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二回:司馬懿戰北原渭橋,諸葛亮造木牛流馬
제102회 사마의는 북원에서 싸워 위수에 다리를 놓고, 제갈량(제갈공명)은 목우유마를 만들다.
卻說譙周官居太史,頗明天文:見孔明又欲出師,入奏後主曰:「臣今職掌司天台,但有禍福,不可不奏。近有群鳥數萬,自南飛來,投於漢水而死,此不祥之兆。臣又觀天文,見奎星躔於太白之分,盛氣在北,不利伐魏。又成都人民,皆聞柏樹夜哭。有此數般災異,丞相只宜謹守,不可妄動。」
각설하고 초주의 관직은 태사로 자못 천문에 밝았는데 제갈공명이 또 군대를 내려하는 것을 보고 들어 가 후주에게 아뢰어 말하기를 “신은 지금 사천대를 맡아 다만 화와 복이 있을 뿐이니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근자에 여러 새 수만 마리가 있었는데 남쪽으로부터 날아 와 한수에 빠져 죽었으니 이는 상서롭지 않은 징조입니다. 신이 또 천문을 살펴보니 규성이 태백의 영역에서 돌고 성대한 기운이 북쪽에 있으니 위나라를 치는 것은 이롭지 않습니다. 또 성도의 백성들이 모두 잣나무가 밤에 우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런 몇 가지 재이가 있었으니 승상께서는 마땅히 삼가 시켜서 망녕되이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했다.
孔明曰:「吾受先帝託孤之重,當竭力討賊,豈可以虛妄之妖氛,而廢國家大事耶?」遂命有司設太牢祭於昭烈之廟,涕泣拜告曰:「臣亮五出祁山,未得寸土,負罪非輕!今臣復統全部,再出祁山,誓竭力盡心,剿滅漢賊,恢復中原,鞠躬盡瘁,死而後已!」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나는 선제의 탁고의 중임을 받아 마땅히 힘을 다해 적을 토벌해야 하는데 어찌 허망한 요기 때문에 국가 대사를 폐할 수 있겠습니까?”하고는 마침내 담당 관청에 명하여 소렬(유현덕의 시호)의 사당에서 태뢰제를 베풀게 하고, 눈물을 흘리며 절하고 고하여 말하기를 “신 량(제갈공명)이 다섯 번 기산을 나갔으나 한 마디의 땅도 얻지 못하였으니 죄를 진 것이 가볍지 않습니다. 지금 신이 다시 모두를 통솔하고 다시 기산에 나가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 한나라의 적을 섬멸하고 중원을 회복하는데 성의를 다하고 죽은 후에야 그칠 것입니다.”했다.
祭畢,拜辭後主,星夜至漢中,聚集諸將,商議出師。忽報關興病亡。孔明放聲大哭,昏倒於地,半晌方甦。眾將再三勸解,孔明嘆曰:「可憐忠義之人,天不與以壽!我今番出師,又少一員大將也!」後人有詩嘆曰:
제사를 마치고 후주에게 절하며 하직하고 밤을 새워 한중에 이르러 여러 장수를 모아 군대를 일으키는 일을 상의하였다. 홀연히 관흥이 병으로 죽었다고 보고하였다. 제갈공명이 소리내어 크게 곡하다 혼절하여 땅에 엎어졌다가 한나절이 지나 비로소 깨어났다. 여러 장수들이 두 번 세 번 (마음을)풀 것을 권하니 제갈공명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가련하구나 충의의 사람에게 하늘이 수명을 주지 않으시는구나! 내가 이번에 출사하면서 또 한 명의 대장을 잃는구나!”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해 말하기를
生死人常理,蜉蝣一樣空。但存忠孝節,何必壽喬松?
살고 죽는 것은 사람에게 늘 있는 이치로 하루살이와 같이 허무하다. 다만 충효의 절개를 보존 하였을 뿐인데 어찌 장수하지 못하는가?
孔明引蜀兵三十四萬,分五路而進,令姜維、魏延為先鋒,皆出祁山取齊:令李恢先運糧草于斜谷道口伺候。
제갈공명이 촉의 군대 삼십사만을 이끌고 다섯 길로 나누어 진군하며 강유, 위연으로 하여금 선봉이 되게 하고, 모두 기산을 나와 집합하게 하고, 이회로 하여금 먼저 식량과 말먹이 풀을 운반하여 사곡도 입구에서 기다리게 했다.
卻說魏國因舊歲有青龍自摩坡井內而出,改為青龍元年。此時乃青龍二年春二月也。近臣奏曰:「邊官飛報,蜀兵三十餘萬,分五路復出祁山。」
각설하고 위나라는 작년에 청룡이 마파정 안에서 나왔기 때문에 연호를 고쳐 청룡 원년이라 했다. 이 때는 곧 청룡 이년 봄 이월이었다. 근신이 아뢰어 말하기를 “변경의 관리가 촉의 군대 삼십여 만이 다섯 길로 나누어 다시 기산으로 나왔다고 보고했습니다.”했다.
