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回:曹丕廢帝篡炎劉,漢王正位續大統
제80회 조비는 황제를 폐하여 유씨를 찬탈하고, 한(중)왕은 바른 지위로(황제위에 올라) 대통을 잇다.
卻說華歆等一班文武,入見獻帝。歆奏曰:「伏睹魏王,自登位以來,德布四方,仁及萬物;越古超今,雖唐虞無以過此。群臣會議,言漢祚已終,望陛下效堯、舜之道,以山川社稷,禪與魏王:上合天心,下合民意。則陛下安享清閒之福;祖宗幸甚!生靈幸甚!臣等議定,特來奏請。」
각설하고 화흠 등 한 떼의 문무관들이 들어 가 헌제를 뵈었다. 화흠이 말하기를 “삼가 위왕이 왕위에 오른 이래로부터 덕이 사방에 펴지고 어질음이 만물에 미쳤습니다. 고금을 뛰어넘어 비록 당우라 할지라도 이보다 나음이 없었습니다. 여러 신하들이 모여 의논하였는데 한나라의 사직은 이미 다하였다고 말하니 폐하께서는 요와 순의 도를 본 받아 산천과 사직을 위왕에게 양보하여 주실 것을 바랍니다. (이것이)위로는 하늘에 부합하고 아래로는 백성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곧 폐하께서 맑고 한가한 복을 편안히 누리시는 것이니 조종이 매우 다행스럽게 여길 것이며, 백성들도 매우 다행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신들이 의논하여 정하고 특히 와서 아뢰어 청합니다.”했다.
帝聞奏大驚,半晌無言,覷百官而哭曰:「朕想高祖提三尺劍,斬蛇起義,平秦滅楚,創造基業,世統相傳,四百年矣。朕雖不才,初無過惡,安忍將祖宗大業,等閒棄了?汝百官再從公計議。」
헌제가 아뢰는 것을 듣고 크게 놀라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백관을 보고 곡하며 말하기를 “짐이 생각해보니 고조께서 세 자 검을 차고 뱀을 죽이고 의를 일으켜 秦을 평정하고 楚를 없애 나라를 세운 후 대대로 전통을 서로 전하여 사백년이 되었다. 짐이 비록 재능은 아니지만 애초에 허물과 악함이 없는데 어찌 차마 조종의 대업을 등한히 버릴 수 있겠는가? 너희 백관들은 공변(사사로움이 없이)을 따라 계책을 의논하시오.”했다.
華歆引李伏、許芝近前奏曰:「陛下若不信,可問此二人。」李伏奏曰:「自魏王即位以來,麒麟降生,鳳凰來儀,黃龍出現,嘉禾蔚生,甘露下降:此是上天示瑞,魏當代漢之象也。」
화흠이 이복, 허지를 이끌고 가까이 나아가 아뢰어 말하기를 “폐하께서 만약 믿지 못하신다면 이 두 사람에게 물을 수 있습니다.”하니 이복이 아뢰어 말하기를 “위왕이 즉위한 이래로부터 기린이 태어났고, 봉황이 춤을 추며, 황룡이 출현하였으며, 아름다운 벼가 무성히 났으며, 감로가 내렸습니다. 이는 상천이 상서로움을 보인 것이며 위가 한을 대신하는 상에 해당합니다.”했다.
許芝又奏曰:「臣等職掌司天,夜觀乾象,見炎漢氣數已終,陛下帝星隱匿不明;魏國乾象,極天察地,言之難盡。更兼上應圖讖。其讖曰:『鬼在邊,委相連;當代漢,無可言。言在東,午在西;兩日並光上下移。』以此論之,陛下可早禪位。『鬼在邊』,『委相連』,是『魏』字也;『言在東,午在西』,乃『許』字也;『兩日並光上下移』,乃『昌』字也:此是魏在許昌應受漢禪也。願陛下察之。」
허지가 또 아뢰어 말하기를 “신 등은 천문을 담당하는 관리로 밤에 건상(하늘의 상)을 관찰해 보니 불(화)의 기운을 바탕으로 하는 한나라의 기운과 운수가 이미 다하였고, 폐하의 제성이 숨겨져 밝지 않았습니다. 위나라의 건상(하늘의 상)은 하늘을 다하고 땅을 두루 살펴도 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시 겸하여 도참에도 응합니다. 그 도참에 말하기를 ‘귀가 변에 있고, 위가 서로 이어 있어서 한을 대신하는 것이 마땅함은 말할 것이 없다. 말이 동쪽에 있고 오가 서쪽에 있으니 두 해가 나란히 빛나 상하가 옮겨진다.’했습니다. 이로서 논한다면 폐하께서는 빨리 선위하셔야 합니다. ‘鬼在邊(귀가 가에 있다.)’와 ‘委相連(위가 서로 이어진다.)’은 ‘魏’자이고, ‘言在東,午在西(말이 동쪽에 있고, 오는 서쪽에 있다)’는 것은 곧 ‘許’자입니다. ‘兩日並光上下移(두 해가 나란히 빛나 상하가 옮겨진다.)’는 곧 ‘昌’자입니다. 이는 위가 허창에 있으니 한의 선위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폐하께서는 살피시기를 원합니다.”했다.
