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삼국연의

제29회 소패왕이 노하여 우길을 베고, 푸른 눈의 아이가 앉아서 강동을 다스리다.

by 최인표 2020. 4. 28.

第二十九回小霸王怒斬于吉碧眼兒坐領江東

소패왕이 노하여 우길을 베고, 푸른 눈의 아이가 앉아서 강동을 다스리다.

 

卻說孫策自霸江東兵精糧足建安四年襲取廬江敗劉勳使虞翻馳檄豫章豫章太守華歆投降自此聲勢大振乃遣張紘往許昌上表獻捷曹操知孫策強盛歎曰:「獅兒難與爭鋒也!」遂以曹仁之女許配孫策幼弟孫匡兩家結婚留張紘在許昌孫策求為大司馬曹操不許策恨之常有襲許都之心於是吳郡太守許貢乃暗遣使赴許都上書於曹操其略曰孫策驍勇與項籍相似朝廷宜外示榮寵召還京師不可使居外鎮以為後患

각설하고 손책이 강동을 다스리고부터 군대는 정예롭고 양식은 충분하였다. 건안 4년 여강을 습격하여 취하고, 유훈을 무너뜨리며 우번으로 하여금 급히 예장에 격문을 띄우게 하니 예장태수 화흠이 항복해 들어왔다. 이로부터 명성과 위세가 크게 떨치고 이에 장굉을 보내 허창에 가서 표를 올려 승리를 알렸다. 조조가 손책이 강성함을 알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사자새끼와는 싸우기 어렵구나!”하고는 마침내 조인의 딸을 손책의 어린 동생 손광에게 시집보내 두 집안을 결혼시키게 했다. 조조는 장굉을 억류하여 허창에 있게 하였다. 손책이 대사마가 되기를 청하자 조조가 허락하지 않았다. 손책이 그것을 원망하여 항상 허도를 습격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이에 오군 태수 허공이 곧 몰래 사자를 허도에 보내 조조에게 글을 올렸다. 그 대략은 손책이 사납고 용맹하여 항적과 서로 비슷합니다. 조정은 마땅히 밖으로 임금의 영광과 총애를 보이시어 경사로 부르십시오. 외진에 살게 하여 후환이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했다.

 

使者齎書渡江被防江將士所獲解赴孫策處策觀書大怒斬其使遣人假意請許貢議事貢至策出書示之叱曰:「汝欲送我於死地耶!」命武士絞殺之貢家屬皆逃散有家客三人欲為許貢報仇恨無其便一日孫策引軍會獵於丹徒之西山趕起一大鹿策縱馬上山逐之

사자가 글을 가지고 강을 건너다 강을 지키는 장사에게 잡혀 손책에게 압송되었다. 손책이 글을 보고 크게 노하여 그 사자를 죽이고 사람을 보내 고의로 허공에게 일을 의논할 것을 청하였다. 허공이 이르자 손책이 글을 내어 보이면서 질책하여 말하기를 너는 나를 죽음의 땅에 보내려 하는가!”하고는 무사에게 명하여 목을 매어 죽이게 하였다. 허공의 가속들은 모두 도망하여 흩어졌다. 허공의 가객 세 사람이 있었는데 허공을 위하여 원수를 갚고자 하였으나 그 편이 없는 것을 한탄하였다. 하루는 손책이 군대를 이끌고 단도의 서산에서 사냥하는데 큰 사슴 한 마리를 몰자 손책이 말을 달려 산위로 쫓아갔다.

 

正趕之間只見樹林之內有三個人持槍帶弓而立策勒馬問曰:「汝等何人?」答曰:「乃韓當軍士也在此射鹿。」策方舉轡欲行一人挺槍望策左腿便刺策大驚急取佩劍從馬上砍去劍刃忽墜止存劍靶在手一人早拈弓搭箭射來正中孫策面頰策就拔面上箭取弓回射放箭之人應弦而倒那二人舉槍向孫策亂搠大叫曰:「我等是許貢家客特來為主人報仇!」策別無器械只以弓拒之且拒且走二人死戰不退策身被數鎗馬亦帶傷

쫓는 사이에 숲 속에 세 명의 사람들이 창을 지니고 활을 가지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손책이 고삐를 당겨 말을 세우고 물어 말하기를 너희들은 어떤 사람인가?”하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곧 한당의 군사입니다. 여기에 있으면서 사습을 쏘아 잡으려 합니다.” 했다. 손책이 막 고삐를 들어 가려할 때 한 사람이 창을 들어 손책의 왼쪽 넓적다리를 곧 찔렀다. 손책이 크게 놀라 급히 차고 있던 검을 잡으며 말을 놓고 올려 베어 갔는데 검 날이 갑자기 떨어지고, 다만 검 손잡이만 손에 있었다. 한 사람이 활을 집어 들고 화살을 재워 쏘았는데 손책의 얼굴 뺨에 바로 적중하였다. 손책이 얼굴 위의 화살을 뽑아 활을 잡고 돌려 활을 쏘았던 사람에게 쏘았다. 시위 소리와 함께 엎어졌다. 두 사람이 창을 들어 손책을 향하여 어지러이 푹 찌르며 크게 소리쳐 말하기를 우리들은 허공의 가객인데 특히 주인을 위하여 원수를 갚으러 왔다!”했다. 손책은 별도의 기계가 없고, 다만 활을 가지고 막고, 또 막고 또 달아났다. 두 사람이 죽음을 무릅쓰고도 물러나지 않았다. 손책은 몸에 몇 번의 창을 맞았고, 말도 또한 상처를 입었다.

 

正危急之時程普引數人至孫策大叫:「殺賊!」程普引眾齊上將許貢家客砍為肉泥看孫策時血流滿面被傷至重乃以刀割袍裹其傷處救回吳會養病後人有詩贊許家三客曰

위급한 때에 장보가 몇 명을 이끌고 이르렀다. 손책이 크게 외치기를 도적을 죽이라!”했다. 정보가 무리를 이끌고 일제히 올라 허공의 가객을 베어 고기 진흙을 만들었다. 손책을 보았을 때 흐르는 피가 얼굴에 가득하고 입은 상처가 중함에 이르렀다. 이에 칼로 포를 갈라 그 상처를 싸매고 구조하여 오회로 돌아가 병을 치료하였다. 후세의 사람들이 시로 허가의 삼객을 기린 것이 있다.

