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六回:孔明揮淚斬馬謖,周魴斷髮賺曹休
제96회 제갈공명은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목 베고, 주방은 머리털을 잘라 조휴를 속이다.
卻說獻計者,乃尚書孫資也 曹叡問曰:「卿有何妙計?」資奏曰:「昔太祖武皇帝收張魯時,危而後濟;嘗對群臣曰:『南鄭之地,真為天獄。』中斜谷道為五百里石穴,非用武之地。今欲盡起天下之兵伐蜀,則東吳又將入寇。不如以現在之兵,分命大將據守險要,養精蓄銳。不過數年,中國日盛,吳﹑蜀二國,必自相殘害,那時圖之,豈非勝算?乞陛下裁之。」叡乃問司馬懿曰:「此論若何?」懿奏曰:「孫尚書所言極當。」叡從之,命司馬懿分撥諸將守把險要,留郭准﹑張郃守長安,大賞三車,駕回洛陽。
각설하고 계책을 바친 자는 곧 상서 손자였다. 조예가 물어 말하기를 “경은 무슨 계책이 있는가?”하니 손자가 아뢰어 말하기를 “옛날 태조 무황제께서 장노를 거두실 때 위태로운 후에 이루셨습니다. 일찍이 여러 신하에 대하여 말씀하기를 ‘남정의 땅은 참으로 천옥이다.’하셨습니다. 사곡을 지나는 길은 오백리가 석혈(동굴)로 되어 있어 군대를 쓸 땅이 아닙니다. 지금 천하의 구대를 모두 일으켜 촉을 치려 하신다면 곧 동오가 또 장차 들어와 도적질 할 것입니다. 현재의 군대를 나누어 대장으로 하여금 험한 요충지를 차지하고 지키게 하고, 정기를 키우고 예기를 모으는 것이 낫습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중국은 나날이 왕성해지고, 오와 촉 두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서로 해칠 것이니 이때 그들을 도모한다면 어찌 승산이 없겠습니까? 폐하께서는 헤아리십시오.”했다. 조예가 이에 사마의에게 물어 말하기를 “이 논의가 어떠한가?”하니 사마의가 아뢰어 말하기를 “손 상서가 말한 것은 지극히 마땅합니다.”하니 조예가 그 말을 따라 사마의에게 명하여 여러 장수를 나누어 뽑아 험한 요충지를 지키게 하고, 곽회와 장합을 남겨 장안을 지키게 하고 크게 삼군에게 상을 준 후 낙양으로 돌아갔다.
卻說孔明回到漢中,計點軍士,只少趙雲﹑鄧芝,心中甚憂;乃令關興﹑張苞,各引一軍接應。二人正欲起身,忽報趙雲﹑鄧芝到來,並不曾折一人一騎;輜重等器,亦無遺失。孔明大喜,親引諸將出迎。趙雲慌忙下馬伏地曰:「敗軍之將,何勞丞相遠接?孔明急扶起,執手而言曰:「是吾不識賢愚,以致如此!各處兵將敗損,惟子龍不折一人一騎,何也?」鄧芝告曰:「某引兵先行,子龍獨自斷後,斬將立功,敵人驚怕;因此軍資什物,不曾遺失。」孔明曰:「真江(將)軍也!」遂取金五十斤以贈趙雲;又取絹一萬疋賞雲部卒。雲辭曰:「三軍無尺寸之功,某等俱各有罪,若反受賞,乃丞相賞罰不明也。且請寄庫,候今冬賜與諸軍未遲。」孔明歎曰:「先帝在日,常稱子龍之德,今果如此!」乃倍加欽敬。
각설하고 제갈공명이 한중에 이르러 군사를 헤아리고 점검하였는데 조운(조자룡), 등지가 없자 마음속으로 매우 걱정하여 곧 관흥과 장포로 하여금 각각 일군을 이끌고 상황에 맞게 대응하게 하였다. 두 사람이 몸을 일으키려 하는데 조운(조자룡)과 등지가 왔는데 모두 한 사람, 한 말도 죽지 않았고, 보급품과 기물 등도 또한 잃은 것이 없었다. 제갈공명이 크게 기뻐하며 직접 여러 장수를 이끌고 나가 맞이하였다. 조운(조자룡)이 황망히 말에서 내려 당에 엎드려 말하기를 “패함 군대의 장수인데 어찌 수고롭게 승상께서 멀리(나와) 영접하십니까?”했다. 제갈공명이 급히 부축하여 일으키고 손을 잡으며 말하기를 “이는 내가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같음에 이르렀습니다. 각 곳의 군대와 장수들이 패하고 손상되었는데 오직 자룡(조자룡)만은 한 사람, 한 마리 말고 죽이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했다. 등지가 알려 말하기를 “제가 군대를 이끌고 먼저 갔고, 자룡(조자룡)이 홀로 직접 뒤를 끊고 장수를 베어 공을 세우니 적이 놀라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군자와 기물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참으로 장군답구려!”하고는 마침내 금 오십 근을 가져다 조운(조자룡)에게 주고, 또 비단 일만 필을 가져다 조운(조자룡)의 부하 병졸에게 상주었다. 조운(조자룡)이 사양하며 말하기를 “삼군이 한자 한치의 공도 없는데 저희들이 모두 각각 죄가 있는데 만약 도리어 상을 받으면 곧 승상께서 상과 벌이 밝지 못하다고 할 것입니다. 또 창고에 두었다가 금년 겨울을 기다려 여러 군사들에게 내여 주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탄복하며 말하기를 “선제께서 살아 계실 때 항상 자룡(조자룡)의 덕을 칭찬하셨는데 지금 과연 이 같다.”하고는 이에 공경하기를 배로 하였다.
