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五回:馬謖拒諫失街亭,武侯彈琴退仲達
제95회 마속은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아 가정을 잃고, 무후(제갈공명)는 거문고를 연주하여 중달(사마의)을 물리치다.
卻說魏主曹叡令張郃為先鋒,與司馬懿一同征進;一面令辛毗、孫禮二人領兵五萬,往助曹真。二人奉詔而去。且說司馬懿引二十萬軍,出關下寨,請先鋒張郃至帳下曰:「諸葛亮生平謹慎,未敢造次行事。若吾用兵,先從子午谷逕取長安,早得多時矣。他非無謀,但恐有失,不肯弄險。今必出軍斜谷,來取郿城。若取郿城,必分兵兩路,一軍取箕谷矣。吾已發檄文,令子丹拒守郿城,若兵來不可出戰;令孫禮、辛毗截住箕谷道口,若兵來則出奇兵擊之。」郃曰:「今將軍當於何處進兵?」懿曰:「吾素知秦嶺之西,有一條路,地名街亭,傍有一城,名列柳城;此二處皆是漢中咽喉。諸葛亮欺子丹無備,定從此進。吾與汝逕取街亭,望陽平關不遠矣。亮若知吾斷其街亭要路,絕其糧道,則隴西一境,不能安守,必然連夜奔回漢中去也。彼若回動,吾提兵於小路擊之,可得全勝;若不歸時,吾卻將諸處小路,盡皆壘斷,俱以兵守之。一月無糧,蜀兵皆餓死,亮必被吾擒矣。」張郃大悟,拜伏於地曰:「都督神算也!」懿曰:「雖然如此,諸葛亮不比孟達。將軍為先鋒,不可輕進。當傳與諸將:循山西路,遠遠哨探。如無伏兵,方可前進。若是怠忽,必中諸葛亮之計。」張郃受計引軍而行。
각설하고 위나라 임금 조예는 장합을 선봉으로 삼고 사마의와 함께 정진하게 하는 한편으로 신비, 손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군대 오만을 거느리고 가서 조진을 돕게 하였다. 두 사람이 명을 받들고 갔다. 또 사마의는 이십만을 이끌고 관을 나와 영채를 세우고, 선봉 장합을 청해 군막에 이르자 말하기를 “제갈량(제갈공명)은 평생 신중하여 감히 경솔히 일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내가 군대를 쓴다면 먼저 자오곡의 작은을 따라 장안을 취하면 일찍이 많은 시간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제갈공명)가 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실수가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기꺼이 위험한 짓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반드시 군대가 사곡을 나와 미성을 취하러 올 것입니다. 만약 미성을 취하다면 반드시 군대를 두 길로 나누어 일군은 기곡을 취하려 할 것입니다. 내가 이미 격문을 발표하여 자단(조진)으로 하여금 미성을 지키게 하면서 만약 군대가 오더라도 나가 싸워서는 안 된다 하였고, 손례, 신비로 하여금 기곡 길 입구를 막고 만약 군대가 온다면 곧 기습하는 군대로 그들을 공격하시오.”했다. 장합이 말하기를 “이제 장군은 어느 곳으로 군대를 진격시킬 것입니까?”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내가 평소 진령의 서쪽을 알아보니 한 갈레 길이 있는데 지명은 가정이고, 그 옆에 한 성이 있는데 열유성이라 이름합니다. 이 두 곳은 모두 한중의 인후(중요한 요충지)입니다. 제갈량(제갈공명)은 자단(조진)이 방비하지 않을 것으로 여기고 반드시 이를 따라 진군할 것입니다. 내가 너와 작은 길로 가정을 취하면 양평관을 엿보는 것이(차지하는 것은) 멀지 않을 것입니다. 제갈공명은 내가 가정의 요충지를 차단하여 그 식량운반 길을 끊으면 곧 농서 일대를 지키지 못한 것을 알아 반드시 밤을 이어 한중으로 돌아 갈 것입니다. 그가 만약 돌아간다면 우리는 군대를 데리고 소로에서 공격하면 완전한 승리를 얻을 것입니다. 만약 돌아가지 않을 때는 우리가 여러 곳의 작은 길을 차지하고, 모두 보루를 만들어 차단하고 모두 군대로서 지킵니다. 한 달이면 식량이 없어 촉의 군대는 모두 굶어 죽을 것이니 제갈량(제갈공명)은 반드시 나에게 사로잡힐 것입니다.” 했다. 장합이 크게 깨닫고 절하며 땅에 엎드려 말하기를 “도독의 신 같은 계책입니다.”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비록 이 같으나 제갈량(제갈공명)은 맹달에 비할 수 없습니다. 장군께서 선봉이 되어도 가벼이 전진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 장수들에게 명을 내려 산의 서쪽 길을 따라 멀리가지 정찰하게 하고, 만약 복병이 없다면 비로소 전진해야 합니다. 만약 소홀히 하시면 반드시 제갈량(제갈공명)의 계책에 빠질 것입니다.”했다. 장합은 계책을 받고 군대를 이끌고 갔다.
卻說孔明在祁山寨中,忽報新城探細人來到。孔明急喚入問之。細作告曰:「司馬懿倍道而行,八日已到新城,孟達措手不及;又被申耽、申儀、李輔、鄧賢為內應,孟達被亂軍所殺。今司馬懿撤兵到長安,見了魏主,同張郃引兵出關,來拒我師也。」孔明大驚曰:「孟達作事不密,死固當然。今司馬懿出關,必取街亭,斷吾咽喉之路。」便問:「誰敢引兵去守街亭?」言未畢,參軍馬謖曰:「某願往。」孔明曰:「街亭雖小,干係甚重:倘街亭有失,吾大軍皆休矣。汝雖深通謀略,此地奈無城郭,又無險阻,守之極難。」謖曰:「某自幼熟讀兵書,頗知兵法。豈一街亭不能守耶?」
각설하고 제갈공명이 기산 영채 안에 있는데 홀연히 신성에서 비밀을 탐지하는 사람이 왔다고 보고하였다. 제갈공명이 급히 불러들여 물었다. 첩자가 알려 말하기를 “사마의가 2배 속도로 행군하여 팔일에 이미 신성에 이르러 맹달이 손을 쓰지 못하였고, 또 신탐, 신의, 이보, 등현이 내응하여 맹달이 어지러운 군대 안에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지금 사마의는 군대를 거두어 장안에 이르러 위나라 임금을 뵙고 장합과 함께 군대를 이끌고 관을 나와 우리 군대를 막았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맹달이 일을 일으키는데 세밀하지 못하여 죽은 것은 진실로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 사마의가 관을 나왔으니 반드시 가정을 취하여 우리 인후의 길(중요한 요충지)을 끊으려 할 것이다.”하고는 곧 묻기를 “누가 감히 군대를 이끌고 가 가정을 지키겠는가?”하는 말을 마치기지 않았는데 참군 마속이 말하기를 “제가 가기를 원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가정이 비록 작으나 관계됨이 매우 중하다. 만약 가정을 잃는다면 우리의 대군은 모두 막히게 될 것이다. 너는 비록 깊이 모략에 통하였으나 이 땅은 성곽이 없고, 또 험하고 막힘이 없으니 지키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했다. 마속이 말하기를 “제가 어려서부터 병법서를 익숙히 읽어 자못 병법을 알고 있습니다. 어찌 일 개 가정을 지키지 못하겠습니까?”했다.
