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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

제90회 거수(거대한 짐승)를 몰아 여섯 번째로 남쪽 오랑캐를 깨트리고, 기름 먹인 등나무 갑옷(등갑군)을 불살라 일곱 번째 맹획을 사로잡다.

by 최인표 2021. 6. 25.

第九十回驅巨獸六破蠻兵燒藤甲七擒孟獲

90회 거수(거대한 짐승)를 몰아 여섯 번째로 남쪽 오랑캐를 깨트리고, 기름 먹인 등나무 갑옷(등갑군)을 불살라 일곱 번째 맹획을 사로잡다.

 

卻說孔明放了孟獲等一干人楊鋒父子皆封官爵重賞洞兵楊鋒等拜謝而去孟獲等連夜奔回銀坑洞那洞外有三江乃是瀘水甘南水西城水三路水會合故為三江其洞北近平坦二百餘里多產萬物洞西二百餘里有鹽井西南二百里直抵瀘正南三百里乃是梁都洞洞中有山環抱其洞山上出銀礦故名為銀坑山山中置宮殿樓臺以為蠻王巢穴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맹획 등 일천 명을 놓아 주고 양봉 주자 모두에게 관직과 작위를 봉하며 동의 군사들에게 많은 상을 주었다. 양봉 등이 절하고 감사하며 갔다. 맹획 등은 밤새 달려 은굉동으로 돌아갔다. 이 동 밖에는 삼강이 있는데 곧 노수, 감남수, 서역수이다. 세 물 길이 모여 합하기 때문에 삼강이라 한 것이다. 그 동의 북쪽 가까이 평탄한 곳이 이백 여리인데 만물이 많이 생산된다. 동 서쪽 이백여 리에는 소금우물이 있고, 서남쪽 이백리에는 노수, 감수가 막으며, 정 남쪽 삼백리에 곧 양도동이 있다. 동 안에는 산이 있는데 그 동을 둘러싸고 있고, 산 위에 은이 나오는 광산이 있다. 그러므로 은갱산이라 한다. 산 안에 궁전과 루대를 두었는데 남쪽 오랑캐 왕이 사는 곳으로 삼았다.

 

其中建一祖廟名曰家鬼」。四時殺牛宰馬享祭名曰卜鬼」。每年常以蜀人并外鄉之人祭之若人患病不肯服藥只禱師巫名為藥鬼。」其處無刑法但犯罪即斬有女長成卻於溪中沐浴男女自相混淆任其自配父母不禁名為學藝」。年歲雨水均調則種稻穀倘若不熟殺蛇為羹煮象為飯每方隅之中上戶號曰:「洞主」,次日酋長」。每月初一十五兩日皆在三江城中買賣轉易貨物其風俗如此

그 안에 한 조상 사당을 세우고 이름을 가귀라 했다. 네 시절에 소와 말을 죽여 제사를 지냈는데 이름을 복귀라 했다. 매년 항상 촉 사람과 외향의 사람으로서(사람을 제물로 삼아) 제사하였다. 만약 사람이 병들면 기꺼이 약을 먹지 않고 무당에게 기도할 뿐인데 이름을 약귀라 했다. 그 곳에는 형법이 없고 죄를 지으면 곧 베어 죽였다. 여자가 장성하면 계곡 안에서 목욕하고 남녀가 저절로 서로 뒤섞여 마음대로 짝하여도 부모가 금하지 않았는데 이름을 학예라 했다. 해마다 비가 고르게 내려 벼와 곡식을 파종하고, 만약 익지 않으면 뱀을 죽여 국을 만들고 코끼리를 삶아 밥으로 삼는다. 매 모퉁이 안의 상호를 동주라하고, 다음을 추장이라 한다. 매우러 초하루와 보름 두 날에는 모두 삼강성 안에서 사고팔고 물건을 바꾼다. 그 풍속이 이와 같다.

 

卻說孟獲在洞中聚集宗黨千餘人謂之曰:「吾屢受辱於蜀兵立誓欲報之汝等有何高見?」言未畢一人應曰:「吾舉一人可破諸葛亮。」眾視之乃孟獲妻弟現為八番部長名曰帶來洞主」。

각설하고 맹획은 동 안에 있으면서 친척 무리 천여 명을 모아 그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여러 번 촉의 군대에게 욕을 받고 보복할 것을 맹세하였다. 너희들은 무슨 훌륭한 계책이 있는가?”하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한 사람이 대답을 하여 말하기를 제가 한 사람을 천거하니 제갈량(제갈공명)을 깨트릴 수 있습니다.”했다. 무리들이 그를 보니 곧 맹획의 처의 동생으로 현재 팔번부장인 대래동주였다.

 

獲大喜急問何人帶來洞主曰:「此去西南八納洞洞主木鹿大王深通法術出則騎象能呼風喚雨常有虎豹豺狼毒蛇惡蝎跟隨手下更有三萬神兵甚是英勇大王可修書具禮某親往求之此人若允何懼蜀兵哉?」獲忻然令國舊()齎書而去卻令朵思大王守把三江城以為前面屏障

맹획이 크게 기뻐하며 급히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다. 대래동주가 말하기를 여기서 서남쪽을 가면 팔납동 동주 목록대왕은 법술에 깊이 통하고, 나가면 곧 코끼리를 타는데 바람과 비를 부를 수 있고 항상 범, 표범, 승냥이, 이리, 독사, 전갈이 뒤를 따릅니다. 부하들은 다시 삼만의 신병이 있는데 매우 용맹합니다. 대왕께서 글을 쓰고 예를 갖추시면 제가 직접 가서 청하겠습니다. 이 사람이 만약 허락한다면 어찌 촉의 군대를 두려워하겠습니까?”했다. 맹획이 기버하며 국구로 하여금 글을 가지고 가게 했다. 그리고 타사대왕으로 하여금 삼강성을 지키게 하는 것으로서 앞쪽의 병장(방어벽)이 되게 했다.

 

卻說孔明提兵直至三江城遙望見此城三面傍江一面通旱即遣魏延趙雲同嶺一軍於旱路打城軍到城下時城上弓弩齊發原來洞中之人多習弓弩一弩齊發十矢箭頭上皆用毒藥但有中箭者皮肉皆爛見五臟而死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군대를 데리고 삼강성에 이르러 멀리서 바라보니 이 성은 삼면이 강이고, 한 쪽 만 육지로 통하는 것을 보고는 곧 위연, 조운(조자룡)을 보내 함께 일군을 거느리고 육로에서 성을 치게 했다. 군대가 성 아래 이르렀을 때 성 위에서 궁노가 일제히 발사되었다. 알고 보니 동 중의 사람들은 궁노를 많이 연습하여 하나의 쇠뇌가 일제히 열 개의 화살을 발사하는데 화살 촉에는 모두 독약을 발라 화살에 적중된 자는 피부와 살이 모두 썩어 오장이 들어 나면서 죽었다.

 

趙雲魏延不能取勝回見孔明言藥箭之事孔明自乘小車到軍前看了虛實回到寨中令軍退數里下寨蠻兵望見蜀兵遠退皆大笑作賀只疑蜀兵懼怯而退因此夜間安心穩睡不去哨探

조운(조자룡)과 위연이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 제갈공명에게 독양 칠한 화살의 일을 말하였다. 제갈공명이 스스로 작은 수레를 타고 군대 앞에 이르러 허실을 보고 돌아가 영채 안에 이르러 군대를 수리 물려 영채를 세우게 하였다. 남쪽 오랑캐 군대는 촉의 군대가 멀리 물러나는 것을 보고 모두 크게 웃으며 축하하면서 촉의 군대가 두려워하고 겁을 내어 물러갔다고 의심하고, 이 때문에 밤에도 안심하고 편안히 잠자고 보초와 정찰을 가지 않았다.

 

卻說孔明約軍退後即閉寨不出一連五日並無號令黃昏左側忽起微風孔明傳令曰:「每軍要衣襟一幅限一更時分應點無者立斬。」諸將皆不知其意只得依令預備孔明又傳令曰:「諸軍包土俱在三江城下交割先到者有賞。」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군대를 물린 후 곧 영채를 닫고 나가지 못하게 했다. 연이어 오 일이 지나는 동안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황혼 무렵 홀연히 작은 바람이 일어났다. 제갈공명이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모든 군대는 옷 깃 한 폭으로 일 경 때까지 점검에 대응하라. 없는 자는 베어 죽일 것이다.”했다. 여러 장수들이 모구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다만 명령에 의하여 미리 준비하였다. 제갈공명이 또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여러 군사들은 흙을 싸서 모두 삼강성 아래에 쏟아 부으라 먼저 이른 자에게는 상이 있을 것이다.”했다.

