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九十七
酈生陸賈列傳第三十七
酈生食其者,[一]陳留高陽人也。[二]好讀書,家貧落魄,[三]無以為衣食業,為里監門吏。[四]然縣中賢豪不敢役,縣中皆謂之狂生。
역이기는 진류 고양 사람이다. 글 읽기를 좋아하였으나 집이 가난하여 행색이 초라하고 나쁜 모양으로 입고 먹을 수 있는 일이 없어 마을 문지기가 되었다. 그러나 현 안에 어진이나 호걸들이 감히 부리지 못하였고 현안에서 모두 그를 미친놈이라 불렀다.
[一] 正義歷異幾三音也。
[一] 【正義】 酈異幾 세 음이다.
[二] 集解徐廣曰:「今在圉縣。」 索隱案:高陽屬陳留圉縣。高陽,鄉名也,故耆舊傳云「食其,高陽鄉人」。正義陳留風俗傳云「高陽在雍兵西南」。括地志云「圉城在汴州雍丘縣西南。食其墓在雍丘西南二十八里」。蓋謂此也。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지금 어현에 있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고양은 진류 어현에 속한다. 고양은 향의 이름인데 「고기구전」에 “식기는 고양향 사람이다.” 했다. 【正義】 「진류풍속전」에 “고양은 옹병 서남쪽에 있다.” 했다. 『괄지지』에 “어성은 변주 옹구현 서남쪽에 있다. 식기의 묘는 옹구 서남족 28리에 있다.” 했다. 대개 이를 말하는 것이다.
[三] 集解應劭曰:「落魄,志行衰惡之貌也。」晉灼曰:「落薄,落託,義同也。」 索隱案:鄭氏云「魄音薄」。應劭云「志行衰惡之貌也」。
[三] 【集解】 응소가 말하기를 “‘낙백’은 뜻과 행실이 쇠하고 나쁜 모양이다.” 했다. 진작이 말하기를 “‘落薄’, ‘落託’과 뜻이 같다.” 【索隱】 살펴보니 정씨는 “‘魄’의 음은 ‘薄’이다.” 했고, 응소는 “듯과 행실이 쇠하고 나쁜 모양이다.” 했다.
[四] 正義監音甲衫反。戰國策云齊宣謂顏斶曰:「夫監門閭里,士之賤也。」
[四] 【正義】 ‘監’의 음은 ‘甲’과 ‘衫’의 反이다. 『전국책』에 “제 선이 안촉에게 일러 말하기를 ‘대저 마을의 문지기는 사의(벼슬 가운데) 천한 것이다.’” 했다.
及陳勝、項梁等起,諸將徇地過高陽者數十人,[一]酈生聞其將皆握齱[二]好苛禮[三]自用,不能聽大度之言,酈生乃深自藏匿。後聞沛公將兵略地陳留郊,沛公麾下騎士適酈生里中子也,[四]沛公時時問邑中賢士豪俊。騎士歸,酈生見謂之曰:「吾聞沛公慢而易人,多大略,此真吾所願從游,莫為我先。[五]若見沛公,謂曰『臣里中有酈生,年六十餘,長八尺,人皆謂之狂生,生自謂我非狂生』。」騎士曰:「沛公不好儒,諸客冠儒冠來者,沛公輒解其冠,溲溺[六]其中。與人言,常大罵。未可以儒生說也。」酈生曰:「弟言之。」騎士從容言如酈生所誡者。
진승과 항량 등이 봉기함에 이르러 여러 장군이 땅을 빼앗으며 고양을 지나는 자가 수십 명이었는데 역생이 그 장군들이 모두 도량이 좁고, 번거롭고 자질구레한 예를 좋아하며, 스스로를 쓰고 큰 법도의 말을 듣지 못한다는 것을 듣고 역생이 이에 깊이 스스로 숨었다. 후에 패공이 군대를 거느리고 땅을 빼앗으며 진류의 교외를 지난다는 것을 들었는데, 패공의 휘하 기마병 가운데 마침 역생의 마을의 자제였고, 패공이 때때로 읍 안에 어진 선비와 호걸을 물었다. 기마 병이 돌아오자 역생이 보고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패공은 교만하여 사람을 쉽게 대하지만 큰 계략이 많다고 들었다. 이는 참으로 내가 따라 노닐기를 바라는 바이나 나를 위해 앞서주는 이가 없다. 당신이 패공을 본다면 신의 마을 안에 역생이라는 이가 있는데 나이는 60여세이고, 키는 8자로 사람들이 모두 미친놈이라 하지만 역생 스스로는 미친놈이 아니라 말한다. 고 말해 주시오.” 했다. 기병이 말하기를 “패공은 유학을 좋아하지 않고, 여러 객들 가운데 유관을 쓰고 오는 자는 패공이 문득 그 관을 벗겨 그 안에 오줌을 눕니다. 다른 사람과 말할 때는 항상 크게 욕을 하니 유생과는 말 할 수 없습니다.” 했다. 역생이 말하기를 “동생은 말해 주시오.” 했다. 기병이 조용히 역생이 말한 바와 같이 말하였다.
[一] 正義徇,略也。
[一] 【正義】 ‘徇’은 경략하다. 이다.
[二] 集解應劭曰:「握齱,急促之貌。」 索隱應劭曰齱音若「促」。鄒氏音角反。韋昭云「握齱,小節也」。
[二] 【集解】 응소가 말하기를 “‘握齱(악추)’는 급히 재촉하는 모양이다.” 했다. 【索隱】 응소가 말하기를 “‘齱’의 음은 ‘促’과 같다.” 했다. 추씨는 음이 “□와 ‘角’의 反이다.” 했다. 위소가 말하기를 “‘握齱’는 작은 절개이다.” 했다.
[三] 索隱案:苛亦作「荷」。賈逵云「苛,煩也」。小顏云「苛,細也」。
[三] 【索隱】 살펴보니 ‘苛’는 또한 ‘荷’라고도 쓴다. 가규가 말하기를 “‘苛’는 번거로운 것이다.” 했다. 소안이 이르기를 “‘苛’는 작은 것이다.” 했다.
[四] 集解服虔曰:「食其里中子適作沛公騎士。」 索隱適食其里中子。適音釋。服虔、蘇林皆云沛公騎士適是食其里中人也。案:言適近作騎士。
[四] 【集解】 복건이 말하기를 “식기 마을의 자제가 마침 패공의 기사가 되었다.” 했다. 【索隱】 마침 식기 마을의 자제이다. ‘適’은 음이 ‘釋’이다. 복건과 소림이 모두 패공의 기사가 마침 식기의 마을 사람이다. 했다. 살펴보니 마침 가가이서 기사를 하고 있었다.
[五] 索隱案:先謂先容,言無人為我作紹介也。正義為,于偽反。
[五] 【索隱】 ‘先謂先容’은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하여 소개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말한다. 【正義】 ‘爲’는 ‘于’와 ‘僞’의 反이다.
[六] 索隱上所由反。下乃弔反,亦如字。溲即溺也。
[六] 【索隱】 위는 ‘所’와 ‘由’의 反이다. 아래는 ‘乃’와 ‘弔’의 反으로 도한 같은 자이다. ‘溲’는 곧 빠짐이다.
沛公至高陽傳舍,[一]使人召酈生。酈生至,入謁,沛公方倨床使兩女子洗足,[二]而見酈生。酈生入,則長揖不拜,曰:「足下欲助秦攻諸侯乎?且欲率諸侯破秦也?」沛公罵曰:「豎儒![三]夫天下同苦秦久矣,故諸侯相率而攻秦,何謂助秦攻諸侯乎?」酈生曰:「必聚徒合義兵誅無道秦,不宜倨見長者。」
패공이 도양의 여관에 이르러 사람을 시켜 역생을 불렀다. 역생이 이르러 들어가 뵈니 패공이 막 거만하게 상에 걸터 앉아 두 여자로 하여금 발을 씻기면서 역생을 만났다. 역생이 들어가 길게 읍하되 절을 하지 않고 말하기를 “그대는 진나라를 도와 제후를 공격하려 하는가? 또한 제후를 거느리고 진나라를 깨트리려 하는가?” 하니 패공이 욕하며 말하기를 “보잘 것 없는 유생이구나! 대저 천하가 진나라에 괴롭힘을 받은 것이 오래되었다 그러므로 제후가 서로 거느리고 진나라를 공격하는데 어지 진나라를 도와 제후를 공격한다. 말하는가?” 했다. 역생이 말하기를 “반드시 무리를 모으고, 의로운 군대를 합하여 무도한 진나라를 죽이는데 거만하게 나이 많은 사람을 보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했다.