孔明曰:「司馬懿非等閒之輩;更有先鋒張郃,乃魏之名將:恐汝不能敵之。」謖曰:「休道司馬懿、張郃,便是曹叡親來,有何懼哉!若有差失,乞斬全家。」孔明曰:「軍中無戲言。」謖曰:「願立軍令狀。」孔明從之。謖遂寫了軍令狀呈上。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사마의는 소홀히 할 인물이 아니다. 또 선봉에 있는 장합은 곧 위나라의 이름있는 장수이다. 네가 대적하지 못할까 두렵다.”했다. 마속이 말하기를 “사마의, 장합은 말할 것도 없고, 곧 조예가 직접 와 있은들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만약 잘못됨이 있다면 전 가문을 베어 죽일 것을 청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군대에는 희롱하는 말이 업ㅂㅅ다.”하니 마속이 말하기를 “군령장을 쓰기를 원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그 말을 따랏다. 마속이 마침내 군령장을 써서 올렸다.
孔明曰:「吾與汝二萬五千精兵,再撥一員上將,相助你去。」即喚王平分付曰:「吾素知汝平生謹慎,故特以此重任相託。汝可小心謹慎此地下寨必當要道之處,使賊兵急切不能偷過。安營既畢,便畫四至八道地理形狀圖本來我看。凡事商議停當而行,不可輕易。如所守無危,則是取長安第一功也。戒之!戒之!」二人拜辭引兵而去。孔明尋思,恐二人有失,又喚高翔曰:「街亭東北上有一城,名列柳城,乃山僻小路:此可以屯兵紮寨。與汝一萬兵,去此城屯紮。但街亭危,可引兵救之。」高翔引兵而去。孔明又思高翔非張郃對手,必得一員大將,屯兵於街亭之右,方可防之!遂喚魏延引本部兵去街亭之後屯紮。延曰:「某為前部,理合當先破敵,何故置某於安閒之地?」孔明曰:「前鋒破敵,乃偏裨之事耳。今令汝接應街亭,當陽平關衝要道路,總守漢中咽喉,此乃大任也。何為安閒乎?汝勿以等閒視之,失吾大事。切宜小心在意!」魏延大喜,引兵而去。孔明恰纔心安,如乃喚趙雲、鄧芝分付曰:「今司馬懿出兵,與往日不同。汝二人各引一軍出箕谷,以為疑兵。如逢魏兵,或戰、或不戰,以驚其心。吾自統大軍,由斜谷逕取郿城:若得郿城,長安可破矣。」二人受命而去。孔明令姜維作先鋒,兵出斜谷。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너에게 이만오천의 정예 군대를 주고, 다시 한 명의 상장을 뽑아 서로 너를 도와 가게 할 것이다.”하고는 곧 왕평을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내가 평소 네가 평생동안 삼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특히 이 중요한 일을 맡기는 것이다. 너는 조심하고 신중히 이 땅에 영채를 세우는데 반드시 요충지에 하여 적의 군대로 하여금 창졸간에 몰래 지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진영 세우기를 마친 후에는 곧 사방으로 여덟 개 길의 지리 형상을 그려 아에게 와 보이라. 모든 일은 상의하여 사리에 맞게 처리하여 행하여 가벼이 쉽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지켜서 위태로운 바가 없게 한다면 곧 이는 장안을 취한 제일의 공이 될 것이다. 경계하고 경계하라!”했다. 두 사람이 절하며 하직하고 군대를 이끌고 갔다. 제갈공명이 깊이 생각하다 두 사람이 실수가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또 고상을 불러 말하기를 “가정 동북쪽에 한 성이 있는데 이름이 열류성이니 곧 산의 구석진 소로이다. 여기는 군대를 주둔항고 영채를 세울만하다. 너에게 일만의 군대를 줄 터이니 이 성에 가 주둔하라. 다만 가정이 위태로울 때 군대를 이끌고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고상이 군대를 이끌고 갔다. 제갈공명은 또 고상이 장합의 적수가 아니라 여기고 반드시 한 대장을 얻어 가정의 오른 쪽에 군대를 주둔한다면 비로소 지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마침내 위연을 불러 군대를 이끌고 가서 가정의 뒤에 주둔하게 하였다. 위연이 말하기를 “제가 전부가 되었으니 이치상 마땅히 적을 깨트리는 것을 우선하는데 무슨 이유로 저를 편안하고 한가한 땅에 두십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선봉이 적을 깨트리는 것은 곧 부장의 일일 뿐이다. 지금 너로 하여금 가정을 상황에 맞게 대응하게 하고, 양평관의 중요도로를 감당하여 한중을 지키는 인후(요충지)를 감당하게 한 이것은 곧 큰 임무이다. 어찌 편안하고 한가한 것이라 하는가? 너는 소홀히 보아서 우리의 큰일을 잘못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간절하게 조심하고 주의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했다. 위연이 크게 기뻐하며 군대를 이끌고 갔다. 제갈공명이 바로(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져 곧 조운과 등지를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지금 사마의가 군대를 내었으니 지난날과는 같지 않을 것이다. 너희 두 사람은 각각 일군을 이끌고 기곡을 나가는 것으로서 (사마의의)군대를 혼란스럽게 하라. 만약 위나라 군대를 만난다면 혹은 싸우고, 혹은 싸우지 않는 것으로서 그 마음을 놀라게 하라. 나는 스스로 대군을 통솔하여 사곡으로부터 작은 길로 미성을 취할 것입니다. 만약 미성을 얻을 수 있다면 장안을 깨트릴 수 있을 것이다.”했다. 두 사람이 명을 받고 갔다. 제갈공명이 강유로 하여금 선봉을 삼아 군대가 사곡을 나가게 했다.
卻說馬謖、王平二人兵到街亭,看了地勢。馬謖笑曰:「丞相何故多心也?量此山僻之處,魏兵如何敢來!」王平曰:「雖然魏兵不敢來,可就此五路總口下寨;即令軍士伐木為柵,以圖久計。」謖曰:「當道豈是下寨之地?此處側邊一山,四面皆不相連,且樹木極廣,此乃天賜之險也。可就山上屯軍。」平曰:「參軍差矣:若屯兵當道,築起城垣,賊兵總有十萬,不能偷過;今若棄此要路,屯兵於山上,倘魏兵驟至,四面圍定,將何策保之?」
각설하고 마속과 왕평 두 사람의 군대가 가정에 이르러 땅의 형세를 보았다. 마속이 웃으며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무슨 이유로 걱정이 많으신가? 이 산의 후미진 곳에 위나라 군대가 어떻게 감히 오겠오!”하니 왕평이 말하기를 “비록 위나라 군대가 감히 오지 못할지라도 이 다섯 길에 나아가 모든 입구에 영채를 세워야 합니다. 곧 군사로 하여금 나무를 베어 목책을 만드는 것으로서 오래할 계책을 도모해야 합니다.”했다. 마속이 말하기를 “이 길이 어찌 영채를 세울 땅이겠습니까? 이 곳 옆에 한 산이 있으니 사면이 서로 이어지지 않고, 또 수목이 지극히 넓으니 이는 곧 하늘이 내린 험지입니다. 산 위에 나아가 군대를 주둔해야 합니다.”했다. 왕평이 말하기를 “참군의 잘못입니다. 만약 이 길에 군대를 주둔하고 성과 담을 쌓는다면 적병이 모두 십만이 있을지라도 몰래 지날 수 없습니다. 지금 만약 이 중요한 길을 버리고 군대를 산 위에 주둔했다가 만약 위나라 군대가 달려 이르러 사방을 포위한다면 장차 무슨 계책으로 지키겠습니까?”했다.