忽報馬謖、王平、魏延、高翔至,孔明先喚王平入帳責之曰:「吾令汝與馬謖同守街亭,汝何不諫之,致使失事?」平曰:「某再三相勸,要在當道築土城把守。參軍大怒不從,某因此自引五千兵離山十里下寨。魏兵驟至,把山四面圍合,某引兵衝殺十餘次,皆不能入。次日土崩瓦解,降者無數。某孤軍難立,故投魏文長求救。半途又被魏兵困在山谷之中,某奮死殺出。比及歸寨,已被魏兵占了。及投列柳城時,路逢高翔,遂分兵三路去劫魏寨,指望克復街亭。因見街亭並無伏路軍,以此心疑。登高望之,只見魏延、高翔被魏兵圍住,某即殺入重圍,救出二將,就同參軍併在一處。某恐失卻陽平關,因此急來回守。非某之不諫也。丞相不信,可問各部將校。」
홀연히 마속, 왕평, 위연, 고상이 이르렀다고 보고하니 제갈공명은 먼저 왕평을 불러 군막에 들어오자 질책하여 말하기를 “내가 너로 하여금 마속과 함께 가정을 지키게 하였는데 너는 어찌하여 그를 간하지 않아 일이 잘못되게 함에 이르게 하였는가?”했다. 왕평이 말하기를 “제가 두 번 세 번 중요한 길에 토성을 쌓고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권하였습니다만 참군(마속)이 크게 노하여 따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때문에 스스로 군대를 오천의 군대를 이끌고 산으로부터 십리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웠습니다. 위나라 군대가 달려와 이르러 산의 사방을 포위하였을 때 저는 군대를 이끌고 십여 차례 들이쳐 죽이려 하였으나 모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흙이 무너지고 기와가 깨지듯이 항복하는 자를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제가 외로운 군대로 서기(버티기) 어려웠기 때문에 위문장(위연)에게 들어 가 구원을 청하려 했던 것입니다. 중도에 또 위나라 군대에게 산골짜기 안에서 포위당하여 제가 죽음을 무릅쓰고 뚫고 나왔습니다. 영채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위나라 군대가 (영채를)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열 류 성에 들어가려 할 때 길에서 고상을 만나 마침내 구대를 세 길로 나누어 위나라 영채를 습격하여 가정을 수복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바랐습니다.) 가정에(가정에 가는 길에)는 아울러 길에 숨은 군대가 없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마음으로 의심하였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 가 바라보았는데 다만 위연, 고상이 위나라 군대에게 포위당한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곧 두터운 포위를 뚫고 들어 가 두 장군을 구원해 나와 참군(마속)과 함께 군대를 한 곳에 합쳤습니다. 저는 양평 관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급히 돌아와 지켰습니다. 제가 간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승상께서 믿지 못하시겠다면 각 부대 장교에게 물어보십시오.” 했다.
孔明喝退,又喚馬謖入帳,謖自縛跪於帳前。孔明變色曰:「汝自幼飽讀兵書,熟諳戰法。吾累次叮嚀告戒街亭是吾根本,汝以全家之命,領此重任。汝若早聽王平之言,豈有此禍?今敗軍折將,失地陷城,皆汝之過也!若不明正軍律,何以服眾?汝今犯法,休得怨吾。汝死之後,汝之家小,吾按月給與祿米,汝不必挂心。」叱左右推出斬之。謖泣曰:「丞相視某如子,某以丞相為父。某之死罪,實已難逃,願丞相思舜帝殛鯀用禹之義,某雖死亦無恨於九泉!」言訖大哭。孔明揮淚曰:「吾與汝義同兄弟,汝之子即吾之子也,不必多囑。」
제갈공명이 물러가라 소리치고는 또 마속을 불러 군막에 들어오게 하였다. 마속은 스스로를 묶고 군막 앞에 꿇어앉았다. 제갈공명이 얼굴색을 바꾸며 말하기를 “너는 어려서부터 병서를 많이 읽어 싸우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여러 번 가정은 우리의 근본이라고 신신당부하고 경계할 것을 말하였고, 너는 전 가문의 목숨으로서 이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네가 만약 일찍 왕평의 말을 들었다면 어찌 이런 화가 있었겠는가? 지금 군대는 패하고 장수가 죽었으며 딸을 잃고 성이 함락된 것은 모두 너의 허물이다. 만약 군율을 밝게 바로잡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무리를 복종시킬 수 있겠는가? 너는 지금 법을 범하였으니 나를 원망하지 말라. 네가 죽은 후 너의 가족들은 내가 매달 녹미(녹봉 쌀)를 줄 터이니 너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하고는 좌우에 소리쳐 끌고 나가 목을 베게 했다. 마속이 울며 말하기를 “승상께서 저를 보기를 자식과 같이 여기셨고, 저는 승상을 아버지로 여겼습니다. 저의 죽을죄는 진실로 이미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원하건대 승상께서는 순임금이 곤을 죽이고, 우를 등용한 뜻을 생각해 주시면 저는 비록 죽더라도 또한 구천에서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하는 말을 마치고 크게 곡하였다. 제갈공명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나와 너의 의리는 형제와 같으니 너의 자식은 곧 나의 자식이니 많이 부탁할 필요가 없다.”했다.
