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十三回:玄德進位漢中王,雲長攻拔襄陽郡
제73회 유현덕은 한중왕에 오르고, 관운장은 양양군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다.
卻說曹操退兵至斜谷,孔明料他必棄漢中而走,故差馬超等諸將,分兵十數路,不時攻劫;因此操不能久住。又被魏延射了一箭,急急班師。三軍銳氣墮盡。前隊纔行,兩下火起,乃是馬超伏兵追趕。曹兵人人喪膽。操令軍士急行,曉夜奔走無停;直至京兆,方始安心。
각설하고 조조가 군대를 물려 사곡에 이르렀으나 제갈공명은 그 반드시 한중을 버리고 달아날 것을 헤아렸기 때문에 마초 등의 여러 장수를 보내 군대를 십 몇 개의 길로 나누어 불시에 공격하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조조는 오래 동안 지킬 수 없었다. 또 위연에게 하나의 화살을 맞아 급급히 군대를 돌렸다. (조조의)삼군의 날카로운 기운은 모두 떨어졌다. 앞의 부대가 조금 행군했을 때 양쪽에서 불이 일어났다. 곧 이는 마초의 복병이 뒤를 쫓아 온 것이었다. 조조의 군사들이 담을 잃었다.(크게 두려워하였다.) 조조는 군사들로 하여금 급히 행군하게 하고, 새벽까지 멈추지 않고 달아나 곧바로 경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안심하였다.
且說玄德命劉封、孟達、王平等,攻取上庸諸郡。申耽等聞操已棄漢中而走,遂皆投降。玄德安民已定,大賞三軍,人心大悅。於是眾將皆有推尊玄德為帝之心;未敢逕啟,卻來稟告諸葛軍師。孔明曰:「吾意已有定奪了。」隨引法正等入見玄德曰:「今曹操專權,百姓無主;主公仁義著於天下,今已撫有兩川之地,可以應天順人,即皇帝位,名正言順,以討國賊。事不宜遲,便請擇吉。」
각설하고 유현덕은 유봉, 맹달, 왕평 등에게 명령하여 상용의 여러 군을 공격하여 취하게 하였다. 신탐 등은 조조가 이미 한중을 버리고 달아나자 마침내 모두 항복하였다. 유현덕은 백성을 편안히 하는 것을 마치고 삼군에게 큰 상을 주니 인심이 크게 기뻐하였다. 이에 여러 장수들이 모두 유현덕을 추존하여 황제로 삼을 마음이 있었으나 감히 빨리 아뢰지 못하고 제갈군사에게 가서 말하였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내 뜻은 가부가 이미 정해졌다.”하고는 법정 등을 이끌고 들어 가 유현덕을 만나 말하기를 “지금 조조는 권력을 오로지 하고, 백성은 임금이 없습니다. 주공께서는 인의가 천하에 들어났고, 지금 이미 양천(서천과 동천)의 땅을 차지하였으니 하늘에 응하고 사람을 따르는 것으로서 곧 황제 위에 올라 명분을 바로하고 말을 순히 하는 것으로서 나라의 도적을 토벌해야 합니다. 일을 늦추는 것은 마땅하지 않으니 곧 길일을 택할 것을 청합니다.”했다.
玄德大驚曰:「軍師之言差矣。劉備雖然漢之宗室,乃臣子也;若為此事,是反漢矣。」孔明曰:「非也。方今天下分崩,英雄並起,各霸一方,四海才德之士,捨死亡生而事其上者,皆欲攀龍附鳳,建立功名也。今主公避嫌守義,恐失眾人之望。願主公熟思之。」玄德曰:「要吾僭居尊位,吾必不敢。可再商議長策。」諸將齊言曰:「主公若只推卻,眾心解矣。」
유현덕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군사의 말은 잘못입니다. 저는(유현덕)는 비록 한 나라의 황족이나 곧 신하입니다. 만약 이 일을 한다면 이는 한나라를 배반하는 것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아닙니다. 바야흐로 지금 천하가 분열하여 무너지고 영웅이 나란히 일어나 각각 한 지방을 제패하였고, 사해(천하)의 재능과 덕이 있는 선비들로 죽음을 무릅쓰고 그 윗사람을 섬기는 자들이 모두 용을 끌어안고 봉에 붙는 것은 공과 명성을 세우고자 해서입니다. 지금 주공께서는 의를 지키는 것을 피하고 싫어하시니 여러 사람들의 바람을 잃을까 두렵습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내가 참람되이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은 내가 감히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좋은 계책을 상의해야 합니다.”했다. 여러 장수들이 일제히 말하기를 “주공께서 만약 물리치신다면 무리들의 마음이 풀어질(떠날) 것입니다.”했다.
孔明曰:「主公平生以義為本,未肯便稱尊號。今有荊、襄兩川之地,可暫為漢中王。」玄德曰:「汝等雖欲尊吾為王,不得天子明詔,是僭也。」孔明曰:「今宜從權,不可拘執常理。」張飛大叫曰:「異姓之人,皆欲為君,何況哥哥乃漢朝宗派!莫說漢中王,就稱皇帝,有何不可!」玄德叱曰:「汝勿多言!」孔明曰:「主公宜從權變,先進位漢中王,然後表奏天子,未為遲也。」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평생 의를 근본을 삼았기 때문에 기꺼이 존호(황제의 칭호)를 일컳지 않으려 하십니다. 지금 형주와 양양, 양천(동천과 서천)의 땅을 소유하였으니 잠시 한중왕이 될 수 있습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너희들은 비록 나를 높여 왕으로 삼고자 하나 천자의 분명한 조칙을 얻지 못하면 이는 참칭하는 것이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지금은 임시방편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고, 평상의 이치를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했다. 장비가 크게 외쳐 말하기를 “성이 다른 사람도 모두 임금이 되고자 하는데 하물며 형님께서는 곧 한나라의 황족임에 있어서랴! 한중왕을 말할 것이 아니라 황제의 자리에 나아가 일컳는 것이 어찌 불가함이 있으리오!”했다. 유현덕이 질책하여 말하기를 “너는 더 말하지 말라!”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마땅히 임시방편을 따라서 먼저 한중왕의 자리에 나아간 후에 표로 천자에게 아뢰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했다.
