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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사기권97 역생 육가열전 제37

by 최인표 2019. 3. 21.

史記卷九十七

  酈生陸賈列傳第三十七

 

酈生食其[]陳留高陽人也[]好讀書家貧落魄[]無以為衣食業為里監門吏[]然縣中賢豪不敢役縣中皆謂之狂生

역이기는 진류 고양 사람이다. 글 읽기를 좋아하였으나 집이 가난하여 행색이 초라하고 나쁜 모양으로 입고 먹을 수 있는 일이 없어 마을 문지기가 되었다. 그러나 현 안에 어진이나 호걸들이 감히 부리지 못하였고 현안에서 모두 그를 미친놈이라 불렀다.

 

[] 正義歷異幾三音也

[] 正義酈異幾 세 음이다.

 

[] 集解徐廣曰:「今在圉。」 索隱案高陽屬陳留圉縣高陽鄉名也故耆舊傳云食其高陽鄉人」。正義陳留風俗傳云高陽在雍兵西南」。括地志云圉城在汴州雍丘縣西南食其墓在雍丘西南二十八里」。蓋謂此也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지금 어현에 있다.” 했다. 索隱살펴보니 고양은 진류 어현에 속한다. 고양은 향의 이름인데 고기구전식기는 고양향 사람이다.” 했다. 正義】 「진류풍속전고양은 옹병 서남쪽에 있다.” 했다. 괄지지어성은 변주 옹구현 서남쪽에 있다. 식기의 묘는 옹구 서남족 28리에 있다.” 했다. 대개 이를 말하는 것이다.

 

[] 集解應劭曰:「落魄志行衰惡之貌也。」晉灼曰:「落薄落託義同也。」 索隱案鄭氏云魄音薄」。應劭云志行衰惡之貌也」。

[] 集解응소가 말하기를 “‘낙백은 뜻과 행실이 쇠하고 나쁜 모양이다.” 했다. 진작이 말하기를 “‘落薄’, ‘落託과 뜻이 같다.” 索隱살펴보니 정씨는 “‘의 음은 이다.” 했고, 응소는 듯과 행실이 쇠하고 나쁜 모양이다.” 했다.

 

[] 正義監音甲衫反戰國策云齊宣謂顏斶曰:「夫監門閭里士之賤也。」

[] 正義의 음은 이다. 전국책제 선이 안촉에게 일러 말하기를 대저 마을의 문지기는 사의(벼슬 가운데) 천한 것이다.’” 했다.


及陳勝項梁等起諸將徇地過高陽者數十人[]酈生聞其將皆握齱[]好苛[]自用不能聽大度之言酈生乃深自藏匿後聞沛公將兵略地陳留郊沛公麾下騎士適酈生里中子也[]沛公時時問邑中賢士豪俊騎士歸酈生見謂之曰:「吾聞沛公慢而易人多大略此真吾所願從游莫為我先[]若見沛公謂曰臣里中有酈生年六十餘長八尺人皆謂之狂生生自謂我非狂生』。」騎士曰:「沛公不好儒諸客冠儒冠來者沛公輒解其冠[]其中與人言常大罵未可以儒生說也。」酈生曰:「弟言之。」騎士從容言如酈生所誡者

진승과 항량 등이 봉기함에 이르러 여러 장군이 땅을 빼앗으며 고양을 지나는 자가 수십 명이었는데 역생이 그 장군들이 모두 도량이 좁고, 번거롭고 자질구레한 예를 좋아하며, 스스로를 쓰고 큰 법도의 말을 듣지 못한다는 것을 듣고 역생이 이에 깊이 스스로 숨었다. 후에 패공이 군대를 거느리고 땅을 빼앗으며 진류의 교외를 지난다는 것을 들었는데, 패공의 휘하 기마병 가운데 마침 역생의 마을의 자제였고, 패공이 때때로 읍 안에 어진 선비와 호걸을 물었다. 기마 병이 돌아오자 역생이 보고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패공은 교만하여 사람을 쉽게 대하지만 큰 계략이 많다고 들었다. 이는 참으로 내가 따라 노닐기를 바라는 바이나 나를 위해 앞서주는 이가 없다. 당신이 패공을 본다면 신의 마을 안에 역생이라는 이가 있는데 나이는 60여세이고, 키는 8자로 사람들이 모두 미친놈이라 하지만 역생 스스로는 미친놈이 아니라 말한다. 고 말해 주시오.” 했다. 기병이 말하기를 패공은 유학을 좋아하지 않고, 여러 객들 가운데 유관을 쓰고 오는 자는 패공이 문득 그 관을 벗겨 그 안에 오줌을 눕니다. 다른 사람과 말할 때는 항상 크게 욕을 하니 유생과는 말 할 수 없습니다.” 했다. 역생이 말하기를 동생은 말해 주시오.” 했다. 기병이 조용히 역생이 말한 바와 같이 말하였다.


[] 正義徇略也

[] 正義은 경략하다. 이다.

 

[] 集解應劭曰:「握齱急促之貌。」 索隱應劭曰齱音若」。鄒氏音角反韋昭云握齱小節也」。

[] 集解응소가 말하기를 “‘握齱(악추)’는 급히 재촉하는 모양이다.” 했다. 索隱응소가 말하기를 “‘의 음은 과 같다.” 했다. 추씨는 음이 이다.” 했다. 위소가 말하기를 “‘握齱는 작은 절개이다.” 했다.

 

[] 索隱案苛亦作」。賈逵云煩也」。小顏云細也」。

[] 索隱살펴보니 는 또한 라고도 쓴다. 가규가 말하기를 “‘는 번거로운 것이다.” 했다. 소안이 이르기를 “‘는 작은 것이다.” 했다.

 

[] 集解服虔曰:「食其里中子適作沛公騎士。」 索隱適食其里中子適音釋服虔蘇林皆云沛公騎士適是食其里中人也言適近作騎士

[] 集解복건이 말하기를 식기 마을의 자제가 마침 패공의 기사가 되었다.” 했다. 索隱마침 식기 마을의 자제이다. ‘은 음이 이다. 복건과 소림이 모두 패공의 기사가 마침 식기의 마을 사람이다. 했다. 살펴보니 마침 가가이서 기사를 하고 있었다.


[] 索隱案先謂先容言無人為我作紹介也正義為于偽反

[] 索隱先謂先容은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하여 소개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말한다. 正義이다.

 

[] 索隱上所由反下乃弔反亦如字溲即溺也

[] 索隱위는 이다. 아래는 으로 도한 같은 자이다. ‘는 곧 빠짐이다.

 

沛公至高陽傳舍[]使人召酈生酈生至入謁沛公方倨床使兩女子洗足[]而見酈生酈生入則長揖不拜:「足下欲助秦攻諸侯乎且欲率諸侯破秦也?」沛公罵曰:「豎儒[]夫天下同苦秦久矣故諸侯相率而攻秦何謂助秦攻諸侯乎?」酈生曰:「必聚徒合義兵誅無道秦不宜倨見長者。」

패공이 도양의 여관에 이르러 사람을 시켜 역생을 불렀다. 역생이 이르러 들어가 뵈니 패공이 막 거만하게 상에 걸터 앉아 두 여자로 하여금 발을 씻기면서 역생을 만났다. 역생이 들어가 길게 읍하되 절을 하지 않고 말하기를 그대는 진나라를 도와 제후를 공격하려 하는가? 또한 제후를 거느리고 진나라를 깨트리려 하는가?” 하니 패공이 욕하며 말하기를 보잘 것 없는 유생이구나! 대저 천하가 진나라에 괴롭힘을 받은 것이 오래되었다 그러므로 제후가 서로 거느리고 진나라를 공격하는데 어지 진나라를 도와 제후를 공격한다. 말하는가?” 했다. 역생이 말하기를 반드시 무리를 모으고, 의로운 군대를 합하여 무도한 진나라를 죽이는데 거만하게 나이 많은 사람을 보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했다.


