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十二回:奪冀州袁尚爭鋒,決漳河許攸獻計
제32회 기주를 빼앗은 원상이 예기를 다투고, 허유가 장하를 트는 계책을 올리다.
卻說袁尚自斬史渙之後,自負其勇,不待袁譚等兵至,自引兵數萬出黎陽,與曹軍前隊相迎。張遼當先出馬,袁尚挺槍來戰,不三合,架隔遮攔不住,大敗而走。張遼乘勢掩殺,袁尚不能主張,急急引軍奔回冀州。袁紹聞袁尚敗回,又受了一驚,舊病復發,吐血數斗,昏倒在地。劉夫人慌救入臥內,病勢漸危。劉夫人急請審配、逢紀,直至袁紹榻前,商議後事。紹但以手指而不能言。劉夫人曰:「尚可繼後嗣否?」紹點頭。審配便就榻前寫了遺囑。紹翻身大叫一聲,又吐血斗餘而死。後人有詩曰:
각설하고 원상은 사환의 목을 벤 후로부터 그 용맹을 자부하여 원담 등의 군대가 이르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군대 수만을 이끌고 여양을 나와 조조군대 앞 부대와 마주쳤다. 장요가 앞서 말을 타고 나오니 원상이 창을 앞으로하여 와서 싸웠는데 삼합이 되지 않아 사이를 가로마고 차단하여 막지 못하고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 장요가 형세를 타고 기습하여 죽이니 원상이 주장(대처)할 줄 몰라 급히 군대를 이끌고 달아나 기주에 돌아갔다. 원소는 원상이 패하고 돌아왔다는 것을 듣고 또 놀라 옛 병이 다시 발생하여 피를 여러 말 토하고 기절하여 땅에 엎어졌다. 유부인이 황급히 구원하여 안에 들어가 눕혔으나 병세가 점점 위태로워졌다. 유부인이 급히 심배, 봉기를 청하여 곧바로 원소의 침상 앞에 이르러 뒤의(원소가 죽은 후)일을 상의하였다. 원소는 단지 손으로서 가리킬 뿐 말을 할 수 없었다. 유부인이 말하기를 “원상으로 후사를 이으라는 것입니까?”하니 원소가 머리를 끄덕였다. 심배가 곧 침상 앞으로 나가 남기는 부탁을 받아 적었다. 원소가 몸을 뒤집으며 크게 한 소릴 들 부르짖고는 또 피를 한 말이 넘게 토하고는 죽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말하기를
累世公卿立大名,少年意氣自縱橫。空招俊傑三千客,漫有英雄百萬兵。羊質虎皮功不就,鳳毛雞膽事難成。更憐一種傷心處,家難徒延兩弟兄。
공경으로 여러 세대 큰 명예를 세웠고, 소년의 의기 거침없었네./헛되이 불러모은 준걸이 삼천이고, 영웅이 백만의 군대를 소유하였다./양의 바탕에 범의 가죽 걸쳤으니 공을 이루지 못하였고, 봉황의 날개에 닭의 담으로 일을 이루기 어려웠다./가련하다. 애달픈 마음에 다시 한 가지 심었으니 집안의 어려움이 두 형제에 이어졌네./
袁紹既死,審配等主持喪事。劉夫人便將袁紹所愛寵妾五人,盡行殺害;又恐其陰魂於九泉之下再與紹相見,乃髡其髮,刺其面,毀其屍:其妒惡如此。袁尚恐寵妾家屬為害,並收而殺之。審配、逢紀立袁尚為大司馬將軍,領冀、青、幽、并四州牧,遣使報喪。此時袁譚已發兵離青州;知父死,便與郭圖、辛評商議。圖曰:「主公不在冀州,審配、逢紀必立顯甫為主矣。當速行。」辛評曰:「審、逢二人,必預定機謀。今若速往,必遭其禍。」袁譚曰:「若當此如何?」郭圖曰:「可屯兵城外,觀其動靜。某當親往察之。」
원소가 죽은 후 심배 등이 장례의 일을 주관하였다. 유부인이 장차 원소에게 사랑받았던 첩 다섯 명을 모두 죽이려하였으나 또 그 귀신들이 구천의 아래서 다시 원소와 만날 것을 두려워하였다. 이에 그 머리털을 깍고, 그 얼굴을 짓이기고 그 시체를 훼손하였으니 그 질투하고 미워한 것이 이와 같았다. 원상이 원소의 첩들의 가속들이 해칠 것을 두려워하여 아울러 거두어 그들을 죽였다. 심배와 봉기가 원상을 세워 대사마장군으로 삼고, 기주, 청주, 유주, 병주의 네 개 주를 거느리고 다스리게 하고, 사자를 보내 원소의 죽음을 알렸다. 이 때 원담이 이미 군대를 내어 청주를 떠났으나 아버지가 죽은 것을 알고 곧 곽도, 신평과 상의하였다. 곽도가 말하기를 “주공이 기주에 있지 않으니 심배, 봉기는 반드시 현보를 세워 주인으로 할 것입니다. 마땅히 속히 가야 합니다.” 했다. 신평이 말하기를 “심배와 봉기 두 사람은 반드시 미리 계책을 세울 것입니다. 지금 만약 속히 가면 반드시 그 화를 만날 것입니다.” 했다. 원담이 말하기를 “만약 이러하다면 어찌 해야 합니까?”하니 곽도가 “군대를 성 밖에 주둔하고, 그 동정을 살펴야 합니다. 제가 직접 가서 살펴보겠습니다.” 했다.
譚依言。郭圖遂入冀州,見袁尚。禮畢,尚問:「兄何不至?」圖曰:「因抱病在軍中,不能相見。」尚曰:「吾受父親遺命,立我為主,加兄為車騎將軍。目下曹軍壓境,請兄為前部,吾隨後便調兵接應也。」圖曰:「軍中無人商議良策,願乞審正南、逢元圖二人為輔。」尚曰:「吾亦欲仗此二人早晚畫策,如何離得?」圖曰:「然則於二人內遣一人去,何如?」尚不得已,乃令二人拈鬮,拈著者便去。逢紀拈著,尚即命逢紀齎印緩,同郭圖赴袁譚軍中。紀隨圖至譚軍,見譚無病,心中不安,獻上印緩。譚大怒,欲斬逢紀。郭圖密諫曰:「今曹軍壓境,且只款留逢紀在此,以安尚心。待破曹之後,卻來爭冀州不遲。」
원담이 그 말에 의지하였다. 곽도가 마침내 기주에 들어가 원상을 만났다. 예를 마치고 원상이 묻기를 “형님은 어찌하여 이르지 않습니까?”하였다. 곽도가 말하기를 “병이 들어서 군중에 있어 서로 만날 수 없습니다.” 했다. 원상이 말하기를 “내가 아버지의 유명을 받았는데 나를 세워 주인으로 삼았고, 형님은 거기장군을 삼았습니다. 지금 조조의 군대가 국경을 압박하니 형님이 앞 부대가 되기를 청하고, 나는 뒤를 따라 군대를 이동하여 대응하겠습니다.” 했다. 곽도가 말하기를 “군중에 좋은 계책을 상의할 사람이 없으니 심배와 봉기 두 사람을 빌려서 보좌로 삼기를 원합니다.” 했다. 원상이 말하기를 “내가 또한 이 두 사람에게 의지하여 조만간 계책을 계획해야 하는데 어떻게 떠나보낼 수 있겠습니까?” 했다. 곽도가 말하기를 “그러하다면 곧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을 보내는 것이 어떠합니까?”하니 원상이 부득이하여 곧 두 사람으로 하여금 제비뽑기를 하여 제비를 뽑는 자가 가기로 하였다. 봉기가 제비를 뽑으니 원상이 곧 봉기로 하여금 인수를 가져오게 하여 곽도와 같이 원담의 군중에 가게 하였다. 봉기가 따라서 원담의 군에 이르러 원담이 병이 없는 것을 보고는 마음 속으로 불안해하면서 인수를 바쳤다. 원담이 크게 노하여 봉기의 목을 베려 하였다. 곽도가 몰래 간하여 말하기를 “지금 조조가 변경을 압박하니 정성껏 봉기를 머물게 하여 여기에 있게 하는 것으로서 원상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십시오.” 했다.