 

孫郎智勇冠江湄射獵山中受困危許客三人能死義殺身豫讓未為奇

손책의 지혜와 용기는 장강 가에서 최고였으나/사냥하다 산중에서 곤궁함을 만났다./허공 잡안의 세 사람은 죽음으로 의리를 지켰고/자신을 죽인 예양의 의리가 기이하지 않도다./

 

卻說孫策受傷而回使人尋請華佗醫治不想華佗已往中原去了止有徒弟在吳命其治療其徒曰:「箭頭有藥毒已入骨須靜養百日方可無虞若怒氣衝激其瘡難治。」

각설하고 손책이 상처를 입고 돌아가 화타를 찾아 치료를 청하게 했다. 생각지 않게 화타가 이미 중원에 갔고, 다만 제자만 오에 있었으므로 그에게 치료를 명하였다. 그 제자가 말하기를 화살 머리에 약이 있어 독이 이미 뼈에 들어갔습니다. 모름지기 백일은 정양해야 비로소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노한 기운이 충격을 주면 그 종기는 다스리기 어렵습니다.” 했다.

 

孫策為人最是性急恨不得即日便愈將息到二十餘日忽聞張紘有使者自許昌回策喚問之使者曰:「曹操甚懼主公其帳下謀士亦俱敬服惟有郭嘉不服。」策曰:「郭嘉曾有何說?」使者不敢言策怒固問之使者只得從實告曰:「郭嘉曾對曹操言主公不足懼也輕而無備性急少謀乃匹夫之勇耳他日必死於小人之手。」策聞言大怒曰:「匹夫安敢料吾吾誓取許昌!」遂不待瘡愈便欲商議出兵張昭諫曰:「醫者戒主公百日休動今何因一時之忿自輕萬乘之軀?」

손책의 사람됨은 가장 성질이 급하여 그날 낫지 않는 것을 한스러워했다. 휴식한지 이십여 일에 홀연히 장굉의 사자가 허창에서 돌아 왔다는 것을 듣고 손책이 불러 물었다. 사자가 말하기를 조조는 매우 주공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의 휘하 모사들이 또한 모두 공경하고 탄복하는데 오직 곽가 만은 복종하지 않습니다.” 했다. 손책이 말하기를 곽가는 어떤 말을 하던가?”하니 사자가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손책이 노하여 굳이 그것을 물었다. 사자가 다만 실제를 고하여 말하기를 곽가가 일찍이 조조의 말에 대답하기를 주공께서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경솔하여 대비가 없고, 성격이 급하며 지모가 적으니 곧 필부의 용맹일 뿐입니다. 다른 날 반드시 소인의 손에 죽을 것입니다.’” 했습니다. 손책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필부가 어찌 감히 나를 헤아리는가! 내가 허창을 취할 것을 맹서한다!”하였다. 마침내 상처가 낫기를 기다리지 않고 곧 출병을 상의하였다. 장소가 간하여 말하기를 의원이 주공은 백일을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고 경계하였는데 지금 어찌 한 때의 분노로 인하여 스스로 만승의 몸(천자의 몸)을 가벼이 합니까?” 했다.

 

正話間忽報袁紹遣使陳震至策喚入問之震具言袁紹欲結東吳為外應共攻曹操策大喜即日會諸將於城樓上設宴款待陳震飲酒久間忽見諸將互相耳語紛紛下樓策怪問何故左右曰:「有于神仙者今從樓下過諸將欲往拜之耳。」

이야기 하는 사이에 원소가 보낸 사자 진진이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손책이 불러 물었다. 진진이 원소가 동오와 결맹하여 밖에서 대응하여 함께 조조를 공격하고자 한다고 갖추어 말하였다. 손책이 크게 기뻐하여 그날 여러 장수들을 성루 위에 모아 잔치를 열고 진진을 정성껏 대접하였다. 술 마시기를 오래하고 있는데 여러 장수들이 서로 귀에 말을 하면서 어지럽게 루를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손책이 괴이하게 여겨 무슨 이유인지를 물었다. 좌우가 말하기를 우신선이라는 자가 잇어 지금 루 아래를 지나고 있어 여러 장수들이 가서 뵙고자 할 뿐입니다.” 했다.

 

策起身憑欄觀之見一道人身披鶴氅手攜藜杖立於當道百姓俱焚香伏道而拜策怒曰:「是何妖人快與我擒來!」左右曰:「此人姓于名吉寓居東方往來吳會普施符水救人萬病無有不驗當世呼為神仙未可輕瀆。」策愈怒速速擒來違者斬!」

손책이 몸을 일으켜 난간에 의지하여 보니 한 도인이 보이는데 몸에는 학창의를 입고, 손에는 명아주 지팡이를 들고 길 가운데 서 있었는데 백성들이 모두 향을 피우며 길에 엎드려 절하였다. 손책이 노하여 말하기를 이는 어떤 요사스러운 사람인가? 빨리 나에게 사로잡아 오라!” 했다. 좌우가 말하기를 이 사람의 성은 우이고, 이름은 길입니다. 동쪽에 사는데 오회를 오고 갑니다. 부적 물을 나누어주어 온갖 병에서 사람을 구하는데 징험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신선이라 부르고, 경솔히 욕하지 않습니다.” 했다. 손책이 더욱 노하여 꾸짖어 명령하기를 속히 잡아 오라! 어기는 자는 머리를 벨 것이다!” 했다.

