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十九回:卜周易管輅知機,討漢賊五臣死節
제69회 주역을 점친 관로는 기미를 알아내고, 한나라 도적을 치려던 다섯 신하는 죽음으로 절개를 지키다.
卻說當日曹操,見黑風中群屍首皆起,驚倒於地。須臾風定,群屍皆不見。左右扶操回宮,驚而成疾。後人有詩讚左慈曰:飛步凌雲遍九州,獨憑遁甲自邀遊。等閒施設神仙術,點悟曹瞞 不轉頭。
각설하고 그날 조조는 검은 바람 속에 여러 시체와 머리가 모두 일어나는 것을 보고 놀라 땅에 엎어졌다. 잠시 후 바람이 안정되자 여러 시체들이 모두 보이지 않았다. 좌우가 조조를 부축하여 궁으로 돌아갔으나 놀라 병이 들었다. 후세 사람들이 시를 지어 좌자를 기려 말하기를 “나는 듯한 걸음으로 구름 넘어 구주를 두루 돌아다녀/ 홀로 둔갑술에 의지하여 멀리 노닐었네./한가롭게 신선술을 베풀어, 조조를 깨우쳐 머리를 돌리지 못하게 하네./ 했다.
曹操染病,服藥無愈。適太史丞許芝,自許昌來見操。操令芝卜易。芝曰:「大王曾聞神卜管輅否?」操曰:「頗閒其名,未知其術。汝可詳言之。」
조조가 병이 들어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다. 마침 태사승 허지가 허창으로부터 와서 조조를 뵈었다. 조조가 허지로 하여금 점을 치게 하였다. 허지가 말하기를 “대왕께서는 신복 관로를 들어 보았습니까?”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그 이름을 들었지만 그 방법은 알지 못한다. 네가 자세하게 말해보라.”했다.
芝曰:「管輅字公明,平原人也。容貌粗醜,好酒觫狂。其父曾為瑯琊郡丘長。輅自幼便喜仰視星辰,夜不思寐。父母不能禁止。常云:『家雞野鵠,尚自知時,何況為人在世乎?』與鄰兒共戲,輒畫地為天文,分布日月星辰。及稍長,即深明周易,仰觀風角,數學通神,兼善相術。瑯琊太守單子春聞其名,召輅相見。時有坐客百餘人,皆能言之士。輅謂子春曰:『輅年少膽氣未堅,先請美酒三升,飲而後言。』子春奇之,遂與酒三升。飲畢,輅問子春:『今欲與輅為對者,若府君四座之士耶?』子春曰:『吾自與卿旗鼓相當。』於是與輅講論易理。輅亹亹而談,言言精奧。子春反覆辨難,輅對答如流,從曉至暮,酒食不行。子春及眾賓客,無不歎服。於是天下號為『神童』」。後有居民郭恩者,兄弟三人,皆得躄疾,請輅卜之。輅曰:『卦中有君家本墓中女鬼,非君伯母即叔母也。昔饑荒之年,謀數升之米之利,推之落井,以大石壓破其頭,孤魂痛苦,自訴於天;故君兄弟有此報,不可禳也。』郭恩等涕泣伏罪。
허지가 말하기를 “관로의 자는 공명으로 평원 사람입니다. 용모가 추하고, 술을 좋아해 미친 듯이 마십니다. 그 아버지는 일찍이 낭야군 구장이 되었습니다. 관로는 어려서부터 별을 보기를 좋아하여 밤에도 잠 잘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부모가 금지하지 못하였다. 항상 말하기를 ‘집의 닭과 들의 고니도 오히려 때를 아는데 어찌 하물며 사람이 되어 세상에 있어서이겠습니까?’했고, 이웃의 아이들과 함께 놀 때 땅에 그림을 그리면 천문이 되어 일월성신을 나열하였습니다. 점점 자라서는 곧 주역에 매우 밝고, 네 방향에서 부는 바람을 우러러보아 길흉을 점치고, 신에 통하는 것을 헤아리고 배웠으며 겸하여 상을 보는 방법을 잘하였습니다. 낭야태수 단자춘이 그 이름을 듣고 관로를 불러 보았습니다. 그 때 자리에 객 백여명이 있었는데 모두 말을 잘하는 선비였습니다. 관로가 단자춘에게 일러 말하기를 ‘나이가 적어 담기가 굳지 못하니 먼저 좋은 술 세 되를 마신 후 말할 것을 청합니다.’하니 단자춘이 기이하게 여기고 마침내 술 세되를 주었습니다. 마시기를 마치고 관로가 단자춘에게 묻기를 ‘지금 저와 대화하려는 것이 부군 주위에 앉아 있는 선비들과 같습니까?’하니 단자춘이 말하기를 ‘내가 스스로 경과 실력이 엇비슷합니다.’했습니다. 이에 관로와 역의 이치를 강론하였습니다. 관로가 지칠 줄 모르고 이야기하는데 말마다 정밀하고 오묘하였습니다. 단자춘이 반복하여 옳고 그름을 가리나 관로의 대답은 물이 흐르는 것 같아 새벽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술 마시고 밥 먹는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단자춘과 여러 빈객들이 탄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에 천하가 ‘신동’이라 불렀습니다. 후에 살고 있는 사람(주민) 중에 곽은이란 자가 있었는데 형제 세 사람이 모두 다리를 절뚝이는 병을 얻자 관로에게 점을 쳐 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관로가 말하기를 ‘괘 안에 그대 집안 본묘 안에 여귀가 있는데 그대의 백모가 아니면 숙모이다. 옛날 흉년이 들었을 때 몇 되 쌀의 이익을 도모하여 그들을 밀어 우물에 떨어뜨리고 큰 돌로 그 머리를 눌러 깨트렸기 때문에 외로운 혼이 고통스러워하여 스스로 하늘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 형제에게 이 갚음이 있는 것이니 제사로 물리쳐서는 안 됩니다.’했다. 곽은 등이 눈물을 흘리며 죄를 인정하였습니다.”
