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迦耶山海印寺善安住院壁記
신라 가야산 해인사 선안주원 벽기
崔致遠
王制。東方曰夷。范曄云。夷者抵也。言仁也而好生。萬物抵地而出。故天性柔順。易以道御。愚也謂夷。訓齊平易。言敎濟化之方。按尒雅云。東至日所出爲大平。大平之人仁。尙書曰。命羲仲。宅嵎夷。曰暘谷。平秩東作。故我大王之國也。日昇月盛。水順風和。豈唯幽蟄振蘇。抑亦勾萌鬯懋生化。生化出震爲基。
《예기》 왕제에 동방을 ‘夷’라 하였고, 범엽이 말하기를 “夷는 뿌리이니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하여 만물이 땅에 뿌리하고 나온다. 그러므로 천성이 유순하고 도리로서 다스리기 쉬웠다.”라고 말했다. 내가 말한 夷는 뜻이 ‘평이’라는 말과 같으니 가르쳐 인도하여 잘하게 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爾雅〉를 살펴보니 말하기를 “동쪽으로 해가 나오는 곳에 이르는데 ‘大平’이라 하고, 대평의 사람들은 어질다.”하였다. 《상서》에 “희중에게 명하여 동쪽 바닷가에서 살게 하였는데 ‘暘谷(해 돋는 곳)’이라 하고, 봄 농사를 고르게 다스리게 하였다.”했다. 그러므로 우리 대왕의 나라는 날로 상승하고 달로 융성하여 물은 순조롭고 바람은 온화하였다. 어찌 어둔 곳에 숨었던 동물이 떨쳐 소생할 뿐이겠는가? 그러나 또한 초목이 싹터서 무성하게 자라나니, 나고 변화한다. 나고 변화하는 것은 동쪽을 터로 삼는다.
加復姬詩。擧西顧之言。釋祖始東行之步。宜乎九種。勉以三歸。地之使然。天所假也。儒行篇曰。上不臣天子。下不事諸侯。愼靜尙寬。博學知服。雖分國如錙銖。不臣不仕。其規爲有如此者。則大易之不事王侯。高尙其事。幽人貞吉。其履道乎。幽人何謂梵子。僅是援儒譬釋。視古猶今。偉矣哉。
《시경》의 “서쪽에서 돌아보았다.(西顧)”는 말을 하였고, “석가모니는 처음 동쪽을 향해 걸어갔다.”하였으니 마땅히 아홉 개 종족(九種)은 삼귀(삼보에 귀의함)에 힘써야 한다. (이것은)땅이 그러하게 시킨 것으로 하늘이 빌려준 것이다. 《예기》 유행편에 “위로 천자에게 신하노릇도 하지 않고, 아래로 제후를 섬기지 않는다. 삼가고 고요히 하여 너그러움을 숭상하고, 배움을 넓게 하여 행할 줄 안다. 비록 나라를 나누어 미세한 무게의 저울눈처럼 할지라도 신하노릇하지 않고 벼슬하지 않는다.”하니 그 규범을 이 같이 하는 자가 있다. 곧 《주역》의 “왕이나 제후를 섬기지 않고, 그 지조를 지키는 일을 고상하게 한다.”한 사람이요, “마음이 조용하고 안정된 사람이라야 바르고 길하다.”라고 한 사람이요, 그 도를 실천한 사람이라 하겠다. 마음이 고요하고 안정된 사람을 어찌 범자(스님)만을 이르겠는가? 단지 유가를 이끌어 불교에 비유했을 뿐이니 옛날을 보아도 지금과 같다. 훌륭하도다.
