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一回:出隴上諸葛妝神,奔劍閣張郃中計
제101회 농상으로 나온 제갈공명은 신으로 분장하고, 검각으로 달려 간 장합은 계책에 빠지다.
卻說孔明用減兵添灶之法,退兵到漢中;司馬懿恐有埋伏,不敢追趕,亦收兵回長安去了;因此罷兵不曾折了一人。孔明大賞三軍已畢,回到成都,入見後主,奏曰:「老臣出了祁山,欲取長安,承陛下降詔召回,不知有何大事?」後主無言可對;良久乃曰:「朕久不見丞相之面,心甚思慕,故特詔同,別無他事。」孔明曰:「此非陛下本心,必有奸臣讒言,言臣有異志也。」後主聞言,默然無語。孔明曰:「老臣受先帝厚恩,誓以死報。今若內有奸邪,臣何能討賊乎?」後主曰:「朕因過聽宦官之言,一時召丞(臣)相。今日茅塞方開,悔之不及矣。」孔明遂喚眾宦官究問,方知是茍安流言;急令人補之,已投魏國去了。孔明將妄奏的宦官誅戮,餘皆廢出宮外;又深責蔣琬、費禕等不能覺察奸邪,規諫天子。二人唯唯服罪。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군대를 줄이고 부엌을 더하는 법을 써서 군대를 물려 한중에 이르렀다. 사마의는 매복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감히 뒤쫓지 못하고 또한 군대를 거두어 장안으로 돌아갔다. 이 때문에 (제갈공명은)군대를 멈추면서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 제갈공명은 삼군에게 크게 상주기를 마치고 돌아 가 성동에 이르러 들어가 후주를 뵙고 아뢰어 말하기를 “노신(제갈공명)이 기산에 나가 장안을 취하려 하였는데 페하께서 내리신 조서를 내려 부르시는 명을 받들어 돌아왔으나 어떤 큰 일이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했다. 후주는 대답할만한 말이 없었다. 오래 있다가 이에 말하기를 “짐이 오래동안 승상의 얼굴을 보지 못하여 마음으로 깊이 사모하였기 때문에 특히 조서와 같이 한 것으로 별 다른 일은 없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이는 폐하의 본마음이 아니라 반드시 간신의 참소하는 말이 있어 신(제갈공명)에게 다른 마음(반역하려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였을 것입니다.”했다. 후주가 말을 듣고 묵묵히 말이 없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노신(제갈공명)이 선제(유현덕)의 두터운 은혜를 받아 죽음으로 보답할 것을 맹세하였습니다. 지금 만약 안에 간사한 이가 있다면 신(제갈공명)이 어떻게 도적을 토벌할 수 있겠습니까?”했다. 후주가 말하기를 “짐이 잘못 환관의 말을 듣고 한 때 승상을 불렀습니다. 오늘 어리석음이 막 열렸으나(어리석음을 막 깨우쳤으나)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마침내 여러 관리를 불러 깊이 캐물어보고는 비로소 구안이 유언비어를 퍼트린 것을 알고 급히 사람을 시켜 잡게 하였으나 이미 위나라에 들어 간 후였다. 제갈공명은 망녕되이 아뢴 환관을 죽이고 나머지는 모두 궁 밖으로 폐출하고, 또 깊이 장완, 비위 등이 간사함을 살펴서 천자를 옳은 도리로 간하지 않은 것을 꾸짖었다. 두 사람이 예예하며 죄를 인정하였다.
孔明拜辭後主,復到漢中,一面發檄令李嚴應付糧草,仍運赴軍前;一面再議出師。楊儀曰:「前數興兵,軍力疲敝,糧又不繼;今不如分兵兩班,以三個月為期;且如二十萬之眾,只領十萬出祁山,住了三個月,卻教這十萬替回,循環相轉,使兵力不乏。然後徐徐而進,中原可圖矣。」孔明曰:「此言正合我意。吾伐中原,非一朝一夕之事,正當為此長久之計。」遂下令,分兵兩班,限一百日為期,循環相轉,違限者按軍法處治。
제갈공명이 후주를 하직하고 다시 한중에 이르러 한편으로 편지를 보내 이엄으로 하여금 식량과 말먹이 풀을 군대 앞으로 운반하게 하는 한편으로 다시 군대를 내는 것을 의논하였다. 양의가 말하기를 “앞 서 여러 번 군대를 일으켜 군대의 힘이 피폐하고, 식량이 또한 이어지지 않습니다. 지금은 군대를 둘로 나누어 삼 개월을 기한으로 삼는 것이 낫습니다. 바로 이십만의 무리라면 다만 십만을 거느리고 기산에 나가 삼개월을 머물게 하고, 다른 십만으로 하여금 대신하게 하게하여 순환하여 돌게 하면 군대의 힘을 결핍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후 서서히 전진하면 중원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이 말이 바로 나의 뜻에 부합한다. 내가 중원을 치는 일은 하우 아침, 하루 저녁에 일이 아니라 바로 마땅히 오래 계획해야 할 것이다.”하고는 마침내 명령을 내려 군대를 둘로 나누어 일백 일을 기한으로 삼아 순환하여 서로 돌게 하고 기한을 어기는 자는 군법을 살펴 처치할 것이라 했다.
建興九年春二月,孔明復出師伐魏。時魏太和五年也。魏主曹叡知孔明又伐中原,急召司馬懿商議。懿曰:「今子丹已亡,臣願竭一人之力,剿除寇賊,以報陛下。」汝(叡)大喜,設宴待之。次日,人報蜀兵寇急。叡即命司馬懿出師禦敵,親排鑾駕送出城外。懿辭了魏主,逕到長安,大會諸路人馬,計議破蜀兵之策。張郃曰:「吾願引一軍去守雍、郿,以拒蜀兵。」懿曰:「郃前軍不能獨當孔明之眾,而又分兵為前後,非勝算也。不如留兵守上邽,餘眾悉往祁山。公肯為先鋒否?」郃大喜曰:「吾素懷忠義,欲盡心報國,惜未遇知己;今都督肯委重任,雖萬死不辭。」
건흥 구년 봄 이월 봄 이월 제갈공명은 다시 군대를 내어 위나라를 쳤다. 때는 위나라 태화 오년이다. 위나라 임금 조예는 제갈공명이 또 중원을 친다는 것을 알고 급히 사마의를 불러 상의하였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지금 자단(조진)이 죽었으니 신이 한 사람의 힘이라도 다하여 도적을 없애는 것으로서 폐하(의 은혜)께 보답하기를 원했습니다.”했다. 조예가 크게 기뻐하여 연회를 베풀고 대접하였다. 다음 날 사람이 촉의 군대가 급하게 침입하여 위급하다고 보고하였다. 조예가 곧 사마의에게 명하여 군대를 내어 적을 막게하고, 자신이 어가를 배열하고 성 밖에 나가 환송하였다. 사마의는 위나라 임금을 하직하고 빠르게 장안에 이르러 크게 여러 방면의 인마를 모아 촉의 군대를 깨트릴 계책을 의논하였다. 장합이 말하기를 “제가 일군을 이끌고 옹과 미를 지키는 것으로서 촉의 군대를 막기를 원합니다.”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잡합의 전군으로는 홀로 제갈공명의 무리를 감당할 수 없고, 또 군대를 나누어 전후가 되어도 승산이 없다. 군대를 머물러 상규를 지키고, 나머지 무리들은 모두 기산에 가는 것이 낫습니다. 공은 기꺼이 선봉이 되겠습니까?”하니 장합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제가 평소 충의를 품고, 마음을 다하여 나라에 보답하고자 하였으나 애석하게도 나를 알아주는 이를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도독께서 기꺼이 중요한 임무를 맡기시니 비록 만 번 죽어도 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했다.
