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삼국연의

제75회 관운장은 뼈를 깍아 독을 치료하고, 여자명(여몽)은 흰옷을 입고 강을 건너다

by 최인표 2021. 3. 4.

第七十五回關雲長刮骨療毒呂子明白衣渡江

75회 관운장은 뼈를 깍아 독을 치료하고, 여자명(여몽)은 흰옷을 입고 강을 건너다

 

卻說曹仁見關公落馬即引兵衝出城來被關平一陣殺回救關公歸寨拔出臂箭原來箭頭有藥毒已入骨右臂青腫不能運動關平慌與眾將商議曰:「父親若損此臂安能出敵不如暫回荊州調理。」於是與眾將入帳見關公公問曰:「汝等來有何事?」眾對曰:「某等因見君侯右臂損傷恐臨敵致怒衝突不便眾議可暫班師回荊州調理。」公怒曰:「吾取樊城只在目前取了樊城即當長驅大進逕到許都剿滅曹賊以安漢室豈可因小瘡而誤大事汝等敢慢吾軍心耶!」

각설하고 조인은 관공(관운장)이 말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곧 군대를 이끌고 성을 나가 치고 왔다. 관평은 한 부대로 쇄도해 돌아가게 하고 관공을 구하여 영채로 돌아와 팔의 화살을 뽑았다. 알고 보니 화살촉에 약이 있어 독이 이미 뼈에 들어가 오른팔 종기에 푸른색이 돌고 움직일 수 없었다. 관평은 황급히 여러 장수와 상의하여 말하기를 아버지가 만약 이 팔을 잃는다면 어찌 나가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잠시 현주에 돌아가 조리하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이에 여러 장수들과 장막에 들어 가 관공(관운장)을 만났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너희들은 무슨 일로 온 것이냐?”하니 무리들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저희들은 군후(관운장)의 오른팔이 상한 것을 보았습니다. 적에 임해 노함이 지극해지면 치는 것이 불편할 것을 두려워합니다. 무리들이 잠시 형주로 군대를 돌려 조리할 것을 논의하였습니다.”했다. (관운장)이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번성을 취하는 것이 눈앞에 있고, 번성을 취하면 곧 마땅히 길게 몰아 크게 진군하여 빠르게 허도에 이르러 조조 도적을 없애고 한나라를 편안하게 하려는 것이다. 어찌 작은 상처 때문에 큰일을 그르치겠는가? 너희들이 감히 우리 군대의 마음을 게으르게 하려 하는가!”했다.

 

平等默然而退眾將見公不肯退兵瘡又不痊只得四方訪問名醫忽一日有人從江東駕小舟而來直至寨前小校引見關平平視其人方巾闊服臂挽青囊自言姓名乃沛國譙郡人姓華名佗字元化因聞關將軍乃天下英雄今中毒箭特來醫治。」平曰:「莫非昔日醫東吳周泰者乎?」佗曰:「。」

관평 등이 묵묵히 물러났다. 여러 장수들은 공(관운장)이 기꺼이 군대를 물리지 않고, 상처가 또한 낫지 않는 것을 보고 사방을 돌아다니며 이름 있는 의원을 구하였다. 홀연히 하루는 어떤 사람이 강동으로부터 작은 배를 타고 와 곧바로 영채 앞에 이르렀다. 소교가 인도하여 관평을 만나게 하였다. 관평이 그 사람을 보니 네모난 관을 쓰고 활복을 입었는데 팔에 푸른 주머니를 달고 있었다. 스스로 성명을 말하였는데 곧 패국 초군 사람으로 성은 화이고, 이름은 타이며 자는 원화라 했다. 관장군(관운장)은 곧 천하의 영웅으로 지금 독화살에 맞았다는 것을 듣고 특히 와서 치료하려 합니다.”했다. 관평이 말하기를 옛날 동오의 주태를 치료한 분 아닙니까?”하니 화타가 말하기를 그렇습니다.”했다.

 

平大喜即與眾將同引華佗入帳見關公時關公本是臂痛恐慢軍心無可消遣正與馬良弈棋聞有醫者至即召入禮畢賜坐茶罷佗請臂視之公袒下衣袍伸臂令佗看視佗曰:「此乃弩箭所傷其中有烏頭之藥直透入骨若不早治此臂無用矣。」公曰:「用何物治之?」佗曰:「某自有治法但恐君侯懼耳。」公笑曰:「吾視死如歸有何懼哉?」佗曰:「當於靜處立一標柱上釘大環請君侯將臂穿於環中以繩繫之然後以被蒙其首吾用尖刀割開皮肉直至於骨刮去骨上箭毒用藥敷之以線縫其口方可無事但恐君侯懼耳。」公笑曰:「如此容易何用柱環?」令設酒席相待