天所貴者人。人所宗者道。人能弘道。道不遠人。故道或尊焉。人自貴矣。能助道者。惟崇德歟。然則道之尊德之貴。睠惟法首。方洽物情。必也正名。乃稱大德。是由道強名大德成而上。
하늘이 귀하게 여기는 바는 사람이요, 사람이 높이는 바는 도이다. 사람이 도를 넓힐 수 있고,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 그러므로 도가 혹 높아진다면 사람은 저절로 귀하게 되고, 도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덕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한 즉 도를 높이며, 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오직 법의 첫 머리이다. (그러면)비로소 사물의 실정에 부합한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아야 이에 큰 덕이라 말 할 수 있으니 이로 말미암아 도가 강하며, 이름이 크고 덕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禮稱得位得名得壽。則敦化之說。將非是歟。東倭峻堦。義取窺豹。試稽所根。則有梁童子學士。著荊楚歲時記云。昔吳主孫權病篤。道士葛玄往看之。權家人聞空宁語曰。旣有大德道士。宜爲啓申。遂差大德之目。或記于玆。後譯葉書。廣編花偈。如大德舍利弗輩 犖犖然者斑有焉。且三界大師付囑尊法于邦君國宰。有深旨哉。其故何耶。化俗所資。尊賢是務。意圖馴虎。事甚好龍。故有國者。欲俾業熾傳燈。光踰銜燭。爰崇淨號。或表奇林。
《예기》에 지위와 명에를 얻고, 장수를 얻는 것은 곧 백성을 두텁게 교화한다는 말이 이것이 아니겠는가? 동왜 준계는 뜻을 일부만 취한 것이다. 시험 삼아 근거가 되는 바를 자세하게 고찰해보면 곧 양나라에 동자학사가 지은 《형초세시기》에 “옛날 오나라 임금 손권이 병이 위독하였을 때 도사 갈현이 가서 보았다. 손권의 집안사람들이 들으니 공중에서 말소리가 나기를 ‘이미 대덕도사가 있으니 마땅히 보고하여 올리라.’했으므로 마침내 대덕의 명목을 내세웠다.”고 여기에 기록하였다. 후에 엽서(불경)를 번역하며 널리 게송을 번역하면서 엮어서 대덕과 사리불과 같은 무리로 탁월하게 빼어난 이들이 있었다. 또한 삼계대사가 나라의 임금과 재상에게 법을 높일 것을 부촉한 것은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풍속을 교화하는데 바탕이 되는 바는 어진이를 높이는 것에 힘쓰는 것이다. 범을 길들이는 것을 꾀하는 것은 일이 용을 좋아하기보다 더 어렵다. 그러므로 나라를 소유한 이의 일은 불법을 전하는 것보다 基業을 치열하게 하고, 촛불을 입에 물고 있는 것보다 더 빛나게 하기 위해서는 이에 깨끗한 이름을 높이고 혹은 기이한 총림을 드러내야 한다.
昔我善德女君。宛若吉祥聖化。誕膺東后。景仰西方。時有觀光比丘。曰智穎。曰乘固。去探赤水。來耀靑丘。於是寵彼上乘。擢爲大德。自爾厥後。寔繁有徒。五岳群英。竟勵爲山之志。四海釋種。能均入海之名。曰瑜伽。曰驃訶健拏。曰毗柰耶。曰毗婆沙。復有彩混楚禽。號齊周璞者。或推懺誦。或採揔持。或擧華儕。或醻苦節。斯皆假王給之所擢。擧重金牌。侔帝網之相含。光融玉刹。擧之若取火於燧。用之猶度木於山。覬使粉躬。終無犯齒。
옛날 우리 선덕여왕은 완연히 길상의 거룩한 화신인 듯하여 처음 동쪽의 임금을 이어받아 서쪽을 크게 우러렀다. 그 때에 문물을 살핀 비구가 있어 ‘지영’이라 하고, ‘승고’라 하였는데 중국에 가서 탐구하고, 와서 청구(신라)를 빛내었다. 이에 저 뛰어난 교법을 사랑 해 뽑아 올려서 대덕을 삼았다. 이로부터 이후로 이에 무리들이 번성하여 오악의 여러 뛰어난 이들이 마침내 산을 만들려는(성공하려는) 뜻을 힘쓰고, 천하의 釋種(불교도)들이 바다에 들어갔다는 이름을 고르게(함게)하게 되었다. ‘유가’, ‘표하건나’, ‘비내야’, ‘비바사’하는 것이 있고, 다시(또) ‘채혼초금’, ‘호제주박’이 있었다. 혹은 미루어 ‘참송(염송)’으로 추천하고, 혹은 ‘총지(진언)’로 채용하며, 혹은 화려한 무리(귀족으로)로 등용하여 굳은 절개를 인정하였다. 이는 모두 왕이 발탁하여 준 것으로 (그 영예가)금패보다 중하며, 임금의 그물에 걸려든 것과 같아 옥찰(절)을 빛낸다. (이들을) 등용한 것은 마치 부싯돌에서 불을 취하는 것과 같고, 그들을 쓰는 것은 산에서 나무를 재는 것과 같았다. 몸을 희생하기를 바라 끝내 나이를 범함이 없게 하였다.
