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一百二十
汲鄭列傳第六十
汲黯字長孺,濮陽人也。其先有寵於古之衛君。[一]至黯七世,世為卿大夫。黯以父任,孝景時為太子洗馬,以莊見憚。[二]孝景帝崩,太子即位,黯為謁者。東越相攻,上使黯往視之。不至,至吳而還,報曰:「越人相攻,固其俗然,不足以辱天子之使。」河內失火,延燒千餘家,上使黯往視之。還報曰:「家人失火,屋比[三]延燒,不足憂也。臣過河南,河南貧人傷水旱萬餘家,或父子相食,臣謹以便宜,持節發河南倉粟以振貧民。臣請歸節,伏矯制之罪。」上賢而釋之,遷為滎陽令。黯恥為令,病歸田里。上聞,乃召拜為中大夫。以數切諫,不得久留內,遷為東海太守。黯學黃老之言,治官理民,好清靜,擇丞史而任之。[四]其治,責大指而已,不苛小。黯多病,臥閨閤內不出。歲餘,東海大治。稱之。上聞,召以為主爵都尉,列於九卿。治務在無為而已,弘大體,不拘文法。
급암의 자는 장유이니 복양 사람이다. 그 선조가 옛날 위나라 임금의 총애를 받았다. 급암까지 7대에 이르러 대대로 경대부가 되었다. 급암은 아버지의 맡은 일로서 효경제 때 세마가 되었는데 엄숙하여 다른 사람이 꺼렸다, 효경제가 죽자 태자가 즉위하였는데 급암은 謁者가 되었다. 동월(과 구월)이 서로 공격하니 천자가 급암으로 하여금 가서 보게 하였다. 급암이 이르지 않고 오에 갔다가 돌아와 보고하기를 “월 사람들이 서로 공격하는 것은 진실로 그 풍속이 그러해서이니 천자의 사자를 욕되게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했다. 하내에 불이 나 천여가가 연이어 불타니 천자가 급암으로 하여금 가서 보게 하였다. 돌아와 보고하기를 “사람들이 잘못하여 불을 낸 것으로 연이어 있는 집들이 불탔으니 근심할 거리가 못됩니다. 신이 하남을 지나는데 하남의 가난한 사람들이 홍수와 가뭄으로 피해를 입은 이가 만 여가 였는데 혹은 부자가 서로 잡아먹으니 신이 삼가 편의적으로 부절을 지니고 하남의 곡식창고를 열어 빈민을 구휼하였습니다. 신이 부절을 돌려드리고 엎드려 천자의 명을 교만하게 처리한 죄를 청합니다.“ 했다. 천자가 어질게 여겨 풀어주고 관직을 옮겨 형양 령으로 삼았다. 급암이 령이 된 것을 부끄럽게 여겨 병을 핑계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천자가 듣고 이에 불러 중대부를 삼았다. 여러 번 간절하게 간하므로 안에(내직에) 오래동안 머물지 못하고 옮겨 동해태수가 되었다. 급암이 황노의 말을 배워 관리를 다스리고, 백성을 다스리는데 말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여 승과 사를 가려 뽑아 그들에게 맡겼다. 그의 다스림은 큰 것을 지적할 뿐 작은 것에 까다롭지 않았다. 급암은 병이 많아 방안에 누워 나가지 않았다. 1년정도 지나자 동해가 잘 다스려져 그를 칭찬하니 천자가 그것을 듣고 불ㄹ 주작도위로 삼고 九卿에 반열하였다. 다스림에 무위에 있음을 힘쓸 뿐 대체를 크게 하고 법의 문구에 구애받지 않았다.
[一] 集解文穎曰:「六國時,衛但稱君。」
[一] 【集解】 문영이 말하기를 “6국 때 위나라는 단지 君을 일컳었을 뿐이다.” 했다.
[二] 索隱按:莊者,嚴也,謂嚴威也。按:自漢明帝諱莊,故已後「莊」皆云「嚴」。
[二] 【索隱】 살펴보니 ‘莊(풀 성할 장)’은 엄숙함이니 엄숙하여 위엄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살펴보니 한나라 명제부터 ‘莊’을 피휘하여 이후 ‘莊’은 모두 ‘嚴’이라 했다.
[三] 索隱音鼻。
[三] 【索隱】 음은 ‘鼻’이다.
[四] 集解如淳曰:「律,太守、都尉、諸侯內史史各一人,卒史書佐各十人。今總言『丞史』,或以為擇郡丞及史使任之。鄭當時為大農,推官屬丞史,亦是也。」
[四]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律’에 태수, 도위, 제후, 내사사 각 1명, 졸사, 서좌 각 10명이라 하였다. 지금 총합하여 ‘승사’라 하니 혹 군의 승과 사를 가려 뽑아 그들에게 맡겼을 것이다. 정당시가 대농이 되어 관속과 승사를 추천하였다 했으니 또한 옳다.” 했다.
黯為人性倨,少禮,面折,不能容人之過。合己者善待之,不合己者不能忍見,士亦以此不附焉。然好學,游俠,任氣節,內行脩絜,好直諫,數犯主之顏色,常慕傅柏、袁盎之為人也。[一]善灌夫、鄭當時及宗正劉棄。[二]亦以數直諫,不得久居位。
급암의 인성은 거만하고 예를 소홀히 하고, 얼굴을 마주하여 꾸짖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납하지 않았다. 자기에게 합하는 자는 잘 대우하고 자기에게 부합하지 않는 자는 참고 보지 않았으며 士 또한 이로써 하여 아부하지 않았다. 그러나 배움을 좋아하고, 협객과 노닐며 기개와 절개를 지녔으며, 안으로 행실을 닦아 깨끗하고 직간을 좋아하여 여러 번 천자의 안색을 범하였고, 평소 부백과 원앙의 사람됨을 사모하였다. 관부, 정당시와 종정, 유기와 잘 지냈다. 또한 자주 직간하였기 때문에 지위에 오래 동안 있지 못하였다.