 

左右不得已只得下樓于吉至樓上策叱曰:「狂道怎敢煽惑人心!」于吉曰:「貧道乃瑯琊宮道士順帝時曾入山採藥得神書於水上號曰太平青領道凡百餘卷皆治人疾病方術貧道得之惟務代天宣化普救萬人未曾取人毫釐之物安得煽惑人心?」策曰:「汝毫不取人衣服飲食從何而得汝即黃巾張角之流今若不誅必為後患!」叱左右斬之張昭諫曰:「于道人在江東數十年並無過犯不可殺害。」策曰:「此等妖人吾殺之何異屠豬狗!」

좌우가 할 수 없이 루를 내려가 우길을 둘러싸고 루에 올라왔다. 손책이 꾸짖어 말하기를 미친놈은 어찌하여 감히 인심을 선동하는가!”하니 우길이말하기를 빈도는 곧 낭야궁의 도사입니다. 순제 때 일찍이 산에 들어가 약을 캐다 물 위에서 신서를 얻었으니 태평청령도라 하고, 모두 백여 권인데 모두 사람의 질병을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빈도가 그것을 얻어 힘써 하늘을 대신하여 교화를 베풀어 만인을 구원하였습니다. 일찍이 사람들에게 터럭 끝의 물건도 취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인심을 선동한다고 하십니까?” 했다. 손책이 말하기를 네가 다른 사람에게 털끝만큼도 취하지 않는다면 의복과 음식은 어떻게 얻는가? 너는 곧 황건과 장각의 무리이다. 지금 죽이지 않는다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이다!”하고는 좌우에게 그의 머리를 베게 하였다. 장소가 간하여 말하기를 우 도인은 강동에 수십 년 살면서도 허물을 범함이 없었으니 죽일 수 없습니다.” 했다. 손책이 말하기를 이들은 요망한 사람으로 내가 그를 죽이는 것이 돼지와 개를 죽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했다.

 

眾官皆苦諫陳震亦勸策怒未息命且囚於獄中眾官俱散陳震自歸館驛安歇孫策歸府早有內侍傳說此事與策母吳太夫人知道夫人喚孫策入後堂謂曰:「吾聞汝將于神仙下於縲絏此人多曾醫人疾病軍民敬仰不可加害。」策曰:「此乃妖人能以妖術惑眾不可不除!」夫人再三勸解策曰:「母親勿聽外人妄言兒自有區處。」乃出喚獄吏取于吉來問原來獄吏皆敬信于吉吉在獄中時盡去其枷鎖及策喚取方帶枷鎖而出

여러 관리들이 정성껏 간하고 진진이 또한 권하였다. 손책의 분노가 그치 않아 명하여 옥에 가두게 하였다. 여러 관리들이 모두 흩어졌다. 진진이 관역에 돌아가 편안히 쉬었다. 손책이 부에 돌아갔는데 내시가 일찍이 이 일을 손책의 어머니 오 태부인에게 전하여 알고 있었다. 오 태부인이 손책을 불러 후당에 들어오니 일러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네가 우 신선을 잡아 감옥에 가두었다. 한다. 이 사람은 의원으로 일찍이 많이 질병을 치료하여 군사와 백성들이 공경하여 우러르니 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 했다. 손책이 말하기를 이는 곧 요사스러운 사람으로 요술로 무리들을 미혹하게 하니 제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했다. 오 태부인이 두 번, 세 번 권하였다. 손책이 말하기를 어머니께서는 바깥사람들의 망녕된 말을 듣지 마십시오. 제가 이리저리 변통하여 처리하겠습니다.” 했다. 곧 옥리를 불러 우길을 데려오게 하여 심문하려 하였다. 원래 옥리들이 모두 우길을 공경하고 믿었으므로 우길이 옥에 있을 때 그 차코를 모두 제거하였는데 손책이 데려오라 부름에 이르러 비로소 차코를 채워 나왔다.

 

策訪知大怒痛責獄吏仍將于吉械繫下獄張昭等數十人連名作狀拜求孫策乞保于神仙策曰:「公等皆讀書人何不達理昔交州有一刺史張津聽信邪教鼓瑟焚香常以紅帕裏頭自稱可助出軍之威後竟為敵軍所殺此等事甚無益諸君自未悟耳吾欲殺于吉正思禁邪覺迷也。」呂範曰:「某素知于道人能祈風禱雨方今天旱何不令其祈雨以贖罪?」策曰:「吾且看此妖人若何。」遂命於獄中取出于吉開其枷鎖令登壇求雨

손책이 알고는 크게 노하여 옥리를 엄하게 꾸짖고는 곧 우길에게 칼을 쒸워 옥에 가두게 했다. 장소 등 수 십 명이 연명장을 만들어 손책에게 부탁하여 우 신선을 살려 줄 것을 청하였다. 손책이 말하기를 공들은 모두 글을 읽은 사람으로 어찌 이치에 통달하지 못하는가? 옛날 교주에 한 자사인 장진이 있었는데 사교를 믿고 비파를 연주하고, 향을 피우며 항상 붉은 머리띠를 머리에 매고 스스로 출동하는 군대를 도울 수 있다고 일컬었지만 후에 마침내 적군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이러한 등의 일은 매우 무익한데 제군들은 스스로 깨닫지 못할 뿐이다. 내가 우길을 죽이려는 것은 생각을 바로하여 간사함을 금하고, 미혹됨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했다. 여범이 말하기를 제가 평소에 우도인이 바람과 비를 기도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가뭄이 들었으니 어찌하여 그 비 내리기를 기도하는 것으로서 속죄하게 하지 않습니까?” 했다. 손책이 말하기를 내가 또한 이 요사한 사람이 어떻게 하는 지를 볼 것이다.”하고는 마침내 명을 내려 옥 안에서 우길을 나오게 하여 그 차코를 열고 단에 올라 비 내리기를 청하게 했다.

 

吉領命即沐浴更衣取繩自縛於烈日之中百姓觀者填街塞巷于吉謂眾人曰:「吾求三尺甘霖以救萬民然我終不免一死。」眾人曰:「若有靈驗主公必然敬服。」于吉曰:「氣數至此恐不能逃。」

우길이 명령을 받들어 곧 목용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노끈을 취하여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 속에 스스로를 묶었다. 백성으로 보는 자들이 거리를 채우고, 거리를 막았다. 우길이 여러 사람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석 자의 단 비를 청하여 만민을 구원하겠으나 나는 끝내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했다. 여러 사람들이 말하기를 만약 영험함이 있으면 주공께서 반드시 공격하고 복종할 것입니다.” 했다. 우길이 말하기를 내 운수가 여기에 이르렀으니 아마도 도망하지 못할 것입니다.” 했다.

