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回:宴桃園豪傑三結義,斬黃巾英雄首立功
제1회 복숭아 정원에서 호걸 셋이 연회하며 義를 맺고, 황건적을 베어 첫 공을 세우다
詞曰:글에 말하기를
滾滾長江東逝水,浪花淘盡英雄。是非成敗轉頭空:青山依舊在,幾度夕陽紅。白髮漁樵江渚上,慣看秋月春風。一壺濁酒喜相逢:古今多少事,都付笑談中。
세차게 굽이쳐 흐르는 장강은 동쪽으로 흘러가고, 파도와 꽃처럼 영웅은 스러졌네. 옳고 그름과 이루고 무너짐이 머리 돌리니 헛되네. 푸른 산은 옛날과 같은데 여러 해 저녁 빛이 붉구나. 늙은 어부 강 모래톱에서 가을 달, 봄바람 보누나. 한 단지 탁주에 서로 만남을 기뻐하고 고금 많고 적은 일들이 웃으며 이야기하는 속에 붙인다.
話說天下大勢.分久必合,合久必分:周末七國分爭,并入於秦。及秦滅之後,楚、漢分爭,又并入於漢。漢朝自高祖斬白蛇而起義,一統天下。後來光武中興,傳至獻帝,遂分為三國。推其致亂之由,殆始於桓、靈二帝。桓帝禁錮善類,崇信宦官。及桓帝崩,靈帝即位,大將軍竇武、太傅陳蕃,共相輔佐。時有宦官曹節等弄權,竇武、陳蕃謀誅之,作事不密,反為所害。中涓自此愈橫。
천하의 큰 형세를 이야기하면 나누어짐이 오래면 반드시 합하고, 합함이 오래면 반드시 나누어진다. 주나라 말에 입곱 나라가 나뉘어 다투다 모두 진(秦)에 들어갔고(합쳐졌고), 진이 멸망한 후에 이르러 초나라와 한나라가 나뉘어 다투다가 또한 한에 들어갔다. 한 나라는 고조가 백사(白蛇)를 벰으로부터 義를 일으켜 천하를 하나로 통합하였다. 그 후 광무제가 중흥한 이래 전하여 헌제에 이르러 마침내 나뉘어 삼국이 되었다. 그어지러움에 이르기까지를 미루어보면 위태로움이 환제와 영제 두 황제에게서 시작되었다. 환제가 착한 무리들은 禁錮(관직에 임명하지 않는 것)에 처하고 환관을 높이고 믿었다. 환제가 죽자 영제가 즉위하자 대장군 두무(竇武), 태부 진번(陳蕃)이 서로 함께 보좌하였다. 이때 환관 조절(曹節) 등이 정권을 농단하자 진번 등이 모의하여 베어 죽이려 하였으나 일을 지음이 비밀스럽지 못하여 도리어 해침을 당하였다. 중연(中涓: 황제를 모시는 시종관의 총칭)이 이로부터 더욱 방자해졌다.
建寧二年四月望日,帝御溫德殿。方陞座,殿角狂風驟起,只見一條大青蛇,從梁上飛將下來,蟠於椅上。帝驚倒,左右急救入宮,百官俱奔避。須臾,蛇不見了。忽然大雷大雨,加以冰雹,落到半夜方止,壞卻房屋無數。建寧四年二月,洛陽地震;又海水泛溢,沿海居民,盡被大浪捲入海中。光和元年,雌雞化雄。六月朔,黑氣十餘丈,飛入溫德殿中。秋七月,有虹見於玉堂 ;五原山岸,盡皆崩裂。種種不祥,非止一端。
건녕2년 4월 보름에 황제가 온덕전(溫德殿)에 갔다. 막 자리에 오르려는데 집 모퉁이에서 광풍이 갑자기 일어나면서 한 마리 커다란 푸른 뱀이 나타나 대들보 위를 따라 날아내려 와서 의자위에 또아리를 틀었다. 황제가 놀라 엎어지자 좌우가 급히 구하여 궁으로 들어가고 백관이 모두 달아나고 피하였다. 잠시 후 뱀이 보이지 않고, 갑자기 큰 우레가 치면서 큰 비와 우박이 내렸는데 (우박)떨어짐이 한 밤에 이르러 그쳤다. 방과 지붕이 무너진 것이 헤아릴 수 없었다. 건녕 4년 2월 낙양에 지진이 있었고, 또한 바닷물이 넘쳐 바닷가에 사는 백성들이 모두 큰 파도에 말려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광화 1년 암탉이 수탉으로 변하였다. 6월 초하루에는 10여丈의 검은 색 기운이 온덕전 안으로 날아들었다. 가을 7월 무지개가 옥당(玉堂)에 보이고, 오원산 언덕이 모두 무너지고 갈라졌다. 여러 가지의 상서롭지 못한 일이 단지 한가지뿐만이 아니었다.