「安平太守王基,知輅神卜,延輅至家。適信都令妻,常患頭風;其子又患心痛;因請輅卜之。輅曰:『此堂之西角有二死屍。一男持矛,一男持弓箭。頭在壁內,腳在壁外。持矛者主刺頭,故頭痛;持弓箭者主刺胸腹,故心痛。』乃掘之。入地八尺,果有二棺。一棺中有矛,一棺中有角弓及箭,木俱已朽爛。輅令徙骸骨去城外十里埋之,妻與子遂無恙。」
(허지가 말하기를) “안평태수 왕기는 관로가 신복(신 같이 점을 치는 사람임)을 알고 관로를 이끌어 집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마침 신도령의 처가 항상 두풍의 병(두통)이 있었고, 그 아들이 또한 심장이 아픈 병이 있었기 때문에 관로가 점을 쳐주기를 청하였습니다. 관로가 말하기를 ‘이 집의 서쪽 모퉁이에 두 시체가 있습니다. 한 남자는 창을 가졌고, 한 남자는 활과 화살을 지녔습니다. 머리는 벽 안에 있고, 다리는 벽 밖에 있는데 창을 지난 자는 주로 머리를 찌르기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활과 화살을 지닌 자는 주로 가슴과 배를 찌르기 때문에 심장이 아픈 것입니다.’했습니다. 이에 땅을 파내었습니다. 땅을 파기를 여덟 자를 하니 과연 두 개의 관이 있었습니다. 한 관 안에는 창이 있었고, 한 관에는 각궁과 화살이 있었는데 나무는 모두 이미 썩어 문드러졌습니다. 관로가 해골을 옮겨 성 밖 십리 떨어진 곳에 묻었더니 처와 아들이 마침내 건강해 졌습니다.”했다.
「館陶令諸葛原,遷新興太守,輅往送行。客言輅能射覆。諸葛原不信,暗取燕卵,蜂窠,蜘蛛三物,分置三盒之中,令輅卜之。卦成,各寫四句於盒上。其一曰:『含氣須變,依乎堂宇;雌雄以形,羽翼舒張。此燕卵也。』其二曰:『家室倒懸,門戶眾多;藏精育毒,得秋乃化。此蜂窠也。』其三曰:『觳觫長足,吐絲成羅;尋網求食,利在昏夜。此蜘蛛也。』滿座驚駭。」
“관도령 제갈원이 신흥태수로 옮겨갈 때 관로가 환송하러 갔습니다. 객이 관로는 엎어 놓은 그릇 안의 물건을 잘 쏘아 맞춘다고 말하였습니다. 제갈원이 믿지 않고 몰래 제비알, 벌집, 거미 세가지 물건을 가져다 세 개의 합 안에 나누어 두고 관로로 하여금 점을 치게 하였다. 점괘가 이루어지자 각각 합 위에 네 개의 문구를 썼습니다. 그 하나에는 ‘기운을 머금고 반드시 변하고, 집에 의지하며 암수의 형상으로 날개를 펴니 이는 제비 알이다.’했고, 두 번째는 ‘집 에 거꾸로 매달리고 문이 많으며 정기를 저장하고 독을 기르며 가을에는 곧 변화하니 이는 벌집이다.’했고, 세 번째는 ‘벌벌 떨며 발을 길게 하고 실을 토해 그물을 이루어 먹이를 구하며 이로움이 밤에 있으니 이는 거미이다.’하니 자리에 가득한 이들이 놀랐습니다.”
「鄉中有老婦失牛,求卜之。輅判曰:『北溪之濱,七人宰烹;急往追尋,皮肉尚存。』老婦果往尋之,見七人於茅舍後煮食,皮肉猶存。婦告本郡太守劉邠,捕七人罪之,因問老婦曰:『汝何以知之?』婦告以管輅之神卜。劉邠不信,請輅至府,取印囊及山雞毛藏於盒中,令卜之。輅卜其一曰;『內方外圓,五色成文;含寶守信,出則有章。此印囊也。』其二曰:『高岳巖巖,有鳥朱身;羽翼玄黃,鳴不失晨。此山雞毛也。』劉邠大驚,遂待為上賓。」
“마을 안에 늙은 부인이 소를 잃자 점을 청하였다. 관로가 판단하여 말하기를 ‘북쪽 시냇가에서 일곱 사람이 도살하여 삶고 있으니 급히 쫓아 가 찾으면 가죽과 고기는 아직 있을 것입니다.’했습니다. 늙은 부인이 과연 가서 찾아보니 일곱 사람이 띠집 뒤에서 삶아 먹는 것을 보았는데 가죽과 고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부인이 본군 태수 유빈에게 고하니 일곱 사람을 잡아 벌을 주고는 늘은 부인에게 물어 말하기를 ‘너는 어떻게 그것을 알았는가?’하니 부인이 관로의 신 같은 점 때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유빈은 믿지 않고 관로를 청하여 관청에 이르자 도장주머니와 산닭의 털을 함안에 감추어두고 점을 치게 하였다. 관로가 그 하나에 ‘안은 네모이고, 밖은 둥글며 오색의 문채가 있으며 보배를 머금고 신의를 지켜 나오면 곧 문장을 이루니 이는 도장주머니이다.’하고, 두 번째는 ‘높은 산이 높고 험준한 곳에 새가 있는데 몸은 붉고, 날개는 검고 누르며 울어 새벽을 잃지 않으니 이는 산닭의 털이다.’했습니다. 유빈이 크게 놀라 마침내 상빈으로 대우하였습니다.”
