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五十四回:吳國太佛寺看新郎,劉皇叔洞房續佳偶
제54회 오국태가 절에서 신랑을 보고, 유황숙이 신방에서 아름다운 짝을만나다.
卻說孔明聞魯肅到,與玄德出城迎接,接到公廨,相見畢。肅曰:「主公聞令姪棄世,特具薄禮,遣某前來致祭。周都督再三致意劉皇叔、諸葛先生。」玄德,孔明,起身稱謝,收了禮物,置酒相待。肅曰:「前者皇叔有言:『公子不在,即還荊州。』今公子已去世,必然見還。不識幾時可以交割?」玄德曰:「公且飲酒,有一個商議。」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노숙이 이르렀다는 것을 듣고 유현덕과 성을 나가 영접하여 공해(관아)에 이르러 서로 뵙는 예를 마쳤다. 노숙이 말하기를 “주공께서 조카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듣고 특히 작은 예를 갖추어 저를 보내 제사하게 하였습니다. 주도독(주유)께서도 두 번 세 번 지극한 뜻을 유황숙과 제갈선생께 표하셨습니다.”했다. 유현덕과 제갈공명이 몸을 일으켜 감사하고 예물을 거둔 후 술을 내어 서로 대작하였다. 노숙이 말하기를 “앞서 황숙께서 말씀하시기를 ‘공자(유기)가 살아있지 않으면 곧 형주를 돌려줄 것이다.’하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 공자께서 이미 죽었으니 반드시 돌려주실 것을 바랍니다. 언제 인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공(노숙)은 또 술을 마시며 하나씩 상의하십시다.”했다.
肅強飲數盃,又開言相問。玄德未及回答,孔明變色曰:「子敬好不通理!直須待人問口!自我高皇帝斬蛇起義,開基立業,傳至於今;不幸奸雄並起,各據一方,少不得天道好還,復歸正統。我主人乃中山靖王之後,孝景皇帝玄孫,今皇上之叔,豈不可分茅裂土?況劉景升乃我主之兄也,弟承兄業,有何不順?汝主乃錢塘小吏之子,素無功德於朝廷;今倚勢力,占據六郡八十一州,尚自貪心不足,而欲併吞漢土。劉氏天下,我主姓劉倒無分,汝主姓孫反要強爭。且赤壁之戰,我主多負勤勞,眾將並皆用命,豈獨是汝東吳之力?若非我借東南風,周郎安能展半籌之功?江南一破,休說二喬置於銅雀宮,雖公等家小,亦不能保。適來我主人不即答應者,以子敬乃高明之士,不待細說。公何不察之甚也!」
노숙이 억지로 몇 잔을 마시고 또 묻는 말을 하였다. 유현덕이 대답할 틈도 없이 제갈공명이 얼굴색을 바꾸면서 말하기를 “자경(노숙)은 이치에 통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끝내 다른 사람의 대답을 기다리시는군요! 우리 고황제께서 뱀을 베고 의를 일으켜 기업을 세운 이래로 지금까지 전해 이르렀는데 불행히도 간웅이 아울러 일어나 각각 한 지방에 웅거하였습니다. 천도는 돌아오기를 좋아하니 다시 정통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주공은 곧 중산정왕의 후예로 효경제의 현손이며 지금 황제의 숙부이니 어찌 땅을 나누어 관할할 수 없겠습니까? 하물며 유경승(유표)은 곧 우리 주공의 형님이니 동생이 형의 기업을 계승하는 것이 어찌 순하지 않음이 있겠습니까? 너의 주공은 곧 전당의 하급관리의 아들로 평소 조정에 공덕이 없었는데 지금 형세와 힘에 기대어 육군 팔십일주를 점거하고도, 오히려 스스로 탐심 때문에 부족하다 여겨 한나라의 땅을 병탄하고자 합니다. 유씨 천하인데 우리 주공은 성이 유씨이지만 도리어 나누어 주어짐이 없고, 너의 주공은 성은 손씨이지만 도리어 심하게 다툽니다. 또한 적벽의 싸움에서 우리 주공이 많이 근로를 부담하였고, 여러 장수들은 아울러 모두 명령을 썼으니 어찌 유독 이것이 너희 동오의 힘뿐이겠습니까? 만약 내가 동남풍을 빌리지 않았다면 주랑(주유)이 어찌 반절의 공을 펼칠 수 있었겠습니까? 강남이 한번 깨트려졌으면 이교는 동작궁에 놓여 졌을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비록 공들의 가문이 적으나 또한 보존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방금 우리 주공이 즉시 응답하지 못한 것은 자경(노숙)은 곧 고명한 선비이므로 세세한 말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은 어찌 살피지 못함이 심합니까? 했다.
一席話,說得魯子敬緘口無言;半晌乃曰:「孔明之言,怕不有理;爭奈魯肅身上甚是不便。」孔明曰:「有何不便處?」肅曰:「昔日皇叔當陽受難時,是肅引孔明渡江,見我主公;後來周公瑾要興兵取荊州,又是肅擋住;至說待公子去世還荊州,又是肅擔承;今卻不應前言,教魯肅如何回覆?我主與周公瑾必然見罪。肅死不恨,只恐惹惱東吳,興動干戈,皇叔亦不能安坐荊州,空為恥笑耳。」
한 바탕의 말에 설득된 노자경(노숙)은 입을 닫고 말이 없었다. 잠시 지나 이에 말하기를 “제갈공명의 말은 어쩌면 이치가 있지 않습니다. 노숙의 신상이 매우 편하지 않으나 어찌하랴.”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편하지 않은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지난 날 유황숙이 당양에서 어려움을 받았을 때 이 노숙은 제갈공명을 인도하여 강을 건너 우리 주공을 뵈었고, 후에는 주공근(주유)이 군대를 일으켜 형주를 취하도록 요청할 때 또한 이 노숙이 저지하였고, 공자가 세상을 떠나면 형주가 돌아올 것을 기다리라고 또한 이 노숙이 책임을 맡아 설득하였는데 지금 도리어 앞의 말에 응답하지 않으시니 제가(노숙) 돌아가 복명할지 가르침을 주십시오. 우리 주공과 주공근(주유)은 반드시 죄를 물을 것입니다. 노숙(저는)은 죽어도 한할 것이 없으나 다만 동오를 노하게 하여 군대를 동원하면 유황숙(유비)이 또한 편안히 형주에 머물 수 없을 것이니 공연히 부끄러움과 웃음거리가 될 뿐임을 두려워할 뿐입니다.”했다.