관평이 크게 기뻐하며 곧 여러 장수들과 함께 화타를 인도하여 장막 안에 들어 가 관공(관운장)을 뵈었다. 그 때 관공(관운장)은 본래 이 팔의 통증으로 군대의 마음이 게을러 질 것을 두려워하여 한가한 시간을 보내 수 없다가, 마량과 바둑을 두고 있는데 의원이 이르렀다는 것을 듣고 곧 불러 들였다. 예를 마치고 앉게 하였다. 차 마시기를 마치자 화타는 팔을 볼 것을 청하였다. 공이 웃옷을 내리고 포를 입고 팔을 펴 화타로 하여금 보게 하였다. 화타가 말하기를 이는 곧 노의 화살에 상처를 입은 것인데 그 안에 오두의 독이 있어 곧바로 뼈에 들어갔으니 만약 빨리 치료하지 않는다면 이 팔은 쓰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했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어떤 물건을 써서 치료하려 하는가?”하니 화타가 말하기를 마땅히 고요한 곳에 한 기둥을 세우고 위에 못과 큰 고리를 달고 군후(관운장)의 팔을 고리 안에 넣어 노끈으로 매 단 후 그 머리를 덮어씌웁니다. 나는 뾰족한 칼을 써서 피부와 근육을 가르고 바로 뼈에 이르러 뼈 위의 화살 독을 긁어 제거한 후 약을 써서 덮고 실로 그 입구를 꿰매어야 비로소 일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군후(관운장)께서 두려워할 것을 근심할 분입니다.” 했다 공(관운장)이 웃으며 말하기를 이 같이 쉬운데 어찌 기둥에 고리를 쓰려하는가?” 하고는 술자리를 마련하고 서로 대작하였다.

 

公飲數盃酒畢一面仍與馬良弈棋伸臂令佗割之佗取尖刀在手令一小校捧一大盆於臂下接血佗曰:「某便下手君侯勿驚。」公曰:「任汝醫治吾豈比世間俗子懼痛者耶?」佗乃下刀割開皮肉直至於骨骨上已青佗用刀刮骨悉悉有聲帳上帳下見者皆掩面失色公飲酒食肉談笑弈棋全無痛苦之色

(관운장)이 몇 잔의 술 마시기를 마치는 한편으로 마량과 바둑을 두면서 팔을 펴 화타로 하여금 가르게 하였다. 화타가 뾰족한 칼을 취하여 손에 잡고 한 소교로 하여금 하나의 큰 대접을 들고 팔에서 떨어지는 피를 받게 하였다. 화타가 말하기를 제가 곧 손을 쓰려하니 군후(관운장)께서는 놀라지 마십시오.”했다. 공이 말하기를 너에게 치료를 맡겼으니 내가 어찌 세속의 속된 사람처럼 통증을 두려워하겠는가?”했다. 화타가 이에 칼을 써서 피부와 근육을 째고 바로 뼈에 이르렀는데 뼈 위가 이미 푸르게 변해 있었다. 화타가 칼을 써서 뼈를 긁으니 슥슥하는 소리가 났다. 장막의 아래 위 사람들이 보고는 모두 얼굴을 가리고 얼굴색이 변하였다. (관운장)은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며 담소하며 바둑을 두는데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須臾血流盈盈佗刮盡其毒敷上藥以線縫之公大笑而起謂眾將曰:「此臂伸舒如故並無痛矣先生真神醫也!」佗曰:「某為醫一生未嘗見此君侯真天神也!」後人有詩曰治病須分內外科世間妙藝苦無多神威罕及惟關將聖手能醫說華佗

잠깐 동안 피가 흘러 가득하였다. 화타가 그 독을 모두 긁고는 그 위에 약을 바르고 실로 꿰맸다. (관운장)이 크게 웃으며 일어나 여러 장수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 팔을 펴는 것이 옛날과 같고, 아울러 통증이 없다. 선생은 참으로 신같은 의원입니다.”했다. 화타가 말하기를 제가 의원이 되어 일생동안 일찍이 이런 일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군후(관운장)께서는 참으로 천신 같습니다.”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은 것이 있으니 병을 다스리는 것은 모름지기 내외과로 나뉘는데/세간에 현묘한 재주 참으로 많지 않다./ 신 같은 위엄은 관장군에 미치는 이 드물고/성스러운 손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이로는 화타를 말한다.

 

關公箭瘡既愈設席款謝華佗佗曰:「君侯箭瘡雖治然須愛護切勿怒氣傷觸過百日後平復如舊矣。」關公以金百兩酬之佗曰:「某聞君侯高義特來醫治豈望報乎?」堅辭不受留藥一帖以敷瘡口辭別而去

관공(관운장)은 상서가 나은 후 자리를 베풀고 정성껏 화타에게 감사하였다. 화타가 말하기를 군후(관운장)께서는 화살의 상처가 비록 나았으나 반드시 아끼십시오. 절대로 노한 기운이 감정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 백일이 지난 후에야 옛과 같이 회복될 것입니다.”했다. 관공(관운장)이 황금 백량으로서 갚으려 하였다. 화타가 말하기를 저는 군후(관운장)께서 의기가 높다는 것을 듣고 특히 와서 치료하였을 뿐인데 어찌 갚음을 바라겠습니까?”하며 굳게 사양하고 받지 않고 약 한 첩으로서 상처를 덮은 뒤 하직하고 갔다.

