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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

제78회 풍질을 치료한 신의 자신은 죽고, 유언을 전한 간웅은 목숨이 다하다.

by 최인표 2021. 3. 19.

第七十八回治風疾神醫身死傳遺命奸雄數終

78회 풍질을 치료한 신의 자신은 죽고, 유언을 전한 간웅은 목숨이 다하다.

 

卻說漢中王聞關公父子遇害哭倒於地眾文武急救半晌方醒扶入內殿孔明勸曰:「王上少憂自古道:『死生有命。』關公平日剛而自矜故今日有此禍王上且宜保養尊體徐圖報讎。」玄德曰:「孤與關張二弟桃園結義時誓同生死今雲長已亡孤豈能獨享富貴乎!」

각설하고 한중왕(유현덕)은 관공(관운장) 부자가 해를 만났다는 것을 듣고 곡하며 땅에 엎어지니 여러 문무관들이 급히 구하여 반나절이 지나 비로소 깨어나자 부축하여 내정에 들어갔다. 제갈공명이 권하여 말하기를 (유현덕)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예로부터 죽고 사는 것은 명이 있다.’말하는데 관공(관운장)은 평소 굳세고 스스로에 자부심을 가졌기 때문에 오늘 이 화가 있었습니다. (유현덕)께서는 또한 마땅히 존귀한 몸을 보호하고 길러 천천히 원수를 갚을 것을 도모하십시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나와 관운장, 장비 두 아우는 도원에서 결의할 때 생사를 같이 할 것을 맹세하였습니다. 지금 관운장이 이미 죽었으니 내가 어찌 홀로 부귀를 누리리오!”했다.

 

言未畢只見關興號慟而來玄德見了大叫一聲又哭絕於地眾官救醒一日哭絕三五次三日水漿不進只是痛哭淚濕衣襟斑斑成血孔明與眾官再三勸解玄德曰:「孤與東吳誓不同日月也!」孔明曰:「聞東吳將關公首級獻與曹操操以王侯禮祭葬之。」玄德曰:「此何意也?」孔明曰:「此是東吳欲移禍於曹操操知其謀故以厚禮葬關公令主上歸怨於吳也。」玄德曰:「吾今即提兵問罪於吳以雪吾恨!」孔明諫曰:「不可吳欲令我伐魏魏亦欲令我伐吳各懷譎計伺隙而乘主上只宜按兵不動且與關公發喪待吳魏不和乘時而伐之可也。」

말을 마치기도 전에 관흥이 소리 내어 울며 와 (유현덕을)만났다. 유현덕이 (관흥을)보고는 크게 한소리를 지르고는 또 곡하며 땅에 혼절하였다. 여러 관리들이 구하여 깨어났다. 하루에 세 번, 다섯 번 곡하며 혼절하고 삼일동안 물과 미음을 올리지(먹지) 못하고, 다만 통곡하여 눈물이 옷깃을 적시고 피로 얼룩얼룩하였다. 제갈공명과 여러 관리들이 두 번 세 번 풀 것을 권하였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나와 동오는 해와 달을 함께 하지 못할 것을 맹서한다.”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동오가 관공(관운장)의 수급(머리)를 가져다 조조에게 바쳤는데 조조가 왕후의 예로 장례하였다고 들었습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이는 무슨 뜻입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이는 동오가 화를 조조에게 떠넘기고자 한 것인데 조조가 그 꾀를 알았기 때문에 후한 예로 관공(관운장)을 장례하는 것으로서 주상(유현덕)으로 하여금 오나라에 원한을 돌리려는 것입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내가 지금 곧 군대를 데리고 오나라에 죄를 묻는 것으로서 나의 한을 씻을 것이오!”했다. 제갈공명이 간하여 말하기를 안 됩니다. 오나라는 우리로 하여금 위나라를 치게 하려하고, 위나라가 또한 우리로 하여금 오를 치게 하려하여 각각 남을 속이는 계책을 품고 있으니 틈을 엿보아 편승하여야 합니다. 주상(유현덕)께서는 다만 군대를 준비하여 움직이지 말아야 하고, 또 관공(관운장)의 상을 발표해야 합니다. 오나라와 위나라가 화합하지 못할 때를 기다리다 때를 타 치는 것이 옳습니다.”했다.

 

眾官又再三勸諫玄德方纔進膳傳旨川中大小將士盡皆挂孝漢中王親出南門招魂祭奠號哭終日

여러 관리들이 또한 두 번, 세 번 권하고 간하니 유현덕이 비로소 겨우 음식을 올리게 하고, 천중(양천)의 대소 장사들에게 명하여 모두 상복을 입게 하였다. 한중왕(유현덕)은 직접 남문을 나가 혼을 불러 제사하며 소리내어 곡하기를 종일토록 하였다.

