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九回:諸葛亮大破魏兵,司馬懿入寇西蜀
제99회 제갈량(제갈공명)은 크게 위나라 군대를 깨트리고, 사마의는 서촉을 침입해 들어가다.
蜀漢建興七年,夏四月,孔明兵在祁山,分作三寨,專候魏兵。
촉 건흥 칠년 여름 사월 제갈공명의 군대는 기산에 있으면서 세 개로 영채를 나누어 짓고 오직 위나라 군대를 기다렸다.
卻說司馬懿引兵到長安,張郃接見,備言前事。懿令郃為先鋒,戴陵為副將,引十萬兵到祁山,於渭水之南下寨。郭淮、孫禮入寨參見。懿問曰:「汝等曾與蜀兵對陣否?」二人答曰:「未也。」懿曰:「蜀兵千里而來,利在速戰;今來此不戰,必有謀也。隴西諸路,曾有信息否?」淮曰:「已有細作探知各郡十分用心,日夜提防,並無他事。只有武都、陰平二處,未曾回報。」懿曰:「吾自差人與孔明交戰。汝二人急從小路去救二郡,卻掩在蜀兵之後,彼必自亂矣。」
각설하고 사마의는 군대를 이끌고 장안에 이르러 장합을 접견하니 (장합이) 앞의 일을 갖추어 말하였다. 사마의는 장합으로 하여금 선봉이 되게 하고, 대릉을 부장으로 삼아 십만의 군대를 이끌고 기산에 이르러 위수의 남쪽에 영채를 세웠다. 곽회, 손례가 영채에 들어 가 뵈었다. 사마의가 물어 말하기를 “너희들은 일찍이 촉의 군대와 진을 상대하였는가?”하니 두 사람이 답하여 말하기를 “아닙니다.”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촉의 군대가 천리를 왔으니 이로움은 속히 싸우는데 있는데도 지금 이곳에 와서도 싸우지 않는 것은 반드시 도모함이 있는 것이다. 농서의 여러 길에서 일찍이 소식이 있는가?”하니 곽회가 말하기를 “이미 세작(첩자)이 각 군에서 심혈을 기우려 탐지하고 있고, 밤낮으로 방비하고 있으나 다른 일은 없습니다. 다만 무도, 음평 두 군만은 아직 보고가 없습니다.”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내 스스로 사람을 보내 제갈공명과 싸우겠다. 너희 두 사람은 급히 작은 길을 따라 가서 두 군을 구원하여 촉의 군대 뒤를 습격하면 그들은 반드시 스스로 어지러워질 것이다.”했다.
二人受計,引五千兵從隴西小路來救武都、陰平,就襲蜀兵之後。郭淮於路謂孫禮曰:「仲達比孔明如何?」禮曰:「孔明勝仲達多矣。」淮曰:「孔明雖勝,此一計足顯仲達有過人之智。蜀兵如正攻兩郡,我等自後抄到,彼豈不自亂乎?」
두 사람이 계책을 받아 오천의 군대를 이끌고 농서 작은 길로 무도, 음평을 구원하러 가 촉의 군대 뒤를 습격하려 했다. 곽회가 길에서 손례에게 말하기를 “중달(사마의)은 제갈공명에 비해 어떠합니까?”하니 손례가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중달(사마의)보다 나음이 많습니다.”했다. 곽회가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비록 나으나 이 한 가지 계책은 중달(사마의)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지혜가 있음이 충분히 드러났습니다. 촉의 군대가 만약 바로 두 군을 공격할 때 우리들이 뒤로부터 치고 이르면 그들이 어찌 저절로 어지러워지지 않겠습니까?”했다.
正言間,忽哨馬來報:「陰平已被王平打破了。武都已被姜維打破了。前離蜀兵不遠。」禮曰:「蜀兵既已打破了城池,如何陳兵於外?必有詐也,不如速退。」
말하는 사이에 홀연히 정찰병이 와서 보고하기를 “음평은 왕평에게 깨트려졌고, 무도는 강유에게 깨트려졌습니다. 앞쪽으로 촉의 군대가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했다. 손례가 말하기를 “촉의 군대가 이미 성지를 깨트렸는데 어떻게 군대를 밖에 진칠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거짓이 있을 것이니 속히 물러나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郭淮從之。方傳令教軍退時,忽然一聲砲響,山背後閃出一枝軍馬來,旗上大書「漢丞相諸葛亮」;中央一輛四輪車,孔明端坐於上;左有關興,右有張苞。孫、郭二人見之,大驚。孔明大笑曰:「郭淮、孫禮休走!司馬懿之計,安能瞞得過吾?他每日令人在前交戰,卻教汝等襲吾軍後。武都、陰平吾已取了。汝二人不早來降,欲驅兵與吾決戰耶?」
곽회가 그 말을 따랐다. 막 명령하여 군대를 물리려할 때 홀연히 한 소리 포가 울리고 산 뒤에서 번개처럼 한 줄기 군마가 나왔는데 깃발에 ‘한승상제갈량’이라 크게 쓰여 있고, 가운데 한 대의 사륜거 위에 제갈공명이 단정히 앉아 있었다. 왼쪽에는 관흥, 오른쪽에는 장포가 있었다. 손례, 곽회 두 사람이 그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제갈공명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곽회와 손례는 달아나지 말라! 사마의의 계책이 어찌 나를 속여 넘길 수 있겠는가? 그는 매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앞에서 싸우게 하면서 도리어 너희들로 하여금 우리 군대 뒤를 습격하게 한 것이다. 무도와 음평은 내가 이미 취하였다. 너희 두 사람은 빨리 와서 항복하지 않고 군대를 몰아 나와 결전하려는 것인가?”했다.
郭淮、孫禮聽畢,大慌。忽報背後喊殺連天,王平、姜維引兵從後殺來。興、苞二將,又引兵從前面殺來。兩面夾攻,魏兵大敗。郭、孫二人棄馬爬山而走。張苞望見,縱馬趕來;不期連人帶馬,跌入澗內。後軍急忙救起,頭已跌破,孔明令人送回成都養病。
곽회와 손례가 듣기를 마치고 크게 당황하였다. 홀연히 뒤에서 함성이 하늘에 이어질 듯이 울리며 왕평, 강유가 군대를 이끌고 뒤에서 쇄도해 온다고 보고하였다. 관흥과 장포 두 장주가 또한 군대를 이끌고 앞쪽에서 쇄도해 와 양쪽에서 협공하니 위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곽회와 손례 두 사람은 말을 버리고 산을 기어서 달아났다. 장포가 바라보고는 말을 달려 쫓아가다 뜻하지 않게 사람과 말이 함께 넘어져 시내에 빠졌다. 뒤의 군대가 급히 구원하였는데 머리가 이미 넘어질 때 깨졌다. 제갈공명이 사람을 시켜 성도로 돌려보내 병을 치료하게 하였다.