於是沛公輟起攝衣[]延酈生上坐謝之酈生因言六國從橫時沛公喜賜酈生食問曰:「計將安出?」酈生曰:「足下起糾合之眾[]收散亂之兵不滿萬人欲以徑入強秦此所謂探虎口者也夫陳留天下之衝四通五達之郊[]今其城又多積粟臣善其令[]請得使之令下足下[]即不聽足下舉兵攻之臣為內應。」於是遣酈生行沛公引兵隨之遂下陳留號酈食其為廣野君

이에 패공이 씻기를 그만두고 일어나 옷을 여미고 연이어 역생을 윗자리에 앉게하고 사과하였다. 역생이 인하여 6국이 합종과 연횡할 때를 말하였다. 패공이 기뻐하며 역생에게 음식을 내리고 물어 말하기를 계책이 장차 어디서 나오는가?” 했다. 역생이 말하기를 그대가 일어나 끌어 모은 무리는 흩어지고 어지러워진 군대를 거둔 것이 만 명을 채우지 못하였는데 지름길로 강한 진나라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이는 이른 바 호랑이 입을 더듬는 것입니다. 대저 진류는 천하의 요충으로 사방으로 통하고 사방에서 중앙에 도달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이며 지금 그 성안에는 또한 많은 곡식이 쌓여있습니다. 신은 그 령과 잘 지내고 있으니 사신으로 가서 령이 그대에게 항복하게 할 것을 청합니다. 곧 듣지 않으면 그대가 군대를 들어 공격하면 신이 안에서 응할 것입니다.” 했다. 이에 역생을 보내고, 패공은 군대를 이끌고 따라서 마침내 진류를 함락시켰다. 역이기를 광야군이라 불렀다.


[] 集解徐廣曰:「二世三年二月。」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232월이다.” 했다.

 

[] 索隱案樂產云邊床曰倨。」

[] 索隱살펴보니 낙산이 말하기를 상가에 걸터앉는 것이다.”

 

[] 索隱案豎者僮僕之稱沛公輕之以比奴豎故曰豎儒

[] 索隱살펴보니 豎者는 종의 칭호이다. 패공이 가벼이 여겨 종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豎儒라 말 한 것이다.

 

[] 正義攝猶言斂著也

[] 正義거두어 붙인다는 말과 같다.“

 

[] 集解一作烏合」,一作瓦合」。

[] 集解한편 烏合으로 쓰고, 한편으로 瓦合으로 쓴다.

 

[] 集解如淳曰:「四面中央凡五達也。」瓚曰:「四通五達言無險阻也。」

[] 集解여순이 말하기를 네 면의 중앙을 무릇 五達이라 한다.” 찬이 말하기를 “‘四通五達은 험하고 막힘이 없는 것을 말한다.”

 

[] 正義言食其與陳留縣令相善也

[] 正義식기와 진류 현령이 서로 잘 지내는 것을 말한다.

 

[] 正義令力征反下謂降之也

[] 正義이다. ‘는 항복함을 말한다.

 

酈生言其弟酈商使將數千人從沛公西南略地酈生常為說客馳使諸侯

역생은 그 동생 역상을 말하여 수 천 명을 거느리고 패공을 따라 서남으로 땅을 빼앗게 하였다. 역생이 항상 세객이 되어 말을 달려 제후에게 사신 갔다.

 

漢三年秋項羽擊漢拔滎陽漢兵遁保鞏楚人聞淮陰侯破趙彭越數反梁地[]則分兵救之淮陰方東擊齊漢王數困滎陽成皋計欲捐成皋以東屯鞏洛以拒楚酈生因曰:「臣聞知天之天者王事可成不知天之天者王事不可成王者以民人為天[]而民人以食為天夫敖倉天下轉輸久矣臣聞其下迺有藏粟甚多楚人拔滎陽不堅守敖倉迺引而東令適卒[]分守成皋此乃天所以資漢也方今楚易取而漢反郤自奪其便[]臣竊以為過矣且兩雄不俱立楚漢久相持不決百姓騷動海內搖蕩農夫釋耒工女[]下機天下之心未有所定也願足下急復進兵收取滎陽據敖倉之粟[]塞成皋之險[]杜大行之道[]距蜚狐之口[]守白馬之津以示諸侯效實形制之勢則天下知所歸矣方今燕趙已定唯齊未下今田廣據千里之齊田閒將二十萬之眾軍於歷城諸田宗彊負海阻河濟南近楚人多變詐足下雖遣數十萬師未可以歲月破也臣請得奉明詔說齊王使為漢而稱東藩。」上曰:「。」

3년 가을 항우가 한을 쳐서 형양을 함락시키니 한 군대가 도망하여 공과 낙에 주둔하였다. 초 사람들이 회음후가 조를 깨트리고, 팽월이 여러 번 양 땅에서 배반함을 듣고 곧 군대를 나누어 구원하였다. 회음후가 동쪽으로 제를 치려하는데 한왕은 여러 번 형양, 성고에서 곤궁하여 성고 동쪽을 버리고 공, 난에 주둔하여 초를 막고자 하는 계책을 세웠다. 역생이 인하여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하늘의 하늘을 아는 자가 왕의 일을 이룰 수 있다. 합니다. 하늘의 하늘을 알지 못하는 자는 왕의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왕 노릇하는 자는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습니다. 저 오창은 천하의 곡식을 옮겨 놓은 것이 오래되었는데 신이 들으니 그 아래에 옮겨놓아 보관한 곡식이 매우 많이 있는데도 초 사람들이 형양을 함락시키고 오창을 굳게 지키지 않고, 이에 이끌고 동쪽으로 가서 죄 지은 병사를 나누어 성고를 지키게 하였다 하니 이는 곧 하늘이 한을 돕는 것입니다. 지금 막 초가 바꾸어 취하였는데 한이 도리어 물리치는 것은 스스로 그 편리함을 잃는 것이니 신은 가만히 지나치다 여깁니다. 또 두 영웅은 함께 설 수 없고, 초와 한이 오래 동안 서로 대치하여 결단하지 못하니 백성은 놀라 시끄럽게 떠들고, 해내가 흔들리고 동요하며, 농부는 쟁기를 풀고 여자는 베틀에서 내려오며 천하의 마음은 아직 정해진 것이 있지 않습니다. 그대는 급히 다시 군대를 나아가게 하여 형양에서 거두어 취하고, 오창의 곡식에 의지하며, 성고의 험함을 막고, 태행으로 가는 길을 막으며, 상당의 호관을 막으며, 백마의 진을 지키는 것으로써 제후에게 실제 형세를 제압하는 기세를 보여준다면 곧 천하가 돌아 갈 바를 알 것입니다. 바야흐로 지금 연과 조가 이미 평정되고 오직 제 만이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전광이 천리의 제 땅에 의지하고, 전한은 20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역성에 주둔하여 여러 전씨 종족이 강한데다 바다를 지고 하와 제수가 막으며, 남쪽으로 초를 가까이하고 변하고 속이는 사람이 많으니 그대가 비록 수십만의 군대를 보낼지라도 세월이 지나도 깨트릴 수 없습니다. 신은 밝은 조칙을 받들어 제왕을 유세하여 한을 위하여 동쪽의 울타리를 일컬을 수 있도록 할 것을 청합니다.” 했다. 왕이 말하기를 좋다.” 했다.

 

[] 索隱數音朔

[] 索隱의 음은 이다.

 

[] 索隱王者以人為天此語出管子

[] 索隱왕은 사람으로 하늘을 삼는다. 살펴보니 이 말은 관자에 나온다.

 

[] 索隱上音直革反通俗文云罰罪云謫」,即所謂謫戍又音陟革反租忽反

[] 索隱위의 음은 이다. 살펴보니 통속문죄를 지어 벌 받는 것을 이라 하니 곧 이른바 謫戍이다. 또 음은 이다. ‘이다.

 

[] 索隱漢反卻自奪便以言不取敖倉是漢卻自奪其便利

[] 索隱한이 도리어 스스로 편리함을 물리친 것이다. 오창을 취하지 않음은 한이 스스로 그 편리함을 빼앗는 것을 물리침을 말한 것이다.

 

[] 索隱謂女工工巧也漢書作」,音工

[] 索隱여자 장인이 공교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한서이라 썼는데 음은 이다.

 

[] 正義敖倉在今鄭州滎陽縣西十有五里石門之東北臨汴水南帶三皇山秦始皇時置倉於敖山上故名之曰敖倉也

[] 正義오창은 지금의 정주 형양현 서쪽 15리에 있는데 석문의 동쪽으로 북으로 변수를 마주하고, 남쪽으로 삼황산이 두르고 있다. 진나라 시황제 때 창고를 오산 위에 두었기 때문에 오창이라 이름 한 것이다.


[] 正義即氾水縣山也

[] 正義곧 범수현의 산이다.