於是沛公輟洗,起攝衣,[四]延酈生上坐,謝之。酈生因言六國從橫時。沛公喜,賜酈生食,問曰:「計將安出?」酈生曰:「足下起糾合之眾,[五]收散亂之兵,不滿萬人,欲以徑入強秦,此所謂探虎口者也。夫陳留,天下之衝,四通五達之郊也,[六]今其城又多積粟。臣善其令,[七]請得使之,令下足下。[八]即不聽,足下舉兵攻之,臣為內應。」於是遣酈生行,沛公引兵隨之,遂下陳留。號酈食其為廣野君。
이에 패공이 씻기를 그만두고 일어나 옷을 여미고 연이어 역생을 윗자리에 앉게하고 사과하였다. 역생이 인하여 6국이 합종과 연횡할 때를 말하였다. 패공이 기뻐하며 역생에게 음식을 내리고 물어 말하기를 “계책이 장차 어디서 나오는가?” 했다. 역생이 말하기를 “그대가 일어나 끌어 모은 무리는 흩어지고 어지러워진 군대를 거둔 것이 만 명을 채우지 못하였는데 지름길로 강한 진나라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이는 이른 바 호랑이 입을 더듬는 것입니다. 대저 진류는 천하의 요충으로 사방으로 통하고 사방에서 중앙에 도달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이며 지금 그 성안에는 또한 많은 곡식이 쌓여있습니다. 신은 그 령과 잘 지내고 있으니 사신으로 가서 령이 그대에게 항복하게 할 것을 청합니다. 곧 듣지 않으면 그대가 군대를 들어 공격하면 신이 안에서 응할 것입니다.” 했다. 이에 역생을 보내고, 패공은 군대를 이끌고 따라서 마침내 진류를 함락시켰다. 역이기를 광야군이라 불렀다.
[一] 集解徐廣曰:「二世三年二月。」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2세 3년 2월이다.” 했다.
[二] 索隱案:樂產云「邊床曰倨。」
[二] 【索隱】 살펴보니 낙산이 말하기를 “상가에 걸터앉는 것이다.”
[三] 索隱案:豎者,僮僕之稱。沛公輕之,以比奴豎,故曰「豎儒」也。
[三] 【索隱】 살펴보니 ‘豎者’는 종의 칭호이다. 패공이 가벼이 여겨 종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豎儒’라 말 한 것이다.
[四] 正義攝猶言斂著也。
[四] 【正義】 ‘攝’은 ‘거두어 붙인다는 말과 같다.“
[五] 集解一作「烏合」,一作「瓦合」。
[五] 【集解】 한편 ‘烏合’으로 쓰고, 한편으로 ‘瓦合’으로 쓴다.
[六] 集解如淳曰:「四面中央,凡五達也。」瓚曰:「四通五達,言無險阻也。」
[六]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네 면의 중앙을 무릇 ‘五達’이라 한다.” 찬이 말하기를 “‘四通五達’은 험하고 막힘이 없는 것을 말한다.”
[七] 正義言食其與陳留縣令相善也。
[七] 【正義】 식기와 진류 현령이 서로 잘 지내는 것을 말한다.
[八] 正義令力征反。下謂降之也。
[八] 【正義】 ‘令’은 ‘力’과 ‘征’의 反이다. ‘下’는 항복함을 말한다.
酈生言其弟酈商,使將數千人從沛公西南略地。酈生常為說客,馳使諸侯。
역생은 그 동생 역상을 말하여 수 천 명을 거느리고 패공을 따라 서남으로 땅을 빼앗게 하였다. 역생이 항상 세객이 되어 말을 달려 제후에게 사신 갔다.
漢三年秋,項羽擊漢,拔滎陽,漢兵遁保鞏、洛。楚人聞淮陰侯破趙,彭越數反梁地,[一]則分兵救之。淮陰方東擊齊,漢王數困滎陽、成皋,計欲捐成皋以東,屯鞏、洛以拒楚。酈生因曰:「臣聞知天之天者,王事可成;不知天之天者,王事不可成。王者以民人為天,[二]而民人以食為天。夫敖倉,天下轉輸久矣,臣聞其下迺有藏粟甚多,楚人拔滎陽,不堅守敖倉,迺引而東,令適卒[三]分守成皋,此乃天所以資漢也。方今楚易取而漢反郤,自奪其便,[四]臣竊以為過矣。且兩雄不俱立,楚漢久相持不決,百姓騷動,海內搖蕩,農夫釋耒,工女[五]下機,天下之心未有所定也。願足下急復進兵,收取滎陽,據敖倉之粟,[六]塞成皋之險,[七]杜大行之道,[八]距蜚狐之口,[九]守白馬之津,以示諸侯效實形制之勢,則天下知所歸矣。方今燕、趙已定,唯齊未下。今田廣據千里之齊,田閒將二十萬之眾,軍於歷城,諸田宗彊,負海阻河濟,南近楚,人多變詐,足下雖遣數十萬師,未可以歲月破也。臣請得奉明詔說齊王,使為漢而稱東藩。」上曰:「善。」
한 3년 가을 항우가 한을 쳐서 형양을 함락시키니 한 군대가 도망하여 공과 낙에 주둔하였다. 초 사람들이 회음후가 조를 깨트리고, 팽월이 여러 번 양 땅에서 배반함을 듣고 곧 군대를 나누어 구원하였다. 회음후가 동쪽으로 제를 치려하는데 한왕은 여러 번 형양, 성고에서 곤궁하여 성고 동쪽을 버리고 공, 난에 주둔하여 초를 막고자 하는 계책을 세웠다. 역생이 인하여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하늘의 하늘을 아는 자가 왕의 일을 이룰 수 있다. 합니다. 하늘의 하늘을 알지 못하는 자는 왕의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왕 노릇하는 자는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습니다. 저 오창은 천하의 곡식을 옮겨 놓은 것이 오래되었는데 신이 들으니 그 아래에 옮겨놓아 보관한 곡식이 매우 많이 있는데도 초 사람들이 형양을 함락시키고 오창을 굳게 지키지 않고, 이에 이끌고 동쪽으로 가서 죄 지은 병사를 나누어 성고를 지키게 하였다 하니 이는 곧 하늘이 한을 돕는 것입니다. 지금 막 초가 바꾸어 취하였는데 한이 도리어 물리치는 것은 스스로 그 편리함을 잃는 것이니 신은 가만히 지나치다 여깁니다. 또 두 영웅은 함께 설 수 없고, 초와 한이 오래 동안 서로 대치하여 결단하지 못하니 백성은 놀라 시끄럽게 떠들고, 해내가 흔들리고 동요하며, 농부는 쟁기를 풀고 여자는 베틀에서 내려오며 천하의 마음은 아직 정해진 것이 있지 않습니다. 그대는 급히 다시 군대를 나아가게 하여 형양에서 거두어 취하고, 오창의 곡식에 의지하며, 성고의 험함을 막고, 태행으로 가는 길을 막으며, 상당의 호관을 막으며, 백마의 진을 지키는 것으로써 제후에게 실제 형세를 제압하는 기세를 보여준다면 곧 천하가 돌아 갈 바를 알 것입니다. 바야흐로 지금 연과 조가 이미 평정되고 오직 제 만이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전광이 천리의 제 땅에 의지하고, 전한은 20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역성에 주둔하여 여러 전씨 종족이 강한데다 바다를 지고 하와 제수가 막으며, 남쪽으로 초를 가까이하고 변하고 속이는 사람이 많으니 그대가 비록 수십만의 군대를 보낼지라도 세월이 지나도 깨트릴 수 없습니다. 신은 밝은 조칙을 받들어 제왕을 유세하여 한을 위하여 동쪽의 울타리를 일컬을 수 있도록 할 것을 청합니다.” 했다. 왕이 말하기를 “좋다.” 했다.
[一] 索隱數音朔。
[一] 【索隱】 ‘數’의 음은 ‘朔’이다.
[二] 索隱王者以人為天。案:此語出管子。
[二] 【索隱】 왕은 사람으로 하늘을 삼는다. 살펴보니 이 말은 『관자』에 나온다.
[三] 索隱上音直革反。案:通俗文云「罰罪云謫」,即所謂謫戍。又音陟革反。卒,租忽反。
[三] 【索隱】 위의 음은 ‘直’과 ‘革’의 反이다. 살펴보니 「통속문」에 “죄를 지어 벌 받는 것을 ‘謫’이라 하니 곧 이른바 ‘謫戍’이다. 또 음은 ‘陟’과 ‘革’의 反이다. ‘卒’은 ‘租’와 ‘忽’의 反이다.
[四] 索隱漢反卻自奪便。以言不取敖倉,是漢卻,自奪其便利。
[四] 【索隱】 한이 도리어 스스로 편리함을 물리친 것이다. 오창을 취하지 않음은 한이 스스로 그 편리함을 빼앗는 것을 물리침을 말한 것이다.
[五] 索隱謂女工工巧也。漢書作「紅」,音工。
[五] 【索隱】 여자 장인이 공교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한서』에 ‘紅’이라 썼는데 음은 ‘工’이다.
[六] 正義敖倉在今鄭州滎陽縣西十有五里,石門之東,北臨汴水,南帶三皇山。秦始皇時置倉於敖山上,故名之曰敖倉也。
[六] 【正義】 오창은 지금의 정주 형양현 서쪽 15리에 있는데 석문의 동쪽으로 북으로 변수를 마주하고, 남쪽으로 삼황산이 두르고 있다. 진나라 시황제 때 창고를 오산 위에 두었기 때문에 오창이라 이름 한 것이다.
