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二回:趙子龍力斬五將,諸葛亮智取三城
제92회 조자룡은 힘을 떨쳐 다섯 장수를 목 베고, 제갈량(제갈공명)은 지혜로 세 개 성을 취하다.
卻說孔明率兵前至沔縣,經過馬超墳墓,乃令其弟馬岱挂孝,孔明親自祭之。祭畢,回到寨中,商議進兵。忽哨馬報道:「魏主曹叡遣駙馬夏侯楙,調關中諸路軍馬,前來拒敵。」魏延上帳獻策曰:「夏侯楙乃膏粱子弟,懦弱無謀。延願得精兵五千,取路出褒中,循秦嶺以東,當子午谷而投北,不過十日,可到長安。夏侯楙若聞某驟至,必然棄城望邸閣橫門而走。某卻從東方而來,丞相可大驅士馬,自斜谷而進:如此行之,則咸陽以西,一舉可定也。」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군대를 거느리고 앞으로 면현에 이르러 마초의 무덤을 지나가며 그 동생 마대로 하여금 상복을 입게하고, 제갈공명이 직접 제사하였다. 제사를 마치고 돌아와 영채 안에 이르러 진군하는 일을 상의하였다. 홀연히 정찰병이 보고하여 말하기를 “위나라 임금 조예가 부마 하후무를 보내 관중 여러 방면의 군마를 동원해 앞으로 와 적(촉)을 막습니다.”했다. 위연이 군막에 올라 계책을 올려 말하기를 “하후무는 곧 부귀한 집안의 자제로 유약하고 꾀가 없습니다. 제가(위연) 정예군대 오천을 얻을 수 있다면(저에게 오천의 정예군대를 주신다면) 길을 취해 포중을 나가 진령 동쪽을 따라 자오곡으로 가 북쪽으로 들어가면 십일이 지나지 않아 장안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후무가 만약 제가(위연) 달려 이른 것을 안다면 반드시 성을 버리고 군량 창고 횡문을 향해 달아날 것입니다. 제가(위연) 동쪽으로부터 오고, 승상께서는 크게 군사를 몰아 사곡으로부터 진군하여 이 같이 행하면 곧 함양 서쪽을 일거에 평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孔明笑曰:「此非萬全之計也:汝欺中原無好人物,倘有人進言,於山僻中以兵截殺,非惟五千人受害,亦大傷銳氣。決不可用。」魏延又曰:「丞相兵從大路進言(發),彼必盡起關中之兵,於路迎敵;則曠日持久,何時而得中原?」孔明曰:「吾從隴右居平坦大路,依法進兵,何憂不勝?」遂不用魏延之計。魏延怏怏不悅。孔明差人令趙雲進兵。
제갈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이는 완전한 계책이 아니다. 너는 중원에 훌륭한 인물이 없다고 업신여기지만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산 후미진 곳에서 군대로 끊어 죽이면 비단 오천 명이 해를 받을 뿐만 아니라 또한 크게 예기가 상할 것이다. 결단코 쓸 수 없습니다.”했다. 위연이 또 말하기를 “승상의 군대가 큰 길을 따라 진군하신다면 그들은 반드시 관중의 군대를 모두 일으켜 길에서 적을 맞이할 것입니다. 하는 일 없는 날이 오래하고 어느 때 중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나는 농우에서 평탄한 큰 길을 차지하고 법에 따라 진군한다면 어찌 이기지 못할 것을 근심하겠습니까?”했다. 마침내 위연의 계책을 쓰지 않았다. 위연이 불퉁거리며 기뻐하지 않았다. 제갈공명은 사람을 보내 조운(조자룡)으로 하여금 진군하게 하였다.
卻說夏侯楙在長安聚集諸路軍馬。時有西涼大將韓德,善使開山大斧,有萬夫不當之,勇,引西羌諸路兵八萬到來;見了夏侯楙,楙重賞之,就令為先鋒。德有四子,皆精通武藝,弓馬過人:長子韓瑛,次子韓瑤,三子韓瓊,四子韓琪。韓德帶四子并西羌兵八萬,取路至鳳鳴山,正遇蜀兵。兩陣對圓。韓德出馬,四子列於兩邊。德厲聲大罵曰:「反國之賊,安敢犯吾境界!」趙雲大怒,挺鎗縱馬,單搦韓德交戰。長子韓瑛,躍馬來迎;戰不三合,被趙雲一鎗刺死於馬下。次子韓瑤見之,縱馬揮刀來戰。趙雲施逞舊日虎威,抖擻精神迎戰。瑤抵敵不住。
각설하고 하후무는 장안에서 여러 방면의 군마를 모았다. 그 때 서량 대장 한덕은 개산대부를 잘 써 만 명이 감당하지 못하는 용맹이 있었는데 서강 여러 방면의 군대 팔만을 이끌고 와 하후무를 뵈니 하후무가 많은 상을 주고 선봉이 되게 하였다. 한덕은 세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무예에 정통하여 활쏘기와 말 타는 것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다. 장자는 한영이고, 차자는 한요, 셋째는 한경, 넷째는 한기이다. 한덕은 네 아들과 서강의 군대 팔만 명을 데리고 길을 취해 봉명산에 이르러 촉의 군대와 만났다. 두 진영이 둥글게 마주하였다. 한덕이 말을 타고 나오는데 네 아들이 양쪽에 벌려 섰다. 한덕이 성난 소리로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나라를 배반한 도적이 어지 감히 우리 경계를 범하는가?”하니 조운(조자룡)이 크게 노하여 창을 내밀고 말을 몰아 홀로 한덕에게 싸움을 걸었다. 장자 한영이 말을 몰아 와 맞이하였으나 싸운 지 삼합이 도지 않아 조운의 한 창에 찔려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차자 한요가 그것을 보고 말을 몰아 칼을 휘두르며 싸우러 왔다. 조운(조자룡)이 옛날의 무위를 떨치고 정신을 집중하여 맞아 싸웠다. 한요가 대적하지 못하였다.