 

眾軍聞令皆包淨土飛奔城下孔明令積土為蹬道先上城者為頭功於是蜀兵十餘萬并降兵萬餘將所包之土一齊棄於城下一霎積土成山接連城上一聲暗號蜀兵皆上城蠻兵急放弩時大半早被執下餘者棄城而走朵思大王死於亂軍之中蜀將督軍分路剿殺孔明取了三江城所得珍寶皆賞三軍殘敗蠻兵逃回見孟獲:「朵思大王身死失了三江城。」獲大驚

여러 군사들이 명령을 듣고 모두 깨끗한 흙을 싸서 나는 듯이 성 아래로 달려 갔다. 제갈공명은 흙을 쌓아 오르는 길을 만들게 하고 먼저 성에 오른 자를 일등 공으로 삼았다. 이에 촉의 군대 십여 만과 항복한 군사 만여 명이 싸 두었던 흙을 일제히 성 아래에 던졌다. 잠깐 사이에 흙이 쌓여 산을 이루어 성위와 이어졌다. 한 소리 암호에 촉의 군대가 모두 성에 올랐다. 남쪽 오랑캐 군사가 급히 쇠뇌를 쏘았으나 태반이 일찍 잡히고 나머지는 모두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타사대왕은 난군 중에서 죽었다. 촉의 장수가 군대를 감독라여 길을 나누어 섬멸하였다. 제갈공명은 삼강성을 취하고 얻은 보물을 모두 삼군에게 상으로 주었다. 패한 남쪽 오랑캐 군대는 도망하여 돌아가 맹획을 만나 말하기를 타사대왕은 죽고 삼강성을 잃었습니다.”했다. 맹획은 크게 놀랐다.

 

正慮之間人報蜀兵以度江見在本洞前下寨孟獲甚是慌張忽然屏後一人大笑而出曰:「既為男子何無智也我雖是一婦人願與你出戰。」獲視之乃妻祝融夫人也夫人世居南蠻乃祝融氏之後善使飛刀百發百中孟獲起身稱謝夫人忻然上馬引宗黨猛將數百員生力洞兵五萬出銀坑宮闕來與蜀兵對敵

바로 걱정하고 있는 사이에 사람이 촉의 군대가 강을 건너 본 동 앞에 영채를 세우는 것을 보았다고 보고하였다. 맹획은 매우 안절부절 못하였다. 홀연히 병풍 뒤에서 한 사람이 크게 웃으며 나와 말하기를 남자가 되어 어찌 지혜가 없는가? 내가 비록 일개 부인이나 너희들과 나가 싸우기를 원한다.”했다. 맹획이 그를 보니 곧 아내인 축융부인이었다. 부인은 남쪽 오랑캐 땅에 대대로 살았으니 곧 축융씨의 후손이었다. 비도를 잘 사용하여 백발백중이었다. 맹획이 몸을 일으켜 칭찬하고 감사하였다. 부인이 흔연히 말에 올라 종족 무리 맹장 수백명과 힘이 펄펄한 동의 군대 오만을 이끌고 은갱 궁궐을 나와 가서 촉의 군대와 대적하였다.

 

方纔轉過洞口一彪軍攔住為首蜀將乃是張嶷蠻兵見之卻早兩路擺開祝融夫人背插五口飛刀手挺丈八長標坐下捲毛赤兔馬張嶷見之暗暗稱奇二人驟馬交鋒戰不數合夫人撥馬便走張嶷趕去空中一把飛刀落下嶷急用手隔正中左臂翻身落馬蠻兵發一聲喊將張嶷執縛去了

막 동구를 돌자 한 떼의 군대가 막으니 곧 우두머리 되는 촉의 장수는 곧 장의였다. 남쪽 오랑캐 군대가 그를 보고는 재빨리 진을 전개하였다. 축융부인이 등에 다섯 개의 비도를 꼿고, 손에는 장팔장표를 잡고, 털을 돌돌 만 적토마를 타고 있었다. 장의가 그것을 보고 암암리에 기이함을 칭찬하였다. 두 사람이 말을 몰라 서로 싸웠다. 싸운 지 몇 합되지 않아 부인이 말을 돌려 곧 달아났다. 장의가 쫓아가는데 공중에서 하나의 비도가 떨어져 내렸다. 장의가 급히 손을 써서 막았으나 바로 왼쪽 팔에 적중하니 몸을 뒤집으며 말에서 떨어졌다. 남쪽 오랑캐가 함성을 지르며 장의를 잡아 묶어 갔다.

 

馬忠聽得張嶷被執急出救時早被蠻兵困住望見祝融夫人挺標勒馬而立忠忿怒向前去戰坐下馬絆倒亦被擒了都解人洞中來見孟獲獲設席慶賀夫人叱刀斧手推出張嶷馬忠要斬獲止曰:「諸葛亮放吾五次今番若斬彼將是不義也且囚在洞中待擒住諸葛亮殺之未遲。」夫人從其言笑飲作樂

마충이 장의가 잡혔다는 것을 듣고 급히 구하러 나갈 때 바로 남쪽 오랑캐 군대에게 막혔다. 축융부인이 창을 잡고 말고삐를 잡고 서 있는 것을 바라보고는 마충이 분노하여 앞을 향해 싸우러 가는데 타고 있던 말이 걸려 넘어지면서 또한 사로잡혔다. 모두 동중에 압송하여 맹획을 만났다. 맹획은 자리를 베풀고 축하하였다. 부인(축융부인)이 도부수를 질책하여 장의와 마충을 끌어내어 허리를 베어 죽이라고 했다. 맹획이 저지하여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나를 다섯 번이나 놓아주었는데 지금 만약 그의 장수를 벤다면 이는 의롭지 않은 것입니다. 또 동 안에 가두어 두고 제갈공명을 사로잡기를 기다렸다가 죽여도 늦지 않습니다.”했다. 축융부인이 그 말을 따르고, 웃으며 술을 마시며 즐겼다.

 

卻說敗殘兵來見孔明告知其事孔明即喚馬岱趙雲魏延三人受計各自領軍前去次日蠻兵報入洞中說趙雲搦戰祝融夫人即上馬出迎二人戰不數合雲撥馬便走夫人恐有埋伏勒兵而回延又引軍來搦戰夫人縱馬相迎正交鋒緊急延詐敗而逃夫人只不趕

각설하고 패잔병이 와서 제갈공명을 만나 그 일을 알렸다. 제갈공명이 곧 마대, 조운(조자룡), 위연 세 사람을 불러 계책을 주었다. 각자 군대를 거느리고 전진해 갔다. 다음 날 남쪽 오랑캐 군대가 동 안에 들어 와 조운(조자룡)이 싸움을 걸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축융부인이 곧 말에 올라 나가 맞이하였다. 두 사람이 싸운 지 몇 합되지 않아 조운(조자룡)이 말을 돌려 곧 달아났다. 부인은 매복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말고삐를 당겨 돌아갔다. 위연이 또 군대를 이끌고 와 싸움을 거니 축융부인이 말을 달려 맞이하였다. 바로 싸움이 긴급해지자 위연이 거짓으로 패하여 도망하는 척 하였으나 축융부인이 쫓지 않았다.

 

次日趙雲又引軍來搦戰夫人領洞兵出迎二人戰不數合雲詐敗而走夫人案標()不趕欲收兵回洞時魏延引軍齊聲辱罵夫人急挺標()來取魏延延撥馬便走夫人忿趕怒來延驟馬奔入山僻小路忽然背後一聲響亮延回頭視之夫人仰鞍落馬

다음 날 조운(조자룡)이 또 군대를 이끌고 와 싸움을 거니 축융부인이 동의 군대를 거느리고 나와 맞이하였다. 두 사람이 싸운 지 몇 합되지 않아 조운(조자룡)이 거짓으로 패하여 달아나니 축융부인이 창에 기대(창을 든 채) 뒤쫓지 않았다. 군대를 거두어 동으로 돌아가려 할 때 위연이 군대를 이끌고 일제히 큰 소리로 욕하니 축융부인이 급히 창을 내밀고 와서 위연을 취하려 했다. 위연이 말을 돌려 곧 달아났다. 축융부인이 분노하여 쫓아오니 위연이 말을 달려 산구석의 작은 길로 달려 들어가는데 홀연히 뒤에서 한 소리가 울렸다. 위연이 머리를 돌려 보니 축융부인이 말안장에서 뒤집혀 떨어졌다.