左右推出馬謖於轅門之外,將斬。參軍蔣琬自成都至,見武士欲斬馬謖,大驚,高叫留人,入見孔明曰:「昔楚殺得臣而文公喜。今天下未定,而戮智謀之士,豈不可惜乎?」孔明流涕而答曰:「昔孫武所以能制勝於天下者,用法明也。今四方分爭,兵交方始,若須廢法,何以討賊耶?合當斬之。」
좌우가 마속을 원문 밖으로 끌어내어 머리를 베려하였다.. 참군 장완이 성도에서 이르러 무사들이 마속을 목 베려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 크게 외쳐 사람들을 만류하고는 들어가 제갈공명을 만나 말하기를 “옛날 초나라가 장군 득신을 죽이자 진나라 문공이 기뻐하였습니다. 지금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는데 지모가 있는 선비를 죽이는 것이 어찌 애석하지 않겠습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눈물을 흘리며 답해 말하기를 “옛날 손무가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법을 쓰기를 밝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방이 나뉘어 다투고, 군대의 교정이 막 시작하려 하는데 만약 모름지기 법을 폐하고서 무엇을 가지고 적을 토벌하겠습니까? 그를 죽이는 것이 합당합니다.”했다.
須臾,武士獻馬謖首級於階下。孔明大哭不已。蔣琬問曰:「今幼常得罪,既正軍法,丞相何故哭耶?」孔明曰:「吾非為馬謖哭。吾思先帝在白帝城臨危之時曾囑吾曰:『馬謖言過其實,不可大用。』今果應此言,乃深恨己之不明,追思先帝之明,因此痛哭耳!」大小將士,無不流涕。馬謖亡年三十九歲。
잠시 후 무사가 마속의 수급을 계단 아래에서 바쳤다. 제갈공명이 크게 곡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장완이 물어 말하기를 “지금 유상(마속)이 죄를 얻어 이미 군법을 바로잡았는데 승상께서는 무슨 이유로 곡하십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나는 마속을 곡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선제(유현덕)께서 백제성에서 위태로움에 임해 있을 때 일찍이 나에게 부탁하여 말씀하시기를 ‘마속은 말이 그 실제보다 지나치니 크게 써서는 안 됩니다.’하셨는데 지금 과연 이 말이 맞으니 곧 깊이 나의 밝지 못함을 생각하고, 선제(유현덕)의 밝음을 돌이켜 생각하니 이 때문에 통곡하였습니다.”하니 대소의 장사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음이 없었다. 마속이 죽었을 때 나이는 삼십구 세였다..
時建興六年夏五月也。後人有詩曰:失守街亭罪不輕,堪嗟馬謖枉談兵。轅門斬首嚴軍法,拭淚猶思先帝明。
때는 건흥 육 년 여름 오월이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말하기를 “가정을 지키지 못한 죄 가볍지 않다. 아 안타깝구나! 마속은 말로만 병법을 논하였구나. 원문에서 머리를 베어 군법을 엄하게 하고 눈물 흘리며 선제의 밝음을 생각하는구나.”했다.
卻說孔明斬了馬謖,將首級遍示各營已畢,用線縫在屍上,具棺葬之;自修祭文享祀;將謖家小加意撫恤,按月給與祿米。於是孔明自作表文,令蔣琬申奏後主,請自貶丞相之職。琬回成都,入見後主,進入孔明表章。後主拆開視之曰:臣本庸才,叨竊非據,親秉旄鉞,以勵三軍。不能訓章明法,臨事而謀,至有街亭違命之闕,箕谷不戒之失。咎皆在臣不明,不知人,慮事多闇。春秋責備,罪何所逃?請自貶三等,以督闕咎。臣不勝慚愧,俯伏待命!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마속의 목을 벤 후 수급을 가지고 각 진영에 두루 보이기를 마치자 실을 써서 시신의 위에 꿰매고 관을 갖추어 장례 하고,, 스스로 제문을 지어 제사하고 마속의 가족에게 구휼의 뜻을 더하여 매월 녹미를 주었다. 이에 제갈공명이 스스로 표문(보고하는 문서)을 지어 장완으로 하여금 후주에게 아뢰도록 하여 승상의 직책에서 쫓아낼 것을 청하였다. 장완이 성도에 돌아 가 후주에게 들어 가 뵙고, 제갈공명이 지은 표문을 올렸다. 후주가 봉투를 뜯어 그것(표문)을 보니 “신은 본래 용렬한 재능으로 외람되이 높은 지위에 올라 직접 모월(깃발과 부월)을 잡는 것으로서 삼군을 독려하였습니다. 법을 가르치고 법을 분명히 하지 못하여 일에 임해 도모함이 가정에서 명을 어기는 잘못과 기곡을 경계하지 못함의 잘못이 있음에 이르렀습니다. 허물은 모두 신이 밝지 못하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여 일을 헤아릴 때 어두운 것이 많았습니다. 『춘추』에서는 잘못을 꾸짖었으니 죄를 어디로 피하겠습니까? 스스로 삼등을 낮추는 것으로서 그 허물을 꾸짖기를 청합니다. 신은 부끄럼을 이기지 못하여 엎드려 명을 기다립니다.”했다.
後主覽畢曰﹕「勝負兵家常事,丞相何出此言?」侍中費禕奏曰﹕「臣聞治國者,必以奉法為重。法若不行,何以服人?丞相敗績,自行貶降,正其宜也。」後主從之,乃詔貶孔明為右將軍,行丞相事,照舊總督軍馬,就令費禕詔到漢中。
후주가 보기를 마치고 말하기를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의 늘 있는 일인데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합니까?”하니 시중 비의가 아뢰어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반드시 법을 받드는 것으로서 중함을 삼는다고 합니다. 법이 만약 행해지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사람을 복종시키겠습니까? 승상께서 패하여 스스로 낮추기를 행하니 바로 마땅한 것입니다.”했다. 후주가 그 말을 따라 곧 조서로 제갈공명을 우장군으로 삼고 승상의 일을 행하게 하고, 종전대로 군마를 총감독하게 하고 비의로 하여금 조서를 가지고 한중에 가게 하였다.