三子韓瓊,急挺方天戟驟馬前來夾攻。雲全然不懼,鎗法不亂。四子韓琪,見二兄戰雲不下,也縱馬掄兩口日月刀而來,圍住趙雲。雲在中央獨戰三將。少時,韓琪中鎗落馬。韓陣中偏將急出救去。雲拖鎗便走。韓瓊按戟,急取弓箭射之:連放三箭,皆被雲用鎗撥落。瓊大怒,仍綽方天戟縱馬趕來;卻被雲一箭射中面門,落馬而死。韓瑤縱馬舉寶刀便砍趙雲。
셋째 아들 한경이 급히 방천화극을 내밀고 말을 몰아 앞에 와 협공하였다. 조운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 창을 쓰는 법이 어지럽지 않았다. 넷째 아들 한기는 두 형이 조운(조자룡)과 싸움을 할 수 없음을 보고 말을 몰아 두 개의 일월도를 가지고 와 조운(조자룡)을 둘러쌌다. 조운(조자룡)은 가운데서 홀로 세 장수와 싸웠다. 조금 있다가 한기가 창에 찔려 말에서 떨어졌다. 한덕의 진영에서 편장이 급히 나와 구해 갔다. 조운(조자룡)이 창을 늘어뜨리고 곧 달려갔다. 한경이 창을 두고 급히 활과 화살을 취해 쏘았다. 연속하여 세 개의 화살을 쏘았는데 모두 조운(조자룡)이 창을 써서 떨어뜨렸다. 한경이 크게 노하여 방천화극을 움켜쥐고 말을 달려 쫓아왔다. 그러나 조운(조자룡)이 화살 하나를 쏘아 얼굴에 맞추니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한요가 말을 달리며 보도를 들어 조운(조자룡)을 베려 하였다.
雲棄鎗於地,閃過寶刀,生擒韓瑤歸陣,復縱馬取鎗殺過陣來。韓德見四子皆喪趙雲之手,肝膽皆裂,先走入陣去。西羌兵素知趙雲之名,今見其英勇如昔,誰敢交鋒;趙雲馬到處,陣陣倒退。趙雲匹馬單鎗,往來衝突,如入無人之境。後人有詩讚曰:憶昔常山趙子龍,年登七十建奇功。獨誅四將來衝陣,猶似當陽救主雄。
조운(조자룡)이 창을 땅에 버리고 재빨리 보도를 지나게 하고(피하고) 한요를 사로잡아 진영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말을 달려 창을 가지러 진영을 지나갔다.(가지러 갔다.) 한덕은 네 아들이 모두 조운(조자룡)의 손에 죽는 것을 보고 간담이 모두 찢어져(서늘하여) 앞서 달아나 진영에 들어갔다. 서강의 군대가 평소 조운(조자룡)의 명성을 알고 있었는데 지금 그 영특하고 용맹한 것이 옛날과 같음을 보았으니 누가 감히 서로 싸울 수 있겠는가? 조운(조자룡)의 말이 이르는 곳마다 진들이 넘어져 물러났다. 조운(조자룡)은 필마단창으로 왕래하며 충돌하니 마치 사람이 없는 듯이 하였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기려 말하기를 “오래전의 상산 조자룡을 돌아보고, 나이 칠십에 기이한 공을 세웠다. 홀로 네 장수를 죽이고 와 진영을 치니 아직도 당양에서 주인을 구한 영웅의 풍모와 같구나.”했다.
鄧芝見趙雲大勝,率蜀兵掩殺,西涼兵大敗而走。韓德險被趙雲擒住,棄甲步行而逃。雲與鄧芝收軍回寨。芝賀曰:「將軍壽已七旬,英勇如昨。今日陣前力斬四將,世所罕有!」雲曰:「丞相以吾年邁,不肯見用,故聊以自表耳。」遂差人解韓瑤,申報捷書,以達孔明。卻說韓德引敗軍回見夏侯楙,哭其事。楙自統兵來迎趙雲。探馬報入蜀寨,說夏侯楙引兵到。雲綽鎗上馬,引千餘軍,就鳳鳴山前擺成陣勢。當日夏侯楙戴金盔,坐白馬,手提大砍刀,立在門旗之下。
등지는 조운(조자룡)이 크게 이기는 것을 보고 촉의 군대를 거느리고 엄살하니 서량의 군대가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 한덕은 조운(조자룡)에게 사로잡힐 위험에 처하자 갑옷을 버리고 걸어서 도망하였다. 조운(조자룡)과 등지는 군대를 거두어 영채로 돌아갔다. 등지가 축하하며 말하기를 “장군의 나이가 이미 칠순인데 영특하고 용맹스러움이 옛날과 같습니다. 오늘 진영 앞에서 힘써 네 장수를 베시니 세상에 드문 일입니다.”했다. 조운(조자룡)이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내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기꺼이 등용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애오라지 스스로 표시하였을 뿐입니다.”했다. 마침내 사람을 보내 한요를 압송하며 싸움에 이긴 보고서를 제갈공명에게 도달하게 하였다. 각설하고 한덕은 패한 군대를 이끌고 돌아 가 하후무를 만나 울며 그 일을 말하였다. 하후무는 스스로 군대를 통솔하여 가서 조운(조자룡)을 맞이하였다. 정찰병이 촉의 영채에 들어 가 보고하여 하후무가 군대를 이끌고 이르렀다고 말하였다. 조운(조자룡)은 창을 잡고 말에 올라 천여 명을 이끌고 봉황산 앞으로 나아가 진의 형세를 열었다. 그날 하후무는 금 투구를 쓰고 흰 말에 앉아 손에 대감도를 가지고 문기(진영 문) 아래에 서 있었다.