玄德再三推遲不過,只得依允。建安二十四年秋七月,築壇於沔陽,方圓九里,分布五方,各設旌旗儀仗。群臣皆依次序排列。許靖、法正請玄德登壇,進冠冕璽綬訖,面南而坐,受文武官員拜賀為漢中王。子劉禪立為王世子。封許靖為太傅,法正為尚書令。諸葛亮為軍師,總理軍國重事。封關羽、張飛、趙雲、馬超、黃忠為五虎大將軍;魏延為漢中太守。其餘各擬功勳定爵。
유현덕은 두 번, 세 번 미루고 머뭇거리다 청을 허락하였다. 건안 이십사년 가을 칠월 면양에 단을 쌓았는데 모나고 둥근 것이 구리로 다섯 방향을 나누어 각각 정기와 의장을 설치하였다. 여러 신하들은 모두 차례에 의하여 배열하였다. 허정, 법정이 유현덕에게 단에 오를 것을 청하고 면류관과 옥새를 올렸다. (유현덕이)남쪽을 향해 앉아 문무관원들이 한중왕이 된 것에 대한 축하를 받았다. 아들 유선을 세워 왕세자로 삼았다. 허정을 봉하여 태부로 삼고, 법정을 상서령으로 삼았다. 제갈공명을 군사로 삼아 군국의 중요한 일을 총괄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관우(관운장), 장비, 조운(조자룡), 마초, 황충을 봉하여 오호대장군으로 삼고, 위연은 한중태수로 삼았다. 그 나머지도 각각 공훈에 맞게 작을 정하였다.
玄德既為漢中王,遂修表一道,差人齎赴許都。表曰:
유현덕은 한중왕이 된 후 마침내 한통의 표를 지어 사람을 보내 허도에 가져가게 하였다 표에서 말하기를
備以具臣之才,荷上將之任,總督三軍,奉辭於外;不能掃除寇難,靖匡王室,久使陛下聖教陵遲;六合之內,否而未泰,惟憂反側,疢如疾首。
저는(유현덕) 자리만 채우는 신하의 재능으로 상장의 임무를 맡아 삼군을 총괄하고 감독하여 밖에서 말씀을 받들어 도적의 어려움을 쓸어 없애 왕실을 편안하게 바로잡지 못하여 오랫동안 폐하로 하여금 성스러운 명령을 점차 쇠퇴하게 하였습니다. 천지사방 안이 통하지 않고 편안하지 않아 오직 근심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고, 병을 앓는 것이 머리에 병이 든 것 같습니다.
曩者,董卓造為亂階,自是之後,群凶縱橫,殘剝海內。賴陛下聖德威臨,人臣同應,或忠義奮討,或上天降罰,暴逆並殪,以漸冰消。惟獨曹操,久未梟除,侵擅國權,恣心極亂。臣昔與車騎將軍董承圖謀討操,事機不密,承見陷害。臣播越失據,忠義不果,遂使操窮凶極逆。主后戮殺,皇子鴆害。雖糾合同盟,念在奮力;懦弱不武。歷年未效。常恐殞越,辜負國恩;寤寐永歎,夕惕若厲。
지난 날 동탁이 화란을 지음으로부터 이후로 흉한 무리들이 횡횡하여 천하를 해치고 찢었습니다. 폐하께서 성스러운 덕과 위엄으로 임하심에 의지하여 신하들이 같이 호응하여 혹은 충의로 떨쳐 성토하고, 혹은 하늘이 벌을 내려 사납고 거스르는 이를 같이 쓰러뜨리자(죽이자) 점점 어름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오직 조조만은 오래 동안 사나움을 없애지 않고 나라의 권력을 침범하고 마음대로 하여 방자한 마음은 어지러움을 지극히 하였습니다. 신이 옛날에 거지강군 동승과 조조를 토벌할 것을 도모하다 일의 기밀이 누설되어 동승은 해침에 빠짐을 당하였습니다. 신은 근거지를 잃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녀 충의가 열매 맺지 못하여 마침내 조조로 하여금 흉함을 다하고 거스름을 지극히 하게 하였습니다. 황후는 죽음을 당하고 황자는 짐독의 해침을 받았습니다. 비록 동맹을 규합하고, 생각은 힘을 떨침에 있었으나 유약하고 굳세지 못하여 세월이 흘러도 드러내지 못하였습니다.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여 나라의 은혜를 저버리고 자나 깨나 길게 탄식하며, 저녁마다 문둥병이 걸린 듯이 두려워하였습니다.
今臣群僚,以為在昔虞書,敦敘九族,庶明勵冀,帝王相傳,此道不廢。周監二代,並建諸姬,實賴普、鄭夾輔之力。高祖龍興,尊王之弟,大啟九國,卒斬諸呂,以安大宗。今操惡直醜正,實繁有徒,包藏禍心,篡盜已顯;既宗室微弱,帝族無位,斟酌古式,依假權宜:上臣為大司馬漢中王。
지금 신하와 뭇 관료들은 옛날 우서에는 구족(집안)을 도타이(화목)하고 질서 있게 하면 백성들은 밝아지고 힘써 권면하고, 제왕이 서로 전한다는 것이 있는데 이 도가 폐해지지(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주나라 이 대를 살펴보면 나란히 여러 희(왕후)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실로 晉(진)과 정나라의 돕는 힘에 의지한 것입니다. 고조께서 용처럼 일어 나 존왕의 동생들이 크게 아홉 개 나라를 열어 마침내 여러 여씨(고조 황후의 가문)를 죽이는 것으로서 황실을 편안히 하였습니다. 지금 조조는 곧은 것을 미워하고 바른 것을 추하게 여기며, 실제로 많은 무리를 소유하여 재앙의 마음을 품고 빼앗고 훔침이 이미 드러났습니다. 이미 종실은 미약하고 황족은 지위가 없으니 옛 법을 짐작하여 임시방편으로 상신(유현덕)이 대사마 한중왕이 되었습니다.
