적을 맞이하여 한번 죽음을 무릅쓰고 싸울 것입니다.”하고는 곧 좌우로 하여금 말을 준비하게 하였다. 이전이 개연히 일어나 말하기를 잔군이 이 같이 하는데 제가 어찌 감히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공적인 일을 잊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지휘를 따를 것을 원합니다.”했다. 장요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미 만성(이전)이 기꺼이 서로 돕기로 하였으니 내일 군대를 한부대의 이끌고 소요진 북쪽에 매복하여 오나라 군대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리다 먼저 소사교를 끊으면 나와 악문(악진) 함께 그들을 공격해야 합니다.”했다. 이전이 명을 듣고 스스로 가서 군대를 점검하여 매복하였다.

 

卻說孫權令呂蒙甘寧為前隊自與凌統居中其餘諸將陸續進發望合淝殺來呂蒙甘寧前隊兵進正與樂進相迎甘寧出馬與樂進交鋒戰不數合樂進詐敗而走甘寧招呼呂蒙一齊引軍趕去孫權在第二隊聽得前軍得勝催兵行兵至逍遙津北忽聞連珠砲響左邊張遼一軍殺來右邊李典一軍殺來孫權大驚急令人喚呂蒙甘寧回救時張遼兵已到凌統手下止有三百餘騎當不得曹軍勢如山倒凌統大呼曰:「主公何不速渡小師橋!」

각설하고 손권은 여몽과 감녕을 앞 부대로 삼고 자신은 능통과 함께 가운데 있었다. 그 나머지 여러 장수들도 이어 출발하여 합비를 향해 쇄도했다. 여몽과 감녕의 앞 부대 군사들은 진군하여 바로 악진과 서로 맞이하였다. 감녕이 말을 타고 나와 악진과 서로 싸우는데 싸운 지 몇 합되지 않아 악진이 거짓으로 패한 척 달아났다. 감녕이 여몽을 불러 일제히 군대를 이끌고 쫓아갔다. 손권은 제 이대에 있다가 앞의 군대가 이겼다는 것을 듣고 군대의 행군을 재촉하여 소요진 북쪽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연속적으로 포가 울리는 소리를 들었는데 왼쪽에서는 장요의 일군이 쇄도하고 오른쪽에서는 이전의 일군이 쇄도해 왔다. 손권이 크게 놀라 급히 사람을 시켜 여몽과 감녕을 불러 돌아와 구웜하게 하였을 때 장요의 군대는 이미 이르고 있었다. 능통의 부하로는 다만 삼백여 기가 있을 뿐이어서 조조 군대의 산이 무너지는 듯한 형세를 당해낼 수 없었다. 능통이 크게 외쳐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속히 소사교를 건너지 않으십니까?”했다.

 

言未畢張遼引二千餘騎當先殺至凌統翻身死戰孫權縱馬上橋橋南已拆丈餘並無一片板孫權驚手足無措牙將谷利大呼曰:「主公可將馬退後再放馬向前跳過橋去。」孫權收回馬來有三丈餘遠然後縱轡加鞭那馬一跳飛過橋南後人有詩曰:「的盧當日跳檀溪又見吳侯敗合淝退後著鞭馳駿騎逍遙津上玉龍飛。」

말을 마치지 않았는데 장요가 이천의 기병을 이끌고 먼저 쇄도해 이르렀다. 능통은 몸을 뒤집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다. 손권은 말을 달려 다리 위에 올랐는데 다리 남쪽이 이미 일 장쯤 끊어져 한조각의 판도 없었다. 손권이 놀라 손과 발을 조치할 수 없었다. 아장 곡리가 크게 불러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말을 뒤로 물린 후 다시 앞을 향해 말을 놓으면(달리면) 뛰어서 다리를 지나갈 수 있습니다.”했다. 손권이 말을 거두어 돌려 삼장 정도 멀리 간 후 고삐를 놓고, 채찍을 가하니 그 말이 한 번 뛰어 다리 남쪽으로 날아 지났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은 것이 있는데 적노는 그날 단계를 뛰었는데/또 오 후는 합비에서 무너졌다./물러난 후 채찍을 휘둘러 준마를 달리게 하니/소요진 위에 옥룡이 날았다./”했다.