見趙雲躍馬挺鎗,往來馳騁,楙欲自戰。韓德曰:「殺吾四子之讎,如何不報!」縱馬輪開山大斧,直取趙雲。雲奮怒挺鎗來迎;戰不三合,鎗起處,刺死韓德於馬下,急撥馬直取夏侯楙。楙慌忙閃入本陣。鄧芝驅兵掩殺,魏兵又折一陣,退十餘里下寨。楙連夜與眾將商議曰:「吾久聞趙雲之名,未嘗見面;今日年老,英雄尚在,方信當陽長坂之事。似此無人可敵,如之奈何?」參軍程武乃程昱之子也,進言曰:「某料趙雲有勇無謀,不足為慮。來日都督再引兵出,先伏兩軍於左右;都督臨陣先退,誘趙雲到伏兵處,都督卻登山指揮四面軍馬,重疊圍住,雲可擒矣。」楙從其言,遂遣董禧引三萬軍伏於左,薛則引三萬軍伏於右:二人埋伏已定。
(하후무는) 조운(조자룡)이 말에 뛰어올라 창을 내밀고 오고가며 말을 달리자 하후무가 스스로 나가 싸우려 했다. 한덕이 말하기를 “나의 네 아들을 죽인 원수를 죽였으니 어떻게 원수를 갚지 않겠는가?”하고는 말을 달리고 개산대부를 돌리며 바로 조운(조자룡)을 취하려 했다. 조운(조자룡)이 분노하여 창을 내밀며 와 맞이하였다. 싸운 지 삼합이 되지 않아 창이 들려지며 한덕이 찔려 말에서 떨어져 죽자 급히 말을 돌려 바로 하후무를 취하려 했다. 하후무는 황급히 재빠르게 본진에 들어갔다. 등지가 군대를 몰아 엄살하니 위나라 군대가 또 한 바탕 꺽여 십여 리를 물러나 영채를 세웠다. 하후무는 밥을 새우며 여러 장수들과 상의하여 말하기를 “내가 조운(조자룡)의 명성을 들은 지 오래되었으나 일찍이 얼굴을 보지는 못하였는데 오늘 늙었어도 영웅의 풍모가 아직 있으니 비로소 당양 장판의 일을 믿을 수 있겠다. 이 같아 대적할만한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했다. 참군 정무는 곧 정욱의 아들인데 나와 말하기를 “제가(정무) 헤아려보니 조운(조자룡)은 영맹하나 꾀가 없으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내일 도독께서 다시 군대를 이끌고 나가셔서 먼저 두 개 군대를 좌우에 매복시키고, 도독께서 진에 임하였다가 먼저 물러나시면서 조운(조자룡)을 복병이 있는 곳으로 유인하시고, 도독께서는 산에 올라 사방의 군마를 지휘하여 여러 겹으로 포위하시면 조운(조자룡)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하후무가 그 말을 따라 마침내 동희를 보내 삼만의 군대를 이끌고 왼쪽에 매복하게하고, 설칙은 삼만의 군대를 이끌고 오른 쪽에 매복하게 하였다. 두 사람이 매복을 마쳤다.
次日,夏侯楙復整金鼓旗旛,率兵而進。趙雲、鄧芝出迎。芝在馬上謂趙雲曰:「昨夜魏兵大敗而走,今日復來,必有詐也,老將軍防之。」子龍曰:「量此乳臭小兒,何足道哉!吾今日必當擒之!」便躍馬而出,魏將潘遂出迎,戰不三合,撥馬便走。趙雲趕去,魏陣中八員將一齊來迎。放過夏侯楙先走,八將陸續奔走。趙雲乘勢追殺,鄧芝引兵繼進。趙雲深入重地,只聽得四面喊聲大震。鄧芝急收軍退回,左有董禧,右有薛則,兩路兵殺到。鄧芝兵少,不能解救。趙雲被困在垓心,東衝西突,魏兵越厚。
다음날 하후무는 다시 징과 북, 깃발을 정비하여 군대를 이끌고 전진하였다. 조운(조자룡), 등지가 나와 맞이하였다. 등지가 말 위에서 조운(조자룡)에게 일러 말하기를 “지난밤에 위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고 달아났는데 오늘 다시 온 것은 반드시 거짓이 있을 것이니 노장군께서는 방비하십시오.”했다. 조자룡이 말하기를 “이따위 젖내 나는 어린애를 어찌 말할 것이 있겠오!”하고는 곧 말을 달려 나가니 위나라 장수 번수가 나가 맞이하여 싸운 지 삼합이 되지 않아 말고삐를 당겨 달아났다. 조운(조자룡)이 뒤쫓아 가니 위나라 진영에서 여덟 명의 장수가 일제히 나와 맞이하였다. 그대로 지나친 하후무가 먼저 달아나고, 여덟 장수가 이어서 달아났다.(여덟 장수 중 육속이 달아났다.) 조운(조자룡)이 형세를 타고 좇아가고 등지는 군대를 이끌고 계속 전진하였다. 조운(조자룡)이 깊이 중요한 땅에 들어갔을 때 사방에서 함성이 크게 진동하는 것을 들었다. 등지는 급히 군대를 거두어 물러나 돌아가는데 왼쪽에는 동희가 있고, 오른 쪽에는 설칙이 있어 두 길로 군대가 쇄도해왔다. 등지는 군대가 적어 포위를 풀고 구월할 수 없었다. 조운(조자룡)은 가운데 있으며 곤궁에 처하여 동서로 쳤으나 위나라 군대는 더욱 두터워졌다.(위나라 군대의 포위가 더욱 두터워졌다.)
時雲手下止有千餘人,殺到山坡之下,只見夏侯楙在山上指揮三軍。趙雲投東則望東指,投西則望西指:因此趙雲不能突圍,乃引兵欲上山來。半山中擂木砲石打將下來,不能上山。趙雲從辰時殺至酉時,不能得走出,只得下馬少歇,且待月明再戰。卻纔卸甲而坐,月光方出,忽四下火光沖天,鼓聲大震,矢石如雨,魏兵殺到,皆叫曰:「趙雲早降!」雲急上馬迎敵、四面軍馬漸漸逼近,八方弩箭交射甚急,人馬皆不能向前。雲仰天歎曰:「吾不服老,死於此地矣!」
이때 조운(조자룡)의 부하는 다만 천여 명뿐으로 쇄도해(달려 가) 산기슭을 내려갔는데 하후무가 산 위에서 삼군을 지휘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조운(조자룡)이 동쪽으로 들어가면 곧 동쪽을 향해 가리키고, 서쪽으로 들어가면 곧 서쪽을 향해 가리켰다. 이로 인하여 조운(조자룡)은 포위를 뚫지 못하고 이에 군대를 이끌고 산위로 올라가려 했다. 산을 반쯤 올라가니 내리구르는 나무와 던지는 돌이 치고 내려와 산에 올라갈 수 없었다. 조운(조자룡)은 진시에서부터 유시에 이르기까지 달려 나올 수 없어 말에서 내려 조금 쉬고, 또 달이 밝기를 기다려 다시 싸우려 했다. 비로소 갑옷을 벗고 앉아 있었는데 달빛이 막 나올 때 홀연히 사방에서 불빛이 하늘에 치솟고, 북소리가 크게 울리며, 화살과 돌이 비 같이 떨어지면서 위나라 군대가 쇄도해 모두 외쳐 말하기를 “조운(조자룡)은 빨리 항복하라!”했다. 조운(조자룡)이 급히 말에 올라 적을 맞이하는데 사방에서는 군마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팔방으로 화살을 서로 쏘기를 급히 하여 인마가 모두 앞을 향할 수 없었다.(전진할 수 없었다.) 조운(조자룡)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가 늙은 것을 인정하지 않아 이 땅에서 죽는구나!”했다.
