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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

제96회 제갈공명은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목 베고, 주방은 머리털을 잘라 조휴를 속이다.

by 최인표 2021. 8. 11.

第九十六回孔明揮淚斬馬謖周魴斷髮賺曹休

96회 제갈공명은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목 베고, 주방은 머리털을 잘라 조휴를 속이다.

 

卻說獻計者,乃尚書孫資也 曹叡問曰:「卿有何妙計?」資奏曰:「昔太祖武皇帝收張魯時,危而後濟;嘗對群臣曰:『南鄭之地,真為天獄。』中斜谷道為五百里石穴,非用武之地。今欲盡起天下之兵伐蜀,則東吳又將入寇。不如以現在之兵,分命大將據守險要,養精蓄銳。不過數年,中國日盛,吳﹑蜀二國,必自相殘害,那時圖之,豈非勝算?乞陛下裁之。」叡乃問司馬懿曰:「此論若何?」懿奏曰:「孫尚書所言極當。」叡從之,命司馬懿分撥諸將守把險要,留郭准﹑張郃守長安,大賞三車,駕回洛陽。

각설하고 계책을 바친 자는 곧 상서 손자였다. 조예가 물어 말하기를 경은 무슨 계책이 있는가?”하니 손자가 아뢰어 말하기를 옛날 태조 무황제께서 장노를 거두실 때 위태로운 후에 이루셨습니다. 일찍이 여러 신하에 대하여 말씀하기를 남정의 땅은 참으로 천옥이다.’하셨습니다. 사곡을 지나는 길은 오백리가 석혈(동굴)로 되어 있어 군대를 쓸 땅이 아닙니다. 지금 천하의 구대를 모두 일으켜 촉을 치려 하신다면 곧 동오가 또 장차 들어와 도적질 할 것입니다. 현재의 군대를 나누어 대장으로 하여금 험한 요충지를 차지하고 지키게 하고, 정기를 키우고 예기를 모으는 것이 낫습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중국은 나날이 왕성해지고, 오와 촉 두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서로 해칠 것이니 이때 그들을 도모한다면 어찌 승산이 없겠습니까? 폐하께서는 헤아리십시오.”했다. 조예가 이에 사마의에게 물어 말하기를 이 논의가 어떠한가?”하니 사마의가 아뢰어 말하기를 손 상서가 말한 것은 지극히 마땅합니다.”하니 조예가 그 말을 따라 사마의에게 명하여 여러 장수를 나누어 뽑아 험한 요충지를 지키게 하고, 곽회와 장합을 남겨 장안을 지키게 하고 크게 삼군에게 상을 준 후 낙양으로 돌아갔다.

 

卻說孔明回到漢中,計點軍士,只少趙雲鄧芝,心中甚憂;乃令關興張苞,各引一軍接應二人正欲起身,忽報趙雲鄧芝到來,並不曾折一人一騎;輜重等器,亦無遺失孔明大喜親引諸將出迎趙雲慌忙下馬伏地曰:「敗軍之將,何勞丞相遠接孔明急扶起,執手而言曰:「是吾不識賢愚以致如此各處兵將敗損惟子龍不折一人一騎何也?」鄧芝告曰:「某引兵先行子龍獨自斷後斬將立功敵人驚怕因此軍資什物不曾遺失。」孔明曰:「真江()軍也!」遂取金五十斤以贈趙雲又取絹一萬疋賞雲部卒雲辭曰:「三軍無尺寸之功某等俱各有罪若反受賞乃丞相賞罰不明也且請寄庫候今冬賜與諸軍未遲。」孔明歎曰:「先帝在日常稱子龍之德今果如此!」乃倍加欽敬

각설하고 제갈공명이 한중에 이르러 군사를 헤아리고 점검하였는데 조운(조자룡), 등지가 없자 마음속으로 매우 걱정하여 곧 관흥과 장포로 하여금 각각 일군을 이끌고 상황에 맞게 대응하게 하였다. 두 사람이 몸을 일으키려 하는데 조운(조자룡)과 등지가 왔는데 모두 한 사람, 한 말도 죽지 않았고, 보급품과 기물 등도 또한 잃은 것이 없었다. 제갈공명이 크게 기뻐하며 직접 여러 장수를 이끌고 나가 맞이하였다. 조운(조자룡)이 황망히 말에서 내려 당에 엎드려 말하기를 패함 군대의 장수인데 어찌 수고롭게 승상께서 멀리(나와) 영접하십니까?”했다. 제갈공명이 급히 부축하여 일으키고 손을 잡으며 말하기를 이는 내가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같음에 이르렀습니다. 각 곳의 군대와 장수들이 패하고 손상되었는데 오직 자룡(조자룡)만은 한 사람, 한 마리 말고 죽이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했다. 등지가 알려 말하기를 제가 군대를 이끌고 먼저 갔고, 자룡(조자룡)이 홀로 직접 뒤를 끊고 장수를 베어 공을 세우니 적이 놀라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군자와 기물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참으로 장군답구려!”하고는 마침내 금 오십 근을 가져다 조운(조자룡)에게 주고, 또 비단 일만 필을 가져다 조운(조자룡)의 부하 병졸에게 상주었다. 조운(조자룡)이 사양하며 말하기를 삼군이 한자 한치의 공도 없는데 저희들이 모두 각각 죄가 있는데 만약 도리어 상을 받으면 곧 승상께서 상과 벌이 밝지 못하다고 할 것입니다. 또 창고에 두었다가 금년 겨울을 기다려 여러 군사들에게 내여 주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탄복하며 말하기를 선제께서 살아 계실 때 항상 자룡(조자룡)의 덕을 칭찬하셨는데 지금 과연 이 같다.”하고는 이에 공경하기를 배로 하였다.