魏主曹叡大驚,急召司馬懿至,謂曰:「蜀人三年未曾入寇:今諸葛亮又出祁山,如之奈何?”懿奏曰:「臣夜觀天象,見中原旺氣正盛,奎星犯太白,不利於西川。今孔明自負才智,逆天而行,乃自取敗亡也。臣托陛下洪福,當往破之。但願保四人同去。」
위나라 임금 조예가 크게 놀라 급히 사마의를 불러 이르자 일러 말하기를 “촉 사람들이 삼년 동안 침입해 오지 않았는데 지금 제갈량(제갈공명)이 또 기산으로 나오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니 사마의가 아뢰어 말하기를 “신이 밤에 하늘의 상을 살펴보니 원원의 왕성한 기운이 바로 성대하고, 규성이 태백성을 범한 것을 보았으니 서천에 이롭지 않습니다. 지금 제갈공명이 스스로의 재능과 지혜를 믿고 하늘을 거스르고 행하니 곧 스스로 패망함을 취할 것입니다. 신이 폐하의 홍복에 의지하여 가서 그들을 깨트리겠습니다. 다만 네 사람을 천거하여 같이 가기를 원합니다.”했다.
叡曰:「卿保何人?」懿曰:「夏侯淵有四子:長名霸,字仲權:次名威,字季權:三名惠,字雅權:四名和,字義權。霸,威二人,弓馬熟嫻:惠,和二人,諳知韜略:此四人常欲為父報仇。臣今保夏侯霸、夏侯威為左右先鋒,夏侯惠、夏侯和為行軍司馬,共贊軍機,以退蜀兵。」
조예가 말하기를 “경은 어떤 사람을 천거하려는가?”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하후연에게 네 아들이 있는데 장자는 이름이 패이고, 자는 중권이며, 차자는 이름이 위로 자는 계권이고, 셋째는 이름이 혜로 자는 아권이고, 넷째는 이름이 화로 자는 의권입니다. 패와 위 두 사람은 궁마(군사)에 익숙하고 혜와 화 두 사람은 도략(병법)을 깨달아 알고 있습니다. 이 네 사람은 항상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하고 있습니다. 신은 지금 하후패와 하후위를 좌우 선봉으로 삼고, 하후혜, 하후화를 행군사마로 삼을 것을 천거하여 함께 군기(군사의 일)를 돕게하는 것으로서 촉의 군대를 물리치려 합니다.”했다.
叡曰:「向者夏侯楙駙馬違誤軍機,失陷了許多人馬,至今羞慚不回。今此四人,亦與楙同否?」懿曰:“此四人非楙之比也。」
조예가 말하기를 “지난번에 하후무 부마는 군대의 일(명령을)을 따르지 않아 허다한 인마에게 손해를 입혀 지금까지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네 사람도 또한 하후무와 같지 않겠습니까?”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이 네 사람은 하후무에 비할 수 없습니다.”했다.
叡乃從其請,即命司馬懿為大都督,凡將士悉聽量才委用,各處兵馬皆聽調遣。懿受命,辭朝出城。叡又以手詔賜懿曰:卿到渭濱,宜堅壁固守,勿與交鋒。蜀兵不得志,必詐退誘敵,卿慎勿追。待彼糧盡,必將自走,然后乘虛攻之,則取勝不難,亦免軍馬疲勞之苦:計莫善此也。
사마예는 곧 그 청을 따르고 곧 사마의로 하여금 대도독이 되게 하고, 모든 장사들은 재능을 헤아려 임용하게 하고, 각 곳의 병마를 모두 (임무에 따라)배정하였다. 사마의가 명을 받고 조정을 하직하고 성을 나갔다. 조예가 또한 손으로 쓴 조서를 사마의에게 내려 말하기를 “경이 위수 가에 이르면 마땅히 굳은 벽처럼 굳게 지키고 서로 싸우지 마시오. 촉의 군대가 뜻을 얻지 못하면 반드시 거짓으로 물러나 적을 유인할 것이니 경은 삼가 쫓지 말라. 그들의 식량이 다하기를 기다리면 반드시 장차 스스로 달아날 것이다. 그런 후에 빈틈을 타고 공격하면 곧 승리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고, 또한 군마가 피로해지는 수고로움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니 계책으로 이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했다.
司馬懿頓首受詔,即日到長安,聚集各處軍馬共四十萬,皆來渭濱下寨:又撥五萬軍,於渭水上搭起九座浮橋,令先鋒夏侯霸、夏侯威過渭水安營:又於大營之后東原,築起一城,以防不虞。
사마의가 머리를 조아리며 조서를 받고, 그날에 장안에 이르러 각 곳의 군마 사십만을 모이게 하니 모두 위수 가에 이르러 영채를 세웠다. 또 오만의 군대를 뽑아 위수에 아홉 개의 부교를 만들게 하고 선봉 하후패와 하후위로 하여금 위수를 건너 영채를 세우게 하였다. 또 큰 진영의 뒤 동쪽 언덕에 한 개 성을 쌓아 일으키는 것으로서 뜻밖의 일을 방비하게 하였다.