[七] 正義即氾水縣山也。
[七] 【正義】 곧 범수현의 산이다.
[八] 集解韋昭曰:「在河內野王北也。」
[八] 【集解】 위소가 말하기를 “하내 야왕 북쪽에 있다.”
[九] 集解如淳曰:「上黨壺關也。」駰案:蜚狐在代郡西南。正義案:蔚州飛狐縣北百五十里有秦漢故郡城。西南有山,俗號為飛狐口也。
[九]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상당군 호관이다.” 했다. 배인이 살펴보니 “비호는 대군 서남쪽에 있다. 【正義】 살펴보니 울주 비호현 북쪽 150리에 진, 한시대 옛 군성이 있다. 서남쪽에 산이 있는데 민간에서 비호구라 한다.
迺從其畫,復守敖倉,而使酈生說齊王曰:「王知天下之所歸乎?」王曰:「不知也。」曰:「王知天下之所歸,則齊國可得而有也;若不知天下之所歸,即齊國未可得保也。」齊王曰:「天下何所歸?」曰:「歸漢。」曰:「先生何以言之?」曰:「漢王與項王戮力西面擊秦,約先入咸陽者王之。漢王先入咸陽,項王負約不與而王之漢中。項王遷殺義帝,漢王聞之,起蜀漢之兵擊三秦,出關而責義帝之處,收天下之兵,立諸侯之後。降城即以侯其將,得賂即以分其士,與天下同其利,豪英賢才皆樂為之用。諸侯之兵四面而至,蜀漢之粟方船而下。[一]項王有倍約之名,殺義帝之負;於人之功無所記,於人之罪無所忘;戰勝而不得其賞,拔城而不得其封;非項氏莫得用事;為人刻印,刓而不能授;[二]攻城得賂,積而不能賞:天下畔之,賢才怨之,而莫為之用。故天下之士歸於漢王,可坐而策也。夫漢王發蜀漢,定三秦;涉西河之外,援上黨之兵;[三]下井陘,誅成安君;破北魏,[四]舉三十二城:此蚩尤之兵也,非人之力也,天之福也。今已據敖倉之粟,塞成皋之險,守白馬之津,杜大行之阪,距蜚狐之口,天下後服者先亡矣。王疾先下漢王,齊國社稷可得而保也;不下漢王,危亡可立而待也。」田廣以為然,迺聽酈生,罷歷下兵守戰備,與酈生日縱酒。
이에 그 계획을 따라 다시 오창을 지키고, 역생으로 하여금 제왕을 설득하게 하여 말하기를 “왕께서는 천하가 어디로 돌아갈지 아십니까?” 하니 제왕이 말하기를 “알지 못합니다.” 했다. 역생이 말하기를 “왕께서 천하가 어디로 돌아갈지를 안다면 곧 제 나라를 얻어 소유할 수 있을 것이고, 만약 천하가 어디로 돌아갈지를 알지 못한다면 곧 제 나라를 얻어 보존할 수 없습니다.” 했다. 제 왕이 말하기를 “천하가 어디로 돌아갈 것 같습니까?” 하니 역생이 말하기를 “한에 돌아 갈 것입니다.” 했다. 제 왕이 말하기를 “서생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합니까?” 하니 역생이 말하기를 “한왕과 항왕이 힘을 합하여 서쪽을 향해 진나라를 치고, 먼저 함양에 들어가는 자가 왕 노릇 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한왕이 먼저 함양에 들어갔는데도 항왕이 약속을 어기고 함께 하지 않아 왕이 한중으로 갔습니다. 항왕이 의제를 옮기고 죽이니 한왕이 그것을 듣고 촉과 한의 군대를 일으켜 삼진을 치고 관을 나와 의제의 처치를 질책하며, 천하의 군대를 거두어 제후의 후사를 세웠습니다. 설을 항복시키면 그 장군을 후로 하였고, 재물을 얻으면 곧 그 군사들에게 나누어주어 천하와 그 이익을 같이하니 호걸과 현명한 이가 모두 즐겁게 쓰게 되었습니다. 제후의 군대가 4방에서 이르고, 촉과 한의 곡식이 배를 나란히 하여 내려옵니다. 항왕이 약속을 어긴 이름과 의제를 죽인 배반이 있고, 다른 사람의 공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서는 잊지 않으며, 싸워 이겨도 그 상을 받지 못하고 성을 함락시켜도 그 봉함을 얻지 못하고, 항씨가 아니면 일을 쓸 수 없고, 다른 사람을 위해 인장을 새기지만 인장이 닳아 없어져도 주지 않고, 성을 공격하여 재물을 얻어도 쌓아두고 상주지 않으니 천하가 배반하고 현명한 이가 원망하여 그를 위해 쓰여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천하의 선비들이 한왕에게 돌아가는 것을 앉아서 헤아릴 수 있습니다. 대저 한왕이 촉과 한을 동원하여 삼진을 평정하고 서하의 밖을 건너 상당의 군대를 도우며 정경으로 내려가 성안군을 죽이고, 북위를 깨트리고 32개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이는 치우의 군대로 사람의 힘이 아닌 하늘의 복입니다. 지금 이미 오창의 곡식에 의지하고, 성고의 험함을 막고, 백마의 진을 지키며 태행의 언덕을 막고, 비호의 입구를 막으니 천하에서 뒤에 복종하는 자가 먼저 망하였습니다. 왕께서 빠르고 우선하여 한왕에게 복종하시면 제 나라의 사직을 보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왕에게 낮추지 않으시면 위태로움과 망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했다. 전광이 그렇다 여기고, 이에 역생의 말을 따라 역하의 군대가 지키는 것과 싸움에 대비하던 것을 그만두고 역생과 함께 매일 술을 마셨다.
[一] 索隱案:方船謂並舟也。戰國策「方船積粟,循江而下」也。
[一] 【索隱】 살펴보니 ‘方船’은 배를 나란히 하는 것을 말한다. 『전국책』에 “배를 나란히 하여 곡식을 싣고 내려온다.” 했다.
[二] 集解孟康曰:「刓斷無復廉鍔也。」瓚曰:「項羽吝於爵賞,玩惜侯印,不能以封其人也。」 索隱刓音五官反。案:郭象注莊子云「杬團無圭角」。漢書作「玩」,言玩惜不忍授人也。
[二] 【集解】 맹강이 말하기를 “깍고 달아 모서리가 없는 것이다.” 했다. 찬이 말하기를 “항우가 상과 작에 인색하여 후의 인장을 희롱하고 아껴 그 사람을 봉하지 않았다.” 했다. 【索隱】 ‘刓’의 음은 ‘五’와 ‘官’의 反이다. 살펴보니 곽상이 주석한 『장자』에 “어루만져 둥글게 되어 모서리가 없어진다.” 했다. 『한서』에는 ‘玩’이라 썼는데 희롱하고 아껴서 차마 다른 사람에게 주지 못함을 말하는 것이다.
[三] 正義援音爰。
[三] 【正義】 ‘援’의 음은 ‘爰’이다.
[四] 索隱謂魏豹也。豹在河北故也。亦謂「西魏」,以大梁在河南故也。
[四] 【索隱】 위표를 이른다. 위표가 하북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 ‘西魏’라 이는데 대량이 하남에 있기 때문이다.
淮陰侯聞酈生伏軾下齊七十餘城,迺夜度兵平原襲齊。齊王田廣聞漢兵至,以為酈生賣己,迺曰:「汝能止漢軍,我活汝;不然,我將亨汝!」酈生曰:「舉大事不細謹,盛德不辭讓。而公不為若更言!」齊王遂亨酈生,引兵東走。
회음후 한신이 역생이 수레 가로대에 엎드려 제의 70여개 성을 함락시켰다는 것을 듣고 이에 밤에 군대로 평원을 건너 제를 습격하였다. 제왕 전광이 한의 군대가 이른 것을 듣고는 역생이 자기를 팔았다 여기고 미에 말하기를 “네가 한의 군대를 멈추게 할 수 있으면 내가 너를 살려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장차 너를 삶을 것이다.(烹刑에 처할 것이다.)!” 했다. 역생이 말하기를 “큰 일을 꾀하면서 작은 것을 삼가지 못하고, 성대한 덕은 꾸짖음을 사양하지 않습니다. 늙은이는 너를 위해 다시 말하지 않을 것이다!” 했다. 제왕이 마침내 역생을 삶아 죽이고는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달아났다.