 

忽報馬謖王平魏延高翔至孔明先喚王平入帳責之曰:「吾令汝與馬謖同守街亭汝何不諫之致使失事?」平曰:「某再三相勸要在當道築土城把守參軍大怒不從某因此自引五千兵離山十里下寨魏兵驟至把山四面圍合某引兵衝殺十餘次皆不能入次日土崩瓦解降者無數某孤軍難立故投魏文長求救半途又被魏兵困在山谷之中某奮死殺出比及歸寨已被魏兵占了及投列柳城時路逢高翔遂分兵三路去劫魏寨指望克復街亭因見街亭並無伏路軍以此心疑登高望之只見魏延高翔被魏兵圍住某即殺入重圍救出二將就同參軍併在一處某恐失卻陽平關因此急來回守非某之不諫也丞相不信可問各部將校。」

홀연히 마속, 왕평, 위연, 고상이 이르렀다고 보고하니 제갈공명은 먼저 왕평을 불러 군막에 들어오자 질책하여 말하기를 내가 너로 하여금 마속과 함께 가정을 지키게 하였는데 너는 어찌하여 그를 간하지 않아 일이 잘못되게 함에 이르게 하였는가?”했다. 왕평이 말하기를 제가 두 번 세 번 중요한 길에 토성을 쌓고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권하였습니다만 참군(마속)이 크게 노하여 따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때문에 스스로 군대를 오천의 군대를 이끌고 산으로부터 십리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웠습니다. 위나라 군대가 달려와 이르러 산의 사방을 포위하였을 때 저는 군대를 이끌고 십여 차례 들이쳐 죽이려 하였으나 모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흙이 무너지고 기와가 깨지듯이 항복하는 자를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제가 외로운 군대로 서기(버티기) 어려웠기 때문에 위문장(위연)에게 들어 가 구원을 청하려 했던 것입니다. 중도에 또 위나라 군대에게 산골짜기 안에서 포위당하여 제가 죽음을 무릅쓰고 뚫고 나왔습니다. 영채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위나라 군대가 (영채를)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열 류 성에 들어가려 할 때 길에서 고상을 만나 마침내 구대를 세 길로 나누어 위나라 영채를 습격하여 가정을 수복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바랐습니다.) 가정에(가정에 가는 길에)는 아울러 길에 숨은 군대가 없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마음으로 의심하였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 가 바라보았는데 다만 위연, 고상이 위나라 군대에게 포위당한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곧 두터운 포위를 뚫고 들어 가 두 장군을 구원해 나와 참군(마속)과 함께 군대를 한 곳에 합쳤습니다. 저는 양평 관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급히 돌아와 지켰습니다. 제가 간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승상께서 믿지 못하시겠다면 각 부대 장교에게 물어보십시오.” 했다.

 

孔明喝退又喚馬謖入帳謖自縛跪於帳前孔明變色曰:「汝自幼飽讀兵書熟諳戰法吾累次叮嚀告戒街亭是吾根本汝以全家之命領此重任汝若早聽王平之言豈有此禍今敗軍折將失地陷城皆汝之過也若不明正軍律何以服眾汝今犯法休得怨吾汝死之後汝之家小吾按月給與祿米汝不必挂心。」叱左右推出斬之謖泣曰:「丞相視某如子某以丞相為父某之死罪實已難逃願丞相思舜帝殛鯀用禹之義某雖死亦無恨於九泉!」言訖大哭孔明揮淚曰:「吾與汝義同兄弟汝之子即吾之子也不必多囑。」

제갈공명이 물러가라 소리치고는 또 마속을 불러 군막에 들어오게 하였다. 마속은 스스로를 묶고 군막 앞에 꿇어앉았다. 제갈공명이 얼굴색을 바꾸며 말하기를 너는 어려서부터 병서를 많이 읽어 싸우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여러 번 가정은 우리의 근본이라고 신신당부하고 경계할 것을 말하였고, 너는 전 가문의 목숨으로서 이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네가 만약 일찍 왕평의 말을 들었다면 어찌 이런 화가 있었겠는가? 지금 군대는 패하고 장수가 죽었으며 딸을 잃고 성이 함락된 것은 모두 너의 허물이다. 만약 군율을 밝게 바로잡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무리를 복종시킬 수 있겠는가? 너는 지금 법을 범하였으니 나를 원망하지 말라. 네가 죽은 후 너의 가족들은 내가 매달 녹미(녹봉 쌀)를 줄 터이니 너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하고는 좌우에 소리쳐 끌고 나가 목을 베게 했다. 마속이 울며 말하기를 승상께서 저를 보기를 자식과 같이 여기셨고, 저는 승상을 아버지로 여겼습니다. 저의 죽을죄는 진실로 이미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원하건대 승상께서는 순임금이 곤을 죽이고, 우를 등용한 뜻을 생각해 주시면 저는 비록 죽더라도 또한 구천에서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하는 말을 마치고 크게 곡하였다. 제갈공명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나와 너의 의리는 형제와 같으니 너의 자식은 곧 나의 자식이니 많이 부탁할 필요가 없다.”했다.

