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回:驅巨獸六破蠻兵,燒藤甲七擒孟獲
제90회 거수(거대한 짐승)를 몰아 여섯 번째로 남쪽 오랑캐를 깨트리고, 기름 먹인 등나무 갑옷(등갑군)을 불살라 일곱 번째 맹획을 사로잡다.
卻說孔明放了孟獲等一干人,楊鋒父子皆封官爵,重賞洞兵。楊鋒等拜謝而去。孟獲等連夜奔回銀坑洞。那洞外有三江:乃是瀘水、甘南水、西城水。三路水會合,故為三江。其洞北近平坦二百餘里,多產萬物;洞西二百餘里,有鹽井;西南二百里,直抵瀘、甘;正南三百里,乃是梁都洞。洞中有山,環抱其洞;山上出銀礦,故名為銀坑山。山中置宮殿樓臺,以為蠻王巢穴。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맹획 등 일천 명을 놓아 주고 양봉 주자 모두에게 관직과 작위를 봉하며 동의 군사들에게 많은 상을 주었다. 양봉 등이 절하고 감사하며 갔다. 맹획 등은 밤새 달려 은굉동으로 돌아갔다. 이 동 밖에는 삼강이 있는데 곧 노수, 감남수, 서역수이다. 세 물 길이 모여 합하기 때문에 삼강이라 한 것이다. 그 동의 북쪽 가까이 평탄한 곳이 이백 여리인데 만물이 많이 생산된다. 동 서쪽 이백여 리에는 소금우물이 있고, 서남쪽 이백리에는 노수, 감수가 막으며, 정 남쪽 삼백리에 곧 양도동이 있다. 동 안에는 산이 있는데 그 동을 둘러싸고 있고, 산 위에 은이 나오는 광산이 있다. 그러므로 은갱산이라 한다. 산 안에 궁전과 루대를 두었는데 남쪽 오랑캐 왕이 사는 곳으로 삼았다.
其中建一祖廟,名曰「家鬼」。四時殺牛宰馬享祭。名曰「卜鬼」。每年常以蜀人并外鄉之人祭之。若人患病,不肯服藥,只禱師巫,名為「藥鬼。」其處無刑法,但犯罪即斬。有女長成,卻於溪中沐浴,男女自相混淆,任其自配,父母不禁,名為「學藝」。年歲雨水均調,則種稻穀;倘若不熟,殺蛇為羹,煮象為飯。每方隅之中,上戶號曰:「洞主」,次日「酋長」。每月初一十五兩日,皆在三江城中買賣,轉易貨物。其風俗如此。
그 안에 한 조상 사당을 세우고 이름을 ‘가귀’라 했다. 네 시절에 소와 말을 죽여 제사를 지냈는데 이름을 ‘복귀’라 했다. 매년 항상 촉 사람과 외향의 사람으로서(사람을 제물로 삼아) 제사하였다. 만약 사람이 병들면 기꺼이 약을 먹지 않고 무당에게 기도할 뿐인데 이름을 ‘약귀’라 했다. 그 곳에는 형법이 없고 죄를 지으면 곧 베어 죽였다. 여자가 장성하면 계곡 안에서 목욕하고 남녀가 저절로 서로 뒤섞여 마음대로 짝하여도 부모가 금하지 않았는데 이름을 ‘학예’라 했다. 해마다 비가 고르게 내려 벼와 곡식을 파종하고, 만약 익지 않으면 뱀을 죽여 국을 만들고 코끼리를 삶아 밥으로 삼는다. 매 모퉁이 안의 상호를 ‘동주’라하고, 다음을 ‘추장’이라 한다. 매우러 초하루와 보름 두 날에는 모두 삼강성 안에서 사고팔고 물건을 바꾼다. 그 풍속이 이와 같다.
卻說孟獲在洞中,聚集宗黨千餘人,謂之曰:「吾屢受辱於蜀兵,立誓欲報之。汝等有何高見?」言未畢,一人應曰:「吾舉一人,可破諸葛亮。」眾視之,乃孟獲妻弟,現為八番部長,名曰「帶來洞主」。
각설하고 맹획은 동 안에 있으면서 친척 무리 천여 명을 모아 그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여러 번 촉의 군대에게 욕을 받고 보복할 것을 맹세하였다. 너희들은 무슨 훌륭한 계책이 있는가?”하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한 사람이 대답을 하여 말하기를 “제가 한 사람을 천거하니 제갈량(제갈공명)을 깨트릴 수 있습니다.”했다. 무리들이 그를 보니 곧 맹획의 처의 동생으로 현재 팔번부장인 대래동주였다.
獲大喜,急問何人。帶來洞主曰:「此去西南八納洞,洞主木鹿大王,深通法術:出則騎象;能呼風喚雨;常有虎豹豺狼、毒蛇惡蝎跟隨。手下更有三萬神兵,甚是英勇。大王可修書具禮,某親往求之。此人若允,何懼蜀兵哉?」獲忻然,令國舊(舅)齎書而去。卻令朵思大王守把三江城,以為前面屏障。
맹획이 크게 기뻐하며 급히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다. 대래동주가 말하기를 “여기서 서남쪽을 가면 팔납동 동주 목록대왕은 법술에 깊이 통하고, 나가면 곧 코끼리를 타는데 바람과 비를 부를 수 있고 항상 범, 표범, 승냥이, 이리, 독사, 전갈이 뒤를 따릅니다. 부하들은 다시 삼만의 신병이 있는데 매우 용맹합니다. 대왕께서 글을 쓰고 예를 갖추시면 제가 직접 가서 청하겠습니다. 이 사람이 만약 허락한다면 어찌 촉의 군대를 두려워하겠습니까?”했다. 맹획이 기버하며 국구로 하여금 글을 가지고 가게 했다. 그리고 타사대왕으로 하여금 삼강성을 지키게 하는 것으로서 앞쪽의 병장(방어벽)이 되게 했다.
卻說孔明提兵直至三江城,遙望見此城三面傍江,一面通旱;即遣魏延、趙雲同嶺一軍於旱路打城。軍到城下時,城上弓弩齊發。原來洞中之人,多習弓弩。一弩齊發十矢;箭頭上皆用毒藥;但有中箭者,皮肉皆爛,見五臟而死。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군대를 데리고 삼강성에 이르러 멀리서 바라보니 이 성은 삼면이 강이고, 한 쪽 만 육지로 통하는 것을 보고는 곧 위연, 조운(조자룡)을 보내 함께 일군을 거느리고 육로에서 성을 치게 했다. 군대가 성 아래 이르렀을 때 성 위에서 궁노가 일제히 발사되었다. 알고 보니 동 중의 사람들은 궁노를 많이 연습하여 하나의 쇠뇌가 일제히 열 개의 화살을 발사하는데 화살 촉에는 모두 독약을 발라 화살에 적중된 자는 피부와 살이 모두 썩어 오장이 들어 나면서 죽었다.
趙雲、魏延不能取勝,回見孔明言藥箭之事。孔明自乘小車,到軍前看了虛實,回到寨中,令軍退數里下寨。蠻兵望見蜀兵遠退,皆大笑作賀,只疑蜀兵懼怯而退;因此夜間安心穩睡,不去哨探。
조운(조자룡)과 위연이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 제갈공명에게 독양 칠한 화살의 일을 말하였다. 제갈공명이 스스로 작은 수레를 타고 군대 앞에 이르러 허실을 보고 돌아가 영채 안에 이르러 군대를 수리 물려 영채를 세우게 하였다. 남쪽 오랑캐 군대는 촉의 군대가 멀리 물러나는 것을 보고 모두 크게 웃으며 축하하면서 촉의 군대가 두려워하고 겁을 내어 물러갔다고 의심하고, 이 때문에 밤에도 안심하고 편안히 잠자고 보초와 정찰을 가지 않았다.
卻說孔明約軍退後,即閉寨不出。一連五日。並無號令。黃昏左側,忽起微風。孔明傳令曰:「每軍要衣襟一幅,限一更時分應點。無者立斬。」諸將皆不知其意,只得依令預備。孔明又傳令曰:「諸軍包土,俱在三江城下交割。先到者有賞。」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군대를 물린 후 곧 영채를 닫고 나가지 못하게 했다. 연이어 오 일이 지나는 동안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황혼 무렵 홀연히 작은 바람이 일어났다. 제갈공명이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모든 군대는 옷 깃 한 폭으로 일 경 때까지 점검에 대응하라. 없는 자는 베어 죽일 것이다.”했다. 여러 장수들이 모구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다만 명령에 의하여 미리 준비하였다. 제갈공명이 또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여러 군사들은 흙을 싸서 모두 삼강성 아래에 쏟아 부으라 먼저 이른 자에게는 상이 있을 것이다.”했다.