[一] 集解應劭曰:「傅柏,梁人,為孝王將,素伉直。」 索隱傅音付,人姓。柏,名。為梁將也。
[一] 【集解】 응소가 말하기를 “부백은 양나라 사람으로 용왕의 장군이 되었는데 평소정직하였다.” 했다. 【索隱】 ‘傅’의 음은 ‘付(줄 부)’이니 사람의 성이다. ‘栢’은 이름이다. 양나라 장군이 되었다.
[二] 集解徐廣曰:「一云名棄疾。」 索隱漢書名棄疾。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기질’이라 이름한다.” 했다. 【索隱】 『한서』에는 “이름이 ‘기질’이다.” 했다.
當是時,太后弟武安侯蚡為丞相,中二千石來拜謁,蚡不為禮。然黯見蚡未嘗拜,常揖之。天子方招文學儒者,上曰吾欲云云,[一]黯對曰:「陛下內多欲而外施仁義,柰何欲效唐虞之治乎!」上默然,怒,變色而罷朝。公卿皆為黯懼。上退,謂左右曰:「甚矣,汲黯之戇也!」[二]群臣或數黯,黯曰:「天子置公卿輔弼之臣,寧令從諛承意,陷主於不義乎?且已在其位,縱愛身,柰辱朝廷何!」
당시 태후의 동생 무안후 전분이 승상이 되었는데 2천 석의 봉록을 받는 관리가 와서 절하고 뵈어도 전분은 예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급암은 전분을 만나도 일찍이 절하지 않고 항상 읍하였다. 천자가 막 학문하는 유학자를 불러들이려 하면서 천자가 이러저러 하고자 한다. 하니 급암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안으로는 많은 것을 바라면서 밖으로는 仁義를 베푸려 하시는데 어떻게 당우의 정치를 본받을 수 있으리오!” 했다. 천자가 말을 않다가 노하여 얼굴색이 변하면서 조회를 파하였다. 공경이 모두 급암을 두려워하였다. 천자가 물러가서 좌우에게 말하기를 “심하다. 급암의 외고집이여!”했다. 여러 신하들이 혹 급암을 꾸짖으니 급암이 말하기를 “천자가 공경을 두어 보필하는 신하로 삼았는데 어찌 (천자에게)아첨하고 뜻을 따라 임금을 의롭지 않는 것에 빠트리겠는가? 또 이미 그 지위에 있으면서 자신을 놓아두고 아껴서 어찌 조정을 욕되게 할 수 있겠는가!” 했다.
[一] 集解張晏曰:「所言欲施仁義也。」
[一] 【集解】 장안이 말하기를 “仁義를 ㅂ풀고자 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했다.
[二] 索隱戇,愚也。音陟降反也。
[二] 【索隱】 ‘戇(어리석을 당)’은 어리석음이다. 음은 ‘陟’과 ‘降’의 反이다.
黯多病,病且滿三月,上常賜告者數,[一]終不愈。最後病,莊助為請告。[二]上曰:「汲黯何如人哉?」助曰:「使黯任職居官,無以踰人。[三]然至其輔少主,守城深堅,招之不來,麾之不去,雖自謂賁育亦不能奪之矣。」上曰:「然。古有社稷之臣,至如黯,近之矣。」
급암이 병이 많았는데 병이 들어 병가 3개월을 채우니 천자가 항상 알리면 여러 번 병가를 내렸는데도 끝내 낫지 않았다. 최후의 병에는 장조가 알려 병가를 청하였다. 천자가 말하기를 “급암은 어떤 사람인가?”하니 장조가 말하기를 “직책을 맡겨 관직에 있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어린 군주를 보필하고 성을 지키기를 깊고 굳건히 하여 불러도 오지 않고, 깃발을 흔들어 불러도 가지 않았으니 비록 스스로 왕분과 훈육같은 용맹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했다. 천자가 말하기를 “그러하다. 옛날에 사직의 신하가 있었다 하더니 급암과 같은 이에 이르러서 그들에 가까울 것이다.” 했다.
[一] 集解如淳曰:「杜欽所謂『病滿賜告詔恩』也。數者,非一也。或曰賜告,得去官歸家;與告,居官不視事。」索隱數音所角反。按:注「賜告,得去官家居;予告,居官不視事」也。
[一]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두흠이 말한 ‘병가를 다 쓰고서 은혜를 깨닫는다.’하는 것이다. ‘數(자주 삭)’은 한 번이 아니다. 혹은 ‘賜告’는 관직을 떠나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했고, ‘與告’는 관직에 있으면서 일을 보지 않는 것이다.” 했다. 【索隱】 ‘數’의 음은 ‘所’와 ‘角’의 反이다. 살펴보니 주에 “‘賜告’는 관직을 집에 있는 것이라 하고, ‘予告’응 관직에 있으면서 일을 보지 안흔 것이다.” 했다.
[二] 集解徐廣曰:「最,一作『其』也。」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最’는 한편으로 ‘其’라 쓴다.” 했다.