臣伏自三省,受國厚恩,荷任一方,陳力未效,所獲已過,不宜復忝高位,以重罪謗。群僚見逼,迫臣以義。臣退惟寇賊不梟,國難未已;宗廟傾危,社稷將墜;誠臣憂心碎首之日。若應權通變,以寧靜聖朝,雖赴水火,所不得辭。輒順眾議,拜受印璽,以崇國威。
신이 엎드려 스스로 세 번을 살펴보니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받아 한 지방을 맡아 힘을 폈으나(다하였으나) (공을)드러내지 못하였음에도 얻은 바는 이미 지나치니, 다시 높은 자리를 욕되게 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죄와 비방이 거듭할 것입니다. 여러 관료들은 다그침을 받고, 의리로 신을 다그칩니다. 신이 물러나 생각해 보니 도적을 목 베어 매달지 못하였고, 나라의 어려움이 아직 그치지 않아 종묘는 기울고 위태로우며 사직은 장차 무너지려 하니 진실로 신의 근심하는 마음은 머리가 부서지는 날들입니다. 만약 임시방편에 응하고 변화에 통하는 것으로서 성스러운 왕조를 편안하게 할 수 있다면 비록 물과 불에 나아가라 할지라도 사양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로지 여러 사람의 의논에 따라 인새를 받는 것으로서 나라의 위엄을 높일 것입니다.
仰惟爵號,位高寵厚;俯思報效。憂深責重;驚怖惕息,如臨於谷,敢不盡力輸誠,獎勵六師,率齊群義,應天順時,撲討兇逆,以寧社稷?謹拜表以聞。
우러러 작호를 생각해보니 지위가 높고 총애가 두텁고, 굽어 은혜를 갚을 것을 생각하니 근심은 깊고, 책임은 중합니다. 놀라고 두려워 숨이 가빠지는 것이 마치 골짜기에 임한 듯 하니 감히 힘을 다하고, 성의를 다하여 여섯 개의 군대를 장려하고 여러 의리를 통솔하여 가지런히 하며, 하늘에 응하고 때를 따라 흉한 역적을 치고 성토하는 것으로서 사직을 편안하게 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표를 올려 알려드립니다. 했다.
表到許都,曹操在鄴郡聞知玄德自立為漢中王,大怒曰:「織蓆小兒,安敢如此!吾誓滅之!」即時傳令,盡起傾國之兵,赴兩川與漢中王決雌雄。一人出班諫曰:「大王不可因一時之怒,親勞車駕遠征。臣有一計,不須張弓隻箭,令劉備在蜀自受其禍;待其兵衰力盡,只須一將往征之,便可成功。」
(유현덕의) 표가 허도에 이르렀을 때 조조는 업군에 있었는데 유현덕이 자립하여 한중왕이 되었다는 것을 듣고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돗자리 짜던 어린애가 어찌 감히 이 같은가! 내가 맹세코 그를 없애버릴 것이다!”하고는 즉시 명령을 내려 나라를 기우릴 정도의 군대를 모두 일으켜 양천(서천과 동천)에 나아가 한중왕과 자웅을 경정하려 하였다. 한 사람이 나와 이어 간해 말하기를 “대왕께서는 한 때의 노여움으로 인하여 직접 수레를 수고롭게 하여 멀리 정벌해서는 안 됩니다. 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으니 반드시 활을 당기고 하나의 화살을 쏘지 않고도 유비(유현덕)로 하여금 촉에 있으면서 스스로 그 화를 받게 하고, 그 군대가 쇠퇴하고 힘이 다하기를 기다렸다가 다만 모름지기 한 장수가 가서 정벌한다면 곧 공을 이룰 수 있습니다.”했다.
操視其人,乃司馬懿也。操喜問曰:「仲達有何高見?」懿曰:「江東孫權以妹嫁劉備,而又乘間竊取回去;劉備又據占荊州不還;彼此俱有切齒之恨。今可差一舌辯之士,齎書往說孫權,使興兵取荊州,劉備必發兩川之兵來救荊州。那時大王興兵去取漢川,令劉備首尾不能相救,勢必危矣。」
조조가 그 사람을 보니 곧 사마의였다. 조조가 기뻐하며 묻기를 “중달(사마의)은 어떤 고견이 있는가?”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강동의 손권은 여동생을 유비(유현덕)에게 시집보냈다가 또한 틈을 타서 몰래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유비(유현덕)는 또한 형주를 점거하고 돌려주지 않아 피자가 모두 이를 끊는 원한이 있습니다. 지금 말 잘하는 선비를 보내 글을 가지고 가서 손권을 설득하여 군대를 일으켜 형주를 취하게 한다면 유비(유현덕)는 반드시 양천(서천과 동천)의 군대를 동원해 와서 형주를 구원할 것입니다. 그 때 대왕께서 군대를 일으켜 가서 한천을 취하여 유비(유현덕)로 하여금 머리와 꼬리가 서로 구원하게 하지 못하게 한다면 형세는 반드시 위태로워질 것입니다.”했다.
操大喜,即修書令滿寵為使,星夜投江東來見孫權。權知滿寵到,遂與謀士商議。張昭進曰:「魏與吳本無讎;前因聽諸葛之說詞,致兩家連年征戰不息,生靈遭其塗炭。今滿伯寧來,必有講和之意,可以禮接之。」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곧 글을 써서 만총을 사자로 삼아 밤을 새워 강동에 들어 가 손권을 만나게 하였다. 손권은 만총이 이르렀다는 것을 알고 마침내 모사와 상의하였다. 장소가 나와 말하기를 “위와 오는 본래 원수가 아닙니다. 앞서 제갈공명의 말을 들어 두 집안이 해마다 정벌 전쟁이 그치지 않음에 이르니 백성들이 그 도탄을 만났습니다. 지금 만백녕(만총)이 온 것은 반드시 강화의 뜻이 있어서일 것이니 예로서 영접해야 합니다.”했다.
權依其言,令眾謀士接滿寵入城相見。禮畢,權以賓禮待寵。寵呈上操書,曰:「吳、魏自來無讎,皆因劉備之故,致生釁隙。魏王差某到此,約將軍攻取荊州,魏王以兵臨漢川,首尾夾擊。破劉之後,共分疆土,誓不相侵。」
소권이 그 말에 의하여 여러 모사로 하여금 만총을 영접하여 성에 들어오게 하여 서로 만났다. 예를 마치고 손권은 빈례로 만총을 대우하였다. 만총이 조조의 글을 올리고 말하기를 “오와 위는 전부터 원한이 없었는데 모두 유비의 일로 인하여 틈이 생겨나기에 이르렀습니다. 위왕께서 저를 보내 여기에 이르게 한 것은 장군께서 형주를 공격하여 취할 것을 약속하시면 위왕은 군대로 한천에 임할 것이니 머리와 꼬리에서 협공할 것입니다. 유현덕을 깨트릴 후에는 함께 강토를 나누고 서로 침범하지 않을 것을 맹서합니다.”했다.