卻說郭、孫二人走脫,回見司馬懿曰:「武都、陰平二郡已失。孔明伏於要路,前後攻殺,因此大敗,棄馬步行,方得逃回。」懿曰:「非汝等之罪,孔明智在吾先。可再引兵把守雍、郿二城,切勿出戰。吾自有破敵之策。」
각설하고 곽회와 손례 두 사람이 달아나 벗어나 돌아 가 사마의를 뵙고 말하기를 “무도, 음평 두 군을 이미 잃었습니다. 제갈공명이 요충지 길에 매복하였다가 앞 뒤에서 공격하여 죽였기 때문에 크게 패하여 말을 버리고 걸어서 비로소 도망해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너희들의 죄가 아니라 제갈공명의 지혜가 나보다 앞섰기 때문이다. 다시 군대를 이끌고 옹성과 미성을 지키고 절대로 나가 싸우지 마시오. 내가 직접 적을 깨트릴 계책이 있습니다.”했다.
二人拜辭而去。懿又喚張郃、戴陵分付曰:「今孔明得了武都、陰平,必然撫百姓以安民心,不在營中矣。汝二人各引一萬精兵,今夜起身,抄在蜀兵之後,一齊奮勇殺將過來;吾卻引軍在前布陣,只待蜀兵勢亂,吾大驅人馬,攻殺進去:兩軍併力可奪蜀寨也。若得此地山勢,破敵何難?」
두 사람이 하직하고 갔다. 사마의가 또 장합과 대릉을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지금 제갈공명이 무도와 음평을 얻었으니 반드시 백성을 위무하는 것으로서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진영 안에 있지 않을 것이다. 너희 두 사람은 각각 일만의 정예군대를 이끌고 오늘 밤에 몸을 일으켜 촉 군대의 뒤를 습격하여 일제히 용맹을 떨쳐 쇄도해 지나오면 내가 군대를 이끌고 군대를 이끌고 앞에서 진을 치고 촉의 군대 형세가 어지러워지기를 기다려 인마를 크게 몰아 공격하고 죽이며 진군할 것입니다. 두 군대가 힘을 합하면 촉의 영채를 빼앗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땅의 산 형세를 얻을 수 있다면 적을 깨트리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했다.
二人受計引兵而去。戴陵在左。張郃在右,各取小路進發,深入蜀兵之後。三更時分,來到大路,兩軍相遇,合兵一處,卻從蜀兵背後殺來。行不到三十里,前軍不行。張、戴二人自縱馬視之,只見數百輛草車,橫截去路。郃曰:「此必有準備。可急取路而回。」
두 사람이 군대를 이끌고 갔다. 대릉은 왼쪽에 있고, 장합은 오른쪽에 있으면서 각각 작을 길을 취해 출발하여 깊이 촉의 군대 뒤로 들어갔다. 삼경 때 쯤 큰 길에 이르러 두 군대가 서로 만나 군대를 한 곳으로 합하여 촉 군대의 뒤로부터 쇄도해 갔다. 행군한지 삼십리가 되지 않아 앞의 군대가 가지 못하였다. 장합과 대릉 두 사람이 직접 말을 달려 보니 수백 수레의 풀을 실을 수레가 가는 길을 가로 막고 있었다. 장합이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준비가 있는 것이다. 급히 길을 취해 돌아가야 한다.”했다.
纏傳令退兵,只見滿山火光齊明,鼓聲大震,伏兵四下皆出,把二人圍住。孔明在祁山上大叫曰:「戴陵、張郃可聽吾言。司馬懿料吾往武都、陰平撫民,不在營中,故令汝二人來劫吾寨,卻中吾之計也。汝二人乃無名下將,吾不殺害,下馬早降!」郃大怒,指孔明而罵曰:「汝乃山野村夫,侵吾大國境界,如何敢發此言!吾若捉住汝時,碎屍萬段!」
명령을 내려 군대를 물리는데 산 가득 불빛이 일제히 밝혀지고 북소리가 크게 진동하며 복병이 사방에서 모두 나와 두 사람을 포위하였다. 제갈공명은 기산 위에 있다가 크게 외쳐 말하기를 “대릉과 장합은 내 말을 들으라. 사마의는 내가 무도, 음평으로 가 백성을 위무하여 진영 안에 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너희 두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 영채를 습격하게 하였으나 우리의 계책에 빠진 것이다. 너희 두 사람은 곧 이름 없는 하급 장수로 내가 죽이지 않을 것이니 말에서 내려 빨리 항복하라!”했다. 장합이 크게 노하여 제갈공명을 가리키며 욕해 말하기를 “너는 곧 산야의 촌뜨기로 우리 대국의 경계를 침범하였으면서 어떻게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내가 만약 너를 잡으면 시체를 달아 만 조각으로 할 것이다.”했다.
言訖,縱馬挺鎗,殺上山來。山上矢石如雨。郃不能上山,乃拍馬舞槍,衝出重圍,無人敢當。蜀兵困戴陵在垓心。郃殺出,不見戴陵,即奮勇翻身又殺入重圍,救出戴陵而回。孔明在山上,見郃在萬軍之中,往來衝突。英勇倍加,乃謂左右曰:「吾當聞張翼德大戰張郃,人皆驚懼。吾今日見之,方知其勇也。若留下此人,必為蜀中之害。吾當除之。」遂收兵回營。
(장합이)말을 마치고 말을 달리며 창을 들고 산위로 달려 왔다. 산위에서 화살과 돌이 비오듯 쏟아졌다. 장합은 산 에 오르지 못하고 말에 박차를 가해 창을 휘두르며 두터운 포위를 치고 나가니 감당할 사람이 없었다. 촉의 군대가 대릉을 군궁하게 하여 포위 가운데 있게 하였다. 장합이 쇄도해 나왔으나 대릉이 보이지 않자 곧 용맹을 떨쳐 몽를 돌려 또 두터운 포위를 뚫고 들어 가 대릉을 구출해 돌아갔다. 제갈공명이 산 위에 있으면서 장합이 많은 군대 안에서 왕래하며 충돌하여 (장합이)용맹을 배로하는 것을 보고 좌우에 일러 말하기를 “내가 장익덕(장비)이 장합과 크게 싸우니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고 들었다. 내가 오늘 그를 보고 비로소 그 용맹함을 알았다. 만약 이 사람을 남겨둔다면 반드시 촉의 해로움이 될 것이다. 내가 마땅히 그를 제거할 것이다.”하고는 마침내 군대를 거두어 진영으로 돌아갔다.
卻說司馬懿引兵布成陣勢,只待蜀兵亂動,一齊攻之。忽見張郃、戴陵狼狽而來,告曰:「孔明先如此提防,因此大敗而歸。」懿大驚曰:「孔明真神人也!不如且退。」即傳令教大軍盡回本寨,堅守不出。
각설하고 사마의가 군대를 이끌고 진세를 펴고 촉의 군대가 어지럽게 움직이는 것을 기다렸다가 일제히 공격하려 하였다. 홀연히 장합과 대릉이 낭패하고 온 것을 보니 (장합과 대릉이)고하여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먼저 이 같이 방비하였기 때문에 크게 패하고 돌아왔습니다.”했다. 사마의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참으로 귀신같은 사람이구나! 물러나는 것이 낫다.”하고는 곧 명령을 내려 대군으로 하여금 모두 본 영채로 돌아가게 하고, 굳게 지키며 나가지 않았다.