 

原來馬岱埋伏在此用絆馬索絆倒就裏擒縛解投大寨而來蠻將洞兵皆來救時趙雲一陣殺散孔明端坐於帳上馬岱解祝融夫人到孔明即令武士去其縛請在別帳賜酒壓驚遣使往告孟獲欲送夫人換張嶷馬忠二將

알고보니 마대가 여기에 매복하고 있다가 말이 줄에 걸려 쓰러지자 사로잡아 묶어 큰 영채로 압송해 왔다. 남쪽 오랑캐 장수와 동의 군대가 모두 와서 구하려할 때 조운(조자룡)이 한바탕 죽이고 흩어지게 하였다. 제갈공명이 군막 안에 단정히 앉아 있는데 마대가 축융부인을 압송하여 이르렀다. 제갈공명은 곧 무사로 하여금 그 결박을 풀게 하고 별도의 장막에 있게 하면서 술을 내리고 놀란 마음을 가라앉게 하고, 사자를 보내 맹획에게 가서 축융부인과 장의, 마충 두 장수를 바꾸고자한다고 알리게 하였다.

 

孟獲允諾即放出張嶷馬忠還了孔明孔明遂送夫人入洞孟獲接著又喜又惱忽報八納洞主到孟獲出帳迎接見其人騎著白象身穿金珠瓔絡腰懸兩口大刀領著一班餵養虎豹豺狼之士簇擁而入獲再拜哀告訴說前事木鹿大王許以報讎獲大喜設宴相待

맹획은 허락하고 곧 장의와 마충을 방출하여 제갈공명에게 돌아가게 하였다. 제갈공명이 마침내 축융부인을 보내 동에 들어가게 하였다. 맹획이 맞이하고 한편으로는 기뻐하면서도 또 번뇌(걱정)하였다. 홀연히 팔납동주가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맹획이 장막을 나가 영접했다. 그 사람을 보니 흰 코끼리를 타고 몸에는 금 구슬과 옥구슬을 걸치고, 허리에는 두 개의 큰 칼을 차고 있었고, 한 떼의 범, 표범, 승냥이, 이리를 기르는 군사의 무리들을 빽빽하게 거느리고 들어왔다. 맹획이 두 번 절하고 도움을 청하며 앞의 일을 하소연하며 말하였다. 목록대왕이 원수를 갚을 것을 허락하였다. 맹획이 크게 기뻐하며 연회를 베풀어 대접하였다.

 

次日木鹿大王引本洞帶猛獸而出趙雲魏延聽知蠻兵出遂將軍馬布成陣勢二將並轡立於陣前視之只見蠻兵旗幟器械皆別人多不穿衣甲盡裸身赤體面目醜陋身帶四把尖刀軍中不鳴鼓角但篩金為號木鹿大王腰挂兩把寶刀手執蒂身騎白象從大旗中而出趙雲見了魏延曰:「我等上陣一生未嘗見如此人物。」

다음 날 목록대왕이 본동(필납동)을 이끌고 맹수를 데리고 나갔다. 조운(조자룡)과 위연은 남쪽 오랑캐 군대가 나온다는 것을 듣고 마침내 군마를 거느리고 진세를 만들었다. 두 장수가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진 앞에 서서 그들을 보았는데 남쪽 오랑캐 군대의 깃발과 기계가 모두 다른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많이 옷과 갑옷을 입니 않아 모두 맨 몸이었으며 얼굴은 더럽고 비루하였다. 몸에는 네 개의 뾰족한 갈을 가지고 있었고, 군대 안에는 북과 뿔피리가 울리지 않고 다만 징과 꽹가리를 치는 것으로 신호를 삼았다. 목록대왕은 허리에 두 개의 보도를 차고 손에 종 꼭지를 잡으며, 몸으로는 흰코끼리를 타고 큰 깃발 안에서 나왔다. 조운(조자룡)이 위연을 보고 말하기를 우리들은 진중에서 일생을 보냈는데 일찍이 이 같은 인물을 보지 못하였다.”했다.

 

二人正沉吟之際只見木鹿大王口中不知念甚咒語手搖蒂鐘忽然狂風大作飛砂走石如同驟雨一聲畫角虎豹豺狼猛獸毒蛇乘風而出張牙五爪衝將過來蜀兵如何抵當往後便退蠻兵隨後追殺直趕到三江界路方回趙雲魏延收聚敗兵來孔明帳前請罪細說此事

두 사람이 바로 망설이고 있을 때 목록대왕이 입안으로 알지 못하는 주문을 외며 손으로 꼭지 달린 종을 흔들었다. 홀연히 광풍이 크게 일면서 모래가 날고 돌이 굴러 비가 몰아치는 것과 같은데 한 소리 화각이 울리면서 범, 표범, 승냥이, 이리, 맹수, 독사 등이 바람을 타고 나와 이와 다섯 발톱을 펴고 치며 왔다.(달려왔다.)촉의 군대가 어떻게 막지 못하고 뒤로 가다가 물러났다. 남쪽 오랑캐 군대가 뒤를 따라 와 죽이며 쫓아오다 삼강성 경계 길에 이르러 비로소 돌아갔다. 조운(조자룡)과 위염이 패한 군사를 거두어 모아 제갈공명의 군막 앞에 와 죄(패전한 죄)를 절하며 자세하게 이 일을 자세하게 말하였다.

 

孔明笑曰:「非汝二人之罪吾未出茅廬之時先知南蠻有驅虎豹之法吾在蜀中已辦下破此陣之物也隨軍有二十輛車俱封記在此今日且用一半留下一半後有別用。」遂令左右取了十輛紅油櫃車到帳下留十輛黑油櫃車在後眾皆不知其意孔明將櫃打開皆是木刻綵畫巨獸俱用五色絨線為毛衣鋼鐵為牙爪一個可騎坐十人孔明選了精壯軍士一千餘人領了一百口內裝煙火之物藏在車中次日孔明驅兵大進布於洞口

제갈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너희 두 사람의 죄가 아니다. 내가 띠풀 지붕 집(모려)를 나오지 않았을 때 먼저 남쪽 오랑캐 지역에 구호표(범과 표범을 모는)’의 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촉 중에 있을 때 이미 이 진을 깨트릴 물건을 준비하였다. 군대를 따르는 이십대의 수레가 있는데 모두 밀봉하고 기록한 것이 여기에 있다. 오늘 반을 쓰고 반은 남겨두었다가 후에 따로 쓸 곳이 있다.”하고는 마침내 좌우로 하여금 열 대의 붉은 기름상자를 군막 앞에 이르게 하고, 열 대의 검은 기름 상자를 실은 수레는 뒤에 남겨두게 하였다. 무리들이 모두 그 뜻을 알지 못하였다. 제갈공명이 궤를 가져다 쳐서 열어 보니 모두 나무로 조각하고 채색한 거수로 모두 다섯 색의 털실을 써서 털옷을 만들고 강철로 이빨과 발톱을 만들었는데 한 개가 열 사람이 타고 앉을만했다. 제갈공명은 정예롭고 건장한 군사 일천여 명을 뽑아 안에서 연기와 불을 만들 수 있는 물건 일백 개를 수령하여 수레 안에 감추게 하였다. 다음 날 제갈공명이 군대를 몰아 크게 진군하게 하여 동의 입구에 진열하였다.

