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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

제76회 서공명(서황)은 면수에서 싸우고, 관운장은 패하여 맥성으로 달아나다

by 최인표 2021. 3. 9.

第七十六回徐公明大戰沔水關雲長敗走麥城

76회 서공명(서황)은 면수에서 싸우고, 관운장은 패하여 맥성으로 달아나다

 

卻說糜芳聞荊州已失正無計可施忽報公安守將傅士仁至芳忙接入城問其事故士仁曰:「吾非不忠勢危力困不能支持我今已降東吳將軍亦不如早降。」芳曰:「吾等受漢中王厚恩安忍背之?」士仁曰:「關公去日痛恨吾二人倘一日得勝而回必無輕恕公細察之。」芳曰:「吾兄弟久事漢中王豈可一朝相背?」正猶豫間忽報關公遣使至接入廳上使者曰:「關公軍中缺糧特來南郡公安二處取白米十萬石令二將軍星夜去解軍前交割如遲立斬。」芳大驚顧謂傅士仁曰:「今荊州已被東吳所取此糧怎得過去?」士仁厲聲曰:「不必多疑!」遂拔劍斬來使於堂上芳驚曰:「公如何?」士仁曰:「關公此意正要斬我二人我等安可束手受死公今不早降東吳必被關公所殺。」

각설하고 미방은 형주를 이미 잃었다는 것을 듣고도 바로 시행할만한 계책이 없었다. 홀연히 공안을 지키는 장수 부사인이 이르렀다고 보고하니 미방이 황망히 영접하여 성에 들어가 일의 연고를 물었다. 부사인이 말하기를 내가 충성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형세가 위태롭고 힘이 다하여 지탱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지금 이미 동오에 항복하였으니 장군도 또한 일찍 항복하는 것이 낫겠습니다.”했다. 미방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한중왕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차마 그를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했다. 부사인이 말하기를 관공(관운장)은 떠나던 날 우리 두 사람을 원통하게 하였습니다. 만일 어느 날 이기고 돌아온다면 반드시 가벼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방)은 자세하게 살피십시오.”했다. 미방이 말하기를 우리 형제는 오래 동안 한중왕을 섬겼는데 어찌 하루아침에 서로 배반할 수 있겠는가?”하며 머뭇거리는 사이에 홀연히 관공(관운장)이 보낸 사자가 이르렀다는 보고가 있어 영접하여 관청에 들어갔다. 사자가 말하기를 관공(관운장)의 군 중에 식량이 부족하니 특히 남군, 공안 두 곳의 백미 십만석을 취하여 두 장군이 밤을 새워 운반하여 군대 앞에 물건(식량)을 인도하라 합니다. 만일 늦으면 즉시 베어 죽일 것이라 했습니다.”했다. 미방이 크게 놀라 부사인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지금 형주를 이미 동오에 빼앗겼는데 이 식량이 어떻게 지나갈 수 있겠습니까?”하니 부사인이 성난 소리로 말하기를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하고는 마침내 검을 뽑아 온 사자를 대청 위에서 베어 죽였다. 미방이 놀라 말하기를 (부사인)은 어떻게 하려 하십니까?”하니 부사인이 말하기를 관공(관운장)의 이 뜻은 바로 우리 두 사람을 베어 죽이려는 것이다. 우리들이 어찌 손을 묶고 죽음을 받겠는가? (미방)이 지금 일찍 동오에 항복하지 않으면 관공(관운장)에게 죽음을 당할 것입니다.”했다.

 

正說間忽報呂蒙引兵殺至城下芳大驚乃同傅士仁出城投降蒙大喜引見孫權權重賞二人安民已畢大犒三軍

말하는 사이에 홀연히 여몽이 군대를 이끌고 쇄도해 성 아래에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미방이 크게 놀라 곧 부사인과 함께 성을 나가 항복하였다. 여몽이 크게 기뻐하며 인도하여 손권을 뵙게 하였다. 손권은 두 사람에게 많은 상을 주었다. 백성을 안정시킨 후 크게 삼군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어 위로하였다.

 

時曹操在許都正與眾謀士議荊州之事忽報東吳遣使奉書至操召入使者呈上書信操拆視之書中具言吳兵將襲荊州求操夾攻雲長且囑勿洩漏使雲長有備也操與眾謀士商議主簿董昭曰:「今樊城被困引頸望救不如令人將書射入樊城以寬軍心且使關公知東吳將襲荊州彼恐荊州有失必速退兵卻令徐晃乘勢掩殺可獲全功。」操從其謀一面差人催徐晃急戰一面親統大兵逕往雒陽之南陽陸坡駐紮以救曹仁

그 때 조조는 허도에서 바로 여러 모사들과 형주의 일을 의논하고 있었는데 홀연히 동오가 보낸 사자가 글을 받들고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조조가 불러 들이니 사자가 편지를 올렸다. 조조가 봉투를 뜯어보았는데 글 가운데 갖추어 말한 것은 오나라 군대가 형주를 습격하려 하니 조조가 관운장을 협공할 것을 청하고, 누설되어 관운장으로 하여금 준비가 있게 하지 못하게 할 것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조조와 여러 모사들이 상의하였다. 주부 동소가 말하기를 지금 번성은 피곤하여 목을 빼고 구원을 바라고 있으니 사람을 시켜 편지를 가지고 가 화살을 쏴 번성에 들어가게 하는 것으로서 군대의 마음을 너그럽게 하고, 또 관운장으로 하여금 동오가 장차 형주를 습격하려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는(관운장) 형주를 잃을 까 두려워하여 반드시 속히 군대를 물릴 것이니 그 때 서황으로 하여금 형세를 타고 엄살하면 완전한 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조조가 그 꾀를 따라 한편으로는 사람을 보내 서황을 재촉하여 급히 싸우게 하고, 한편으로 친히 큰 군대를 통솔하고 빠르게 가서 낙양의 남쪽 양릉파에 주둔 하는 것으로서 조인을 구원하였다.