忽東北角上喊聲大起,魏兵紛紛亂竄。一彪軍殺到,為首大將持丈八點鋼矛,馬項下挂一顆人頭,雲視之,乃張苞也。苞見趙雲,言曰:「丞相恐老將軍有失,特遣某引軍五千兵接應。聞老將軍被困,故殺透重圍。正遇魏將薛則,被某殺之。」雲大喜,即與張苞殺出西北角來。只見魏兵棄戈奔走。一彪軍從外吶喊殺入,為首大將提偃月青龍刀,手挽人頭。雲視之,乃關興也。興曰:「奉丞相之命,恐老將軍有失,特引五千兵前來接應。卻纔陣上逢著魏將董禧,被吾一刀斬之,梟道在此。丞相隨後便到也。」
홀연히 동북 모퉁이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나면서 위나라 군대가 어지러운 쥐새끼처럼 달아났다. 한 떼의 군대가 쇄도해 오는데 우두머리 대장이 장팔점강모를 가졌고, 말목에는 하나의 사람 머리를 달고 있었다. 조운(조자룡)이 그를 보니 곧 장포였다. 장포가 조운(조자룡)을 보고 말하기를 “승상께서 노장군께서 잘못됨이 있을 것을 걱정하여 특히 저를 보내 군대 오천을 이끌고 상황에 맞게 대응하게 하였습니다. 노장군께서 곤궁을 당하였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두터운 포위를 뚫고 달려오다 위나라 장수 설칙을 만나 그를 죽였습니다.”했다. 조운(조자룡)은 크게 기뻐하며 곧 장포와 힘 있게 돌진하여 서북쪽 모퉁이로 갔다. 위나라 군대가 창을 버리고 달아났다. 한 떼의 군대가 밖으로부터 함성을 지르며 쇄도해 들어오는데 우두머리 대장이 언월청룡도를 들고 손에는 사람의 머리를 들고 있었다. 조운(조자룡)이 그를 보니 곧 관흥이었다. 관흥이 말하기를 “승상의 명을 받들어 노장군께서 잘못됨이 있을까 걱정하여 특히 오천의 군대를 이끌고 전진하여 상황에 맞게 대응하게 하셨습니다. 마침 위나라 장수 동희를 만나 제가 한칼에 목을 베어 이렇게 매달았습니다. 승상께서 뒤를 따라 곧 이를 것입니다.”했다.
雲曰:「二將軍已建奇功,不趁今日擒住夏侯楙,以定大事?」張苞聞言,遂引兵去了。興曰:「我也幹功去。」亦引兵去了。雲回顧左右曰:「他兩個是吾子姪輩,尚且爭先幹功;吾乃國家上將,朝廷舊臣,反不如此小輩耶?吾當捨老命以報先帝之恩!」於是引兵來捉夏侯楙。當夜三路兵夾攻,大破魏軍一陣。鄧芝引兵接應,殺得屍橫遍野,血流成河。
조운(조자룡)이 말하기를 “두 장군이 이미 큰 공을 세웠으니 때를 타고 오늘 하후무를 쫓아 사로잡는 것으로서 대사를 정하지 않는가?”했다. 장포가 말을 듣고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갔다. 관흥이 말하기를 “저도 공을 세우러 갑니다.”하고는 또한 군대를 이끌고 갔다. 조운(조자룡)이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이 둘은 나의 아들과 조카뻘인데 오히려 먼저 공을 세울 것을 다툰다. 나는 곧 국가의 산장이고, 조정의 오래된 신하인데 도리어 이 젊은이들보다 못하겠는가? 내가 마땅히 늙은 목숨을 버려 선제(유현덕)의 은혜를 갚을 것이다!”하고는 이에 군대를 이끌고 하후무를 잡으러 갔다. 그날 밤 세 방면의 군대가 협공하여 크게 위나라 군대의 한 진을 깨트렸다. 등지가 군대를 이끌고 상황에 맞게 대응하니 죽은 시체가 들에 두루하고 피가 흘러 강을 이루었다.
夏侯楙乃無謀之人,更兼年幼,不曾經戰;見軍大亂,遂引帳下驍將百餘人,望南安郡而走。眾軍因見無主,盡皆逃竄。興、苞二將,聞夏侯楙望南安郡去了,連夜趕來。楙走入城中,緊閉城門,驅兵守禦。興、苞二人趕到,將城圍住;趙雲隨後也到:三面攻打。少時,鄧芝亦引兵到。一連圍了十日,攻打不下。忽報丞相留後軍住沔陽,左軍屯陽平,右軍屯石城,自引中軍來到。趙雲、鄧芝關興、張苞皆來拜問孔明,說連日攻城不下。
하후무는 곧 꾀가 없는 사람인데다 나이가 어려 일찍이 싸움에 참여한 적이 없어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진 것을 보고 마침내 군막의 효기 백여 명을 이끌고 남안을 향해 달아났다. 여러 군사들이 주인(하후무)이 없는 것을 보고 모두 달아났다. 관흥과 장포 두 장수는 하후무가 남안군을 향해 갔다는 것을 듣고는 밤을 새워 쫓아갔다. 하후무가 달아나 성 안에 들어가 성문을 굳게 닫고 군대를 몰아 자켰다. 관흥과 장포 두 사람이 쫓아 이르러 성을 포위하였고, 조운(조자룡)이 뒤를 따라 이르러 세 방향에서 쳤다. 잠간 사이에 등지가 또 군대를 이끌고 이르렀다. 함께 포위하여 십일이 지났는데도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홀연히 승상이 후군을 남겨 면양을 막게 하고, 좌군은 양평에 주둔하며 우군은 석성에 주둔시키고 자신은 중군을 이끌고 온다고 보고하였다. 조운(조자룡)과 등지, 관흥, 장포가 모두 제갈공명에게 와 절하고 위문 한 뒤 연일 성을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한 것을 말하였다.