眾軍聞令,皆包淨土,飛奔城下。孔明令積土為蹬道,先上城者為頭功。於是蜀兵十餘萬,并降兵萬餘,將所包之土,一齊棄於城下。一霎時,積土成山,接連城上。一聲暗號,蜀兵皆上城。蠻兵急放弩時,大半早被執下。餘者棄城而走。朵思大王死於亂軍之中。蜀將督軍分路剿殺。孔明取了三江城。所得珍寶,皆賞三軍。殘敗蠻兵逃回見孟獲,說:「朵思大王身死,失了三江城。」獲大驚。
여러 군사들이 명령을 듣고 모두 깨끗한 흙을 싸서 나는 듯이 성 아래로 달려 갔다. 제갈공명은 흙을 쌓아 오르는 길을 만들게 하고 먼저 성에 오른 자를 일등 공으로 삼았다. 이에 촉의 군대 십여 만과 항복한 군사 만여 명이 싸 두었던 흙을 일제히 성 아래에 던졌다. 잠깐 사이에 흙이 쌓여 산을 이루어 성위와 이어졌다. 한 소리 암호에 촉의 군대가 모두 성에 올랐다. 남쪽 오랑캐 군사가 급히 쇠뇌를 쏘았으나 태반이 일찍 잡히고 나머지는 모두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타사대왕은 난군 중에서 죽었다. 촉의 장수가 군대를 감독라여 길을 나누어 섬멸하였다. 제갈공명은 삼강성을 취하고 얻은 보물을 모두 삼군에게 상으로 주었다. 패한 남쪽 오랑캐 군대는 도망하여 돌아가 맹획을 만나 말하기를 “타사대왕은 죽고 삼강성을 잃었습니다.”했다. 맹획은 크게 놀랐다.
正慮之間,人報蜀兵以度江,見在本洞前下寨。孟獲甚是慌張。忽然屏後一人大笑而出曰:「既為男子,何無智也?我雖是一婦人,願與你出戰。」獲視之,乃妻祝融夫人也。夫人世居南蠻,乃祝融氏之後;善使飛刀,百發百中。孟獲起身稱謝。夫人忻然上馬,引宗黨猛將數百員,生力洞兵五萬,出銀坑宮闕,來與蜀兵對敵。
바로 걱정하고 있는 사이에 사람이 촉의 군대가 강을 건너 본 동 앞에 영채를 세우는 것을 보았다고 보고하였다. 맹획은 매우 안절부절 못하였다. 홀연히 병풍 뒤에서 한 사람이 크게 웃으며 나와 말하기를 “남자가 되어 어찌 지혜가 없는가? 내가 비록 일개 부인이나 너희들과 나가 싸우기를 원한다.”했다. 맹획이 그를 보니 곧 아내인 축융부인이었다. 부인은 남쪽 오랑캐 땅에 대대로 살았으니 곧 축융씨의 후손이었다. 비도를 잘 사용하여 백발백중이었다. 맹획이 몸을 일으켜 칭찬하고 감사하였다. 부인이 흔연히 말에 올라 종족 무리 맹장 수백명과 힘이 펄펄한 동의 군대 오만을 이끌고 은갱 궁궐을 나와 가서 촉의 군대와 대적하였다.
方纔轉過洞口,一彪軍攔住,為首蜀將,乃是張嶷。蠻兵見之,卻早兩路擺開。祝融夫人背插五口飛刀,手挺丈八長標,坐下捲毛赤兔馬。張嶷見之,暗暗稱奇。二人驟馬交鋒。戰不數合,夫人撥馬便走。張嶷趕去,空中一把飛刀落下。嶷急用手隔,正中左臂,翻身落馬。蠻兵發一聲喊,將張嶷執縛去了。
막 동구를 돌자 한 떼의 군대가 막으니 곧 우두머리 되는 촉의 장수는 곧 장의였다. 남쪽 오랑캐 군대가 그를 보고는 재빨리 진을 전개하였다. 축융부인이 등에 다섯 개의 비도를 꼿고, 손에는 장팔장표를 잡고, 털을 돌돌 만 적토마를 타고 있었다. 장의가 그것을 보고 암암리에 기이함을 칭찬하였다. 두 사람이 말을 몰라 서로 싸웠다. 싸운 지 몇 합되지 않아 부인이 말을 돌려 곧 달아났다. 장의가 쫓아가는데 공중에서 하나의 비도가 떨어져 내렸다. 장의가 급히 손을 써서 막았으나 바로 왼쪽 팔에 적중하니 몸을 뒤집으며 말에서 떨어졌다. 남쪽 오랑캐가 함성을 지르며 장의를 잡아 묶어 갔다.
馬忠聽得張嶷被執,急出救時,早被蠻兵困住。望見祝融夫人挺標勒馬而立,忠忿怒向前去戰,坐下馬絆倒,亦被擒了。都解人洞中來見孟獲。獲設席慶賀。夫人叱刀斧手推出張嶷、馬忠要斬。獲止曰:「諸葛亮放吾五次,今番若斬彼將,是不義也。且囚在洞中,待擒住諸葛亮,殺之未遲。」夫人從其言,笑飲作樂。
마충이 장의가 잡혔다는 것을 듣고 급히 구하러 나갈 때 바로 남쪽 오랑캐 군대에게 막혔다. 축융부인이 창을 잡고 말고삐를 잡고 서 있는 것을 바라보고는 마충이 분노하여 앞을 향해 싸우러 가는데 타고 있던 말이 걸려 넘어지면서 또한 사로잡혔다. 모두 동중에 압송하여 맹획을 만났다. 맹획은 자리를 베풀고 축하하였다. 부인(축융부인)이 도부수를 질책하여 장의와 마충을 끌어내어 허리를 베어 죽이라고 했다. 맹획이 저지하여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나를 다섯 번이나 놓아주었는데 지금 만약 그의 장수를 벤다면 이는 의롭지 않은 것입니다. 또 동 안에 가두어 두고 제갈공명을 사로잡기를 기다렸다가 죽여도 늦지 않습니다.”했다. 축융부인이 그 말을 따르고, 웃으며 술을 마시며 즐겼다.
卻說敗殘兵來見孔明,告知其事。孔明即喚馬岱、趙雲、魏延三人受計。各自領軍前去。次日,蠻兵報入洞中,說趙雲搦戰。祝融夫人即上馬出迎。二人戰不數合,雲撥馬便走。夫人恐有埋伏,勒兵而回。延又引軍來搦戰,夫人縱馬相迎。正交鋒緊急,延詐敗而逃,夫人只不趕。
각설하고 패잔병이 와서 제갈공명을 만나 그 일을 알렸다. 제갈공명이 곧 마대, 조운(조자룡), 위연 세 사람을 불러 계책을 주었다. 각자 군대를 거느리고 전진해 갔다. 다음 날 남쪽 오랑캐 군대가 동 안에 들어 와 조운(조자룡)이 싸움을 걸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축융부인이 곧 말에 올라 나가 맞이하였다. 두 사람이 싸운 지 몇 합되지 않아 조운(조자룡)이 말을 돌려 곧 달아났다. 부인은 매복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말고삐를 당겨 돌아갔다. 위연이 또 군대를 이끌고 와 싸움을 거니 축융부인이 말을 달려 맞이하였다. 바로 싸움이 긴급해지자 위연이 거짓으로 패하여 도망하는 척 하였으나 축융부인이 쫓지 않았다.
次日,趙雲又引軍來搦戰,夫人領洞兵出迎。二人戰不數合,雲詐敗而走,夫人案標(槍)不趕。欲收兵回洞時,魏延引軍齊聲辱罵,夫人急挺標(槍)來取魏延。延撥馬便走。夫人忿趕怒來,延驟馬奔入山僻小路,忽然背後一聲響亮,延回頭視之,夫人仰鞍落馬。
다음 날 조운(조자룡)이 또 군대를 이끌고 와 싸움을 거니 축융부인이 동의 군대를 거느리고 나와 맞이하였다. 두 사람이 싸운 지 몇 합되지 않아 조운(조자룡)이 거짓으로 패하여 달아나니 축융부인이 창에 기대(창을 든 채) 뒤쫓지 않았다. 군대를 거두어 동으로 돌아가려 할 때 위연이 군대를 이끌고 일제히 큰 소리로 욕하니 축융부인이 급히 창을 내밀고 와서 위연을 취하려 했다. 위연이 말을 돌려 곧 달아났다. 축융부인이 분노하여 쫓아오니 위연이 말을 달려 산구석의 작은 길로 달려 들어가는데 홀연히 뒤에서 한 소리가 울렸다. 위연이 머리를 돌려 보니 축융부인이 말안장에서 뒤집혀 떨어졌다.