 

卻說關公擒了于禁斬了龐德威名大震華夏皆驚探馬報到許都曹操大驚聚文武商議曰:「某素知雲長智勇蓋世今據荊襄如虎生翼于禁被擒龐德被斬魏兵挫銳倘彼率兵直至許都如之奈何孤欲遷都以避之。」

각설하고 관공(관운장)이 우금을 사로잡고, 방덕을 죽여 위엄과 명성이 크게 진동하니 중국이 크게 놀랐다. 보고하는 이가 허도에 이르러 보고하였다. 조조가 크게 놀라 문무관을 모아 상의하여 말하기를 내가 평소 관운장이 지혜와 용맹이 세상을 덮었다는 것을 들었는데 지금 형주와 양양을 근거하니 마치 범에 날개가 난 것과 같다. 우금이 사로잡히고, 방덕이 죽음을 당하여 위나라 군사들의 날카로움이 꺽였으니 만일 그(관운장)가 군대를 이끌고 바로 허도에 이른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도읍을 옮겨 피하려 한다.”했다.

 

司馬懿諫曰:「不可于禁等被水所渰非戰之故於國家大計本無所損今孫劉失好雲長得志孫權必不喜大王可遣使去東吳陳說利害令孫權暗暗起兵躡雲長之後許事平之日割江南之地以封孫權則樊城之危自解矣。」主簿蔣濟曰:「仲達之言是也今可即發使往東吳不必遷都動眾。」

사마의가 간하여 말하기를 안 됩니다. 우금 등은 물에 덮힘을 당하여 싸우지 않았던 까닭에 본래 더는 바가 없었습니다. 지금 손권과 유현덕이 우호를 잃었는데 관운장이 뜻을 얻었으니 손권은 반드시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사자를 동오에 보내 가서 이해를 말하여 손권으로 하여금 몰래 군대를 일으켜 관운장의 뒤를 밟게(위협하게)하면 일이 평정되는 날 강남의 땅을 떼어 손권을 봉한다고 허락하시면 곧 번성의 위태로움은 저절로 풀어질 것입니다.”했다. 주부 장제가 말하기를 중달(사마의)의 말이 옳습니다. 지금 사자를 내어 동오에 가게하고 천도하여 무리를 움직이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했다.

 

操依允遂不遷都因歎謂諸將曰:「于禁從孤三十年何期臨危反不如龐德也今之一面遣使致書東吳一面必得一大將以當雲長之銳。」

조조가 허락하고는 마침내 천도하지 않고 탄식하며 여러 장수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우금은 나를 따른 지 삼십년인데 위태로움에 맞닥뜨리자 도리어 방덕만 못하구나! 지금 한편으로는 사자를 보내 글이 동오에 이르게 하고, 한편으로는 반드시 한 대장을 얻어 관운장의 예기를 담당하게 해야 한다.”했다.

 

言未畢階下一將應聲而出曰:「某願往。」操視之乃徐晃也操大喜遂發精兵五萬令徐晃為將呂建副之剋日起兵前到陽陵陂駐紮看東南有應然後征進

말을 마치기도 전에 계단 아래 한 장수가 대답하며 나와 말하기를 제가 가기를 원합니다.”했다. 조조가 그를 보니 곧 서황이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면서 마침내 정예군사 오만 명을 동원하였는데, 서황을 장수로 삼고, 여건을 부장으로 삼아 날을 정해 군대를 일으켜 앞으로 가 양릉파에 이르러 주둔하면서 동남쪽(동오)에서 응함이 있는 것을 본 후 전진하려 하였다.

 

卻說孫權接得曹操書信覽畢欣然應允即修書發付使者先回乃聚文武商議張昭曰:「近聞雲長擒于禁斬龐德威震華夏操欲遷都以避其鋒今樊城危急遣使求救事定之後恐有反覆。」

각설하고 손권은 조종, 글을 받아 살피기를 마친 후 기쁘게 허락하고 곧 글을 써서 사자에게 주어 먼전 돌아가게 하고, 곧 문무관을 모아 상의하였다. 장소가 말하기를 근래 들으니 관운장이 우금을 사로잡고 방덕을 베어죽여 위엄이 중국에 진동하니 조조가 도읍을 옮기는 것으로서 그 예봉을 피하려 하였다 합니다. 지금 번성이 위급하니 사자를 보내 구원을 청하는데 일이 정해진 후 도리어 뒤집음이 있을까 두렵습니다.”했다.

