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三回:上方谷司馬受困,五丈原諸葛禳星
제103회 상방곡에서 사마의는 곤란을 당하고, 오장원에서 제갈공명은 별에 재앙을 물리치는 기도를 하다.
卻說司馬懿被張翼、廖化一陣殺敗,匹馬單鎗,望密林間而走,張翼收住後軍,廖化當先追趕。看看趕上,懿著慌遶樹而轉。化一刀砍去,正砍在樹上,及拔出刀時,懿已走出林外。廖化隨後趕出,卻不知去向,但見樹林之東,落下金盔一個。廖化取盔捎在馬上,一直望東追趕。原來司馬懿把金盔棄於林東,卻反向西走去了。
각설하고 사마의가 장익, 요화에게 한바탕 패배를 당하고 필마단창으로 밀림 사이를 향해 달아나자 장익이 군대를 거두어 뒤로 가고, 요화가 앞에서 뒤를 쫒았다. 뒤를 따르는데 사마의가 허둥지둥 나무를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요화가 한 칼에 베었으나 바로 나무에 칼이 박혔다. 칼을 뽑았을 때 사마의는 이미 달아나 숲 밖으로 나갔다. 요화가 뒤를 따라 쫓아 나왔으나 간 방향을 알 수 없고 다만 숲의 동쪽을 보니 금 투구 한 개가 떨어져 있었다. 요화가 투구를 취하여 말 위에 걸고 바로 동쪽을 향해 쫓아갔다. 알고 보니 사마의가 금 투구를 잡아(벗어) 숲 동쪽에 버리고 도리어 서쪽을 향해 달아난 것이었다.
廖化追了一程,不見蹤跡,奔出谷口,遇見姜維。同回寨見孔明。張嶷早驅木牛流馬到寨。交割已畢,獲糧萬餘石。廖化獻上金盔,錄為頭功。魏延心中不悅,口出怨言,孔明只做不知。
요화가 한 마장을 쫓았으나 종적을 보지 못하고 골짜기 입구를 달려 나왔는데 우연히 강유를 만났다. 함께 영채로 돌아와 제갈공명을 뵈었다. 장의가 막 목우유마를 몰아 영채에 이르러 인도하기를 마치니 식량 만여 석을 얻게 되었다. 요화가 금투구를 마치니 최고의 공으로 삼았다. 위연이 마음속으로 기뻐하지 않아 원망하는 말을 하였으나 제갈공명은 모른 채 하였다.
且說司馬懿逃回寨中,心甚惱悶。忽使命齎詔至,言東吳三路入寇,朝廷正議命將抵敵,令懿等堅守忽戰。懿受命已畢,深溝高壘,堅守不出。
각설하고 사마의가 도망하여 영채 안에 돌아와 마음으로 매우 고민하였다. 홀연히 황제의 명을 받은 사신이 조서를 가지고 이르러 동오가 세 길로 침범해 오므로 조정에서 장차 적을 막을 것을 논의하여 사마의 등으로 하여금 굳게 지키고 경솔히 싸우지 말도록 했다고 말하였다. 사마의가 명받기를 마치고 도랑을 깊게 하고 보루를 높게 한 채 굳게 지키고 나가지 않았다.
卻說曹叡聞孫權分兵三路而來,亦起兵三路迎之:命劉劭引兵救江夏,田豫引兵救襄陽,叡自與滿寵率大軍救合淝。滿寵先引一軍至巢湖口,望見東岸戰船無數,旌旗整肅。寵入軍中秦魏主曰:「吳人必輕我遠來,未曾隄備今夜可乘虛劫其水寨必得全勝。」魏主曰:「汝言正合朕意。」即令驍將張球領五千兵,各帶火具,從湖口攻之;滿寵引兵五千,從東岸攻之。
각설하고 조예는 손권이 군대를 이끌고 세 길로 온다는 것을 듣고 또한 군대를 일으켜 맞이하게 하고, 유소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강하를 구원하게 하고, 전예는 군대를 이끌고 양양을 구원하게 하고, 조예 스스로는 만총과 함께 대군을 통솔하여 합비를 구원하였다. 만총이 먼저 일군을 이끌고 소호 입구에 이르러 동 쪽 연안을 바라보니 전선이 무수한 데 깃발이 엄정하였다. 만총이 군중에 들어 가 위나라 임금에게 아뢰어 말하기를 “오나라 사람들은 반드시 우리가 멀리서 왔다고 가벼이 여기고 대비하지 않을 것이니 오늘 밤 빈틈을 타고 그 수채를 공격한다면 반드시 완전한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위나라 임금이 말하기를 “너의 말이 바로 나의 뜻에 부합한다.”하고는 곧 효기장군 장구로 하여금 오천의 군대를 거느리게 하고, 각각 화구(불붙이는 도구)를 가지고 소호 입구를 따라 공격하게 하였다. 만총이 군대 오천을 이끌고 동쪽 연안을 공격하게 하였다.
是夜二更時分,張球、滿寵,各引軍悄悄望湖口進發﹔將近水寨,一齊吶喊刷殺入。吳兵慌亂,不戰而走﹔被魏軍四下舉火,燒毀戰船、糧草、器具不計其數。諸葛瑾率敗兵逃走沔口。魏兵大勝而回。
이 날 밤 이경 쯤 장구, 만총이 각각 군대를 이끌고 조용히 소호 입구를 향해 출발하여 수채에 가까워지자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쇄도해 들어갔다. 오나라 군대가 당황하여 어지러워져 싸우지도 않고 달아났다. 위나라 군대가 사방에 불을 질렀다. 전선과 식량, 말먹이 풀, 도구들이 불타고 부서진 것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제갈근이 패한 군대를 이끌고 면구로 달아났다. 위나라 군대가 크게 이기고 돌아갔다.
次日,哨軍報知陸遜。遜集諸將議曰:「吾當作表申奏主上,請撤新城之圍,以兵斷魏軍歸路,吾率眾攻其前,彼首尾不敵,一鼓可破也。」
다음날 정찰 군이 육손에게 보고하였다. 육손이 여러 장수를 모아 논의하며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표를 지어 주상(손권)에게 아뢰어 신성의 포위를 거두고 군대로서 위나라 군대가 돌아가는 길을 끊기를 청하고, 나는 무리(군대)를 거느리고 그 앞을 공격하여 그들의 앞과 뒤가 대적하지 못하게 한다면 북 한 번에(북 한번 치고)깨트릴 수 있을 것이다.”했다.
眾服其言。陸遜即具表,遺一小校密地齎往新城。小校領命,齎看表文,行至渡口,不期被魏軍伏路的捉住,解赴軍中見魏主曹叡。叡搜出陸遜表文,覽畢,歎曰:「東吳陸遜,真妙算也許!」遂命將吳卒監下,命劉劭謹防孫權後兵。
무리들이 그 말을 수긍하였다. 육손은 곧 표를 갖추어 한 하급 장교를 보내 밀서를 가지고 신성으로 가게 하였다. 하급 장교가 명을 받아 표문을 가지고 가다 나루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길에 숨어 있던 위나라 군대에게 잡혀 군중으로 압송되어 위나라 임금 조예를 만났다. 조예가 육손의 표문을 찾아내 살펴보기를 마치고 탄식해 말하기를 “동오 육손은 참으로 신묘한 계책을 내는구나!”하고는 마침내 오나라 병졸을 감옥에 가두게 하고, 유소에게 명하여 손권의 후병을 방비하게 하였다.
