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十七回:玉泉山關公顯聖,洛陽城曹操感神
제77회 옥천산에서 관공(관운장)은 죽어 산신이 되고, 낙양의 조조는 신과 통하다.
卻說孫權求計於呂蒙。蒙曰:「吾料關某兵少,必不從大路而逃。麥城正北有險峻小路,必從此路而去。可令朱然引精兵五千,伏於麥城之北二十里。彼軍至,不可與敵,只可隨後掩殺。彼軍定無戰心,必奔臨沮。卻令潘璋引精兵五百,伏於臨沮山僻小路,關某可擒矣。今遣將士各門攻打,只空北門,待其出走。」
각설하고 손권은 여몽에게 계책을 청하였다. 여몽이 말하기를 “저는 관모(관운장)의 군대가 적어 반드시 큰길을 따라 도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맥성 정북쪽에 험준한 작은 길이 있으니 반드시 북쪽길을 따라 갈 것입니다. 주연으로 하여금 정예군사 오천 명을 이끌고 맥성의 북쪽 이십리에 매복하게 해야 합니다. 그 군대가 이르면 대적하지 말고 다만 뒤를 따라 불시에 급습해야 합니다. 그 군대는 싸울 마음이 없을 것이므로 반드시 임저로 달아날 것입니다. 그리고 반장으로 정예 군사 오백 명을 이끌고 임저산 구석의 작은 길에 매복하게 하시면 관모(관운장)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장사들을 보내 각 문을 치게 하고 다만 북문만 비워두어 그가 성을 나가 달아나는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했다.
權聞計,令呂範再卜之。卦成,範告曰:「此卦主敵人投西北而走。今夜亥時必然就擒。」權大喜,遂令朱然、潘璋領兩枝精兵,各依軍令埋伏去訖。
손권이 계책을 듣고 여범으로 하여금 다시 점치게 하였다. 괘가 이루어지자 여범이 고하여 말하기를 “이 괘는 적이 서북쪽으로 들어 가 달아날 것을 주장합니다. 오늘 밤 해시에 반드시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주연과 반장으로 하여금 두 갈래의 정예군대로 각각 군령에 의하여 매복하기를 마치게 하였다.
且說關公在麥城,計點馬步軍兵,止剩三百餘人;糧草又盡。是夜城外吳兵招喚各軍姓名,越城而去者甚多。救兵又不見到。心中無計,謂王甫曰:「吾悔昔日不用公言!今日危急,將復如何?」甫哭告曰:「今日之事,雖子牙復生,亦無計可施也。」趙累曰:「上庸救兵不至,乃劉封、孟達按兵不動之故。何不棄此孤城,奔入西川,再整兵來,以圖恢復?」公曰:「吾亦欲如此。」遂上城觀之。見北門外敵軍不多,因問本城居民:「此去往北,地勢若何?」答曰:「此去皆是山僻小路,可通西川。」公曰:「今夜可走此路。」王甫諫曰:「小路有埋伏,可走大路。」公曰:「雖有埋伏,吾何懼哉!」即下令:馬步官軍,嚴整裝束,準備出城。甫哭曰:「君侯於路,小心保重!某與部卒百餘人,死據此城;城雖破,身不降也!專望君侯速來救援!」公亦與泣別。遂留周倉與王甫同守麥城。關公自與關平、趙累引殘卒二百餘人,突出北門。關公橫刀前進。行至初更以後,約走二十餘里,只見山凹處,金鼓齊鳴,喊聲大震,一彪軍馬;為首大將朱然,驟馬挺鎗叫曰:「雲長休走!趁早投降,免得一死!」公大怒,拍馬輪刀來戰。朱然便走,公乘勢追殺。一棒鼓響,四下伏兵皆起。公不敢戰,望臨沮小路而走。朱然率兵掩殺。
각설하고 관공(관운장)은 맥성에 있으면서 기병과 보병을 헤아리고 점검해 보니 단지 삼백여 명만 남아 있었고, 식량과 말 먹이 풀 또한 다하였다. 이날 밤 성 밖 오나라 군대가 각 군대의 성과 이름을 부르니 성을 넘어 가는 자가 매우 많았다. 구원병 또한 이르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마음속에 계책이 없어 왕보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지난 날 공을 말을 쓰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구려! 오늘 위급하니 장차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니 왕보가 크게 소리 내어 울면서 말하기를 “오늘의 일은 비록 자아(강태공) 가 다시 살아날지라도 또한 쓸만한 계책이 없을 것입니다.”했다. 조루가 말하기를 “상용의 구원군이 이르지 않는 것은 유봉과 맹달이 군대를 막아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찌 이 외로운 성을 버리고 서천으로 달려 들어가 다시 군대를 정비하는 것으로서 회복을 도모하지 않으십니까?”했다. 공(관운장)이 말하기를 “내가 또한 이 같이 하려 하였다.”하고는 마침내 성에 올라 보았다. 북문 밖의 군대가 많지 않음을 보았기 때문에 본성(맥성)에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 묻기를 “이 곳을 떠나 북쪽으로 가면 땅의 형세가 어떠한가?”하니 답하여 말하기를 “이 곳으로 가면 모든 이 산 구석의 작은 길들로 서천과 통할 수 있습니다.”했다. 공(관운장)이 말하기를 “오늘 밤 이 길로 달아날 것이다.”하니 왕보가 간하여 말하기를 “작은 길은 매복이 있을 것이니 큰 길로 가야 합니다.”했다. 공(관운장)이 말하기를 “비록 매복이 있을 지라도 내가 어찌 두려워하겠는가!”하고는 곧 기병과 보병은 엄정히 장비를 묶고 산성을 나갈 준비를 하라고 명령하였다. 왕보가 크게 울며 말하기를 “길에서 군후(관운장)께서는 조심하고 보중하십시오! 저와 부하 병졸 백여 명은 죽음으로 이 성을 차지하고, 성이 비록 깨트려져도 몸은 항복하지 않겠습니다. 군후께서 빨리 와서 구원해 주실 것을 바랄뿐입니다.”했다. 공(관운장)이 또한 울면서 헤어졌다. 마침내 주창과 왕보를 남겨 함께 맥성을 지키게 하였다. 관공(관운장) 스스로는 관평, 조루와 함께 남은 군졸 이백여 명과 (맥성)북문을 치고 나갔다. 관공(관운장)은 칼을 빗겨들고 전진하였다. 행군하여 초경이후에 이르러 약 이십여 리를 달려가자 산 움푹한 곳에서 징과 북이 일제히 울리고 함성이 크게 진동하면서 한 떼의 군대를 보았다. 우두머리되는 대장은 주연으로 말을 달리며 창을 내밀고 외쳐 말하기를 “관운장은 달아나지 말고 항복하여 죽음을 면하라!”했다. 공(관운장)이 크게 노하여 말을 박차고 칼을 돌리며 와 싸웠다. 주연이 곧 달아나니 공(관운장)이 이긴 형세를 타고 쫓아가는데 한 번의 북소리가 울리며 사방의 복병이 모두 일어났다. 공(관운장)이 감히 싸우지 못하고 임저를 향해 작은 길로 달아났다. 주연은 군대를 통솔하여 습격하여 죽였다.