 

少頃孫策親至壇中下令若午時無雨即焚死于吉先令人堆積乾柴伺候將及午時狂風驟起風過處四下陰雲漸合策曰:「時已近午空有陰雲而無甘雨正是妖人!」叱左右將于吉扛上柴堆四下舉火燄隨風起忽見黑煙一道沖上空中一聲響亮雷電齊發大雨如注頃刻之間街市成河溪澗皆滿足有三尺甘雨于吉仰臥於柴堆之上大喝一聲雲收雨住復見太陽

잠시 후 손책이 친히 단에 이르러 명령을 내리기를 만약 오시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곧 우길을 불태워 죽일 것이다.”하고는 먼저 사람으로 하여금 마른섶을 쌓고, 돌보게 하였다. 오시에 이르자 바람이 미친 듯이 일어났다. 바람이 지나는 곳마다 사방에 먹구름이 점점 일어났다. 손책이 말하기를 때가 이미 오시에 가까워지는데 한갓 먹구름만 있고, 단비가 내리지 않으니 바로 이는 요사스러운 사람이다!”하고는 좌우를 질책하여 우길을 섶 쌓은 곳에 올리고, 사방에서 불을 놓으니 화염이 바람을 따라 일어났다. 홀연히 검은 연기 한 줄기가 공중으로 치솟는 것이 보이고, 한 번 큰 소리가 들리고 우레와 번개가 일제히 일어나고 큰비가 내리는 것이 물을 대는 것과 같았다. 잠간 사이에 거리가 강을 이루고 골짜기의 시내가 모두 가득 차니 세 자의 단비가 충분하였다. 우길이 섶을 쌓은 위에서 하늘을 보고 누워 크게 구름을 거두고 비가 그치라 하니 다시 태양이 보였다.

 

於是眾官及百姓共將于吉扶下柴堆解去繩索再拜稱謝孫策見官民俱羅拜於水中不顧衣服乃勃然大怒叱曰:「晴雨乃天地之定數妖人偶乘其便你等何得如此惑亂!」寶劍令左右殺了于吉眾官力諫策怒曰:「爾等皆欲從于吉造反耶!」眾官乃不敢復言策叱武士將于吉一刀斬頭落地只見一道青氣投東北去了策命將其屍號令於市以正妖妄之罪

이에 여러 관리들과 백성들이 함께 우길을 섶을 쌓은 곳에서 부축하여 내리고 묶은 줄을 풀어주며 두 번 절하고 사례 했다. 손책이 관민이 물속에서 모두 나열하여 절하는 것을 보고는 의복을 돌아보지 않고 이에 발연 대노하여 꾸짖어 말하기를 날이 개고, 비가 내리는 것은 하늘과 땅의 정해진 운수로 요사스러운 사람이 우연히 그 편의를 탄 것인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이 같이 의혹되고 어지러운가!”하고는 보검을 잡아 좌우로 하여금 우길을 죽이게 했다. 여러 관리들이 힘써 간하였다. 손책이 노하여 말하기를 너희들은 모두 우길을 따라 배반하려 하는가!”하니 여러 관리들이 곧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였다. 손책이 무사를 질책하여 한 칼에 우길을 베니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한 줄기 푸른 기운이 동북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손책이 명하여 그 시체를 가져다 시장에서 호령하여 요사스럽고 망녕된 죄를 바로잡게 했다.

 

是夜風雨交作及曉不見了于吉屍首守屍軍士報知孫策策怒欲殺守屍軍士忽見一人從堂前徐步而來,視之卻是于吉策大怒正欲拔劍砍之忽然昏倒於地左右急救入臥內半晌方甦吳太夫人來視疾謂策曰:「吾兒屈殺神仙故招此禍。」策笑曰:「兒自幼隨父出征殺人如麻何曾有為禍之理今殺妖人正絕大禍安得反為我禍?」夫人曰:「因汝不信以致如此今可作好事以禳。」策曰:「吾命在天妖人決不能為禍何必禳耶?」夫人料勸不信乃自令左右暗修善事禳解

이날 밤 바람과 비가 번갈아 일어나고, 새벽에 이르러 우길의 시신과 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시체를 지키는 군사가 손책에게 보고하였다. 손책이 노하여 시체를 지키는 군사를 죽이려 하였다. 홀연히 한 사람이 나타나 집 앞으로부터 느린 걸음으로 걸어오는데 그를 보니 이는 우길이었다. 손책이 크게 노하여 바로 검을 뽑아 베려하는데 홀연히 정신이 어지러워져 땅에 엎어졌다. 좌우가 급히 구원하여 안에 들어가 눕혔는데 한 나절이 지나 비로소 일어났다. 오 태부인이 와서 병을 보고 손책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 아들이 신선을 이치에 맞지 않게 죽였기 때문에 이 재앙을 부른 것이다.” 했다. 손책이 웃으며 말하기를 제가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정벌을 나가 사람 죽이기를 삼 베듯이 하였는데 언제 일찍이 재앙의 이치가 됨이 있었겠습니까? 지금 요사스러운 사람을 죽여 큰 재앙을 끊었는데 어찌 도리어 나의 재앙이 될 수 있겠습니까?” 했다. 오 태부인이 말하기를 네가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같음에 이른 것이다. 지금 재를 지내는 것으로서 재앙을 막아야 한다.” 했다. 손책이 말하기를 내 목숨은 하늘에 달려있으니 요사스러운 사람은 결단코 화가 될 수 없는데 어찌 반드시 재를 지내 기도하겠습니까?” 했다. 오 태부인은 권하여도 믿지 않을 것을 헤아리고는 곧 스스로 좌우에게 명하여 재계하고 재앙을 막아 달라 기도하였다.