 

卻說曹操在洛陽自葬關公後每夜合眼便見關公操甚驚懼問於眾官眾官曰:「洛陽行宮舊殿多妖可造新殿居之。」操曰:「吾欲起一殿名建始殿恨無良工。」賈詡曰:「洛陽良工有蘇越者最有巧思。」操召入令畫圖像蘇越畫成九間大殿前後廊廡樓閣呈與操操視之曰:「汝畫甚合孤意但恐無棟梁之材。」蘇越曰:「此去離城三十里有一潭名躍龍潭前有一祠名躍龍祠祠傍有一株大梨樹高十餘丈堪作建始殿之梁。」

각설하고 조조는 낙양에 있으면서 관공(관운장)을 장례한 후로부터 매일 밤 눈을 감으면 곧 관공(관운장)이 보였다. 조조가 매우 놀라고 두려워하여 여러 관리들에게 물었다. 여러 관리들이 물어 말하기를 낙양 행궁의 옛 전각에 요사한 기운이 많으니 새 전각을 지어 거주해야 합니다.”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한 전각을 일으키고, 이름을 건시전이라 하려하는데 좋은 장인이 없음을 한한다.”했다. 가후가 말하기를 낙양의 좋은 장인으로 소원이란 자가 있는데 가장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했다. 조조가 불러 들여 도상을 그리게 하였다. 소월이 아홉간의 큰 전각과 앞 뒤 낭무, 누각을 그려 조조에게 올렸다. 조조가 그것을 보고 말하기를 너의 그림이 매우 내 뜻에 부합한다. 다만 기둥과 대들보의 재목이 없을까 걱정된다.”하니 소월이 말하기를 이는 성으로부터 삼십리 떨어진 곳에 한 못이 있는데 도룡담이라 이름 합니다. 앞에 한 사당이 있으니 이름을 약룡사라 합니다. 사당 옆에 한 그루의 큰 배나무가 있는데 높이가 십장이 넘으니 건시전을 지을 대들보를 감당할만(쓸만) 합니다.”했다.

 

操大喜即令人工到彼砍伐次日回報梨樹鋸解不開斧砍不入不能斬伐操不信親領數百騎直至躍龍祠前下馬仰觀那樹亭亭如華蓋直侵雲漢並無曲節操命砍之鄉老數人前來諫曰:「此樹已數百年矣常有神人居其上恐未可伐。」操大怒曰:「吾平生遊歷普天之下四十餘年上至天子下至庶人無不懼孤是何妖神敢違孤意!」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곧 사람과 장인으로 하여금 그곳에 이르러 베게 하였다. 다음날 돌아와 배나무는 톱으로 베어도 베어지지 않고, 도끼로 베어도 베어지지 않아 벨 수 없다고 보고하였다. 조조가 믿지 않고 직접 수백 기를 거느리고 곧바로 약룡사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그 나무를 쳐다보니 우뚝하게 높이 솟아 마치 화개와 같아 곧바로 운한(은하수)을 침범한 듯하고 아울러 굽은 마디도 없었다. 조조가 그것을 베라고 명령하니 마을의 노인들 몇 명이 앞에 와 간하여 말하기를 이 나무는 이미 수백 년이 되어 항상 신인이 그 위에 머물고 있으니 베지 못할까 두렵습니다.”했다. 조조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평생 하늘 아래를 돌아다닌 지 사십여 년으로 위로는 천자에 이르고, 아래로는 서인에 이르기까지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이 어떤 요사스런 신이 감히 내 뜻을 어긴단 말인가!”했다.

 

言訖拔所佩劍親自砍之錚然有聲血濺滿身操愕然大驚擲劍上馬回至宮內是夜二更操睡臥不安坐於殿中隱几而寐忽見一人披髮仗劍身穿皂衣直至面前指操喝曰:「吾乃梨樹之神也汝蓋建始殿意欲篡逆卻來伐吾神木吾知汝數盡特來殺汝!」操大驚急呼:「武士安在?」皂衣人仗劍欲砍操操大叫一聲忽然驚覺頭腦疼痛不可忍急傳旨遍求良醫治療不能痊可眾官皆憂華歆入奏曰:「大王知有神醫華佗否?」

말을 마치고 차고 있던 검을 뽑아 직접 베었더니 쩡하는 소리가 나고 피가 온 몸에 흩뿌려졌다. 조조가 악하며 크게 놀라 검을 던지고 말에 올라 돌아와 궁에 이르렀다. 이날 밤 이경에 조조가 누워 자는 것이 편안하지 않아 전 안에 앉아 안석에 기대자고 있었다. 홀연히 한 사람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검을 짚었고, 몸에는 검은 옷을 입은 채 바로 얼굴 앞에 이르러 조조를 가리키며 소리쳐 말하기를 나는 곧 배나무의 신이다. 네가 건시전을 지으려는 것은 뜻이 찬역하려는데 있어 나의 신목을 베러 왔구나! 내가 너의 운수가 다하였음을 알고 특히 너를 죽이러 왔다.”했다. 조조가 크게 놀라 급히 무사들은 어디에 있는가?”하고 소리쳤다. 검은 옷의 사람이 검을 짚고 조조를 베려하였다. 조조가 크게 한 소리를 외치고는 홀연히 놀라 깨니 두뇌가 아파 참을 수 없어 급히 두루 좋은 의원을 찾아 치료하게 하였으나 치료하지 못하였다. 여러 관들이 근심하였다. 화흠이 들어와 아뢰어 말하기를 대왕께서는 신의 화타가 있는 것을 아십니까?”했다.

