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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견 숙위학생 수령 입조장

by 최인표 2024. 5. 4.

遣宿衛學生首領等入朝狀

숙위학생과 수령 등을 보내 입조하게 하는 장(문서)

崔致遠

新羅國當國. 差遣宿衛學生首領入朝, 請附國子監習業, 謹具人數姓名, 分析申奏如後. 學生八人崔愼之等, 大首領八人祈綽云云, 小首領二人蘇恩云云.

신라국 당국이 아룁니다. 숙위학생과 수령을 보내 입조하니 국자감에서 학업을 닦을 수 있도록 청하며, 삼가 사람의 수와 성명을 갖추어 다음과 같이 나누어 申奏합니다. 학생은 8(최신지 등)이고, 대수령 8(기작 등), 소수령 2(소은 등)입니다.

 

右臣伏覩, 大宗文武聖皇帝實錄, 貞觀元年, 宴群臣, 奏破陣樂之曲, 上謂侍臣曰, “朕雖以武功定天下, 終當以文德綏海內.” 尋建學舍數百間, 聚四方生徒, 無何詣蕃慕善, 酋長請遣子弟授業, 許之. 自爾臣蕃, 益勤航棧, 螟蛉有子, 琛贐與偕, 遂得庇身於米廩之中, 志於稷山之下, 學其四術, 限以十冬, 雖慙入洛之賢, 不減浴沂之數.

신이 삼가 태종문성황제 실록을 보건대 정관 1(627, 진평왕49) 여러 신하들에게 잔치를 열었는데, ‘파진락의 곡을 연주하자, 황제가 모시는 신하에게 일러 말하기를 짐이 비록 무공으로서 천하를 안정시켰으나, 끝내는 마땅히 문덕으로서 천하를 편안히 해야 할 것이다.”하고는 높이 학교 건물 수백 칸을 세우고, 사방의 생도(학생)를 모았더니 얼마 되지 않아 여러 번방에서 좋은 것을 사모하여 추장들이 자제를 보내 수업하기를 청하니 그것을 허락하였습니다. 이로부터 신의 번방은 더욱 뱃길과 벼랑길 다니기(사신 보내기)를 부지런히 하고, 명령의 새끼들과 공물을 함께하여 마침내 미름(학교)의 안에서 몸을 의탁하고, 직산의 아래에서 뜻을 힘쓰게 하여 四術을 배우게 하되 10년을 기한으로 삼았으니 비록 낙양에 들어가는 현명함에는 부끄러움이 있으나 기수에 목욕하던 숫자로는 적지 않습니다.

 

況遇聞元闡化, 大設衢樽, 彼注玆, 自近及遠. 每降漢使, 精澤魯儒, 兩錫天章, 一變海俗. 故得鄕無毁校之議, 家有斷機之親, 雖扑作敎刑, 僅同刑措, 且禮聞來學, 唯竟學優.

하물며 개원에(이르러) 교화를 밝히어 드러내어 크게 구준을 베풀어 저기에 떠서 여기에 부으니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에 이르렀습니다. 매번 중국의 사신이 내려올 때 정밀히 노유를 가려 뽑았고, 두 번이나 중국 임금의 글을 내려주시어 바닷가의 풍속을 일변시켰습니다. 그러므로 마을에서는 학교를 무너뜨리려는 의논이 없었고, 집에는 짜던 베를 잘라버리는 어버이가 있습니다. 비록 회초리로 가르치는 형벌을 할지라도 거의 형벌을 놓아버린 것처럼 되었고, 또한 예로 와서 배운다는 것은 들리지만, 오직 배움을 넉넉하게 하여 경쟁할 뿐이었습니다.

 

是時簦笈之子, 分在兩京, 憧憧往來, 多多益辨. 至今國子監內, 獨有新羅馬道, 在四門館北廊中, 彼諸蕃, 其中絶. 如浡海, 無籍膠庠, 唯令桃野諸生, 得厠杏壇學侶. 由是海人賤姓, 泉客微名, 或高掛金牌, 寧慙附贅, 或榮昇玉案, 實賴餘光. 雖乖業擅專門, 可證人無異國. 臣竊以東人西學, 惟禮與樂, 至使攻文以餘力, 變語以正音, 文則俾之修表章, 陳海外之臣節, 語則俾之達情禮, 奉天上之使車, 職曰翰林, 終身從事.