關公所隨之兵,漸漸稀少。走不得四五里,前面喊聲又震,火光大起,潘璋驟馬舞刀殺來。公大怒,輪刀相迎;只三合,潘璋敗走。公不敢戀戰,急望山路而走。背後關平趕來,報說趙累已死於亂軍中。關公不勝悲惶,遂令關平斷後,公自在前開路,隨行止剩得十餘人。行至決石,兩下是山,山邊皆蘆葦敗草,樹木叢雜。時已五更將盡。
관공(관운장)을 따르는 군대는 점점 적어졌다. 사, 오리를 달리지 못하여 앞에서 함성이 또 진동하면서 화광이 크게 일어나면서 반장이 말을 달리고 칼춤을 추면서 달려왔다. 공(관운장)이 크게 노하여 칼을 돌리며 맞이하였는데 삼합만에 반장이 패하여 달아났다. 공(관운장)이 감히 더 싸우지 못하고 급히 산길을 향해 달아났다. 뒤에서 관평이 쫓아오면서 조루가 이미 환란 한 군 중에서 죽었다고 보고하였다. 관공(관운장)이 슬프고 당황함을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관평으로 하여금 뒤를 끊게 하고 공(관운장)은 앞에서 길을 열었는데 따라가는 이가 십여 명 뿐이었다. 결석에 이르니 양쪽이 모두 산인데 산 둘레가 모두 갈대가 마른 풀이고, 수목이 무성하였다. 때는 이미 오경이 장차 다하려하였다.
正走之間,一聲喊起,兩下伏兵盡出,長釣套索,一齊並舉,先把關公坐下馬絆倒。關公翻身落馬,被潘璋部將馬忠所獲。關平知父被擒,火速來救;背後潘璋、朱然率兵齊至,把關平四下圍住。平孤身獨戰,力盡亦被執。至天明,孫權聞關公父子已被擒獲,大喜,聚眾將於帳中。
바로 달려가는 사이에 한 소리 함성이 일어나고 양쪽에서 복병이 모두 나와 긴 갈고리와 투삭(그물)을 일제히 같이 들어 먼저 관공(관운장)이 타고 있던 말을 잡아 넘어뜨렸다. 관공(관운장)이 몸이 뒤집히며 말에서 떨어져 반장의 부장 마충에게 사로잡혔다. 관평은 아버지가 사로잡힌 것을 보고 불 같이 빠르게 와서 구원하려는데 뒤에서 반장과 주연이 군대를 통솔하고 관평을 잡고 사방에서 포위하였다. 관평이 외로운 몸으로 홀로 싸우다 힘이 다하여 또한 잡혔다. 날이 밝자 손권은 관공(관운장) 부자가 사로잡혔다는 것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장막 안에 여러 장수를 모았다.
少時,馬忠簇擁關公至前。權曰:「孤久慕將軍盛德,欲結秦、晉之好,何相棄耶?公平昔自以為天下無敵,今日何由被吾所擒?將軍今日還服孫權否?」關公厲聲罵曰:「碧眼小兒,紫髯鼠輩!吾與劉皇叔桃園結義,誓扶漢室,豈與汝叛漢之賊為伍耶!我今誤中奸計,有死而已,何必多言!」
잠시 후 마충이 관공(관운장)을 둘러싸고 앞에 이르렀다. 손권이 말하기를 “내가 오래동안 장군의 성대한 덕을 흠모하여 秦나라와 晉나라의 우호를 맺고자 하였는데 어찌 버리셨습니까? 공(관운장)은 평소 스스로 천하무적이라 여겼는데 오늘은 무슨 이유로 나에게 사로잡히게 되었습니까? 장군이 오늘 도리어 나에게 항복하지 않으렵니까?”했다. 관공(관운장)이 노한 소리로 욕하며 말하기를 “푸른 눈의 어린애야 자줏빛 수염의 쥐새끼 무리들아! 나는 유황숙(유현덕)과 도원에서 결의하여 한나라를 부축하기로 맹서하였는데 어찌 너 한나라를 배신한 도적과 섞일 수 있겠는가? 내가 지금 잘못 간사한 계책에 빠졌으니 죽음이 있을 뿐 여러 말할 핑료가 없다.”했다.