 

[] 集解韋昭曰:「在河內野王北也。」

[] 集解위소가 말하기를 하내 야왕 북쪽에 있다.”

 

[] 集解如淳曰:「上黨壺關也。」駰案狐在代郡西南正義案蔚州飛狐縣北百五十里有秦漢故郡城西南有山俗號為飛狐口也

[] 集解여순이 말하기를 상당군 호관이다.” 했다. 배인이 살펴보니 비호는 대군 서남쪽에 있다. 正義살펴보니 울주 비호현 북쪽 150리에 진, 한시대 옛 군성이 있다. 서남쪽에 산이 있는데 민간에서 비호구라 한다.

 

迺從其畫復守敖倉而使酈生說齊王曰:「王知天下之所歸乎?」王曰:「不知也。」:「王知天下之所歸則齊國可得而有也若不知天下之所歸即齊國未可得保也。」齊王曰:「天下何所歸?」:「歸漢。」:「先生何以言之?」:「漢王與項王戮力西面擊秦約先入咸陽者王之漢王先入咸陽項王負約不與而王之漢中項王遷殺義帝漢王聞之起蜀漢之兵擊三秦出關而責義帝之處收天下之兵立諸侯之後降城即以侯其將得賂即以分其士與天下同其利豪英賢才皆樂為之用諸侯之兵四面而至蜀漢之粟方船而下[]項王有倍約之名殺義帝之負於人之功無所記於人之罪無所忘戰勝而不得其賞拔城而不得其封非項氏莫得用事為人刻印而不能授[]攻城得賂積而不能賞天下畔之賢才怨之而莫為之用故天下之士歸於漢王可坐而策也夫漢王發蜀漢定三秦涉西河之外援上黨之兵[]下井陘誅成安君破北魏[]舉三十二城此蚩尤之兵也非人之力也天之福也今已據敖倉之粟塞成皋之險守白馬之津杜大行之阪距蜚狐之口天下後服者先亡矣王疾先下漢王齊國社稷可得而保也不下漢王危亡可立而待也。」田廣以為然迺聽酈生罷歷下兵守戰備與酈生日縱酒

이에 그 계획을 따라 다시 오창을 지키고, 역생으로 하여금 제왕을 설득하게 하여 말하기를 왕께서는 천하가 어디로 돌아갈지 아십니까?” 하니 제왕이 말하기를 알지 못합니다.” 했다. 역생이 말하기를 왕께서 천하가 어디로 돌아갈지를 안다면 곧 제 나라를 얻어 소유할 수 있을 것이고, 만약 천하가 어디로 돌아갈지를 알지 못한다면 곧 제 나라를 얻어 보존할 수 없습니다.” 했다. 제 왕이 말하기를 천하가 어디로 돌아갈 것 같습니까?” 하니 역생이 말하기를 한에 돌아 갈 것입니다.” 했다. 제 왕이 말하기를 서생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합니까?” 하니 역생이 말하기를 한왕과 항왕이 힘을 합하여 서쪽을 향해 진나라를 치고, 먼저 함양에 들어가는 자가 왕 노릇 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한왕이 먼저 함양에 들어갔는데도 항왕이 약속을 어기고 함께 하지 않아 왕이 한중으로 갔습니다. 항왕이 의제를 옮기고 죽이니 한왕이 그것을 듣고 촉과 한의 군대를 일으켜 삼진을 치고 관을 나와 의제의 처치를 질책하며, 천하의 군대를 거두어 제후의 후사를 세웠습니다. 설을 항복시키면 그 장군을 후로 하였고, 재물을 얻으면 곧 그 군사들에게 나누어주어 천하와 그 이익을 같이하니 호걸과 현명한 이가 모두 즐겁게 쓰게 되었습니다. 제후의 군대가 4방에서 이르고, 촉과 한의 곡식이 배를 나란히 하여 내려옵니다. 항왕이 약속을 어긴 이름과 의제를 죽인 배반이 있고, 다른 사람의 공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서는 잊지 않으며, 싸워 이겨도 그 상을 받지 못하고 성을 함락시켜도 그 봉함을 얻지 못하고, 항씨가 아니면 일을 쓸 수 없고, 다른 사람을 위해 인장을 새기지만 인장이 닳아 없어져도 주지 않고, 성을 공격하여 재물을 얻어도 쌓아두고 상주지 않으니 천하가 배반하고 현명한 이가 원망하여 그를 위해 쓰여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천하의 선비들이 한왕에게 돌아가는 것을 앉아서 헤아릴 수 있습니다. 대저 한왕이 촉과 한을 동원하여 삼진을 평정하고 서하의 밖을 건너 상당의 군대를 도우며 정경으로 내려가 성안군을 죽이고, 북위를 깨트리고 32개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이는 치우의 군대로 사람의 힘이 아닌 하늘의 복입니다. 지금 이미 오창의 곡식에 의지하고, 성고의 험함을 막고, 백마의 진을 지키며 태행의 언덕을 막고, 비호의 입구를 막으니 천하에서 뒤에 복종하는 자가 먼저 망하였습니다. 왕께서 빠르고 우선하여 한왕에게 복종하시면 제 나라의 사직을 보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왕에게 낮추지 않으시면 위태로움과 망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했다. 전광이 그렇다 여기고, 이에 역생의 말을 따라 역하의 군대가 지키는 것과 싸움에 대비하던 것을 그만두고 역생과 함께 매일 술을 마셨다.

 

[] 索隱案方船謂並舟也戰國策方船積粟循江而下

[] 索隱살펴보니 方船은 배를 나란히 하는 것을 말한다. 전국책배를 나란히 하여 곡식을 싣고 내려온다.” 했다.

 

[] 集解孟康曰:「刓斷無復廉鍔。」瓚曰:「項羽吝於爵賞惜侯印不能以封其人也。」 索隱刓音五官反郭象注莊子云無圭角」。漢書作」,言玩惜不忍授人也

[] 集解맹강이 말하기를 깍고 달아 모서리가 없는 것이다.” 했다. 찬이 말하기를 항우가 상과 작에 인색하여 후의 인장을 희롱하고 아껴 그 사람을 봉하지 않았다.” 했다. 索隱의 음은 이다. 살펴보니 곽상이 주석한 장자어루만져 둥글게 되어 모서리가 없어진다.” 했다. 한서에는 이라 썼는데 희롱하고 아껴서 차마 다른 사람에게 주지 못함을 말하는 것이다.

 

[] 正義援音爰

[] 正義의 음은 이다.

 

[] 索隱謂魏豹也豹在河北故也亦謂西魏」,以大梁在河南故也

[] 索隱위표를 이른다. 위표가 하북에 있었기 때문이다. 西魏라 이는데 대량이 하남에 있기 때문이다.

 

淮陰侯聞酈生伏軾下齊七十餘城迺夜度兵平原襲齊齊王田廣聞漢兵至以為酈生賣己迺曰:「汝能止漢軍我活汝不然我將亨汝!」酈生曰:「大事不細謹盛德不辭讓而公不為若更言!」齊王遂亨酈生引兵東走

회음후 한신이 역생이 수레 가로대에 엎드려 제의 70여개 성을 함락시켰다는 것을 듣고 이에 밤에 군대로 평원을 건너 제를 습격하였다. 제왕 전광이 한의 군대가 이른 것을 듣고는 역생이 자기를 팔았다 여기고 미에 말하기를 네가 한의 군대를 멈추게 할 수 있으면 내가 너를 살려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장차 너를 삶을 것이다.(烹刑에 처할 것이다.)!” 했다. 역생이 말하기를 큰 일을 꾀하면서 작은 것을 삼가지 못하고, 성대한 덕은 꾸짖음을 사양하지 않습니다. 늙은이는 너를 위해 다시 말하지 않을 것이다!” 했다. 제왕이 마침내 역생을 삶아 죽이고는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달아났다.

 

漢十二年曲周侯酈商以丞相將兵擊黥布有功高祖舉列侯功臣思酈食其酈食其子疥[]數將兵功未當侯上以其父故封疥為高梁侯後更食武遂嗣三世元狩元年中武遂侯平[]坐詐詔衡山王取百斤金當棄市病死國除也

12년 곡주후 역상이 승상으로서 군대를 거느리고 경포를 쳐서 공이 있었다. 고조가 열후공신에 천거하고 역이기를 생각하였다. 역이기의 아들 개가 여러 번 군대를 거느렸으나 공이 후에 해당하지는 못하니 고조가 그 아버지의 일로 개를 봉하여 고량후로 삼았다. 후에 다시 무수를 식읍으로 주어 3세대에 이어졌다. 원수 1년에 무수후 평이 조칙을 속이고 형산왕이 금 100근을 취한 죄에 연루되어 죄가 棄市에 해당하였으나 병들어 죽어 나라를 없앴다.