 

卻說徐晃正坐帳中忽報魏王使至晃接入問之使曰:「今魏王引兵已過雒陽令將軍急戰關公以解樊城之困。」

각설하고 서황이 장막 안에 정좌하고 있는데 홀연 위왕의 사자가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서황이 영접해 들어 가 물었다. 사자가 말하기를 지금 위왕이 군대를 이끌고 이미 낙양을 지났으니 장군께서는 급히 관공(관운장)과 싸우는 것으로서 번성의 어려움을 풀게 하라 하였습니다.”했다.

 

正說間探馬報說:「關平屯兵在偃城廖化屯兵在四冢前後一十二個寨柵連絡不絕。」晃即差副將徐商呂建假著徐晃旗號前赴偃城與關平交戰晃卻自引精兵五百循沔水去襲偃城之後

말하는 사이에 정찰병이 보고하여 말하기를 관평의 군대를 언성에 주둔하고 있고, 요화가 군대를 사총에 주둔해 있습니다. 앞 뒤로 열 두 개의 영채와 목책이 있어 연락이 끊어지지 않습니다.”했다. 서황이 곧 부장 성상, 여건에게 서황의 깃발을 빌려주어 전진하여 언성에 가 관평과 서로 싸우게 하였다. 서황은 스스로 정예 군대 오만명을 거느리고 면수를 따라 가 언성의 뒤를 습격하였다.

 

且說關平聞徐晃自引兵至遂提本部兵迎敵兩陣對圓關平出馬與徐商交鋒只三合商大敗而走呂建出戰五六合亦敗走平乘勝追殺二十餘里忽報城中火起平知中計急勒兵回救偃城正遇一彪軍擺開徐晃立馬在門旗下高叫曰:「關平賢姪好不知死汝荊州己被東吳奪了猶然在此狂為!」

각설하고 관평은 서황이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이르렀다는 것을 듣고 마침내 본부의 군때를 데리고 적을 맞이하였다. 두 진이 둥글게 대치하자 관평은 말을 타고 나와 서상과 싸웠는데 서상이 크게 패하여 달아나고, 여건이 나와 싸운지 오육합에 또한 패하여 달아났다. 관평이 이김을 타고 쫓아 죽이며 이십여 리를 갔는데 홀연히 성 안에서 불이 일어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관평은 계책이 빠졌다는 것을 알고 급히 말고삐를 당겨 돌아 가 언성을 구하여 하였는데 바로 한 떼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만났다. 서황은 말을 세우고 문기 아래 있으면서 크게 외쳐 말하기를 관평 조카는 죽음을 장 알지 못하는구나! 너는 형주가 이미 동오에 빼앗겼는데 여전히 여기에서 미친 짓을 하고 있구나!”했다.

 

平大怒縱馬掄直取徐晃不三四合三軍喊叫偃城中火光大起平不敢戀戰殺條大路逕奔四冢寨來廖化接著化曰:「人言荊州已被呂蒙襲了軍心驚慌如之奈何?」平曰:「此必訛言也軍士再言者斬之。」

관평이 크게 노하여 말을 달리고 칼을 휘두르며 바로 서황을 취하려 하니 삼, 합이 되지 않아 삼군이 함성을 지르고 언성 안에서 불빛이 크게 일어났다. 관평은 감히 계속 싸우지 못하고 서둘러 대로를 따라 빠르게 사총의 영채로 달아났다. 요화가 말하기를 사람들이 형주가 이미 여몽이 습격을 받았다고 말히니 군심이 놀라고 당황하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했다. 관평이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유언비어일 것이다. 군사들이 다시 말하는 자는 베어 죽이라.”했다.

 

忽流星馬報說正北第一屯被徐晃領兵攻打平曰:「若第一屯有失諸營豈得安寧此間皆靠沔水賊兵不敢到此吾與汝同去救第一屯。」廖化喚部將分付曰:「汝等堅守營寨如有賊到即便舉火。」部將曰:「四冢寨鹿角十重雖飛鳥亦不能入何慮賊兵?」於是關平廖化盡起四冢寨精兵奔至第一屯駐紮關平看見魏兵屯於淺山之上謂廖化曰:「徐晃屯兵不得地利今夜可引兵劫寨。」化曰:「將軍可分兵一半前去某當謹守本寨。」

홀연히 유성마(준마)가 이르러 정 북쪽 제일 주둔지가 서황이 거느린 군대에게 공격당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관평이 말하기를 만약 제일 주둔지를 잃게 되면 여러 진영이 어찌 편안할 수 있겠는가? 이 사이는 모두 면수를 등지고 있으니 벅병이 감히 여기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나와 너는 같이 가서 제일 주둔지를 구원하자.”하니 요화가 부장을 불러 분부하여 말하기를 너희들은 굳게 영채를 지키고 있고, 만약 적의 이름이 있다면 곧 불을 들어라.”했다. 부장이 말하기를 사총의 영채는 사슴뿔이 열 겹으로 있으니 비록 나는 새라 할지라도 또한 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어찌 적병을 근심하십니까?”했다. 이에 관평과 요화는 사총 영채의 정예군대를 모두 일으켜 제일 주둔지로 달려 가 이르렀다. 관평이 천산의 위에서 위나라 군대의 주둔지를 보고 요화에게 일러 말하기를 서황의 주둔군은 땅의 이익을 얻지 못하였으니 오늘 밤 군대를 이끌고 영채를 습격해야 할 것이다.”했다. 요화가 말하기를 장군께서는 군대를 나누어 반을 거느리고 앞으로 가고, 저는 본 영채를 조심히 지키겠습니다.”했다.