 

蠻兵探知入洞報與蠻王木鹿大王自謂無敵即與孟獲引洞兵而出孔明綸巾羽扇身衣道袍端坐於車上孟獲指曰:「車上坐的便是諸葛亮若擒住此人大事定矣!」木鹿大王口中念咒手搖蒂鐘頃刻之間狂風大作猛獸突出孔明將羽扇一搖其風便回吹彼陣中去了蜀陣中假獸擁出蠻洞真獸見蜀陣巨獸口吐火焰鼻出黑煙身搖銅鈴張牙舞爪而來諸惡獸不敢前進皆奔回蠻洞反將蠻兵衝倒無數孔明驅兵大進鼓角齊鳴望前追殺木鹿大王死於亂軍之中洞內孟獲宗黨皆棄宮闕山越領而走孔明大軍占了銀坑洞

남쪽 오랑캐 군대가 알아채고는 동에 들어 가 남쪽 오랑캐 왕에게 보고하였다. 목록대왕은 스스로 무적이라 이르고는 곧 맹획과 동의 군대를 이끌고 나갔다. 제갈공명은 윤건을 쓰고 깃털 부채를 들고 몸에 도포를 입고 수레 위에 단정히 앉았다. 맹획이 가리키며 말하기를 수레 위에 앉은 이가 제갈량(제갈공명)이구나! 만약 이 사람을 사로잡는다면 대사가 정해질 것이다.”하니 목록대왕이 입안으로 주문을 외면서 손으로 꼭지 종을 흔들었다. 잠간 사이에 광풍이 크게 일어나면서 맹수가 튀어 나왔다. 제갈공명이 깃털 부채를 한 번 흔드니 그 바람이 곧 그들 진으로 돌아 불었다. 촉의 진중에서 가짜 짐승을 둘러싸고 나왔다. 남쪽 오랑캐 동의 진짜 짐승이 촉 진 안의 거수가 입으로 화염을 뿜고, 코로 검은 연기를 뿜고, 몸으로 구리 방울을 흔들고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흔들며 오는 것을 보고 여러 나쁜 짐승들이 감히 전진하지 못하고 모두 남쪽 오랑캐 동으로 달려 돌아가니 도리어 남쪽오랑캐 군대가 치여 엎어진 이가 헤아릴 수 없었다. 제갈공명이 군대를 몰아 크게 진군하며 북과 뿔피리를 일제히 울리며 앞을 향해 쫓아 쇄도하였다. 목록대왕은 어지러운 군대 안에서 죽었다. 동 안의 맹획과 친척들이 모두 궁궐을 버리고 산을 헤치고 고개를 넘어 달아났다. 제갈공명의 대군이 은갱동을 점령하였다.

 

次日孔明正要分兵緝擒孟獲忽報:「蠻王孟獲妻弟帶來洞主因勸孟獲歸降獲不從今將孟獲並祝融夫人及宗黨數百餘人盡皆擒來獻與丞相。」

다음 날 제갈공명은 바로 군대를 나누어 맹획을 묶어 사로잡으려 하는데 홀연히 남쪽 오랑캐 왕 맹획 처의 동생이 동주를 데리고 와 맹획에게 항복할 것을 권하였으나 맹획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맹획과 축융부인, 종당 친척 수백여 명을 모두 사로잡아 승상께 바치려 한다.”하고 보고하였다.

 

孔明聽知即喚張嶷馬忠分付如此如此二將受了計引二千精壯兵伏於兩廊孔明即令守門將俱放進來帶來洞主引刀斧手解孟獲等數百人拜於殿下孔明大喝曰:「與吾擒下!」兩廊壯兵齊出二人捉一人盡被執縛孔明大笑曰:「量汝些小詭計如何瞞得過我汝見二次俱是本洞人擒汝來降吾不加害汝只道吾深信故來詐降欲就洞中殺吾!」喝令武士搜其身畔果然各帶利刀

제갈공명이 듣고는 곧 장의 마충을 불러 여차저차 하라고 분부하였다. 두 장수가 계책을 받고 이천 명의 정예롭고 건장한 군대를 이끌고 양쪽 회랑에 숨어 있었다. 제갈공명이 곧 수문장으로 하여금 모두 놓아 나아가게 하도록(문을 열러 들어오게)했다. 동주(대래동주)가 도부수를 이끌고 맹획 등 수백 명을 압송하여 전각 아래서 절하였다. 제갈공명이 크게 외쳐 말하기를 나에게 사로잡아 오라(이들을 사로잡으라!)”하니 두 회랑의 건장한 군사들이 일제히 나와 두 사람이 한 사람을 사로잡아 모두 결박하였다. 제갈공명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너의 조그만 속이는 계책으로 어떻게 나를 속여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가? 너는 본 동의 사람들이 너를 사로잡아 항복하러 왔을 떼 내가 너를 해치지 않는 것을 보고 다만 내가 깊이 믿고 있다 여기고 와서 거짓으로 항복하여 동 중에 나아가 나를 죽이려 한 것이다.” 하고는 무사에게 그 몸을 수색하라고 소리쳤다. 과연 각각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있었다.

 

孔明問孟獲曰:「汝原說在汝家擒住方始心服今日如何?」獲曰:「此是我等自來送死非汝之能也吾心未服。」孔明曰:「吾擒住六番尚然不服欲待何時耶?」獲曰:「汝第七次擒住吾方傾心歸服誓不反矣。」孔明曰:「巢穴已破吾何慮哉?」令武士盡去其縛叱之曰:「番擒住再若支吾必不輕恕!」孟獲等抱頭鼠竄而去

제갈공명이 맹획에게 물어 말하기를 너는 원래 너의 집에 있을 때 사로잡힌다면 비로소 마음으로 복종한다. 하였는데 오늘은 어떠한가?”하니 맹획이 말하기를 이는 우리들이 스스로 죽을 곳에 온 것이지 너의 능력이 아니다. 나는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는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여섯 번 사로잡았는데도 오히려 복종하지 않으니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하니 맹획이 말하기를 네가 일곱 번째 사로잡는다면 내가 비로소 마음을 기우려 귀의하여 복종하고 배반하지 않을 것을 맹서한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둥지(근거지)가 이미 깨트려졌는데 내가 무엇을 걱정하겠는가?”하고는 무사로 하여금 그 결박을 풀게하고 소리쳐 말하기를 이 번에 사로잡힌다면 다시 만약 나에게 버틴다면(저항한다며) 반드시 가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했다. 맹획 등이 머리를 감사고 쥐새끼처럼 갔다,

 

卻說敗殘蠻兵有千餘人大半中傷而逃正遇蠻王孟獲獲收了敗兵心中稍卻與帶來洞主商議曰:「吳今洞府已被蜀兵所占今投何地安身?」帶來洞主曰:「止有一國可以破蜀。」獲喜曰:「何處可去?」帶來洞主曰:「此去東南七百里有一國名烏戈國國主兀突骨身長二丈不食五榖以生蛇惡獸為飯身有鱗甲刀劍不能侵其手下軍士俱穿藤甲其藤生於山澗之中盤於石壁之內國人採取浸於油中半年方取出晒晒乾復浸凡十餘遍卻纔造成鎧甲穿在身上渡江不沉經水不濕刀箭皆不能入因此號為藤甲軍』。今大王可往求之若得彼相助擒諸葛亮如利刀破竹也。」

각설하고 패잔 남쪽 오랑캐 군사들 천여 명 중에 태반이 상처를 입고 도망하다 남쪽 오랑캐 왕 맹획을 만났다. 맹획이 패한 군사를 거두고 마음속으로 약간 기뻐하며 대래동주와 상의하여 말하기를 오금동부가 이미 촉 군대에게 캐뜨려지고 점령되었으니 지금 어느 땅에 들어 가 몸을 편안히 할까?”하니 대래동주가 말하기를 다만 한 나라만이 촉을 깨트릴 수 있을 뿐입니다.”하니 맹획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어느 곳에 갈 수 있는가?”했다, 대래동주가 말하기를 여기서 동남쪽으로 칠백리 떨어진 곳에 한 나라가 있는데 이름이 오과국입니다. 나라의 주인은 올돌골인데 키가 이장으로 오곡을 먹지 않고 살아 있는 뱀, 흉한 짐승을 밥으로 삼습니다.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는데 칼과 검이 뚫지 못합니다. 그 부하 군사는 모두 등나무 갑옷을 입습니다. 그 등나무는 산골짜기에서 나며, 석벽 안에 서려 있는 것을 나라 사람들이 채취하여 기름에 담궈두기를 반년동안 하고 비로소 꺼내 (햇빛을)쬡니다. (햇밫에)쬐어 말리고 다시 (기름에) 담그기를 십여 번 한 후 갑옷을 만듭니다. 몸에 입으면 강을 건너도 가라앉지 않고 물을 지나도 젖지 않으며 칼과 화살이 모두 뚫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등갑군이라 불립니다. 지금 대왕께서 가서 청할만 합니다. 만약 그가 서로 도와준다면 제갈량(제갈공명)을 사로잡는 것은 날카로운 칼로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했다.