於是司馬懿令張郃為先鋒,總督大軍;又令郭淮守隴西諸郡。其餘眾將各分道而進。前軍哨馬報說:「孔明率大軍望祁山進發,前部先鋒王平、張嶷,逕出陳倉,過劍閣,由散關望斜谷而來。」司馬懿謂張郃曰:「今孔明長驅大進,必將割隴西小麥,以資軍糧。汝可結營祁山,吾與郭淮巡略天水諸郡,以防賊兵割麥。」郃領諾,遂領四萬兵守祁山。懿引大軍望隴西而去。
이에 사마의가 장합으로 하여금 선봉이 되게 하고 대군을 총 감독하게 하고 또 곽회로 하여금 농서 여러 군을 지키게 하였다. 그 나머지 여러 장수들은 각각 길을 나누어 전진하였다. 전군 정찰병이 보고해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대군을 이끌고 기산을 향해 출발하였고, 앞 쪽 부대 선봉 왕평, 장의는 빠르게 진창을 나와 검각을 지나 산관을 경유하여 사곡을 향해 옵니다.”했다. 사마의가 장합에게 일러 말하기를 “지금 제갈공명이 길게 몰라 크게 전진하니 반드시 농서의 소맥(밀)을 베는 것으로서 군량에 충당하려는 것입니다. 너는 기산에 진영을 치고, 나는 곽회와 천수의 여러 군을 돌아다니며 적병이 밀을 베는 것을 막겠습니다.”했다. 장합이 응락하고 마침내 군대 사만을 이끌고 기산을 지켰다. 사마의는 대군을 이끌고 농서를 향해 갔다.
卻說孔明兵至祁山,安營已畢,見渭濱已有魏兵提備,乃謂諸將曰:「此必是司馬懿也。即今營中乏糧,履遣人催促李嚴運米應付,卻只是不到。吾料隴上麥熟,可密引兵割之。」於是留王平、張嶷、吳班、吳懿四將守祁山營,孔明自引姜維、魏延等諸將,前到鹵城。鹵城太守素知孔明,慌忙開城出降。孔明撫慰畢,問曰:「此時何處麥熟?」太守告曰:「隴上麥已熟。」孔明乃留張翼、馬忠守鹵城,自引諸將並三軍,望隴上而來。
각설하고 제갈공명의 군대가 기산에 이르러 진영세우기를 마마치고 위수 가에 이미 위나라 군대가 막고 있는 것을 보고는 곧 여러 장수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사마의일 것이다. 곧 지금 진영 안에 식량이 부족하여 사람을 보내 이엄을 쌀을 운반하여 내어 줄 것을 재촉하였으나 이르지 않았다. 내가 헤아려보니 농상의 밀이 익었을 것이니 비밀리 군대를 이끌고 베어 올 수 있을 것이다.”하고는 이에 왕평, 장의 오반, 오의 네 장수를 남겨 기산의 진영을 지키게 하고, 제갈공명 자신은 강유, 위연 등 여러 장수를 이끌고 전진하여 노성에 이르렀다. 노성 태수는 평소 제갈공명임을 알고 황망히 성문을 열고 나와 항복하였다. 제갈공명이 위무하기를 마치고 물어 말하기를 “이 때는 어느 곳의 밀이 익는가?”하니 태수가 고하여 말하기를 “농상의 밀이 이미 익었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은 곧 장익, 마충을 남겨 노성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는 여러 장수와 삼군을 이끌고 농상을 향해 갔다.
前軍回報說:「司馬懿引兵在此。」孔明驚曰:「此人預知吾來割麥也!」即沐浴更衣,推過一般三輛四輪車來,車上俱要一樣粧飾。此車乃孔明在蜀中預先造下的。當孔明下令姜維引一千軍護車,五百軍擂鼓,伏在上邽之後;馬岱在左,魏延在右,亦各引一千軍護車,五百軍擂鼓。每一輛車,用二十四人,皂衣跣足,披髮仗劍,手執七星皂旛,在左右推車。
앞 선 군대가 돌아 와 보고하여 말하기를 “사마의가 군대를 이끌고 여기에 있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놀라 말하기를 “아 사람이 내가 와서 밀을 벨 것을 미리 알고 있었구나!”하고는 곧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엇비슷한 사륜거를 밀고 가면서 수레 위는 모두 같은 모양의 장식을 하게 하였다. 이 수레는 곧 제갈공명이 촉에 있을 때 미리 만들어 놓았던 것이었다. 제갈공명은 명령을 내려 일천 명의 군대를 이끌고 수레를 호위하게 하고, 오백 명의 군대로 북을 치면서 상규의 뒤에 매복하게 하였다. 마대는 왼쪽에 있고, 위연은 오른 쪽에 있으면서 또한 각각 일천 명의 군대를 이끌고 수레를 호위하게 하고, 오백 명의 군대로 북을 치게 하였다. 매 한 대의 수레는 이십사 명의 군대를 써서 검은 옷에 맨발을 하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검을 쥐게 하며, 손에는 일곱 개의 별을 그린 검은 깃발을 잡고 좌우에서 수레를 밀게 하였다.
三人各受計,引兵推車而去。孔明又令三萬軍各執鐮刀、馱繩,伺候割麥。卻選二十四個精壯之士,各穿皂衣,披髮仗劍,簇擁四輪車,為推車使者。令關興結束做天蓬模樣,手執七星皂旛,步行於車前。孔明端坐於上,望魏營而來。
세 사람은 각각 계책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수레를 밀며 갔다. 제갈공명이 또 삼만의 군대로 하여금 각각 낫, 짐을 묶는 노끈을 가지고 밀을 베는 것을 기다리게 하였다. 그리고 이십사 명의 건장한 군사를 뽑아 각각 검은 옷을 입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검을 잡게 하여 사륜거를 둘러싸고 수레를 미는 사자로 삼았다. 관흥으로 하여금 천봉(천신)의 모양으로 꾸미고 손에는 입곱 개 별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수레 앞을 걷게 하였다. 제갈공명은 (수레)위에 앉아 위나라 진영을 향해 갔다.