 

是夜關平引一枝兵殺入魏寨不見一人平知是計火速退時左邊徐商右邊呂建兩下夾攻平大敗回營魏兵乘勢追殺前來四面圍住關平廖化支持不住棄了第一屯逕投四冢寨來早望見寨中火起急到寨前只見皆是魏兵旗號關平等退兵忙奔樊城大路而走前面一軍攔住為首大將乃徐晃也化二人奮力死戰奪路而走回到大寨來見關公曰:「今徐晃奪了偃城等處又兼曹操自引大軍分三路來救樊城多有人言荊州已被呂蒙襲了。」關公喝曰:「此敵人訛言以亂我軍心耳東吳呂蒙病危孺子陸遜代之不足為慮!」

이날 밤 관평은 한 갈래의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 영채에 쇄도해 들어갔는데 한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관평은 이것이 계책임을 알고 불처럼 빠르게 물러날 때 왼쪽에서 서상, 오른 쪽에서 여건이 양쪽에서 협공하였다. 관평이 크게 패하여 영채로 돌아가는데 위나라 군사들이 형세를 타고 쫓아 쇄도해 전진해 와 사방을 둘러쌌다. 관평과 요화는 지켜 막을 수 없어 제 일 주둔지를 버리고 빠르게 사총의 영채로 들어가려 하였다. 일찍 영채 안에서 불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급히 영채 앞에 이르렀는데 모두 위나라 군대의 깃발만 보일뿐이었다. 관평 등이 군대를 물려 황망히 번성으로 가는 큰 길로 달아났다. 앞쪽에 한 군대가 막았는데 우두머리되는 대장은 곧 서황이었다. 관평과 요화 두 사람은 힘을 떨쳐 죽음을 무릅쓰고 길을 찾아 달아나 큰 영채에 이르러 관공(관운장)을 뵙고 말하기를 지금 서황이 언성 등을 빼앗았고, 또 겸하여 조조가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세 길로 나누어 번성을 구원하러 오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형주가 이미 여몽의 습격을 받았다고 말합니다.”했다. 관공(관운장)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이는 원한이 있는 사람의 잘못된 말로 우리 군대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일 뿐이다! 동오의 여몽이 병으로 위태로워 어린 육손이 그것을 대신하였으니 근심할 것 없다.”했다.

 

言未畢忽報徐晃兵至公令備馬平諫曰:「父體未痊不可與敵。」公曰:「徐晃與我有舊深知其能若彼不退吾先斬之以警魏將。」遂披挂提刀上馬奮然而出魏軍見之無不驚懼公勒馬問曰:「徐公明安在?」魏營門旗開處徐晃出馬欠身而言曰:「自別君侯倏忽數載不想君侯鬚髮已蒼白矣憶昔壯年相從多蒙教誨感謝不忘今君侯英風震於華夏使故人聞之不勝歎羨茲幸得一見深慰渴懷。」公曰:「吾與公明交契深厚非比他人今何故數窮吾兒耶?」晃回顧眾將厲聲大叫曰:「若取得雲長首級者重賞千金!」公驚曰:「公明何出此言?」晃曰:「今日乃國家之事某不敢以私廢公。」

말을 아직 마치지 않았는데 홀연히 서황의 군대가 이르렀다고 보고하니 공(관운장)이 말을 준비하게 하였다. 관평이 간하여 말하기를 아버지의 몸이 아직 낫지 않았으니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했다. 공이 말하기를 서황과 나는 오래 사귀었는데 깊이 그 능력을 알고 있다. 만약 그가 물러나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그를 베어 죽이는 것으로서 위나라 장수를 경계할 것이다.”했다. 마침내 무장을 하고 칼을 가지고 말에 올라 떨쳐 나갔다. 위나라 군사가 그것을 보고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관운장)이 말고삐를 당기고 물어 말하기를 서공명(서황)은 어디에 있는가?”하니 위나라 진영 문이 열리는 곳에서 서황이 말을 타고 나와 몸을 굽히며 말하기를 군후(관운장)를 이별함으로부터 빠르게 몇 년이 지나 뜻밖에도 군후(관운장)의 수염이 희게 변하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젊었을 때 서로 따라 가르침을 많이 입었으니 감사함을 잊지 않았습니다. 지금 군후(관운장)의 꽃다운 풍모가 중국에 떨쳐 친구가 그것을 듣게 되니 탄복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여기서 요행히 한 번 만났으니 갈망을 깊이 위로받게 됩니다.”했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나와 공명(서황)의 사귐은 깊고 두터운 것은 다른 사람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지금 무슨 이유로 내 아이를 곤궁하게 합니까?”하니 서황이 여러 장수를 돌아보며 노한 소리로 크게 외치기를 만약 관운장의 머리를 얻을 수 있는 자(수급을 베는 자는)는 천금의 상을 줄 것이다.”했다. (관운장)이 놀라 말하기를 공명(서황)은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합니까?”하니 서황이 말하기를 오늘은 곧 국가의 큰일이니 제가 감히 사사로운 것 때문에 공적인 일을 폐할 수는 없습니다.”했다.