孔明受詔貶降訖,禕恐孔明羞赧,乃賀曰﹕「蜀中之民知丞相初拔四縣,深以為喜。」孔明變色曰﹕「是何言也?得而復失,與不得同。公以此賀我,實足使我愧赧耳。」禕又曰:「近聞丞相得姜維,天子甚喜。」孔明怒曰:「兵敗師還,不曾奪得寸土,此吾之大罪也。量得一姜維,於魏何損?」禕又曰:「丞相現統雄師數十萬,可再伐魏乎?」孔明曰:「昔大軍屯於祁山、箕谷之時,我兵多於賊兵,而不能破賊,反為賊所破;此病不在兵之多寡,在主將耳。今欲減兵省將,明罰思過,較變通之道於將來;如其不然,雖兵多何用?自今以後,諸人有遠慮於國者,但勤攻吾之闕,責吾之短,則事可定,賊可滅,功可翹足而待矣。」
제갈공명이 강등을 허락하는 조서를 받자 비의는 제갈공명이 부끄러워할 것을 걱정하여 이에 축하하며 말하기를 “촉 중의 백성들이 승상께서 처음 네 개의 현을 함락시켰다는 것을 알고 깊이 기쁘게 여깁니다.”했다. 제갈공명이 얼굴색을 바꾸며 말하기를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얻었다가 다시 잃었으니 얻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공이 이것으로서 나를 축하하는 것은 실로 나를 부끄럽게 할 뿐입니다.”했다. 비의가 또 말하기를 “최근에 승상께서 강유를 얻었다는 것을 듣고 천자(후주)께서 매우 기뻐하십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노하여 말하기를 “군대가 패하여 무리를 데리고 돌아와 일찍이 한 자의 땅도 빼앗지 못하였으니 이는 나의 큰 죄입니다. 일개 강유를 얻은 것이 위나라에 무슨 손해가 되겠습니까?”했다. 비의가 또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현재 용맹한 군대 수십만을 통솔하고 있으니 다시 위나라를 정벌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옛날 대군을 기산과 기곡에 주둔하였을 때는 우리 군대가 적의 군대보다 많았는데도 적을 깨트리지 못하고 도리어 적에게 깨트려진 바 되었습니다. 이 병폐는 군대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주된 장수에게 달려 있을 뿐입니다. 지금 군대를 줄이고 장수를 줄이며 형벌을 밝게 하고 허물을 생각하며 장래에 변통의 길을 견주어 보아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비록 군대가 많다 한들 어디에 쓰겠습니까? 지금부터 여러 사람들 중에 나라를 깊이 염려하는 자가 있어 나의 잘못을 부지런히 공격하고 나의 단점을 꾸짖으면 곧 일이 정해지고, 적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니 공을 발돋음하기(세우기)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했다.
費禕諸將皆服其論。費禕自回成都。孔明在漢中,惜軍愛民,勵兵講武,置造攻城渡水之器,聚積糧草,預備戰筏,以為後圖。細作探知,報入洛陽。
비의와 여러 장수들이 모두 그 논의에 감복하였다. 비의는 성도로 돌아갔다. 제갈공명은 한중에 있으면서 군대를 아끼고, 백성을 사랑하며 군대의 훈련에 힘쓰며 성을 공격하고 물을 건너는 기계를 만들며 식량과 말먹이 풀을 모아 쌓으며 미리 싸움배(뗏목)를 준비하는 것으로서 후일을 도모하였다. 세작(첩자)이 알아내어 낙양에 들어 가 보고하였다.
魏主曹叡聞知,即召司馬懿商議收川之策。懿曰:「蜀未可攻也。方今天道亢炎,蜀兵必不出。若我軍深入其地,彼守其險要,急切難下。叡曰:「倘兵再來入寇,如之奈何?」懿曰:「臣已算定今番諸葛亮必效韓信暗度陳倉之計。臣舉一人往陳倉道口,築城守禦,萬無一失。此人身長九尺,猿臂善射,深有謀略。若諸葛亮入寇,此人當之足矣。」叡大喜,問曰:「此何人也?」懿奏曰:「乃太原人,姓郝,名昭,字伯道。現為雜霸將軍,鎮守河西。」叡從之,加郝伯道為鎮西將軍。命把守陳倉道口。遣使持詔去訖。
위나라 임금 조예가 듣고는 곧 사마의를 불러 천(촉)을 거둘 계책을 상의하였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아직 촉을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바야흐로 지금 날씨가 매우 뜨거워 촉의 군대는 반드시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 군대가 그 땅에 깊이 들어갔다가 그 들이 그 험한 요충지를 지키면 급하게 항복시키기 어렵습니다.”했다. 조예가 말하기를 “만약 군대가 다시 와 침입해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신은 이미 이번에 제갈공명이 반드시 한신이 몰래 진창을 넘어가던 계책을 본받을 것입니다. 신이 한 사람을 천거하여 가서 진창길 입구에 성을 쌓고 지키게 하면 만에 한 가지도 잘못이 없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l가 구척이고 원숭이 팔에 활을 잘 쏘며 깊은 모략이 있습니다. 만약 제갈공명이 침입해 들어온다면 이 사람이 막기에 충분합니다.”했다. 조에가 크게 기뻐하며 물어 말하기를 “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하니 사마의가 아뢰어 말하기를 “이는 곧 태원 사람이니 성은 학이고 이름은 소이며 자는 백도입니다. 현재 잡패장군이 되어 서하를 지키고 있습니다.”했다. 조예가 그것을 따라 학소를 진서장군으로 삼아 진창길 입구를 지키게 하였다. 사자를 보내 조서를 가지고 가게 하였다.