 

左右推出馬謖於轅門之外將斬參軍蔣琬自成都至見武士欲斬馬謖大驚高叫留人入見孔明曰:「昔楚殺得臣而文公喜今天下未定而戮智謀之士豈不可惜乎?」孔明流涕而答曰:「昔孫武所以能制勝於天下者用法明也今四方分爭兵交方始若須廢法何以討賊耶合當斬之。」

좌우가 마속을 원문 밖으로 끌어내어 머리를 베려하였다.. 참군 장완이 성도에서 이르러 무사들이 마속을 목 베려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 크게 외쳐 사람들을 만류하고는 들어가 제갈공명을 만나 말하기를 옛날 초나라가 장군 득신을 죽이자 진나라 문공이 기뻐하였습니다. 지금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는데 지모가 있는 선비를 죽이는 것이 어찌 애석하지 않겠습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눈물을 흘리며 답해 말하기를 옛날 손무가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법을 쓰기를 밝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방이 나뉘어 다투고, 군대의 교정이 막 시작하려 하는데 만약 모름지기 법을 폐하고서 무엇을 가지고 적을 토벌하겠습니까? 그를 죽이는 것이 합당합니다.”했다.

 

須臾武士獻馬謖首級於階下孔明大哭不已蔣琬問曰:「今幼常得罪既正軍法丞相何故哭耶?」孔明曰:「吾非為馬謖哭吾思先帝在白帝城臨危之時曾囑吾曰:『馬謖言過其實不可大用。』今果應此言乃深恨己之不明追思先帝之明因此痛哭耳!」大小將士無不流涕馬謖亡年三十九歲

잠시 후 무사가 마속의 수급을 계단 아래에서 바쳤다. 제갈공명이 크게 곡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장완이 물어 말하기를 지금 유상(마속)이 죄를 얻어 이미 군법을 바로잡았는데 승상께서는 무슨 이유로 곡하십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나는 마속을 곡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선제(유현덕)께서 백제성에서 위태로움에 임해 있을 때 일찍이 나에게 부탁하여 말씀하시기를 마속은 말이 그 실제보다 지나치니 크게 써서는 안 됩니다.’하셨는데 지금 과연 이 말이 맞으니 곧 깊이 나의 밝지 못함을 생각하고, 선제(유현덕)의 밝음을 돌이켜 생각하니 이 때문에 통곡하였습니다.”하니 대소의 장사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음이 없었다. 마속이 죽었을 때 나이는 삼십구 세였다..

 

時建興六年夏五月也後人有詩曰失守街亭罪不輕堪嗟馬謖枉談兵轅門斬首嚴軍法拭淚猶思先帝明

때는 건흥 육 년 여름 오월이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말하기를 가정을 지키지 못한 죄 가볍지 않다. 아 안타깝구나! 마속은 말로만 병법을 논하였구나. 원문에서 머리를 베어 군법을 엄하게 하고 눈물 흘리며 선제의 밝음을 생각하는구나.”했다.

 

卻說孔明斬了馬謖將首級遍示各營已畢用線縫在屍上具棺葬之自修祭文享祀將謖家小加意撫恤按月給與祿米於是孔明自作表文令蔣琬申奏後主請自貶丞相之職琬回成都入見後主進入孔明表章後主拆開視之曰臣本庸才叨竊非據親秉旄鉞以勵三軍不能訓章明法臨事而謀至有街亭違命之闕箕谷不戒之失咎皆在臣不明不知人慮事多闇春秋責備罪何所逃請自貶三等以督闕咎臣不勝慚愧俯伏待命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마속의 목을 벤 후 수급을 가지고 각 진영에 두루 보이기를 마치자 실을 써서 시신의 위에 꿰매고 관을 갖추어 장례 하고,, 스스로 제문을 지어 제사하고 마속의 가족에게 구휼의 뜻을 더하여 매월 녹미를 주었다. 이에 제갈공명이 스스로 표문(보고하는 문서)을 지어 장완으로 하여금 후주에게 아뢰도록 하여 승상의 직책에서 쫓아낼 것을 청하였다. 장완이 성도에 돌아 가 후주에게 들어 가 뵙고, 제갈공명이 지은 표문을 올렸다. 후주가 봉투를 뜯어 그것(표문)을 보니 신은 본래 용렬한 재능으로 외람되이 높은 지위에 올라 직접 모월(깃발과 부월)을 잡는 것으로서 삼군을 독려하였습니다. 법을 가르치고 법을 분명히 하지 못하여 일에 임해 도모함이 가정에서 명을 어기는 잘못과 기곡을 경계하지 못함의 잘못이 있음에 이르렀습니다. 허물은 모두 신이 밝지 못하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여 일을 헤아릴 때 어두운 것이 많았습니다. 춘추에서는 잘못을 꾸짖었으니 죄를 어디로 피하겠습니까? 스스로 삼등을 낮추는 것으로서 그 허물을 꾸짖기를 청합니다. 신은 부끄럼을 이기지 못하여 엎드려 명을 기다립니다.”했다.

 

後主覽畢曰﹕「勝負兵家常事丞相何出此言?」侍中費禕奏曰﹕「臣聞治國者必以奉法為重法若不行何以服人丞相敗績自行貶降正其宜也。」後主從之乃詔貶孔明為右將軍行丞相事照舊總督軍馬就令費禕詔到漢中

후주가 보기를 마치고 말하기를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의 늘 있는 일인데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합니까?”하니 시중 비의가 아뢰어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반드시 법을 받드는 것으로서 중함을 삼는다고 합니다. 법이 만약 행해지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사람을 복종시키겠습니까? 승상께서 패하여 스스로 낮추기를 행하니 바로 마땅한 것입니다.”했다. 후주가 그 말을 따라 곧 조서로 제갈공명을 우장군으로 삼고 승상의 일을 행하게 하고, 종전대로 군마를 총감독하게 하고 비의로 하여금 조서를 가지고 한중에 가게 하였다.