遂制過衛瑗知非之歲。時滿魯丘學易之年。始許遷喬。終期七稔。其或業敦時敏。德協老成。則令禰鶚獨飛。盖奬宋鷄奇辯。仍加別字。用慶後生。故幼學十成。謂優曇一現。就是方廣相應二宗也。靜則粹山王之氣。動則儼海會之雄。譬夫翔空九苞。蹠實一角。代上猶忦逢化佛。黌中若虔奉嚴君。衆旣肘趍。事皆頤指。
마침내 위원이 잘못을 알았던 해를 지난 때, 노구(거백옥)가 주역을 배우던 해(50세)를 채워야만 비로소 높은 곳으로 옮아감을 허락하고, 마치는 기일은 칠년으로 하였다. 업(공부)가 독실하고 민첩하며, 덕이 노성한 사람에 부합함이 있으면 곧 독수리 같은 예형(출중한 사람)으로 하여금 홀로 날게 하였으니 대개 송계의 기이한 변론을 장려하여 그대로 별도의 字를 더하여 후생(후배)에게 영광을 열어주었다. 그러므로 어려서 학문을 십분 이루면 우담화가 한 번 나타났다고 말하고 이에 방광(화엄종)과 상응(법상종) 두 종파에 나아가게 하였다. 고요히 있으면 곧 순수한 산 왕의 기운이요, 움직이면 곧 엄연한 해회의 영웅장함이었다. 비유하면 저 공중에서 날개 짓하는 봉왕이요, 실지를 발로 밟는 기린이었다. 세상에서는 마치 化佛을 만난 듯이 기뻐하였고, 학교 안은 마치 엄한 아버지를 경건히 받드는 듯하였다. 무리들이 이미 팔을 저어 좇아오는 일이 모두 턱으로 가리키는 것과 같았다.
然咸能潔己。罕見驕人。寔所謂高而不危。威而不猛者尒。抑又學之能講。言必可師。觀其鯨杵騰雷。鵲爐飛靄。仰三尊而有裕。顧四衆以無譁。窟現象王。緩擧象王之步。座升師子。高揚師子之音。天口籠雲。海脣鼓浪。旣比神錐闘銳。實同明鏡忘疲。有問必酬。無疑不剖。或能折角。奚趐解頤。俾遮著者失儀。寄載者知返。每游刃而無畏。欲藏鋒而莫能。誰言虐我則讎。允協當仁不讓。誘人也俗以之悟。護國也道以之興。
그러나 모두 자기를 깨끗이 할뿐 다른 사람에게 교만한 이는 드물었다. 이것이 이른 바 높아도 위태롭지 않다는 것이고, 위엄이 있어도 사납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학문을 함에 강론할 수 있고, 말은 반드시 본받을 만하였다. 살펴보면 그 절구공이 소리는 우레처럼 일어나고, 작로(향료)에는 아지랑이가 날아오르며, 삼존을 우러러 넉넉함이 있었다. 사부대중을 돌아보아도 시끄럽지 않다. 굴에서 코끼리 왕이 나타나 느릿느릿 코끼리왕의 걸음을 하고, 자리에 사자가 올라 높이 사자의 소리를 외치면 하늘 어귀에 구름이 뒤덮이고, 바닷가에는 물결소리 울린다. 신령스러운 송곳을 견주어 날카로움을 다투니 진실로 밝은 거울이 피로(사물을 비추는 일을 하여 피로함)를 잊은 것과 같다. 물음이 있으면 반드시 대답함이 있었고, 의심나는 것은 명확히 하지 않음이 없고, 혹은 오만한 자의 콧대를 꺽었으니 어찌 입을 크게 벌리고 웃음에 나아갈 뿐이겠는가? 