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十回:戰官渡本初敗績,劫烏巢孟德燒糧
제30회 관도에서 싸워 본초(원소)는 패하고, 오소를 기습하여 맹덕(조조)이 식량을 불태우다.
卻說袁紹興兵,望官渡進發。夏侯惇發書告急。曹操起軍七萬,前往迎敵,留荀彧守許都。紹兵臨發,田豐從獄中上書諫曰:「今且宜靜守以待天時,不可妄興大兵,恐有不利。」逢紀譖曰:「主公興仁義之師,田豐何得出此不祥之語?」
각설하고 원소가 군대를 일으켜 관도를 바라보고 출발하였다. 하후돈이 글을 보내 급함을 알렸다. 조조가 군대 칠 만을 일으켜 앞으로 가 적을 맞이하게 하고, 순욱은 허도에 머물러 지키게 하였다. 원소가 군대를 출발할 때 전풍이 옥에서 글을 올려 간해 말하기를 “지금은 또한 마땅히 고요히 지키면서 천시를 기다려야하고, 망녕되이 대군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이롭지 않음이 있을까 두렵습니다.”했다. 봉기가 참소하여 말하기를 “주공께서 인의의 군대를 일으키려는데 전풍은 어찌하여 이런 상서롭지 못한 말을 합니까?” 했다.
紹因怒,欲斬田豐。眾官告免。紹恨曰:「待吾破了曹操,明正其罪!」遂催軍進發。旌旗遍野,刀劍如林。行至陽武,下定寨柵。沮授曰:「我軍雖眾,而勇猛不及彼軍;彼軍雖精,而糧草不如我軍。彼軍無糧,利在急戰;我軍有糧,宜且緩守。若能曠以日月,則彼軍不戰自敗矣。」紹怒曰:「田豐慢我軍心,吾回日必斬之。汝安敢又如此!」 叱左右將沮授鎖禁軍中。「待我破曹之後,與田豐一體治罪!」
원소가 노하여 전풍을 베어 죽이려 하였다. 여러 관리들이 용서할 것을 말하였다. 원소가 한탄하며 말하기를 “내가 조조를 깨트리는 것을 기다려 그 죄를 분명하게 바로잡을 것이다!” 했다. 드디어 군대를 재촉하여 출발하였다. 깃발은 들에 가득하고 칼과 검이 숲과 같았다. 행군하여 무양에 이르러 영채와 책을 정하였다. 저수가 말하기를 “우리의 군대는 비록 많으나 용맹함은 그들의 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들의 군대는 비록 정예이지만 식량과 말 먹이가 우리 군대보다 못합니다. 그들의 군대는 식량이 없으니 이로움은 급히 싸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군대는 식량이 있으니 마땅히 또한 천천히 지켜야 합니다. 만약 날과 달을 비울 수 있으면 곧 그들의 군대는 싸우지 않고도 저절로 무너질 것입니다.” 했다. 원소가 노하여 말하기를 “전풍은 우리 군대의 마음을 해이하게 하니 내가 돌아가는 날 반드시 그를 죽일 것이다. 네가 어찌 감히 또한 이 같은가!” 하고는 좌우를 질책하여 저수를 금군 안에 가두게 했다. “내가 조조를 깨트리기를 기다린 후 전풍과 함께 죄를 다스릴 것이다!” 했다.
於是下令,將大軍七十萬,東西南北,週圍安營,連絡九十餘里。細作探知虛實,報至官渡。曹軍新到,聞之皆懼。曹操與眾謀士商議。荀攸曰:「紹軍雖多,不足懼也。我軍俱精銳之士,無不一以當十。但利在急戰。若遷延日月,糧草不敷,事可憂矣。」操曰:「所言正合吾意。」遂傳令軍將鼓譟而進。紹軍來迎,兩邊排成陣勢。審配撥弩手一萬,伏於兩翼;弓箭手五千,伏於門旗內,約響齊發。
이에 영을 내려 대군 칠십만을 거느리고 동서남북으로 주위에 진영을 설치하였는데 구십여 리에 이어졌다. 세작(첩자)이 허실을 탐지하여 보고가 관도에 이르렀다. 조조의 군대가 새로 도착하여 그것을 듣고는 모두 두려워하였다. 조조와 여러 모사들이 상의하였다. 순유가 말하기를 “원소의 군대가 비록 많으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군대는 모두 정예로운 군사로 한 사람이 열 명을 감당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로움은 급히 싸움에 달렸을 뿐입니다. 만약 날과 달을 오래 끈다면 식량과 말 먹이가 펴지지 않아 일이 근심할 만합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말 한 것은 바로 나의 뜻에 바로 부합한다.”하고는 마침내 명령을 내리니 군사들이 북을 치면서 나아갔다. 원소의 군대가 와서 맞이하여 양쪽에서 배열하여 진세를 이루었다. 심배가 궁노수 일 만을 지휘하여 두 날개에 매복하고, 궁전수 오천을 문의 깃발 안에 숨겨 둔 후 소리에 일제히 발사할 것을 약속하였다.
三通鼓罷,袁紹金盔金甲,錦袍玉帶,立馬陣前。左右排列著張郃、高覽、韓猛、淳于瓊等諸將。旌旗節鉞,甚是嚴整。曹陣上門旗開處,曹操出馬。許褚、張遼、徐晃、李典等,各持兵器,前後擁衛。曹操以鞭指袁紹曰:「吾於天子之前,保奏你為大將軍;今何故謀反?」紹怒曰:「汝託名漢相,實為漢賊!罪惡彌天,甚於莽、卓,乃反誣人造反耶!」操曰:「吾今奉詔討汝!」紹曰:「吾奉衣帶詔討賊!」
삼통이 북을 치기를 마치자 원소가 급 투구를 쓰고 금 갑옷을 입고 금포에 옥대를 하고 진 앞에 말을 타고 섰다. 좌우에는 장합, 고람, 한맹, 순우경 등의 여러 장수들이 벌여 섰다. 깃발과 절월이 매우 엄숙하고 정돈되었다. 조조의 진 문의 깃발이 열리는 곳에 조조가 말을 타고 나왔다. 허저, 장요, 서황, 이전 등이 각각 병기를 가지고 앞뒤로 막아 호위하였다. 조조가 채찍으로 원소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내가 천자의 앞에서 너를 보증하고 아뢰어 대장군을 삼았는데 지금 무슨 이유로 모반하는가?” 했다. 원소가 노하여 말하기를 “너는 한 나라 재상을 사칭하니 실로 한나라의 도적이 되었구나! 죄악이 하늘에 가득 차 왕망과 동탁보다 심한데 도리어 다른 사람이 배반하였다고 비방하는가!”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지금 천자의 명을 받들어 너를 토벌할 것이다!”하니 원소가 말하기를 “내가 의대의 조서를 받들고 도적을 토벌할 것이다!” 했다.