孔明曰:「曹操統百萬之眾,動以天子為名,吾亦不以為意!豈懼周郎一小兒乎!若恐先生面上不好看,我勸主人立紙文書,暫借荊州為本;待我主別圖得城池之時,便交付還東吳。此論如何?」肅曰:「孔明待奪得何處,還我東吳?」孔明曰:「中原急未可圖;西川,劉璋闇弱,我主將圖之。若圖得西川,那時便還。」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조조가 백만의 무리를 통솔하고 천자를 명분으로 삼아 움직였는데도 내가 또한 개의치 않았는데 어찌 주유 어린 애를 두려워하리오! 만약 선생께서 체면에 난처하지 않을까 두렵다면 내가 주인(유현덕)을 권하여 문서를 써 드리는데 잠시 형주를 빌려 근거지로 삼았다가 우린 주공이 별도로 성지를 얻는 때를 기다렸다가 곧 동오에 돌려주는 것입니다. 이 논의가 어떠합니까?”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제갈공명께서는 어느 곳을 빼앗아야 우리 동오에게 돌려주시겠습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중원은 급히 도모할 수 없고, 서천은 유장이 어리석고 약하니 우리 주공(유현덕)은 그것을 도모하려 합니다. 만약 생각한대로 서천을 얻으면 어느 때든 곧 돌려드리겠습니다.”했다.
肅無奈,只得聽從。玄德親筆寫成文書一紙,押了字。保人諸葛孔明也押了字。孔明曰:「亮是皇叔這裏人,難道自家作保?觀(煩)子敬先生也押個字,回見吳侯也好看。」肅曰:「某知皇叔乃仁義之人,必不相負。」遂押了文字,收了文書。宴罷辭回。玄德與孔明,送到船邊。孔明囑曰:「子敬回見吳侯,善言伸意,休生忘想。若不准我文書,我翻了面皮,連八十一州都奪了。今只要兩家和氣,休教曹賊笑話。」
노숙이 어쩔 수 없어 다만 따를 뿐이었다. 유현덕이 직접 써서 문서 한 통을 만들고 서명하니 보증인으로 제갈공명이 서명하였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저는 황숙과 한편인 사람인데 자기 집을 보증한다는 것은 말하기 어렵습니다. 자경(노숙) 선생께서도 번거롭지만 서명하셔야 돌아가 오후(손권)를 뵐 때 체면이 설 것입니다.”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저는 황숙이 곧 인의의 사람이라 반드시 서로 어기지 않을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하고는 마침내 서명하고 문서를 거두었다. 연회를 마치고 하직 인사 후 돌아갔다. 유현덕과 제갈공명은 배가 있는 강변에 이르러 환송하였다. 제갈공명이 부탁하여 말하기를 “자경(노숙)은 돌아가 오후(손권)를 뵙거든 뜻을 잘 말하여 망녕된 생각을 하지 말아주십시오. 만약 우리 문서를 비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얼굴을 뒤집고(안면을 몰수 하고) 팔십일개 주를 연이어 모두 빼앗을 것입니다. 지금은 다만 두 나라가 온화한 기운이 요구될 뿐이며 조조 도적에게 비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했다.
肅作別下船而回,先到柴桑郡見周瑜。瑜問曰:「子敬討荊州如何?」肅曰:「有文書在此。」呈與周瑜。瑜頓足曰:「子敬中諸葛之謀也!名為借地,實是混賴。他說取了西川便還,知他幾時取西川?假如十年不得西川,十年不還?等這文書,如何中用,你卻與他做保!他若不還時,必須連累足下。倘主公見罪,奈何?」
노숙이 작별하고 배를 타고 돌아가 먼저 시상군에 이르러 주유를 만났다. 주유가 물어 말하기를 “자경(노숙)은 형주를 어떻게 하기로 토론하였습니까?”하니 노숙이 말하기를 “문서를 든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하고는 주유에게 주었다. 주유가 발을 동동구르며 말하기를 “자경(노숙)은 제갈공명의 계책에 빠졌습니다. 명분으로는 땅을 빌린다하나 실제 이것은 어물쩍 회피하는 것입니다. 그가 서천을 취하면 돌려준다고 말하였으나 그가 언제 서천을 취할지 압니까? 가령 십년이 지나도 서천을 얻지 못하면 십년이 지나도 돌려주지 않는다는 돌려주지 않는다는 것인가? 이런 문서가 어떤 쓸모가 있다고 당신은 그에게 보증하여 주었습니까? 그가 만약 돌려주지 않을 때 그대를 연루시킬 것이 틀림없습니다. 만약 주공께서 죄를 묻는다면 어떻게 하렵니까?”했다.
肅聞言,呆了半晌,曰:「想玄德不負我。」瑜曰:「子敬乃誠實人也。劉備梟雄之輩,諸葛亮奸猾之徒,恐不似先生心地。」肅曰:「若此,如之奈何?」瑜曰:「子敬是我恩人,想昔日指囷相贈之情,如何不救你?你且寬心住數日,待江北探細的回,別有區處。」魯肅跼蹐不安。
노숙이 말을 듣고 한동안 넋을 잃고 있다가 말하기를 “유현덕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자경(노숙)은 곧 성실한 사람입니다. 유현덕은 효웅의 무리이고, 제갈공명은 간사하고 교활한 무리이니 선생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두렵습니다.”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만일 이 같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니 주유가 말하기를 “자경(노숙)은 나의 은인입니다. 옛날 곡식창고를 가리키면서 가져가라 하였던 정을 생각하면 어떻게 당신을 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또한 너그러운 마음으로 며칠 머물면서 강북의 첩자들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면 따로 변통하여 처리할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했다. 노숙이 몸을 움츠리고 두려워하여 편안하지 못하였다.