 

權未及發言忽報呂蒙乘小舟自陸口來有事面稟權召入問之蒙曰:「今雲長提兵圍樊城可乘其遠出襲取荊州。」權曰:「孤欲北取徐州如何?」蒙曰:「今操遠在河北未暇東顧徐州守兵無多往自可克然其地勢利於陸戰不利水戰縱然得之亦難保守不如先取荊州全據長江別作良圖。」權曰:「孤本欲取荊州前言特以試卿耳卿可速為孤圖之孤當隨後便起兵也。」

손권이 미처 말하기 전에 홀연히 여몽이 작은 배를 타고 육구로 부터 와 일의 상황을 직접 말하려 한다고 보고하였다. 손권이 불러들여 물었다. 여몽이 말하기를 지금 관운장이 군대를 데리고 번성을 둘러싸고 있으니 그가 멀리 나가 있는 것을 타고 형주를 습격하여 취해야 합니다.”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내가 북쪽으로 서주를 취하려 하는데 어떠한가?”하니 여몽이 말하기를 지금 조조가 멀리 하복에 있으니 동오를 돌아볼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서주를 지키는 군대는 많지 않으니 가시면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땅의 형세는 육전이 이롭고 수전에 이롭지 않고, 설사 (서주를) 얻을지라도 또한 지키기 어렵습니다. 먼저 형주를 취하여 장강을 온전히 근거하고 별도로 좋은 계책을 도모하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내가 본래 형주를 취하려 하였는데 앞의 말로서 경을 시험했을 뿐이다. 경은 속히 나를 위해 도모하라. 나는 마땅히 뒤를 따라 곧 군대를 일으킬 것이다.”했다.

 

呂蒙辭了孫權回至陸口早有哨馬報說:「沿江上下或二十里或三十里高阜處各有烽火臺。」又聞荊州軍馬整肅預有準備蒙大驚曰:「若如此急難圖也我一時在吳侯面前勸取荊州今卻如何處置?」尋思無計乃託病不出使人回報孫權權聞呂蒙患病心甚怏怏陸遜進言曰:「呂子明之病乃詐耳非真病也。」權曰:「伯言既知其詐可往視之。」

여몽이 손권을 하직하고 돌아가 육구에 이르렀다. 재빨리 정찰병이 보고하여 말하기를 강의 아래 위를 따라 혹은 이십 리, 혹은 삼십 리로 높은 언덕에 각각 봉화대가 있습니다.”했다. 또 형주의 군마가 정숙하고 미리 준비가 있다는 것을 듣고 여몽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만약 이 같다면 급히 도모하기 어렵겠다. 내가 한 때 오후(손권)의 앞에 있을 때 형주를 취할 것을 권하였는데 지금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하고는 깊이 생각하여도 계책이 없어 이에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고, 사람을 시켜 손권에게 보고하게 하였다. 손권은 여몽이 병들었다는 것을 듣고 마음으로 매우 즐겁게 여기지 않았다. 육손이 말을 올려 말하기를 여자명(여몽)의 말은 곧 거짓일 뿐으로 진실로 병이 아닙니다.”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백언(육손)이 이미 그 거짓임을 알았으니 가서 그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했다.

 

陸遜領命是夜至陸口寨中來見呂蒙果然面無病色遜曰:「某奉吳侯命敬探子明貴恙。」蒙曰:「賤軀偶病何勞探問?」遜曰:「吳侯以重任付公公不乘時而動空懷鬱結何也?」蒙目視陸遜良久不語遜又曰:「愚有小方能治將軍之疾未審可用否?」蒙乃屏退左右而問曰:「伯言良方乞早賜教。」遜笑曰:「子明之疾不過因荊州兵馬整肅沿江有烽火臺之備耳予有一計令沿江守吏不能舉火荊州之兵束手歸降可乎?」

육손이 명령을 받고 그날 밤 육구 영채 안에 이르러 여몽을 보니 과연 얼굴에 병색이 없었다. 육손이 말하기를 제가 오후(손권)의 명을 받들어 공경히 자명(여몽)의 병환을 봅니다.”했다. 여몽이 말하기를 천한 몸이 우연히 병들었는데 어지 수고롭게 병문안 합니까?”했다. 육손이 말하기를 오후(손권)은 공(여몽)에게 중요한 임무를 부여하였는데 공(여몽)은 때를 타 움직이지 않고 공연히 가슴만 답답함을 품은 것은 어째서 입니까?”하니 여몽이 육손을 보고 오래동안 망하지 않았다. 육손이 또 말하기를 나에게 작은 방도가 있어 장군의 병을 다스릴 수 있는데 쓸만한 지 살피지 않겠습니까?”했다. 여몽이 좌우를 물리고 물어 말하기를 그대(육손)의 좋은 방책을 빨리 내려 줄 것을 청합니다.”했다. 육손이 웃으며 말하기를 자명(여몽)의 병은 형주 군대가 정숙하고, 강을 따라 봉화대가 갖추어져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으니 강을 따라 지키는 관리들이 불을 들 수 없게 하여 형주의 군사들이 손을 묶고 항복하게 할 것이니 괜찮겠습니까?”했다.