操怒,使張遼出戰。張郃躍馬來迎。二將鬥了四五十合,不分勝負。曹操見了,暗暗稱奇。許褚揮刀縱馬,直出助戰。高覽挺槍接住。四員將捉對兒廝殺。曹操令夏侯惇、曹洪,各引三千軍,齊衝彼陣。審配見曹軍來衝陣,便令放起號砲。兩下萬弩並發,中車內弓箭手一齊擁出陣前亂射。曹軍如何抵敵,望南急走。袁紹驅兵掩殺,曹軍大敗,盡退至官渡。袁紹移軍逼近官渡下寨。審配曰:「今可撥兵十萬守官渡,就曹操寨前築起土山,令軍人下視寨中放箭。操若棄此而去,吾得此隘口,許昌可破矣。」
조조가 노하여 장요로 하여금 나가 싸우게 하였다. 장합이 말을 달려 와 맞이하였다. 두 장수가 싸운 지 사, 오십 합이 지나도 승부가 갈리지 않았다. 조조가 보고 몰래 기이하다고 칭찬하였다. 허저가 칼을 휘두르며 말을 달려 곧바로 나가 싸움을 도왔다. 고람이 창을 내밀고 이었다. 네 명의 장수들이 일대일로 서로 싸웠다. 조조가 하후돈, 조홍으로 하여금 각각 삼천의 군대를 이끌고 일제히 그들의 진에 부딪혔다. 심배가 조조의 군대가 진에 부딪히는 것을 보고는 곧 신호 포를 내게 하였다. 두 쪽의 만노가 함께 발사하고, 중군 안에서 궁전수가 일제히 막으며 진 앞에 나와 어지럽게 쏘았다. 조조의 군대가 어떻게 적을 막겠는가? 남쪽을 바라보고 급히 달렸다. 원소가 군대를 몰아 엄살하니 조조의 군대가 크게 패하여 모두 물러나 관도에 이르렀다. 원소가 군대를 옮겨 관도에 바싹 접근하여 영채를 세웠다. 심배가 말하기를 “지금 군대를 십만을 내어 관도를 지키고, 조조의 영채 앞에 나가 토산을 쌓아 일으킨 후 군인들로 하여금 영채 안을 보고 화살을 쏘게 하십시오, 조조가 만약 이를 버리고 떠나면 우리가 이 요충지를 얻어 허창을 깨트릴 수 있습니다.” 했다.
紹從之,於各寨內選精壯軍人,用鐵鍬土擔,齊來曹操寨邊,壘土成山。曹營內見袁軍堆築土山,欲待出去衝突,被審配弓弩手當住咽喉要路,不能前進。十日之內,築成土山五十餘座,上立高櫓,分撥弓弩手於其上射箭。曹軍大懼,皆頂著遮箭牌守禦。土山上一聲梆子響處,箭下如雨。曹軍皆蒙楯伏地,袁軍吶喊而笑。曹操見軍慌亂,集眾謀士問計。劉曄進曰:「可作發石車以破之。」操令曄進車式,連夜造發石車數百乘,分布營牆內,正對著土山上雲梯。候弓箭手射箭時,營內一齊拽動石車,砲石飛空,往上亂打。人無躲處,弓箭手死者無數。袁軍皆號其車為「霹靂車」。
원소가 그 것을 따라 각 영채 안에서 정예롭고, 굳센 군인을 뽑아 철 가래를 써서 흙을 지고 일제히 조조의 영채 가에 와서 흙을 쌓아 산을 이루었다. 조조의 영채 안에서 원소의 군대가 토산을 쌓는 것을 보고 나오는 것을 기다려 치고 들어가고자 하였는데 심배가 궁노수를 중요한 길목을 지키고 있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십일 안에 토산을 쌓아 이룬 것이 오십여 개였고, 위에 높은 망루를 세우고, 궁노수를 그 위에 조를 나누어 두고, 활ㅇ르 쏘게 하였다. 조조의 군대가 크게 두려워하여 모두 머리에 화살을 막는 방패를 쓰고 지켰다. 토산 위에서 한 소리 방자가 울리면 화살이 비 오듯 쏟아 내렸다. 조조의 군대들이 모두 방패를 쓰고 땅에 엎드리니 원소의 군대가 함성을 지르며 웃었다. 조조는 군대가 당황하고 혼란해 하는 것을 보고 여러 모사를 불러 계책을 물었다. 유엽이 나아가 말하기를 “발석거를 만드는 것으로서 깨트릴 수 있습니다.” 했다. 조조가 유엽으로 하여금 수레의 설계도를 올리게 하고, 밤을 이어 발석거 수백 대를 만들어 진영의 담장 안에 흩어놓고 토산 위의 운제와 대치하게 하였다. 궁전수들이 화살을 쏘는 때를 살피고 진영 내에서 일제히 발석거를 끌어다 돌을 소아 공중에 날려 위에 가서 어지럽게 쳤다. 사람들이 피할 곳이 없어 궁전수들이 죽은 자가 헤아릴 수 없었다. 원소의 군대가 모두 그 수레를 벽력거라 불렀다.
由是袁軍不敢登高射箭。審配又獻一計:令軍人用鐵暗打地道,直透曹營內,號為「掘子軍」。曹兵望見袁軍於山後掘土坑,報知曹操。操又問計於劉曄。曄曰:「此袁軍不能攻明而攻暗,發掘伏道,欲從地下透營而入耳。」操曰:「何以禦之?」曄曰:「可遶營掘長塹,則彼伏道無用也。」操連夜差軍掘塹。袁軍掘伏道到塹邊,果不能入,空費軍力。
이로 말미암아 원소의 군대가 감히 높은 곳에 올라 활을 쏘지 못하였다. 심배가 또한 한 계책을 올렸는데 군인들로 하여금 철을 써서 몰래 땅 속 길을 만들게 하면서 곧바로 조조의 진영 안으로 뚫게 하였는데 이들을 굴자군이라 불렀다. 조조의 군대는 원소의 군대가 산 뒤에서 흙구덩이를 파는 것을 바라보고 조조에게 보고하였다. 조조가 또한 유엽에게 계책을 물었다. 유엽이 말하기를 “이는 원소의 군대가 드러내 놓고 공격할 수 없어 몰래 공격하려는 것으로 숨겨진 길을 파내어 땅 아래로부터 진영을 뚫고 들어오려는 것일 뿐입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어떻게 막아야 하는가?”하니 유엽이 말하기를 “진영을 둘러 긴 참호를 파면 곧 그들의 숨겨진 길은 쓸 수 없게 됩니다.” 했다. 조조가 밤을 이어 군대를 보내 참호를 팠다. 원소의 군대가 숨겨진 길을 파서 참호 변에 이른 후 과연 들어오지 못하고 공연히 군사들의 힘만 허비하였다.
卻說曹操守官渡,自八月起,至九月終,軍力漸乏,糧草不繼,意欲棄官渡退回許昌;遲疑未決,乃作書遣人赴許昌問荀彧。彧以書報之。書略曰:
각설하고 조조가 관도를 지킨 것은 팔월에 일어나 구월에 이르렀는데 군사들의 힘이 점점 결핍하고, 식량과 말 먹이가 이어지지 못하자 관도를 버리고 물러나 허창에 돌아가고자 생각하였으나 망설이며 결단하지 않다가 이에 글을 써서 사람을 허창에 보내 순욱에게 물었다. 순욱이 글로서 보고하였다. 글을 요약하면
承尊命使決進退之疑,愚以袁紹悉眾聚於官渡,欲與明公決勝負,公以至弱當至強,若不能制,必為所乘;是天下之大機也。紹軍雖眾,而不能用;以公之神武明哲,何向而不濟?今軍實雖少,未若楚、漢在滎陽、成皋也。公今畫地而守,扼其喉而使不能進,情見勢竭,必將有變。此用奇之時,斷不可失。惟明公裁察焉。
“존명을 받들어 나아가고 물어남의 의심을 결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생각해보니 원소는 모든 무리들을 관도에 모아 명공(조조)과 승부를 결정지으려 하는데 공(조조)은 지극히 약함으로서 지극히 강함을 감당해야 합니다. 만약 제어하지 못하면 반드시 태워지는 바가 되니 이는 천하의 큰 기회입니다. 원소의 군대가 비록 많으나 잘 쓰지 못하고, 공의 신 같은 무예가 밝아 어디를 향한들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지금 군대는 비록 적지만 초나라와 한나라가 형양, 성고에 있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공(조조)이 지금 땅에 금을 그어 지키고 긴요한 곳을 눌러 나아가지 못하게 하면 정세를 보고 세력이 다하면 반드시 장차 변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기병을 쓸 때이니 결단하여 잃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명공(조조)께서 재단하여 살피십시오.” 했다.