哨探軍見之大驚,莫知是人是鬼,火速報知司馬懿。懿自出營視之:只見孔明簪冠鶴氅,手搖羽扇,端坐於車上;左右二十四人,披髮仗劍;前面一人,手執皂旛。隱隱似天神一般。懿曰:「這個又是孔明作怪也!」遂撥二千人馬分付曰:「汝等疾去,連車帶人,盡情都捉來!」
초탐군(보초병)이 그것을 보고 크게 놀라 이가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지 못하여 불같이 사마의에게 보고하였다. 사마의는 스스로 잔영을 나와 보니 제갈공명이 잠관을 쓰고 학창을 입었으며 손으로 우선을 흔들며 수레 위에 단정히 앉아 있고, 좌우의 이십사 명은 머리를 풀고 검을 짚었는데 앞쪽의 한 사람은 순에 검은 깃발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은은히 천신의 모습과 비슷하였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이것은 또한 제갈공명이 괴이함을 짓는 것이구나!”하고는 마침내 이천 명의 인마를 뽑아 분부해 말하기를 “너희들은 빨리 가서 수레와 (수레를) 둘러싼 사람들을 모두 잡아 오라!”했다.
魏兵領命,一齊趕來。孔明見魏兵追趕來,便教回車,遙望蜀營緩緩而行。魏兵皆驟馬追趕,但見陰風習習,冷霧漫漫。儘力趕了一程,追之不上。各人大驚,都勒住馬言曰:「奇怪!我等急急趕了三十里,只見在前,追之不上。如之奈何?」
위나라 군사가 명을 받고 일제히 쫓아갔다. 제갈공명은 위나라 군대가 쫓아오는 것을 보고 곧 수레를 돌리게 하고 멀리 촉의 진영을 향해 천천히 갔다. 위나라 군대가 모두 말을 달려 쫓아가다 음산하고 싸늘한 바람이 부드럽게 불고 서늘한 안개가 가득한 것을 보았다. 힘을 다해 일정(어느 정도)을 쫓아도 따라잡지 못하였다. 각 사람들이 크게 놀라 모두 말고삐를 당여 말을 멈추고는 말하기를 “기이하고 괴이하구나! 우리들이 급히 삼십 리를 쫓아 앞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따라잡지 못하였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했다.
孔明見魏兵不追,又令推車過來,朝著魏兵歇下。魏兵猶豫良久,又放馬過來。孔明復回車慢慢而行。魏兵又趕了二十里,只見在前,不曾趕上,盡皆癡呆。孔明教回過車,朝著魏兵,推車倒行。魏兵又欲追趕。後面司馬懿自引一軍到。傳令曰:「孔明善會八門遁甲,能驅六丁六甲之神。此乃六甲天書內『縮地』之法也,眾軍不可追之。」
제갈공명은 위나라 군대가 쫓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또 수레를 밀어 지나가게 하여 위나라 군대가 쉬는 곳을 향하게 했다. 위나라 군대가 머뭇거리기를 오래하다가 또 말을 놓아 왔다.(말을 달려 왔다.)제갈공명이 다시 수레를 돌려 천천히 갔다. 위나라 군대가 또 이십 리를 쫓아가는데 앞에 있는 것을 보면서도 따라잡을 수 없어 모두 치매에 걸린 듯이 하였다.(멍하니 바라보았다.) 제갈공명이 수레를 돌려 위나라 군대를 향하여 수레를 밀어 거꾸로 가게 했다. 위나라 군대가 또 쫓아가려 하였다. 뒤쪽에서 사마의가 스스로 일 군을 이끌고 이르렀다. 명령을 전해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팔문둔갑을 잘 이해하고, 육정육갑의 신을 부를 수 있다. 이는 곧 육갑천서 안의 ‘축지’의 법이니 여러 군사들은 쫓아서는 안 된다.”했다.
眾軍方勒馬回時,左勢下戰鼓大震,一彪軍殺來,懿急令兵拒之。只見暑(蜀)兵隊裡二十四人,披髮仗劍,皂衣跣足,擁出一輛四輪車;車上端坐孔明,簪冠鶴氅,手搖羽扇。懿大驚曰:「方纔那個車上坐著孔明,趕了五十里,追之不上,如何這裡又有孔明?怪哉!怪哉!」
여러 장수들이 막 말고삐를 당겨 돌아가려 할 때 왼쪽에서 전고(싸움을 북돋는 북)가 크게 울리며 한 떼의 군대가 쇄도해 왔다. 사마의가 급히 군대로 하여금 막았다. 촉의 부대 안에 이십사 명이 머리를 풀고 검을 잡고 검은 옷에 맨발로 한 대의 사륜거를 둘러싸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수레 위에는 제갈공명이 단정이 앉아 있는데 잠관을 쓰고 학창의를 입고, 손에는 우선을 흔들고 있었다. 사마의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바야흐로 그 수레 위에 제갈공명이 앉아 있고, 오십 리를 쫓아도 따라잡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여기에 또 제갈공명이 있는가? 괴이하구나! 괴이하구나!”했다.
言未畢,右勢下戰鼓又鳴,一彪軍殺來,四輪車上亦坐著一個孔明;左右亦有二十四人,皂衣跣足,披法(髮)仗劍,擁車而來。懿心中大疑,回顧諸將曰:「此必神兵也!」眾軍心下大亂,不敢交戰,各自奔走。
말을 마치지도 않았는데 오른 쪽에서 전고가 또 울리며 한 떼의 군대가 쇄도해 오는데 사륜거 위에 도 한 명의 제갈공명이 앉아 있고, 좌우에 또 이십 사명이 있는데 검은 옷에 맨발을 하고, 머리털을 풀어 헤치고 검을 잡고 수레를 둘러싸고 왔다. 사마의는 마음속으로 크게 의심하여 여러 장수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신병일 것이다!”하니 여러 군사들의 마음이 크게 어지러워져 감히 서로 싸우지 못하고, 각자 달아났다.
正行之際,忽然鼓聲大震,又一彪軍殺到:當先一輛四輪車,孔明端坐於上,左右推車使者,同前一般。
바로 가려할 때 홀연히 북소리가 크게 진동하며 또 한 떼의 군대가 쇄도해 오는데 앞족 한 대의 사륜거에는 제갈공명이 수에 위에 단정히 앉아 있고, 좌우에 수레를 미는 사람들이 앞과 엇비슷하였다.
魏兵無不駭然。司馬懿不知是人是鬼,又不知蜀兵多少,十分驚懼,急急引兵奔入上邽,閉門不出。此時孔明早令三萬精兵將隴上小麥割盡,運赴鹵城打曬去了。司馬懿在上邽城中,三日不敢出城;後見蜀兵退去,方敢令軍出哨。於路捉得一蜀兵,來見司馬懿。
위나라 군대가 해연히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사마의는 사람인지 귀신인지를 알지 못하고, 또 촉 군대의 않고 적음을 알지 못하여 완전히 놀라고 두려워 급히 군대를 이끌고 상계로 달려 들어 가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이 때 제갈공명은 일찍 삼만의 정예군대를 시켜 농상의 밀을 모두 베어 로성으로 운반하여 타작하여 말리게 하였다. 사마의는 계성 안에 있으면서 삼일 동안을 감히 나가지 못하였다. 후에 촉의 군대가 물러 난 것을 보고 비로소 감히 군대로 하여금 나가 정탐하게 하였더니 길에서 촉의 병사 한 명을 잡아 와서 사마의를 뵈었다.