 

蒙驚謝曰:「伯言之語如見我肺腑願聞良策。」陸遜曰:「雲長倚恃英雄自料無敵所慮者惟將軍耳將軍乘此機會託疾辭職以陸口之任讓之他人使他人卑辭讚美關公以驕其心彼必盡撤荊州之兵以向樊城若荊州無備用一旅之師別出奇計以襲之則荊州在掌握之中矣。」蒙大喜曰:「真良策也!」

여몽이 감사하며 말하기를 백언(육손)의 말이 나의 폐부를 보는 것 같습니다. 좋은 계책을 듣기를 원합니다.”했다. 육손이 말하기를 관운장은 영웅임을 의지하고 믿어 스스로 적이 없다고 생각하니 걱정되는 것은 장군일 뿐입니다. 장군께서는 이 기회를 틈 타 병을 핑계로 사직하여 육구의 직임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다른 사람을 시켜 관공(관운장)에게 말을 낮추고 찬미하는 것으로서 그 마음을 교만스럽게 하면 그는 반드시 형주의 군대를 모두 거두어 번성으로 향할 것입니다. 만약 형주가 준비함이 없다면 일려의 군대(500명의 군대)를 써서 따로 기이한 계책을 내는 것으로서 습격하면 곧 형주는 손바닥 안에 있을 것입니다.”했다. 여몽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참으로 좋은 계책입니다.” 했다.

 

由是呂蒙託病不起上書辭職陸遜回見孫權具言前計孫權乃召呂蒙還建業養病蒙至入見權權問曰:「陸口之任昔周公瑾薦魯子敬以自代後子敬又薦卿自代今卿亦須薦一才望兼隆者代卿為妙。」蒙曰:「若用望重之人雲長必然防備陸遜意思深長而未有遠名非雲長所忌若即用以代臣之任必有所濟。」

이로 말미암아 여몽은 병을 핑계로 일어나지 않고 글을 올려 사직하였다. 육손이 돌아 와 손권을 뵙고 앞의 계책을 모두 말하였다. 손권은 곧 여몽을 불러 건업에 돌아 와 병을 치료하게 하였다. 여몽이 이르러 들어 가 손권을 뵈었다. 손권이 물어 말하기를 육구의 직임은 옛날 주공(주유)가 노자경(노숙)을 추천하여 자신을 대신하게 하였고, 후에 자경(노숙)이 또한 경(여몽)을 추천하여 자신을 대신하게 하였다. 지금 경은 또한 반드시 한 재능있고 명망이 높은 이를 추천하여 경을 대신하는 신묘함이 되게 하시오.”했다. 여몽이 말하기를 만약 명망있는 중한 사람을 쓰면 관운장은 반드시 방비할 것입니다. 육손은 뜻과 생각이 깊고 훌륭하나 아직 멀리까지 명성이 있지 않으니 관운장이 꺼릴 바가 아닙니다. 만약 등용하여 곧 신의 임무를 대신하게 한다면 반드시 이룰 바가 있을 것입니다.”했다.

 

權大喜即日拜陸遜為偏將軍右都督代蒙守陸口遜謝曰:「某年幼無學恐不堪大任。」權曰:「子明保卿必不差錯卿毋得推辭。」遜乃拜受印綬連夜往陸口交割馬步水三軍已畢即修書一封具名馬異錦酒禮等物遣使齎赴樊城見關公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그날 육손을 편장군우도독을 삼아 여몽을 대신하여 육구를 지키게 했다. 육손이 감사하며 말하기를 저의 나이가 어리고 배움이 없어 큰 임무를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자명(여몽)이 경(육손)을 보증하니 반드시 잘못이 없을 것이다. (육손)은 미루어 거절하지 말라.”하니 (육손이) 겸손하게 관인을 받고, 밤을 이어 육구에 가 마군, 보군, 수군의 삼군을 인도받기를 마치고 곧 글 한 통을 써 명마, 비단, 술 등의 예물을 갖추어 사자에게 가지고 번성에 가 관공(관운장)을 뵙게 하였다.

 

時公正將息箭瘡按兵不動忽報:「江東陸口守將呂蒙病危孫權取回調理近拜陸遜為將代呂蒙守陸口今遜差人齎書具禮特來拜見。」關公召入指來使而言曰:「仲謀見識短淺用此孺子為將!」來使伏地告曰:「陸將軍呈書備禮一來與君侯作賀二來求兩家和好幸乞笑留。」公拆書視之書詞極其卑謹關公覽畢仰面大笑令左右收了禮物發付使者回去使者回見陸遜曰:「關公欣喜無復有憂江東之意。」