曹操得書大喜,令將士效力死守。紹軍約退三十餘里,操遣將出營巡哨。有徐晃部將史渙獲得袁軍細作,解見徐晃。晃問其軍中虛實。答曰:「早晚大將韓猛運糧至軍前接濟,先令我等探路。」徐晃便將此事報知曹操。荀攸曰:「韓猛匹夫之勇耳。若遣一人引輕騎數千,從半路擊之,斷其糧草,紹軍自亂。」操曰:「誰人可往?」攸曰:「即遣徐晃可也。」
조조가 글을 받고는 크게 기뻐하며 장사들로 하여금 힘을 다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지키게 하였다. 원소의 군대가 대략 삼십 여리를 물러나니 조조가 장수를 보내 진영을 나가 순찰하게 하였다. 서황의 부장 사환이 원소 군대의 세작(첩자)을 잡아 서황에게 압송하였다. 서황이 그 군대 내의 허실을 물었다. 첩자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조만간 대장 한맹이 식량을 운반하여 군대 앞에 이르러 보급하려하는데 먼저 우리들로 하여금 길을 살피라 하였습니다.” 했다. 서황이 곧 이 일을 보보에게 보고하였다. 순유가 말하기를 “한맹은 필부의 용밍일 뿐입니다. 만약 한 사람을 보내 가벼운 무장을 한 기병 수천을 보내 중간에서 쳐서 그 식량과 말 먹이를 차단하면 원소의 군대는 저절로 어지러워질 것입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누가 갈 수 있겠는가?”하니 순유가 말하기를 “서황을 보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했다.
操遂差徐晃帶將史渙并所部兵先出,後使張遼、許褚引兵救應。當夜韓猛押糧車數千輛,解赴紹寨。正走之間,山谷內徐晃、史渙引軍截住去路,韓猛飛馬來戰。徐晃接住廝殺,史渙便殺散人夫,放火焚燒糧車。韓猛抵當不住,撥馬回走。徐晃催軍燒盡輜量。袁紹軍中,望見西北上火起,正驚疑間,敗軍報來:「糧草被劫。」
조조가 마침내 서황에게 사환과 부병을 보내 먼저 출발하게 하고 장요, 허저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뒤따르게 하여 구원하고 대응하게 하였다. 그날 밤 한맹이 양식을 실은 수레 수천 대를 인솔하여 원소의 영채로 나아갔다. 달려가는 사이에 산골짜기 안에서 서황과 사환이 이끈 군대가 길을 막으니 한맹이 말을 나는 듯이 달려와 싸웠다. 서황이 영접하여 서로 싸우고, 사환은 곧 인부들을 흩어버리고 양식을 실은 수레에 불을 질러 태웠다. 한맹이 적을 막지 못하고 말을 돌려 달아났다. 서황이 군대를 재촉하여 모든 보급품 수송 수레를 불태웠다. 원소의 군대 안에서 서북쪽에 불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고는 놀라고 의심하는 사이에 패한 군졸이 와서 보고하기를 “양식과 말 먹이가 약탈을 당하였습니다.” 했다.
紹急遣張郃、高覽去截大路,正遇徐晃燒糧而回。恰欲交鋒,背後張遼、許褚軍到。兩下夾攻,殺散袁軍,四將合兵一處,回官渡寨中。曹操大喜,重加賞勞;又分軍於寨前結營,為犄角之勢。
원소가 급히 장합과 고람을 보내 큰 길을 막았는데 양식을 불태우고 돌아가는 서황을 만났다. 마침 싸우고자 하는데 뒤에서 장요, 허저의 군대가 이르렀다. 두 부대가 협공하여 원소의 군대를 죽이고 흩은 후 네 장수가 군대를 한 곳에 합하여 관도의 영채로 돌아갔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많은 상을 주고 위로하였다. 또 군대를 나누어 영채 앞에 진영을 맺으니 사슴을 잡을 때 뒷발을 잡고 뿔을 잡는다(앞뒤에서 몰아치는)는 기각의 형세가 되었다.
卻說韓猛敗軍還營,紹大怒,欲斬韓猛,眾官勸免。審配曰:「行軍以糧食為重,不可不用心隄防。烏巢乃屯糧之處,必得重兵守之。」袁紹曰:「吾籌策已定,汝可回鄴都監督糧草,休教缺乏。」審配領命而去。袁紹遣大將淳于瓊,督領部將眭元進、韓莒子、呂威璜、趙叡等,引二萬人馬,守烏巢。那淳于瓊性剛好酒,軍士多畏之;既至烏巢,終日與諸將聚飲。
각설하고 한맹이 패한 군대로 진영에 돌아오니 원소가 크게 노하여 한맹의 목을 베려하니 여러 관리들이 면할 것을 권하였다. 심배가 말하기를 “군대를 운용할 때는 양식을 중요하게 여기니 마음을 써서 방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소는 곧 양식을 보관한 곳이니 반드시 많은 군대로 지켜야 합니다.” 했다. 원소가 말하기를 “우리의 계책은 이미 정해졌으니 너는 업도에 돌아가 식량과 말먹이 풀을 감독하여 모자라지 않게 하라.” 했다. 심배가 명을 받고 갔다. 원소가 대장 순우찬을 보내 부장 휴원진, 한거자, 여위황, 조예 등을 감독하고 다스려 인마 이만을 이끌고 오소를 지키게 하였다. 순우경의 성품은 굳세고 술을 좋아하여 군사들이 많이 그를 두려워하였다. 순우경이 오소에 이른 후 종일토록 여러 장수들을 모아 술을 마셨다.
且說曹操軍糧告竭,急發使往許昌教荀彧作速措辦糧草,星夜解赴軍前接濟。使者齎書而往;行不上三十里,被袁軍捉住,縛見謀士許攸。那許攸字子遠,少時曾與曹操為友,此時卻在袁紹處為謀士。當下搜得使者所齎曹操催糧書信,逕來見紹曰:「曹操屯軍官渡,與我相持已久,許昌必空虛;若分一軍星夜掩襲許昌,則許昌可拔,而曹操可擒也。今操糧草已盡,正可乘此機會,兩路擊之。」紹曰:「曹操詭計極多,此書乃誘敵之計也。」攸曰:「今若不取,後將反受其害。」
각설하고 조조는 군량이 다하자 급히 사신을 허창에 보내 순욱으로 하여금 속히 양식과 말먹이 풀을 조치하게 하여 밤낮으로 군대에 보내도록 하였다. 사자가 글을 가지고 가는데 간지 삼십 리가 되지 않아 원소의 군대에게 사로잡혀 묶인 채 모사 허유를 만났다. 허유의 자는 자원인데 어렸을 때 일찍이 조조와 벗이 되었는데 이 때 원소에게 있으면서 모사가 되었다. 그 때 사자의 몸을 수색하다 조조가 주었던 양식을 재촉하는 서신을 얻자 재빨리 원소를 만나 말하기를 “조조가 관도에 군대를 주둔하여 우리와 서로 대한 것이 이미 오래되었으니 허창은 반드시 비어 있을 것입니다. 만약 한 군대를 나누어 밤낮으로 가서 허창을 엄습한다면 곧 허창을 함락시키고 조조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조조가 양식과 말먹이 풀이 이미 다 하였으니 바로 이러한 기회를 타고 두 길로 공격해야 합니다.” 했다. 원소가 말하기를 “조조는 속이는 계책이 지극히 많으니 이 글은 곧 적을 유인하는 계책일 것이다!” 했다. 허유가 말하기를 “지금 만약 취하지 않는다면 뒤에 장차 반드시 도리어 그 해를 받을 것입니다.” 했다.