懿正與眾將商議間,忽報郭淮、孫禮來見。懿引入,禮畢,淮曰:「今蜀兵悉在祁山,倘跨渭登原,接連北山,阻絕隴道,大可虞也。」懿曰:「所言甚善。公可就總督隴西軍馬,據北原下寨,深溝高壘,按兵不動:只待彼糧盡,方可攻之。”郭淮、孫禮領命,引兵下寨去了。
사마의가 바로 여러 장수와 상의하고 있을 때 홀연히 곽회, 손례가 왔다고 보고했다. 사마의가 인도하여 들어오게 하였다. 예를 마치자 곽회가 말하기를 “지금 촉의 군대는 모두 기산에 있는데 만약 위수를 건너 언덕에 올라 북쪽 산에 연접하여 농도(농서로 통하는 길)를 막아 끊으면 큰 근심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말한 바가 매우 좋습니다. 공은 나아가 농서의 군마를 총감독할 만하니 북원에 기대 영채를 세우고 도랑(해자)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게 쌓은 후 군대를 살피며 움직이지 마십시오.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의 식량이 다하면 비로소 공격해야 합니다.”했다. 괵회와 손례가 명을 받고 군대를 이끌고 영채를 세우러 갔다.
卻說孔明方出祁山,下五個大寨,按左右中前後:自斜谷直至劍閣,一連又下十四個大寨,分屯軍馬,以為久計。每日令人巡哨。忽報郭淮、孫禮領隴西之兵,於北原下寨。孔明謂諸將曰:「魏兵於北原安營者,懼吾取此路,阻絕隴道也。吾今虛攻北原,卻暗取渭濱。令人紮木筏百餘隻,上載草把,選慣熟水手五千人駕之。我夤夜只攻北原,司馬懿必引兵來救。彼若少敗,我把後軍先渡過岸去,然後把軍下於筏中,休要上岸,順水取浮橋放火燒斷,以攻其後。吾自引一軍去取前營之門。若得渭水之南,則進兵不難矣。」諸將遵令而行。
각설하고 제갈공명이 막 기산을 나와 다섯 개 큰 영채를 세우고 좌우, 중, 전후를 살펴 야곡도로부터 곧바로 검각에 이르러 연이어 또 열 네 개의 큰 영채를 세우고 군마를 나누어 주둔하는 것으로서 오래하는 계책을 삼았다. 매일 사람을 시켜 순찰하게 하였다. 홀연히 곽회, 손례가 농서의 군대를 거느리고 북족 언덕에 영채를 세웠다고 보고하였다. 제갈공명이 여러 장수에게 일러 말하기를 “위나라 군대가 북원에 진영을 친 것은 우리가 이 길을 취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농도를 막아 끊은 것입니다. 내가 지금 거짓으로 북원을 공격하는 척하고 몰래 위수 가를 취할 것이오. 사람을 시켜 나무 뗏목 백여 척을 만들고, 위에는 풀단을 싣고 익숙한 선원을 선발하여 몰게 하였다. 내가 깊은 밤에 북원을 공격하면 사마의는 반드시 군대를 이끌고 와서 구원할 것입니다. 그들이 만약 조금 패한다면 우리는 후군을 먼저 건너가게 한 후 군대를 뗏목에서 태워 언덕에 내리지(상륙하지)않고 물을 따라 부교를 취해 불을 질러 태우는 것으로서 그 뒤를 공격하시오. 나는 일군을 이끌고 앞 진영의 문을 취하겠습니다. 만약 위수 남쪽을 얻는다면 곧 진군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여러 장수들은 명령에 따라 행하였다.