原來馬岱埋伏在此,用絆馬索絆倒,就裏擒縛,解投大寨而來。蠻將洞兵皆來救時,趙雲一陣殺散。孔明端坐於帳上。馬岱解祝融夫人到,孔明即令武士去其縛,請在別帳賜酒壓驚,遣使往告孟獲,欲送夫人換張嶷、馬忠二將。
알고보니 마대가 여기에 매복하고 있다가 말이 줄에 걸려 쓰러지자 사로잡아 묶어 큰 영채로 압송해 왔다. 남쪽 오랑캐 장수와 동의 군대가 모두 와서 구하려할 때 조운(조자룡)이 한바탕 죽이고 흩어지게 하였다. 제갈공명이 군막 안에 단정히 앉아 있는데 마대가 축융부인을 압송하여 이르렀다. 제갈공명은 곧 무사로 하여금 그 결박을 풀게 하고 별도의 장막에 있게 하면서 술을 내리고 놀란 마음을 가라앉게 하고, 사자를 보내 맹획에게 가서 축융부인과 장의, 마충 두 장수를 바꾸고자한다고 알리게 하였다.
孟獲允諾,即放出張嶷、馬忠,還了孔明。孔明遂送夫人入洞。孟獲接著,又喜又惱。忽報八納洞主到。孟獲出帳迎接,見其人騎著白象,身穿金珠瓔絡,腰懸兩口大刀,領著一班餵養虎豹豺狼之士簇擁而入。獲再拜哀告,訴說前事。木鹿大王許以報讎。獲大喜,設宴相待。
맹획은 허락하고 곧 장의와 마충을 방출하여 제갈공명에게 돌아가게 하였다. 제갈공명이 마침내 축융부인을 보내 동에 들어가게 하였다. 맹획이 맞이하고 한편으로는 기뻐하면서도 또 번뇌(걱정)하였다. 홀연히 팔납동주가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맹획이 장막을 나가 영접했다. 그 사람을 보니 흰 코끼리를 타고 몸에는 금 구슬과 옥구슬을 걸치고, 허리에는 두 개의 큰 칼을 차고 있었고, 한 떼의 범, 표범, 승냥이, 이리를 기르는 군사의 무리들을 빽빽하게 거느리고 들어왔다. 맹획이 두 번 절하고 도움을 청하며 앞의 일을 하소연하며 말하였다. 목록대왕이 원수를 갚을 것을 허락하였다. 맹획이 크게 기뻐하며 연회를 베풀어 대접하였다.
次日,木鹿大王引本洞帶猛獸而出。趙雲、魏延聽知蠻兵出,遂將軍馬布成陣勢。二將並轡立於陣前視之,只見蠻兵旗幟器械皆別;人多不穿衣甲,盡裸身赤體,面目醜陋;身帶四把尖刀;軍中不鳴鼓角,但篩金為號;木鹿大王腰挂兩把寶刀,手執蒂鐘,身騎白象,從大旗中而出。趙雲見了魏延曰:「我等上陣一生,未嘗見如此人物。」
다음 날 목록대왕이 본동(필납동)을 이끌고 맹수를 데리고 나갔다. 조운(조자룡)과 위연은 남쪽 오랑캐 군대가 나온다는 것을 듣고 마침내 군마를 거느리고 진세를 만들었다. 두 장수가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진 앞에 서서 그들을 보았는데 남쪽 오랑캐 군대의 깃발과 기계가 모두 다른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많이 옷과 갑옷을 입니 않아 모두 맨 몸이었으며 얼굴은 더럽고 비루하였다. 몸에는 네 개의 뾰족한 갈을 가지고 있었고, 군대 안에는 북과 뿔피리가 울리지 않고 다만 징과 꽹가리를 치는 것으로 신호를 삼았다. 목록대왕은 허리에 두 개의 보도를 차고 손에 종 꼭지를 잡으며, 몸으로는 흰코끼리를 타고 큰 깃발 안에서 나왔다. 조운(조자룡)이 위연을 보고 말하기를 “우리들은 진중에서 일생을 보냈는데 일찍이 이 같은 인물을 보지 못하였다.”했다.
二人正沉吟之際,只見木鹿大王口中不知念甚咒語,手搖蒂鐘。忽然狂風大作,飛砂走石,如同驟雨,一聲畫角響,虎豹豺狼,猛獸毒蛇,乘風而出,張牙五爪,衝將過來。蜀兵如何抵當,往後便退。蠻兵隨後追殺,直趕到三江界路方回。趙雲、魏延收聚敗兵,來孔明帳前請罪,細說此事。
두 사람이 바로 망설이고 있을 때 목록대왕이 입안으로 알지 못하는 주문을 외며 손으로 꼭지 달린 종을 흔들었다. 홀연히 광풍이 크게 일면서 모래가 날고 돌이 굴러 비가 몰아치는 것과 같은데 한 소리 화각이 울리면서 범, 표범, 승냥이, 이리, 맹수, 독사 등이 바람을 타고 나와 이와 다섯 발톱을 펴고 치며 왔다.(달려왔다.)촉의 군대가 어떻게 막지 못하고 뒤로 가다가 물러났다. 남쪽 오랑캐 군대가 뒤를 따라 와 죽이며 쫓아오다 삼강성 경계 길에 이르러 비로소 돌아갔다. 조운(조자룡)과 위염이 패한 군사를 거두어 모아 제갈공명의 군막 앞에 와 죄(패전한 죄)를 절하며 자세하게 이 일을 자세하게 말하였다.
孔明笑曰:「非汝二人之罪。吾未出茅廬之時,先知南蠻有『驅虎豹』之法。吾在蜀中已辦下破此陣之物也。隨軍有二十輛車。俱封記在此。今日且用一半,留下一半,後有別用。」遂令左右取了十輛紅油櫃車到帳下,留十輛黑油櫃車在後。眾皆不知其意。孔明將櫃打開,皆是木刻綵畫巨獸,俱用五色絨線為毛衣,鋼鐵為牙爪,一個可騎坐十人。孔明選了精壯軍士一千餘人,領了一百口,內裝煙火之物,藏在車中。次日,孔明驅兵大進,布於洞口。
제갈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너희 두 사람의 죄가 아니다. 내가 띠풀 지붕 집(모려)를 나오지 않았을 때 먼저 남쪽 오랑캐 지역에 ‘구호표(범과 표범을 모는)’의 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촉 중에 있을 때 이미 이 진을 깨트릴 물건을 준비하였다. 군대를 따르는 이십대의 수레가 있는데 모두 밀봉하고 기록한 것이 여기에 있다. 오늘 반을 쓰고 반은 남겨두었다가 후에 따로 쓸 곳이 있다.”하고는 마침내 좌우로 하여금 열 대의 붉은 기름상자를 군막 앞에 이르게 하고, 열 대의 검은 기름 상자를 실은 수레는 뒤에 남겨두게 하였다. 무리들이 모두 그 뜻을 알지 못하였다. 제갈공명이 궤를 가져다 쳐서 열어 보니 모두 나무로 조각하고 채색한 거수로 모두 다섯 색의 털실을 써서 털옷을 만들고 강철로 이빨과 발톱을 만들었는데 한 개가 열 사람이 타고 앉을만했다. 제갈공명은 정예롭고 건장한 군사 일천여 명을 뽑아 안에서 연기와 불을 만들 수 있는 물건 일백 개를 수령하여 수레 안에 감추게 하였다. 다음 날 제갈공명이 군대를 몰아 크게 진군하게 하여 동의 입구에 진열하였다.