謖大笑曰:「汝真女子之見!兵法云:『凭人高視下,勢如破竹。』若魏兵到來,吾教他片甲不回!」平曰:「吾累隨丞相經陣,每到之處,丞相盡意指教。今觀此山,乃絕地也。若魏兵斷我汲水之道,軍士不戰自亂矣。」謖曰:「汝莫亂道!孫子云:『置之死地而後生。』若魏兵絕我汲水之道,蜀兵豈不死戰?以一可當百也。吾素讀兵書,丞相諸事尚問於我,汝奈何相阻耶?」平曰:「若參軍欲在山上下寨,可分兵與我,自於山西下一小寨,為犄角之勢。倘魏兵至,可以相應。」馬謖不從。忽然山中居民,成群結隊,飛奔而來,報說魏兵已到。王平欲辭去。馬謖曰:「汝既不聽吾令,與汝五千兵自去下寨。待吾破了魏兵,到丞相面前須分不得功!」王平引兵離山十里下寨,畫成圖本,星夜差人去稟孔明,具說馬謖自於山上下寨。
마속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너는 참으로 여자의 견해구나! 병법에 ‘사람이 높은 곳에 의지하여 아래를 보는 것은 형세가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다.’하였으니 만약 위나라 군대가 오면 나는 그들의 조각 갑옷도 돌아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했다. 왕평이 말하기를 “내가 여러 번 승상을 따라 진을 겪었는데 배번 이르는 곳마다 승상께서는 진심을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금 이 산을 관찰해보면 곧 절지(고립된 땅)입니다. 만약 위나라 군대가 우리의 물 긷는 길을 끊는다면 군사들은 싸우지 않고 저절로 어지러워질 것입니다.”했다. 마속이 말하기를 “너는 말을 어지럽히지 말라! 손자가 말하기를 ‘죽을 땅에 둔 후에 살아날 수 있다.’하였으니 만약 위나라 군대가 우리의 물 긷는 길을 끊는다면 촉의 군대가 어찌 죽음으로 싸우지 않겠는가? 한 명이 백 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평소 병서를 읽어 승상께서 여러 가지 일을 오히려 나에게 물으셨는데 너는 어찌하여 막는가?”했다. 왕평이 말하기를 “만약 참군께서 산 위에 영채를 세우고자 하신다면 군대를 나누어 나에게 주시면 스스로 산 서쪽 아래 하나의 작은 영채를 세워 의각의 형세(앞 뒤에서 적을 위협함)를 삼겠습니다. 만약 위나라 군대가 이른다면 서로 대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했으나 마속이 따르지 않았다. 홀연히 산 속에 살고 있는 백성이 무리를 이루고 대열을 이루어 날듯이 달려와 위나라 군대가 이미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왕평이 하직하고 떠나려 했다. 마속이 말하기를 “네가 이미 나의 명령을 듣지 않으니 너에게 오천의 군대를 줄 터이니 스스로 가서 영채를 세우시오, 내가 위나라 군대를 깨트리는 것을 기다렸다가 승상의 면전에 이르러 반드시 공을 나눌 수 없을 것이다.”했다. 왕평이 군대를 이끌고 산으로부터 십리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우고 그림을 그려 밤낮으로 사람을 가게하여 제갈공명에게 보고하고, 마속이 스스로 산위에 영채를 세운 것을 모두 말하게 했다.
卻說司馬懿在城中,令次子司馬昭去探前路;若街亭有兵把守,即當按兵不行。司馬昭奉令探了一遍,回見父曰:「街亭有兵守把。」懿歎曰:「諸葛亮真乃神人,吾不如也!」昭笑曰:「父親何故自墮志氣耶?男料街亭易取。」懿問曰:「汝安敢出此大言耶?」昭曰:「男親自哨見,當道並無寨柵,軍皆屯於山上,故知可破也。」懿大喜曰:「若兵果在山上,乃天使吾成功矣!」遂更換衣服,引百餘騎親自來看。是夜天晴月朗,直至山下,周圍巡哨了一遍,方回。馬謖在山上見之,大笑曰:「彼若有命,不來圍山。」傳令與諸將:「倘兵來,只見山頂上紅旗招動,即四面皆下。」
각설하고 사마의는 성 안에 있으면서 둘째 아들 사마소로 하여금 앞길을 정찰하게 하고, 만약 가정에 군대가 지키고 있다면 곧 마땅히 군대를 멈추고 가지 말라고 했다. 사마소가 명령을 받들어 두루 정찰하고 돌아와 아버지를 뵙고 말하기를 “가정에 지키는 군대가 있습니다.”했다. 사마의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참으로 곧 신 같은 사람으로 나보다 낫구나!”하니 사마소가 말하기를 “아버지께서는 무슨 이유로 스스로 지기를 떨어뜨리십니까? 저는 가정을 쉽게 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했다. 사마의가 물어 말하기를 “너는 어찌 감히 이런 큰 소리를 칠 수 있는가?”하니 사마소가 말하기를 “제가 직접 살펴보니 이 길에는 모두 영채와 목책이 없고, 군대가 모두 산 위에 주둔하고 있으니 깨트릴 수 있을 것을 알았습니다.”했다. 사마의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만약 군대가 과년 산 위에 있다면 곧 하늘이 나로 하여금 공을 이루게 하는 것이구나!”하고는 마침내 곧 의복을 바꾸어 입고 백여기를 이끌고 스스로 가서 보았다. 그날 밤 하늘은 맑고 달은 밝은데 바로 산 아래에 이르러 주위를 두루 살펴보고 비로소 돌아갔다. 마속은 산 위에 있으면서 그것을 보고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그에게 만약 명(명운)이 있다면 와서 산을 포위하지 않을 것이다.”하고는 여러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리기를 “만약 군대가 온다면 다만 산 정상에서 붉은 깃발을 흔드는 것을 보고 곧 사방에서 모두 내려가라.”했다.
卻說司馬懿回到寨中,使人打聽是何將引兵守街亭。回報曰:「乃馬良之弟馬謖也。」懿笑曰:「徒有虛名,乃庸才耳!孔明用如此人物,如何不誤事!」又問:「街亭左右別有軍否?」探馬報曰:「離山十里有王平安營。」懿乃命張郃引一軍,當住王平來路。又令申耽、申儀引兩路兵圍山,先斷了汲水道路;待蜀兵自亂,然後乘勢擊之。當夜調度已定。次日天明,張郃引兵先往背後去了。
각설하고 사마의는 영채로 돌아 가자 사람을 시켜 어떤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가정을 지키는 지를 알아보게 하였다. 돌아와 보고해 말하기를 “곧 마량의 동생 마속입니다.”했다. 사마의가 웃으며 말하기를 “한갓 헛된 이름을 가진 곧 평범한 인재이구나! 제갈공명이 이 같은 인물을 섰으니 어떻게 일이 잘못되지 않겠는가?”하고, 또 묻기를 “가정 좌우에 별도로 군대가 있던가?”했다. 정찰병이 보고해 말하기를 “산으로부터 십리 떨어진 곳에 왕평이 영채를 세었습니다.”했다. 사마의는 곧 장함으로 하여금 일군을 이끌고 왕평이 오는 길을 막게 하였다. 또 신탐, 신의로 하여금 두 길릐 군대를 이끌고 산을 포위하게 하고, 먼저 물 긷는 길을 끊게 하고 촉의 군대가 스스로 어지러워지는 것을 기다린 후 형세를 타고 공격하게 했다. 그날 밤 임무가 정해졌다. 다음날 날이 밝자 장합은 군대를 이끌고 먼저 뒤로 갔다.