[三] 索隱踰音庾。案:漢書作「瘉」,瘉猶勝也。此作「踰」,踰謂越過人也。
[三] 【索隱】 ‘踰’의 음은 ‘庾(곳집 유)’이다. 살펴보니 『한서』에는 ‘瘉’라 썼는데 ‘瘉’는 ‘勝’과 같다. 여기서는 ‘踰’라 썼는데 ‘踰’는 다른 사람보다 나음을 말한다.
大將軍青侍中,上踞廁而視之。[一]丞相弘燕見,上或時不冠。至如黯見,上不冠不見也。上嘗坐武帳中,[二]黯前奏事,上不冠,望見黯,避帳中,使人可其奏。其見敬禮如此。
대장군 위청이 시중이었을 때 천자가 침상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그를 보았다. 승상 공손홍을 연회에서 볼 때 천자는 간혹 관을 쓰지 않았다. 급암을 만날 경우에 이르러서 천자가 관을 쓰지 않으면 만나지 않았다. 천자가 일찍이 막사에 앉아 있을 때 급암이 앞에서 일을 아뢰려 하는데 천자가 관을 쓰지 않고 있었다. 천자가 급암을 바라보고는 막사 안으로 피한 후 사람을 시켜 아뢸 수 있게 하였다. 공경하고 예로 대함이 이와 같았다.
[一] 集解如淳曰:「廁音側,謂床邊,踞床視之。一云溷廁也。廁,床邊側。」
[一]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厠(뒷간 측)’의 음은 ‘則’인데 침상의 가장자리이니 침상에 걸터앉아 그를 본 것이다. 한편 ‘혼측’이라 한다. ‘廁’은 침상의 가장자리이다.” 했다.
[二] 集解應劭曰:「武帳,織成為武士象也。」孟康曰:「今御武帳,置兵蘭五兵於帳中。」韋昭曰:「以武名之,示威。」
[二] 【集解】 응소가 말하기를 “‘武帳’은 무사의 형상을 짜서 새겨 넣은 것이다.” 했다. 맹강이 말하기를 “지금 무장에 행차하는데, 막사 안 병기를 거는 틀에 다섯가지 병기를 둔 것이다.” 했다. 위소가 말하기를 “무로서 이름하여 위엄을 보인 것이다.” 했다.
張湯方以更定律令為廷尉,黯數質責湯於上前,曰:「公為正卿,上不能褒先帝之功業,下不能抑天下之邪心,安國富民,使囹圄空虛,二者無一焉。非苦就行,放析就功,何乃取高皇帝約束紛更之為?[一]公以此無種矣。」黯時與湯論議,湯辯常在文深小苛,黯伉厲守高不能屈,忿發罵曰:「天下謂刀筆吏不可以為公卿,果然。必湯也,令天下重足而立,側目而視矣!」
장탕이 막 율령을 고쳐 정한 것으로 정위가 되었는데 급암이 여러 번 천자 앞에서 질책하여 말하기를 “공이 정경이 되어 위로는 先帝의 功業을 기리지 못하고 아래로는 천하의 간사한 마음을 억눌러 나라를 편안하게 하고, 백성을 부유하게 하며 감옥을 비우게 하겠다. 하고는 두 가지 중 여기에 한 가지도 없다. 잘못된 일과 괴로운 일로 행실을 이루고, 놓아두고 쪼개서 공에 나아갔으니 어찌 고황제의 약속을 취하여 혼란스럽게 하고 바꾸었다고 하지 않겠는가? 공이 이 때문에 후손이 없을 것이다.” 했다. 급암이 때로 장탕과 논의하였는데 장탕이 말하는 것은 항상 문장을 깊이하며, 작고 가혹함에 있었고, 급암은 강직하게 높은 뜻을 지켜 굽히지 않아서 성내고 욕하며 말하기를 “천하가 문서를 관리하고 기록하던 관리가 될 수 없다 하였는데 과연 그러하다. 장탕은 천하로 하여금 발을 겹치고 서서, 곁눈질하며 보게 될 것이 틀림없을 것이오!” 했다.
[一] 集解如淳曰:「紛,亂也。」
[一]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紛’은 혼란함이다.” 했다.
是時,漢方征匈奴,招懷四夷。黯務少事,乘上閒,常言與胡和親,無起兵。上方向儒術,尊公孫弘。及事益多,吏民巧弄。[一]上分別文法,湯等數奏決讞[二]以幸。而黯常毀儒,面觸弘等徒懷詐飾智以阿人主取容,而刀筆吏專深文巧詆,[三]陷人於罪,使不得反其真,以勝為功。上愈益貴弘、湯,弘、湯深心疾黯,唯天子亦不說也,欲誅之以事。弘為丞相,乃言上曰:「右內史界部中多貴人宗室,難治,非素重臣不能任,請徙黯為右內史。」為右內史數歲,官事不廢。
이 때 한이 바야흐로 흉노를 정벌하려 하여 四夷를 불러 회유하였다. 급암은 일을 적게 하는 것에 힘썼으나, 천자가 한가한 틈을 타서 항상 오랑캐(흉노)와 화친하고 군대를 일으키지 말 것을 말하였다. 천자가 바야흐로 儒術을 생각하여 공손홍을 높였다. 일이 더욱 많아짐에 이르러 관리와 백성들이 교묘하게 법을 피하고, 함부로 법을 되돌렸다. 천자가 법을 나누고 분별할 때 장탕 등이 자주 평의하여 정한 것을 아뢰는 것으로서 총애를 받았다. 급암이 항상 유학을 비방하고, 면전에서 “공손홍의 무리들이 거짓으로 꾸민 지혜를 품고서 임금에게 아첨하여 용납됨을 취하며, 문서를 관리하고 기록하는 관리들은 글을 깊고 공교롭게 하고 들추어내어 사람을 죄에 빠트려 그 진실에 돌아가지 못하게 하여 이기는 것으로서 공을 삼는다.” 하였다. 천자가 더욱 공손홍, 장탕을 귀하게 여기니 공손홍과 장탕이 마음 속 깊이 급암을 미워하였고, 천자 또한 좋아하지 않고 그 일로서 그를 죽이려 하였다. 공손홍이 승상이 되자 이에 천자에게 말하기를 “우내사 안에는 귀인과 종실이 많아 다스리기 어려워 평소 중신들에게 맡길 수 없었으니 급암을 옮겨 우내사로 삼기를 청합니다.” 했다. 우내사가 된지 몇 해가 지났는데도 관의 일이 무너지지 않았다.