孫權覽書畢,設筵相待滿寵,送歸館舍安歇。權與眾謀士商議。顧壅曰:「雖是說詞,其中有理。今可一面送滿寵回,約會曹操,首尾相擊;一面使人過江探雲長動靜,方可行事。」諸葛瑾曰:「某聞雲長自到荊州,劉備娶與妻室,先生一子,次生一女。其女尚幼未許字人。某願往與主公世子求婚。若雲長肯許,即與雲長計議共破曹操;若雲長不肯,然後助曹取荊州。」
손권은 글 보기를 마치고 연회를 베풀어 만총을 대접하고 객관으로 돌아가 편안히 쉬게 하였다. 손권은 여러 모사들과 상의하였다. 고옹이 말하기를 “반드시 이 말은 그 안에 이치가 있습니다. 지금 한편으로 만총을 돌려보내 조조와 머리와 꼬리를 서로 치기로 약속하는 한편으로 사람을 시켜 강을 건너 관중장의 동정을 정탐하여야 비로소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했다. 제갈근이 말하기를 “제가 들으니 관운장이 스스로 형주에 이르렀는데 유비(유현덕)가 (관운장을)장가들게 하여 처와 먼저 한 아들을 낳고 다음으로 한 딸을 낳았습니다. 그 딸이 아직 어려 정혼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서 주공의 세자와 혼인을 청하기를 원합니다. 만약 관운장이 기꺼이 허락한다면 곧 관운장과 계책을 의논하여 함께 조조를 깨트리고, 만약 관운장이 기꺼워하지 않는다면 그 후에 조조를 도와 형주를 취해야 합니다.”했다.
孫權用其謀,先送滿寵回許都;卻遣諸葛瑾為使,投荊州來。入城見雲長禮畢。雲長曰:子瑜此來何意?」謹曰:「特來求結兩家之好。吾主吳侯有一子,甚聰明。聞將軍有一女,來求親。兩家結好,併力破曹。此誠美事,請君侯思之。」雲長勃然大怒曰:「吾虎女安肯犬子乎!不看汝弟之面,力斬汝首!再休多言!」遂喚左右逐出。
손권이 그 꾀를 써서 먼저 만총을 허도로 돌려보내고 제갈근을 보내 사사조 삼아 형주에 들어가게 하였다. (형주)성에 들어 가 관운장을 만나 예를 마쳤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자유(제갈근)께서 여기에 온 것은 무슨 뜻입니까?”하니 제갈근이 말하기를 “특히 두 집안의 우호를 맺을 것을 청하러 왔습니다. 우리 주공인 오후에게 한 아들이 있는데 매우 총명합니다. 장군에게 한 딸이 있다는 것을 듣고 와서 친함을 청하러 왔습니다. 두 집안이 우호를 맺고 힘을 합쳐 조조를 깨트려야 합니다. 이는 진실로 아름다운 일이니 군후께서 생각하실 것을 청합니다.”했다. 관운장이 갑자기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내 범의 딸을 어찌 개 새끼를 기꺼워하겠는가! 네 동생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면 힘써 너의 머리를 베었을 것이다! 다시 여러 말 하지 말라!”하고는 마침내 좌우를 불러 내쫓았다.
瑾抱頭鼠竄,回見吳侯;不敢隱匿,遂以實告。權大怒曰:「何太無禮耶!」便喚張昭等武官員,商議取荊州之策。步騭曰:「曹操久欲篡漢,所懼者劉備也;今遣使來令吳興兵吞蜀,此嫁禍於吳也。」權曰:「孤亦欲取荊州久矣。」
제갈근이 머리를 안고 달아나 돌아 가 오후(손권)를 뵙고 감히 숨기지 못하고 마침내 사실을 말하였다. 손권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어찌 크게 무례한가!”하고는 곧 장소 등과 무관들을 불러 형주를 취할 계책을 상의하였다. 보즐이 말하기를 “조조는 한을 찬탈하려 한지 오래되었는데 두려워하는 자가 유비(유현덕)였습니다. 지금 사자를 보내 온 것은 오로 하여금 군대를 일으켜 촉을 병탄하게 한 것인데 이는 화를 오에 전가하는 것입니다.”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내가 또한 형주를 취하려 한 것이 오래되었다.”했다.
騭曰:「今曹仁見屯兵於襄陽、樊城,又無長江之險,旱路可取荊州,如何不取,卻令主公動兵?只此便見其心。主公可遣使去許都見操,令曹仁旱路先起兵取荊州,雲長必掣荊州之兵而取樊城。若雲長一動,主公可遣一將,暗取荊州,一舉可得矣。」
보즐이 말하기를 “지금 조인이 군대를 양양과 번성에 주둔하고 있는데 또한 장강의 험함이 없어 마른 길(육로)로 형주를 취할 수 있는데도 어찌하여 취하지 않고 주공으로 하여금 군대를 움직이게 하겠습니까? 이것으로 곧 그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사자를 허도에 보내 조조를 만나 조인으로 하여금 육로로 먼저 군대를 일으켜 형주를 취하게 하면 관운장은 반드시 형주의 군대를 지휘하여 번성을 취할 것입니다. 만약 관운장이 한 번 움직이면 주공께서는 한 장수를 보내 몰래 형주를 취하시면 한 번에 얻을 수 있습니다.”했다.