早有巡哨軍飛報司馬懿。懿喚諸將議曰:「孔明如此設施,其中必有計:彼以取北原為名,順水來燒浮橋,亂吾後,卻攻吾前也。」即傳令與夏侯霸、夏侯威曰:「若聽得北原發喊,便提兵於渭水南山之中,待蜀兵至擊之。」又令張虎、樂綝,引二千弓弩手伏於渭水浮橋北岸:「若蜀兵乘木筏順水而來,可一齊射之,休令近橋。」 又傳令郭淮、孫禮曰:「孔明來北原暗渡渭水,汝新立之營,人馬不多,可盡伏於半路。若蜀兵午後渡水,黃昏時分,必來攻汝。汝詐敗而走,蜀兵必追。汝等皆以弓弩射之。吾水陸並進。若蜀兵大至,只看我指揮擊之。”各處下令已畢,又令二子司馬師、司馬昭,引兵救應前營。懿自引一軍救北原。
재빨리 정찰병이 사마의에게 보고하였다. 사마의가 여러 장수들을 불러 의논하여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이 같이 한 것은 그 가운데 반드시 계책이 있을 것이다. 그가 북원을 취하는 것을 명분 삼아 물을 따라 와 부교를 태워 우리 뒤를 어지럽힌 후 우리 앞을 공격하려는 것이다.”했다. 곧 하후패, 하후위에게 명령하기를 “만약 북원에서 함성을 지르는 소리를 들으면 곧 군대를 데리고 위수 남쪽 가운데에서 촉의 군대가 이르렀다가 그들을 공격하라.”했다. 또 장호, 악침으로 하여금 궁노수 이천을 이끌고 위수 부교 북원에 매복하게 하고 “만약 촉 군대가 뗏목을 타고 물을 따라 오면 일제히 그들을 쏘아 다리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라.”했다. 또 곽회, 손례에게 명령하여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북원에 와 몰래 위수를 건너면 네가 새로 새운 진영의 인마가 많지 않으니 모두 중도에 군대를 숨겨야 한다. 만약 촉의 군대가 오후에 물을 건넌다면 저녁때쯤 반드시 와 너를 공격할 것이다. 네가 거짓으로 패하여 달아나면 촉의 군대가 반드시 쫓아 올 것이다. 너희들은 모두 궁노를 가지고 화살을 쏘라. 내가 물과 육지에서 나란히 진군할 것이다. 만약 촉의 군대가 크게 이르면 오로지 나의 지휘를 보고 그들을 공격하라.” 했다. 각 곳에 명령을 내리기를 마치고 또 두 아들 사마사, 사마소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앞 진영을 구원하고 상황에 맞게 대응하게 했다. 사마의는 스스로 일 군을 이끌고 북원을 구원하려 하였다.
卻說孔明令魏延、馬岱引兵渡渭水攻北原:令吳班、吳懿引木筏兵去燒浮橋:令王平、張嶷為前隊,姜維、馬忠為中隊,廖化、張翼為後隊:分兵三路,去攻渭水旱營。是日午時,人馬離大寨,盡渡渭水,列成陣勢,緩緩而行。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위연과 마대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위수를 건너 북원을 공격하게 하고, 오반, 오의로 하여금 뗏목 군을 이끌고 가 부교를 불태우게 하고, 왕평, 장의를 앞 부대로 삼고, 강유, 마충을 중간 부대로 삼고, 요화, 장익은 뒷 부대로 삼고, 군대를 세 길로 나누어 가서 위수의 영채를 공격하게 하였다. 이날 오시에 인마가 큰 영채를 떠나 모두 위수를 건너 열을 지어 진세를 이루어 천천히 진군하였다.
卻說魏延、馬岱將近北原,天色已昏。孫禮哨見,便棄營而走。魏延知有準備,急退軍時,四下喊聲大震:左有司馬懿,右有郭淮,兩路兵殺來。魏延、馬岱奮力殺出,蜀兵多半落於水中,餘眾奔逃無路。幸得吳懿兵殺來,救了敗兵過岸拒住。吳班分一半兵撐筏順水來燒浮橋,卻被張虎、樂(左糸右林)在岸上亂箭射住。吳班中箭落水而死。餘軍赴水逃命,木筏盡被魏兵奪去。
각설하고 위연, 마대가 북원에 가까이 갔을 때는 날이 이미 저물고 있었다. 손례가 정탐하고는 곧 진영을 버리고 달아났다. 위연은 준비가 있느 것을 알고 급히 군대를 물릴 때 사방에서 함성이 크게 진동하는데 왼쪽에는 사마의가 있고, 오른쪽에는 곽회가 있으면서 두 길의 군대다 쇄도해 왔다. 위연과 마대가 힘을 떨쳐 쇄도해 나오는데 촉 군대가 많이 물 속 중간에 떨어지고 나머지 무리들은 도망할 길이 없었다. 다행히 오의의 군대가 쇄도해 와 패한 군대를 구원하여 강을 건너가 막았다. 오반이 군대 반을 이끌고 뗏목 노를 저어 물을 따라 가 부교를 태우려 하였으나 장호, 악침이 건너편 언덕에서 어지러이 화살을 쏘아댔다. 오반은 화살에 맞아 물에 떨어져 죽었다. 나머지 군사들은 물에 뛰어들어 도망하고 뗏목은 모두 위나라 군사가 빼앗아 갔다.