譚從其言。即時拔寨起行,前至黎陽,與曹軍相抵。譚遣大將汪昭出戰,操遣徐晃迎敵。二將戰不數合,徐晃一刀斬汪昭於馬下。曹軍乘勢掩殺,譚軍大敗。譚收敗軍入黎陽,遣人求救於尚。尚與審配計議,只發兵五千餘人相助。曹操探知救軍已到,遣樂進、李典引兵於半路接著,兩頭圍住盡殺之。袁譚知尚止撥兵五千,又被半路坑殺,大怒,乃喚逢紀責罵。紀曰:「容某作書致主公,求其親自來救。」譚即令紀作書,遣人到冀州致袁尚。尚與審配共議。配曰:「郭圖多謀,前次不爭而去者,為曹軍在境也。今若破曹,必來爭冀州矣。不如不發救兵,借操之力以除之。」
웜담이 그 말을 따랐다. 즉시 영채를 거두어 행군하여 앞으로 가 여양에 이르러 조조의 군대와 서로 대치하였다. 원담이 대장 왕소를 보내 나가 싸우게 하니 조조가 서황을 보내 대적하게 했다. 두 장수가 싸운지 몇 합 되지 않아 서황이 한 갈에 왕소를 베니 말에서 떨어졌다. 조조의 군대가 형세를 타고 습격하여 죽이니 원담의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원담이 패한 군대를 거두어 여양에 들어가 원상에게 사람을 보내 구원을 청하였다. 원상과 심배가 계책을 의논하고는 군대 오천여 명을 보내 돕게 하였다. 조조가 구원하는 군대가 이르는 것을 알고는 악진, 이전을 보내 군대를 이끌고 중간에서 맞아 막게 하니 양족에서 둘러싸고 모두 죽였다. 원담은 다만 군대 오천 명만을 보내고, 또한 중간에서 함정에 빠져 죽은 것을 알고는 크게 노하여 이에 봉기를 불러 꾸짖고 욕하였다. 봉기가 말하기를 “제가 글을 지어 주공에게 이를 수 있게 하여주신다면 그가 직접 와서 구원할 것을 청하겠습니다.” 했다. 원담이 봉기로 하여금 글을 짓게 하고는 사람을 보내 기주에 이르게 하여 원상에게 이르게 하였다. 원상과 심배가 함께 의논하였다. 심배가 말하기를 “곽도는 꾀가 많고, 지난번에 다투지 않고 떠난 것은 조조의 군대가 국경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만약 조조를 깨트리면 반드시 와서 기주를 다툴 것입니다. 구원병을 보내지 말고 조조의 힘을 빌려서 쫒아야 합니다.” 했다.
尚從其言,不肯發兵。使者回報,譚大怒,立斬逢紀,議欲降曹。早有細作密報袁尚。尚與審配議曰:「使譚降曹,並力來攻,則冀州危矣。」乃留審配並大將蘇由固守冀州,自領大軍來黎陽救譚。尚問軍中誰敢為前部,大將呂曠、呂翔兄弟二人願去。尚點兵三萬,使為先鋒,先至黎陽。譚聞尚自來,大喜,遂罷降曹之議。譚屯兵城中,尚屯兵城外,為犄角之勢。
여상이 그 말을 따라 즐겨 군대를 내지 않았다. 사자가 돌아가 보고하니 원담이 크게 노하여 봉기를 세워 목을 베고는 조조에게 항복하려는 의논을 하였다. 재빨리 세작이 몰래 원상에게 보고하였다. 원상과 심배가 의논하여 말하기를 “가령 원담이 조조에게 항복하고, 힘을 합쳐 와서 공격한다면 곧 기주가 위태로워질 것이다.”하고는 이에 심배를 머물게 하여 대장 소유와 함께 굳게 기주를 지키게 하고, 자기는 대구을 거느리고 여양에 가 원담을 구원하였다. 원상이 군중에 누가 용감하게 선봉이 될 것인지를 물으니 대장 여광, 여상 형제 두 사람이 가기를 원하였다. 원상이 군대 삼만을 점검하여 선봉이 되게 하고 먼저 여양에 이르게 하였다. 원담은 원상이 스스로 온다는 것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마침내 조조에게 항복하는 의논을 그만 두었다. 원담은 군대를 성 안에 주둔하고 원상은 군대를 성 밖에 주둔하여 양면 작전의 형세를 만들었다.
不一日,袁熙、高幹皆領軍到城外,屯兵三處,每日出兵與操相持。尚屢敗,操兵屢勝。至建安八年春三月,操分路攻打,袁譚、袁熙、袁尚、高幹皆大敗,棄黎陽而走。操引兵迫至冀州。譚與尚入城堅守,熙與幹離城三十里下寨,虛張聲勢。操兵連日攻打不下。郭嘉進曰:「袁氏廢長立幼,而兄弟之間,權力相併,各自樹黨,急之則相救,緩之則相爭,不如舉兵南向荊州,征討劉表,以候袁氏兄弟之變;變成而後擊之,可一舉而定也。」
하루가 지나지 않아 원희, 고간이 모두 군대를 거느리고 성 밖에 이르러 군ㄴ대를 세 곳에 주둔하고 매일 군대를 내어 조조와 대치하였다. 원상은 여러 번 패하고 조조의 군대는 여러 번 이겼다. 건안 팔년 춘삼월에 이르러 조조가 길을 나누어 공격하니 원담, 원희, 원상, 고간이 모두 크게 패하여 여양을 버리고 달아났다. 조조가 군대를 이끌고 다그쳐서 기주에 이르렀다. 원담과 원상이 성에 들어가 굳게 지키고, 원희와 고간은 성으로부터 삽십리 떨어져 영채를 세우고 허장성세를 이루었다. 조조의 군대가 연일 공격하여도 떨어지지 않았다. 곽가가 나아가 말하기를 “원씨는 장자를 없애고 어린 애를 세워 형제의 사이에 권력을 서로 다투고, 각각 스스로 당을 조직하여 급하면 서로 구원하고, 느슨하면 곡 서로 싸우니 군대를 들어 남쪽으로 형주를 향하여 유표를 정벌하고, 원씨 형제의 변을 살피다가 변이 이루어진 후에 그를 치면 한 번에 평정할 수 있습니다.” 했다.