懿問之。其人告曰:「某乃割麥之人,因走失馬匹,被捉前來。」懿曰:「前者是何神兵?」答曰:「三路伏兵,皆不是孔明,乃姜維、馬岱、魏延也。每一路只有一兵軍護車,五百兵擂鼓。只是先來誘陣的車上乃孔明也。」懿仰天長歎曰:「孔明有神出鬼沒之機!」忽報副都督郭淮入見。懿接入禮畢。淮曰:「吾聞蜀兵不多,現在鹵城打麥,可以擊之。」懿細言前事。淮笑曰:「只瞞過一時;今已識破,何足道哉!吾引一軍攻其後,公引一軍攻其前,鹵城可破,孔明可擒矣。」懿從之,遂分兵兩路而來。
사마의가 물으니 그 사람이 고해 말하기를 “저는 곧 밀으 베던 사람이었는데 말을 잃어버리고 잡혀 온 것입니다.”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앞서는 어떤 신병인가?”하니 답하여 말하기를 “세 길의 복병은 모두 제갈공명이 아라 곧 강유, 마대, 위연입니다. 매 한길 마다 한 군대가 있어 수레를 호위하고, 오백 명의 군대가 북을 울립니다. 다만 먼저 와 유인하던 수레가 곧 제갈공명이었습니다.”했다. 사마의가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하여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신출귀몰한 계책을 지니고 있구나!”했다. 홀연히 부도독 곽회가 들어와 뵙는다고 보고하였다. 사마의가 맞아들여 예를 마쳤다. 곽회가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촉의 군대가 많지 않고, 현재 노성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으니 칠 수 있습니다.”했다. 사마의가 자세히 앞의 일을 말하였다. 곽회가 웃으며 말하기를 “한 때 거짓말에 속은 것일 뿐으로 지금은 이미 알아내었으니 무슨 말을 하리오! 내가 일군을 이끌고 그 뒤를 공격할 것이니 공(사마의)은 그 앞을 공격하시면 노성을 깨트리고 제갈공명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사마의가 그 말을 따라 마침내 군대를 두 길로 나누어 갔다.
卻說孔明引軍在鹵城打曬小麥,忽喚諸將聽令曰:「今夜敵人必來攻城。吾料鹵城東西麥田之內,足可伏兵;誰敢為我一往?」姜維、魏延、馬忠、馬岱四將出曰:「某等願往。」孔明大喜,乃命姜維、魏延各引二千兵,伏於東南西北兩處;馬岱、馬忠各引二千兵伏在西南東北兩處:「只聽砲響,四角一齊殺來。」四將引兵,受計去了。孔明自引百餘人,各帶火砲出城,伏在麥田之內。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군대를 이끌고 노성에서 밀을 타작하고 말리게 하며 홀연히 여러 장수를 불러 명령하여 말하기를 “오늘 밤 적이 반드시 와서 성을 공격할 것이다. 나는 노성의 동서 밀밭의 안이 복병할만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누가 감히 가서 나를 위해 막겠는가?”했다. 강유, 위연, 마충, 마대 네 장수가 나와 말하기를 “저희들이 가기를 원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크게 기뻐하며 곧 강유, 위연으로 하여금 이천의 군대를 이끌고 동남, 서북쪽 두 곳에 숨어있게 하고, 마대, 마충은 각각 이천의 군대를 이끌고 서남, 동북쪽 두 곳에 숨어 있다가 “포가 울리는 소리를 들으면 네 모퉁이에서 일제히 쇄도해 나오라.”했다. 네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계책을 받아 갔다. 제갈공명은 스스로 백여 명의 사람을 이끌고 각각 화포를 휴대하고 성을 나가 밀밭 안에 숨어있었다.
卻說司馬懿引兵逕到鹵城下,日已昏黑,乃謂諸將曰:「若白日進兵,城中必有準備;今可乘夜晚攻之。此處城低壕淺,可便打破。」遂屯兵城外。一更時分,郭淮亦引兵來。兩下合兵,一聲鼓響,把鹵城四面圍得鐵桶相似。城上萬弩齊發,矢石如雨,魏兵不敢前進。忽然魏軍中信砲連聲,三軍大驚,又不知何處兵來。
각설하고 사마의는 군대를 이끌고 빠르게 노성 아래 이르렀는데 날이 이미 어두워졌다. 이에 여러 장수에게 일러 말하기를 “만약 날이 밝은 후 진군한다면 성 안에서 반드시 준비가 있을 것이니 지금 밤이 늦은 것을 타고 공격해야 한다. 이 곳응 성이 낮고 해자가 얕으니 곧 깨트릴 수 있을 것이다.”하고는 마침내 군대를 성 밖에 주둔하였다. 일경 쯤 곽회가 또한 군대를 이끌고 왔다. 둘이 군대를 합하고 한 소리 북이 울리자 노성을 사면에서 포위하였는데 쇠통과 서로 비슷하였다. 성 위에서 만노가 일제히 발사되니 화살과 돌이 비가 내리는 듯하니 위나라 군대가 감히 전진하지 못하였다. 홀연히 위나라 군대 안에서 신호하는 포성이 연이어 울리니 삼군이 크게 놀라고, 또 어느 곳에서 군대가 오는지 알지 못하였다.
淮令人去麥田搜時,四角上火光沖天,喊聲大震,四路蜀兵,一齊殺至;鹵城四門大開,城內兵殺出;裏應外合,大殺一陣,魏兵死者無數。司馬懿引敗兵奮死突出重圍,占住了山頭;郭淮亦引敗兵奔到山後紮住。孔明入城,令四將於四角上安營。
곽회가 사람으로 하여금 가서 밀밭을 수색하게 하였을 때 사방 모퉁이에서 화광이 하늘에 치솟고, 함성이 크게 진동하며 사방에서 촉의 군대가 일제히 쇄도해 이르고, 노성의 네 문이 크게 열리며 성 안의 군대가 쇄도해 나와 안에서 응하고 밖에서 합하여 크게 한바탕 죽이니 위나라 군대는 죽은 자가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사마의가 패한 군대를 이끌고 죽을힘을 떨쳐 두터운 포위를 치고 나와 산 꼭데기를 차지하였다. 곽회가 또한 패한 군대를 이끌고 달아나 산 뒤에 이르러 주둔하였다. 제갈공명이 성에 들어 가 네 장수로 하여금 네 모퉁이에 진영을 세우게 하였다.