帝曰:「祥瑞圖讖,皆虛妄之事;奈何以虛妄之事,而遽欲朕舍祖宗之基業乎?」王朗奏曰:「自古以來,有興必有廢,有盛必有衰。豈有不亡之國、不敗之家乎?漢室相傳四百餘年,延至陛下,氣數已盡,宜早退避,不可遲疑;遲則生變矣。」帝大哭,入後殿去了。百官哂笑而退。
헌제가 말하기를 “상서와 도참은 모두 허망한 일인데 어찌 허망한 일로서 대번에 짐에게 조조의 기업을 버리라 할 수 있는가?”했다. 왕랑이 아뢰어 말하기를 “옛날부터 이래로 흥기함이 있으면 폐(사라짐)함이 있고, 성대함이 있으면 반드시 쇠퇴함이 있습니다. 어찌 망하지 않는 나라와 무너지지 않는 가가 있겠습니까? 한나라가 서로 사백여년을 전하였고, 이어 폐하에 이르러 기운과 운수가 이미 다하였으니 마땅히 일찍 물러나 피하여야 하고, 늦추거나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늦으면 변이 생겨날 것입니다.”했다. 황제가 크게 곡하며 후전으로 들어갔다. 백관들이 비웃으며 물러났다.
次日,官僚又集於大殿,令宦官入請獻帝。帝憂懼不敢出。曹后曰:「百官請陛下設朝,陛下何故推阻?」帝泣曰:「汝兄欲篡位,令百官相逼,朕故不出。」曹后大怒曰:「吾兄奈何為此亂逆之事耶!」
다음 날 관료들이 또 대전에 모여 환관으로 하여금 들어 가 헌제를 청하게 하였다. 헌제가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나오지 못하였다. 조후가 말하기를 “백관들이 폐하께 조회를 베풀 것을 청하는데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물리치십니까?”하니 헌제가 울며 말하기를 “너의 형(오빠가) 황제 위를 빼앗고자 하여 백관으로 하여금 핍박하니 짐이 나가지 못합니다.”했다. 조후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나의 오빠가 어찌하여 이 난역의 일(통치권을 빼앗는 일)을 한단 말입니까?”했다.
言未畢,只見曹洪、曹休帶劍而入,請帝出殿。曹后大罵曰:「俱是汝等亂賊,希圖富貴,共造逆謀!吾父功蓋寰區,威震天下,然且不敢篡竊神器。今吾兄嗣位未幾,輒思篡漢,皇天必不祚爾!」言罷,痛哭入宮。左右侍者皆歔欷流涕。
말을 마치기도 전에 조홍, 조휴가 검을 차고 들어 와 헌제가 전에 나갈 것을 청하였다. 조후가 크게 욕하여 말하기를 “모든 것이 너희들 난적이 부귀를 바라서 함께 역모를 이은 것이로구나! 내 아버지의 공이 사해의 땅(나라를)을 덮었고, 위엄은 천하를 진동시켰으나 또한 감히 신기를 빼앗고 훔치지 않았다. 지금 내 오빠가 왕의 지위를 이은 것이 얼마 되지 않아 문득 한을 빼앗을 것을 생각하니 하늘이 반드시 너에게 복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하는 말을 마치고 통곡하며 궁으로 들어갔다. 좌우에 모시는 자들이 모두 흐느껴 울며 눈물을 흘렸다.
曹洪、曹休力請獻帝出殿。帝被逼不過,只得更衣出前殿。華歆奏曰:「陛下可依臣等昨日之議,免遭大禍。」帝痛哭曰:「卿等皆食漢祿久矣;中間多有漢朝功臣子孫,何忍作此不臣之事?」歆曰:「陛下若不從眾議,恐旦夕蕭牆禍起,非臣等不忠於陛下也。」帝曰:「誰敢弒朕耶?」歆厲聲曰:「天下之人,皆知陛下無人君之福,以致四方大亂!若非魏王在朝,弒陛下者,何止一人?陛下尚不知恩報本,直欲令天下人共伐陛下耶?」
조홍과 조휴는 헌제가 전에 나갈 것을 힘껏 청하였다. 헌제가 핍박을 이기지 못하고 옷을 갈아입고 전으로 나갔다. 화흠이 아뢰어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신들의 어제 의논한 일에 의지하신다면 큰 화를 만나는 것을 면할 수 있을 jt입니다.”했다. 헌제가 통곡하며 말하기를 “경들은 모두 한나라의 녹을 먹은 것이 오래되었다. 중간에 많은 한나라의 공신 자손들이 있었는데 어찌 차마 이 신하답지 않은 일을 한단 말이오!”하니 화흠이 말하기를 “폐하께서 만약 여러 사람의 의논을 따르지 않으신다면 아침저녁으로 안에서 변란이 일어날까 두렵기 때문이요 신들이 폐하께 불충한 것이 아닙니다.”했다. 헌제가 말하기를 “누가 감히 짐을 죽이겠는가?”하니 화흠이 성남 목소리로 말하기를 “천하의 사람 모두가 폐하에게 임금의 복이 없어 사방에서 큰 혼란이 일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위왕이 조정에 있지 않았더라면 폐하를 죽이려는 자가 어찌 단지 한 사람뿐이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오히려 은혜를 갚는 근본을 알지 못하시니 곧바로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함께 폐하를 치게 하려 하십니까?”했다.