司馬懿大驅軍馬,一擁而進,把山四面圍定。馬謖在山上看時,只見魏兵漫山遍野,旌旗隊伍,甚是嚴整。蜀兵見之,盡皆喪膽,不敢下山。馬謖將紅旗招動,軍將你我相推,無一人敢動。謖大怒,自殺二將。眾軍驚懼,只得努力下山來衝魏兵。魏兵端然不動。蜀兵又退上山去。馬謖見事不諧,教軍緊守寨門,只等外應。
사마의가 크게 군대를 몰라 한꺼번에 진군하여 산 사방을 포위하였다. 마속이 산 위에서 보고 있을 때 위나라 군대가 산과 들에 두루 가득한 것을 보니 깃발과 대오가 매우 엄정하였다. 촉의 군대가 그것을 보고 모두 간담이 서늘해져 감히 산을 내려가지 못하였다. 마속이 붉은 깃발을 흔들었으나 군대의 장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미루고 한 사람도 감히 움직이지 않았다. 마속이 크게 노하여 스스로 두 장수를 죽였다. 여러 군사들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힘을 다해 산을 내려가 위나라 군대를 쳤다. 위나라 군대는 단정히 움직이지 않았다. 촉의 군대가 또 산 위로 물러났다. 마속은 일이 모두 조화롭지(풀리지)않는 것을 보고 군사들로 하여금 영채의 문을 굳게 지키게 하고 밖에서 대응해주기만을 기다렸다.
卻說王平見魏兵到,引軍殺來,正遇張郃;戰有數十餘合,平力窮勢孤,只得退去。魏兵自辰時困至戌時,山上無水,軍不得食,寨中大亂。嚷到半夜時分,山南蜀兵大開寨門,下山降魏。馬謖禁止不住。司馬懿又令人於沿山放火,山上蜀兵愈亂。馬謖料守不住,只得驅殘兵殺下山西逃奔。司馬懿放條大路,讓過馬謖。背後張郃引兵趕來。趕到三十餘里,前面鼓角齊鳴,一彪軍出,放過馬謖,攔住張郃;視之,乃魏延也:揮刀縱馬,直取張郃。郃回軍便走。延驅兵趕來,復奪街亭。趕到五十餘里,一聲喊起,兩邊伏兵齊出:左邊司馬懿,右邊司馬昭,卻抄在魏延背後,把延困在垓心。張郃復來,三路兵合在一處。魏延左衝右突,不得脫身,折兵大半。正危急間,忽一彪軍殺入,乃王平也。延大喜曰:「吾得生矣!」二將合兵一處,大殺一陣,魏兵方退。二將慌忙奔回寨時,營中皆是魏兵旌旗。申耽、申儀從營中殺出。王平、魏延逕奔列柳城,來投高翔。
각설하고 왕평은 위나라 군대가 이르는 것을 보고 군대를 이끌고 쇄도하다 바로 장합을 만났다. 싸운 지 수십여 합에 왕평은 힘이 다하고, 형세가 외로워 물러났다. 부득이 물러났다. 위나라 군대가 진시부터 곤궁하게 하여 술시에 이르자 산 위에 물이 없어 군대는 먹을 것을 얻지 못하여 영채 안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부르짖으며 한밤중 쯤 이르렀을 때 산 남쪽의 촉 군대가 크게 영채 문을 열고 산을 내려가 위나라에 항복하였다. 마속이 금지하였으나 막을 수 없었다. 사마의는 또 사람으로 하여금 산을 따라 불을 놓게 하니 산 위의 촉 군대가 더욱 어지러워졌다. 마속은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헤아리고는 부득이 남은 군대를 몰아 산을 내려 가 서쪽으로 도망하였다. 사마의는 큰 길을 열어 놓고 마속을 지나가게 하였다. 뒤에서 장합이 군대를 이끌고 뒤따라 왔다. 뒤를 따라 삼십여 리에 이르자 앞 쪽에서 북과 피리 소리가 일제히 울리며 한 떼의 군대가 나와 마속을 지나가게 하고 장합을 막았다. 그를 보니 곧 위연으로 칼을 휘두르며 말을 달려 바로 장합을 취하였다. 장합이 군대를 돌려 곧 달아났다. 위연이 군대를 몰아 쫓아 가 다시 가정을 빼앗으려 하였다. 추격하여 오십여 리에 이르렀을 때 한 소리 함성이 일어나며 양쪽에서 복병이 일제히 나왔는데 왼쪽은 사마의이고, 오른 쪽은 사마소로 위연의 뒤를 공격하여 가운데 몰아넣었다. 장합이 다시와 세 방면의 군대가 한 곳에 모였다. 위연이 좌충우돌하였으나 탈출하지 못하고 군대의 태반이 꺽였다.(죽었다.) 바로 위급한 순간에 홀연히 한 떼의 군대가 쇄도해 들어오니 곧 왕평이었다. 위연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내가 살았구나!”하고는 두 장수가 군대를 한 곳에 모아 크게 한바탕 죽이니 위나라 군대가 비로소 물러났다. 두 장수가 황망히 달아나 영채에 돌아갔을 때 진영 안이 모두 위나라 군대의 깃발이었다. 신탐, 신의가 진영 안에서 쇄도해 나왔다. 왕평과 위연은 작은 길로 열류성으로 달아나 고상에게 들어갔다.