「一日出郊閒行,見一少年耕於田中,輅立道傍觀之。良久,問曰:『少年高姓、貴庚?』答曰:『姓趙,名顏。年十九歲矣。敢問先生為誰?』輅曰:『吾管輅也。吾見汝眉間有死氣,三日內必死,汝貌美,可惜無壽。』趙顏回家,急告其父。父聞之,趕上管輅,哭拜於地曰:『請歸救吾子!』輅曰:『此乃天命也,安可禳乎?』父告曰:『老夫止有此子,望乞垂救!』趙顏亦哭求。輅見父子情切,乃謂趙顏曰:「汝可備淨酒一瓶,鹿脯一塊,來日齎往南山之中,大樹之下,看盤石上有二人亦棋。一人向南坐,穿白袍,其貌甚惡;一人向北坐,穿紅袍,其貌甚美。汝可乘其弈興濃時,將酒及鹿跪進之。待其飲食畢,汝乃哭拜求壽,必得益算矣。但切勿言是吾所教。』」
“하루는 교에 나가 한가로이 거닐다 한 소년이 밭에서 밭을 갈고 있는 것을 보고 관로는 길 옆에 서서 보았다. 오래하다가 물어 말하기를 ‘소년의 성과 나이는 어떻게 되는가?’하니 답하여 말하기를 ‘성은 조이고, 이름은 안이며, 나이는 십구세입니다. 선생은 누구신지를 감히 묻습니다.’하자 관로가 말하기를 ‘나는 관로이다. 내가 보니 너의 미간에 죽음의 기운이 있으니 삼일 안에 반드시 죽을 것이다. 너의 모습은 아름다운데 수명이 짧은 것이 애석할만 하다.’했습니다. 조안이 집에 돌아가 급히 그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가 그것을 듣고 관로를 쫓아 가 땅에 엎드려 곡하며 말하기를 ‘돌아 가 내 아들을 구해 줄 것을 청합니다.’하니 관로가 말하기를 ‘이는 곧 천명이다. 어찌 기도로 물리칠 수 있겠는가?’했다. 소년의 아버지가 말하기를 ‘저는 다만 이 아들이 있을 뿐이 구함을 드리워주실 것을 바랍니다.’하는데 조안이 또한 곡하며 청하였다. 관로는 부자의 정이 간절함을 보고 이에 조안에게 일러 말하기를 ‘너는 깨끗한 술 한 병과 사슴고기 한 덩어리를 준비하여 내일 남산에 가지고 가면 큰 나무아래에 있는 너럭바위 위에 두 사람이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은 남쪽을 향해 앉아 있는데 백포를 입었으며 그 모습은 매우 추악하고, 한 사람은 북쪽을 향해 않았는데 홍포를 입고 있으며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너는 그 바둑이 무르익었을 때 술과 사슴고기를 가지고 꿇어 올리라. 그 마시고 먹는 것을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네가 곧 울면서 절하고 수명을 구하면 반드시 (수명을)더해 줄 것이다. 다만 절대로 이것을 내가 가르친 바라고 말하지 말라’했습니다.”
老人留輅在家。次日,趙顏攜酒脯盃盤入南山之中。約行五六里,果有二人於大松樹下盤石上奕棋。全然不顧,趙顏跪進酒脯。二人貪著棋,不覺飲酒已盡。趙顏哭拜於地而求壽,二人大驚。穿紅袍者曰:『此必管子之言也。吾二人既受其私,必須憐之。』穿白袍者,乃於身邊取出簿籍檢看,謂趙顏曰:『汝今年十九歲,當死。吾今於『十』字上添上一『九』字,汝壽可至九十九。回見管輅,教再休泄漏天機;不然,必致天譴。』穿紅者出筆添訖,一陣香風過處,二人化作二白鶴,沖天而去。」
노인은 관로를 머물러 집에 있게 하였다. 다음날 조안이 술과 포, 술잔, 소반을 가지고 남산에 들어갔습니다. 약 오육 리를 가자 과연 구 사람이 큰 소나무 아래 너럭바위 위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전혀 돌아보지 않으니 조안이 꿇어 앉아 술과 포를 올렸다. 두 사람은 바둑에 집착하여 술 마시기를 이미 다하였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조안이 땅에 엎드려 울며 수명을 구하니 두 사람이 크게 놀랐다. 홍포를 입은 자가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관자의 말일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이 이미 그 사사로움을 받았으니 반드시 불쌍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하니 백포를 입은 자가 곧 몸에서 장부를 꺼내 점검하여 살펴보고는 조안에게 일러 말하기를 ‘너는 지금 십구 세로 마땅히 죽어야 한다. 내가 지금 十자 위에 하나의 九자를 더하였으니 너의 수명은 구십구세에 이를 것이다. 돌아가 관로를 보면 다시는 천기를 누설하지 말라하고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하늘의 꾸짖음이 이를 것이라 하라.’했다. 홍포를 입은 자가 붓을 꺼내 (글자를)더하기를 마치자, 한 줄기 향기로운 바람이 불면서 두 사람은 두 백학이 되어 하늘에 치솟아 갔습니다.
趙顏歸問管輅。輅曰:『穿紅者,南斗也;穿白者,北斗也。』顏曰:『吾聞北斗九星,何止一人?』輅曰:『散而為九,合而為一也。北斗注死,南斗注生。今已添注壽算,子復何憂?』父子拜謝。自此管輅恐泄天機,更不輕為人卜。此人現在平原,大王欲知休咎,何不召之?」
조안이 돌아와 관로에게 물었다. 관로가 말하기를 ‘홍포를 입은 자는 남두이고, 백포를 입은 자는 북두이다.’하니 조안이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북두에는 아홉 개의 별이 있다하는데 어찌 한 사람뿐입니까?’하니 관로가 말하기를 ‘흩으면 구가 되고, 합하면 하나가 된다. 북두는 죽음을 관장하고, 남두는 삶을 주관한다. 지금 이미 수명을 더해 적었는데 그대는 다시 무엇을 근심하는가?’하니 부자가 감사하였다. 이로부터 관로는 천기누설을 두려워하여 다시는 가벼이 다름 사람을 위해 점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이 현재 평원에 있으니 대왕께서 길흉을 알고자 하신다면 어찌 그를 부르지 않습니까? 했다.
操大喜,即差人往平原召輅。輅至,參拜訖,操令卜之。輅答曰:「此幻術耳,何必為憂?」操心安,病乃漸可。操令卜天下之事。輅卜曰:「三八縱橫,黃豬遇虎;定軍之南,傷折一股。」又今卜傳祚修短之數。輅卜曰:「獅子宮中,以安神位;王道鼎新,子孫極貴。」操問其詳。輅曰:「茫茫天數,不可預知。待後自驗。」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곧 사람을 보내 평원에 가서 관로를 부르게 하였다. 관로가 이르러 뵙는 절을 마치자 조조가 점을 치게 하였다. 관로가 답하여 말하기를 “이는 환술일 뿐이니 어찌 반드시 근심거리가 되겠습니까?”하니 조조는 마음을 편안히 하니 병이 이에 점점 나았다. 조조는 천하의 일을 점치게 하였다. 관로가 말하기를 “삼팔(이십사, 건안 이십사년)이 종횡으로 하고, 누런 돼지가 범을 만났으니 정군(산)의 남쪽에서 한 다리(고굉지신 중의 한 사람)를 잃게 될 것입니다.”했다. 또한 지금의 복을 후세에 전함의 길고 짧음의 운수를 점치게 하였다. 관로가 점을 치고 난 후 말하기를 “사자궁 안에 신위(위패)를 안치하는 것으로서 왕도의 솥은 새롭게 하니 자손들이 지극히 귀하게 될 것입니다.”했다. 조조가 그 자세한 것을 물었다. 관로가 말하기를 “아득하고 아득한 하늘의 운수를 미리 알 수는 없습니다. 후에 스스로 징험하기를 기다리십시오.”했다.