王平、張嶷,此時不知北原兵敗,直奔到魏營,已有二更天氣,只聽得喊聲四起。王平謂張嶷曰:「軍馬攻打北原,未知勝負。渭南之寨,現在面前,如何不見一個魏兵?莫非司馬懿知道了,先作準備也?我等且看浮橋火起,方可進兵。」
왕평, 장의는 이 때 북원의 군대가 패한 것을 알지 못하고 곧바로 달려 위나라 진영에 이르렀는데 이미 이경의 시간으로 함성이 사방에서 일어나는 것을 들었다. 왕평이 장의에게 일러 말하기를 “군마가 북원을 공격하는데 승부를 알지 못합니다. 위수 남쪽의 영채는 앞쪽에 있는데 어찌하여 한 명의 위나라 군대도 보이지 않는가? 설마 사마의가 알고 미리 준비한 것은 아니겠지요? 우리들은 또한 부교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을 보아야 비로소 진군할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二人勒住軍馬,忽背後一騎馬來報,說:「丞相教軍馬急回。北原兵,浮橋兵,俱失了。」王平、張嶷大驚,急退軍時,卻被魏兵抄在背後,一聲炮響,一齊殺來,火光沖天。王平、張嶷引兵相迎,兩軍混戰一場。平、嶷二人奮力殺出,蜀兵折傷大半。孔明回到祁山大寨,收聚殘兵,約折了萬餘人,心中憂悶。
두 사람은 군마를 멈추었다. 홀연히 뒤에서 한 기마가 와 보고해 말하기를 “승상께서 군마를 급히 돌리게 하였습니다. 북원의 군대, 부교의 군대를 모두 잃었습니다.” 했다. 왕평과 장의가 크게 놀라 급히 군대를 물릴 때 뒤에 있던 위나라 군대가 습격하여 한 소리 포가 울리며 일제히 쇄도해 오는데 불빛이 하늘에 치솟았다. 왕평과 장의가 군대를 이끌고 맞이하여 두 군대가 한 바탕 섞여 싸웠다. 왕평, 장의 두 사람이 힘을 떨쳐 쇄도해 나왔는데 촉 군대의 태반이 부러지고 다쳤다. 제갈공명이 기산의 큰 영채에 돌아 와 남은 군대를 거두어 모았는데 약 만 여명이 꺽였으므로 마음속으로 근심하고 번민하였다.
忽報費褘自成都來見丞相。孔明請入。費褘禮畢,孔明曰:「吾有一書,正欲煩公去東吳投遞,不知肯去否?」褘曰:「丞相之命,豈敢推辭?」孔明即修書付費褘去了。褘持書逕到建業,入見吳主孫權,呈上孔明之書。權拆視之,其略曰:漢室不幸,王綱失紀,曹賊篡逆,蔓延及今。亮受昭烈皇帝寄托之重,敢不竭力盡心?今大兵已會於祁山,狂寇將亡於渭水。伏望陛下念同盟之義,命將北征,共取中原,同分天下。書不盡言,萬希聖聰!
홀연히 비위가 성도로부터 와 승상(제갈공명)을 만나러 왔다고 보고하였다. 제갈공명이 들어오기를 청하였다. 비위가 예를 마치자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나에게 한 글이 있으니 번거롭지만 공이 동오에 가 글을 전해 주기를 바라는데 기꺼이 가실지 알지 못하겠습니다.”했다. 비위가 말하기를 “승상(제갈공명)의 명인데 어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하니 제갈공명이 곧 글을 써 비위에게 주어 가게 했다. 비위가 글을 가지고 빨리 건업에 이르러 들어 가 오나라 임금 손권을 만나 제갈공명의 글을 올렸다. 손권이 봉투를 뜯어보니 그 글에 대략 말하기를 “한나라가 불행히도 왕의 기강이 법도를 잃어 조적(조조)가 찬역하고 이어져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제갈공명은 소열황제(유현덕)가 부탁한 중임을 받았으니 어찌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큰 군대가 기산에 모였으니 미친 도적이 장차 위수에서 망할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데 폐하께서는 동맹의 의리를 생각하시어 장차 북쪽을 정벌을 명하시어 함께 중원을 취하여 같이 천하를 나누기를 바랍니다. 글로는 말을 다하지 못하니 성총을 바랍니다.”했다.
權覽畢,大喜,乃謂費褘曰:「朕久欲興兵,未得會合孔明。今既有書到,即日朕自興兵,入居巢門,取魏新城:再令陸遜、諸葛瑾等屯兵於江夏沔口取襄陽:孫韶、張承等出兵廣陵取淮陽等處:三路一齊進軍,共三十萬,(左克右寸)日興師。」費褘拜謝曰:「誠如此,則中原不日自破矣!」
손권이 보기를 마치고 크게 기뻐하며 곧 비위에게 일러 말하기를 “짐이 오래동안 군대를 일으키려 하였으나 재갈공명과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이미 글이 이르렀으니 즉시 짐은 군대를 일으켜 망루가 있는 성문에 들어 가 머물며 위나라 신성을 공격하고, 다시 육손, 제갈근 등으로 하여금 군대를 강하 면구에 주둔하여 양양을 취하게 하고, 손소, 장승 등으로 하여금 광릉에서 군대를 내어 양양 등의 곳을 취게 하여 세 길로 일제히 진군하니 모두 삼십만이 날을 맞추어 군대를 일으킬 것입니다.”했다. 비위가 절하고 감사해 말하기를 “진실로 이 같으니 곧 중원은 날이 되지 않아 저절로 깨트려질 것입니다.”했다.