 

是夜三更策臥於內宅忽然陰風驟起燈滅而復明燈影之下見于吉立於前策大喝曰:「吾平生誓誅妖妄以靖天下汝既為陰鬼何敢近我!」取床頭劍擲之忽然不見吳太夫人聞之轉生憂悶策乃扶病強行以寬母心母謂策曰:「聖人云:『鬼神之為德其盛矣乎!』又云:『禱爾于上下神祇。』鬼神之事不可不信汝屈殺于先生豈無報應吾已令人設醮於郡之玉清觀內汝可親往拜禱自然安妥。」

이 날 밤 삼경에 손책이 내택에 누워 있는데 홀연히 싸늘한 바람이 갑자기 일면서 등불이 꺼질 듯하다 다시 밝아졌다. 등 그림자 아래 우길이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손책이 크게 소리 질러 말하기를 내 평생 동안 요망함을 죽여서 천하를 편안하게 하기로 맹서하였다! 너는 이미 죽은 넋으로 어찌 감히 나를 가까이하는가!” 하고는 침상 머리의 검을 잡아 던지니 홀연히 보이지 않았다. 오 태부인이 그것을 듣고 다른 것으로 다시 태어남(죽음)을 근심하고 번민하였다. 손책이 이에 병을 무릅쓰고 억지로 가서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하였다. 오 태부인이 손책에게 일러 말하기를 성인이 말하기를 귀신에게 덕을 행하여 그 집안을 번성하게 한다!’하였고, 또 말하기를 사당에서 상하 신지에게 기도하였다.’하니 귀신의 일은 밎지 않을 수 없다. 너는 억지로 우선생을 죽였으니 어찌 갚는 것이 없겠는가? 내가 이미 사람을 시켜 군의 옥청관 안에서 초제를 베풀게 하였으니 너는 친히 가서 졸하고 기도하면 자연히 편안해 질 수 있을 것이다.” 했다.

 

策不敢違母命只得勉強乘轎至玉清觀道士接入請策焚香策焚香而不謝忽香爐中煙起不散結成一座華蓋上面端坐著于吉策怒唾罵之走離殿宇又見于吉立於殿門怒目視策策顧左右曰:「汝等見妖鬼否?」左右皆云:「未見。」策愈怒拔佩劍望于吉擲去一人中劍而倒眾視之乃前日動手殺于吉之小卒被劍砍入腦袋七竅流血而死策命扛出葬之

손책이 감히 어머니의 명을 어기지 못하고 마지못해 가마를 타고 옥청관에 이르렀다. 도사가 영접하여 들이고 향을 사를 것을 청하였다. 손책은 향을 사르되 사례하지는 않았다. 향로 안의 연기가 흩어지지 않고 한 자리의 양산을 맺어 이루었는데 윗면에 우길이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손책이 노하여 침을 뱉고 욕하고서 전각을 떠났다. 또 전각문에 우길이 서서 노한 눈으로 손책을 보았다. 손책이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너희들에게도 요망한 귀신이 보이는가?”하니 좌우가 모두 말하기를 보이지 않습니다.”했다. 손책이 더욱 노하여 차고 있던 검을 뽑아 우길을 바라보고 던졌는데 한 사람이 검에 적중되어 엎어졌다. 여럿이 그를 보니 곧 전날 손을 움직여 우길을 죽인 군졸이었는데 검에 베어져 검이 뇌에 들어가 일 곱 구멍으로 피를 흘리며 죽었다. 손책이 어깨이 매고 나가 장례하도록 명했다.

 

比及出觀又見于吉走入觀門來策曰:「此觀亦藏妖之所也!」遂坐於觀前命武士五百人拆毀之武士方上屋揭瓦卻見于吉立於屋上飛瓦擲地策大怒傳令逐出本觀道士放火燒燬殿宇火起處又見于吉立於火光之中策怒歸府又見于吉立於府門前策乃不入府隨點起三軍出城外下寨傳喚眾將商議欲起兵助袁紹夾攻曹操眾將俱曰:「主公玉體違和未可輕動且待平愈出兵未遲。」

옥청관을 나옴에 이르러 또 우길이 옥청관 문으로 달려 들어왔다. 손책이 말하기를 이 옥청관이 또한 요사스러움을 감춘 곳이구나!” 하고는 마침내 옥청관 앞에 앉아 무사 오백 명에게 명하여 무너뜨리게 하였다. 무사들이 막 지붕에 올라 가 기와를 벗기려는데 우길이 지붕 위에 서서 기와를 날려 땅에 던졌다. 손책이 크게 노하여 옥청관의 도사를 내쫒게 하고 옥청관 건물에 불을 놓아 태우게 했다. 불이 일어나는 곳에 또 우길이 불 갈 안에 서 있었다. 손책이 노하여 부에 돌아왔는데 우길이 부의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손책이 이에 부에 들어가지 못하고 삼군을 점검하고 일으켜 성 밖으로 나와 영채를 세우고 여러 장수를 불러 상의하고, 군대를 일으켜 원소를 도와 조조를 협공하려 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말하기를 주공의 옥체가 조화롭지 못하니 가벼이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또한 편안히 나음을 기다려 군대를 내어도 늦지 않습니다.” 했다.

 

是夜孫策宿於寨內又見于吉披髮而來策於帳中叱喝不絕次日吳太夫人傳令召策回府策乃歸見其母夫人見策形容憔悴泣曰:「兒失形矣!」策即引鏡自照果見形容十分瘦損不覺失驚顧左右曰:「吾奈何憔悴至此耶!」

이 날 밤 손책이 영채 안에서 자는데 또 우길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왔다. 손책이 장막 안에서 꾸짖고 소리치는 것이 끊이지 않았다. 다음 날 오 태부인이 영을 전하여 손책을 불러 부에 돌아오게 하였다. 손책이 이에 돌아가 그 어머니를 뵈었다. 오 태부인이 손책의 모습이 초최한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아이가 형상을 잃었구나!”하니 손책이 곧 거울들 당겨 스스로를 비춰부니 과연 모습이 매우 수척한 것을 보고는 감짝 놀라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내가 어찌 초췌함이 이에 이르렀는가!” 했다.