權從其議,即時遣使過江,上書曹操,陳說此事。操大喜,發付使者先回,隨遣滿寵往樊城助曹仁為參謀官,商議動兵;一面馳檄東吳,令領兵水路接應,以取荊州。卻說漢中王令魏延總督軍馬,守禦東川。遂引百官回成都。差官起造宮廷,又置館舍,自成都至白水,建四百餘處館舍郵亭。廣積糧草,多造軍器,以圖進取中原。細作人探聽得曹操結連東吳,欲取荊州,即飛報入蜀。漢中王忙請孔明商議。孔明曰:「某已料曹操必有此謀;然吳中謀極多,必教操令曹仁先興兵矣。」漢中王曰:「似此,如之奈何?」孔明曰:「可差使命就送官誥與雲長,令先起兵取樊城,使敵軍膽寒,自然瓦解矣。」
손권이 그 논의에 따라 즉시 사자를 보내 강을 건너 조조에게 글을 올리고 이 일을 설명하게 하였다.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사자에게 문서를 발부하여 먼저 돌아 가게하고, 뒤 따라 만총을 번성에 보내 조인을 돕는 참모관이 되게 하고, 군대를 동원하는 것을 상의하는 한편으로 동오에 격문을 보내 군대를 거느리고 수로로 호응하게 하는 것으로서 형주를 취하게 하였다. 각설하고 한중왕(유현덕)은 위연으로 하여금 군마를 총괄 감독하게 하여 동천을 지키게 햇다. 마침내 백관을 이끌고 성도에 돌아갔다. 관리를 보내 궁과 조정을 일으켜 만들게 하고 또 객사를 두어 성도로부터 백수에 이르기까지 사백여 곳의 객사와 역참을 세웠다. 널리 식량과 말 먹이 풀을 쌓고 많은 군기(무기)를 만들어 나아가 중원을 취할 것을 도모하였다. 세작(첩자)이 조조가 동오와 결연하여 형주를 취하려 한다는 것을 탐지하여 촉에 들어가 보고하였다. 한중왕(유현덕)이 황급히 재가공명을 청하여 상의하였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저는 이미 조조가 반드시 이 꾀를 낼 것을 헤아렸고, 오 안에는 모사가 지극히 많으니 반드시 조조로 하여금 조인을 시켜 먼저 군대를 일으키게 할 것입니다.”했다. 한중왕(유현덕)이 말하기를 “이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관고(명령서)를 지닌 사자를 보내 관운장에게 주고, 먼저 군대를 일으켜 번성을 취하게 하여 적군들로 하여금 담을 서늘하게 하면 자연히 와해될 것입니다.”했다.
漢中王大喜,即差前部司馬費詩為使,齎捧誥命投荊州來。雲長出郭,迎接入城。至公廳禮畢,雲長問曰:「漢中王封我何爵?」詩曰:「『五虎大將』之首。」雲長問那「五虎將」。詩曰:「關、張、趙、馬、黃是也。」雲長怒曰:「翼德吾弟也;孟起世代名家;子龍久隨吾兄,即吾弟也:位與吾相並,可也。黃忠何等人,敢與吾同列!大丈夫終不與老卒為伍!」遂不肯受印。
한중왕(유현덕)이 크게 기뻐하며 곧 전부사마 비시를 보내 사자로 산아 고명을 가지고 형주에 들어가게 하였다. 관운장이 곽을 나와 영접하여 성에 들어갔다. 공청(관부)에 이르러 예를 마치고 관운장이 물어 말하기를 “한중왕(유현덕)은 나를 무슨 작에 봉하였습니까?”하니 비시가 말하기를 “‘오호대장’의 우두머리입니다.”했다. 관운장이 ‘오호장’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비시가 말하기를 “관(관운장), 장(장비), 조(조자룡), 마(마초), 황(황충)입니다.”했다. 관운장이 노하여 말하기를 “익덕(장비)은 내 동생이고, 맹기(마초)는 대대로 명망있는 가문이고, 자룡(조자룡)은 오래 동안 내 형님을 따랐으니 곧 내 동생이니 지위가 나와 나란히 하는 것은 가능하다. 황충 등은 어떤 사람들인데 감히 나와 반열을 같이하는가! 대장부가 끝내 늙은 병졸과 벗이 될 수는 없다.”하고는 마침내 기꺼이 관인을 받지 않았다.
詩笑曰:「將軍差矣。昔蕭何、曹參,與高祖同舉大事,最為親近,而韓信乃楚之亡將也;然信立位為王,居蕭、曹之上,未聞蕭、曹以此為怨。今漢中王雖有『五虎將』之封,而與將軍有兄弟之義,視同一體。將軍即漢中王,漢中王即將軍也。豈與諸人等哉?將軍受漢中王厚恩,當與同休戚,共禍福,不宜計較官號之高下。願將軍熟思之。」
비시가 웃으며 말하기를 “장군께서는 틀렸습니다. 옛날 소하, 조참은 고조와 함께 대사를 일으켜 가장 친근하였고, 한신은 곧 초나라에서 도망한 장수였으나 한신을 세워 왕으로 삼아 소하, 조참의 위에 있게 하였으나 소하와 조참이 이로서 원망하였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한중왕(유현덕)이 비록 ‘오호장’을 봉함이 있었으나 장군과는 형제의 의가 있어 한 몸으로 본 것입니다. 장군이 곧 한중왕(유현덕)이고, 한중왕(유현덕)이 곧 장군입니다. 어찌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겠습니까? 장군께서 한중왕의 두터운 은혜를 받았으니 마땅히 기쁨과 걱정을 같이하고, 화와 복을 같이해야지 관호(봉작)의 높고 낮음을 비교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장군께서 깊이 생각하시기를 원합니다.”했다.
雲長大悟,乃再拜曰:「某之不明,非足下見教,幾誤大事。」即拜受印綬。費詩方出王(旨),令雲長領兵取樊城。雲長領命,即時便差傅士仁、糜芳二人為先鋒,先引一軍於荊州城外屯紮;一面設宴城中,款待費詩。
관운장이 크게 깨닫고 곧 두 번 절하며 말하기를 “내가 현명하지 못하여 그대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거의 대사가 잘못되었을 것입니다.”하고는 곧 절하며 인수를 받았다. 비시가 비로소 한중왕(유현덕)의 관고를 내어 관운장으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번성을 취하게 했다. 관운장이 명하여 즉시 곧 부사인, 미방 두 사람을 보내 선봉이 되게하여 먼저 일군을 이끌고 형주성 밖에 주둔하게 하는 한편으로 성안에서 연회를 베풀어 비시를 정성껏 대접하였다.