權回顧眾官曰:「雲長世之豪傑,孤深愛之。今欲以禮相待,勸使歸降,何如?」主簿左咸曰:「不可。昔曹操得此人時,封侯賜爵,三日一小宴,五日一大宴;上馬一提金,下馬一提銀:如此恩禮,畢竟留之不住,聽其斬關殺將而去,致使今日反為所逼,幾欲遷都以避其鋒。今主公既已擒之,若不即除,恐貽後患。」
손권이 여러 관리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관운장은 세상의 호걸로 내가 그를 깊이 아꼈다. 지금 예로 대우하고자 하여 항복하게 권하는 것이 어떠한가?”하니 주부 좌함이 말하기를 “안 됩니다. 옛날 조조가 이 사람을 얻었을 때 후를 봉하고 작을 내리며, 삼일에 한번 작은 연회, 오 일에 한번 큰 연회를 열었으며, 말에 오를 때 한 번 금을 주고 말에서 내릴 때 한번 은을 주었습니다. 이 같은 은혜와 예에도 결국에는 만류하여 막지 못하고 그 관을 지키는 장수를 베어 죽이고 간 것을 들었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핍박받게 함에 이르러서는 거의 도읍을 옮겨서 그 예봉을 피하고자 하였습니다. 지금 주공께서 이미 사로잡았는데 만약 제거하지 않았다가 후환이 미칠까 두렵습니다.”했다.
孫權沈吟半晌,曰:「斯言是也。」遂命推出。於是關公父子皆遇害:時建安二十四年冬十二月也。關公卒年五十八歲。後人有詩歎曰:
손권이 잠시 깊이 생각하고는 말하기를 “이 말이 옳다.”하고는 마침내 끌고 나가게 하였다. 이에 관공(관운장)는 모두 해침을 만났다.(해를 당하였다.) 때는 건안 이십사년 겨울 십이월이다. 관공(관운장) 죽었었 때 나이는 오십팔세였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한 것이 있으니
漢末才無敵,雲長獨出群:神威能奮武,儒雅更知文。天日心如鏡,春秋義薄雲。昭然垂萬古,不止冠三分。又有詩曰:
“한나라 말기 재능으로 대적할 이 없어 관운장 홀로 무리에서 뛰어났다. 신 같은 위엄은 무예를 떨칠 수 있고, 학문과 태도로는 문장을 알았다. 맑고 깨끗하기로는 거울 같고, 역사에 기록될 의리는 엷은 구름 같다. 밝음은 만고에 드리우고, 천하를 셋으로 나눔에 으뜸일 뿐이겠는가.”했고, 또 시가 있으니
人傑惟追古解良,士民爭拜漢雲長。桃園一日兄和弟,俎豆千秋帝與王。氣挾風雷無匹敵,志垂日月有光芒。至今廟貌盈天下。古木寒鴉幾夕陽。
인걸은 옛 해량을 추억하고 사민은 다투어 한나라 관운장에게 절한다. 도원에서 어느 날 형 되고 아우 되어 천년에 황제와 왕으로 제사한다. 기운은 바람과 우레 같아 대적할 이 없고, 지조는 해와 달이 드리운 듯 빛난다. 사당은 천하에 가득한데 저녁마다 고목에 깃든 까마귀 몇 해런가.
關公既歿,坐下赤兔馬被馬忠所獲,獻與孫權。權即賜馬忠騎坐。其馬數日不食草料而死。
관공(관운장)이 죽고 난 후 타고 다니던 적토마는 마충이 얻어서 손권에게 바쳤다. 손권이 곧 마충에게 내려 타게 하였다. 그 말은 며칠 동안 여물을 먹지 않다가 죽었다.
卻說王甫在麥城中,骨顫肉驚,乃問周倉曰:「昨夜夢見主公渾身血污,立於前;急問之,忽然驚覺。不知主何吉凶?」
각설하고 왕보는 맥성 안에 있다가 뼈가 떨리고 살이 놀라자 곧 주창에게 물어 말하기를 “어젯밤 꿈에 주공의 온몸이 피로 물든 채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급히 물었는데 홀연히 깨었습니다. 어떤 길흉인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했다.
正說間,忽報吳兵在城下,將關公父子首級招安。王甫、周倉大驚,急登城視之,果關公父子首級也。王甫大叫一聲,墮城而死。周倉自刎而亡。於是麥城亦屬東吳。卻說關公英魂不散,蕩蕩悠悠,直至一處,乃荊門州當陽縣一座山,名為玉泉山。山上有一老僧,法名普靜,原是汜水關鎮國寺中長老;後因雲遊天下,來到此處,見山明水秀,就此結草為庵,每日坐禪參道;身邊只有一小行者,化飯度日。
바로 말하는 사이에 홀연히 오나라 군사가 성 아래 있으면서 관공(관운장) 부자의 수급(머리)을 가지고 항복하라 한다고 보고하였다. 왕보와 주차이 크게 놀라 급히 성에 올라 보니 과연 관공(관운장) 부자의 수급(머리)이었다. 왕보가 크게 한 소리를 지르고는 성에서 떨어져 죽었다. 주창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이에 맥성이 또한 동오에 속하였다. 각설하고 관공(관운장)의 꽃다운 혼은 흩어지지 않고 이리저리 흘러 바로 한 곳에 이르니 곧 형문주 당양현에 있는 한 산으로 이름을 옥천산이라 했다. 산 위에 한 노승이 있었는데 법명은 보정으로 원래 사수관 진국사 장로였다. 후에 천하를 구름처럼 떠돌다 이곳에 이르러 산과 물이 빼어나고 맑은 것을 보고 여기에 풀을 엮어 암자를 만들고 매일 좌선하며 도를 구하였다. 자신의 주변에는 다만 한 소행자만 있을 뿐으로 이리저리 탁발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是夜日(月)白風清,三更已後,普靜正在庵中默坐,忽聞空中有人大呼曰:「還我頭來!」普靜仰面諦觀,只見空中一人,騎赤兔馬,提青龍刀;左有一白面將軍、右有一黑臉虯髯之人相隨;一齊按落雲頭,至玉泉山頂。普靜認得是關公,遂以手中麈尾擊其戶曰:「雲長安在?」
이날 밤 달이 밝고 바람은 맑은데 삼경이 지나 보정이 바로 암자 안에서 말없이 앉아 있었다. 홀연히 공중에서 어떤 사람이 크게 불러 말하기를 “내 머리를 돌려주오!”하는 소리를 듣고 보정이 얼굴을 들고 살펴보니 공중에 한 사람이 적토마를 타고 청룡도를 들었으며 왼쪽에는 흰 얼굴의 장군이, 오른 쪽에는 얼굴이 검고 규룡의 (구불구불한)수염을 한 사람이 따르는데 일제히(같이)구름 위에서 내려와 옥천산 정상에 이르는 것을 보았다. 보종이 이가 관공(관운장)인 것을 알고는 마침내 손에 쥐고 있던 먼지떨이로 그 문을 치며 말하기를 “관운장께서는 어디에 있습니까?”했다.