郭淮告司馬懿曰:「今與蜀兵相持許久,無策可退;目下又被殺了一陣,折傷三千餘人;若不早圖,日後難退矣。」懿曰:「當復如何?」淮曰:「可發檄文調雍、涼人馬併力剿殺。吾願引軍襲劍閣,截其歸路,使彼糧草不通,三軍慌亂。那時乘勢擊之,敵可滅矣。」懿從之,及發檄文星夜往雍、涼調撥人馬。不一日,大將孫禮引諸郡人馬到。懿即令孫禮約會郭淮去襲劍閣。
곽회가 사마의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지금 촉의 군대와 서로 오래되어 물러날 계책이 없고, 지금 또 한바탕 죽임을 당하여 삼천여 명이 다쳤습니다. 만약 일찍 도모하지 않는다면 뒤에는 물러나기 어렵습니다.”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마땅히 다시 어떻게 해야겠습니까?”하니 곽회가 말하기를 “격문을 내어 옹주, 양주의 인마와 힘을 합쳐 섬멸해야 합니다. 제가 군대를 이끌고 검각을 습격하여 그 돌아가는 길을 끊어 그들의 식량과 말먹이 풀이 통하지 않게 하면 삼군이 당황하고 어지럽게 될 것입니다. 이 때 형세를 타고 공격하면 적을 없일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사마의가 그 말을 따라 격문을 내어 밤을 새워 옹주, 양주에 가 인마를 동원하게 하였다. 하루가 되지 않아 대장군 손례가 여러 군의 인마가 이르렀다. 사마의는 곧 손례로 하여금 곽회와 약속하고 가서 검각을 습격하게 하였다.
卻說孔明在鹵城相拒日久,不見魏兵出戰,乃喚馬岱、姜維入城聽令曰:「今魏兵守住山險,不與吾戰,一者料吾麥盡無糧,二者令兵去襲劍閣,斷吾糧道也。汝二人各引一萬軍先去守住險要,魏兵見有準備,自然退去。」二人引兵去了。長史楊儀入帳告曰:「向者丞相令大兵一百日一換,今已限足,漢中兵已出川口,前路公文已到,只待會兵交換;現存八萬軍,內四萬該與換班。」孔明曰:「既有令,便教速行。」
각설하고 제갈공명는 노성에 있으면서 막기를 오래하여도 위나라 군대가 나와 싸우는 것을 보지 못하자 곧 마대, 강유를 불러 성에 들어오자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지금 위나라 군대는 산이 험한 곳을 지키며 우리와 싸우려하지 않는 것은 첫째 우리 밀이 다하면 식량이 없을 것을 헤아린 것이고, 둘째는 군대로 하여금 검각에 가 습격하여 우리 식량 운반 길을 끊으려는 것이다. 너희 두 사람은 각각 일만의 군대를 이끌고 먼저 험요한 곳에 가 지키고 있으면, 위나라 군대가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자연히 물러갈 것입니다.”했다. 두 사람이 군대를 이끌고 갔다. 장사 양의가 군막에 들어 와 고하여 말하기를 “지난번에 승상께서 대병으로 하여금 일백 일에 한번 바꾸기로 하였는데 지금 이미 기한이 찼고, 한중의 군대가 이미 천구에서 나왔으며 앞서 공문이 이미 이르러 군대를 바꿀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팔만의 군대 가운데 안의 사만을 모두 바꾸어야 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이미 명령이 있었으니 곧 빨리 가게하라.”했다.
眾軍聞知,各各收拾起程。忽報孫禮引雍、涼人馬二十萬來助戰,去襲取劍閣,司馬懿自引兵來攻鹵城了。蜀兵無不驚駭。楊儀入告孔明曰:「魏兵來得甚急,丞相可將換班軍且留下退敵,待新來兵到,然後換之。」孔明曰:「不可。吾用兵命將,以信為本。既有令在先,豈可失信?且蜀兵應去者,皆準備歸計,其父母妻子依扉而望;吾今便有大難,決不留他。」即傳令教應去之兵,當日便行。
여러 군사들이 듣고 각각 거두어 출발하였다. 홀연히 손례가 옹주, 양주의 인마 이십만을 이끌고 싸움을 도우러 와 검각을 취하러 갔고, 사마의는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노성에 와 공격한다고 보고하였다. 촉의 군대가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양의가 들어가 제갈공명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위나라 군대가 매우 급하게 오니 승상께서는 장차 바꾸려는 군대를 또 남겨 적을 물리치고, 새로 오는 군대가 이르기를 기다린 후 바꾸어야 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안 됩니다. 내가 군대를 운용하고 장수에게 명령하는 것은 믿음으로서 근본을 삼았습니다. 이미 먼저 명령이 있었으니 어찌 믿음을 잃을 수 있겠습니까? 또 촉의 군대로 가야할 자는 모두 돌아갈 계획을 마련하고, 그 부모와 처자가 문에 기대 바라보고 있을 것인데 내가 지금 곧 큰 어려움이 있더라도 결단하여 그들을 머물지 않게 할 것입니다.”하고는 곧 명령을 내려 떠나야 할 군사들은 그날 곧 가게 했다.
眾軍聞之,皆大呼曰:「丞相如此施恩,我等願且不回,各捨一命,大殺魏兵,以報丞相!」孔明曰:「爾等應該還家,豈可復留於此?」眾軍皆欲出戰,不願回家。孔明曰:「汝等既要與我出戰,可出城安營,待魏兵到,莫待他息喘,便急攻之:此以逸待勞之法也。」眾兵領命,各執兵器,懽喜出城,列陣而待。
여러 군사들이 그것을 듣고 모두 크게 외쳐 말하기를 “승상께서 이 같이 은혜를 베푸시니 우리들은 또한 돌아가지 않고 각각 한 목숨을 버려 크게 위나랄 군대를 죽이는 것으로서 승상의 (은혜를) 갚기를 원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너희들은 마땅히 모두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어찌 다시 여기에 머물 수 있겠는가?”하니 여러 군사들이 모두 나가 싸우려하고 집에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미 나와 나가 싸우기를 청하니 성을 나가 진영을 세우고 위나라 군대가 이르기를 기다리다 그들이 쉬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곧 급히 공격해야 한다. 이것이 以逸待勞의 법(편안함으서 수고로움을 기다리는 법)이다.”했다, 여러 군대가 명을 받고 각각 병기를 쥐고 즐겁게 성을 나가 진을 치고 기다렸다.