正話間,忽有使者自鄴郡來,呈上審配書。書中先說運糧事;後言許攸在冀州時,嘗濫受民間財物,且縱令子姪輩多科稅錢糧入己,今已收其子姪下獄矣。紹見書大怒曰:「濫行匹夫!尚有面目於吾前獻計耶!汝與曹操有舊,想今亦受他財賄,為他作奸細,啜賺吾軍耳!本當斬首,今權且寄頭在項!可速退出,今後不許相見!」
이야기 하는 사이에 홀연히 사자가 업군으로부터 와서 심배의 글을 올렸다. 글 안에 먼저 양식을 운반하는 일을 말하고 뒤에 허유가 기주에 있을 때 일찍이 널리 민간에서 재물을 받았고, 또한 자식과 조카들을 시켜 세금의 조목을 많이 하여 돈과 곡식을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이미 그 아들과 조카들을 거두어 옥에 가두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원소가 글을 보고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함부로 행동하는 필부구나! 아직도 무슨 면목이 있어서 내 앞에서 계책을 올리는가! 너는 조조와 친구이고, 지금도한 달리 뇌물을 받을 것을 생각하니 다른 사람을 위한 첩자 노릇을 하여 우리 군대를 속여 빼앗으려할 뿐이구나! 마땅히 머리를 베어야 하나 지금 임시로 머리를 목에 붙여 두리라! 속히 물러나서 지금 이후로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했다.
許攸出,仰天歎曰:「『忠言逆耳』,『豎子不足與謀!』吾子姪已遭審配之害,吾何顏復見冀州之人乎!」遂欲拔劍自刎。左右奪劍勸曰:「公何輕生至此?袁紹不納直言,後必為曹操所擒。公既與曹公有舊,何不棄暗投明?」只這兩句言語,點醒許攸;於是許攸逕投。後人有詩歎曰:
허유가 나와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고 말하기를 “‘충언은 귀에 거슬리고’, ‘더벅머리 아이와 도모할 수 없다.’ 내 자식과 조카가 이미 심배의 해를 만났으니 내가 무슨 낯으로 다시 기주의 사람들을 볼 수 있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검을 뽑아 스스로 찌르고자 하였다. 좌우가 검을 빼앗고 권하여 말하기를 “공은 어찌하여 삶을 가벼이 여겨 이에 이르렀습니까? 원소가 정직한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후에 반드시 조조에게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공은 이미 조조와 벗이니 어찌 어둠을 버리고 밝음에 나아가지 않습니까?” 했다. 단지 이 두 구의 말이 허유를 지적하고 깨우쳐 이에 허유가 지름길로 나아갔다. 후세 사람들이 시를 지어 탄식하여 말하기를
本初豪氣蓋中華,官渡相持枉歎嗟。若使許攸謀見用,山河豈得屬曹家?
본초(원소)의 활달하고 씩씩한 기상이 중국을 덮었으되 관도에서 서로 대치하다 휘어짐을 탄식하네. 만약 허유의 꾀를 썼다면 산하가 어찌 조조에게 속할 수 있었겠는가?
卻說許攸暗步出營,逕投曹寨,伏路軍人拿住。攸曰:「我是曹丞相故友,快與我通報,說南陽許攸來見。」軍士忙報入寨中。時操方解衣歇息,聞說許攸私奔到寨,大喜,不及穿履,跣足出迎。遙見許攸,撫掌歡笑,攜手共入,操先拜於地。攸慌扶起曰:「公乃漢相,吾乃布衣,何謙恭如此?」操曰:「公乃操故友,豈敢以名爵相上下乎!」攸曰:「某不能擇主,屈身袁紹,言不聽,計不從,今特棄之來見故人。願賜收錄。」操曰:「子遠肯來,吾事濟矣。願即教我以破紹之計。」攸曰:「吾曾教袁紹以輕騎乘掩許都,首尾相攻。」操大驚曰:「若袁紹用子言,吾事敗矣。」攸曰:「公今軍糧尚有幾何?」操曰:「可支一年。」攸笑曰:「恐未必。」操曰:「有半年耳。」
각설하고 허유가 몰래 걸어서 진영을 나가 지름길로 조조에게 들어가다 길에 숨어 있던 군인에게 잡혔다. 허유가 말하기를 “나는 조승상의 벗이니 속히 나를 데리고 가서 통보하고 남양의 허유가 와서 만나려한다고 말하라.” 했다. 군사가 황망히 연채 안으로 들어가 보고하였다. 그 때 조조가 옷을 벗고 쉬려하고 있었는데 허유가 개인적으로 달아나 영채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신을 신지 않고 맨 발로 나와 맞이하였다. 멀리 허유를 보고는 손바닥을 문지르고 기쁘게 웃으며 손을 잡고 같이 들어가 조조가 먼저 땅에서 절하였다. 허유가 황망히 부축하여 일으키며 말하기를 “공은 곧 한 나라의 재상이고, 나는 곧 포의인데 어찌 겸손하고 공손함이 이 같습니까?”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공은 곧 나의 벗인데 어찌 감히 벼슬로 위, 아래를 이름 지으리오!” 했다. 허유가 말하기를 “저는 주인을 잘 택하지 못하여 원소에게 몸을 굽혔는데 말을 하여도 듣지 않고, 계책을 올려도 따르지 않아 지금 특히 그를 버리고 와서 벗을 만났습니다. 원컨대 받아들임을 내려주십시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자원(허유)이 즐겨 왔으니 나의 일은 이루어질 것이다. 원컨대 나에게 원소를 깨트릴 계책을 가르쳐 주시오.” 했다. 허유가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원소에게 가벼운 무장을 한 기병으로 허도를 습격하여 앞뒤를 서로 공격하게 하였습니다.”하니 조조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만약 원소가 그대의 말을 따랐다면 나의 일은 무너졌을 것입니다.” 했다. 허유가 말하기를 “공은 지금 아직 군량이 어느 정도 있습니까?”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일년은 버틸 수 있습니다.”했다. 허유가 웃으며 말하기를 “아마도 반드시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반년치가 있을 뿐입니다.” 했다.