且說孔明大勝,所得器械、馬匹,不計其數,乃引大軍回寨。每日令魏延挑戰,魏兵不出。一連半月,不曾交戰。孔明正在帳中議事,忽報天子使侍中費禕齊詔至。孔明接入營中,焚香禮畢,開詔讀曰: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크게 이기고 얻은 기계와 말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이에 대군을 이끌고 영채로 돌아갔다. (제갈공명은)매일 위연으로 하여금 싸움을 걸게 하였으나 위나라 군대는 나오지 않았다. 반 달을 계속하였으나 서로 싸우지 않았다. 제갈공명이 군막에서 일을 의논하는데 홀연히 천자가 시중 비위에게 조서를 가지고 이르게 하였다(천자가 보낸 시중 비위가 조서를 가지고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제갈공명이 영접하여 진영 안으로 들어 가 향을 사르는 예를 마치고 조서를 열어 읽었다. (조서에) 말하기를
街亭之失,咎由馬謖﹔而君引愆,深自貶抑。重違君意,聽順所守。前年耀師,馘斬王雙﹔今歲爰征,郭淮遁走﹔降集氐、羌,復興二郡:威震凶暴,功勛顯然。方今天下騷擾,元惡未梟,君受大任,幹國之重,而久自抑損,非所以光揚洪烈矣。今復君丞相,君其勿辭!
“가정을 잃은 것은 허물이 마속에게 있는데도 그대(제갈공명)가 허물을 이끌어 깊이 스스로를 낮추었다. 거듭 그대(제갈공명)의 뜻을 어기는 것을 어렵게 여겨 지키는 바를 들어 따랐다. 지난해 군대를 빛나는 군대로 왕쌍을 베어 죽였고, 금년에도 이에 정벌을 하여 곽회를 도망가게 하고, 저족과 강족을 항복하게 하고 다시 두 군을 일으켰다. 위엄은 흉하고 사나운 이에게 진동하여 공훈이 드러났다. 지금 천하는 소란스럽고 큰 악을 아직 목 베어 죽이지 못하였는데 그대가 큰 임무를 맡고 나라를 다스리는 중임으로 오래 동안 스스로를 누르고 겸양하는 것은 위대한 업적을 빛나게 드날리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다시 그대를 승상에 회복하니 그대는 사양하지 말라!”했다.
孔明聽詔畢,謂費禕曰:「吾國事未成,安可復丞相之職?」堅辭不受。禕曰:「丞相若不受職,拂了天子之意,又冷淡了將士之心。宜且權受。」孔明方纔拜受。禕辭去。
제갈공명이 조서 듣기를 마치고 비위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국사를 아직 이루지 못하였는데 어찌 승상의 직을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하고는 굳게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비위가 말하기를 “승상께서 만약 (승상)직을 받지 않으시면 천자의 뜻을 어기는 것이고, 또 장사의 마음을 차갑게 하는 것입니다. 잠시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비로소 겨우 절하고 받았다. 비위는 하직하고 갔다.
孔明見司馬懿不出,思得一計,傳令教各處皆拔寨而起。當有細作報知司馬懿,說孔明退兵了。懿曰:「孔明必有大謀,不可輕動。張郃曰:「此必因糧盡而回,如何不追?」懿曰:「吾料孔明上年大收,今又麥熟,糧草豐足:雖然轉運艱難,亦可支吾半載,安肯便走?彼見吾連日不戰,故作此計引誘。可令人遠遠哨之。」
제갈공명은 사마의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하고는 명령을 내려 각 곳의 영채를 모두 거두게 하였다. 세작(첩자)이 사마의에게 보고하여 제갈공명이 군대를 물린다고 말하였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반드시 큰 계책이 있을 것이니 가벼이 움직여서는 안 된다.”했다. 장합이 말하기를 “이는 틀림없이 식량이 다하여 돌아가는 것인데 어찌하여 추격하지 않으십니까?”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내가 헤아려보니 제갈공명은 작년에 크게 거두었고, 지금 또한 보리가 익었으니 식량과 말먹이 풀이 풍족할 것입니다. 비록 운반하기 어려우나 또한 반년을 버틸 수 있는데 어찌 기꺼이 달아나겠습니까? 그는 우리가 연일 싸우지 않는 것을 보고 이러한 계책을 써서 유인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시켜 멀리까지 정찰해야 합니다.”했다.
軍士探知,回報說:「孔明離此三十里下寨。」懿曰:「吾料孔明果不走。且堅守寨柵,不可輕進。」住了旬日,絕無音信,並不見蜀將來戰。懿再令人哨探,回報說:「蜀兵已起營去了。」懿未信,乃更換衣服,雜在軍中,親自來看,果見蜀兵又退三十里下寨。懿回營謂張郃曰:「此乃孔明之計也,不可追趕。」
군사가 알아보고 돌아 와 보고하여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이로부터 삼십 리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웠습니다.”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내 생각대로 제갈공명은 과연 달아나지 않았다. 또 굳게 영채와 목책을 지키고 가벼이 전진해서는 안 된다.”했다. 십여 일을 지키기만 하는데 소식이 끊어지고 아울러 촉의 장수들이 싸우러 오지 않는 것을 보았다. 사마의가 다시 사람을 시켜 정찰하게 하였더니 정찰대가 돌아 와 보고하여 말하기를 “촉의 군대가 이니 영채를 거두고 갔습니다.”했다. 사마의가 믿지 않고 곧 의복을 갈아입고 군대 안에 섞여 직접 가서 보니 과연 촉의 군대가 또 삼십 리를 물러나 영채를 세운 것을 보았다. 사마의가 진영에 돌아 와 장합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는 곧 제갈공명의 계책입니다. 뒤를 쫓아서는 안 됩니다.”했다.
又住了旬日,再令人哨探。回報說:「蜀兵又退三十里下寨。」郃曰:「孔明用緩兵計,漸退漢中,都督何故懷疑,不早追之?郃願往決一戰!」懿曰:「孔明詭計極多,倘有差失,喪吾軍之銳氣。不可輕進。」郃曰:「某去若敗,甘當軍令。」懿曰:「既汝要去,可分兵兩枝。汝引一枝先行,須要奮力死戰﹔吾隨後接應,以防伏兵。汝次日先進,到半途駐紮,後日交戰,使兵力不乏。」
또 십여 일을 지키다 다시 사람을 시켜 정탐하게 하였다. 돌아와 보고해 말하기를 “촉의 군대가 또 삼십 리를 물러나 영채를 세웠습니다.”했다. 장합이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군대의 전진을 늦추는 계책을 써서 점차 한중으로 물러 나려는 것이니 도독께서는 무엇 때문에 의심을 품고 빨리 추격하지 않으십니까? 제가 가서 한번 싸움으로 결정하기를 원합니다.”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속이는 계책이 지극히 많으니 만약 어긋나고 실수가 있게 되면 우리 군대의 예기를 잃게 될 것입니다. 가벼이 전진해서는 안 됩니다.”했다. 장합이 말하기를 “제가 가서 만약 패하게 된다면 군령을 감당하겠습니다.”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이니 네가 가려하니 군대를 나누어 두 갈래로 해야 합니다. 네가 한 갈래를 이끌고 먼저가 모름지기 힘을 떨쳐 죽음으로 사워야 하고, 나는 뒤를 따라 대응하는 것으로서 복병을 방비할 것입니다. 너는 내일 먼저 전진하여 중도에 이르러 주둔하였다가 뒷날(다음날) 싸우게 하여 군사로 하여금 힘이 부족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했다.