卻說諸葛瑾大敗一陣,又值暑天,人馬多生疾病;乃修書一封,令人轉達陸遜,議欲撤兵還國。遜看書畢,謂來人曰:「拜上將軍;吾自有主意。」使者回報諸葛瑾。瑾問:「陸將軍作何舉動?」使者曰:「但見陸將軍催督眾人於營外種荳菽,自與諸將在轅門射戲。」
각설하고 제갈근은 한바탕 크게 패하고, 또 더위를 맞아 사람과 말에 질병이 발생하자 곧 글 한 통을 써서 사람을 시켜 육손에게 전달하게 하여 군대를 거두어 나라에 돌아가고자 하는 것을 의논하려 하였다. 육손이 글 보기를 마치고 온 사람에게 일러 말하기를 “상장군에게 나에게 주장하는 뜻이 있다고 보고하시오.”했다. 사자가 돌아 가 제갈근에게 보고하였다. 제갈근이 묻기를 “육장군(육손)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던가?”하니 사자가 말하기를 “다만 육장군(육손)은 여러 사람을 감독하여 진영 밖에서 콩을 심게하고, 스스로는 여러 장수들과 원문에서 활쏘기 놀이를 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했다.
瑾大驚,親自往陸遜營中,與遜相見;問曰:「今曹叡親來,兵勢甚盛,都督何以禦之?」遜曰:「吾前遣人奏表於主上,不料為敵人所獲。機謀既洩,彼必知備;與戰無益,不如且退。己差人奉表約主上緩緩退兵矣。」瑾曰:「都督既有此意,即宜速退,何又遲延?」遜曰:「吾軍欲退,當徐徐而動。今若退兵,魏人必乘勢追趕;此取敗之道也。足下宜先督戰船詐為拒敵之意。吾悉以人軍向襄陽而進,為疑敵之計,然後徐徐退歸江東,魏兵自不敢近耳。」瑾依其計,遜辭歸本營,整頓船隻,預備起行。陸遜整肅部伍,張揚聲勢,望襄陽進發。
제갈근이 크게 놀라 직접 육손의 진영에 가 육손과 만나 물어 말하기를 “지금 조예가 직접 와 군대의 형세가 매우 성대한데 도독께서는 무엇으로서 그들을 막으려 하십니까?”했다. 육손이 말하기를 “내가 앞서 사람을 보내 표로 주상(손권)께 아뢰면서 적에게 잡힐 것을 헤아리지 못하였습니다. 기밀(비밀 꾀)이 이미 누설되었으니 그들은 반드시 대비할 것이기 때문에 싸워도 이익이 없습니다. 물러나는 것이 낫습니다. 이미 표를 받든 사람을 보내 천천히 군대를 물릴 것을 약속하였습니다.”했다. 제갈근이 말하기를 “도독에게 이미 이런 뜻이 있으니 곧 또한 속히 물러나야 하는데 어찌하여 늦추고 있습니까?”하니 육손이 말하기를 “우리 군대가 물러나려 한다면 마땅히 서서히 움직여야 합니다. 지금 만약 군대를 물린다면 위나라 사람들은 반드시 형세를 타고 쫓아 올 것입니다. 이는 패함을 취하는 길입니다. 족하(그대)는 마땅히 먼저 전선을 감독하여 거짓으로 적을 막는 뜻을 삼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군대로 양양을 향해 나아가 적이 의심하게 하는 계책을 삼은 후 천천히 물러나 강동으로 돌아가면 위나라 군대는 저절로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할 것입니다.”했다. 제갈근이 그 계책에 의거하여 육손을 하직하고 진영으로 돌아 와 배를 정돈하여 미리 (군대를)일으켜 갔다. 육손은 군대를 가지런히 하고 위세를 떨치며 양양을 향해 출발하였다.
早有細作報知魏主,說吳兵已動,須用隄防。魏將聞之,皆要出戰。魏主素知陸遜之才,諭眾將曰:「陸遜有謀,莫非用誘敵之計,不可輕動。」眾將乃止。數日後,哨卒來報說:「東吳三路兵馬皆退矣。」魏主未信,再令人探之,回報果然盡退。魏主嘆曰:「陸遜用兵,不亞孫吳,東南未可平也。」遂飭諸將,各守險要,自引大軍屯合淝,以伺其變。
곧 세작(첩자)이 위나라 임금에게 보고하여 알리기를 오나라 군대가 이미 움직였으니 반드시 방비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위나라 장수들이 그것을 듣고 모두 나가 싸울 것을 요청하였다. 위나라 임금이 평소 육손의 재능을 알고 여러 장수들을 깨우쳐 말하기를 “육손은 꾀가 있으니 적을 유인하는 계책을 쓰는 것이니 가벼이 움직여서는 안 된다.”하니 여러 장수들이 이에 그쳤다. 며칠 후 정찰병이 와서 보고하기를 “동오 세 길의 병마가 모두 물러났습니다.”했다. 위나라 임금이 믿지 않고 다시 사람을 시켜 찾게 하였더니 돌아와 과연 모두 물러갔다고 보고하였다. 위나라 임금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육손의 군대 운용이 손자와 오자에 버금가니 동남을 아직 평정하지 못한다.”하고는 마침내 여러 장수들에게 명하여 각각 험한 요충지를 지키게 하고 자신은 대군을 이끌고 합비에 주둔하는 것으로서 그 병화를 엿보았다.
卻說孔明在祁山,欲為久駐之計,乃令蜀兵與魏民相雜種田:軍一分,民二分,並不侵犯,魏民皆安心樂業。司馬師入告其父曰:「蜀兵劫去我許多糧米,今又令蜀兵與我民相雜屯田於渭濱以為久計:似此真為國家大患。父親何不與孔明約期大戰一場,以決雌雄?」懿曰:「吾奉旨堅守,不可輕動。」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기산에 있으면서 오래 동안 주둔할 계책을 삼고자하여 이에 촉의 군대로 하여금 위나라 백성과 섞여 농사짓게 하고, 군대 1, 백성 2로하고, 아울러 침범하지 못하게 하였더니 위나라 백성이 모두 안심하고 즐거이 생업에 종사하였다. 사마사가 들어 가 그 아버지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촉의 군대가 우리의 허다한 식량을 빼앗아 갔고, 지금 또한 촉의 군대로 하여금 우리 백성들과 섞여 위수 가에서 둔전하게 하는 것으로서 오래 할 계책을 삼았습니다. 이는 참으로 국가의 큰 근심이 될 듯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어찌하여 제갈공명과 기일을 정하여 한바탕 크게 싸우는 것으로서 자웅을 결단하지 않으십니까?”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나는 황제의 명을 받들어 굳게 지키고 있으니 가벼이 움직일 수 없다.”했다.
