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十一回:曹操倉亭破本初,玄德荊州依劉表
제31회 조조는 창정에서 본초(원소)를 깨트리고, 유현덕은 형주 유표에게 의지하다.
卻說曹操乘袁紹之敗,整頓軍馬,迤邐追襲。袁紹幅巾單衣,引八百餘騎,奔至黎陽北岸,大將蔣義渠出寨迎接。紹以前事訴與義渠,義渠乃招諭離散之眾。眾聞紹在,又皆蟻聚,軍勢復振,議還冀州。軍行之次,夜宿荒山。紹於帳中聞遠遠有哭聲,遂私往聽之。卻是敗軍相聚,訴說喪兄失弟,棄伴亡親之苦,各各搥胸大哭;皆曰:「若聽田豐之言,我等怎遭此禍!」紹大悔曰:「吾不聽田豐之言,兵敗將亡,今回去,有何面目見之耶!」
각설하고 조조가 원소의 패배를 타고 군마를 정돈하여 구불구불 이어 뒤쫓아 습격하였다. 원소가 폭건을 쓰고, 홑옷을 입은 채 팔백여 기를 이끌고 달아나 여양 북쪽에 이르니 대장군 장의거가 영채를 나와 영접하였다. 원소가 이전의 일을 장의거와 말하였다. 장의거가 이에 흩어진 무리를 불렀다. 무리들이 원소가 살아있다는 것을 듣고, 또한 모두 개미처럼 모여 군대의 형세가 다시 떨쳤으며 기주로 돌아갈 것을 의논하였다. 군대가 행군하던 삼일 째 되던 밤에 황산에서 묵었다. 원소가 장막 안에서 멀리 곡하는 소리를 듣고 마침내 개인적으로 가서 그것을 들었다. 패한 군인들이 서로 모여 형이 죽고 동생을 잃으며 동료를 버리고, 부모를 잃은 괴로움을 얘기하면서 각각 가슴을 치며 크게 곡하였는데 모두 말하기를 “만약 전풍의 말을 들었다면 우리들이 혹 이런 재앙을 만났겠는가!”했다. 원소가 크게 뉘우치며 말하기를 “내가 전풍의 말을 듣지 않아 군대는 패하고 장수는 죽었다. 지금 돌아가서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보겠는가!” 했다.
次日,上馬正行間,逢紀引軍來接。紹對逢紀曰:「吾不聽田豐之言,致有此敗。吾今歸去,羞見此人。」逢紀因譖曰:「豐在獄中聞主公兵敗,撫掌大笑曰:『固不出吾之料!』」袁紹大怒曰:「豎儒怎敢笑我!我必殺之!」遂命使者齎寶劍先往冀州獄中殺田豐。
다음 날 말을 타고 행군하던 중에 봉기가 군대를 이끌고 나와 영접하였다. 원소가 봉기를 대하고 말하기를 “내가 전풍의 말을 듣지 않아 이러한 패배에 이르렀다. 내가 지금 돌아가서 이 사람들을 보기 부끄럽다.”했다. 봉기가 참소하여 말하기를 “전풍이 옥 중에서 주공의 군대가 패하였다는 것을 듣고 손을 어루만지며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진실로 나의 헤아림에서 벗어ㅈ나지 않았구나!’했습니다.”하니 원소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못난 선비가 감히 나를 비웃을 수 있는가! 내 반드시 그를 죽이리라!”하고는 마침내 사자로 하여금 보검을 가지고 먼저 기주의 옥중에 가서 전풍을 죽이게 하였다.
卻說田豐在獄中。一日,獄吏來見豐曰:「與別駕賀喜。」豐曰:「何喜可賀?」獄吏曰:「袁將軍大敗而回,君必見重矣。」豐笑曰:「吾今死矣!」獄吏問曰:「人皆為君喜,君何言死也?」豐曰:「袁將軍外寬而內忌,不念忠誠。若勝而喜,猶能赦我;今戰敗則羞,吾不望生矣。」
각설하고 전풍은 옥 중에 있었다. 하루는 옥리가 와서 전풍을 보고 말하기를 “별가에게 축하와 기쁨을 드립니다.”했다. 전풍이 말하기를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축하하는가?”하니 옥리가 말하기를 “원장군이 크게 패하고 돌아오니 그대는 반드시 중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했다. 전풍이 웃으며 말하기를 “나는 이제 죽겠구나!”했다. 옥리가 묻기를 “사람들이 모두 그대를 위해 기뻐하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죽을 것이라 말하십니까?”하니 전풍이 말하기를 “원 장군이 밖으로는 너그러우나 안으로는 꺼리고, 충성을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이긴다면 기뻐하여 오히려 나를 사면하겠지만 지금 전쟁에서 패하여 곧 부끄러워할 것이니 나는 삶을 바라지 못한다.” 했다.
獄吏未信。忽使者齎劍至,傳袁紹命,欲取田豐之首,獄吏方驚。豐曰:「吾固知必死也。」獄吏皆流淚。豐曰:「大丈夫生於天地間,不識其主而事之,是無智也!今日受死,夫何足惜!」乃自刎於獄中。後人有詩曰:
옥리가 믿지 않았다. 홀연히 사자가 보검을 가지고 이르러 전풍의 머리를 베고자 하니 옥리가 비로소 놀랐다. 전풍이 말하기를 “내가 진실로 반드시 죽을 것을 알았다.”하니 옥리가 모두 눈물을 흘렸다. 전풍이 말하기를 “대장부가 천지간에 태어나서 그 주인을 알지 못하고 그를 섬겼으니 이는 지혜롭니 않은 것이다! 오늘 죽음을 받는 것이 무엇이 애석하겠는가!”하고는 스스로 옥중에서 목을 찔러 죽었다. 뒷사람들이 시를 지은 것이 있다.
昨朝沮授軍中死,今日田豐獄內亡。河北棟梁皆折斷,本初焉不喪家邦?