 

孟獲大喜遂投烏戈國來見兀突骨其洞無宇舍皆居土穴之內孟獲入洞再拜哀告前事兀突骨曰:「吾起洞之兵與汝報讎。」獲欣然拜謝於是兀突骨喚兩個領兵俘長一名土安一名奚泥起三萬兵皆穿藤甲離烏戈國望東北而來行至一江名桃花水兩岸有桃樹歷年落葉於水中若別國人飲之盡死惟烏戈國人飲之倍添精神兀突骨兵至桃花渡口下寨以待蜀兵

맹획이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오과국에 들어 가 올돌골을 만났다. 그 동에는 집이 없고 모두 땅 구멍 안에 살았다. 맹획이 동에 들어 가 두 번 절하고 애절하게 앞의 일을 말하였다. 올돌골이 말하기를 내가 동의 군대를 일으켜 너의 원수를 갚아 줄 것이다.”했다. 맹획이 기쁘게 절하며 감사하였다. 이에 올돌골이 두 개의 군대를 거느릴 부장을 불렀는데 한 사람의 이름은 토안이고, 또 한 사람의 이름은 계니로 삼만의 군대를 일으켰는데 모두 등갑을 입고 오과국으로부터 동북쪽을 향해 갔다. 행군하여 한 강에 이르렀는데 이름은 도화수이다. 양쪽 언덕에는 복숭아나무가 있어 여러 해 잎이 물 안에 떨어졌는데 만약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 물을 마시면 모두 죽는다. 오직 오과국 사람만은 그 물을 마시면 정신이 배로 더해진다. 올돌골의 군대가 도화수 나루에 이르러 영채를 세우고 촉의 군대를 기다렸다.

 

卻說孔明令蠻人哨探孟獲消息回報曰:「孟獲請烏戈國主引三萬藤甲軍見屯於桃花渡口孟獲又在各番聚集蠻兵併力拒戰。」孔明聽說提兵大進直至桃花渡口隔岸望見蠻兵不類人形甚是醜惡又問土人言說即日桃葉正落水不可飲孔明退五里下寨留魏嚴守寨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남쪽 오랑캐 사람들로 하여금 맹획의 소식을 정탐하게 하였더니 돌아와 보고하여 말하기를 맹획이 오과국주에게 청하여 삼만의 등갑군을 이끌고 도화수 나루에 주둔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했다. 맹획은 또한 각 번에 있는 남쪽 오랑캐 군대를 불러 모으고 힘을 합쳐 대항하여 싸우려 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을 듣고는 군데를 데리고 크게 진군하여 바로 도화수 나루에 이르러 언덕을 사이하고 남쪽 오랑캐를 바라보니 사람의 형상 같지 않고 매우 추악하였다. 또 토인(현지인)에게 물으니 그 날 복숭아나무 잎이 바로 떨어지고 있어 물을 마실 수 없다고 했다. 제갈공명이 오 리를 물러나 영채를 세우고 위연을 남겨 엄격히 영채를 지키게 했다.

 

次日烏戈國主引一彪藤甲軍過河來金鼓大震魏延引兵出迎蠻兵捲地而至蜀兵以弩箭射到藤甲之上皆不能透俱落於地刀砍鎗刺亦不能入蠻兵皆使利刀剛叉蜀兵如何抵當盡皆敗走蠻兵不趕而回魏延復回趕到桃花渡口只見蠻兵帶甲渡水而去內有困乏者將甲脫下放在水面以身坐其上而渡魏延急回大寨來稟孔明細言其事

다음 날 오과국주가 한 떼의 등갑군을 이끌고 강을 건너오는데 징과 북소리가 크게 진동하였다. 위연이 군대를 이끌고 나가 맞이하였다. 남쪽 오랑캐 군대가 땅을 덮고 이르렀다. 촉의 군대가 쇠뇌로 화살을 쏘아 등갑에 적중되었으나 모두 뚫지 못하고 모두 땅에 떨어졌다. 칼로 베고 창으로 찔렀으나 또한 들어가지 않았다. 남쪽 오랑캐 군대는 모두 날카로운 칼과 강차(쇠스랑)를 사용하니 촉의 군대가 어떻게 막지 못하여 모두 무너져 달아났다. 남쪽 오랑캐 군대가 쫓지 않고 돌아갔다. 위연이 다시 돌아 와 뒤를 따라 도화수 나루에 이르렀는데 남쪽 오랑캐 군대가 갑옷을 입은 채 물을 건너가고, 안에 곤핍함이 있는(피곤한)자는 갑옷을 벗어 수면에 놓아두고 몸을 그 위에 앉아 건너는 것을 보았다. 위연이 급히 큰 영채로 돌아 가 제갈공명에게 보고하여 그 일을 자세하게 말하였다.

 

孔明請呂凱并土人問之凱曰:「某素聞南蠻中有一烏戈國無人倫者也更有藤甲護身急切難傷又有桃葉惡水本國人飲之反添精神別國人飲之即死如此蠻方縱使全勝有何益焉不如班師早回。」孔明笑曰:「吾非容易到此豈可便去吾明日自有平蠻之策。」於是令趙雲助魏延守寨且休輕出

제갈공명이 여개와 토인(현지인)을 청해 물었다. 여개가 말하기를 제가 평소에 남쪽 오랑캐 중에 한 오과국이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인륜이 없다고 합니다. 다시 등갑으로 몸을 보호하여 급히 해치기 어렵습니다. 또 복숭아나무 잎의(복숭아나무 잎이 떨어진) 나쁜 물은 본국 사람이 그 물을 마시면 도리어 정신을 더해 주지만 다른 나라 사람이 그것을 마시면 곧 죽습니다. 이 같은 남쪽 오랑캐를 설사 완전하게 이긴다 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군대를 돌려 일찍 돌아가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쉽게 여기에 이른 것이 아닌데 어찌 곧 돌아갈 수 있겠는가? 나에게 내일 직접 남쪽 오랑캐를 평정할 계책이 있다.”하고는 이에 조운(조자룡)으로 하여금 위연을 도와 영채를 지키게 하면서 가벼이 나가지 말라고 했다.

 

次日孔明令土人引路自乘小車到桃花渡口北岸山僻去處遍觀地理山險嶺峻之處車不能行孔明棄車步行忽到一山望見一谷形如長蛇皆危峭石壁並無樹木中間一條大路孔明問土人曰:「此谷何名?」土人答曰:「此處名為盤蛇谷出谷則三江城大路谷前名塔郎甸。」孔明大喜曰:「此乃天賜吾成功於此也!」遂回舊路上車歸寨喚馬岱分付曰:「與汝黑油櫃車十輛須用竹竿千條櫃內之物如此如此可將本部兵去把住盤蛇谷兩頭依法而行與汝半月限一切完備至期如此施設倘有走漏定按軍法。」

다음 날 제갈공명은 토인(현지인)으로 하여금 길을 인도하게 하고 스스로 작은 수레를 타고 도화수 나루 북쪽 언덕의 후미진 곳으로 가 두루 지리를 살폈다. 산과 고개가 험준하여 수레가 가지 못하자 제갈공명은 수레를 버리고 걸어갔다. 홀연히 한 산에 이르러 한 골짜기를 바라보니 형상이 긴 뱀과 같은데 모두 위태롭고 가파른 석벽으로 나무는 없으며 가운데는 한 갈래 큰 길이었다. 제갈공명이 토인(현지인)에게 물어 말하기를 이 골짜기의 이름은 무엇인가?”하니 토인(현지인)이 답하여 말하기를 이 곳의 이름은 반사곡입니다. 골짜기를 나가면 곧 삼강대로입니다. 골짜기 앞의 이름은 탑랑전이라 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는 곧 하늘이 내가 여기에서 공을 이루도록 내려주었구나!”했다. 마침내 옛 길로 돌아가 수레에 올라 영채로 돌아가 마대를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너에게 검은 기름 궤가 실린 수레 열 대를 줄 터이니 반드시 대나무 장대 천개를 써서 궤안의 물건을 이렇게 저렇게 하라. 본부의 군대를 거느리고 반사곡 양쪽을 잡아 머물며 법에 따라 행하라. 너에게 반달의 기한을 줄 것이니 일체를 완비하라. 기일에 이르기까지 이 같이 설치하고, 만약 누설된다면(부족함이 있다면) 군법으로 죄를 물을 것이다.”했다.