 

孔明受詔貶降訖禕恐孔明羞赧乃賀曰﹕「蜀中之民知丞相初拔四縣深以為喜。」孔明變色曰﹕「是何言也得而復失與不得同公以此賀我實足使我愧赧耳。」禕又曰:「近聞丞相得姜維天子甚喜。」孔明怒曰:「兵敗師還不曾奪得寸土此吾之大罪也量得一姜維於魏何損?」禕又曰:「丞相現統雄師數十萬可再伐魏乎?」孔明曰:「昔大軍屯於祁山箕谷之時我兵多於賊兵而不能破賊反為賊所破此病不在兵之多寡在主將耳今欲減兵省將明罰思過較變通之道於將來如其不然雖兵多何用自今以後諸人有遠慮於國者但勤攻吾之闕責吾之短則事可定賊可滅功可翹足而待矣。」

제갈공명이 강등을 허락하는 조서를 받자 비의는 제갈공명이 부끄러워할 것을 걱정하여 이에 축하하며 말하기를 촉 중의 백성들이 승상께서 처음 네 개의 현을 함락시켰다는 것을 알고 깊이 기쁘게 여깁니다.”했다. 제갈공명이 얼굴색을 바꾸며 말하기를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얻었다가 다시 잃었으니 얻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공이 이것으로서 나를 축하하는 것은 실로 나를 부끄럽게 할 뿐입니다.”했다. 비의가 또 말하기를 최근에 승상께서 강유를 얻었다는 것을 듣고 천자(후주)께서 매우 기뻐하십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노하여 말하기를 군대가 패하여 무리를 데리고 돌아와 일찍이 한 자의 땅도 빼앗지 못하였으니 이는 나의 큰 죄입니다. 일개 강유를 얻은 것이 위나라에 무슨 손해가 되겠습니까?”했다. 비의가 또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현재 용맹한 군대 수십만을 통솔하고 있으니 다시 위나라를 정벌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옛날 대군을 기산과 기곡에 주둔하였을 때는 우리 군대가 적의 군대보다 많았는데도 적을 깨트리지 못하고 도리어 적에게 깨트려진 바 되었습니다. 이 병폐는 군대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주된 장수에게 달려 있을 뿐입니다. 지금 군대를 줄이고 장수를 줄이며 형벌을 밝게 하고 허물을 생각하며 장래에 변통의 길을 견주어 보아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비록 군대가 많다 한들 어디에 쓰겠습니까? 지금부터 여러 사람들 중에 나라를 깊이 염려하는 자가 있어 나의 잘못을 부지런히 공격하고 나의 단점을 꾸짖으면 곧 일이 정해지고, 적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니 공을 발돋음하기(세우기)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했다.

 

費禕諸將皆服其論費禕自回成都孔明在漢中軍愛民勵兵講武置造攻城渡水之器聚積糧草預備戰筏以為後圖細作探知報入洛陽

비의와 여러 장수들이 모두 그 논의에 감복하였다. 비의는 성도로 돌아갔다. 제갈공명은 한중에 있으면서 군대를 아끼고, 백성을 사랑하며 군대의 훈련에 힘쓰며 성을 공격하고 물을 건너는 기계를 만들며 식량과 말먹이 풀을 모아 쌓으며 미리 싸움배(뗏목)를 준비하는 것으로서 후일을 도모하였다. 세작(첩자)이 알아내어 낙양에 들어 가 보고하였다.

 

魏主曹叡聞知即召司馬懿商議收川之策懿曰:「蜀未可攻也方今天道亢炎蜀兵必不出若我軍深入其地彼守其險要急切難下叡曰:「倘兵再來入寇如之奈何?」懿曰:「臣已算定今番諸葛亮必效韓信暗度陳倉之計臣舉一人往陳倉道口築城守禦萬無一失此人身長九尺猿臂善射深有謀略若諸葛亮入寇此人當之足矣。」叡大喜問曰:「此何人也?」懿奏曰:「乃太原人姓郝名昭字伯道現為雜霸將軍鎮守河西。」叡從之加郝伯道為鎮西將軍命把守陳倉道口遣使持詔去訖

위나라 임금 조예가 듣고는 곧 사마의를 불러 천()을 거둘 계책을 상의하였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아직 촉을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바야흐로 지금 날씨가 매우 뜨거워 촉의 군대는 반드시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 군대가 그 땅에 깊이 들어갔다가 그 들이 그 험한 요충지를 지키면 급하게 항복시키기 어렵습니다.”했다. 조예가 말하기를 만약 군대가 다시 와 침입해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신은 이미 이번에 제갈공명이 반드시 한신이 몰래 진창을 넘어가던 계책을 본받을 것입니다. 신이 한 사람을 천거하여 가서 진창길 입구에 성을 쌓고 지키게 하면 만에 한 가지도 잘못이 없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l가 구척이고 원숭이 팔에 활을 잘 쏘며 깊은 모략이 있습니다. 만약 제갈공명이 침입해 들어온다면 이 사람이 막기에 충분합니다.”했다. 조에가 크게 기뻐하며 물어 말하기를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하니 사마의가 아뢰어 말하기를 이는 곧 태원 사람이니 성은 학이고 이름은 소이며 자는 백도입니다. 현재 잡패장군이 되어 서하를 지키고 있습니다.”했다. 조예가 그것을 따라 학소를 진서장군으로 삼아 진창길 입구를 지키게 하였다. 사자를 보내 조서를 가지고 가게 하였다.