漢十二年,曲周侯酈商以丞相將兵擊黥布有功。高祖舉列侯功臣,思酈食其。酈食其子疥[一]數將兵,功未當侯,上以其父故,封疥為高梁侯。後更食武遂,嗣三世。元狩元年中,武遂侯平[二]坐詐詔衡山王取百斤金,當棄市,病死,國除也。
한 12년 곡주후 역상이 승상으로서 군대를 거느리고 경포를 쳐서 공이 있었다. 고조가 열후공신에 천거하고 역이기를 생각하였다. 역이기의 아들 개가 여러 번 군대를 거느렸으나 공이 후에 해당하지는 못하니 고조가 그 아버지의 일로 개를 봉하여 고량후로 삼았다. 후에 다시 무수를 식읍으로 주어 3세대에 이어졌다. 원수 1년에 무수후 평이 조칙을 속이고 형산왕이 금 100근을 취한 죄에 연루되어 죄가 棄市에 해당하였으나 병들어 죽어 나라를 없앴다.
[一] 索隱疥音界。後更封武遂三世。地理志武遂屬河閒。案:漢書作「武陽子遂」,衍文也。
[一] 【索隱】 ‘疥’의 음은 ‘界’이다. 후에 다시 무수에 봉해져 3세에 이르렀다. 『지리지』에 “무수는 하가네 속한다.” 했다. 살펴보니 『한서』에 “武陽子遂”라 썼는데 연문이다.
[二] 正義年表云「卒,子敵嗣。卒,子平嗣,元年有罪國除」。而漢書云「更食武陽,子遂嗣」,恐漢書誤也。
[二] 【正義】 「연표」에 “죽고 나서 아들 적이 이었다. 죽고나서 아들 평이 이었다. 원년에 죄가 있어 나라를 없앴다.” 했다. 『한서』에 “다시 무수를 식읍으로 하여 아들 수가 이었다.” 했다. 아마도 『한서』가 잘못일 것이다.
陸賈者,楚人也。[一]以客從高祖定天下,名為有口辯士,居左右,常使諸侯。
육고는 초 사람이다. 객으로 고조가 천하를 평정할 때 따라서 이름이 말 재주 있는 변사로 좌우에 있으면서 항상 제후에게 사신 갔다.
[一] 索隱案:陳留風俗傳云「陸氏,春秋時陸渾國之後。晉侯伐之,故陸渾子奔楚。賈其後」。又陸氏譜云「齊宣公支子達食菜於陸。達生發,發生皋,適楚。賈其孫也」。
[一] 【索隱】 살펴보니 『진류풍속전』에 “육씨는 춘추시대 육혼국의 후예이다. 진후가 그들을 정벌하자 육혼의 아들이 초로 도망하였는데 육고는 그 후예이다.” 했다. 또 『육씨보』에 “제 선공의 지의 아들 달이 육을 채읍지로 하였다.” 했다. 달이 발을 낳고, 발이 고를 낳고, 초에 갔는데 고는 그 손자이다.
及高祖時,中國初定,尉他[一]平南越,因王之。高祖使陸賈賜尉他印為南越王。陸生至,尉他魋結[二]箕倨見陸生。陸生因進說他曰:「足下中國人,親戚昆弟墳在真定。[三]今足下反天性,棄冠帶,欲以區區之越與天子抗衡[四]為敵國,禍且及身矣。且夫秦失其政,諸侯豪桀並起,唯漢王先入關,據咸陽。項羽倍約,自立為西楚霸王,諸侯皆屬,可謂至彊。然漢王起巴蜀,鞭笞天下,劫略諸侯,遂誅項羽滅之。五年之閒,海內平定,此非人力,天之所建也。天子聞君王王南越,不助天下誅暴逆,將相欲移兵而誅王,天子憐百姓新勞苦,故且休之,遣臣授君王印,剖符通使。君王宜郊迎,北面稱臣,迺欲以新造未集之越,屈彊於此。漢誠聞之,掘燒王先人冢,夷滅宗族,使一偏將將十萬眾臨越,則越殺王降漢,如反覆手耳。」
고조 때 중국이 처음 안정되고, 위타가 남월을 평정하였는데 인하여 왕이 되었다. 고조가 육가로 하여금 위타의 인을 내려 남월왕이 되게 하였다. 육생이 이르니 위타는 상투 머리에 다리를 뻗고 거만하게 앉아 육생을 만났다. 육생이 인하여 나아가 위타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중국인으로 친척과 형제들의 무덤이 진정에 있습니다. 지금 그대는 천성에 반하여 관대를 버리고 조그마한 월을 가지고 천자와 맞서 적국이 되니 화가 또한 몸에 이를 것입니다. 또 저 진나라가 그 정사를 잃어 제후와 호걸이 같이 일어날 때 오직 한왕 만이 먼저 관에 들어가 함양에 근거하였다. 항우가 양속을 어기고 스스로 서서 서초 패왕이 되어 제후들이 모두 속하였으니 지극히 강하다 이를 만합니다. 그러나 한왕이 파촉에서 일어나 천하를 매질하여 제후를 겁주고 공격하여 마침내 항우를 죽여 없앴습니다. 5년의 사이에 중국이 평정되었으니 이는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늘이 세운 것입니다. 천자께서 군왕이 남월에서 왕 노릇 하면서 천하의 사납고 거스르는 것을 죽이는데 돕지 않으니 장군과 재상들이 군대를 옮겨 왕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듣고 천자께서 백성들이 새롭게 수고하는 것을 불쌍하게 여겼기 때문에 또 그들을 쉬게 하려 신에게 군왕의 인을 주어 부절을 쪼개 사신을 통하게 하였습니다. 군왕께서는 마땅히 교외에서 맞이하여 북쪽을 향하여 신하임을 말하고, 이에 새로 만들어져 아직 안정되지 않은 월을 가지고 여기에서 굳세고 뻣뻣하여 복종하지 않으려 합니다. 한이 진실로 그것을 듣는다면 왕의 조상의 무덤을 파헤쳐 불태우고, 종족을 헤쳐 없앨 것이며, 편장군 한 사람에게 10만의 무리를 거느리게 하여 월을 맞대면 곧 월은 왕을 죽이고 한에 항복할 것이니 마치 손을 뒤집어엎는 것 같을 뿐입니다.” 했다.
[一] 索隱趙他為南越尉,故曰「尉他」。他音駝。
[一] 【索隱】 조타가 남월 위가 되었기 때문에 ‘尉他’라 하였다.‘他’의 음은 ‘駝’이다.
[二] 集解服虔曰:「魋音椎。今兵士椎頭結。」 索隱魋,直追反。結音計。謂為髻一撮似椎而結之,故字從結。且案其「魋結」二字,依字讀之亦得。謂夷人本被髮左衽,今他同其風俗,但魋其髮而結之。
[二] 【集解】 복건이 말하기를 “‘魋(사람이름 퇴)’는 음이 ‘椎’이다. 지금 병사의 머리를 몽둥이처럼 묶는 것이다. 【索隱】 ‘魋’는 ‘直’과 ‘追’의 反이다. ‘結’의 음은 ‘計’이다. 머리 털을 하나로 하여 몽치처럼 그것을 묶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글자에 ‘結’을 따르게 하였다. 또 그 ‘魋結’ 두 글자를 살펴보니 글자에 의지하여 읽는 것이 또한 옳다. 오랑캐는 본래 머리카락을 풀고 옷깃을 왼쪽으로 하는데 지금 위타가 그 풍속과 같이하고, 다만 그 머리카락을 상투하여 묶었을 뿐이다.
[三] 索隱趙地也。本名東垣,屬常山。
[三] 【索隱】 조 땅이다. 본래 이름은 동원인데 상산에 속한다.
[四] 索隱案:崔浩云「抗,對也。衡,車扼上橫木也。抗衡,言兩衡相對拒,言不相避下」。
[四] 【索隱】 살펴보니 최호가 말하기를 “‘抗’은 마주하는 것이다. ‘衡’은 수레 손잡이에 가로댄 나무이다. ‘抗衡’은 두 수레가 서로 마주하여 서로 피하지 ㅇ않음을 이른다.