 

馬岱受計而去又喚趙雲分付曰:「汝去盤蛇谷後三江大路口如此守把所用之物剋日完備。」趙雲受計而去又喚魏延分付曰:「汝可引本部兵去桃花渡口下寨如蠻兵渡水來敵汝便棄了寨望白旗處而走限半個月內須要連輸十五陣棄七個寨柵若輸了十四陣也休來見我。」

마대가 계책을 받고 갔다. 또 조운(조자룡)을 불러 분부하여 말하기를 너는 반사곡 뒤로 가서 삼강대로 입구를 이 같이 지키라. 쓰이는 물건들은 날을 정해 완비하라.”했다. 조운(조자룡)이 계책을 받고 갔다. 또 위연을 불러 분부하여 말하기를 너는 본부의 군대를 이끌고 도화수 나루에 가 영채를 세우라. 만약 남쪽 오랑캐 군대가 물을 건너와 맞선다면 너는 곧 영채를 버리고 흰 깃발을 향해 달려가라. 반 개월을 기한으로 반드시 잇달아 열다섯 번을 패하고 일곱 개의 영채와 목책을 버리라. 만약 잇달아 열네 번을 패하더라도 와서 나를 보지 마시오.”했다.

 

魏延領命心中不樂怏怏而去孔明又喚張翼另引一軍依所指之處築立寨柵去了卻令張嶷馬忠引本洞所降千人如此行之各人都依計而行

위연은 명을 받고 마음속으로 앙앙불락하며 갔다. 제갈공명이 또 장익을 불러 한 개의 군대를 이끌고 지정한 곳에 의지하여 영채와 목책을 쌓아 세우게 하였다. 그리고 장의, 마충으로 하여금 본동의 항복한 천 명을 이끌고 이 같이 각각의 사람들이 모두 계책에 의거하여 행하러 가게 했다.

 

卻說孟獲與烏戈國主兀突骨曰:「諸葛亮多有巧計只是埋伏今後交戰分付三軍但見山谷之中林木多處不可輕進。」兀突骨曰:「大王說的有理吾已知道中國人多行詭計今後依此言行之吾在前面廝殺汝在背後教道。」

각설하고 맹획과 오과국주 올돌골에게 말하기를 제갈량(제갈공명)은 교묘한 계책이 많이 있으니 이것은 매복일 것이다. 지금부터는 서로 싸울 때 삼군에 분부하여 산골짜기 안과 숲이 많은 곳이 보이면 가벼이 전진해서는 안 된다.”했다. 올돌골이 말하기를 대왕(맹획)이 말한 것은 이치가 있습니다. 내가 이미 내가 이미 중국인들이 많이 속이는 계책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후로는 이 말에 의해 행하겠습니다. 내가(맹획) 앞에서 쇄도해 갈 터이니 너는 뒤에 있으면서 인도하십시오.”했다.

 

兩人商量已定忽報蜀兵在桃花渡口北岸立起營寨兀突骨即差二俘引藤甲軍渡河來與蜀兵交戰不數合魏延敗走蠻兵恐有埋伏不趕自回次日魏延又去了營寨蠻兵哨得又引眾軍渡過河來戰延出迎之不數合延敗走蠻兵殺十餘里見四下並無動靜便在蜀寨中屯住

두 사람이 상의를 마쳤다. 홀연히 촉의 군대가 도화수 나루 북쪽 언덕에 영채를 세우고 있다고 보고했다. 올돌골이 곧 두 부장을 보내 등갑군을 이끌고 강을 건너 가 촉의 군대와 싸우게 했다. 몇 합되지 않아 위연이 패하여 달아났다. 남쪽 오랑캐 군대가 매복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뒤쫓지 않고 스스로 돌아갔다. 다음날 위연이 또 영채에 갔다. 남쪽 오랑캐 군대가 알고는 또 여러 군대를 이끌고 강을 건너 싸우러 왔다. 위연이 나가 맞이하였다, 몇 합되지 않아 위연이 패하여 달아났다. 남쪽 오랑캐 군대가 십 여리를 쇄도해 오다 사방에서 아무런 동정이 없는 것을 보고 곧 촉의 연채에 주둔하였다.

 

次日二俘長請兀突骨到寨說知此事兀突骨即引兵大進將魏延追一陣蜀兵皆棄甲拋戈而走只見前有白旗延引敗兵急奔到白旗處早有一寨就寨中屯住兀突骨驅兵追至延引兵棄寨而走蠻兵得了蜀寨次日又望前追殺魏延回兵交戰不三合又敗只看白旗處而走又有一寨延就寨屯住次日蠻兵又至延略戰又走蠻兵占了蜀寨

다음날 두 부장이 올돌골을 청해 영채에 이르자 이 일을 말하였다. 올돌골은 곧 군대를 이끌고 크게 전진하여 위연을 한바탕 뒤쫓았다. 촉의 군대가 모두 갑옷을 버리고 창을 던져버리고 달아났다. 앞에 있는 흰 깃발을 보자 위연은 패한 군대를 이끌고 급히 흰 깃발에 있는 곳에 이르니 이미 한 영채가 있어 영채 안으로 들어 가 주둔하였다. 올돌골이 군대를 몰아 뒤쫓아 이르니 위연이 군대를 이끌고 영채를 버리고 달아났다. 남쪽 오랑캐 군대가 촉의 영채를 얻었다. 다음 날 또 앞을 향해 뒤쫓아 쇄도했다. 위연은 군대를 돌려 싸우다 삼합이 되지 않아 또 패하여 다만 흰 깃발이 보이는 곳을 향해 달아났다. 또 한 영채가 있어 위연은 영채에 들어 가 주둔하였다. 다음 날 남쪽 오랑캐가 또 이르렀다. 위연은 싸우다 또 달아났다. 남쪽 오랑캐가 촉의 영채를 점령하였다.

 

話休絮煩魏延且戰且走已敗十五陣連棄七個營寨蠻兵大進追殺兀突骨自在軍前破敵於路但見林木茂盛之處便不敢進卻使人遠望果見樹陰之中旌旗招颭兀突骨謂孟獲曰:「果不出大王所料。」孟獲大笑曰:「諸葛亮今番被吾識破大王連日勝了他十五陣奪了七個營寨蜀兵望風而走諸葛亮已是計窮只此一進大事定矣!」

번잡한 이야기는 그만두겠다. 위연은 싸우다 달아나기를 이미 열다섯 번을 패하고, 연이어 일곱 개의 영채를 버렸다. 남쪽 오랑캐군대가 크게 진군하여 쇄도해 왔다. 올돌골은 스스로 군대 앞에 있으면서 적을 깨트리고 있는데 길에서 숲이 무성한 곳을 보고는 감히 전진하지 못하고 사람을 시켜 멀리 바라보게 하였더니 과연 나무 그늘 아래 깃발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올돌골이 맹획에게 일러 말하기를 과연 대왕(맹획)의 헤아린 바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하니 맹획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제갈량(제갈공명)이 이번에는 나에게 간파 당한 것이다. 대왕(올돌골)이 연일 그들을 열다섯 번 이기고, 일곱 개 영채를 빼앗으니 촉의 군대가 바람에 눕듯이 달아났습니다. 제갈량(제갈공명)은 이미 계책이 곤궁해졌으니 이번에 한번 진군하면 큰 일이 정해질 것이다.”했다.

 

兀突骨大喜遂不以蜀兵為念至第十六日魏延引敗殘兵而來與藤甲軍對敵兀突骨騎象當先頭戴日月狼鬚帽身披金珠瓔絡兩肋下露出生鱗甲眼目中微露光芒手指魏延大罵延撥馬便走後面蠻兵大進魏延引兵轉過了盤蛇谷望白旗而走兀突骨望見山上並無草木料無埋伏放心追殺趕到谷中見數十輛黑油櫃車在當路蠻兵報曰:「此是蜀兵運糧道路因大王兵至下糧車而走。」

올돌골이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촉의 군대를 생각하지(조심하지) 않았다. 제 십육일에 이르러 위연이 패잔병을 이끌고 와 등갑군과 대적하였다. 올돌골은 코끼리를 타고선두에 섰는데 머리에는 일월낭수모를 쓰고, 몸에는 금 구슬과 영락을 걸었으며 두 갈비뼈 아래에 물고기 비늘 같은 갑옷이 드러나 있었고, 눈 가운데서는 빛이 쏘아져 나왔다. (올돌골이)손으로 위연을 가리키며 크게 욕하였다. 위연이 말을 몰아 곧 달아났다. 위에서 남쪽 오랑캐 군대가 크게 진군해 왔다. 위연은 군대를 이끌고 반사곡을 돌아 지나 흰 깃발을 향해 달려갔다. 올돌골은 산 위에 풀과 나무가 없는 것을 바라보고는 매복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마음 놓고 좇아 왔다. 뒤를 쫓아 골짜기 안에 이르렀을 때 수십 대의 검은 기름 궤가 실린 수레가 길에 있는 것을 보았다. 남쪽 오랑캐 병졸이 보고하여 말하기를 이는 촉 군대가 식량을 운반하는 도로인데 대왕(올돌골)의 군대가 이르자 식량을 실은 수레를 던져버리고 갔습니다.”했다.