孔明遂乘小車親到城邊周圍看了一遍,回寨升帳而坐。眾將環立聽令。孔明曰:「此郡壕深成峻,不易攻也。吾正事不在此城,如汝等只久攻,倘魏兵分道而出,以取漢中,吾軍危矣。」鄧芝曰:「夏侯楙乃魏之駙馬,若擒此人,勝斬百將。今困於此,豈可棄之而去?」孔明曰:「吾自有計。此處西連天水郡,北抵安定郡;二處太守,不知何人?」探卒答曰:「天水太守馬遵,安定太守崔諒。」孔明大喜,乃喚魏延受計,如此如此;又喚關興、張苞受計,如此如此;又喚心腹軍士二人受計,如此行之。各將領命,引兵而去。孔明卻在南安城外,令軍運迆草堆於城下,口稱燒城。魏兵聞知,皆大笑不懼。
제갈공명이 마침내 작은 수레를 타고 직접 성 가에 이르러 둘레를 한 번 둘러보고는 영채로 돌아와 군막에 올라앉았다. 여러 장수들이 둘러서서 명령을 받았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이 군은 호가 깊고 성이 높으니 공격하기 쉽지 않습니다. 나의 중요한 일은 이 성에 있지 않다. 만약 너희들이 오래동안 공격하다 만약 위나라 군대가 길을 나누어 나와 한중을 취한다면 우리 군대는 위태로워질 것이다.”했다. 등지가 말하기를 “하후무는 곧 위나라의 부마이니 만약 이 사람을 사로잡는다면 백명의 장수를 죽이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곤궁에 처하였는데 어찌 그를 버리고 갈 수 있겠습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나에게 계책이 있습니다. 이 곳 서쪽은 천수군에 닿아 있고, 북쪽은 안정군이 막고 있다. 이곳의 태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지 못하는가?”하니 정찰병이 답하여 말하기를 “천수군 태수는 마준이고, 안정태수는 최량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크게 기뻐하며 곧 위연을 불러 계책을 주면서 이차여차하라 하고, 또 관흥과 장포를 불러 계책을 주면서 이차여차하라 하고, 또 심복군사 두 사람을 불러 계책을 주면서 이 같이 가게 하였다. 각각의 장수가 명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갔다. 제갈공명은 성 밖에 있으면서 군대로 하여금 이초를 운반하여 성 아래에 쌓게 하고 입으로는 성을 불태워버린다고 말하게 했다. 위나라 군사가 듣고 모두 웃으며 두려워하지 않았다.
卻說安定太守崔諒,在城中聞蜀兵圍了南安,困住夏侯楙,十分慌懼,即點軍馬約共四千,守住城池。忽見一人自正南而來,口稱有機密事。崔諒喚入問之,答曰:「某是夏侯都督帳下心腹將裴緒,今奉都督將令,特來求救於天水、安定二郡。南安其急,每日城上縱火為號,專望二郡救兵,並不見到;因復差某殺出重圍,來此告急,可星夜起兵為外應。都督若見二郡兵到,卻開城門接應也。」諒曰:「有都督文書否?」緒貼肉取出,汗已濕透;略教一視,急令手下換了匹馬,便出城望天水而去。
각설하고 안정태수 최량은 성 안에서 촉의 군대가 남안을 포위하여 하후무가 곤궁에 빠졌다는 것을 듣고 황망하고 두려워하여 곧 군마 약 사천을 점검하여 성지를 지켰다. 홀연히 한 사람이 정 남쪽에서 와 입으로 기밀의 일이 있다고 외치는 것을 보았다. 최량이 불러들여 물으니 답하여 말하기를 “저는 하후도독의 심복 장수인 배서인데 지금 도독 장군의 명령을 받들어 특히 와서 천수, 안정 두 군을 구원할 것을 청합니다. 남안은 급하여 매일 성 위에 불을 놓아 신호하여 오직 두 군의 구원병을 바랐으나 이르지 않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다시 저를 보내 두터운 포위를 뚫고 여기에 와 급함을 알리게 한 것입니다. 밤새워 군대를 일으켜 밖에서 상황에 맡게 대응해야 합니다.”했다. 최량이 말하기를 “도독의 문서가 있는가?”했다. 공문을 몸에서 꺼내는데 땀에 젖어있었다. 대략 한 번 보게 하고는 급히 수하로 하여금 말을 바꾸게 하고 곧 성을 나가 천수를 향해 갔다.