於是尉他迺蹶然[一]起坐,謝陸生曰:「居蠻夷中久,殊失禮義。」因問陸生曰:「我孰與蕭何、曹參、韓信賢?」陸生曰:「王似賢。」復曰:「我孰與皇帝賢?」陸生曰:「皇帝起豐沛,討暴秦,誅彊楚,為天下興利除害,繼五帝三王之業,統理中國。中國之人以億計,地方萬里,居天下之膏腴,人眾車轝,萬物殷富,政由一家,自天地剖泮未始有也。今王眾不過數十萬,皆蠻夷,崎嶇山海閒,譬若漢一郡,王何乃比於漢!」尉他大笑曰:「吾不起中國,故王此。使我居中國,何渠不若漢?」[二]迺大說陸生,留與飲數月。曰:「越中無足與語,至生來,令我日聞所不聞。」賜陸生橐中裝[三]直千金,他送亦千金。[四]陸生卒拜尉他為南越王,令稱臣奉漢約。歸報,高祖大悅,拜賈為太中大夫。
이에 위타가 엎어지듯이 일어나 앉아 육생에게 사과하며 말하기를 “오랑캐 안에 있기를 오래하여 예의를 달리하고, 잘못하였습니다.” 했다. 인하여 육생에게 물어 말하기를 “나와 소하, 조참, 한신을 비교하여 누가 났습니까?” 하니 육생이 말하기를 “왕과 어질기가 비슷합니다.” 했다. 다시 말하기를 “나와 황제는 누가 더 어집니까?”하니 육생이 말하기를 “황제는 풍패에서 일어나 사나운 진나라를 토벌하고, 강한 초를 죽였으며, 천하를 위하여 이익을 일으키고 해침을 없애 오제와 삼황의 업을 이어 중국을 통일하여 다스립니다. 중국의 사람은 억을 헤아리고 땅은 사방 만리이며, 청하의 기름진 곳에 살아 사람과 수레도 많아 만물이 풍부하고 정사는 하나의 가문(황실)에서 말미암는데 천지가 나누어짐으로부터 시작됨이 있지 않습니다. 지금 왕의 무리는 수십만에 지나지 않고 모두 오랑캐라서 험한 산과 바다 사이에 있으니 비유하면 마치 한의 한 군과 같으니 왕께서는 어찌 한에 비유합니까! 했다. 위타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중국에서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 왕 노릇한다. 나로 하여금 중국에서 살게 하였다면 어찌 한과 같지 않겠는가?” 했다. 비로소 육생을 크게 기쁘게 대하면서 머물게 하고 함께 술을 마시기를 여러 달 하였다. 위타가 말하기를 “월 안에서는 함께 말할이가 없었는데 육생이 옴에 이르러 나로 하여금 매일 듣지 못하는 것을 듣게 하여 주었습니다.” 하고 주머니 안에 천금의 가치가 있는 보물을 싸서 내리고 위타에게 또한 천금을 주었다. 육생이 마침내 위타를 제수하여 남월왕으로 삼고 신을 일컬으며 한과의 약속을 받들게 하였다. 돌아와 보고하니 고조가 크게 기뻐하며 육가(생)를 제수하여 태중대부로 삼았다.
[一] 索隱蘇林音厥。禮記「子夏蹶然而起」。埤蒼云「蹶,起也」。
[一] 【索隱】 소림은 음이 ‘厥’이라 하고, 『예기』에는 “자하가 엎어지듯이 일어났다.” 했다. 『비창』에 “‘蹶’은 일어남이다.” 했다.
[二] 集解渠音詎。索隱渠,劉氏音詎。漢書作「遽」字,小顏以為「有何迫促不如漢也」。
[二] 【集解】 ‘渠(도랑 거)’의 음은 ‘詎(어찌 거)’이다. 【索隱】 ‘渠’는 유씨가 음은 ‘詎’라 했다. 『한서』에 ‘遽’라 썼다. 소안은 “어찌 급박하게 재촉하기가 한과 같지 않음이 있겠는가?”로 여겼다.
[三] 集解張晏曰:「珠玉之寶也。裝,裹也。」 索隱橐音托。案:如淳云以為明月珠之屬也。又案:詩傳曰「大曰橐,小曰囊」。埤蒼云「有底曰囊,無底曰橐」。謂以寶物(以)入囊橐也。
[三] 【集解】 장안이 말하기를 “주옥의 보배이다. ‘裝’은 싸는 것이다.” 했다. 【索隱】 ‘槖’의 음은 ‘托’이다. 살펴보니 여순은 “명월 주의 등속이다.” 했다. 또 살펴보니 『시전』에 “큰 것을 ‘橐’이라 하고, 작은 것을 ‘囊’이라 한다.” 했다. 비창은 “바닥이 있는 것을 ‘囊’이라 하고, 바닥이 없는 것을 ‘橐’이라 한다.” 했다.
[四] 集解蘇林曰:「非橐中物,故曰『他送』也。」
[四] 【集解】 소림이 말하기를 “전대 안의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他送(위타가 보냈다.)’”이라 한 것이다.
陸生時時前說稱詩書。高帝罵之曰:「迺公居馬上而得之,安事詩書!」陸生曰;「居馬上得之,寧可以馬上治之乎?且湯武逆取而以順守之,文武並用,長久之術也。昔者吳王夫差、智伯極武而亡;秦任刑法不變,卒滅趙氏。[一]鄉使秦已并天下,行仁義,法先聖,陛下安得而有之?」高帝不懌而有慚色,迺謂陸生曰:「試為我著秦所以失天下,吾所以得之者何,及古成敗之國。」陸生迺粗述存亡之徵,凡著十二篇。每奏一篇,高帝未嘗不稱善,左右呼萬歲,號其書曰「新語」。[二] 육생이 때때로 고조 앞에서 말할 때 시와 서를 일컬었다. 고제가 욕하며 말하기를 “나는 말 위에서 그것을 얻었다. 어찌 시, 서를 일삼겠는가!” 하니 육생이 말하기를 “말 위에서 그것을 얻었을지라도 어지 말 위에서 다스림 수 있겠습니까?” 또 탕왕과 무왕이 거스르고 취하였지만 도리를 따라서 그것을 지켰고, 문과 무를 함께 사용하는 것은 오래하는 방법입니다. 옛 날 왕왕 부차와 지백은 무를 지극히 하였지만 망하였고, 진나라는 형벌과 법에 맡겨 변하지 않았지만 끝내 조씨(조고)에게 멸망당하였습니다. 가령 진나라가 이미 천하를 병합한 후 인의를 행하고 앞선 성인을 본받았다면 폐하께서 어지 얻어 소유할 수 있었겠습니까? 했다. 고제가 기뻐하지 않고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있었는데 이에 육생에게 말하기를 “시험삼아 나를 위하여 진나라가 천하를 잃게 된 까닭과 내가 그것을 얻은 까닭은 어떠한지와 옛날에 이루고 무너진 나라에 이르기까지를 드러내어 달라.” 했다. 육생이 이에 존망의 징조를 거칠게 서술하여 무릇 12편을 지었다. 매번 한 편씩을 아뢰니 고제가 일찍이 좋다고 칭찬하지 않음이 없었고, 좌우가 만세를 부르니 그 저술을 『신어』라 불렀다.
[一] 集解趙氏,秦姓也。 索隱案:韋昭云「秦伯益後,與趙同出非廉,至造父,有功於穆王,封之趙城,由此一姓趙氏」。
[一] 【集解】 조씨는 진나라의 성이다. 【索隱】 살펴보니 위소가 말하기를 “진백 익의 후예로 조와 같이 비렴에게서 나와 조부에 이르러 목왕에게 공이 있어 조성에 봉해졌으므로 하나의 성인 조씨가 여기서 유래하였다.
[二] 正義七錄云「新語二卷,陸賈撰」也。
[二] 【正義】 「칠록」에 “『신어』는 두 권인데 육가가 편찬하였다.” 했다.
孝惠帝時,呂太后用事,欲王諸呂,畏大臣有口者,陸生自度不能爭之,迺病免家居。以好畤田地善,[一]可以家焉。有五男,迺出所使越得橐中裝賣千金,[二]分其子,子二百金,令為生產。陸生常安車駟馬,從歌舞鼓琴瑟侍者十人,寶劍直百金,謂其子曰:「與汝約:[三]過汝,汝給吾人馬酒食,極欲,十日而更。所死家,得寶劍車騎侍從者。一歲中往來過他客,率不過[四]再三過,數見不鮮,[五]無久慁公為也。」[六]
효혜제 때 여태후가 일을 쓸 때 여러 여씨를 왕 노릇하게 하고자 하였으나 대신으로 말을 하는 자가 있을 것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육생이 스스로를 헤아려 간쟁하지 못하고 이에 병을 핑계로 직을 면하고 집에 머물렀다. 호치의 밭이 좋았기 때문에 여기에서 가문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월에 사신 가서 얻었던 주머니를 내어 싸여있던 천금을 팔아 그 아들에게 나누어 200금씩을 나누어주고 생산에 삼게 하였다. 육생이 항상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에 노래하고 춤추며, 고문고와 비파를 연주하며 모시는 자 10명을 따르게 하고, 보검이 100금의 가치가 있었다. 그 아들에게 말하기를 “너희와 약속하건데 너희를 지나치면 너희들은 내 사람과 말에게 술과 음식을 주어 욕심을 지극히 하고 10일로 바꿀 것이다. 죽는 집에서 보검과 수레와 시종을 얻으라. 1년 중에 왕래하면 다른 객을 지날 것이니 모두 두세 번을 지남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여러 번 보면 새롭지 않으니 오래하여 너희들을 근심하게 하는 것은 없게 할 것이다.” 했다.
[一] 正義畤音止。雍州縣也。
[一] 【正義】 ‘畤(재터 치)’의 음은 ‘止’이다. 옹주현이다.
[二] 正義漢制一金直千貫。
[二] 【正義】 한 나라 제도에 一金은 바로 천관이다.
[三] 集解徐廣曰:「汝,一作『公』。」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汝’는 한편으로 ‘公’이라 쓴다.” 했다.