지난 아침에 군중에서 저수가 죽고, 오늘은 전풍이 옥에서 죽었다./하북의 동량이 모두 꺽이니, 본초(원소)가 어찌 나라를 잃지 않겠는가?/
田豐既死,聞者皆為歎惜。袁紹回冀州,心煩意亂,不理政事。其妻劉氏勸立後嗣。紹所生三子,長子袁譚字顯忠,出守青州,次子袁熙字顯奕,出守幽州,三子袁尚字顯甫,是紹後妻劉氏所出,生得形貌俊偉,紹甚愛之,因此留在身邊。自官渡兵敗之後,劉氏勸立尚為後嗣。紹乃與審配、逢紀、辛評、郭圖四人商議。原來審、逢二人,向輔袁尚;辛、郭二人,向輔袁譚。四人各為其主。
전풍이 죽은 후 들은 자들이 모두 탄식하고 애석해 했다. 원소는 기주에 돌아왔으나 마음은 괴롭고 생각은 어지러워 정사를 다스리지 못하였다. 그 처 유씨가 후사를 세울 것을 권하였다. 원소는 세 아들을 낳았는데 장자 원담은 자가 현충인데 나가 청주를 지키고 있었고, 둘 째 아들은 원희이니 자는 현혁으로 나가 유주를 지키고 있었다. 셋째 아들은 원상으로 자는 현보로 원소의 후처 유씨가 낳은 아들로 나면서 모습이 준수하고 위대하여 원소가 매우 아꼈기 때문에 곁에 머물러 있게 하였다. 관도에서 군대가 패한 후 유씨가 원상을 세워 후사로 삼을 것을 권하였다. 원소가 이에 심배, 봉기, 신평, 곽도 네 사람과 상의하였다. 원래 심배와 봉기 두 사람은 원상의 편으로 보좌하였고, 신평, 곽도 두 사람은 원담의 편으로 보좌하였다. 네 사람이 각각 그 주인을 도우려 하였다.
當下袁紹謂四人曰:「今外患未息,內事不可不早定,吾將議立後嗣。長子譚,為人性剛好殺;次子熙,為人柔懦難成;三子尚,有英雄之表,禮賢敬士,吾欲立之。公等之意若何?」郭圖曰:「三子之中,譚為長,今又居外;主公若廢長立幼,此亂萌也。目下軍威稍挫,敵兵壓境,豈可復使父子兄弟自相爭亂耶?主公且理會拒敵之策,立嗣之事,再容後議。」
그 때 원소가 네 사람에게 말하기를 “지금 밖으로 근심이 그치지 않으니 안의 일을 일찍 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장차 의논하여 후사를 세우려 한다. 장자 원담은 성품이 굳세고 죽이기를 좋아하고, 둘째 원희는 사람됨이 유약하여 이루기 어렵고, 세 째 원상은 영웅의 모습이 있고, 어진 이를 예로 대하고, 선비를 공경하니 나는 그를 세우려 한다. 공들의 뜻은 어떠한가?” 했다. 곽도가 말하기를 “세 아들 가운데 원담은 장자가 되나 지금 또한 밖에서 살고 있는데 주공께서 만약 장자를 폐하고, 어린이를 세운다면 이는 어지러움의 싹이 됩니다. 바로지금 군대의 위엄은 점점 꺽이고, 적병이 경계를 압박하는데 어떻게 다시 부자, 형제로 하여금 스스로 서로 싸우고 혼란스럽게 할 수 있겠습니까? 주공께서는 또한 적을 막을 계책에 주의를 기우리시고, 후사를 세우는 일은 후에 의논할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했다.
袁紹躊躇未決。忽報袁熙引兵六萬,自幽州來,袁譚引兵五萬,自青州來,外甥高幹亦引兵五萬,自并州來,各至冀州助戰。紹喜,再整人馬,來戰曹操。時操引得勝之兵,陳列於河上,有土人簞食壺漿以迎之。操見父老數人,鬚髮盡白,乃命入帳中賜坐,問之曰:「老丈多少年紀?」答曰:「皆近百歲矣。」操曰:「吾軍士驚擾汝鄉,吾甚不安。」父老曰:「桓帝時,有黃星見於楚、宋之分,遼東人殷馗善觀天文,夜宿於此,對老漢等言:『黃星見於乾象,正照此間。後五十年,當有真人起於梁、沛之間。』今以年計之,整整五十年。袁本初重斂於民,民皆怨之。丞相興仁義之師,弔民伐罪,官渡一戰,破袁紹百萬之眾,正應當時殷馗之言,兆民可望太平矣。」操笑曰:「何敢當老丈所言?」遂取酒食絹帛賜老人而遣之。號令三軍:如有下鄉殺人家雞犬者,如殺人之罪。
원소가 주저하면서 결정하지 못하였다. 홀연히 원희가 군대 육만을 이끌고 유주로부터 오고, 원담은 군대 오만을 이끌고 청주로부터 오고, 사위(생질) 고간이 또한 군대 오만을 이끌고 병주로부터 와 각각 기주에 이르러 싸움을 도왔다. 원소가 기뻐하며 다시 인마를 정돈하여 조조와 싸우러 갔다. 그 때 조조가 승리한 군대를 이끌고 하수 가에 진을 쳤는데 어떤 지역 사람이 한 대바구니의 밥과 한 단지의 장을 가지고 맞이하였다. 조조가 몇 사람의 부로를 보니 수염과 머리카락이 모두 흰색이었다. 이에 장막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자리를 주고 물어 말하기를 “노인장은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하니 답하여 말하기를 “모두 백세에 가깝습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우리 군사들이 너의 마을을 놀라게 하고 소란스럽게 하여 내가 매우 미안합니다.” 했다. 부로가 말하기를 “환제 때 황성이 초와 송의 분야에 나타났습니다. 요동사람 은규는 천문을 잘 보았는데 밤에 여기에서 묵으면서 저희들에게 말하기를 ‘황성이 건상에 나타나 바로 이 사이를 비추었습니다. 오십년 후 마땅히 진인이 양과 패의 사이에서 일어날 것이다.’하였는데 지금 햇수를 계산하니 오전한 오십년이 됩니다. 원본초(원소)는 백성에게 세금을 무겁게 거두어 백성들이 모두 그를 원망합니다. 승상께서 인의의 군대를 일으켜 백성을 불쌍하게 여기고 죄 있는 이를 정벌하여 관도의 한 번 싸움으로 원소의 백만 무리를 깨트렸으니 당시 은규의 말에 바로 합당하여 백성들이 태평을 바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어찌 노인장이 말한 것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했다. 마침내 술과 음식, 비단을 가져다 노인들에게 주어 보냈다. 삼군에게 명을 내리기를 “만약 마을에 들어가 인가의 닭, 개를 죽이는 자는 사람을 죽이는 죄와 같이 할 것이다.” 했다.