飲至二更,忽報城外寨中火起。雲長即披挂上馬,出城看時,乃是傅士仁、糜芳飲酒,帳遺火,燒著火砲,滿營撼動,把軍器糧草,盡皆燒燬。雲長引兵救撲,至四更方纔火滅。
술을 마시며 이경에 이르는데 홀연히 성 밖의 영채 안에서 불이 일어났다고 보고하였다. 관운장은 즉시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성을 나가 보니 곧 부사인과 미방이 술을 마시다 장막에 불을 내었고, 불이 화포에 붙어 온 진영을 요동시키고, 군기(병기)와 식량, 말 먹이풀을 모두 불태워 버린 것이었다. 관운장이 군대를 이끌고 불을 꺼서 사경에 이르러 비로소 겨우 불을 껏다.
雲長入城,召傅士仁、糜芳,責之曰:「吾令汝二人作先鋒,不曾出師,先將許多軍器糧草燒燬,火砲打死本部軍馬;如此誤事,要你二人何用!」叱令斬之。費詩告曰:「未曾出師,先斬大將,於軍不利。可暫免其罪。」雲長怒氣不息,叱二人曰:「吾不看費司馬之面,必斬汝二人之首!」乃喚武士各杖四十,摘去先鋒印綬,罰糜芳守南郡,傅士仁守公安;且曰:「吾若得勝回來之日,稍有差池,二罪俱罰!」
관운장이 성에 들어 가 부사인과 미방을 불러 질책하여 말하기를 “내가 너희 두 사람으로 하여금 선봉이 되게 하였는데 군대를 내기도 전에 먼저 많은 군기(병기)와 식량, 말먹이 풀을 불태워버리고 화포가 본부의 군마를 쳐서 죽게하였다. 이 같이 일을 그르쳤는데 너희 두 사람을 어디에 쓸 수 있겠는가!”하고는 머리를 베게 하였다. 비시가 고하여 말하기를 “군대를 내기도 전에 먼저 대장을 죽이는 것은 군대에 이롭지 못한 것입니다. 잠시 그 죄를 면하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했다. 관운장은 노한 기운을 그치지 않고 두 사람을 질책하여 말하기를 “내가 비 사마(비시)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면 반드시 너희 두 사람을 참하였을 것이다.”하고는 곧 무사를 불러 장 사십대를 치게 하고 선봉의 인수를 빼앗고 벌로 미방은 남군을 지키게 하고, 부사인은 공안을 지키게 하였다. 떠 말하기를 “내가 만일 이기고 돌아오는 날에 조금의 잘못이 있다면 두 죄를 함께 벌할 것이다.”했다.
二人滿面羞慚,喏喏而去。雲長便令廖化為先鋒,關平為副將,自總中軍,馬良、伊籍為參軍,一同征進。先是有胡華之子胡班,到荊州來降投關公;公念其舊日相救之情,甚愛之。令隨費詩入川,見漢中王受爵。費詩辭別關公,帶了胡班自回蜀中去了。
두 사람이 얼굴 가득 부끄러워하며 예예하고 갔다. 관운장은 곧 요화로 하여금 선봉이 되게 하고, 관평을 부장으로 삼고 자신은 중군을 총괄하며, 마량, 이적을 참군으로 삼아 함께 행군해 나아갔다. 이에 앞서 호화의 아들로 호반이 있었는데 형주에 이르러 관운장에게 항복해 들어왔다. 관운장이 옛날 서로 구원하였던 정을 생각해서 매우 아꼈다. 비시를 따라 천(서천, 동천)으로 들어 가 한중왕(유현덕)을 뵙고 작을 받게 하였다. 비시가 관운장을 하직하고 호반을 데리고 촉으로 돌아갔다.
且說關公是日祭了帥字大旗,假寐於帳中。忽見一豬,其大如牛,渾身黑色,奔入帳中,逕咬雲長之足。雲長大怒,急拔劍斬之,聲如裂帛。霎然驚覺,乃是一夢,便覺左足陰陰疼痛;心中大疑,喚關平至,以夢告之。平對曰:「豬亦有龍象。附足乃是升騰之意,不必疑忌。」雲長聚眾官於帳下,告以夢兆。或言吉祥者,或言不祥者,眾論不一。雲長曰:「大丈夫年近六旬,即死亦何憾!」
각설하고 관운장이 이날 ‘수’자 큰 기에 제사하고, 장막 안에서 잠시 잠을 잤다. 홀연히 한 돼지가 보였는데 그 크기가 소와 같고, 온 몸은 검은 색인데 달려 장막 안으로 들어와 재빠르게 관운장의 발을 물었다. 관운장이 크게 노하여 급히 검을 뽑아 베니 소리가 비단을 찢는 것 같았다. 갑자기 놀라 깨니 바로 하나의 꿈이었는데 곧 왼쪽 발이 은근히 아팠다. 마음속으로 크게 의심하여 관평을 불러 이르자 꿈을 말하였다. 관평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돼지는 또한 용의 형상이 있습니다. 발에 붙은 것은 곧 올라감의 뜻이니 의심하고 꺼릴 필요가 없습니다.”했다. 관운장이 여러 관리를 장막아래 모아 꿈의 조짐을 말하였다. 어떤 사람은 길하고 상서롭다하고, 어떤 사람은 상서롭지 못하다고 말하여 여러 논의가 일치되지 못하였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대장부의 나이 예순에 가까우니 곧 죽은들 또한 무슨 유감이 있을까!”했다.
正言間,蜀使至,傳漢中王旨,拜雲長為前將軍,假節銊,都督荊、襄九郡事。雲長受命訖,眾官拜賀曰:「此足見豬龍之瑞也。」
말을 하는 사이에 촉에서 사자가 이르러 한중왕(유현덕)의 명령을 전하여 관운장을 정장군으로 삼고, (지휘권을 상징하는)부절과 도끼를 주고 형주와 양양 아홉 개 군의 일을 모두 감독하게 하였다. 관운장이 명을 받고나니 여러 관리들이 축하하며 말하기를 “이는 저룡(돼지)의 상서로움을 나타낸 것입니다.”했다.
