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八回:追漢軍王雙受誅,襲陳倉武侯取勝
제98회 한나라 군대를 추격하던 왕쌍을 죽이고, 진창을 습격한 재갈공명은 승리를 얻다.
卻說司馬懿奏曰:「臣嘗奏陛下,言孔明必出陳倉,故以郝昭守之。今果然矣。彼若從陳倉入寇運糧甚便。今幸有郝昭、王雙把守,不敢從此路運糧,其餘小道,搬運艱難。臣算蜀兵行糧止有一月,利在急戰。我軍只宜久守。陛下可降詔,令曹真堅守諸路關隘,不要出戰。不須一月,蜀兵自退。那時乘虛擊之。諸葛亮可擒也。」叡欣然曰:「卿既有先見之明,何不自引一軍以襲之?」懿曰:「臣非惜身重命,實欲存下此兵,以防東吳陸遜耳。孫權不久必僭號稱尊,如稱尊號,恐陛下伐之,定先入寇也。臣故欲以兵待之。」
각설하고 사마의가 아뢰어 말하기를 “신이 일찍이 폐하게 아뢰기를 제갈공명은 반드시 진창으로 나올 것이기 때문에 학소로서 지키게 하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과연 그러합니다. 그가 만약 진창으로부터 침입해 들어오면 식량을 운반하기가 매우 편합니다. 지금 다행히 학소와 왕쌍이 지키고 있어 감히 이 길을 따라 식량을 운반할 수 없고, 그 나머지 길은 운반하기 어렵습니다. 신이 헤아리기는 촉의 군대가 행군하면서 다만 일 개월 치를 소유하였을 뿐일 것이니 이로움이 급히 싸우는데 있습니다. 우리 군대는 다만 마땅히 오래 지켜야 합니다. 폐하께서 조서를 내려 조진으로 하여금 여러 길의 관을 굳게 지키고, 나가 싸우지 못하게 하시면 반드시 일 개월이 되지 않아 촉의 군대는 스스로 물러갈 것입니다. 그 때 빈틈을 타서 치면 제갈공명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조예가 기꺼워하며 말하기를 “경이 이미 선견의 밝음이 있는데 어찌하여 스스로 일 군을 이끌고 공격하지 않습니까?”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신이 몸을 아끼고 목숨을 중요하게 여겨서가 아니라 실로 이 군대를 남겨둔 것은 오나라 육손을 방비하고자 해서일 뿐입니다. 손권은 오래지 않아 천자를 참칭할 것입니다. 만약 천자를 참칭한다면 폐하께서 칠 것을 걱정하여 먼저 침입할 것입니다. 신이 그러므로 군대로서 기다리는 것입니다.”했다.
正言間,忽近臣奏曰:「曹都督奏報軍情。」懿曰:「陛下可即令人告戒曹真:凡追趕蜀兵,必須觀其虛實,不可深入重地,以中諸葛亮之計。」叡即時下詔,遣太常卿韓暨持節告戒曹真:「切不可戰,務在謹守;只待蜀兵退去,方可擊之。」司馬懿送韓暨於城外,囑之曰:「吾以此功讓與子丹,公見子丹,休言是吾所陳之意,只道天子降詔,教保守為上。追趕之人,切要仔細,勿遣性急氣躁者追之。」暨辭去。
말을 나누고 있는데 홀연히 근신이 아뢰어 말하기를 “조도독이 군대의 상황을 보고하였습니다.”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곧 사람을 시켜 조진을 경계시키십시오. 무릇 촉의 군대를 쫓을 때는 반드시 허실을 보아야 하고 깊이 요해지에 들어가는 것으로서 제갈공명의 계책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했다. 조예가 즉시 조서를 내려 태상경 한기를 보내 지절을 가지고 조진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절대로 싸워서는 안 되고, 힘써야 할 것은 삼가 지킴에 달려있으니 촉의 군대가 물러나기를 기다렸다가 바야흐로 공격해야 합니다.”했다. 사마의가 한기를 성 밖에서 환송하며 부탁하여 말하기를 “나는 이로서 공을 자단(조진)에게 양보하였으나, 공(한기)이 자단(조진)을 만나면 내가 진술한 바의 뜻을 말하지 마시고 다만 천자께서 조서를 내려 지키는 것만을 상책으로 삼으라 하셨다고만 말하십시오. 뒤 따르는 사람도 반드시 자세하게 하여(자세히 살펴) 성급하거나 기질이 조급한 자를 따르게 해서는 안 됩니다.”했다. 한기가 하직하고 갔다.