操欲封輅為太吏。輅曰:「命薄相窮,不稱此職,不敢受也。」操問其故。答曰;「輅額無主骨,眼無守睛;鼻無梁柱,腳無天根;背無三甲,腹無三壬。只可泰山治鬼,不能治生人也。」操曰:「汝相吾若何?」輅曰:「位極人臣,又何必相?」再三問之,輅但笑而不答。操令輅遍相文武官僚。輅曰:「皆治世之臣也。」操問休咎,皆不肯盡言。
조조는 관로를 봉하여 태리를 삼고자 했다. 관로가 말하기를 “운명이 각박하고, 생김이 궁하니 이 직책에 걸맞지 않아 감히 받을 수 없습니다.”했다. 조조가 그 이유를 물었다. (관로가)답하여 말하기를 “저의 이마에는 주골(생골)이 없고, 눈에는 수정이 없으며, 코에는 양주(콧대)가 없고, 다리에는 천근이 없으며, 들에는 삼갑이 없고, 배에는 삼임이 없습니다. 다만 태산의 귀신을 다스릴 수는 있으나 산 사람을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네가 보기에 나는 어떠한가?”하니 관로가 말하기를 “지위가 신하로 지극하니 또한 어찌 상을 보려 하십니까?”하니 (조조가)두 번 세 번 물어도 관로는 웃을 뿐 답하지 않았다. 조조가 관로로 하여금 두루 무무관료의 상을 보게 하였다. 관로가 말하기를 “모두 세상을 다스리는 신하입니다.”했다. 조조가 길흉을 물었으나 모두 기꺼이 다 말하지 않았다.
後人有詩讚管輅曰:平明神卜管公明,能算南辰北斗星。八卦幽微通鬼竅,六爻玄奧究天庭。預知相法應無壽,」自覺心源極有靈。可惜當年奇異術,後人無復授遺經。操令卜東吳,西蜀二處。輅設卦云:「東吳主亡一大將,西蜀有兵犯界。」操不信。忽合淝報來:「東吳陸口守將魯肅身故。」操大驚,便差人往漢中探聽消息。不數日,飛報:「劉玄德遣張飛,馬超屯兵下辦取關。」操大怒,便欲自領兵再入漢中,令管輅卜之,輅曰:「大王未可妄動。來春許都必有火災。」
후세 사람이 시로 관로를 찬양하기여 “신 같은 점으로 공명정대함을 관로가 밝히니 남신북두성을 헤아릴 수 있구나./팔괘의 심오함은 귀신을 엿보아 통하였고/육효의 현묘하고 오묘함은 하늘을 궁구하였다./목숨이 없음을 상을 보아 미리 알고, 마음의 근원을 스스로 깨달아 신령스러움을 지극히 하였다./그해의 기이한 방법은 아쉬워할만하나, 후세 사람게 다시 남은 법을 주지 못하였구나./” 했다. 조조가 동오와 서촉 두 곳을 점치게 하였다. 관로가 괘를 베풀고 말하기를 “동오는 한 대장을 잃고, 서촉의 군대가 경계를 범함이 있다.”했는데 조조가 믿지 않았다. 홀연히 합비에서 보고하기를 “동오 육구의 수비 장수 노숙이 죽었습니다.”하니 조조가 크게 놀라 곧 사람을 보내 한중에 가 소식을 탐지하게 하였다. 며칠 되지 않아 보고하기를 “유현덕이 장비와 마초를 보내 군대를 하판에 주둔시키고 관을 취하려 합니다.”했다. 조조가 크게 노하여 곧 스스로 군대를 거느리고 다시 한중에 들어가려하여 관로로 하여금 점치게 하니 관로가 말하기를 “대왕께서는 망령되이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오는 봄 허도에서 반드시 화재가 있을 것입니다.”했다.
操見輅言累驗,故不敢輕動,留居鄴郡,使曹洪領兵五萬,往助夏侯淵,張郃同守東川;又差夏侯惇領兵三萬,於許都來往巡警,以備不虞;又教長史王必總督御林軍馬。主簿司馬懿曰:「王必嗜酒性寬,恐不堪任此職。」操曰:「王必是孤披荊棘歷艱難時相隨之人,忠而且勤,心如鐵石,最足相當。」遂委王必領御林軍馬屯於許都東華門外。時有一人姓耿,名紀,字季行,洛陽人也;舊為丞相府掾,後遷侍中少府,與司直韋晃甚厚;見曹操進封王爵,出入用天子車服,心甚不平。建安二十三年春正月,耿紀與韋晃密議曰:「操賊奸惡日甚,將來必為篡逆之事。吾等為漢臣,豈可同惡相濟?」韋晃曰:「吾有心復人,姓金,名褘,乃漢相金日碑之後,素有討操之心;更兼與王必甚厚。若得得同謀,大事濟矣。」耿紀曰:「他既與王必交厚。豈肯與我同謀乎﹖」韋晃曰:「且往說之,看是如何。」
조조는 관로의 말이 여러 번 징험된 것을 보았기 때문에 감히 가벼이 움직이지 못하고, 업군에 머물러 있으면서 조홍으로 하여금 군대 오만 명을 거느리고 가서 하후연, 장합을 도와 함께 동천을 지키게 하였다. 또 하후돈을 보내 삼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허도에 오가면서 순찰하여 생각지 못한 일을 대비하게 하였다. 또 장사 왕필을 시켜 어림군마를 총 감독하게 했다. 주부 사마의가 말하기를 “왕필은 술을 좋아하고 성품이 너그러워 이 직책을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왕필은 내가 가시덤불을 헤치고 어려운 때를 지나면서 서로 따르던 사람으로 충성되고 또한 부지런하며 마음이 쇠와 돌 같아 가장 마땅하다. 마침내 왕필에게 어림군마를 맡겨 허도 동화문 밖에 주둔하게 하였다. 이 때 한 사람이 있었는데 성은 ‘경’이고 이름은 ‘기’이며, 자는 ‘계행’인데 낙양사람이다. 전에 승상부 아전이 되었다가 후에 시중소부로 옮겼으며, 사직 위황과 매우 도타이 지냈다. 조조가 왕의 작위를 올려 봉하고, 나고 들 때 천자의 수레와 옷을 쓰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매우 불평하였다. 건안 이십삼년 춘 정월 경기와 위황이 비밀리 의논하여 말하기를 “조조 도적의 간악함이 날로 심해지니 장래 반드시 찬역의 일을 할 것이다. 우리들이 한나라의 신하가 되어 어찌 함께 악을 행하며 서로 구제할 수 있겠는가?”했다. 위황이 말하기를 “나에게 심복인 사람이 있는데 성은 ‘김’이고, 이름은 ‘휘’이니 한나라 재상 김일비의 후예로 평소 조조를 성토할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겸하여 왕필과 매루 도탑게 지냅니다. 만약 함께 도모할 수 있다면 대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했다. 경기가 말하기를 “그는 이미 왕필과 사귐이 두텁습니다. 어찌 기꺼이 나와 함께 도모하겠습니까?”하니 위황이 말하기를 “가서 말하고 어떻게 하는지 봅시다.”했다.