이 때 우산과 책 상자를 진 자제들이 양경(장안과 낙양)에 있으면서 왔다갔다 왕래하였는데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힘쓰게 됩니다. 지금에 이르러 국자감 안에는 오직 신라의 마도만이 사문관의 북쪽 회랑 안에 있을 뿐, 무지한 저 여러 번국이 조용히 그 중간에 끊어졌습니다. 저 발해와 같은 경우는 학교에 적을 둔 경우가 없고, 오직 도야의 제생으로 하여금 행단(학교)에 끼게 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해인의 천한 성과 천객의 미미한 이름이 혹 금패에 높이 걸리기도 하였으니 어찌 쓸데없이 덧붙임을 부끄러워하며, 혹은 영광스러운 玉案에 오르기도 하였으니 진실로 남은 빛남에 힘입은 것입니다. 비록 학업을 전문으로 천단하는 데는 어긋나지만 사람이 나라에 따라 다름이 없음을 증명할 만하다 할 것입니다. 신이 삼가 생각하건대 동쪽 사람으로서 서쪽에서 배운 것은 오직 예와 악일뿐으로 남은 힘으로써 문장을 공부하게 하는데 이르고, 말소리를 정음으로 변화시켜, 문장은 곧 表章을 지어 해외의 臣節을 진술할 수 있게 함이요, 말소리는 곧 실정과 예에 통달하게 하여 天上使車를 받들게 하려해서이니 그 직책을 翰林이라 하며, 종신토록 종사하게 합니다.

 

是以每遣陪臣執䞇, 卽令胄子觀光, 而能視鯨浪爲夷途, 乘鷁舟爲安宅, 銳於嚮化, 喜若登仙. 況近者藩臣之寬猛乘宜, 荒服之兇頑得便, 顔瓢則頓改其樂, 孔席則愈嗟非溫.

이 때문에 매번 陪臣을 보내 폐백을 잡게 할 때마다 곧 胄子(맏아들이)가 선진의 문물을 살펴보게(觀光)하여 사나운 물결보기를 평평한 길로 여기고, 배를 타는 것을 편안한 집으로 여기며, 황제의 교화를 재빨리 따르며, 신선에 오르듯이 기뻐하였습니다. 하물며 최근에는 藩臣이 관대함과 준엄함이 마땅함을 잃으니, 황복의 흉악하고 완악한 이가 편의를 얻고, 안회는 곧 그 즐거움을 바꾸고, 공자께서 앉았던 자리가 곧 더욱 따뜻할 수 없게 된 때임에야 더 무엇을 말하겠는가?

 

仰聞聖文睿德光武弘孝皇帝陛下, 俯徇群情, 崇加懿號, 以聖文冠上, 光武弸. 能使大邦無軍旅之事, 至於小邑有絃歌之聲, 以此臣蕃, 鴻漸者随陽是思, 蟻術者慕羶增切, 競携持而避亂, 願匍匐以役仁.

우러러 듣건대 문예덕광무홍효황제폐하께서는 굽어 여러 실정을 따르고, 아름다운 호를 높이 더하는 것으로서 聖文을 앞에 더하고, 光武로 가운데를 채웠다고 합니다. 이로써 능히 큰 나라로 하여금 군려(군대의)일이 없게 하고, 작은 에서 絃歌 소리가 있음에 이르렀으니 이로써 신의 번국에서 넓게 무젖은 자들이 양지를 따를 것을 생각하고, 蟻術을 하는 자들은 羶肉(누린내 나는 고기)을 사모함이 더욱 간절히 하여 다투어 휴대하고 난을 피하며, 기어서 인에 부림을 당하기를(귀의하기를) 원하였습니다.

 

臣今差前件學生等, 以首領充傔, 令隨賀正使守倉部侍郞級餐金穎船次, 赴闕習業, 兼充宿衛. 其崔愼之等, 雖材慙美箭, 而業嗣良弓, 用之則行, 利有攸往. 輒以多爲貴者, 豈亦遠於禮乎. 金鵠是故海州縣剌史金裝親男, 生在中華, 歷於兩代, 可承堂構, 免墜家聲.