帝下詔問群臣以災異之由,議郎蔡邕上疏,以為蜺墮雞化,乃婦寺干政之所致,言頗切直。帝覽奏歎息,因起更衣。曹節在後竊視,悉宣告左右遂以他事陷邕於罪,放歸田里。後張讓,趙忠,封諝,段珪,曹節,候覽,蹇碩,程曠,夏惲,郭勝十人朋比為奸,號為十常侍。帝尊信張讓,呼為阿父,朝政日非,以致天下人心思亂,盜賊蜂起。
황제가 여러 신하들에게 재난과 이변이 일어나는 원인을 물으니 의랑 채옹이 상소하여 “무지개가 떨어지고, 닭이 변한 것은 부인과 내시가 정사에 참여하기 때문”이라고 간절하고 정직하게 말하였다. 황제가 아뢰는 것을 보고 탄식하면서, 일어나 옷을 고쳐입었다. (이 때)조절이 뒤에 있으면서 훔쳐보고 좌우 따르는 이에게 모두 알렸다. (그 후) 다른 일로 채옹을 죄에 빠트려 시골로 추방하여 보냈다. 후에 장양, 조충, 봉서, 단규, 조절, 후람, 건석, 정광, 하운, 곽승 등 10명이 무리지어 간사하게 행동하니 ‘十常侍’라 한다. 황제가 장양을 높이고 믿어 부를 때 “아부(아비에 버금간다는 뜻) 라 하니 조정의 정사가 날로 잘못 되었기 때문에 천하의 인심이 반란을 생각하기에 이르러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時鉅鹿郡有兄弟三人 一名張角,一名張寶,一名張梁。那張角本是個不第秀才。因入山採藥,遇一老人,碧眼童顏,手執藜杖,喚角至一洞中,以天書三卷授之,曰:「此名太平要術。汝得之,當代天宣化,普救世人;若萌異心,必獲惡報。」角拜問姓名。老人曰:「吾乃南華老仙也。」言訖,化陣清風而去。
이 때 거록군에 형제 3명이 있었는데 장각, 장보, 장양이다. 장각은 본래 급제하지 못한 수재였다. 그래서 산에 들어가 약을 캐다 한 노인을 만났다. 푸른 눈에 아이의 얼굴을 하고, 손에는 지팡이를 집고 장각을 불러 한 동굴 속에 이르러 천서 3권을 주면서 말하기를 “이것의 이름은 ‘태평요술’이라한다. 네가 그것을 얻어 마땅히 하늘을 대신하여 교화를 베풀어 널리 세상 사람을 구하라. 만약 다른 마음이 싹튼다면 반드시 나쁜 갚음을 얻을 것이다.”했다. 장각이 절하고 성과 이름을 물으니 노인이 말하기를 “나는 남화노선이다.” 하였다, 말을 마치자 맑은 바람을 변화시켜 갔다.
角得此書,曉夜攻習,能呼風喚雨,號為太平道人。中平元年正月內,疫氣流行,張角散施符水,為人治病,自稱大賢良師。角有徒弟五百餘人,雲游四方,皆能書符念咒。次後徒眾日多,角乃立三十六方,─大方萬餘人,小方六七千─,各立渠帥,稱為將軍。
장각이 이 글을 얻어 밤낮으로 익혀서 바람과 비를 부를 수 있었는데 이름하여 ‘太平道人’이라 했다. 중평 원년 정월에 전염병이 유행하니 장각이 부적과 물을 흩어 베풀어 사람들을 위해 병을 치료하고, 스스로 大賢良師라 했다. 장각에게 따르는 무리가 5백여명 있었는데 구름처럼 사방에 돌아다니면서 모두 부적을 쓰고 주문을 외울 수 있었다. 그런 후 무리들이 날로 많아지자 장각은 이에 36方을 세우고 하나의 큰 방은 만여명, 작은 방은 6~7천 명으로 하고 각기 우두머리를 세워 將軍이라 이름했다.
訛言「蒼天已死,黃天當立。」又云「歲在甲子,天下大吉。」令人各以白土,書「甲子」二字於家中大門上。青、幽、徐、冀、荊、揚、兗、豫八州之人,家家侍奉大賢良師張角名字。角遣其黨馬元義,暗齎金帛,結交中涓封諝,以為內應。
거짓말로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으므로 누른 하늘이 섬이 마땅하다.”했고, 또 이르기를 “甲子年에는 천하가 크게 길할 것이다.”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각기 흰 흙으로 “甲子” 두 글자를 잡안 대문 위에 쓰게 했다. 청주, 유주, 서주, 기주, 형주, 양주, 연주, 예주의 8주의 사람들이 집집마다 ‘大賢良師 張角’의 이름자를 모시고 받들었다. 장각이 그 무리인 마원의를 시켜 가만히 돈과 비단을 가지고 내시인 封諝와 사귐을 맺고, 안에서 응원하게 했다.
角與二弟商議曰:「至難得者,民心也。今民心已順,若不乘勢取天下,誠為可惜。」遂一面私造黃旗,約期舉事;一面使弟子唐州,馳書報封諝。唐州乃逕赴省中告變。帝召大將軍何進調兵擒馬元義,斬之;次收封諝等一干人下獄。
장각과 두 동생들이 의논하여 말하기를 “지극히 얻기 어려운 것은 백성의 마음이다. 지금 백성들이 이미 순한데 만약 형세를 타고 천하를 취하지 않는다면 진실로 애석할 만하다.”했다. 마침내 한 쪽으로는 사사로이 누른 깃발을 만들어 거사를 약속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자 唐州로 하여금 말을 치달려 글을 가지고 봉서에게 알렸다. 당주가 곧 지름길로 성중으로 달려가 變을 알렸다. 황제가 大將軍 何進을 불러 군대를 뽑아 마원의를 사로잡아 목을 베고, 다음으로 봉서 등 관여한 사람들을 거두어 옥에 가두었다.
張角聞知事露,星夜舉兵,自稱天公將軍,─張寶稱地公將軍,張梁稱人公將軍─。申言於眾曰:「今漢運將終,大聖人出﹔汝等皆宜順從天意,以槳太平。」四方百姓,裹黃巾從張角反者,四五十萬。賊勢浩大,官軍望風而靡。何進奏帝火速降詔,令各處備禦,討賊立功;一面遣中郎將盧植,皇甫嵩,朱雋,各引精兵,分三路討之。
장각이 듣고 일이 탄로 난 것을 알고 밤에 군대를 일으키고 스스로를 天公將軍, 장보는 地公將軍, 장양은 人公將軍이라 불렀다.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말하기를 “지금 한나라의 운이 장차 다하여 大聖人이 나왔으니 너희들 모두는 마땅히 하늘의 뜻을 따라서 크게 편안함을 즐기라.”했다. 4방의 백성들이 누런 수건을 두르고 장각을 따라 배반한 자들이 4,50만이었다. 적의 형세가 넓고 커서 관군이 바람을 바라보고(바람 앞의 풀처럼 쓰러졌다.) 쓰러졌다. 하진이 황제에게 불같이 빠르게 조서를 내려 각기 처한 곳을 대비하여 지키게 하고 적을 토벌하여 공을 세우도록 아뢰는 한편으로 중랑장 노식, 황보숭, 주전을 보내 각기 정예군대를 이끌고 3길로 나누어 토벌하게 하였다.