過了數日,細作回報:「荊州城中揚起布旛做好事,城外別建新墳,軍士各挂孝。」瑜驚問曰:「沒了甚人?」細作曰:「劉玄德沒了甘夫人,即日安排殯葬。」瑜謂魯肅曰:「吾計成矣。使劉備束手就縛,荊州反掌可得!」肅曰:「計將安出?」瑜曰:「劉備喪妻,必將續娶。主公有一妹,極其剛勇,侍婢數百,居常帶刀,房中軍器擺列遍滿,雖男子不及。我今上書主公,教人去荊州為媒,說劉備來入贅。賺到南徐,妻子不能勾得,幽囚在獄中,卻使人去討荊州換劉備。等他交割了荊州城池,我別有主意。放子敬身上,須無事也。」
며칠이 지나 세작(첩자)가 돌아와 보고하기를 “형주 성 안에서 베 깃발을 달고 재를 올리고, 성 밖에서는 별도로 새로운 무덤을 세우며 군사들은 각각 상복을 입었습니다.”했다. 주유가 놀라 물어 말하기를 “죽은 사람은 누구인가?”하니 세작(첩자)이 말하기를 “유현덕이 감 부인을 잃고 그날 장례절차를 하고 있습니다.”했다. 주유가 노숙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계책을 만들었다. 유비(유현덕)로 하여금 손을 묶고 결박을 하게 할 것이니 형주는 손바닥을 뒤집듯이 얻을 수 있겠구나!”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어떤 계책이 나왔습니까?”하니 주유가 말하기를 “유비(유현덕)가 처를 잃었으니 반드시 장가들려 할 것입니다. 주공(손권)께 한 여동생이 있는데 지극히 굳세고, 용맹하며 시비 수백 명이 항상 칼을 차고 있으며, 방안에 병기를 가득 진열하여 비록 남자라 하더라도 미치지 못합니다. 내가 지금 주공(손권)께 글을 올려 사람을 형주에 보내 중매를 서게 하고, 유비(유현덕)가 와서 데릴사위가 되게 설득하시라 하겠습니다. 속아서 남서에 이르면 처자를 얻을 수 없게 하고 가두어 옥중에 있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을 형주에 보내 유비(유현덕)를 바꾸게 요구할 것입니다. 그들이 형주 성지를 인도하면 내가 다로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경(노숙)의 신상에 반드시 일이 없을 것입니다.”했다.
魯肅拜謝。周瑜寫了書呈,選快船送魯肅投南徐見孫權,先說借荊州一事,呈上文書。權曰:「你卻如此糊塗!這樣文書,要他何用?」肅曰:「周都督有書呈在此,說用此計,可得荊州。」
노숙이 삼가 공손히 사례하였다. 주유가 글을 써서 노숙에게 주니 쾌선(빠르게 달릴 수 있는 배)을 뽑아 남서로 들어가 손권을 뵙고, 먼저 형주를 빌려주는 한 가지 일을 말하고 문서를 올렸다. 손권이 말하기를 “네가 이 같이 얼버무리려하는구나! 이런 모양의 문서를 어디에 쓸 수 있겠는가?”하니 노숙이 말하기를 “주도독이 올린 글이 여기에 있는데 이 계책을 쓰면 형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하였습니다.”했다.
權看畢,點頭暗喜,尋思:「誰人可去?」猛然省曰:「非呂範不可。」遂召呂範至,謂曰:「近聞劉玄德喪婦。吾有一妹,欲招贅玄德為婿,永結姻親,同心破曹,以扶漢室。非子衡不可為媒,望即往荊州一言。」範領命,即日收拾船隻,帶數個從人,望荊州來。
손권이 보기를 마치고 머리를 끄덕이며, 속으로 기뻐하며 깊이 생각하고 나서 “누가 갈 수 있는가?”하니 맹연성이 말하기를 “여범이 아니면 안 됩니다.”했다. 마침내 여범을 불러 이르자 일러 말하기를 “최근에 들으니 유현덕이 부인인을 잃었다고 한다. 나에게 한 누이가 있으니 유현덕을 데릴사위로 사위를 삼아 길이 인친을 맺고 한 마음으로 조조를 깨트리고 한나라 황실을 돕고자 한다. 자형(여범)이 아니면 중매 삼을 이가 없으니 곧 형주에 가서 한마디 말을 해주기를 바랍니다.”했다. 여범이 명을 받고 그날 배를 수습하여 몇 명의 종자를 데리고 형주를 향해 갔다.
卻說玄德自沒甘夫人,畫夜煩惱。一日,正與孔明閒敘,人報東吳差呂範到來。孔明笑曰:「此乃周瑜之計,必為荊州之故。亮只在屏風後潛聽。但有甚說話,主公都應承了。留來人在館驛中安歇,別作商議。」
각설하고 유현덕은 감부인을 잃고 나서 밤낮으로 번뇌하였다. 하루는 바로 제갈공명과 한가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동오에서 여범을 보내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제갈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이는 곧 주유의 계책이니 반드시 형주의 일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병풍 뒤에서 몰래 듣고만 있겠습니다. 다만 심한 말이 있더라도 주공께서는 모두 승낙하십시오. 온 사람은 관역에 머물게 하여 편안히 쉬게 하시고 별도로 상의하면 됩니다.”했다.
玄德教請呂範入,禮畢坐定。茶罷,玄德問曰:「子衡來必有所諭?」範曰:「範近聞皇叔失偶,有一門好親,故不避嫌,特來作媒。未知尊意若何?」玄德曰:「中年喪妻,大不幸也。骨肉未寒,安忍便議親?」範曰:「人若無妻,如屋無梁,豈可中道而廢人倫?吾主吳侯有一妹,美而賢,堪奉箕帚。若兩家共結秦晉之好,則曹賊不敢正視東南也。此事家國兩便,請皇叔勿疑。但我國太吳夫人甚愛幼女,不肯遠嫁,必求皇叔到東吳就婚。」
유현덕이 여범을 청하여 들어오게 한 뒤 예를 마치고 앉았다. 차 마시기를 마치자 유현덕이 물어 말하기를 “자형(여범)이 온 것은 반드시 깨우칠 것이 있어서입니까?”하니 여범이 말하기를 “제가 최근에 황숙께서 짝을 잃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한 집안이 좋아할 신부가 있기 때문에 싫어함을 피하지 않고 특히 와서 중매를 서려합니다. 뜻이 어떠한지 알지 못하겠습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중년에 아내를 잃는 것은 큰 불행입니다. (아내의)뼈와 살이 아직 차가워지지 않았는데 어찌 차마 곧 혼인을 의논할 수 있겠습니까?”했다. 여범이 말하기를 “사람이 아내가 없는 것은 집에 대들보가 없는 것 같으니 어찌 중도에 인륜을 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공인 오후에게 한 누이가 있는데 아름답고 현명하여 쓰레받이와 빗자루를 받들 만합니다.(집안일을 맡아 할만 합니다.) 만약 두 집안이 함께 혼인 동맹을 맺는다면 조조 도적이 감히 동남쪽을 바로 보지 못할 것입니다. 이 일은 집안과 국가 두 쪽이 편할 것이니 황숙께서는 의심하지 마십시오. 다만 우리 국태 오부인이 어린 딸을 매우 사랑하여 즐겨 멀리 시집보내지 않으려하여 반드시 황숙(유현덕)께서 동오에 이르러 혼인할 것을 청할 것입니다.” 했다.