正議間,忽報魏延將著元帥前日所失金盃,前來罵戰。眾將忿怒,俱欲出戰。懿笑曰:「聖人云:『小不忍則亂大謀。』但堅守為上。」諸將依令不出。魏延辱罵良久方回。
논의하는 사이에 홀연히 “위연이 원수께서 지난 날 잃어버린 금 투구를 가지고 앞에 와 욕하며 싸움을 걸고 있습니다.” 라고 보고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분노하여 모두 나가 싸우려 하였다. 사마의가 웃으며 말하기를 “성인이 말하기를 ‘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곧 큰 꾀가 어지러워진다.’하였으니 다만 굳게 지키는 것을 상책으로 삼을 뿐이다.” 했다. 여러 장수들이 명령에 의하여 나가지 못하였다. 위연이 욕하기를 오래하다가 돌아갔다.
孔明見司馬懿不肯出戰,乃密令馬岱造成木柵,營中掘下深塹,多積乾柴引火之物;周圍山上,多用柴草虛搭窩鋪,內外皆伏地雷。置備停當,孔明附耳囑之曰:「可將葫蘆谷後路塞斷,暗伏兵於谷中。若司馬懿追到,任他入谷,便將地雷乾柴一齊放起火來。」又令軍士畫舉七星號帶於谷口,夜設七盞明燈於山上,以為暗號。
제갈공명은 사마의가 즐겨 나와 싸우려하지 않는 것을 보고 곧 비밀리에 마대로 하여금 목책을 만들고, 진영 안에 깊은 참호를 파 마른 섶과 불을 당기는 물건을 많이 쌓고, 주변 산 위에는 많은 섶을 써서 거짓 와포를 쌓게 하고 안과 밖에 모두 지뢰를 숨기게 했다. 준비를 마치자 제갈공명이 귓속말로 부탁해 말하기를 “호로곡 뒷길을 막아 끊을 만하니 몰래 군대를 골짜기 안에 숨겨두라. 만약 사마의가 쫓아 이르러 그가 골짜기에 들어오면 곧 지뢰와 마른 섶에 일제히 불을 놓으라.”하고 또 군사로 하여금 낮에는 칠성기를 골짜기 입구에서 들게 하고, 밤에는 일곱 개의 등잔을 산 위에 설치하여 암호로 삼게 했다.
馬岱受計引兵而去。孔明又喚魏延吩咐曰:「汝可引五百兵去魏寨討戰,務要誘司馬懿出戰。不可取勝,只可詐敗。懿必追趕,汝卻望七星旗處而入;若是夜間,則望七盞燈處而走。只要引得司馬懿入葫蘆谷內,吾自有擒之之計。」
마대는 계책을 받고 군대를 이끌고 갔다. 제갈공명이 또 위연을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너는 오백의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 영채로 가 성토하여 싸움을 걸며 힘써 사마의가 나와 싸우도록 유인해야 합니다. 이기려 해서는 안 되고 다만 거짓으로 패해야 할 뿐입니다. 사마의는 반드시 쫓아 올 것이니 너는 칠성기가 있는 곳을 향해 들어가시오. 만약 밤에는 곧 일곱 개의 등불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가시오. 사마의를 유인하여 호로곡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면 나에게 그를 사로잡을 계책이 있습니다.”했다.
魏延受計,引兵而去。孔明又喚高翔吩咐曰:「汝將木牛流馬或二三十為一群,或四五十為一群,各裝米糧,於山路往來行走。如魏兵搶去,便是汝之功。」
위연이 계책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갔다. 제갈공명은 또 고상을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너는 목우유마를 혹은 이삼십 개를 한 무리로 삼고, 혹은 사오십 개를 한 무리로 삼아 각각 식량을 싣고 산길을 왕래하며 돌아다니라. 만약 위나라 군대가 빼앗으면 곧 이는 너의 공이다.”했다.
高翔領計,驅駕木牛流馬去了。孔明將祁山兵一一調去,只推屯田;吩咐:「如別兵來戰,只許詐敗;若司馬懿自來,方併力只攻渭南,斷其歸路。」孔明分撥已畢,自引一軍近上方谷下營。
고상이 계책을 받고 목우유마를 몰고 갔다. 제갈공명이 기산의 군대를 거느리고 일일이 배치하여 둔전에 힘쓰라고 분부하며 말하기를 “만약 따로 군대가 와서 싸운다면 다만 거짓으로 패하하고, 만약 사마의가 직접 온다면 비로서 힘을 합쳐 위수 남쪽을 공격하여 그들이 돌아가는 길을 끊으라.”했다. 제갈공명이 임무 나누기를 마치고 스스로 일군을 이끌고 상방곡 가까이 진영를 세웠다.
且說夏侯惠、夏侯和二人入寨告司馬懿曰:「今蜀兵四散結營,各處屯田,以為久計;若不趁此時除之,縱令安居日久,深根固蒂,難以搖動。」懿曰:「此必又是孔明之計。」二人曰:「都督若如此疑慮,寇敵何時得滅?我兄弟二人,當奮力決一死戰,以報國恩。」懿曰:「既如此,汝二人可分頭出戰。」遂令夏侯惠、夏侯和各引五千兵去訖。懿坐待回音。
각설하고 하후혜, 하후화 두 사람이 영채에 들어 가 사마의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지금 촉의 군대가 사방으로 흩어져 진영을 설치하고, 각 곳에서 둔전하여 오래 할 계책으로 삼습니다. 만약 이 때를 쫓아 제거하지 않고 날이 오래면 깊은 뿌리가 굳어져 흔들어 움직이기 어렵게 됩니다.”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또한 제갈공명의 계책일 것이다.”했다. 두 사람이 말하기를 “도독께서 만약 이 같이 의심하신다면 도적을 언제 없앨 수 있겠습니까? 우리 형제 두 사람이 마땅히 힘을 떨쳐 결사적으로 한 번 싸워 나라의 은혜를 갚으려 합니다.”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이미 이 같으니 너희 두 사람이 각각 따로 나누어 나가 싸우라.”했다. 마침내 하후혜, 하후화로 하여금 각각 오천의 군대를 이끌고 가게 하였다. 사마의가 앉아서 소식을 기다렸다.
卻說夏侯惠、夏侯和二人分兵兩路,正行之間,忽見蜀兵驅木牛流馬而來。二人一齊殺將過去,蜀兵敗奔走,木牛流馬被魏兵搶獲,解送司馬懿營中。次日又劫擄得人馬百餘,亦解赴大寨。
각설하고 하후혜, 하후화 두 사람이 군대를 두 길로 나누어 이끌고 바로 행군하는데 홀연히 촉의 군대가 목우유마를 몰고 오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이 일제히 쇄도해 가니 촉의 군대가 패하여 달아나고 위나라 군대가 목우유마를 얻어 사마의의 진영으로 보냈다.(압송했다.) 다음 날 또 인마 백여 명을 잡아 큰 영채(본 영채)로 보냈다.