[一] 索隱音路洞反。
[一] 【索隱】 음은 ‘路’와 ‘洞’의 反이다.
[二] 索隱音魚列反。
[二] 【索隱】 음은 ‘魚’와 ‘列’의 反이다.
[三] 索隱音丁禮反。
[三] 【索隱】 음은 ‘丁’과 ‘禮’의 反이다.
大將軍青既益尊,姊為皇后,然黯與亢禮。人或說黯曰:「自天子欲群臣下大將軍,大將軍尊重益貴,君不可以不拜。」黯曰:「夫以大將軍有揖客,反不重邪?」大將軍聞,愈賢黯,數請問國家朝廷所疑,遇黯過於平生。淮南王謀反,憚黯,曰:「好直諫,守節死義,難惑以非。至如說丞相弘,如發蒙振落耳。」 天子既數征匈奴有功,黯之言益不用。始黯列為九卿,而公孫弘、張湯為小吏。及弘、湯稍益貴,與黯同位,黯又非毀弘、湯等。已而弘至丞相,封為侯;湯至御史大夫;故黯時丞相史皆與黯同列,或尊用過之。黯褊心,不能無少望,見上,前言曰:「陛下用群臣如積薪耳,後來者居上。」上默然。有閒黯罷,上曰:「人果不可以無學,觀黯之言也日益甚。」
대장군 위청이 높음을 더하고, 누나가 황후가 되었으나 급암은 대등한 예로 대하였다. 어떤 사람이 급암에게 말하기를 “본래 천자는 여러 신하들이 대장군에게 낮출 것을 바랐는데 대장군이 존중되고 더욱 귀하게 되었으니 그대는 절하지 않으면 안된다.” 했다. 급암이 말하기를 “대저 대장군으로서 읍하는 객이 있는 것이 도리어 중하지 않은가?”하니 대장군이 듣고 더욱 급암을 어질게 여겨 자주 청하여 국가와 조정의 의심나는 바를 묻고 급암을 평소보다 낫게 대우하였다. 회남왕이 모반하면서 급암을 꺼려 말하기를 “직간하기를 좋아하고, 절개를 지키다 의리에 죽을 사람이니 잘못하게 하는 것으로서 미혹시키기 어렵다. 승상 공손홍에게 말함에 이르러서는 아주 쉬운 일이다.” 했다. 천자가 이미 여러 번 흉노를 정벌하여 공이 있으니 급암의 말을 더욱 쓰지 않았다. 처음에 급암은 반열이 구경이 되고, 공손홍과 장탕이 하급관리였다. 공손홍과 장탕이 점점 더욱 귀해져 급암과 지위가 같아지자 급암이 또한 공손홍과 장탕 등을 비방하지 않았다. 이윽고 공손홍이 승상에 이르고 봉해져 후가 되고, 장탕이 어사대부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급암이 승상이었을 때 사가 모두 급암과 반열을 같이하고, 혹은 높이 쓰임이 그 보다 나았다. 급암이 마음이 좁아 조금의 원망이 없을 수 없어 천자를 뵙고 앞에서 말하기를 “폐하께서 여러 신하 쓰기를 섶을 쌓듯이 할 뿐으로 뒤에 온 자들이 윗자리에 있습니다.” 했다. 천자가 말이 없었다. 조금 있다가 급암이 그치자 천자가 말하기를 “사람은 과연 배움이 없어서는 안되니 급암의 말을 보니 날로 더욱 심해지는구나.” 했다.
居無何,匈奴渾邪王率眾來降,漢發車二萬乘。縣官無錢,從民貰馬。[一]民或匿馬,馬不具。上怒,欲斬長安令。黯曰:「長安令無罪,獨斬黯,民乃肯出馬。且匈奴畔其主而降漢,漢徐以縣次傳之,何至令天下騷動,罷獘中國而以事夷狄之人乎!」上默然。及渾邪至,賈人與市者,坐當死者五百餘人。
얼마 후 흉노 혼야왕이 무리를 이끌고 와서 항복하니 한이 수레 2만대를 징발하였다. 현관이 돈이 없어 백성으로부터 말을 빌리려하니 백성들이 혹 말을 숨겨 말이 갖추어지지 못하였다. 천자가 노하여 장안 현령을 목 베려 하였다. 급암이 말하기를 “장안 현령은 죄가 없으니 다만 저를 목 베시면 백성들이 이에 즐겨 말을 내어놓을 것입니다. 또한 흉노가 그 임금을 배반하고 한에 항복하는데 한은 천천히 현마다 차례로 전하니 어찌 천하로 하여금 소란스럽게 움직이게 하여 중국을 피폐하게 하면서 오랑캐의 사람을 섬김에 이르시는지요!” 했다. 천자가 말이 없었다. 혼야가 이르자 상인들로 시장을 함께 한 자들이 연좌되어 죽음을 당한 자가 500여 명이었다.