 

孫權跳過橋南徐盛董襲駕舟相迎凌統谷利扺住張遼甘寧呂蒙引軍回救卻被樂進從後追來李典又截住廝殺吳兵折了大半凌統所領三百餘人盡被殺死統身中數鎗殺到橋邊橋已拆斷河而逃孫權在舟中望見急令董襲棹舟接之乃得渡回呂蒙甘寧皆死命逃過河南這一陣殺得江南人人害怕聞張遼大名小兒也不敢夜啼眾將保護孫權回營權乃重賞凌統谷利收軍回濡須整頓船隻商議水陸並進一面差人回江南再起人馬來助戰

손권이 다리 남쪽으로 뛰어 건너가니 서성과 동습이 배를 타고 서로 맞이하였다. 능통과 곡리가 장요를 막았다. 감녕, 여몽이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구원하는데 악진이 뒤로부터 쫓아오고, 이전이 또한 싸우며 막으니 오의 군대 태반이 죽었다. 능통은 삼백 여명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모두 죽음을 당하였다. 능통 자신도 몇 번이나 창에 찔리면서 쇄도하여 다리 옆에 이르렀으나 다리는 이미 끊어져 있어 하()를 따라 도망하였다. 손권이 배 안에서 바라보고는 급히 동습으로 하여금 배를 저어 맞아 곧 강을 건너 돌아갈 수 있었다. 여몽과 감녕은 모두죽기 살기로 강 남쪽으로 도망했다. 이렇게 한바탕 죽이니 강남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장요의 큰 이름을 들으면 어린 아이도 감히 밤에 울지 않았다. 여러 장수들이 손권을 보호하여 진영으로 돌아갔다. 손권은 곧 능통, 곡리에게 많은 상을 주고 군대를 거두어 유수로 돌아 가 배를 정돈하고 수군과 육군이 나란히 진군하는 것에 대해 상의하는 한편으로 사람을 강남에 돌려보내 다시 인마를 일으켜 와서 싸움을 돕게 하였다.

 

卻說張遼聞孫權在濡須將欲興兵進攻恐合淝兵少難以扺敵急令薛悌星夜往漢中報知曹操求請救兵操同眾官議曰:「此時可收西川否?劉曰:「今蜀中稍定已有準備不可擊也不如撤兵去救合淝之急就下江南。」

각설하고 장요는 손권이 유수에 있다는 것을 듣고 장차 군대를 일으켜 나아가 공격하려하였으나 합비의 군대가 적어 적을 막는 것이 어려울 것을 두려워하여 급히 설제로 하여금 밤을 새워 한중에 가 조조에게 보고하여 구원병을 청하게 하였다. 조조는 여러 관리들과 함께 의논하여 말하기를 이번에 서천을 거둘 수 있겠는가?”하니 유엽이 말하기를 지금 촉이 점차 안정되고 있어 이미 준비가 있을 것이니 칠 수 없습니다. 군대를 거두어 합비의 급함을 구원하여 강남으로 내려가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操乃留夏侯淵守漢中定軍山隘口留張郃守蒙頭巖等隘口其餘軍兵拔寨都起殺奔濡須塢來正是鐵騎甫能平隴右旌旄又復指江南未知勝負如何且看下文分解

조조는 곧 하후연에게 한중의 정군산 요충지를 머물러 지키게 하고, 장합은 몽두암 등의 요충지에 머물러 지키게 하였다. 그 나머지 군병들은 영채를 거두어 모두 일으켜 유수의 성채로 쇄도해 왔다. 바로 이러하다. 철기가 막 농우지역을 평정하자 깃발이 또한 다시 강남을 가리킨다. 승부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겠으니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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