關公英魂領悟,即下馬乘風落於庵前,叉手問曰:「吾師何人?願求法號。」普靜曰:「老僧普靜,昔日汜水關前鎮國寺中,曾與君侯相會,今日豈遂忘之耶?」公曰:「向蒙相救,銘感不忘。今某已遇禍而死,願求清誨,指點迷途。」普靜曰:「昔非今是,一切休論,後果前因,彼此不爽。今將軍為呂蒙所害,大呼『還我頭來』,然則顏良、文醜五關六將等眾人之頭,又將向誰索耶?」
관공(관운장)의 영혼이 깨닫고는 곧 말에서 내려 바람을 타고 암자 앞에 내려와 두 손을 가슴에 교차하여 예를 표하고 말하기를 “우리 스님은 어떤 사람입니까? 법호를 청하기를 원합니다.”했다. 보정이 말하기를 “노승은 보정으로 옛날 사수관 앞 진국사에 있을 때 일찍이 군후(관운장)와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어찌하여 마침내 그것을 잊었습니까?”했다. 공(관운장)이 말하기를 “지난 번에 구함을 입어 감사함을 새겨 잊지 않았습니다. 지금 내가 이미 화를 만나 죽었으므로 맑은 가르침을 구하니 잘못된 길을 가리켜 알려주실 것을 원합니다.”했다. 보정이 말하기를 “어제 그른 것이 오늘은 옳은 것이 되니 일체를 논하지 마시고, 뒤의 결과와 앞의 원인은 피차가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장군께서 여몽에게 해침을 당하고 크게 ‘아의 머리를 돌려주어!’하신다면 곧 안량, 문추와 다섯 개 관의 여섯 장수 등 여러 사람의 머리는 또한 장차 누구를 향해 찾아야 하겠습니까?”했다.
於是關公恍然大悟,稽首皈依而去。後往往於玉泉山顯聖護民。鄉人感其德,就於山頂上建廟,四時致祭。後人題一聯於其廟云:赤面秉赤心,騎赤兔追風,馳驅時無忘赤帝;青燈觀青史,仗青龍偃月,隱微處不愧青天。
이에 관공(관운장)이 문득 크게 깨닫고는 머리를 조아리며 귀의하고 떠났다. 후에 자주 옥천산에 관운장의 혼이 나타나 백성들 보호하였다. 그 지방 사람들이 그 덕을 감사히 여겨 산 정상에 나아가 사당을 세우고 제사하였다. 후세사람이 그 사당에 하나의 댓귀를 지었는데 “붉은 얼굴은 거짓 없는 참된 마음을 잡아, 적토마를 타고 바람을 쫒아 치달릴 때 적제를 잊지 않았다. 푸른 등불 밝히고 청사(역사)를 살펴보니 청룡언월도를 잡아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도 푸른 하늘에 부끄럽지 않다.”했다.
卻說孫權既害了關公,遂盡收荊襄之地,賞犒三軍,設宴大會諸將慶功;置呂蒙於上位,顧謂眾將曰:「孤久不得荊州,今唾手而得,皆子明之功也。」蒙再三遜謝。權曰:「昔周郎雄略過人,破曹操於赤壁,不幸早殀,魯子敬代之。子敬初見孤時,便及帝王大略,此一快也;曹操東下,諸人皆勸孤降,子敬獨勸孤召公瑾逆而擊之,此二快也。惟勸吾借荊州與劉備,是其一短。今子明設計定謀,立取荊州,勝子敬、周郎多矣。」
각설하고 손권은 관공(관운장)을 해친 뒤 마침내 형주와 양양의 땅을 거두고, 삼군에게 상을 주고 맛있는 음식을 주고, 연회를 열고 여러 장수들을 크게 모아 공을 축하 하면서 여몽을 윗자리에 앉게 하고 여러 장수들을 돌아보며 일러 말하기를 “내가 오래동안 형주를 얻지 못하다가 지금 매우 쉽게 얻은 것은 모두 자명(여몽)의 공이다.”했다. 여몽은 두 번 세 번 겸손히 사양하였다. 손권이 말하기를 “지난날 주유의 웅대한 지략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 조조를 적벽에서 깨트렸으나 불행히도 일찍 죽어 노자경(노숙)이 대신하였습니다. 자경(노숙)이 처음 나를 보았을 때 곧 제왕의 큰 책략에 미쳤으니 이것이 하나의 기쁨이다. 조조가 동쪽으로 내려왔을 때 여러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항복을 권하였으나 자경(노숙)만은 나에게 공근(주유)를 불러 도리어 칠 것을 권하였으니 이것이 두 번째 기쁨이다. 나를 권하여 형주를 유비(유현덕)에게 빌려줄 것을 권한 것은 그 하나의 단점이라 생각한다. 지금 자명(여몽)이 계책을 설계하고 꾀를 정하여 형주를 세우고 취하게 하였으니 자경(노숙), 주랑(주유)보다 많이 낫다.”했다.