懿將解到蜀兵,詰審虛實。蜀兵告曰:「孔明只料都督堅守不出,盡命我等四散屯田,以為久計;不想卻被擒獲。」懿即將蜀兵盡皆放回。夏侯和曰:「何不殺之?」懿曰:「量此小卒,殺之無益。放歸本寨,令說魏將寬厚仁慈,釋彼戰心;此呂蒙取荊州之計也。」遂傳令今後凡有擒到蜀兵,俱當善遣之,仍重賞有功將吏。諸將皆聽令而去。
사마의는 촉의 군대가 이르자 허실을 심문하였다. 촉의 병졸이 고하여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다만 도독께서 굳게 지키며 나오지 않는 것만을 생각하고 우리들에게 명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둔전하게 하는 것으로서 오래 하는 계책을 삼게 하였는데 생각지 않게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했다. 사마의는 곧 촉의 군대를 모두 놓아 돌아가게 하였다. 하후화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죽이지 않습니까?”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이 병졸을 헤아려보니 그들을 죽여도 이익이 없다. 놓아 본 영채로 돌아가게 하여 위나라 장수의 너그럽고 인자함을 말하게 하여 그들의 싸우려는 마음을 풀게(없게 하는)하는 것, 이는 여몽이 형주를 취하였던 계책이었다.”했다. 마침내 지금부터 무릇 사로잡힌 촉의 병졸이 이르면 모두 마땅히 잘 대우하여 보내는데 공이 있는 장수와 관리들이 있으면 많을 상을 줄 것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명령을 듣고 갔다.
卻說孔明令高翔佯佯作運糧,驅駕木牛流馬,往來於上方谷內;夏侯惠等不時截殺;半月之間,連勝數陣。司馬懿見蜀兵屢敗,心中歡喜。一日,又擒到蜀兵數十人。懿喚至帳下問曰:「孔明今在何處?」眾告曰:「諸葛丞相不在祁山,在上方谷西十里下營安住。今每日運糧屯於上方谷。」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고상으로 하여금 거짓으로 식량을 운반하게 하여 목우유마를 몰아 상방곡 안을 왕래하게 하였더니 하후혜 등이 불시에 가로막고 공격하여 보름 사이에 여러 번 승리하였다. 사마의는 촉의 군대가 여러 번 패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하였다. 어느 날 또 사로잡힌 촉의 병졸 수십 명이 이르렀다. 사마의가 불러 군막 안에 이르자 물어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하니 무리들이 고하여 말하기를 “제갈 승상께서는 기산에 있지 않고, 상방곡 서쪽 십리에 진영을 만들어 머물고 있습니다. 지금은 매일 식량을 상방곡에 운반하고 있습니다.”했다.
懿備細問了,即將眾人放去;乃喚諸將吩咐曰:「孔明今不在祁山,在上方谷安營。汝等於明日,可一齊併力取祁山大寨。吾自引兵來接應。」眾將領命,各各準備出戰。司馬師曰:「父親何故反欲攻其後?」懿曰:「祁山乃蜀人之根本,若見我兵攻之,各營必盡來救,我卻取上方谷燒其糧草,使彼首尾不接,必大敗也。」司馬師拜服。懿即發兵起行,令張虎、樂綝各引五千兵,在後救應。
사마의가 여러 가지를 묻고는 곧 여러 사람들을 놓아 가게 하고, 곧 여러 장수들을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지금 기산에 있지 않고 상방곡에 빈영을 쳤다 한다. 너희들은 내일 일제히 힘을 합쳐 기산의 큰 영채를 점령하라. 나는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가서 상황에 맞게 대응할 것이다.”했다. 여러 장수들이 명을 받고 각각 나가 싸울 것을 준비하였다. 사마사가 말하기를 “아버지께서는 무슨 이유로 도리어 그 뒤를 공격하고자 하십니까?”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기산은 곧 촉 사람들의 근본이다. 만약 우리 군대가 그것을 공격하는 것을 보면 각 진영은 반드시 모두 와서 구원할 것이니 나는 상방곡을 공격하여 그 식량과 말 먹이 풀을 불살라 그들로 하여금 머리와 꼬리가 응하지 못하게 하면 (촉의 군대는)반드시 크게 패할 것이다.”했다. 사마사가 절하며 인정하였다. 사마의는 곧 군대를 일으켜 출발하고 장호, 악침으로 하여금 각각 오천의 군대를 이끌고 뒤에서 대응하게 하였다.
且說孔明正在祁山望見魏兵或三五千一行,或一二千一行,隊伍紛紛,前後顧盼,料必來取祁山大寨,乃密傳今眾將:「若司馬懿自來,汝等便往劫魏寨,奪了渭南。」眾將各各聽令。
각설하고 제갈공명이 기산에서 바라보니 위나라 군대가 혹은 삼천, 오천이 일렬로 가고, 혹은 일, 이천이 일렬로 가는데 대오가 뒤얽혀 앞뒤를 살펴보는 것을 보고는 반드시 기산의 큰 영채(본진영)를 공격하러 오는 것으로 생각하고는 곧 여러 장수들에게 비밀 명령을 내려 “만약 사마의가 스스로 온다면 너희들은 곧 가서 위나라 영채를 공격하여 위수 남쪽을 빼앗으라.”했다. 여러 장수들이 각각 명령을 받았다.
卻說魏兵皆奔祁山寨來,蜀兵四下一齊吶喊奔走,虛作救應之勢。司馬懿見蜀兵都去救祁山寨,便引二子并中軍護衛人馬,殺奔上方谷來。魏延在谷口,只盼司馬懿到來;忽見一枝魏兵殺到,延縱馬向前視之,正是司馬懿。延大喝曰:「司馬懿休走!」舞刀相迎。懿挺鎗接戰。不上三合,延撥回馬便走,懿隨後趕來。延只望七星旗處而走。
각설하고 ㅟ나라 군대가 모두 달려 기산의 영채에 가니 촉의 군대가 사방에서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달려 나와 공연히 구원하고 대응하는 형세를 지었다. 사마의는 촉의 군대가 모두 기산의 영채를 구원하러 간 것을 보고 곧 두 아들을 이끌고 중군, 호위하는 인마와 함께 상방곡으로 쇄도해 왔다. 위연이 골짜기 입구에 있었으나 다만 사마의가 이르기를 엿보고 있는데, 홀연히 한 떼의 위나라 군대가 쇄도하는 것을 보고 위연이 말을 몰아 앞을 향해 보니 바로 사마의였다. 위연이 크게 고함쳐 말하기를 “사마의는 달아나지 말라!”하고는 칼을 휘두르며 맞이했다. 사마의가 창을 내밀고 맞아 싸웠다. 삼합(무기가 세 번 부딪힘)이 되지 않아 위연이 말고삐를 당겨 돌아 달아나니 사마의가 뒤를 쫒았다. 위연은 다만 칠성기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懿見魏延只一人,軍馬又少,放心追之;令司馬師在左,司馬昭在右,懿自居中,一齊攻殺將來。魏延引五百兵皆退入谷中去。懿追到谷口,先令人入谷中哨探。叵報谷內並無伏兵,山上皆是草房。懿曰:「此必是積糧之所也。」遂大驅士馬,盡入谷中。懿忽見草房上盡是乾柴,前面魏延已不見了。懿心疑,謂二子曰:「倘有兵截斷谷口如之奈何?」言未已,只聽得喊聲大震,山上一齊丟下火把來,燒斷谷口。魏兵奔逃無路。
사마의는 위연이 한 사람뿐이고, 군마가 또한 적은 것을 보고는 마음 놓고 쫓아가면서 사마사를 왼쪽, 사마소를 오른 쪽에 있게 하고, 사마의 자신은 가운데 있으면서 일제히 공격해 갔다. 위연은 오백 명의 군대를 이끌고 모두 물러나 골짜기 안으로 들어갔다. 사마의가 쫓아 골짜기 입구에 이르러 먼저 사람을 시켜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 정찰하게 했다. 마침내 골짜기 안에는 복병이 없고, 산 위는 모두 초방(풀로 덮은 집)이라고 보고하였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식량을 쌓은 것일 것이다.”하고는 마침내 크게 군사를 몰아 모두 골짜기 안으로 들어갔다. 사마의는 홀연히 풀로 덮은 집 위가 모두 마른 섶임을 보았는데, 앞 쪽의 위연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사마의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여 두 아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만약 군대가 골짜기 입구를 끊으면 어찌할 것인가?”하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함성이 크게 진동하듯 들리고 산 위에서 일제히 불덩이들이 떨어져 내려 골짜기 입구를 태우며 끊었다. 위나라 군대가 달아나려 하였으나 길이 없었다.