黯請閒,見高門,[二]曰:「夫匈奴攻當路塞,絕和親,中國興兵誅之,死傷者不可勝計,而費以巨萬百數。臣愚以為陛下得胡人,皆以為奴婢以賜從軍死事者家;所鹵獲,因予之,以謝天下之苦,塞百姓之心。今縱不能,渾邪率數萬之眾來降,虛府庫賞賜,發良民侍養,譬若奉驕子。愚民安知市買長安中物而文吏繩以為闌出財物于邊關乎?[三]陛下縱不能得匈奴之資以謝天下,又以微文殺無知者五百餘人,是所謂『庇其葉而傷其枝』者也,臣竊為陛下不取也。」上默然,不許,曰:「吾久不聞汲黯之言,今又復妄發矣。」後數月,黯坐小法,會赦免官。於是黯隱於田園。
급암이 한가한 틈을 청하여 고문에서 천자를 뵙고 말하기를 “저 흉노가 길목의 요새를 공격하여 화친을 끊으니 중국이 군대를 일으켜 그들을 죽였는데 죽고 다친 자를 이루 헤아릴 수 없고, 거만 백수를 허비하였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폐하께서 오랑캐를 얻어 모두 노비로 삼아 종군하여 일에 죽은 자들의 집에 내리시고, 노획한 것도 인하여 그들에게 주어 천하의 괴로움을 위로하여 백성의 마음을 충만하게 할 것으로 여겼습니다. 지금 어지러워 할 수 없는데도 혼야가 거느린 수만의 무리가 와서 항복하니 창고를 비워 상을 내리고 양민을 징발하여 모시고 받들게 하니 비유하면 교만한 아들을 받드는 것과 같습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시장에서 장안의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법관은 변경의 관문에서 나온 것으로 여긴다는 것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폐하께서 가령 흉노의 재물을 얻어 천하를 위로할 수 없을 지라도 또한 하찮은 법조문으로 알지 못하는 백성 500여 명을 죽인다는 것은 이는 이른 바 ‘그 잎을 보호하려다 그 가지를 상하게 한다.’는 것이니 신은 폐하를 위하여 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했다. 천자가 묵묵히 있다가 허락하지 않고 말하기를 “내가 오래동안 급암의 말을 들었는데 지금 또 다시 망녕된 말을 한다.” 하고는 몇 개월 후 급암이 작은 법에 연좌되자 용서하고 관직을 면하였다. 이에 급암이 전원에 은거하였다.
[一] 索隱貰音時夜反。貰,賒也。鄒氏音勢。
[一] 【索隱】 ‘貰’의 음은 ‘時’와 ‘夜’의 反이다. ‘貰’는 외상으로 사는 것이다. 추씨는 “음이 ‘勢’이다.” 했다.
[二] 集解如淳曰:「黃圖未央宮中有高門殿。」
[二]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황도 미앙궁 난에 고문전이 있다.” 했다.
[三] 集解應劭曰:「闌,妄也。律,胡市,吏民不得持兵器出關。雖於京師市買,其法一也。」瓚曰:「無符傳出入為闌。」
[三] 【集解】 응소가 말하기를 “‘闌(가로막을 란)’은 망년됨이다. 律 胡市 조항에는 관리와 백성들이 병기를 지니고 관을 나갈 수 없다. 비록 수도에서 사고 팔아도 그 법은 한 가지이다.” 했다. 찬이 말하기를 “‘부’와 ‘전’ 없이 나고 드는 것을 ‘闌’이라 한다.” 했다.
居數年,會更五銖錢,[一]民多盜鑄錢,楚地尤甚。上以為淮陽,楚地之郊,乃召拜黯為淮陽太守。黯伏謝不受印,詔數彊予,然後奉詔。詔召見黯,黯為上泣曰:「臣自以為填溝壑,不復見陛下,不意陛下復收用之。臣常有狗馬病,力不能任郡事,臣願為中郎,出入禁闥,補過拾遺,臣之願也。」上曰:「君薄淮陽邪?吾今召君矣。[二]顧淮陽吏民不相得,吾徒得君之重,臥而治之。」黯既辭行,過大行李息,曰:「黯棄居郡,不得與朝廷議也。然御史大夫張湯智足以拒諫,詐足以飾非,務巧佞之語,辯數之辭,非肯正為天下言,專阿主意。主意所不欲,因而毀之;主意所欲,因而譽之。好興事,舞文法,[三]內懷詐以御主心,外挾賊吏以為威重。公列九卿,不早言之,公與之俱受其僇矣。」息畏湯,終不敢言。黯居郡如故治,淮陽政清。後張湯果敗,上聞黯與息言,抵息罪。令黯以諸侯相秩居淮陽。[四]七歲而卒。[五]
몇 년이 지난 후 마침 오수전을 바꾸는데 백성들이 몰래 돈을 주조하는 이가 많았는데 초 땅이 더욱 심하였다. 천자가 회양은 초 땅의 교외라서 이에 급암을 불러 회양태수로 삼았다. 급암이 엎드려 사양하고 인장을 받지 않자 조칙을 자주 내려 억지로 주니 그런 후에 조칙을 받들었다. 천자가 조칙을 내려 급암을 불러 보았는데 급암이 천자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신이 스스로 도랑과 골짜기를 메꾸고 있어(시골에서 조용히 엎드려 지내다) 다시 폐하를 뵙지 못할 것으로 여겼는데 생각하지 않게 폐하께서 다시 거두어 등용하셨습니다. 신이 평소 병이 있어 힘으로 군의 일을 감당할 수 없으니 원컨대 신은 중랑이 되어 대궐을 출입하면서 허물을 보충하고, 빠트린 것을 줍는 것이 신의 원하는 것입니다.” 