[四] 索隱率音律。過音戈。
[四] 【索隱】 ‘率’의 음은 ‘律’이다. ‘過’의 음은 ‘戈’이다.
[五] 索隱數見音朔現。謂時時來見汝也。不鮮,言必令鮮美作食,莫令見不鮮之物也。漢書作「數擊鮮」,如淳云「新殺曰鮮」。
[五] 【索隱】 ‘數見’은 ‘朔現’이다. 때때로 와서 너희를 보겠다. 말한 것이다. ‘不鮮’은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을 짓게 하고, 신선하지 않은 물건을 보게 하지 않게 함을 말한 것이다. 『한서』에 “數擊鮮” 썼는데 여순이 말하기를 “새로 잡은 것을 ‘鮮’이라 한다.” 했다.
[六] 集解韋昭曰:「慁,污辱。」 索隱慁,患也。公,賈自謂也。言汝諸子無久厭患公也。
[六] 【集解】 위소가 말하기를 “‘慁’은 더럽고 욕됨이다.” 했다. 【索隱】 ‘慁’은 근심이다. ‘公’은 가 스스로를 말한다. 너희 여러 아들이 오래하여 나를 싫어하고 근심함이 없게 함을 말한 것이다.
呂太后時,王諸呂,諸呂擅權,欲劫少主,危劉氏。右丞相陳平患之,力不能爭,恐禍及己,常燕居深念。陸生往請,[一]直入坐,而陳丞相方深念,[二]不時見陸生。陸生曰:「何念之深也?」陳平曰:「生揣我何念?」[三]陸生曰:「足下位為上相,食三萬戶[四]侯,可謂極富貴無欲矣。然有憂念,不過患諸呂、少主耳。」陳平曰:「然。為之柰何?」陸生曰:「天下安,注意相;天下危,注意將。將相和調,則士務附;士務附,[五]天下雖有變,即權不分。為社稷計,在兩君掌握耳。臣常欲謂太尉絳侯,絳侯與我戲,易吾言。君何不交驩太尉,深相結?」為陳平畫呂氏數事。陳平用其計,迺以五百金為絳侯壽,厚具樂飲;太尉亦報如之。此兩人深相結,則呂氏謀益衰。陳平迺以奴婢百人,車馬五十乘,錢五百萬,遺陸生為飲食費。陸生以此游漢廷公卿閒,名聲藉甚。[六]
여 태후 때 여러 여씨가 왕 노릇하였는데 여러 여씨가 권력을 함부로 하여 어린 황제를 겁주고, 유씨를 위태롭게 하고자 하였다. 우승상 진평이 그것을 근심하나 힘써 간쟁하지 못하고 화가 자기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항상 한가롭게 지낼 때 깊이 생각하였다. 육생이 가기를 청하고 곧바로 들어가 앉았는데 진승상이 막 깊은 생각을 하여 이 육생을 보지 못하였다. 육생이 말하기를 “무슨 생각을 깊이합니까?” 하니 진평이 말하기를 “육생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헤아릴 수 있겠는가?” 하니 육생이 말하기를 “그대의 지위는 상상(우승상)이 되고 식읍 3만호의 후인데 지극히 부귀하나 욕심이 없다 말할 만합니다.
그러나 근심하는 생각은 여러 여씨와 어린 황제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했다. 진평이 말하기를 “그러합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했다. 육생이 말하기를 “천하는 편안하면 뜻이 승상에게 뜻을 두지만, 천하가 위태로우면 장군에게 뜻을 둡니다. 장군과 재상이 조화로우면 곧 선비는 힘써 따를 것이니 천하가 비록 변함이 있어도 곧 권력은 나누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직을 위한 계책은 두 군(재상과 장군)이 장악함에 있을 뿐입니다. 신이 평소에 태위 강후에게 말하고자 하였는데 강후는 나와 희롱하니 사이라서 내 말을 쉽게 여길 것입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태위와 사귀기를 기쁘게 하여 깊이 서로 맺지 않으십니까?” 했다. 진평을 위하여 여씨의 몇 가지 일을 계획하였다. 진평이 그 계책을 써서 500금으로써 강후의 수명을 축원하고 후하게 갖추어 즐겁게 마셨다. 태위가 답하기를 같이 했다. 이 두 사람이 깊이 서로 맺으니 곧 여씨의 꾀함은 더욱 쇠하였다. 진평이 이에 노비 100명, 수레 50승, 동 5백만을 육생에게 주어 음식의 비용으로 삼았다. 육생이 이것으로 한 조정의 공경들 사이에 노닐어 명성이 매우 자자하였다.
[一] 集解漢書音義曰:「請,若問起居。」
[一] 【集解】 『한서음의』에 “‘請’은 기거를 묻는 것과 같은 것이다.” 했다.
[二] 索隱深念,深思之也。
[二] 【索隱】 ‘深念’은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三] 集解孟康曰:「揣,度也。」韋昭曰:「揣音初委反。」
[三] 【集解】 맹강이 말하기를 “‘揣’는 헤아리는 것이다.” 했다. 위소가 말하기를 “‘揣’의 음은 ‘初’와 ‘委’의 反이다.” 했다.
[四] 索隱案:陳平傳食戶五千,以曲逆秦時有三萬戶,恐復業至此,故稱。
[四] 【索隱】 살펴보니 진평이 받은 식읍이 5천호인데 곡역에 진나라 때 3만호를 소유하여 아마도 업을 회복하면 이에 이를 것으로 여겨 일컬은 것이다.
[五] 集解徐廣曰:「務,一作『豫』。」
[五] 【集解】 서광이 말하길르 “‘務’는 한편으로 ‘豫’라고 쓴다.” 했다.
[六] 集解漢書音義曰:「言狼籍甚盛。」
[六] 【集解】 『한서음의』에 “狼藉하다는 말은 매우 성대하다는 말이다.” 했다.
及誅諸呂,立孝文帝,陸生頗有力焉。孝文帝即位,欲使人之南越。陳丞相等乃言陸生為太中大夫,往使尉他,令尉他去黃屋稱制,令比諸侯,皆如意旨。語在南越語中。陸生竟以壽終。
여러 여씨를 죽이고 효문제를 세우는데 육생이 자못 힘씀이 있었다. 효문제가 즉위하여 사신을 남월에 보내고자 하였다. 진 승상(진평) 등이 이에 육생을 말하여 태중대부로 삼아 위타에게 사신 가게하고 위타로 하여금 수레의 누른 덮개 제거하고 황제를 참칭하지 못하게 하고 제후와 나란히 하여 모두 황제의 뜻과 같이 하게 하였다. 말이 남월의 말 가운데 있다. 육생이 천수를 마치고 죽었다.
平原君朱建者,楚人也。故嘗為淮南王黥布相,有罪去,後復事黥布。布欲反時,問平原君,平原君非之,布不聽而聽梁父侯,遂反。[一]漢已誅布,聞平原君諫不與謀,[二]得不誅。語在黥布語中。[三]
평원군 주건은 초 사람이다. 일찍이 회남왕 경포의 재상이 되었으나 죄가 있어 떠났다가 후에 다시 경폴르 섬겼다. 경포가 배반하려 할 때 평원군에게 물었는데 평원군이 그것을 비난하였으나 경포가 듣지 않고 양부후의 말을 듣고 마침내 배반하였다. 한이 경포를 죽이고 나서 평원군이 간쟁하고 모의에 간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듣고 죽이지 않았다. 말이 경포의 말 중에 있다.
[一] 索隱梁父侯,史失名。如淳注漢書云「遂,布臣」,非也。臣瓚曰「布用梁父侯計遂反耳」,其說是也。
[一] 【索隱】 양부후는 역사에서 이름을 잃었다. 여순이 주석한 『한서』에 “‘遂’는 경포의 신하이다.”하나 아니다. 신찬이 말하기를 “경포가 양부후의 계책을 써서 마침내 배반하였을 뿐이다.” 했는데 이 말이 옳다.
[二] 正義與音預。
[二] 【正義】 ‘與’의 음은 ‘預’이다.
[三] 集解黥布列傳無此語。
[三] 【集解】 「경포열전」에는 이 말이 없다.