卻說曹真正升帳議事,忽報天子遣太常卿韓暨持節至。真出寨接入;受詔已畢,退與郭淮、孫禮計議。淮笑曰:「此乃司馬仲達之見也。」真曰:「此見若何?」淮曰:「此言深識諸葛亮用兵之法。久後能禦蜀兵者,必仲達也。」真曰:「倘蜀兵不退,又將如何?」淮曰:「可密令人去教王雙,引兵於小路哨巡,彼自不敢運糧。待其糧盡兵退,乘勢追擊,可獲全勝。」
각설하고 조진이 군막에 올라 일을 의논하고 있는데 홀연히 천자가 태상경 한길이 지절을 가지고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조진이 영채를 나가 영접해 들어 가 조서를 받는 (예를)마친 후 물러나 곽회, 손례와 계책을 의논하였다. 곽회가 웃으며 말하기를 “이는 곧 사마중달(사마의)의 경해입니다.”했다. 조진이 말하기를 “이 견해가 어떠한가?”하니 곽회가 말하기를 “이 말은 깊이 제갈공명이 군대를 운용하는 법을 아는 것입니다. 오래 후에 촉의 군대를 막을 수 있는 자는 반드시 중달(사마의)일 것입니다.”했다. 조진이 말하기를 “만약 촉의 군대가 물러나지 않는다면 또 장차 어떻게 해야 합니까?”했다. 곽회가 말하기를 “비밀리 사람을 시켜 왕쌍에게 가 군대를 이끌고 소로(작은 길)를 순찰하게 하시면 그들은 감히 식량을 운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의 식량이 다하여 군대를 물리는 것을 기다렸다가 형세를 타고 공격하신다면 완전한 이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孫禮曰:「某去祁山虛裝做運糧兵,車上盡裝乾柴茅草,以硫黃燄硝灌之,卻教人虛報隴西運糧到。若蜀兵無糧,必然來搶。待入其中,放火燒車,外以伏兵應之,可勝矣。」真喜曰:「此計大妙!」即令孫禮引兵依計而行。又遣人教王雙於小路巡哨,郭淮引兵提調箕谷、街亭,令諸路軍馬把守險要。真又令張遼子張虎為先鋒,樂進子樂綝為副先鋒,同守頭營,不許出戰。
손례가 말하기를 “제가 기산에 가 가짜로 식량을 운반하는 군대를 가장하고, 수레 위는 모두 마른 장작과 띠풀을 싣고, 유황과 염초로 들이 부은 뒤 사람을 시켜 거짓으로 농서의 식량이 이르렀다고 알리게 합니다. 만약 촉의 군대에 식량이 없다면 반드시 와서 빼앗을 것입니다. 그 안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불을 놓아 수레를 태우고, 밖에서는 복병으로 대응하면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조진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 계책이 크게 묘하구나!”하고는 곧 손례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계책에 의해 가게 하였다. 또 사람을 보내 왕쌍으로 하여금 소로를 순찰하게 하고 곽회는 군대를 이끌고 기곡과 가정으로 가도록 지휘하고 여러 방면의 군마로 하여금 요충지를 지키게 하였다. 조진이 또 장요의 아들 장호로 하여금 선봉이 되게 하고, 악진의 아들 악침을 부선봉으로 삼아 같이 지휘부 군영을 지키게 하고, 나가 싸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卻說孔明在祁山寨中,每日令人挑戰,魏兵堅守不出。孔明喚姜維商議曰:「魏兵堅守不出,是料吾軍中無糧也。今陳倉轉運不通,其餘小路盤涉艱難,吾算隨軍糧草,不敷一月用度,如之奈何?」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기산 안에 있으면서 매일 사람을 시켜 싸움을 걸었으나 위나라 군대는 굳게 지키기만 하고 나오지 않았다. 제갈공명이 강유를 불러 상의하여 말하기를 “위나라 군대가 지키기만 하고 나오지 않으니 이는 우리 군대 안에 식량이 없는 것을 헤아린 것이다. 지금 진창의 식량 운반로가 통하지 않고, 그 나머지 작은 길은 식량을 운반하여 건너기 어렵다. 내가 계산해보니 군대를 따르는 식량과 말먹이 풀이 한 달의 용도에 부족하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했다.
正躊躇間,忽報隴西魏軍運糧數千車於祁山之西,運糧官乃孫禮也。孔明曰:「其人如何?」有魏人告曰:「此人曾隨魏主出獵於大石山。忽驚起一猛虎,直奔御前,孫禮下馬拔劍斬之。從此封為上將軍。乃曹真心腹人也」。孔明笑曰:「此是魏將料吾乏糧,故用此計。車上裝載者,必是茅草引火之物。吾平生專用火攻,彼乃欲以此計誘我耶?彼若知吾軍去劫糧草,必來劫我寨矣。可將計就計而行。」遂喚馬岱分付曰:「汝引三千軍逕到魏兵屯糧之所,不可入營,但於上風頭放火。若燒著車仗,魏兵必來圍吾寨。」又差馬忠、張嶷各引五千兵在外圍住,內外夾攻。
주저하는 사이에 홀연히 농서의 위나라 군대가 식량 수 천 수레를 기산의 서쪽에서 운반하는데 식량을 운반하는 관은 곧 손례라고 보고하였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하니 어떤 위나라 사람이 고해 말하기를 “이 사람은 일찍이 위나라 임금을 따라 대석산에서 사냥하는데 홀연히 한 사나운 범이 놀라 일어나 곧바로 위나라 임금 앞으로 뛰어 나왔습니다. (그 때)손례가 말에서 내려 검을 뽑아 베었습니다. 이 때문에 봉하여 상장군이 되었으니 곧 조진의 심복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이는 위나라 장수가 우리의 식량이 부족한 것을 헤아리고 이런 계책을 쓴 것이다. 수레 위에 실은 것은 반드시 띠풀로 불을 끌어당기는(불붙기 쉬운) 물건일 것이다. 내가 평생동안 오로지 화공을 썼는데 그가 곧 이 계책(화공)으로 나를 유인할 수 있겠는가? 그는 만약 우리 군대가 식량과 말먹이 풀을 빼앗으러 가면 반드시 와서 우리 영채를 습격하려 할 것이다. 장계취계를 행할 만하다.”하고는 마침내 마대를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너는 삼천의 군대를 이끌고 지름길로 위나라 군대가 식량을 쌓아 둔 곳으로 가되 영으로는 들어가서는 안 된다. 다만 위에서 바람이 불면 불을 놓으라. 만약 수레와 병기가 불타면 위나라 군대는 반드시 와서 우리 영채를 포위할 것이다.”하고, 또 마충과 장의를 보내 각각 오천의 군대를 이끌고 밖에서 포위하여 안과 밖에서 협공하게 했다.
三人受計去了。又喚關興、張苞分付曰:「魏兵頭營接連四通之路。今晚若山西火起,魏兵必來截吾營。汝二人卻伏於魏寨左右。等它出寨,汝二人便可劫之。又喚吳班、吳懿分付曰:「汝二人各引一軍伏於營外。若魏兵到,可截其歸路。」
세 사람이 계책을 받고 갔다. 또 관흥, 장포를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위나라 군대의 두영(본부)은 사방으로 통하는 길에 붙어 있다. 오늘 저녁 산 서쪽에서 불이 일어나면 위나라 군대가 반드시 와서 우리 진영을 끊을 것이다. 너희 두 사람은 위나라 영채 좌우에 매복하고 있으라. 그들이 영채를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너희 두 사람은 곧 공격하라. 또 오반, 오의를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너희 두 사람은 각각 일군을 이끌고 진영 밖에 매복해 있으라. 만약 위나라 군대가 이르면 그 돌아가는 길을 끊으라.“했다.