於是二人同至金褘宅中。褘接入後堂,坐定。晃曰:「德偉與王長史甚厚,吾三人特來告求。」褘曰:「所求何事?」晃曰:「吾聞魏王早晚受禪,將登大寶,公與王長史必高遷。望不相棄,曲賜提攜,感德非淺!」褘拂袖而起。適從者奉茶至,便將茶潑於地上。晃佯驚曰:「德偉故人,何薄情也?」褘曰:「吾與汝交厚,為汝等是漢朝臣宰之後;今不思報本,欲輔造反之人,吾有何面目與汝為友!」耿紀曰:「奈天數如此,不得不然耳!」
이에 두 사람이 같이 김휘의 집에 이르렀다. 김휘가 영접하여 후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위황이 말하기를 “덕위(김휘)와 왕 장사(왕필)는 매우 도타이 지내고 있으므로 우리 세 사람이 특히 와서 구하는 것(부탁)을 말하려 합니다.”했다. 김휘가 말하기를 “구하는 바(부탁할 것)는 무슨 일입니까?”하니 위황이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위왕은 조만간 선위를 받아 장차 대보(천자의 자리)에 오를 것이며 공(김휘)과 왕장사(왕필)는 반드시 높은 관직에 승진할 것이라 합니다. 바라건데 (우리들을)버리지 않고 간곡함을 내려 손을 잡아주시면 덕을 느낌이 얕지 않을 것입니다.”하니 김휘가 소매를 떨치고 일어났다. 마침 종자(하인)이 차를 받들어 이르렀다가 곧 가지고 있던 차를 땅 위에 쏟아 버렸다. 위황이 거짓으로 놀라며 말하기를 “덕위(김휘)는 친구인데 어찌 정을 야박하게 하십니까?”하니 김휘가 말하기를 “나와 너희들의 사귐을 두텁게 한 것은 너희들이 한나라 조정의 신하로 재상의 후예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은혜를) 갚는 것과 근본을 생각하지 않고, 모반하려는 사람을 도우려하니 내가 무슨 면목으로 너희들과 벗이 되겠는가?”했다. 경기가 말하기를 “아무래도 하늘의 운수가 이와 같으니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을 뿐입니다.”했다.
褘大怒。耿紀,韋晃,見褘果有忠義之心,乃以實情相告曰:「吾等本欲討賊,求足下。前言特相試耳。」褘曰:「吾累世漢臣,安能從賊?公等欲扶漢室,有何高見?」晃曰:「雖有報國之心,未有討賊之計。」褘曰:「吾欲裏應外合,殺了王必,奪其兵權,扶助鑾輿,更結劉皇叔為外援,操賊可滅矣。」
김휘가 크게 노하였다. 경기, 위황은 김휘가 과연 충의의 마음이 있음을 알고 이에 실제 사정을 가지고 말하기를 “우리들은 본래 도적을 성토하고자 하여 그대에게 (도움을)청합니다. 앞서 말한 것은 다만 시험하였을 뿐입니다.”했다. 김휘가 말하기를 “나는 대대로 한나라 신하인데 어찌 도적을 따르겠는가? 공들이 한나라를 돕고자 하니 어떤 높은 견해가 있습니까?”했다. 위황이 말하기를 “비록 나라에(나라의 은혜) 갚을 뜻이 있으나 도적을 성토할 계책이 있지 않았습니다.”했다. 김휘가 말하기를 “내가 안에서 응하고 밖에서 합하여 왕필을 죽이고 그 병권을 빠앗아 천자를 돕고 다시 유황숙(유현덕)과 맺어 밖에서 돕는다면 조조 도적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二人聞之,撫掌稱善。褘曰:「吾有心腹二人,與操賊有殺父之仇,現居城外,可用為羽翼。」耿紀問是何人。褘曰:「太醫吉平之子:長名吉邈,字文然;次名吉穆,字思然。操昔為董承衣帶詔事,曾殺其父。二子逃竄遠鄉,得免於難。今已潛歸許都。若使相助討賊,無有不從。」
두 사람이 그것을 듣고 손바닥을 치며 좋다고 칭찬했다. 김휘가 말하기를 “나에게 심복 두 사람이 있는데 조조 도적과는 아버지를 죽인 원한이 있고 현재 성 밖에서 살고 있으니 도움이 될 만합니다.”했다. 경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다. 김휘가 말하기를 “태의 길평의 아들이니 맏이의 아들은 이름이 ‘길모’이고, 자는 ‘문연’입니다. 차자는 이름이 ‘길목’이고, 자은 ‘사연’입니다. 조조가 옛날에 동승의 의대 안에 있던 조서의 일로 일찍이 그 아비를 죽였습니다. 두 아들이 먼 마을로 도망하여 어려움을 면할 수 있었는데 지금 이미 몰래 허도에 돌아왔습니다. 만약 도적을 성토하는 일을 돕게 한다면 따르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했다.