操善其言,命賈詡為太守,守黎陽;曹洪引兵守官渡。操引大軍向荊州進兵。譚、尚聽知曹軍自退,遂相慶賀。袁熙、高幹各自辭去。袁譚與郭圖、辛評議曰:「我為長子,反不能承父業;尚乃繼母所生,反承大爵;心實不甘。」圖曰:「主公可勒兵城外,只做請顯甫、審配飲酒,伏刀斧手殺之,大事定矣。」譚從其言。適別駕王修自青州來,譚將此計告之。修曰:「兄弟者,左右手也。今與他人爭鬥,自斷其手,而曰我必勝,安可得乎?夫棄兄弟而不親,天下其誰親之?彼讒人離間骨肉,以求一朝之利,願塞耳勿聽也。」
조조가 그 말을 좋게 여겨 가후를 태수로 삼아 여양을 지키게 하고, 조홍은 군대를 이끌고 관도를 지키게 하였다.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형주를 향하여 진군하였다. 원담과 원상은 조조의 군대가 스스로 물러난다는 것을 들어 알고는 마침내 서로 축하하였다. 원희, 고간은 각자 하직하고 갔다. 원담이 곽도, 심평과 의논하며 말하기를 “나는 장자가 되는데도 도리어 아버지의 기업을 잇지 못하였고, 원상은 곧 계모가 낳았는데도 도리어 큰 벼슬을 계승하였으니 마음이 실로 좋지 못하다.” 했다. 곽도가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성 밖에서 군대의 대오를 정돈하고 점검하고, 다만 현보, 심배를 청하여 술을 마시면서 도부수를 숨겨 두었다가 그들을 죽이면 큰 일이 안정될 것입니다.” 했다. 원담이 그 말을 따랐다. 마침 별가 왕수가 청주에 왔는데 원담이 이 계책을 말하였다. 왕수가 말하기를 “형제는 왼쪽, 오른 쪽 손입니다. 지금 다른 사람과 싸우면서 스스로 그 손을 끊고서 나는 반드시 이길 것이다. 말한다면 어찌 얻을 수 있겠습니까? 대저 형제를 버리고 친하지 않으면서 천하의 그 누구와 친하려 하십니까? 저 참소하는 사람이 골육을 이간하는 것으로서 하루아침의 이로움을 구하는 것이니 귀를 막고 듣지 마십시오.” 했다.
譚怒,叱退王修,使人去請袁尚。尚與審配商議。配曰:「此必郭圖之計也。主公若往,必遭奸計;不如乘勢攻之。」袁尚依言,便披挂上馬,引兵五萬出城。袁譚見袁尚引軍來,情知事泄,亦即披挂上馬,與尚交鋒。尚見譚大罵。譚亦罵曰:「汝藥死父親,篡奪爵位,今又來殺兄耶!」二人親自交鋒袁譚大敗。尚親冒矢石,衝突掩殺。譚引敗軍奔平原,尚收兵還。袁譚與郭圖再議進兵,令岑璧為將,領兵前來。尚自引兵出冀州。
원담이 노하여 왕수를 꾸짖고 물러가게 하고, 사람을 시켜 가서 원상을 청하게 했다. 원상과 심배가 상의 하였다. 심배가 말하기를 “이는 곽도의 계책이 틀림없습니다. 주공께서 만약 가신다면 반드시 간계를 만날 것이니 형세를 타서 공격하는 것이 낫습니다.” 했다. 원상이 그 말에 의하여 곧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군대 오만을 이끌고 성을 나갔다. 원담은 원상이 군대를 이끌고 오는 것을 보고는 일이 누설되었다는 것을 알고 또한 곧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원상과 싸웠다. 원상이 원담을 보고 크게 욕하였다. 원담이 또한 욕하여 말하기를 “너는 약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작위를 빼앗았으면서도 지금 또한 와서 형을 죽이려느냐!” 했다. 두 사람이 직접 싸워서 원담이 크게 패하였다. 원상이 직접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돌진하여 죽였다. 원담이 패한 군대를 이끌고 평원으로 달아나니 원상이 군대를 거두어 돌아갔다. 원담과 곽도가 다시 진군할 것을 의논하여 잠벽으로 하여금 장수를 삼고, 군대를 거느리고 앞으로 가게 하였다. 원상이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기주에서 나왔다.
兩陣對圓,旗鼓相望。璧出罵陣,尚欲自戰。大將呂曠,拍馬舞刀,來戰岑璧;二將戰無數合,曠斬岑璧於馬下。譚兵又敗,再奔平原。審配勸尚進兵,追至平原。譚抵當不住,退入平原,堅守不出。尚三面圍城攻打。譚與郭圖計議。圖曰:「今城中糧少,彼軍方銳,勢不相敵。愚意可遣人投降曹操,使操將兵攻冀州,尚必還救。將軍引兵夾擊之,尚可擒矣。若操擊破尚軍,我因而斂其軍實以拒操。操軍遠來,糧食不繼,必自退去;我可以仍據冀州,以圖進取也。」
두 진이 둥글게 대치하니 깃발과 북이 서로 바라보였다. 잠벽이 진에 나와 욕하니 원상이 싸우려 하였다. 대장 여광이 말을 박차고 칼춤을 추면 와 잠벽과 싸웠다. 두 장수가 싸운 지 몇 합되지 않아 여광이 잠벽을 베어 말에서 떨어뜨렸다. 원담의 군대가 또 패하여 다시 평원으로 달아났다. 심배가 원상에게 진군시킬 것을 권하여 뒤쫓아 평원에 이르렀다. 원당이 막아내지 못하고 물러나 평원에 들어가 굳게 지키고 나오지 않았다. 원상이 세 방향에서 (평원)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였다. 원담과 곽도가 계책을 의논하였다. 곽도가 말하기를 “지금 성 안에 양식이 적고, 저들의 군대는 날카로우니 형세가 서로 대적할 수 없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사람을 보내 조조에게 들어가 항복하면 조조가 장수와 군대를 시켜 기주를 공격할 것이고, 원상은 반드시 돌아가 구원할 것입니다. 장군께서 군대를 이끌고 협공하면 원상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조조가 원상의 군대를 쳐서 깨트리면 우리는 말미암아 그 군대의 실제를 거두어서 조조를 막을 수 있습니다. 조조의 군대는 멀리서 오므로 양식이 이어지지 않을 것이니 반드시 스스로 물러나 갈 것입니다. 우리는 그대로 기주를 근거로 삼아 나아가고 취함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했다.