此時高翔聞知街亭有失,盡起列柳城之兵,前來救應,正遇延、平二人,訴說前事。高翔曰:「不如今晚去劫魏寨,再復街亭。」當時三人在山坡下商議已定。待天色將晚,兵分三路。魏延引兵先進,逕到街亭,不見一人,心中大疑,不敢輕進,且伏在路口等候。忽見高翔兵到,二人共說魏兵不知在何處。正沒理會,又不見王平兵到。忽然一聲砲響,火光沖天,鼓聲震地。魏兵齊出,把魏延、高翔圍在垓心。二人盡力衝突,不得脫身。忽聽得山坡後喊聲若雷,一彪軍殺入,乃是王平,救了高、魏二人,逕奔列柳城來。比及奔到城下時,城邊早有一軍殺到,旗上大書「魏都督郭淮」字樣。原來郭淮與曹真商議,恐司馬懿得了全功,乃分淮來取街亭;聞知司馬懿、張郃成上此功,遂引兵逕襲列柳城。正遇三將,大殺一陣。蜀兵傷者極多。魏延恐陽平關有失,慌與王平、高翔望陽平關來。
이 때 고상은 가정을 잃었다는 것을 듣고 모든 열류성 군대를 일으켜 구원하러 가다가 위연과 왕평 두 사람을 만났는데 (위연과 왕평이) 앞의 일을 말하였다. 고상이 말하기를 “오늘 날이 저물면 위나라 영채에 가 공격하고 다시 가정을 수복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했다. 이 때 세 사람은 산기슭에서 상의하여 (계책을) 정하였다. 하늘이 장차 저물려 할 때 군대를 세 길로 나누었다. 위연이 군대를 이끌고 먼전 진군하고, 작은 길로 가정에 이르렀는데 한 사람도 보이지 않자 마음속으로 크게 의심하여 감히 가벼이 나아가지 못하고 길 입구에 숨어서 기다렸다. 홀연히 고상의 군대가 이르는 것을 보았는데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위나라 군대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바로 응대하기를 마쳤으나 또한 왕평의 군대가 이르는 것도 보지 못하였다. 홀연히 한 소리 포 소리가 울리고 불빛이 하늘에 치솟고 북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다. 위나라 군대가 일제히 나와 위연과 고상을 가운데 두고 포위 하였다. 두 사람이 힘을 다하여 충돌하였으나 몸을 뺄 수 없었다. 홀연히 산기슭 뒤에서 함성이 우레와 같이 들리며 한 떼의 군대가 쇄도해 들어오는데 곧 이는 왕평으로 고상과 위연 두 사람을 구원해 작은 길로 열류성으로 달아났다. 열류성 아래 이르렀을 때 성 가에서 벌써 한 떼의 군대가 쇄도해 오는데 깃발에는 크게 ‘위도독곽회’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알고 보니 곽회와 조진이 상의하기를 사마의가 모든 공을 얻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이에 (군대를)나누어 곽회가 가정을 취하러 온 것인데 사마의와 장합이 이 공(가정을 점령하는 일)을 이루었다는 것을 듣고는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빠르게 열류성을 습격한 것이었다. 바로 세 장수가 만나 한바탕 크게 죽였다. 촉의 군대 중에 다친 자 지극히 많았다. 위연은 양평관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여 황급히 왕평, 고상과 함께 양평관을 향해 갔다.
卻說郭淮收了軍馬,乃謂左右曰:「吾雖不得街亭,卻取了列柳城,亦是大功。」引兵逕到城下叫門,只見城上一聲砲響,旗幟皆豎,當頭一面大旗,上書「平西都督司馬懿」。懿撐起懸空板,倚定護心木欄干,大笑曰:「郭伯濟來何遲也?」淮大驚曰:「仲達神機,吾不及也!」遂入城。相見已畢,懿曰:「今街亭已失,諸葛亮必走。公可速與子丹星夜追之。」郭淮從其言,出城而去。
각설하고 곽회는 군마를 거두고 곧 좌우에 일러 말하기를 “내가 비록 가정을 얻지는 못하였으나 열류성을 취한다면 또한 이것도 큰 공이다.”했다. 군대를 이끌고 재빨리 성 아래 이르러 문을 열라고 소리치자 성 위에서 한 소리 포가 울리고 깃발이 모두 세워졌는데 앞의 큰 깃발 한 쪽에 ‘평서도독사마의’라 쓰여 있었다. 사마의가 현공판을 펴 일으키고 가슴을 지키는 목 난간에 기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곽백제(곽회)는 오는 것이 왜 늦으셨습니까?”하니 곽회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중달(사마의)의 신 같은 계책은 내가 미칠 수 없구나!”하고는 마침내 성에 들어갔다. 서로 보기를 마치고 사마의가 말하기를 “지금 가정을 잃었으니 제갈공명은 반드시 달아날 것입니다. 공은 속히 자단(조진)과 밤을 새워 추격해야 합니다.”했다. 곽회가 그 말을 따라 성을 나갔다.
懿喚張郃曰:「子丹、伯濟,恐吾全獲大功,故來取此城池。吾非獨欲成功,乃僥倖而已。吾料魏延、王平、馬謖、高翔等輩,必先去據陽平關。吾若去取此關,諸葛亮必隨後掩殺,中其計矣。兵法云:『歸師勿掩,窮寇莫追。』汝可從小路抄箕谷退兵。吾自引兵當斜谷之兵。若彼敗走,不可相拒,只宜中途截住,蜀兵輜重,可盡得也。」張郃受計,引兵一半去了。懿下令:「逕取斜谷:由西城而進。西城雖山僻小縣,乃蜀兵屯糧之所,又南安、天水、安定三郡總路。若得此城,三郡可復矣。」於是司馬懿留申耽、申儀守列柳城,自領大軍斜谷進發。
사마의는 장합을 불러 말하기를 “자단(조진)과 백제(곽회)는 내가 큰 공을 완전히 얻을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와서 이 성지를 튀하려 한 것입니다. 내가 홀로 공을 이루려하는 것이 아니라 곧 용행일 뿐입니다. 나는 위연, 왕평, 마속, 고상 등의 무리들이 반드시 먼저 양평관에 가 점거하려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만약 가서 이 관(양평관)을 취한다면 제갈공명은 반드시 뒤를 따라 엄살하여 그 계책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병법에 ‘돌아가는 군대는 치지 말고, 궁곤한 도적은 추격하지 말라.’하였으니 너는 작은 길을 따라 기곡의 물러가는 군대를 공격하시오. 나는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사곡의 군대를 맡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제갈공명) 패하여 달아난다면 막아서는 안 되고 다만 마땅히 중간을 막아야 촉 군대의 치중(보급품)을 얻을 수 있습니다.”했다. 장합이 계책을 받고 군대 반을 이끌고 갔다. 사마의가 명령을 내려 “곧장 사곡을 취하고 서성으로부터 진군할 것이다. 서성은 비록 산의 궁벽한 작은 현이나 촉 군대의 양식을 저장한 곳이고, 또 남안, 천수, 안정 세 군을 통하는 길이다. 만약 이 성을 얻는다면 세군을 모두 회복할 수 있다.”했다. 이에 사마의는 신탐, 신의를 남겨 열류성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 대군을 거느리고 사곡으로 진군하였다.
卻說孔明自令馬謖等守街亭去後,猶豫不定。忽王平使人送圖本至。孔明喚入,左右呈上圖本。孔明就文几上拆開視之,拍案大驚曰:「馬謖無知,坑陷吾軍矣!」左右問曰:「丞相何故失驚?」孔明曰:「吾觀此圖本,失卻要路,占山為寨。倘魏兵大至,四面圍合,斷汲水道路,不須二日,軍自亂矣。若街亭有失,吾等安歸?」長史楊儀進曰:「某雖不才,願替馬幼常回。」孔明將安營之法,一一分付與楊儀。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마속 등으로 하여금 가정을 지키러 가게 한 후에도 오히려 망설이고(안절부절)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였다. 홀연히 왕평이 사람을 시켜 보낸 도본(지도)이 이르렀다. 제갈공명이 불러들이게 하니 좌우가 도본(지도)를 올렸다. 제갈공명이 글을 책상 위에 올리고 봉투를 뜯어보고는 책상을 치며 크게 놀라 말하기를 “마속이 아는 것이 없어 우리 군대를 구덩이에 빠트리는구나!”하였다. 좌우가 물어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무슨 이유로 놀라십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이 도본(지도)을 보니 요로를 버리고, 산을 차지하여 영채를 세웠다. 만약 위나라 군대가 크게 이르러 사방을 포위하고 물을 긷는 도로를 끊으면 이틀이 되지 않아 군대는 저절로 어지러워질 것이다. 만약 가정을 잃는다면 우리들은 어디로 돌아가겠는가?”했다. 장사 양웅이 나와 말하기를 “제가 비록 재능은 아니나 마유상(마속)에게 돌아가 대신하기를 원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진영을 세우는 법을 일일이 분부하여 양의에게 주었다.