卻說西涼人馬倍道而來,走的人馬困乏;方欲下營歇息,被蜀兵一擁而進,一人人奮勇,將銳兵驍,雍、涼兵抵敵不住,望後便退。蜀兵奮力追殺,殺得那雍、涼兵屍橫遍野,血流成渠。孔明出城,收聚得勝之兵,入城賞勞,忽報永安李嚴有書告急。孔明大驚,拆封視之。書云:「近聞東吳令人入洛陽,與魏連和。魏令吳代蜀,幸吳尚未起兵。今嚴探知消息,伏望丞相早作良圖。」
각설하고 서량의 인마가 (행군 속도를) 배로 하여 와 달려온 인마가 지쳤다. 막 진영을 세우고 쉬려하는데 촉의 군대에게 한 번에 둘러싸며 진군하고, 한 사람마다 용맹을 떨치는데 장수는 날카롭고 군사는 날래니 옹주와 양주의 군사들이 적을 막아내지 못하고 뒤를 향해 물러났다. 촉 군대가 힘을 떨려 쫓아가 죽이니 죽은 그 옹주, 양주 군대의 시체가 들에 가득하고, 흐르는 피가 도랑을 이루었다. 제갈공명이 성을 나가 승리한 군사를 거두어 모아 성에 들어 가 공로를 상 주었다. 홀연히 영안의 이엄이 급함을 알리는 글을 보냈다고 보고하였다. 제갈공명이 크게 놀라 봉투를 찢어 보았다. 글에 이르기를 “최근에 들으니 동오가 사람을 시켜 낙양에 들어 가 위나라와 화친하려 한다고 합니다. 위나라가 오나라로 하여금 촉을 대신하게 하였으나(촉을 치게 하였으나) 다행히 오상이 군대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지금 제가 소식을 알아보고 승상께서 빨리 좋은 계책을 세우시기를 엎드려 바랍니다.”했다.
孔明覽畢,甚是驚疑,乃聚眾將曰:「若東吳興兵寇蜀,吾須緊速回也。」即傳令,教祁山大寨人馬,且退回西川;「司馬懿知吾屯軍在此,必不敢追趕。」於是王平、張嶷、吳班、吳懿,分兵兩路,徐徐退入西川去了。
제갈공명이 보기를 마치고 매우 놀라고 의심하여 곧 여러 장수를 모아 말하기를 “만약 동오가 군대를 일으켜 촉을 침략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급히 돌아가야 한다.”하고는 곧 명령을 내려 기산 큰 영채의 인마로 하여금 또 물러나 서천으로 돌아가게 하고, “사마의는 우리의 주둔한 군대가 여기에 있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감히 뒤쫓지 못할 것이다.”했다. 이에 왕평, 장의, 오반, 오의가 군대를 두 길로 나누어 천천히 물러나 서천으로 들어 갔다.
張郃見蜀兵退去,恐有計策,不敢來追,乃引兵來見司馬懿曰:「今蜀兵退去,不知何意?」懿曰:「孔明詭計極多,不可輕動。不如堅守,待他糧盡,自然退去。」大將魏平出曰:「蜀兵拔祁山之營而退,正可乘勝追之。都督按兵不動,畏蜀如虎,奈天下笑何?」懿堅執不從。
장합이 촉의 군대가 물러 간 것을 보았으나 계책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감히 따라가지 못하고 곧 군대를 이끌고 가 사마의를 만나 말하기를 “지금 촉의 군대가 물러가는데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속이는 계책이 지극히 많으니 가벼이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굳게 지키며 그들의 식량이 다하여 자연히 물러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대장 위평이 나와 말하기를 “촉의 군대가 기산의 영채를 거두어 물러갔으니 바로 이김을 타고 추격해야 합니다. 도독께서는 군대를 살피시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으시는 것이 범을 보는 것과 같이 하시니 어찌 천하가 비웃지 않겠습니까?”했다. 사마의가 고집을 피우며 따르지 않았다.
卻說孔明知祁山兵已回,遂喚馬忠、楊儀入帳,授以密計,先引一萬弓弩手,去劍閣木門道,兩下埋伏;若魏兵追到,聽吾砲響,急滾下木石,先截其去路,兩頭一齊射之。二人引兵去了。又喚魏延、關興引兵斷後,城上四面遍插旌旗,城內亂堆柴草,虛放煙火。大兵盡望木門道而去。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기산의 군대가 이미 돌아 간 것을 알고 마침내 마충, 양의를 불러 군막에 들어오자 비밀 계책을 주어 먼저 일 만의 궁노수를 이끌고 검각 목문도에 가 양쪽에 매복하게 하고, 만약 위나라 군대가 쫓아 이르고, 내가 울리는 포 소리를 들으면 급히 나무와 돌을 굴려 먼저 그 가는 길을 끊고 양 쪽에서 일제히 활을 쏘게 했다. 두 사람이 군대를 이끌고 갔다. 또 위연, 관흥을 불러 군대를 이끌고 뒤를 끊게 하고, 성 위에는 사방에 두루 깃발을 꼿고, 성 안에는 어지러이 섶과 풀을 쌓아 연기와 불을 피우라. 대병이 모두 목문도를 향해 갔다.
魏營巡哨兵來報司馬懿曰:「蜀兵大隊已退,但不知城中還有多少兵?」懿自往視之,見城上插旗,城中煙起,笑曰:「此乃空城也。」令人探之,果是空城。懿大喜曰:「孔明已退,誰敢追之?」先鋒張郃曰:「吾願往。」懿阻曰:「公性急躁,不可去。」郃曰:「都督出關之時,命吾為先鋒;今日正是立功之際,卻不用吾,何也?」懿曰:「蜀兵退去,險阻處必有埋伏,須十分仔細,方可追之。」郃曰:「吾已知得,不必挂慮。」懿曰:「公自欲去,莫要追悔。」郃曰:「大丈夫捨身報國,雖萬死無恨。」懿曰:「公既堅執要去,可引五千兵先行;卻教魏平引二萬馬步兵後行,以防埋伏。吾自引三千兵隨後接應。」
위나라 진영의 정찰병이 와서 사마의에게 보고해 말하기를 “촉의 군대 큰 부대는 이미 물러났고, 다만 성안에는 도리어 어느 정도의 군대가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했다. 사마의가 직접 가서 보았는데 성 위에는 깃발이 꼿혀 있고, 성 안의 연기를 보고 웃으며 말하기를 “이는 곧 빈 성이다.”하고는 사람을 시켜 알아보게 하였더니 과연 빈 성이었다. 사마의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이미 물러났으니 누가 감히 추격할 수 있는가?”하니 선봉 장합이 말하기를 “오늘은 바로 공을 세울 때데 나를 쓰지 않으시는 것은 어째서 입니까?”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촉의 군대가 물러났으나 험하고 막힌 곳에는 반드시 매복이 있을 것이니 모름지기 완전하고 자세히 하고서야 비로소 쫓을 수 있습니다.”했다. 장합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깨달아 알았으니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공(장합)이 스스로 가고자 하니 후회해서는 안됩니다.”했다. 장합이 말하기를 “대장부가 몸을 버리고 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만 번 죽어도 한이 없을 것입니다.”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공이 이미 굳게 고집하여 가기를 청하니 오천의 군대를 이끌고 먼저 행군하시오. 그리고 위평은 이 만의 기병과 보병을 이끌고 뒤에 가면서 매복에 대비하게 하고, 나는 스스로 삼천의 군대를 이끌고 뒤를 따르며 상황에 맞게 대응할 것이다.”했다.