 

言訖揮大斧直取關公公大怒亦揮刀迎之戰八十餘合公雖武藝絕倫終是右臂少力關平恐公有失火急鳴金公撥馬回寨忽聞四下裏喊聲大震原來是樊城曹仁聞曹操救兵至引軍殺出城來與徐晃會合兩下夾攻荊州兵大亂關公上馬引眾將急奔襄江上流頭背後魏兵追至關公急渡過襄江望襄陽而奔忽流星馬到報說:「荊州已被呂蒙所奪家眷被陷。」關公大驚不敢奔襄陽提兵投公安來探馬又報:「公安傅士仁已降東吳了。」關公大怒忽催糧人到報說:「公安傅士仁往南郡殺了使命招糜芳都降東吳去了。」

말을 마치고 큰 도끼를 휘두르며 곧바로 관공(관운장)을 취하려 했다.(달려들었다.) (관운장)이 크게 노하여 또한 칼을 휘두르며 맞이하여 팔십여 합을 싸웠다. (관운장)이 비록 무예가 뛰어나지만 끝내 오른쪽 팔은 힘이 적었다. 관평은 공(관운장)이 실수가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급히 징을 울렸다. 공이 말을 빼 영채에 돌아 왔는데 홀연히 사방에서 함성이 크게 울리는 것을 들었다. 알고보니 이는 번성에 있던 조인이 조조의 구원 군이 이른 것을 듣자 군대를 이끌고 성에서 쇄도해 나와 서황과 만나 양쪽에서 협공한 것이었다. 형주의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관공(관운장)이 말에 올라 여러 장수를 이끌고 급히 양강 상류로 달려갔다. 뒤에서 위나라 군사가 뒤를 쫓아 왔다. 관공(관운장)이 급히 양강을 건너 양양을 향해 달려갔다. 홀연히 유성마(좋은 말)가 이르러 보고하여 말하기를 형주는 이미 여몽에게 빼앗겼고, 가족들이 잡혔습니다.”했다. 관공(관운장)이 크게 놀라 감히 양양으로 달려가지 못하고 군대를 데리고 강안으로 들어갔다. 정찰병이 또 보고하기를 공안의 부사인이 이미 동오에 항복하였습니다.”하니 관공(관운장)이 크게 노하였다. 홀연히 식량을 재촉하던 사람이 이르러 보고하여 말하기를 공안의 부사인이 남군에 가 사명(사자)을 죽이고 미방을 불러 함께 동오에 항복하러 갔습니다.”했다.

 

關公聞言怒氣沖塞瘡口迸裂昏絕於地眾將救醒公顧謂司馬王甫曰:「悔不聽足下之言今日果有此事!」因問:「沿江上下何不舉火?」探馬答曰:「呂蒙使水手盡穿白衣扮作客商渡江將精兵伏於??之中先擒了守臺士卒因此不得舉火。」公跌足歎曰:「吾中奸賊之謀矣有何面目見兄長耶!」管糧都督趙累曰:「今事急矣可一面差人往成都求救一面從旱路去取荊州。」關公依言差馬良伊籍齎文三道星夜赴成都求救一面引兵來取荊州自領前隊先行留廖化關平斷後

관공(관운장)이 말을 듣고 노한 기운이 치솟아 상처가 찢어지면서 땅에 혼절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구하여 깨어났다. (관운장)이 사마 왕보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그대의 말을 듣지 않아 오늘 과연 이러한 일이 있게 된 것을 뉘우칩니다.”하고는 말하기를 강의 아래 위를 따라 불이 들려지지 않은 것은 왜입니까?”하니 정찰병이 말하기를 여몽이 수군에게 흰 옷을 입고 상인으로 분장하게 하여 정예군사를 구록배 안에 숨겨둔 채 먼저 봉화대를 지키는 사졸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불을 들지 못한 것입니다.”했다. (관운장)이 발을 구르며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가 간사한 도적의 꾀에 빠졌구나! 무슨 면목으로 형님을 뵐 수 있겠는가!”했다 관량도독 조루가 말하기를 지금 일이 급하니 한편으로 사람을 보내 성도에 가 구원을 청하고, 한편으로는 마른 길(육로)을 따라 가서 형주를 취해야 합니다.”했다. 관공(관운장)이 말에 의하여 마량과 이적을 보내 글 세 통을 가지고 밤을 새워 성도에 나아가 구원을 청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군대를 이끌고 가 형주를 취하려 하여 스스로 앞의 부대를 거느리고 먼저가고 요화와 관평을 두어 뒤를 끊게 하였다.

 

卻說樊城圍解曹仁引眾將來見曹操泣拜請罪操曰:「此乃天數非汝等之罪也。」操重賞三軍親至四冢寨周圍閱視顧謂諸將曰:「荊州兵圍塹鹿角數重徐公明深入其中竟獲全功孤用兵三十餘年未敢長驅逕入敵圍公明真膽識兼優者也!」眾皆歎服操班師還於摩陂駐紮徐晃兵至操親出寨迎之見晃軍皆按隊伍而行並無差亂操大喜曰:「徐將軍真有周亞夫之風矣!」遂封徐晃為平南將軍同夏侯尚守襄陽以遏關公之師操因荊州未定就屯兵於摩陂以候消息

각설하고 번성의 포위가 풀리자 조인은 군대를 이끌고 와 조조를 뵙고 눈물을 흘리며 죄를 청하였다. 조조가 말하기를 이는 곧 하늘의 운수이지 너희들의 죄가 아니다.”했다. 조조는 삼군에 많은 상을 주고 직접 사총의 영채에 이르러 주위를 살펴보며 여러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형주의 군대가 해자를 파고, 둘레에 몇 겹으로 녹각을 두었는데도 서공명(서황)은 그 안에 깊이 들어 가 마침내 완전한 공을 얻었다. 내가 군대를 운용한지 삼십여년인데 멀리까지 말을 몰아가서 적이 둘러싼 곳을 곧바로 들어가지 못하였다. 공명(서황)은 담력과 식견이 겸하여 뛰어나구나!”했다. 무리들이 모두 탄복하였다. 조조는 군대를 돌려 마피에 돌아가 주둔하였다. 서황의 군대가 이르니 조조가 직접 영채에 나가 맞이하였다. 서황의 군대를 보니 모두 대오가 정연하게 행군하여 모두 어긋나거나 어지러움이 없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서장군은 참으로 주아부의 기풍이 있구나!”하고는 마침내 서황을 봉하여 평남장군으로 삼고 하후상과 같이 양양을 지키게 하는 것으로서 관공(관운장)의 군사를 막게하였다. 조조는 형주가 평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군대를 마피에 나아가 주둔하고 소식을 기다리게 하였다.