신이 이제 앞의 학생 등을 보내 수령으로서 수행원에 충당하고, 하정사 수창부시랑 급찬 김영을 따라 출항하여 궐에 나아가 학업을 익히고, 겸하여 숙위를 채우게 하였습니다. 그 최신지 등은 비록 재능이 美箭(뛰어난 내질)에는 부끄러우나 良弓을 이어받았으니 그를 등요하면 곧 행하여 가는 곳 마다 이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문득 많은 것으로서 귀함을 삼는다 하니 어찌 또한 예에서 멀다 하겠습니까? 김곡은 죽은 해주현 자사 김장의 친 아들로 태어나 중화(중국)에 있은 지 두 대를 지났으니 堂構(궁전의 꾸밈새)를 받들만하니 가문의 명성을 떨어뜨리는 일은 면한 것입니다.

 

臣敢以興學爲先, 求賢是務, 買書金則已均薄貺, 讀書粮則竊覬洪恩. 且千里之行, 聚費猶勞於三月, 十年爲活, 濟窮唯仰於九天. 幸遇聖朝, 誕敷文德, 伏乞恕撞鍾之無力, 憐擊磬之有心, 垂慈於磁石引針, 周急於浮埃生甑, 特賜宣下鴻臚寺, 准去龍紀三年随賀登極使判官檢校祠部郞中崔元入朝學生崔霙等事例, 勒京兆府支給逐月書粮, 兼乞冬春恩賜時服.

신이 감히 학교를 일으키는 것을 우선으로 삼고, 어진이 찾는 것에 힘써, 책을 살 돈은 곧 이미 조금이나마 주었지만, 책을 읽는(동안의) 양식은 곧 가만히 (폐하의)넓은 은혜를 바랍니다. 또한 천리를 감에 비용을 모으는 것이 오히려 3개월보다 수고로운데, 10년을 살아가려면 궁핌함을 구제함은 오직 九天을 우러를 뿐입니다. 다행히 聖朝文德을 널리 펼치시는 때를 만났습니다. 엎드려 청하건대 종을 칠 힘이 없음을 용서하시고, 경쇠를 치려는 마음이 있음을 불쌍히 여기시어 자석이 바늘을 이끌 듯이 자비로움을 드리워주시고, 시루에 먼지만 피어나는 급함을 구제하여 주시되, 특히 홍려시에 宣旨를 내려 지난 용기 3(891) 하등극사 판관 검교사부랑중 최원, 입조학생 최영 등의 사례에 준하여 경조부에서 달을 따라 책과 양식을 지급하게 하시고, 겸하여 겨울과 봄에 때에 맞는 의복을 은혜로 내려 주실 것을 청합니다.

 

所冀身資飽學, 無憂餒在其中, 跡異暗投, 不愧藝成而下, 更霑榮於挾纊, 終免苦於易衣. 臣以目想鸎喬, 心攀驥乘, 仰趨丹陛, 俯羨靑襟. 實貴儒宗, 輕浼宸鑑, 無任望恩懷德技癢切瑳之至.(東人之文四六1, 事大表狀)

바라는 바는 몸이 배움에 배부른 것에 바탕하여 주림이 그 안에 있을까하여 근심함이 없게 하고, 자취가 어두운 곳에 던져진 것과 달리 기예를 이루었으니 낮은 곳에 있어도 부끄럽지 않게 되는 것이며, 다시 솜옷을 껴입는 영광에 젖어 끝내 옷을 벗어서 양식과 바꾸는 괴로움을 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이 눈으로는 꾀꼬리가 높은 나무로 옮겨가는 것을 생각하면서 마음으로는 천리마의 무리 속에 끼려는 마음이 간절하나, 우러러 丹陛를 그리워하고, 굽어 푸른 옷소매를 부러워합니다. 진실로 儒宗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 경솔하게 천자가 친히 보는 것을 더럽히게 되었으며, 은혜를 바라고 덕을 품으며 절차탁마한 기량을 뽐내고 싶은 지극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동인지문사육1, 사대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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