譚從其言,問曰:「何人可為使?」圖曰:「辛評之弟辛毗,字佐治,見為平原令。此人乃能言之士,可命為使。」譚即召辛毗。毗欣然而至。譚修書付毗,使三千軍送毗出境。毗星夜齎書往見曹操。時操屯軍西平伐劉表,表遣玄德引兵為前部以迎之。未及交鋒,辛毗到操寨。見操禮畢,操問其來意,毗具言袁譚相求之意,呈上書信。
원담이 그 말을 따라 물어 말하기를 “ 어떤 사람을 사신으로 할 수 있는가?” 하니 곽도가 말하기를 “신평의 동생 신비는 자가 좌치인데 현재 평원령이 됩니다. 이 사람은 곧 말을 잘하는 선비로 명하여 사신으로 삼을 만합니다.” 했다. 원담이 곧 신비를 불렀다. 신비가 기쁘게 이르렀다. 원담이 글을 지어 신비에게 주고 삼천의 군대로 하여금 신비를 호송하여 국경을 나가게 하였다. 신비가 밤에도 글을 가지고 가서 조조를 만났다. 그 때 조조는 군대를 서평에 주둔하고, 유표를 치려하자 유표가 유현덕을 보내 군대를 이끌고 선봉으로 삼아 맞이하게 하였다. 싸움을 하기 전에 신비가 조조의 영채에 이르렀다. 조조를 뵙는 예를 마치고 조조가 그 온 뜻을 물으니 신비가 원담이 청하는 뜻을 모두 말하고, 편지를 올렸다.
操看書畢,留辛毗於寨中,聚文武計議。程昱曰:「袁譚被袁尚攻擊太急,不得已而來降,不可准信。」呂虔、滿寵亦曰:「丞相既引兵至此,安可復舍表而助譚?」荀攸曰:「三公之言未善。以愚意度之,天下方有事,而劉表坐保江、漢之間,不敢展足,其無四方之志可知矣;袁氏據四州之地,帶甲數十萬,若二子和睦,共守成業,天下事未可知也。今其兄弟相攻,勢窮而投我,我提兵先除袁尚,後觀其變。並滅袁譚,天下定矣。此機會不可失也。」
조조가 글을 보기를 마치고 신비를 영채 안에 머물게 하고는 문관과 무관을 모아 계책을 의논하였다. 정욱이 말하기를 “원담이 원상의 공격을 받아 크게 급하여 부득이 와서 항복하는 것이니 믿을 수 없습니다.” 했다. 여건, 만총이 또한 말하기를 “승상께서 이미 군대를 이끌고 여기에 이르렀는데 어찌 다시 유표를 버려두고 원담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했다. 순유가 말하기를 “세 공의 말은 좋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뜻으로 헤아려보면 천하에 바야흐로 일이 있어 유표는 장강과 한수의 사이에 자리하여 지켜 감히 발을 펴지 못하여 사방에 뜻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원씨는 네 개 주에 근거하여 갑옷 입은 군사가 수 십 만이어서 만약 두 아들이 화목하여 함께 업을 지키고 이루었다면 천하의 일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그 형제가 서로 공격하여 형세가 곤궁하자 우리에게 들어왔는데 우리가 군대를 거느리고 먼저 원상을 제거한 후 그 변함을 관찰하고, 아울러 원담을 없앤다면 천하가 평정될 것입니다. 이는 기회이니 잃어서는 안 됩니다.” 했다.
操大喜,便邀辛毗飲酒,謂之曰:「袁譚之降,真耶詐耶?袁尚之兵,果可必勝耶?」毗對曰:「明公勿問真與詐也,只論其勢可耳。袁氏連年喪敗,兵革疲於外,謀臣誅於內;兄弟讒隙,國分為二;加之饑饉並臻,天災人困;無問智愚,皆知土崩瓦解。此乃天滅袁氏之時也。今明公提兵攻鄴,袁尚不還救,則失巢穴;若還救,則譚踵襲其後。以明公之威,擊疲憊之眾,如迅風之掃秋葉也。不此之圖,而伐荊州,荊州豐樂之地,國和民順,未可搖動。況四方之患,莫大於河北。河北既平,則霸業成矣。願明公詳之。」操大喜曰:「恨與辛佐治相見之晚也!」即日督軍還取冀州。玄德恐操有謀,不敢追襲,引兵自回荊州。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곧 신비를 맞이하여 술을 마시며 말하기를 “원담이 항복하는 것은 참인가? 거짓인가? 원상의 군대를 과연 반드시 이길 수 있는가?” 했다. 신비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명공(조조)께서 참인지, 거짓인지를 묻지 마시고, 다만 그 형세가 할 수 있는지를 논할 뿐입니다. 원씨는 매년 패배하여 밖에서는 군대가 피로하고, 안에서는 꾀를 내는 신하를 죽였으며, 형제가 참소하는 말로 틈이 생겨 나라가 나뉘어 둘로 되었습니다. 더하여 기근이 아울러 이르고, 하늘의 재앙으로 사람이 곤궁하니 지혜로운 이나 어리석은 이를 묻지 않고 모두 땅이 무너지고 와해되는 것을 압니다. 이는 곧 하늘이 원씨를 없애는 때입니다. 지금 명공(조조)께서 군대를 거느리고 업을 공격하면 원상이 돌아가 구원하지 않으면 곧 둥지를 잉ㅎ을 것이고, 만약 돌아가 구원한다면 곧 원담이 뒤를 따라 그 뒤를 습격할 것입니다. 명공(조조)의 위엄으로 지친 무리를 친다면 마치 빠른 바람이 가을 낙엽을 빗자루로 쓸어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러한 도모를 하지 않고 형주를 치면 형주는 풀요롭고 즐거운 땅으로 나라는 화합하고 백성은 따르니 흔들리게 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사방의 근심이 하북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하북이 평정되면 곧 패업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명공(조조)께서는 자세히 살피시기를 원합니다.” 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신좌치(신비)와 서로 만남이 늦은 것이 한스럽구나!” 하고는 그날 군대를 감독하여 돌아가 기주를 취하려 하였다. 유현덕이 조조가 꾀가 있음을 두려워하여 감히 뒤쫓아 습격하지 못하고 군대를 이끌고 형주로 돌아갔다.
卻說袁尚知曹軍渡河,急急引軍還鄴,命呂曠、呂翔斷後。袁譚見尚退軍,乃大起平原軍馬,隨後趕來。行不到數十里,一聲砲響,兩軍齊出,左邊呂曠,右邊呂翔,兄弟二人截住袁譚。譚勒馬告二將曰:「吾父在日,吾並未慢待二將軍,今何從吾弟而見迫耶。」
각설하고 원상은 조조의 군대가 강을 건넌 것을 알고는 급히 군대를 이끌고 업에 돌아가 여광, 여상으로 하여금 뒤를 끊게 하였다. 원담은 원상이 군대를 물리는 것을 보고는 곧 크게 평원의 군마를 일으켜 뒤를 따라 쫒았다. 행군하여 몇 십리 가지 못하여 한 소리 포성이 울리고 두 군대가 일제히 나오는 데 왼쪽에서는 여광, 오른 쪽에서는 여상이었다. 형제 두 사람이 원담을 끊고 막았다. 원담이 말을 몰아 두 장수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내가 두 장군을 소홀히 대우하지 않았는데 지금 어찌하여 나의 동생을 따라 핍박하는가?” 했다.