蠻兵探知,入洞報與蠻王。木鹿大王自謂無敵,即與孟獲引洞兵而出。孔明綸巾羽扇,身衣道袍,端坐於車上。孟獲指曰:「車上坐的便是諸葛亮!若擒住此人,大事定矣!」木鹿大王口中念咒,手搖蒂鐘。頃刻之間,狂風大作,猛獸突出。孔明將羽扇一搖,其風便回吹彼陣中去了。蜀陣中假獸擁出。蠻洞真獸見蜀陣巨獸口吐火焰,鼻出黑煙。身搖銅鈴,張牙舞爪而來,諸惡獸不敢前進,皆奔回蠻洞,反將蠻兵衝倒無數。孔明驅兵大進,鼓角齊鳴,望前追殺。木鹿大王死於亂軍之中。洞內孟獲宗黨,皆棄宮闕,扒山越領而走。孔明大軍占了銀坑洞。
남쪽 오랑캐 군대가 알아채고는 동에 들어 가 남쪽 오랑캐 왕에게 보고하였다. 목록대왕은 스스로 무적이라 이르고는 곧 맹획과 동의 군대를 이끌고 나갔다. 제갈공명은 윤건을 쓰고 깃털 부채를 들고 몸에 도포를 입고 수레 위에 단정히 앉았다. 맹획이 가리키며 말하기를 “수레 위에 앉은 이가 제갈량(제갈공명)이구나! 만약 이 사람을 사로잡는다면 대사가 정해질 것이다.”하니 목록대왕이 입안으로 주문을 외면서 손으로 꼭지 종을 흔들었다. 잠간 사이에 광풍이 크게 일어나면서 맹수가 튀어 나왔다. 제갈공명이 깃털 부채를 한 번 흔드니 그 바람이 곧 그들 진으로 돌아 불었다. 촉의 진중에서 가짜 짐승을 둘러싸고 나왔다. 남쪽 오랑캐 동의 진짜 짐승이 촉 진 안의 거수가 입으로 화염을 뿜고, 코로 검은 연기를 뿜고, 몸으로 구리 방울을 흔들고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흔들며 오는 것을 보고 여러 나쁜 짐승들이 감히 전진하지 못하고 모두 남쪽 오랑캐 동으로 달려 돌아가니 도리어 남쪽오랑캐 군대가 치여 엎어진 이가 헤아릴 수 없었다. 제갈공명이 군대를 몰아 크게 진군하며 북과 뿔피리를 일제히 울리며 앞을 향해 쫓아 쇄도하였다. 목록대왕은 어지러운 군대 안에서 죽었다. 동 안의 맹획과 친척들이 모두 궁궐을 버리고 산을 헤치고 고개를 넘어 달아났다. 제갈공명의 대군이 은갱동을 점령하였다.
次日,孔明正要分兵緝擒孟獲,忽報:「蠻王孟獲妻弟帶來洞主,因勸孟獲歸降,獲不從,今將孟獲並祝融夫人及宗黨數百餘人盡皆擒來,獻與丞相。」
다음 날 제갈공명은 바로 군대를 나누어 맹획을 묶어 사로잡으려 하는데 홀연히 “남쪽 오랑캐 왕 맹획 처의 동생이 동주를 데리고 와 맹획에게 항복할 것을 권하였으나 맹획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맹획과 축융부인, 종당 친척 수백여 명을 모두 사로잡아 승상께 바치려 한다.”하고 보고하였다.
孔明聽知,即喚張嶷、馬忠,分付如此如此。二將受了計,引二千精壯兵,伏於兩廊。孔明即令守門將,俱放進來。帶來洞主引刀斧手解孟獲等數百人,拜於殿下。孔明大喝曰:「與吾擒下!」兩廊壯兵齊出,二人捉一人,盡被執縛。孔明大笑曰:「量汝些小詭計,如何瞞得過我!汝見二次俱是本洞人擒汝來降,吾不加害汝,只道吾深信,故來詐降,欲就洞中殺吾!」喝令武士搜其身畔,果然各帶利刀。
제갈공명이 듣고는 곧 장의 마충을 불러 여차저차 하라고 분부하였다. 두 장수가 계책을 받고 이천 명의 정예롭고 건장한 군대를 이끌고 양쪽 회랑에 숨어 있었다. 제갈공명이 곧 수문장으로 하여금 모두 놓아 나아가게 하도록(문을 열러 들어오게)했다. 동주(대래동주)가 도부수를 이끌고 맹획 등 수백 명을 압송하여 전각 아래서 절하였다. 제갈공명이 크게 외쳐 말하기를 “나에게 사로잡아 오라(이들을 사로잡으라!)”하니 두 회랑의 건장한 군사들이 일제히 나와 두 사람이 한 사람을 사로잡아 모두 결박하였다. 제갈공명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너의 조그만 속이는 계책으로 어떻게 나를 속여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가? 너는 본 동의 사람들이 너를 사로잡아 항복하러 왔을 떼 내가 너를 해치지 않는 것을 보고 다만 내가 깊이 믿고 있다 여기고 와서 거짓으로 항복하여 동 중에 나아가 나를 죽이려 한 것이다.” 하고는 무사에게 그 몸을 수색하라고 소리쳤다. 과연 각각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있었다.
孔明問孟獲曰:「汝原說在汝家擒住,方始心服;今日如何?」獲曰:「此是我等自來送死,非汝之能也。吾心未服。」孔明曰:「吾擒住六番,尚然不服,欲待何時耶?」獲曰:「汝第七次擒住,吾方傾心歸服,誓不反矣。」孔明曰:「巢穴已破,吾何慮哉?」令武士盡去其縛,叱之曰:「這番擒住,再若支吾,必不輕恕!」孟獲等抱頭鼠竄而去。
제갈공명이 맹획에게 물어 말하기를 “너는 원래 너의 집에 있을 때 사로잡힌다면 비로소 마음으로 복종한다. 하였는데 오늘은 어떠한가?”하니 맹획이 말하기를 “이는 우리들이 스스로 죽을 곳에 온 것이지 너의 능력이 아니다. 나는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는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여섯 번 사로잡았는데도 오히려 복종하지 않으니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하니 맹획이 말하기를 “네가 일곱 번째 사로잡는다면 내가 비로소 마음을 기우려 귀의하여 복종하고 배반하지 않을 것을 맹서한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둥지(근거지)가 이미 깨트려졌는데 내가 무엇을 걱정하겠는가?”하고는 무사로 하여금 그 결박을 풀게하고 소리쳐 말하기를 “이 번에 사로잡힌다면 다시 만약 나에게 버틴다면(저항한다며) 반드시 가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했다. 맹획 등이 머리를 감사고 쥐새끼처럼 갔다,
卻說敗殘蠻兵有千餘人,大半中傷而逃,正遇蠻王孟獲。獲收了敗兵,心中稍喜,卻與帶來洞主商議曰:「吳今洞府已被蜀兵所占,今投何地安身?」帶來洞主曰:「止有一國可以破蜀。」獲喜曰:「何處可去?」帶來洞主曰:「此去東南七百里,有一國名烏戈國。國主兀突骨,身長二丈,不食五榖,以生蛇惡獸為飯;身有鱗甲,刀劍不能侵。其手下軍士。俱穿藤甲;其藤生於山澗之中,盤於石壁之內;國人採取浸於油中,半年方取出晒之;晒乾復浸,凡十餘遍,卻纔造成鎧甲,穿在身上,渡江不沉,經水不濕,刀箭皆不能入。因此號為『藤甲軍』。今大王可往求之。若得彼相助,擒諸葛亮如利刀破竹也。」
각설하고 패잔 남쪽 오랑캐 군사들 천여 명 중에 태반이 상처를 입고 도망하다 남쪽 오랑캐 왕 맹획을 만났다. 맹획이 패한 군사를 거두고 마음속으로 약간 기뻐하며 대래동주와 상의하여 말하기를 “오금동부가 이미 촉 군대에게 캐뜨려지고 점령되었으니 지금 어느 땅에 들어 가 몸을 편안히 할까?”하니 대래동주가 말하기를 “다만 한 나라만이 촉을 깨트릴 수 있을 뿐입니다.”하니 맹획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어느 곳에 갈 수 있는가?”했다, 대래동주가 말하기를 “여기서 동남쪽으로 칠백리 떨어진 곳에 한 나라가 있는데 이름이 오과국입니다. 나라의 주인은 올돌골인데 키가 이장으로 오곡을 먹지 않고 살아 있는 뱀, 흉한 짐승을 밥으로 삼습니다.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는데 칼과 검이 뚫지 못합니다. 그 부하 군사는 모두 등나무 갑옷을 입습니다. 그 등나무는 산골짜기에서 나며, 석벽 안에 서려 있는 것을 나라 사람들이 채취하여 기름에 담궈두기를 반년동안 하고 비로소 꺼내 (햇빛을)쬡니다. (햇밫에)쬐어 말리고 다시 (기름에) 담그기를 십여 번 한 후 갑옷을 만듭니다. 몸에 입으면 강을 건너도 가라앉지 않고 물을 지나도 젖지 않으며 칼과 화살이 모두 뚫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등갑군’이라 불립니다. 지금 대왕께서 가서 청할만 합니다. 만약 그가 서로 도와준다면 제갈량(제갈공명)을 사로잡는 것은 날카로운 칼로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했다.