[] 索隱疥音界後更封武遂三世地理志武遂屬河閒漢書作武陽子遂」,衍文也

[] 索隱의 음은 이다. 후에 다시 무수에 봉해져 3세에 이르렀다. 지리지무수는 하가네 속한다.” 했다. 살펴보니 한서武陽子遂라 썼는데 연문이다.

[] 正義年表云子敵嗣子平嗣元年有罪國除」。而漢書云更食武陽子遂嗣」,恐漢書誤也

[] 正義】 「연표죽고 나서 아들 적이 이었다. 죽고나서 아들 평이 이었다. 원년에 죄가 있어 나라를 없앴다.” 했다. 한서다시 무수를 식읍으로 하여 아들 수가 이었다.” 했다. 아마도 한서가 잘못일 것이다.


陸賈楚人也[]以客從高祖定天下名為有口辯士居左右常使諸侯

육고는 초 사람이다. 객으로 고조가 천하를 평정할 때 따라서 이름이 말 재주 있는 변사로 좌우에 있으면서 항상 제후에게 사신 갔다.

 

[] 索隱案陳留風俗傳云陸氏春秋時陸渾國之後晉侯伐之故陸渾子奔楚賈其後」。又陸氏譜云齊宣公支子達食菜於陸達生發發生皋適楚賈其孫也」。

[] 索隱살펴보니 진류풍속전육씨는 춘추시대 육혼국의 후예이다. 진후가 그들을 정벌하자 육혼의 아들이 초로 도망하였는데 육고는 그 후예이다.” 했다. 육씨보제 선공의 지의 아들 달이 육을 채읍지로 하였다.” 했다. 달이 발을 낳고, 발이 고를 낳고, 초에 갔는데 고는 그 손자이다.


及高祖時中國初定尉他[]平南越因王之高祖使陸賈賜尉他印為南越王陸生至尉他魋結[]箕倨見陸生陸生因進說他曰:「足下中國人親戚昆弟墳在真定[]今足下反天性棄冠帶欲以區區之越與天子抗衡[]為敵國禍且及身矣且夫秦失其政諸侯豪桀並起唯漢王先入關據咸陽項羽倍約自立為西楚霸王諸侯皆屬可謂至彊然漢王起巴蜀鞭笞天下劫略諸侯遂誅項羽滅之五年之閒海內平定此非人力天之所建也天子聞君王王南越不助天下誅暴逆將相欲移兵而誅王天子憐百姓新勞苦故且休之遣臣授君王印剖符通使君王宜郊迎北面稱臣迺欲以新造未集之越屈彊於此漢誠聞之掘燒王先人冢夷滅宗族使一偏將將十萬眾臨越則越殺王降漢如反覆手耳。」

고조 때 중국이 처음 안정되고, 위타가 남월을 평정하였는데 인하여 왕이 되었다. 고조가 육가로 하여금 위타의 인을 내려 남월왕이 되게 하였다. 육생이 이르니 위타는 상투 머리에 다리를 뻗고 거만하게 앉아 육생을 만났다. 육생이 인하여 나아가 위타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중국인으로 친척과 형제들의 무덤이 진정에 있습니다. 지금 그대는 천성에 반하여 관대를 버리고 조그마한 월을 가지고 천자와 맞서 적국이 되니 화가 또한 몸에 이를 것입니다. 또 저 진나라가 그 정사를 잃어 제후와 호걸이 같이 일어날 때 오직 한왕 만이 먼저 관에 들어가 함양에 근거하였다. 항우가 양속을 어기고 스스로 서서 서초 패왕이 되어 제후들이 모두 속하였으니 지극히 강하다 이를 만합니다. 그러나 한왕이 파촉에서 일어나 천하를 매질하여 제후를 겁주고 공격하여 마침내 항우를 죽여 없앴습니다. 5년의 사이에 중국이 평정되었으니 이는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늘이 세운 것입니다. 천자께서 군왕이 남월에서 왕 노릇 하면서 천하의 사납고 거스르는 것을 죽이는데 돕지 않으니 장군과 재상들이 군대를 옮겨 왕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듣고 천자께서 백성들이 새롭게 수고하는 것을 불쌍하게 여겼기 때문에 또 그들을 쉬게 하려 신에게 군왕의 인을 주어 부절을 쪼개 사신을 통하게 하였습니다. 군왕께서는 마땅히 교외에서 맞이하여 북쪽을 향하여 신하임을 말하고, 이에 새로 만들어져 아직 안정되지 않은 월을 가지고 여기에서 굳세고 뻣뻣하여 복종하지 않으려 합니다. 한이 진실로 그것을 듣는다면 왕의 조상의 무덤을 파헤쳐 불태우고, 종족을 헤쳐 없앨 것이며, 편장군 한 사람에게 10만의 무리를 거느리게 하여 월을 맞대면 곧 월은 왕을 죽이고 한에 항복할 것이니 마치 손을 뒤집어엎는 것 같을 뿐입니다.” 했다.


[] 索隱趙他為南越尉故曰尉他」。他音駝

[] 索隱조타가 남월 위가 되었기 때문에 尉他라 하였다.‘의 음은 이다.

 

[] 集解服虔曰:「魋音椎今兵士椎頭結。」 索隱魋直追反結音計謂為髻一撮似椎而結之故字從結且案其魋結二字依字讀之亦得謂夷人本被髮左衽今他同其風俗但魋其髮而結之

[] 集解복건이 말하기를 “‘(사람이름 퇴)’는 음이 이다. 지금 병사의 머리를 몽둥이처럼 묶는 것이다. 索隱이다. ‘의 음은 이다. 머리 털을 하나로 하여 몽치처럼 그것을 묶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글자에 을 따르게 하였다. 또 그 魋結두 글자를 살펴보니 글자에 의지하여 읽는 것이 또한 옳다. 오랑캐는 본래 머리카락을 풀고 옷깃을 왼쪽으로 하는데 지금 위타가 그 풍속과 같이하고, 다만 그 머리카락을 상투하여 묶었을 뿐이다.


[] 索隱趙地也本名東垣屬常山

[] 索隱조 땅이다. 본래 이름은 동원인데 상산에 속한다.

 

[] 索隱案崔浩云對也車扼上橫木也抗衡言兩衡相對拒言不相避下」。

[] 索隱살펴보니 최호가 말하기를 “‘은 마주하는 것이다. ‘은 수레 손잡이에 가로댄 나무이다. ‘抗衡은 두 수레가 서로 마주하여 서로 피하지 않음을 이른다.

 

於是尉他迺蹶[]起坐謝陸生曰:「居蠻夷中久殊失禮義。」因問陸生曰:「我孰與蕭何曹參韓信賢?」陸生曰:「王似賢。」復曰:「我孰與皇帝賢?」陸生曰:「皇帝起豐沛討暴秦誅彊楚為天下興利除害繼五帝三王之業統理中國中國之人以億計地方萬里居天下之膏腴人眾車轝萬物殷富政由一家自天地剖泮未始有也今王眾不過數十萬皆蠻夷崎嶇山海閒譬若漢一郡王何乃比於漢!」尉他大笑曰:「吾不起中國故王此使我居中國何渠不若漢?」[]迺大說陸生留與飲數月:「越中無足與語至生來令我日聞所不聞。」賜陸生橐中裝[]直千金他送亦千金[]陸生卒拜尉他為南越王令稱臣奉漢約歸報高祖大悅拜賈為太中大夫