山上火箭射下,地雷一齊突出,草房內乾柴都著,刮刮雜雜,火勢沖天。司馬懿驚得手足無措,乃下馬抱二子大哭曰:「我父子三人皆死於此處矣!」正哭之間,忽然狂風大作,黑氣漫空,一聲霹靂響處,驟雨傾盆。滿谷之火,盡皆澆滅:地雷不震,火器無功。司馬懿大喜曰:「不就此時殺出,便待時何!」即引兵奮力衝殺。張虎、樂綝亦引兵殺來接應。馬岱軍少,不敢追趕。司馬懿父子與張虎、樂綝合兵一處,同歸渭南大寨。不想寨柵已被蜀兵奪了。郭淮、孫禮正在浮橋上與蜀兵接戰。司馬懿等引兵殺到,蜀兵退去。懿燒斷浮橋,據住北岸。
산 위에서는 불화살이 쏟아져 내리고 지뢰가 일제히 틔어 나오고, 풀로 덮은 집 안의 마른 섶에 불이 붙어 활활 타 올라 불의 형세가 하늘로 치솟았다. 사마의가 놀라 어쩔 줄 몰라 말에서 내여 두 아들을 안고 크게 곡하며(울며) 말하기를 “우리 부자 세 사람이 모두 여기에서 죽는구나!”하며 곡하고(울고) 있는 사이에 홀연히 돌풍이 크게 일며 검은 기운이 공중에 가득하고, 한 소리 벽력이 울리는 곳에 비가 항아리를 기우리는 듯이 쏟아졌다. 골짜기에 가득하던 불이 모두 거지고 지뢰도 터지지 않아 불을 쓰는 도구들이 쓸모가 없어졌다. 사마의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 때 탈출하지 못한다면 어느 때를 기다리겠는가!”하고는 곧 군대를 이끌고 힘을 떨쳐 들이쳐 죽였다. 장호, 악침이 또한 군대를 이끌고 쇄도해 상황에 맞게 대응하였다. 마대는 군다가 적어 감히 뒤를 쫓지 못하였다. 사마의 부자와 장호, 악침이 군대를 한 곳으로 합하여 같이 위수 남쪽 큰 영채(본 영채)로 돌아갔다. 생각지 않게 영채와 책이 이미 촉의 군대에게 빼앗겼으므로 곽회, 손례가 부교 위에서 촉의 군대를 맞아 싸웠다. 사마의 등이 군대를 이끌고 쇄도하니 촉의 군대가 물러갔다. 사마의는 부교를 불태우고 북쪽 언덕에 가 근거로 삼았다.
且說魏兵在祁山攻打蜀寨,聽知司馬懿大敗,失了渭南營寨,軍心慌亂;急退時,四面蜀兵衝殺將來,魏兵大敗,十傷八九,死者無數,餘眾奔過渭北逃生。孔明在山上見魏延誘司馬懿入谷,一霎時火光大起,心中甚喜,以為司馬懿此番必死。不期天降大雨,火不能著,哨馬報說司馬懿父子俱逃去了。孔明歎曰:「『謀事在人,成事在天』。不可強也!」後人有詩歎曰:「谷口風狂烈燄飄,何期驟雨降青霄。武侯妙計如能就,安得山河屬晉朝?」
각설하고 위나라 군대가 기산에서 촉의 영채를 공격하고 있을 때 사마의가 크게 패하여 위수 남쪽의 영채를 잃었다는 것을 듣고 군대의 마음이 당황하고 어지러워져 급히 물러날 때 사방에서 촉의 군대가 치고 들어오니 위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고 십 명중에 팔, 구명이 부상당하였고, 죽은 자는 헤아릴 수 없었다. 남은 무리들이 달려 위수를 건너 북쪽으로 도망하였다. 제갈공명이 사 윈에서 위연이 사마의를 유인하여 골짜기로 들어가고, 삽시간에 불빛이 크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하며 사마의가 이번에 반드시 죽게 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생각지 않게 하늘에서 큰 비가 내려 불이 잘 붙지 않고, 정찰병이 사마의 부자가 모두 달아났다고 보고하자 제갈공명이 탄식해 말하기를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고,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하니 억지로 할 수 없구나!” 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해 말하기를 “골짜기 입구에서 돌풍이 일고, 불꽃이 휘날렸으나 어찌 맑은 하늘에 큰 비 내릴 줄 알았으리오. 무후(제갈공명)이 신묘한 계책이 이루어졌다면 어찌 산하가 진나라에 속했겠는가?”했다.
卻說司馬懿在渭北寨內傳令曰:「渭南寨柵,今已失了。諸將如再言出戰者斬。」眾將聽令,據守不出。郭淮入告曰:「近日孔明引兵巡哨,必將擇地安營。」懿曰:「孔明若出武功山,依山而東,我等皆危矣;若出渭南,西止五丈原,方無事也。」令人探之,回報果屯五丈原。司馬懿以手加額曰:「大魏皇帝之洪福也!」遂令諸將堅守忽出,彼久必自變。
각설하고 사마의는 위수 북쪽 영채에서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위수 남쪽 영채와 책을 지금 이미 잃었다. 여러 장수들 중에 만약 다시 나가 싸울 것을 말하는 자는 베어 죽인다.”했다. 여러 장수들이 근거지를 지키고 나가지 않았다. 곽회가 들어 가 고하여 말하기를 “최근 제갈공명이 군대를 이끌고 순찰하면서 반드시 땅을 가려 군영을 설치할 것입니다.”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만약 무공산으로 나와 산 동쪽에 의지(진을 친다면)한다면 우리들은 모두 위태로울 것이고, 만약 위수 남쪽을 나와 서쪽으로 오장원에 머문다면 바야흐로 무사할 것입니다.”하고는 사람을 시켜 정찰하게 하였더니 돌아와 오장원에 주둔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사마의가 손을 이마에 대고 말하기를 “대 위나라 황제의 큰 복이로다!”하고는 마침내 여러 장수로 하여금 굳게 지키고 나가지 않고, 오래하면 그들에게 반드시 스스로 변이 생겨나게 될 것이라 했다.