孔明分撥已畢,自在祁山上憑高而坐。魏兵探知蜀兵要來劫糧,慌忙報與孫禮。禮令人飛報曹真。真遣人去頭營分付看張虎、樂綝:「看今夜山西火起,蜀兵必來救應。可以出軍,如此如此。」二人受計,令人登樓專看火號。
제갈공명이 할당하기를 마친 뒤 자신은 기산 위에 높은 곳에 의지해 앉아 있었다. 위나라 군대는 촉의 군대가 식량을 약탈하려 한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황망히 손례에게 보고하였다. 손례가 사람으로 하여금 재빨리 조진에게 보고하게 했다. 조진이 사람을 보내 두영(본부진영)에 가서 장호, 악침에게 분부하기를 “ 오늘 밤 산 서쪽에서 불이 일어나면 촉의 군대가 반드시 와서 구원할 것이다. (그때) 군대를 내어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했다. 두 사람이 계책을 받고 사람으로 하여금 루에 올라 불로 신호하는 것을 보게 하였다.
卻說孫禮把軍伏於山西,只待蜀兵到。是夜二更馬岱引三千兵來,人皆銜枚,馬皆勒口。逕到山西,見許多車仗,重重疊疊,攢繞成營,車仗虛插旌旗。正值西南風起,岱令軍士逕去營南放火,車仗盡著,光火沖天。
각설하고 손례는 군대를 산 서쪽에 매복하고 다만 촉의 군대가 이르기를 기다렸다. 이날 밤 이경에 마대가 삼천의 군대를 이끌고 오는데 사람은 모두 막대를 물고 말은 모두 재갈을 물렸다. 좁은 길로 산 서쪽에 이르러 많은 수레와 병기를 층층이 쌓아 둘러 진영을 이루었고, 수레와 병기 빈 곳에는 깃발이 꼿혀 있는 것을 보았다. 바로 서남풍이 일어나는 것을 만나자 마대는 군사로 하여금 좁은 길로 진영의 남쪽으로 가 불을 놓게 하니 (불이)수레와 병기에 붙어 불빛이 하늘로 치솟았다.
孫禮只道蜀兵到魏寨內放火號,急引兵一齊掩至。背後鼓角喧天,兩路兵殺來,乃是馬忠、張嶷把魏兵圍在核心。孫禮大驚。又聽得魏軍中喊聲起,一彪軍從火光中殺來,乃是馬岱。內外夾攻,魏兵大敗。火緊風急,人馬亂竄,死者無數。孫禮引軍中傷軍,沖煙冒火而走。
손례는 촉의 군대가 위나라 영채 안에 이르러 불을 놓은 신호로 생각하고 급히 군대를 이끌고 일제히 기습하였다. 뒤에서 북과 뿔피리 소리가 하늘에 진동하며 두 길로 군대가 쇄도해 오니 곧 마충과 장의가 위나라 군대를 포위하여 가운데 있게 하였다. 손례는 크게 놀랐다. 또 위나라 군대 안에서 함성이 일어나며 한 떼의 군대가 불빛 안에서 쇄도해 오니 곧 마대였다. 안과 밖에서 협공하니 위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불이 맹렬하고 바람이 급하게 부니 사람과 말이 어지럽게 달아나 죽은 자를 헤아릴 수 없었다. 손례가 군대의 다친 군대를 이끌고 연기를 뚫고 불을 무릅쓰며 달아났다.
卻說張虎在營中,望見火光沖天,大開寨門,與樂綝盡引人馬,殺奔蜀寨來,寨中不見一人;急收軍回時,吳班、吳懿兩路兵殺出,斷其歸路。張、樂二將急衝出軍圍,奔回本寨,只見土城之上,箭如非(飛)蝗。原來卻被關興、張苞襲了營寨。魏兵大敗,皆投曹真寨來,方欲入寨,只見一彪敗軍飛奔而來,乃是孫禮;遂同入寨見真,各言中計之事。
각설하고 장호는 진영 안에 있다가 불빛이 하늘에 치솟는 것을 보고는 크게 영채의 문을 열고 악침과 함께 모든 인마를 이끌고 촉의 영채에 달려 들어갔는데 영채 안에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급히 군대를 거두어 돌아갈 때 오반, 오의가 두 길로 달려와 그 돌아가는 길을 끊었다. 장호와 악침 두 장수가 급히 군대의 포위를 치고 나와 도망하여 본 영채로 돌아가는데 토성 위에서 화살이 메뚜기 떼가 날 듯 하는 것을 보았다. 알고 보니 관흥과 장포에게 영채를 습격당한 것이었다. 위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고 모두 조진의 영채에 가 바야흐로 영채에 들어가려 하는데 한 떼의 패함 군대가 나는 듯이 달려오니 곧 손례였다. 마침내 같이 영채에 들어 가 조진을 뵙고 각각 계책에 빠진 일을 말하였다.
真聽知,謹守大寨,更不出戰。蜀兵得勝,回見孔明。孔明密令人授計與魏延,一面教拔寨齊起。楊儀曰:「今已大勝,挫盡魏兵銳氣,何故反欲收兵?」孔明曰:「吾兵無糧,利在急戰。今彼堅守不出,吾受其病矣。彼今雖暫時兵敗,中原必有增益。若以輕騎襲吾糧道,那時要歸不能。今乘魏軍兵敗,不敢正視蜀兵,便可出其不意,乘機退去。所憂者但魏延一軍,在陳倉道口拒住王雙,急不能脫身。吾已令人授以密計殺王雙,使魏人不敢來追,只令後隊先行。」當夜孔明只留金鼓守在寨中打更。一夜兵已盡退,只落空營。
조진이 듣고는 큰 영채를 엄히 지키며 다시 나가 싸우지 않았다. 촉의 군대가 승리를 얻고는 돌아 가 제갈공명을 뵈었다. 제갈공명은 비밀리 사람을 시켜 계책을 위연에게 주고, 한편으로 영채를 뽑아(뜯어) 일제히 일어나게(떠나게) 하였다. 양의가 말하기를 “지금 이미 큰 승리를 거두어 위나라 군대의 예기가 모두 꺽였는데 무슨 이유로 도리어 군대를 거두려 하십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우리 군대는 식량이 없고, 이로움은 급히 싸우는데 달려 있습니다. 지금 그(조진)가 굳게 지키고 나오지 않으니 내가 그 병이 들 지경입니다. 그가 지금 비록 잠시 군대가 패하였으나 중원은 반드시 (군대를)더함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가벼운 무장의 기병으로 우리 식량운반 길을 습격하면 그 때는 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위나라 군대가 패하여 감히 촉의 군대를 바로보지 못할 것이니 곧 그 불의에 나가 기회를 타고 물러나려는 것입니다. 걱정되는 것은 다만 위연의 일군이 진창길의 입구에서 왕쌍을 막고 있어 급히 몸을 뺄 수 없습니다. 내가 이미 사람을 시켜 비밀계책을 주어 왕쌍을 죽이게 하여 위나라 사람으로 하여금 감히 쫓아오지 못하게 하고, 뒤의 부대로 하여금 먼저가게 한 것입니다.”했다. 그날 밤 제갈공명은 북과 징을 담당하는 이를 남겨 영채 안에 있으면서 시각에 따라 치게 하였다. 하룻밤 사이에 군대가 임 모도 물러났고, 다만 진영을 비워 두었다.