於是雲長坦然不疑,遂起兵奔襄陽大路而來。曹仁正在城中,忽報雲長自領兵來。仁大驚,欲堅守不出。副將翟元曰:「今魏王令將軍約會東吳取荊州,今彼自來,是送死也,何故避之?」參謀滿寵諫:「吾素知雲長勇而有謀,未可輕敵。不如堅守,乃為上策。」驍將夏侯存曰:「此書生之言耳。豈不聞『水來土掩,將至兵迎』?我軍以逸代勞,自可取勝。」
이에 관운장은 마음이 안정되어 의심하지 않고 마침내 군대를 일으켜 양양 대로를 달려왔다. 조인이 성(번성) 안에 있는데 홀연히 관운장이 스스로 군대를 거느리고 온다는 보고를 받았다. 조인이 크게 놀라 굳게 지키고 나가지 않았다. 부장 적원이 말하기를 “지금 위왕께서 장군으로 하여금 동오와 약속하여 형주를 취하라 하셨는데 지금 그가(관운장) 스스로 오니, 이는 임종을 지켜야지(죽으려는 것인데) 무슨 이유로 그를 피하십니까?”했다. 참모 만총이 간하기를 “제가 평소 알아보니 관운장은 용맹스럽고 꾀가 있으니 적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굳게 지키는 것으로 상책으로 삼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효장 하후존이 말하기를 “이는 서생의 말일 뿐입니다. 어찌 ‘물이 오면 흙으로 막고, 장차 군대가 이르면 맞이(맞아 싸운다.) 해야 한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까? 우리군대는 편안함으로서 피로함을 대신하는 (편안히 쉬다가 지친 적의 군대를 대적하는)것이니 저절로 승리를 취할 수 있습니다.”했다.
曹仁從其言,令滿寵守樊城,自領兵來迎雲長。雲長知曹兵來,喚關平、廖化二將,受計而往。與曹兵兩陣對圓。廖化出馬搦戰,翟元出迎。二將戰不多時,化詐敗撥馬便走,翟元從後追殺,荊州兵退二十里。次日,又來搦戰。夏侯存、翟元一齊出迎,荊州兵又敗。又追殺二十餘里,忽聽得背後喊聲大震,鼓角齊鳴。曹仁急命前軍速回,背後關平、廖化殺來,曹兵大亂。曹仁知是中計,先掣一軍飛奔襄陽;離城數里,前面繡旗招颭,雲長勒馬橫刀,攔住去路。曹仁膽戰心驚,不敢交鋒,望襄陽斜路而走。雲長不趕。
조인은 그 말을 따라 만총으로 하여금 번성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는 군대를 거느리고 나와 관운장을 맞이하였다. 관운장은 조조의 군대가 오는 것을 알고 관평과 요화 두 장수를 불러 계책을 받고 가게 하였다. 조조의 군대와 두 진영이 둥글게 대치하였다. 요화가 말을 타고 나와 싸움을 거니 적원이 나와 맞이하였다. 두 장수가 얼마 싸우지 않았을 때 요화가 거짓으로 패한 척 말을 돌려 달아나니 적원이 뒤로부터 쫒아오므로 형주의 군대가 이십리를 물러났다. 다음 날 또 와서 싸움을 걸었다. 하후존과 적원이 일제히 나가 맞이하니 형주의 군대가 또 패하였다. 또 이십여리를 쫒는데 홀연히 뒤에서 함성이 크게 진동하고 북과 뿔피리가 크게 울렸다. 조인이 급히 앞의 군대에게 명을 내려 속히 돌아오게 하였으나 뒤에서 관평과 요화가 쇄도하니 조조의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조인은 계책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먼저 일군을 당겨(뽑아) 양양으로 달려가게 하였다. 성에서 몇 리 떨어진 곳 앞에 수놓은 깃발이 흔들리고, 관운장이 말고삐를 잡고 칼을 빗겨든 채 가는 길을 막았다. 조인은 두려워하고 마음속으로 놀라 감히 서로 싸우지 못하고 양양을 향해 비탈길로 달아났다. 과눈장은 쫒지 않았다.
須臾,夏侯存軍至,見了雲長,大怒,便與雲長交鋒;只一合,被雲長砍死。翟元便走,被關平趕上,一刀斬之。乘勢追殺,曹兵大半死於襄江之中。曹仁退守樊城。
잠시 후 하후존의 군대가 이르러 관운장을 보고 크게 노하여 곧 관운장과 싸웠으나, 단 일합만에 관운장에게 베여 죽었다. 적원은 곧 달아나 관평에게 쫒기다 한칼에 죽었다. (관운장이)형세를 타고 쫓아가니 조조의 군대 태반이 양강에 빠져 죽었다. 조인이 번성으로 물러나 지켰다.
雲長得了襄陽,賞軍撫民。隨軍司馬王甫曰:「將軍一鼓而下襄陽,曹兵雖然喪膽,然以愚意論之:今東吳,呂蒙屯兵陸口,常有吞併荊州之意;倘率兵逕取荊州,如何奈之?」雲長曰:「吾亦念及此。汝便可提調此事:去沿江上下,或二十里,或三十里,選高阜處置一烽火臺。每臺用五十軍守之。倘吳兵渡江,夜則明火,晝則舉煙為號。吾當親往擊之。」
관운장은 양양을 얻고 군사에게 상을 주고 백성을 위로하였다. 수군사마 왕보가 말하기를 “장군께서는 북 한번 치고 양양을 함락시켜 조조의 군대가 비록 두려워하게 하였으나 어리석은 생각으로 논한다면 지금 동오의 여몽이 육구에 군대를 주둔하여 항상 형주를 삼킬 뜻이 있습니다. 만일 군대를 거느리고 재빨리 형주를 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했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내가 또한 생각이 여기에 미쳤다. 너는 곧 이 일을 지휘하여 강의 상 하류를 따라 혹은 리십리, 혹은 삼십리를 높은 언덕을 골라 하나의 봉화대를 두고, 매 봉화대는 오십 명의 군사를 써서 지켜라. 만일 오의 군대가 강을 건너면 밤에는 밝은 불로, 낮에는 곧 연기를 들어 신호를 삼으라. 나는 마땅히 직접 가서 그들을 칠 것이다.”했다.