且說孔明自引一軍屯於五丈原,累今人搦戰,魏兵不出。孔明乃取巾幗並婦人縞素之服,盛於大盒之內,修書一封,遣人送至魏寨。諸將不敢隱蔽,引來使入見司馬懿。懿對眾吞盒視之,內有巾幗婦人之衣,並書一封。懿拆視其書。略曰:仲達既為大將,統領中原之眾,不思披堅執銳,以決雌雄,乃甘窟守土巢,謹避刀箭,與婦人又何異哉!今遣人送巾幗素衣。至如不出戰,可再拜而受之;倘恥心未泯,猶有男子胸襟,早與批回,依期卦敵。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스스로 일군을 이끌고 오장원에 주둔하여 여러 번 사람을 시켜 싸움을 걸었으나 위나라 군대는 나오지 않았다. 제갈공명은 이에 건괵(여자의 머리쓰개)과 부인의 흰색 옷을 가져다 큰 합 안에 넣고, 글 한 통을 써서 사람을 보내 위나라 영채에 가게 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감히 숨기지 못하고 온 사자를 인도하여 들어가 사마의를 만나게 하였다. 사마의가 무리들 앞에서 합을 열어 보니 안에 건괵과 부인의 옷, 글 한 통이 있었다. 사마의가 그 글을 뜯어보았다. 요약해 말하면 “중달(사마의)이 이미 대장이 되어 중원의 무리를 통솔하여 직접 전쟁에 나가 싸우는 것으로서 자웅을 결단할 것을 생각하지 않으니 곧 굴을 파고 흙 둥지 지키며 칼과 화살을 피하니 부인과 또 무엇이 다른가! 지금 사람을 보내 부인의 머리쓰개와 부인의 옷을 보냅니다. 만약 싸우지 않음에 이른다면 두 번 절하고 받고, 만일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지지 않아 오히려 남자의 흉금을 가지고 있다면 빨리 의견을 적어 돌려보내 기일을 정해 싸우자.”했다.
司馬懿看畢,心中大怒;乃佯笑曰:「孔明視我為婦人耶?」即受之,令重待來使。懿問曰:「孔明寢食及事之煩簡若何?」使者曰:「丞相夙興夜寐,罰二十以上皆親覽焉。所啖之食,日不過數升。」懿顧謂諸將曰:「孔明食少事煩,其能久乎!」
사마의가 보기를 마치고 마음속으로 크게 노하였으나 곧 거짓으로 웃으며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나를 보기를 부인으로 여기는가?”하고는 곧 그것을 받고 완 사자를 잘 대접하게 하였다. 사마의가 물어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자고 먹는 것과 일의 번다함과 간략히 함이 어떠한가?”하니 사자가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잠을 자고, 벌하는 것으로 이십 가지 이상을 모두 직접 살피십니다. 먹는 바의 음식은 하루 몇 되에 지나지 않습니다.”했다. 사마의가 여러 장수들을 돌아보며 일러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먹는 것이 적고 일은 번잡하니 오래 할 수 있겠는가!”했다.
使者辭去,回到五丈原,見了孔明,具說:「司馬懿受了巾幗女衣,看了書札,並不嗔怒,只問丞相寢食及事之煩簡,絕不提起軍旅之事。某如此應對,彼言『食少事煩,豈能長久?』」孔明歎曰:「彼深知我也!」
사자가 하직하고 돌아 가 오장원에 이르러 제갈공명을 보비고 갖추어 말하기를 “사마의가 여자의 머리쓰개, 여자의 옷을 받고 서찰을 본 후 성내지는 않았고 다만 승상의 침식과 일의 번잡함과 간략함을 물었을 뿐 군사의 일은 절대로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같이 응대하였는데, 그가 말하기를 ‘먹는 것은 적고 일은 번잡하니 어찌 오래할 수 있겠는가?’했습니다.” 하니 제갈공명이 탄식해 말하기를 “그가 깊이 나를 알고 있구나!”했다.
主簿楊顒曰:「某見丞相常自校簿書,竊以為不必。夫為治有體,上下不可相侵。譬之治家之道,必使僕擲執耕,婢曲爨,私業無曠,所求皆足,其家立從容自在,高枕飲食而已,若皆身親其事,將形疲神困,終無一成。豈其智之不如婢僕哉?失為家主之道也。是故古人稱坐而論道,謂之『三公』;作而行之,謂之『士大夫』。昔丙吉憂牛喘,而不問橫道死人;陳平不知錢穀之數,曰:『自有主者。』今丞相親理細事,汗流終日,豈不勞乎?司馬懿之言,真至言也。」孔明泣曰:「吾非不知,但受先帝託孤之重,惟恐他人不似我盡心也!」眾皆垂淚。自此孔明自覺神思不寧,諸將因此未敢進兵。
주부 양옹이 말하기를 “제가 보니 승상께서는 스스로 항상 장부와 서류를 보시는데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안 하셔도 된다고 여깁니다. 대저 다스림에는 체계가 있으니 상하가 서로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유하면 집안을 다스리는 방법은 반드시 종으로 하여금 농사를 짓게 하고, 여종은 부엌일을 하게 하여 개인의 일이 어긋나지 않게 하면 구하는 바가 모두 충분해지고, 그 집안을 일으키고 사업을 일으켜 넉넉하고 안락해져 베개를 높이하여 마시고 먹을 뿐입니다. 만약 자신이 모두 그 일을 직접 한다면 장차 몸은 피로해지고 정신은 곤핍해 질 것이니 끝내는 한 가지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지혜가 종보다 못해서 이겠습니까? 집 주인의 법도를 잃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옛 사람은 앉아서 도를 논하는 그를 일러 ‘삼공’이라 하고, 일어나 그것을 행하는 이를 ‘사대부’라 합니다. 옛날 병길은 소가 숨차하는 것은 근심하였으나 길에 누워 죽은 사람은 묻지 않았고, 진평은 돈과 곡식의 수를 알지 못하였으나 ‘스스로 주관하는 자가 있다.’ 했습니다. 지금 승상께서는 직접 작은 일까지 다스려 종일토록 땀 흘리시니 어찌 수고롭지 않겠습니까? 사마의의 말은 참으로 지극한 말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선제(유현덕)께서 고아를 부탁한 중임을 받아 오직 다른 사람이 내가 마음을 것과 같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니 무리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이로부터 제갈공명은 스스로 정신과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니 여러 장수들이 이 때문에 감히 진군하지 못하였다.
卻說魏將皆知孔明以巾幗女衣辱司馬懿,懿受之不戰。眾將俱忿,入帳告曰:「我等皆大國名將,安忍受蜀人如此之辱?即請出戰,以決雌雄。」懿曰:「吾非不敢出戰,而甘心受辱也:奈天子明詔,令堅守無動。今若輕出,有違君命矣。」眾將俱忿怒不平。懿曰:「汝等既要出戰,待我奏淮天子,同力赴敵,何如?」
각설하고 위나라 장수들이 모두 제갈공명이 여자의 머리쓰개와 여자의 옷으로 사마의를 모욕하였는데 사마의는 그것을 받고도 싸우지 않는 것을 알았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분노하여 군막에 들어 가 고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은 모두 큰 나라의 이름있는 장수인데 어찌 차마 촉 사람의 이 같은 모욕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곧 나가 싸워 자웅을 결당할 것을 청합니다.”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내가 감히 나가 싸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모욕 받은 것을 달게 여기는 것은 황제께서 명으로 굳게 지키고 움직이지 말라하였기 때문이다. 지금 만약 가벼이 나간다면 임금의 명을 어기는 것이 될 것이다.”했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성내며 불평하였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미 나가 싸울 것을 요청하니 내가 황제에게 아뢰어 허락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힘을 합쳐 적에게 나아가는 것이 어떠한가?”했다.