 

操曰:「即江東醫周泰者乎?」歆曰:「是也。」操曰:「雖聞其名未知其術。」歆曰:「華佗字元化沛國譙郡人也其醫術之妙世所罕有但有患者或用藥或用鍼或用灸隨手而愈若患五臟六腑之疾藥不能效者以麻肺湯飲之令病者如醉死卻用尖刀剖開其腹以藥湯洗其臟腑病人略無疼痛洗畢然後以藥線縫口用藥敷之或一月或二十日即平復矣其神妙如此。」

조조가 말하기를 곧 강동에서 주태를 치료한 자를 말함인가?”하니 화흠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비록 그 이름은 들었으나 그 의술은 알지 못한다.”했다. 화흠이 말하기를 화타의 자는 원화이니 패국 조군 사람입니다. 그 의술의 공교로움은 세상에 드물게 있는 바입니다. 다만 병이 있으면 혹은 약을 쓰고, 혹은 침을 쓰고, 혹은 뜸을 쓰니 손을 따라 (병이)낫습니다. 만약 오장육부의 병을 근심함에도 약으로 치료할 수 없다면 마폐탕을 마시게 하는 것으로서 병든 자로 하여금 마치 취하여 죽은 것 같게하여 뾰족한 칼로 그 배를 가르고 약탕으로 그 장부(장기)를 씻는데 병든 사람은 대략 고통이 없습니다. 씻기를 마친 후 약과 실로서 입구를 꿰매고 약을 써서 덮습니다. 혹은 한 달, 혹은 이십일이면 평상을 회복합니다. 그 신묘하기가 이와 같습니다.”했다.

 

一日佗行於道上聞一人呻吟之聲佗曰:『此飲食不下之病。』問之果然佗令取蒜虀汁三升飲之吐蛇一條長二三尺飲食即下廣陵太守陳登心中煩懣面赤不能飲食求佗醫治佗以藥飲之吐蟲三升皆赤頭首尾動搖登問其故佗曰:『此因多食魚腥故有此毒今日雖愈三年之後必將復發不可救也。』後陳登果三年而死

하루는 화타가 길을 가는데 한 사람이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화타가 말하기를 이는 음식이 내려가지 않는 병이다.’하고는 물어보니 과연 그러했습니다. 화타가 마늘로 버무린 채소 즙 세 되를 마시게 하였더니 길이가 두, 세 자 되는 뱀 한 마리를 토했는데 음식이 곧 내려갔습니다. 광릉태수 진등은 마음속으로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워 얼굴이 붉어지고 마시고 먹을 수 없어 화타를 청해 치료하였습니다. 화타는 약을 마시게 하였더니 벌레 세 되를 토하였는데 모두 머리가 붉고 머리와 꼬리가 움직였습니다. 진등이 그 이유를 물으니 화타가 말하기를 이는 물고기 날 것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이런 독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비록 나았으나 삼년 후 반드시 다시 발병할 것인데 칠할 수 없습니다.’했습니다. 과연 진등은 삼년 후에 죽었습니다.”

 

又有一人眉間生一瘤不可當令佗視之佗曰:『內有飛物。』人皆笑之佗以刀割開一黃雀飛去病者即愈有一人被犬咬足指隨長肉二塊一痛一癢俱不可忍佗曰:『痛者內有針十個癢者內有黑白棋子二枚。』人皆不信佗以刀割開果應其言此人真扁鵲倉公之流也見居金城離此不遠大王何不召之?」操即差人星夜請華佗入內令診脈視疾

또 한 사람이 눈썹사이에 하나의 혹이 생겼는데 근질거려 감당할 수 없어 화타로 하여금 보게 하였습니다. 화타가 말하기를 안에 나는 물건이 있다.’하니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습니다. 화타가 칼로 가르니 한 마리 누런 참새가 날아가고 병든 자는 곧 나았습니다. 한 사람이 발가락을 깨물렸는데 따라서 두 덩이 살이 자라더니 하나는 아프고, 하나는 근질거려 모두 참을 수 없었습니다. 화타가 말하기를 아픈 것은 안에 침 열 개가 있기 때문이고, 가려운 것은 안에 흑백의 바둑돌 두 개가 있기 때문이다하니 사람들이 모두 믿지 않자 화타가 칼로 가르니 과연 그 말과 같았습니다. 이 사람은 참으로 편작과 창공의 류입니다. 금성에 살고 있어 여기로부터 거리가 멀지 않은데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부르지 않으십니까?”했다. 조조가 곧 사람을 보내 밤을 새워 화타를 안으로 들어오게 청하여 진맥하고 병을 보게 하였다.