 

言未己忽見于吉立於鏡中策拍鏡大叫一聲金瘡迸裂昏絕於地夫人令扶入臥內須臾甦醒自歎曰:「吾不能復生矣!」隨召張昭等諸人及弟孫權至臥榻囑付曰:「天下方亂以吳越之眾三江之固大可有為子布等幸善相吾弟。」乃取印綬與孫權曰:「若舉江東之眾決機於兩陣之間與天下爭衡卿不如我舉賢任能使各盡力以保江東我不如卿卿宜念父兄創業之艱難善自圖之!」

말을 마치기도 전에 홀연히 우길이 거울 안에 서 있었다. 손책이 거울을 손으로 치고는 크게 소리쳤는데 상처가 터지며 땅에 정신을 잃었다. 오 태부인이 부축하여 안에 들어가 눕히게 하였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는 스스로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가 다시 살아날 수 없겠구나!”하고는 장소 등 여러 사람들과 동생 손권을 불러 침대 앞에 이르자 부탁하여 말하기를 천하가 바야흐로 혼란스러워지는데 오월의 많은 무리와 삼강의 견고함으로 크게 일을 할 수 있다. 자포(장소) 등은 내 동생을 잘 도와주면 요행이겠습니다.” 했다. 이에 인수를 가져다 손권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만약 강동의 무리를 일으켜서 두 쪽의 군사들 사이에서 결단하여 천하와 다투고 충돌하는 것은 경이 나보다 못하다. 어진 이를 천거하고 능력 있는 이에게 맡겨서 각기 힘을 다하게 하는 것으로서 강동을 보존하는 것은 내가 경만 못하다. 경은 마땅히 부형이 창업하였던 어려움을 생각하여 스스로 잘 도모하시오!” 했다.

 

權大哭拜受印綬策告母曰:「兒天年已盡不能奉慈母今將印綬付弟望母朝夕訓之父兄舊人慎勿輕怠。」母哭曰:「恐汝弟年幼不能任大事當復如何?」策曰:「弟才勝兒十倍足當大任內事不決可問張昭外事不決可問周瑜──恨周瑜不在此不得面囑之也!」又喚諸弟囑曰:「吾死之後汝等並輔仲謀宗族中敢有生異心者眾共誅之骨肉為逆不得入祖墳安葬。」諸弟泣受命又喚妻喬夫人謂曰:「吾與汝不幸中途相分汝須孝養尊姑早晚汝妹入見可囑其轉致周郎盡心輔佐吾弟休負我平日相知之雅。」言訖暝目而逝年止二十六歲後人有詩讚曰

손권이 크게 곡하며 절하고 인수를 받았다. 손책이 어머니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하늘이 준 저의 목숨이 이미 다하여 어머니를 받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인수를 동생에게 주었으니 어머니께서는 아침저녁으로 가르치기를 바랍니다. 부형의 옛 사람들에게 삼가하여 가볍고 태만하지 않게 하십시오.” 했다. 어머니가 곡하며 말하기를 너의 동생은 나이가 어려 대사를 맡지 못할까 두려우니 마땅히 다시 하는 것이 어떠한가?” 했다. 손책이 말하기를 동생의 재능은 저보다 열 배나 나으니 충분히 큰 임무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혹 안의 일을 결단하지 못할 때는 장소에게 물을 수 있고, 밖의 일을 결단하지 못할 때는 주유에게 물을 수 있는데 한스러운 것은 주유가 여기에 있지 않아 얼굴을 마주하고 부탁하지 못하는 것이다!” 했다. 또 여러 동생들을 불러 부탁하여 말하기를 내가 죽은 후 너희들은 같이 중모(손권)를 도와야 한다. 종족 중에 감히 다른 마음을 품은 자는 무리들이 함께 죽여야 한다. 골육이면서 반역을 한 자는 조상의 무덤에 편안히 장사함에 들지 못할 것이다.” 했다. 여러 동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명을 받았다. 또 처 교부인을 불러 일러 말하기를 나와 당신이 불행히도 중간에 서로 헤어지게 되었지만 당신은 시어머니에게 효도하고 기르며 높여야 할 것입니다. 조만간에 당신의 여동생(주유의 아내)이 들어와 뵈면 내 뜻을 주랑(주유)에게 잘 전하라 부탁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 동생을 보좌하고, 내가 평소에 서로 알았던 아름다움을 저버리지 말라. 하시오.” 했다. 말을 마치고 죽었다. 나이는 단지 이십육 세였다. 후세 사람들이 시를 지어 기려 말하기를

 

獨戰東南地人稱小霸王運籌如虎踞決策似鷹揚威鎮三江靖名聞四海香臨終遺大事專意屬周郎

홀로 동남쪽 땅에서 싸워 사람들이 소패왕이라 일컬었다. 범이 걸터앉은 듯 계략을 짜고, 매를 날리듯 계책을 결단한다. 위엄은 삼강을 바르게 지키고, 명성이 사해에 떨쳤다. 죽음에 대사를 남기며 오로지 주유를 생각하였다.

 

孫策既死孫權哭倒於床前張昭曰:「此非將軍哭時也宜一面治喪事一面理軍國大事。」權乃收淚張昭令孫靜理會喪事請孫權出堂受眾文武謁賀孫權生得方頤大口碧眼紫髯昔漢使劉琬入吳見孫家諸昆仲因語人曰:「吾遍觀孫氏兄弟雖各才氣秀達然皆祿祚不終惟仲謀形貌奇偉骨格非常乃大貴之表又享高壽眾皆不及也。」

손책이 죽은 후 손권이 곡하며 침상 앞에 엎드렸다. 장소가 말하기를 이는 장군이 곡할 때가 아닙니다. 마땅히 한 편으로는 장례를 치르고, 한편으로는 군국의 대사를 다스려야 합니다.” 했다. 손권이 이에 눈물을 거두었다. 장소가 손정으로 하여금 장례의 일을 맡아보게 하고, 손권에게 당을 나가 문관과 무관의 알현과 축하를 받을 것을 청하였다. 손권은 나면서부터 턱이 네모나고, 입이 크며, 눈이 푸르고 구렛나루는 자줏빛 이었다. 옛날 한나라 사신 유홀이 오에 들어와 손씨 가문의 여러 형제들을 보고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내가 두루 손씨 형제를 보니 비록 재능과 기운이 빼어나나 모두 복록을 마치지는 못할 것이다. 오직 중모(손권)만은 형상이 훌륭하고 골격이 보통이 아니니 크게 귀한 표시이다. 또한 많은 수명을 누려 무리들이 모두 미치지 못할 것이다.” 했다.