遂分兵已畢。次日,張郃、戴陵引副將數十員、精兵三萬,奮勇先進,到中途下寨。司馬懿留下許多軍馬守寨,只引五千精兵,隨後進發。原來孔明密令人哨探,見魏兵半路而歇。是夜,孔明喚眾將商議曰:「今魏兵來追,必以死戰,汝等須以一當十,吾以伏兵截其後,非智勇之將,不可當此任」。
마침내 군대를 나누기를 마쳤다. 다음날 장합, 대릉이 부장 수십 명과 정에군대 삼만을 이끌고 용맹을 떨치며 먼저 전진하여 중간에 이르러 영채를 세웠다. 사마의는 허다한 군마를 남겨 영채를 지키게 하고 다만 오천의 정예 군대를 이끌고 뒤를 따라 출발하였다. 알고 보니 제갈공명은 비밀리 사람을 시켜 정탐하게 하였더니 위나라 군대가 중간에 쉬는 것을 보았다. 이날 밤 제갈공명은 여러 장수를 불러 상의해 말하기를 “지금 위나라 군대가 추격해 와 반드시 죽음으로서 싸우려 할 것이니 너희들은 반드시 하나로서 열을 감당하고, 나는 복병으로서 그 뒤를 끊을 것이다. 지헤와 용맹을 갖춘 장수가 아니면 이 임무를 감당할 수 없다.”했다.
言訖,以目視魏延。延低頭不語。王平出曰:「某願當之。」孔明曰:「若有失,如何?」平曰:「願當軍令。」孔明嘆曰:「王平肯舍身親冒矢石,真忠臣也!雖然如此,奈魏兵分兩枝前後而來,斷吾伏兵在中,平縱然智勇,只可當一頭,豈可分身兩處?須再得一將同去為妙。怎奈軍中再無舍死當先之人!」
말을 마치고는 눈으로 위연을 보았다. 위연이 머리를 숙이고 말하지 않았다. 왕평이 나와 말하기를 “제가 맡을 것을 원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만약 실수가 있으면 어찌하겠는가?”하니 왕평이 말하기를 “군령을 감당하겠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탄식해 말하기를 “왕평은 기꺼이 몸을 버려 직접 화살과 돌을 무릅쓰려하니 참으로 충신이구나! 비록 이 같으나 위나라 군대가 두 갈래로 나누어 앞뒤로 와 우리 복병을 중간에서 자르면 왕평이 지혜와 용맹으로 한 쪽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나 어찌 몸을 나누어 두 곳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반드시 다시 한 장수를 얻어 함께 가는 것이 현묘할 것이다. 군대 안에 다시 목숨을 버리고 앞장 설 사람이 없는 것을 어찌하랴!”했다.
言未畢,一將出曰:「某願往!」孔明視之,乃張翼也。孔明曰:「張合乃魏之名將,有萬夫不當之勇,汝非敵手。」翼曰:「若有失事,願獻首于帳下。」孔明曰:「汝既敢去,可與王平各引一萬精兵伏於山谷中:只待魏兵趕上,任他過盡,汝等卻引伏兵從後掩殺。若司馬懿隨後趕來,卻分兵兩頭:張翼引一軍當住後隊,王平引一軍截其前隊。兩軍須要死戰,吾自有別計相助。」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한 장수가 나와 말하기를 “제가 기기를 원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그를 보니 곧 장익이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장합은 곧 위나라의 이름 있는 장수로 만 명이 감당하지 못하는 용맹이 있으니 너는 적수가 아니다.”했다. 장익이 말하기를 “만약 실수가 있다면 머리를 군막에 바칠 것을 원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네가 이미 용감히 가려하니 왕평과 각각 일 만의 정예군대를 이끌고 산골짜기 안에 군대를 숨기고, 위나라 군대가 쫓아오기를 기다리다 그들이 모두 지나가면 숨겨 두었던 군대를 이끌고 뒤에서 습격하라. 만약 사마의가 뒤를 따라 쫓아오면 군대를 두 방면으로 나누어 장익이 일 군을 이끌고 뒤의 부대를 막고, 왕평은 일 군을 이끌고 그 앞의 부대를 끊으라. 두 군대가 죽음으로 싸우면 내가 스스로 별도의 계책이 있어 도울 것이다.”했다.
二人受計引兵而去。孔明又喚姜維、廖化分付曰:「與汝二人一個錦囊,引三千精兵,偃旗息鼓,伏於前山之上。如見魏兵圍住王平、張翼,十分危急,不必去救,只開錦囊看視,自有解危之策。」
두 사람이 계책을 받고 군대를 이끌고 갔다. 제갈공명은 또 강유, 요호랄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너희 두 사람에게 한 개의 비단 주머니를 줄 것이니 삼천의 정예군대를 이끌고 깃발은 눕히고 북 치기를 멈춘 채 앞 산 위에 숨어 있으라. 만일 위나라 군대가 왕평, 장익을 둘러 싸 완전히 위급해져도 가서 구원할 필요는 없고, 다만 비단 주머니를 열어 보면 스스로 위태로움을 풀 계책이 있을 것이다.”했다.
二人受計引兵而去。又令吳班、吳懿、馬忠、張嶷四將,附耳分付曰:「如來日魏兵到,銳氣正盛,不可便迎,且戰且走。只看關興引兵來掠陣之時,汝等便回軍趕殺,吾自有兵接應。」
두 사람이 계책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갔다. 또 오반, 오의, 마충, 장의 네 장수에게 귓속말로 분부해 말하기를 “만일 내일 위나라 군대가 이르면 예기가 바로 성대할 것이니 곧 맞이해서는 안 되고, 싸우다 달아나라. 다만 관흥이 군대를 이끌고 와 (사마의 군대)진을 노략질하는 것을 보면 너희들은 곧 군대를 돌려 쫓아 죽이면 내가 스스로 군대로 대응할 것이다.”했다.
四將受計引兵而去。又喚關興分付曰:「汝引五千精兵,伏於山谷:只看山上紅旗颭動,卻引兵殺出。」興受計引兵而去。
네 장수가 계책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갔다. 또 관흥을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너는 오천의 정예 군대를 이끌고 산골짜기에 숨어 있다가 산 위에서 붉은 깃발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 군대를 이끌고 쇄도해 나오라.”했다. 관흥이 계책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갔다.