했다. 천자가 말하기를 “그대는 회양을 보잘 것 없다고 여기는가? 내가 지금 그대를 부르겠다. 돌아보건데 회양의 관리와 백성들이 서로 (화합함을) 얻지 못하니 나는 다만 그대의 중함을 얻었으니 누워서 그것을 다스릴 것이다.” 했다. 급암이 하직하고 떠났는데 대행 이식을 지나면서 말하기를 “내가 버려져서 군에 머물러 조정의 논의에 참여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사대부 장탕은 지혜가 간함을 물리치기에 충분하고, 거짓으로 잘못을 꾸미기에 충분하고, 교묘하게 망아첨하는 말에 힘쓰고, 변명하고 술수의 말을 잘하며, 즐겨 바르게 천하를 위해 말하지 않고, 오직 임금의 뜻에 아첨한다. 임금의 뜻에 바라지 않는 것으로 인하여 훼방하고, 임금이 바라는 것으로 칭찬한다. 일을 일으키는 것을 좋아하고 법을 춤추게 하여 안으로는 거짓을 품고 임금의 마음에 영합하고 밖으로는 백성을 해치는 관리를 끼는 것으로 위엄이 중함을 삼는다. 공은 구경에 반열 되었는데도 일찍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면 공이 함께 욕을 받을 것이다.” 했다. 이식이 장탕을 두려워하여 끝내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급암이 군에 살면서 옛날과 겉이 다스리니 회양의 정사가 맑아졌다, 후에 장탕이 과연 무너졌다. 천자가 금암과 이식의 말을 듣고 이식에게 죄를 주었다. 급암으로 하여금 제후의 재상 직급으로 회양에 살게 하는데 7년 만에 죽었다.
[一] 集解徐廣曰:「元狩五年行五銖錢。」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원수 5년 오수전을 유통시켰다.” 했다.
[二] 索隱今即今也。謂今日後即召君。
[二] 【索隱】 ‘今’은 곧이라 함이니 오늘 후 바로 그대를 부르겠다. 함을 말한다.
[三] 集解如淳曰:「舞猶弄也。」
[三]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舞’는 희롱과 같은 것이다.
[四] 集解如淳曰:「諸侯王相在郡守上,秩真二千石。律,真二千石俸月二萬,二千石月萬六千。」
[四]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제후왕의 재상은 군수 위에 있는데 진봉록이 2천석이다. 律에 진이천석은 월 이만이고, 이천석은 월 1만6천이다.” 했다.
[五] 集解徐廣曰:「元鼎五年。」
[五]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원정 5년이다.” 했다.
卒後,上以黯故,官其弟汲仁至九卿,子汲偃至諸侯相。黯姑姊子司馬安亦少與黯為太子洗馬。安文深巧善宦,官四至九卿,以河南太守卒。昆弟以安故,同時至二千石者十人。濮陽段宏[一]始事蓋侯信,[二]信任宏,宏亦再至九卿。然衛人仕者皆嚴憚汲黯,出其下。
죽고 난 후 천자가 급암의 일 때문에 그 동생 급인에게 관직을 주었는데 7경에 이르고, 아들 급언은 제후의 재상에 이르렀다. 급암의 고모의 아들 사마안이 또한 어려서 급암과 함께 태자 세마가 되었다. 사마안은 문장이 깊고 교묘하며, 벼슬살이를 잘하여 관직이 네 번 9경에 이르렀는데 하남태수로 죽었다. 형제 사마안의 일 때문에 동시에 2천석의 봉록을 받는 이가 10명에 이르렀다. 복양사람 단굉은 처음 개후 신을 섬겼는데 신이 단굉을 신임하여 단굉이 또한 두 번 9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위나라 사람으로 벼슬하는 자는 모두 급암을 엄격히 섬기고 어려워하여 그 아랫자리에서 나왔다.
[一] 索隱段客。案:漢書作「段宏」。
[一] 【索隱】 단객이다. 살펴보니 『한서』에는 “단굉”이라 썼다.
[二] 集解徐廣曰:「太后兄王信。」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태후의 형 왕신이다.” 했다.
鄭當時者,字莊,陳人也。其先鄭君[一]嘗為項籍將;籍死,已而屬漢。高祖令諸故項籍臣名籍,鄭君獨不奉詔。詔盡拜名籍者為大夫,而逐鄭君。鄭君死孝文時。
정당시는 자가 장이니 진나라 사람이다. 그 아버지는 정군인데 일찍이 항적의 장군이 되었다. 항적이 죽자 이윽고 한에 속하였다. 고조가 여러 옛 항적의 신하들로 하여금 항적이라는 이름을 부르게 하였는데 정군만은 유독 조칙을 받들지 않았다. 조칙으로 항적이라 부른 자들은 모두 대부로 삼았고, 정군을 내 쫒았다. 정군은 효문제 대 죽었다.
[一] 集解漢書音義曰:「當時父。」
[一] 【集解】 「한서음의」에 “정당시의 아버지이다.” 했다.