玄德曰:「此事吳侯知否?」範曰:「不先稟吳侯,如何敢造次來說?」玄德曰:「吾年已半百,鬢髮斑白。吳侯之妹,正當妙齡,恐非配偶。」範曰:「吳侯之妹,身雖女子,志勝男兒。常言:『若非天下英雄,吾不事之。』今皇叔名聞四海,正所謂淑女配君子,豈以年齒上下相嫌乎?」玄德曰:「公且少留,來日回報。」
유현덕이 말하기를 “이 일을 오후(손권)가 알고 있습니까?”하니 여범이 말하기를 “먼저 오후(손권)에게 아뢰지 않고 어떻게 감히 경솔하게 와서 말하겠습니까?”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내 나이가 이미 반백으로 머리털이 희끗희끗합니다. 오후(손권)의 누이는 스물 안팎의 나이로 짝이 아닐까 두렵습니다.”했다. 여범이 말하기를 “오후(손권)의 누이는 몸은 비록 여자이나 뜻은 남자보다 낫다. 항상 말하기를 ‘만약 천하의 영웅이 아니면 내가 그를 섬기지 않을 것이다.’하였습니다. 지금 황숙(유현덕)께서는 이름이 천하에 알려졌으니 바로 이른바 숙녀가 짝할만한 군자이니 어찌 나이의 많고 적음 때문에 싫어하겠습니까?”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공(여범)이 또한 잠시 머물고 있으면 내일 답할 것입니다.” 했다.
是日設宴相待,留於館舍。至晚與孔明商議。孔明曰:「來意,亮已知道了。適間卜易得一大吉大利之兆。主公便可應允。先教孫乾和呂範回見吳侯。面許已定,擇日便去就親。」玄德曰:「周瑜定計欲害劉備,豈可以身輕入危險之地?」孔明大笑曰:「周瑜雖能用計,豈能出諸葛亮之料乎!略用小謀,使周瑜半籌不展;吳侯之妹,又屬主公;荊州萬無一失。」
이날 연회를 열고 서로 대접하고 관사에 머물렀다. 저녁 때즘 제갈공명과 상의하였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찾아 온 뜻은 제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방금 점을 쳐서 하나의 크게 길하고 크게 이로운 점괘를 얻었습니다. 주공께서는 편하게 응락하십시오. 먼저 손건으로 하여금 여범과 함께 가서 오후(손권)을 뵙게하고, 면전에서 혼인이 정해지면 날을 가려 곧 혼인을 하십시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주유가 계책을 정하고, 나를 해치려 하는데 어찌 몸을 가벼이 위험한 땅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했다. 제갈공명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주유가 비록 계책을 잘 쓰지만 어찌 저의 헤아림을 벗어날 수 있으리오! 대략 작은 계책을 써서 주유로 하여금 조그마한 계책도 펴지 못하게 할 것이니 오후(손권)의 누이는 또한 주공(유현덕)에게 속할 것이고, 형주도 만에 하나 잘못됨이 없을 것입니다.”했다.
玄德懷疑未決。孔明竟教孫乾往江南說合親事。孫乾領了言語,與呂範同到江南,來見孫權。權曰「吾願將小妹招贅玄德,並無異心。」孫乾拜謝,回荊州見玄德,言吳侯專候主公去結親。玄德懷疑不敢往。孔明曰:「吾已定下三條計策,非子龍不可行也。」遂喚趙雲近前,附耳言曰:「汝保主公入吳,當領此三個錦囊。囊中有三條妙計,依次而行。」即將三個錦囊,與雲貼肉收藏。孔明先使人往東吳納了聘,一切完備。
유현덕은 의심을 품고 결정하지 못하였다. 제갈공명이 마침내 손건으로 하여금 강남에 가서 혼인의 일을 상의하게 하였다. 손건은 명령을 받고, 여범과 같이 강남에 이르러 손권을 만났다. 손권이 말하기를 “나는 누이가 유현덕과 혼인하여 데릴사위를 원할 뿐 다른 마음은 없다.”했다. 손건이 절하고 사례하고, 형주로 돌아와 유현덕을 뵙고 오후(손권)는 주공께서 와서 혼인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유현덕은 의심을 품고 감히 가지 못하였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제가 이미 세 개의 계책을 정하였는데 조자룡이 아니면 갈 수 없습니다.”했다. 마침내 조운(조자룡)을 불러 앞으로 가까이 오게 하고 귓속말로 말하기를 “너는 주공(유현덕)을 보호하여 오에 들어갈 때 이 세 개의 비단주머니를 가지고 가라. 주머니 안에는 세 개의 좋은 계책이 있으니 차례로 행하라.”하고는 곧 세 개의 비단주머니를 가져다 조운에게 주고 몸에 잘 거두어 감추게 했다. 제갈공명이 먼저 사람을 시켜 동오에 가서 예물을 바치게 하고, 일체의(혼인하는 일을) 완전하게 갖추게 하였다.
時建安十四年冬十月。玄德與趙雲,孫乾取快船十隻,隨行五百餘人,離了荊州,前往南徐進發。荊州之事,皆聽孔明裁處。玄德心中怏怏不安。到南徐,適船已傍岸。雲曰:「軍師分付三條妙計,依次而行。今已而此,當先開第一個錦囊來看。」
이 때는 건안 십사년 겨울 시월이었다. 유현덕과 조운(조자룡), 손건이 빠른 배 십 척을 취하고 수행하는 오백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형주를 떠나 앞으로 남서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형주의 일은 모두 제갈공명에게 보고하여 처리하게 하였다. 유현덕은 만족하지 못해 편안해 하지 못하였다. 남서에 이르러 배가 강변에 닿았다. 조운(조자룡)이 말하기를 “군사께서 세 개의 좋은 계책을 차례로 행하라고 명령하였다. 지금 이미 이러하니 마땅히 먼저 첫 번째 비단 주머니를 열어 보아야 한다.”했다.