이에 위타가 엎어지듯이 일어나 앉아 육생에게 사과하며 말하기를 오랑캐 안에 있기를 오래하여 예의를 달리하고, 잘못하였습니다.” 했다. 인하여 육생에게 물어 말하기를 나와 소하, 조참, 한신을 비교하여 누가 났습니까?” 하니 육생이 말하기를 왕과 어질기가 비슷합니다.” 했다. 다시 말하기를 나와 황제는 누가 더 어집니까?”하니 육생이 말하기를 황제는 풍패에서 일어나 사나운 진나라를 토벌하고, 강한 초를 죽였으며, 천하를 위하여 이익을 일으키고 해침을 없애 오제와 삼황의 업을 이어 중국을 통일하여 다스립니다. 중국의 사람은 억을 헤아리고 땅은 사방 만리이며, 청하의 기름진 곳에 살아 사람과 수레도 많아 만물이 풍부하고 정사는 하나의 가문(황실)에서 말미암는데 천지가 나누어짐으로부터 시작됨이 있지 않습니다. 지금 왕의 무리는 수십만에 지나지 않고 모두 오랑캐라서 험한 산과 바다 사이에 있으니 비유하면 마치 한의 한 군과 같으니 왕께서는 어찌 한에 비유합니까! 했다. 위타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중국에서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 왕 노릇한다. 나로 하여금 중국에서 살게 하였다면 어찌 한과 같지 않겠는가?” 했다. 비로소 육생을 크게 기쁘게 대하면서 머물게 하고 함께 술을 마시기를 여러 달 하였다. 위타가 말하기를 월 안에서는 함께 말할이가 없었는데 육생이 옴에 이르러 나로 하여금 매일 듣지 못하는 것을 듣게 하여 주었습니다.” 하고 주머니 안에 천금의 가치가 있는 보물을 싸서 내리고 위타에게 또한 천금을 주었다. 육생이 마침내 위타를 제수하여 남월왕으로 삼고 신을 일컬으며 한과의 약속을 받들게 하였다. 돌아와 보고하니 고조가 크게 기뻐하며 육가()를 제수하여 태중대부로 삼았다.


[] 索隱蘇林音厥禮記子夏蹶然而起」。埤蒼云起也」。

[] 索隱소림은 음이 이라 하고, 예기에는 자하가 엎어지듯이 일어났다.” 했다. 비창“‘은 일어남이다.” 했다.

 

[] 集解渠音詎索隱渠劉氏音詎漢書作小顏以為有何迫促不如漢也」。

[] 集解(도랑 거)’의 음은 (어찌 거)’이다. 索隱는 유씨가 음은 라 했다. 한서라 썼다. 소안은 어찌 급박하게 재촉하기가 한과 같지 않음이 있겠는가?”로 여겼다.

 

[] 集解張晏曰:「珠玉之寶也裹也。」 索隱橐音托如淳云以為明月珠之屬也又案詩傳曰大曰橐小曰囊」。埤蒼云有底曰囊無底曰橐」。謂以寶物入囊橐也

[] 集解장안이 말하기를 주옥의 보배이다. ‘은 싸는 것이다.” 했다. 索隱의 음은 이다. 살펴보니 여순은 명월 주의 등속이다.” 했다. 또 살펴보니 시전큰 것을 이라 하고, 작은 것을 이라 한다.” 했다. 비창은 바닥이 있는 것을 이라 하고, 바닥이 없는 것을 이라 한다.” 했다.

 

[] 集解蘇林曰:「非橐中物故曰他送。」

[] 集解소림이 말하기를 전대 안의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他送(위타가 보냈다.)’”이라 한 것이다.

 

陸生時時前說稱詩書高帝罵之曰:「迺公居馬上而得之安事詩書!」陸生曰;「居馬上得之寧可以馬上治之乎且湯武逆取而以順守之文武並用長久之術也昔者吳王夫差智伯極武而亡秦任刑法不變卒滅趙氏[]鄉使秦已并天下行仁義法先聖陛下安得而有之?」高帝不懌而有慚色迺謂陸生曰:「試為我著秦所以失天下吾所以得之者何及古成敗之國。」陸生迺粗述存亡之徵凡著十二篇每奏一篇高帝未嘗不稱善左右呼萬歲號其書曰新語」。[] 육생이 때때로 고조 앞에서 말할 때 시와 서를 일컬었다. 고제가 욕하며 말하기를 나는 말 위에서 그것을 얻었다. 어찌 시, 서를 일삼겠는가!” 하니 육생이 말하기를 말 위에서 그것을 얻었을지라도 어지 말 위에서 다스림 수 있겠습니까?” 또 탕왕과 무왕이 거스르고 취하였지만 도리를 따라서 그것을 지켰고, 문과 무를 함께 사용하는 것은 오래하는 방법입니다. 옛 날 왕왕 부차와 지백은 무를 지극히 하였지만 망하였고, 진나라는 형벌과 법에 맡겨 변하지 않았지만 끝내 조씨(조고)에게 멸망당하였습니다. 가령 진나라가 이미 천하를 병합한 후 인의를 행하고 앞선 성인을 본받았다면 폐하께서 어지 얻어 소유할 수 있었겠습니까? 했다. 고제가 기뻐하지 않고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있었는데 이에 육생에게 말하기를 시험삼아 나를 위하여 진나라가 천하를 잃게 된 까닭과 내가 그것을 얻은 까닭은 어떠한지와 옛날에 이루고 무너진 나라에 이르기까지를 드러내어 달라.” 했다. 육생이 이에 존망의 징조를 거칠게 서술하여 무릇 12편을 지었다. 매번 한 편씩을 아뢰니 고제가 일찍이 좋다고 칭찬하지 않음이 없었고, 좌우가 만세를 부르니 그 저술을 신어라 불렀다.

 

[] 集解趙氏秦姓也。 索隱案韋昭云秦伯益後與趙同出非廉至造父有功於穆王封之趙城由此一姓趙氏」。

[] 集解조씨는 진나라의 성이다. 索隱살펴보니 위소가 말하기를 진백 익의 후예로 조와 같이 비렴에게서 나와 조부에 이르러 목왕에게 공이 있어 조성에 봉해졌으므로 하나의 성인 조씨가 여기서 유래하였다.


[] 正義七錄云新語二卷陸賈撰

[] 正義】 「칠록신어는 두 권인데 육가가 편찬하였다.” 했다.

 

孝惠帝時呂太后用事欲王諸呂畏大臣有口者陸生自度不能爭之迺病免家居以好畤田地善[]可以家焉有五男迺出所使越得橐中裝賣千金[]分其子子二百金令為生產陸生常安車駟馬從歌舞鼓琴瑟侍者十人寶劍直百金謂其子曰:「與汝約[]過汝汝給吾人馬酒食極欲十日而更所死家得寶劍車騎侍從者一歲中往來過他客率不過[]再三過數見不鮮[]無久慁公為也。」[]

효혜제 때 여태후가 일을 쓸 때 여러 여씨를 왕 노릇하게 하고자 하였으나 대신으로 말을 하는 자가 있을 것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육생이 스스로를 헤아려 간쟁하지 못하고 이에 병을 핑계로 직을 면하고 집에 머물렀다. 호치의 밭이 좋았기 때문에 여기에서 가문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월에 사신 가서 얻었던 주머니를 내어 싸여있던 천금을 팔아 그 아들에게 나누어 200금씩을 나누어주고 생산에 삼게 하였다. 육생이 항상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에 노래하고 춤추며, 고문고와 비파를 연주하며 모시는 자 10명을 따르게 하고, 보검이 100금의 가치가 있었다. 그 아들에게 말하기를 너희와 약속하건데 너희를 지나치면 너희들은 내 사람과 말에게 술과 음식을 주어 욕심을 지극히 하고 10일로 바꿀 것이다. 죽는 집에서 보검과 수레와 시종을 얻으라. 1년 중에 왕래하면 다른 객을 지날 것이니 모두 두세 번을 지남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여러 번 보면 새롭지 않으니 오래하여 너희들을 근심하게 하는 것은 없게 할 것이다.” 했다.


[] 正義畤音止雍州縣也

[] 正義(재터 치)’의 음은 이다. 옹주현이다.

 

[] 正義漢制一金直千貫

[] 正義한 나라 제도에 一金은 바로 천관이다.

 

[] 集解徐廣曰:「一作』。」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는 한편으로 이라 쓴다.” 했다.

 

[] 索隱率音律過音戈

[] 索隱의 음은 이다. ‘의 음은 이다.

 

[] 索隱數見音朔現謂時時來見汝也不鮮言必令鮮美作食莫令見不鮮之物也漢書作數擊鮮」,如淳云新殺曰鮮」。

[] 索隱數見朔現이다. 때때로 와서 너희를 보겠다. 말한 것이다. ‘不鮮은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을 짓게 하고, 신선하지 않은 물건을 보게 하지 않게 함을 말한 것이다. 한서數擊鮮썼는데 여순이 말하기를 새로 잡은 것을 이라 한다.” 했다.