鄭莊以任俠自喜,脫張羽於厄,[一]聲聞梁楚之閒。孝景時,為太子舍人。每五日洗沐,常置驛馬安諸郊,[二]存諸故人,請謝賓客,夜以繼日,至其明旦,常恐不遍。莊好黃老之言,其慕長者如恐不見。年少官薄,然其游知交皆其大父行,天下有名之士也。武帝立,莊稍遷為魯中尉、濟南太守、江都相,至九卿為右內史。以武安侯魏其時議,貶秩為詹事,遷為大農令。
정장은 의협을 행하는 것을 스스로 좋아하여 장우를 어려운 일에서 벗어나게 해 주어 명성이 양과 초 사이에 떨쳤다. 효경제 때 태자 사인이 되었다. 매 5일에 머리감고, 몸을 깨끗이 씻고, 항상 역마를 장안 교외에 두고 여러 벗들을 불러들이고, 빈객을 청하여 사례하는데 밤과 낮에 이어져 그 다음 날 아침에 이르렀는데 항상 두루하지 못함을 두려워하였다. 정장은 황노의 말을 좋아하여 뛰어난 이를 사모하는 것이 마치 뵙지 못함을 두려워하는 듯이 하였다. 나이가 적고, 관직이 하찮았으나 그 노닐며 교유하는 이는 모두 그 할아버지의 행실을 알았고, 천하의 이름있는 선비였다. 무제가 즉위하자 정장이 점점 승진하여 노중위, 제남태수, 강도의 상이 되었고, 9경에 이르러 우내사가 되었다. 무안후 전분과 위기후 두영이 그 때를 의논하던 일 때문에 벼슬의 등급이 깍여 첨사가 되었다가 좌천되어 대농령이 되었다.
[一] 集解服虔曰:「梁孝王之將,楚相之弟。」
[一] 【集解】 복건이 말하기를 “양 효왕의 장군으로 초나라 재상의 동생이다.” 했다.
[二] 集解如淳曰:「交道四通處也,請賓客便。」瓚曰:「諸郊謂長安四面郊祀之處,閑靜,可以請賓客。」 索隱按:置即驛,馬謂於置著馬也。四面郊。
[二]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길이 교차하여 4방으로 통하는 곳이니 빈객을 하기 편한 곳이다.” 했다. 찬이 말하기를 “‘諸郊’는 장안 사방의 郊祀를 지내는 곳이니 한가하고 조용하여 빈객을 청할 만하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置 ’는 곧 ‘驛’이고, ‘馬’는 역에 말을 두었던 것을 말하니 사방의 교외였다.
莊為太史,誡門下:「客至,無貴賤無留門者。」執賓主之禮,以其貴下人。莊廉,又不治其產業,仰奉賜以給諸公。然其餽遺人,不過算器食。[一]每朝,候上之閒,說未嘗不言天下之長者。其推轂士及官屬丞史,誠有味其言之也,常引以為賢於己。未嘗名吏,與官屬言,若恐傷之。聞人之善言,進之上,唯恐後。山東士諸公以此翕然稱鄭莊。
정장이 태사가 되어 문하에 경계하기를 “객이 이르면 귀천에 관계없이 문에서 머물게 하지 말라.” 하였다. 손님과 주인의 예를 행하면서 아랫사람을 귀하게 하였다. 정장은 청렴하여 그 산업을 다스리지 않았고, 봉록과 내림이 있으면 빈객들에게 주었다. 그러나 그가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것은 바구니에 담긴 밥에 지나지 많았다. 매번 조회 때는 천자의 한가한 틈을 엿보아 말하는데, 일찍이 천하의 훌륭한 이를 말하지 않음이 없었다. 선비와 관속인 승과 사를 추천할 때는 정성을 다하여 그 말에 맛이 있었고, 항상 자기보다 현명한 이를 인용하였다. 일찍이 관리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관속과 말을 나눌 때는 마치 상처를 입을까 두려워하였다. 다른 사람의 좋은 말을 들으면 천자에게 아뢰고, 모직 늦을까 두려워하였다. 산동의 선비와 여러 빈객들이 이 때문에 기쁘게 정장을 칭찬하였다.
[一] 集解徐廣曰:「算音先管反,竹器。」 索隱算音先管反。按:謂竹器,以言無銅漆也。漢書作「具器食」。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算’의 음은 ‘先’과 ‘管’의 反이니 대나무 그릇이다.” 했다. 【索隱】 ‘算’의 음은 ‘先’과 ‘管’의 反이다. 살펴보니 대나무 그릇이니 구리나 옻 칠을 하지 ㅇ낳은 것을 말한다. 『한서』에는 “具器食”이라 썼다.
鄭莊使視決河,自請治行五日。[一]上曰:「吾聞『鄭莊行,千里不齎糧』,請治行者何也?」然鄭莊在朝,常趨和承意,不敢甚引當否。及晚節,漢征匈奴,招四夷,天下費多,財用益匱。莊任人賓客為大農僦人,[二]多逋負。司馬安為淮陽太守,發其事,莊以此陷罪,贖為庶人。頃之,守長史。[三]上以為老,以莊為汝南太守。數歲,以官卒。
정장이 터진 황하를 살펴보게 하자 스스로 길 떠나는 채비로 5일을 청하였다. 천자가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정장이 가는데 천리에 식량을 가져가지 않는다.’하는데 길 떠날 채비를 하는 것은 왜인가?” 했다. 그런데 정장은 조정에 있으면서 항상 천자의 말을 따르고 비위를 맞추어 감히 심하게 마땅하고, 마땅하지 않음을 이끌어내지 못하였다. 만년에 한이 흉노를 정벌하고, 四夷를 부르니 천하가 비용이 많이 들어 재물의 쓰임이 더욱 모자랐다. 정장이 빈객 중에서 대농의 고용인으로 재무를 맡았던 사람들이 많이 조세를 체납하였다. 사마안이 회양태수가 되어 그 일을 적발하였는데 정장이 이 때문에 죄에 빠졌으나 속죄하여 서인이 되었다. 얼마 후 장사를 지켰다.(장사 태수가 되었다.) 천자가 늙었다 하여 정장을 여남태수로 삼았다. 몇 년 후 관직에 있을 때 죽었다.