於是親酌酒賜呂蒙。呂蒙接酒欲飲,忽然擲盃於地,一手揪住孫權,厲聲大罵曰:「碧眼小兒!紫髯鼠輩,還識我否?」眾將大驚。急救時,蒙推倒孫權,大步前進,坐於孫權位上,兩眉倒豎,雙眼圓睜,大喝曰:「我自破黃巾以來,縱橫天下三十餘年,今被汝一旦以奸計圖我,我生不能啖汝之肉,死當追呂賊之魂!我乃漢壽亭侯關雲長也。」
이에 직접 술잔에 술을 채워 여몽에게 내렸다. 여몽이 술을 받아 마시려하다 갑자기 잔을 땅에 던져 버리고 한 손으로 손권을 꽉 잡고 성남 소리로 크게 욕하며 말하기를 “푸른 눈의 어린놈아! 자줏빛 수염의 쥐새끼들아 나를 아는가?”하니 여러 장수들이 크게 놀랐다. 급히 구하려 할 때 여몽이 손권을 밀어 넘어뜨리고 큰 걸음으로 앞에 나와 손권의 자리 위에 앉았는데 두 눈썹은 거꾸로 서고, 두 눈을 부릅뜨고 크게 소리쳐 말하기를 “내가 황건적을 깨트린 이래로부터 천하를 종횡한 것이 삼십여 년이었다. 지금 네가 하루아침에 간사한 계책으로 나를 도모함을 당하였다. 내가 살아서는 너의 고기를 씹지 못하지만 죽어서 마땅히 여몽 도적의 혼을 뒤 쫒을 것이다! 나는 곧 한 수정후 관운장이다.”했다.
權大驚,慌忙率大小將士,皆下拜。只見呂蒙倒於地上,七竅流血而死。眾將見之,無不恐懼。權將呂蒙屍首,具棺安葬,贈南郡太守潺陵侯;命其子呂霸襲爵。孫權自此感關公之事,驚訝不已。忽報張昭自建業而來。權君入問之。昭曰:「今主公損了關公父子,江東禍不遠矣。此人與劉備桃園結義之時,誓同生死。今劉備已有兩川之兵;更兼諸葛亮之謀,張、黃、馬、趙之勇;備若知雲長父子遇害,必起傾國之兵,奮力報讎:恐東吳難與敵也。」
손권이 크게 놀라 황망히 크고 작은 장사들을 통솔하고 모두 (몸을)낮추어 절하였다. 여몽을 보니 땅에 엎어져 있었는데 일곱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여러 장수들이 그것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손권은 여몽의 시신을 가져다 관을 갖추어 장례하고 남군태수 잔릉후를 증직하고 그 아들 여패로 하여금 작을 잇게 하였다. 손권은 이로부터 관공(관운장)의 일을 느껴 놀라고 의아하게 여김을 그치지 못하였다. 홀연히 장소가 건업에서 왔다고 보고하였다. 손권이 들어오게 하여 물었다. 장소가 말하기를 “지금 주공께서 관공(관운장) 부자를 죽였으니 강동의 화가 멀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과 유비(유현덕)가 도원에서 결의할 때 죽고 사는 것을 같이할 것을 맹세하였습니다. 지금 유비(유현덕)가 이미 양천(동천과 서천)의 군대를 소유하였고, 다시 제갈량(제갈공명)의 꾀, 장비, 황충, 마초, 조자룡의 용맹을 겸하고 있습니다. 유비(유현덕)이 만약 관운장 부자가 해를 당하였다는 것을 알면 반드시 나라를 기우릴 군대를 일으키고 힘을 떨쳐 원수를 갚으려 할 것이니 동오가 대적하기 어려울까 두렵습니다.”했다.
權聞之大驚,跌足曰:「孤失計較也!似此如之奈何?」昭曰:「主公勿憂,某有一計,令西蜀之兵不犯東吳,荊州如磐石之安。」權問何計。昭曰:「今曹操擁百萬之眾,虎視華夏,劉備急欲報讎,必與操約和。若二處連兵而來,東吳危矣;不如先遣人將關公首級,轉送與曹操,明教劉備知是操之所使,必痛恨於操。西蜀之兵,不向吳而向魏矣。吾乃觀其勝負,於中取事:此為上策。」
손권이 그것을 듣고 크게 놀라 발을 구르며 말하기를 “내가 잘못 헤아렸구나! 이 같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했다. 장소가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근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에게 한 계책이 있어 서촉의 군대가 동오를 범하지 못하게 하여 형주를 반석과 같이 편안하게 할 것입니다.”했다. 손권이 무슨 계책인지를 물었다. 장소가 말하기를 “지금 조조가 백만의 무리를 데리고 범의 눈으로 화하(중국)를 보고 있고, 유비(유현덕)는 급히 원수를 갚으려할 것이므로 반드시 조조와 화약을 맺으려 할 것입니다. 만약 두 곳(유현덕과 조조)이 군대를 이어 온다면 동오는 위태로울 것입니다. 먼저 사람을 보내 관공(관운장)의 머리를 가지 운반하여 조조에게 주어야 합니다. 분명하게 유비(유현덕)로 하여금 이것이 조조가 시킨 바라는 것을 알게 하면 반드시 조조를 심하게 원망할 것입니다. 서촉의 군대는 오나라를 향하지 않고 위나라를 향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에 그 승부를 보고 가운데서 일을 해 나간다면 이는 상책이 될 것입니다.”했다.