卻說張郃、戴陵領兵前來,驟如風雨。馬忠、張嶷、吳懿、吳班四將接著,出馬
(交鋒。張郃大怒,驅兵追殺。蜀兵且戰且走,魏兵追趕約有二十餘里,時值六月天氣,十分炎熱,人馬汗如潑水。走到五十里外,魏兵盡皆氣喘。孔明在山上把紅旗一招,關興引兵殺出。馬忠等四將,一齊引兵掩殺回來。張郃、戴陵死戰不退。忽然喊聲大震,兩路軍殺出,乃王平、張翼也。各奮勇追殺,截其後路。郃大叫眾將曰:「汝等到此,不決一死戰,更待何時!」)
각설하고 장합과 대릉이 군대를 거느리고 앞으로 오는데 달려오는 것이 바람과 비같았다. 마충, 장의, 오의, 오반 네 장수가 연이어 말을 타고 나와 (싸웠다. 장합이 크게 노하여 군대를 몰아 추격하였다. 촉의 군대가 또 싸우고 또 달아나니 위나라 군대가 약 이십 리를 쫓아가는데 때는 유월로 날씨가 몹시 더워 인마가 땀 흘리는 것이 물이 솟는 듯하였다. 달려 가 오십 리 밖에 이르자 위나라 군대가 모두 숨을 헐떡였다. 제갈공명이 산 위에 있다가 붉은 깃발을 잡아 한 번 흔드니 관흥이 군대를 이끌고 쇄도해 나왔다. 마충 등 네 장수가 일제히 군대를 이끌고 돌아 와 습격해 죽였다. 장합, 대릉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물러나지 않았다. 홀연히 함성이 크게 진동하며 두 방면의 군대가 쇄도해 나오니 곧 왕평과 장익이었다. 각각 용맹을 떨쳐 뒤쫓아 가 죽이며 그 뒷길을 끊었다. 장합이 크게 여러 장수들에게 외쳐 말하기를 “너희들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한 번 죽음으로 싸움을 결단하지 않는다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는가!”했다.
魏兵奮力衝突,不得脫身。忽然背後鼓角喧天,司馬懿自領精兵殺到。懿指揮眾將,把王平、張翼圍在垓心。翼大呼曰:「丞相神人也!計已算定,必有良謀。吾等當決一死戰!」即分兵兩路;平引一軍截住張郃、戴陵;翼引一軍力當司馬懿。兩頭死戰,叫殺連天。
위나라 군대가 힘을 떨쳐 충돌하였으나 벗어날 수 없었다. 홀연히 뒤에서 북과 뿔피리가 하늘을 시끄럽게 나며 사마의가 스스로 정예 군사를 이끌고 쇄도했다. 사마의가 여러 장수를 지휘하여 왕평, 장익을 잡아 둘러싸고 가운데 있게 하였다. 장익이 크게 외쳐 말하기를 “승상은 신 같은 사람이구나! 계책이 이미 정해졌으니 반드시 좋은 계책이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마땅히 한 번 죽음을 무릅쓰고 싸월야 할 것이다!”하고는 곧 군대를 두 길로 나누어 왕평은 한 군대를 이끌고 장합과 대릉을 막고, 장익은 일 군을 이끌고 힘써 사마의를 막았다. 양 쪽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며 외치는 소리가 하늘에 이어졌다.
姜維、廖化在山上探望,見魏兵勢大,蜀兵力危,漸漸抵當不住。維謂化曰:「如此危急,可開錦囊看計。」二人拆開視之,內書云:「若司馬懿兵來圍王平、張翼至急,汝二人可分兵兩枝,竟襲司馬懿之營,懿必急退,汝可乘亂攻之。營雖不得,可獲全勝。」二人大喜,即分兵兩路,逕向司馬懿營中而去。
강유와 요화가 산 위에서 바라보고 있다가 위나라 군대의 형세가 크고, 촉 군대 힘이 위태로워 점점 막지 못하였다. 강유가 요화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 같이 위급하니 비단 주머니를 열어 계책을 보아야 할 것이다.”하고는 두 사람이 열어서 보니 (주머니)안의 글에 이르기를 “만약 사마의 군대가 와 왕평과 장익을 포위하여 급함에 이르면 너희 두 사람은 군대를 두 갈래로 나누고, 마침내 사마의의 진영을 습격하면 사마의는 반드시 급히 물러날 것이니 너희들은 어지러움을 타고 공격하라. 진영은 비록 얻지 못할지라도 완전한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했다. 두 사람이 크게 기뻐하며 곧 군대를 나누어 지름길로 사마의의 진영 안을 향해 갔다.
原來司馬懿亦恐中孔明之計,沿途不住的令人傳報。懿正催戰間,忽流星馬飛報,言蜀兵兩路逕取大寨去了。懿大驚失色,乃謂眾將曰:「吾料孔明有計,汝等不信,勉強追來,卻誤了大事!」即提兵急回。軍心惶惶亂走。張翼隨後掩殺,魏兵大敗。張郃、戴陵見勢孤,亦望山僻小路而走,蜀兵大勝。背後關興引兵接應諸路。
원래 사마의는 또 제갈공명의 계책에 빠질 것을 두려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길을 따라 쉬지 않고 보고를 전하게 하였다. 사마의가 바로 싸움을 재촉하는 사이에 홀연히 유성마(전령)가 날듯이 보고하기를 촉의 군대가 두 길의 지름길로 큰 영채를 취하러 갔다고 말하였다. 사마의가 크게 놀라 얼굴색을 바꾸며 곧 여러 장수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제갈공명에게 계책이 있을 것이라 헤아렸는데 너희들이 믿지 않아 억지로 추격해 왔다가 큰일을 그르치게 되었구나!”하고는 곧 군대를 데리고 급히 돌아갔다. 군사의 마음이 놀라고 당황하여 어지러이 달아났다. 장익이 뒤를 따르며 습격해 죽이니 위나라 군대가 크게 무너졌다. 장합과 대릉은 형세가 외로운 것을 보고 또 산 구석 작을 길을 따라 달아나니 촉 군대가 크게 이겼다. 뒤에서 관흥이 군대를 이끌고 여러 방면으로 대응하였다.
司馬懿大敗一陣,奔入寨時,蜀兵已自回去。懿收聚敗軍,責罵諸將曰:「汝等不知兵法,只憑血氣之勇,強欲出戰,致有此敗。今後切不許妄動,再有不遵,決正軍法!」眾皆羞慚而退。這一陣,魏軍死者極多,魏將遺棄馬匹器械無數。
사마의는 한바탕 크게 패하고 달려 영채에 들어갔을 때 촉의 군대는 이미 스스로 돌아간 뒤였다. 사마의는 패한 군대를 거두어 모으고 여러 장수들을 꾸짖어 말하기를 “너희들은 병법을 알지 못하고 다만 혈기의 용맹에만 기대 억지로 나가 싸우려하다 이런 패배에 이름이 있었다. 지금부터는 절대로 망령된 움직임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니 다시 따르지 않음이 있다면 결단코 군법을 바로할 것이다.”했다. 무리들이 모두 부끄러워하며 물러났다. 이 한바탕으로 위나라 군대 중에는 죽은 자가 지극히 많고, 위나라 장수들이 버린 말과 기계가 헤아릴 수 없었다.