[一] 集解如淳曰:「治行謂莊嚴也。」
[一]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治行’은 장엄함을 말한다.” 했다.
[二] 集解徐廣曰:「一作『入』。一云賓客為大農僦人,僦人蓋興生財利,如今方宜矣。」駰案:晉灼曰「當時為大農,而任使其賓客辜較任僦也」。瓚曰「任人謂保任見舉者」。索隱僦音即就反。辜較音姑角。按:謂當時作大農,任賓客就人取庸直也。或者貰物以應官取庸,故下云「多逋負」。「辜較」字亦作「酤榷」。榷者,獨也。言國家獨榷酤也。此云「辜較」,亦謂令賓客任人專其利,故云辜較也。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入’이라 쓴다. ‘賓客’은 大農僦人이라 하는데 ‘僦人’은 대개 재물과 이익을 일으키니 지금의 ‘方宜’와 같다.” 했다. 인이 살펴보니 “진작이 말하기를 ‘당시 대농이 되어 그 빈객으로 하여금 이익을 오로지하여 재물과 이익을 일으키게 하였다.’” 했다. 찬이 말하기를 “‘任人’은 보증하여 천거된 자를 말한다.” 했다. 【索隱】 ‘僦’의 음은 ‘卽’과 ‘就’의 反이다. ‘辜較’의 음은 ‘姑角’이다. 살펴보니 당시가 크게 농사지어 빈객에게 맞겨 품삯을 치르게 하였는데 어떤 자가 물건을 세놓고는 관직으로서 고용하였다. 그러므로 아래에서 “多逋負(조세를 많이 체납하였다.)” 한 것이다. ‘辜較’자는 또한 ‘酤(계명주 고, 술을 사다)搉(칠 각)’이라 쓰는데 ‘榷’은 홀로 하는 것이다(전매 하는 것이다.). 국가 술을 전매하였음을 말한다, 이것을 ‘辜較’이라 하고 또 빈객으로 하여금 그 이익을 독점하게 하였음을 하는 것인데 그러므로 ‘辜較’이라 한 것이다.
[三] 集解如淳曰:「丞相長史。」
[三]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승상 장사이다,” 했다.
鄭莊、汲黯始列為九卿,廉,內行脩絜。此兩人中廢,家貧,賓客益落。[一]及居郡,卒後家無餘貲財。莊兄弟子孫以莊故,至二千石六七人焉。
정장, 급암이 처음 九卿에 반열되었을 때 청렴하고 안으로는 행실을 닦아 깨끗하였다. 아 두 사람이 중도에 무너져 집이 가난해지자 빈객들이 더욱 떨어졌다. 군에서 살게 되었을 때와 죽었을 때 집에는 남은 재물이 없었다. 정장의 형제, 자손들이 정장 때문에 2천석에 이른 이가 육칠명이었다.
[一] 索隱按:落猶零落,謂散也。
[一] 【索隱】 살펴보니 “‘落’은 ‘零落’과 같은 것이니 흩어짐을 말한다.
太史公曰:夫以汲、鄭之賢,有勢則賓客十倍,無勢則否,況眾人乎!下邽[一]翟公有言,始翟公為廷尉,賓客闐門;及廢,門外可設雀羅。翟公復為廷尉,賓客欲往,翟公乃人署其門曰:「一死一生,乃知交情。一貧一富,乃知交態。一貴一賤,交情乃見。」汲、鄭亦云,悲夫!
태사공이 말하였다. “대저 급안과 정장의 현명에도 권세가 있으면 곧 빈객이 10배이고, 권세가 없으면 곧 없는데 하물며 보통사람이겠는가!” 하규의 적공에 대해 말한 것이 있는데 처음 적공이 정위가 되었을 때 빈객이 문에 성대하였는데 무너짐에 이르러서는 문밖에 참새 그물을 칠 수 있었다. 적공이 다시 정위가 되자 빈객이 가고자 하니 적공이 이에 그 문에 써 붙이기를 “한 번 죽고, 한 번 사는 것으로 이에 벗의 정을 알았다. 한 번 가난해지고, 한 번 부유해진 것으로 이에 벗의 태도를 알았다. 한 번 귀해지고 한 번 천해 지는 것으로서 벗의 정을 이에 보았다.” 했다. 급암과 정장이 또한 그러하니 슬프다!
[一] 集解徐廣曰:「邽,一作『邳』。」 索隱邽音圭,縣名,屬京兆。徐廣曰:「下邽作『下邳』。」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邽’는 한편으로 ‘邳’라 썼다.” 했다. 【索隱】 ‘邽’의 음은 ‘圭’이니 현 이름으로 경조에 속한다. 서광이 말하기를 “‘下邽’는 ‘下邳’라 쓴다.” 했다.
【索隱述贊】 河南矯制,自古稱賢。淮南臥理,天子伏焉。積薪興歎,伉直愈堅。鄭莊推士,天下翕然。交道勢利,翟公愴旃。
【索隱述贊】 하남을 바로 잡아 규제하니 예부터 현명하다 일컬었다. 회남을 누워 다스리려하여 천자가 여기에 엎드렸다. 섶을 쌓고 탄식을 일으키니 꼿꼿하고 곧아 더욱 굳세었다. 정장이 선비를 추천하니 천하가 흡족해 했다. 사귐에 권세와 이익을 말하니 적공이 슬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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