二將聞言,乃下馬降譚。譚曰:「勿降我,可降曹丞相。」二將因隨譚歸營。譚候操軍至,引二將見操。操大喜,以女許譚為妻,即令呂曠、呂翔為媒。譚請操攻取冀州。操曰:「方今糧草不接,搬運勞苦,我由濟河遏淇水入白溝,以通糧道,然後進兵。」令譚且居平原。操引軍退屯黎陽,封呂曠、呂翔為列侯,隨軍聽用。郭圖謂袁譚曰:「曹操以女許婚,恐非真意。今又封賞呂曠、呂翔,帶去軍中,此乃牢籠河北人心。後必終為我禍。主公可刻將軍印二顆,暗使人送與二呂,令作內應。待操破了袁尚,可乘便圖之。」
두 장수가 말을 듣고 이에 말에서 내려 원담에게 항복하였다. 원담이 말하기를 “나에게 항복하지 말고 조승상에게 항복해야 한다.”하니 두 장수가 원담을 따라 진영으로 돌아갔다. 원담은 조조의 군대가 이를 것을 살피고는 두 장수를 이끌고 조조를 뵈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여 딸을 원담의 아내로 삼는 것을 허락하고, 곧 여광, 여상으로 하여금 중매가 되게 했다. 원담이 조조에게 기주를 공격하여 취할 것을 청하였다. 조조가 말하기를 “지금 양식과 말먹이 풀이 떨어졌는데 운반이 수고롭다. 내가 하를 건너 기수를 막아 백구에 들어가는 양식을 운반하는 길을 통한 후에 군대를 진군할 것이다.”하고는 원담으로 하여금 또한 평원에 살게 하였다. 조조가 군대를 이끌고 여양에 물러나 주둔하고 여광, 여상을 봉하여 열후로 삼고 군대를 따르며 쓰임을 기다리게 했다. 곽도가 원담에게 말하기를 “조조가 딸로서 혼인을 허락한 것은 참된 뜻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 또한 여광과 여상을 봉하여 군중에 데려가는 것은 이는 곧 하북의 인심을 농락하는 것입니다. 후에 반드시 우리의 재앙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주공께서는 장군의 인 두 개를 새겨 몰래 사람을 시켜 여광과 여상에게 보내게 하여 안에서 대응하게 하십시오. 조조가 원상을 깨트리는 것을 기다려 형세를 타고 도모해야 합니다.” 했다.
譚依言,遂刻將軍印二顆,暗送與二呂。二呂受訖,逕將印來稟曹操。操大笑曰:「譚暗送印者,欲汝等為內助,待我破袁尚之後,就中取事耳。汝等權且受之,我自有主張。」自此曹操便有殺譚之心。
원담이 말에 의하여 마침내 장군의 인 두 개를 새겨 몰래 여광과 여상에게 보냈다. 여광과 여상이 받기를 마치고는 재빨리 장군의 인을 조조에게 바쳤다. 조조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원담이 몰래 장군의 인을 보낸 것은 너희들이 안에서 돕게 하여 내가 원상을 깨트리기를 기다렸다가 중간에 나아가 일을 취하려 해서이다. 너희들은 임시로 그것을 받고 있으라. 내가 주장할 것이 있다.” 했다. 이로부터 조조가 곧 원담을 죽일 마음을 가졌다.
且說袁尚與審配商議:「今曹兵運糧入白溝,必來攻冀州,如之奈何?」配曰:「可發檄使武安長尹楷屯毛城,通上黨運糧道;令沮授之子沮鵠守邯鄲,遙為聲援。主公可進兵平原,急攻袁譚。先絕袁譚,然後破曹。」袁尚大喜,留審配與陳琳守冀州,使馬延、張顗二將為先鋒,連夜起兵攻打平原。譚知尚兵來近,告急於操。操曰:「吾今番必得冀州矣。」
각설하고 원상은 심배와 상의하기를 “지금 조조의 군대가 양식을 운반하여 백구에 들어가는 것은 반드시 기주를 공격하러 오려는 것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했다. 심배가 말하기를 “격문을 내어 무안의 장인 윤해로 하여금 모성에 주둔하여 상당으로 식량을 운반하는 길을 통하게 하고, 저수의 아들 저곡으로 하여금 한단을 지키게 하여 멀리서 성원하게 하십시오. 주공께서는 군대를 평원으로 진군하여 급히 원담을 공격하십시오. 먼저 원담을 끊은 후에 조조를 깨트려야 합니다.” 했다. 원상이 크게 기뻐하며 심배와 진림을 머물게 하여 기주를 지키게 하고, 마연, 장의 두 장군으로 하여금 선봉이 되게 하였다. 밤을 이러 군대를 일으켜 평원을 공격하였다. 원담이 원상의 군대가 가까이 온 것을 알고 급히 조조에게 알렸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이번에는 반드시 기주를 얻을 것이다.” 했다.
正說間,適許攸自許昌來;聞尚又攻譚,入見操曰:「丞相坐守於此,豈欲待天雷擊殺二袁乎?」操笑曰:「吾已料定矣。」遂令曹洪先進兵攻鄴,操自引一軍來攻尹楷。兵臨本境,楷引軍來迎。楷出馬,操曰:「許仲康安在?」許褚應聲而出,縱馬直取尹楷。楷措手不及,被許褚一刀斬於馬下,餘眾奔潰。操盡招降之,即勒兵取邯鄲。沮鵠進兵來迎。張遼出馬,與鵠交鋒,戰不三合,鵠大敗,遼從後追趕。兩馬相離不遠,遼急取弓射之,應弦落馬。操指揮軍馬掩殺,眾皆奔散。
말하는 사이에 마침 허유가 허창에서 왔다. 원상이 또한 원담을 공격한다는 것을 듣고 들어가 조조를 뵙고 말하기를 “승상께서 여기에서 앉아 지키는 것은 하늘의 우레가 원상과 원담을 쳐 죽이기를 기다립니까?” 했다. 조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이미 헤아려 정하였다.”하고는 마침내 조홍에게 명령하여 먼저 진군하여 업을 공격하게 하고, 조조 자신은 일군을 이끌고 가 윤해를 공격하였다. 군대가 경계에 이르자 윤해가 군대를 이끌고 가 맞이하였다. 윤해가 말을 타고 나오니 조조가 말하기를 “허중강은 어디에 있는가?”하니 허저가 소리에 대응하여 나와 말을 달려 곧바로 윤해를 취하려 하였다. 윤해가 손을 놀리지 못하고 허저의 한칼에 베어져 말에서 떨어지니 나머지 무리들이 달아나고 무너졌다. 조조가 모두 불러 항복시키고 곧 군대를 지휘하여 한단을 취하였다. 저곡이 군대를 나아가게 하여 맞이하였다. 장요가 말을 타고 나와 저곡과 싸웠는데 싸운 지 삼 합이 되지 않아 저곡이 크게 패하니 장요가 뒤에서 쫒아 갔다. 두 말이 서로 떨어진 것이 멀지 않았는데 장요가 급히 활을 취하여 그를 쏘니 활시위 소리가 들리면서 말에서 떨어졌다. 조조가 군마를 지휘하여 습격하여 죽이니 무리들이 모두 달아나 흩어졌다.
