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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

제80회 조비는 황제를 폐하여 유씨를 찬탈하고, 한(중)왕은 바른 지위로(황제위에 올라) 대통을 잇다.

by 최인표 2021. 3. 30.

第八十回曹丕廢帝篡炎劉漢王正位續大統

80회 조비는 황제를 폐하여 유씨를 찬탈하고, ()왕은 바른 지위로(황제위에 올라) 대통을 잇다.

 

卻說華歆等一班文武入見獻帝歆奏曰:「伏睹魏王自登位以來德布四方仁及萬物越古超今雖唐虞無以過此群臣會議言漢祚已終望陛下效堯舜之道以山川社稷禪與魏王上合天心下合民意則陛下安享清閒之福祖宗幸甚生靈幸甚臣等議定特來奏請。」

각설하고 화흠 등 한 떼의 문무관들이 들어 가 헌제를 뵈었다. 화흠이 말하기를 삼가 위왕이 왕위에 오른 이래로부터 덕이 사방에 펴지고 어질음이 만물에 미쳤습니다. 고금을 뛰어넘어 비록 당우라 할지라도 이보다 나음이 없었습니다. 여러 신하들이 모여 의논하였는데 한나라의 사직은 이미 다하였다고 말하니 폐하께서는 요와 순의 도를 본 받아 산천과 사직을 위왕에게 양보하여 주실 것을 바랍니다. (이것이)위로는 하늘에 부합하고 아래로는 백성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곧 폐하께서 맑고 한가한 복을 편안히 누리시는 것이니 조종이 매우 다행스럽게 여길 것이며, 백성들도 매우 다행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신들이 의논하여 정하고 특히 와서 아뢰어 청합니다.”했다.

 

帝聞奏大驚半晌無言百官而哭曰:「朕想高祖提三尺劍斬蛇起義平秦滅楚創造基業世統相傳四百年矣朕雖不才初無過惡安忍將祖宗大業等閒棄了汝百官再從公計議。」

헌제가 아뢰는 것을 듣고 크게 놀라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백관을 보고 곡하며 말하기를 짐이 생각해보니 고조께서 세 자 검을 차고 뱀을 죽이고 의를 일으켜 을 평정하고 를 없애 나라를 세운 후 대대로 전통을 서로 전하여 사백년이 되었다. 짐이 비록 재능은 아니지만 애초에 허물과 악함이 없는데 어찌 차마 조종의 대업을 등한히 버릴 수 있겠는가? 너희 백관들은 공변(사사로움이 없이)을 따라 계책을 의논하시오.”했다.

 

華歆引李伏許芝近前奏曰:「陛下若不信可問此二人。」李伏奏曰:「自魏王即位以來麒麟降生鳳凰來儀黃龍出現嘉禾蔚生甘露下降此是上天示瑞魏當代漢之象也。」

화흠이 이복, 허지를 이끌고 가까이 나아가 아뢰어 말하기를 폐하께서 만약 믿지 못하신다면 이 두 사람에게 물을 수 있습니다.”하니 이복이 아뢰어 말하기를 위왕이 즉위한 이래로부터 기린이 태어났고, 봉황이 춤을 추며, 황룡이 출현하였으며, 아름다운 벼가 무성히 났으며, 감로가 내렸습니다. 이는 상천이 상서로움을 보인 것이며 위가 한을 대신하는 상에 해당합니다.”했다.

 

許芝又奏曰:「臣等職掌司天夜觀乾象見炎漢氣數已終陛下帝星隱匿不明魏國乾象極天察地言之難盡更兼上應圖讖其讖曰:『鬼在邊委相連當代漢無可言言在東午在西兩日並光上下移。』以此論之陛下可早禪位。『鬼在邊』,『委相連』,字也;『言在東午在西』,字也;『兩日並光上下移』,字也此是魏在許昌應受漢禪也願陛下察之。」

허지가 또 아뢰어 말하기를 신 등은 천문을 담당하는 관리로 밤에 건상(하늘의 상)을 관찰해 보니 불()의 기운을 바탕으로 하는 한나라의 기운과 운수가 이미 다하였고, 폐하의 제성이 숨겨져 밝지 않았습니다. 위나라의 건상(하늘의 상)은 하늘을 다하고 땅을 두루 살펴도 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시 겸하여 도참에도 응합니다. 그 도참에 말하기를 귀가 변에 있고, 위가 서로 이어 있어서 한을 대신하는 것이 마땅함은 말할 것이 없다. 말이 동쪽에 있고 오가 서쪽에 있으니 두 해가 나란히 빛나 상하가 옮겨진다.’했습니다. 이로서 논한다면 폐하께서는 빨리 선위하셔야 합니다. ‘鬼在邊(귀가 가에 있다.)’委相連(위가 서로 이어진다.)’자이고, ‘言在東午在西(말이 동쪽에 있고, 오는 서쪽에 있다)’는 것은 곧 자입니다. ‘兩日並光上下移(두 해가 나란히 빛나 상하가 옮겨진다.)’는 곧 자입니다. 이는 위가 허창에 있으니 한의 선위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폐하께서는 살피시기를 원합니다.”했다.