 

佗曰:「大王頭腦疼痛因患風而起病根在腦袋中風涎不能出枉服湯藥不可治療某有一法先飲麻肺湯然後用利斧砍開腦袋取出風涎方可除根。」操大怒曰:「汝要殺孤耶!」佗曰:「大王曾聞關公中毒箭傷其右臂某刮骨療毒關公略無懼色今大王小可之疾何多疑焉?」操曰:「臂痛可刮腦袋安可砍開汝必與關公情熟乘此機會欲報讎耳!」呼左右拏下獄中問其情賈詡諫曰:「似此良醫世罕其匹未可廢也。」操叱曰:「此人欲乘機害我正與吉平無異!」急令追拷

화타가 말하기를 대왕 두뇌의 통증은 환풍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병의 뿌리가 뇌 안에 있어 풍연이 나갈 수 없어 탕약을 복용하여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먼저 마폐탕을 마신 후 날카로운 도끼를 써서 뇌를 베어 열고 풍연을 나가게 하면 비로소 뿌리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했다. 조조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네가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하니 화타가 말하기를 대왕께서는 일찍이 관공(관운장)이 독화살에 맞아 그 오른 팔이 상하였을 때 제가 뼈를 깍아 독을 치료하였는데 관공(관운장)이 대략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던 것을 들었습니까? 지금 대왕께서 작은 병에 어찌 의심함이 많습니까?”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팔의 통증은 깍을 만하나 뇌를 어찌 베어 열수 있겠는가? 너는 반드시 관공(관운장)과 정이 깊으니 이 기회를 타고 원수를 갚으려 할 뿐이다.”하고는 좌우를 불러 잡아 옥중에 가두게 하고 그 사정을 고문하게 하였다. 가후가 간하여 말하기를 이 같은 좋은 의원은 세상에 그 짝할 이가 적으니 없애서는 안 됩니다.”했다. 조조가 꾸짖어 말하기를 이 사람은 기회를 타서 나를 해치려하니 바로 길평과 다름이 없다!”하고는 급하게 고문하게 하였다.

 

華佗在獄有一獄卒姓吳人皆稱為吳押獄」。此人每日以酒食供奉華佗佗感其恩乃告曰:「我今將死恨有青囊書未傳於世感公厚意無可為報我修一書公可遣人送與我家取青囊書來贈公以繼吾術。」吳押獄大喜曰:「我若得此書棄了此役醫治天下病人以傳先生之德。」佗即修書付吳押獄吳押獄直至金城問佗之妻取了青囊書回至獄中付與華佗檢看畢佗即將書贈與吳押獄吳押獄持回家中藏之

화타가 옥에 있을 때 한 옥졸이 있었는데 성은 오였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오압옥이라 불렀다. 이 사람이 매일 술과 음식을 화타에게 올리고 받들었다. 화타가 그 은혜에 감사하여 이에 고하여 말하기를 나는 지금 죽을 것인데 가지고 있는 청랑서가 세상에 전해지지 못할 것을 한탄합니다. (옥졸)의 두터운 뜻을 느꼈으나 갚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한 글을 쓸 터이니 공은 사람을 보내 나의 집에 보내주시고, 청랑서를 가져오면 공(옥졸)에게 드릴 것이니 내 의술을 이으시오.”했다. 오압옥(옥졸)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내가 만약 이 글을 얻는다면 이 일(옥졸)을 버리고 천하의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것으로서 선생의 덕을 전하겠습니다.”했다. 화타는 곧 글을 써서 오압옥에게 부탁하였다. 오압옥은 곧바로 금성에 이르러 화타의 처에게 물어 청랑서를 취하여 돌아 가 옥중에 이르러 화타에게 주었다. 검토를 마치고 화타는 곧 글을 가져다 오압옥에게 주었다. 오압옥이 가지고 집에 돌아 가 그것을 감추었다.

 

旬日之後華佗竟死於獄中吳押獄買棺殯殮訖脫了差役回家欲取青囊書看習只見其妻正將書在那裏焚燒吳押獄大驚連忙搶奪全卷已被燒毀只剩得一兩葉吳押獄怒罵其妻妻曰:「縱然學得與華佗一般神妙只落得死於牢中要他何用?」吳押獄嗟歎而止因此青囊書不曾傳於世所傳者止閹雞豬等小法乃燒剩一兩頁中所載也後人有詩曰

십일 후 호타는 마침내 옥중에서 죽었다. 오압옥이 관과 곽을 사서 장례를 마치고 하던 일(옥졸의 일)을 벗어나 집에 돌아가 청랑서를 가져다 보고 익히려하는데 그 처가 바로 그것을 가져다 불사르고 있었다. 오압옥이 크게 놀라 얼른 빼앗았으나 모든 권이 이미 불탄 후였고 다만 남아있던 한 장 두 쪽을 얻었을 뿐이었다. 오압옥이 노하여 그 처를 욕하였다. 처가 말하기를 설사 배워 화타와 같은 신묘함을 얻을지라도 감옥 중에서 죽음에 떨어질 뿐이니 그것을 어디에 쓰겠습니까?”했다. 오압옥이 탄식하기를 그치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청랑서가 일찍이 세상에 전해지지 못하고 전해진 것은 다만 내시, , 돼지 등의 작은 법으로 타다 남은 한 두 항목에 실린 것뿐이었다. 우세 사람이 시를 남겼는데 시에

 

華佗仙術比長桑神識如窺垣一方惆悵人亡書亦絕後人無復見青囊

화타의 선술은 장상군에 비견되고, 신 같은 지식은 마치 담장 한쪽에서 엿보는 듯하다. 슬프구나! 어떤 사람이 글을 잃고 또 끊어지니 후세 사람이 다시 청랑을 볼 수 없구나!” 했다.