그 때 공(관운장)은 바로 화살 맞은 상처로 휴식을 취하며 진군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았다. 홀연히 보고하기를 강동의 육구를 지키는 장수 여몽이 병으로 위태로우니 손권이 돌아오게 하여 조리하게 하고 최근에 육손을 장수로 삼아 여몽을 대신하여 육구를 지키게 하였습니다. 지금 육손이 사람을 보내 글을 가지고 예를 갖추어 특히 와서 뵙고자 합니다.”했다. 관공(관운장)이 불러들여 온 사자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중모(손권)는 식견이 모자라고 짧아 이런 어린아이를 등용하여 장수로 삼았구나!”하니 온 사자가 땅에 엎드려 고해 말하기를 육장군이 글을 올리고 예를 갖추어 첫째는 군후에게 축하를 드리고 둘째는 두 나라의 화호를 구하러 왔으니 웃으며 받아주시길 청합니다.”했다. (관운장)이 봉투를 뜯어 글을 보았는데 글의 말이 지극히 낮추고 삼가는 것이었다. 관공(관운장)이 보기를 마치고 얼굴을 들고 크게 웃으며 좌우를 시켜 예물을 거두게 하고 사가 돌아가도록 (증명서 등을) 발부하였다. 사자가 돌아 가 육손을 뵙고 말하기를 관공(관운장)이 기뻐하니 다시 강동의 뜻을 근심함이 있지 않았습니다.”했다.

 

遜大喜密遣人探得關公果然撤荊州大半兵赴樊城聽調只待箭瘡痊可便欲進兵遜察知備細即差人星夜報知孫權孫權召呂蒙商議曰:「今雲長果撤荊州之兵攻取樊城便可設計襲取荊州卿與吾弟孫皎同引大軍前去何如?」孫皎字叔明乃孫權叔父孫靜之次子也蒙曰:「主公若以蒙可用則獨用蒙若以叔明可用則獨用叔明豈不聞昔日周瑜程普為左右都督事雖決於瑜然普自以舊臣而居瑜下頗不相睦後因見瑜之才方始敬服今蒙之才不及瑜而叔明之親勝於普恐未必能相濟也。」

육손은 크게 기뻐하며 비밀리 사람을 보내 관공(관운장)을 정탐해보니 과연 형주의 태반의 군사들을 거두어 번성에 나아가기를 기다리게 하였는데 화살에 맞은 상처가 낫기를 기다려 곧 진군하려는 것이었다. 육손은 자세하게 살펴 알고는 곧 사람을 보내 밤새 손권에게 보고하였다. 손권은 여몽을 불러 상의하여 말하기를 지금 관운장이 과연 형주의 군대를 거두어 번성을 공격하여 취하려하니 곧 계책을 세워 형주를 습격하여 취할만하다. 경과 내 동생 손교는 같이 대군을 이끌고 앞으로 가는 것이 어떠한가?”했다. 손교의 자는 숙명이니 곧 손권의 숙부 손정의 둘째 아들이다. 여몽이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만약 저를 쓸만하다 여기시면 곧 저 혼자를 쓰시고, 만약 숙명(손교)가 쓸만하다 여기시면 숙명(손교) 혼자를 써야 합니다. 어찌 지난 날 주유와 정보가 좌우 도독이 되었을 때 일이 비록 주유에게서 결정되었으나 정보는 스스로 옛 신하로서 주유의 아래에 자리하여 자못 화목하지 못하다가 후에 주유의 재능을 보고 비로소 복종하였던 것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지금 저의 재능은 주유에게 미치지 못하고, 숙명(손교)(손권과) 친함은 정보보다 나으니 반드시 서로 돕지 못할까 두렵습니다.”했다.

 

權大悟遂拜呂蒙為大都督總制江東諸路軍馬令孫皎在後接應糧草蒙拜謝點兵三萬快船八十餘隻選會水者扮作商人皆穿白衣在船上搖櫓卻將精兵伏於??船中次調韓當蔣欽朱然潘璋周泰徐盛丁奉等七員大將相繼而進其餘皆隨吳侯為合後救應一面遣使致書曹操令進兵以襲雲長之後一面先傳報陸遜然後發白衣人駕快船往潯陽江去晝夜趲直抵北岸江邊烽火臺上守臺軍盤問時吳人答曰:「我等皆是客商因江中阻風到此一避。」隨將財物送與守臺軍士軍士信之遂任其停泊江邊