且說張角一軍,前犯幽州界分。幽州太守劉焉,乃江夏竟陵人氏,漢魯恭王之後也;當時聞得賊兵將至,召校尉鄒靖計議。靖曰:「賊兵眾,我兵寡,明公宜作速招軍應敵。」劉焉然其說,隨即出榜招募義兵。榜文行到涿縣,乃引出涿縣中一個英雄。
또한 장각의 한 군대는 유주의 경계를 나누어 범하였다. 유주태수 유언은 곧 강하 경릉인으로 한 나라 노공왕의 후예이다. 이 때 적병이 장차 이를 것이라는 것을 듣고 교위 추정을 불러 계책을 의논하였다. 추정이 말하기를 “적병은 많고, 우리 군대는 적으므로 명공은 속히 군대를 징발하여 적에게 대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했다. 유언이 그 말 그렇다 하고 따라서 곧 방을 내어 믜병을 불러 모았다. 방문이 전해져 탁현에 이르니 탁현 중의 한 영웅이 이끌려 나왔다.
那人不甚好讀書;性寬和,寡言語,喜怒不形於色;素有大志,專好結交天下豪傑;生得身長七尺五寸,兩耳垂肩,雙手過膝,目能自顧其耳,面如冠玉,脣若塗脂;中山靖王劉勝之後,漢景帝閣下玄孫﹔姓劉,名備,字玄德。
이 사람은 책 읽기를 매우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성품이 너그럽고 온화하고, 말이 적으며, 기쁨과 노함이 얼굴에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에 큰 뜻이 있어 오직 천하호걸과 사귀기를 좋아하였다. 나면서부터 키는 7자 5척이요, 두 귀는 어깨에 늘어졌으며, 두 손은 무릎을 지났고, 눈이 그 귀를 볼 수 있었으며, 얼굴은 옥을 쒸운 것 같고, 입술은 기름을 칠한 것 같았다. 中山靖王 劉勝의 후손으로 한나라 景帝 閣下의 玄孫이니 성은 劉요, 이름은 備이고, 자는 玄德이다.
昔劉勝之子劉貞,漢武時封涿鹿亭侯,後坐酬金失侯,因此遺這一枝在涿縣。玄德祖劉雄,父劉弘。弘曾舉孝廉,亦嘗作吏,早喪。玄德幼孤,事母至孝;家貧,販屨織蓆為業。家住本縣樓桑村。其家之東南,有一大桑樹,高五丈餘,遙望之,童童如車蓋。相者云:「此家必出貴人。」
옛 날 유승의 아들 유정이 한 나라 무제 때 탁록정의 후에 봉해졌고, 후에 酬金(벼슬에 대한 사례금, 또는 일종의 분담금)에 대한 잘못으로 候의 지위를 잃었다. 이 때문에 후손의 일부가 탁현에 있었다.
玄德幼時,與鄉中小兒戲於樹下,曰:「我為天子,當乘此車蓋。」叔父劉元起奇其言,曰:「此兒非常人也!」因見玄德家貧,常資給之。年十五歲,母使游學,嘗師事鄭玄、盧植;與公孫瓚等為友。及劉焉發榜招軍時,玄德年己二十八歲矣。當日見了榜文,慨然長歎。隨後一人厲聲言曰:「大丈夫不與國家出力,何故長歎?」
현덕이 어릴 때 마을의 작은 아이들과 나무 아래에서 놀면서 “나는 천자(황제)가 되어 마땅히 이 수레와 덮개를 탈 것이다.” 했다. 숙부 유원기가 그 말을 기이하게 여겨 “이 아이는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하고, 현덕을 보니 집이 가난하여 항상 재물을 공급하였다. 나이 15세에 어머니가 배움에 노닐게 하였는데 일찍이 정현, 노식을 스승으로 섬기고, 공손잧 등과 벗이 되었다. 유언이 군대를 모으는 방을 낼 때에 현덕의 나이 28세에 이르렀다. 그날 방문 보기를 마치자 분개하고 길게 탄식하였다. 뒤를 따르던 한 사람이 성을 내어 크게 소리쳐 말하기를 “대장부가 나라에 힘을 내어 참여하지 않고 무슨 이유로 길게 탄식하는가?” 했다.
玄德回視其人:身長八尺,豹頭環眼,燕頷虎鬚,聲若巨雷,勢如奔馬。玄德見他形貌異常,問其姓名。其人曰:「某姓張,名飛,字翼德。世居涿郡,頗有莊田,賣酒屠豬,專好結交天下豪傑。適纔見公看榜而歎,故此相問。」玄德曰:「我本漢室宗親,姓劉,名備。今聞黃巾倡亂,有志欲破賊安民;恨力不能,故長歎耳。」飛曰:「吾頗有資財,當招募鄉勇,與公同舉大事,如何?」玄德甚喜,遂與同入村店中飲酒。
현덕이 그 사람을 돌아보니 키는 8자이고, 표범 머리에 고리눈이고, 제비턱에 호랑이 수염으로 소리는 큰 우레와 같고, 형세는 달리는 말과 같았다. 현덕이 다른 영상과 모양이 보통과 달라서 그 성명을 물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나의 성은 장씨요, 이름은 비이고, 자는 익덕으로 대대로 탁군에 살면서 조금의 토지를 소유하고, 술을 팔고 돼지를 도살하면서 오직 천하의 호걸과 사귀기를 좋아 했습니다. 마침 가만히 공이 방을 보고 탄식하는 것을 보았으므로 이에 서로 물었던 것입니다.”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나는 본래 한 나라 황실의 종친으로 성은 유이고, 이름은 비입니다. 지금 황건이 난을 주도함을 듣고, 적을 깨트리고 백성을 편안히 하고자하는 뜻이 있습니다. 한탄스러운 것은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길게 탄식한 것일 뿐입니다.” 했다. 장비가 말하기를 “내가 자못 재산이 있습니다. 향용을 불러모음을 당하여 공과 함께 큰일을 들고자 하는데 어떠합니까?” 했다. 현덕이 매우 기뻐하면서 마침내 같이 촌에 있는 가게 안에 들어가 술을 마셨다.