於是開囊看了計策,便喚五百隨行軍士,一一分付如此如此。眾軍領命而去,又教玄德先往見喬國老。那喬國老乃二喬之父,居於南徐。玄德牽羊擔酒,先往拜見,說呂範為媒,娶夫人之事。隨行五百軍士,都披紅挂綵,入南郡買辦物件,傳說玄德入贅東吳,城中人盡知其事。孫權知玄德已到,教呂範相待,且就館舍安歇。
이에 주머니를 열어 계책을 보고 곧 오백 명의 수행 군사를 불러 일일이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명령하였다. 여러 군사들이 명령을 받고 떠나자 또한 유현덕으로 하여금 먼저 가서 교 국노를 뵙게 하였다. 교 국노는 곧 이 교의 아버지로 남서에 살고 있었다. 유현덕이 양을 끌고 술을 지고 먼저 가서 뵙고 여범이 중매하여 부인에게 장가들게 된 일을 말하였다. 수행 하는 오백 명의 군사들은 모두 붉은 비단을 몸에 두르고 남군에 들어가 물건을 사면서 유현덕이 동오에 데릴사위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을 전하니 성 안의 사람들이 모두 그 일을 알았다. 손권은 유현덕이 이미 이르렀다는 것을 알고는 여범으로 하여금 대접하게하고, 또한 관사에 들어가 편히 쉬게 하였다.
卻說喬國老既見玄德,使入見吳國太賀喜。國太曰:「有何喜事?」喬國老曰:「令愛已許劉玄德為夫人,今玄德已到,何故相瞞?」國太驚曰:「老身不知此事!」便使人請吳侯問虛實,一面先使人於城中探聽。人皆回報:「果有此事。女婿已在館驛安歇。五百隨行軍都在城中買豬羊過果品,準備成親。做媒的女家是呂範,男家是孫乾,俱在館驛中相待。」國太吃了一驚。
각설하고 교 국노는 유현덕을 만난 뒤 들어가 오 국태를 뵙고 축하하였다. 오 국태가 말하기를 “무슨 기쁜 일이 있는가?”하니 교 국노가 말하기를 “딸을 이미 유현덕과 혼인을 허락하여 부인이 되게 하여 지금 유현덕이 이미 이르렀는데 무엇을 속이겠습니까?”했다. 오 국태가 놀라 말하기를 “늙은 몸은 이 일을 알지 못하였다.”하고는 곧 사람을 시켜 오후(손권)에게 청하여 허실을 묻게 하는 한편으로 사람을 시켜 성 안을 살펴보게 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와 보고하기를 “과연 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위가 이미 관역에서 편안히 쉬고 있습니다. 오백 명의 수행군사들도 모두 성 안에서 돼지, 양, 과일을 사서 혼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매는 여자 집안은 여범이고, 남자 집안은 손건인데 관역 안에서 대접하고 있습니다.”하니 오 국태가 놀랐다.
少頃,孫權入後堂見母親。國太搥胸大哭。權曰:「母親何故煩惱?」國太曰:「你直如此將我看承得如無物!我姐姐臨危之時,分付你甚麼話來?」孫權失驚曰:「母親有話明說,何苦如此?」國太曰:「男大須婚,女大須嫁,古今常理。我為你母親,事當稟命於我。你招劉玄德為婿,如何瞞我?女兒須是我的!」
잠시 후 손권이 후당에 들어와 어머니를 뵈었다. 오 국태가 가슴을 치며 크게 울었다. 손권이 말하기를 “어머니께서는 무슨 이유로 번뇌하십니까?”하니 오 국태가 말하기를 “네가 곧 이 같이 나를 보기를 사람이 없는 것처럼 여기는구나! 내 언니가 죽음에 임하였을 때 너에게 어떤 말로 부탁하였는가?”했다. 손권이 놀라 말하기를 “어머니께서 하실 말이 있으시면 말씀하시지 무엇 때문에 이 같이 괴로워합니까?”하니 오 국태가 말하기를 “남자가 크면 반드시 혼인을 하고, 여자가 크면 반드시 시집가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떳떳한 이치이다. 내가 너의 어머니가 되었으니 일은 마땅히 나에게 명을 받아야 한다. 너는 유현덕을 불러 사위를 삼으려 하면서 어찌하여 나를 속이는가? (너의)누이는 틀림없는 나의 딸이다!”했다.
權吃了一驚,問曰:「那裏得這話來?」國太曰:「若要不知,除非莫為。滿城百姓,那一個不知?你倒瞞我!」喬國老曰:「老夫已知多日了,今特來賀喜。」權曰:「非也。此是周瑜之計。因要取荊州,故將此為名,賺劉備來拘囚在此,要他把荊州來換;若其不從,先斬劉備。此是計策,非實意也。」
손권이 놀라 물어 말하기를 “그것은 말을 들었습니까?”하니 오 국태가 말하기를 “만일 알지 못하게 하려하였다면 (이렇게)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성에있는 백성들이 다 아는데 어찌 나만 알지 못하는가? 너는 도리어 나를 속이려 하는구나?”했다. 교 국노가 말하기를 “노부가 며칠 전에 알고 지금 특히 와서 축하하는 것입니다.”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아닙니다. 이는 주유의 계책입니다. 형주를 취하고자 해서 이를 명분삼아 유비(현덕)을 속여 오게 한 후 가두어 여기에 있게 하고, 그와 형주를 교환하고, 만약 그들이 따르지 않는다면 먼저 유비(유현덕)를 죽이려는 것입니다. 이는 계책으로 참된 뜻이 아닙니다.”했다.
國太大怒,罵周瑜曰:「汝做六郡八十一州大都督,直恁無條計策去取荊州,卻將我女兒為名,使美人計!殺了劉備,我女便是望門寡,將來再怎的說親?須誤了我女兒一世!你們好做作!」喬國老曰:「若用此計,便得荊州,也被天下恥笑。此事如何行得!」
오 국태가 크게 노하여 주유를 욕하며 말하기를 “너는 육군 팔십일주의 대도독으로 이처럼 형주를 취할 계책이 없어 장차 나의 딸을 명분삼아 미인계를 쓰려하는구나! 유비(유현덕)를 죽이면 내 딸은 곧 정혼자가 죽어 처녀인 채로 있을 것인데 장차 다시 시집가라 할 수 있겠는가? 반드시 내 딸의 일생을 잘못되게 할 것이다. 너는 일을 잘 꾸몄구나!”했다. 교 국노가 말하기를 “만약 이 계책을 쓴다면 곧 형주를 얻을 수 있지만 천하의 비웃음을 받을 ㄱ서입니다. 이 일을 어떻게 행할 수 있겠는가!”했다.