張郃領命,引兵火速追趕。行到三十餘里,忽然背後喊聲大震,樹林內閃出一彪軍,為首大將,橫刀勒馬大叫曰:「賊將引兵那裡去!」郃回頭視之:乃魏延也。郃大怒,回馬交鋒。不十合,延詐敗而走。郃又追趕三十餘里,勒馬回顧,全無伏兵,又策馬前追。方轉過山坡,忽又喊聲大起,一彪軍擁出,為首大將,乃關興也,橫刀勒馬大叫曰:「張郃休走!有吾在此!」郃就拍馬交鋒。不十合,興撥馬便走。郃隨後追之。趕到一密林內,郃心疑,令人四下哨探,並無伏兵;於是放心又趕。
장합이 명령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불 같이 빠르게 뒤를 쫓았다. 행군하여 삼십 리에 이르러 홀연히 뒤에서 함성이 크데 진동하며 숲 안에서 번개처럼 한 떼의 군대가 나오는데 우두머리되는 대장이 칼을 빗겨들고 말고삐를 당기며 크게 외쳐 말하기를 “도적의 대장은 군대를 이끌고 어디로 가는가!”했다. 장합이 머리를 돌려 그를 보니 곧 위연이었다. 장합이 크게 노하여 말을 돌려 싸웠다. 십합이 되지 않아 위연이 거짓으로 패하여 달아났다. 장합이 또한 삼십여 리를 쫓아 가 말고삐를 당겨 돌아보았는데 완전히 복병이 없자 또 말에 채찍질하여 앞으로 쫓아갔다. 막 신 기슭을 돌아 지나가는데 홀연히 또 함성이 크게 일어나며 한 떼의 군대가 둘러싸며 나오는데 우두머리되는 대장은 곧 관흥으로 칼을 빗겨들고 말고삐를 당기며 크게 외쳐 말하기를 “장합은 달아나지 말라! 내가 여기에 있다!”했다. 장합이 말에 박차를 가해 싸웠다. 십합이 되지 않아 관흥이 말을 돌려 달아났다. 장합이 뒤를 따라 추격하였다. 쫓아가다 한 밀림 안에 이르렀는데 장합이 마음으로 의심하여 사람을 시켜 사방으로 정탐하게 하였더니 모두 복병이 없었다. 이에 마음 놓고 뒤쫓았다.
不想魏延又抄在前面;郃又與戰十餘合。延又敗走。郃憤怒趕來,又被關興抄在前面,截住去路。郃大怒,撥馬交鋒。戰不十合,蜀兵盡棄衣甲物件,塞滿道路。魏兵皆下馬爭取。延、興二人,輪流交戰。張郃奮勇追趕。看看天晚,趕到木門道口,魏延撥回馬,高聲大罵曰:「張郃逆賊!吾不與汝相拒!汝只顧趕來!吾今與汝決一死戰!」郃十分忿怒,挺槍驟馬,直取魏延。延揮刀來迎,戰不十合,延大敗,棄盡衣甲、頭盔、匹馬,引敗兵望木門道中而走。
생각지 않게 위연이 또 앞에서 습격하니 장합이 또한 십여 합을 싸웠다. 위연이 또 패하여 달아났다. 장합이 분노하여 쫓아오니 또 관흥이 앞에서 습격하여 가는 길을 끊고 막았다. 장합이 대노하여 말을 돌려 서로 싸웠다. 싸운 지 십합이 되지 않아 촉의 군대가 옷과 갑옷, 물건을 버린 것이 길을 막아 가득하였다. 위나라 군대가 모두 말에서 내려 다투어 주웠다. 위연과 관흥 두 사람이 돌아가며 싸웠다. 장합이 용맹을 떨쳐 뒤쫓았다. 날이 저물 때 목문도 입구에 이르니 위연이 말고삐를 당겨 말을 돌리고 큰 소리로 꾸짖어 말하기를 “장합 역적아! 내가 너를 막지 않았더니, 너는 다만 돌아보고 쫓아오는구나! 내 너와 한바탕 죽음으로 싸울 것이다.”했다. 장합이 크게 노하여 창을 내밀고 말을 달려 곧바로 위연을 취하려 했다. 위연이 칼을 휘두르며 가서 맞아 싸운 지 십합이 되지 않아 위연이 크게 패하여 갑옷, 투구, 말을 모두 버리고 패한 군대를 이끌고 목문도 안을 향해 달아났다.
張郃殺的性起,又見魏延大敗而逃,乃驟馬趕來。此時天色昏黑,一聲砲響,山上火光沖天,大石亂柴滾將下來,阻截去路。郃大驚曰:「我中計矣!」急回馬時,背後已被木石塞滿了歸路,中間只有一段空地,兩傍皆是峭壁,郃進退無路。忽一梆子響,兩下萬弩齊發,將張郃并百餘個部將皆射死於木門道中。後人有詩曰:
장합이 죽이려는 성질이 일어나고, 또 위연이 크게 패해 달아나는 것을 보고 곧 말을 달려 쫓아갔다. 이 때 하늘은 어두운데 한 소리 포가 울리고 산 위에서 불빛이 하늘로 치솟으며 큰돌과 섶이 어지럽게 떨어져 내려 가는 길을 막아 끊었다. 장합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내가 계책에 빠졌구나!”하고는 급히 말을 돌릴 때 뒤는 이미 나무와 돌이 돌아가는 길에 가득하여 막혔고, 중간만 한 줄기 빈 땅이고, 양쪽 옆은 모두 절벽으로 장합이 나아가고 물러날 길이 없었다. 홀연히 한 징소리가 울리고 양쪽에서 만노가 일제히 발사되어 장합과 백여 명의 부장들이 모두 화살에 맞아 목문도 안에서 죽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말하기를
伏弩齊飛萬點星,木門道上射雄兵。至今劍閣行人過,猶說軍師舊日名。
“숨겨진 노(활)이 일제히 만 개 별과 같이 날아, 목문도 상의 용맹한 군사에게 적중하였다. 지금도 검각을 지나는 사람들이 아직도 군사(제갈공명)의 엣날 명성을 말한다.” 했다.
卻說張郃已死,隨後魏兵追到,見塞了道路,已知張郃中計。眾軍勒回馬急退。忽聽的山頭上大叫曰:「諸葛丞相在此!」眾軍仰視,只見孔明立於火光之中,指眾軍而言曰:「吾今日圍獵,欲射一『馬』,誤中一『獐』。汝各人安心而去,上覆仲達,早晚必為吾所擒矣。」
각설하고 장합이 죽은 후 뒤를 따라 위나라 군대가 쫓아 이르러 도로가 막힌 것을 보고 장합이 계책에 빠진 것을 알았다. 여러 군사들이 말고삐를 당겨 말을 달려 급히 물러났다. 홀연히 산 꼭데기 위에서 크게 외쳐 “제갈승상(제갈공명)이 여기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여러 군사들이 우러러 보니 제갈공명이 불 빛 속에 서서 여러 군대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내가 오늘 둘러싸고 사냥하면서 한 마리 말을 쏘아 잡으려 했는데 잘못 한 마리 노루를 맞혔다. 너희 각각의 사람은 안심하고 가서 중달(사마의)에게 자세히 말하여 조만간 반드시 나에게 사로잡히게 될 것이라고 하라.”했다.