帝大驚,拂袖而起。王朗以目視華歆。歆縱步向前,扯住龍袍,變色而言曰:「許與不許,早發一言!」帝戰慄不能答。曹洪、曹休拔劍大呼曰:「符寶郎何在?」祖弼應聲出曰:「符寶郎在此!」曹洪索要玉璽。祖弼叱曰:「玉璽乃天子之寶,安得擅索!」洪喝令武士推出斬之。祖弼大罵不絕口而死。後人有詩讚曰:姦宄專權漢室亡,詐稱禪位效虞唐。滿朝百辟皆尊魏,僅見忠臣符寶郎。
헌제가 크게 놀라 소매를 떨치고 일어났다. 왕랑이 화흠에게 눈짓하였다. 화흠이 큰 걸음으로 앞을 향해 나가 용포를 붙잡고 얼굴색을 바꾸며 말하기를 “허락과 허락하지 않음 중에 빨리 한 가지를 말하시오!”하니 헌제가 두려워하여 대답하지 못하였다. 조홍과 조휴가 검을 뽑아 크게 외쳐 말하기를 “부보랑은 어디에 있는가?”하니 조필응이 대답하며 나와 말하기를 “부보랑이 여기에 있소!”했다. 조홍은 옥쇄를 찾을 것을 요구하였다. 조필이 꾸짖어 말하기를 “옥쇄는 곧 천자의 보배인데 어찌 멋대로 찾을 수 있겠소!”하니 조홍이 무사로 하여금 끌고 나가 베어 죽이라고 크게 소리쳤다. 조필은 크게 욕하기를 끊이지 않고 하며 죽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기려 말하기를 “간사한 도둑이 권력을 오로지 하여 한나라가 망하고, 선위를 사칭하여 우당을 본받으라 한다. 조정에 가득한 관리들은 모두 위를 높이는데, 충신 부보랑을 보았을 뿐이다.”했다.
帝顫慄不已。只見階下披甲持戈數百餘人,皆是魏兵。帝泣謂群臣曰:「朕願將天下禪於魏王,幸留殘喘,以終天年。」賈詡曰:「魏王必不負陛下。陛下可急降詔,以安眾心。」帝只得令陳群草禪國之詔,令華歆齎捧詔璽,引百官直至魏王宮獻納。曹丕大喜。開讀詔曰:
헌제는 두려움에 떨기를 그치지 않았다. 계단 아래 갑옷을 입고 창을 든 수백여 명을 보니 모두 위 병사들이었다. 헌제가 울면서 여러 신하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짐이 장차 천하를 위왕에게 양보하고 다행히도 남은 목숨을 다하는 것으로서 하늘이 준 수명을 마치기를 원한다.”했다. 가후가 말하기를 “위왕은 반드시 폐하를 등지지 않을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급히 조서를 내리시는 것으로서 여러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소서.”했다. 헌제가 진군으로 하여금 나라를 양보하는 조서를 쓰게 하고, 화흠으로 하여금 조서와 옥쇄를 받들게 하여 백관을 이끌고 곧바로 위왕궁에 가 바치게 하였다. 조비응 크게 기뻐하였다. 조서를 열어 읽어보니 말하기를
「朕在位三十二年,遭天下蕩覆,幸賴祖宗之靈,危而復存。然今仰瞻天象,俯察民心,炎精之數既終,行運在乎曹氏。是以前王既樹神武之蹟,今王又光耀明德,以應其期。歷數昭明,信可知矣。夫大道之行,天下為公;唐堯不私於厥子,而名播於無窮:朕竊慕焉。今其追踵堯典,禪位於丞相魏王。王其毋辭!」
“짐이 지위에 있은 지 삼십이 년에 천하가 망하여 뒤집혔는데 다행히 조종의 신령스러움에 의지하여 위태로움에서 다시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하늘의 상을 우러러보고 굽어 백성의 마음을 살펴보니 염정(불기운)의 운수가 이미 다하여 운수를 행함이 조씨에게 있다. 이 때문에 전왕(조조)이 이미 신 같은 위엄의 자취를 세웠고, 지금의 왕 또한 빛나는 밝은 덕으로서 그 기대에 응하였다. 지난 운수가 밝고 분명하니 진실로 알 수 있다. 대저 큰 도의 행함은 천하를 공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요임금은 그 아들을 사사로이 하지 않아 명예가 퍼짐이 무궁하였으니 짐은 가만히 이를 사모하였다. 지금 그 요의 법을 따라 승상 위왕에게 선위한다. (위)왕은 사양하지 말라!” 했다.
曹丕聽畢,便欲受詔。司馬懿諫曰:「不可:雖然詔璽已至,殿下宜且上表謙辭,以絕天下之謗。」丕從之,令王朗作表,自稱德薄,請別求大賢以嗣天位。帝覽表,心甚驚疑,謂群臣曰:「魏王謙遜,如之奈何?」華歆曰:「昔魏武王受王爵之時,三辭而詔不許,然後受之。今陛下可再降詔,魏王自當允從。」
조비는 듣기를 마치고 곧 조서를 받으려 하였다. 사마의가 간하여 말하기를 “안 됩니다. 비록 조서와 옥쇄가 이르렀으나 전하(조비)께서는 마땅히 또한 표를 올려 겸손히 사양하는 것으로서 천하의 비방을 끊어야 합니다.”했다. 조비가 그것을 따라 왕랑에게 표를 짓게 하였는데 스스로 덕이 적다하면서 다로 크게 어진 이를 구하여 천위(천자의 지위)를 잇게 할 것을 청하였다, 헌제가 표를 살펴보고 마음속으로 매우 놀라고 의심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위왕이 겸손하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니 화흠이 말하기를 “옛날 위 무왕(조조)은 왕의 작위를 받을 때 세 번 사양하여도 조서로 허락지 않은 후에 그것을 받았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다시 조서를 내리시면 위왕께서는 스스로 마땅히 허락하고 따를 것입니다.”했다.