 

且說當時孫權承孫策遺命掌江東之事經理未定人報周瑜自巴丘提兵回吳權曰:「公瑾已回吾無憂矣。」原來周瑜守禦巴丘聞知孫策中箭被傷因此回來問候將至吳郡聞策已亡故星夜來奔喪當下周瑜哭拜於孫策靈柩之前吳太夫人出以遺囑之語告瑜瑜拜伏於地曰:「敢不效犬馬之力繼之以死!」

각설하고 당시 손권이 손책의 유명을 받들어 강동의 일을 관장하였다. 경영하고 다스리는 것은 아직 정해지지 못하였다. 사람들이 주유가 백파구에서 군대를 데리고 오에 돌아온다는 것을 보고하였다. 손권이 말하기를 공근이 이미 돌아왔으니 나는 근심할 것이 없다.”했다. 원래 주유는 파구에서 지키고 있다가 손책이 화살에 맞아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들어 알았기 때문에 돌아와 안부를 물으려 하였다. 오군에 이르려 할 때 손책이 이마 죽었다는 것을 듣고 밤을 다해 상을 치르러 달려왔다. 주유는 도착하자 말자 손책의 관 앞에서 곡하고 절하였다. 오 태부인이 나와 남긴 부탁의 말을 주유에게 말하여 알렸다. 주유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말하기를 어찌 개와 말의 수고로움을 바쳐 죽음으로서 그것을 잇지 않겠습니까!” 했다.

 

少頃孫權入周瑜拜見畢權曰:「願公無忘先兄遺命。」瑜頓首曰:「願以肝腦塗地報知己之恩。」權曰:「今承父兄之業將何策以守之?」瑜曰:「自古得人者昌失人者亡』。為今之計須求高明遠見之人為輔然後江東可定也。」權曰:「先兄遺言內事託子布外事全賴公瑾。」瑜曰:「子布賢達之士足當大任瑜不才恐負倚託之重願薦一人以輔將軍。」

잠시 후 손권이 들어왔다. 주유가 예를 마치자 손권이 말하기를 원컨대 공께서는 죽은 형이 남긴 명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했다. 주유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간과 뇌가 길에 칠해지더라도 저를 알아 준 은혜를 갚기를 원합니다.”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지금 부형의 업을 계승하여 장차 무슨 계책으로 지켜야 합니까?”하니 주유가 말하기를 옛날부터 사람을 얻은 자는 창성하고, 사름을 잃은 자는 망한다.’하였으니 지금의 계책은 모름지기 고명하고 원대한 견해가 있는 사람을 구하여 보좌하게 한 후에 강동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죽은 형이 남긴 말은 안의 일은 자포(장소)에게 부탁하고, 밖의 일은 온전히 공근(주유)에게 의지하라 하였습니다.” 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자포(장소)는 현달의 선비이니 충분히 큰 임무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주유)는 재능이 없어 의지하고 부탁의 중함을 저버릴까 두려우니 원컨대 한 사람을 천거하는 것으로서 장군을 보좌하길 원합니다.” 했다.

 

權問何人瑜曰:「姓魯名肅字子敬臨淮東川人也此人胸懷韜略腹隱機謀早年喪父事母至孝其家極富嘗散財以濟貧乏瑜為居巢長之時將數百人過臨淮因乏糧聞魯肅家有兩囷各三千斛因往求助肅即指一囷相贈其慷慨如此平生好擊劍騎射寓居曲阿祖母亡還葬東城其友劉子揚欲約彼往巢湖投鄭寶肅尚躊躇未往今主公可速召之。」

손권이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다. 주유가 말하기를 성은 노이고, 이름은 숙이며, 자는 자경이니 임회 동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머리에 도략(육도삼략)을 품었고, 배에는 계략을 숨겼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섬겼는데 효성이 지극합니다. 그 집이 지극히 부유하여 일찍이 재물을 흩어 가난한 이를 구제하였습니다. 제가 거소의 현장이 되었을 때 수 백 명을 거느리고 임회를 지날 때 식량이 부족하여 노숙의 집에서 두 창고의 쌀이 각각 삼천 곡이 있다는 것을 듣고 가서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노숙이 곧 한 창고를 가리키면서 가져가라 했습니다. 그 강개함이 이 같습니다. 평생 검으로 치고 말 타고 활쏘기를 좋아하였으며, 아곡에 살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죽자 동성에 돌아가 장례하였습니다. 그 벗 유자양이 그와 소호에 가 정보에게 들어가기로 약속하였으나 노숙이 오히려 주저하고 가지 않았습니다. 지금 주공께서 속히 그를 부르십시오.” 했다.

 

權大喜即命周瑜往聘瑜奉命親往見肅敘禮畢具道孫權相慕之意肅曰:「近劉子揚約某往巢湖某將就之。」瑜曰:『昔馬援對光武云:「當今之世非但君擇臣臣亦擇君。」今吾孫將軍親賢禮士納奇錄異世所罕有足下不須他計只同我往投東吳為是。』肅從其言遂同周瑜來見孫權權甚敬之與之談論終日不倦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곧 주유에게 명하여 가서 초빙하게 하였다. 주유가 명을 받들고 직접 가서 노숙을 만나 차례로 예를 마친 후 손권이 서로 사모하는 뜻을 모두 말하였다. 노숙이 말하기를 근래 유자양과 제가 소호에 가기로 약속하였으니 저는 장차 거기에 가야 합니다.” 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옛날 마원이 광무제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지금의 세상은 단지 임금이 신하를 택할 뿐만 아니라 신하가 또한 임금을 택하여야 합니다.’ 했습니다. 지금 손 장군이 어진 이를 친히 하고, 선비를 예로 대우하며, 뛰어난 인재를 받아들이고, 비범한 이를 등용하니 세상에 드문 바가 있습니다. 그대가 모름지기 다른 계획이 없다면 나와 함께 동오에 들어가는 것이 옳음이 될 것입니다.” 했다. 노숙이 그 말을 따라 마침내 주유와 함게 와 손권을 뵈었다. 손권이 매우 공격하여 그와 함께 얘기를 나누면서 종일을 하여도 권태로워하지 않았다.