忽報揚州司馬大都督曹休上表說,東吳審(鄱)陽太守周魴,願以郡來降,密遣人陳言七事。說東吳可破,乞早發兵取之。叡就御床上拆開,與司馬懿同觀。懿奏曰:「此言極有理,吳當滅矣。臣願引一軍往助曹休。」忽班中一人奏曰:「吳人之言,反覆不一,未可深信。周魴智謀之士,必不肯降。此特誘兵之詭計也。」眾視之,乃建威將軍賈逵也。懿曰:「此言亦不可不聽,機會亦不可錯失。」魏主曰:「仲達可與賈逵同助曹休。」二人領命去訖。於是曹休引大軍逕取皖城,賈逵引前將軍滿寵,東皖太守胡質,逕取陽城,直向東關;司馬懿引本部軍逕取江陵。
홀연히 양주 사마 대도독 조휴가 표를 올려 동오 심(파)양태수 주방이 군을 들어(가지고) 항복하기를 원하여 비밀히 일곱 가지 일을 말했습니다. 동오를 깨트릴 수 있으니 빨리 군대를 출동하여 취할 것을 말한다고 청합니다. 했다. 조예가 임금의 자리에 나아가 봉투를 열고 사마의와 함께 보았다. 사마의가 아뢰어 말하기를 “이 말은 지극히 이치가 있으니 오나라를 없앨 수 있습니다. 신이 일 군을 이끌고 가 조휴를 돕기를 원합니다.”했다. 홀연히 열 안에서 한 사람이 아뢰어 말하기를 “오나라 사람의 말은 반복하고 한결같지 않으니 깊이 믿어서는 안 됩니다. 주방은 지혜와 꾀가 있는 선비이니 반드시 기꺼이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다만 군대를 꾀어내려는 속이는 계책일 뿐입니다.”했다. 무리들이 그를 보니 곧 건위장군 가규였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이 말 또한 듣지 않을 수 없고, 기회는 또한 잃을 수 없습니다.”했다. 위나라 임금이 말하기를 “중달(사마의)은 가규와 같이 조휴를 돕는 것이 옳겠습니다.”했다. 두 사람이 명을 받고 갔다. 이에 조휴는 대군을 이끌고 재빨리 환성을 취하러 가고, 가규는 전장군 만총, 동환태수 호질을 이끌고 재빨리 양성을 취하러 가고 바로 동관으로 향하였다. 사마의는 본부의 군대를 이끌고 재빨리 강릉을 취하러 갔다.
卻說吳主孫權,在武昌東關,會多官商議曰:「今有鄱陽太守周魴密表,奏稱魏揚州都督曹休,有入寇之意。今魴詐施詭計,暗陳七事,引誘魏兵深入重地,可設伏兵擒之。今魏兵分三路而來,諸卿有何高見?」顧雍進曰:「此大任非陸伯言不敢當也。」
각설하고 오나라 임금 손권은 무창 동관에 있으면서 많은 관리를 만나 상의해 말하기를 “지금 파양태수 주방이 비밀 표(보고서)가 있는데 위나라 양주 도독 조휴가 들어와 도적질 하려는 뜻이 있다고 아뢰고 있습니다. 지금 주방이 거짓으로 속이는 계책을 베풀어 몰래 일곱 가지 일을 진술하여 위나라 군대를 유인하여 깊이 중요한 땅으로 들어오면 복병으로 그들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지금 위나라 군대가 세 길로 나누어 오고 있으니 여러 경(신하)들은 무슨 좋은 의견이 있는가?”했다. 고옹이 나와 말하기를 “이는 큰 임무로 육백언(육손)이 아니면 감히 맡을 수 없습니다.”했다.
權大喜,乃召陸遜,封為輔國大將軍、平北都元帥,統御林大兵,攝行王事;授以白旄黃鉞,文武百官,皆聽約束。權親自與遜執鞭。領命謝恩畢,乃保二人為左右都督,分兵以迎三道。權問何人,遜曰:「奮威將軍朱桓、妥南將軍全琮二人可為輔佐。」權從之,即命朱桓為左都督,全琮為右都督都。於是陸遜總率江南八十一州並荊湖之眾七十餘萬,令朱桓在左,全琮在右,遜自居中,三路進兵。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곧 육손을 불러 보국대장군 평북도원수를 봉해 어림의 큰 군대를 통솔하게 하고, 왕사(왕의 일)를 대신 행하게 하고는 백모와 황월을 주고, 문무백관이 모두 (명을) 듣기를 약속하게 했다. 손권이 직접 육손에게 채찍을 집어 주었다. (육손이)명을 받고 은혜에 감사하는 예를 마치고 곧 두 사람을 추천하여 좌우도독으로 삼고 군대를 나누는 것으로서 세 길로 (적을) 맞이하려 하였다. 손권이 어떤 사람인지를 물으니 손권이 말하기를 “분위장군 주환, 타남장군 전종 두 사람으로 보조하게 할 만합니다.”했다. 손권이 그 말을 따라 곧 주환을 좌도독으로 삼고, 전종을 우도독으로 삼았다. 이에 육손은 강남 팔십일 주와 형호의 무리 칠십여만을 총 통솔하고, 주환은 왼쪽에 있고, 전종은 오른쪽에 있고, 육손은 가운데 자리하여 세 길로 군대를 진군시켰다.