帝不得已,又令桓楷草詔,遣高廟使張音,持節奉璽至魏王宮。曹丕開讀詔曰:
헌제가 부득이 또 환해로 하여금 조서를 짓게하고 고묘사 장음을 보내는데 부절을 지니고 옥쇄를 받들어 위왕궁에 이르게 하였다. 조비는 조서를 열어 읽고 말하기를
「咨爾魏王,上書謙讓。朕竊為漢道陵遲,為日已久;幸賴武王操,德膺符運,奮揚神武,芟除兇暴,清定區夏。今王丕纘承前緒,至德光昭,聲教被四海,仁風扇八區;天之曆數,實在爾躬。昔虞舜有大功二十,而放勳禪以天下;大禹有疏導之績,而重華禪以帝位。漢承堯運,有傳聖之義。加順靈祇,紹天明命,使行御丈大夫張音,持節奉皇帝璽綬。王其受之!」
“아! 너 위왕이 글을 올려 겸손히 사양하였다. 짐은 속으로 한나라의 도가 쇠퇴한지 날이 오래되었다고 여겼는데 다행히 무왕 조조는 가슴에 덕을 품어 운수에 부합하며, 신 같은 위엄을 떨쳐 흉포한 이를 베어 제거하니 중국이 맑게 안정시켰다. 지금 왕 조비는 앞의 전통을 이어 지극한 덕은 빛나고 환하며, 명성과 교화가 사해에 입혀졌고, 어진 기풍은 온 천하에 성대하였다. 하늘의 정해진 뜻이 너 자신에게 있다. 옛날 우순(순임금)은 대공이 있은 지 이십년이 지나 방훈(요임금)이 천하를 선위하였고, 대우(우임금)는 물을 터 인도한 공적(천하의 수로를 정비한)이 있어 중화가 천자의 지위를 양보하였다. 한은 요임금의 운수를 계승하였고 성인이 전한 뜻이 있었다. (여기에)천지의 신에 순응하고 하늘의 밝은 명이 더하였으니 사신으로 가는 어사대부 장음에게 부절을 지니고 황제의 옥쇄를 받들게 하였다. 왕(조비)는 그것을 받으라!”했다.
曹丕接詔欣喜,謂賈詡曰:「雖二次有詔,然終恐天下後世,不免篡竊之名也。」詡曰:「此事極易。可再命張音齎回璽綬,卻教華歆令漢帝築一臺,名『受禪臺』;擇吉日良辰;集大小公卿,盡到臺下,令天子親奉璽綬,禪天下與王,便可以釋群疑而絕眾議矣。」
조비는 조서를 접하고 기뻐하며 가후에게 일러 말하기를 “비록 두 차례 조서가 있었으나 끝내 천하 후세에 빼앗고 훔쳤다는 이름을 면치 못할까 두렵습니다.”했다. 가후가 말하기를 “이 일은 지극히 쉽습니다. 다시 장음으로 하여금 옥쇄를 가지고 돌아가게 하시고, 화흠을 시켜 한 나라 헌제로 하여금 한 대를 쌓게하고 이름을 ‘수선대’라 합니다. 길일과 좋은 때를 택하여 대소 공경을 모아 모두 대 아래 이르게 하고 천자(헌제)로 하여금 친히 옥쇄를 받들게 하여 천하를 양보하여 왕에게 주게 하면 곧 여러 의심은 풀리고 여러 의논들은 끊어지게 될 것입니다.”했다.
丕大喜,即令張音捧回璽綬,仍作表謙辭。音回奏獻帝。帝問群臣曰:「魏王又讓,其意若何?」華歆奏曰:「陛下可築一臺,名曰『受禪臺』,聚集公卿庶民,明白禪位;則陛下子子孫孫,必蒙魏恩矣。」帝從之,乃遣太常院官,卜地於繁陽,築起三層高臺,擇於十月庚午日寅時禪讓。
조비는 크게 기뻐하며 곧 장음으로 하여금 옥쇄를 받들고 돌아가게 하고 표를 지어 겸손히 사양하였다. 장음이 돌아 가 헌제에게 아뢰었다. 헌제가 여러 신하들에게 물어 말하기를 “위왕이 또 사양하니 그 뜻이 무엇인가?”하니 화흠이 아뢰어 말하기를 “폐하께서 하나의 대를 쌓고 ‘수선대’라 이름하고 공경과 백성들을 모아 천자의 자리를 양보함을 분명하게 하시면 곧 폐하의 자자손손이 반드시 위왕(조비)의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했다. 헌제가 그것을 따라 곧 태상원 관원을 보내 번양에 땅을 점쳐서 삼층의 높은 대를 쌓아 일으키고 십월 오일 인시를 택하여 선양하기로 했다.
至期,獻帝請魏王曹丕登臺受禪。臺下集大小官僚四百餘員,御林虎賁禁軍三十餘萬。帝親捧玉璽奉曹丕。丕受之。臺下群臣跪聽冊曰:
기일에 이르러 헌제는 위왕 조비에게 대에 올라 선양을 받을 것을 청하였다. 대 아래에는 대소 관료 사백여명과 어림호분금군 삼십여 만을 모여 있었다. 헌제가 친히 옥쇄를 들어 조비에게 받들게 하였다. 조비가 그것을 받았다. 대 아래의 여러 신하들이 무릎을 꿇고 책문을 들었는데 (책문에) 말하기를
「咨爾魏王:昔者唐堯禪位於虞舜,舜亦以命禹:天命不於常,惟歸有德。漢道陵遲,世失其序;降及朕躬,大亂滋昏:群凶恣逆,宇內顛覆。賴武王神武,拯玆難於四方,惟清區夏,以保綏我宗廟;豈予一人獲乂,俾九服實受其賜。今王欽承前緒,光於乃德;恢文武之大業,昭爾考之弘烈。皇靈降瑞,人神告徵;誕惟亮采,師錫朕命。僉曰:爾度克協於虞舜,用率我唐典,敬遜爾位。於戲!天之歷數在爾躬,君其祗順大禮,饗萬國以肅承天命!」
“아! 너 위왕아! 옛날 요임금은 천자의 지위를 우순(순임금)에게 양보하였고, 순임금이 또한 우임금에게 명하였다. 천명은 항상하지 않아 덕이 있는 이에게 돌아간다. 한나라의 도가 쇠퇴하고, 세상은 그 질서를 잃었고, 내 자신에 이르러 크게 혼란하고 더욱 어두워지니 여러 흉한 무리들이 방자히 거슬러 천하가 자빠지고 엎어졌다. 무왕의 신 같은 위엄에 기대어 사방에 이 어려움을 구원하여 중국을 맑게 하는 것으로서 우리 종묘를 보존하여 편안히 하였다. 어찌 나 한 사람이 다스림을 얻어 구복(천하)으로 하여금 진실로 그 내림을 받았다. 지금 왕(조비)은 공경히 앞의 전통을 이어 너의 덕을 빛나게 하고 문무의 대업을 넓혀 너의 아버지의 위대한 공을 빛나게 하라. 황령이 상서를 내리고, 사람과 신이 징조를 말하니 크게 정사를 보좌하는 이들은 짐이 내리는 명을 본받으라. 모두들 말하기를 네가 우순보다 적합하다 헤아리고 내가 요 임금의 법을 써서 삼가 너에게 자리를 양보하라 한다. 아! 하늘의 운수가 너의 몸에 달려 있으니 그대들은 공경히 큰 예를 따라 만국을 향유하는 것으로서 엄숙히 천명을 계승하라!”했다.