權設宴款待費褘。飲宴間,權問曰:「丞相軍前,用誰當先破敵?」褘曰:“魏延為首。”權笑曰:“此人勇有餘,而心不正。若一朝無孔明,彼必為禍。孔明豈未知耶?」褘曰:「陛下之言極當!臣今歸去,即當以此言告孔明。」遂拜辭孫權,回到祁山,見了孔明,具言吳主起大兵三十萬,御駕親征,兵分三路而進。孔明又問曰:「吳主別有所言否?」費褘將論魏延之語告之。孔明歎曰:「真聰明之主也!吾非不知此人。為惜其勇,故用之耳。」褘曰:「丞相早宜區處。」孔明曰:「吾自有法。」
손권은 연회를 열어 비위를 정성껏 대접하였다. 술을 마시는 사이에 손권이 물어 말하기를 “승상(제갈공명)의 군에서는 누구를 써서 먼저 적을 깨트립니까?”하니 비위가 말하기를 “위연이 우두머리가 됩니다.”했다. 손권이 웃으며 말하기를 “이 사람은 용맹은 있으나 마음이 바르지 못합니다. 만일 하루아침에 제갈공명이 없어진다면 그는 반드시 화가 될 것입니다. 제갈공명이 어찌 알지 못하겠습니까?”하니 비위가 말하기를 “폐하의 말이 지극히 마땅합니다. 신이 지금 돌아가면 곧 마땅히 이 말을 제갈공명에게 알리겠습니다.”했다. 마침내 손권을 절하며 하직하고 돌아가 기산에 이르러 제갈공명을 만나 오나라 임금이 크게 군대 삼십만을 일으켜 (손권이) 친정하여 군대를 세 길로 나누어 진군한다는 것을 모두 말하였다. 제갈공명이 또 물어 말하기를 “오나라 임금이 따로 말한 바가 있습니까?”하니 비위가 위연을 논한 말을 고하였다. 제갈공명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참으로 총명한 임금이구나! 내가 이 사람을 알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 용맹을 아끼기 때문에 그를 쓸 분입니다.”했다. 비위가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일찍부터 마땅히 변통하여 처리해야 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나에게 방법이 있습니다.”했다.
褘辭別孔明,自回成都。孔明正與諸將商議征進,忽報有魏將來投降。孔明喚入問之,答曰:「某乃魏國偏將鄭文也。近與秦朗同領人馬,聽司馬懿調用。不料司馬懿徇私偏向,加秦朗為前將軍,而視文如草芥,因此不平,特來投降丞相。望賜收錄。」
비위가 제갈공명을 하직하고 성도로 돌아갔다. 제갈공명이 바로 여러 장수와 진군하는 일을 상의하는데 홀연히 위나라 장수가 와서 투항했다고 보고했다. 제갈공명이 불러들여 물으니 답하여 말하기를 “저는 곧 위나라 편장 정문입니다. 최근에 진랑과 함께 인마를 거느리고 사마의에게 뽑아 등용되었습니다. 생각지 않게 사마의가 사사로이 치우침을 따라 진랑에게 더하여 전장군을 삼고 저를 보기를 초개와 같이하였기 때문에 불평하여 특히 승상(제갈공명)께 와 투항하는 것입니다. 명부에 기록되는 것을 내려주시기를(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했다.
言未已,人報秦朗引兵在寨外,單搦鄭文交戰。孔明曰:「此人武藝比汝若何?」鄭文曰:「某當立斬之。」孔明曰:「汝若先殺秦朗,吾方不疑。」鄭文欣然上馬出營,與秦朗交戰。孔明親自出營視之。只見秦朗挺槍大罵曰:「反賊盜我戰馬來此,可早早還我!」言訖,直取鄭文。文拍馬舞刀相迎,只一合,斬秦朗於馬下。魏兵各自逃走。鄭文提首級入營。
말을 마치기도 전에 사람이 진랑이 군대를 이끌고 영채 밖에 있는데 홀로 정문과 서로 싸우려 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이 사람의 무에는 너에 비해 어떠한가?”하니 정문이 말하기를 “저는 마땅히 즉시 베어 죽일 수 있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네가 만약 먼저 진랑을 죽인다면 내가 비로소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했다. 정문이 기쁘게 말에 올라 진영을 나가 진랑과 서로 싸웠다. 제갈공명이 직접 진영을 나가 보았다. 진랑을 보니 창을 내밀고 크게 욕하여 말하기를 “배반한 도적이 나의 전마를 훔쳐 여기에 왔으니 빨리 나에게 돌려 달라!”하는 말을 마치고 바로 정문에게 달려들었다. 정문이 말에 박차를 가하여 칼춤을 추면서 맞이하였는데 일합 만에 진랑을 베어 말에서 떨어뜨렸다. 위나라 군대가 각자 도망해 달아났다. 정문이 수급(머리)을 가지고 진영으로 들어갔다.