 

卻說曹操自殺華佗之後病勢愈重又憂吳蜀之事正慮間近臣忽奏東吳遣使上書操取書拆視之略曰

각설하고 조조는 화타를 죽인 후로부터 병세가 더욱 중해지고, 또 오와 촉의 일을 근심하였다. 걱정하는 사이에 근신이 홀연히 동오가 사신을 보내 글을 올렸다고 아뢰었다. 조조가 글을 가져 오게 하여 봉투를 뜯어 그것을 보았다. 요약하여 말하면

 

臣孫權久知天命已歸王上伏望早正大位遣將剿滅劉備掃平兩川臣即率群下納土歸降矣

신 손권은 천명이 이미 왕상(조조)에게 돌아갔다는 것을 안지 오래되었습니다. 일찍 대위(황제)를 바로잡고 장수를 보내 유비를 무찔러 없애 양천(동천과 서천)을 쓸어 평정하시면 신은 곧 여러 아래 사람을 인솔하고 땅을 바치며 항복하기를 바랍니다.”했다.

 

操觀畢大笑出示群臣曰:「是兒欲使吾居爐火上耶!」侍中陳群等奏曰:「漢室久已衰微殿下功德巍巍生靈仰望今孫權稱臣歸命此天人之應異氣齊聲殿下宜應天順人早正大位。」操笑曰:「吾事漢多年雖有功德及民然位至於王名爵已極何敢更有他望苟天命在孤孤為周文王矣。」司馬懿曰:「今孫權既稱臣歸附王上可封官賜爵令拒劉備。」操從之表封孫權為驃騎將軍南昌侯領荊州牧即日遣使齎誥敕赴東吳去訖

조조는 보기를 마치고 크게 웃으며 여러 신하들에게 내 보이며 말하기를 이 아이가 나로 하여금 화롯불 위에 있게 하려 하는구나!”하니 시중 진군 들이 아뢰어 말하기를 한나라 황실이 쇠미한 것이 오래 되었고, 전하의 공덕은 우뚝하니 백성들이 우러러 봅니다. 지금 손권이 신하라 일컬으며 귀순한다하니 이는 하늘과 사람이 응하고, 다른 성씨들이 같은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마땅히 하늘의 뜻을 따르고 사람에게 순하는 것이니 일찍 대위(황제 위)를 바로잡아야 합니다.”했다. 조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한나라를 섬긴 지 여러 해로 비록 공덕이 백성에게 미침이 있었으나 지위가 왕에 이르러 명예와 작이 이미 지극한데 어찌 감히 다시 다른 것을 바랄 수 있겠는가만약 천명이 나에게 있다면 나는 주나라 문왕이 될 것이다.“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지금 손권이 이미 신하를 일컬고 귀순하려하니 왕상(조조)께서는 관직을 봉하고 작을 내려 유비(유현덕)를 막게 해야 합니다.“했다. 조조가 그것을 따라 표로 손권을 표기장군 남창후로 삼고, 형주목을 맡을 수 있게 표를 올렸다. 그날 사신을 보내 고칙(황제의 명령)을 가지고 동오에 달려가게 하였다.

 

操病勢轉加忽一夜夢三馬同槽而食及曉問賈詡曰:「孤向日曾夢三馬同槽疑是馬騰父子為禍今騰已死昨宵復夢三馬同槽主何吉凶?」詡曰:「祿馬吉兆也祿馬歸於曹主上何必疑乎?」操因此不疑後人有詩曰

조조의 병세는 점점 심해졌다. 홀연히 어느 날 밤 세 마리 말이 같은 여물통에서 먹고 있는 꿈을 꾸었는데 깬 후 가후에게 물어 말하기를 내가 지난날 일찍이 세 마리 말이 여물통을 같이 하는 꿈을 꾸고, 이것이 마등 부자가 재앙이 될까 의심하였습니다. 지금 마등이 이미 죽었는데 지난밤에 다시 세 마리 말이 여물통을 같이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길흉이 어떠합니까?”했다. 가후가 말하기를 녹마는 길조입니다. 녹마가 조씨에게 돌아갔는데 주상께서는 무엇을 의심하십니까?”했다. 조조기 이로 인하여 의심하지 않았다. 후세 사람이 시를 남겼는데 시에

 

三馬同槽事可疑不知已植晉根基曹瞞空有奸雄略豈識朝中司馬師

세 마리 말이 여물통을 같이 한 일은 의심할만하다면서도, 자기가 나라의 기틀을 심은 것은 알지 못하는구나. 조만(조조)은 헛된 간사한 책략이 있었으니 어찌 조정안의 사마사를 알았겠는가?”했다.