於是軍民震服。操亦心中暗喜 人報袁紹聚四州之兵,得二三十萬,前至倉亭下寨。操提兵前進,下寨已定。次日,兩軍相對,各布成陣勢。操引諸將出陣,紹亦引三子一甥及文官武將出到陣前。操曰:「本初計窮力盡,何尚不思投降?直待刀臨項上,悔無及矣!」紹大怒,回顧眾將曰:「誰敢出馬?」袁尚欲於父前逞能,便舞雙刀,揮馬出陣,來往奔馳。操指問眾將曰:「此何人?」有識者答曰:「此袁紹三子袁尚也。」
이에 군민이 두려워하고 복종하였다. 조조가 또한 마음속으로 몰래 기뻐하였다. 어떤 사람이 원소가 사주의 군대를 모아 이삼십만을 얻어 앞서 창정에 이르러 영채를 세웠다는 것을 보고하였다. 조조가 군대를 데리고 전진하여 영채를 이미 정하였다. 다음 날 두 군대가 서로 대치하여 각각 진세를 이루었다. 조조가 여러 잔수를 이끌고 진에서 나오니 원소가 또한 세 아들과 하나의 사위, 문관, 무장을 이끌고 진 앞에 나왔다. 조조가 말하기를 “본초(원소)는 계책이 다하고 힘이 다하였는데도 어찌하여 아직도 항복할 생각을 하지 않는가? 바로 칼이 머리 위에 이르는 것을 기다리다 뉘우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했다. 원소가 크게 노하여 여러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누가 용감하게 마을 내겠는가(나가 싸우겠는가)?”하니 원상이 아버지 앞에서 굳센 능력을 보여주고자 하여 곧 쌍칼을 휘두르며 말을 달려 진을 나와 왔다갔다 말을 달렸다. 조조가 가리키면서 여러 장수에게 말하기를 “이는 어떤 사람인가?”하니 알고 있는 자가 답하여 말하기를 “이는 원소의 셋째 아들 원상입니다.” 했다.
言未畢,一將挺槍早出。操視之,乃徐晃部將史渙也。兩騎相交,不三合,尚撥馬刺斜而走。史渙趕來,袁尚拈弓搭箭,翻身背射,正中史渙左目,墜馬而死。袁紹見子得勝,揮鞭一指,大隊人馬,擁將過來混戰。大殺一場,各鳴金收軍還寨。操與諸將商議破紹之策。程昱獻「十面埋伏」之計,勸操退軍於河上,伏兵十隊,誘紹追至河上;我軍無退路,必將死戰,可勝紹矣。
말을 마치지도 않았는데 한 장수가 창을 내밀고 재빨리 나왔다. 조조가 그를 보니 바로 서황의 부장 사환이었다. 두 사람이 말을 타고 교차하면서 세 합이 되지 않아 원상이 말을 몰아 비스듬히 찌르고 달아났다. 사환이 뒤쫓으니 원상이 활에 화살을 재어 몸을 뒤집고 등을 쏘아 바로 사환의 왼쪽 눈을 적중시키니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원소는 아들이 이기는 것을 보고는 채찍을 휘둘러 한 곳을 가리켰는데 큰 부대의 인마가 엉기고 오가면서 섞여 싸웠다. 크게 한판 싸우고는 각각 징을 울려 군대를 거두어 영채로 돌아갔다. 조조와 여러 장수들이 원소의 계책을 깨트릴 것을 상의하였다. 정욱이 ‘십면 매복’의 계책을 올리고는 조조에게 권하여 황하 가로 군대를 물려 열 개의 부대를 매복시키고, 유인하여 원소가 뒤쫓아 황하 가에 이르게 하면 우리 군대는 물러 날 길이 없어 반드시 죽음을 무릅쓰고, 싸울 것이니 원소를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操然其計。左右各分五隊:左一隊夏侯惇、二隊張遼、三隊李典、四隊樂進、五隊夏侯淵;右一隊曹洪、二隊張郃、三隊徐晃、四隊于禁、五隊高覽。中軍許褚為先鋒。次日,十隊先進,埋伏左右已定。至半夜,操令許褚引兵前進,偽作劫寨之勢。袁紹五寨人馬,一齊俱起。許褚回軍便走。袁紹引軍趕來,喊聲不絕;比及天明,趕至河上,曹軍無去路。操大呼曰:「前無去路,諸軍何不死戰?」眾軍回身奮力向前。許褚飛馬當先,力斬十數將。袁軍大亂。袁紹退軍急回,背後曹軍趕來。
조조가 그 계책을 그렇다 여겼다. 좌우를 각기 오대로 나누었는데 왼쪽 일대는 하후돈, 이대는 장요, 삼대는 이전, 사대는 악진, 오대는 하후연이고, 오른 쪽 일대는 조홍, 이대는 장합, 삼대는 서황, 사대는 우금, 오대는 고람이었다. 중군은 허저가 선봉이 되었다. 다음 날 십대가 먼저 진군하여 좌우에 매복하였다. 한 밤중에 이르러 조조가 허저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전진하여 거짓으로 영채를 빼앗으려는 형세를 짓게 하였다. 원소가 다섯 영채의 인마로 일제히 모두 일어났다. 허저가 군대를 돌려 곧 달아났다. 원소가 군대를 이끌고 쫓아오는데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하늘이 밝아질 때 쯤 쫓아 황하 가에 이르니 조조의 군대가 갈 길이 없었다. 조조가 크게 소리쳐 말하기를 “앞에 갈 길이 없는데 여러 군사들은 어찌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지 않는가?”했다. 여러 군사가 몸을 돌려 힘을 떨쳐 앞을 향하였다. 허저가 날듯이 말을 달려 앞으로 나가 힘써 수십 명의 장수를 목 베었다. 원소의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원소가 군대를 물려 급히 돌아가는데 뒤에서 조조의 군대가 쫓아 왔다.