 

帝曰:「祥瑞圖讖皆虛妄之事奈何以虛妄之事而遽欲朕舍祖宗之基業乎?」王朗奏曰:「自古以來有興必有廢有盛必有衰豈有不亡之國不敗之家乎漢室相傳四百餘年延至陛下氣數已盡宜早退避不可遲疑遲則生變矣。」帝大哭入後殿去了百官哂笑而退

헌제가 말하기를 상서와 도참은 모두 허망한 일인데 어찌 허망한 일로서 대번에 짐에게 조조의 기업을 버리라 할 수 있는가?”했다. 왕랑이 아뢰어 말하기를 옛날부터 이래로 흥기함이 있으면 폐(사라짐)함이 있고, 성대함이 있으면 반드시 쇠퇴함이 있습니다. 어찌 망하지 않는 나라와 무너지지 않는 가가 있겠습니까? 한나라가 서로 사백여년을 전하였고, 이어 폐하에 이르러 기운과 운수가 이미 다하였으니 마땅히 일찍 물러나 피하여야 하고, 늦추거나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늦으면 변이 생겨날 것입니다.”했다. 황제가 크게 곡하며 후전으로 들어갔다. 백관들이 비웃으며 물러났다.

 

次日官僚又集於大殿令宦官入請獻帝帝憂懼不敢出曹后曰:「百官請陛下設朝陛下何故推阻?」帝泣曰:「汝兄欲篡位令百官相逼朕故不出。」曹后大怒曰:「吾兄奈何為此亂逆之事耶!」

다음 날 관료들이 또 대전에 모여 환관으로 하여금 들어 가 헌제를 청하게 하였다. 헌제가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나오지 못하였다. 조후가 말하기를 백관들이 폐하께 조회를 베풀 것을 청하는데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물리치십니까?”하니 헌제가 울며 말하기를 너의 형(오빠가) 황제 위를 빼앗고자 하여 백관으로 하여금 핍박하니 짐이 나가지 못합니다.”했다. 조후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나의 오빠가 어찌하여 이 난역의 일(통치권을 빼앗는 일)을 한단 말입니까?”했다.

 

言未畢只見曹洪曹休帶劍而入請帝出殿曹后大罵曰:「俱是汝等亂賊希圖富貴共造逆謀吾父功蓋寰區威震天下然且不敢篡竊神器今吾兄嗣位未幾思篡漢皇天必不祚爾!」言罷痛哭入宮左右侍者皆歔欷流涕

말을 마치기도 전에 조홍, 조휴가 검을 차고 들어 와 헌제가 전에 나갈 것을 청하였다. 조후가 크게 욕하여 말하기를 모든 것이 너희들 난적이 부귀를 바라서 함께 역모를 이은 것이로구나! 내 아버지의 공이 사해의 땅(나라를)을 덮었고, 위엄은 천하를 진동시켰으나 또한 감히 신기를 빼앗고 훔치지 않았다. 지금 내 오빠가 왕의 지위를 이은 것이 얼마 되지 않아 문득 한을 빼앗을 것을 생각하니 하늘이 반드시 너에게 복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하는 말을 마치고 통곡하며 궁으로 들어갔다. 좌우에 모시는 자들이 모두 흐느껴 울며 눈물을 흘렸다.

 

曹洪曹休力請獻帝出殿帝被逼不過只得更衣出前殿華歆奏曰:「陛下可依臣等昨日之議免遭大禍。」帝痛哭曰:「卿等皆食漢祿久矣中間多有漢朝功臣子孫何忍作此不臣之事?」歆曰:「陛下若不從眾議恐旦夕蕭牆禍起非臣等不忠於陛下也。」帝曰:「誰敢弒朕耶?」歆厲聲曰:「天下之人皆知陛下無人君之福以致四方大亂若非魏王在朝弒陛下者何止一人陛下尚不知恩報本直欲令天下人共伐陛下耶?」

조홍과 조휴는 헌제가 전에 나갈 것을 힘껏 청하였다. 헌제가 핍박을 이기지 못하고 옷을 갈아입고 전으로 나갔다. 화흠이 아뢰어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신들의 어제 의논한 일에 의지하신다면 큰 화를 만나는 것을 면할 수 있을 jt입니다.”했다. 헌제가 통곡하며 말하기를 경들은 모두 한나라의 녹을 먹은 것이 오래되었다. 중간에 많은 한나라의 공신 자손들이 있었는데 어찌 차마 이 신하답지 않은 일을 한단 말이오!”하니 화흠이 말하기를 폐하께서 만약 여러 사람의 의논을 따르지 않으신다면 아침저녁으로 안에서 변란이 일어날까 두렵기 때문이요 신들이 폐하께 불충한 것이 아닙니다.”했다. 헌제가 말하기를 누가 감히 짐을 죽이겠는가?”하니 화흠이 성남 목소리로 말하기를 천하의 사람 모두가 폐하에게 임금의 복이 없어 사방에서 큰 혼란이 일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위왕이 조정에 있지 않았더라면 폐하를 죽이려는 자가 어찌 단지 한 사람뿐이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오히려 은혜를 갚는 근본을 알지 못하시니 곧바로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함께 폐하를 치게 하려 하십니까?”했다.