讀冊已畢,魏王曹丕即受禪位大禮,登了帝位。賈詡引大小官僚朝於臺下。改延康元年為黃初元年。國號大魏。丕即傳旨,大赦天下。諡父曹操為太祖武皇帝。華歆奏曰:「『天無二日,民無二王』。漢帝既禪天下,理宜退就藩服。乞降明旨,安置劉氏於何地?」
책문 읽기를 마친 후 위왕 조비는 천자 지위를 양보 받는 대례에 나아가 황제 위에 올랐다. 가후가 대소 관료를 이끌고 대 아래에서 조회하였다. 연호를 고쳐 ‘연강’ 원년을 ‘황초’ 원년으로 하고, 국호를 ‘대위’라 하였다. 조비가 교지를 내리고 천하에 (죄수를)크게 풀어주었다. 아버지 조조의 시호를 태조 무황제라 하였다. 화흠이 아뢰어 말하기를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백성에게는 두 임금이 없다.’합니다. 한나라 헌제가 이미 천하를 양보하였으니 이치상 마땅히 물러나 번복(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변경지역)에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 어느 땅에 안치해야 할지 밝은 명을 내려 줄 것을 청합니다.”했다.
言訖,扶獻帝跪於臺下聽旨。丕降旨封帝為山陽公,即日便行。華歆按劍指帝,厲聲而言曰:「立一帝,廢一帝,古之常道!今上仁慈,不忍加害,封汝為山陽公。今日便行,非宣召不許入朝!」獻帝含淚拜謝,上馬而去。臺下軍民人等見之,傷感不已。丕謂群臣曰:「舜、禹之事,朕知之矣!」群臣皆呼萬歲。後人觀此受禪臺,有詩歎曰:兩漢經營事頗難,一朝失卻舊江山。黃初欲學唐虞事,司馬將來作樣看。
말을 마치고 헌제를 부축하여 대에 꿇어 황제의 명을 받게 하였다. 조비는 명을 내려 헌제를 봉하여 산양공으로 삼고 그날 곧 가게 하였다. 화흠은 검을 어루만지고 헌제를 가리키며 성안 소리로 말하기를 “한 황제를 세우면 한 황제를 폐하는 것이 옛날의 떳떳한 도이다! 지금 황제가 인자하여 차마 해를 가하지 못하고 너를 봉하여 산양공으로 삼았다. 오늘 곧 떠나 임금이 부르지 않으면 조정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했다. 헌제가 눈물을 머금고 절라며 감사하고 말에 올라 떠났다. 대 아래의 군대, 백성들이 그것을 보고 애처로워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조비가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순과 우의 일을 짐이 그것을 알고 있다.”하니 여러 신하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후세 사람들이 이 ‘수선대’를 보고 시를 지어 탐식하여 말하기를 “양한(서한과 동한/전한, 후한)의 일을 경영하는 것이 자못 어려웠는데, 하루아침에 옛 강산을 잃었다. 황초(조비의 연호)가 요임금, 순임금의 일을 배우려 하였으나 사마씨가 장차 모양을 보고 있었다.” 했다.
百官請曹丕答謝天地。丕方下拜,忽然臺前捲起一陣怪風,飛砂走石,急如驟雨,對面不見;臺上火燭,盡皆吹滅。丕驚倒於臺上,百官急救下臺,半晌方醒。侍臣扶入宮中,數日不能設朝。後病稍可,方出殿受群臣朝賀。封華歆為司徒,王朗為司空。大小官僚,一一陞賞。丕疾未痊,疑許昌宮室多妖,乃自許昌幸洛陽,大建宮室。
백관이 조비에게 천지에 보답할 것을 청하였다. 조비가 비로소 몸을 굽혀 절하는데 홀연히 대 앞에서 일진의 괴이한 바람이 돌며 일어나 모래가 날고 돌이 구르는데 급하기가 세차게 쏟아지는 소나기와 같아 얼굴을 대하여도 보이지 않고 대 위의 촛불이 모두 꺼졌다. 조비가 놀라 대 위에서 엎어지니 백관들이 급히 구하여 대를 내려갔는데 한 참 후에 비로소 깨어났다. 모시는 신하들이 부축하여 궁 안으로 들어갔는데 몇 일 동안 조회를 열지 못하였다. 병이 점점 나아진 후에 비로소 전(전각)에 나와 여러 신하들의 축하를 받았다. 화흠을 봉하여 사도를 삼고, 왕랑을 사공으로 삼았다. 대소 관료들도 일일이 승진시키고 상을 주었다. 조비는 병이 낮지 않자 허창의 궁실에 요사한 기운이 많다고 의심하여 이에 허창으로부터 낙양에 가 크게 궁실을 세웠다.