耿紀,韋晃大喜。金褘即使人密喚二吉。須臾,二人至。褘具言其事。二人感憤流淚,怨氣沖天,誓殺國賊。金褘曰:「正月十五日夜間,城中大張燈火,慶賞元宵。耿少府,韋司直,你二人各領家僮,殺至王必營前;只看營中火起,分兩路殺入;殺了王必,逕跟我入內,請王子登五鳳樓,召百官面諭討賊。吉文然兄弟於城外殺入,放火為號,各要揚聲,叫百姓誅殺國賊,截住城內救軍;待天子降詔,招安已定,便進兵殺奔鄴郡擒曹操,即發使齎詔召劉皇叔今日約定,至期二更舉事,勿似董承自取其禍。」五人對天說誓,歃血為盟,各自歸家,整頓軍馬器械,臨期而行。
경기와 위황이 크게 기뻐하였다. 김휘가 곧 사람을 시켜 비밀리에 두 길(길모와 길목)을 불렀다. 잠시 후 두 사람이 이르렀다. 김휘가 그 일(조조를 성토하는 일)을 모두 말하였다. 두 사람이 분함을 느껴 눈물을 흘리는데 원망하는 기운이 하늘에 치솟아 나라의 도적을 죽일 것을 맹세하였다. 김휘가 말하기를 “정월 십오일 밤은 성 안에 크게 등불을 켜고 정월 대보름의 밤을 구경합니다. 경 소부(소부 경기)와 위 사직(사직 위황) 당신 두 사람은 각각 가동(집안의 노비)를 거느리고 왕필의 진영 앞에 이르십시오. 진영 안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두 길로 나누어 달려 들어가 왕필을 죽이고 바로 나를 따라 안으로 들어 가 왕자를 청하여 오봉루에 오른 뒤 백관을 불러 마주하여 도적을 성토할 것을 타이릅니다. 길문연(길모) 형제는 성 밖에서 쇄도해 들어와 불을 지르는 것으로 신호를 삼아 각기 소리를 지르며, 백성에게 나라의 도적을 죽이자고 소리치고, 성 안의 구원 군을 가로막습니다. 천자가 조서를 내려 (백성을)안정시키기를 기다렸다가 곧 군대를 진군하여 업군에 달려 들어가 조조를 사로잡은 후 사신에게 조서를 가지고 가서 유황숙(유현덕)을 부릅니다. 지금 약속을 정해 이경에 거사할 때까지 동승이 스스로 화를 취한 것과 같이 해서는 안 됩니다.” 했다. 다섯 사람이 하늘을 대하여 맹세하고 삽혈하여 동맹을 맺은 후 각자 집으로 돌아 가 군마와 기계를 정돈하고 기일에 임하기로 하고 갔다.
且說耿紀,韋晃二人,各有家僮三四百,預備器械。吉邈兄弟,亦聚三、四百人口,只推圍獵。安排已定。金褘先期來見王必,言:「方今海宇稍安,魏王威震天下;今值元宵令節,不可不放燈火,以示太平氣象。」王必然其言,告諭城內居民,盡張燈結彩,慶賞佳節。至正月十五夜,天色晴霽,星月交輝。六街三市,競放花燈。真個金吾不禁,玉漏無催!
각설하고 경기와 위황 두 사라은 각각 가동 삼, 사백 명이 있었고, 기계를 미리 준비하였다. 길모 형제가 또한 삼, 사백 명을 모아 다만 사냥몰이꾼이라 하였다. 안배가 정해졌다. 김휘가 기일에 앞서 와 왕필을 만나 말하기를 “방금 천하가 점점 안정되고 위왕의 위엄이 천하를 떨칩니다. 지금 정월 대보름을 두고 등화를 켜는 것으로서 태평의 기상을 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했다. 왕필이 그 말을 그렇다 여겨 성내에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 명령하여 모두 등을 켜고, 아름답게 꾸며 아름다운 절기를 축하하게 하였다. 정월 십오일 밤에 이르니 하늘은 맑고 깨끗하고, 별과 달은 서로 빛났다. 육가삼시가 다투어 꽃 등을 켰다. 확실히 금오(대궐문을 지키는 무관)가 금하지 않고, 옥루(물시계)가 재촉하지 않는구나!
王必與御林諸將,在營中飲宴。二更以後,忽聞營中吶喊,人報「營後火起!」王必慌忙出帳看時,只見火光亂滾;又聞喊殺連天,知是營中有變,急上馬出南門,正遇耿紀,一箭射中肩膊,幾乎墜馬,遂望西門而走。背後有車趕來。王必著忙,棄馬步行,至金褘門首,慌叩其門。原來金褘一面使人於營中放火;一面親領家僮隨後助戰,只留婦女在家。
왕필과 어림군의 여러 장수들이 진영 안에서 술을 마셨다. 이경 이후 홀연히 진영 안에서 함성이 일어나는데 사람이 보고하기를 “진영 위에서 불이 일어납니다.”했다. 왕필이 황망히 장막을 나가 볼 때 불빛이 어지럽게 번지고, 또 함성이 하늘에 치솟는 것을 듣고 진영 안에 변란이 있음을 알았다. 급히 말에 올라 남문으로 나가는데 바로 경기를 만나 하나의 화살에 견갑(어깨뒤쪽)을 맞고 거의 말에서 떨어질 뻔하였으나 마침내 서문을 향하여 달아났다. 뒤에 수레가 쫓아 왔다. 왕필이 놀라 허둥대며 말을 버리고 걸어 가 김휘의 문 앞에 이르러 황망히 그 문을 두드렸다. 알고 보니 김휘는 한편으로는 사람을 시켜 진영 안에 불을 놓게 하고 한편으로는 직접 가동을 거느리고 뒤를 따라 싸움을 도왔으므로 다만 부녀만이 집에 머물고 있을 뿐이었다.
時家中聞王必叩門之聲,只道金褘歸來。褘妻從隔門便問曰:「王必那廝殺了麼!」王必大驚,方俉金褘同謀,逕投曹休家報知金褘,耿紀等同謀反。休急披挂上馬,引千餘人在城中拒敵。城內四下火起,燒著五鳳樓,帝避於深宮。曹氏心腹爪牙,死據宮門。城中但聞人叫:「殺盡曹賊,以扶漢室!」
그 때 집 안에서 왕필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는데 다만 김휘가 돌아온 것으로 알았다. 김휘의 처가 문을 사이에 두고 곧 물어 말하기를 “왈필은 어떻게 죽이셨소!”했다. 왕필은 크게 놀라면서 비로소 김휘가 같이 도모한 것을 깨닫고 재빨리 조휴의 집에 들어 가 김휘와 경기 등이 함께 모반하였다고 알렸다. 조휴가 급히 무장을 하고 말에 올라 천여 명을 이끌고 성 안에서 적을 막았다. 성 안 사방에서 불이 일어나고 오봉루에 불길이 옮겨 붙으니 황제가 깊은 궁으로 피하였다. 조씨의 심복과 용맹한 신하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궁문을 지켰다. 성 안에서는 다만 사람들이 “조조 도적을 죽이는 것으로서 한나라를 돕자.”는 부르짖음 소리만 들렸다.