攸拂袖而起,趨步出帳曰:「吾以誠相投,而公見欺如是,豈吾所望哉!」操挽留曰:「子遠勿嗔,尚容實訴。軍中糧實可支三月耳。」攸笑曰:「世人皆言孟德奸雄,今果然也。」操亦笑曰:「豈不聞兵不厭詐?」遂附耳低言曰:「軍中止有此月之糧。」攸大聲曰:「休瞞我,糧已盡矣!」操愕然曰:「何以知之?」攸乃出操與荀彧之書以示之曰:「此書何人所寫?」
허유가 소매를 떨치며 일어나 달려 장막을 나가며 말하기를 “나는 진실로서 나아갔는데 공은 속이기를 이같이 하니 어찌 내가 바라는 바이리오!” 했다. 조조가 당겨 머물게 하고 말하기를 “자원(허유)은 성내지 마시오. 아직 용서한다면 실제로 말하겠습니다. 군중의 양식은 실제 삼 개월을 지탱할 수 있을 뿐입니다.” 했다. 허유가 웃으며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모두 맹덕(조조)을 간웅이라 말하더니 지금 과연 그러합니다.” 했다. 조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군대는 속임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까?”하고는 마침내 귀를 붙이고 말소리를 낮추어 말하기를 “군중에는 다만 이 달의 식량이 있을 뿐입니다.” 했다. 허유가 큰 소리로 말하기를 “나를 속이지 마시오. 식양은 이미 다하였습니다!”하니 조조가 깜짝 놀라 말하기를 “어떻게 그것을 아시오?”했다. 허유가 곧 조조가 순욱에게 준 글을 내어 보이며 말하기를 “이 글은 누가 쓴 글입니까?” 했다.
操驚問曰:「何處得之?」攸以獲使之事相告。操執其手曰:「子遠既念舊交而來,願即有以教我。」攸曰:「明公以孤軍抗大敵,而不求急勝之方,此取死之道也。攸有一策,不過三日,使袁紹百萬之眾,不戰自破。明公還肯聽否?」操喜曰:「願聞良策。」攸曰:「袁紹軍糧輜重,盡積烏巢,今撥淳于瓊把守。瓊嗜酒無備;公可選精兵詐稱袁將蔣奇領兵到彼護糧,乘間燒其糧草輜重,則紹軍不三日將自亂矣。」操大喜,重待許攸,留於寨中。
조조가 놀라 물어 말하기를 “어디서 그것을 얻었습니까?”하니 허유가 사자에게서 빼앗은 일을 알려 주었다. 조조가 그 손을 잡고 말하기를 “자원이 옛 사귐을 생각하여 왔으니 원컨대 나에게 가르쳐 주시오.” 했다. 허유가 말하기를 “명공이 외로운 군대를 가지고 큰 적을 대항하면서 급히 이길 방법을 구하지 못한다면 이는 죽음의 길을 취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으니 삼일이 지나지 않아 원소의 백만 무리들이 싸우지 않고도 저절로 깨트려지게 할 수 있습니다. 명공께서는 즐겨 들으시겠습니까?” 했다. 조조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조은 계책 듣기를 원합니다.” 했다. 허유가 말하기를 “원소는 군량과 보급을 모두 오소에 쌓아두었고, 지금 순우경에게 다스려 지키고 있습니다. 순우경은 술을 좋아하고 대비가 없으니 공께서는 정예로운 병사를 뽑아 원소의 장수 장기라 속이고 군대를 거느리고 그 곳에 가서 식량을 지키러 왔다하고 틈을 타 그 양식과 말먹이 풀, 보급품을 태워버리면 곧 원소의 군대는 삼일이 되지 않아 스스로 어지러워 질 것입니다.” 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허유를 후하게 대접하고 영채의 안에 머물게 하였다.
次日,操自選馬步軍士五千,準備往烏巢劫糧。張遼曰:「袁紹屯糧之所,安得無備?丞相未可輕往。恐許攸有詐。」操曰:「不然。許攸此來,天敗袁紹。今吾軍糧不給,難以久持;若不用許攸之計,是坐而待困也。彼若有詐,安肯留我寨中?且吾亦欲劫寨久矣。今劫糧之舉,計在必行,君請勿疑。」遼曰:「亦須防袁紹乘虛來襲。」操笑曰:「吾已籌之熟矣。」
다음 날 조조가 스스로 보병과 기병 오천을 뽑아 준비하여 오소에 가 양식을 약탈하려 하였다. 장요가 말하기를 “원소가 양식을 보관 한 곳에 어찌 대비가 없겠습니까? 승상께서는 가벼이 가서는 안 됩니다. 허유에게 거짓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허유가 여기에 온 것은 하늘이 원소를 무너뜨리려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군대는 식량이 공급되지 않아 오래 지탱하기 어렵다. 만약 허유의 계책을 쓰지 않는 것은 앉아서 곤궁함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에게 만액 거짓이 있다면 어찌 즐겨 우리의 영채 안에 머물러 있겠는가? 또 내가 역시 영채를 겁탈하려 한 것이 오래되었다. 지금 식량을 겁탈하는 군대의 동원은 계책이 반드시 행해짐에 달려 있으니 그대들은 의심하지 말라.” 했다. 장요가 말하기를 “또한 모름지기 원소가 빈틈을 타고 와서 습격하는 것을 방비해야 합니다.” 했다. 조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이미 계책이 무르익었다.” 했다.
便教荀攸、賈詡、曹洪同許攸守大寨,夏侯惇、夏侯淵領一軍伏於左,曹仁、李典領一軍伏於右,以備不虞。教張遼、許褚在前,徐晃、于禁在後,操自引諸將居中,共五千人馬,打著袁軍旗號,軍士皆束草負薪,人銜枚,馬勒口,黃昏時分,望烏巢進發。是夜星光滿天。
곧 순유, 가후, 조홍으로 하여금 허유와 함께 대 영채를 지키게 하고, 하후연은 일 군을 거느리고 왼쪽에 매복하게 하고, 조인, 이전은 일 군을 거느리고 오른 쪽에 매복하게 하는 것으로서 불의에 대비하게 하였다. 장요, 허저는 앞에 있게 하고, 서황, 우금은 뒤에 있게 하며, 조조 자신은 여러 장수들을 이끌고 가운데에 있으면서 오천의 인마와 함께 원소 군대의 깃발을 들었다. 군사들은 모두 풀을 묶고 섶을 졌으며 사람들은 하무를 물고 말은 재갈을 물리고 저녁때 쯤 오소를 바라보고 출발하였다. 이 날 밤 별 빛이 하늘에 가득하였다.