 

[] 集解韋昭曰:「污辱。」 索隱慁患也賈自謂也言汝諸子無久厭患公也

[] 集解위소가 말하기를 “‘은 더럽고 욕됨이다.” 했다. 索隱은 근심이다. ‘은 가 스스로를 말한다. 너희 여러 아들이 오래하여 나를 싫어하고 근심함이 없게 함을 말한 것이다.

 

呂太后時王諸呂諸呂擅權欲劫少主危劉氏右丞相陳平患之力不能爭恐禍及己常燕居深念陸生往請[]直入坐而陳丞相方深念[]不時見陸生陸生曰:「何念之深也?」陳平曰:「生揣我何念?」[]陸生曰:「足下位為上相食三萬戶[]可謂極富貴無欲矣然有憂念不過患諸呂少主耳。」陳平曰:「為之柰何?」陸生曰:「天下安注意相天下危注意將將相和調則士務附士務附[]天下雖有變即權不分為社稷計在兩君掌握耳臣常欲謂太尉絳侯絳侯與我戲易吾言君何不交驩太尉深相結?」為陳平畫呂氏數事陳平用其計迺以五百金為絳侯壽厚具樂飲太尉亦報如之此兩人深相結則呂氏謀益衰陳平迺以奴婢百人車馬五十乘錢五百萬遺陸生為飲食費陸生以此游漢廷公卿閒名聲藉甚[]

여 태후 때 여러 여씨가 왕 노릇하였는데 여러 여씨가 권력을 함부로 하여 어린 황제를 겁주고, 유씨를 위태롭게 하고자 하였다. 우승상 진평이 그것을 근심하나 힘써 간쟁하지 못하고 화가 자기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항상 한가롭게 지낼 때 깊이 생각하였다. 육생이 가기를 청하고 곧바로 들어가 앉았는데 진승상이 막 깊은 생각을 하여 이 육생을 보지 못하였다. 육생이 말하기를 무슨 생각을 깊이합니까?” 하니 진평이 말하기를 육생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헤아릴 수 있겠는가?” 하니 육생이 말하기를 그대의 지위는 상상(우승상)이 되고 식읍 3만호의 후인데 지극히 부귀하나 욕심이 없다 말할 만합니다.

그러나 근심하는 생각은 여러 여씨와 어린 황제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했다. 진평이 말하기를 그러합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했다. 육생이 말하기를 천하는 편안하면 뜻이 승상에게 뜻을 두지만, 천하가 위태로우면 장군에게 뜻을 둡니다. 장군과 재상이 조화로우면 곧 선비는 힘써 따를 것이니 천하가 비록 변함이 있어도 곧 권력은 나누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직을 위한 계책은 두 군(재상과 장군)이 장악함에 있을 뿐입니다. 신이 평소에 태위 강후에게 말하고자 하였는데 강후는 나와 희롱하니 사이라서 내 말을 쉽게 여길 것입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태위와 사귀기를 기쁘게 하여 깊이 서로 맺지 않으십니까?” 했다. 진평을 위하여 여씨의 몇 가지 일을 계획하였다. 진평이 그 계책을 써서 500금으로써 강후의 수명을 축원하고 후하게 갖추어 즐겁게 마셨다. 태위가 답하기를 같이 했다. 이 두 사람이 깊이 서로 맺으니 곧 여씨의 꾀함은 더욱 쇠하였다. 진평이 이에 노비 100, 수레 50, 5백만을 육생에게 주어 음식의 비용으로 삼았다. 육생이 이것으로 한 조정의 공경들 사이에 노닐어 명성이 매우 자자하였다.

 

[] 集解漢書音義曰:「若問起居。」

[] 集解】 『한서음의“‘은 기거를 묻는 것과 같은 것이다.” 했다.

 

[] 索隱深念深思之也

[] 索隱深念은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 集解孟康曰:「度也。」韋昭曰:「揣音初委反。」

[] 集解맹강이 말하기를 “‘는 헤아리는 것이다.” 했다. 위소가 말하기를 “‘의 음은 이다.” 했다.

 

[] 索隱案陳平傳食戶五千以曲逆秦時有三萬戶恐復業至此故稱

[] 索隱살펴보니 진평이 받은 식읍이 5천호인데 곡역에 진나라 때 3만호를 소유하여 아마도 업을 회복하면 이에 이를 것으로 여겨 일컬은 것이다.


[] 集解徐廣曰:「一作』。」

[] 集解서광이 말하길르 “‘는 한편으로 라고 쓴다.” 했다.

 

[] 集解漢書音義曰:「言狼籍甚盛。」

[] 集解】 『한서음의狼藉하다는 말은 매우 성대하다는 말이다.” 했다.

 

及誅諸呂立孝文帝陸生頗有力焉孝文帝即位欲使人之南越陳丞相等乃言陸生為太中大夫往使尉他令尉他去黃屋稱制令比諸侯皆如意旨語在南越語中陸生竟以壽終

여러 여씨를 죽이고 효문제를 세우는데 육생이 자못 힘씀이 있었다. 효문제가 즉위하여 사신을 남월에 보내고자 하였다. 진 승상(진평) 등이 이에 육생을 말하여 태중대부로 삼아 위타에게 사신 가게하고 위타로 하여금 수레의 누른 덮개 제거하고 황제를 참칭하지 못하게 하고 제후와 나란히 하여 모두 황제의 뜻과 같이 하게 하였다. 말이 남월의 말 가운데 있다. 육생이 천수를 마치고 죽었다.


平原君朱建楚人也故嘗為淮南王黥布相有罪去後復事黥布布欲反時問平原君平原君非之布不聽而聽梁父侯遂反[]漢已誅布聞平原君諫不與謀[]得不誅語在黥布語中[]

평원군 주건은 초 사람이다. 일찍이 회남왕 경포의 재상이 되었으나 죄가 있어 떠났다가 후에 다시 경폴르 섬겼다. 경포가 배반하려 할 때 평원군에게 물었는데 평원군이 그것을 비난하였으나 경포가 듣지 않고 양부후의 말을 듣고 마침내 배반하였다. 한이 경포를 죽이고 나서 평원군이 간쟁하고 모의에 간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듣고 죽이지 않았다. 말이 경포의 말 중에 있다.

[] 索隱梁父侯史失名如淳注漢書云布臣」,非也臣瓚曰布用梁父侯計遂反耳」,其說是也

[] 索隱양부후는 역사에서 이름을 잃었다. 여순이 주석한 한서“‘는 경포의 신하이다.”하나 아니다. 신찬이 말하기를 경포가 양부후의 계책을 써서 마침내 배반하였을 뿐이다.” 했는데 이 말이 옳다.

 

[] 正義與音預

[] 正義의 음은 이다.

[] 集解黥布列傳無此語

[] 集解】 「경포열전에는 이 말이 없다.

 

平原君為人辯有口刻廉剛直家於長安行不苟合義不取容辟陽侯行不正得幸呂太后時辟陽侯欲知平原君平原君不肯見及平原君母死陸生素與平原君善過之平原君家貧未有以發喪[]方假貸服具陸生令平原君發喪陸生往見辟陽侯賀曰:「平原君母死。」辟陽侯曰:「平原君母死何乃賀我乎?」陸賈曰:「前日君侯欲知平原君平原君義不知君以其母故[]今其母死君誠厚送喪則彼為君死矣。」辟陽侯乃奉百金往稅[]列侯貴人以辟陽侯故往稅凡五百金

평원군의 사람됨은 말을 잘 하고, 엄격하고 청렴하며 강직하며, 장안에 집이 있었다. 행실은 구차히 영합하지 않았고, 의리에 벗어난 자를 용납하지 않았다. 벽양후는 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여 태후에게 총애를 받았다. 어느 때 벽양후가 평원군을 알고자 하였는데 평원군이 즐겨 보려하지 않았다. 평원군의 어머니가 죽자 육생(육고)이 평소 평원군과 잘 지냈으므로 방문하였다.(조문하였다.) 평원군의 집이 가난하여 초상 난 것을 알리지 못하였는데 의복과 장례도구를 빌리려 하니 육생이 평원군으로 하여금 초상을 알리게 했다. 육생이 가서 벽양후를 보고 축하하며 말하기를 평원군의 어머니가 죽었습니다.” 하니 벽양후가 말하기를 평원군의 어머니가 죽었는데 어찌하여 나를 축하합니까?” 했다. 육고가 말하기를 전날에 군후께서 평원군을 알고자 자였으나 평원군이 의리상 그대를 알려하지 않았던 것은 그 어머니 일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그 어머니가 죽었으니 그대가 진실로 후하게 상례를 치르게 한다면 곧 그가 그대를 위해 죽을 것입니다.” 했다. 병양후가 이에 100금을 받들고 가서 부조하였다. 열후 귀인들이 벽양후의 일로서 가서 부조하니 모두 500금이었다.