正行間,一聲鼓響,左邊夏侯淵、右邊高覽,兩軍衝出。袁紹聚三子一甥,死衝血路奔走。又行不到十里,左邊樂進、右邊于禁殺出,殺得袁軍屍橫遍野,血流成渠。又行不到數里,左邊李典、右邊徐晃,兩軍截殺一陣。袁紹父子膽喪心驚,奔入舊寨,令三軍造飯。方欲待食,左邊張遼、右邊張郃,逕來衝寨。紹慌上馬,前奔倉亭;人馬困乏,欲待歇息,後面曹操大軍趕來,袁紹捨命而走。
행군하는 사이에 한번 북소리가 울리고 왼쪽에서 하후연, 오른 쪽에 고람의 두 군이 치고나왔다. 원소가 세 아들과 한 사위를 모아 죽음을 무릅쓰고 혈로를 치고 달아났다. 또 행군하여 십리에 이르지 않았는데 왼 쪽에서 악진, 오른 쪽에서 우금이 죽이며 나오니 죽은 원소 군대의 시체가 황야에 널리고, 비가 흘러 조랑을 이루었다. 또 행군하여 몇 리 이르지 않아 왼쪽에서 이전, 오른 쪽에서 서황 두 군대가 일진을 끊고 죽였다. 원소 부자가 몹시 놀라고 마음으로 두려워하여 달아나 옛 영채에 들어 가 삼군으로 하여금 밥을 짓게 하였다. 바야흐로 밥을 먹으려하는데 왼 쪽에서 장요, 오른 쪽에서 장합이 빠르게 와 영채를 쳤다. 원소가 황급히 말에 올라 앞으로 창정으로 달아났다. 인마가 곤궁하고 결핍하여 쉬려고 하는데 뒤쪽에서 조조의 대군이 쫓아오니 원소가 목숨을 버리고 달아났다.
正行之間,左邊曹洪、右邊夏侯惇,擋住去路。紹大呼曰:「若不決死戰,必為所擒矣!」奮力衝突,得脫重圍。袁熙、高幹皆被箭傷。軍馬死亡殆盡。紹抱三子痛哭一場,不覺昏倒。眾人急救,紹口吐鮮血不止,歎曰:「吾自歷戰數十場,不意今日狼狽至此!此天喪吾也!汝等各回本州,誓與曹賊一決雌雄!」便教辛評、郭圖火急隨袁譚前往青州整頓,恐曹操犯境;令袁熙仍回幽州,高幹仍回并州,各去收拾人馬,以備調用。袁紹引袁尚等入冀州養病,令尚與審配、逢紀暫掌軍事。
바로 가는 사이에 왼쪽에는 조홍, 오른 쪽에는 하후돈이 가는 길을 막았다. 원소가 크게 고함쳐 말하기를 “만약 결사적으로 싸우지 않는다면 반드시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하고는 힘을 떨쳐 충돌하여 거듭된 포위를 벗어났다. 원희, 고간이 모두 화살에 맞아 상처를 입었다. 죽고 잃어버린 군마가 거의 다였다. 원소가 세 아들을 껴안고 한바탕 통곡하여 기절하여 깨어나지 못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급히 구하였는데 원소가 입으로 피를 토하여 그치지 않으니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가 지나 온 싸움이 수 십 차례인데 뜻하지 않게 오늘 낭패하여 이에 이르렀구나! 이는 하늘이 나를 버린 것이다! 너희들은 각각 본 주로 돌아가 조조 도적과 한 번 자웅을 결단할 것을 맹서하라!”했다. 곧 신평, 곽도로 하여금 급히 원담을 따라 앞서 청주에 가 정돈하게 하였는데 조조가 국경을 범할 것을 두려워해서이다. 원희로 하여금 유주에 돌아가고, 고간은 병주로 돌아가 각기 인마를 수습하는 것으로서 인력과 물자 동원에 대비하게 하였다. 원소가 원상 등을 이끌고 기주에 들어가 병을 치료하면서 원상과 심배, 봉기로 하여금 잠시 군사를 담당하게 하였다.
卻說曹操自倉亭大勝,重賞三軍,令人探察冀州虛實。細作回報:「紹臥病在。袁尚、審配緊守城池。袁譚、袁熙、高幹皆回本州。」眾皆勸操急攻之。操曰:「冀州糧食極廣,審配又有機謀,未可急拔。見今禾稼在田,恐廢民業,姑待秋成後取之未晚。」正議間,忽荀彧有書到,報說:「劉備在汝南得劉辟、龔都數萬之眾。聞丞相提軍出征河北,乃令劉辟守汝南,備親自引兵乘虛來攻許昌。丞相可速回軍禦之。」操大驚,留曹洪屯兵河上,虛張聲勢。操自提大兵往汝南來迎劉備。
각설하고 조조는 창정에서 크게 이기고 삼군에게 큰 상을 주고, 사람을 시켜 기주의 허실을 더듬어 살피게 하였다. 세작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원소는 병으로 누워 있고, 원상, 심배가 굳게 성지를 지키고 있습니다. 원담, 원희, 고간은 모두 본주로 돌아갔습니다.” 했다. 무리들이 모두 조조에게 급히 공격할 것을 권하였다. 조조가 말하기를 “기주는 양식이 지극히 많고, 심배는 또한 사태에 대응하는 책략이 있으니 급히 함락시킬 수 없다. 지금 곡물이 밭에 있으니 백성의 생업을 그만두게 하는 것이 두려우니 우선 가을을 추수하기를 기다린 후에 취하여도 늦지 않을 것이다.” 했다. 상의하는 사이에 홀연히 순욱이 보낸 글이 이르렀는데 보고하여 말하기를 “유비(유현덕)가 여남에 있는데 유벽, 공도의 수만 무리를 얻었습니다. 승상께서 군대를 데리고 나가 하북을 정벌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이에 유벽으로 하여금 여남을 지키게 하고, 유비(유현덕) 자신은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허창이 빈틈을 타고 와서 공격하려 합니다. 승상께서는 속히 군대를 돌려 그들을 막아야 합니다.” 했다. 조조가 크게 놀라 조홍이 머물러 황하 가에 진을 치고 허장성세하게 하였다. 조조는 큰 군대를 데리고 여남에 가 유비(유현덕)을 맞이하였다.