早有人到成都,報說曹丕自立為大魏皇帝,於洛陽蓋造宮殿;且傳言漢帝已遇害。漢中王聞知,痛哭終日,下令百官挂孝,遙望設祭,上尊諡曰「孝愍皇帝」。玄德因此憂慮,致染成疾,不能理事,政務皆託與孔明。孔明與太傅許靖、光祿大夫譙周商議,言天下不可一日無君,欲尊漢中王為帝。譙周曰:「近有祥風慶雲之瑞;成都西北角有黃氣數十丈沖霄而起,帝星見於畢、胃、昴之分,煌煌如月:此正應漢中王當即帝位,以繼漢統。更復何疑?」
일찍이 어떤 사람이 성도에 이르러 조비가 스스로 즉위하여 대위 황제가 되었고, 낙양에 궁전을 세웠다는 것을 보고하고, 또 한나라 황제가 이미 해를 입었다는 말을 전하였다. 한중왕(유현덕)이 듣고 종일토록 통곡하고, 백관들에게 상복을 입도록 명령하고 멀리 바라보고 제사를 지내고 시호를 올려 ‘효민황제’라 했다. 유현덕이 이로 인하여 근심하다 병이 들어 일을 다스리지 못하자 정무를 모두 제갈공명에게 맡겼다. 제갈공명은 태부 허정, 광록대부 초주와 상의하여 천하는 하루도 임금이 없어서는 안 되니 한중왕(유현덕)을 높여 황제라 하려 했다. 초주가 말하기를 “근래에 상서로운 바람과 경사스러운 구름의 상서로움이 있었고, 성도 서북쪽 모퉁이에 누른 기운이 수 십장 하늘로 치솟아 일어나는 일이 있었고, 제성(천자를 상징하는 별)이 필성, 위성, 묘성의 자리에 보였는데 밝기가 달과 같았습니다. 이는 한중왕(유현덕)이 마땅히 황제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으로서 한나라의 전통을 이음에 바로 응하는 것입니다. 다시 무엇을 의심하십니까?”했다.
於是孔明與許靖,引大小官僚上表,請漢中王即皇帝位。漢中王覽表,大驚曰:卿等欲陷孤為不忠不義之人耶?」孔明奏曰:「非也:曹丕篡漢自立,主上乃漢室苗裔,理合繼統以延漢祀。」漢中王勃然變色曰:「孤豈效逆賊所為!」拂袖而起,入於後宮。眾官皆散。
이에 제갈공명이 허정과 대소 관료를 이끌고 표를 올려 한중왕(유현덕)이 황제의 자리에 나아갈 것을 청하였다. 한중왕(유현덕)이 표를 보고는 크게 놀라 말하기를 “경들은 나를 불충, 불의한 사람이 되는 것에 빠트리려 하는가?”하니 제갈공명이 아뢰어 말하기를 “아닙니다. 조비가 한을 찬탈하여 스스로 ㅊ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주상(유현덕)께서는 곧 한나라 황실의 후예이니 이치 상 전통을 잇는 것으로서 한나라의 제사를 잇는 것이 합당합니다.”했다. 한중왕(유현덕) 갑자기 얼굴색이 변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어찌 역적ㅇ이 하는 바를 본받겠는가!”하고는 소매를 떨치고 일어나 후궁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러 관리들이 모두 흩어졌다.
三日後,孔明又引眾官入朝,請漢中王出。眾皆拜伏於前。許靖奏曰:「今漢天子已被曹丕所弒,主上不即帝位,興師討逆,不得為忠義也。今天下無不欲王上為君,孝愍皇帝雪恨。若不從臣等所議,是失民望矣。」漢中王曰:「孤雖是景帝之孫,並未有德澤以布於民,今一旦自立為帝,與篡竊何異?」孔明苦勸數次,漢中王堅執不從。孔明乃設一計,謂眾官曰:「如此如此。」於是孔明託病不出。
삼일 후 제갈공명이 또 뭇 관리들을 이끌고 조정에 들어 가 한중왕(유현덕)에게 나올 것을 청하였다. 무리들이 모두 앞에 절하며 엎드렸다. 허정이 아뢰어 말하기를 “지금 한나라의 천자(황제)가 이미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였는데 주상(유현덕)께서 황제의 지위에 올라 군대를 일으켜 역적을 토벌하지 않으신다면 충의라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천하는 왕상(유현덕)께서 임금이 되어 효민황제의 한을 갚으려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만약 신들이 의논한 바를 따르지 않으신다면 이는 백성들의 바람을 잃는 것입니다.”했다. 한중왕(유현덕)이 말하기를 “내가 비록 경제의 후손이기는 하나 아울러 덕택을 백성에게 펴지 못하였는데 지금 하루아침에 스스로 즉위하여 황제가 된다면 빼앗고 훔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했다. 제갈공명이 힘서 권하기를 여러 번하였으나 한중왕(유현덕)은 굳게 잡고 따르지 않았다. 제갈공명이 이에 한 계책을 베풀어 여러 관리들에게 말하기를 “이렇게 저렇게 하자.”하고는 이에 제갈공명은 병을 핑계대고 나오지 않았다.