 

一日眾官皆散權留魯肅共飲至晚同榻抵足而臥夜半權謂肅曰:「方今漢室傾危四方紛擾孤承父兄餘業思為桓文之事君將何以教我?」肅曰:「昔漢高祖欲尊事義帝而不獲者以項羽為害也今之曹操可比項羽將軍何由得為桓文乎肅竊料漢室不可復興曹操不可卒除為將軍計惟有鼎足江東以觀天下之釁今乘北方多務剿除黃祖進伐劉表竟長江所極而據守之然後建號帝王以圖天下此高祖之業也。」

어느 날 여러 관리들이 흩어 질 때 손권이 노숙을 남게하여 술을 마시다 저녁이 되자 같은 침상에 다리를 걸치고 누웠다. 한 밤 중에 손권이 노숙에게 일러 말하기를 바야흐로 지금 한나라는 기울어 위태롭고, 사방이 어지럽고 소란스럽습니다. 저는 부형의 남은 업을 이어 환공과 문공의 일을 생각하였는데 그대는 장차 무엇을 가지고 나를 가르치려합니까?” 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옛 날 한 고조가 의제를 높이고 섬기고자 하였으나 할 수 없었던 것은 항우가 해쳤기 때문입니다. 지금 조조는 항우에게 비견할 수 있는데 장군은 무슨 연유로 환공과 문공이 되려합니까? 제가 가만히 헤아려 보니 한나라는 다시 일어날 수 없고, 조조는 끝내 제거할 수 없습니다. 장군을 위한 계책은 오직 강동을 솥발처럼 정립하는 것으로 천하의 틈을 보아야 합니다. 지금 북방의 많은 일을 타고 황조를 토벌하여 섬멸하고 유표를 정벌하여 마침내 장강의 끝을 차지하여 지켜야 합니다. 그런 후에 제왕의 호칭을 세우는 것으로서 천하를 도모하는 이것은 고조의 일입니다.” 했다.

 

權聞言大喜披衣起謝次日厚贈魯肅并將衣服幃帳等物賜肅之母肅又薦一人見孫權此人博學多才事母至孝覆姓諸葛名瑾字子瑜瑯琊南陽人也權拜之為上賓瑾勸權勿通袁紹且順曹操然後乘便圖之權依言乃遺陳震回以書絕袁紹

손권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옷을 정돈하고 일어나 사례하였다. 다음 날 노숙에게 후하게 물건을 내리고 아울러 의복과 휘장 등의 물건을 노숙의 어머니에게 내렸다. 노숙이 또 한 사람을 천거하여 손권을 뵙게 하였는데 이 사람은 배움이 넓고, 재능이 많으며 어머니를 섬겨 효성이 지극하였다. 복성인 제갈이고, 이름은 근이며, 자는 자유로 낭야 남양 사람이다. 손권이 절하고 상빈으로 삼았다. 제갈근은 손권에게 원소와 통하지 말하고 권하고, 또한 조조를 따른 후 편의를 타고 도모하라고 했다. 손권이 제갈근의 말에 의하여 곧 진진을 돌려보내고 글로서 원소를 끊었다.

 

卻說曹操聞孫策已死欲起兵下江南侍御史張紘諫曰:「乘人之喪而伐之既非義舉若其不克棄好成仇不如因而善遇之。」操然其說乃即奏封孫權為將軍兼領會稽太守既令張紘為會稽都尉齎印往江東孫權大喜又得張紘回吳即命與張昭同理政事張紘又薦一人於孫權此人姓顧名雍子元嘆乃中郎蔡邕之徒其為人少言語不飲酒嚴厲正大權以為丞行太守事自是孫權威震江東深得民心

각설하고 조조는 손책이 죽었다는 것을 듣고 군대를 일으켜 강남으로 내려가려 했다. 시어사 장굉이 간하여 말하기를 다른 사람의 상을 타고 그를 정벌하는 것은 의로운 거사가 아닙니다. 만약 이기지 못하면 우호를 버리고 원수를 이루는 것이니 인하여 잘 대우하는 것보다 못합니다.”했다. 조조가 그 말이 그렇다 여겨 곧 아뢰어 손권을 봉하여 장군으로 삼고, 회계태수를 겸하게 하고, 장굉으로 하여금 회계도위를 삼아 관인을 가지고 강동에 돌아가게 했다. 손권이 크게 기뻐하면서 또한 장굉이 오에 돌아오자 곧 장소와 함께 정사를 다스리게 하였다. 장굉이 또한 한 사람을 손권에게 추천하였다. 이 사람의 성은 고이고, 이름은 옹이며, 자는 원탄이니 곧 중랑 채옹의 무리이다. 그 사람됨은 말을 적게하고, 르 마시지 않으며, 엄격하고 언행이 정당하고 사사로움이 없었다. 손권이 승으로 삼고 태수의 일을 행하게 하였다. 이로부터 손권의 위엄이 강동을 떨치고 깊이 민심을 얻었다.

 

且說陳震回見袁紹具說孫策已亡孫權繼立曹操封之為將軍結為外應矣。」袁紹大怒遂起冀并等處人馬七十餘萬復來攻取許昌正是江南兵革方休息冀北干戈又復興未知勝負如何且看下文分解

각설하고 진진이 돌아가 원소를 만나 갖추어 말하기를 손책이 이미 죽고, 손권이 지위를 이었습니다. 조조가 그를 봉하여 장군으로 삼고 동맹을 맺고 밖에서 대응하게 했습니다.” 했다. 원소가 크게 노하여 마침내 기주, 청주, 유주 등 지의 인마 칠십여 만을 일으켜 다시 허창에 가 공격하여 취하려 했다. 바로 이러하다. 강남에는 전쟁이 바야흐로 그쳤는데 기주 북쪽은 전쟁이 다시 일어났다. 승부가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겠다.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