於是操引大軍前抵冀州。曹洪已近城下。操令三軍遶城築起土山,又暗掘地道以攻之。審配設守堅固,法令甚嚴,東門守將馮禮,因酒醉有誤巡警,配痛責之。馮禮懷恨,潛地出城降操。操問破城之策,禮曰:「突門內土厚,可掘地道而入。」操便命馮禮引三百壯士,夤夜掘地道而入。
이에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기주 앞에 도착하였다. 조홍이 이미 성 아래에 가까이 갔다. 조조가 삼군에 명령하여 성 둘레에 흙산을 쌓아 일으키게 하고, 또한 몰래 땅 속에 길을 파 공격하려 하였다. 심배가 지키기를 굳게 하여 법령이 매우 엄격하였다. 동문을 지키는 장수 풍례가 술에 취하여 순찰을 잘못함이 있었는데 심배가 통렬히 질책하였다. 풍례가 원망을 품고 땅 속으로 성을 나가 조조에게 항복하였다. 조조가 성을 깨트릴 계책을 물으니 풍례가 말하기를 “돌문 안의 흙이 두터우니 땅 속에 길을 파고들어 갈 수 있습니다.” 했다. 조조가 곧 풍례에게 명하여 삼백 명의 장사를 이끌고 한 밤중에 땅 속 길을 파고 들어가게 하였다.
卻說審配自馮禮出降之後,每夜親自登城點視軍馬。當夜在突門閣上,望見城外無燈火。配曰:「馮禮必引兵從地道而入也。」急喚精兵運石擊突閘門,門閉,馮禮及三百壯士,皆死於土內。操折了這一場,遂罷地道之計,退軍於洹水之上,以候袁尚回兵。袁尚攻平原,聞曹操已破尹楷、沮鵠,大軍圍困冀州,乃掣兵回救。部將馬延曰:「從大路去,曹操必有伏兵;可取小路,從西山出滏水口去劫曹營,必解圍也。」
각설하고 심배는 풍례가 나가 항복한 뒤로부터 매일 밤 직접 성에 올라 군마를 점검하고 보았다. 그날 밤 돌문의 누각 위에 있었는데 성 밖을 바라보니 불 빛이 없었다. 심배가 말하기를 “풍례가 군대를 이끌고 땅 속 길을 따라 들어오려는 것이 틀림없다.”하고는 급히 정예 군대를 불러 돌을 운반하여 갑문을 쳐서 문을 막으니 풍례와 삼백 명의 장사들이 모두 흙 속에서 죽었다. 조조가 이 한바탕이 꺽이자 마침내 땅 속에 길을 파는 계책을 그만 두고, 군대를 원수 가에 물리는 것으로서 원상이 군대를 돌리는 것을 엿보았다. 원상이 평원을 공격하다 조조가 이미 윤해와 저곡을 깨트리고 대군으로 기주를 포위하여 곤궁하다는 것을 듣고는 이에 군대를 돌려 구원하려 하였다. 부장 마연이 말하기를 “큰 길을 따라 가면 조조가 반드시 복병을 둘 것이니 작은 길을 취하여 서산으로부터 부수 입구로 나와 가서 조조의 진영을 위협하면 반드시 포위를 풀 것입니다.” 했다.
尚從其言,自領大軍先行,令馬延與張顗斷後。早有細作去報曹操。操曰:「彼若從大路上來,吾當避之;若從西山小路而來,一戰可擒也。吾料袁尚必舉火為號,令城中接應。吾可分兵擊之。」於是分撥已定。
원상이 그 말을 따라서 대군을 거느리고 먼저 가고 마연과 장의로 하여금 뒤를 끊게 하였다. 세작(첩자)이 가서 조조에게 보고하였다. 조조가 말하기를 “그 가 만약 큰 길을 따라 온다면 내가 마당히 피하였을 것이나 만약 서산의 작은 길을 따라 온다면 한 번 싸움으로 사로잡을 수 있다. 나는 원상이 반드시 불을 드는 것을 신호로 삼아 성중으로 하여금 대응하게 할 것을 헤아렸다.”하고는 이에 조를 나누어 정하였다.
卻說袁尚出滏水界口,東至陽平,屯軍陽平亭,離冀州十七里,一邊靠著滏水。尚令軍士堆積柴薪乾草,至夜焚燒為號,遣主簿李孚扮作曹軍都督,直至城下,大叫:「開門!」審配認得是李孚聲音,於入城中,說:「袁尚已陳兵在陽平亭,等候接應;若城中兵出,亦舉火為號。」配教城中堆草放火,以通音信。孚曰:「城中無糧,可發老弱殘兵並婦人出降;彼必不為備,我即以兵繼百姓之後出攻之。」配從其論。
각설하고 원상이 부수의 경계를 나와 동쪽으로 양평에 이르러 군대를 양평정에 주둔하였는데 기주와 칠십 리 떨어지고, 한 쪽으로는 부수에 가까웠다. 원상이 군사들로 하여금 장작, 섶, 마른풀을 쌓게 하고 밤이 되자 불 태워 신호로 삼고, 주부 이부를 조조 군대의 도독으로 가장하고 곧 바로 성 아래 이르러 크게 외치기를 “성문을 열라”하니 심배가 이부의 음성을 알고는 성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이부가 말하기를 “원상이 이미 진을 친 군대가 양평정에 있는데 성 안에서 대응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약 성 안에서 군대를 내면 또한 불을 들어 신호하기로 하였습니다.” 했다. 심배가 성 안으로 하여금 풀을 쌓고 불을 지르는 것으로서 소식을 통하기로 하였다. 이부가 말하기를 “성 안에는 식량이 없을 것이니 노약자와 패하고 살아남은 병사와 부인들을 내보내 항복시키면 그들은 반드시 대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곧 군대로 백성의 뒤를 이어 나가 그들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하니 심배가 그 논의를 따랐다.
次日,城上豎起白旗,上寫「冀州百姓投降」。操曰:「此是城中無糧,教老弱百姓投降;後必有兵出也。」操教張遼、徐晃各引三千軍馬,伏於兩邊。操自乘馬,張麾蓋至城下。果見城門開處,百姓扶老攜幼,手持白旗而出。百姓纔出盡,城中兵突出。操教將紅旗一招,張遼、徐晃兩路兵齊出亂殺,城中兵只得復回。操自飛馬趕來,到弔橋邊,城中弩箭如雨,射中操盔,險透其頂。眾將急救回陣。操更衣換馬,引眾將來攻尚寨,尚自迎敵。
다음 날 성위에 흰 깃발을 세웠는데 “기주의 백성들이 들어가 항복한다.”고 썼다. 조조가 말하기를 “이는 성 안에 약식이 없어 노약과 백성들을 투항하게 한 후 반드시 군대가 나옴이 있을 것이다.” 했다. 조조가 장요, 서황으로 하여금 각각 삼천의 군마를 이끌고 양 쪽에 매복하게 하였다. 조조가 스스로 말을 타고 대장기와 일산을 세우고 성 아래에 이르렀다. 과연 성문이 열린 곳을 보니 백성들이 늙은이를 부축하고, 어린 애들을 데리고 손에는 흰 깃발을 들고 나왔다. 백성들이 겨우 나오기를 다하자 성 안의 군대가 튀어 나왔다. 조조가 붉은 깃발로 한 번 휘두르니 장요, 서황의 두 쪽 군대가 일제히 나와 어지러이 죽이니 성안의 군사들이 다만 돌아갈 수 있었을 뿐이었다. 조조가 스스로 말을 나는 듯이 달려 쫒아가 조교 옆에 이르니 성 안에서 화살이 비오듯이 쏟아 졌는데 조조의 투구에 적중하여 자칫 그 머리를 뚫을 뻔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급히 구하여 진으로 돌아갔다. 조조가 옷을 갈아입고 말을 바꾸어 타고 여러 장수를 이끌고 와서 원상의 영채를 공격하니 원상이 스스로 적을 맞이하였다.