손권이 크게 깨닫고는 마침내 여몽을 대도독으로 삼아 강동 여러 길의 군마를 총괄 제어하게 하고, 손교는 뒤에 있으면서 식량과 말먹이 풀을 상황에 맞게 대응하게 하였다. 여몽은 감사를 표시하고 군대 삼만을 점검하여 빠른 배 팔십여 척에 태웠는데 수영을 잘하는 자를 뽑아 상인으로 위장하여 모두 흰 옷을 입히고 배위에서 노를 젓게하며, 정예 군대를 구록배에 숨겨두었다. 다음으로 한당, 장흠, 주연, 반장, 주태, 서성, 정봉 등 일곱 명의 대장이 서로 이어 나아갔다. 그 나머지는 모두 오후(손권)을 따라 합한 후에 구원하고 대응하게 했다. 한편으로 사자를 보내 조조에게 글을 보내어 군대를 진군하여 관운장의 뒤를 습격하게 하였다. 한편으로 육손에게 후에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면 빠른 배에 태워 심양강으로 가라고 전하였다. 밤낮으로 내달려 가서 곧 북쪽 강가에 이르렀다. 강 가 봉화대를 지키는 군사들이 자세하게 물을 때 오나라 사람이 답하기를 우리들은 모두 상인들인데 강중의 바람에 막혀 여기에 이르러 한 번 피하려 합니다.”하고, 따르던 재물을 가져다 봉화대를 지키던 군사들에게 주었다. 군사들이 그것을 믿고 마침내 강가에 배를 대는 것을 허락하였다.

 

約至二更??中精兵齊出將烽火臺上官軍縛倒暗號一聲八十餘船精兵俱起將緊要去處墩臺之軍盡行捉入船中不曾走了一個於是長驅大進逕取荊州無人知覺將至荊州呂蒙將沿江墩臺所獲官軍用好言撫慰各各重賞令賺開城門縱火為號眾軍領命呂蒙便教前導比及半夜到城下叫門門吏認得是荊州之兵開了城門眾軍一聲喊起就城門裏放起號火吳兵齊入襲了荊州呂蒙便傳令軍中:「如有妄殺一人妄取民間一物者定按軍法。」原任官吏並依舊職將關公家屬另養別宅不許閒人攪擾一面遣人申報孫權

대략 이경에 이르러 구록 배 안에서 정예군대가 일제히 나와 봉화대 위의 군대를 꽁꽁 묶어 넘어뜨리고 암호 한소리에 팔십여 척에 타고 있던 정예 군사들이 모두 일어나 꼭 필요한 곳의 돈대의 군사들을 모두 잡아 배 안으로 들어갔는데 한 명도 달아나지 못하였다. 이에 멀리서 우쩍 나아가 지름길로 형주를 향하는데 아는 사람이 없었다. 장차 형주에 이르려할 때 여몽은 강을 따라 돈대에서 잡은 관군들에게 좋은 말을 써서 위로하고 각각에게 많은 상을 주며 (수비 군사)속여서 성문을 열고 불을 놓아 신호하게 하였다. 여러 군사들이 명을 받으니 여몽은 곧 앞을 인도하게 하였다. 한 밤중이 되어 성 아래 이르러 문지기에게 (성문을 열라고)소리쳤다. 문지기는 형주의 군사들임을 알고는 성문을 열었다. 여러 군사들이 한 소리 함성을 지르며 성문 안으로 나아가 불을 질로 신호를 하였다. 오나라 군사가 일제히 들어가 형주를 습격하였다. 여몽은 곧 군사들에게 명을 내리기를 만약 망녕되이 한 사람이라도 죽이거나, 망녕되이 백성들의 하나의 물건을 취하는 자는 군법에 정해진 대로 할 것이다.”하고, 원래 직책을 맡은 관리들은 아울러 옛 직책에 의하게 했다. 관공(관운장)의 가속(가족)들은 별도의 집에서 머물게 하고 한가한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지 못하게 하였다. 한편으로 사람을 보내 손권에게 보고하였다.

 

一日大雨蒙上馬引數騎點看四門忽見一人取民間箬笠以蓋鎧甲蒙喝左右執下問之乃蒙之鄉人也蒙曰:「汝雖係我同鄉但吾號令已出汝故犯之當按軍法。」其人泣告曰:「某恐雨濕官鎧故取遮蓋非為私用乞將軍念同鄉之情。」蒙曰:「吾固知汝為覆官鎧然終是不應取民間之物。」叱左右推下斬之梟首傳示畢然後收其屍首泣而葬之自是三軍震肅

어느 날 큰 비가 내리는데 여몽이 말에 올라 몇 기를 이끌고 네 문을 점검하였다. 홀연히 한 사람이 백성의 삿갓을 취하여 갑옷을 덮은 것을 보고 여몽이 조우에게 소리쳐 잡아 물으니 곧 여몽의 고향 사람이었다. 여몽이 말하기를 네가 비록 나와 고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매였으나 내가 명령을 이미 내었는데 너는 일부러 그것을 범하였으니 마땅히 군법으로 다스려야겠다.”했다. 그 사람이 울려 모하여 말하기를 제가 비에 관의 갑옷이 젖는 것을 두려워하여 가릴 것을 취한 것이지 사사로이 쓰려 해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장군께서는 고향이 같은 정을 생각하실 것을 청합니다.”했다. 여몽이 말하기를 내가 진실로 네가 관의 갑옷을 덮으려했다는 알지만 끝내는 응하지 않고 백성의 물건을 취한 것이다.”하고는 좌우에게 소리쳐 끌고 나가 베어 죽이게 했다. 머리를 매달아 (군사들에게)보이게 하고는 그 시체와 머리를 거두어 울면서 장례하였다. 이로부터 삼군이 두려워 떨며 삼가 하였다.