權從其言,隨遣使者以木匣盛關公首級,星夜送與曹操。時操從摩陂班師回洛陽,聞東吳送關公首級至,喜曰:「雲長已死,吾夜眠貼席矣。」階下一人出曰:「此乃東吳移禍之計也。」操視之:乃主簿司馬懿也。操問其故,懿曰:「昔劉、關、張三人桃園結義之時,誓同生死。今東吳害了關公,懼其復讎,故將首級獻與大王,使劉備遷怒大王,不攻吳而攻魏,他卻於中乘便而圖事耳。」
손권은 그 말을 따라 사자를 보내 목갑에 담은 관공(관운장)의 머리를 가지고 밤을 새워 가서 조조에게 주게 하였다. 그 때 조조는 마피로부터 군대를 돌려 낙양에 돌아 왔는데, 동오가 관공(관운장)의 머리를 보내 이르렀다는 것을 듣고 기뻐하며 말하기를 “관운장이 이미 죽었으니 내가 오늘 밤은 자리에 붙어 잘 수 있겠다.”했다. 계단 아래서 한 사람이 나와 말하기를 “이는 곧 동오가 화를 옮기는 계책입니다.”했다. 조조가 그를 보니 곧 주부 사마의였다. 조조가 그 이유를 물으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옛날 유현덕, 관운장, 장비 세 사람이 도원에서 결의 하였을 때 살고 죽는 것을 함께하기로 맹세하였습니다. 지금 동오가 관공(관운장)을 해치고, 그 복수를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머리를 가지고 대왕에게 바쳐 유비(유현덕)로 하여금 노함을 대왕에게 옮기게 하여 오나라를 공격하지 않고 위나라를 공격하게 하고, 그들(오나라)은 중간에서 상황을 보아 일을 도모하려 한 것일 뿐입니다.”했다.
操曰:「仲達之言是也。孤以何策解之?」懿曰:「此事極易。大王可將關公首級,刻一香木之軀以配之,葬以大臣之禮。劉備知之,必深恨孫權,盡力南征。我卻觀其勝負:蜀勝則擊吳,吳勝則擊蜀。二處若得一處,那一處亦不久也。」操大喜,從其計,遂召吳使入。呈上木匣。操開匣視之,見關公面如平日。操笑曰:「雲長公別來無恙!」
조조가 말하기를 “중달(사마의)의 말이 옳다. 내가 무슨 계책으로서 그것을 풀어야 하는가?”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이 일은 지극히 쉽습니다. 대왕께서는 관공(관운장)의 머리를 얻으면 향나무로 몸을 하나 깍아 짝을 맞추고 대신의 예로 장사해야 합니다. 유비(유현덕)가 그것을 알면 반드시 손권을 원망하여 힘을 다해 남쪽을 정벌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승부를 보고 촉이 이기면 오나라를 치고, 오나라가 이기면 촉을 쳐야 합니다. (촉과 오)두 곳 중에 한 곳을 얻으면 한 곳도 (얻는 것이)또한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했다.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그 계책을 따라 마침내 오나라 사신을 불러 들어오게 하였다. (오나라 사신이)목갑을 바쳤다. 조조가 갑을 열어보니 관공(관운장)의 얼굴이 평소와 같음을 보았다. 조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관운장 공은 별고 없으신가!”했다.
言未畢,只見關公口開目動,鬚髮皆張,操驚倒。眾官急救,良久方醒,顧謂眾官曰:「關將軍真天神也!」吳使又將關公顯聖附體、罵孫權追呂蒙之事告操。操愈加恐懼,遂設牲醴祭祀,刻沈香木為軀,以王侯之禮,葬於洛陽南門外。令大小官員送殯,操自拜祭,贈為荊王,差官守墓;即遣吳使回江東去訖。
말을 마치지도 않았는데 관공(관운장)의 입이 열리고 눈이 움직이고, 수염이 모두 펴지니 조조가 놀라 엎어졌다. 여러 관리들이 급히 구하였는데 오래 지난 뒤 비로소 깨어나 여러 관리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관장군(관운장)은 참으로 천신이구나!”했다. 오나라 사신이 또한 관공(관운장)의 혼이 몸에 붙어 손권이 여몽의 말을 따른 것을 욕하였던 일을 조조에게 알렸다. 조조가 더욱 두려워하여 마침내 희생과 술로 제사하게 하고, 침향목을 깍아 몸을 만들어 황후의 예로 낙양 남문 밖에 장사하게 하였다. 대소의 관원으로 하여금 빈소에 보내고, 조조 자신이 절하고 제사하며, 증직하여 형왕을 삼고 관리를 보내 묘를 관리하고, 오나라 사신은 강동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卻說漢中王自東川回成都,法正奏曰:「王上先夫人去世;孫夫人又南歸,未必再來。人倫之道,不可廢也。必納王妃,以襄內政。」漢中王從之。法正復奏曰:「吳懿有一妹,美而且賢。嘗聞有相者,相此女後必大貴。先曾許劉焉之子劉瑁;瑁早殀。其女至今寡居,大王可納之為妃。」漢中王曰:「劉瑁與我同宗,於理不可。」法正曰:「論其親疏,何異晉文之與懷嬴乎?」漢中王乃依允,遂納吳氏為王妃。後生二子:長劉永,字公壽;次劉理,字奉孝。
각설하고 한중왕(유현덕)이 동천으로부터 성도로 돌아오니 법정이 아뢰어 말하기를 “왕상(유현덕)의 선부인은 세상을 떠났고, 손부인이 또한 남쪽으로 돌아 가 반드시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인륜의 도는 폐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왕비를 들이는 것으로서 내정을 맡겨야 합니다.”했다. 한중왕(유현덕)이 그것을 따랐다. 법정이 다시 아뢰기를 “오의에게 한 여동생이 있는데 아름답고 또 현명합니다. 일찍이 관상을 보는 자가 듣고 이 여자의 관상을 보고 후에 반드시 크게 귀하게 될 것이다. 했습니다. 앞서 일찍이 유언의 아들 유모에게 시집갔으나 유모가 일찍 죽었습니다. 그 여자가 지금 홀로 살고 있으니 대왕께서는 맞아들여 비로 삼으십시오.”했다. 한중왕(유현덕)이 말하기를 “유모와 나는 같은 종족인데 이치상 안 됩니다.”하니 법정이 말하기를 “그 친소를 논한다면 어찌 晉나라 문공과 회영이 혼인한 것과 다르겠습니까?”했다. 한중왕(유현덕)이 이에 허락하고 마침내 오씨를 맞아들여 왕비로 삼았다. 후에 두 아들을 낳았으니 장자는 유영이니 자는 공슈요, 차자는 유리이니 자는 효봉이다.