卻說曹真正在寨中憂悶,忽報左將軍張郃領兵到。郃下馬入帳謂真曰:「某奉聖旨,特來聽調。」真曰:「曾別仲達否?」郃曰:「仲達分付云:『吾軍勝,蜀兵必不退;若吾軍敗,蜀兵必即去矣。』今吾軍失利,都督曾往哨探蜀兵消息否?」真曰:「未也。」於是即令人往探之,果是虛營,只插著數十面旌旗,兵已去二日也。曹真懊悔莫及。
각설하고 조진은 영채 안에서 근심하고 있는데 홀연히 좌장군 장합이 군대를 거느리고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장합이 말에서 내려 군막에 들어 가 조진에게 일러 말하기를 “제가 천자의 명을 받들어 특히 와서 준비(전황을)를 듣고자 합니다.”했다. 조진이 말하기를 “일찍이 중달(사마의)과 작별하였습니까?”하니 장합이 말하기를 “중달이 분부하기를 ‘우리 군대가 이기면 촉의 군대는 반드시 물러나지 않을 것이고, 만약 우리 군대가 패한다면 촉의 군대는 반드시 곧 갈 것입니다.’했습니다. 지금 우리 군대가 이로움을 잃었으니 도독께서는 일찍이 가서 촉의 군대 소식을 정찰하였습니까?”했다. 조진이 말하기를 “아닙니다.”하고는 이에 곧 사람을 시켜 탐지하게 하니 과연 영채가 비었고, 다만 수십개의 깃발만 꼿혀 있을 뿐 군대는 이미 이틀 전에 간 뒤였다. 조진이 후회해 마지 않았다.
且說魏延受了密計,當夜二更拔寨,急回漢中。早有細作報知王雙,雙大驅軍馬,併力追趕,追到二十餘里,看看趕上,且魏延旗號在前,大叫曰:「魏延休走!」蜀兵更不回頭。雙拍馬趕來。背後魏兵大叫曰:「城外寨中火起,恐中敵人奸計。」
각설하고 위연은 비밀계책을 받고 그날 밤 이경에 영채를 거두어 급히 안중으로 돌아갔다. 일찍 세작(첩자)이 있어 왕쌍에게 보고하니 왕쌍이 군마를 몰아 힘을 합쳐 쫓아가 이십여리에 이르러 막 따라 잡아 위연의 깃발이 앞에 있는 것을 보고는 크게 외쳐 말하기를 “위연은 달아나지 말라!”했으나 촉의 군대가 다시 머리를 돌리지 않았다. 왕쌍이 말에 박차를 가하여 쫓아갔다. 뒤에서 위나라 군대가 외쳐 말하기를 “성 밖 영채 안에 불이 일어나니 적의 간사한 계책에 빠질까 두렵습니다.”했다.
雙勒馬急回時,只見一片火光沖天,慌令退兵。行到山坡左側,忽一騎馬從林中驟出,大叱曰:「魏延再(在)此!」王雙大驚,措手不及,被延一刀砍於馬下。魏兵疑有埋伏,四散逃走。延手下只有三十騎人馬,望漢中緩緩而行。後人有詩讚曰:
왕쌍이 말고삐를 당겨 급히 돌아가려할 때 한 조각 불빛이 하늘에 치솟는 것을 보고 황급히 군대를 물리게 하였다. 행군하여 산기슭 왼 쪽에 이르렀을 때 홀연히 한 사람이 말을 타고 숲 속에서 달려 나와 크게 외쳐 말하기를 “위연이 여기에 있다!”하니 왕쌍이 크게 놀라 어찌할 줄 모르고 위연의 한 칼에 베어져 말에서 떨어졌다. 위나라 군대가 매복이 있는 것을 의심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위연의 부하는 단지 삼십 기의 부하가 있었을 뿐으로 한중을 향해 천천히 갔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찬양하여 말하기를
孔明妙算勝孫龐,耿若長星照一方。進退行兵神莫測,陳倉道口斬王雙。
제갈공명의 신묘한 계책은 손빈과 방연보다 낫고, 발기로는 혜성이 한 지방을 비추는 듯하다. 나아가고 물러나는 군대 운용은 귀신도 헤아리지 못하니 진창도 입구에서 왕쌍을 베어 죽였다.
原來魏延受了孔明妙計,先教存下三十騎,伏於王雙營邊;只待王雙起兵趕時,卻去他營中放火;待他回營,出其不意,突出斬之。魏延引兵斬了王雙,回到漢中見孔明,交割了人馬。孔明設宴大會,不在話下。
알고 보니 위연이 제갈공명의 신묘한 계책을 받고 먼저 부하 삼십 기로 하여금 왕쌍의 진영 곁에 매복하게 하고 왕쌍이 군대를 일으켜 쫓아가는 때를 기다리다 그(왕쌍)가 떠나자 진영 안에 불을 놓았고, 그가 진영에 돌아오는 것을 다리다 불의에 튀어 나와 베어 죽인 것이다. 위연이 군대를 이끌고 왕쌍을 죽이고, 돌아 가 한중에 이르러 제갈공명을 뵙고 인마를 인계하였다. 제갈공명이 연회를 열고 크게 모은 것은 말할 것이 없다.
且說張郃追蜀兵不上,回到寨中。忽有陳倉城郝昭差人申報,言王雙被斬。曹真聞之,傷心不已,因此憂成疾病;遂回洛陽,命郭淮、孫禮、張郃守長安諸道。
각설하고 장합은 촉의 군대를 뒤쫓았으나 미치지 못하고 돌아 와 영채 안에 이르렀다. 홀연히 진창성의 학소가 사람을 보내 보고하기를 왕쌍이 죽음을 당하였다고 말하였다. 조진이 그것을 듣고 마음아파하기를 그치지 못하였다. 이 근심 때문에 병이 들어 마침내 낙양으로 돌아가고 곽회, 손례, 장합으로 하여금 장안의 여러 길을 지키게 하였다.