孔明回到帳中坐定,喚鄭文至,勃然大怒,叱左右推出斬之。鄭文曰:「小將無罪!」孔明曰:“吾向識秦朗:汝今斬者,並非秦朗。安敢欺我!」文拜告曰:「此實秦朗之弟秦明也。」孔明笑曰:「司馬懿令汝來詐降,於中取事,卻如何瞞得我過!若不實說,必然斬汝!」
제갈공명이 군막에 이르러 자리를 잡고 정문을 불러 이르자 발끈 크게 노하여 좌우에게 끌어 내 베어 죽이라고 소리쳤다. 정문이 말하기를 “소장은 죄가 없습니다.”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이전에 진랑을 알고 있는데 네가 지금 베어 죽인 자는 진랑이 아니다. 어찌 감히 나를 속이려 하는가?”했다. 정문이 절을 하며 고해 말하기를 “이는 실제 진랑의 동생 진명입니다.”하니 제갈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사마의가 너로 하여금 거짓 항복하게 하여 중간에서 일을 취하게(벌이게) 하였으나 어떻게 나를 속여 남길 수 있으리오! 만약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너를 베어 죽일 것이다.”했다.
鄭文只得訴告其實是詐降,泣求免死。孔明曰:「汝既求生,可修書一封,教司馬懿自來劫營,吾便饒汝性命。若捉住司馬懿,便是汝之功,還當重用。」鄭文只得寫了一書,呈與孔明。孔明令將鄭文監下。樊建問曰:「丞相何以知此人詐降?」孔明曰:「司馬懿不輕用人。若加秦朗為前將軍,必武藝高強:今與鄭文交馬只一合便為文所殺,必不是秦朗也。以故知其詐也。」
정문이 어쩔 수 없이 실제는 거짓 항복임을 말하고 눈물을 흘리며 죽음을 면해 줄 것을 청하였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네가 이미 삶을 구하니 글을 한 통 써서 사마의로 하여금 스스로 와 진영을 습격하게 할 수 있으면 내가 곧 너의 목숨을 살려줄 것이다. 만약 사마의를 잡을 수 있다면 곧 이는 너의 공이 될 것이므로 도리어 중하게 쓸 것이다.”했다. 정문이 할 수 없이 글 한통을 써서 제갈공명에게 올렸다. 제갈공명이 장수로 하여금 정문을 감옥에 가두게 하였다. 번건이 물어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어떻게 이 사람이 거짓으로 항복한 것을 알았습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사마의는 가벼이 사람을 쓰지 않는다. 만약 진랑을 승진시켜 전장군을 삼았다면 반드시 무예가 고강할 것인데 지금 정문과 말을 타고 싸운 지 단 일합 만에 죽임을 당하였으니 반드시 진랑이 아닌 것이다. 때문에 거짓임을 알았다.”했다.
眾皆拜服。孔明選一舌辨軍士,附耳分付如此如此。軍士領命,持書逕來魏寨,求見司馬懿。懿喚入拆書看畢,問曰:「汝何人也?」答曰:「某乃中原人,流落蜀中。鄭文與某同鄉。今孔明因鄭文有功,用為先鋒。鄭文特托某來獻書,約於明日晚間,舉火為號,望乞都督親提大軍前來劫寨,鄭文在內為應。」
무리들이 모두 절하며 승복하였다. 제갈공명이 한 말 잘하는 군사를 뽑아 귓속말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분부하였다. 군사가 명을 받아 글을 가지고 빠르게 위나라 영채에 가 사마의를 뵙기를 청하였다. 사마의가 불러들여 봉투를 뽑아 글을 보기를 마치고 물어 말하기를 “너는 누구인가?”하니 답하여 말하기를 “저는 곧 중원인으로 촉으로 흘러들어 갔습니다. 정문과 저는 고향을 같이 합니다. 지금 제갈공명은 정문의 공 때문에 등용하여 선봉을 삼았습니다. 정문이 특히 저에게 부탁하여 가서 글을 바치게 하고, 내일 저녁때쯤 불을 들어 신호하면 도독께서 친히 대군을 데리고 전진하여 영채를 습격하시면 정문이 안에서 대응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했다.
司馬懿反覆詰問,又將來書仔細檢看,果然是實:即賜軍士酒食,分付曰:「本日二更為期,我自來劫寨。大事若成,必重用汝。」軍士拜別,回到本寨告知孔明。孔明仗劍步罡,禱祝已畢,喚王平、張嶷分付如此如此:又喚馬忠、馬岱分付如此如此:又喚魏延分付如此如此。孔明自引數十人,坐於高山之上,指揮眾軍。
사마의가 반복하여 심문하고, 또 가져온 글을 자세히 검사하였으나 과연 진실이었다. 곧 군사에게 술과 음식을 내리고 분부해 말하기를 “이날 이경을 기일로 하여 내가 스스로 가 영채를 숩격할 것이다. 큰 일이 만일 이루어진다면 반드시 어를 중용할 것이다.”했다. 군사가 절하며 하직하고 돌아 가 본 영채네 이르러 제갈공명에게 보고하였다. 제갈공명이 검을 잡고, 북두칠성 별자리를 따라 밟으며 기도하고 축원하기를 마치고, 왕평, 장의를 불러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분부하고, 또 마충, 마대를 불러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분부하였다. 또 위연을 불러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분부하였다. 제갈공명은 직접 수십 명을 이끌고 높은 산 위에 앉아 여러 군사들을 지휘하였다.