眾皆允諾。懿乃寫表遣使,直至合淝軍前,奏聞魏主曹叡。叡拆表覽之。表略曰:臣才簿任重,伏蒙明旨,今臣堅守不戰,以待蜀人之自敝;奈今諸葛亮遺臣以巾幗,待臣如婦人,恥辱至甚!臣謹先達聖聰:旦夕將效死一戰,以報朝廷之恩,以雪三軍之恥。臣不勝激切之至!
무리들이 모두 승낙하였다. 사마의가 이에 표를 서서 사자를 보내 바로 합비의 군전에 이르러 위나라 임금 조예에게 아뢰게 하였다. 조예가 봉투를 찢고 표를 살펴보았다. 표를 간략히 하면 “신의 재능은 적고, 임무는 무거운데, 밝은 황제의 명령을 받아 이제 신이 굳게 지키며 싸우지 않는 것으로서 촉의 사람이 저절로 피폐해지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지금 제갈량(제갈공명)이 신에게 여자의 머리쓰개를 보내 신을 부인으로 대우하니 부끄러움과 욕됨이 매우 심합니다. 신은 삼가 먼저 성총을 헤아려 목숨을 걸고 한 번 싸우는 것으로서 조정의 은혜를 갚고 삼군의 부끄러움을 씻으려 합니다. 신은 격렬함의 지극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했다.
叡覽訖,乃謂多官曰:「司馬懿堅守不出,今何故又上表求戰?」衛尉辛毗曰:「司馬懿本無戰心,必因諸葛亮恥辱,眾將忿怒之故,特上此表,欲更乞明旨,以遏諸將之心耳。」叡然其言,即令辛毗持節至渭北寨傳諭,令勿出戰。司馬懿接詔入帳,辛毗宣諭曰:「如再有敢言出戰者,即以違旨論。」眾將只得奉詔。懿暗謂辛毗曰:「公真知我心也。」
사마예가 살피기를 마치고 많은 관료에게 일러 말하기를 “사마의는 굳게 지키고 나가 싸우지 않았는데 지금 무슨 이유로 또 표를 올려 싸우기를 청하는가?”하니 위위 신비가 말하기를 “사마의는 본래 싸우려는 마음이 없었는데 반드시 제갈량(제갈공명)의 치욕 때문에 여러 장수들이 분노한 이유로 특히 이 표를 올리는 것으로서 다시 밝은 명령을 청하는 것으로서 여러 장수들의 마음을 막으려 했을 뿐입니다.”했다. 조예가 그 말을 그렇게 여겨 곧 신비로 하여금 지절을 가지고 위수 북쪽 영채에 가 명령을 전하게 하여 나가 싸우지 말게 하였다. 사마의가 영접하여 군막에 들어가니 신비가 명령을 전해 말하기를 “만일 감히 나가 싸울 것을 말하는 자는 곧 황제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다.”했다. 여러 장수들이 다만 명령을 받들 뿐이었다. 사마의가 몰래 신비에게 일러 말하기를 “공은 참으로 나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했다.
於是令軍中傳說:魏主命辛毗持節,傳諭司馬懿勿得出戰。蜀將聞知此事,報與孔明。孔明笑曰:「此乃司馬懿安三軍之法也。」姜維曰:「丞相何以知之?」孔明曰:「彼本無戰心;所以請戰者,以示武於眾耳。豈不聞:『將在外,君命有所不受』?安有千里而請戰者乎?此乃司馬懿因將士忿怒,故借曹叡之意,以制眾人。今又播傳此言,欲懈我軍心也。」
이에 군중에 위나라 임금이 신비로 하여금 지절을 가지고 사마의에게 나가 싸우지 말라고 명령했다고 전하게 했다. 촉의 장수들이 이 일을 듣고 제갈공명에게 보고하였다. 제갈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이는 곧 사마의가 삼군을 편앙하게 하는 방법이다.”했다. 강유가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어떻게 그것을 아십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그는 본래 싸우려는 마음이 없었는데 싸우기를 청하는 자 때문에 위엄을 무리에게 보였을 뿐이다. 어찌 ‘장수가 밖에 있을 때 임금의 명을 받지 않는 바가 있음을 듣지 못하였는가?’ 어찌 천리(밖에 있으면서) 싸움을 청하는 자가 있겠는가? 이는 곧 사마의가 장수와 군사들의 분노 때문에 조에의 뜻을 빌리는 것으로서 여러 사람을 제압한 것이다. 지금 또한 이 말을 전하여 우리 군대의 마음을 해이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했다.
正論間,忽報費褘到,孔明請入問之。褘曰:「魏主曹叡聞東吳三路進兵,乃自引大軍至合淝,令滿寵、田豫、劉劭分兵三路迎敵。滿寵設計,盡燒東吳糧草戰具,吳兵多病。陸遜上表於吳王,約會前後夾攻,不意齎表人中途被魏兵所獲:因此機關洩漏,吳兵無功而還。」孔明聽知此信,遂長歎一聲,不覺昏倒於地:眾將急救,半晌方甦。孔明歎曰:「吾心昏亂,舊病復發,恐不能生矣!」
논의하는 사이에 홀연히 비위가 이르렀다고 보고하니 제갈공명이 들어오기를 청해 물었다. 비위가 말하기를 “위나라 임금 조예가 동로의 세 방향 군대가 진군한다는 것을 듣고 이에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합비에 이르러 만총, 전예, 유소로 하여금 군대를 세 길(방향으로)로 나누어 적을 맞이하였습니다. 만총이 계책을 설계하여 동오의 식량, 말먹이 풀, 싸움 도구를 모두 불태웠고, 오나라 군대가 많이 병이 들었습니다. 육손이 오나라 왕에게 표를 올려 앞뒤에서 협공할 것을 약속하려다 뜻하지 않게 표를 가지 사람이 중간에 위나라 군대에게 잡혔습니다. 이 때문에 기밀이 누설되어 오나라 군대가 공 없이 돌아갔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이 말을 듣고 마침내 길게 탄식하고 혼절하여 땅에 업ㅍ어졌다. 여러 장수들이 급히 구원하여 한참 후에 깨어났다. 제갈공명이 탄식해 말하기를 “내 마음이 혼란하고 옛 병이 다시 나타났으니 아마ㅗ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했다.