卻說吳主孫權設朝,有細作人報知:「蜀諸葛承相出兵兩次,魏都督曹真兵損將亡。」於是群臣皆勸吳王興師伐魏,以圖中原,權猶豫未決。張昭奏曰:「近聞武昌東山,鳳凰來儀;大江之中,黃龍屢現。主公德配唐虞,明並文、武,可即皇帝位,然後興兵。」多官皆應曰:「子布之言是也。」遂選定夏四月丙寅日,築臺於武昌南郊。是日群臣請權登壇即皇帝位,改黃武八年為黃龍元年。諡父孫堅為武烈皇帝。母吳氏為武烈皇后。兄孫策為長沙桓王。立子孫登為皇太子。命諸葛瑾長子諸葛恪為太子左輔,張昭次子張休為太子右弼。
각설하고 오나라 임금 손권이 조회를 열었는데 어떤 세작(첩자)이 보고하기를 “초긔 제갈공명 승상이 두 번 군대를 내었는데 위나라 도독 조진은 군대를 잃고 장수는 죽었습니다.”했다. 이에 여러 신하들이 모두 오나라 왕에게 군대를 일으켜 위나라를 치는 것으로서 중원을 도모할 것을 권하였다. 손권은 주저하며 결정하지 못하였다. 장소가 아뢰어 말하기를 “근자에 듣자니 무창 동쪽 산에 봉황이 날아 와 춤추었고, 대강(장강) 안에서 황룡이 여러 번 나타났습니다. 주공(손권)의 덕은 당우에 짝하고, 밝음은 문왕, 무왕과 같으니 황제의 자리에 오를 만합니다. 그런 후에 군대를 일으켜야 합니다.”했다. 많은 관리들이 모두 답하여 말하기를 “자포(장소)의 말이 옳습니다.”했다. 마침내 여름 사월 병인일을 선정하여 무창 남쪽 교지에 대를 쌓았다. 이 날 여러 신하들이 손권을 청해 단에 올라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황무 팔년을 황룡 원년으로 개원하고 아버지 손견을 무열황제, 어머니 오씨를 무열황후라 시호하고, 형 손책을 장사환왕이라 했다. 아들 손등을 황태자로 삼고, 제갈근의 장자 제갈각을 태자 좌보로 삼고, 장소의 차자 장휴를 태자 우필로 삼았다.
恪字元遜,身長七尺,極聰明,善應對。權甚愛之。年六歲時,值東吳緣筵會,恪隨父在座。權見諸葛謹面長,乃令人牽一驢來,用粉筆書其面曰:諸葛子瑜。眾皆大笑。恪趨至前,取粉筆書二字於其下曰:「諸葛子謹之驢。」滿座之人,無不驚訝。權大喜,遂將驢賜之。
제갈각은 자가 원손으로 키가 칠척이고, 지극히 총명하고 응대를 잘 하였다. 손권이 그를 매우 사랑하였다. 여섯 살 때 동오가 연회를 열었을 때 제갈각이 아버지를 따라 자리에 있었다. 손권은 제잘근의 얼굴이 긴 것을 보고 이에 사람을 시켜 한 마리 당나귀를 끌고 오게 하여 분을 써서 그 얼굴에 붓으로 쓰시를 ‘제갈자유(제갈근)’라 쓰게 했다. 무리들이 크게 웃었다. 제갈각이 달려 앞에 이르러 분과 붓을 가져다 그 아래에 두 글자를 썼는데 ‘제갈자근지려(제갈근의 당나귀)’라 했다. 자리에 가득한 사람들이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손권이 크게 기뻐하고 마침내 당나귀를 (제갈각에게)내렸다.
又一日大晏(宴)官僚,權命恪把盞。巡至張昭面前,昭不飲曰:「此非養老之禮也。」權謂恪曰:「汝能強子布飲乎?」恪領命,乃謂昭曰:「昔姜尚父年九十,秉旄仗鉞,未嘗言老。今臨陣之日,先生在後;飲酒之日,先生在前;何謂不養老也?」張昭無言可答,只得強飲。權因此愛之,故命撫太子。張昭左佐吳王,位列三公之上,故以其子張休為太子右弼。又以顧雍為丞相,陸遜為上將軍,輔太子守武昌。
또 하루는 관료들에게 크게 연회를 열었는데 손권은 제갈각으로 하여금 잔을 잡게 하였다. (술잔을) 돌리며 장소 앞에 이르렀는데 장소기 마시지 않고 말하기를 “이는 노인을 봉양하는 예가 아니다.”하니 손권이 제갈각에게 일러 말하기를 “너는 억지로 자포(장소)에게 마시게 할 수 있는가?”하니 제갈각이 명을 받고 곧 장소에게 일러 말하기를 “옛날 강상부(강태공)는 나이 구십 세에 깃발을 잡고, 도끼를 짚었는데도(군대를 지휘하였는데도) 일찍이 늙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는 진에 임하는 날(전쟁에 나서는 날)에는 선생을 뒤에 있게 하고, 술 마시는 날에는 선생을 앞에 있게 하니 어찌 노인을 봉양하지 않는다고 말하겠습니까?” 장소는 답할 말이 없어 억지로 마실 뿐이었다. 손권이 이 때문에 그를 아껴 태자를 보좌하게 한 것이다. 장소는 오나라 왕을 보좌하여 지위가 삼공의 위에 있었기 때문에 그 아들 장휴로 하여금 채자를 보필하게 한 것이다. 또 고옹을 승상으로 삼고, 육손을 상장군으로 삼아 태자를 도와 무창을 지키게 하였다.
權復還建業。群臣共議伐魏之策。張昭奏曰:「陛下初登寶位,為未可動兵。只宜修文偃武,增設學校,以安民心;緩緩圖也。」
손권은 다시 건업으로 돌아갔다. 여러 신하들이 함께 위나라를 칠 계책을 의논하였다. 장소가 아뢰어 말하기를 “폐하께서 처음 보위에 올랐으니 군대를 동원해서는 안 됩니다. 마땅히 문을 닦고 무를 억제하고, 학교를 증설하는 것으로서 민심을 안정시키고 천천히 도모해야 합니다.”했다.