 

是夜操臥寢室至三更覺頭目昏眩乃起伏几而臥忽聞殿中聲如裂帛操驚視之忽見伏皇后董貴人二皇子并伏完董承等二十餘人渾身血污立於愁雲之內隱隱聞索命之聲操急拔劍望空砍去忽然一聲響亮殿宇西南一角操驚倒於地近侍救出遷於別宮養病次夜又聞殿外男女哭聲不絕至曉操召群臣入曰:「孤在戎馬之中三十餘年未嘗信怪異之事今日為何如此?」群臣奏曰:「大王當命道士設醮修禳。」操歎曰:「聖人云:『獲罪於天無所禱也。』孤天命已盡安可救乎?」遂不允設醮

이날 밤 조조가 침실에 누웠는데 삼경에 이르러 머리와 눈이 어둡고 어지러운 것을 깨닫고 이에 일어나 안석에 엎드려 누웠다. 홀연히 전각 안에서 비단을 찢는 듯한 소리를 듣고 조조가 놀라 보니 복황후, 동귀인, 두 황자와 복완, 동승 등 이십여 명이 온 몸에 피칠을 하고 수운향(그윽히 숨겨진 곳) 안에 서있는 것을 보았는데 은은히 목숨을 청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조가 급히 검을 뽑아 허공을 향해 베어 가는데 홀연히 우렁찬 한 소리가 나며 벼락이 궁전 서남쪽 모퉁이에 떨어졌다. 조조가 놀라 땅에 엎드리니 근시가 구출하여 별궁으로 옮겨 병을 치료하였다. 다음 날 밤 또 전각 밖에서 남녀의 곡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새벽에 이르러 조조는 여러 신하를 불러 들여 말하기를 융마 (전쟁터)에 있은 지 삼십년 일찍이 괴이한 일을 믿지 않았다. 이 같음은 무엇 때문인가?”하니 여러 신하들이 아뢰어 말하기를 대왕께서는 마땅히 도사에게 명하여 초제를 지내고 기도해야 합니다.”했다. 조조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성인이 이르기를 하늘에 죄를 지으면 기도할 곳이 없다.’하였으니 나의 천명이 이미 다하였는데 무엇을 구할 수 있겠는가?”하고는 초제 지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次日覺氣沖上焦目不見物急召夏侯惇商議惇至殿門前忽見伏皇后董貴人二皇子伏完董承等立在陰雲之中惇大驚昏倒左右扶出自此得病操召曹洪陳群賈詡司馬懿等同至臥榻前囑以後事曹洪等頓首曰:「大王善保玉體不日定當霍然。」操曰:「孤縱橫天下三十餘年群雄皆滅止有江東孫權西蜀劉備未曾剿除孤今病危不能再與卿等相敘特以家事相託孤長子曹昂劉氏所生不幸早年歿於宛城今卞氏生四子孤平生所愛第三子植為人虛華少誠實嗜酒放縱因此不立次子曹彰勇而無謀四子曹熊多病難保惟長子曹丕篤厚恭謹可繼我業卿等宜輔佐之。」

다음날 기운이 상초(상체)에 치솟아 눈으로 사물을 보지 못하자 급히 하후돈을 불러 상의하였다. 하후돈이 전각 문 앞에 이르렀는데 홀연히 복황후, 동귀인, 두 황자, 복완, 동승 등이 먹구름 안에 서 있었다. 하후돈이 크게 놀라 기절하여 쓰러지니 좌우가 부축하여 나갔는데 이로부터 병을 얻었다. 조조는 조홍, 진군, 가후, 사마의 등을 부르니 함께 누워있는 임금 앞에(평상 앞에) 이르자 뒷일을 부탁하였다. 조홍 등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대왕께서 옥체를 잘 보호하시면 하루가 되지 않아 마땅히 깨끗하게 나을 것입니다.”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천하를 종횡한 지 삼십여 년에 여러 영웅들이 모두 사라지고, 다만 강동의 손권과 서촉의 유비(유현덕)만 일찍이 쓸어 없애지 못하였다. 내가 지금 병이 위중하여 다시 경들과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 것이니 특히 집안 일(후계자)을 부탁한다. 나의 장자 조앙은 유씨 소생으로 불행히도 어린 나이에 완성에서 죽었다. 지금 변씨가 네 아들 조비, 조창, 조식, 조웅을 낳았다. 내가 평소 사랑한 이는 셋째 아들 조식인데 사람됨이 헛되고 화려하고 성실함이 적고, 술을 좋아하여 방종하기 때문에 세울 수 없다. 둘째 아들 조창은 용맹하나 꾀가 없고, 넷째 아들 조운은 병이 많아 보존하기 어려우며, 장자 조비는 공손하고 삼가기를 도타이 하니 내 업(위왕 자리)을 이을 만하다. 경들은 그를 보좌하는 것이 마땅하다.”했다.