朱桓獻策曰:「曹休以親見任,非智勇之將也。今聽周魴誘言,深入重地,元帥以兵擊之,曹休必敗。敗後必走兩條路:左乃夾石,右乃桂車。此二路皆山僻小徑,最為險峻。某願與全子璜各引一軍,伏於山險,先以柴木大石塞斷其路,曹休可擒矣。若擒了曹休,便長驅直進,唾手而得壽春,以窺許、洛,乃萬世一時也。」遜曰:「此非善策,吾自有妙用。」於是朱桓懷不平而退。遜令諸葛瑾等拒守江陵,以敵司馬懿。諸路俱各調撥停當。
주환이 계책을 올려 말하기를 “조휴는 친척으로서 임명되었을 뿐 지혜와 용맹을 갖춘 장수가 아닙니다. 지금 주방의 유인하는 말을 듣고 깊이 중요한 땅으로 들어오니 원수께서는 군대를 가지고 치시면 조휴는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패한 후에는 반드시 두 갈레 길로 달아날 것입니다. 왼쪽은 곧 협석이고, 오른쪽은 곧 계거입니다. 이 두 길은 모두 산이 구석지고, 길이 작아 가장 험준합니다. 제가 전자황과 각각 일 군을 이끌고 산이 험한 곳에 숨어있으면서 먼저 통나무와 큰 돌로 그 길을 막고 끊어 조휴를 사로잡을 것을 원합니다. 만약 조휴를 사로잡는다면 곧 길게 (군대를) 몰아 바로 진군하면 손에 침을 뱉듯이 (쉽게) 수춘을 얻는 것으로서 허도와 낙양을 엿보면 곧 만 세대에 한 번 있는 기회입니다.”했다. 육손이 말하기를 “이는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나에게 오묘한 계책이 있습니다.”했다. 이에 주환은 불평을 품고 물러났다. 육손은 제갈근 등으로 하여금 강릉을 지키게 하는 것으로서 사마의를 대적하게 했다. 여러 방면이 모두 각각 (임무)배정을 마쳤다.
卻說曹休兵臨皖城,周魴來迎,逕到曹休帳下。休問曰:「近得足下之書,所陳七事,深為有理,奏聞天子,故起大軍三路進發。若得江東之地足下之功不小。有人言足下多謀,誠恐所言不實。吾料足下必不欺我。」周魴大哭,急掣從人所佩劍欲自刎,休急止之。魴仗劍而言曰:「吾所陳七事,恨不能吐出心肝。今反生疑,必有吳人使反間之計也。若聽其言,吾必死矣,吾之忠心,惟天可表!」言訖,又欲自刎。曹休大驚,慌忙抱住曰:「吾戲言耳。足下何故如此?」魴乃用劍割髮擲於地曰:「吾以忠心待公,公以吾為戲,吾割父母所遺之髮,以表此心。」
각설하고 조휴의 군대가 환성에 이르니 주방이 나와 맞이하여 재빨리 조휴의 군막에 이르렀다. 조휴가 물어 말하기를 “최근에 그대의 글을 얻었는데 진술한 일곱 가지 일이 깊이(매우) 이치가 있어 천자께 아뢰었습니다. 그러므로 대군을 일으켜 세 길로 출발하였습니다. 만약 강동의 땅을 얻는다면 그대의 공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대는 꾀가 많아 진실로 말한 바가 진실이 아닐 것이라 의심된다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그대가 반드시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했다. 주방이 크게 곡하며 급히 따르던 사람이 차고 있던 검을 당겨 스스로 목을 찌르려 하니 조휴가 급히 제지하였다. 주방이 검을 집고 말하기를 “내가 진술한 일곱 가지 일은 심장과 간을 토해낼 수 없음을 한탄합니다. 이제 도리어 의심하시니 반드시 오나라 사람이 반간계를 쓰는 것입니다. 만약 그 말을 들으신다면 나는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나의 충성스러운 마음은 오직 하늘만 드러낼 수 있습니다.”하는 말을 마치고 또 스스로 목을 찌르려 했다. 조휴가 크게 놀라 황망히 껴안고 말하기를 “나의 희롱하는 말일 뿐입니다.. 그대는 무슨 이유로 이 같이 하는가?”했다. 주방이 곧 검을 써서 머리칼을 잘라 땅에 던지며 말하기를 “나는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공(조휴)을 대하였는데 공은 나를 희롱하시니 내가 부모께서 남기신 머리칼을 자르는 것으로서 이 마음을 표시합니다.”했다.
曹休乃深信之,設宴相待。席罷,周魴辭去。忽報建威將軍賈逵來見,休令入,問曰:「汝來何為?」逵曰:「某料東吳之兵,必盡屯皖城。都督不可輕進,待某兩下夾攻,賊兵可破矣。」休怒曰:「汝欲奪吾功耶?」逵曰:「又聞周魴髮為誓,此乃詐也。昔要離斷臂,刺殺慶忌,未可深信。」休大怒曰:「吾正欲起兵,汝何出此言以慢我軍心!」叱左右推出斬之。眾將告曰:「未及進兵,先斬大將,於軍不利。且乞暫免。」
조휴가 이에 깊이 그를 믿고 연회를 열어 대접하였다. 자리를 파하자 주방이 하직하고 갔다. 홀연히 건위장군 가규가 왔다고 보고하자 조휴가 들어오게 하여 물어 말하기를 “너는 무엇하러 왔는가?”했다. 가규가 말하기를 “제가 동오의 군대를 헤아려보니 반드시 모두 환성에 주둔할 것입니다. 도독께서는 가벼이 진군하지 마시고 저를 기다려 양쪽에서 협공하시면 적의 군대를 깨트릴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조휴가 노하여 말하기를 “너는 나의 공을 빼앗으려 하는가?”하니 가규가 말하기를 “또 들으니 주방이 머리칼로 맹세했다고 하는데 이는 곧 속이는 것입니다. 옛날 요리는 팔을 자르고 경기를 찔러 죽였으니 깊이 믿어서는 안 됩니다.”했다. 조휴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바로 군대를 일으키려 하는데 너는 어찌하여 이 말을 하는 것으로서 우리 군대의 마음을 게으르게 하는구나!”하고는 좌우에 질책하여 끌고 나가 목을 베게 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고하여 말하기를 “진군에 이르지도 않았는데 먼저 대장을 죽인다면 군대에 이롭지 않습니다. 또한 잠시 면할 것을 청합니다.”했다.