正飲間,見一大漢,推著一輛車子,到店門首歇了;入店坐下,便喚酒保:「快斟酒來吃,我待趕入城去投軍。」玄德看其人:身長九尺,髯長二尺:面如重棗,脣若塗脂;丹鳳眼,臥蠶眉:相貌堂堂,威風凜凜。玄德就邀他同坐,叩其姓名。
(술을)막 마시려할 때 한 사나이가 외바퀴 수레를 밀고서 가게 문 앞에 이르러 멈추고서 가게에 들어와 앉았다. 곧 주보를 불러 “빨리 술을 따라 오라. 나는 따름을 기다려 성에 들어가 군대에 투신하려 한다.”고 했다. 현덕이 그 사람을 보니 키는 9자요, 수염길이는 2자이고, 얼굴은 겹친 대추 같고, 입술은 기름을 칠한 듯하고, 불근ㄴ 봉황의 눈에 누운 누애 눈썹으로 얼굴 모습이 당당하고, 위풍이 늠늠했다. 현덕이 나아가 맞이해서 같이 앉아 그 성명을 물었다.
其人曰:「吾姓關,名羽,字壽長,後改雲長,河東解良人也。因本處勢豪,倚勢凌人,被吾殺了;逃難江湖,五六年矣。今聞此處招軍破賊,特來應募。」玄德遂以己志告之。雲長大喜。同到張飛莊上,共議大事。
그 사람이 말하기를 “내 성은 관씨요, 이름은 우 이고 자는 수장이었는데 후에 운장으로 고쳤으며, 하동 해량 사람입니다. 본래 있던 곳에 세력 있는 호족이 세력을 믿고 사람을 업신여김으로 내가 죽였기 때문에 강호에 어려움을 피해 도망한 지 5, 6년이었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군대를 모아 적을 깨트리려 한다는 것을 듣고 특히 와서 모집에 응하려는 것입니다.” 했다. 현덕이 마침내 자기의 뜻을 말하니 운장이 크게 기뻐하였다. 같이 장비의 농장에 이르러 함께 큰일을 의론 하였다.
飛曰:「吾莊後有一桃園,花開正盛;明日當於園中祭告天地,我三人結為兄弟,協力同心,然後可圖大事。」玄德、雲長、齊聲應曰:「如此甚好。」
장비가 말하기를 “우리 장원 뒤에 복숭아 정원이 있는데 꽃이 피어 성대합니다. 내일 마땅히 정원 안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하여 알리고, 우리 세 사람이 형제가 됨을 맺어 힘을 합하고, 마음을 같이 하였음을 알린 후에 큰일을 계획할 수 있습니다.” 현덕과 운장, 장비가 소리를 같이하여 대답하여 말하기를 “이 같음이 매우 좋다” 하였다.
次日,於桃園中,備下烏牛白馬祭禮等項,三人焚香,再拜而說誓曰:「念劉備、關羽、張飛,雖然異姓,既結為兄弟,則同心協力,救困扶危;上報國家,下安黎庶;不求同年同月同日生,但願同年同月同日死。皇天后土,實鑒此心。背義忘恩,天人共戮。」誓畢,拜玄德為兄,關羽次之,張飛為弟。祭罷天地,復宰牛設酒,聚鄉中勇士,得三百餘人,就桃園中痛飲一醉。來日收拾軍器,但恨無馬匹可乘。
다음날 복숭아 정원 안에 검은 소와 흰 말과 제사 예물 등을 갖추고 세 사람이 향을 사르고 두 번 절하고 맹세하여 말하기를 “생각하건데 유비, 관우, 장비는 비록 성은 다르지만 이미 형제가 됨을 맺었습니다. 곧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쳐 곤궁함을 구하고, 위태로움을 부축하여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겠습니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시에 태어남을 구하지 않고, 다만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말에 죽기를 원할 뿐입니다. 하늘과 땅의 신들은 실로 이 마음을 살피소서! 의리를 배반하고 은혜를 잊으면 하늘과 사람이 같이 죽일 것입니다.” 했다. 맹서를 마치자 절하고 현덕을 형으로 하고, 관우를 다음으로, 장비를 동생으로 하였다. 하늘과 땅에 제사하기를 마치고 다시 소를 잡고, 술을 마련하여 마을 안의 용사들을 모아 300여명을 얻어 복숭아 동산 안에서 마음껏 술을 마셔 함께 취하였다. 다음날 무기를 거두었는데 다만 탈 만한 말이 없음을 애석하게 여겼다.
正思慮間,人報「有兩個客人,引一夥伴儅,趕一群馬,投莊上來。」玄德曰:「此天佑我也!」三人出莊迎接。原來二客乃中山大商:一名張世平,一名蘇雙,每年往北販馬,近因寇發而回。玄德請二人到莊,置酒管待,訴說欲討賊安民之意。
생각하던 사이에 어떤 사람이 알리기를 “두 객인이 많은 하인을 데리고 많은 말과 함께 장원으로 옵니다.”했다. 현적이 말하기를 “이는 하을이 나를 돕는구나!” 하고, 세 사람이 장원을 나가 맞이하였다. 원래 두 객은 중산의 큰 상인으로 한 사람은 張世平이라하고, 다른 한 사람은 蘇雙이라 한다. 매년 북쪽으로 가서 말을 판매하는데 근래에 도적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돌아 온 것이었다. 현덕이 두 사람을 청하여 장원에 이르자 술을 두고 잘 대접하면서 도적을 토벌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자 하는 뜻을 호소하고 설명하였다.