孟獲大喜,遂投烏戈國,來見兀突骨。其洞無宇舍,皆居土穴之內。孟獲入洞,再拜哀告前事。兀突骨曰:「吾起洞之兵,與汝報讎。」獲欣然拜謝。於是兀突骨喚兩個領兵俘長:一名土安,一名奚泥;起三萬兵,皆穿藤甲,離烏戈國望東北而來。行至一江,名桃花水。兩岸有桃樹,歷年落葉於水中,若別國人飲之盡死;惟烏戈國人飲之,倍添精神。兀突骨兵至桃花渡口下寨,以待蜀兵。
맹획이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오과국에 들어 가 올돌골을 만났다. 그 동에는 집이 없고 모두 땅 구멍 안에 살았다. 맹획이 동에 들어 가 두 번 절하고 애절하게 앞의 일을 말하였다. 올돌골이 말하기를 “내가 동의 군대를 일으켜 너의 원수를 갚아 줄 것이다.”했다. 맹획이 기쁘게 절하며 감사하였다. 이에 올돌골이 두 개의 군대를 거느릴 부장을 불렀는데 한 사람의 이름은 토안이고, 또 한 사람의 이름은 계니로 삼만의 군대를 일으켰는데 모두 등갑을 입고 오과국으로부터 동북쪽을 향해 갔다. 행군하여 한 강에 이르렀는데 이름은 도화수이다. 양쪽 언덕에는 복숭아나무가 있어 여러 해 잎이 물 안에 떨어졌는데 만약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 물을 마시면 모두 죽는다. 오직 오과국 사람만은 그 물을 마시면 정신이 배로 더해진다. 올돌골의 군대가 도화수 나루에 이르러 영채를 세우고 촉의 군대를 기다렸다.
卻說孔明令蠻人哨探孟獲消息,回報曰:「孟獲請烏戈國主,引三萬藤甲軍,見屯於桃花渡口。孟獲又在各番聚集蠻兵,併力拒戰。」孔明聽說,提兵大進,直至桃花渡口,隔岸望見蠻兵不類人形,甚是醜惡;又問土人,言說即日桃葉正落,水不可飲。孔明退五里下寨,留魏嚴守寨。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남쪽 오랑캐 사람들로 하여금 맹획의 소식을 정탐하게 하였더니 돌아와 보고하여 말하기를 “맹획이 오과국주에게 청하여 삼만의 등갑군을 이끌고 도화수 나루에 주둔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했다. 맹획은 또한 각 번에 있는 남쪽 오랑캐 군대를 불러 모으고 힘을 합쳐 대항하여 싸우려 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을 듣고는 군데를 데리고 크게 진군하여 바로 도화수 나루에 이르러 언덕을 사이하고 남쪽 오랑캐를 바라보니 사람의 형상 같지 않고 매우 추악하였다. 또 토인(현지인)에게 물으니 그 날 복숭아나무 잎이 바로 떨어지고 있어 물을 마실 수 없다고 했다. 제갈공명이 오 리를 물러나 영채를 세우고 위연을 남겨 엄격히 영채를 지키게 했다.
次日,烏戈國主引一彪藤甲軍過河來,金鼓大震。魏延引兵出迎。蠻兵捲地而至。蜀兵以弩箭射到藤甲之上,皆不能透,俱落於地;刀砍鎗刺,亦不能入。蠻兵皆使利刀剛叉,蜀兵如何抵當,盡皆敗走。蠻兵不趕而回。魏延復回。趕到桃花渡口,只見蠻兵帶甲渡水而去內有困乏者,將甲脫下,放在水面,以身坐其上而渡。魏延急回大寨,來稟孔明,細言其事。
다음 날 오과국주가 한 떼의 등갑군을 이끌고 강을 건너오는데 징과 북소리가 크게 진동하였다. 위연이 군대를 이끌고 나가 맞이하였다. 남쪽 오랑캐 군대가 땅을 덮고 이르렀다. 촉의 군대가 쇠뇌로 화살을 쏘아 등갑에 적중되었으나 모두 뚫지 못하고 모두 땅에 떨어졌다. 칼로 베고 창으로 찔렀으나 또한 들어가지 않았다. 남쪽 오랑캐 군대는 모두 날카로운 칼과 강차(쇠스랑)를 사용하니 촉의 군대가 어떻게 막지 못하여 모두 무너져 달아났다. 남쪽 오랑캐 군대가 쫓지 않고 돌아갔다. 위연이 다시 돌아 와 뒤를 따라 도화수 나루에 이르렀는데 남쪽 오랑캐 군대가 갑옷을 입은 채 물을 건너가고, 안에 곤핍함이 있는(피곤한)자는 갑옷을 벗어 수면에 놓아두고 몸을 그 위에 앉아 건너는 것을 보았다. 위연이 급히 큰 영채로 돌아 가 제갈공명에게 보고하여 그 일을 자세하게 말하였다.
孔明請呂凱并土人問之。凱曰:「某素聞南蠻中有一烏戈國,無人倫者也。更有藤甲護身,急切難傷。又有桃葉惡水,本國人飲之,反添精神;別國人飲之,即死。如此蠻方,縱使全勝,有何益焉?不如班師早回。」孔明笑曰:「吾非容易到此,豈可便去?吾明日自有平蠻之策。」於是令趙雲助魏延守寨,且休輕出。
제갈공명이 여개와 토인(현지인)을 청해 물었다. 여개가 말하기를 “제가 평소에 남쪽 오랑캐 중에 한 오과국이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인륜이 없다고 합니다. 다시 등갑으로 몸을 보호하여 급히 해치기 어렵습니다. 또 복숭아나무 잎의(복숭아나무 잎이 떨어진) 나쁜 물은 본국 사람이 그 물을 마시면 도리어 정신을 더해 주지만 다른 나라 사람이 그것을 마시면 곧 죽습니다. 이 같은 남쪽 오랑캐를 설사 완전하게 이긴다 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군대를 돌려 일찍 돌아가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쉽게 여기에 이른 것이 아닌데 어찌 곧 돌아갈 수 있겠는가? 나에게 내일 직접 남쪽 오랑캐를 평정할 계책이 있다.”하고는 이에 조운(조자룡)으로 하여금 위연을 도와 영채를 지키게 하면서 가벼이 나가지 말라고 했다.
次日,孔明令土人引路,自乘小車到桃花渡口北岸山僻去處,遍觀地理。山險嶺峻之處,車不能行,孔明棄車步行。忽到一山,望見一谷,形如長蛇,皆危峭石壁,並無樹木,中間一條大路。孔明問土人曰:「此谷何名?」土人答曰:「此處名為盤蛇谷。出谷則三江城大路。谷前名塔郎甸。」孔明大喜曰:「此乃天賜吾成功於此也!」遂回舊路,上車歸寨,喚馬岱分付曰:「與汝黑油櫃車十輛,須用竹竿千條。櫃內之物,如此如此。可將本部兵去把住盤蛇谷兩頭依法而行。與汝半月限,一切完備。至期如此施設。倘有走漏,定按軍法。」
다음 날 제갈공명은 토인(현지인)으로 하여금 길을 인도하게 하고 스스로 작은 수레를 타고 도화수 나루 북쪽 언덕의 후미진 곳으로 가 두루 지리를 살폈다. 산과 고개가 험준하여 수레가 가지 못하자 제갈공명은 수레를 버리고 걸어갔다. 홀연히 한 산에 이르러 한 골짜기를 바라보니 형상이 긴 뱀과 같은데 모두 위태롭고 가파른 석벽으로 나무는 없으며 가운데는 한 갈래 큰 길이었다. 제갈공명이 토인(현지인)에게 물어 말하기를 “이 골짜기의 이름은 무엇인가?”하니 토인(현지인)이 답하여 말하기를 “이 곳의 이름은 반사곡입니다. 골짜기를 나가면 곧 삼강대로입니다. 골짜기 앞의 이름은 탑랑전이라 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는 곧 하늘이 내가 여기에서 공을 이루도록 내려주었구나!”했다. 마침내 옛 길로 돌아가 수레에 올라 영채로 돌아가 마대를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너에게 검은 기름 궤가 실린 수레 열 대를 줄 터이니 반드시 대나무 장대 천개를 써서 궤안의 물건을 이렇게 저렇게 하라. 본부의 군대를 거느리고 반사곡 양쪽을 잡아 머물며 법에 따라 행하라. 너에게 반달의 기한을 줄 것이니 일체를 완비하라. 기일에 이르기까지 이 같이 설치하고, 만약 누설된다면(부족함이 있다면) 군법으로 죄를 물을 것이다.”했다.
馬岱受計而去。又喚趙雲分付曰:「汝去盤蛇谷後,三江大路口如此守把。所用之物,剋日完備。」趙雲受計而去。又喚魏延分付曰:「汝可引本部兵去桃花渡口下寨。如蠻兵渡水來敵,汝便棄了寨。望白旗處而走。限半個月內,須要連輸十五陣,棄七個寨柵。若輸了十四陣,也休來見我。」
마대가 계책을 받고 갔다. 또 조운(조자룡)을 불러 분부하여 말하기를 “너는 반사곡 뒤로 가서 삼강대로 입구를 이 같이 지키라. 쓰이는 물건들은 날을 정해 완비하라.”했다. 조운(조자룡)이 계책을 받고 갔다. 또 위연을 불러 분부하여 말하기를 “너는 본부의 군대를 이끌고 도화수 나루에 가 영채를 세우라. 만약 남쪽 오랑캐 군대가 물을 건너와 맞선다면 너는 곧 영채를 버리고 흰 깃발을 향해 달려가라. 반 개월을 기한으로 반드시 잇달아 열다섯 번을 패하고 일곱 개의 영채와 목책을 버리라. 만약 잇달아 열네 번을 패하더라도 와서 나를 보지 마시오.”했다.