權從其言,即令使命星夜入川,來見後主。禮畢,細奏其事。後主聞知,遂與群臣商議。眾議皆謂孫權僭越,宜絕其盟好。蔣琬曰:「可令人問於丞相。」後主即遣使到漢中問孔明。孔明曰:「可令人齎禮物入吳作賀,乞遣陸遜興師伐魏。魏必令司馬懿拒之。懿若南拒東吳,我再出祁山,長安可圖也。」後主依言,遂令太尉楊震,將名馬玉帶,金珠寶貝,入吳作賀。震至東吳,見了孫權,呈上國書。權大喜,設晏相待,打發回蜀。權召陸遜入,告以西蜀約會興伐魏之事。遜曰:「此乃孔明懼司馬懿之謀也。既與同謀,不得不從。今卻虛作起兵之勢,遙與蜀兵為應。待孔明攻魏急,吾可乘虛取中原也。」即時下令教荊、襄各處都要訓練人馬,擇日興師。
손권은 그 말을 따라 곧 사신으로 하여금 밤낮으로 천(촉)에 들어가 후주를 뵙게 하였다. 예를 마치고 그 일을 자세히 아뢰었다. 후주가 들어 알고 마침내 여러 신하들과 상의하였다. 무리들이 의논하고는 모두 손권이 참람되니 마땅히 그 맹호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완이 말하기를 “사람을 시켜 승상에게 물어야 합니다.”하니 후주가 곧 사자를 보내 한중에 이르러 제갈공명에게 묻게 하였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사람으로 하여금 예물을 가지고 오나라에 들어 가 축하하게 하고, 육손을 보내 군대를 일으켜 위나라를 치돌고 청해야 합니다. 위나라는 반드시 사마의로 하여금 막게할 것입니다. 사마의가 만약 남쪽으로 동오를 막으면 우리는 다시 기산을 나와 장안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했다. 후주가 말에 (제갈공명의 말) 기대어 마침내 태위 양진으로 하여금 명마와 옥대, 금, 구슬 등의 보배를 가지고 오나라에 들어 가 축하하게 했다. 양진이 동오에 이르러 손권을 뵙고 국서를 올렸다.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연회를 베풀어 대접하고 촉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손권이 육손을 불러 들어오자 서촉과 약속하여 위나라를 치는 일을 알렸다. 육손이 말하기를 “이는 곧 제갈공명이 사마의의 꾀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같이 도모하기로 하셨으니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거짓으로 군대를 일으키는 형세를 만들고 멀리서 촉의 군대에 대응하는 척 해야 합니다. 제갈공명이 위나라를 공격하여 위급하게 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는 빈틈을 타고 중원을 취해야 합니다.”했다. 즉시 명령을 내려 형주와 양양 각 곳 요충지의 인마를 훈련시키게 하고 날을 가려 군대를 일으키게 하였다.
卻說陳震回到漢中,報知孔明。孔明尚憂陳倉不可輕進,先令人去哨探。回報說:「陳倉城中郝昭病重。」孔明曰:「大事成矣。」遂喚魏延、姜維分付曰:「汝二人領五千兵,星夜直奔陳倉城下;如見火起,併力攻城。」二人俱未深信,又來問曰:「何日可行?」孔明曰:「三日都要完備;不須辭我,即便起行。」二人受計去了。又喚關興、張苞至,附耳低言,如此如此,二人各受密計而去。
각설하고 진진이 돌아 와 한중에 이르러 제갈공명에게 보고하였다. 제갈공명은 일찍이 진창을 근심하여 가벼이 나아가지 못하고, 먼저 사람으로 하여금 가서 정탐하게 하였다. (정탐자가)돌아 와 보고하기를 “진창성 안 학소의 병이 중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대사가 이루어지겠구나!”하고는 드디어 위연과 강유를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너희 두 사람은 오천의 군대를 거느리고 밤낮으로 진창성 아래로 달려가라. 만약 불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힘을 합쳐 성을 공격하라”했다. 두 사람이 모두 깊이 믿지 못하고 또 와서 물어 말하기를 “어느 날에 가야 합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삼일 안에 모두 완전하게 준비하고 나를 하직할 필요 없이 즉시 출발하라.”했다. 주 사람이 게책을 받고 갔다. 또 관흥, 장포를 불로 이르자 귀를 가까이하여 작은 소리로 이렇게 저렇게 하라 하니 두 사람이 각각 비밀계책을 받고 갔다.
且說郭淮聞郝昭病重,乃與張郃商議曰:「郝昭病重,你可速去替他。我自寫表申奏朝廷,別行定奪。」張郃引著三千兵,急來替郝昭。
각설하고 곽회는 학소의 병이 중하다는 것을 듣고 곧 장합과 상의하여 말하기를 “학소의 병이 중하니 네가 속히 가서 그를 대신하라. 나는 스스로 표를 써서 조정에 보고하여 별도로 취사를 결정할 것이다.”했다. 장합이 삼천의 군대를 이끌고 급히 학소를 교대하러 갔다.
時郝昭病危,當夜正呻吟之間,忽報蜀兵到城下了。昭急令人上城把守。時各門上火起,城中大亂。昭聽知驚死。蜀兵一擁入城。
그때 학소는 병이 위급하여 그날 밤에 신음하는 사이에 홀연히 촉의 군대가 성 아래에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학소가 급히 사람을 시켜 성에 올라 지키게 하였다. 그때 각 문 위에서 불이 일어나며 성 안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학소가 듣고는 놀라 죽었다. 촉의 군대가 한꺼번에 성에 들어왔다.
卻說魏延、姜維引兵到陳倉城下看時,並不見一面旗號,又無打更之人。二人驚疑,不敢攻城。忽聽得一聲砲響,四面旗幟齊豎。只見一人綸巾羽扇,鶴氅道袍,大叫曰:「汝二人來的遲了。」二人視之乃孔明也。
각설하고 위연과 강유가 군대를 이끌고 진창서 아래 이르러 보니 한 장의 깃발도 보이지 않고, 아울러 또 정찰하는 사람도 없었다. 두 사람이 놀라고 의심하여 감히 성을 공격하지 못하였다. 홀연히 한 소리 포가 울리고 사방에서 기치가 일제히 세워졌다. 한 사람이 윤건을 쓰고 우선을 들고, 학의 깃 도포를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크게 외쳐 말하기를 “너희 두 사람이 오는 것이 늦었다.”했다. 두 사람이 그를 보니 곧 제갈공명이었다.