時各路軍馬一齊殺至,兩軍混戰,袁尚大敗。尚引兵退往西山下寨,令人催取馬延、張顗軍來。不知曹操已使呂曠、呂翔去招安二將。二將隨二呂來降,操亦封為列侯。即日進兵攻打西山,先使二呂、馬延、張顗截斷袁尚糧道。
이 때 각 길의 군마가 일제히 쇄도하니 두 군대가 섞여 싸웠는데 원상이 크게 패하였다. 원상이 군대를 이끌고 물러나 서산에 가 영채를 세우고, 사람을 시켜 마연, 장의의 군대가 빨리 올 것을 재촉하였다. 조조가 이미 여관, 여상을 시켜 가서 두 장수를 투항하게 한 것을 알지 못하였다. 두 장수가 여광과 여상을 따라 와서 항복하니 조조가 또한 봉하여 열후로 삼았다. 그날 군대를 진군하여 서산을 공격하여 치면서 먼저 여광, 여상, 마연, 장의로 하여금 원상의 식량 운반 길을 끊게 하였다.
尚情知西山守不住,夜走溢口。安營未定,四下火光並起,伏兵齊出,人不及甲,馬不及鞍。尚軍大潰,退走五十里,勢窮力極,只得遣豫州刺史陰夔至操營請降。操佯許之,卻連夜使張遼、徐晃去劫寨。尚盡棄印綬節鉞,衣甲輜重,望中山而逃。操回軍攻冀州。許攸獻計曰:「何不決漳河之水以渰之?」
원상이 서산을 지키지 못하는 실정을 알고는 밤에 일구로 달아났다. 진영을 아직 정하지 못하였는데 사방에서 불 빛이 일어나면서 복병이 일제히 나오니 사람들이 갑옷을 입지 못하고, 말에는 안장을 얹지 못하였다. 원상은 군대가 크게 무너지자 물러나 오십 리를 달아났는데 형세는 곤궁하고 힘이 다하니 할 수 없이 예주자사 음기를 보내 조조의 진영에 가서 항복을 청하게 했다. 조조가 거짓으로 그것을 허락하고, 밤에 장요, 서황을 시켜 영채에 가 압박하게 하였다. 원상이 인수와 부월, 갑옷, 군수물자를 모두 버리고 중산을 향하여 도망하였다. 조조가 군대를 돌려 기주를 공격하였다. 허유가 계책을 올려 말하기를 “어찌하여 장하의 물을 트는 것으로서 잠기게 하지 않습니까?” 했다.
操然其計,先差軍於城外掘河塹,周圍四十里。審配在城上見操軍在城外掘塹,卻掘得甚淺。配暗笑曰:「此欲決漳河之水以灌城耳。河深可灌,如此之淺,有何用哉?」遂不為備。
조조가 그 계책이 그럴듯하여 먼저 군대를 성 밖에 보내 물길을 파게 하였는데 둘레가 사십 리였다. 심배가 성 위에 있다가 조조의 군대가 성 밖에 있으면서 구덩이를 파는 것을 보니 파는 것이 매우 얕았다. 심배가 몰래 웃으며 말하기를 “이는 장하의 물을 트는 것으로서 성에 물을 대려는 것일 뿐이다. 물길을 깊게해야 물을 댈 수 있을 터인데 이 같이 얕게 하고서 어디에 쓰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대비하지 않았다.
當夜曹操添十倍軍士並力發掘,比及天明,廣深二丈,引漳水灌入城中,水深數尺。更兼糧絕,軍士皆餓死。辛毗在城外,用槍挑袁尚印綬衣服,招安城內之人。審配大怒,將辛毗家屬老小八十餘口,就於城上斬之,將頭擲下。辛毗號哭不已。審配之姪審榮,素與辛毗相厚;見辛毗家屬被害,心中懷恨,乃密寫獻門之書,拴於箭上,射下城來。軍士拾獻辛毗,毗將書獻操。操先下令:如入冀州,休得殺害袁氏一門老小;軍民降者免死。
그날 밤 조조가 열 배의 군사를 더하여 힘을 합쳐 땅을 파니 날이 밝아질 무렵에는 넓이와 깊이가 이 장에 이르렀다. 장수를 인도하여 성중에 물을 대어 들어 가게 하니 물의 깊이가 여러 자였다. 다시 겸하여 식량을 끊으니 군사들이 모두 굶어 죽었다. 신비가 성 밖에 있다가 창을 들어 원상의 인수와 의복을 쳐들고 성안의 사람들에게 항복을 권하였다. 심배가 크게 노하여 신비의 가족 노소 팔십여 명을 성 위에 데려가 목을 베어 죽이고 머리를 아래로 던졌다. 신비가 소리 내어 울기를 그치지 않았다. 심배의 조카 심영이 평소 신비와 서로 도타이 지냈는데 신비의 가족들이 해를 입는 것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원망을 품고 비밀리에 문을 바치는(성문을 열겠다는) 글을 써서 화살에 매달아 성 아래로 쏘았다. 군사들이 주워 신비에게 바치니 신비가 글을 가지고 가 조조에게 올렸다. 조조가 먼저 명을 내리기를 “만일 기주에 들어가게 되면 원씨 가문의 노소를 죽이거나 해치지 말고, 군민으로 항복하는 자는 죽음을 면하게 하라.” 했다.
次日天明,審榮大開西門,放曹兵入。辛毗躍馬先入,軍將隨後殺入冀州。審配在東南城樓上,見操軍已入城中,引數騎卜城死戰,正迎徐晃交馬。徐晃生擒審配,綁出城來,路逢辛毗。毗咬牙切齒,以鞭指配首曰:「賊殺才!今日死矣!」配大罵辛毗:「賊徒!引曹操破我冀州,我恨不殺汝也!」
다음 날 날이 밝을 무렵 심영이 크게 서문을 열어 조조의 군대가 들어오게 하였다. 신비가 말을 달려 먼저 들어가니 군대와 장수들이 뒤를 따라 기주에 쇄도해 들어갔다. 심배가 동남 쪽 성루 위에 있다가 조조의 군대가 이미 성 안에 들어 온 것을 보고는 몇 기를 이끌고 성을 내려와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다 마침 서황을 맞이하여 말을 오가게 하며 싸웠다. 서황이 심배를 사로잡아 포박하여 성을 나가는데 길에서 신비를 만났다. 신비가 이를 갈면서 채찍으로 심배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죽일 놈아! 오늘 죽을 것이다!”하니 심배가 신비를 크게 욕하며 말하기를 “도적놈아! 조조를 인도하여 우리 기주를 깨트렸으니 내가 너를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다!” 했다.