二客大喜,願將良馬五十匹相送;又贈金銀五百兩,鑌鐵一千斤,以資器用。玄德謝別二客,便命良匠打造雙股劍。雲長造青龍偃月刀,又名冷豔鋸,重八十二斤。張飛造丈八點鋼矛。各置全身鎧甲。共聚鄉勇五百餘人,來見鄒靖。鄒靖引見太守劉焉。三人參見畢,各通姓名。玄德說起宗派,劉焉大喜,遂認玄德為姪。
두 사람이 크게 기뻐하면서 좋은 말 50필을 보내 돕기를 원하였다. 또한 금, 은 500냥과 강철 1000근을 주어 군기의 밑천으로 쓰게 하였다. 현덕이 두 사람에게 감사하고 헤어진 후 곧 좋은 장임으로 하여금 雙股劍을 두드려 만들게 했고, 운장은 青龍偃月刀를 만들었는데 또한 일명 冷豔鋸라 하는데 무게는 82근이었다. 장비는 丈八點鋼矛를 만들었다. 각각 전신의 갑옷과 투구를 만들고는 함께 향용 500여명을 모아 와서 鄒靖을 만났다. 추정은 인도하여 태수 유언을 만나게 하였다. 3사람이 보기를 마치고 각기 성과 이름을 알렸다. 현덕이 문중의 갈래 일으킨 것을 설명하지 유언이 크게 기뻐하면서 마침내 현덕을 인정하여 조카로 했다.
不數日,人報黃巾賊將程遠志統兵五萬來犯涿郡。劉焉令鄒靖引玄德等三人,統兵五百,前去破敵。玄德等欣然領軍前進,直至大興山下,與賊相見。賊眾皆披髮,以黃巾抹額。當下兩軍相對,玄德出馬,─左有雲長,右有翼德─,揚鞭大罵:「反國逆賊,何不早降!」
2, 3일이 지나지 않아 어떤 사람이 황건적의 장수 程遠志가 5만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탁군을 침범한다고 알렸다. 유언이 추정에게 현덕 등 3명과 500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먼저 가서 적을 깨트리라 명령하였다. 현덕 등이 기꺼이 군대를 거느리고 앞으로 나가 곧 바로 대흥산 아래에 이르러 적과 서로 보았다. 적의 무리들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황건으로 이마를 동여매고 있었다. 그 자리에 두 군대가 서로 마주하자 현덕이 말을 타고 나왔는데 왼쪽에는 운장이 있고, 오른 쪽에는 익덕이 있었다. 채찍을 휘두르면서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나라를 배반한 역적은 어찌하여 빨리 항복하지 않는가!”했다.
程遠志大怒,遣副將鄧茂出戰。張飛挺丈八蛇矛直出,手起處,刺中鄧茂心窩,翻身落馬。程遠志見折了鄧茂,拍馬舞刀,直取張飛。雲長舞動大刀,縱馬飛迎。程遠志見了,早吃一驚;措手不及,被雲長刀起處,揮為兩段。後人有詩讚二人曰:
정원지가 크게 노하여 부장인 鄧茂를 내보내 싸우게 했다. 장비가 장팔사모를 빼어 바로 나와 손을 들어 올려 등무의 명치를 찔러 적중시키자 몸이 뒤집어지면서 말에서 떨어졌다. 정원지는 등무가 꺽어지는 것을 보고 손바닥으로 말을 치고, 칼을 춤추듯이 하면서 곧 바로 장비를 취하였다. 운장이 큰 칼을 춤추고, 움직이면서 말을 늘어뜨리면서 장비를 맞았다. 정원지가 보고는 머뭇거리고 놀라 손을 둠에 미치지 못하고 운장의 긴 칼이 일어나자 말자 휘둘러 두 동강 되었다. 뒷 사람들이 시로 두 사람을 찬양하여 말하기를
英雄發穎在今朝,一試矛兮一試刀。初出便將威力展,三分好把姓名標。
영웅의 빼어남을 발휘한 것이 오늘 아침이었는데
한 번 창을 시험하고, 한번 칼을 시험하였네
처음 나와 문득 위엄과 힘을 펼쳤다.
셋으로 나눈 천하에 성과 이름을 드날렸다.
眾賊見程遠志被斬,皆倒戈而走。玄德揮軍追趕,投降者不計其數,大勝而回。劉焉親自迎接,賞勞軍士。次日,接得青州太守龔景牒文,言黃巾賊圍城將陷,乞賜救援。劉焉與玄德商議。玄德曰:「備願往救之。」劉焉令鄒靖將兵五千,同玄德,關,張,投青州來。賊眾見救軍至,分兵混戰。玄德兵寡不勝,退三十里下寨。玄德謂關、張曰、「賊眾我寡,必出奇兵,方可取勝。」乃分關公引一千軍伏山左,張飛引一千軍伏山右,鳴金為號,齊出接應。
적의 무리들이 정원지가 베이는 것을 보고는 모두 창을 거꾸로 하여 달아났다. 현덕이 군대를 지휘하여 뒤를 쫒으니 항복하는 자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크게 이기고 돌아오니 유언이 직접 영접하고, 군사에게 상을 주고 위로하였다. 다음날 青州太守 龔景의 첩문을 접(받았는데)하였는데 황건적이 성을 포위하여 장차 함락되려하므로 구원해 줄 것을 애걸하였다. 유언과 현덕이 의논하였는데 현덕이 말하기를 “내가 가서 구원하고자 합니다.”했다. 유언이 추정에게 명령하여 군대 5천명을 거느리고 현덕, 관우, 장비와 함께 청주로 가게 하였다. 적의 무리가 구원하는 군대가 이른 것을 보고 군대를 나누어 섞여 싸웠다. 현덕은 군대가 많아 이기지 못하고 30리를 물러나 성채를 세웠다. 현덕이 관우, 장비에게 이르기를 “적은 많고 우리는 적으니 반드시 기이한 군대를 내어야 바야흐로 승리할 수 있다.”했다, 이에 관우가 거느린 1천 군대를 나누어 이끌어 산 좌측에 매복하게 하고, 장비는 1천 군대를 이끌고 산 오른 쪽에 매복하고는 쇠를 울리는 것으로 신호를 삼고 일제히 나가 맞아 싸웠다.