卻說玄德與關、張、趙雲等,引兵欲襲許都。行近穰山地面,正遇曹兵殺來,玄德便於穰山下寨。軍分三隊:雲長屯兵於東南角上,張飛屯兵於西南角上,玄德與趙雲於正南立寨。曹操兵至,玄德鼓譟而出。操布成陣勢,叫玄德打話。玄德出馬於門旗下。操以鞭指罵曰:「吾待汝為上賓,汝何背義忘恩?」玄德曰:「汝託名漢相,實為國賊!吾乃漢室宗親,奉天子密詔,來討反賊!」遂於馬上朗誦衣帶詔。
각설하고 유현덕과 관운장, 장비, 조운(조자룡)등은 군대를 이끌고 허도를 습격하려하였다. 행군하여 양산 지역에 가까이 갔을 때 바로 조조의 군대가 쇄도해 오는 것을 만났다. 유현덕이 곧 양산 아래에 영채를 세웠다. 군대를 세 개 부대로 나누어 관운장은 군대를 동남쪽 모퉁이에 주둔하고, 장비는 군대를 남쪽 모퉁이에 주둔하고, 유현덕과 조운(조자룡)은 정 남쪽에 영채를 세웠다. 조조의 군대가 이르자 유현덕이 북을 치고 떠들며 나갔다. 조조가 진의 형세를 벌려 이루고, 유현덕에게 이야기를 나누자고 소리쳤다. 유현덕이 말을 타고 문의 깃발아래 나갔다. 조조가 채찍으로 가리키며 꾸짖어 말하기를 “내가 너를 상빈으로 대우하였는데 너는 어찌하여 의리를 배반하고, 은혜를 잊었는가?”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너는 이름을 한나라 재상이라 하였으나 실제는 나라의 도적이다! 나는 곧 한나라 황실의 종친으로 천자의 비밀 명을 받들어 배반한 도적을 토벌하러 왔다!”하고는 마침내 말 위에서 의대의 조칙을 소리 내어 읽었다.
操大怒,教許褚出戰。玄德背後趙雲,挺槍出馬。二將相交,三十合不分勝負。忽然喊聲大震,東南角上,雲長衝突而來;西南角上,張飛引軍衝突而來。三處一齊掩殺。曹軍遠來疲困,不能抵當,大敗而走。玄德得勝回營。
조조가 크게 노하여 허저로 하여금 나가 싸우게 했다. 유현덕의 뒤에 있던 조운(조자룡)이 창을 꼬나잡고 말을 타고 나왔다. 두 장수가 서로 교차한지 삼십 합이 지나도 승부가 갈리지 않았다. 홀연히 함성이 크게 진동하면서 동남쪽 모퉁이에서 관운장이 치며 오고, 서남쪽 모퉁이에서 장비가 군대를 이끌고 치고 나왔다. 세 곳이 일제히 습격하여 죽였다. 조조의 군대는 멀리서 와 피곤하였으므로 막아내지 못하고,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 유현덕이 승리를 거두고 진영으로 돌아갔다.
次日,又使趙雲搦戰。操兵旬日不出。玄德再使張飛搦戰,操兵亦不出。玄德愈疑。忽報龔都運糧至,被曹軍圍住,玄德急令張飛去救。忽又報夏侯惇引軍抄背後逕取汝南,玄德大驚曰:「若如此,吾前後受敵,無所歸矣!」急遣雲長救之。兩軍皆去。
다음 날 또 조운(조자룡)을 시켜 싸움을 걸게 하였다. 조조의 군대가 십일간 나오지 않았다. 유현덕이 다시 장비로 하여금 싸움을 걸게 하였는데 조조의 군대가 또한 나오지 않았다. 유현덕이 더욱 의심하였다. 홀연히 공도가 양식을 운반하다 조조의 군대에게 포위를 당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유현덕이 급히 장비를 시켜 날듯이 가서 구원하게 하였다. 홀연히 또 보고하기를 하후돈이 군대를 이끌고 뒤의 지름길로 여남을 취하려 한다고 했다. 유현덕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만약 이 같다면 우리는 앞뒤로 적을 받아 돌아갈 곳이 없게 도리 것이다!”하고는 급히 관운장을 보내 구원하게 하였다. 두 군대가 모두 갔다.
不一日,飛馬來報夏侯惇已打破汝南,劉辟棄城而走,雲長現今被圍。玄德大驚。又報張飛去救龔都,也被圍住了。玄德急欲回兵,又恐操兵後襲。忽報寨外許褚搦戰,玄德不敢出馬。候至天明,教軍士飽餐,步軍先起,馬軍後隨,寨中虛傳更點。玄德等離寨約行數里,轉過土山,火把齊明,山頭上大呼曰:「休教走了劉備!丞相在此專等!」玄德慌尋路走。趙雲曰:「主公勿憂,但跟某來。」趙雲挺槍躍馬,殺開條路,玄德掣雙股劍後隨。
하루가 되지 않아 전령이 와서 하후돈이 이미 여남을 쳐서 깨트리니 유벽은 성을 버리고 달아났고, 관운장은 지금 포위되었다고 보고하였다. 유현덕은 크게 놀랐다. 또 장비가 공도를 구원하여 갔다가 포위당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유현덕이 급히 군대를 돌리려 하였으나 또한 조조의 군대가 뒤를 습격할 것을 두려워하였다. 홀연히 영채 밖에서 허저가 싸움을 걸어 왔다고 보고하니 유현덕이 감히 말을 내지 못하였다. 하늘이 밝아 오자 군사로 하여금 밥을 먹게 하고, 보군이 먼저 일어나고 마군이 뒤를 따르게 하고 영채 안에 거짓으로 경점을 전하게 하였다. 유현덕 등이 영채를 떠나 몇 리를 행군하여 토산을 돌아 지나가는데 횃불이 일제히 밝혀지며 산머리 위에서 크게 고함쳐 말하기를 “유비유비(유현덕)가 나지 못하게 하라! 특별히 승상이 여기에 있다!” 했다. 유현덕이 황급히 길을 찾아 달아났다. 조운(조자룡)이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근심하지 마시고 오직 제 뒤를 따라 오십시오.” 했다. 조운(조조)이 창을 꼬나 잡고 말을 뛰게 하여 죽이며 길을 열자 유현덕이 쌍고검을 들고 뒤를 따랐다.
