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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16

제97회 무후(제갈공명)는 위나라를 토벌하는 표를 다시 올리고, 조씨의 군대를 깨트리려 강유는 속이는 글을 바치다. 第九十七回:討魏國武侯再上表,破曹兵姜維詐獻書 제97회 무후(제갈공명)는 위나라를 토벌하는 표를 다시 올리고, 조씨의 군대를 깨트리려 강유는 속이는 글을 바치다. 卻說蜀漢建興六年秋九月,,魏都督曹休被東吳陸遜大破於石亭,車仗馬匹,軍資器械,並皆罄盡。休惶恐之甚,氣憂成病,到洛陽,疸發背而死,魏主曹叡敕令厚葬。司馬懿引兵還。眾將接入問曰:「曹都督兵敗,即元帥之干係,何故急回耶?」懿曰:「吾料諸葛亮知吾兵敗,必乘虛來取長安。倘隴西緊急,何人救之?吾故回耳。」眾皆以為懼怯,晒笑而退。卻說東吳遣使致書蜀中,請兵伐魏,並言大破曹休之事;一者顯自己威風,二者通和會之好。 각설하고 촉한 건흥 육년 가을 구월 위나라 도독 조휴는 동오 육손에게 석정에서 크게 깨트려져 수레, 말, 군자금, 기계를 모두 잃었다. 조휴는 놀라고 두려워함이 심하고, 근심이 병이 되어 낙양.. 2021. 8. 17.
제95회 마속은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아 가정을 잃고, 무후(제갈공명)는 거문고를 연주하여 중달(사마의)을 물리치다. 第九十五回:馬謖拒諫失街亭,武侯彈琴退仲達 제95회 마속은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아 가정을 잃고, 무후(제갈공명)는 거문고를 연주하여 중달(사마의)을 물리치다. 卻說魏主曹叡令張郃為先鋒,與司馬懿一同征進;一面令辛毗、孫禮二人領兵五萬,往助曹真。二人奉詔而去。且說司馬懿引二十萬軍,出關下寨,請先鋒張郃至帳下曰:「諸葛亮生平謹慎,未敢造次行事。若吾用兵,先從子午谷逕取長安,早得多時矣。他非無謀,但恐有失,不肯弄險。今必出軍斜谷,來取郿城。若取郿城,必分兵兩路,一軍取箕谷矣。吾已發檄文,令子丹拒守郿城,若兵來不可出戰;令孫禮、辛毗截住箕谷道口,若兵來則出奇兵擊之。」郃曰:「今將軍當於何處進兵?」懿曰:「吾素知秦嶺之西,有一條路,地名街亭,傍有一城,名列柳城;此二處皆是漢中咽喉。諸葛亮欺子丹無備,定從此進。吾與汝逕取街亭,望陽平關不遠矣。亮若知吾斷其街亭要路,絕其糧道,則隴西一境.. 2021. 8. 5.
제92회 조자룡은 힘을 떨쳐 다섯 장수를 목 베고, 제갈량(제갈공명)은 지혜로 세 개 성을 취하다. 第九十二回:趙子龍力斬五將,諸葛亮智取三城 제92회 조자룡은 힘을 떨쳐 다섯 장수를 목 베고, 제갈량(제갈공명)은 지혜로 세 개 성을 취하다. 卻說孔明率兵前至沔縣,經過馬超墳墓,乃令其弟馬岱挂孝,孔明親自祭之。祭畢,回到寨中,商議進兵。忽哨馬報道:「魏主曹叡遣駙馬夏侯楙,調關中諸路軍馬,前來拒敵。」魏延上帳獻策曰:「夏侯楙乃膏粱子弟,懦弱無謀。延願得精兵五千,取路出褒中,循秦嶺以東,當子午谷而投北,不過十日,可到長安。夏侯楙若聞某驟至,必然棄城望邸閣橫門而走。某卻從東方而來,丞相可大驅士馬,自斜谷而進:如此行之,則咸陽以西,一舉可定也。」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군대를 거느리고 앞으로 면현에 이르러 마초의 무덤을 지나가며 그 동생 마대로 하여금 상복을 입게하고, 제갈공명이 직접 제사하였다. 제사를 마치고 돌아와 영채 안에 이르러 진군하는 일을 상의하였.. 2021. 7. 14.
제91회 노수에 제사하며 한 승상은 군대를 돌리고, 중원을 정벌하려 무후(제갈공명)가 표를 올리다. 第九十一回:祭瀘水漢相班師,伐中原武侯上表 제91회 노수에 제사하며 한 승상은 군대를 돌리고, 중원을 정벌하려 무후(제갈공명)가 표를 올리다. 卻說孔明班師回國,孟獲率引大小洞主酋長,及諸部落羅拜相送;前軍至瀘水,時值九月秋天,忽然陰雲布合,狂風驟起;兵不能渡,回報孔明,孔明遂問孟獲。獲曰:「此水原有猖神作禍,往來者必須祭之。」孔明曰:「用何物享祭?」獲曰:「舊時國中因猖神作禍,用七七四十九顆人頭並黑牛白羊祭之,自然風恬浪靜,更兼連年豐稔。」孔明曰:「吾今事已平定,安可妄殺一人?」遂自到瀘水岸邊觀看。果見陰風大起,波濤洶湧,人馬皆驚。 각설하고 제갈공명이 군대를 돌려 나라로 돌아가자 맹획은 대소의 동주, 추장, 여러 부락을 인솔하고 늘어서서 절하며 환송하였다. 앞 선 부대가 노수에 이르렀는데 때는 구월 가을이었다. 홀연히 하늘을 덮는 먹구름이 덮히고.. 2021.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