 

兀突骨大喜催兵追趕將出谷口不見蜀兵只見橫木亂石滾下壘斷谷口兀突骨令兵開路而進忽見前面大小車輛裝載乾柴盡皆火起兀突骨忙教退兵只聞後軍發喊報說谷口已被乾柴壘斷車中原來是火藥一齊燒著

올골대왕이 크게 기뻐하며 군대를 재촉하여 뒤를 쫓아 골짜기 입구를 나가려 하는데도 촉의 군대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가로지른 나무와 자잘한 돌들이 흘러내려 골짜기 입구를 (길을)끊었다. 올돌골이 군사로 하여금 길을 열 개하고 진군하는데 홀연히 앞쪽에 크고 작은 수레에 마른 섶이 실려 있고 모두 불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올돌골이 황망히 군대를 물리게 하였으나 뒤에 있는 군대가 지르는 함성만 들릴 뿐으로 골짜기 입구가 이미 마른 섶으로 끊어졌다고 보고 하였다. 수레 안에는 원래 화약이 있어서 일제히 불이 붙었다.

 

兀突骨見無草木心尚不慌令尋路而走只見山上兩邊亂丟火把火把到處地中藥線皆看()就地飛起鐵炮滿谷中火光亂舞但逢藤甲無有不著將兀突骨并三萬藤甲軍燒得互相擁抱死於盤蛇谷中

올돌골은 풀과 나무가 없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오히려 당황하지 않고 길을 찾아 달아나게 하였다. 산 위 양쪽에서 어지러이 횃불을 던지는 것을 보았다. 횃불이 이르는 곳마다 땅 속의 도화선 모두 불붙고 땅에서 철포가 날아올랐다. 온 골짜기 안에 불빛이 난무하고, 등갑을 만나자(닿자) 불붙지 않음이 없었다. 올돌골과 삼만의 등갑군이 서로 껴 앉고 불타 반사곡 안에서 죽었다.

 

孔明在山上往下看時只見蠻兵被火燒的伸拳舒腿大半被鐵炮打的頭臉粉碎皆死於谷中臭不可聞孔明垂淚而歎曰:「吾雖有功於社稷必損壽矣!」左右將士無不感

제갈공명은 산 위에 가서 내려와 보니 불에 탄 남쪽 오랑캐 군대가 손을 펴고 다리를 폈고, 태반은 철포에 맞아 머리와 얼굴이 분쇄되어 골짜기 안에서 죽었는데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제갈공명이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가 비록 사직에는 공이 있으나 반드시 수명이 줄어들 것이다!”했다. 좌우의 장수와 군사들이 감탄하지 않음이 없었다.

 

卻說孟獲在寨中正望蠻兵回報忽然千餘人笑拜於寨前言說:「烏戈國與蜀兵大戰將諸葛亮圍在盤蛇谷中了特請大王前去接應我等皆是本洞之人不得已而降蜀今知大王前來特來助戰。」

각설하고 맹획은 영채 안에 있으면서 바로 남쪽 오랑캐 군대가 돌아와 보고하기를 바랐다. 홀연히 천여 명이 영채 앞에서 웃으며 절하고 말하기를 오과국과 촉의 군대가 크게 싸웠는데 제갈공명을 반사곡 안에서 둘러싸고 있습니다. 특히 대왕께서 앞으로 가 상황에 맞게 대응하시기를 청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이 본동의 사람들로 부득이 촉에 항복하였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앞에 온 것을 알고 특히 와서 싸움을 도우려 합니다.”했다.

 

 

孟獲大喜即引宗黨并所聚番人連夜上馬就令蠻兵引路方到盤蛇谷時只見火光甚烈臭味難聞獲知中計急退兵時左邊張嶷右邊馬忠兩路軍殺出獲方欲抵敵一聲喊起蠻兵中大半皆是蜀兵將蠻王宗黨并聚集的番人盡皆擒了孟獲匹馬殺出重圍望山徑而走

맹획이 크게 기뻐하며 곧 종당(친인척)과 모아두었던 번 사람을 이끌고 밤을 세워 말을 타고 가는데 남쪽 오랑캐로 하여금 길을 인도하게 하였다. 막 반사곡에 이르렀을 때 불빛이 매우 치열하게 나타나고 냄새를 맡기 어려웠다. 맹획은 계책에 빠졌음을 알고 급히 군대를 물릴 때 왼쪽에는 장의, 오른 쪽에는 마충이 두 길의 군대가 쇄도해 나왔다. 맹획이 바야흐로 적을 막으려 하였으나 한 소리 함성이 일어나는데 남쪽 오랑캐 가운데 태반이 모두 촉의 군대로 남쪽 오랑캐왕의 종당(친인척)과 모였던 번 사람들을 모두 사로잡았다. 맹획이 필마로 여러 겹의 포위를 뚫고 나와 산 지름길을 향해 달아났다.

 

正走之間見山凹裏一簇人馬擁出一輛小車車中端坐一人綸巾羽扇身衣道袍乃孔明也孔明大喝曰:「反賊孟獲今番如何!」獲急回馬走傍邊閃過一將攔住去路乃是馬岱孟獲措手不及被馬岱活捉了此時王平張翼已引一軍趕到蠻寨中將祝融夫人并衣應老小皆活捉而來

달아나는 사이에 산 오목한 곳에서 한 떼의 인마가 한 대의 작은 수레를 둘러싸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수레 안에 한 사람이 단정히 앉았는데 윤건을 쓰고 깃 부채를 들었으며 몸에는 도포를 입었으니 곧 제갈공명이었다. 제갈공명이 크게 외쳐 말하기를 반적 맹획아! 이번에는 어떻게 하려느냐!”하니 맹획이 급히 말을 돌려 달아났다. 옆에서 번개처럼 한 장수사 지나가면서 가는 길을 막으니 곧 마대였다. 맹획이 손 쓸 새 없이 마대에게 산채로 잡혔다. 이 때 왕평, 장익은 이미 한 군대를 이끌고 쫓아 가 남쪽 오랑캐 영채 안에 이르러 축융부인과 남녀노소를 모두 산채로 잡아 왔다.

 

孔明歸到寨中升帳而坐謂眾將曰:「吾今此計不得已而用之大損陰德我料敵人必算吾於林木多處埋伏吾卻空設旌旗實無兵馬疑其心也吾令魏文長連輸十五陣者堅其心也吾見盤蛇谷止一條路兩壁皆是光石並無樹木下面都是沙石因令馬岱將黑油車安排於谷中車中油櫃內皆是預先造下的火砲名曰地雷』。一砲中藏九砲三十步埋之中用竹竿通節以引藥線纔一發動山殞石裂吾又令趙子龍預備草車安排於谷口又於山上準備大木亂石卻令魏延賺兀突骨藤甲軍入谷放出魏延即斷其路隨後焚之吾聞:『利於水者必不利於火藤甲雖刀箭不入乃油浸之物見火必著蠻兵如此頑皮非火攻安能取勝使烏戈國之人不留種類者是吾之大罪也!」