正戰間,許褚追至,與趙雲力戰。背後于禁、李典又到。玄德見勢危,落荒而走。聽得背後喊聲漸遠,玄德望深山僻路,單馬逃生。捱到天明,側首一彪軍衝出。玄德大驚,視之,乃劉辟引敗軍千餘騎,護送玄德家小前來;孫乾、簡雍、糜芳亦至,訴說:「夏侯惇軍勢甚銳,因此棄城而走。曹兵趕來,幸得雲長當住,因此得脫。玄德曰:「不知雲長今在何處?」劉辟曰:「將軍且行,卻再理會。」
싸우는 사이에 허저가 쫓아와 조운(조자룡)과 힘껏 싸웠다. 뒤로 우금, 이전이 또한 이르렀다. 유현덕이 형세가 위태로움을 보고 큰 길을 벗어나 황야로 달아났다. 뒤에서 함성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듣고 유현덕은 깊은 산의 숨겨진 길을 바라보고 홀로 말을 타고 도망하였다. 날이 밝아올 때 쯤 옆에서 한 떼의 군대가 치고 나왔다. 유현덕이 크게 놀라 그를 보니 곧 유벽이 패한 군대 천여 기를 이끌고 유현덕이 가족을 호송하여 앞으로 왔는데 손건, 간옹, 미방이 또한 이르러 모두 말하기를 “하후돈의 군세가 매우 날카로웠기 때문에 성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조조의 군대가 쫓아오는데 요행히 관운장이 막아주었기 때문에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관운장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가?”하니 유벽이 말하기를 “장군이 또한 가시면 다시 만날 것입니다.” 했다.
行到數里,一棒鼓響,前面擁出一彪人馬。當先大將,乃是張郃,大叫:「劉備快下馬受降!」玄德方欲退後,只見山頭上紅旗麾動,一軍從山塢內擁出,為首大將,乃高覽也。玄德兩頭無路,仰天大呼曰:「天何使我受此窘極耶!事勢至此,不如就死!」欲拔劍自刎。劉辟急止之曰:「容某死戰,奪路救君。」言訖,便來與高覽交鋒。戰不三合,被高覽一刀砍於馬下。
행군하여 몇 리를 갔을 때 한번 치는 북 소리가 울리고 한 떼의 인마가 앞으로 나와 막았다. 앞 선 대장은 곧 장합으로 크게 부르짖어 말하기를 “유비(유현덕)는 속히 말에서 나와 항복하라!” 했다. 유현덕이 막 뒤로 물러나고자 하는데 산머리 위에 붉은 깃발이 휘날리고 한 군대가 산의 둑을 따라 막으며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우두머리 되는 대장은 곧 고람이었다. 유현덕이 아 뒤로 길이 없자 하늘을 우러러 크게 부르짖어 말하기를 “하늘은 어찌하여 나로 하여금 이처럼 막힘이 지극하게 하는가! 일의 형세가 여기에 이르렀으니 죽음에 나아가는 것이 낫다!”하고는 검을 뽑아 스스로 목을 찌르려 하였다. 유벽이 급히 저지하며 말하기를 “제가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서 길을 열어(빼앗아) 임금을 구하겠습니다.” 했다. 말을 마치고는 곧 가서 고람과 싸웠다. 사운지 삼합이 되지 않아 고람의 한 칼에 베어져 말에서 떨어졌다.
玄德正慌,方欲自戰,高覽後軍忽然自亂,一將衝陣而來,槍起處,高覽翻身落馬。視之,乃趙雲也。玄德大喜。雲縱馬挺槍,殺散後隊,又來前軍獨戰張郃。郃與雲戰三十餘合,撥馬敗走。雲乘勢衝殺,卻被郃兵守住山隘,路窄不得出。
유현덕이 황급히 막 스스로 싸우려 하는데 고람의 후군이 갑자기 저절로 혼란스러워지면서 한 장수가 진을 치고 오는데 창이 일으키자 고람이 몸을 뒤집어 말에서 떨어졌다. 그를 보니 곧 조운(조자룡)이었다. 유현덕이 크게 기뻐하였다. 조운(조자룡)이 말을 달리며 창을 휘둘러 뒤 따르던 군대를 죽이고 흩고, 또 군대 앞으로 가 홀로 장합과 싸웠다. 장합이 조운(조자룡)과 싸운지 삼십여 합에 패하여 말을 돌려 달아났다. 조운(조자룡)이 형세를 타고 세차게 쳐서 죽였으나 장합의 군대가 갑옷을 입고, 산의 좁은 곳을 지키고 있어서 길을 뚫고 나갈 수 없었다.
正奪路間,只見雲長、關平、周倉引三百軍到。兩下夾攻,殺退張郃。各出隘口,占住山險下寨。玄德使雲長尋覓張飛。原來張飛去救龔都,龔都已被夏侯淵所殺。飛奮力殺退夏侯淵,迤邐趕去,卻被樂進引軍圍住。雲長路逢敗軍,尋蹤而去,殺退樂進,與飛同回見玄德。
길을 빼앗는 사이에 관운장과 관평, 주창이 삼백의 군대를 이끌고 이르는 것을 보았다. 양쪽에서 협공하니 장합의 군대가 물러났다. 각기 좁은 입구를 나와 산의 험한 곳을 점령하여 영채를 세웠다. 유현덕이 관운장으로 하여금 장비를 찾게 하였다. 원래 장비는 공도를 구원하러 갔으나 공도가 이미 하후연에게 죽음을 당한 후였다. 장비가 힘을 떨쳐 하후연을 물리치고 구불구불 이어 쫒아 갔으나 악진이 이끄는 군대에게 포위 당하였다. 관운장이 길에서 패한 군대를 만나 자취를 찾아 가 악진과 싸워 물리치고 장비와 같이 돌아와 유현덕을 만났다.