不二日,又報馬到,說天水太守已起兵救援南安去了,教安定接應。崔諒與府官商議。多官曰:「若不去救,失了南安,送了夏侯駙馬,皆我兩郡之罪也;只得救之。」諒即點起人馬,離城而去,只留文官守城。崔諒提兵向南安大進發,遙見火光沖天,催兵星夜前進。離南安尚有五十餘田(里),忽聞前後喊聲大雲,哨馬報道:「前面關興截住去路,背後張苞殺到!」安定之兵四下逃竄。諒大驚,乃領手下百餘人,往小路死戰得脫,奔回安定。方到城壕,城上亂箭射下來。蜀將魏延在城上叫曰:「吾已取了城也!何不早降?」
이틀이 되지 않아 또 보고하는 말(전령)이 이르러 천수태수가 이미 군대를 일으켜 남안을 구원하러 갔으니 안정도 상황에 맞게 대응하라고 했다. 최량과 부군이 상의하였다. 많은 관리들이 말하기를 “만약 구원하려 가지 않았다가 남안을 잃고 하후부마를 잃는다면 모두 우리 두 군의 죄가 될 것입니다. 구원해야 합니다.”했다. 최량이 곧 인마를 점검하고 일으켜 성을 떠나가면서 문관을 남겨 성을 지키게 했다. 최량이 군대를 데리고 남안을 향해 크게 출발하는데 멀리 불빛이 하늘에 치솟는 것을 보고 군대를 재촉하여 밤을 새워 전진하였다. 남안에서 오십여리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 홀연히 앞 뒤에서 함성이 크게 울리는 것을 들었는데 정찰병이 보고하여 말하기를 “앞쪽에 관흥이 가는 길을 막고, 뒤에는 장포가 쇄도해 옵니다.”하니 안정의 군대가 사방으로 달아났다. 최량이 크게 놀라 부하 배여 명을 거느리고 작은 길로 가 죽음을 무릅쓰고 벗어나 안정으로 달아나 돌아갔다. 막 성의 호에 이르렀는데 성 위에서 쏜 화살이 어지럽게 쏟아져 내려왔다. 촉의 장수 위연이 성 위에서 고함쳐 말하기를 “내가 이미 성을 취하였다. 어째서 빨리 항복하지 않는가?”했다.
原來魏延扮作安定軍,夤夜賺開城門,蜀兵盡入:因此得了城池。崔諒慌投天水郡來。行不到一程,前面一彪軍擺開。大旗之下,一人綸巾羽扇,道袍鶴氅,端坐於車上。諒視之,乃孔明也,急撥回馬走。關興、張苞兩路兵追到,只叫:「早降!」崔諒見四面皆是蜀兵,不得已遂降,同歸大寨。孔明以上賓相待。孔明曰:「南安太守與足下交厚否?」諒曰:「此人乃楊阜之族弟楊陵也;與某鄰郡,交契甚厚。」
알고 보니 위연이 안정의 군대로 가장하고 깊은 밤에 속여 성문을 열게 하고, 촉의 군대가 모두 들어 갔다. 이 때문에 성지를 얻을 수 있었다. 최량이 황급히 천수군에 들어가는데 행군한지 일정에 이르지 않아(행군한 지 얼마되지 않아)앞쪽에 한 떼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큰 깃발 아래 한 사람이 윤건을 쓰고 우선을 들고 학의 깃으로 꾸민 도포를 입고 수레 위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최량이 바로 제갈공명임을 보고는 급히 말고삐를 당겨 말을 돌려 달아났다. 관흥과 장포가 두 방면에서 쇄도해 이르러 소리 지르기를 “빨리 항복하라!”했다. 최량은 사방이 모두 촉의 군대인 것을 보고 할 수 없이 마침내 항복하고 같이 큰 영채로 돌아갔다. 제갈공명은 상빈(최고의 빈객)으로 대접하였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남안태수와 그대는 교분이 두터운가?”하니 최량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곧 양부의 친족 동생 양릉입니다. 저와 이웃 군이기 때문에 벗을 맺은 것이 매우 두텁습니다.”했다.
孔明曰:「今欲煩足下入城,說楊陵擒夏侯楙,可乎?」諒曰:「丞相若令某去,可暫退軍馬,容某入城說之。」孔明從其言,即傳令,教四面軍馬各退二十里下寨。崔諒匹馬到城邊叫開城門,入到府中,與楊陵禮畢,細言其事。陵曰:「我等受魏主大恩,安忍背之?可將計就計而行。」遂引崔諒到夏侯楙處,備細說知。楙曰:「當用何計?」楊陵曰:「只推某獻城門,賺蜀兵入,卻就城中殺之。」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지금 번거롭지만 그대가 성에 들어가 양릉을 설득하여 하후무를 사로잡을 수 있겠습니까?”하니 최량이 말하기를 “승상께서 만약 저를 가게하신다면, 잠시 군마를 물려 제가 성에 들어 가 그를 설득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했다. 제갈공명이 그 말을 따라 곧 명령을 내려 사면의 군사로 하여금 각각 이십리를 물러나 영채를 세우도록 했다. 최량이 홀로 말을 타고 성 가에 이르러 소리쳐 성문을 열게 하고는 들어 가 부중에 이르러 양릉과 예를 마치고 그 일을 자세하게 말하였다. 양릉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위나라 임금의 큰 은혜를 받았는데 어지 차마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 저들의 계책을 역으로 이용하여 시행할 만합니다.”했다. 마침내 최량을 이끌고 하후무가 있는 곳에 이르러 자세하게 말하여 알렸다. 하후무가 말하기를 “어떤 계책을 쓰는 것이 합당한가?”하니 양릉이 말하기를 “제가 성문을 바친다는(연다는) 핑계로 속여 촉의 군대가 들어오게 한 뒤 성 안에서 그를 죽여야 합니다.”했다.
崔諒依計而行,出城見孔明,說:『楊陵獻城門,放大軍入城,以擒夏侯楙。陽陵本欲自捉,因手下勇士不多,未敢輕動。』孔明曰:「此事至易。今有足下原降兵百餘人,於內暗藏蜀將扮作安定軍馬,帶入城去,先伏於夏侯楙府下;卻暗約楊陵,待半夜之時,獻開城門,裏應外合。」崔諒暗思:「若不帶蜀將去,恐孔明生疑。且帶入去,就內先斬之,舉火為號,賺孔明入來殺之,可也。」因此應允。
최량이 계책에 의해 행하려 성을 나가 제갈공명을 만나 말하기를 “양릉이 성문을 바칠 것이니 대군을 놓아 성에 들어 가 하후무를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양릉은 본래 스스로 (하후무를)잡으려 하였으나 부하 용사가 많지 않아 감히 가벼이 움직이지 못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이 일은 지극히 쉬운 것입니다. 지금 그대에게는 원래 항복하였던 군대 백여 명이 있으니 (그들) 안에 몰래 촉의 장수를 안정의 군마로 가장하여 숨겨 함께 성에 들어 가 먼저 하후무의 부(지휘부)에 매복하게 하고, 몰래 양릉과 약속하여 한 밤중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성문을 열고 안에서 응하고 밖에서 합하게 하십시오.”했다. 최량이 몰래 생각하기를 “만약 촉의 장수를 데리고 가지 않으면 제갈공명이 의심할까 두렵구나. 또한 데리고 들어갔다가 안에서 먼저 베어 죽이고 불을 들어 신호하여 제갈공명을 속여 들어오게 한 뒤 그를 죽이는 것이 옳겠다.”했다. 이 때문에 응락하였다.