次日,玄德與鄒靖,引軍鼓譟而進。賊眾迎戰,玄德引軍便退。賊眾乘勢追趕,方過山嶺,玄德軍中一齊鳴金,左右兩軍齊出,玄德麾軍回身復殺。三路夾攻,賊眾大潰。直趕至青州城下,太守龔景亦率民兵出城助戰。賊勢大敗,剿戮極多,遂解青州之圍。後人有詩讚玄德曰:
다음날 현덕과 추정이 군대를 이끌고 북을 치고, 떠들면서 나아가니 적의 무리가 맞아 싸웠는데 현덕이 군대를 이끌고 곧 물러났다. 적의 무리가 형세를 타고 뒤 따라와 바야흐로 산 고개를 넘자 현덕의 군대 안에서 일제히 쇠를 울리며 좌, 우 양 군대가 일제히 나왔다. 현덕이 군대를 돌리도록 지휘하고 자신이 다시 죽이고 3길로 공격하니 적의 무리가 크게 무너졌다. 곧 바로 뒤를 따라 청주 성 아래 이르니 태수 공경이 또한 백성과 군대를 거느리고 성을 나와 싸움을 도왔다. 적의 형세가 크게 무너지고 죽인 것이 매우 많았다. 드디어 청주의 포위가 풀렸다. 뒷사람들이 시를 지어 현덕을 찬양 하였다.
運籌決算有神功,二虎還須遜一龍。初出便能垂偉績,自應分鼎在孤窮。
계교를 결단하여 헤아려 신의 공 세웠네
두 호랑이가 한 용에게 겸손히 돌리는 구나
처음 나와 위대한 공적 드리우니
응당 솥처럼 나뉨이 외로운 몸에 있구나
龔景犒軍畢,鄒靖欲回。玄德曰:「近聞中郎將盧植與賊首張角戰於廣宗,備昔曾師事盧植,欲往助之。」於是鄒靖引軍自回,玄德與關、張引本部五百人投廣宗來。至盧植軍中,入帳施禮,具道來意。盧植大喜,留在帳前聽調。
공경이 음식을 보내 군대를 위로하기를 마쳤을 때 추정이 돌아가고자 하였다. 현덕이 말하기를 “근래에 들으니 中郎將 盧植과 적의 괴수 張角이 廣宗에서 싸우고 있다 합니다. 내가 일찍이 노식을 스승으로 섬겼으므로 가서 돕고자 합니다.”했다. 이에 추정이 군대를 이끌고 돌아가고, 현덕이 관우, 장비와 본부의 500명과 함께 공종에 와 머물렀다. 노식의 군중에 이르러 군막으로 들어가 예를 베풀고 온 뜻을 갖추어 말하였다. 노식이 크게 기뻐하면서 군막 앞에 머물러 있게 하고 부름을 듣게 하였다.
時張角賊眾十五萬,植兵五萬,相拒於廣宗,未見勝負。植謂玄德曰:「我今圍賊在此,賊弟張梁,張寶在潁川,與皇甫嵩、朱雋對壘。汝可引本部人馬,我更助汝一千官軍,前去潁川打探消息,約期剿捕。」玄德領命,引軍星夜投潁川來。時皇甫嵩、朱雋領軍拒賊,賊戰不利,退入長社,依草結營。嵩與雋計曰:「賊依草結營,當用火攻之。」遂令軍士,每人束草一把,暗地埋伏。其夜大風忽起。二更以後,一齊縱火,嵩與雋各引兵攻擊賊寨,火燄張天,賊眾驚慌,馬不及鞍,人不及甲,四散奔走。殺到天明,張梁、張寶引敗殘軍士,奪路而走。
이 때 장각의 적 무리가 15만이고 노식의 군대가 5만이었는데 서로 광종에서 막아 이기고 짐이 보이지 않았다. 노식이 현덕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지금 적을 포위하여 여기에 있고, 적의 동생 장양, 장보는 영천에 있으면서 황보숭, 주전과 더불어 진을 마주하고 있다. 너는 본부의 사람과 말을 이끌고 내가 다시 1천의 관군으로 너를 돕게 할 것이니 먼저 영천으로 가서 소식을 물어보고 기일을 약속하여 무찌르고 잡으라.”했다. 현덕이 명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밤에 영천에 왔다. 이 때 황보숭과 주전은 군대를 거느리고 적을 막고 있었는데 적이 싸움에 불리하여 물러나 長社에 들어가 풀을 맺어 병영을 만들어 의지하였다. 황보숭과 주전이 헤아려 말하기를 “적이 풀로 맺은 병영에 의지하고 있으니 불로 공격하는 것이 마땅하다.”하고는 마침내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매 1인당 묶은 풀 한 줌을 가지고 어두운 땅에 매복하였다. 그날 밤 큰 바람이 갑자기 불었다. 이경 이후 일제히 불을 놓고, 황보숭과 주전이 각기 군대를 이끌고 적의 성채를 공격하니 화염이 하늘을 찌르고 적의 무리는 몰라고 두려워하여 말음 안장이 미치지 않았고, 사람은 갑옷이 미치지 않았다. 죽이기를 하늘이 밝기까지 하니 장양과 장보가 패하여 남은 군사를 이끌고 길을 벗어나 달아났다.