 

卻說關公在荊州路上進退無路謂趙累曰:「目今前有吳兵後有魏兵吾在其中救兵不至如之奈何?」累曰:「昔呂蒙在陸口時嘗致書君侯兩家約好共誅操賊今卻助曹而襲我是背盟也君侯暫駐軍於此可差人遺書呂蒙責之看彼如何對答。」關公從其言遂修書遣使赴荊州來

각설하고 관공(관운장)은 형로 가는 길 위에 있었는데 나아가거나 물러날 길이 없어 조루에게 일러 말하기를 지금 앞에는 오나라 군대가 있고, 뒤에는 위나라 군대가 있으니 나는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구원병이 이르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했다. 조루가 말하기를 옛날 여몽이 육구이 있을 때 일찍이 글을 군후(관운장)에게 보내 두 나라가 우호를 맺어 함께 조조 도적을 벨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지금 도리어 조조를 도와 우리를 습격한 것은 동맹을 배반한 것입니다. 군후(관운장)께서는 잠시 군대를 여기에 주둔하고 글을 가진 사람을 보내고 여몽을 꾸짖어 그가 어떻게 대답하는지를 보아야 합니다.”했다. 관공(관운장)은 그 말을 따라 마침내 글을 짓고 사자를 보내 형주에 나아가게 하였다.

 

卻說呂蒙在荊州傳下號令凡荊州諸郡有隨關公出征將士之家不許吳兵攪擾按月給與糧米有患病者遣醫治療將士之家感其恩惠安堵不動忽報關公使至呂蒙出郭迎接入城以賓禮相待使者呈書與蒙蒙看畢謂來使曰:「蒙昔日與關將軍結好乃一己之私見今日之事乃上命差遣不得自主煩使者回報將軍善言致意。」遂設宴款待送歸館驛安歇於是隨征將士之家皆來問信有附家書者有口傳音信者皆言家門無恙衣食不缺

각설하고 여몽은 형주에 있으면서 명령을 내리기를 무릇 형주의 여러 군들 중에 관공(관운장)을 따라 출정하는 장사의 집이 있어도 오나라 군사들이 훼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달을 살펴 식량을 주고, 질병이 있는 자는 의원을 보내 치료해주라고 했다. 장사의 집들이 그 은혜를 느끼고 안도하여 움직이지 않았다. 홀연히 관공(관운장)의 사자가 이르렀다고 보고하자 여몽은 성곽을 나가 영접하여 성에 들어가 빈의 예로서 대접하였다. 사자가 글을 올려 여몽에게 주었다. 여몽이 보기를 마치고 온 사자에게 말하기를 제가 지난 날 관장군(관운장)과 우호를 맺었던 것은 곧 일 개인이 사사로운 견해였고, 오늘의 일은 곧 윗사람이 명으로 보낸 것이니 스스로 주관할 수 없습니다. 번거롭지만 사자는 돌아가 장군에게 좋은 말과 지극한 뜻을 보고하시오.”했다. 마침내 연회를 베풀고 정성껏 대접하고 관역에 보내 편안히 쉬게 하였다. 이에 정벌을 따라갔던 장사의 가족들이 모두 와서 소식을 물었다. 편지를 부치는 자도 있고, 말로 소식을 전하는 자도 있었는데 모두 가문에 별일 없음과 입고 먹는 것이 빠짐이 없었다고 말하였다.

 

使者辭別呂蒙蒙親送出城使者回見關公具道呂蒙之語並說荊州城中君侯寶眷并諸將家屬俱各無恙供給不缺公大怒曰:「此奸賊之計也我生不能殺此賊死必殺之以雪我恨!」喝退使者使者出寨眾將皆來探問家中之事使者具言各家安好呂蒙極其恩恤並將書信傳送各將各將欣喜皆無戰心

사자가 여몽을 하직하니 여몽이 직접 성을 나와 보냈다. 사자가 돌아 와 관공(관운장)을 뵙고 여몽의 말을 갖추어 말하고, 아울러 형주 성 안의 군후(관운장)의 가족과 여러 장수의 가족들이 모두 각각 별일이 없고, 공급이 빠지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공이 대노하여 말하기를 이는 간사한 도적의 계책이다. 내가 살아서 이 도적을 죽이 수 없다면 죽어서라도 반드시 그를 죽이는 것으로서 나의 한을 씻을 것이다.”하고는 사자에게 물러가라고 소리쳤다. 사자가 영채를 나오니 여러 장수들이 와서 가족의 일을 물었다. 사자가 각각 가문들의 편안히 잘 지내고 있다는 갖추어 말하고, 여몽이 그 은혜로 구휼함을 지극히 한다고 말하고 아울러 가져온 서신을 각각의 장사에게 전하였다. 각각의 장사들이 기뻐하며 모두 싸울 마음이 없어졌다.