休從之,將賈逵兵留在寨中調用,自引一軍來取東關。時周魴聽知賈逵削去兵權,暗喜曰:「曹休若用賈逵之言,則東吳敗矣!今天使我成功也!」即遣人密到皖城,報知陸遜。遜喚諸將聽令曰:「前面石亭,雖是山路,足可埋伏。早先去占石亭闊處,布成陣勢,以待魏軍。」遂令徐盛為先鋒,引兵前進。
조휴가 그 말에 따라 가규의 군대를 억류하여 영채 안으로 이동하게 하고, 스스로는 일 군을 이끌고 동관을 취하러 갔다. 그때 주방은 가규가 병권을 빼앗겼다는 것을 듣고는 몰래 기뻐하며 말하기를 “조휴가 만약 가규의 말을 썼다면 곧 동오는 패하였을 것이다! 지금 하늘이 나로 하여금 공을 이루게 하는구나!”하고는 곧 비밀리 사람을 환성에 보내 육손에게 보고하였다. 육손이 여러 장수를 불러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앞쪽의 석정은 비록 신길이나 충분히 매복할 수 있습니다. 빨리 먼저 가서 석정의 넓은 곳을 차지하고 진세를 펴 이루는 것으로서 위나라 군대를 기다리라.”하고는 마침내 서성으로 하여금 선봉이 되게 하여 군대를 이끌고 진군하게 했다.
卻說曹休命周魴引兵前進。正行間,休問曰:「前至何處?」魴曰:前面石亭也,堪以屯兵。休從之,遂率大軍並車仗等器,盡赴石亭駐紮。次日,哨馬報道:前面吳兵不知多少,據住山口。休大驚曰:「周魴言無兵,為何有準備?」急尋魴問之,人報周魴,引數十人,不知何處去了。休大悔曰:「吾中賊之計矣!雖然如此亦不足懼。」
각설하고 조휴는 주방으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행군하는 사이에 조휴가 물어 말하기를 “앞으로 어디에 이르는가?”하니 주방이 말하기를 “앞쪽은 석정인데 군대를 주둔할 수 있습니다.”하니 조휴가 그 말을 따라 마침내 대군을 인솔과 수레 등의 기구를 통솔하여 모두 석정에 나아가 주둔하였다. 다음날 정찰병이 보고하여 말하기를 “앞쪽의 오나라 군대의 많고 적음을 알 수 없는데 산 입구를 차지하고 막고 있습니다.”했다. 조휴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주방은 군대가 없다고 말하였는데 어찌하여 준비가 있는가?”하고는 급히 주방을 찾아 물으려 하는데 사람이 보고하기를 주방이 수십 명을 이끌고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합니다. 했다. 조휴가 크게 후회하여 말하기를 “내가 적의 계책에 빠졌구나! 비록 이 같으나 또한 두려워할 것 없다.”했다.
遂令大將張普為先鋒,引兵數千來與吳兵交戰。兩陣對圓,張普出馬罵曰:「賊將早降!」徐盛出馬相迎。戰無數合,普抵檔不住,勒馬收兵,回見曹休,言徐盛勇不可當。休曰:「吾當以奇兵勝之。」就令張普引二萬軍伏於石亭之南。又令薛喬引二萬軍伏於石亭之北。「明日吾自引一千兵搦戰,卻佯輸詐敗,誘到北山之前,放炮為號,三面夾攻,必獲大勝。二將受計,各引二萬軍到晚埋伏去了。
마침내 대장 장보로 하여금 선봉을 삼아 군대 수천을 이끌고 가 오나라 군대와 싸웠다. 두 진영이 둥글게 마주하니 장보가 말을 타고 나와 꾸짖어 말하기를 “적장은 빨리 항복하라!”하니 서성이 말을 타고 나와 맞이하였다. 싸운 지 몇 합되지 않아 장보가 막아내지 못하고 말고삐를 당겨 말을 돌리고 군대를 거두어 돌아 가 조휴를 만나 서성이 용맹하여 당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조휴가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기병으로서 이길 것이다.”하고는 장보로 하여금 이만의 군대를 이끌고 석정의 남쪽에 숨어있게 하고, 또 설교로 하여금 이 만의 군대를 이끌고 석정의 북쪽에 숨어 있게 하였다. (조휴가 말하기를) “내일 내가 스스로 일천의 군대를 이끌고 도전한 후 거짓으로 패한 것처럼 속이고, 유인하여 북산 앞에 이르면 포를 놓아 신호하여 삼면에서 협공하면 반드시 크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했다. 두 장수가 계책을 받고 각각 이만의 군대를 이끌고 저녁때쯤 매복하러 갔다.