且說東西兩川,民安國富,田禾大成。忽有人自荊州來,言東吳求婚於關公,關公力拒之。孔明曰:「荊州危矣!可使人替關公回。」
각설하고 동서 양천은 백성이 편안하고 나라는 부유하며 밭의 곡식은 잘 익었다.(풍년이 들었다.) 홀연히 사람이 영주에서 와 동오가 관공(관운장)에게 혼인을 청하였는데 관공(관운장)이 힘써 거절하였다고 말하였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형주가 위태롭구나! 사람을 시켜 관공(관운장)을 바꾸어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했다.
正商議間,荊州捷報使命,絡繹而至。不一日,關興到,具言水渰七軍之事。忽又報馬到來,報說關公於江邊多設墩臺,隄防甚密,萬無一失。因此玄德放心。
상의하는 사이에 형주의 승리를 알리는 사명(사자)이 이어져 이르렀다. 하루가 지나지 않아 관흥이 이르러 칠군을 물에 빠트림 일을 갖추어 말하였다. 홀연히 또 보고하는 전령이 이르러 와 관공(관운장)이 물가에 많은 돈대(봉화대) 설치하고 제방을 매우 조밀하게 하여 만에 하나의 잘못도 없게 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이 때문에 유현덕은 마음을 놓았다.
忽一日,玄德自覺渾身肉顫,行坐不安;至夜不能寧睡,起坐內室,秉燭看書,覺神思昏迷,伏几而臥;室中忽起一陣冷風,燈滅復明,抬頭見一人立於燈下。玄德問曰:「汝何人,夤夜至吾內室?」其人不答。玄德疑怪,自起視之,乃是關公於燈影下,往來躲避。玄德曰:「賢弟別來無恙!夜深至此,必有大故。吾與汝情同骨肉,因何迴避?」關公泣告曰:「願兄起兵,以雪弟恨!」
홀연히 하루는 유현덕은 온 몸의 살이 떨리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가나 앉으나 편안하지 못하였고, 밤이 되어도 편안히 잠들지 못하여 내실에 일어나나 앉아 촛불을 켜고 책을 보는데 정신은 깨어있으나 생각은 혼미하여 안석에 엎드려 누워있었다. 방 안에 홀연히 한 줄기 차가운 바람이 일면서 촛불이 꺼질 듯하다 다시 밝아지는데 머리를 들자 한 사람이 등 아래 서 있었다. 유현덕이 물어 말하기를 “너는 누구인데 깊은 밤에 내 내실에 이르렀는가?”하니 그 사람이 대답하지 않았다. 유현덕이 괴이하게 여여 일어나 그를 보니 곧 이는 관공(관운장)이 등불 그림자 아래에서 왕래하며 (등불을)피하고 있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아우는 별고 없으신가! 밤이 깊어 여기에 이른 것은 반드시 큰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와 너는 정이 골육(형제)와 같은데 무엇 때문에 돌며 피하는가?”하니 관공(관운장)이 울며 말하기를 “형님이 군대를 일으켜 아우의 한을 풀어주실 것을 원합니다.”했다.
言訖,冷風驟起,關公不見。玄德忽然驚覺,乃是一夢:時正三鼓。玄德大疑,急出前殿,使人請孔明來。孔明入見。玄德細言夢警。孔明曰:「此乃王上心思關公,故有此夢。何必多疑?」玄德再三疑慮,孔明以善言解之。
말을 마치고 찬바람이 일어나면서 관공(관운장)이 보이지 않았다. 유현덕이 홀연히 놀라 깨니 곧 하나의 꿈으로 그때 바로 세 번의 북이 울렸다. 유현덕이 크게 의혹하여 급히 앞의 전에 나와 사람을 시켜 제강공명이 오도록 청하게 하였다. 제갈공명이 들어와 뵈었다. 유현덕이 자세하게 꿈이 경계한 것을 말하였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이는 곧 왕(한중왕, 유현덕)께서 마음으로 관공(관운장)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꿈이 있었습니다. 어찌 많이 의혹하십니까?”했다. 유현덕이 두 번 세 번 의심하자 제갈공명이 좋은 말로서 그것을 풀었다.