 

關公率兵取荊州軍行之次將士多有逃回荊州者關公愈加恨怒遂催軍前進忽然喊聲大震一彪軍攔住為首大將乃蔣欽也勒馬挺鎗大叫曰:「雲長何不早降!」關公罵曰:「吾乃漢將豈降賊乎!」拍馬舞刀直取蔣欽不三合欽敗走關公提刀追殺二十餘里喊聲忽起左邊山谷中韓當領兵衝出右邊山谷中周泰引軍衝出蔣欽回馬復戰三路夾攻關公急撤軍回走

관공(관운장)은 군대를 통솔하여 형주를 취하려 행군하려할 때 장사들 중에 도망하여 형주로 돌아가는 자들이 많이 있었다. 관공(관운장)이 더욱 한하고 노하여 마침내 군대를 재촉하여 전진하였다. 홀연히 함성이 크게 울리며 한 떼의 군대가 막았는데 우두머리 대장은 곧 장흠으로 말고삐를 당겨 차을 내밀고 크게 소리쳐 말하기를 관운장은 어찌하여 빨리 항복하지 않는가!”하니 관공(관운장)이 욕하며 말하기를 나늠 곧 한 나라의 장수인데 어찌 도적에게 항복하겠는가!”하고는 말을 박차고 칼춤을 추면서 바로 장흠을 취하려 하였다. 삼합이 되지 않아 장흠이 패하여 달아나니 관공(관운장)이 칼을 가지고 이십여리를 쫓아갔는데 홀연히 함성이 일어나며 왼쪽 산골짜기 안에서는 한당이 군대를 거느리고 치고나오고, 오른쪽 산골짜기에서는 주태가 군대를 이끌고 치고 나오니 장흠이 말을 돌려 다시 싸워 세 길(방향)에서 협공하였다. 관공(관운장)이 급히 군대를 거두어 돌아 달아났다.

 

行無數里只見南山岡上人煙聚集一面白旗招颭上寫荊州土人四字眾人都叫:「本處人速速投降!」關公大怒欲上岡殺之山崦內又有兩軍撞出左邊丁奉右邊徐盛并合蔣欽等三路軍馬喊聲震地鼓角喧天將關公困在垓心手下將士漸漸離散

몇 리 가지 못하여 남 쪽 산등성이 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면이 흰 깃발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깃발 위에는 형주토인네 글자가 쓰여 있었다. 무리들이 모두 소리치기를 본처(형주) 사람들은 빨리 항복하라!”하니 관공(관운장)이 크게 노하여 산등성이에 올라 죽이려하였다. 산의 우묵한 곳 안에서 또 두 군대가 치고 나왔는데 오;쪽에는 정봉이고 오른 쪽에는 서성으로 장흠 등과 세 길의 군대와 합하여 함성을 지르니 땅을 울리고 북과 뿔피리 소리가 하늘에 울리니 관공(관운장)이 가운데서 곤궁하였다. 부하 장사들이 점점 흩어졌다.

 

比及殺到黃昏關公遙望四山之上皆是荊州士兵呼兄喚弟子尋爺喊聲不住軍心盡變皆應聲而去關公止喝不住部從止有三百餘人殺至三更正東上喊聲連天乃是關平廖化分為兩路兵殺入重圍救出關公關平告曰:「軍心亂矣必得城池暫屯以待援兵麥城雖小足可屯紮。」關公從之催促殘軍前至麥城分兵緊守四門聚將士商議趙累曰:「此處相近上庸現有劉封孟達在彼把守可速差人往求救兵若得這枝軍馬接濟以待川兵大至軍心自安矣。」

황혼에 이르자 관공(관운장)이 멀리 네 산 위를 바라보니 모두 형주의 군대로 형을 부르고 동생을 부르며 아버지를 부르는 함성이 그치지 않았다. 군대의 마음이 모두 변하여 모두 소리에 응답하며 갔다. 관공(관운장)이 소리를 쳐 저지하였으나 막지 못하였다. 수행원은 다만 삼백여 명이 있을 뿐이었다. 삼경에 이르러 정 동쪽에서 함성이 하늘에 이어지니 곧 관평과 요화가 나누어 두 길의 군대로 거듭된 포위 안에 들어 와 관공(관운장)을 구출하였다. 관평이 고하여 말하기를 군대의 마음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반드시 성지(성과 해자)를 얻어 잠시 주둔하여 응원하는 군대를 기다려야 합니다. 맥성은 비록 작으나 충분히 주둔할만 합니다.”했다. 관공(관운장)이 그것을 따라 남은 군대를 재촉하여 맥성에 이르러 분대를 나누어 굳게 네 성문을 지키게 하고 장사를 모아 상의하였다. 조루가 말하기를 이 곳은 상용과 서로 가깝습니다. 현재 유봉과 맹달이 그 곳에 있으면서 지키고 있으니 속히 사람을 보내 가서 구원병을 청해야 합니다. 이 갈래 군사들의 구원을 얻는 것으로서 천(서천과 동천, 유현덕의 군대)의 군대가 크게 이를 수 있다면 군대의 마음은 저절로 안정될 것입니다.”했다.

 

正議間忽報吳兵已至將城四面圍定公問曰:「誰敢突圍而出往上庸求救?」廖化曰:「某願往。」關平曰:「我護送汝出重圍。」關公即修書付廖化藏於身畔飽食上馬開門出城正遇吳將丁奉截住被關平奮力衝殺奉敗走廖化乘勢殺出重圍投上庸去了關平入城堅守不出

의논하는 사이에 홀연히 오나라 군대가 이미 이르러 장차 사면을 둘러쌌다고 보고하였다. (관운장)이 물어 말하기를 누가 감히 포위를 치고 나가 상용에 가서 구원을 청하겠는가?”하니 요화가 말하기를 제가 가기를 원합니다.”했다. 관평이 말하기를 내가 너를 호송하여 두터운 포위를 나가게 하겠다.”했다. 관공(관운장)이 곧 글을 써서 요화에게 주어 몸에 감추게 한 뒤 밥을 배불리 먹고 말에 올라 성문을 열고 성을 나갔다. 바로 오나라 장수 정보가 막아서니 관평이 힘을 떨쳐 치고 죽이니 정봉이 패하여 달아났다. 요화가 형세를 타고 두터운 포위를 나가 상용에 들어갔다. 관평은 성(맥성)에 들어 가 굳게 지키고 나오지 않았다.