 

曹洪等涕泣領命而出操令近侍取平日所藏名香分賜諸侍妾且囑曰:「吾死之後汝等須勤習女工多造絲履賣之可以得錢自給。」又命諸妾多居銅雀臺中每日設祭必令女伎奏樂上食又遺命於彰德府講武城外設立疑塚七十二勿令後人知吾葬處恐為人所發掘故也囑畢長歎一聲淚如雨下須臾氣絕而死壽六十六歲時建安二十五年春正月也後人有鄴中歌一篇歎曹操云

조홍 등이 눈물을 흘리며 명을 받고 나갔다. 조조는 근시로 하여금 평소 가지고 있던 이름 있는 향(좋은 향)을 가져오게 하여 여러 시첩들에게 나누어 주고 또 부탁하여 말하기를 내가 죽은 후 너희들은 반드시 여자의 일을 부지런히 익혀 실로 신발을 많이 만들고 그것을 팔면 돈을 얻어 자급할 수 있을 것이다.”했다. 또 여러 첩들로 하여금 동작대 안에서 살면서 매일 제를 지낼 때 반드시 여기(여자 악공)로 하여금 음식을 올릴 때 음악을 연주하게 하라. 또 창덕부에 명을 남겨 성 밖에서 무예를 연마하고, 가짜 무덤 칠십 두 개를 만들어 후세 사람들이 나의 장례처를(무덤을) 알지 못하게 하였는데 후세사람들이 무덤을 파헤칠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부탁을 마치고 길게 한 소리 탄식하고는 눈물을 흘리는데 비가 내리는 듯하였다. 잠시 후 호흡이 끊어지고 죽었다. 나이는 육십육 세이니 때는 건안 이십오년 춘 정월이었다. 후세 어떤 사람이 업중가 한 편을 지어 조조를 기렸다.

 

城則鄴城水彰水定有異人從此起雄謀韻事與文心君臣兄弟而父子英雄未有俗胸中出沒豈隨人眼底功首罪魁非兩人遺臭流芳本一身文章有神霸有氣豈能苟爾化為群橫槊築臺距太行氣與理勢相低昂安有斯人不作逆小不為霸大不王霸王降作兒女鳴無可奈何中不平請禱明知非有益分香未可謂無情嗚呼古人作事無鉅細寂寞豪華皆有意書生輕議塚中人塚中笑爾書生氣

성은 업성, 물은 창수이고, 기이한 사람이 이로부터 일어나는 것은 정해져 있었다. 웅대한 계략, 운치있는 일은 글 지을 때의 마음 작용과 함께하니 군신, 형제, 부자라네. 영웅은 세속 일을 가슴속에 두지 않아, 나오고 사라짐이 어찌 사람의 눈을 따르겠는가? 공도 뛰어나고 죄도 크지만 두 사람이 아니다. 악명과 아름다운 명성이 본래 한 몸이었다. 문장에는 신묘하고 으뜸되는 기운 있는데 진실로 네가 변하여 무리가 될 수 있겠는가? 칭을 빗겨들고 대를 쌓아 태항산을 막고, 기운은 일을 처리하는 형세 따라 오르내린다. 어찌 이 사람이 역적질 하지 않음이 있겠는가? 적으면 패자가 되고, 크면 왕이 아니겠는가? 패왕도 죽음에 아녀자처럼 울었으니 어찌 마음속에 편안하지 않음이 없겠는가. 기도 청하나 유익하지 않음을 분명히 알았고, 향을 나누어주었으니 무정하다 말할 수 없다. ! 옛 사람은 일을 일으킬 때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아 적막하고 호화로움이 모두 뜻이 있었다. 서생은 무덤 속 사람을 가벼이 논의하고, 무덤 속 사람은 이 서생의 기운을 비웃는다.”

 

卻說曹操身亡文武百官盡皆舉哀一面遣人赴世子曹丕鄢陵侯曹彰臨淄侯曹植蕭懷侯曹熊處報喪眾官用金棺銀槨將操入殮星夜舉靈櫬赴鄴郡來曹丕聞知父喪放聲痛哭率大小官員出城十里伏道迎櫬入城停於偏殿官僚挂孝聚哭於殿上忽一人挺身而出曰:「請世子息哀且議大事。」

각설하고 조조가 죽자 문무백관들이 모두 곡을 하는 한편으로 사람을 보내 세자 조비, 언릉후 조창, 임치후 조식, 소회후 조웅이 있는 곳에 나아가 조조의 상(조조의 죽음)을 알렸다. 여러 관리들이 금관과 은곽을 써서 조조를 염하여 넣고 밤낮으로 관을 들고 업군으로 갔다. 조비는 아버지의 죽을 알고 소리내어 통곡하고 대소의 관원들을 인솔하여 성에서 십리를 나가 길에 엎드려 관을 맞아 성에 들어 가 편전에 안치하였다. 관료들이 상복을 입고 전각에 모여 곡하였다. 홀연히 한 사람이 몸을 내밀고 나와 말하기를 세자께서는 슬픔을 그치시고 대사를 의논할 것을 청합니다.”했다.