魏延領命,心中不樂,怏怏而去。孔明又喚張翼另引一軍,依所指之處,築立寨柵去了。卻令張嶷、馬忠引本洞所降千人,如此行之各人都依計而行。
위연은 명을 받고 마음속으로 앙앙불락하며 갔다. 제갈공명이 또 장익을 불러 한 개의 군대를 이끌고 지정한 곳에 의지하여 영채와 목책을 쌓아 세우게 하였다. 그리고 장의, 마충으로 하여금 본동의 항복한 천 명을 이끌고 이 같이 각각의 사람들이 모두 계책에 의거하여 행하러 가게 했다.
卻說孟獲與烏戈國主兀突骨曰:「諸葛亮多有巧計,只是埋伏。今後交戰,分付三軍:但見山谷之中,林木多處,不可輕進。」兀突骨曰:「大王說的有理。吾已知道中國人多行詭計。今後依此言行之。吾在前面廝殺,汝在背後教道。」
각설하고 맹획과 오과국주 올돌골에게 말하기를 “제갈량(제갈공명)은 교묘한 계책이 많이 있으니 이것은 매복일 것이다. 지금부터는 서로 싸울 때 삼군에 분부하여 산골짜기 안과 숲이 많은 곳이 보이면 가벼이 전진해서는 안 된다.”했다. 올돌골이 말하기를 “대왕(맹획)이 말한 것은 이치가 있습니다. 내가 이미 내가 이미 중국인들이 많이 속이는 계책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후로는 이 말에 의해 행하겠습니다. 내가(맹획) 앞에서 쇄도해 갈 터이니 너는 뒤에 있으면서 인도하십시오.”했다.
兩人商量已定。忽報蜀兵在桃花渡口北岸立起營寨。兀突骨即差二俘引藤甲軍渡河來,與蜀兵交戰。不數合,魏延敗走。蠻兵恐有埋伏,不趕自回。次日,魏延又去了營寨。蠻兵哨得,又引眾軍渡過河來戰。延出迎之。不數合,延敗走。蠻兵殺十餘里,見四下並無動靜,便在蜀寨中屯住。
두 사람이 상의를 마쳤다. 홀연히 촉의 군대가 도화수 나루 북쪽 언덕에 영채를 세우고 있다고 보고했다. 올돌골이 곧 두 부장을 보내 등갑군을 이끌고 강을 건너 가 촉의 군대와 싸우게 했다. 몇 합되지 않아 위연이 패하여 달아났다. 남쪽 오랑캐 군대가 매복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뒤쫓지 않고 스스로 돌아갔다. 다음날 위연이 또 영채에 갔다. 남쪽 오랑캐 군대가 알고는 또 여러 군대를 이끌고 강을 건너 싸우러 왔다. 위연이 나가 맞이하였다, 몇 합되지 않아 위연이 패하여 달아났다. 남쪽 오랑캐 군대가 십 여리를 쇄도해 오다 사방에서 아무런 동정이 없는 것을 보고 곧 촉의 연채에 주둔하였다.
次日,二俘長請兀突骨到寨,說知此事。兀突骨即引兵大進,將魏延追一陣。蜀兵皆棄甲拋戈而走。只見前有白旗,延引敗兵,急奔到白旗處,早有一寨,就寨中屯住。兀突骨驅兵追至,延引兵棄寨而走。蠻兵得了蜀寨。次日,又望前追殺。魏延回兵交戰,不三合又敗,只看白旗處而走。又有一寨,延就寨屯住。次日,蠻兵又至。延略戰又走。蠻兵占了蜀寨。
다음날 두 부장이 올돌골을 청해 영채에 이르자 이 일을 말하였다. 올돌골은 곧 군대를 이끌고 크게 전진하여 위연을 한바탕 뒤쫓았다. 촉의 군대가 모두 갑옷을 버리고 창을 던져버리고 달아났다. 앞에 있는 흰 깃발을 보자 위연은 패한 군대를 이끌고 급히 흰 깃발에 있는 곳에 이르니 이미 한 영채가 있어 영채 안으로 들어 가 주둔하였다. 올돌골이 군대를 몰아 뒤쫓아 이르니 위연이 군대를 이끌고 영채를 버리고 달아났다. 남쪽 오랑캐 군대가 촉의 영채를 얻었다. 다음 날 또 앞을 향해 뒤쫓아 쇄도했다. 위연은 군대를 돌려 싸우다 삼합이 되지 않아 또 패하여 다만 흰 깃발이 보이는 곳을 향해 달아났다. 또 한 영채가 있어 위연은 영채에 들어 가 주둔하였다. 다음 날 남쪽 오랑캐가 또 이르렀다. 위연은 싸우다 또 달아났다. 남쪽 오랑캐가 촉의 영채를 점령하였다.
話休絮煩。魏延且戰且走,已敗十五陣,連棄七個營寨。蠻兵大進追殺。兀突骨自在軍前破敵,於路但見林木茂盛之處,便不敢進;卻使人遠望,果見樹陰之中,旌旗招颭。兀突骨謂孟獲曰:「果不出大王所料。」孟獲大笑曰:「諸葛亮今番被吾識破!大王連日勝了他十五陣,奪了七個營寨,蜀兵望風而走。諸葛亮已是計窮;只此一進,大事定矣!」
번잡한 이야기는 그만두겠다. 위연은 싸우다 달아나기를 이미 열다섯 번을 패하고, 연이어 일곱 개의 영채를 버렸다. 남쪽 오랑캐군대가 크게 진군하여 쇄도해 왔다. 올돌골은 스스로 군대 앞에 있으면서 적을 깨트리고 있는데 길에서 숲이 무성한 곳을 보고는 감히 전진하지 못하고 사람을 시켜 멀리 바라보게 하였더니 과연 나무 그늘 아래 깃발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올돌골이 맹획에게 일러 말하기를 “과연 대왕(맹획)의 헤아린 바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하니 맹획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제갈량(제갈공명)이 이번에는 나에게 간파 당한 것이다. 대왕(올돌골)이 연일 그들을 열다섯 번 이기고, 일곱 개 영채를 빼앗으니 촉의 군대가 바람에 눕듯이 달아났습니다. 제갈량(제갈공명)은 이미 계책이 곤궁해졌으니 이번에 한번 진군하면 큰 일이 정해질 것이다.”했다.
兀突骨大喜,遂不以蜀兵為念。至第十六日,魏延引敗殘兵而來,與藤甲軍對敵。兀突骨騎象當先,頭戴日月狼鬚帽;身披金珠瓔絡;兩肋下露出生鱗甲;眼目中微露光芒;手指魏延大罵。延撥馬便走。後面蠻兵大進。魏延引兵轉過了盤蛇谷,望白旗而走。兀突骨望見山上並無草木,料無埋伏,放心追殺。趕到谷中,見數十輛黑油櫃車在當路。蠻兵報曰:「此是蜀兵運糧道路,因大王兵至,撇下糧車而走。」
올돌골이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촉의 군대를 생각하지(조심하지) 않았다. 제 십육일에 이르러 위연이 패잔병을 이끌고 와 등갑군과 대적하였다. 올돌골은 코끼리를 타고선두에 섰는데 머리에는 일월낭수모를 쓰고, 몸에는 금 구슬과 영락을 걸었으며 두 갈비뼈 아래에 물고기 비늘 같은 갑옷이 드러나 있었고, 눈 가운데서는 빛이 쏘아져 나왔다. (올돌골이)손으로 위연을 가리키며 크게 욕하였다. 위연이 말을 몰아 곧 달아났다. 위에서 남쪽 오랑캐 군대가 크게 진군해 왔다. 위연은 군대를 이끌고 반사곡을 돌아 지나 흰 깃발을 향해 달려갔다. 올돌골은 산 위에 풀과 나무가 없는 것을 바라보고는 매복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마음 놓고 좇아 왔다. 뒤를 쫓아 골짜기 안에 이르렀을 때 수십 대의 검은 기름 궤가 실린 수레가 길에 있는 것을 보았다. 남쪽 오랑캐 병졸이 보고하여 말하기를 “이는 촉 군대가 식량을 운반하는 도로인데 대왕(올돌골)의 군대가 이르자 식량을 실은 수레를 던져버리고 갔습니다.”했다.