 

忽報揚州司馬大都督曹休上表說東吳審()陽太守周魴願以郡來降密遣人陳言七事說東吳可破乞早發兵取之叡就御床上拆開與司馬懿同觀懿奏曰:「此言極有理吳當滅矣臣願引一軍往助曹休。」忽班中一人奏曰:「吳人之言反覆不一未可深信周魴智謀之士必不肯降此特誘兵之詭計也。」眾視之乃建威將軍賈逵也懿曰:「此言亦不可不聽機會亦不可錯失。」魏主曰:「仲達可與賈逵同助曹休。」二人領命去訖於是曹休引大軍逕取皖賈逵引前將軍滿寵東皖太守胡質逕取陽城直向東關司馬懿引本部軍逕取江陵

홀연히 양주 사마 대도독 조휴가 표를 올려 동오 심(파)양태수 주방이 군을 들어(가지고) 항복하기를 원하여 비밀히 일곱 가지 일을 말했습니다. 동오를 깨트릴 수 있으니 빨리 군대를 출동하여 취할 것을 말한다고 청합니다. 했다. 조예가 임금의 자리에 나아가 봉투를 열고 사마의와 함께 보았다. 사마의가 아뢰어 말하기를 이 말은 지극히 이치가 있으니 오나라를 없앨 수 있습니다. 신이 일 군을 이끌고 가 조휴를 돕기를 원합니다.”했다. 홀연히 열 안에서 한 사람이 아뢰어 말하기를 오나라 사람의 말은 반복하고 한결같지 않으니 깊이 믿어서는 안 됩니다. 주방은 지혜와 꾀가 있는 선비이니 반드시 기꺼이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다만 군대를 꾀어내려는 속이는 계책일 뿐입니다.”했다. 무리들이 그를 보니 곧 건위장군 가규였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이 말 또한 듣지 않을 수 없고, 기회는 또한 잃을 수 없습니다.”했다. 위나라 임금이 말하기를 중달(사마의)은 가규와 같이 조휴를 돕는 것이 옳겠습니다.”했다. 두 사람이 명을 받고 갔다. 이에 조휴는 대군을 이끌고 재빨리 환성을 취하러 가고, 가규는 전장군 만총, 동환태수 호질을 이끌고 재빨리 양성을 취하러 가고 바로 동관으로 향하였다. 사마의는 본부의 군대를 이끌고 재빨리 강릉을 취하러 갔다.

 

卻說吳主孫權在武昌東關會多官商議曰:「今有鄱陽太守周魴密表奏稱魏揚州都督曹休有入寇之意今魴詐施詭計暗陳七事引誘魏兵深入重地可設伏兵擒之今魏兵分三路而來諸卿有何高見?」顧雍進曰:「此大任非陸伯言不敢當也。」

각설하고 오나라 임금 손권은 무창 동관에 있으면서 많은 관리를 만나 상의해 말하기를 지금 파양태수 주방이 비밀 표(보고서)가 있는데 위나라 양주 도독 조휴가 들어와 도적질 하려는 뜻이 있다고 아뢰고 있습니다. 지금 주방이 거짓으로 속이는 계책을 베풀어 몰래 일곱 가지 일을 진술하여 위나라 군대를 유인하여 깊이 중요한 땅으로 들어오면 복병으로 그들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지금 위나라 군대가 세 길로 나누어 오고 있으니 여러 경(신하)들은 무슨 좋은 의견이 있는가?”했다. 고옹이 나와 말하기를 이는 큰 임무로 육백언(육손)이 아니면 감히 맡을 수 없습니다.”했다.

 

權大喜乃召陸遜封為輔國大將軍平北都元帥統御林大兵攝行王事授以白旄黃鉞文武百官皆聽約束權親自與遜執鞭領命謝恩畢乃保二人為左右都督分兵以迎三道權問何人遜曰:「奮威將軍朱桓南將軍全琮二人可為輔佐。」權從之即命朱桓為左都督全琮為右都督都於是陸遜總率江南八十一州並荊湖之眾七十餘萬令朱桓在左全琮在右遜自居中三路進兵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곧 육손을 불러 보국대장군 평북도원수를 봉해 어림의 큰 군대를 통솔하게 하고, 왕사(왕의 일)를 대신 행하게 하고는 백모와 황월을 주고, 문무백관이 모두 (명을) 듣기를 약속하게 했다. 손권이 직접 육손에게 채찍을 집어 주었다. (육손이)명을 받고 은혜에 감사하는 예를 마치고 곧 두 사람을 추천하여 좌우도독으로 삼고 군대를 나누는 것으로서 세 길로 (적을) 맞이하려 하였다. 손권이 어떤 사람인지를 물으니 손권이 말하기를 “분위장군 주환, 타남장군 전종 두 사람으로 보조하게 할 만합니다.”했다. 손권이 그 말을 따라 곧 주환을 좌도독으로 삼고, 전종을 우도독으로 삼았다. 이에 육손은 강남 팔십일 주와 형호의 무리 칠십여만을 총 통솔하고, 주환은 왼쪽에 있고, 전종은 오른쪽에 있고, 육손은 가운데 자리하여 세 길로 군대를 진군시켰다.