二人慌忙下馬,拜伏於地曰:「丞相真神計也!」孔明令放入城,謂二人曰:「吾打探得郝昭病重,吾令汝三日內領兵取城,此乃穩眾人心也。吾卻令關興、張苞只推點軍,暗出漢中。吾即藏於軍中,星夜倍道逕到城下,使彼不能調兵。吾早有細作在城內放火,發喊相助,令魏兵驚疑不定。兵無主將,必自亂矣。吾因而取之,易如反掌。兵法云:『出其不意,攻其無備。』正謂此也。」
두 사람이 황망히 말에서 내려 절하며 땅에 엎드려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참으로 귀신같은 계책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은 명령을 내려 성에 들어오게 하여 두 사람에게 일러 말하기를 “나는 학소의 병이 중하다는 것을 알아내고 내가 너희 두 사람으로 하여금 삼일 안에 군대를 거느리고 성을 취하게 한 것은 곧(진창성 안) 여러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방심하게) 하려 해서였다. 내가 관흥과 장포로 하여금 군대를 점검하게 하여 몰래 한중으로 나가게 하였다. 나는 곧 군대 안에 숨어 밤낮으로 길을 두 배로 행군하여 재빨리 성 아래 이르러 그들로 하여금 군대를 이동할(군대로 조치할) 수 없게 한 것이다. 내가 일찍이 세작(첩자)에게 성 안에 있으면서 불을 놓고, 함성을 질러 서로 돕게 하여 위나라 군대로 하여금 놀라고 의심하여 안정되지 못하게 하였다. 군대는 주된 장수가 없으면 반드시 스스로 어지러워진다. 내가 이 때문에 그것(진창성)을 취하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웠습니다. 병법에 이르기를 ‘불의에 나오고, 그 준비가 없을 때 공격하라.’한 것은 바로 이를 말하는 것이다.”했다.
魏延、姜維拜伏。孔明憐郝昭之死,令彼妻小扶靈柩回魏,以表其忠。孔明謂魏延、姜維曰:「汝二人且莫卸甲,可引兵去襲散關。把關之人,若知兵到,必然驚走。若稍遲便有魏兵至關,即難攻矣。」
위연과 강유가 절하며 감복하였다. 제갈공명은 학소의 죽음을 불쌍하게 여겨 그 처와 아이들로 하여금 영구를 모시고 위나라로 돌아가게 하는 것으로서 그 충성스러움을 표시하였다. 제갈공명이 위연과 강유에게 일러 말하기를 “너희 두 사람은 또 갑옷을 벗지 말고 군대를 이끌고 가 산관을 습격하라. 관(산관)을 지키는 사람들은 만약 군대가 이르는 것을 알면 반드시 놀라 달아날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늦어 곧 위나라 군대가 관에 이르면 곧 공격하기 어려울 것이다.”했다.
魏延、姜維受命,引兵逕到散關。把關之人,果然盡走。二人上關纔要卸甲,遙見關外塵頭大起,魏兵到來。二人相謂曰:「丞相神算,不可測度!」急登樓視之,乃魏將張郃也。二人乃分兵守住險道。張郃見蜀兵守住要道,遂令退軍。魏延隨後追殺一陣。魏兵死者無數,張郃乃大敗而去。
위연과 강유가 명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재빨리 산관에 이르렀다. 관을 지키던 사람들이 과연 모두 달아났다. 두 사람이 관에 올라 겨우 갑옷을 벗으려 하는데 멀리 관 밖에 먼지가 크게 일어나며 위나라 군대가 이르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이 서로 일러 말하기를 “승상의 귀신같은 계책은 헤아릴 수 없구나!”하고는 급히 루에 올라 보니 곧 위나라 장수 장합이었다. 두 사람이 곧 군대를 나누어 험한 요충지를 지켰다. 장합은 촉의 군대가 험한 요충지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마침내 군대를 물리게 하였다. 위연이 뒤를 따라 추격하여 한바탕 죽였다. 위나라 군대는 죽은 자가 헤아릴 수 없고, 장합이 크게 패하고 갔다.
魏延回到關上,令人報知孔明。孔明先自領兵,出陳倉斜谷,取了建威。後面蜀兵陸續進發。後主又命大將陳式來助。孔明驅大兵復出祁山。
위연이 돌아 관에 이르러 사람을 시켜 제갈공명에게 보고하였다. 제갈공명은 먼저 군대를 거느리고 진창 사곡을 나와 건위를 취하였다. 뒤쪽에서 촉의 군대가 계속해서 출발하였다. 후주(유선)가 또한 대장군 진무로 하여금 가서 돕게 하였다. 제갈공명이 크게 군대를 몰아 다시 기산으로 나왔다.
安下營寨,孔明聚眾言曰:「吾二出祁山,未得其利;今又到此,吾料魏人必依舊戰之地,與吾相敵。彼意疑我取雍、郿二處,必以兵拒守;吾觀武都、陰平與漢連接,若得此二郡,亦可分魏兵之勢。何人敢取之?」姜維曰:「某願往。」王平亦曰:「某亦願往。」孔明大喜;遂令姜維引兵一萬取武都、王平引兵一萬取陰平。二人受計去了。
영채를 정비하고 제갈공명이 무리를 모아 말하기를 “내가 두 번 기산에 나왔으나 그 이로움을 얻지 못하였다. 지금 또 (우리가)여기(기산)에 이르렀으니 내가 헤아리건데 위나라 사람들은 반드시 예전에 싸우던 땅에 의지하여 우리와 대적하려 할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우리가 옹성, 미성 두 곳을 취할 것으로 의심하고 생각하여 반드시 군대로 지킬 것이다. 내가 살려보니 무도와 음평 두 군은 한중과 연접하고 있어 만약 이 두 군을 얻는다면 또한 위나라 군대의 형세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누가 감히 취하겠는가?”했다. 강유가 말하기를 “제가 가기를 원합니다.”했다. 왕평이 또한 말하기를 “제가 또한 가기를 원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강유로 하여금 군대 일만을 이끌고 무도를 취하게 하고, 왕평은 군대 일만을 이끌고 음평을 취하게 하였다. 두 사람이 계책을 받고 갔다.