人報曹軍大隊趕來,玄德教孫乾等保護老小先行。玄德與關、張、趙雲在後,且戰且走。操見玄德去遠,收軍不趕。玄德敗軍不滿一千,狼狽而奔。前至一江,喚土人問之,乃漢江也。玄德權且安營。土人知玄德,奉獻羊酒,乃聚飲於沙灘之上。玄德歎曰諸:「諸君皆有王佐之才,不幸跟隨劉備。備之命窘,累及諸君。今日身無立錐,誠恐有誤諸君。君等何不棄備而投明主,以取功名乎?」
사람이 조조의 군대의 큰 부대가 쫓아온다고 보고하니 유현덕이 손건 등으로 하여금 노소를 보호하여 앞 서 가게 하였다. 유현덕은 관운장, 장비, 조운(조자룡) 뒤에 있으면서 또한 싸우며 또한 달아났다. 조조가 유현덕이 멀리 가는 것을 보고는 군대를 거두어 쫓지 않았다. 유현덕의 패한 군대가 일천을 넘지 않아 허둥지둥 달아났다. 앞의 한 강에 이르러 토착 사람을 불러 물으니 곧 한강이었다. 유현덕이 임시방편으로 영채를 세웠다. 토착 한 사람들이 유현덕임을 알고는 양과 술을 받들어 올리니 모여서 모래 톱 위에 모여 마셨다. 유현덕이 여럿에게 탄식하여 말하기를 “여러 분들은 모두 왕좌의 재능이 있는데 불행히도 나를 따랐구려. 나의 명이 막혀서 여러 분들에게 미쳤습니다. 오늘 몸은 송곳 꼿을 곳이 없으니 진실로 여러 분들을 잘 못되게 함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여러 분들은 어찌하여 나를 버리고 현명한 주인에게 나아가는 것으로서 공명을 취하지 않습니까?” 했다.
眾皆掩面而哭。雲長曰:「兄言差矣。昔日高祖與項羽爭天下,數敗於羽,後九里山一戰成功,而開四百年基業。勝負兵家之常,何可自隳其志?」孫乾曰:「成敗有時,不必傷心。此離荊州不遠。劉景升坐鎮九州,兵強糧足,更且與公皆漢室宗親,何不往投之?」玄德曰:「但恐不容耳。」乾曰:「某願先往說之,使景升出境而迎主公。」
무리들이 모두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형님의 말은 잘 못된 것입니다. 옛날 고조와 항우가 천하를 다툴 때 여러 번 항우에게 패한 구리산의 한 번 싸움에서 공을 이루어 사백년 기업을 열었습니다. 승부는 병가(군대)의 항상 있는 일인데 어찌 스스로 그 뜻을 무너뜨리려 하십니까?” 했다. 손건이 말하기를 “성패는 때가 있는 것이니 반드시 마음 아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서 형주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유경승(유표)은 앉아서 구주를 지켜 군대는 강하고 양식은 충분하며, 다시 또한 공과 모두 한나라 황실의 종친이니 어찌 그에게 가가지 않습니까?”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단지 용납 받지 못할까 두려울 뿐입니다.”했다. 손건이 말하기를 “제가 먼저 가서 그를 설득하여 유경승으로 하여금 경계를 나와 주공을 맞이하게 하기를 원합니다.” 했다.
玄德大喜,便令孫乾星夜往荊州。到郡入見劉表。禮畢,劉表問曰:「公從玄德,何故至此?」乾曰:「劉使君天下英雄,雖兵微將寡,而志欲匡扶社稷。汝南劉辟、龔都素無親故,亦以死報之。明公與使君,同為漢室之冑;今使君新敗,欲往江東投孫仲謀。乾諫言曰:『不可背親而向書疏。荊州劉將軍禮賢下士,士歸之如水之投東,何況同宗乎?』因此使君特使乾先來拜白,惟明公命之。」
유현덕이 크게 기뻐하면서 곧 손건으로 하여금 밤에 형주에 가게 하였다. 군에 이르러 들어가 유표(유경승)를 만났다. 예를 마치고 유표가 물어 말하기를 “공은 유현덕을 따르는데 무슨 이유로 여기에 이르렀습니까?” 했다. 손건이 말하기를 “유사군(유현덕)은 천하의 영웅으로 비록 군대가 적고 장수가 적으나 뜻은 사직을 바로잡고 도우려 합니다. 여남의 유벽, 공도는 평소 친척과 벗은 아니었지만 또한 죽음으로서 갚았습니다. 명공(유경승:유표)과 사군(유현덕)은 같이 한나라 황실의 후손입니다. 지금 유현덕이 패하여 강동에 가서 손중모(손권)에게 들어가려 합니다. 제가 간하여 말하기를 ‘안 됩니다. 친척을 등지고 소원한 이를 향해서는 안 됩니다. 형주의 유장군은 어진이를 예로 대우하고, 낮선비에게 낮추어서 선비가 그에게 돌아가는 것이 마치 물이 동쪽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은데 어찌 같은 황족에게 이어서이겠습니까?’ 했습니다. 이 때문에 사군께서 특히 저로 하여금 먼저 가 절하고 말씀드리라 하였으니 명공(유표)께서는 명하십시오.” 했다.