原來夏侯惇奉曹操命,巡警許昌,領三萬軍,離城五里屯紮;是夜遙望見城中火起,便領大軍前來,圍住許都,使一枝軍入城接應。曹休直混殺至天明。耿紀,韋晃等無人相助。人報金褘,二吉皆被殺死。耿紀,韋晃,奪路殺出城門,正遇夏侯惇大軍圍住,活捉去了。手下百餘人皆被殺。夏侯惇入城,救滅遺火,盡收五人老小宗族,使人飛報曹操。操傳令教將耿,韋二人,及五家宗族老小,皆斬於市,並將在朝大小百官,盡拏解鄴郡,聽侯發落。
원래 하후돈이 조조의 명을 받들어 허창을 순찰하고 경계하며 삼만 명을 이끌고 성에서 오리 떨어진 곳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날 밤 멀리 성 안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고는 곧 대군을 이끌고 앞으로 가 허도를 포위하고 한 떼의 군을 시켜 성에 들어가 상황에 맞게 대응하게 하였다. 조휴는 곧 섞여 싸우기를 날이 밝을 때까지 하였다. 경기와 위황 등을 서로 돕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김휘에게 보고하기를 “두 길씨(길모 형제)가 모두 죽음을 당하였습니다.”했다. 경기와 위황은 길을 벗어나 빠르게 성문을 나가다 바로 하후돈의 대군이 포위하고 있는 것을 만나 산채로 잡혀갔다. 부하 백여 명은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하후돈이 성에 들어 가 남은 불을 끄고, 다섯 사람의 노소 종족을 모두 거두고(잡아들이고) 사람을 시켜 조조에게 보고하였다. 조조가 명령을 내려 경기와 위황 두 사람과 다섯 집안의 노소 종족을 압송하여 모두 저자에서 죽이게 하고, 아울러 조정의 대소 백관을 모두 업군에 압송하여 처분을 기다리게 하였다.
夏侯惇押耿,韋二人至市曹。耿紀厲聲大叫曰:「曹阿瞞,吾生不能殺汝,死當作厲鬼以擊賊!」劊子手以刀搠其口,流血滿地,大罵不絕而死。韋晃以面頰頓地曰:「可恨!可恨!」咬牙皆碎而死。後人有詩讚曰:耿紀精忠韋晃賢,各持空手欲扶天。誰知漢祚相將盡,恨滿心胸喪九泉。
하후돈이 경기와 위황을 압송하여 저자에 이르렀다. 경기가 노한 소리로 크게 외치기를 “조아만(조조)아 내가 살아서는 너를 죽이지 못하였지만 죽어서 제사를 받지 못하는 귀신이 되어서라도 도적을 칠 것이다.”했다. 회자수(망나니)가 칼로 그 입을 푹 찌르니 피가 흘러 땅에 가득하였으나 크게 욕하기를 그치지 않다가 죽었다. 위황은 얼굴과 뺨을 땅에 찧으며 말하기를 “한스럽구나! 한스럽구나!”하며 이를 갈아 모두 부서져 죽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기려 말하기를 “경기의 무한한 충성심과 위황의 어짐이여./각기 빈 손으로 하늘을 떠받치려 하였다./ 한 나라의 사직이 다할 줄 누가 알았으리오./구천을 잃은 한만이 가슴에 가득하구나./”했다.
夏侯惇盡斬五家老小宗族,將百官解赴鄴郡。曹操於教場立紅旗於左、白旗於右,下令曰:「耿紀,韋晃等造反,放火焚許都,汝等亦有出救火者,亦有閉門不出者。如曾救火者,可立於紅旗下;如不曾救火者,可立於白旗下。」眾官自思救火者必無罪,於是多奔紅旗之下。三停內只有一停立於白旗下。操教盡拏立於紅旗下者。眾官各言無罪。操曰:「汝當時之心,非是救火,實欲助賊耳。」盡命牽出漳河邊斬之,死者三百餘員。其立於白旗下者,盡皆賞賜,仍令還許都。
하후돈이 다섯 가문의 노소종족을 모두 죽이고 백관을 업군으로 압송하였다. 조조는 교장(훈련장)에 홍기를 왼쪽에, 백기를 오른 쪽에 세우고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경기와 위황 등이 배반하여 업도에 불을 놓았을 때 너희들이 또한 불을 끄러 나온 자가 있었고, 또한 문을 닫고 나오지 않은 자가 있었다. 만일 일찍이 불을 끄러 나온 자는 홍기 아래 서고, 만일 일찍이 불을 끄지 않은 자는 백기 아래 서라.”했다. 뭇 관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불을 끈 자는 반드시 죄가 없을 것이라 여겨 이에 많이 홍기 아래 달려갔다. 삼정 중에서 다만 일정만(삼분의 일만) 백기 아래 섰다. 조조는 홍기 아래 선 자들을 모두 잡게하였다. 여러 관리들이 각기 죄가 없음을 말하였다. 조조가 말하기를 “너희들의 당시 마음은 불을 끄려는 것이 아니라 실제는 적을 도우려 했을 뿐이다.”하고는 모두 끌고 나가 장하 가에서 죽이게 하니 죽은 자가 삼백여 명이었다. 그 백기 아래 선자에게는 모두 상을 내리고 그대로 허도에 돌아가게 하였다.
時王必已被箭瘡發而死,操命厚葬之。令曹休總督御林軍馬,鍾繇為相國,華歆為御史大夫。遂定侯爵六等十八級,關西侯爵十七級,皆金印紫綬。又置關內外侯十六級,銀印龜組墨綬;五大夫十五級,銅印鐶組綬。定爵封官,朝廷又換一班人物。曹操方悟管輅火災之說,遂重賞輅。輅不受。
그 때 왕필은 이미 화살에 맞은 상처가 덧나 죽으니 조조가 후하게 장례하게 하였다. 조휴로 하여금 어림군마를 총감독하고, 종요를 상국으로 삼으며, 화흠을 어사대부로 삼게 하였다. 마침내 후의 작을 육등 십팔급으로 정하였는데 과서후의 작을 십칠급으로 하고 모두 금인(금으로 만든 도장)과 자주색 인끈(도장을 매단 끈)으로 하였다. 또 관내와 관외후는 십 육급으로 하고 은인(은으로 만든 관인)과 거북장식의 검은 인끈으로 하고, 오대부 십오급은 동인(구리로 만든 관인)과 고리 달린 인끈으로 하였다. 작을 정하고 관직을 봉하고, 조정이 또한 한 떼의 인물을 바꾸었다. 조조는 비로소 관로가 화재를 말한 것을 깨닫고는 마침내 관로에게 많은 상을 주었다. 관로는 받지 않았다.