平原君為人辯有口,刻廉剛直,家於長安。行不苟合,義不取容。辟陽侯行不正,得幸呂太后。時辟陽侯欲知平原君,平原君不肯見。及平原君母死,陸生素與平原君善,過之。平原君家貧,未有以發喪,[一]方假貸服具,陸生令平原君發喪。陸生往見辟陽侯,賀曰:「平原君母死。」辟陽侯曰:「平原君母死,何乃賀我乎?」陸賈曰:「前日君侯欲知平原君,平原君義不知君,以其母故。[二]今其母死,君誠厚送喪,則彼為君死矣。」辟陽侯乃奉百金往稅。[三]列侯貴人以辟陽侯故,往稅凡五百金。
평원군의 사람됨은 말을 잘 하고, 엄격하고 청렴하며 강직하며, 장안에 집이 있었다. 행실은 구차히 영합하지 않았고, 의리에 벗어난 자를 용납하지 않았다. 벽양후는 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여 태후에게 총애를 받았다. 어느 때 벽양후가 평원군을 알고자 하였는데 평원군이 즐겨 보려하지 않았다. 평원군의 어머니가 죽자 육생(육고)이 평소 평원군과 잘 지냈으므로 방문하였다.(조문하였다.) 평원군의 집이 가난하여 초상 난 것을 알리지 못하였는데 의복과 장례도구를 빌리려 하니 육생이 평원군으로 하여금 초상을 알리게 했다. 육생이 가서 벽양후를 보고 축하하며 말하기를 “평원군의 어머니가 죽었습니다.” 하니 벽양후가 말하기를 “평원군의 어머니가 죽었는데 어찌하여 나를 축하합니까?” 했다. 육고가 말하기를 “전날에 군후께서 평원군을 알고자 자였으나 평원군이 의리상 그대를 알려하지 않았던 것은 그 어머니 일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그 어머니가 죽었으니 그대가 진실로 후하게 상례를 치르게 한다면 곧 그가 그대를 위해 죽을 것입니다.” 했다. 병양후가 이에 100금을 받들고 가서 부조하였다. 열후 귀인들이 벽양후의 일로서 가서 부조하니 모두 500금이었다.
[一] 索隱案:劉氏云謂欲葬時,須啟其殯宮,故云「發喪」也。
[一] 【索隱】 살펴보니 유씨가 말하기를 “장례하려 할 때는 반드시 그 관을 모시는 곳을 열기 때문에 ‘發喪’이라 한 것이다.
[二] 集解張晏曰:「相知當同恤災危,母在,故義不知君。」 索隱案:崔浩云「建以母在,義不以身許人也」。
[二] 【集解】 장안이 말하기를 “서로 안다면 마땅히 같이 재앙과 위태로움을 구휼하는데 어머니가 살아 있기 때문에 의리상 그대를 알려하지 않은 것이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최호가 말하기를 “建이 어머니가 생존해 있었기 때문에 의리상 자신으로써 다른 사람을 허여하지 못한 것이다.” 했다.
[三] 集解韋昭曰:「衣服曰稅。稅當為『襚』。」 索隱案:說文「稅,贈終服也」。襚音式芮反,亦音遂。
[三] 【集解】 위소가 말하기를 “의복을 ‘稅’라 하는데 ‘稅’는 마땅히 ‘襚(수의 수)’가 되어야 한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설문』에 “‘稅’는 終服(襚衣)을 주는 것이다.” 했다. ‘襚’의 음은 ‘式’과 ‘芮’의 反이다. 또 음은 ‘遂’이다.
辟陽侯幸呂太后,人或毀辟陽侯於孝惠帝,孝惠帝大怒,下吏,欲誅之。呂太后慚,不可以言。大臣多害辟陽侯行,欲遂誅之。辟陽侯急,因使人欲見平原君。平原君辭曰:「獄急,不敢見君。」迺求見孝惠幸臣閎籍孺,[一]說之曰:「君所以得幸帝,天下莫不聞。今辟陽侯幸太后而下吏,道路皆言君讒,欲殺之。今日辟陽侯誅,旦日太后含怒,亦誅君。何不肉袒為辟陽侯言於帝?帝聽君出辟陽侯,太后大驩。兩主共幸君,君貴富益倍矣。」於是閎籍孺大恐,從其計,言帝,果出辟陽侯。辟陽侯之囚,欲見平原君,平原君不見辟陽侯,辟陽侯以為倍己,大怒。及其成功出之,迺大驚。
벽양후가 여 태후의 총애를 받으니 사람이 혹 벽양후를 효혜제에게 헐뜯었는데 효혜제가 크게 노하여 관리에게 내려주어 죽이려 하였다. 여 태후가 부끄러워하여 말할 수 없었다. 대신들이 많이 벽양후의 행실을 미워하여 끝내 그를 죽이기를 바랐다. 벽양후가 다급하여 사람을 시켜 평원군을 뵙고자 하였다. 평원군이 거절하며 말하기를 “옥사가 급하니 감히 그대를 볼 수 없습니다.” 했다. 이에 벽양후가 효혜제의 사랑하는 신하인 광적유를 만나기를 구하여 설득하여 말하기를 “그대는 황제께서 총애하니 전하가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벽양후가 태후의 총애를 받다 관리에게 내려지니 도로가 모두 그대가 참소하는 말을 하여 그를 죽이고자 한다고 합니다. 지금 벽양후를 죽이면 내일에 태후가 노함을 품고 있다가 또한 그대를 죽일 것입니다. 어찌하여 어깨를 드러내고 벽양후를 위하여 황제께 말하지 않습니까? 황제가 그대의 말을 듣고 벽양후를 내보내면 태후는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두 임금이 같이 그대를 총애할 것이니 그대의 부귀는 배를 더할 것입니다.” 했다. 이에 굉적유가 크게 두려워하여 그 계책을 따라 황제에게 말하니 과연 벽양후를 내보냈다. 벽양후가 가두어졌을 때 평원군을 고자 하였으나, 평원군이 벽양후를 보지 않은 것에 대해 벽양후는 자기를 배반한 것으로 여겨 크게 노하였다. 그 일이 이루여져 나가게 되자 크게 놀랐다.
[一] 索隱案:佞幸傳云高祖時有籍孺,孝惠時有閎孺。今總言「閎籍孺」,誤也。
[一] 【索隱】 『영행전』에 고조 때 적유가 있고, 혜제 때 광유가 있는데 지금 통틀어 ‘광적유’라 말하니 잘못이다.
呂太后崩,大臣誅諸呂,辟陽侯於諸呂至深,[一]而卒不誅。計畫所以全者,皆陸生、平原君之力也。
여태후가 죽고 대신들이 여러 여씨를 죽일 때 벽양후가 여러 여씨들과 지극히 깊었으나 끝내 죽이지 않았다. 계획을 온전히 한 것은 모두 육생과 평원군의 힘이었다.
[一] 集解如淳曰:「辟陽侯與諸呂相親信也,為罪宜誅者至深。」 索隱案:如淳說以為宜誅,非也。小顏云辟陽侯與諸呂相知至深重,得其理也。
[一]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벽양후와 여러 여씨들이 서로 친하고 믿어서 죄가 마땅히 죽임을 당하여야 함이 지극히 깊었다.” 했다. 【索隱】 여순은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여겼으나 아니다. 소안이 말하기를 “벽양후와 여러 여씨들이 서로 아는 것이 지극히 깊고 무거웠다는 것이 그 이치에 맞는 것이다.” 했다.
孝文帝時,淮南厲王殺辟陽侯,以諸呂故。文帝聞其客平原君為計策,使吏捕欲治。聞吏至門,平原君欲自殺。諸子及吏皆曰:「事未可知,何早自殺為?」平原君曰:「我死禍絕,不及而身矣。」遂自剄。孝文帝聞而惜之,曰:「吾無意殺之。」迺召其子,拜為中大夫。[一]使匈奴,單于無禮,迺罵單于,遂死匈奴中。
효문제 때 회남 여왕이 벽양후를 죽였는데 여러 여씨의 일 때문이었다. 문제가 그 객 평원군이 계책을 만들었다는 것을 듣고 관리를 시켜 잡아 다스리려 하였다. 관리가 문에 이르렀다는 것을 듣고 평원군이 스스로 죽고자 하였다. 여러 아들과 관리가 모두 말하기를 “일은 알 수 없는데 어찌하여 일찍 스스로 죽으려 합니까?” 했다. 평원군이 말하기를 “내가 죽어 화를 끊어야 너희들 몸에 미치지 않는다.” 하고는 마침내 스스로 목울 찔렀다. 효문제가 듣고 애석하게 여겨 말하기를 “내가 그를 죽이려는 뜻은 없었다.” 하고는 이에 그 아들을 불러 중대부로 삼았다. 흉노에 사신 갔는데 단우가 무례하니 이에 단우를 욕하다 마침내 흉노에서 죽었다.
[一] 索隱案:下文所謂與太史公善者。
[一] 【索隱】 살펴보니 아래 글에 이른바 태사공과 잘 지냈다는 것이다.