說得孫權默然無語。國太不住口的罵周瑜。喬國老勸曰:「事已如此,劉皇叔乃漢室宗親,不如真個招他為婿,免得出醜。」權曰:「年紀怕不相當。」國老曰:「劉皇叔乃當世豪傑,若招得這個女婿,也不辱了令妹。」國太曰:「我不曾認得劉皇叔,明日約在甘露寺相見。如不中我意,任從你們行事;若中我的意,我自把女兒嫁他。」
말을 듣고 손권은 묵묵히 말이 없었다. 오 국태가 주유를 욕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교 국노가 권하여 말하기를 “일이 이미 이 같고, 유황숙은 곧 한 나라 황실의 종친이니 참으로 그를 불러 사위로 삼아 추문이 나오는 것을 면하는 것이 낫겠습니다.”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나이가 아마도 서로 마땅하지 않습니다.”하니 교 국노가 말하기를 “유황숙은 곧 지금 세상의 호걸이니 만약 불러 그를 사위로 삼을 수 있다면 또한 영매에게 욕되지 않을 것입니다.”했다. 오 국태가 말하기를 “나는 일찍이 유황숙(유현덕)을 알지 못하니 내일 다시 감로사에서 만날 수 있게 하라. 만일 내 뜻에 맞지 않다면 너희들이 일을 행하는 것을 맡길 것이고, 만일 나의 뜻에 맞다면 내 스스로 딸을 시집보낼 것이다.”했다.
孫權乃大孝之人,見母親如此言語,隨即應承,出外喚呂範,分付來日甘露寺方丈設宴,國太要見劉備。呂範曰:「何不令賈華部領三百刀斧手,伏於兩廊?若國太不喜時,一聲號舉,兩邊齊出,將他拏下。」權遂喚賈華分付先準備,只看國太舉動。
손권은 곧 크게 효성스러운 사람이라 어머니가 이 같이 말하는 것을 듣고는 곧 받아들이고는 밖으로 나와 여범을 불러 내일 감로사 방장에 연회를 베풀고 오 국태가 유비(유현덕)를 만날 수 있게 하라고 분부하였다. 여범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가화로 하여금 삼백 명의 도부수를 거느리고 양 쪽 회랑에 매복하라 하지 않으십니까? 만약 오 국태께서 기뻐하지 않을 때는 한 소리 신호를 내어 양쪽에서 일제히 나와 붙잡아 묶어야 합니다.”했다. 손권이 마침내 가화를 불러 먼저 준비하게하고, 다만 오 국태가 거동하는 것을 보도록 분부하였다.
卻說喬國老辭吳國太歸,使人去報玄德,言來日吳侯,國太親自要見,好生在意。玄德與孫乾,趙雲商議。雲曰:「來日此會,多凶少吉,雲自引五百軍保護。」
각설하고 교 국노가 오 국태를 하직하고 돌아와 사람을 시켜 유현덕에게 가서 알리기를 “내일 오후와 오 국태가 직접 만나 보고자 하니 마음을 잘 준비 하라고 말하라.” 했다. 유현덕과 손건, 조운(조자룡)이 상의하였다. 조운(조자룡)이 말하기를 “내일 이 만남은 흉함은 많고, 길함은 작으니 제가 직접 오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보호하겠습니다.”했다.
次日,吳國太,喬國老先在甘露寺方丈坐定。孫權引一班謀士,隨後都到,卻教呂範來館驛中請玄德。玄德內披細鎧,外穿錦袍,從人背劍緊隨,上馬投甘露寺來。趙雲全裝貫帶,引五百軍隨行。來到寺前下馬,先見孫權。權觀玄德儀表非凡,心中有畏懼之意。
다음 날 오 국태와 교 국노가 먼저 감로사 방장실에 앉아 있었다. 손권이 하 떼의 모사를 이끌고 뒤를 따라 이르러 여범으로 하여금 관역 중으로 가서 유현덕을 청하게 하였다. 유현덕이 안에 얇은 갑옷을 입고 밖에는 비단포를 입었고, 따르는 사람들은 등에 검을 메고 따라 말을 타고 감로사에 들어왔다. 조운(조자룡)은 완전한 무장을 하고 오백 명의 군대를 이끌고 따라갔다. 절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먼저 손권을 만났다. 손권은 유현덕의 모습이 비범한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두려워하는 뜻이 있었다.
二人敘禮畢,遂入方丈見國太。國太見了玄德,大喜,謂喬國老曰:「真吾婿也!」國老曰:「玄德有龍鳳之姿,天日之表;更兼仁德布於天下;國太得此佳婿,真可慶也。」玄德拜謝,共宴於方丈之中。
두 사람이 예를 베풀기를 마치고 마침내 방장실에 들어가 오 국태를 뵈었다. 오 국태는 유현덕을 보고 크게 기뻐하면서 교 국노에게 일러 말하기를 “참으로 내 사위가 될 만하구나!”하니 오 국태가 말하기를 “유현덕은 용봉의 자태와 하늘의 태양의 모습이 있고, 다시 인과 덕을 겸하여 천하에 펴졌으니 오 국태께서 이 아름다운 사위를 얻었으니 참으로 축하할 만합니다.”했다. 유현덕이 공손히 감사하고 함께 방장실에서 연회를 열었다.