 

帝大驚拂袖而起王朗以目視華歆歆縱步向前扯住龍袍變色而言曰:「許與不許早發一言!」帝戰慄不能答曹洪曹休拔劍大呼曰:「符寶郎何在?」祖弼應聲出曰:「符寶郎在此!」曹洪索要玉璽祖弼叱曰:「玉璽乃天子之寶安得擅索!」洪喝令武士推出斬之祖弼大罵不絕口而死後人有詩讚曰姦宄專權漢室亡詐稱禪位效虞唐滿朝百辟皆尊魏僅見忠臣符寶郎

헌제가 크게 놀라 소매를 떨치고 일어났다. 왕랑이 화흠에게 눈짓하였다. 화흠이 큰 걸음으로 앞을 향해 나가 용포를 붙잡고 얼굴색을 바꾸며 말하기를 허락과 허락하지 않음 중에 빨리 한 가지를 말하시오!”하니 헌제가 두려워하여 대답하지 못하였다. 조홍과 조휴가 검을 뽑아 크게 외쳐 말하기를 부보랑은 어디에 있는가?”하니 조필응이 대답하며 나와 말하기를 부보랑이 여기에 있소!”했다. 조홍은 옥쇄를 찾을 것을 요구하였다. 조필이 꾸짖어 말하기를 옥쇄는 곧 천자의 보배인데 어찌 멋대로 찾을 수 있겠소!”하니 조홍이 무사로 하여금 끌고 나가 베어 죽이라고 크게 소리쳤다. 조필은 크게 욕하기를 끊이지 않고 하며 죽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기려 말하기를 간사한 도둑이 권력을 오로지 하여 한나라가 망하고, 선위를 사칭하여 우당을 본받으라 한다. 조정에 가득한 관리들은 모두 위를 높이는데, 충신 부보랑을 보았을 뿐이다.”했다.

 

帝顫慄不已只見階下披甲持戈數百餘人皆是魏兵帝泣謂群臣曰:「朕願將天下禪於魏王幸留殘喘以終天年。」賈詡曰:「魏王必不負陛下陛下可急降詔以安眾心。」帝只得令陳群草禪國之詔令華歆齎捧詔璽引百官直至魏王宮獻納曹丕大喜開讀詔曰:  

헌제는 두려움에 떨기를 그치지 않았다. 계단 아래 갑옷을 입고 창을 든 수백여 명을 보니 모두 위 병사들이었다. 헌제가 울면서 여러 신하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짐이 장차 천하를 위왕에게 양보하고 다행히도 남은 목숨을 다하는 것으로서 하늘이 준 수명을 마치기를 원한다.”했다. 가후가 말하기를 위왕은 반드시 폐하를 등지지 않을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급히 조서를 내리시는 것으로서 여러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소서.”했다. 헌제가 진군으로 하여금 나라를 양보하는 조서를 쓰게 하고, 화흠으로 하여금 조서와 옥쇄를 받들게 하여 백관을 이끌고 곧바로 위왕궁에 가 바치게 하였다. 조비응 크게 기뻐하였다. 조서를 열어 읽어보니 말하기를

 

朕在位三十二年遭天下蕩覆幸賴祖宗之靈危而復存然今仰瞻天象俯察民心炎精之數既終行運在乎曹氏是以前王既樹神武之蹟今王又光耀明德以應其期歷數昭明信可知矣夫大道之行天下為公唐堯不私於厥子而名播於無窮朕竊慕焉今其追踵堯典禪位於丞相魏王王其毋辭!」

짐이 지위에 있은 지 삼십이 년에 천하가 망하여 뒤집혔는데 다행히 조종의 신령스러움에 의지하여 위태로움에서 다시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하늘의 상을 우러러보고 굽어 백성의 마음을 살펴보니 염정(불기운)의 운수가 이미 다하여 운수를 행함이 조씨에게 있다. 이 때문에 전왕(조조)이 이미 신 같은 위엄의 자취를 세웠고, 지금의 왕 또한 빛나는 밝은 덕으로서 그 기대에 응하였다. 지난 운수가 밝고 분명하니 진실로 알 수 있다. 대저 큰 도의 행함은 천하를 공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요임금은 그 아들을 사사로이 하지 않아 명예가 퍼짐이 무궁하였으니 짐은 가만히 이를 사모하였다. 지금 그 요의 법을 따라 승상 위왕에게 선위한다. ()왕은 사양하지 말라!” 했다.

 

曹丕聽畢便欲受詔司馬懿諫曰:「不可雖然詔璽已至殿下宜且上表謙辭以絕天下之謗。」丕從之令王朗作表自稱德薄請別求大賢以嗣天位帝覽表心甚驚疑謂群臣曰:「魏王謙遜如之奈何?」華歆曰:「昔魏武王受王爵之時三辭而詔不許然後受之今陛下可再降詔魏王自當允從。」

조비는 듣기를 마치고 곧 조서를 받으려 하였다. 사마의가 간하여 말하기를 안 됩니다. 비록 조서와 옥쇄가 이르렀으나 전하(조비)께서는 마땅히 또한 표를 올려 겸손히 사양하는 것으로서 천하의 비방을 끊어야 합니다.”했다. 조비가 그것을 따라 왕랑에게 표를 짓게 하였는데 스스로 덕이 적다하면서 다로 크게 어진 이를 구하여 천위(천자의 지위)를 잇게 할 것을 청하였다, 헌제가 표를 살펴보고 마음속으로 매우 놀라고 의심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위왕이 겸손하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니 화흠이 말하기를 옛날 위 무왕(조조)은 왕의 작위를 받을 때 세 번 사양하여도 조서로 허락지 않은 후에 그것을 받았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다시 조서를 내리시면 위왕께서는 스스로 마땅히 허락하고 따를 것입니다.”했다.