孔明辭出,至中門外,迎見許靖。靖曰:「某纔赴軍師府下報一機密,聽知軍師入宮,特來至此。」孔明曰:「有何機密?」靖曰:「某適聞外人傳說,東吳呂蒙已襲荊州,關公已遇害,故特來密報軍師。」孔明曰:「吾夜觀天象,見將星落於荊、楚之地,已知雲長必然被禍,但恐王上憂慮,故未敢言。」
제갈공명이 하직하고 나와 중문 밖에 이르자 허정이 맞이하는 것을 보았다. 허정이 말하기를 “제가 막 군사부에 들어 가 한 기밀을 알리려 하였는데 군사께서 궁에 들어갔다는 것을 듣고 와서 여기에 이르렀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무슨 기밀이 있습니까?”하니 허정이 말하기를 “제가 마침 밖에 나가 있는 사람이 전하는 말을 들으니 동오의 여몽이 이미 형주를 습격하였고, 관공(관운장)도 이미 해를 만났다 하기에 특히 와서 비밀리 군사에게 알려드립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하늘의 상을 관찰하다 장수의 별이 형주와 초 땅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이미 관운장이 반드시 화를 입은 것을 알았습니다만 왕(한중왕, 유현덕)께서 걱정하실 하실 것을 걱정하여 감히 말하지 못한 것입니다.”했다.
二人正說之間,忽然殿內轉出一人,扯住孔明衣袖而言曰:「如此凶信,公何瞞我!」孔明視之,乃玄德也。孔明、許靖奏曰:「適來所言,皆傳聞之事,未足深信。願王上寬懷,勿生憂慮。」玄德曰:「吾與雲長,誓同生死;彼若有失,孤豈能獨生耶!」孔明、許靖正勸解之間,忽近侍奏曰:「馬良、伊籍至。」玄德急召入問之。二人具說荊州有失,關公兵敗求救,呈上表章。未及拆觀,侍臣又奏荊州廖化至。玄德急召入。化哭拜於地,細奏劉封、孟達不發救兵之事。
두 사람이 말하는 사이에 홀연히 전각 안에서 한 사람이 돌아 나와 제갈공명의 옷소매를 붙잡고 말하기를 “이 같은 흉한 소식을 공(제갈공명)은 어찌하여 나에게 속였습니까?”했다. 제갈공명이 그를 보니 바로 유현덕이었다. 제갈공명과 허정이 아뢰어 말하기를 “마침 와서 말한 바가 모두 전해들은 일이라 충분히 믿을 것이 못됩니다. 왕(한중왕, 유현덕)께서는 마음을 편안히 가지시고 근심하지 마시기를 원합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나와 관운장은 생사를 같이 하기로 맹서하였는데 그가 만약 잘못되었다면 내가 어찌 홀로 살 수 있겠는가!”했다. 제갈공명과 허정이 바로 설득하는 사이에 홀연히 근시가 아뢰어 말하기를 “마량과 이적이 이르렀습니다.”했다. 유현덕이 급히 불러들여 물었다. 두 사람이 형주를 잃는 것을 모두 말하고, 관공(관운장)의 군대가 패하여 구원을 청하는 표를 올렸다. 표를 뜯어보기도 전에 모시는 신하가 또 형주의 요화가 이르렀다고 아뢰었다. 유현덕이 급히 불러 들였다. 요화가 크게 울며 땅에 엎드려 자세하게 유봉과 맹달이 구원병을 동원하지 않은 일을 자세하게 아뢰었다.
玄德大驚曰:「若如此,吾弟休矣!」孔明曰:「劉封、孟達如此無禮,罪不容誅!王上寬心,亮親提一旅之師,去救荊州之急。」玄德泣曰:「雲長有失,孤斷不獨生!孤來日自提一軍去救雲長!」遂一面差人赴閬中報知翼德,一面差人會集人馬。
유현덕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만약 이 같다면 내 동생은 죽었을 것이다!”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유봉과 맹달이 이 같이 무례하니 죽음을 용서할 수 없는 죄입니다. 왕(한중왕, 유현덕)께서는 마음을 너그럽게 하십시오, 제가(제갈공명) 직접 한 부대의 (일 려의)군대를 데리고 가서 형주의 급함을 구원하겠습니다.”했다. 유현덕이 울면서 말하기를 “관운장에게 잘못됨이 있다면 내가 어찌 홀로 살 수 있겠는가! 내가 내일 스스로 일 군을 데리고 가서 관운장을 구원할 것이다.”했다. 마침내 한편으로 사람을 보내 낭중에 가 익덕(장비)에게 알리게 하고 한편으로는 사람을 보내 인마를 모이게 하였다.
未及天明,一連數次報,說關公夜走臨沮,為吳將所獲,義不屈節,父子歸神。玄德聽罷,大叫一聲,昏絕於地。正是:為念當年同誓死,忍教今日獨捐生!未知玄德性命如何,且看下文分解。
날이 채 밝지도 않았는데 연이어 여러 번 차례로 보고하기를 관공(관운장)이 임저로 달아났다가 오나라 장수에게 잡혔으며 의리상 절개를 굽히지 않다가 부자(관운장과 관평)가 신으로 돌아갔다(죽음을 당하였다)는 것을 말하였다. 유현덕이 듣기를 마치고 크게 한 소리를 외치고는 땅에 혼절하였다. 바로 이러하다. 같은 해 같이 죽기로 맹서한 것을 생각하니 차마 오늘 홀로 죽게 하겠는가! 유현덕의 목숨이 어떠할지 알지 못하겠구나.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삼국연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79회 형(조비)이 동생을 핍박하니 조식은 시를 짓고, 조카이면서 숙부를 함정에 빠트린 유봉은 법에 따라 죽음을 당하다. (0) | 2021.03.24 |
---|---|
제78회 풍질을 치료한 신의 자신은 죽고, 유언을 전한 간웅은 목숨이 다하다. (0) | 2021.03.19 |
제76회 서공명(서황)은 면수에서 싸우고, 관운장은 패하여 맥성으로 달아나다 (0) | 2021.03.09 |
제75회 관운장은 뼈를 깍아 독을 치료하고, 여자명(여몽)은 흰옷을 입고 강을 건너다 (0) | 2021.03.04 |
제74회 방령명은 관을 가져다 놓고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고, 관운장은 물을 터 칠군을 물에 빠트려 죽이다. (0) | 2021.02.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