少刻,子龍帶劍而入,立於玄德之側。國太問曰:「此是何人?」玄德答曰:「常山趙子龍也。」國太曰:「莫非當陽長阪抱阿斗者乎?」玄德曰:「然。」國太曰:「真將軍也!」遂賜以酒。趙雲謂玄德曰:「卻纔某於廊下巡視,見房內有刀斧手埋伏,必無好意。可告知國太。」玄德乃跪於國太席前,泣而告曰:「若殺劉備,就此請誅。」國太曰:「何出此言?」玄德曰:「廊下暗伏刀斧手,非殺備而何?」
잠시 후 조자룡이 검을 가지고 들어가 유현덕의 옆에 섰다. 오 국태가 물어 말하기를 “이는 어떤 사람인가?”하니 유현덕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상산 조자룡입니다.”했다. 오 국태가 말하기를 “당양의 장판에서 아두를 안은 자가 아닌가?”하니 유현덕이 말하기를 “그러합니다.”했다. 오 국태가 말하기를 “참된 장군이구나!”하고는 마침내 술을 내렸다. 조운(조자룡)이 유현덕에게 일러 말하기를 “제가 회랑을 순시해 보니 방 안에 도부수들이 매복해 있는 것을 보니 좋은 뜻이 아닌 것이 틀림없습니다. 오 국태에게 알려 알게 해야 합니다.”했다. 유현덕이 곧 오 국태 자리 앞에 꿇어 눈물을 흘리며 알려 말하기를 “만약 저를 죽이고자 한다면 이에 죽여 주실 것을 청합니다.”했다. 오 국태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하는가?”하니 유현덕이 말하기를 “회랑 아래 몰래 도부수를 매복시켜 놓았으니 저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했다.
國太大怒,責罵孫權:「今日玄德既為我婿,即我之兒女也。何故伏刀斧伏刀手於廊下?」權推不知,喚呂範問之。範推賈華。國太喚賈華責罵,華默然無言。國太喝令斬之。玄德告曰:「若斬大將,於親不利。備難久居膝下矣。」喬國老也相勸。國太方叱退賈華。刀斧手皆抱頭鼠竄而去。玄德更衣出殿前,見庭下有一石塊。玄德拔從者所佩之劍,仰天祝曰:「若劉備得返回荊州,成王霸之業,一劍揮石為兩段。如死於此地,劍剁石不開。」言訖,手起劍落,火光迸濺,砍石為兩段。
오 국태가 크게 노하여 손권을 질책하고 꾸짖어 말하기를 “오늘 유현덕이 이미 나의 사위가 되었으니 곧 나의 자식이다. 무슨 이유로 도부와 도수를 회랑 안에 매복시켜 두었는가?”하니 손권이 알지 못하여 여범을 불러 물었다. 여범이 가화에게 미루었다. 오 국태가 가화를 불러 질책하니 가화가 묵묵히 말이 없었다. 오 국태가 소리쳐 그를 죽이게 하였다. 유현덕이 고하여 말하기를 “만약 대장을 죽인다면 혼인에 이롭지 않고, 제가(유현덕) 오래 동안 슬하에 머물기 어렵습니다.”하니 교 국노가 권하였다. 오 국태가 비로소 가화를 꾸짖고 물러가게 하였다. 도부수들이 모두 머리를 감싸고 갔다. 유현덕이 옷을 가다듬고 전각 앞에 나갔는데 뜰아래 한 돌덩이가 있었다. 유현덕은 종자들이 차고 있던 검을 뽑아 하늘을 우러러 축원하며 말하기를 “만약 제가 형주에 돌아간다면 왕패의 업을 이루고, 한 검을 돌에 휘두를 때 두 조각이 나고, 만약 이 땅에서 죽는다면 검으로 돌을 베어도 갈라지지 않게 하십시오.”하였다. 말을 마치고 손을 일으켜 검을 내려치니 불 빛이 사방으로 튀면서 돌이 베어져 두 쪽이 났다.
孫權在後面看見,問曰:「玄德公如何恨此石?」玄德曰:「備年近五旬,不能為國家剿除賊黨,心常自恨。今蒙國太招為女婿,此平生之際遇也。恰纔問天買卦,如破曹興漢,砍斷此石。今果然如此。」權暗思:「劉備莫非用此言瞞我?」亦掣劍謂玄德曰:「吾亦問天買卦。若破得曹賊,亦斷此石。」卻暗暗祝告曰:「若再取得荊州,與旺東吳,砍石為兩半!」手起劍落,巨石亦開。至今有十字紋痕石尚存。後人觀此勝蹟,作詩讚曰:寶劍落時山石斷,金環響處火光生。兩朝旺氣皆天數,從此乾坤鼎足成。
손권이 뒤서 보고 있다가 물어 말하기를 “유현덕 공은 어째서 이렇게 한합니까?”유현덕이 말하기를 “저의 나이가 오십에 가까운데 국가를 위하여 도적의 무리를 쓸어 없애지 못하였으니 마음에 항상 스스로 한스럽게 생각합니다. 지금 오 국태의 부름을 입어 사위가 되었으니 이는 평생의 때를 만난 것입니다. 하늘에 점괘를 물어보면서 만일 조조를 깨트리고 한을 흥기시킬 수 있다면 이 돌을 베어 자르게 하십시오. 하였는데 지금 과연 이 같이 되었습니다.”했다. 손권이 속으로 생각하기를 “유비(유현덕)가 이 말을 써서 나를 속이려하는가?”하고는 또한 검을 누르며 유현덕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또한 하늘에 점괘를 물었습니다. 만약 조조 도적을 깨트릴 수 있다면 또한 이 돌을 자를 수 있을 것입니다.”하고는 암암리에 고하여 말하기를 “만약 다시 형주를 얻어 동오를 왕성하게 할 수 있다면 돌이 베어져 반으로 되게 하십시오.”하고는 손을 들어 검을 내려치니 큰 돌이 또한 갈라졌다. 지금도 돌에 십자의 무늬가 아직도 있다. 후세 사람들이 이 자취를 보고는 시를 지어 기려 말하기를 “보검을 내치니 이 산의 돌이 갈라지고, 금환이 울리는 곳에 불 빛이 일어났다. 두 조정의 왕성한 기운은 모두 하늘의 운수이다. 이로부터 하늘과 땅(천하가)이 솥발처럼 셋으로 나누어졌다.”했다.