 

朱桓獻策曰:「曹休以親見任非智勇之將也今聽周魴誘言深入重地元帥以兵擊之曹休必敗敗後必走兩條路左乃夾石右乃桂車此二路皆山僻小徑最為險峻某願與全子璜各引一軍伏於山險先以柴木大石塞斷其路曹休可擒矣若擒了曹休便長驅直進唾手而得壽春以窺許乃萬世一時也。」遜曰:「此非善策吾自有妙用。」於是朱桓懷不平而退遜令諸葛瑾等拒守江陵以敵司馬懿諸路俱各調撥停當

주환이 계책을 올려 말하기를 조휴는 친척으로서 임명되었을 뿐 지혜와 용맹을 갖춘 장수가 아닙니다. 지금 주방의 유인하는 말을 듣고 깊이 중요한 땅으로 들어오니 원수께서는 군대를 가지고 치시면 조휴는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패한 후에는 반드시 두 갈레 길로 달아날 것입니다. 왼쪽은 곧 협석이고, 오른쪽은 곧 계거입니다. 이 두 길은 모두 산이 구석지고, 길이 작아 가장 험준합니다. 제가 전자황과 각각 일 군을 이끌고 산이 험한 곳에 숨어있으면서 먼저 통나무와 큰 돌로 그 길을 막고 끊어 조휴를 사로잡을 것을 원합니다. 만약 조휴를 사로잡는다면 곧 길게 (군대를) 몰아 바로 진군하면 손에 침을 뱉듯이 (쉽게) 수춘을 얻는 것으로서 허도와 낙양을 엿보면 곧 만 세대에 한 번 있는 기회입니다.”했다. 육손이 말하기를 이는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나에게 오묘한 계책이 있습니다.”했다. 이에 주환은 불평을 품고 물러났다. 육손은 제갈근 등으로 하여금 강릉을 지키게 하는 것으로서 사마의를 대적하게 했다. 여러 방면이 모두 각각 (임무)배정을 마쳤다.

 

卻說曹休兵臨皖城周魴來迎逕到曹休帳下休問曰:「近得足下之書所陳七事深為有理奏聞天子故起大軍三路進發若得江東之地足下之功不小有人言足下多謀誠恐所言不實吾料足下必不欺我。」周魴大哭急掣從人所佩劍欲自刎休急止之魴仗劍而言曰:「吾所陳七事恨不能吐出心肝今反生疑必有吳人使反間之計也若聽其言吾必死矣吾之忠心惟天可表!」言訖又欲自刎曹休大驚慌忙抱住曰:「吾戲言耳足下何故如此?」魴乃用劍割髮擲於地曰:「吾以忠心待公公以吾為戲吾割父母所遺之髮以表此心。」

각설하고 조휴의 군대가 환성에 이르니 주방이 나와 맞이하여 재빨리 조휴의 군막에 이르렀다. 조휴가 물어 말하기를 최근에 그대의 글을 얻었는데 진술한 일곱 가지 일이 깊이(매우) 이치가 있어 천자께 아뢰었습니다. 그러므로 대군을 일으켜 세 길로 출발하였습니다. 만약 강동의 땅을 얻는다면 그대의 공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대는 꾀가 많아 진실로 말한 바가 진실이 아닐 것이라 의심된다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그대가 반드시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했다. 주방이 크게 곡하며 급히 따르던 사람이 차고 있던 검을 당겨 스스로 목을 찌르려 하니 조휴가 급히 제지하였다. 주방이 검을 집고 말하기를 내가 진술한 일곱 가지 일은 심장과 간을 토해낼 수 없음을 한탄합니다. 이제 도리어 의심하시니 반드시 오나라 사람이 반간계를 쓰는 것입니다. 만약 그 말을 들으신다면 나는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나의 충성스러운 마음은 오직 하늘만 드러낼 수 있습니다.”하는 말을 마치고 또 스스로 목을 찌르려 했다. 조휴가 크게 놀라 황망히 껴안고 말하기를 나의 희롱하는 말일 뿐입니다.. 그대는 무슨 이유로 이 같이 하는가?”했다. 주방이 곧 검을 써서 머리칼을 잘라 땅에 던지며 말하기를 나는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공(조휴)을 대하였는데 공은 나를 희롱하시니 내가 부모께서 남기신 머리칼을 자르는 것으로서 이 마음을 표시합니다.”했다.

 

曹休乃深信之設宴相待席罷周魴辭去忽報建威將軍賈逵來見休令入問曰:「汝來何為?」逵曰:「某料東吳之兵必盡屯皖城都督不可輕進待某兩下夾攻賊兵可破矣。」休怒曰:「汝欲奪吾功耶?」逵曰:「又聞周魴髮為誓此乃詐也昔要離斷臂刺殺慶忌未可深信。」休大怒曰:「吾正欲起兵汝何出此言以慢我軍心!」叱左右推出斬之眾將告曰:「未及進兵先斬大將於軍不利且乞暫免。」

조휴가 이에 깊이 그를 믿고 연회를 열어 대접하였다. 자리를 파하자 주방이 하직하고 갔다. 홀연히 건위장군 가규가 왔다고 보고하자 조휴가 들어오게 하여 물어 말하기를 너는 무엇하러 왔는가?”했다. 가규가 말하기를 제가 동오의 군대를 헤아려보니 반드시 모두 환성에 주둔할 것입니다. 도독께서는 가벼이 진군하지 마시고 저를 기다려 양쪽에서 협공하시면 적의 군대를 깨트릴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조휴가 노하여 말하기를 너는 나의 공을 빼앗으려 하는가?”하니 가규가 말하기를 또 들으니 주방이 머리칼로 맹세했다고 하는데 이는 곧 속이는 것입니다. 옛날 요리는 팔을 자르고 경기를 찔러 죽였으니 깊이 믿어서는 안 됩니다.”했다. 조휴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바로 군대를 일으키려 하는데 너는 어찌하여 이 말을 하는 것으로서 우리 군대의 마음을 게으르게 하는구나!”하고는 좌우에 질책하여 끌고 나가 목을 베게 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고하여 말하기를 진군에 이르지도 않았는데 먼저 대장을 죽인다면 군대에 이롭지 않습니다. 또한 잠시 면할 것을 청합니다.”했다.