初,沛公引兵過陳留,酈生踵軍門上謁曰:「高陽賤民酈食其,竊聞沛公暴露,將兵助楚討不義,敬勞從者,願得望見,口畫天下便事。」使者入通,沛公方洗,問使者曰:「何如人也?」使者對曰:「狀貌類大儒,衣儒衣,冠側注。」[一]沛公曰:「為我謝之,言我方以天下為事,未暇見儒人也。」使者出謝曰:「沛公敬謝先生,方以天下為事,未暇見儒人也。」酈生瞋目案劍叱使者曰:「走!復入言沛公,吾高陽酒徒也,[二]非儒人也。」使者懼而失謁,跪拾謁,還走,復入報曰:「客,天下壯士也,叱臣,臣恐,至失謁。曰『走!復入言,而公高陽酒徒也』。」沛公遽雪足杖矛曰:「延客入!」
처음에 패공이 군대를 이끌고 진류를 지나는데 역생이 군문 앞에 가서 명함을 올리고 말하기를 “고양의 천민 역이기가 가만히 햇빛과 이슬을 무릅쓰고 군대를 이끌고 초를 도와 의롭지 않음을 토벌한다는 것을 듣고 공경히 따르는 자를 위로하고 멀리서 바라보며 입으로 천하의 편리한 일을 계획함을 말하기를 원합니다.” 했다. 사자가 들어가 통하니 패공이 막 발을 씻다가 사자에게 묻기를 “어떤 사람인가?”하니 사자가 대답하기를 “생김새는 大儒와 같아 유의를 입고, 측주관을 썼습니다.” 했다. 패공이 말하기를 “나를 위하여 사례하고, 내가 막 천하로서 종사하기 때문에 유학자를 만날 틈이 없다고 말하라.” 했다. 사자가 나와 사례하며 말하기를 “패공이 공경히 선생에게 사례하면서 막 천하로서 일을 삼았기 때문에 유학자를 만날 틈이 없다. 하십니다.” 했다. 역생이 눈을 부릅뜨고 검을 어루만지며 사자를 꾸짖으며 말하기를 “달리라! 다시 들어가 패공에게 나는 고양의 술꾼이지 유학자가 아니라고 말하시오.” 했다. 사자가 두려워하여 명함을 떨어뜨리고 무릎을 꿇고 주워 돌아 달려 들어가 다시 보고하여 말하기를 “객이 천하의 장사인데 신을 질책하니 신이 두려워하여 명함을 떨어뜨림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달려가라! 다시 들어가 말하되 나는 고양의 술꾼이다.’ 했습니다.” 하니 패공이 대번에 발을 씻고 창을 잡고 말하기를 “손님을 들이게 하라.” 했다.
[一] 集解徐廣曰:「側注冠一名高山冠,齊王所服,以賜謁者。」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측주관은 일명 고산관이라고도 하는데 왕이 쓰고 가지런히 하고, 만남을 허락한다.” 했다.
[二] 集解徐廣曰:「一本言『而公高陽酒徒』。」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어떤 본에는 ‘而公高陽酒徒(내가 고양의 술꾼)’이라 말하였다.”
酈生入,揖沛公曰:「足下甚苦,暴衣露冠,將兵助楚討不義,足不何不自喜也?臣願以事見,而曰『吾方以天下為事,未暇見儒人也』。夫足下欲興天下之大事而成天下之大功,而以目皮相,恐失天下之能士。且吾度足下之智不如吾,勇又不如吾。若欲就天下而不相見,竊為足下失之。」沛公謝曰:「鄉者聞先生之容,今見先生之意矣。」迺延而坐之,問所以取天下者。酈生曰:「夫足下欲成大功,不如止陳留。陳留者,天下之據衝也,兵之會地也,積粟數千萬石,城守甚堅。臣素善其令,願為足下說之。不聽臣,臣請為足下殺之,而下陳留。足下將陳留之眾,據陳留之城,而食其積粟,招天下之從兵;從兵已成,足下橫行天下,莫能有害足下者矣。」沛公曰:「敬聞命矣。」
역생이 들어가 패공에게 읍하고 말하기를 “그대는 매우 괴롭습니다. 옷을 햇빛에 쪼이고, 관을 이슬에 드러내며 군대를 이끌고 초를 도와 의롭지 않은 것을 성토하는데 그대는 만족하지 못하고 어찌하여 스스로 기뻐하지 않으십니까? 신은 일로서 뵙기를 원하였는데 ‘내가 바야흐로 천하로써 일을 삼기 때문에 유학자를 볼 틈이 없다.’ 말합니다. 대저 그대는 천하의 대사를 일으켜 천하의 큰 공을 이루고자 하면서 눈과 가죽으로서 살펴보니 천하의 능력있는 선비를 잃을까 두렵습니다. 또 내가 그대의 지혜를 헤아려보니 나보다 못하고, 용기가 또한 나보다 못합니다. 만약 천하에 나아가고자 하면서 서로 보지 않으려 하니 인재를 잃게 될까 안타깝습니다.” 했다. 패공이 사례하며 말하기를 “지난번에 선생의 형상을 듣고, 지금 선생의 뜻을 보았습니다.” 했다. 이에 이어 앉아 천하를 취할 수 있는 조건을 물었다. 역생이 말하기를 “대저 그대가 큰 공을 이루고자 한다면 진류에 머무는 것만 한 것이 없습니다. 진류는 천하의 요충에 기대어 군대가 만나는 땅이며, 쌓인 곡식이 수천만 석이고, 성을 지킴은 매우 견고합니다. 신이 평소에 그 령(진류현령)과 잘 지냈으니 그대를 위해 그를 설득하기를 원합니다. 진류현령이 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신은 그대를 위해 그를 죽여서 진류를 함락시킬 것을 청합니다. 그대가 진류의 무리를 거느리고 진류성에 웅거하여 그 쌓인 곡식을 먹으며 천하의 따르는 군대를 초청하면 따르는 군대가 이미 이루어져 그대는 천하를 횡행하여 누구도 그대를 해칠 수 있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했다. 패공이 말하기를 “공경히 명을 듣습니다.” 했다.
於是酈生迺夜見陳留令,說之曰:「夫秦為無道而天下畔之,今足下與天下從則可以成大功。今獨為亡秦嬰城而堅守,臣竊為足下危之。」陳留令曰:「秦法至重也,不可以妄言,妄言者無類,吾不可以應。先生所以教臣者,非臣之意也,願勿復道。」酈生留宿臥,夜半時斬陳留令首,踰城而下報沛公。沛公引兵攻城,縣令首於長竿以示城上人,曰:「趣下,而令頭已斷矣!今後下者必先斬之!」於是陳留人見令已死,遂相率而下沛公。沛公舍陳留南城門上,因其庫兵,食積粟,留出入三月,從兵以萬數,遂入破秦。
이에 역생이 밤에 신류현령을 만나 설득하여 말하기를 “대저 진나라는 무도하여 천하가 그를 배반하였는데 지금 그대가 천하와 함께 따르면 곧 큰 공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홀로 망하는 진나라의 성을 걸고 굳게 지키는 것은 신은 가만히 그대를 위태롭게 한다고 여깁니다.” 했다. 진류현 령이 말하기를 “진나라의 법은 지극히 무거워 망령되이 말할 수 없고, 망령된 말을 하는 자는 차별이 없으니 내가 대답할 수 없습니다, 선생께서 나를 가르치는 것은 나의 뜻이 아니니 다시 말하지 말기를 원합니다.” 했다. 역생이 머물러 잠자려 누웠다가 한 밤중에 진류현 령의 머리를 베어 성을 넘어 내려가 패공에게 보고하였다. 패공이 군대를 이끌고 성을 공격하며 현령의 머리를 긴 장대에 달아 성위의 사람들에게 보이며 말하기를 “달려와 항복하라 현령의 머리가 이미 잘려졌다! 지금 이후 항복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머리를 벨 것이다!” 했다. 이에 진류 사람들이 현령이 이미 죽었음을 보고 마침내 서로 거느리고 패공에게 항복하였다. 패공이 진류성 남쪽 성문 위에 머물면서 그 창고의 병기를 쓰고, 쌓인 곡식을 먹으며 3개월을 머물자 따르는 군대가 만여 명으로 마침내 들어가 진나라를 깨트렸다.
太史公曰:世之傳酈生書,多曰漢王已拔三秦,東擊項籍而引軍於鞏洛之閒,酈生被儒衣往說漢王。迺非也。自沛公未入關,與項羽別而至高陽,得酈生兄弟。余讀陸生新語書十二篇,固當世之辯士。至平原君子與余善,是以得具論之。
태사공이 말하기를 “세상에 전하는 역생의 글은 많이 한왕이 삼진을 함락하고, 동쪽으로 항적을 치고, 공과 낙의 사이에서 군대를 이끌 때 역생이 유생의 옷을 입고 가서 한왕을 유세한 것으로 말한다. 아니다. 패공이 함곡관을 들어감으로부터 항우와 별도로 고양에 이르고, 역생 형제를 얻었다. 내가 육생의 『신어』 12편을 읽었는데 진실로 당시의 말 잘하는 선비였다. 평원군의 아들과 내가 잘 지냈는데 이 때문에 갖추어 논할 수 있었다.” 했다.
【索隱述贊】 廣野大度,始冠側注。踵門長揖,深器重遇。說齊歷下,趣鼎何懼。陸賈使越,尉佗懾怖,相說國安,書成主悟。
【索隱述贊】 광야에 큰 법도로 처음 측주관을 썼다. 문을 따라 길게 읍하니 깊이 재능으로 무겁게 대우하였다. 제를 역하에서 유세하여 솥에 나아가니 무엇이 두려울까? 육고가 월에 사신가니 위타가 두려워하고, 서로 나라의 편안함을 말하고, 글을 이루어 임금을 깨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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