[] 索隱案劉氏云謂欲葬時須啟其殯宮故云發喪

[] 索隱살펴보니 유씨가 말하기를 장례하려 할 때는 반드시 그 관을 모시는 곳을 열기 때문에 發喪이라 한 것이다.

 

[] 集解張晏曰:「相知當同恤災危母在故義不知君。」 索隱案崔浩云建以母在義不以身許人也」。

[] 集解장안이 말하기를 서로 안다면 마땅히 같이 재앙과 위태로움을 구휼하는데 어머니가 살아 있기 때문에 의리상 그대를 알려하지 않은 것이다.” 했다. 索隱살펴보니 최호가 말하기를 이 어머니가 생존해 있었기 때문에 의리상 자신으로써 다른 사람을 허여하지 못한 것이다.” 했다.

 

[] 集解韋昭曰:「衣服曰稅稅當為』。」 索隱案說文贈終服也」。襚音式芮反亦音遂

[] 集解위소가 말하기를 의복을 라 하는데 는 마땅히 (수의 수)’가 되어야 한다.” 했다. 索隱살펴보니 설문“‘終服(襚衣)을 주는 것이다.” 했다. ‘의 음은 이다. 또 음은 이다.

 

辟陽侯幸呂太后人或毀辟陽侯於孝惠帝孝惠帝大怒下吏欲誅之呂太后慚不可以言大臣多害辟陽侯行欲遂誅之辟陽侯急因使人欲見平原君平原君辭曰:「獄急不敢見君。」迺求見孝惠幸臣閎籍孺[]說之曰:「君所以得幸帝天下莫不聞今辟陽侯幸太后而下吏道路皆言君讒欲殺之今日辟陽侯誅旦日太后含怒亦誅君何不肉袒為辟陽侯言於帝帝聽君出辟陽侯太后大驩兩主共幸君君貴富益倍矣。」於是閎籍孺大恐從其計言帝果出辟陽侯辟陽侯之囚欲見平原君平原君不見辟陽侯辟陽侯以為倍己大怒及其成功出之迺大驚

벽양후가 여 태후의 총애를 받으니 사람이 혹 벽양후를 효혜제에게 헐뜯었는데 효혜제가 크게 노하여 관리에게 내려주어 죽이려 하였다. 여 태후가 부끄러워하여 말할 수 없었다. 대신들이 많이 벽양후의 행실을 미워하여 끝내 그를 죽이기를 바랐다. 벽양후가 다급하여 사람을 시켜 평원군을 뵙고자 하였다. 평원군이 거절하며 말하기를 옥사가 급하니 감히 그대를 볼 수 없습니다.” 했다. 이에 벽양후가 효혜제의 사랑하는 신하인 광적유를 만나기를 구하여 설득하여 말하기를 그대는 황제께서 총애하니 전하가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벽양후가 태후의 총애를 받다 관리에게 내려지니 도로가 모두 그대가 참소하는 말을 하여 그를 죽이고자 한다고 합니다. 지금 벽양후를 죽이면 내일에 태후가 노함을 품고 있다가 또한 그대를 죽일 것입니다. 어찌하여 어깨를 드러내고 벽양후를 위하여 황제께 말하지 않습니까? 황제가 그대의 말을 듣고 벽양후를 내보내면 태후는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두 임금이 같이 그대를 총애할 것이니 그대의 부귀는 배를 더할 것입니다.” 했다. 이에 굉적유가 크게 두려워하여 그 계책을 따라 황제에게 말하니 과연 벽양후를 내보냈다. 벽양후가 가두어졌을 때 평원군을 고자 하였으나, 평원군이 벽양후를 보지 않은 것에 대해 벽양후는 자기를 배반한 것으로 여겨 크게 노하였다. 그 일이 이루여져 나가게 되자 크게 놀랐다.

 

[] 索隱案佞幸傳云高祖時有籍孺孝惠時有閎孺今總言閎籍孺」,誤也

[] 索隱】 『영행전에 고조 때 적유가 있고, 혜제 때 광유가 있는데 지금 통틀어 광적유라 말하니 잘못이다.

 

呂太后崩大臣誅諸呂辟陽侯於諸呂至深[]而卒不誅計畫所以全者皆陸生平原君之力也

여태후가 죽고 대신들이 여러 여씨를 죽일 때 벽양후가 여러 여씨들과 지극히 깊었으나 끝내 죽이지 않았다. 계획을 온전히 한 것은 모두 육생과 평원군의 힘이었다.

 

[] 集解如淳曰:「辟陽侯與諸呂相親信也為罪宜誅者至深。」 索隱案如淳說以為宜誅非也小顏云辟陽侯與諸呂相知至深重得其理也

[] 集解여순이 말하기를 벽양후와 여러 여씨들이 서로 친하고 믿어서 죄가 마땅히 죽임을 당하여야 함이 지극히 깊었다.” 했다. 索隱여순은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여겼으나 아니다. 소안이 말하기를 벽양후와 여러 여씨들이 서로 아는 것이 지극히 깊고 무거웠다는 것이 그 이치에 맞는 것이다.” 했다.

 

孝文帝時淮南厲王殺辟陽侯以諸呂故文帝聞其客平原君為計策使吏捕欲治聞吏至門平原君欲自殺諸子及吏皆曰:「事未可知何早自殺為?」平原君曰:「我死禍絕不及而身矣。」遂自剄孝文帝聞而惜之:「吾無意殺之。」迺召其子拜為中大夫[]使匈奴單于無禮迺罵單于遂死匈奴中

효문제 때 회남 여왕이 벽양후를 죽였는데 여러 여씨의 일 때문이었다. 문제가 그 객 평원군이 계책을 만들었다는 것을 듣고 관리를 시켜 잡아 다스리려 하였다. 관리가 문에 이르렀다는 것을 듣고 평원군이 스스로 죽고자 하였다. 여러 아들과 관리가 모두 말하기를 일은 알 수 없는데 어찌하여 일찍 스스로 죽으려 합니까?” 했다. 평원군이 말하기를 내가 죽어 화를 끊어야 너희들 몸에 미치지 않는다.” 하고는 마침내 스스로 목울 찔렀다. 효문제가 듣고 애석하게 여겨 말하기를 내가 그를 죽이려는 뜻은 없었다.” 하고는 이에 그 아들을 불러 중대부로 삼았다. 흉노에 사신 갔는데 단우가 무례하니 이에 단우를 욕하다 마침내 흉노에서 죽었다.


[] 索隱案下文所謂與太史公善者

[] 索隱살펴보니 아래 글에 이른바 태사공과 잘 지냈다는 것이다.