卻說孔明收得勝軍馬入寨,又欲起兵進取。忽報有人自成都來,說張苞身死。孔明聞知,放聲大哭,口中吐血,昏絕於地。眾人救醒。孔明自此得病臥床不起。諸將無不感激。後人有詩嘆曰:悍勇張苞欲建功,可憐天不助英雄!武侯淚向西風洒,為念無人佐鞠躬。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승리한 군마를 거두어 영채에 들어 가 군대를 일으켜 나아가 취하려 했다. 홀연히 어떤 사람이 성도에서 와서 보고하기를 장포가 죽었다고 말하였다. 제갈공명이 듣고 크게 소리 내어 울다 입으로 피를 토하고 땅에 혼절하였다. 여러 사람이 구하여 깨어났다. 제갈공명이 이로부터 병을 얻어 침상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감격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탄복하기를 “사납고 용맹한 장포가 공을 세우려하였으나, 가련타! 하늘은 영웅을 돕지 않는구나! 무후(제갈공명)의 눈물은 서풍에 물 뿌려지듯 하고, 나라위해 일할 사람 도울 이 없구나.”했다.
旬日之后,孔明喚董厥、樊建等入帳分付曰:「吾自覺昏沉,不能理事:不如且回漢中養病,再作良圖。汝等切勿走泄,司馬懿若知,必來攻擊。」遂傳號令,教當夜暗暗拔寨,皆回漢中。孔明去了五日,懿方得知,乃長嘆曰:「孔明真有神出鬼沒之計,吾不能及也!」於是司馬懿留諸將在寨中,分兵守把各處隘口:懿自班師回。
십여 일 후 제갈공명은 동궐, 번건 등을 불러 군막에 들어오자 분부해 말하기를 “내가 의식이 흐릿하여 일을 다스릴 수 없으니 한중으로 돌아 가 병을 치료하고 다시 잘 도모하는 것이 낫겠다. 너희들은 절대로 누설되지 않게 하라. 사마의가 안다면 반드시 와서 공격할 것이다.”했다. 마침내 명을 내려 그날 밤 몰래 영채를 거두어 모두 한중으로 돌아갔다. 제갈공명이 간지 오일 후 사마의가 비로소 알고는 이에 길게 탄식하여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참으로 신출귀몰한 계책을 지니고 있어 내가 미칠 수 없구나!”했다. 이에 사마의는 여러 장수를 남겨 영채 안에 있게 하고 군대를 나누어 각 곳의 요충지를 지키게 한 후 사마의 자신은 군대를 돌려 돌아갔다.
卻說孔明將大軍屯於漢中,自回成都養病:文武官僚出城迎接,送入丞相府中,後主御駕自來問病,命御醫調治,日漸痊可。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대군을 데리고 한중에 주둔하게 하고, 자신은 성도에 돌아 가 병을 치료하려 하니 문무 관료들이 성을 나와 영접하여 승상부 안으로 들어갔다. 후주의 어가가 직접 문병을 와 어의로 하여금 치료하게 하니 날로 점점 나았다.
建興八年秋七月,魏都督曹真病可,乃上表說:「蜀兵數次侵界,屢犯中原,若不剿除,後必為患。今時值秋涼,人馬安閒,正當征伐。臣願與司馬懿同領大軍,逕入漢中,殄滅奸黨,以清邊境。」
건흥 팔년 가을 칠월 위나라 도독 조진은 병이 낫자 표를 올려 말하기를 “촉 군대가 여러 차례 경계를 침범하고 여러 번 중원을 범하였습니다. 만약 토벌하여 섬멸하지 않는다면 후에 반드시 근심이 될 것입니다. 지금 때가 가을의 서늘함을 만나 인마가 편안하고 한가하니 바로 마땅히 정벌할 때입니다. 신은 사마의와 함께 같이 대군을 거느리고 빠르게 한중에 들어 가 간사한 무리를 죽여 없애는 것으로서 변경을 맑게 할 것입니다.”했다.
魏主大喜,問侍中劉曄曰:「子丹勸朕伐蜀,如何?」曄奏曰:「大將軍之言是也。今若不剿除,後必為大患。陛下便可行之。」睿點頭。曄出內回家,有眾大臣相探,問曰:「聞天子與公計議興兵伐蜀,此事如何?」曄應曰:「無此事也。蜀有山川之險,非可易圖:空費軍馬之勞,於國無益。」
위나라 임금(조예)이 크게 기뻐하며 시중 유엽에게 물어 말하기를 “자단(조진)이 짐을 권하여 촉을 정벌하자 하니 어떠한가?”하니 유엽이 아뢰어 말하기를 “대장군의 말이 옳습니다. 지금 만약 토벌하여 섬멸하지 않는다면 후에 반드시 큰 근심이 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곧 (정벌을)행하십시오.” 했다. 조예가 머를 끄덕였다. 유엽이 (조정)안에서 나가 집으로 돌아가는데 여러 대신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물어 말하기를 “천자와 공이 군대를 일으켜 촉을 정벌하는 것을 계획했다고 들었는데 이 일이 어떠합니까?”했다. 유엽이 대답해 말하기를 “이런 일은 없습니다. 촉은 산천이 험하여 쉽게 도모할 수 없으니 공연히 군마의 수고로움을 허비하는 것은 나라에 이익이 없습니다.”했다.
眾官默然而退。楊暨入內奏曰:「昨聞劉曄勸陛下伐蜀,今日與眾臣議,又言不可伐,是欺陛下也。陛下何不召而問之?」睿即召劉曄入內問曰:「卿勸朕伐蜀,今又言不可,何也?」曄曰:「臣細詳之,蜀不可伐。」睿大笑。少時,楊暨出內。曄奏曰:「臣昨日勸陛下伐蜀,乃國之大事,豈可妄泄於人?夫兵者,詭道也:事未發,切宜秘之。」睿大悟曰:「卿言是也。」自此愈加敬重。
여러 관리들이 말없이 물러났다. 양기가 (궁)안에 들어 가 아뢰어 말하기를 “지난번에 유엽이 폐하를 권하여 촉을 정벌하자 했다고 들었는데 오늘 여러 신하들과 의논할 때는 또한 절벌할 수 없다고 말하니 이는 폐하를 속이는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물러서 묻지 않습니까?”했다. 조예가 곧 유엽을 불러 (궁)안에 들어오자 물어 말하기를 “경은 짐을 권하여 촉을 정벌하자 하더니 지금은 또한 해서는 안 된다한 것은 어째서인가?”했다. 유엽이 말하기를 “신이 자세히 보니 촉은 정벌할 수 없습니다.”했다. 조예가 크게 웃었다. 잠시지나 양기가 (궁)안에서 나갔다. 유엽이 아뢰어 말하기를 “신이 어제 폐하를 권하여 촉을 정벌하자 한 것은 곧 나라의 큰일인데 어찌 망녕되이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겠습니까? 대저 군대는 속이는 도입니다. 일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으니 절대로 비밀로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했다. 조예가 크게 깨닫고 말하기를 “경의 말이 옳다.”하고는 이로부터 더욱 공경하고 중하게 여겼다.