孔明囑曰:「吾遣親信關興、張苞隨足下先去,只推救軍殺入城中,以安定夏侯楙之心;但舉火,吾當親入城去擒之。」時值黃昏,關興、張苞受了孔明密計,披挂上馬,各執兵器,雜在安定軍中,隨崔諒來到南安城下。
제갈공명이 부탁하여 말하기를 “내가 가까이하고 꼭 믿는 관흥과 장포가 그대를 따라 먼저 갈 것이니 구원군이라 핑계하고 성 안에 쇄도해 들어 가 하후무의 마음을 안정시키시오. 다만 불을 들면 내가 마땅히 직접 성에 들어 가 사로잡을 것입니다.”했다. 저녁때 쯤 관흥과 장포가 제갈공명의 비밀계책을 받고 갑옷을 받은 후 말에 올라 각기 병기를 잡고 안정의 군대 안에 섞여서 최량을 따라 가 남안성 아래 이르렀다.
楊陵在城上撐起懸空板,倚定謢心欄,問曰:「何處軍馬?」崔諒曰:「安定救軍來到。」諒先射號箭上城,箭上帶著密書曰:「今諸葛亮先遣二將,伏於城中,要裏應外合,且不可驚動,恐泄漏計策。待入府中圖之。」楊陵將書見了夏侯楙,細言其事。楙曰:「既然諸葛亮中計,且教刀斧手百餘人,伏於府中。如二將隨崔太守到府下馬,閉門斬之;卻於城上舉火,賺諸葛亮入城。伏兵齊出,亮可擒矣。」
양릉이 성 위에 있다가 현공판을 들어 올리고 호심란에 기대 물어 말하기를 “어느 곳의 군마인가?”하니 최량이 말하기를 “안정의 구원군이 이르렀습니다.”했다. 최량이 먼저 신호화살을 쏘는데 화살에 비밀 글을 달았는데 그 글에 “지근 제갈량(제갈공명)이 먼저 두 장수를 보내 성 안에 매복시켰다가 안에서 응하고 밖에서 합하기를 요구하니 놀라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계책이 누설될까 두렵습니다. 부중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도모하십시오.”했다. 양릉이 글을 가지고 하후무를 만나 그 일을 자세히 말하였다. 하후무가 말하기를 “이미 제갈량(제갈공명)이 계책에 빠졌으니 또한 도부수 백여 명으로 하여금 부 안에 매복하게 합니다. 만약 두 장수가 최태수을 따라 부에 이르러 말에서 내리면 문을 닫고 베어 죽이고, 성 위에서 불을 들어 제갈량(제갈공명)을 속여 성에 들어오게 한 뒤 복병이 일제히 나오면 제갈공명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安排已畢,楊陵回到城上言曰:「既是安定軍馬,可放入城。」關興跟崔諒先行,張苞在後。楊陵下城,在門邊迎接。興手起刀落,斬楊陵於馬下。崔諒大驚,急撥馬走。到弔橋邊,張苞大喝曰:「賊子矢走!汝等詭計,如何瞞得丞相耶!」手起一鎗,刺崔諒於馬下。關興早到城上,舉起火來。四面蜀兵奔入。夏侯楙措手不及,開南門併力殺出。一彪軍攔住,為首大將,乃是王平;交馬只一合,生擒夏侯楙於馬上,餘皆殺死。
안배를 마치고 양릉이 성 위에 돌아 와 이르러 말하기를 “이미 안정의 군마라면 놓아 성에 들어 올수 있게 하라.”했다. 관흥이 최량을 따라 먼저 가고, 장포는 뒤에 있었다. 양릉이 성에서 내려와 문가에서 영접하였다. 관흥이 손으로 칼을 내리쳐 양릉을 베어 말에서 떨어뜨렸다. 최량이 크게 놀라 급히 말을 돌려 달아났다. 조교 가에 이르자 장포가 크게 고함쳐 말하기를 “도적놈이 화살처럼 달리는구나! 너희들의 속이는 계책으로 어떻게 승상을 속여 넘길 수 있겠는가!”하고는 한 창을 들어 최양을 찔러 말에서 떨어뜨렸다. 관흥은 재빨리 성 위에 이르러 불을 드니 사방에서 촉의 군대가 들어왔다. 하후무는 손을 쓸 수 없어 남문을 열고 힘을 합쳐 쇄도해 나왔다. 한 떼의 군대가 막으니 우두머리되는 대장은 곧 왕평으로 말이 엇갈린 지 일함에 말 위에서 하후무를 사로잡고 나머지는 모두 죽였다.