且說沮授被袁紹拘禁在軍中,是夜因見眾星朗列,乃命監者引出中庭,仰觀天象。忽見太白逆行,侵犯牛、斗之分,大驚曰:「禍將至矣!」遂連夜求見袁紹。時紹已醉臥,聽說沮授有密事啟報,喚入問之。授曰:「適觀天象,見太白逆行於柳、鬼之間,流光射入牛、斗之分,恐有賊兵劫掠之害。烏巢屯糧之所,不可不提備。宜速遣精兵猛將,於間道山路巡哨,免為曹操所算。」紹怒叱曰:「汝乃得罪之人,何敢妄言惑眾!」因叱監者曰:「吾令汝拘囚之,何敢放出!」遂命斬監者,別喚人監押沮授。授出,掩淚歎曰:「我軍亡在旦夕,我屍骸不知落於何處也!」後人有詩歎曰:
각설하고 저수는 원소에게 구금되어 군 중에 있었는데 이 날 밤 여러 별들이 나란히 한 것을 보고는 곧 감독하는 자에게 명하여 끌려 나오게 하여 하늘의 형상을 우러러 관찰하였다. 홀연히 태백성이 거슬러 운행하여 우성과 두성을 침범하는 것을 보고는 크게 놀라 말하기를 “재앙이 장차 이르겠구나!”하고는 드디어 밤을 이어 원소를 만날 것을 청하였다. 그 때 원소는 이미 술에 취하여 누웠다가 저수가 비밀 일을 열어 보고한다는 말을 듣고는 불러 들여 물었다. 서수가 말하기를 “마침 하늘의 형상을 관찰해 보니 태백이 유와 귀의 사이를 거슬러 운행하여 흐르는 빛이 쏘아 들어가 우와 두를 나누었으니 도적의 군대가 약탈하는 해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오소는 양식을 저장한 곳이니 대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땅히 속히 정예 군대와 용맹한 장수를 보내 사잇길과 산길을 순찰하여 조조가 계책한 바를 면하십시오.” 했다. 원소가 노하여 질책하며 말하기를 “너는 곧 죄를 지은 사람으로 어찌 감히 망녕된 말로 무리를 들을 의혹하게 하는가!”하고는 감독하는 자를 질책하여 말하기를 “내가 너에게 죄인을 가두라 명령하였는데 어찌 감히 풀어 주어 나오게 하였는가?” 했다. 마침내 감독하는 자를 목 베라 하고, 다른 감독하는 사람을 불러 조수를 압송하게 했다. 저수가 나가면서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여 말하기를 “우리군대가 망하는 것이 아침저녁에 달렸으니 내 시체와 해골이 어느 곳에 떨어질지 알지 못하겠구나!” 했다. 뒷사람들이 시를 지어 기려 말하기를
逆耳忠言反見仇,獨夫袁紹少機謀;烏巢糧盡根基拔,猶欲區區守冀州。
충언이 귀에 거슬린다고 도리어 원수로 보고, 인심 잃은 원소 꾀가 적다. 오소의 양식 다하면 뿌리 뽑히는데 오히려 가지각색으로 기주를 지키려 한다.
卻說曹操領兵夜行,前過袁紹別寨,寨兵問是何處軍馬。操使人應曰:「蔣奇奉命往烏巢護糧。」袁軍見是自家旗號,遂不疑惑。凡過數處,皆詐稱蔣奇之兵,並無阻礙。及到烏巢,四更已盡。操教軍士將束草周圍舉火,眾將校鼓譟直入。時淳于瓊方與眾將飲了酒,醉臥帳中;聞鼓譟之聲,連忙跳起問:「何故喧鬧?」言未已,早被撓釣拖翻。眭元進、趙叡運糧方回,見屯上火起,急來救應。曹軍飛報曹操,說:「賊兵在後,請分軍拒之。」
각설하고 조조가 군대를 이끌고 밤에 행군하여 앞으로 원소의 다른 영채를 지나니 영채의 군대가 이는 어느 곳의 군마인지를 물었다. 조조가 사람을 시켜 대답하여 말하기를 “장기가 명을 받들어 오소에 가서 양식을 지키려 한다.” 했다. 원소의 군대가 자기 군대의 깃발을 보고는 마침내 의심하지 않았다. 모두 여러 곳을 지나는데 모두 거짓으로 장기의 군대라 하니 모두 막지 않았다. 오소에 이르니 사경이 이미 다하였다. 조조가 군사들로 하여금 묶은 풀을 가져다 둘레에 불을 붙이게 하니 여러 장교들이 북을 치면서 곧바로 들어갔다. 그 때 순우경이 바야흐로 여러 장수들과 술 마시기를 마치고 취하여 장막 안에 누웠는데 북 치는 소리를 듣고는 황망히 뛰어 일어나 물었다. “무엇 때문에 떠드는가?”하였다. 말을 마치지 않았는데 갈고리에 걸려 넘어졌다. 휴원진과 조예가 양식을 운반하고 막 돌아 오다 주둔지 위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급히 와서 구원하였다. 조조 군대가 날 듯이 조조에게 보고하여 말하기를 “적병이 뒤에 있으니 군대를 나누어 막을 것을 청합니다.” 했다.
操大喝曰:「諸將只顧奮力向前,待賊至背後,方可回戰!」於是眾軍將無不爭先掩殺。一霎時,火燄四起,煙迷太空。眭、趙二將驅兵來救,操勒馬回戰。二將抵敵不住,皆被曹軍所殺,糧草盡行燒絕。淳于瓊被擒見操,操命割去其耳鼻手指,縛於馬上,放回紹營以辱之。
조조가 크게 고함쳐 말하기를 “여러 장수들은 다만 힘을 떨쳐 앞을 향할 뿐으로 적을 기다렸다가 뒤에 이르면 비로소 돌아 싸울 것이다!” 했다. 이에 여러 군 장수들이 먼저를 다투어 습격하여 죽이는 것을 다투지 않음이 없었다. 한 순간에 화염이 사방에어 일어나고 연기가 어지러이 공중에 치솟았다. 휴원진과 조예 두 장수가 군대를 몰아 와 구원하려 하자 조조가 말을 돌려 싸웠다. 두 장수가 적을 막아내지 못하고 모두 조조의 군대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양식과 말먹이 풀이 모두 불탔다. 순우경은 조조에게 사로잡혔는데 조조가 그 귀, 코, 손가락을 잘라내어 말 위에 묶고는 풀어주어 원소의 진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으로서 그를 욕 보였다.
卻說袁紹在帳中,聞報正北上火光滿天,知是烏巢有失,急出帳召文武,各官商議遣兵往救。張郃曰:「某與高覽同往救之。」郭圖曰:「不可。曹軍劫糧,曹操必然親往;操既自出,寨必虛空,可縱兵先擊曹操之寨;操聞之,必速還:此孫臏『圍魏救趙』之計也。」張郃曰:「非也。曹操多謀,外出必為內備,以防不虞。今若攻操營而不拔,瓊等見獲,吾屬皆被擒矣。」郭圖曰:「曹操只顧劫糧,豈留兵在寨耶?」再三請劫曹營。紹乃遣張郃、高覽引軍五千,往官渡擊曹營;遣蔣奇領兵一萬,往救烏巢。
각설하고 원소가 장막 안에 있다가 북쪽에 불빛이 하늘에 가득하다는 보고를 듣고 오소를 잃었다는 것을 알고 급히 문무관을 장막에 물러 각 관리들과 군대를 보내 가서 구원할 것을 상의 하였다. 장합이 말하기를 “제가 고람과 같이 가서 그들을 구원하겠습니다.” 했다. 곽도가 말하기를 “안 됩니다. 조조의 군대가 양식을 겁탈할 때 조조가 반드시 직접 갔을 것입니다. 조조가 이미 스스로 나갔으니 영채는 반드시 비어 있을 것이니 군대를 놓아 먼저 조조의 영채를 치십시오. 조조가 그것을 들으면 반드시 속히 돌아올 것입니다. 이것이 손빈의 ‘圍魏救趙(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한다.)’의 계책입니다.” 했다. 장합이 말하기를 “아닙니다. 조조는 꾀가 많으니 밖으로 나갈 때 반드시 안을 위해 대비하여 생각하지 않았던 일을 방비했을 것입니다. 지금 만약 조조의 영채를 공격하다 함락시키지 못하면 순우경은 잡히게되고, 우리들도 모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했다. 곽도가 말하기를 “조조는 다만 양식을 겁탈하려는 것뿐인데 어찌 군대를 영채에 머물러 두었겠습니까?” 했다. 두 번 세 번 조조의 진영을 공격할 것을 청하였다. 원소가 이에 장합, 고람이 군대 오천을 이끌고 보내 관도로 가서 조종, 영채를 공격하게 하고, 장기는 일 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오소를 권원하게 했다.