 

帝不得已又令桓楷草詔遣高廟使張音持節奉璽至魏王宮曹丕開讀詔曰

헌제가 부득이 또 환해로 하여금 조서를 짓게하고 고묘사 장음을 보내는데 부절을 지니고 옥쇄를 받들어 위왕궁에 이르게 하였다. 조비는 조서를 열어 읽고 말하기를

 

咨爾魏王上書謙讓朕竊為漢道陵遲為日已久幸賴武王操德膺符運奮揚神武芟除兇暴清定區夏今王丕纘承前緒至德光昭聲教被四海仁風扇八區天之曆數實在爾躬昔虞舜有大功二十而放勳禪以天下大禹有疏導之績而重華禪以帝位漢承堯運有傳聖之義加順靈祇紹天明命使行御丈大夫張音持節奉皇帝璽綬王其受之!」

! 너 위왕이 글을 올려 겸손히 사양하였다. 짐은 속으로 한나라의 도가 쇠퇴한지 날이 오래되었다고 여겼는데 다행히 무왕 조조는 가슴에 덕을 품어 운수에 부합하며, 신 같은 위엄을 떨쳐 흉포한 이를 베어 제거하니 중국이 맑게 안정시켰다. 지금 왕 조비는 앞의 전통을 이어 지극한 덕은 빛나고 환하며, 명성과 교화가 사해에 입혀졌고, 어진 기풍은 온 천하에 성대하였다. 하늘의 정해진 뜻이 너 자신에게 있다. 옛날 우순(순임금)은 대공이 있은 지 이십년이 지나 방훈(요임금)이 천하를 선위하였고, 대우(우임금)는 물을 터 인도한 공적(천하의 수로를 정비한)이 있어 중화가 천자의 지위를 양보하였다. 한은 요임금의 운수를 계승하였고 성인이 전한 뜻이 있었다. (여기에)천지의 신에 순응하고 하늘의 밝은 명이 더하였으니 사신으로 가는 어사대부 장음에게 부절을 지니고 황제의 옥쇄를 받들게 하였다. (조비)는 그것을 받으라!”했다.

 

曹丕接詔欣喜謂賈詡曰:「雖二次有詔然終恐天下後世不免篡竊之名也。」詡曰:「此事極易可再命張音齎回璽綬卻教華歆令漢帝築一臺受禪臺』;擇吉日良辰集大小公卿盡到臺下令天子親奉璽綬禪天下與王便可以釋群疑而絕眾議矣。」

조비는 조서를 접하고 기뻐하며 가후에게 일러 말하기를 비록 두 차례 조서가 있었으나 끝내 천하 후세에 빼앗고 훔쳤다는 이름을 면치 못할까 두렵습니다.”했다. 가후가 말하기를 이 일은 지극히 쉽습니다. 다시 장음으로 하여금 옥쇄를 가지고 돌아가게 하시고, 화흠을 시켜 한 나라 헌제로 하여금 한 대를 쌓게하고 이름을 수선대라 합니다. 길일과 좋은 때를 택하여 대소 공경을 모아 모두 대 아래 이르게 하고 천자(헌제)로 하여금 친히 옥쇄를 받들게 하여 천하를 양보하여 왕에게 주게 하면 곧 여러 의심은 풀리고 여러 의논들은 끊어지게 될 것입니다.”했다.

 

丕大喜即令張音捧回璽綬仍作表謙辭音回奏獻帝帝問群臣曰:「魏王又讓其意若何?」華歆奏曰:「陛下可築一臺名曰受禪臺』,聚集公卿庶民明白禪位則陛下子子孫孫必蒙魏恩矣。」帝從之乃遣太常院官卜地於繁陽築起三層高臺擇於十月庚午日寅時禪讓

조비는 크게 기뻐하며 곧 장음으로 하여금 옥쇄를 받들고 돌아가게 하고 표를 지어 겸손히 사양하였다. 장음이 돌아 가 헌제에게 아뢰었다. 헌제가 여러 신하들에게 물어 말하기를 위왕이 또 사양하니 그 뜻이 무엇인가?”하니 화흠이 아뢰어 말하기를 폐하께서 하나의 대를 쌓고 수선대라 이름하고 공경과 백성들을 모아 천자의 자리를 양보함을 분명하게 하시면 곧 폐하의 자자손손이 반드시 위왕(조비)의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했다. 헌제가 그것을 따라 곧 태상원 관원을 보내 번양에 땅을 점쳐서 삼층의 높은 대를 쌓아 일으키고 십월 오일 인시를 택하여 선양하기로 했다.

 

至期獻帝請魏王曹丕登臺受禪臺下集大小官僚四百餘員御林虎賁禁軍三十餘萬帝親捧玉璽奉曹丕丕受之臺下群臣跪聽冊曰

기일에 이르러 헌제는 위왕 조비에게 대에 올라 선양을 받을 것을 청하였다. 대 아래에는 대소 관료 사백여명과 어림호분금군 삼십여 만을 모여 있었다. 헌제가 친히 옥쇄를 들어 조비에게 받들게 하였다. 조비가 그것을 받았다. 대 아래의 여러 신하들이 무릎을 꿇고 책문을 들었는데 (책문에) 말하기를

 

咨爾魏王昔者唐堯禪位於虞舜舜亦以命禹天命不於常惟歸有德漢道陵遲世失其序降及朕躬大亂滋昏群凶恣逆宇內顛覆賴武王神武拯玆難於四方惟清區夏以保綏我宗廟豈予一人獲乂俾九服實受其賜今王欽承前緒光於乃德文武之大業昭爾考之弘烈皇靈降瑞人神告徵誕惟亮采師錫朕命僉曰爾度克協於虞舜用率我唐典敬遜爾位於戲天之歷數在爾躬君其祗順大禮饗萬國以肅承天命!」