 

休從之將賈逵兵留在寨中調用自引一軍來取東關時周魴聽知賈逵削去兵權暗喜曰:「曹休若用賈逵之言則東吳敗矣今天使我成功也!」即遣人密到皖城報知陸遜遜喚諸將聽令曰:「前面石亭雖是山路足可埋伏早先去占石亭闊處布成陣勢以待魏軍。」遂令徐盛為先鋒引兵前進

조휴가 그 말에 따라 가규의 군대를 억류하여 영채 안으로 이동하게 하고, 스스로는 일 군을 이끌고 동관을 취하러 갔다. 그때 주방은 가규가 병권을 빼앗겼다는 것을 듣고는 몰래 기뻐하며 말하기를 조휴가 만약 가규의 말을 썼다면 곧 동오는 패하였을 것이다! 지금 하늘이 나로 하여금 공을 이루게 하는구나!”하고는 곧 비밀리 사람을 환성에 보내 육손에게 보고하였다. 육손이 여러 장수를 불러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앞쪽의 석정은 비록 신길이나 충분히 매복할 수 있습니다. 빨리 먼저 가서 석정의 넓은 곳을 차지하고 진세를 펴 이루는 것으로서 위나라 군대를 기다리라.”하고는 마침내 서성으로 하여금 선봉이 되게 하여 군대를 이끌고 진군하게 했다.

 

卻說曹休命周魴引兵前進正行間休問曰:「前至何處?」魴曰前面石亭也以屯兵休從之遂率大軍並車仗等器盡赴石亭駐紮次日哨馬報道前面吳兵不知多少據住山口休大驚曰:「周魴言無兵為何有準備?」急尋魴問之人報周魴引數十人不知何處去了休大悔曰:「吾中賊之計矣雖然如此亦不足懼。」

각설하고 조휴는 주방으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행군하는 사이에 조휴가 물어 말하기를 앞으로 어디에 이르는가?”하니 주방이 말하기를 앞쪽은 석정인데 군대를 주둔할 수 있습니다.”하니 조휴가 그 말을 따라 마침내 대군을 인솔과 수레 등의 기구를 통솔하여 모두 석정에 나아가 주둔하였다. 다음날 정찰병이 보고하여 말하기를 앞쪽의 오나라 군대의 많고 적음을 알 수 없는데 산 입구를 차지하고 막고 있습니다.”했다. 조휴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주방은 군대가 없다고 말하였는데 어찌하여 준비가 있는가?”하고는 급히 주방을 찾아 물으려 하는데 사람이 보고하기를 주방이 수십 명을 이끌고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합니다. 했다. 조휴가 크게 후회하여 말하기를 내가 적의 계책에 빠졌구나! 비록 이 같으나 또한 두려워할 것 없다.”했다.

 

遂令大將張普為先鋒引兵數千來與吳兵交戰兩陣對圓張普出馬罵曰:「賊將早降!」徐盛出馬相迎戰無數合普抵檔不住勒馬收兵回見曹休言徐盛勇不可當休曰:「吾當以奇兵勝之。」就令張普引二萬軍伏於石亭之南又令薛喬引二萬軍伏於石亭之北。「明日吾自引一千兵搦戰卻佯輸詐敗誘到北山之前放炮為號三面夾攻必獲大勝二將受計各引二萬軍到晚埋伏去了

마침내 대장 장보로 하여금 선봉을 삼아 군대 수천을 이끌고 가 오나라 군대와 싸웠다. 두 진영이 둥글게 마주하니 장보가 말을 타고 나와 꾸짖어 말하기를 적장은 빨리 항복하라!”하니 서성이 말을 타고 나와 맞이하였다. 싸운 지 몇 합되지 않아 장보가 막아내지 못하고 말고삐를 당겨 말을 돌리고 군대를 거두어 돌아 가 조휴를 만나 서성이 용맹하여 당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조휴가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기병으로서 이길 것이다.”하고는 장보로 하여금 이만의 군대를 이끌고 석정의 남쪽에 숨어있게 하고, 또 설교로 하여금 이 만의 군대를 이끌고 석정의 북쪽에 숨어 있게 하였다. (조휴가 말하기를) “내일 내가 스스로 일천의 군대를 이끌고 도전한 후 거짓으로 패한 것처럼 속이고, 유인하여 북산 앞에 이르면 포를 놓아 신호하여 삼면에서 협공하면 반드시 크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했다. 두 장수가 계책을 받고 각각 이만의 군대를 이끌고 저녁때쯤 매복하러 갔다.