表大喜曰:「玄德,吾弟也。久欲相會,而不可得。今肯惠顧,實為幸甚。」蔡瑁譖曰:「不可。劉備先從呂布,後事曹操,近投袁紹,皆不克終,足可見其為人。今若納之,曹操必加兵於我,枉動干戈;不如斬孫乾之首,以獻曹操,操必重待主公也。」孫乾正色曰:「乾非懼死之人也。劉使君忠心為國,非曹操、袁紹、呂布等比。前此相從,不得已也。今聞劉將軍漢朝苗裔,誼切同宗,故千里相投。爾何獻讒而妒賢如此耶!」
유표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유현덕은 나의 동생이다. 오래 동안 서로 보고자 하였으나 보비 못하였습니다. 지금 즐겨 오신다하니 실로 매우 다행스럽습니다.” 했다. 채모가 참소하여 말하기를 “안 됩니다. 유비는 앞서 여포를 따랐고, 후에는 조조를 섬겼고, 최근에는 원소에게 나아갔으나 모두 충분히 잘 마치지 못하였으니 충분히 그 사람됨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만약 그를 받아들인다면 조조가 반드시 군대를 우리에게 가하여 전쟁에 휩쓸릴 것이니 손건의 머리를 베어서 조조에게 바치는 것이 낫습니다. 조조는 반드시 주공을 중하게 대우할 것입니다.” 했다. 손건이 안색을 바로하고 말하기를 “저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유사군(유현덕)은 충심으로 나라를 위하여 조조, 원소, 여포 등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이에 앞서 서로 따랐던 것은 부득이해서입니다. 지금 들으니 유장군은 한 나라의 후예로 종친의 정이 절박하였기 때문에 천리로 들어왔던 것입니다. 너는 어찌하여 참소를 올려서 어진 이를 시기하기를 이 같이 하는가!” 했다.
劉表聞言,乃叱蔡瑁曰:「吾主意已定,汝勿多言。」蔡瑁慚恨而出。劉表遂命孫乾先往報玄德,一面親自出郭三十里迎接。玄德見表,執禮甚恭。表亦相待甚厚。玄德引關、張等拜見劉表,表遂與玄德同入荊州,分撥院宅居住。
유표가 말을 듣고 이에 채모를 질책하며 말하기를 “나의 주된 뜻이 이미 정하여졌으니 너는 말을 많이 하지 말라.” 했다. 채모가 부끄러워하고 원망하며 나갔다. 유표가 마침내 손건으로 하여금 먼저 유현덕에게 보고하게 하고, 한편으로 직접 성곽으로부터 삼십리를 나가 영접하였다. 유현덕이 유표를 보고 예를 취함이 매우 공손하였다. 유표가 또한 매우 두터이 대우하였다. 유현덕이 관우와 장비 등을 이끌고 유표를 뵈니 유표가 마침내 유현덕과 함께 형주에 들어가 집을 주어 살게 하였다.
卻說曹操探知玄德已往荊州,投奔劉表,便欲引兵攻之。程昱曰:「袁紹未除,而遽攻荊、襄,倘袁紹從北而起,勝負未可知矣。不如還兵許都,養軍蓄銳,待來年春煖,然後引兵先破袁紹,後取荊、襄。南北之利,一舉可收也。」
각설하고 조조가 유현덕이 이미 형주에 가 유표에게 들어갔다는 것을 탐지하고는 곧 군대를 이끌고 공격하려하였다. 정욱이 말하기를 “원소를 제거하지 못하였는데 대번에 형, 양을 공격하는 중에 혹 원소가 북쪽으로부터 일어난다면 승부를 알 수 없습니다. 허도에 군대를 돌려서 군대를 기르고 예기를 쌓아 내년 봄 따뜻해지기를 기다린 후에 군대를 이끌고 먼저 원소를 깨트림 후에 형주와 양양을 취하는 것이 낫습니다. 남북의 이로움을 한 번 들어 거둘 수 있습니다.” 했다.
操然其言,遂提兵回許都。至建安八年,春正月,操復商議興兵。先差夏侯惇、滿寵鎮守汝南,以拒劉表;留曹仁、荀彧守許都;親統大軍前赴官渡屯紮。
조조가 그 말을 그렇다 여기고 마침내 군대를 데리고 허도에 돌아갔다. 건안 팔년 춘 정월에 이르러 조조가 다시 군대 일으키는 것을 상의하였다. 먼저 하후돈과 만총을 보내 여남을 지키게 하는 것으로서 유표를 막게하고, 조인, 순욱을 허도에 머물게 하여 지키게 하고, 자신은 직접 대군을 이끌고 관도에 나가 주둔하였다.
且說袁紹自舊歲感冒吐血症候,今方稍愈,商議欲攻許都。審配諫曰:「舊歲官渡、倉亭之敗,軍心未振,尚當深溝高壘,以養軍民之力。」
각설하고 원소는 지난해부터 감기를 앓아 피를 토하는 증세가 지금 바야흐로 점점 나아지자 상의하여 허도를 공격하려 하였다. 심배가 간하여 말하기를 “지난 해 관도와 창저에서 패한 것으로 군심이 떨치지 못하니 아직은 마땅히 도랑을 깊게 하고 진을 높게하는 것으로서 군대와 백성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했다.
正議間,忽報曹操進兵官渡,來攻冀州。紹曰:「若候兵臨城下,將至河邊,然後拒敵,事已遲矣。吾當自領大軍出迎。」袁尚曰:「父親病體未痊,不可遠征。兒願提兵前去迎敵。」紹許之,遂使人往青州取袁譚,幽州取袁熙,并州取高幹,四路同破曹操。正是:纔向汝南鳴戰鼓,又從冀北動征鼙。未知勝負如何,且看下文分解。
의논하는 사이에 홀연히 조조가 군대를 관도로 진군시켜 기주를 공격하러 온다고 보고 하였다. 원소가 말하기를 “만약 정찰하는 군사가 성 아래에 임하고, 장차 하의 가에 이른 후 적을 막는다면 일이 이미 늦을 것이다. 나는 마땅히 대군을 지휘하여 나가 맞아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했다. 원상이 말하기를 “아버지는 병으로 몸이 아직 낫지 않아 멀리 정벌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군대를 데리고 앞으로 가서 적을 맞을 것을 원합니다.” 했다. 원소가 허락하였다. 마침내 사람을 시켜 청주에 가서 원담을 부르고, 유주에서 원희를 부르고, 병주에서 고간을 불러 네 길로 함께 조조를 깨트리게 하였다. 바로 이러하다. 겨우 지난번에는 여남에서 전쟁의 북소리 울렸고, 또 기주 북쪽으로부터 정벌하는 북소리 난다. 승부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니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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