忽見一彪軍馬,盡打紅旗,當頭來到,截往去路。為首閃出一將,身長七尺,細眼長髯;官拜騎都尉;沛國譙郡人也:姓曹,名操,字孟德。操父曹嵩,本姓夏侯氏;因為中常侍曹騰之養子,故冒姓曹。曹嵩生操,小字阿瞞,一名吉利。操幼時,好游獵,喜歌舞;有權謀,多機變。操有叔父,見操游蕩無度,嘗怒之,言於曹嵩。嵩責操。操忽心生一計:見叔父來,詐倒於地,作中風之狀。叔父驚告嵩,嵩急視之,操故無恙。嵩曰:
갑자기 한 범 같은 군대와 말이 나타나 모두 붉은 깃발을 치면서(휘두르면서) 닥쳐와서 가는 길을 잘랐다. 우두머리가 되는 한 장수가 나왔는데 키는 7자요, 가는 눈에 긴 수염이었다. 관직은 騎都尉를 받았고, 沛나라 譙郡 사람이었다. 성은 曹요 이름은 操요 자는 孟德이다. 조조의 아버지는 曹嵩이니 본래의 성은 夏侯氏이다. 中常侍 曹騰의 양자가 됨으로 인하여 曹를 성으로 썼다. 조숭이 조조를 낳고, 어렸을 때의 자는 阿瞞인데 吉利라 하기도 했다. 조조가 어렸을 때 놀면서 사냔하기를 좋아하고,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하였다. 權謀가 있고, 기교와 변함이 많았다. 조조의 숙부가 있는데 조조가 노는 것이 방탕하고 법도가 없음을 보고 일ㅉ기 노하여 조숭에게 말하니 조숭이 조조를 꾸짖었다. 조조가 갑자기 마음에 한 계교가 생겼다. 숙부가 오는 것을 보자 거짓으로 땅에 엎어져 중풍에 걸린 모습을 지었다. 숙부가 놀라서 조숭에게 알리니 조숭이 급히 그를 보았는데 조조가 병이 없었다. 조숭이 말하기를
「叔言汝中風,今己愈乎?」操曰:「兒自來無此病;因失愛於叔父,故見罔耳。」嵩信其言。後叔父但言操過,嵩並不聽。因此,操得恣意放蕩。
“숙부가 너에게 중풍이 있다고 말하였는데 지금 이미 나았느냐?”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제가 아이로부터 이 병이 없었습니다. 숙부에게 사랑을 잃음으로 인하여 없음을 보였을 뿐입니다.”했다. 조숭이 그 말을 믿었다. 후에 숙부가 단지 조조의 허물을 말함에도 조숭이 아울러 듣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조조가 뜻을 방자히 하여 방탕할 수 있었다.
時人有橋玄者,謂操曰:「天下將亂,非命世之才,不能濟。能安之者,其在君乎?」南陽何顒見操,言:「漢室將亡,安天下者,必此人也。」汝南許劭,有知人之名。操往見之,問曰:「我何如人?」劭不答。又問,劭曰:「子治世之能臣,亂世之奸雄也。」操聞言大喜。年二十,舉孝廉,為郎,除洛陽北都尉。初到任,即設五色棒十餘條於縣之四門。有犯禁者,不避豪貴,皆責之。中常侍蹇碩之叔,提刀夜行,操巡夜拏住,就棒責之。由是,內外莫敢犯者,威名頗震。後為頓丘令。因黃巾起,拜為騎都尉,引馬步軍五千,前來潁川助戰。正值張梁、張寶敗走,曹操攔住,大殺一陣,斬首萬餘級,奪得旗旛、金鼓馬匹極多。張梁、張寶死戰得脫。操見過皇甫嵩,朱雋,隨即引兵追襲張梁、張寶去了。
사람들 중에 橋玄이란 자가 있어 조조에게 일러 말하기를 “천하가 장차 어지러워진다. 세상을 구할 재질이 아니면 구제할 수 없는데, 편안하게 하는 것은 그대에게 달려있을 것이다.”했고, 남양의 何顒이 조조를 보고 말하기를 “한 나라의 황실은 장차 망할 것이다. 천하를 편안하게 할 자는 반드시 이 사람일 것이다.” 했다. 여남의 許劭는 “그대는 세상이 다스려질 때는 유능한 신하이나, 어지러운 세상에는 간웅일 것이다.”했다. 조조가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20세 때 孝와 淸廉으로 천거되어 郞이되어 洛陽 北都尉에 임명되었다. 처음 맡은 곳에 이르러 현의 서쪽 문에 5색의 기둥 10여개를 세우고 금지하는 것을 범하는 자가 있으면 세력가와 귀한 자(벼슬이 높은 자) 피하지 않고 모두 벌주었다. 중상시(중상시의 관직에 있는 환관) 蹇碩의 숙부가 칼을 지니고 밤에 가다가 야간 순찰하던 조조에게 붙잡혀 몽둥이로 치는 벌을 받았다. 이로 말미암아 안 과 밖에서 감히 위반하는 자가 없고, 위엄과 명성이 자못 진동하였다. 후에 頓丘令이 되었다. 황건적이 일어남으로 인하여 騎都尉에 임명되어 기병과 보병 5천을 이끌고 압ㅍ서 영천에 와 싸움을 도왔다. 바로 장량, 장보가 무너져 달아나는 것을 만나자 조조가 막고 한바탕 크게 죽이니 머리를 벤 것이 만여 개이고, 빼앗아 얻은 깃발, 쇠북(징), 말이 매우 많았다. 장량과 장보가 죽음으로 사워 탈출 할 수 있었다. 조조가 황보숭과 주전을 비난하고는 군대를 이끌고 따라 나아가 장량과 장보를 추격하여 습격하러 갔다.