드러남을 가리려는 자는 모양을 잃게 하고, 편승하려는 자는 돌아옴을 알게 하였다. 매양 칼날을 가지고 놀며(일을 처리하는데 매우 익숙하여 여유가 있어) 두려워함이 없어 뾰족함을 감추려 해도 할 수 없었다. 누가 말하기를 “나를 학대하는 이는 곧 원수이다.”했으니 진실로 仁에 마땅하면 사양하지 않는 다는 것에 부합한다. 사람을 유인하니 풍속이 깨우쳐지고, 나라를 지키니 도가 흥기하였다.
經云。受持萬偈經。不如一句義。猶信後發前至。其惟是山。何則。有若祖師順應大德。効成覸於神琳碩德。問老聃於大曆初年。託窽木以忘軀。尋住山而得髓。窮探敎海。俊達禪河。洎遂言歸。光膺妙選。乃歎曰。人資琢玉。世貴藏金。旣含天地之靈。亦籍山川之秀。鳥能擇木。吾盍誅茅。
경에 이르기를 “만 가지 게의 경을 받아 지니는 것이 한 구절의 뜻보다 못하다.”하였으니 오히려 믿을 수 있다. “뒤에 출발했으나 먼저 이르렀다”는 것은 다만 이 산을 가리킨 것일 뿐이다. 어째서인가? 조사인 순응대덕의 경우신림대덕을 본받아 엿봄을 이루었고(신림대덕에게서 공부하였고), 대력 초년에 노담을 물으려(중국에 도를 물으려) 움품패인 나무(배)에 의지하여 자신을 잊어다. (선지식을)찾아 산에 살며 정수를 얻었고, 가르침의 바다를(교종을) 모두 탐구하였고, 뛰어난 선종의 물결에 도달하였다. 나라에 돌아와서는 빛나는 자리에 올라 (대덕에) 잘 뽑혔다. 이에 탄식해 말하기를 “사람의 바탕은 옥을 갈 듯이 해야 하는데, 세상에서는 금을 저장하기를 귀하게 여긴다. 이미 하늘과 땅의 신령스러움을 머금었고, 또한 산천의 빼어난 곳에 자리하였다. 새도 나무를 가려 앉는데 내가 어찌 베어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띠 풀을 베어내고 집을 짓지 않을 수 있겠는가?)”했다.
越貞元十八年良月旣望。牽率同志。卜築於斯。山靈鈞妙德之名。地體印淸涼之勢。分裝五髻。競拔一毛。于時聖穆王太后。母儀四夷。子育三學。聞風敬悅。誓日歸依。捨以嘉蔬。副之束帛。是乃自天獲祐。實惟得地成因。
정원 18년(802, 애장왕3) 10월 16일에 뜻을 같이하는 이를 이끌고, 여기에 와 집터를 보고 건축하였다. 산의 신령스러움은 묘덕의 이름에 부합하고, 땅의 형세는 청량(문수보살의 주처인 오대산)의 형세와 일치하였다. 五髻를 나누어 장식함에 다투어 하나의 터럭을 뽑으려 하였다. 그 때에 성목왕태후가 사방에 어머니가 지녀야할 도리를 보이고, 삼학으로 자녀를 기르다가 바람결에 듣고 공경하고 기뻐하며, 해를 두고 맹서하여 귀의하고, 맛있는 채소(재물)을 희사하고 묶은 비단을 희사하였다. 이는 곧 하늘로부터 도움을 얻었기 때문이나 실로 땅이 인연을 이루어주었기 때문이다.