卻說曹洪領兵到漢中,令張郃,夏侯淵各據險要。曹洪親自進兵拒敵。時張飛自與雷同守巴西。馬兵至下辦,令吳蘭為先鋒,領軍哨出,正與曹洪軍相遇,吳蘭欲退。牙將任夔曰:「賊兵初至,若不先挫其銳氣,何顏見孟起乎?」於是驟馬挺槍搦曹洪戰。洪自提刀躍馬而出。交鋒三合,斬任夔於馬下,乘勢掩殺。吳蘭大敗,回見馬超。超責之曰:「汝不得吾令,何故輕敵致敗?」吳蘭曰:「任夔不聽吾言,故有此敗。」馬超曰:「可緊守隘口,勿與交鋒。」一面申報成都,聽候行止。
각설하고 조홍은 군대를 거느리고 한중에 이르러 장합과 하후연으로 하여금 각각 험한 요해처를 점거하게 하였다. 조홍은 직접 군대를 나아가게 하여 적을 막았다. 이 때 장비는 스스로 뇌동과 파서를 지키고 있었다. 마병(기병)이 하판에 이르자 오란으로 하여금 선봉으로 삼아 군대를 거느리고 정찰을 나가게 하였는데 바로 조홍의 군대와 만나니 오란이 물러나려 하였다. 아장 임기가 말하기를 “적병이 처음 이르렀으니 만약 먼저 그 예기를 꺽지 못한다면 무슨 낯으로 맹기(마초)를 볼 수 있겠습니까?”했다. 이에 말을 달리고 창을 들어 조홍에게 도전하여 싸웠다. 조홍이 스스로 칼을 들고 말을 뛰게하여 나왔다. 서로 싸운 지 삼합 만에 임기를 죽여 말 아래에 떨어뜨리고 형세를 타고 습격하여 죽였다. 오란이 크게 패하고 돌아와 마초를 만났다. 마초가 그를 꾸짖어 말하기를 “너는 나의 명령을 듣지 않고, 무엇 때문에 적을 가벼이 여겨 패함에 이르렀는가?”했다. 오란이 말하기를 “임기가 나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패함이 있었습니다.”했다. 마초가 말하기를 “굳게 요해를 지키고 서로 싸우지 말라.”하는 한편으로 성도에 보고하여 진군함과 그침(의 명령)을 기다렸다.
曹洪見馬超連日不出,恐有詐謀,引軍退回南鄭。張郃來見曹洪,問曰:「將軍既已斬將,如何退兵?」洪曰:「吾見馬超不出,恐有別謀。且我在鄴郡,聞神卜管輅有言,當於此地折一員大將。吾疑此言,故不敢輕進。」張郃大笑曰:「將軍行兵半生,今奈何信卜者之言,而惑其心哉?郃雖不才,願以本部兵取巴西。若得巴西,蜀郡易耳。」洪曰:「巴西守將張飛,非比等閒,不可輕敵。」張郃曰:「人皆怕張飛,吾視之如小兒耳!此去必擒之!」洪曰:「倘有疏失,若何?」郃曰:「甘當軍命。」洪勒了文狀,張郃進兵。正是:自古驕兵多致敗,從來輕敵少成功。未知勝負如何,且看下文分解。
조홍은 마초가 연일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는 속이는 계책이 있을까 두려워하여 군대를 이끌고 물러나 남정으로 돌아갔다. 장합이 와서 조홍을 보고 물어 말하기를 “장군께서 이미 장수를 죽였는데 어찌하여 군대를 물렸습니까?”하니 조홍이 말하기를 “나는 마초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다른 꾀가 있을까 걱정하였습니다. 또 내가 업군에 있을 때 신 같은 점쟁이 관로가 말한 것을 들었는데 이 땅에서 한 명의 대장을 잃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내가 이 말을 의심하였기 감히 가벼이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했다. 장합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장군께서는 반평생 동안 군대를 운용하였는데 지금 어찌 점쟁이의 말을 믿고 그 마음을 미혹하게 합니까? 제가 비록 재능은 없으나 본부군대를 가지고 파서를 취하기를 원합니다. 만약 파서를 취한다면 촉군은 쉽게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조홍이 말하기를 “파서를 지키는 장수는 장비로 등한히 해서는 안 되며 가벼이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했다. 장합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모두 장비를 두려워하나 내가 보기에 어린아이일 뿐입니다. 이에 가서 반드시 사로잡아 오겠습니다.”했다. 조홍이 말하기를 “만약 잘못이 있다면 어찌하겠습니까?”하니 장합이 말하기를 “군령을 달게 받겠습니다.”했다. 조홍은 문장(군령장)을 받은 뒤 장합이 진군하게 했다. 바로 이러하다. 옛날부터 교만한 군대는 패함에 이름이 많았고, 지금까지 적을 가벼이 여기면 공을 이룸이 적었다. 이기고 짐이 어떠할지 알지 못하겠구나.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삼국연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71회 마주한 산을 점령한 황충은 편안함으로 피로하기를 기다리고, 한수를 의지한 조운(조자룡)은 적은 군사를 가지고 많은 군대를 이기다. (0) | 2021.02.10 |
---|---|
제70회 맹장 장비는 지혜로 와구애를 취하고, 늙은 황충은 계책을 써서 천탕산을 빼앗다. (0) | 2021.02.04 |
제68회 감녕은 백명의 기병으로 위나라 진영을 습격하고, 좌자는 잔을 던져 조조를 희롱하다. (0) | 2021.01.26 |
제67회 조조는 한중 땅을 평정하고, 장요의 위엄은 소요진을 진동시키다. (0) | 2021.01.21 |
제66회 관운장은 한 자루 칼을 차고 모임에 가고, 복 황후는 나라를 위해 삶을 버리다. (0) | 2021.01.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