兀突骨大喜,催兵追趕,將出谷口,不見蜀兵。只見橫木亂石滾下,壘斷谷口。兀突骨令兵開路而進,忽見前面大小車輛,裝載乾柴,盡皆火起。兀突骨忙教退兵,只聞後軍發喊,報說谷口已被乾柴壘斷。車中原來是火藥,一齊燒著。
올골대왕이 크게 기뻐하며 군대를 재촉하여 뒤를 쫓아 골짜기 입구를 나가려 하는데도 촉의 군대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가로지른 나무와 자잘한 돌들이 흘러내려 골짜기 입구를 (길을)끊었다. 올돌골이 군사로 하여금 길을 열 개하고 진군하는데 홀연히 앞쪽에 크고 작은 수레에 마른 섶이 실려 있고 모두 불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올돌골이 황망히 군대를 물리게 하였으나 뒤에 있는 군대가 지르는 함성만 들릴 뿐으로 골짜기 입구가 이미 마른 섶으로 끊어졌다고 보고 하였다. 수레 안에는 원래 화약이 있어서 일제히 불이 붙었다.
兀突骨見無草木,心尚不慌,令尋路而走。只見山上兩邊亂丟火把。火把到處,地中藥線皆看(著),就地飛起鐵炮。滿谷中火光亂舞。但逢藤甲,無有不著。將兀突骨并三萬藤甲軍,燒得互相擁抱,死於盤蛇谷中。
올돌골은 풀과 나무가 없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오히려 당황하지 않고 길을 찾아 달아나게 하였다. 산 위 양쪽에서 어지러이 횃불을 던지는 것을 보았다. 횃불이 이르는 곳마다 땅 속의 도화선 모두 불붙고 땅에서 철포가 날아올랐다. 온 골짜기 안에 불빛이 난무하고, 등갑을 만나자(닿자) 불붙지 않음이 없었다. 올돌골과 삼만의 등갑군이 서로 껴 앉고 불타 반사곡 안에서 죽었다.
孔明在山上往下看時,只見蠻兵被火燒的伸拳舒腿,大半被鐵炮打的頭臉粉碎,皆死於谷中,臭不可聞。孔明垂淚而歎曰:「吾雖有功於社稷,必損壽矣!」左右將士,無不感。
제갈공명은 산 위에 가서 내려와 보니 불에 탄 남쪽 오랑캐 군대가 손을 펴고 다리를 폈고, 태반은 철포에 맞아 머리와 얼굴이 분쇄되어 골짜기 안에서 죽었는데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제갈공명이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가 비록 사직에는 공이 있으나 반드시 수명이 줄어들 것이다!”했다. 좌우의 장수와 군사들이 감탄하지 않음이 없었다.
卻說孟獲在寨中,正望蠻兵回報。忽然千餘人笑拜於寨前,言說:「烏戈國與蜀兵大戰,將諸葛亮圍在盤蛇谷中了。特請大王前去接應。我等皆是本洞之人,不得已而降蜀。今知大王前來,特來助戰。」
각설하고 맹획은 영채 안에 있으면서 바로 남쪽 오랑캐 군대가 돌아와 보고하기를 바랐다. 홀연히 천여 명이 영채 앞에서 웃으며 절하고 말하기를 “오과국과 촉의 군대가 크게 싸웠는데 제갈공명을 반사곡 안에서 둘러싸고 있습니다. 특히 대왕께서 앞으로 가 상황에 맞게 대응하시기를 청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이 본동의 사람들로 부득이 촉에 항복하였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앞에 온 것을 알고 특히 와서 싸움을 도우려 합니다.”했다.
孟獲大喜,即引宗黨并所聚番人,連夜上馬;就令蠻兵引路。方到盤蛇谷時,只見火光甚烈,臭味難聞。獲知中計,急退兵時,左邊張嶷,右邊馬忠,兩路軍殺出。獲方欲抵敵,一聲喊起,蠻兵中大半皆是蜀兵,將蠻王宗黨并聚集的番人盡皆擒了。孟獲匹馬殺出重圍,望山徑而走。
맹획이 크게 기뻐하며 곧 종당(친인척)과 모아두었던 번 사람을 이끌고 밤을 세워 말을 타고 가는데 남쪽 오랑캐로 하여금 길을 인도하게 하였다. 막 반사곡에 이르렀을 때 불빛이 매우 치열하게 나타나고 냄새를 맡기 어려웠다. 맹획은 계책에 빠졌음을 알고 급히 군대를 물릴 때 왼쪽에는 장의, 오른 쪽에는 마충이 두 길의 군대가 쇄도해 나왔다. 맹획이 바야흐로 적을 막으려 하였으나 한 소리 함성이 일어나는데 남쪽 오랑캐 가운데 태반이 모두 촉의 군대로 남쪽 오랑캐왕의 종당(친인척)과 모였던 번 사람들을 모두 사로잡았다. 맹획이 필마로 여러 겹의 포위를 뚫고 나와 산 지름길을 향해 달아났다.
正走之間,見山凹裏一簇人馬,擁出一輛小車,車中端坐一人,綸巾羽扇,身衣道袍,乃孔明也。孔明大喝曰:「反賊孟獲!今番如何!」獲急回馬走。傍邊閃過一將,攔住去路,乃是馬岱。孟獲措手不及,被馬岱活捉了。此時王平、張翼已引一軍,趕到蠻寨中,將祝融夫人并衣應老小皆活捉而來。
달아나는 사이에 산 오목한 곳에서 한 떼의 인마가 한 대의 작은 수레를 둘러싸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수레 안에 한 사람이 단정히 앉았는데 윤건을 쓰고 깃 부채를 들었으며 몸에는 도포를 입었으니 곧 제갈공명이었다. 제갈공명이 크게 외쳐 말하기를 “반적 맹획아! 이번에는 어떻게 하려느냐!”하니 맹획이 급히 말을 돌려 달아났다. 옆에서 번개처럼 한 장수사 지나가면서 가는 길을 막으니 곧 마대였다. 맹획이 손 쓸 새 없이 마대에게 산채로 잡혔다. 이 때 왕평, 장익은 이미 한 군대를 이끌고 쫓아 가 남쪽 오랑캐 영채 안에 이르러 축융부인과 남녀노소를 모두 산채로 잡아 왔다.
孔明歸到寨中,升帳而坐,謂眾將曰:「吾今此計,不得已而用之,大損陰德。我料敵人必算吾於林木多處埋伏,吾卻空設旌旗,實無兵馬,疑其心也。吾令魏文長連輸十五陣者,堅其心也。吾見盤蛇谷止一條路,兩壁皆是光石,並無樹木,下面都是沙石,因令馬岱將黑油車安排於谷中。車中油櫃內,皆是預先造下的火砲,名曰『地雷』。一砲中藏九砲,三十步埋之。中用竹竿通節,以引藥線;纔一發動,山殞石裂。吾又令趙子龍預備草車,安排於谷口,又於山上準備大木亂石。卻令魏延賺兀突骨藤甲軍入谷,放出魏延,即斷其路,隨後焚之。吾聞:『利於水者必不利於火』藤甲雖刀箭不入,乃油浸之物,見火必著。蠻兵如此頑皮,非火攻安能取勝?使烏戈國之人不留種類者,是吾之大罪也!」
제갈공명은 돌아가 영채 안에 이르러 군막에 올라 앉아 여러 장수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지금 이 계책을 부득이 쓴 것으로 크게 음덕을 덜어낸 것이다. 나는 적이 반드시 내가 숲이 많은 곳에 매복할 것이라 여길 것을 헤아리고 내가 공연히 깃발만 설치하고 실제는 병마를 없게 한 것은 그 마음을 의혹하게 한 것입니다. 내가 위문장(위연)으로 하여금 연이어 열다섯 개의 진을 연이어 패하게 한 것은 그 마음을 확고하게 하여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반사곡은 한 갈래 길뿐이고, 두 벽이 모두 광석이고, 아울러 나무가 없으며 바닥이 모두 모래와 돌인 것을 보았기 때문에 마대로 하여금 검은 기름을 실은 수레를 골짜기 안에 배열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수레 안의 기름 궤 안에는 모두 미리 만들어 둔 화포를 두었는데 ‘지뢰’라 이름합니다. 한 포 안에는 아홉 개의 포를 감추어 두고 삼십보마다 그것을 묻었습니다. 안에는 대나무 장대 마디를 뚫어 통하게 하는 것으로서 약선을 이끌어 한 발이 터지면 산이 무너지고 돌이 갈라집니다. 내가 또한 조자룡으로 하여금 미리 풀 수레를 준비하게 하여 골짜기 입구에 배열하게 하고 또 산 위에 큰 나무와 작은 돌을 준비하게 하였다. 그리고 위연으로 하여금 올돌골의 등갑군을 골짜기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고 위연이 나온 뒤 그 길을 끊고 뒤를 따라 불을 지른 것입니다. 내가 들으니 ‘물에 이로운 것은 반드시 불에는 이롭지 않다.’합니다. 등갑이 비록 칼과 화살이 들어가지 않으나 기름에 담궜던 물건이라 불이 반드시 붙을 것을 알았습니다. 남쪽 오랑캐 군대가 이 같이 단단한 가죽이니(단단한 갑옷을 입었으니) 불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면 어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오과국 사람으로 하여금 종족을 남기지 못하게 한 것은 이는 나의 큰 죄일 것입니다!”했다.