然屬生徒方霧擁喦扉。耆德遽露晞林宇。利貞禪伯。踵武興功。依乎中庸。盡住持之美。取諸大壯。煥營構之奇。雲矗霞舒。日新月改。自是伽耶勝境。雅符成道之基。海印殊珍。益耀連城之價。旣見玉林皆拔。寔同珠岸不枯。
그러나 생도들이 바야흐로 안개처럼 바위 문에 모여드는 때를 당하여 기덕이 대번에 아침 이슬이 마르듯 돌아가셨다. 이정선백이 뒤를 이어 일을 이루었다. 중용에 의지하여 주지의 아름다움을 다하고, 여러 大壯掛를 취하여 건물을 짓는 것을 빛나게 하니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고, 노을이 펴지듯 날로 새로워지고 달로 바뀌어졌다. 이로부터 가야의 아름다운 경관이 부처님이 도를 이룬 터전에 바르게 부합하였고, 해인의 빼어난 구슬이 연성의 구슬 가치보다 더욱 빛났다. 이미 玉林이 모두 뽑힘을 당하였으니(玉林이 모두 도량에 편입되었기에) 이는 진주가 나오는 물가는 마르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故得開薙則僅一百年。徵躬者盈四七德。以誦持同昇者五。由演暢別座者三。是皆行不浮于言。名克保于實。書曰。不矜細行。終累大德。競能敦化。詎欲踰閑。且嶽不辭塵。川能注海。可畏者如涌。並行者自沉。餬口雖資乎地財。鍊心唯貴乎天爵。旣仰止龍象。盍煥乎鳥蹤。
그러므로 (터를)열어 깍은 것은 곧 경 일백년이지만 몸을 불려온 자는 28덕을 가득 채웠다. 외우고 지녀 함께 오른 자가 5명이고, 진리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밝힘으로 말미암아 자리를 따로 한 자가 세 명이었는데, 이는 모두 행실이 말에 일치하여 이름이 능히 실제를 보장할 수 있었다. 《서경》에 말하기를 “작은 행실을 삼가지 않으면 마침내 대덕에 누가 된다.”라고 하였다. 다투어 교화를 돈독히 하였으니 어찌 법도를 넘고자 하였겠는가? 또한 산은 티끌을 거절하지 않고(거절하지 않아 높이 치솟을 수 있고), 내는 (작은 물줄기를 거부하지 않아)바다에 흘러들어 갈 수 있다. 두려워할만한 것은 물이 솟구치듯 나란히 가려하는 자는 저절로 물에 빠질 것이다. 입에 풀칠하는 것이 비록 땅의 재물에 의지하나 마음을 단련하는 것은 오직 인위적이지 않은 벼슬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이미 덕과 학식이 높은 스님을 우러렀으니 어찌 새의 자취를 빛나게 하지 않겠는가?
遂志粉墉。聊光黛巘。庶使入室者堂基順法。負墻者壁觀宜機。如能敏則有功。自得歿而不朽。獲麟晉乘。其或在玆。希驥顔徒。云胡不勖。巨唐光化三禩天一泰齋臈月霧日記。(《東文選》卷64, 記)
마침내 담장을 꾸밀 뜻을 가지고 애오라지 푸른 산 빛을 빛나게 하였으니 입실하는 자로 하여금 당에서 대문으로 질서 있게 가게하며(堂基), 담장을 진 자는 면벽하고 좌선하기를 형편에 맞게 하게 하였다. 만일 민첩하게 하면 곧 공이 있을 것이고, 죽더라도 이지러지지(없어지지) 않는다. 획린과 진승(역사 기록이)이 여기에 있으니 천리마와 안회의 무리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어찌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거당 광화 3년(900, 효공왕4)에 천일태재에서 납월 무일에 쓰다.(《동문선》권64,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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