旬日內,司馬懿入朝,魏主將曹真表奏之事,逐一言之。懿奏曰:「臣料東吳必不敢動兵,今日正可乘此去伐蜀。」睿即拜曹真為大司馬征西大都督,司馬懿為大將軍征西副都督,劉曄為軍師。三人拜辭魏主,引四十萬大兵,前行至長安,逕奔劍閣,來取漢中。其余郭淮、孫禮等,各取路而行。
십여일 안에 사마의가 조정에 들어오니 위나라 임금은 조진이 표로 아뢴 일을 가지고 한마디 말을 할 것을 청하였다. 사마의가 아뢰어 말하기를 “신이 헤아리건데 동오는 감히 군대를 움직이지 못할 것이 틀림없으니 오늘 바로 이를 타고 가서 촉을 정벌할 만합니다.”했다. 조예는 곧 조진에게 벼슬을 주어 대사마정서대도독을 삼고, 사마의를 대장군정서부도독을 삼고, 유엽을 군사로 삼았다. 세 사람이 위나라 임금에게 절하여 하직하고 사십만 대군을 이끌고 전진해 장안에 이르고 빠르게 검각으로 달려가 한중을 취하러 갔다. 그 나머지 곽회, 손례 등도 각각 길을 취해 갔다.
漢中人報入成都。此時孔明病好多時,每日操練人馬,習學八陣之法,盡皆精熟,欲取中原:聽得這個消息,遂喚張嶷、王平分付曰:「汝二人先引一千兵去守陳倉故道,以當魏兵:吾卻提大兵便來接應。」二人告曰:「人報魏軍四十萬,詐稱八十萬,聲勢甚大,如何只與一千兵去守隘口?倘魏兵大至,何以拒之?」孔明曰:「吾欲多與,恐士卒辛苦耳。」
한중사람이 성도에 들어 가 보고하였다. 이 때 제갈공명은 병이 많이 좋아져 매일 인마를 조련하고, 팔진법을 배우고 익히게 하여 모두 익숙해져 중원을 취하려하고 있었는데 이런 소식을 듣고는 마침내 장의, 왕평을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너희 두 사람은 먼저 일천의 군대를 이끌고 가 진창의 옛 길을 지키는 것으로서 위나라 군대를 막으면 내가 큰 군대를 데리고 가 대응할 것이다.”했다. 두 사람이 고하여 말하기를 “사람들이 보고하기를 위나라 군대가 사십 만이라 하고, 팔십 만이라 사칭하기도(부풀리기도)하여 명성과 형세가 매우 큰데 어떻게 다만 일천의 군대로 가서 요충지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만약 위나라 군대가 크게 이르면 어떻게 막아야 합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군대를)많이 주고자 하나 사졸들의 괴로움을 두려워할 뿐이다.”했다.
嶷與平面面相覷,皆不敢去。孔明曰:「若有疏失,非汝等之罪。不必多言,可疾去。」二人又哀告曰:「丞相欲殺某二人,就此請殺,只不敢去。」孔明笑曰:「何其愚也!吾令汝等去,自有主見。吾昨夜仰觀天文,見畢星躔于太陰之分,此月內必有大雨淋漓。魏兵雖有四十萬,安敢深入險阻之地?因此不用多軍,決不受害。吾將大軍皆在漢中安居一月,待魏兵退,那時吾疾出以大兵掩之。以逸待勞,吾十萬之眾可勝魏兵四十萬也。」
장의와 왕평이 서로 마주보며 모두 감히 가지 못하였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만약 실수가 있을지라도 너희들의 죄가 아니다. 말을 많이 할 필요 없이 빨리 가야한다.”했다. 두 사람이 또 애처롭게 고하여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저희 두 사람을 죽이시려면 여기에서 죽일 것을 청하니 감히 가지 못하겠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어찌 그리도 어리석은가? 내가 너희들로 하여금 가게 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 주장하는 견해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난 밤 천문을 우러러 관찰해 보니 필성이 태음의 영역에 들어갔으니 이 달 안에 큰 비가 쏟아질 것이다. 위나라 군대가 비록 사십만이 있으나 어찌 감히 깊이 험하고 막힌 땅에 들어오겠는가? 이 때문에 많은 군대를 쓰지 않은 것이니 결단코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대군을 데리고 모두 한중에서 편안히 한 달을 머물며 위나라 군대가 물러나기를 기다리다 그 때 내가 빨리 나가 큰 군대로서 습격할 것이다. (우리는) 편안히 있으면서 (적이)수고로움을 기다리는 것이니 우리 십만의 군대로 위나라 군대 사십만을 이길 수 있다.”했다.
二人聽畢,方大喜,拜辭而去。孔明隨統大軍出漢中,傳令教各處隘口,預備乾柴草料細糧,俱夠一月人馬支用,以防秋雨:將大軍寬限一月,先給衣食,俟候出征。
두 사람이 듣기를 마치고 비로소 크게 기뻐하며 절하며 하직하고 갔다. 제갈공명이 따라 대군을 통솔하고 한중을 나오며 명령을 내려 각 곳의 요충지로 하여금 미리 마른 섶과 말먹이 풀, 식량을 준비하여 한 달 간 사용할 수 있도록 갖추게 하고, 가을비를 방비하게 하였다. 대군에게는 넉넉히 한 달을 기한으로(넉넉히 한 달을 쓸 수 있는)하는 옷과 식량을 먼저 지급하여 출정을 기다리게 하였다.
卻說曹真、司馬懿同領大軍,逕到陳倉城內,不見一間房屋:尋土人問之,皆言孔明回時放火燒毀。曹真便要從陳倉道進發。懿曰:「不可輕進。我夜觀天文,見畢星躔于太陰之分,此月內必有大雨:若深入重地,或勝則可,倘有疏虞,人馬受苦,要退則難。且宜在城中搭起窩鋪住紮,以防陰雨。」
각설하고 조진과 사마의는 같이 대군을 거느리고 빠르게 진창성 안에 이르렀는데 한 칸의 방과 집도 보지 못하였다. 토인(현지인)을 찾아 물으니 모두 제갈공명이 돌아갈 때 불을 놓아 태워 무너뜨렸다고 말하였다. 조진이 곧 진창도로 출발하려하였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가벼이 전진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밤에 천문을 살펴보니 필성이 태음의 영역에 들어가니 이 달 안에 반드시 큰비가 내릴 것입니다. 만일 깊이 중요한 땅에 들어갔다가 혹 이기면 가하지만 만약 잘못됨이 있다면 인마가 괴로움을 받을 것이니 물러나려 해도 어려울 것입니다. 또 마땅히 성 안에 움집을 지어 주둔하는 것으로서 장마 비를 방비해야 합니다.”했다.