! 너 위왕아! 옛날 요임금은 천자의 지위를 우순(순임금)에게 양보하였고, 순임금이 또한 우임금에게 명하였다. 천명은 항상하지 않아 덕이 있는 이에게 돌아간다. 한나라의 도가 쇠퇴하고, 세상은 그 질서를 잃었고, 내 자신에 이르러 크게 혼란하고 더욱 어두워지니 여러 흉한 무리들이 방자히 거슬러 천하가 자빠지고 엎어졌다. 무왕의 신 같은 위엄에 기대어 사방에 이 어려움을 구원하여 중국을 맑게 하는 것으로서 우리 종묘를 보존하여 편안히 하였다. 어찌 나 한 사람이 다스림을 얻어 구복(천하)으로 하여금 진실로 그 내림을 받았다. 지금 왕(조비)은 공경히 앞의 전통을 이어 너의 덕을 빛나게 하고 문무의 대업을 넓혀 너의 아버지의 위대한 공을 빛나게 하라. 황령이 상서를 내리고, 사람과 신이 징조를 말하니 크게 정사를 보좌하는 이들은 짐이 내리는 명을 본받으라. 모두들 말하기를 네가 우순보다 적합하다 헤아리고 내가 요 임금의 법을 써서 삼가 너에게 자리를 양보하라 한다. ! 하늘의 운수가 너의 몸에 달려 있으니 그대들은 공경히 큰 예를 따라 만국을 향유하는 것으로서 엄숙히 천명을 계승하라!”했다.

 

讀冊已畢魏王曹丕即受禪位大禮登了帝位賈詡引大小官僚朝於臺下改延康元年為黃初元年國號大魏丕即傳旨大赦天下諡父曹操為太祖武皇帝華歆奏曰:「『天無二日民無二王』。漢帝既禪天下理宜退就藩服乞降明旨安置劉氏於何地?」

책문 읽기를 마친 후 위왕 조비는 천자 지위를 양보 받는 대례에 나아가 황제 위에 올랐다. 가후가 대소 관료를 이끌고 대 아래에서 조회하였다. 연호를 고쳐 연강원년을 황초원년으로 하고, 국호를 대위라 하였다. 조비가 교지를 내리고 천하에 (죄수를)크게 풀어주었다. 아버지 조조의 시호를 태조 무황제라 하였다. 화흠이 아뢰어 말하기를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백성에게는 두 임금이 없다.’합니다. 한나라 헌제가 이미 천하를 양보하였으니 이치상 마땅히 물러나 번복(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변경지역)에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 어느 땅에 안치해야 할지 밝은 명을 내려 줄 것을 청합니다.”했다.

 

言訖扶獻帝跪於臺下聽旨丕降旨封帝為山陽公即日便行華歆按劍指帝厲聲而言曰:「立一帝廢一帝古之常道今上仁慈不忍加害封汝為山陽公今日便行非宣召不許入朝!」獻帝含淚拜謝上馬而去臺下軍民人等見之傷感不已丕謂群臣曰:「禹之事朕知之矣!」群臣皆呼萬歲後人觀此受禪臺有詩歎曰兩漢經營事頗難一朝失卻舊江山黃初欲學唐虞事司馬將來作樣看

말을 마치고 헌제를 부축하여 대에 꿇어 황제의 명을 받게 하였다. 조비는 명을 내려 헌제를 봉하여 산양공으로 삼고 그날 곧 가게 하였다. 화흠은 검을 어루만지고 헌제를 가리키며 성안 소리로 말하기를 한 황제를 세우면 한 황제를 폐하는 것이 옛날의 떳떳한 도이다! 지금 황제가 인자하여 차마 해를 가하지 못하고 너를 봉하여 산양공으로 삼았다. 오늘 곧 떠나 임금이 부르지 않으면 조정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했다. 헌제가 눈물을 머금고 절라며 감사하고 말에 올라 떠났다. 대 아래의 군대, 백성들이 그것을 보고 애처로워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조비가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순과 우의 일을 짐이 그것을 알고 있다.”하니 여러 신하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후세 사람들이 이 수선대를 보고 시를 지어 탐식하여 말하기를 양한(서한과 동한/전한, 후한)의 일을 경영하는 것이 자못 어려웠는데, 하루아침에 옛 강산을 잃었다. 황초(조비의 연호)가 요임금, 순임금의 일을 배우려 하였으나 사마씨가 장차 모양을 보고 있었다.” 했다.

 

百官請曹丕答謝天地丕方下拜忽然臺前捲起一陣怪風飛砂走石急如驟雨對面不見臺上火燭盡皆吹滅丕驚倒於臺上百官急救下臺半晌方醒侍臣扶入宮中數日不能設朝後病稍可方出殿受群臣朝賀封華歆為司徒王朗為司空大小官僚一一陞賞丕疾未痊疑許昌宮室多妖乃自許昌幸洛陽大建宮室

백관이 조비에게 천지에 보답할 것을 청하였다. 조비가 비로소 몸을 굽혀 절하는데 홀연히 대 앞에서 일진의 괴이한 바람이 돌며 일어나 모래가 날고 돌이 구르는데 급하기가 세차게 쏟아지는 소나기와 같아 얼굴을 대하여도 보이지 않고 대 위의 촛불이 모두 꺼졌다. 조비가 놀라 대 위에서 엎어지니 백관들이 급히 구하여 대를 내려갔는데 한 참 후에 비로소 깨어났다. 모시는 신하들이 부축하여 궁 안으로 들어갔는데 몇 일 동안 조회를 열지 못하였다. 병이 점점 나아진 후에 비로소 전(전각)에 나와 여러 신하들의 축하를 받았다. 화흠을 봉하여 사도를 삼고, 왕랑을 사공으로 삼았다. 대소 관료들도 일일이 승진시키고 상을 주었다. 조비는 병이 낮지 않자 허창의 궁실에 요사한 기운이 많다고 의심하여 이에 허창으로부터 낙양에 가 크게 궁실을 세웠다.