眾將拜伏曰:「丞相天機,神鬼莫測也!」孔明令押過孟獲來。孟獲跪於帳下。孔明令去其縛,教且在別帳與酒食 (孔明喚管酒食)官至坐榻前 官至坐榻前,如此如此,分付而去。
여러 장수들이 절하며 엎드려 말하기를 “승상의 천기(계략)은 귀신도 헤아리지 못할 것입니다.” 했다. 제갈공명은 맹획을 압송해 오게 하였다. 맹획은 군막 아래에서 무릎을 꿇었다. 제갈공명은 그 결박을 풀게 하고 따로 군막에 있게 하면서 술과 음식을 주게 하고, 관리를 탑전(임금의 자리)에 이르자 앉게 한 뒤 이러게 저렇게 하라고 분부하고 갔다.
卻說孟獲與祝融夫人並孟優、帶來洞主、一切宗黨在別帳飲酒。忽一人入帳謂孟獲曰:「丞相面羞,不欲與公相見。特令我來放公回去,再招人馬來決勝負。公今可速去。」孟獲垂淚言曰:「七擒七縱,自古未嘗有也。吾雖化外之人,頗知禮義,直如此無羞恥乎?」遂同兄弟妻子宗黨等人,皆匍匐跪於帳下,肉袒謝罪曰:「丞相天威,南人不復反矣!」孔明曰:「公今服乎?」獲泣謝曰:「某子子孫孫皆感覆載生成之恩,安得不服?」
각설하고 맹획과 축융부인, 맹우, 데리고 온 동주와 모든 동당(친인척)은 별도의 군막에서 술을 마셨다. 홀연히 한 사람이 군막에 들어와 맹획에게 일러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부끄러워하여 공과 서로 만나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로 하여금 가서 공을 놓아주어 돌아가게 하고, 다시 인마를 불러 와 승부를 결정하자고 했습니다. 공은 지금 속히 가도 됩니다.”했다. 맹획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일곱 번 사로잡고 일곱 번 놓아준 것은 예로부터 일찍이 있지 않았습니다. 내가 비록 왕의 교화를 벗어난 사람이나 자못 예의를 아는데 바로 이 같고서 부끄러움이 없겠는가?”하고는 마침내 형제, 처자, 종당(친인척)의 사람과 함께 모두 기어서 군막아래에 무릎을 꿇고 맨 몸으로 사죄하여 말하기를 “승상의 하늘같은 위엄에 남쪽 사람들은 다시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공은 지금 복종합니까?”하니 맹획이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여 말하기를 “나의 자자손손이 모두 거듭해서 생명을 살려 준 은혜에 감동하였는데 어찌 복종하지 않겠습니까?”했다.
孔明乃請孟獲上帳,設宴慶賀,就令永為洞主。所奪之地,盡皆退還。孟獲宗黨及諸蠻兵,無不感戴,皆欣然跳躍而去。後人有詩讚孔明曰:
제갈공명이 맹획을 청해 군막에 오르게 하고 연회를 베풀어 축하하고 길이 동주가 되게 하였다. 빼앗은 땅은 모두 돌려주었다. 맹획의 종당(친인척)과 여러 남쪽 오랑캐드리 감동하여 받들지 않음이 없어 모두 기뻐 뛰면서 갔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제갈공명을 기려 말하기를
羽扇綸巾擁碧幛,七擒妙策制蠻王,至今溪洞傳威德,為選高原立廟堂。
깃털 부채들고 윤건 쓰고 푸름 군막을 지키며, 일곱 번 사로잡는 신묘한 계책으로 남쪽 오랑캐 왕을 제재하였다. 지금까지 계동에 위엄과 덕이 전해져 높은 평지를 가려 사당을 세웠다.
長史費褘入諫曰:「今丞相親提士卒,深入不毛,收服蠻方;蠻王今已歸服,何不置官吏,與孟獲一同守之?」孔明曰:「如此有三不易:留外人則當留兵,兵無所食,一不易也;蠻人傷破,父兄死亡,留外人而不留兵,必成禍患,二不易也;蠻人累有廢殺之罪,自有嫌疑,留外人終不相信,三不易也。今吾不留人,不運糧,與相安於無事而已。」
장사 비위가 들어 가 간하여 말하기를 “지금 승상께서 사졸을 거느리고 깊이 불모의 땅에 들어 와 남쪽 오랑캐지역을 거두어 복종시켰습니다. 남쪽 오랑캐 왕이 이미 귀의하여 복종하였는데 어찌하여 관리를 두고 맹획과 함께 지키지 않습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이 같은 세 가지 쉽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외인(영토 밖의 사람)을 머물러 있게 하면 곡 마땅히 군대를 머물게 해야 하는데 군다가 먹을 음식이 없으니 한 가지 쉽지 않은 것입니다. 남쪽 오랑캐 사람을 해치고 깨트려 부형이 죽었는데 영토 밖의 사람을 머물게 하면서 군대를 머물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재앙과 근심을 이룰 것이니 두 번째 쉽지않음입니다. 남쪽 오랑캐가 여러 번 없애고 죽이는 죄를 지어 스스로 의심함이 있는데 밖의 사람을 남기면 마침내 서로 믿지 않을 것이니 세 번 째 쉽지 않음입니다. 지금 나는 사람을 남기지 않고, 식량을 운반하지 않아 서로 일이 없음을 편안하게 여길 뿐입니다.”했다.
眾人盡服。於是蠻方皆感孔明恩德,乃為孔明立生祠,四時享祀;皆呼之為「慈父」;各送珍珠金寶丹漆藥材,耕牛戰馬,以資軍用,誓不相反。南方已定。
여러 사람들이 모두 승복하였다. 이에 남쪽 오랑캐 나라가 모두 제갈공명의 은덕에 감동하여 곧 제갈공명이 살아 있을 때 사당을 세워 사시로 제사하고, 모두 ‘자부’라 불렀다. 각각 진주, 금과 보물, 붉은 칠, 약재, 밭을 가는 소, 싸울 때 쓰는 말을 보내 군대의 비용으로 쓰게 하고, 서로 배반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였다. 남쪽 지방이 안정되었다.
卻說孔明犒軍已畢,班師回蜀,令魏延引本部兵為前鋒。延引兵方至瀘水,忽然陰雲四合,水面上一陣狂風驟起,飛沙走石,軍不能進。延退兵回報孔明。孔明遂請孟獲問之。正是:塞外蠻人方帖服,水邊鬼卒又猖狂。未知孟獲所言若何,且看下文分解。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군사들에게 음식을 베풀어 위로하기를 마치고 군대를 돌려 촉으로 돌아가는데 위연으로 하여금 본부의 군대를 이끌고 선봉이 되게 하였다. 위연이 군대를 이끌고 막 노수에 이르렀는데 홀연히 짙은 구름이 사방에 끼고 물 위에서 한바탕 광풍이 불어올라 모래가 날고 돌이 구르니 군대가 전진할 수 없었다. 위연이 군대를 물리고 돌아 가 제갈공명에게 보고하였다. 제갈공명이 마침내 맹획을 청하여 물었다. 바로 이러하다. 먼 변방 오랑캐 사람들이 바야흐로 복종하였는데 물가의 귀신 무리들이 미쳐 날뛴다. 맹획이 어떻게 말할지 알지 못하니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삼국연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92회 조자룡은 힘을 떨쳐 다섯 장수를 목 베고, 제갈량(제갈공명)은 지혜로 세 개 성을 취하다. (0) | 2021.07.14 |
---|---|
제91회 노수에 제사하며 한 승상은 군대를 돌리고, 중원을 정벌하려 무후(제갈공명)가 표를 올리다. (0) | 2021.07.06 |
제89회 무향후는 네 번째 계책을 쓰고, 남만왕(남쪽 오랑캐왕)은 다섯 번째 사로잡히다. (0) | 2021.06.18 |
제88회 노수(금사강)을 건너 두 번째로 번왕을 결박하고(사로잡고), 거짓 항복을 알아 세 번째로 맹획을 사로잡다. (0) | 2021.06.11 |
제87회 승상(제갈공명)이 크게 군대를 일으켜 남쪽 도적을 정벌하고, 천병(천자의 군대)에 대항하는 남쪽 오랑캐 왕(맹획)을 처음 잡다. (0) | 2021.06.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