卻說陸遜喚朱桓、全琮分付曰:「汝二人各引三萬軍,從石亭山抄到曹休寨後,放火為號。吾親率大軍從中路而進,可擒曹休也。」當日黃昏,二將受計引兵而進。二更時分,朱桓引一軍正抄到魏寨後,迎著張普伏兵。普不知是吳兵,逕來問時,被朱桓一刀斬於馬下。魏兵便走,桓令後軍放火。全琮引一軍抄到魏寨後,正撞在薛喬陣裏,就在那裡大殺一陣。薛喬敗走,魏兵大損,奔回本寨。後面朱桓、全琮兩路殺來。曹休寨中大亂,自相衝擊。
각설하고 육손은 주환과 전종을 불러 분부하여 말하기를 “너희 두 사람은 각각 삼만의 군대를 이끌고, 석정의 산을 따라 조휴의 영채 뒤를 습격하고 불을 놓아 신호로 삼으라. 나는 직접 대군을 통솔하여 중간 길을 따라 진군하여 조휴를 사로잡을 것이다.”했다. 그날 황혼 무렵 두 장수가 계책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나아갔다. 이경 때쯤 주환이 일군을 이끌고 바로 위나라 영채 뒤를 습격하니 장보의 복병이 맞이하였다. 장보가 오나라 군대인 것을 알지 못하여 곧 물으러 올 때 주환이 한 칼에 베어 말에서 떨어뜨렸다. 위나라 군다가 곧 달아나니 주환이 후군으로 하여금 불을 놓게 하였다. 전종은 일군을 이끌고 위나라 영채 뒤를 습격하여 설교의 진 안을 바로 치고 그 안으로 나아가 한바탕 크게 죽였다. 설교가 패하고 달아나니 위나라 군대가 큰 손실을 입고 달아나 본 영채로 돌아갔다. 뒤쪽에서 주환, 전종이 두 길로 쇄도하니 조휴의 영채가 크게 어지러워져 스스로 치고받았다.
休慌上馬,望夾石道中奔走。徐盛引大隊軍馬,從正路殺來。魏兵死者不可勝數,逃命者盡棄衣甲。曹休大驚,在夾石道中,奮力奔走。忽見一彪軍從小路衝出,為首大將,乃賈逵也。休驚慌少息,自愧曰:「吾不用公言,果遭此敗!」逵曰:「都督可速出此道。若被吳兵以木石塞斷,吾等皆危矣!」
조휴가 황망히 말에 올라 협석 길을 향해 달아났다. 서성이 대대의 군마를 이끌고 정면의 길을 따라 쇄도해 왔다. 위나라 군대는 죽은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고, 도망하여 목숨을 구한 자들은 입었던 갑옷을 모두 버렸다. 조휴가 크게 놀라 협석의 길 중에서 힘을 다해 달아났다. 홀연히 한 떼의 군대가 작은 길로부터 치고 나왔는데 우두머리 대장은 곧 가규였다. 조휴가 놀라 허둥지둥하며 잠시 쉬면서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말하기를 “내가 공(가규)의 말을 쓰지 않다가 과연 이런 패배를 만났습니다.”하니 가규가 말하기를 “도독께서는 속히 이 길을 벗어나야 합니다. 만약 오나라 군대가 나무와 돌로 길을 막고 끊으면 우리들은 모두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했다.
於是曹休驟馬而行,賈逵斷後。逵於林木盛茂之處,及險峻小徑,多設旌旗以為疑兵。及至徐盛趕到,見山坡下閃出旗角,疑有埋伏,不敢追趕,收兵而回。因此救了曹休。司馬懿聽知休敗,亦引兵退去。
이에 조휴는 말을 달려가고, 가규는 뒤를 끊었다. 가규는 숲이 무성한 곳과 험준한 작은 길에 정기를 많이 설치하여 군대를 의심하게 하였다. 서성이 뒤를 따라 이르러 산기슭 아래에 갑자기 깃발이 있는 것을 보고는 매복이 있을 것을 의심하여 감히 추격하지 못하고 군대를 거두어 돌아갔다. 이 때문에 조휴를 고할 수 있었다. 사마의는 조휴가 패하였다는 것을 듣고 또한 군대를 이끌고 물러갔다.
卻說陸遜正望捷音,須臾,徐盛、朱桓、全琮皆到,所得車仗牛馬驢騾軍資器械,不計其數,降兵數萬餘人。遜大喜,即同太守周魴並諸將班師還吳。吳主孫權,領文武官僚出武昌城迎接,以御蓋覆遜而入。諸將盡皆陞賞。權見周魴無髮,慰勞曰:「卿斷髮成此大事,功名當書於竹帛也。」即封周魴為關內侯,大設筵會,勞軍慶賀。
각설하고 육손은 바로 승전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잠시 후 서성, 주환, 전종이 모드 이르렀다. 수레, 소와 말, 노새, 군자금, 무기 등을 얻은 것이 그 수릴 헤아릴 수 없고, 항복한 병졸이 수만 명이었다. 육손이 크게 기뻐하며 곧 태수 주방과 여러 장수들과 함께 군대를 돌려 오나라로 돌아갔다. 오나라 임금 손권이 문무 관료를 거느리고 무창성에 나와 영접하였는데 어개로서 육손에게 씌워 들어갔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승진 상을 받았다. 손권이 주방의 머리칼이 없는 것을 보고 위로해 말하기를 “경이 머리칼을 잘라 이 큰 일을 이루었으니 공과 이름을 마땅히 죽간과 비단에 써 두어야한다.”하고는 곧 주방을 봉해 관내후로 삼고 크게 연회를 열어 군사를 위로하고 축하하였다.
陸遜奏曰:今曹休大敗,魏兵喪膽;可修國書,遣使入川,教諸葛亮進兵攻之。權從其言,遂遣使齎書入川去。正是:只因東國能施計,致令西川又動兵。未知孔明再來伐魏,勝負如何,且看下文分解。
육손이 아뢰어 말하기를 “지금 조휴가 크게 패하여 위나라 군대는 담이 서늘할 것입니다. 국서를 써서 사자를 천(촉)에 들어 가 제갈공명으로 하여금 군대를 진군시켜 공격하게 해야 합니다.”했다. 손권이 그 말을 따라 마침내 사자를 보내 글을 가지고 천(촉)에 들어가게 하였다. 바로 이러하다. 동국(동오)이 계책을 잘 베풀더니 서천(촉)으로 하여금 또 군대를 동원하게 하는구나! 제갈공명이 다시 와 위나라를 치고, 승부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겠다.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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