제갈공명은 돌아가 영채 안에 이르러 군막에 올라 앉아 여러 장수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지금 이 계책을 부득이 쓴 것으로 크게 음덕을 덜어낸 것이다. 나는 적이 반드시 내가 숲이 많은 곳에 매복할 것이라 여길 것을 헤아리고 내가 공연히 깃발만 설치하고 실제는 병마를 없게 한 것은 그 마음을 의혹하게 한 것입니다. 내가 위문장(위연)으로 하여금 연이어 열다섯 개의 진을 연이어 패하게 한 것은 그 마음을 확고하게 하여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반사곡은 한 갈래 길뿐이고, 두 벽이 모두 광석이고, 아울러 나무가 없으며 바닥이 모두 모래와 돌인 것을 보았기 때문에 마대로 하여금 검은 기름을 실은 수레를 골짜기 안에 배열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수레 안의 기름 궤 안에는 모두 미리 만들어 둔 화포를 두었는데 지뢰라 이름합니다. 한 포 안에는 아홉 개의 포를 감추어 두고 삼십보마다 그것을 묻었습니다. 안에는 대나무 장대 마디를 뚫어 통하게 하는 것으로서 약선을 이끌어 한 발이 터지면 산이 무너지고 돌이 갈라집니다. 내가 또한 조자룡으로 하여금 미리 풀 수레를 준비하게 하여 골짜기 입구에 배열하게 하고 또 산 위에 큰 나무와 작은 돌을 준비하게 하였다. 그리고 위연으로 하여금 올돌골의 등갑군을 골짜기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고 위연이 나온 뒤 그 길을 끊고 뒤를 따라 불을 지른 것입니다. 내가 들으니 물에 이로운 것은 반드시 불에는 이롭지 않다.’합니다. 등갑이 비록 칼과 화살이 들어가지 않으나 기름에 담궜던 물건이라 불이 반드시 붙을 것을 알았습니다. 남쪽 오랑캐 군대가 이 같이 단단한 가죽이니(단단한 갑옷을 입었으니) 불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면 어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오과국 사람으로 하여금 종족을 남기지 못하게 한 것은 이는 나의 큰 죄일 것입니다!”했다.

 

眾將拜伏曰:「丞相天機神鬼莫測也!」孔明令押過孟獲來孟獲跪於帳下孔明令去其縛教且在別帳與酒食 (孔明喚管酒食)官至坐榻前 官至坐榻前如此如此分付而去

여러 장수들이 절하며 엎드려 말하기를 승상의 천기(계략)은 귀신도 헤아리지 못할 것입니다.” 했다. 제갈공명은 맹획을 압송해 오게 하였다. 맹획은 군막 아래에서 무릎을 꿇었다. 제갈공명은 그 결박을 풀게 하고 따로 군막에 있게 하면서 술과 음식을 주게 하고, 관리를 탑전(임금의 자리)에 이르자 앉게 한 뒤 이러게 저렇게 하라고 분부하고 갔다.

 

卻說孟獲與祝融夫人並孟優帶來洞主一切宗黨在別帳飲酒忽一人入帳謂孟獲曰:「丞相面羞不欲與公相見特令我來放公回去再招人馬來決勝負公今可速去。」孟獲垂淚言曰:「七擒七縱自古未嘗有也吾雖化外之人頗知禮義直如此無羞恥乎?」遂同兄弟妻子宗黨等人皆匍匐跪於帳下肉袒謝罪曰:「丞相天威南人不復反矣!」孔明曰:「公今服乎?」獲泣謝曰:「某子子孫孫皆感覆載生成之恩安得不服?」

각설하고 맹획과 축융부인, 맹우, 데리고 온 동주와 모든 동당(친인척)은 별도의 군막에서 술을 마셨다. 홀연히 한 사람이 군막에 들어와 맹획에게 일러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부끄러워하여 공과 서로 만나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로 하여금 가서 공을 놓아주어 돌아가게 하고, 다시 인마를 불러 와 승부를 결정하자고 했습니다. 공은 지금 속히 가도 됩니다.”했다. 맹획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일곱 번 사로잡고 일곱 번 놓아준 것은 예로부터 일찍이 있지 않았습니다. 내가 비록 왕의 교화를 벗어난 사람이나 자못 예의를 아는데 바로 이 같고서 부끄러움이 없겠는가?”하고는 마침내 형제, 처자, 종당(친인척)의 사람과 함께 모두 기어서 군막아래에 무릎을 꿇고 맨 몸으로 사죄하여 말하기를 승상의 하늘같은 위엄에 남쪽 사람들은 다시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공은 지금 복종합니까?”하니 맹획이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여 말하기를 나의 자자손손이 모두 거듭해서 생명을 살려 준 은혜에 감동하였는데 어찌 복종하지 않겠습니까?”했다.

 

孔明乃請孟獲上帳設宴慶賀就令永為洞主所奪之地盡皆退還孟獲宗黨及諸蠻兵無不感戴皆欣然跳躍而去後人有詩讚孔明曰

제갈공명이 맹획을 청해 군막에 오르게 하고 연회를 베풀어 축하하고 길이 동주가 되게 하였다. 빼앗은 땅은 모두 돌려주었다. 맹획의 종당(친인척)과 여러 남쪽 오랑캐드리 감동하여 받들지 않음이 없어 모두 기뻐 뛰면서 갔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제갈공명을 기려 말하기를

 

羽扇綸巾擁碧幛七擒妙策制蠻王至今溪洞傳威德為選高原立廟堂

깃털 부채들고 윤건 쓰고 푸름 군막을 지키며, 일곱 번 사로잡는 신묘한 계책으로 남쪽 오랑캐 왕을 제재하였다. 지금까지 계동에 위엄과 덕이 전해져 높은 평지를 가려 사당을 세웠다.

 

長史費褘入諫曰:「今丞相親提士卒深入不毛收服蠻方蠻王今已歸服何不置官吏與孟獲一同守之?」孔明曰:「如此有三不易留外人則當留兵兵無所食一不易也蠻人傷破父兄死亡留外人而不留兵必成禍患二不易也蠻人累有廢殺之罪自有嫌疑留外人終不相信三不易也今吾不留人不運糧與相安於無事而已。」

장사 비위가 들어 가 간하여 말하기를 지금 승상께서 사졸을 거느리고 깊이 불모의 땅에 들어 와 남쪽 오랑캐지역을 거두어 복종시켰습니다. 남쪽 오랑캐 왕이 이미 귀의하여 복종하였는데 어찌하여 관리를 두고 맹획과 함께 지키지 않습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이 같은 세 가지 쉽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외인(영토 밖의 사람)을 머물러 있게 하면 곡 마땅히 군대를 머물게 해야 하는데 군다가 먹을 음식이 없으니 한 가지 쉽지 않은 것입니다. 남쪽 오랑캐 사람을 해치고 깨트려 부형이 죽었는데 영토 밖의 사람을 머물게 하면서 군대를 머물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재앙과 근심을 이룰 것이니 두 번째 쉽지않음입니다. 남쪽 오랑캐가 여러 번 없애고 죽이는 죄를 지어 스스로 의심함이 있는데 밖의 사람을 남기면 마침내 서로 믿지 않을 것이니 세 번 째 쉽지 않음입니다. 지금 나는 사람을 남기지 않고, 식량을 운반하지 않아 서로 일이 없음을 편안하게 여길 뿐입니다.”했다.

 

眾人盡服於是蠻方皆感孔明恩德乃為孔明立生祠四時享祀皆呼之為慈父」;各送珍珠金寶丹漆藥材耕牛戰馬以資軍用誓不相反南方已定

여러 사람들이 모두 승복하였다. 이에 남쪽 오랑캐 나라가 모두 제갈공명의 은덕에 감동하여 곧 제갈공명이 살아 있을 때 사당을 세워 사시로 제사하고, 모두 자부라 불렀다. 각각 진주, 금과 보물, 붉은 칠, 약재, 밭을 가는 소, 싸울 때 쓰는 말을 보내 군대의 비용으로 쓰게 하고, 서로 배반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였다. 남쪽 지방이 안정되었다.

 

卻說孔明犒軍已畢班師回蜀令魏延引本部兵為前鋒延引兵方至瀘水忽然陰雲四合水面上一陣狂風驟起飛沙走石軍不能進延退兵回報孔明孔明遂請孟獲問之正是塞外蠻人方帖服水邊鬼卒又猖狂未知孟獲所言若何且看下文分解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군사들에게 음식을 베풀어 위로하기를 마치고 군대를 돌려 촉으로 돌아가는데 위연으로 하여금 본부의 군대를 이끌고 선봉이 되게 하였다. 위연이 군대를 이끌고 막 노수에 이르렀는데 홀연히 짙은 구름이 사방에 끼고 물 위에서 한바탕 광풍이 불어올라 모래가 날고 돌이 구르니 군대가 전진할 수 없었다. 위연이 군대를 물리고 돌아 가 제갈공명에게 보고하였다. 제갈공명이 마침내 맹획을 청하여 물었다. 바로 이러하다. 먼 변방 오랑캐 사람들이 바야흐로 복종하였는데 물가의 귀신 무리들이 미쳐 날뛴다. 맹획이 어떻게 말할지 알지 못하니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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