漢中王聞孔明病篤,親到府中,直入臥榻邊問曰:「軍師所感何疾?」孔明答曰:「憂心如焚,命不久矣。」漢中王曰:「軍師所憂何事?」連問數次,孔明只推病重,瞑目不答。漢中王再三請問。孔明喟然歎曰:「臣自出茅廬,得遇大王,相隨至今,言聽計從;今幸大王有兩川之地,不負臣夙昔之言。目今曹丕篡位,漢祀將斬,文武官僚,咸欲奉大王為帝,滅魏興劉,共圖功名;不想大王堅執不肯,眾官皆有怨心,不久必盡散矣。若文武皆散,吳、魏來攻,兩川難保,臣安得不憂乎?」漢中王曰:「吾非推阻,恐天下人議論耳。」孔明曰:「聖人云:『名不正,則言不順。今大王名正言順,有何可議?豈不聞『天與弗取,反受其咎』?」漢中王曰:「待軍師病可,行之未遲。」
한중왕(유현덕)은 제갈공명의 병이 심ㅎ하다는 것을 듣고 직접 부중에 이르러 곧 바로 누워있는 침상 곁에 들어 가 물어 말하기를 “군사께서는 무슨 병에 걸리셨습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답하여 말하기를 “근심하는 마음이 불길과 같아 목숨이 오래지 않을 것입니다.”하니 한중왕이 말하기를 “군사께서 무슨 일로 근심하십니까?”하며 연이어 묻기를 여러 차례 하였으나 제갈공명은 다만 병이 중함을 핑계로 눈을 감고 대답하지 않았다. 한중왕(유현덕)이 두 번 세 번 물었다. 제갈공명이 위연히 탄식하여 말하기를 “신이 띠집을 나와 대왕(유현덕)을 만나고부터 서로 따라 지금에 이르기까지 (제갈공명의)말을 듣고 계책을 따랐습니다. 지금 다행히 대왕(유현덕)께서 양천(동천과 서천)의 땅을 소유하시고도 신이 지난날에 했던 말을 등지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조비가 황제의 자리를 빼앗아 한나라의 제사는 끊어졌고, 문무관료들이 모두 대왕을 받들어 황제로 삼아 위를 없애고 유씨를 흥기시켜 함께 공명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생각지 않게 대왕(유현덕)께서 굳은 고집으로 기꺼이 하지 않으시니 뭇 관리들이 모두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으니 오래지 않아 반드시 모두 흩어질 것입니다. 만약 문무관리들이 모두 흩어지고, 오와 위가 장차 공격해 온다면 양천(동천과 서천)은 보존하기 어려울 것이니 신이 어찌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했다. 한중왕(유현덕)이 말하기를 “내가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천하 사람들의 의논(여론)을 주려워 했을 뿐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성인이 말하기를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곧 말이 순하지 한다.’하셨습니다. 지금 대왕(유현덕)께서는 명분이 바르고 말이 순하니 무슨 논의할만 한 것이 있겠습니까? 어찌 ‘하늘이 주는 것을 취하지 않고 도리어 그 허물(재앙)을 받는다.’는 말을 듣지 못하셨습니까?”했다. 한중왕(유현덕)이 말하기를 “군사의 병이 나아지는 것을 기다렸다가 (황제의 지위 즉위하는 것) 행하여도 늦지 않습니다.”했다.
孔明聽罷,從榻上躍然而起,將屏風一擊,外面文武眾官皆入,拜伏於地曰:「主上既允,便請擇日以行大禮。」漢中王視之,乃是太傅許靖、安漢將軍糜竺、青衣侯尚舉、陽泉侯劉豹、別駕趙祚、治中楊洪、議曹杜瓊、從事張爽、太常卿賴忠、光祿卿黃權、祭酒何曾、學士尹默、司業譙周、大司馬殷純、偏將軍張裔、少府王謀、昭文博士伊籍、從事郎秦宓等眾也。
제갈공명이 듣기를 마치고 침상 위로부터 뛸 듯이 일어나 병풍을 한 번 치니 밖으로부터 묵 관료들이 모두 들어 와 절하며 땅에 엎드려 말하기를 “주상(유현덕)께서 이미 허락하셨으니 곧 날을 가려 대례(즉위의식)를 행할 것을 청합니다.”했다. 한중왕(유현덕)이 그들을 보니 곧 태부 허정, 안한장군 미축, 정의후 상거, 양천후 유표, 별가 조조, 치중 양홍, 의조 두찬, 종사 장상, 태상경 뢰충, 광록경 황권, 제주 하증, 학사 윤묵, 사업 초주, 대사마 은순, 편장군 장예, 소부 왕모, 소문박사 이적, 조사랑 진복 등의 무리였다.