徐晃解配見操。操曰:「汝知獻門接我者乎?」配曰:「不知。」操曰:「此汝姪審榮所獻也。」配怒曰:「小兒行乃至於此!」操曰:「昨孤至城下,何城中弩箭之多耶?」配曰:「恨少!恨少!」操曰:「卿忠於袁氏,不容不如此;今肯降吾否?」配曰:「不降!不降!」辛毗哭拜於地曰:「家屬八十餘口,盡遭此賊殺害。願丞相戮之,以雪此恨!」配曰:「吾生為袁氏臣,死為袁氏鬼,不似汝輩讒諂阿諛之賊!可速斬我!」操教牽出。臨受刑,叱行刑者曰:「吾主在北,不可使我面南而死!」乃向北跪,引頸就刃。後人有詩歎曰:
서황이 심배를 압송하여 조조를 만났다. 조조가 말하기를 “너는 성문을 열러 나를 영접한 자를 아는가?”하니 심배가 말하기를 “알지 못한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이는 너의 조카 심영이 바친 바이다.” 했다. 심배가 노하여 말하기를 “어린 애의 행실이 곧 여기에 이르렀구나!”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지난번 내가 성 아래 이르렀을 때 어떻게 성 안에서 화살을 많이 쏠 수 있었는가?”하니 심배가 말하기를 “적었던 것이 한이구나! 적었던 것이 한이구나!”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경은 원씨에게 충성해야 하니 이 같지 하지 않음을 용납하지 못하였을 것이나 지금은 나에게 기꺼이 항복하지 않겠는가?” 했다. 심배가 말하기를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하니 신비가 땅에 엎드려 절하며 말하기를 “가족 팔십여 명이 모두 이 도적에게 살해 되었습니다. 승상께서는 그를 죽여서 이 한을 씻어 주실 것을 원합니다.”했다. 심배가 말하기를 “나는 살아서는 원씨의 신하가 되었고, 죽어서는 원씨의 귀신이 될 것이니 너희들처럼 헐뜯고 아첨하는 도적과 같지 않다. 속히 나의 목을 베라.” 했다. 조조가 끌고 나가게 했다. 형벌을 받음에 이르러 형벌을 집행하는 자를 질책하여 말하기를 “나의 주인이 북쪽에 있으니 내가 남쪽을 향하여 죽어서는 안 된다.” 하고는 북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목을 늘여 칼날에 나아갔다. 뒷사람들이 시를 지어 기린 것이 있다.
河北多名士,誰如審正南?命因昏主喪,心與古人參。忠直言無隱,廉能志不貪。臨亡猶北面,降者盡羞慚。
하북에 이름 있는 선비 많지만, 누가 심정남(심배)와 같겠는가?/ 목숨은 어두운 주인으로 인하여 잃었지만 마음은 옛 사람과 비교된다./ 충성스럽고 정직하여 숨김없이 말하였고, 청렴하게 뜻을 펴 욕심내지 않았다./ 죽음에 임하여 오히려 북쪽을 향하니 항복한 자가 모두 부끄러워하였다./
審配既死,操憐其忠義,命葬於城北。眾將請曹操入城。操方欲起行,只見刀斧手擁一人至,操視之,乃陳琳也。操謂之曰:「汝前為本初作檄,但罪狀孤,可也;何乃辱及祖、父耶?」琳答曰:「箭在弦上,不得不發耳。」左右勸操殺之;操憐其才,乃赦之,命為從事。
심배가 죽은 후 조조가 그 충의를 불쌍하게 여겨 성 북쪽에 장례하게 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조조에게 성에 들어 갈 것을 청하였다. 조조가 막 일어나 가려는데 도부수가 한 사람을 잡아 이르는 것을 보았다. 그를 보니 곧 진림이었다. 조조가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전에 본초(원소)를 위하여 격문을 지으면서 단지 나의 죄를 들면 되었을 것인데 어찌하여 욕이 할아버지, 아버지까지 욕하였는가?”하니 진림이 답하여 말하기를 “화살이 시위 위에 있으면 발사하지 않을 수 없을 뿐입니다.” 했다. 좌우가 조조에게 그를 죽일 것을 권하였으나 조조가 그 재능을 아까워하여 용서하고 종사로 삼았다.
卻說操長子曹丕,字子桓,時年十八歲。丕初生時,有雲氣一片,其色青紫,圓如車蓋,覆於其室,終日不散。有望氣者,密謂操曰:「此天子氣也。令嗣貴不可言。」丕八歲能屬文,有逸才,博古通今,善騎射,好擊劍。時操破冀州,丕隨父在軍中,先領隨身軍,逕投袁紹家,下馬拔劍而入。有一將當之曰:「丞相有命,諸人不許入紹府。」丕叱退,提劍入後堂。見兩個婦人相抱而哭,向前欲殺之。正是:
각설하고 조조의 장자 조비는 자가 자환이고, 그 때 나이 십팔 세였다. 조비가 처음 태어날 때 구름 기운 한 조각이 있어 그 색은 푸르스름하고, 둥글어 수레 덮개 같았는데 그 방을 덮어 하루 종일 흩어지지 않았다. 기운을 바라본 자가 비밀리에 조조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능 천자의 기운입니다. 후사의 귀함을 말로 할 수 없습니다.” 했다. 조비는 팔세에 글을 짓는 뛰어난 재능이 있어 옛 것을 알고 지금에 통하였다. 말를 잘 타고 활을 잘 쏘았으며 검을 치는 것을 좋아하였다. 조조가 기주를 깨트릴 때 조비는 군중에 있으면서 먼저 자신을 따르는 군대를 거느리고 재빨리 원소의 집에 들어가면서 말에서 내려 검을 뽑아들고 들어갔다. 한 장수가 있어 그를 막으며 말하기를 “승상께서 명을 내려 사람들이 원소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했다. 조비가 꾸짖어 물러나게 하고 검을 가지고 후원에 들어갔다. 두 부인이 껴안고 소리내어 우는 것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 죽이려 하였으니 바로 이러하다.
四世公侯已成夢,一家骨肉又遭殃。未知性命如何,且看下文分解。
사대에 걸친 공후배출이 꿈과 같고, 한 집안의 골육이 재앙을 만났다./목숨이 어찌될지를 알지 못하니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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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 유현덕은 남장에서 은둔자를 만나고, 단복은 신야에서 영명한 주인을 만나다. (0) | 2020.06.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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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회 채 부인은 병풍 뒤에서 비밀스런 이야기를 듣고, 유황숙은 말을 뛰어 오르게 하여 단계를 건너다. (0) | 2020.05.28 |
제31회 조조는 창정에서 본초(원소)를 깨트리고, 유현덕은 형주 유표에게 의지하다. (0) | 2020.05.11 |
제30회 관도에서 싸워 본초(원소)는 패하고, 오소를 기습하여 맹덕(조조)이 식량을 불태우다. (0) | 2020.05.06 |
제29회 소패왕이 노하여 우길을 베고, 푸른 눈의 아이가 앉아서 강동을 다스리다. (0) | 2020.0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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