 

早有人到成都報說曹丕自立為大魏皇帝於洛陽蓋造宮殿且傳言漢帝已遇害漢中王聞知痛哭終日下令百官挂孝遙望設祭上尊諡曰孝愍皇帝」。玄德因此憂慮致染成疾不能理事政務皆託與孔明孔明與太傅許靖光祿大夫譙周商議言天下不可一日無君欲尊漢中王為帝譙周曰:「近有祥風慶雲之瑞成都西北角有黃氣數十丈沖霄而起帝星見於畢昴之分煌煌如月此正應漢中王當即帝位以繼漢統更復何疑?」

일찍이 어떤 사람이 성도에 이르러 조비가 스스로 즉위하여 대위 황제가 되었고, 낙양에 궁전을 세웠다는 것을 보고하고, 또 한나라 황제가 이미 해를 입었다는 말을 전하였다. 한중왕(유현덕)이 듣고 종일토록 통곡하고, 백관들에게 상복을 입도록 명령하고 멀리 바라보고 제사를 지내고 시호를 올려 효민황제라 했다. 유현덕이 이로 인하여 근심하다 병이 들어 일을 다스리지 못하자 정무를 모두 제갈공명에게 맡겼다. 제갈공명은 태부 허정, 광록대부 초주와 상의하여 천하는 하루도 임금이 없어서는 안 되니 한중왕(유현덕)을 높여 황제라 하려 했다. 초주가 말하기를 근래에 상서로운 바람과 경사스러운 구름의 상서로움이 있었고, 성도 서북쪽 모퉁이에 누른 기운이 수 십장 하늘로 치솟아 일어나는 일이 있었고, 제성(천자를 상징하는 별)이 필성, 위성, 묘성의 자리에 보였는데 밝기가 달과 같았습니다. 이는 한중왕(유현덕)이 마땅히 황제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으로서 한나라의 전통을 이음에 바로 응하는 것입니다. 다시 무엇을 의심하십니까?”했다.

 

於是孔明與許靖引大小官僚上表請漢中王即皇帝位漢中王覽表大驚曰卿等欲陷孤為不忠不義之人耶?」孔明奏曰:「非也曹丕篡漢自立主上乃漢室苗裔理合繼統以延漢祀。」漢中王勃然變色曰:「孤豈效逆賊所為!」拂袖而起入於後宮眾官皆散

이에 제갈공명이 허정과 대소 관료를 이끌고 표를 올려 한중왕(유현덕)이 황제의 자리에 나아갈 것을 청하였다. 한중왕(유현덕)이 표를 보고는 크게 놀라 말하기를 경들은 나를 불충, 불의한 사람이 되는 것에 빠트리려 하는가?”하니 제갈공명이 아뢰어 말하기를 아닙니다. 조비가 한을 찬탈하여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주상(유현덕)께서는 곧 한나라 황실의 후예이니 이치 상 전통을 잇는 것으로서 한나라의 제사를 잇는 것이 합당합니다.”했다. 한중왕(유현덕) 갑자기 얼굴색이 변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어찌 역적이 하는 바를 본받겠는가!”하고는 소매를 떨치고 일어나 후궁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러 관리들이 모두 흩어졌다.

 

三日後孔明又引眾官入朝請漢中王出眾皆拜伏於前許靖奏曰:「今漢天子已被曹丕所弒主上不即帝位興師討逆不得為忠義也今天下無不欲王上為君孝愍皇帝雪恨若不從臣等所議是失民望矣。」漢中王曰:「孤雖是景帝之孫並未有德澤以布於民今一旦自立為帝與篡竊何異?」孔明苦勸數次漢中王堅執不從孔明乃設一計謂眾官曰:「如此如此。」於是孔明託病不出

삼일 후 제갈공명이 또 뭇 관리들을 이끌고 조정에 들어 가 한중왕(유현덕)에게 나올 것을 청하였다. 무리들이 모두 앞에 절하며 엎드렸다. 허정이 아뢰어 말하기를 지금 한나라의 천자(황제)가 이미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였는데 주상(유현덕)께서 황제의 지위에 올라 군대를 일으켜 역적을 토벌하지 않으신다면 충의라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천하는 왕상(유현덕)께서 임금이 되어 효민황제의 한을 갚으려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만약 신들이 의논한 바를 따르지 않으신다면 이는 백성들의 바람을 잃는 것입니다.”했다. 한중왕(유현덕)이 말하기를 내가 비록 경제의 후손이기는 하나 아울러 덕택을 백성에게 펴지 못하였는데 지금 하루아침에 스스로 즉위하여 황제가 된다면 빼앗고 훔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했다. 제갈공명이 힘서 권하기를 여러 번하였으나 한중왕(유현덕)은 굳게 잡고 따르지 않았다. 제갈공명이 이에 한 계책을 베풀어 여러 관리들에게 말하기를 이렇게 저렇게 하자.”하고는 이에 제갈공명은 병을 핑계대고 나오지 않았다.