漢中王驚曰:「陷孤於不義,皆卿等也。」孔明曰:「王上既允所請,便可築臺擇吉,恭行大禮。」即時送漢中王還宮,一面令博士許慈、諫議郎孟光掌禮,築臺於成都武擔之南。諸事齊備,多官整設鑾駕,迎請漢中王登壇致祭。譙周在壇上,高聲朗讀祭文曰:
한중왕(유현덕)이 놀라 말하기를 “나를 불의에 빠트리는 것은 모두 경들이다.”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왕상(유현덕)께서 청한 바를 허락하셨으니 곧 대를 쌓고 길일을 가려 공손히 대례를 행해야 합니다.”했다. 즉시 한중왕(유현덕)을 보내 궁에 돌아가게 하는 한편으로 박사 허자, 간의랑 맹광으로 하여금 에를 담당하게 하고, 성도 무담 남쪽에 대를 쌓게 하였다. 여러 일들을 가지런히 갖추어지자 많은 관리들이 천자의 수레를 정돈하고 준비하여 한중왕(유현덕)아 단에 올라 제를 지낼 것을 청하였다. 초주는 단 위에서 큰 소리로 제문을 낭랑하게 읽었는데 제문에
「惟建安二十六年四月丙午朔,越十二日丁巳,皇帝備,敢昭告於皇天后土:漢有天下,歷數無疆。曩者,王莽篡盜,光武皇帝震怒致誅,社稷復存。今曹操阻兵殘忍,戮殺主后,罪惡滔天;操子丕,載肆凶逆,竊據神器。群下將士,以為漢祀墮廢,備宜延之,嗣武二祖,躬行天罰。備懼無德忝帝位,詢於庶民,外及遐荒君長,僉曰:天命不可以不答,祖業不可以久替,四海不可以無主。率土式望,在備一人。備畏天明命,又懼高光之業,將墜於地,謹擇吉日,登壇祭告,受皇帝璽綬,撫臨四方。惟神饗祚漢家,永綏歷服!」
“건안 이십 육년 사월 병오 초하루에서 이십일이 지난 정사 일에 황제 비(유비)는 감히 황천과 후토(천지신명)에 밝게 알려 말합니다. 한나라가 천하를 소유한 역수가 끝이 없습니다. 지난 날 왕망이 빼앗고 훔쳤던 것을 광무황제가 진노하여 주살하여 사직이 다시 보존되었습니다. 지금 조조의 무리들은 잔인하게 황제와 황후를 죽였으니 죄악이 하늘에 치솟았고, 조조의 아들 조비는 방자하게 흉역을 꾸며 신기를 훔쳐 차지하였습니다. 여러 아래 장사들은 한나라의 제사가 떨어져 없어졌기 때문에 제가(유현덕) 마땅히 그것을 이어 무 이조(고조와 광무제)를 계승하여 몸소 천벌을 행하려 합니다. 저는(유현덕) 덕이 없어 황제 자리를 더럽힐까 두려워하여 백성과 밖으로 멀리 변경의 군장에 이르기까지 물었더니 모두 말하기를 ‘천명에 답하지 않을 수 없고 조상의 기업은 오래 버려둘 수 없으며, 사해(천하)에는 임금이 없을 수 없습니다.’했습니다. 나라가 바라는 것이 저(유현덕) 한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저는(유현덕) 하늘의 밝은 명을 두려워하고, 또 고조와 광무제의 기업이 장차 땅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삼가 길일을 가려 단에 올라 제사하고 고하고, 황제의 옥쇄를 받아 사방에 군림하여 모든 백성을 어루만져 잘 돌보아 기르겠습니다. 신이시여 흠향하시고 한나라에 복을 내려 길이 황제 위를 편안하게 하소서!”했다.
讀罷祭文,孔明率眾官恭上玉璽。漢中王受了,捧於壇上,再三推讓曰:「備無才德,請擇有才德者受之。」孔明奏曰:「王上平定四海,功德昭於天下,況是大漢宗派,宜即正位。已祭告天神,復何讓焉?」文武各官,皆呼萬歲。拜舞禮畢,改元章武元年。立妃吳氏為皇后,長子劉禪為太子。封次子劉永為魯王,劉理為梁王。封諸葛亮為丞相,許靖為司徒。大小官僚,一一陞賞。大赦天下。兩川軍民,無不欣躍。次日設朝,文武官僚拜畢,列為兩班。先主降詔曰:「朕自桃園與關、張結義,誓同生死;不幸二弟雲長,被東吳孫權所害。若不報讎,是負盟也。朕欲起傾國之兵,攻伐東吳,生擒逆賊,以雪此恨!」言未畢,班內一人,拜伏於階下,諫曰:「不可。」先主視之,乃虎威將軍趙雲也。正是:君王未及行天討,臣下曾聞進直言。未知子龍所諫若何,且看下文分解。
제문 읽기를 마치자 제갈공명이 여러 관리들을 통솔하고 공경히 옥쇄를 올렸다. 한중왕(유현덕)이 받은 후 단 위에서 받들고 두 번 세 번 사양하며 말하기를 “나는 재능과 덕이 없으니 재능과 덕이 있는 자를 가려 받게 할 것을 청한다.”했다. 제갈공명이 아뢰어 말하기를 “왕상(유현덕)께서는 사해(천하)를 평정하셨고, 공덕은 천하를 밝게 하였으며, 하물며 대 한나라의 종파(종친)이시니 마땅히 바른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이미 제사로 천신에게 알렸으니 어찌 다시 사양하십니까?”하였고, 문무 각 관료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절하며 춤추는 예를 마치고 연호를 고쳐 장무 원년이라 하였다. 비 오씨를 세워 황후라 하고, 맏아들 유선을 태자로 삼았다. 둘째 아들 유영을 봉해 노왕으로 삼고, 유리는 양왕으로 삼았다. 제갈공명을 봉하여 승상을 삼고, 허정을 사도로 삼았다. 대소 관료들에게도 일일이 승진시키고 상을 주었다. 천하에 죄지은 자들을 크게 풀어주었다. 양천(동천과 서천)의 군사와 백성들이 기뻐 뛰지 않는 자가 없었다. 다음날 조회를 열어 문무관료들이 절하기를 마치고 열을 지어 양 쪽에 자리하였다. 선주(유현덕)가 조서를 내려 말하기를 “짐이 도원에서 관운장, 장비와 결의하고 생사를 같이 하기로 맹세 하였다. 불행히도 아우 관운장이 동오 손권에게 잡혀 해를 입었다. 만약 원수를 갚지 않는다면 이는 맹세를 저버리는 것이다. 짐은 나라를 기우리는 군대를 일으켜 동오를 쳐서 역적을 사로잡는 것으로서 이 한을 씻으려 한다.”하는 말을 마치지도 않았는데 열 안의 한 사람이 계단 아래에 절하고 엎드려 간해 말하기를 “불가합니다.”했다. 선주(유현덕)가 그를 보니 곧 호위장군 조운(조자룡)이었다. 바로 이러하다. 군왕(임금)이 악인 토벌을 행함에 미치지 않았는데도 신하가 일찍 듣고 직언을 올리는구나! 조자룡이 어떻게 간할지 알지 못하겠구나.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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