卻說玄德引關、張來潁川,聽得喊殺之聲,又望見火光燭天,急引兵來時,賊已敗散。玄德見皇甫嵩,朱雋,其道盧植之意。嵩曰:「張梁、張寶勢窮力乏,必投廣宗去依張角。玄德可即星夜往助。」
한편 현덕은 관우와 장비를 이끌고 영천에 와서 소리치면서 죽이는 소리를 들었고, 또한 불빛이 하늘을 비추는 것을 바라보았다. 급히 군대를 이끌고 왔을 때 적은 이미 무너지고 흩어졌다. 현덕이 황보숭과 주전을 보자 노식의 뜻을 말하였다. 황보숭이 말하기를 “장량과 장보가 형세가 다하고, 힘이 모자라니 반드시 광종으로 가서 장각에게 의지할 것입니다.”했다. 현덕은 곧 밤새 가서 도와야 할 것입니다.“했다.
玄德領命,遂引兵復回。到得半路,只見一簇軍馬,護送一輛檻車,車中之囚,乃盧植也。玄德大驚,滾鞍下馬,問其緣故。植曰:「我圍張角,將次可破;因角用妖術,未能即勝。朝廷差黃門左豐前來體探,問我索取賄賂。我答曰:『軍糧尚缺,安有餘錢奉承天使?』左豐挾恨,回奏朝廷,說我高壘不戰,惰慢軍心;因此朝廷震怒,遣中郎將董卓來代將我兵,取我回京問罪。」
현덕이 명을 받고는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다시 돌아가는데 반쯤 이르러 모여 있는 한 무리의 군대와 말 보호하면서 보내는 1대의 수레를 보았다. 수레 안에 갖힌 이는 바로 노식이었다. 현덕이 크게 놀라 안장에서 구르듯 말에서 내려 그 이유를 물었다. 노식이 말하기를 “내가 장각을 포위하고 장차 깨트릴 수 있었는데 장각이 요술을 씀으로 인하여 이김에 나가지 못하였다. 조정이 黃門左豐을 사신으로 파견하자 다가와서 몸으로 엿보고, 나에게 뇌물을 취할 것을 요구하였다. 내가 대답하기를 군량이 오히려 부족한데 어찌 무슨 남은 돈이 있어 황제의 사신을 받들어 공경할 수 있겠습니까?” 했더니 좌풍협한이 돌아가 조정에 아뢰기를 “내가 높은 성채에서 싸우지 않고, 군심을 태만히 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하여 조정이 크게 노하여 中郎將 董卓이 대신 와서 내 군대를 거느리게 하고 서울로 돌아가 죄를 묻는다고 한다.” 했다.
張飛聽罷,大怒,要斬護送軍人,以救盧植。玄德急止之曰:「朝廷自有公論,汝豈可造次?」軍士簇擁盧植去了。關公曰:「盧中郎已被逮,別人領兵,我等去無所依,不如且回涿郡。」玄德從其言,遂引軍北行。
장비가 듣기를 마치고 크게 성내어 호송하는 군인의 허리를 베어 죽이고 노식을 구하였다. 현덕이 급히 저지하고 말하기를 “조정에 공론이 있었는데 네가 어찌 경솔하게 할 수 있는가?” 했다. 군사들이 노식을 둘러싸고 갔다. 관우가 말하기를 “노(식) 중랑장이 이미 체포되어 다른 사람이 군대를 거느려서 우리들이 가서 의지할 바가 없습니다. 탁군으로 돌아가는 것만 못합니다.”했다. 현덕이 그 말을 따라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갔다.
行無二日,忽聞山後喊聲大震。玄德引關、張縱馬上高岡望之,見漢軍大敗,後面漫山塞野,黃巾蓋地而來,旗上大書「天公將軍」。玄德曰:「此張角也!可速戰!」
행군한지 2일이 못되어 갑자기 산 뒤에서 함성이 그게 진동하는 것을 들었다. 현덕이 관우와 장비를 이끌고 말에서 내려 높은 산에 올라 바라보았는데 한 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는 것을 보았다. 뒤는 아득한 산이 들을 막았는데 황건적이 땅을 덮고 왔다. 기 위에는 큰 글씨로 “天公將軍” 이라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이는 장각이다! 속히 싸워야 한다!”하였다.
三人飛馬引軍而出。張角正殺敗董卓,乘勢趕來,忽遇三人衝殺,角軍大亂,敗走五十餘里。三人救了董卓回寨。卓問三人現居何職。玄德曰:「白身。」卓甚輕之,不為禮。玄德出,張飛大怒曰:「我等親赴血戰,救了這廝,他卻如此無禮﹔ 若不殺之,難消我氣!」便要提刀入帳來殺董卓。正是:人情勢利古猶今,誰識英雄是白身?安得快人如翼德,盡誅世上負心人!畢竟董卓性命如何,且看下文分解。
세 사람이 말을 날듯이 하여 군대를 이끌고 나갔다. 장각이 바로 동탁(의 군대)을 죽여 무너뜨리고, 형세를 타고 달려오다가 갑자기 세 사람이 뒤엉켜 죽임을 만나니 장강의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지면서 무너져 50여리를 달아났다. 세 사람이 동탁을 구하여 성채로 돌아갔다. 동탁이 세 사람에게 어느 직책에 있는지를 물었다. 현덕이 말하기를 “직책이 없습니다.” 했다. 동탁이 그를 매우 가벼이 여겨 예를 하지 않았다.(로 대접하지 않았다.) 현덕이 나오니 장비가 크게 성내어 말하기를 “우리들이 직접 혈전에 나아가 이놈을 구원하였는데 도리어 이 같이 무례하니 만약 그를 죽이지 않는다면 내 기운이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하고는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가지고 장막 안으로 들어와 동탁을 죽이려 하였다. 이를 바루어
사람들의 실정과 형세의 이로움은 옛날이나 지금이 같은데
누가 이 관직 없는 이가 영웅임을 알겠는가?
어떻게 익덕(장비) 같은 통쾌한 사람을 얻어 세상의 은혜를 배반한 사람을 모두 베리!
끝내 동탁의 생명은 어떠할까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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