 

沛公引兵過陳留酈生踵軍門上謁:「高陽賤民酈食其竊聞沛公暴露將兵助楚討不義敬勞從者願得望見口畫天下便事。」使者入通沛公方洗問使者曰:「何如人也?」使者對曰:「狀貌類大儒衣儒衣冠側注。」[]沛公曰:「為我謝之言我方以天下為事未暇見儒人也。」使者出謝曰:「沛公敬謝先生方以天下為事未暇見儒人也。」酈生瞋目案劍叱使者曰:「復入言沛公吾高陽酒徒也[]非儒人也。」使者懼而失謁跪拾謁還走復入報曰:「天下壯士也叱臣臣恐至失謁復入言而公高陽酒徒也』。」沛公遽雪足杖矛曰:「延客入!」

처음에 패공이 군대를 이끌고 진류를 지나는데 역생이 군문 앞에 가서 명함을 올리고 말하기를 고양의 천민 역이기가 가만히 햇빛과 이슬을 무릅쓰고 군대를 이끌고 초를 도와 의롭지 않음을 토벌한다는 것을 듣고 공경히 따르는 자를 위로하고 멀리서 바라보며 입으로 천하의 편리한 일을 계획함을 말하기를 원합니다.” 했다. 사자가 들어가 통하니 패공이 막 발을 씻다가 사자에게 묻기를 어떤 사람인가?”하니 사자가 대답하기를 생김새는 大儒와 같아 유의를 입고, 측주관을 썼습니다.” 했다. 패공이 말하기를 나를 위하여 사례하고, 내가 막 천하로서 종사하기 때문에 유학자를 만날 틈이 없다고 말하라.” 했다. 사자가 나와 사례하며 말하기를 패공이 공경히 선생에게 사례하면서 막 천하로서 일을 삼았기 때문에 유학자를 만날 틈이 없다. 하십니다.” 했다. 역생이 눈을 부릅뜨고 검을 어루만지며 사자를 꾸짖으며 말하기를 달리라! 다시 들어가 패공에게 나는 고양의 술꾼이지 유학자가 아니라고 말하시오.” 했다. 사자가 두려워하여 명함을 떨어뜨리고 무릎을 꿇고 주워 돌아 달려 들어가 다시 보고하여 말하기를 객이 천하의 장사인데 신을 질책하니 신이 두려워하여 명함을 떨어뜨림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달려가라! 다시 들어가 말하되 나는 고양의 술꾼이다.’ 했습니다.” 하니 패공이 대번에 발을 씻고 창을 잡고 말하기를 손님을 들이게 하라.” 했다.


[] 集解徐廣曰:「側注冠一名高山冠齊王所服以賜謁。」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측주관은 일명 고산관이라고도 하는데 왕이 쓰고 가지런히 하고, 만남을 허락한다.” 했다.


[] 集解徐廣曰:「一本言而公高陽酒徒』。」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어떤 본에는 而公高陽酒徒(내가 고양의 술꾼)’이라 말하였다.”

 

酈生入揖沛公曰:「足下甚苦暴衣露冠將兵助楚討不義足不何不自喜也臣願以事見而曰吾方以天下為事未暇見儒人也』。夫足下欲興天下之大事而成天下之大功而以目皮相恐失天下之能士且吾度足下之智不如吾勇又不如吾若欲就天下而不相見竊為足下失之。」沛公謝曰:「鄉者聞先生之容今見先生之意矣。」迺延而坐之問所以取天下者酈生曰:「夫足下欲成大功不如止陳留陳留者天下之據衝也兵之會地也積粟數千萬石城守甚堅臣素善其令願為足下說之不聽臣臣請為足下殺之而下陳留足下將陳留之眾據陳留之城而食其積粟招天下之從兵從兵已成足下橫行天下莫能有害足下者矣。」沛公曰:「敬聞命矣。」

역생이 들어가 패공에게 읍하고 말하기를 그대는 매우 괴롭습니다. 옷을 햇빛에 쪼이고, 관을 이슬에 드러내며 군대를 이끌고 초를 도와 의롭지 않은 것을 성토하는데 그대는 만족하지 못하고 어찌하여 스스로 기뻐하지 않으십니까? 신은 일로서 뵙기를 원하였는데 내가 바야흐로 천하로써 일을 삼기 때문에 유학자를 볼 틈이 없다.’ 말합니다. 대저 그대는 천하의 대사를 일으켜 천하의 큰 공을 이루고자 하면서 눈과 가죽으로서 살펴보니 천하의 능력있는 선비를 잃을까 두렵습니다. 또 내가 그대의 지혜를 헤아려보니 나보다 못하고, 용기가 또한 나보다 못합니다. 만약 천하에 나아가고자 하면서 서로 보지 않으려 하니 인재를 잃게 될까 안타깝습니다.” 했다. 패공이 사례하며 말하기를 지난번에 선생의 형상을 듣고, 지금 선생의 뜻을 보았습니다.” 했다. 이에 이어 앉아 천하를 취할 수 있는 조건을 물었다. 역생이 말하기를 대저 그대가 큰 공을 이루고자 한다면 진류에 머무는 것만 한 것이 없습니다. 진류는 천하의 요충에 기대어 군대가 만나는 땅이며, 쌓인 곡식이 수천만 석이고, 성을 지킴은 매우 견고합니다. 신이 평소에 그 령(진류현령)과 잘 지냈으니 그대를 위해 그를 설득하기를 원합니다. 진류현령이 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신은 그대를 위해 그를 죽여서 진류를 함락시킬 것을 청합니다. 그대가 진류의 무리를 거느리고 진류성에 웅거하여 그 쌓인 곡식을 먹으며 천하의 따르는 군대를 초청하면 따르는 군대가 이미 이루어져 그대는 천하를 횡행하여 누구도 그대를 해칠 수 있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했다. 패공이 말하기를 공경히 명을 듣습니다.” 했다.

 

於是酈生迺夜見陳留令說之曰:「夫秦為無道而天下畔之今足下與天下從則可以成大功今獨為亡秦嬰城而堅守臣竊為足下危之。」陳留令曰:「秦法至重也不可以妄言妄言者無類吾不可以應先生所以教臣者非臣之意也願勿復道。」酈生留宿臥夜半時斬陳留令首踰城而下報沛公沛公引兵攻城縣令首於長竿以示城上人:「而令頭已斷矣今後下者必先斬之!」於是陳留人見令已死遂相率而下沛公沛公舍陳留南城門上因其庫兵食積粟留出入三月從兵以萬數遂入破秦

이에 역생이 밤에 신류현령을 만나 설득하여 말하기를 대저 진나라는 무도하여 천하가 그를 배반하였는데 지금 그대가 천하와 함께 따르면 곧 큰 공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홀로 망하는 진나라의 성을 걸고 굳게 지키는 것은 신은 가만히 그대를 위태롭게 한다고 여깁니다.” 했다. 진류현 령이 말하기를 진나라의 법은 지극히 무거워 망령되이 말할 수 없고, 망령된 말을 하는 자는 차별이 없으니 내가 대답할 수 없습니다, 선생께서 나를 가르치는 것은 나의 뜻이 아니니 다시 말하지 말기를 원합니다.” 했다. 역생이 머물러 잠자려 누웠다가 한 밤중에 진류현 령의 머리를 베어 성을 넘어 내려가 패공에게 보고하였다. 패공이 군대를 이끌고 성을 공격하며 현령의 머리를 긴 장대에 달아 성위의 사람들에게 보이며 말하기를 달려와 항복하라 현령의 머리가 이미 잘려졌다! 지금 이후 항복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머리를 벨 것이다!” 했다. 이에 진류 사람들이 현령이 이미 죽었음을 보고 마침내 서로 거느리고 패공에게 항복하였다. 패공이 진류성 남쪽 성문 위에 머물면서 그 창고의 병기를 쓰고, 쌓인 곡식을 먹으며 3개월을 머물자 따르는 군대가 만여 명으로 마침내 들어가 진나라를 깨트렸다.

 

太史公曰世之傳酈生書多曰漢王已拔三秦東擊項籍而引軍於鞏洛之閒酈生被儒衣往說漢王迺非也自沛公未入關與項羽別而至高陽得酈生兄弟余讀陸生新語書十二篇固當世之辯士至平原君子與余善是以得具論之

태사공이 말하기를 세상에 전하는 역생의 글은 많이 한왕이 삼진을 함락하고, 동쪽으로 항적을 치고, 공과 낙의 사이에서 군대를 이끌 때 역생이 유생의 옷을 입고 가서 한왕을 유세한 것으로 말한다. 아니다. 패공이 함곡관을 들어감으로부터 항우와 별도로 고양에 이르고, 역생 형제를 얻었다. 내가 육생의 신어12편을 읽었는데 진실로 당시의 말 잘하는 선비였다. 평원군의 아들과 내가 잘 지냈는데 이 때문에 갖추어 논할 수 있었다.” 했다.


索隱述贊廣野大度始冠側注踵門長揖深器重遇說齊歷下趣鼎何懼陸賈使越尉佗懾怖相說國安書成主悟

索隱述贊광야에 큰 법도로 처음 측주관을 썼다. 문을 따라 길게 읍하니 깊이 재능으로 무겁게 대우하였다. 제를 역하에서 유세하여 솥에 나아가니 무엇이 두려울까? 육고가 월에 사신가니 위타가 두려워하고, 서로 나라의 편안함을 말하고, 글을 이루어 임금을 깨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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