 

漢中王聞孔明病篤親到府中直入臥榻邊問曰:「軍師所感何疾?」孔明答曰:「憂心如焚命不久矣。」漢中王曰:「軍師所憂何事?」連問數次孔明只推病重瞑目不答漢中王再三請問孔明喟然歎曰:「臣自出茅廬得遇大王相隨至今言聽計從今幸大王有兩川之地不負臣夙昔之言目今曹丕篡位漢祀將斬文武官僚咸欲奉大王為帝滅魏興劉共圖功名不想大王堅執不肯眾官皆有怨心不久必盡散矣若文武皆散魏來攻兩川難保臣安得不憂乎?」漢中王曰:「吾非推阻恐天下人議論耳。」孔明曰:「聖人云:『名不正則言不順今大王名正言順有何可議豈不聞天與弗取反受其咎』?」漢中王曰:「待軍師病可行之未遲。」

한중왕(유현덕)은 제갈공명의 병이 심하다는 것을 듣고 직접 부중에 이르러 곧 바로 누워있는 침상 곁에 들어 가 물어 말하기를 군사께서는 무슨 병에 걸리셨습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답하여 말하기를 근심하는 마음이 불길과 같아 목숨이 오래지 않을 것입니다.”하니 한중왕이 말하기를 군사께서 무슨 일로 근심하십니까?”하며 연이어 묻기를 여러 차례 하였으나 제갈공명은 다만 병이 중함을 핑계로 눈을 감고 대답하지 않았다. 한중왕(유현덕)이 두 번 세 번 물었다. 제갈공명이 위연히 탄식하여 말하기를 신이 띠집을 나와 대왕(유현덕)을 만나고부터 서로 따라 지금에 이르기까지 (제갈공명의)말을 듣고 계책을 따랐습니다. 지금 다행히 대왕(유현덕)께서 양천(동천과 서천)의 땅을 소유하시고도 신이 지난날에 했던 말을 등지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조비가 황제의 자리를 빼앗아 한나라의 제사는 끊어졌고, 문무관료들이 모두 대왕을 받들어 황제로 삼아 위를 없애고 유씨를 흥기시켜 함께 공명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생각지 않게 대왕(유현덕)께서 굳은 고집으로 기꺼이 하지 않으시니 뭇 관리들이 모두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으니 오래지 않아 반드시 모두 흩어질 것입니다. 만약 문무관리들이 모두 흩어지고, 오와 위가 장차 공격해 온다면 양천(동천과 서천)은 보존하기 어려울 것이니 신이 어찌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했다. 한중왕(유현덕)이 말하기를 내가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천하 사람들의 의논(여론)을 주려워 했을 뿐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성인이 말하기를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곧 말이 순하지 한다.’하셨습니다. 지금 대왕(유현덕)께서는 명분이 바르고 말이 순하니 무슨 논의할만 한 것이 있겠습니까? 어찌 하늘이 주는 것을 취하지 않고 도리어 그 허물(재앙)을 받는다.’는 말을 듣지 못하셨습니까?”했다. 한중왕(유현덕)이 말하기를 군사의 병이 나아지는 것을 기다렸다가 (황제의 지위 즉위하는 것) 행하여도 늦지 않습니다.”했다.

 

孔明聽罷從榻上躍然而起將屏風一擊外面文武眾官皆入拜伏於地曰:「主上既允便請擇日以行大禮。」漢中王視之乃是太傅許靖安漢將軍糜竺青衣侯尚舉陽泉侯劉豹別駕趙祚治中楊洪議曹杜瓊從事張爽太常卿賴忠光祿卿黃權祭酒何曾學士尹默司業譙周大司馬殷純偏將軍張裔少府王謀昭文博士伊籍從事郎秦宓等眾也

제갈공명이 듣기를 마치고 침상 위로부터 뛸 듯이 일어나 병풍을 한 번 치니 밖으로부터 묵 관료들이 모두 들어 와 절하며 땅에 엎드려 말하기를 주상(유현덕)께서 이미 허락하셨으니 곧 날을 가려 대례(즉위의식)를 행할 것을 청합니다.”했다. 한중왕(유현덕)이 그들을 보니 곧 태부 허정, 안한장군 미축, 정의후 상거, 양천후 유표, 별가 조조, 치중 양홍, 의조 두찬, 종사 장상, 태상경 뢰충, 광록경 황권, 제주 하증, 학사 윤묵, 사업 초주, 대사마 은순, 편장군 장예, 소부 왕모, 소문박사 이적, 조사랑 진복 등의 무리였다.

 

漢中王驚曰:「陷孤於不義皆卿等也。」孔明曰:「王上既允所請便可築臺擇吉恭行大禮。」即時送漢中王還宮一面令博士許慈諫議郎孟光掌禮築臺於成都武擔之南諸事齊備多官整設鑾駕迎請漢中王登壇致祭譙周在壇上高聲朗讀祭文曰

한중왕(유현덕)이 놀라 말하기를 나를 불의에 빠트리는 것은 모두 경들이다.”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왕상(유현덕)께서 청한 바를 허락하셨으니 곧 대를 쌓고 길일을 가려 공손히 대례를 행해야 합니다.”했다. 즉시 한중왕(유현덕)을 보내 궁에 돌아가게 하는 한편으로 박사 허자, 간의랑 맹광으로 하여금 에를 담당하게 하고, 성도 무담 남쪽에 대를 쌓게 하였다. 여러 일들을 가지런히 갖추어지자 많은 관리들이 천자의 수레를 정돈하고 준비하여 한중왕(유현덕)아 단에 올라 제를 지낼 것을 청하였다. 초주는 단 위에서 큰 소리로 제문을 낭랑하게 읽었는데 제문에

 