真從其言。未及半月,天雨大降,淋漓不止。陳倉城外,平地水深三尺,軍器盡濕,人不得睡,晝夜不安。大雨連降三十日,馬無草料,死者無數,軍士怨聲不絕。傳入洛陽,魏主設壇,求晴不得。黃門侍郎王肅上疏曰:
조진이 그 말을 따랐다. 반 달이 되지 않아 하늘에서 비가 크게 내리는데 줄줄 흐르듯이 내려 그치지 않았다. 진창성 밖 평지가 물이 세 자나 되어 군기가 모두 젖고 사람들이 잠을 자지 못하여 밤낮으로 편안하지 못하였다. 큰 비가 연이어 삼십일을 내리니 말이 먹을 풀이 없어 죽은 말이 수를 헤아릴 수 없고, 군사들의 원성이 끊이지 않았다. (이 사실이)낙양에 전해지니 위나라 임금이 단을 베풀고 날이 개이기를 구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황문시랑 왕숙이 상소하여 말하기를
前志有之:「千里饋糧,士有飢色﹔樵蘇後爨,師不宿飽。」此謂平途之行軍者也。又況于深入險阻,鑿路而行,則其為勞,必相百聞曹真發已逾月,而行未半谷,治道功大,戰士悉作:是彼偏得以逸待勞,乃兵家之所憚也。聞曹真發已逾月,而行未半谷,治道功大,戰士悉作;是彼偏得以逸待勞,乃兵家之所憚也。言之前代,則武王伐紂,出關而復還﹔論之近事,則武、文征權,臨江而不濟:豈非順天知時,通於權變者哉?願陛下念水雨艱劇之故,休息士卒﹔後日有釁,乘時用之。所謂悅以犯難,民忘其死者也
“예전 기록에 ‘천리 먼 길에 식량을 운송해 주어도 군사들은 주린 기색이 있고, 나무를 베고 풀을 깍은 후 아궁이에 불을 지펴도(요리하여도) 군사들은 배부르지 못하다.’했으니 이는 평평한 길을 행군하는 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또 하물며 깊이 험하고 막힌 곳에 들어 가 길을 뚫으며 행군하니 곧 그 수고로움이 틀림없이 백배가 됩니다. 지금 또 장맛비가 더하여져 산기슭이 매우 가파르고 미끄러우니 무리들이 곤경에 빠져 펴지 못하고, 식량 운반 길이 멀어 계속하기 어려우니 실로 군대를 운용함에 크게 꺼리는 것입니다. 조진이 출발하여 한 달이 넘었으나 행군이 아직 골짜기의 반을 지나지 못하고 길을 닦는데 싸울 군사들이 모두 일을 합니다. 이는 그 편(촉)이 편안함으로서 수고로움을 기다리는 것이니 병가(군대 운용)에서 꺼리는 바입니다. 앞 시대로 말하면 곧 무왕이 주를 정벌할 때 관을 나왔다가 다시 돌아 간적이 있었고, 가까운 시대로 논하면 무제(조조)와 문제(조비)께서 손권을 정벌할 때 강을 대하고서도 건너지 않은 적이 있었으니 어찌 하늘을 따르고 때를 알아 임시로 변통함(임기응변)에 통달한 것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원하건데 폐하께서는 비를 만나 어려움에 처한 이유를 생각하시어 사졸을 쉬게 하셨다가 훗날 틈이 있으면 때를 타 쓰시기를 바랍니다. 이른 바 기쁨으로서 어려움을 무릅쓰시면 백성들은 그 죽음을 잊게 될 것입니다.
魏主覽表,正在猶豫,楊阜、華歆亦上疏諫。魏主即下詔,遣使詔曹真、司馬懿還朝。
위나라 임금이 표를 보기를 마치고 바로 미루어두고 있는데 양부와 화흠이 또한 상소하여 간하였다. 위나라 임금이 곧 조서를 내리고 사신을 보내 조진과 사마의에게 조정으로 돌아올 것을 명령하였다.
卻說曹真與司馬懿商議曰:「今連陰三十日,軍無戰心,各有思歸之意,如何禁?」懿曰:「不如且回。」真曰:「倘孔明追來,怎生退之?」懿曰:「先伏兩軍斷後,方可退兵。」正議間,忽使命來召。二人遂將大軍前隊作後隊,後隊作前隊,徐徐而退。
각설하고 조진이 사마의와 상의하여 말하기를 “지금 연이어 삼십일을 비가 내려 군사들이 싸울 마음이 없고, 각각 돌아갈 생각만하고 있으니 어떻게 금하여야 할까요?”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돌아가는 것이 낫습니다.”하니 조진이 말하기를 “만약 제갈공명이 추격해 오면 어떻게 살아서 물러가겠습니까?”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먼저 두 개의 군대를 매복시켜 뒤를 끊어야 비로소 군대를 물릴 수 있습니다.”했다. 논의하는 사이에 홀연히 사자가 왔다. 두 사람이 마침내 대군을 거느리고 앞의 부대는 뒤의 부대가 되고, 뒤의 부대는 앞의 부대가 되어 천천히 물러갔다.
卻說孔明計算一月秋雨將盡,天尚未晴,自提一軍屯於城固,又傳令教大軍會於赤坡駐紮。孔明升帳喚眾將言曰:「吾料魏兵必走,魏主必下詔來取曹真、司馬懿回兵。吾若追之,必有準備:不如任他且去,再作良圖。」忽王平令人報說魏兵已回。孔明分付來人,傳與王平,不可追襲。吾自有破魏兵之策。正是:魏兵縱使能埋伏,漢相原來不肯追。未知孔明怎生破魏,且看下文分解。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한 달의 가을비가 그칠 것을 헤아려 하늘이 아직 개지는 않았으나 스스로 일 군을 데리고 성고에 주둔하고, 또 명을 내려 대군으로 사여금 적파에서 만나 주둔하게 하였다. 제갈공명은 군막에 올라 여러 장수를 불러 말하기를 “나는 위나라가 반드시 달아나고, 위나라 임금은 반드시 조서를 내려 조진과 사마의에게 군대를 돌리게 할 것입니다. 내가 만약 그들을 추격하면 반드시 준비가 있을 것이니 그들에게 맡겨 가게 하였다가 다시 좋은 계책을 짓는 것이 낫다.”했다. 홀연히 왕평이 사람을 시켜 보고하여 말하기를 위나라 군대가 이미 돌아갔습니다. 했다. 제갈공명은 온 사람에게 분부하여 왕평에게 추격하여 습격해서는 안 된다. 나에게 위나라 군대를 깨트릴 계책이 있다는 명령을 전하게 했다. 위나라 군대가 설사 매복을 잘 한다 할지라도 한나라 승상(제갈공명)은 원래 즐겨 추격하지 않았다. 제갈공명이 어떻게 위나라를 깨트릴지 알지 못하겠으니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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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회 무후(제갈공명)는 위나라를 토벌하는 표를 다시 올리고, 조씨의 군대를 깨트리려 강유는 속이는 글을 바치다. (0) | 2021.08.17 |
제96회 제갈공명은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목 베고, 주방은 머리털을 잘라 조휴를 속이다. (0) | 2021.0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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