正待要行,忽報馬到來,說:「街亭、列柳城,盡皆失了!」孔明跌足長歎曰:「大事去矣!此吾之過也!」急喚關興、張苞分付曰:「汝二人各引三千精兵,投武功山小路而行。如遇魏兵,不可大擊,只鼓譟吶喊,為疑兵驚之。彼當自走,亦不可追。待軍退盡,便投陽平關去。」又令張翼先引軍去修理劍閣,以備歸路。又密傳號令,教大軍暗暗收拾行裝,以備起程。又令馬岱、姜維斷後,先伏於山谷中,待諸軍退盡,方始收兵。又令心腹人,分路與天水、南安、安定三郡官吏軍民,皆入漢中。又令心腹人到冀縣搬取姜維老母,送入漢中。
막 가려하는데 홀연히 보마(전령)가 와서 말하기를 “가정, 열류성을 모두 잃었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발을 구르며 길게 탄식하며 말하기를 “큰일은 가버렸구나(그르쳤구나)! 이는 나의 잘못이다.”하고는 급히 관흥, 장포를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너희 두 사람은 각각 삼천의 정예 군대를 이끌고 무공산의 작은 길로 들어가라. 만약 위나라 군대를 만난다면 크게 공격해서는 안 되고 다만 북을 치고 함성만 질러 적을 속이고 놀라게 하라. 그들이 스스로 달아나더라도 도한 추격해서는 안 된다. 군대가 다 물러나기를 기다렸다가 곧 양평관으로 들어가라.”했다. 또 장익으로 하여금 먼저 군대를 이끌고 가 검각을 수리하는 것으로서 돌아가는 길을 준비하게 했다. 또 비밀리명령을 내려 대군으로 하여금 몰래 행장을 꾸리는 것으로서 출발을 준비하게 하였다. 또 마대, 강유로 하여금 뒤를 끊게 하여 먼저 산골짜기 안에 숨어 있으면서 여러 군대가 모두 물러나기를 기다렸다가 비로소 군대를 거두게 했다. 또 심복으로 하여금 길을 나누어 천수, 남안, 안정 세 군의 관리와 군대, 백성들은 모두 한중에 들어가게 하였다. 또 심복으로 하여금 기현에 가 강유의 노모를 옮겨 한중에 보내 들어가게 하였다.
孔明分撥已定,先引五千兵去西城縣搬運糧草。忽然十餘次飛馬報到,說司馬懿引大軍十五萬,望西城蜂擁而來。時孔明身邊並無大將,只有一班文官,所引五千軍,已分一半先運糧草去了,只剩二千五百軍在城中。眾官聽得這個消息,盡皆失色。孔明登城望之,果然塵土沖天,魏兵分兩路望西城縣殺來。孔明傳令,教將旌旗盡皆藏匿;諸將各守城鋪,如有妄行出入,及高聲言語者,立斬;大開四門,每一門上用二十軍士,扮作百姓,洒掃街道,如魏兵到時,不可擅動,吾自有計。孔明乃披鶴氅,戴綸巾,引二小童攜琴一張,於城上敵樓前,憑欄而坐,焚香操琴。
제갈공명이 임무를 정하고는 먼저 오천의 군대를 이끌고 서성현에 가 양식과 말먹이 풀을 운반하려 하였다. 홀연히 십여 차례 전령이 이르러 사마의가 대군 십오만을 이끌고 서성을 향해 벌 떼처럼 오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그 때 제갈공명의 주변에는 대장(무관)이 없고 다만 한 떼의 문관만 있고, 이끌고 있는 오천의 군대도 이미 반은 나누어 먼저 식량과 말먹이 풀을 운반하러 갔고, 단지 이천오백의 군대만 성안에 있을 뿐이었다. 여러 관리들이 이런 소식을 듣고는 모두 얼굴색이 변하였다. 제갈공명에 성에 올라 바라보니 과연 먼지가 하늘로 치솟는데 위나라 군대가 두 길로 나누어 서성현으로 쇄도해 왔다. 제갈공명이 명령을 내려 깃발을 모두 감추게 하고 여러 장수는 각각 성과 마을을 지키게 하면서 만약 망녕되이 행동하여 출입하거나 큰 소리로 말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목을 베게 하고, 크게 (성의) 네 개 문을 크게 열고 매 문마다 이십명의 군사를 써서 백성으로 분장하게 하여 거리의 길을 비로 쓸게 하고, 만약 위나라 군대가 이르러도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나에게 계책이 있다고 했다. 제갈공명은 곧 학창의를 입고 윤건을 쓴 후 두 어린아이를 이끌고 거문고 하나를 가지고 성위 적루 앞에 올라 난간에 기대 앉아 향을 사르고 거문고를 연주하였다.
卻說司馬懿前軍哨到城下,見了如此模樣,皆不敢進,急報與司馬懿,懿笑而不信,遂止住三軍,自飛馬遠遠望之。果見孔明坐於城樓之上,笑容可掬,傍若無人焚香操琴。左有一童子,手捧寶劍;右有一童子,手執麈尾。城門內外有二十餘名百姓,低頭洒掃,旁若無人。
각설하고 사마의의 앞쪽 군대(선봉) 전초가 성 아래에 이르러 이 같은 모양을 보고는 모두 감히 진군하지 못하고, 급히 사마의에게 보고하니 사마의가 웃으며 믿지 않았다. 마침내 삼군을 멈추게 하고는 스스로 날듯이 말을 달려 멀리서 바라보았다. 과연 제갈공명이 성루 위에 앉아 미소 띤 표정으로 거문고를 잡고 옆에 사람이 없는 듯한 태도로 향을 사르고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왼쪽의 동자는 손에 보검을 받들고 있었고, 오른쪽의 동자는 손에 고라니 꼬리(고라니 꼬리로 만든 먼지떨이)를 잡고 있었다. 성문 안 밖에는 이십여 명의 백성이 머리를 숙이고 비질하는데 곁에 사람이 없는 듯이 하고 있었다.