 

眾視之乃中庶子司馬孚也孚曰:「魏王既薨天下震動當早立嗣王以安眾心何但哭泣耶?」群臣曰:「世子宜嗣位但未得天子詔命豈可造次而行?」兵部尚書陳矯曰:「王薨於外愛子私立彼此生變則社稷危矣。」遂拔劍割下袍袖厲聲曰:「即今日便請世子嗣位眾官有異議者以此袍為例!」百官悚懼忽報華歆自許昌飛馬而至眾皆大驚

여러 사람들이 보니 곧 중서자 사마부였다. 사마부가 말하기를 위왕께서 돌아가신 후 청하가 진동하고 있으니 마땅히 일찍 이을 왕을 세우는 것으로서 여럿의 마음을 안정시켜야 하는데 어찌 단지 곡하여 슬퍼만 하겠습니까?”했다. 여러 신하들이 말하기를 세자께서 지위(위왕)를 잇는 것이 마땅하나 다만 천자의 명을 얻지 못하였으니 어찌 갑작스럽게 행할 수 있겠습니까?”했다. 병부상서 진교가 말하기를 (위왕)께서 밖에서 돌아가시고 아끼는 아들이 사사로이 즉위한다면 피차 변이 생겨 사직이 위태로울 것입니다.”하고는 마침내 검을 뽑아 아래 포 아래 쪽 소매를 자르며 성난 소리로 말하기를 오늘 곧 세자가 지위(위왕)를 잇기를 청합니다. 여러 관리들 중에 이의가 있는 자는 이 포로서 본보기를 삼자!”했다. 백관들이 두려워하였다. 홀연히 화흠이 허창으로부터 말을 달려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무리들이 모두 크게 놀랐다.

 

須臾華歆入眾問其來意歆曰:「今魏王薨逝天下震動何不早請世子嗣位?」眾官曰:「正因不及候詔命方議欲以王后卞氏慈旨立世子為王。」歆曰:「吾已於漢帝處索得詔命在此。」眾皆踴躍稱賀歆於懷中取出詔命開讀原來華歆諂事魏故草此詔威逼獻帝降之帝只得聽從故下詔即封曹丕為魏王丞相冀州牧丕即日登位受大小官僚拜舞起居

잠시 후 화흠이 들어왔다. 무리들이 온 뜻을 물었다. 화흠이 말하기를 지금 위왕께서 돌아가시고 천하가 진동하는데 어찌하여 일찍 세자가 지위(위왕) 잇기를 청하지 않습니까?”하니 여러 관리들이 말하기를 바로 천자의 명이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막 왕후(위왕 비)변씨의 명령으로서 세자를 세워 왕으로 삼고자 의논하고 있었습니다.”했다. 화흠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한나라 황제가 있는 곳에서 얻은 황제의 명이 여기에 있습니다.”했다. 무리들이 모두 펄쩍 뛰면서 축하하였다. 화흠이 품속에서 황제의 명을 꺼내 봉투를 열고 읽었다. 알고보니 화흠은 아첨으로 위를 섬기려하였기 때문에 이 황제의 명을 초안하고 위력으로 핍박하여 헌제가 내린 것이었다. 황제(헌제)는 다만 듣고 따를 뿐이었다. 그러므로 조서를 내려 곧 조비를 봉하여 위왕 승상 기주목으로 삼았다. 조비가 그날 즉위하니 대소 관료들이 절하고 춤추며 일상생활을 하였다.

 

正宴會慶賀間忽報鄢陵侯曹彰自長安領十萬大軍來到丕大驚遂問群臣曰:「黃鬚小弟平日性剛深通武藝今提兵遠來必與孤爭王位也如之奈何?」忽階下一人應聲出曰:「臣請往見鄢陵侯以片言折之。」眾皆曰:「非大夫莫能解此禍也。」正是試看曹氏丕彰事幾作袁家譚尚爭未知此人是誰且看下文分解

바로 연회하는 사이에 홀연히 언릉후 조창이 장안에서 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와 이르렀다. 조비가 크게 놀라 마침내 여러 신하들에게 물어 말하기를 누런 수염의 아우는 평소 성품이 굳세고, 깊이 무예에 통하였다. 지금 군대를 데리고 멀리서 왔으니 반드시 나와 왕위를 다투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 가?”했다. 홀연히 계단 아래서 한 사람이 소리에 응하여 나와 말하기를 신이 가서 언릉후를 뵙고 조각말로서 그를 꺽기를 청합니다.”하니 무리들이 모두 말하기를 대부가 아니면 이 화(재앙)를 풀 수 없습니다.”했다. 바로 이렇다. 조비와 조창의 일을 살펴보면 거의 원담과 원상이 다투던 일에 가깝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니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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