孔明入南安,招諭軍民,秋毫無犯。眾將各各獻功。孔明將夏侯楙囚於車中。鄧芝問曰:「丞相何故知崔諒詐也?」孔明曰:「吾已知此無降心,故意使入城。彼必盡情告與夏侯楙,欲將計就計而行。吾見來情,足知其詐,復使二將同去,以穩其心。此人若有真心,必然阻當;彼忻然同去者,恐吾疑也。他意中度二將同去,賺入城中殺之未遲;又令吾軍有託,放心而進。吾已暗囑二將,就城門下圖之。城內必無準備,吾軍隨後便去,此出其不意也。」眾將拜服。孔明曰:「賺崔諒者,吾使心腹人詐作魏將裴緒也。吾又去賺天水郡,至今未到,不知何故。今可乘勢取之。」乃留吳懿守南安,劉琰守安定,替出魏延軍馬去取天水郡。
제갈공명은 남안성에 들어 가 군사와 벡성을 어루만지고 털끝도 범하지 못하게 했다. 제갈공명은 하후무를 수레 안에 가두었다. 등지가 물어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어떻게 최양이 속일 것을 알았습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항복하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일부러 성에 들어가게 한 것입니다. 그는 반드시 모든 실정을 다해 하후무에게 알리고 장계취계를 행하려 했을 것입니다. 내가 사정을 보니 그가 속이고 있는 것을 충분히 알아 다시 두 장수로 하여금 함께 가게하는 것으로서 그 마음을 평온하게(떠보려) 한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만약 참된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막을 것인데 그가 기쁘게 함께 간 것은 내가 의심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두 장수와 함께 가면 속여서 성에 들어 가 안에서 죽여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한 내가 군사를 부탁하자 마음을 놓고 나아갔던 것인데, 내가 이미 몰래 두 장수에게 부탁하여 성문 아래에 나아가 도모하도록 해 두었던 것입니다. 성 안에서는 반드시 준비가 없을 때 우리 군대가 뒤를 따라 가게 하였으니 이는 생각지 않게 나온다는 것입니다.”했다. 여러 장수들이 절하며 탄복하였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최양을 속인 것은 심복으로 하여금 거짓으로 위나라 장수 배서라 속였습니다. 내가 또한 천수군에도 가게 하였는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르지 않으니 무슨 이유인지 말지 못합니다. 지금 형세를 타고 취할만 합니다.”하고는 곧 오의를 남겨 남안성을 지키게 하고, 유염은 안정성을 지키게 하고, 대신에 위연의 군마를 내보내 가서 천수군을 취하게 하였다.
卻說天水郡太守馬遵,聽知夏侯楙困在南安城中,乃聚文武百官商議。功曹梁緒、主簿尹賞、主記梁虔等曰:「夏侯駙馬乃金枝玉葉,倘有疏虞,難逃坐視之罪。太守何不盡起本部兵以救之?」馬遵正疑慮間,忽然夏侯駙馬差心腹裴緒到。緒入府,取公文付馬遵,說:「都督求安定、天水兩郡之兵,星夜救應。」言訖,匆匆而去。次日又有報馬到,稱說:「安定兵已先去了,教太守火急前來會合。」馬遵正欲起兵,忽一人自外而入曰:「太守中諸葛亮之計矣!」
각설하고 천수군태수 마준은 하후무가 남안성 안에서 곤궁에 빠졌다는 것을 듣고 이에 문무백관을 모아 상의 하였다. 공조 조양서, 주부 윤상, 주기 양건 등이 말하기를 “하후 부마(하후무)는 곧 금지옥엽(귀한 자손)으로 만약 소홀히 함이 있다면 앉아 보기만 했다는 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태수께서는 어찌하여 본부의 군대를 모두 일으켜 구원하지 않으십니까?”했다. 마준이 의심하고 염려하고 있을 때 홀연히 하후부마(하후무)가 심복 배서를 보내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배서가 부에 들어 와 공문서를 내어 마준에게 주었다. 문서에 “도독(하후무)은 안정성과 천수성의 군대를 청해 밤새워 구원에 응하라.”하는 말을 마치고 급하게 갔다. 다음 날 또 전령이 이르러 말하기를 “안정성의 군대가 이미 먼저 갔으니 태수도 급히 앞으로 와 만나 합하게 하라.”고 했다. 마준이 바로 군대를 일으키려 하는데 홀연히 한 사람이 밖으로부터 들어 와 말하기를 “태수께서는 제갈량(제갈공명)의 계책에 빠지셨습니다.”했다.
眾視之,乃天水冀人也:姓姜名維,字伯約。父名冏,昔日曾為天水郡功曹,因羌人亂,沒於王事。維自幼博覽群書,兵法武藝,無所不通,奉母至孝,郡人敬之;後為中郎將,就參本部軍事。當日姜維謂馬遵曰:「近聞諸葛亮殺敗夏侯楙,困於南安,水泄不通,安得有人自重圍之中而出?又且裴緒乃無名下將。從不曾見;況安定報馬,又無公文:以此察之,此人乃蜀將詐稱魏將。賺得太守出城,料城中無備,必然暗伏一軍於左近,乘虛而取天水也。」馬遵大悟曰:「非伯約之言,則誤中奸計矣!」維笑曰:「太守放心:某有一計,可擒諸葛亮,解南安之危。」正是:運籌又遇強中手,鬥智還逢意外人。未知其計如何,且看下文分解。
무리들이 그를 보니 곧 천수군 기 땅 사람으로 성은 강이고 이름은 유로 자는 백약이었다. 아버지의 이름은 경으로 옛날 일찍이 천수군의 공조가 되었는데 강족 사람의 반란 때 왕사(왕의 일, 국가의 일)에서 죽었다. 강유는 어려서부터 여러 책을 널리 읽어 병법, 무예에 통하지 않는 바가 없었고, 어머니를 받드는 효가 지극하니 군의 사람들이 그를 공경하였다. 후에 중낭장이 되어 본부의 군대의 일에 참여하였다. 그날 강유가 마준에게 일러 말하기를 “근래에 들으니 제갈량(제갈공명)이 하후무를 무찌르고 남안성을 곤궁(포위)하게 하여 물 샐 틈 이 없게 하였다 하는데, 어찌 어떤 사람이 스스로 두터운 포위로부터 나올 수 있겠습니까? 또 배서는 곧 이름 없는 하급 장수로 일찍이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물며 안정성의 전령이라 하나 또한 공문이 없으니 이로써 살피건데 이 사람은 곧 촉의 장수로 위나라 장수를 거짓으로 칭탁한 것입니다. 태수께서 속아 성을 나가시고, 성 안에 대비가 없어지면 반드시 몰래 일군을 가까이 매복하게 하였다가 빈틈을 타고 천수군을 취할 것이라 생각합니다.”했다. 마준이 크게 깨닫고 말하기를 “백약(강유)의 말이 아니었다면 잘못 간사한 계책에 빠질뻔 하였구나!”했다. 강유가 웃으며 말하기를 “태수께서는 마음을 놓으십시오. 저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어 제갈량(제갈공명)을 사로잡고 남안성의 위태로움을 풀 수 있습니다.”했으니 바로 이러하다. (제갈공명이)계책을 꾸미는데 뛰어난 인물을 만났구나. 지혜를 다투다 도리어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그 계책이 어떠한지 알지 못하겠으니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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