惟建安二十六年四月丙午朔越十二日丁巳皇帝備敢昭告於皇天后土漢有天下歷數無疆曩者王莽篡盜光武皇帝震怒致誅社稷復存今曹操阻兵殘忍戮殺主后罪惡滔天操子丕載肆凶逆竊據神器群下將士以為漢祀墮廢備宜延之嗣武二祖躬行天罰備懼無德忝帝位詢於庶民外及遐荒君長僉曰天命不可以不答祖業不可以久替四海不可以無主率土式望在備一人備畏天明命又懼高光之業將墜於地謹擇吉日登壇祭告受皇帝璽綬撫臨四方惟神饗祚漢家永綏歷服!」

건안 이십 육년 사월 병오 초하루에서 이십일이 지난 정사 일에 황제 비(유비)는 감히 황천과 후토(천지신명)에 밝게 알려 말합니다. 한나라가 천하를 소유한 역수가 끝이 없습니다. 지난 날 왕망이 빼앗고 훔쳤던 것을 광무황제가 진노하여 주살하여 사직이 다시 보존되었습니다. 지금 조조의 무리들은 잔인하게 황제와 황후를 죽였으니 죄악이 하늘에 치솟았고, 조조의 아들 조비는 방자하게 흉역을 꾸며 신기를 훔쳐 차지하였습니다. 여러 아래 장사들은 한나라의 제사가 떨어져 없어졌기 때문에 제가(유현덕) 마땅히 그것을 이어 무 이조(고조와 광무제)를 계승하여 몸소 천벌을 행하려 합니다. 저는(유현덕) 덕이 없어 황제 자리를 더럽힐까 두려워하여 백성과 밖으로 멀리 변경의 군장에 이르기까지 물었더니 모두 말하기를 천명에 답하지 않을 수 없고 조상의 기업은 오래 버려둘 수 없으며, 사해(천하)에는 임금이 없을 수 없습니다.’했습니다. 나라가 바라는 것이 저(유현덕) 한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저는(유현덕) 하늘의 밝은 명을 두려워하고, 또 고조와 광무제의 기업이 장차 땅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삼가 길일을 가려 단에 올라 제사하고 고하고, 황제의 옥쇄를 받아 사방에 군림하여 모든 백성을 어루만져 잘 돌보아 기르겠습니다. 신이시여 흠향하시고 한나라에 복을 내려 길이 황제 위를 편안하게 하소서!”했다.

 

讀罷祭文孔明率眾官恭上玉璽漢中王受了捧於壇上再三推讓曰:「備無才德請擇有才德者受之。」孔明奏曰:「王上平定四海功德昭於天下況是大漢宗派宜即正位已祭告天神復何讓焉?」文武各官皆呼萬歲拜舞禮畢改元章武元年立妃吳氏為皇后長子劉禪為太子封次子劉永為魯王劉理為梁王封諸葛亮為丞相許靖為司徒大小官僚一一陞賞大赦天下兩川軍民無不欣躍次日設朝文武官僚拜畢列為兩班先主降詔曰:「朕自桃園與關張結義誓同生死不幸二弟雲長被東吳孫權所害若不報讎是負盟也朕欲起傾國之兵攻伐東吳生擒逆賊以雪此恨!」言未畢班內一人拜伏於階下諫曰:「不可。」先主視之乃虎威將軍趙雲也正是君王未及行天討臣下曾聞進直言未知子龍所諫若何且看下文分解

제문 읽기를 마치자 제갈공명이 여러 관리들을 통솔하고 공경히 옥쇄를 올렸다. 한중왕(유현덕)이 받은 후 단 위에서 받들고 두 번 세 번 사양하며 말하기를 나는 재능과 덕이 없으니 재능과 덕이 있는 자를 가려 받게 할 것을 청한다.”했다. 제갈공명이 아뢰어 말하기를 왕상(유현덕)께서는 사해(천하)를 평정하셨고, 공덕은 천하를 밝게 하였으며, 하물며 대 한나라의 종파(종친)이시니 마땅히 바른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이미 제사로 천신에게 알렸으니 어찌 다시 사양하십니까?”하였고, 문무 각 관료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절하며 춤추는 예를 마치고 연호를 고쳐 장무 원년이라 하였다. 비 오씨를 세워 황후라 하고, 맏아들 유선을 태자로 삼았다. 둘째 아들 유영을 봉해 노왕으로 삼고, 유리는 양왕으로 삼았다. 제갈공명을 봉하여 승상을 삼고, 허정을 사도로 삼았다. 대소 관료들에게도 일일이 승진시키고 상을 주었다. 천하에 죄지은 자들을 크게 풀어주었다. 양천(동천과 서천)의 군사와 백성들이 기뻐 뛰지 않는 자가 없었다. 다음날 조회를 열어 문무관료들이 절하기를 마치고 열을 지어 양 쪽에 자리하였다. 선주(유현덕)가 조서를 내려 말하기를 짐이 도원에서 관운장, 장비와 결의하고 생사를 같이 하기로 맹세 하였다. 불행히도 아우 관운장이 동오 손권에게 잡혀 해를 입었다. 만약 원수를 갚지 않는다면 이는 맹세를 저버리는 것이다. 짐은 나라를 기우리는 군대를 일으켜 동오를 쳐서 역적을 사로잡는 것으로서 이 한을 씻으려 한다.”하는 말을 마치지도 않았는데 열 안의 한 사람이 계단 아래에 절하고 엎드려 간해 말하기를 불가합니다.”했다. 선주(유현덕)가 그를 보니 곧 호위장군 조운(조자룡)이었다. 바로 이러하다. 군왕(임금)이 악인 토벌을 행함에 미치지 않았는데도 신하가 일찍 듣고 직언을 올리는구나! 조자룡이 어떻게 간할지 알지 못하겠구나.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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