 

卻說陸遜喚朱桓全琮分付曰:「汝二人各引三萬軍從石亭山抄到曹休寨後放火為號吾親率大軍從中路而進可擒曹休也。」當日黃昏二將受計引兵而進二更時分朱桓引一軍正抄到魏寨後迎著張普伏兵普不知是吳兵逕來問時被朱桓一刀斬於馬下魏兵便走桓令後軍放火全琮引一軍抄到魏寨後正撞在薛喬陣裏就在那裡大殺一陣薛喬敗走魏兵大損奔回本寨後面朱桓全琮兩路殺來曹休寨中大亂自相衝擊

각설하고 육손은 주환과 전종을 불러 분부하여 말하기를 너희 두 사람은 각각 삼만의 군대를 이끌고, 석정의 산을 따라 조휴의 영채 뒤를 습격하고 불을 놓아 신호로 삼으라. 나는 직접 대군을 통솔하여 중간 길을 따라 진군하여 조휴를 사로잡을 것이다.”했다. 그날 황혼 무렵 두 장수가 계책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나아갔다. 이경 때쯤 주환이 일군을 이끌고 바로 위나라 영채 뒤를 습격하니 장보의 복병이 맞이하였다. 장보가 오나라 군대인 것을 알지 못하여 곧 물으러 올 때 주환이 한 칼에 베어 말에서 떨어뜨렸다. 위나라 군다가 곧 달아나니 주환이 후군으로 하여금 불을 놓게 하였다. 전종은 일군을 이끌고 위나라 영채 뒤를 습격하여 설교의 진 안을 바로 치고 그 안으로 나아가 한바탕 크게 죽였다. 설교가 패하고 달아나니 위나라 군대가 큰 손실을 입고 달아나 본 영채로 돌아갔다. 뒤쪽에서 주환, 전종이 두 길로 쇄도하니 조휴의 영채가 크게 어지러워져 스스로 치고받았다.

 

休慌上馬望夾石道中奔走徐盛引大隊軍馬從正路殺來魏兵死者不可勝數逃命者盡棄衣甲曹休大驚在夾石道中奮力奔走忽見一彪軍從小路衝出為首大將乃賈逵也休驚慌少息自愧曰:「吾不用公言果遭此敗!」逵曰:「都督可速出此道若被吳兵以木石塞斷吾等皆危矣!」

조휴가 황망히 말에 올라 협석 길을 향해 달아났다. 서성이 대대의 군마를 이끌고 정면의 길을 따라 쇄도해 왔다. 위나라 군대는 죽은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고, 도망하여 목숨을 구한 자들은 입었던 갑옷을 모두 버렸다. 조휴가 크게 놀라 협석의 길 중에서 힘을 다해 달아났다. 홀연히 한 떼의 군대가 작은 길로부터 치고 나왔는데 우두머리 대장은 곧 가규였다. 조휴가 놀라 허둥지둥하며 잠시 쉬면서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말하기를 내가 공(가규)의 말을 쓰지 않다가 과연 이런 패배를 만났습니다.”하니 가규가 말하기를 도독께서는 속히 이 길을 벗어나야 합니다. 만약 오나라 군대가 나무와 돌로 길을 막고 끊으면 우리들은 모두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했다.

 

於是曹休驟馬而行賈逵斷後逵於林木盛茂之處及險峻小徑多設旌旗以為疑兵及至徐盛趕到見山坡下閃出旗角疑有埋伏不敢追趕收兵而回因此救了曹休司馬懿聽知休敗亦引兵退去

이에 조휴는 말을 달려가고, 가규는 뒤를 끊었다. 가규는 숲이 무성한 곳과 험준한 작은 길에 정기를 많이 설치하여 군대를 의심하게 하였다. 서성이 뒤를 따라 이르러 산기슭 아래에 갑자기 깃발이 있는 것을 보고는 매복이 있을 것을 의심하여 감히 추격하지 못하고 군대를 거두어 돌아갔다. 이 때문에 조휴를 고할 수 있었다. 사마의는 조휴가 패하였다는 것을 듣고 또한 군대를 이끌고 물러갔다.

 

卻說陸遜正望捷音須臾徐盛朱桓全琮皆到所得車仗牛馬驢騾軍資器械不計其數降兵數萬餘人遜大喜即同太守周魴並諸將班師還吳吳主孫權領文武官僚出武昌城迎接以御蓋覆遜而入諸將盡皆陞賞權見周魴無髮慰勞曰:「卿斷髮成此大事功名當書於竹帛也。」即封周魴為關內侯大設筵會勞軍慶賀

각설하고 육손은 바로 승전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잠시 후 서성, 주환, 전종이 모드 이르렀다. 수레, 소와 말, 노새, 군자금, 무기 등을 얻은 것이 그 수릴 헤아릴 수 없고, 항복한 병졸이 수만 명이었다. 육손이 크게 기뻐하며 곧 태수 주방과 여러 장수들과 함께 군대를 돌려 오나라로 돌아갔다. 오나라 임금 손권이 문무 관료를 거느리고 무창성에 나와 영접하였는데 어개로서 육손에게 씌워 들어갔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승진 상을 받았다. 손권이 주방의 머리칼이 없는 것을 보고 위로해 말하기를 경이 머리칼을 잘라 이 큰 일을 이루었으니 공과 이름을 마땅히 죽간과 비단에 써 두어야한다.”하고는 곧 주방을 봉해 관내후로 삼고 크게 연회를 열어 군사를 위로하고 축하하였다.

 

陸遜奏曰今曹休大敗魏兵喪膽可修國書遣使入川教諸葛亮進兵攻之權從其言遂遣使齎書入川去正是只因東國能施計致令西川又動兵未知孔明再來伐魏勝負如何且看下文分解

육손이 아뢰어 말하기를 지금 조휴가 크게 패하여 위나라 군대는 담이 서늘할 것입니다. 국서를 써서 사자를 천()에 들어 가 제갈공명으로 하여금 군대를 진군시켜 공격하게 해야 합니다.”했다. 손권이 그 말을 따라 마침내 사자를 보내 글을 가지고 천()에 들어가게 하였다. 바로 이러하다. 동국(동오)이 계책을 잘 베풀더니 서천()으로 하여금 또 군대를 동원하게 하는구나! 제갈공명이 다시 와 위나라를 치고, 승부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겠다.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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