懿看畢大疑,便到中軍,教後軍作前軍,前軍作後軍,望北山路而退。次子司馬昭曰:「莫非諸葛亮無軍,故作此態?父親何便退兵?懿曰:「亮平生謹慎,不曾弄險。今大開城門,必有埋伏。我兵若進,中其計也。汝輩豈知?宜速退。」於是兩路兵盡退去。孔明見魏軍遠去,撫掌而笑。眾官無不駭然。乃問孔明曰:「司馬懿乃魏之名將,今統十五萬精兵到此,見了丞相,便速退去,何也?」孔明曰:「此人料吾平生謹慎,必不弄險;見如此模樣,疑有伏兵,所以退去。吾非行險,蓋因不得已而用之。此人必引軍投山北小路去也。吾已令興、苞二人在彼等候。」
사마의는 보기를 마치고 크게 의심하고 곧 중군에 이르러 후군은 전군이 되게 하고 전군은 후군이 되게 하여 북산의 길을 향해 물러나게 했다. 둘째 아들 사마소가 말하기를 “설마 제갈공명이 군대도 없으면서 이런 태도를 짓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버지께서는 어찌하여 곧 군대를 물리셨습니까?”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평생동안 신중하여 일찍이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았다. 지금 성문을 크게 열었으니 반드시 매복이 있을 것이다. 우리 군대가 만약 진군한다면 그 계책에 빠지게 될 것이다. 너희들이 어찌 알겠는가? 속히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했다. 이에 두 길의 군대가 모두 물러갔다. 제갈공명은 위나라 군대가 멀리 가는 것을 보고 손을 비비며 웃었다. 여러 관리들이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에 제갈공명에게 물어 말하기를 “사마의는 곧 위나라의 이름있는 장수로 지금 십오만의 정예 군대를 이끌고 여기에 이르러 승상을 보자말자 곧 속히 물러 간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하자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이 사람(사마의)은 내가 평생동안 신중하여 반드시 위험한 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는데 이 같은 모양을 보고는 복병이 있을까 의심하였기 때문에 물러간 것이다. 나는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는데 대개 부득이하기 때문에 그것을 쓴 것이다. 이 사람은 군대를 이끌고 북산의 작은 길로 갈 것이 틀림없다. 내가 이미 관흥과 장포 두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위나라 군대)을 기다리고 있게 하였다.”했다.
眾皆驚服曰:「丞相之玄機,神鬼莫測。若某等之見,必棄城而走矣。」孔明曰:「吾兵止有二千五百,若棄城而走,必不能遠遁。得不為司馬懿所擒乎?」後人有詩讚曰:
무리들이 모두 놀라고 탄복해 말하기를 “승상의 현묘한 계책은 귀신도 헤아지리 못할 것입니다. 저희들 같은 견해로는 반드시 성을 버리고 달아났을 것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우리 군대는 다만 이천오백일 뿐이니 만약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면 반드시 멀리 달아나지 못하였을 것이니 사마의에게 사로잡히게 되지 않았겠는가?”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기려 말하기를
瑤琴三尺勝雄師,諸葛西城退敵時。十五萬人回馬處,後人指點到今疑。
옥으로 꾸민 세 자 거문고로 정예 군대를 이긴 것은 제갈공명이 서성에서 적을 물리쳤을 때이다. 십오만 사람이 말을 돌린 곳은 후세 사람이 가리켜 알려주지만 지금도 의심한다.
言訖,拍手大笑曰:「吾若為司馬懿,必不便退也。」遂下令,教西城百姓,隨軍入漢中;司馬懿必將復來。於是孔明離西城望漢中而走。天水、安定、南安三郡官吏軍,陸續而來。
(제갈공명이) 말을 마치고는 손뼉을 치고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만약 사마의였다면 반드시 곧 물러나지 않았을 것이다.”하고는 명령을 내려 서성의 백성으로 하여금 군대를 따라 한중으로 들어가게 하며 사마의는 반드시 장차 다시 올 것이라 했다. 이에 제갈공명은 서성을 떠나 한중을 향해 달아났다. 천수, 안정, 남안 세 군의 관리와 군대가 잇따라 왔다.
卻說司馬懿望武功山小路而走。忽然山坡後喊殺連天,鼓聲震地。懿回顧二子曰:「吾若不走,必中諸葛亮之計矣。」只見大路上一軍殺來,旗上大書「右護衛使虎翼將軍張苞。」。魏兵皆棄甲拋戈而走。行不到一程,山谷中喊聲震地,鼓角喧天,前面一杆大旗,上書:「左護衛使龍驤將軍關興。」。山谷應聲,不知蜀兵多少;更兼魏軍心疑,不敢久停,只得盡棄輜重而去。興、苞二人皆遵將令,不敢追襲,多得軍器糧草而歸。司馬懿見山谷中皆是蜀兵,不敢出大路,遂回街亭。
각설하고 사마의는 무공산의 작은 길을 향해 달아났다. 홀연히 산기슭 뒤에서 함성이 하늘에 이어지고 북소리가 땅을 진동하였다. 사마의가 두 아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내가 만약 달아나지 않는다면 반드시 제갈공명의 계책에 빠질 것이다.”하는데 큰길로 한 군대가 쇄도해 오는 것을 보니 깃발에 ‘우호위사호익장군장포’라 크게 쓰여 있었다. 위나라 군대가 모두 갑옷과 창을 버리고 달아났다. 간 지 얼마 되지 못하여 산골짜기 안에서 함성이 땅을 진동하고, 북과 뿔피리 소리가 하늘을 울리는데 앞 쪽에 하나의 큰 깃발에 ‘좌호위사용양장군관흥’이라 쓰여 있었다. 산골짜기에 소리가 울리니 촉의 군대가 많은지 적은지를 알 수 없었다. 다시 위나라 군대의 마음에 의심이 들어 감히 오래 멈추지 못하고 다만 치중(보급품)을 모두 버리고 갔다. 관흥과 장포 두 사람은 모두 장수의 명을 따라 감히 추격하지 못하고 무기와 식량, 말먹이 풀을 많이 얻었다. 사마의는 산골짜기 안이 모두 촉의 군대인 것을 보고는 감히 큰길로 나가지 못하고 마침내 가정으로 돌아갔다.
此時曹真聽知孔明退兵,急引兵追趕。山背後一聲砲響,蜀兵漫山遍野而來;為首大將,乃是姜維、馬岱。真大驚,急退軍時,先鋒陳造已被馬岱所斬。真引兵鼠竄而還,蜀兵連夜皆奔回漢中。
이 때 조진은 제갈공명이 군대를 물렸다는 것을 듣고 급히 군대를 이끌고 추격하였다. 산 뒤에서 한 소리 포가 울리며 촉의 군대가 산과 들에 가득 왔는데 우두머리되는 대장은 곧 강유, 마대였다. 조진이 크게 놀라 급히 군대를 물리려할 때 선봉인 진조가 이미 마대에게 베여 죽음을 당하였다. 조진이 군대를 이끌고 쥐새끼처럼 달아나 돌아가니 촉의 군대가 밤을 새워 모두 한중으로 달려 돌아갔다.
卻說趙雲、鄧芝伏兵於箕谷道中。聞孔明傳令退軍,雲謂芝曰:「魏軍知吾兵退,必然來追。吾先引一軍伏於其後,公卻引兵打吾旗號,徐徐而退,吾一步步自有護送也。」
각설하고 조운(조자룡), 등지는 기곡도에서 군대를 매복하고 있다가 제갈공명이 군대를 물리라는 명을 내렸다는 것을 듣고 조운(조자룡)이 등지에게 일러 말하기를 “위나라 군대가 우리 군대가 물러난다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쫓아 올 것입니다. 내가 먼저 한 군대를 이끌고 그 뒤에 매복해 있을 터이니 공은(등지) 군대를 이끌고 나의 깃발을 내걸고 천천히 물러나면 내가 한 걸음마다 스스로 호송할 것입니다.”했다.