 

且說劉封孟達自取上庸太守申耽率眾歸降因此漢中王加劉封為副將軍與孟達同守上庸當日探知關公兵敗二人正議間忽報廖化至封令請入問之化曰:「關公兵敗見困於麥城被圍至急蜀中援兵不能旦夕即至特令某突圍而出來此求救望二將軍速起上庸之兵以救此危倘稍遲延公必陷矣。」封曰:「將軍且歇容某計議。」

각설하고 유봉과 맹달이 상용을 취하려하자 (상용)태수 신탐은 무리를 통솔하여 항복하였다. 이로 인하여 한중왕은 유봉을 봉하여 부장군을 삼고 맹달과 함께 상용을 지키게 하였다. 그날 관공(관운장)의 군대가 패한 것을 알고 두 사람이 의논하는 사이에 홀연히 요화가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유봉이 들어오기를 청하여 물었다. 요화가 말하기를 관공(관운장)의 군대가 패하여 맥성에서 곤궁함을 당하고 포위되어 지급히 급합니다. 촉 중의 구원병이 아침저녁에 이를 수 없습니다. 두 장군께서 속히 상용의 군대를 일으켜 이 위급함을 구원해 주십시오. 만약 조금이라도 늦으면 공(관운장)은 반드시 빠질(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했다. 유봉이 말하기를 장군께서 쉬시고 계시면 제가 계책을 의논하겠습니다.”했다.

 

化乃至館驛安歇候發兵劉封謂孟達曰:「叔父被困如之奈何?」達曰:「東吳兵精將勇且荊州九郡俱已屬彼止有麥城乃彈丸之地又聞曹操親督大軍四五十萬屯於摩陂量我等山城之眾安能敵得兩家之強兵不可輕敵。」封曰:「吾亦知之奈關公是吾叔父安忍坐視而不救乎?」達笑曰:「將軍以關公為叔恐關公未必以將軍為姪也某聞漢中王初嗣將軍之時關公即不悅後漢中王登位之後欲立後嗣問於孔明孔明曰:『此家事也問關張可矣。』漢中王遂遣人至荊州問關公關公以將軍乃螟蛉之子不可僭立勸漢中王遠置將軍於上庸山城之地以杜後患此事人人知之將軍豈反不知耶何今日猶沾沾以叔姪之義而欲冒險輕動乎?」封曰:「君言雖是但以何詞卻之?」達曰:「但言山城初附民心未定不敢造次興兵恐失所守。」

요화는 관역에 이르러 편안히 쉬면서 군대를 동원하기를 기다렸다. 유봉이 맹달에게 일러 말하기를 숙부께서 곤궁함을 당하였으니 어떻게하면 좋겠습니까?”하니 맹달이 말하기를 동오는 병사가 정예롭고 장수는 용맹하며, 또한 형주 아홉 개 군이 모두 이미 그들에게 속하고 다만 맥성만 소유하였을 뿐이니 곧 사방이 적국에 둘러싸여 공격의 대상이 되는 좁은 땅입니다. 또 조조가 친히 대군 사오십만을 감독하여 마피에 주둔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들 산성의 무리를 헤아려 보건데 어찌 두 나라의 강한 군대를 가벼이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했다. 유봉이 말하기를 내가 또한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관공(관운장)은 나의 숙부이니 어찌 차마 앉아 보기만 하고 구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했다. 맹달이 웃으며 말하기를 장군은 관공(관운장)을 숙보로 여기나 관공(관운장)이 반드시 장군을 조카로 여기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저는 한중왕께서 처음 장군을 후계자로 하려하였을 때 관공(관운장)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후에 한중왕께서 자리에 오른 후 후계자를 세우고자 하였을 때 제갈공명에게 물었습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이는 집안일이니 관운장과 장비에게 물으십시오.’ 했습니다. 한중왕께서 마침내 사람을 보내 형주에 이르러 관공(관운장)에게 묻게 하였습니다. 관공(관운장)은 장군이 곧 양자이기 때문에 참람히 세워서는 안 된다 여겨 한중왕을 권하여 장군을 멀리 상용산성의 땅에 둘 것을 권하여 후환을 막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 일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인데 장군께서는 어찌 도리어 알지 못하십니까? 어찌 오늘 오히려 가볍게 숙질의 의로서 위험을 무릅쓰고 가볍게 움직이려 하십니까?” 했다.

 

封從其言次日請廖化至:「此山城初附之所未能分兵相救。」化大驚以頭叩地曰:「若如此則關公休矣!」達曰:「我今即往一杯之水安能救一車薪之火乎將軍速回靜候蜀兵至可也。」化大慟告求劉封孟達皆拂袖而入廖化知事不諧尋思須告漢中王求救遂上馬大罵出城望成都而去

유봉이 그 말에 따라 다음날 요화를 청하여 이르자 말하기를 이 산성은 처음 붙은(차지한) 곳으로 아직 군대를 나누어 서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했다. 요화가 크게 놀라 머리를 땅에 두드리며 말하기를 만약 이 같다면 곧 관공(관운장)은 죽을 것입니다.”하니 맹달이 말하기를 우리가 지금 곧 가더라도 한 잔의 물일뿐인데 어찌 한 수래 섶의 불을 끌 수 있겠습니까? 장군께서는 속히 돌아가 고요히 촉의 군대가 이르기를 기다리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했다 요화가 목놓아 울면서 (구원을) 청하였다. 유봉과 맹달이 모두 소메를 떨치고 들어갔다. 요화는 일이 화하지 못할 것을 알고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모름지기 한중왕에게 고하여 구원을 청하기로 하고는 마침내 말에 올라 크게 욕하며 성을 나가 성도를 향해 갔다.