再說張郃回到長安,見郭淮、孫禮說:「陳倉已失,郝昭已亡,散關亦被蜀兵佔了。今孔明復出祁山,分道進兵。」淮大驚曰:「若如此,必取雍、郿矣!」乃留張郃守長安,令孫禮保雍城。淮自引兵星夜來郿城守禦,一面上表入洛陽告急。
각설하고 장합은 장안으로 돌아 가 곽회, 손례를 만나 말하기를 “진창을 잃고 학소가 죽었으며 산관이 또한 촉 군대가 점령하였습니다. 지금 제갈공명이 다시 기산으로 나와 길을 나누어 진군하고 있습니다.”했다. 곽회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만약 이 같다면 반드시 옹성과 미성을 취할 것이다.”하고는 곧 장합을 남겨 장안을 지키게 하고, 손례로 하여금 옹성을 지키게 하였다. 곽회 자신은 군대를 이끌고 밤낮으로 가 미성을 지키는 한편 낙양에 표를 올려 급함을 고하였다.(알렸다.)
卻說魏主曹叡設朝,近臣奏曰:「陳倉城已失,郝昭已亡,諸葛亮又出祁山,散關亦被蜀兵奪了。」叡大驚。忽又奏滿寵等有表,說:「東吳孫權僭稱帝號,與蜀同盟,今遣陸遜在武昌訓練人馬,聽候調用。只在旦夕,必入寇矣。」
각설하고 위나라 임금 조예가 조회를 열자 근신이 아뢰어 말하기를 “진창성을 이미 잃었고, 학소가 이미 죽었고, 제갈공명이 또 기산으로 나오며 산관을 또한 촉의 군대에게 빼앗겼습니다.”했다. 조예가 크게 놀랐다. 홀연히 또 만총 등이 표를 올렸다고 아뢰어 말하기를 “동오 손권이 황제의 호를 참칭하고, 촉과 동맹을 맺었는데 지금 육손을 보내 무창에서 인마를 훈련시키며 군대의 운용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만간에 반드시 침입할 것입니다.”했다.
叡聞知兩處危急,舉止失措,甚是驚慌。此時曹真病未痊,即召司馬懿商議。懿曰:「以臣愚意所料,東吳必不舉兵。」叡曰:「卿何以知之?」懿曰:「孔明嘗思報猇亭之讎,非不欲吞吳也,只恐中原乘虛擊彼,故暫與東吳聯盟。陸遜亦知其意,故假作興兵之勢以應之,實是坐觀成敗耳。陛下不必防吳,只須防蜀」。叡曰:「卿真高見!」遂封懿為大都督,總攝隴西諸路軍馬,令近臣取曹真總兵將印來。懿曰:「臣自去取之。」遂辭帝出朝,逕到曹真府下,先令人入府報知,懿方進見。
조예가 두 곳의 위급함을 듣고 어떻게 할지를 알지 못하고 매우 놀라고 당황하였다. 이 때 조진은 병이 다 낫지 않아 곧 사마의를 불러 상의하였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신이 어리석은 생각으로 헤아려보면 동오는 반드시 군대를 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했다. 조예가 말하기를 “경은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일찍이 효정의 원수를 갚을 것을 생각하고 있어 오나라를 삼키고자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만 중원의 빈틈을 타고 그들(촉)을 (오나라가)공격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동오와 연맹한 것입니다. 육손 또한 그 뜻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임시로 군대를 일으키는 형세를 만들어 응하는 척하는 것으로서 실제는 앉아서 성패를 보려 할 뿐입니다. 폐하께서는 오나라를 방비할 필요 없이 모름지기 촉만 방비하면 됩니다.”했다. 조예가 말하기를 “경은 참으로 훌륭한 생각을 가졌구나!”하고는 마침내 사마의를 봉하여 대도독으로 삼고 농서 제 방면의 군마를 총괄 하게 하고, 근신으로 하여금 조진의 총병장인을 가져오게 하였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신이 스스로 가서 취하겠습니다.”하고는 마침내 황제를 하직하고 조정을 나와 빠르게 조진부에 이르러 먼저 사람으로 하여금 부에 들어 가 알리게 한 뒤 사마의가 비로소 나아가 만났다.
問病畢,懿曰:「東吳、西蜀會合興兵入寇,今孔明又出祁山下寨,明公知之乎?」真驚訝曰:「吾家人知我病重,不令我知之。似此國家危急,何不拜仲達為都督,以退蜀兵耶?」懿曰:「某才薄智淺,不稱其職。」真曰:「取印與仲達。」懿曰:「都督少慮。某願助一臂之力,只不敢受此印也。」真躍起曰:「如仲達不領此任,中國危矣!吾當抱病見天子以保之!」懿曰:「天子已有恩命,但懿不敢受耳。」真大喜曰:「仲達今領此任,可退蜀兵。」懿見真再三讓印,遂受之,辭了魏主,引兵往長安來與孔明決戰。正是:舊帥印為新帥取,兩路兵惟一路來。未知勝負如何,且看下文分解。
문병을 마치고 사마의가 말하기를 “동오와 촉이 합하여 군대를 일으켜 침입하여 지금 제갈공명이 또 기산에 나와 영채를 세웠습니다. 명공(조진)께서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까?”했다. 조진이 놀라 말하기를 “우리 집안사람들이 내가 병이 중한 것을 알고 나로 아여금 알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국가가 위급한데 어찌하여 중달(사마의)에게 벼슬을 주어 도독으로 삼는 것으로서 촉의 군대를 물리치니 않습니까?”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저의 재능이 얇고 지혜가 얕아 그 직에 걸맞지 않습니다.”하니 조진이 말하기를 “인을 가져다 중당(사마의)에게 주라.”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도독은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는 한 파의 힘을 도우려는 것일 뿐 감히 이 인을 받지 못하겠습니다.”했다. 조진이 뛰어 일어나며 말하기를 “만약 중달(사마의)이 이 임무를 맡지 않는다면 중국이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나는 마땅히 병 중이지만 천자를 뵙고 보증할 것입니다.” 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천자께서 이미 은혜로운 명이 있었으나 다만 제가 감히 받지 않았을 뿐입니다.”했다. 조진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중달(사마의)이 지금 이 임무를 맡았으니 촉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사마의가 조진을 만나 두 번 세 번 인을 양보하다가 마침내 그것을 받고 위나라 임금을 하직한 후 군대를 이끌고 장안으로 가 제갈공명과 결전하려 했다. 바로 이러하다. 옛 장수의 인을 새 장수가 취하니 두 길의 군대가 오직 한 길로 온다. 승부가 어떠할지 알지 못하겠다.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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