 

不一日孫權領眾至呂蒙出郭迎接入衙權慰勞畢仍命潘濬為治中掌荊州事監內放出于禁遣歸曹操安民賞軍設宴慶賀權謂呂蒙曰:「今荊州已得但公安傅士仁南郡糜芳此二處如何收復?」

하루가 되지 않아 손권이 무리를 통솔하여 (현주성에)이르렀다. 여몽이 성곽을 나가 영접하여 관아로 들어갔다. 손권이 위로하기를 마치고 그대로 반준을 치중으로 치중을 삼고 형주의 일을 관장하게 하고 감옥 안의 우금을 석방하여 조조에게 돌아가게 하고 백성을 안정시키고 군사들에게 상을 주고 연회를 열어 축하하였다. 손군이 여몽에게 일러 말하기를 지금 형주를 이미 얻었으나 공안의 부사인과 남군의 미방 이 두 곳은 어떻게 수복하려는가?”했다.

 

言未畢忽一人出曰:「不須引弓發箭某憑三寸不爛之舌說公安傅士仁來降可乎?」眾視之乃虞翻也權曰:「仲翔有何良策可使傅士仁歸降?」翻曰:「某自幼與士仁交厚今若以利害說之彼必歸矣。」權大喜遂令虞翻五百軍逕奔公安來

말을 마치기도 전에 홀연히 한 사람이 나와 말하기를 반드시 활을 당겨 화살을 발사하지 않고 저의 세치 썩지 않은 혀에 의지하여 공안의 부사인이 와서 항복하도록 설득하면 되겠습니까?”했다. 무리들이 그를 보니 곧 우번이었다. 손권이 말하기를 중상(우번)은 어떤 좋은 계책이 있어서 부사인으로 하여금 항복하게 할 수 있는가?”하니 우번이 말하기를 제가 어려서부터 부사인과 시귐이 두터웠습니다. 지금 만약 이해로서 설득한다면 그는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했다.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우번으로 하여금 오백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빨리 공안으로 달려가게 하였다.

 

卻說傅士仁聽知荊州已失急令閉城堅守虞翻至見城門緊閉遂寫書拴於箭上射入城中軍士拾得獻與傅士仁士仁拆書視之乃招降之意覽畢想起關公去日恨吾之意不如早降即令大開城門請虞翻入城二人禮畢各訴舊情翻說吳侯寬洪大度禮賢下士士仁大喜即同虞翻齎印綬來荊州投降孫權大悅仍令去守公安

각설하고 부사인은 형주를 이미 잃었다는 것을 듣고 급히 성문을 닫고 굳게 지켰다. 우번이 이르러 성문이 굳게 닫힌 것을 보고는 마침내 글을 써서 화살에 매 달고는 쏘아 성안으로 들어보냈다. 군사가 주워 부사인에게 올렸다. 부사인이 뜯어 글을 보고는 곧 항복을 권유하는 뜻이었다. 보기를 마치고 관공(관운장)이 지난 날 자신을 한하던(원망하던) 뜻을 생각해내고는 빨리 항복하는 것이 낫다 여기고 곧 성문을 크게 열게 하고 우번을 성에 들어오도록 청하였다. 두 사람이 예를 마치고 각각 옛 정을 말하였다. 우번은 오후(손권)가 도량이 넓고, 현인을 예로 대우하고 선비에게 낮춘다고 말했다. 부사인이 크게 기뻐하며 곧 우번과 같이 관인을 가지고 형주에 와 항복하였다.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그대로 공안에 가 지키게 하였다.

 

呂蒙密謂權曰:「今雲長未獲留士仁於公安久必有變不若使往南郡招糜芳歸降。」權乃召傅士仁謂曰:「糜芳與卿交厚卿可招來歸降孤自當有重賞。」傅士仁慨然領諾遂引十餘騎逕投南郡招安糜芳正是今日公安無守志從前王甫是良言未知此去如何且看下文分解

여몽이 비밀리 손권에게 일러 말하기를 지금 아직 관운장을 잡지 못하였으나 부사인을 공안에 머물게 하기를 오래하면 반드시 변이 있을 것입니다. (부사인으로) 하여금 남군에 가 미방을 불러 항복하게 하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손권이 이에 부사인을 불러 말하기를 미방과 경(부사인)은 사귐이 두텁다하니 경(부사인)(미방을) 권유하여 항복하게 할 수 있으면 내가 마땅히 많은 상을 줄 것이다.”했다. 부사인이 개연히 응락하고는 마침내 수십 기를 이끌고 빠르게 남군에 들어가 미방을 항복하게 하였다. 바로 이러하다 오늘 공안을 지킬 뜻이 없으니, 전에 왕보가 한 좋은 말이 옳구나. 이번에 간 것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겠구나!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