且說曹操殺散淳于瓊部卒,盡奪其衣甲旗幟,偽作淳于瓊部下敗軍回寨,至山僻小路,正遇蔣奇軍馬。奇軍問之,稱是烏巢敗軍奔回。奇遂不疑,驅馬逕過。張遼、許褚忽至,大喝:「蔣奇休走!」奇措手不及,被張遼斬於馬下,盡殺蔣奇之兵。又使人當先偽報云:「蔣奇已自殺散烏巢兵了。」袁紹因不復遣人接應烏巢,只添兵往官渡。
각설하고 조조는 순우경과 부하 군사를 죽이고 흩어 버린 후 그 갑옷과 깃 발을 모두 빼앗아 순우경의 부하들을 위장한 뒤 패한 군대가 영채로 돌아오는 것처럼 하여 외진 산의 작은 길에 이르러 바로 장기의 군마를 만났다. 장기의 군사가 물으니 이는 오소의 패한 군대로 달아나 돌아오는 것이라 말했다. 장기가 마침내 의심하지 않고 말을 몰아 빠르게 지나갔다. 장요, 허저가 홀연히 이르러 크게 소리치기를 “장기는 달아나지 말라!”하니 장기가 손을 쓸 사이도 없이 장요가 목을 베어 말에서 떨어뜨리고, 장기의 군사들도 모두 죽였다. 또 사람을 시켜 먼저 가서 거짓으로 보고하여 말하기를 “장기가 이미 오소의 군대를 죽이고 흩었습니다.” 했다. 원소가 다시 오소에 사람을 보내 대응하지 않고, 다만 군대를 더하여 관도로 가게 하였다.
卻說張郃、高覽攻打曹營,左邊夏侯惇,右邊曹仁,中路曹洪,一齊衝出,三下攻擊,袁軍大敗。比及接應軍到,曹操又從背後殺來,四下圍住掩殺。張郃、高覽奪路走脫。袁紹收得烏巢敗殘軍馬歸寨,見淳于瓊耳鼻皆無,手足盡落。紹問:「如何失了烏巢?」敗軍告說:「淳于瓊醉臥,因此不能抵敵。」
각설하고 장합, 고람이 조조의 진영을 공격하는데 왼쪽에서는 하후돈, 오른 쪽에서는 조인, 중간 길로는 조홍이 일제히 치고 나와 세 방향에서 공격하니 원소의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호응하여 행동하는 군대가 이르고 조조가 또한 뒤로부터 쇄도해 와 사방에서 둘러싸고 습격하여 죽였다. 장합, 고람이 길을 빼앗아 달아나 포위를 벗어났다. 원소가 오소의 패잔군을 거두어 영채에 돌아올 수 있었다. 순우경을 보니 귀, 코가 모두 없고, 손과 발도 모두 떨어졌다. 원소가 묻기를 “어찌하여 오소를 잃었는가?”하니 패한 군대가 말려 말하기를 “순우경이 술에 취하여 누워 있었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적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했다.
紹怒,立斬之。郭圖恐張郃、高覽回寨證對是非,先於袁紹前譖曰:「張郃、高覽見主公兵敗,心中必喜。」紹曰:「何出此言乎?」圖曰:「二人素有降曹之意,今遣擊寨,故意不肯用力,以致損折士卒。」紹大怒,遂遣使急召二人歸寨問罪。郭圖先使人報二人云:「主公將殺汝矣。」及紹使至,高覽問曰:「主公喚我等為何?」使者曰:「不知何故。」覽遂拔劍斬來使。郃大驚。覽曰:「袁紹聽信讒言,必為曹操所擒;吾等豈可坐而待死?不如去投曹操。」郃曰:「吾亦有此心久矣。」
원소가 노하여 그의 목을 베었다. 곽도는 장합과 고람이 영채에 돌아와 옳고 그름을 증명할 것을 두려워하여 먼저 원소 앞에서 참소하여 말하기를 “장합과 고람은 주공의 군대가 패하였으니 마음속으로 반드시 기뻐할 것입니다.” 했다. 원소가 말하기를 “어찌 이러한 말을 하는가?”하니 곽도가 말하기를 “두 사람은 평소에 조조에게 항복할 뜻이 있었는데 지금 쫓아가 영채를 공격할 때 고의로 즐겨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사졸들이 덜어지고 꺽임에 이르렀습니다.” 했다. 원소가 크게 노하여 마침내 사자를 보내 급히 두 사람을 불러 영채에 돌아오면 죄를 물으려했다. 곽도가 먼저 사람을 시켜 두 사람에게 알려 말하기를 “주공이 장차 너희들을 죽이려 한다.” 했다. 원소의 사자가 이르자 고람이 물어 말하기를 “주공이 우리를 부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하니 사자가 말하기를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합니다.” 했다. 고람이 마침내 검을 뽑아 원소의 사자를 목 베었다. 장합이 크게 놀랐다. 고람이 말하기를 “원소가 참소하는 말을 듣고 믿으니 반드시 조조에게 사로잡힐 것입니다. 우리들이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가서 조조에게 들어가는 것이 낫습니다.”하니 장합이 “내가 또한 이런 마음을 가진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했다.
於是二人領本部兵馬,往曹操寨中投降。夏侯惇曰:「張、高二人來降,未知虛實。」操曰:「吾以恩遇之,雖有異心,亦可變矣。」遂開營門命二人入。二人倒戈卸甲,拜伏於地。操曰:「若使袁紹肯從二將軍之言,不至有敗。今二將軍肯來相投,如微子去殷,韓信歸漢也。」遂封張郃為偏將軍都亭侯,高覽為偏將軍東萊侯。二人大喜。
이에 두 사람이 본부의 병마를 거느리고 조조의 영채로 가서 항복하였다. 하후돈이 말하기를 “장합과 고람 두 사람이 와서 항복하였으나 허실을 알지 못합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은혜로 그들을 대우하면 비록 다늠 마음이 있다할지라도 또한 변하게 할 수 있다.” 하고는 마침내 진영의 문을 열고 두 사람을 들어오게 하였다. 두 사람이 창을 거꾸로 잡고 갑옷을 벗고 땅에 엎드려 절하였다. 조조가 말하기를 “가령 원소가 두 장군의 말을 따랐다면 패배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두 장군이 와서 항복한 것은 미자가 은나라를 떠난 것과 같고, 한신이 한나라에 돌아온 것과 같다.” 했다. 마침내 장합을 봉하여 편장군 도정후로 삼고, 고람은 편장군 동래후로 삼았다. 두 사람이 크게 기뻐하였다.