魏兵回見司馬懿,細告前事。懿悲傷不已,仰天歎曰:「張雋義身死,吾之過也!」乃收兵回洛陽。魏主聞張郃死,揮淚歎息,令人收其屍,厚葬之。
위나라 군사가 돌아 가 사마의를 만나 자세히 앞의 일을 말하였다. 사마의가 슬퍼하고 아파하기를 그치지 못하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해 말하기를 “장준의(장합)의 몸이 죽은 것을 나의 허물이로다!”하고는 곧 군대를 거두어 낙양으로 돌아갔다. 위나라 임금이 장합이 죽었다는 것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고, 사람을 시켜 그 시체를 거두어 후하게 장례하게 하였다.
卻說孔明入漢中,欲歸成都見後主。都護李嚴妄奏後主曰:「臣已備辦軍糧,行將運赴丞相軍前,不知丞相何故忽然班師。」後主聞奏,即命尚書費禕入漢中,見孔明,問班師之故。禕至漢中宣後主之意。孔明大驚曰:「李嚴發書告急,說東吳將興兵寇川,因此班師。」費禕曰:「李嚴奏稱軍糧已辦,丞相無故回師,天子因此命某來問耳。」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한중에 들어 간 후 성도에 돌아 가 후주를 뵈려 하였다. 도호 이엄이 망녕되이 후주에게 아뢰어 말하기를 “신이 이미 군량을 조달하여 승상(제갈공명)의 군대 앞에 운반하였는데 승상(제갈공명)이 무슨 이유로 군대를 돌리는지 알 수 없습니다.” 했다. 후주가 아뢰는 것을 듣고 곧 상서령 비위를 한중에 들여보내 제갈공명을 만나 군대를 돌리는 이유를 묻게 하였다. 비위가 한중에 이르러 후주의 뜻을 알렸다. 제갈공명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이엄이 글을 보내 급함을 알리기를 동오가 장차 군대를 일으켜 천(촉)을 침범하려한다고 말하기에 군대를 돌리는 것입니다.”했다. 비위가 말하기를 “이엄은 군량을 이미 운반하였는데 승상(제갈공명)이 이유 없이 군대를 돌린다고 아뢰어 말하였기 때문에 천자께서 저에게 명하여 가서 물으라 한 것일 뿐입니다.‘했다.
孔明大怒,令人訪察:乃是李嚴因軍糧不濟,怕丞相見罪,故發書取回,卻又妄奏天子,遮飾已過。孔明大怒曰:「匹夫為一己之故,廢國家大事!」令人召至,欲斬之。費禕勸曰:「丞相念先帝託孤之意,姑且寬恕。」孔明從之。費禕即具表啟奏天子。後主覽表,勃然大怒,叱武士推出李嚴斬之。參軍蔣琬出班奏曰:「李嚴乃先帝託孤之臣,望乞恩寬恕。」
제갈공명이 크게 노하여 사람을 시켜 살펴보게 하였더니 곧 이는 군량이 쓸모가 없었기 때문에 승상에게 죄를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글을 보내 돌아오게 하고, 또 망녕되이 천자에게 아뢰어 자기 허물을 눈가림하려는 것이었다. 제갈공명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필부가 자기의 일을 위하여 국가의 대사를 폐하게 하는구나!”하고는 사람을 시켜 불러 이르게 하녀 그를 베어 죽이려 하였다. 비위가 권하여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선제께서 탁고(후사를 부탁한)한 듯을 생각하시어 우선 또 너그럽게 용서하십시오.”했다. 제갈공명이 그것을 따랐다. 비위가 곧 표를 갖추어 천자에게 아뢰었다. 후주가 표를 보고 발끈 크게 노하여 무사에게 소리쳐 이엄을 끌고 나가 베어 죽이게 하였다. 참군 장완이 열에서 나와 아뢰어 말하기를 “이엄은 곧 선제께서 탁고(호사를 부탁한)한 신하이니 바라건데 은혜를 베풀어 너그러이 용서하시기를 청합니다.”했다.
後主從之,即謫為庶人,徙於梓潼郡閒往(住)。孔明回到成都,用李嚴子李豐為長史;積草屯糧,講陣論武,整治軍器,存恤將士:三年然後出征。兩川人民軍士,皆仰其恩德。光陰荏苒,不覺三年:時建興十二年春二月。孔明入朝奏曰:「臣今存恤軍士,已經三年。糧草豐足,軍器完備,人馬雄壯:可以伐魏。今番若不掃清奸黨、恢復中原,誓不見陛下也!」
후주가 그 말을 따라 곧 귀양을 보내 평민으로 만들고 재동군으로 옮겨 한가로이 살게 하였다. 제갈공명이 돌아 와 성도에 이르러 이엄의 아들 이풍을 등용하여 장사로 삼았다. 말먹이 풀을 쌓고 식량을 모으고, 진법을 가르치고 무를 논하여 군기(무기)를 수선하며 장수와 군사를 구휼하여 삼년 후에 출정하기로 했다. 양천(동천과 서천)의 백성들과 군사들이 모두 근 은덕을 우러렀다. 세월이 덧없이 흘러 깨닫지 못한 사이에 삼년이 지났으니 그 때는 건흥 십이년 봄 이월이었다. 제갈공명이 조정에 들어 가 아뢰어 말하기를 “신이 지금 군사를 구휼한 지 이미 삼년이 지났습니다. 식량과 말먹이 풀이 풍족하고, 군기(무기)가 완전하게 갖추어 졌고, 인마가 강건하여 위나라를 칠만 합니다. 이번에 만약 간사한 무리를 쓸어 깨끗하게 하고 중원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페하를 뵙지 않을 것을 맹서합니다.”했다.
後主曰:「方今已成鼎足之勢,吳、魏不曾入寇,相父何不安享太平?」孔明曰:「臣受天(先)帝知遇之恩,夢寐之間,未嘗不設伐魏之策。竭力盡中,為陛下克復中原,重興漢室:臣之願也。」言未畢,班部中一人出曰:「丞相不可興兵。」眾視之:乃譙周也。正是:午(武)侯盡瘁惟憂國,太史知機又論天。未知譙周有何議論,且看下文分解。
후주가 말하기를 “지금 이미 솥발의 형세를 이루어 오나라와 위나라가 침입해 들어온 적이 없는데 상부께서는 어찌하여 편안히 태평을 누리지 않습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신이 선제께서 알아주는 은혜를 받아 몽매간에 일찍이 위나라를 치는 계책을 베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힘을 다하고, 마음속을 지극히 하여 폐하를 위해 중원을 수복하여 한나라 황실을 거듭 흥륭시키는 것이 신이 원하는 것입니다.”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열안에서 한 사람이 나와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군대를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했다. 무리가 그를 보니 곧 초주였다. 바로 이러하다. 무후는 성의와 힘을 다하여 오직 나라를 근심할 뿐인데, 태사 초주는 기미를 알고 또 하늘을 논하는구나. 초주는 어떤 의론이 있는지 알지 못하겠다.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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