王甫曰:「糜芳、傅士仁守二隘口,恐不竭力;必須再得一人以總督荊州。」雲長曰:「吾已差治中潘濬守之,有何慮焉?」甫曰:「潘濬平生多忌而好利,不可任用。可差軍前都督糧料官趙累代之。趙累為人忠誠廉直,若用此人,萬無一失。」雲長曰:「吾素知潘濬為人,今既差定,不必更改。趙累現掌糧料,亦是重事。汝勿多疑,只與我築烽火臺去。」王甫怏怏拜辭而行。雲長令關平準備船隻渡襄江,攻打樊城。
왕보가 말하기를 “미방과 부수인은 두 애구(요충지)를 지키고 있는데 힘을 다하지 않을까 두려우니 반드시 다시 한 사람을 얻어 형주를 종 감독하게 해야 합니다.” 했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치중 반준을 보내 지키게 하였으니 여기에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하니 왕보가 말하기를 “반준은 평생동아 꺼림이 많고 이익을 좋아하니 맡겨 써서는 안 됩니다. 차군전도독 양료관 조루를 보내 대신하십시오. 조루는 사람됨이 충성스럽고 청렴하며 정직하니 약 이 사람을 끈다면 만에 한 가지도 잘못이 없을 것입니다.”했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내가 평소 반준의 사람됨을 알고 있으나 지금 이미 보내기로 정하였으는 바꿀 필요가 있는가? 조루는 현재 식량 등을 관장하고 있고, 또한 이는 중요한 일이다. 너는 더 이상 의심하지 말라. 다만 나와 함께 봉화대를 쌓르러 가자”했다. 왕보가 만족스럽지 않아 정중하게 거절하고 갔다. 관운장은 관평으로 하여금 배를 준비하게 하여 양강을 건너 번성을 쳤다.
卻說曹仁折了二將,退守樊城,謂滿寵曰:「不聽公言,兵敗將亡,失卻襄陽,如之奈何?」寵曰:「雲長虎將,足智多謀,不可輕敵,只宜堅守。」
각설하고 조인은 두 장수를 잃고 물러나 번성을 지키면서 만총에게 일러 말하기를 “공의 말을 듣지 않아 군대는 패하고, 장수를 잃었으며, 양양을 잃었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니 만총이 말하기를 “관운장은 범 같은 장수로 지혜와 꾀가 많으니 가벼이 대적해서는 안 되고 다만 굳게 지키는 것이 마땅합니다.”했다.
正言間,人報雲長渡江而來,攻打樊城。仁大驚。寵曰:「只宜堅守。」部將呂常奮然曰:「某乞兵數千,願當來軍於襄江之內。」寵諫曰:「不可。」呂常怒曰:「據汝等文官之言,只宜堅守,何能退敵?豈不聞兵法云:『軍半渡可擊。』?今雲長半渡襄江,何不擊之?若兵臨城下,將至壕邊,急難抵當矣。」
말하는 사이에 사람이 관운장이 강을 건너 와 번성을 친다고 보고하였다. 조인은 크게 놀랐다. 만총이 말하기를 “다만 굳게 지키는 것이 마땅합니다.”했다. 부장 여상이 분연히 말하기를 “저에게 군대 수천 명을 빌려주시면 오는 군대를 양간 안에서 막기를 원합니다.”하니 만총이 간하여 말하기를 “안 됩니다.”했다. 여상이 노하여 말하기를 “너희들 문관의 말에 의지하여 다만 굳게 지키기만 한다면 어떻게 적을 물리칠 수 있겠는가? 병법에 ‘군대가 반쯤 건넜을 때 치라.’한 것을 듣지 못하였는가? 지금 관운장이 반쯤 양강을 건넜는데 어찌 그들을 치지 않을 것인가? 만약 군대가 성 아래에 임한다면 장차 해자 가에 이르러 급히 막기 어려울 것이다.” 했다.
仁即與兵二千,令呂常出樊城迎戰。呂常來至江口,只見前面繡旗開處,雲長橫刀出馬。呂常卻欲來迎。後面眾軍見雲長神威凜凜,不戰先走,呂常喝止不住。雲長混殺過來,曹兵大敗,馬步軍折其大半。敗殘軍奔入樊城,曹仁急差人求救。使命星夜至長安,將書呈上曹操,言:「雲長破了襄陽,現圍樊城甚急;望撥大將前來救援。」
조인이 곧 군대 삼천 명을 주고 여상으로 하여금 번성을 나가 맞아 싸우게 하였다. 여상이 강구에 이르렀는데 앞쪽에는 수놓은 깃발이 열린 곳에 관운장이 칼을 빗겨들고 말을 타고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뒤쪽의 여러 군사들이 관운장의 신 같은 위엄이 늠늠한 것을 보고 싸우지 않고 달아나니 여상이 고함쳐 저지하였으나 막지 못하였다. 관운장이 도륙하며 지나오니 조조의 군대가 크게 패하여 기병과 보병으로 죽은 자가 태반이었다. 패잔군이 달려 번성에 들어가니 조인이 급히 사람을 보내 구원을 청하였다. 사명(사자)이 밤을 새워 장안에 이르러 가진 글을 조조에게 올렸다. (글에)말하기를 “관운장이 양양을 깨트리고 현재 번성을 포위하여 매우 급하니 대장을 뽑아 앞으로 와 구원해줄 것을 바랍니다.”했다.
曹操指班部內一人而言曰:「汝可去解樊城之圍。」其人應聲而出。眾視之,乃于禁也。禁曰:「某求一將作先鋒,領兵同去。」操又問眾人曰:「誰敢作先鋒?」一人奮然出曰:「某願施犬馬之勞,生擒關某,獻於麾下。」操視之大喜。正是:未見東吳來伺隙,先看北魏又添兵。未知此人是誰,且看下文分解。
조조가 부 안의 한 사람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네가 가면 번성의 포위를 풀 수 있을 것이다.”하니 그 사람이 대답하고는 나갔다. 무리들이 그를 보니 바로 우금이었다. 우금이 말하기를 “제가 한 장수를 청하여 선봉을 삼아 군대를 거느리고 함께 가겠습니다.”했다. 조조가 또 무리들에게 물어 말하기를 “누가 감히 선봉이 될 수 있는가?”하니 한 사람이 분연히 나와 말하기를 “제가 개와 말의 수고로움을 베풀어 관운장을 사로잡아 휘하에 바치겠습니다.”했다. 조조가 그를 보고 크게 기뻐하였다. 바로 이러하다 동오가 와서 엿보지도 않았는데 먼저 북위가 또한 군대를 더 하였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겠구나.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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