卻說袁紹既去了許攸,又去了張郃、高覽,又失了烏巢糧,軍心皇皇。許攸又勸曹操作速進兵;張郃、高覽請為先鋒;操從之。即令張郃、高覽領兵往劫紹寨。當夜三更時分,出軍三路劫寨。混戰到明,各自收兵,紹軍折其大半。荀攸獻計曰:「今可揚言調撥人馬,一路取酸棗,攻鄴郡;一路取黎陽,斷袁兵歸路。袁紹聞之,必然驚惶,分兵拒我;我乘其兵動時擊之,紹可破也。」
각설하고 원소는 허유가 떠난 후 장합, 고람이 떠나고, 또 오소의 양식을 잃으니 군대의 마음이 당황하고 두려워하였다. 허유가 또한 조조에게 속히 군대를 진군할 것을 권하고, 장합과 고람은 선봉이 될 것을 청하니 조조가 그것을 따랐다. 곧 장합, 고람에게 명령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원소의 영채를 빼앗게 하였다. 그날 밤 삼경 쯤 군대를 내어 세 길로 영채를 공격하였다. 섞여 싸우기를 날이 밝을 때까지 하다 각자 군대를 거두었는데 원소의 군대 태반이 죽었다. 순유가 조조에게 계책을 올려 말하기를 “지금 소문을 내기를 인마를 뽑아 한 길로는 산조를 취하고, 업군을 공격하며, 한길로는 여양을 취하고 원소의 군대가 돌아가는 길을 차단한다 하십시오. 원소가 그것을 들으면 반드시 놀라고 당황하여 군대를 나누어 우리를 막으려 할 것이니 우리는 그 군대가 움직이는 때를 타서 공격하면 원소를 깨트릴 수 있습니다.” 했다.
操用其計,使大小三軍,四遠揚言。紹軍聞此信,來寨中報說:「曹操分兵兩路:一路取鄴郡,一路取黎陽去也。」紹大驚,急遣袁尚分兵五萬救鄴郡,辛明分兵五萬救黎陽,連夜起行。曹操探知袁紹兵動,便分大隊軍馬,八路齊出,直衝紹營。袁軍俱無鬥志,四散奔走,遂大潰。袁紹披甲不迭,單衣幅巾上馬;幼子袁譚後隨。張遼、許褚、徐晃、于禁四員將,引軍追趕袁紹。紹急渡河,盡棄圖書車仗金帛,止引隨行八百餘騎而去。
조조가 그 계책을 써서 크고 작은 삼 군으로 하여금 사방으로 소문을 내게 하였다. 원소의 군대가 이 소문을 듣고 영채 안으로 와 보고하여 말하기를 “조조가 군대를 두 길로 나누어 한 길로는 업군을 취하고 한 길로는 여양을 취하러 간다.” 했다. 원소가 크게 놀라 급히 여상으로 하여금 군대 오 만을 나누어 주어 업군을 구원하게 하고, 신명은 군대 오 만을 나누어 여양을 구원하게 하여 밤능 이어 가게 하였다. 조조가 원소의 군대다가 움직였다는 것을 탐지하고는 곧 대대의 군마를 나누어 여덟 길로 일제히 나가 곧 바로 원소의 진영을 쳤다. 원소의 군대가 모두 싸울 뜻이 없어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니 마침내 크게 무너졌다. 원소가 갑옷을 입지도 못하고 당황하여 홑옷과 복건을 쓴채 말에 올라 달아나는데 어린 아들 원담이 뒤따랐다. 장요, 허저, 서황, 우금 네 명의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원소를 뒤 쫓았다. 원소가 급히 강을 건너는데 도서, 수레, 무기, 비단 등을 모두 버리고 단지 팔 백여기만을 이끌고 따르게 하여 갔다.
操軍追之不及,盡獲遺下之物。所殺八萬餘人,血流盈溝,溺水死者不計其數。操獲全勝,將所得金寶緞疋,給賞軍士。於圖書中檢出書信一束,皆許都及軍中諸人與紹暗通之書。左右曰:「可逐一點對姓名,收而殺之。」操曰:「當紹之強,孤亦不能自保,況他人乎?」遂命盡焚之,更不再問。
조조의 군대가 뒤쫓았으나 미치지 못하고 남은 물건을 모두 얻었다. 팔만 여명이 죽음을 당하여 피가 흘러 도랑에 차고, 물에 빠져 죽은 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조조가 완전한 승리를 얻고 얻은 바의 보배와 비단을 가지고 군사들에게 상을 주었다. 도서 중에 서신 만 뭉치가 나왔는데 모두 허도와 군중의 여러 사람들이 원소와 주고받은 글이었다. 좌우가 말하기를 “일제히 성명을 대조하여 거두어 죽여야 합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원소의 강함을 당하면 나도 또한 스스로 보존하지 못하였을 것인데 라물며 다른 사람이겠는가?”하고는 마침내 모두 불사르게 하고 다시 거론하지 말라. 하였다.
卻說袁紹兵敗而奔,沮授因被囚禁,急走不脫,為曹軍所獲,擒見曹操。操素與沮授相識。授見操,大呼曰:「授不降也!」操曰:「本初無謀,不用君言,君何尚執迷耶?吾若早得足下,天下不足慮也。」因厚待之,留於軍中。授乃於營中盜馬,欲歸袁氏。操怒,乃殺之。授至死神色不變。操歎曰:「吾誤殺忠義之士也!」命厚禮殯殮,為建墳安葬於黃河渡口,題其墓曰:「忠烈沮君之墓」。後人有詩贊曰:
각설하고 원소의 군대가 패하여 달아나자 저수가 감옥에 갖혀 있다가 급히 달아나 탈출하지 못하고 조조 군에게 잡힌 바 되어 조조에게 끌려갔다. 조조가 평소에 저수와 서로 알았다. 조수가 조조를 보고 크게 부르짖어 말하기를 “ 저수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본초(원소)는 꾀가 없어 그대의 말을 쓰지 않았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오히려 미혹한 것\을 잡는가? 내가 만약 일찍이 그대를 얻었다면 천하를 염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는 두텁게 대우하고 군 중에 머물게 했다. 조수가 이에 진영 안의 말을 훔쳐 타고 원소에게 돌아가려 하였다. 조조가 노하여 이에 그를 죽였다. 저수가 죽음에 이르렀으나 정신과 안색이 변하지 않았다. 조조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가 잘못하여 충의의 선비를 죽였구나!”하고는 후한 예로 장례하게 하고, 황하 나루 입구에 무덤을 세우고 안장하게 하고, 그 묘에 이름을 붙여 ‘충렬저군의 묘’라 하렸다. 후세 사람들이 시를 지어 기려 말하기를
河北多名士,忠貞推沮君。凝眸知陣法,仰面識天文。至死心如鐵,臨危氣似雲。曹公欽義烈,特與建孤墳。
하북에 명사들이 많으나 충성과 정렬로는 저수를 따른다./응시하면 진법을 알았고, 우러르면 천문을 알았다./죽음에 이른 마음 쇠와 같고, 위태로움에 임한 기운 구름과 같다./조조가 의열을 공경하여 특히 외로운 무덤을 세웠다./
操下令攻。正是:勢弱只因多算勝,兵強卻為寡謀亡。未知勝負如何,且看下文分解。
조조가 명을 내려 공격하게 하였으니, 바로 이러하다. 형세는 약하나 많은 계책으로 이겼고, 군대가 강하였으나 적은 꾀로 망하였다. 승부가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겠구나!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삼국연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2회 기주를 빼앗은 원상이 예기를 다투고, 허유가 장하를 트는 계책을 올리다. (0) | 2020.05.14 |
---|---|
제31회 조조는 창정에서 본초(원소)를 깨트리고, 유현덕은 형주 유표에게 의지하다. (0) | 2020.05.11 |
제29회 소패왕이 노하여 우길을 베고, 푸른 눈의 아이가 앉아서 강동을 다스리다. (0) | 2020.04.28 |
제28회 채양형제를 베어 의심을 풀고, 옛 성에서 임금과 신하가 만나 의를 모으다 (0) | 2020.04.24 |
제27회 미염공은 천리를 단기로 달리고, 한수후는 오관의 여섯 장수 목을 베다. (0) | 2020.04.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