卻說郭淮提兵再回箕谷道中,喚先鋒蘇顒分付曰:「蜀將趙雲,英勇無敵,汝可小心提防。彼軍若退,必有計也。」蘇顒欣然曰:「都督若肯接應,某當生擒趙雲。」遂引前部三千兵,奔入箕谷。看看趕上蜀兵,只見山坡後閃出紅旗白字,上書:「趙雲。」蘇顒急收兵退走。行不到數里,喊聲大震,一彪軍撞出;為首大將,挺槍躍馬,大喝曰:「汝識趙子龍否!」蘇顒大驚曰:「如何這裏又有趙雲?」措手不及,被趙雲一槍刺死於馬下,餘軍潰散。
각설하고 곽회는 군대를 데리고 다시 기곡도 안으로 돌아 가 선봉 소옹을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촉의 장수 조운(조자룡)은 용맹하여 대적할 이가 없으니 너는 조심하여 지키라. 그 군대(촉의 군대)가 만약 물러난다면 반드시 계책이 있을 것이다.”했다. 소옹이 쾌히 말하기를 “도독께서 만약 기꺼이 호응하여 행동하신다면 저는 마땅히 조운(조자룡)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하고는 마침내 전부 삼천 명을 이끌고 기곡에 달려 들어갔다. 쫓아오는 촉의 군대를 보니 다만 산기슭 뒤에서 흰 글자를 쓴 붉은 깃발이 나타났는데 ‘조운(조자룡)’이라 쓰여 있었다. 소옹은 급히 군대를 거두어 물러나 달아났다. 간 지 몇리 되지 않아 함성이 크게 울리며 한떼의 군대가 치고 나왔다. 우두머리되는 대장이 창을 내밀고 말을 달리며 크게 외쳐 말하기를 “너는 조자룡을 알고 있는가!”하니 소옹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어떻게 이 안에 또 조운(조자룡)이 있는가?”했다. (소옹이)조치를 하지 못하고 조운(조자룡)의 한 창에 찔려 말에서 떨어져 죽으니 나머지 군사들은 무너져 흩어졌다.
雲迤邐前進,背後又一軍到,乃郭淮部將萬政也。雲見魏兵追急,乃勒馬挺槍,立於路口,待來將交鋒。蜀兵已去三十餘里。萬政認得是趙雲,不敢前進。雲等得天色黃昏,方纔撥回馬緩緩而退。郭淮兵到,萬政言趙雲英勇如舊,因此不敢近前。淮傳令教軍急趕,政令壯士數百騎趕來。行至一大林,忽聽得背後大喝一聲曰:「趙子龍在此!」驚得魏兵落馬者百餘人,餘者皆越嶺而去。
조운(조자룡)이 구불구불 이어 전진하는데 뒤에서 또 일 군이 이르렀는데 곧 곽회의 부장 만정이었다. 조운은 위나라 군대의 추격이 급한 것을 보고는 말고삐를 당겨 세우고 창을 내밀고 길 입구에 서서 오는 장수를 기다려 싸우려 하였는데 촉의 군대는 이미 삼십여리를 갔다. 만정은 이가 조운(조자룡)인 것을 알고는 감히 전진하지 못하였다. 조운(조자룡)은 하늘이 황혼이 되자(저녁때가 되자)비로소 말을 돌려 천천히 물러났다. 곽회의 군대가 이르니 만정은 조운(조자룡)의 용맹이 옛과 같다고 말하였다. 이 때문에 감히 가까이 전진하지 못하였다. 곽회가 명령을 내려 군대로 하여금 급히 추격하게 하니 만정이 장사들 수백 기를 거느리고 추격하였다. 행군하여 큰 숲에 이르자 홀연히 뒤에서 크게 외치는 한 소리가 들리는데 말하기를 “조자룡이 여기에 있다.”하니 위나라 군대 중에 놀라 말에서 떨어진 자가 백여 명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재를 넘어 갔다.
萬政勉強來敵,被雲一箭射中盔纓,驚跌於澗中。雲以槍指之曰:「吾饒汝性命回去!快教郭淮趕來!萬政脫命而回。雲護送車仗人馬,望漢中而去,沿途並無遺失。曹真、郭淮復奪三郡,以為己功。
만정이 마지못해 가서 대적하다 조운(조자룡)이 하나의 화살을 쏘아 투구끈을 맞추자 놀라 시내 안에 넘어졌다. 조운(조자룡)이 창으로 가리키며 말하기를 “내가 너의 생명을 살려줄 터이니 돌아가라! 빨리 곽회로 하여금 쫓아오게 하라!”하니 만정이 목숨을 구해 돌아갔다. 조운(조자룡)은 수레와 인마를 호송하여 한중을 향해 가는데 도중에 잃어버린 것이 없었다. 조진과 곽회는 다시 세 군을 빼앗은 것을 자기의 공으로 삼았다.
卻說司馬懿分兵而進,此時蜀兵盡回漢中去了。懿引一軍復到西城,因問遺下居民及山僻隱者,皆言孔明只有二千五百軍在城中,又無武將,只有幾個文官,別無埋伏。武功山小民告曰:「關興、張苞,只各有三千軍,轉山吶喊,鼓譟驚追,又無別軍,並不敢廝殺。」懿悔之不及,仰天歎曰:「吾不如孔明也!」遂安撫了官民,引兵逕還長安,朝見魏主。
각설하고 사마의는 군대를 나누어 전진하고 있었다. 이 때 촉의 군대는 모두 한중으로 돌아갔다. 사마의가 일 군을 이끌고 다시 서성에 이르러 뒤에 남아있던 백성과 산에 숨었던 자들에게 물으니, 모두 제갈공명에게는 다만 이천오백의 군대만 성 안에 있었을 뿐이었고, 또 무장은 없고 다만 몇 명의 문관만 있었을 뿐이었으며 따로 매복도 없었다고 했다. 무공산의 백성이 알려 말하기를 “관흥과 장포에게는 각각 삼천의 군대가 있었을 뿐으로 산을 돌아 나와 함성을 지르고 북을 치면서 급히 추격하는 듯이 하였지만 또한 별도의 군대가 없어 감히 싸우지 못한 것입니다.”했다. 사마의가 후회해 마지않으며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해 말하기를 “나는 제갈공명보다 못하구나!”했다. 마침내 관과 백성들을 안무한 후 군대를 이끌고 곧 장안으로 돌아가 위나라 임금을 뵈었다.
叡曰:「今日復得隴西諸郡,皆卿之功也。」懿奏曰:「今蜀兵皆在漢中,未盡剿滅。臣乞大兵併力收川,以報陛下。」叡大喜,令懿即便興兵。忽班內一人出奏曰:「臣有一計,足可定蜀降吳。」正是:蜀中將相方歸國,魏地君臣又逞謀。未知獻計者是誰,且看下文分解。
조예가 말하기를 “오늘 다시 농서 여러 군을 얻은 것은 모두 경의 공이다.”했다. 사마의가 아뢰어 말하기를 “지금 촉의 군대가 모두 한중에 있고 아직 모두 무찔러 없애지 못하였습니다. 신은 큰 군대로 힘을 모아 천(촉)을 거두는 것으로서 폐하께(폐하의 은혜) 보답할 것을 청합니다.”했다. 조예가 크게 기뻐하며 사마의로 하여금 즉시 군대를 일으키게 하였다. 홀연히 열안에서 한 사람이 나와 아뢰어 말하기를 “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으니 충분히 촉을 평정하고 오를 항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했다. 바로 이러하다. 촉의 장수와 재상이 바야흐로 귀국하려 하는데 위나라 땅의 임금과 신하들은 또 음모를 꾸미는구나. 계책을 올리는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겠다.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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