 

卻說關公在麥城盼望上庸兵到卻不見動靜手下止有五六百人多半帶傷城中無糧甚是苦楚忽報城下一人教休放箭有話來見君侯公令放入問之乃諸葛瑾也禮畢茶罷瑾曰:「今奉吳侯命特來勸諭將軍自古道:『識時務者為俊傑。』今將軍所統漢上九郡皆已屬他人矣止有孤城一區內無糧草外無救兵危在旦夕將軍何不從瑾之言歸順吳侯復鎮荊襄可以保全家眷幸君侯熟思之。」

각설하고 관공(관운장)은 맥성에서 상용의 군대가 이르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동정을 볼 수 없었고, 부하들은 다만 오육백 명만 있을 뿐인데 태반이 부상을 입고 있었고, 성 안에는 식량이 없어 심한 어려움으로 괴로워하였다. 홀연히 성 아래서 한 사람이 화살을 쏘게하고 와서 군후(관운장)를 뵈려한다고 보고하였다. (관운장)이 들어 오게하여 물으니 곧 제갈근이었다. 예를 마치고 차를 마신 후 제갈근이 말하기를 지금 오후(손권)의 명을 받들어 특히 와서 장군에게 권유합니다. 옛날 가르침에 시무를 아는 자가 준걸이라 합니다.’ 지금 장군께서 통솔하고 있는 한 수 상류지역 아홉 개 군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속하였습니다. 다만 외로운 성 하나가 있는데 안에는 식량과 말 먹이 풀이 없고, 밖에는 구원하는 군사가 업어 위태로움이 조석에 달렸습니다. 장군께서는 어찌 저의 말을 따라 오후(손권)에게 귀순하여 다시 형주와 양양을 지키는 곳으로서 가족을 보전하지 않습니까? 군후(관운)께서 깊이 생각하시면 다행이겠습니다.” 했다.

 

關公正色而言曰:「吾乃解良一武夫蒙吾主以手足相待安肯背義投敵國乎城若破有死而已玉可碎而不可改其白竹可焚而不可毀其節身雖殞名可垂於竹帛也汝勿多言速請出城吾欲與孫權決一死戰!」瑾曰:「吳侯欲與君侯結秦晉之好同力破曹共扶漢室別無他意君侯何執迷如是?」

관공(관운장)이 얼굴 색을 바로하고 말하기를 나는 곧 해량의 한 무부일 뿐으로 우리 주공(유현덕)께서 수족으로 상대해 주심을 입었는데 어찌 의리를 저버리고 적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성이 만약 깨트려진다면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옥은 부서져도 그 흰색을 바꾸지 않고 대나무는 발에 타더라도 그 마디를 훼손하지 않습니다. 몸은 비록 죽어도 이름은 대나무와 비단에 드리워질 것입니다. 당신은 더 말하지 말고 속히 성을 나갈 것을 청합니다. 나는 손권과 한 번 죽음으로 싸울 것을 결단하고자 합니다.”했다. 제갈근이 말하기를 오후(손권)는 군후(관운장)나라, 나라의 우호를 맺고 힘을 함께하여 조조를 깨트리고 함께 한 나라를 부축하려는 것이지 따로 다른 뜻은 없습니다. 군후(관운장)께서는 어찌 미혹함이 이 같습니까?”했다.

 

言未畢關平拔劍而前欲斬諸葛瑾公止之曰:「彼弟孔明在蜀佐汝伯父今若殺彼傷其兄弟之情也。」遂令左右逐出諸葛瑾瑾滿面羞慚上馬出城回見吳侯曰:「關公心如鐵石不可說也。」孫權曰:「真忠臣也似此如之奈何?」呂範曰:「某請卜其休咎。」權即令卜之範揲蓍成象地水師卦」,更有玄武臨應主敵人遠奔權問呂蒙曰:「卦主敵人遠奔卿以何策擒之?」蒙笑曰:「卦象正合某之機也關公雖有沖天之翼飛不出吾羅網矣!」正是龍游溝壑遭蝦鳳入牢籠被鳥欺畢竟呂蒙之計若何且看下文分解

말을 아직 마치지도 않았는데 관평이 검을 뽑고 앞으로 나와 제갈근을 베어 죽이려 하였다. (관운장)이 저지하며 말하기를 그의 동생 제갈공명이 촉에 있으면서 너의 백부를 돕고 있는데 지금 만약 그를 죽인다면 그 형제의 정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하고는 마침내 좌우로 하여금 제갈근을 쫓아내게 하였다. 제갈근이 얼굴 가득 부끄러워하면서 말에 올라 성을 나갔다. 돌아 가 오후(손권)를 뵙고 말하기를 관공(관운장)의 마음이 쇠와 돌 같으니 설득할 수 없습니다.”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참으로 충신이로다! 이 같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니 여범이 말하기를 제가 그 아름다움과 허물을 점쳐보기를 청합니다.”했다. 손권이 곧 점치게 하였다. 여범이 시초를 뽑아 상을 만들어보니 곧지수사괘이고, 다시 현무가 호응하여 적인들이 멀리 달아날 것을 주장하고 있었다. 손권이 여몽에게 물어 말하기를 괘에 적인이 멀리 달아남을 주장하니 경은 무슨 계책으로 그를 사로잡겠는가!”했다. 여몽이 웃으며 말하기를 괘와 상은 저의 조짐과 바로 합합니다. 관공(관운장)이 비록 하늘을 찌르는 날개가 있어 날아도 우리 그물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했다. 바로 이러하다. 용이 도랑과 골짜기에서 노닐다 두꺼비의 희롱을 만났고, 봉이 감옥과 조롱에 들어 가 새에게 속임을 당하였다. 마침내 여몽의 계책이 어떠할 까,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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