是夜孔明扶病出帳,仰觀天文,十分驚慌:入帳謂姜維曰:「吾命在旦夕矣!」維曰:「丞相何出此言?」孔明曰:「吾見三台星中,客星倍明,主星幽隱,相輔列曜,其光昏暗:天象如此,吾命可知!」維曰:「天象雖則如此,丞相何不用祈禳之法挽回之?」孔明曰:「吾素諳祈禳之法,但未知天意如何。汝可引甲士四十九人,和執皂旗,穿皂衣,環繞帳外;我自於帳中祈禳北斗。若七日內主燈不滅,吾壽可增一紀;如燈滅,吾必死矣。閒雜人等,休令放入。凡一應需用之物,只令二小童搬運。」
이날 밤 제갈공명은 병을 무릅쓰고 군막을 나와 천문을 관찰해 보고 매우 놀라 군막에 들어 가 강유에게 말하기를 “내 목숨이 아침저녁에 달려있구나!”했다. 강유가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무슨 이유로 이런 말을 하십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삼태성을 살펴보는데 객성은 배나 밝고 주성(주인 별)은 어두운데, 서로 도와 배열한 별도 그 빛나는 것이 어둡다. 하늘의 상이 이 같아서 내 목숨을 알 수 있는 것이다.”했다. 강유가 말하기를 “하늘의 상이 비록 곧 이 같은데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기도하는 법을 써서 그것을 만회하려 하지 않으십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평소에 기도하는 법을 알고 있으나 다만 하늘의 뜻이 어떠한지 알지 못한다. 너는 갑사 사십 구명을 이끌고 검은 깃발을 잡고 검은 옷을 입고 장막 밖을 둘러싸게 하라. 나는 스스로 장막 안에서 북두칠성에 기도할 것이다. 만약 칠일 안에 등불이 꺼지지 않는다면 내 목숨이 일기(12년)을 더할 수 있을 것이고, 만일 등불이 꺼진다면 나믐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잡인들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무릇 모든 필요한 물건들은 두 명의 작은 아이들로 하여금 운반하게 할 것이다.”했다.
姜維領命,自去準備。時值八月中秋,是夜銀河耿耿,玉露零零;旌旗不動,刁斗無聲。姜維在帳外引四十九人守護。孔明自於帳中設香花祭物。地上分布七盞大燈,外布四十九盞小燈,內安本命燈一盞。孔明拜祝曰:「亮生於亂世,甘老林泉;承昭烈皇帝三顧之恩,託孤之重,不敢不竭犬馬之勞,誓討國賊。不意將星欲墜,陽(亮?)壽將終。謹書尺素,上告穹蒼。伏望天慈,俯垂鑒聽,曲延臣算,使得上報君恩,下救民命,克復舊物,永延漢祀。非敢妄祈,實由情切。」拜祝畢,就帳中俯伏待旦。次日,扶病理事,吐血不止;日則計議軍機,夜則布罡踏斗。
강유가 명을 받아 가서 준비하였다. 때는 팔월 보름으로 이날 밤은 은하가 밝고 이슬이 조용히(방울방울) 내리고 깃발은 움직이지 않으며 조두는 소리가 없었다. 강유는 장막 밖에서 사십 구명을 이끌고 호위하였다. 제갈공명은 스스로 장막 안에서 향과 제물을 진설해 놓았다. 땅 위에는 일곱 개의 큰 등불을 벌여 놓았고, 밖에는 사십 아홉 개의 작은 등불을 벌여 놓았으며 안에는 본명등 한 개를 놓아두었다. 제갈공명이 절하고 축원하여 말하기를 “량(제가)이 어지러운 세상에 태어나 임천(시골)에서 늙으려 하였는데 소열황제(유현덕)이 세 번 돌아보는(삼고초려) 은혜와 외로운 아들을 부탁하는 중임을 받들어 감히 개와 말의 수고를 다하여 나라의 도적을 토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장수의 별이 떨어지려하여 양(저)의 목숨이 장차 끝나려 합니다. 삼가 작은 비단에 글을 써 위로 궁창(하늘)에 고합니다. 엎드려 하늘의 사랑을 바라고, 굽어 들음을 드리우소서.(굽어 살펴 주십시오.) 신의 수(목숨)를 늘리시어 위로는 임금의 은혜를 갚고 아래로는 백성의 목숨을 구하며 옛 물건을 회복하여 길이 한 나라의 제사를 늘이게 하여 주십시오. 감히 망녕되이 기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실정이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한 후 절하고 축원을 마친 후 장막 안으로 들어 가 엎드려 아침을 기다렸다. 다음 날 병든 채 일을 다스리는데 피를 토하여도 그치지 않아 낮에는 곧 군사의 일을 헤아려 논의하고, 밤에는 곧 북두칠성을 벌여놓고, 북두칠성을 밟았다.
卻說司馬懿在營中堅守,忽一夜仰觀天文,大喜,謂夏侯霸曰:「吾見將星失位,孔明必然有病,不久便死。你可引一千軍去五丈原哨探。若蜀人攘亂不出接戰,孔明必然患病矣。吾當乘勢擊之。」霸引兵而去。
각설하고 사마의가 진영 안에서 굳게 지키고 있는데 홀연히 어느 날 저녁 천문을 쳐다보다 크게 기뻐하며 하후패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장수의 별이 자리를 잃은 것을 보니 제갈공명은 반드시 병이 들어오래지 않아 곧 죽을 것이다. 너는 일천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오장원을 정찰하라. 만약 촉의 사람들이 혼란스럽고, 나와 맞아 싸우지 않는다면 제갈공명은 반드시 병이 든 것이다. 내가 마땅히 형세를 타고 그를 공격할 것이다.”했다. 하후패가 군대를 이끌고 갔다.
孔明在帳中祈禳已及六夜,見主燈明亮,心中甚嘉。姜維入帳,正見孔明披髮仗劍,踏罡步斗,壓鎮將星。忽聽得寨外吶喊,方欲令人出問,魏延飛步入告曰:「魏兵至矣!」延腳步急,竟將主燈撲滅。孔明棄劍而歎曰:「死生有命,不可得而禳也!」魏延惶恐,伏地請罪;姜維忿怒,拔劍欲殺魏延。正是:萬事不由人做主,一心難與命爭衡。未知魏延性命如何,且看下文分解。
제갈공명이 장막 안에서 기도한지 여섯 번째 밤에 이르렀는데 주등이 밝은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매우 좋게 여겼다. 강유가 장막 안에 들어 가 제갈공명을 보니 머리를 풀어 헤치고 검을 짚으며 벌여놓은 북두칠성을 밟으며 장수의 별을 진압하고 있었다. 홀연히 영채 밖에서 함성이 들리자 바야흐로 사람을 시켜 나가 묻게 하려 하였는데 위연이 날듯이 걸어 들어 와 고하여 말하기를 “위나라 군대가 이르렀습니다.”하는데 위연의 발걸음이 매우 급하여 끝내 주등을 쳐서 꺼트리게 하였다. 제갈공명이 검을 버리고 탄식해 말하기를 “죽고 사는 것은 명이 있는 것으로 기도하여 얻을 수 있는 거시 아니구나!”하니 위연이 당황하고 두려워하여 땅에 엎드려 죄를 청하였다. 강유가 노하여 검을 뽑아 위연을 죽이려 하였다. 바로 이러하다. 모든 일들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하나로 해도 목숨을 다투기는 어렵구나. 위연의 목숨이 어찌될지 알지 못하겠구나.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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