二人棄劍,相攜入席。又飲數巡,孫乾目視玄德。玄德辭曰:「備不勝酒力,告退。」孫權送出寺前,二人並立,觀江山之景。玄德曰:「此乃天下第一江山也!」至今甘露寺碑上云:「天下第一江山」。後人有詩讚曰:江山雨霽擁青螺,境界無憂樂最多。昔日英雄凝目處,巖崖依舊抵風波。
두 사람이 검을 버리고 서로 이끌어 자리에 들어갔다. 또 몇 차례 술이 돌자 손건이 유현덕에게 눈짓하였다. 유현덕이 하직하며 말하기를 “제가 술의 힘을 이기지 못하니 물러날 것을 고합니다.”하니 손권이 환송하여 절 앞에 나와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강산의 경치를 보았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이는 곧 천하제일 강산입니다!”했다. 지금 감로사 비에 “천하제일강산”이라 쓰여 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기린 것이 있는데 시에 “강산에 비 개고 푸른 산이 펼쳐졌다. 근심없는 경계에 즐거움은 가장 많다. 옛날 영웅이 응시하는 곳에 벼랑은 옛과 같이 바람과 물결을 막고 있다.” 했다.
二人共覽之次,江風浩蕩,洪波滾雪,白浪掀天。忽見波上葉小舟,行於江面上,如行平也。玄德歎曰:「『南人駕船,北人乘馬』,信有之也。」孫權聞言自思曰:「劉備此言,戲我不慣乘馬耳。」乃令左右牽過馬來,飛身上馬,馳驟下山,復加鞭上嶺,笑謂玄德曰:「南人不能乘馬乎?」玄德聞言,撩衣一躍,躍上馬背,飛走下山,復馳騁而上。二人立馬於山坡之上,揚鞭大笑。至今此處名為「駐馬坡」。後人有詩曰:馳驟龍駒氣概多,二人並轡望山河。東吳,西蜀成王霸,千古猶存駐馬坡。
두 사람이 함께 살펴보는데 강바람은 도도한 물을 따라 불고 큰 물결은 눈처럼 밀려오고, 흰 물결은 하늘높이 올랐다. 홀연히 파도 위에 가랑잎 같은 작은 배가 강 위를 가는 것이 보였는데 마치 평지를 가는 것 같았다. 유현덕이 탄복하여 말하기를 “‘남쪽 사람들은 배를 타고, 북쪽 사람들은 말을 탄다.’하더니 진실로 그런 것 같습니다.”했다. 손권이 말을 듣고 스스로 “유비의 이 말은 내가 말을 잘 타지 못한다고 희롱한 것일 뿐이다.” 생각하고는 곧 좌우로 하여금 말을 끌고 오게 하여 몸을 날려 말에 올라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가 채찍을 쳐 고개를 올라와 웃으며 유현덕에게 일러 말하기를 “남쪽 사람들이 말을 타지 못합니까?”했다. 유현덕이 말을 듣고는 옷을 걷어 올리고 한 번에 뛰어 말 등에 뛰어올라 나는 듯이 달려 산을 내려갔다가 다시 치달려 올라왔다. 두 사람이 산언덕 위에 말을 세우고는 채찍을 흔들며 크게 웃었다. 지금 이곳의 이름을 ‘주마파’라 한다. 후세 사람이 지은 시가 있는데 시에 “준마를 타고 치달리는 기개가 뛰어나고, 두 사람이 고삐를 나란히 하여 산하를 바라보고, 동오와 서촉이 왕패를 이루니 주마파가 천년이 지나 아직도 남아있다.”했다.
當日二人並轡而回。南徐之民,無不稱賀。玄德自回館驛,與孫乾商議。乾曰:「主公只是哀求喬國老,早早畢姻,免生別事。」次日,玄德復至喬國老宅前下馬。國老接入,禮畢,茶罷,玄德告曰:「江左之人,多有要害劉備者,恐不能久居。」國老曰:「玄德寬心:吾為公告國太,令作護持。
그날 두 사람이 말고삐를 나란히 하여 돌아왔다. 남서의 백성들이 축하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유현덕이 관역으로 돌아와 손건과 상의하였다. 손건이 말하기를 “주공(유현덕)께서는 교 국노에게 빨리 혼인을 마칠 수 있기를 애원하여 뜻하지 않는 일이 생겨나지 않게 하십시오.”했다. 다음 날 유현덕이 다시 교 국노의 집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렸다. 교 국노가 영접해 들여 에를 마치고 차 마시기를 마치자 유현덕이 고하여 말하기를 “강 남쪽 사람들이 저(유현덕)를 해치려 하는 자들이 있으니 오래 동안 머물 수 없습니다.”하니 교 국노가 말하기를 “유현덕은 마음을 너그러이 하십시오. 내가 공(유현덕)을 위해 오 국태에게 고하여 보호하게 하겠습니다.”했다.
玄德拜謝自回。喬國老入見國太,言玄德恐有人謀害,急急要回。國太大怒曰:「我的女婿,誰敢害他!」即時便教搬入書院暫住,擇日畢姻。玄德自入告國太曰:「只恐趙雲在外不便,軍士無人約束。」國太教盡搬入府中安歇,休留在館驛中,免得生事。
유현덕이 절하고 감사하며 돌아갔다. 교 국노가 들어가 오 국태를 뵙고 유현덕이 어떤 사람들이 해칠 것을 도모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여 급히 돌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오 국태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 나의 사위를 누가 감히 해치려 합니까!”하고는 즉시 서원으로 옮겨 잠시 머무르게 하고 날을 가려 혼인을 마치게 하였다. 유현덕이 스스로 들어 가 오 국태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조운(조자룡)이 밖에 있어 편하지 않고, 군사들을 단속할 사람이 없어 걱정됩니다.”하니 오 국태는 모두 부중에 들어와 편안히 쉬게 하였는데 관역 안에 머물고 있다가 일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玄德大喜。數日之內,大排筵會,孫夫人與玄德結親。至晚客散,兩行紅炬,接引玄德入房。燈光之下,但見槍刀簇滿;侍婢皆佩劍懸刀,立於兩旁。諕得玄德魂不附體。正是:驚看侍女橫刀立,疑是東吳設伏兵。畢竟是何緣故,且看下文分解。
유현덕이 크게 기뻐하였다. 며칠 안에 크게 연회를 열고 손부인과 유현덕이 혼인하였다. 저녁에 이르러 객이 흩어지자 양쪽에 붉은 등불을 켜고 유현덕을 영접하고 인도하여 방에 들어가게 하였다. 등불 아래에는 다만 창, 칼, 화살이 가득하였고, 시비들도 모두 검을 차고 칼을 걸고 양 쪽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유현덕이 놀라 혼이 몸에 붙어있지 않았다. 바로 이러하다 시녀들이 칼을 빗겨차고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라 동오가 복병을 숨겨둔 것으로 의심하였다. 끝내 이것이 어떤 이유인지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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