卻說司馬懿見了鄭文之書,便欲引二子提大兵來劫蜀寨。長子司馬師諫曰:「父親何故據片紙而親入重地?倘有疏虞,如之奈何?不如令別將先去,父親為後應,可也。」懿從之,遂令秦朗引一萬兵,去劫蜀寨,懿自引兵接應。是夜初更,風清月朗:將及二更時分,忽然陰雲四合,黑氣漫空,對面不見。懿大喜曰:「天使我成功也!」
각설하고 사마의는 정문의 글을 보고 곧 두 아들과 대군을 이끌고 촉의 영채를 습격하려 하였다. 맏아들 사마사가 간하여 말하기를 “아버지께서는 무슨 이유로 편지에 기대 친히 중지(위험한 지역)에 들어가려 하십니까? 만약 소홀히하여 실수가 있다면 어떻게 합니까? 다른 장수로 하여금 먼저 가게하고, 아버지께서는 위에서 대응하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사마의가 그 말을 따라 마침내 진랑으로 하여금 일만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촉의 영채를 습격하게 하고 사마의 자신은 군대를 이끌고 대응하기로 했다. 이날 밤 초경에 서늘한 바람이 불고 달이 밝았다. 이경에 이를 때쯤 홀연히 먹구름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검은 기운이 공중에 가득하여 얼굴을 대하고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사마의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하늘이 나로 하여금 공을 이루게 하는구나!”했다.
於是人盡銜枚,馬皆勒口,長驅大進。秦朗當先,引一萬兵直殺入蜀寨中,並不見一人。朗知中計,忙叫退兵。四下火把齊明,喊聲震地:左有王平、張嶷,右有馬岱、馬忠,兩路兵殺來。秦朗死戰,不能得出。背後司馬懿見蜀寨火光沖天,喊聲不絕,又不知魏兵勝負,只顧催兵接應,望火光中殺來。忽然一聲喊起,,火炮震地,鼓角喧天:左有魏延,右有姜維,兩路兵殺來。魏兵大敗,十傷八九,四散逃奔。
이에 삶들 모두는 함매를 물고 말은 모두 재갈을 물려 길게 몰아 크게 진군하였다. 진랑은 선봉이 되어 일만의 군대를 이끌고 바로 족의 진영 안으로 쇄도해 들어갔으나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진랑이 계책에 빠진 것을 알고 황급히 군대를 물리라고 외쳤다. 사방에서 불이 일제히 밝아지고, 함성이 땅을 진동시켰다. 왼쪽에는 왕평과 장의가 있고, 오른 쪽에는 마대, 마충이 있어 두 길의 군대가 쇄도해 왔다. 진랑이 죽음으로 싸워도 나올 수 없었다. 뒤에서 사마의가 촉의 영채 안에서 불빛이 하늘에 치솟고, 함성이 끊어지지 않는 것을 보다. 또 위나라 군대의 승부를 알지 못하여 다만 군대를 돌아보고 재촉하고 대응하여 불빛을 향해 쇄도해 갔다. 홀연히 한 소리 함성이 일어나면서 화포가 땅을 진동하고, 고각이 하늘에 울렸다. 왼쪽에는 위연이 있고, 오른쪽에는 강유가 있어 두 길로 쇄도해 왔다. 위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여 십에 팔, 구가 상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此時秦朗所引一萬兵,都被蜀兵圍住,箭如飛蝗。秦朗死於亂軍之中。司馬懿引敗兵奔入本寨。三更以後,天復清朗。孔明在山頭上鳴金收軍。原來二更時陰雲四合,乃孔明用遁甲之法:後收兵已了,天復清朗,乃孔明驅六丁六甲掃蕩浮雲也。
이 때 진랑이 이끌던 일만의 군대는 모두 촉 군대에 포위당하였는데 화살이 나는 메뚜기 떼 같았다. 진랑은 혼란한 군대 안에서 죽었다. 사마의가 패함 군대를 이끌고 달아나 본 영채로 들어갔다. 삼경 이후 하늘이 다시 밝아 졌다. 제갈공명은 산 위에 있다가 징을 울려 군대를 거두었다. 알고 보니 먹구름이 사방에 낀 것은 곧 제갈공명이 둔갑법을 쓴 것이고, 군대를 거둔 후에 하늘이 다시 밝아진 것은 곧 제갈공명이 육정육갑(여러 신)을 몰아 뜬 구름을 쓸어냈기 때문이다.
當下孔明得勝回營內,命將鄭文斬了,再議取渭南之策。每日令兵搦戰,魏軍只不出來。孔明自乘小車,來祁山前渭水東西踏看地理。忽到一谷口,見其形如葫蘆之狀,內中可容千餘人:兩山又合一谷,可容四五百人:背後兩山環抱,只可通一人一騎。孔明看了,心中大喜,問鄉導官曰:「此谷何名?」答曰:「此名上方谷,又名葫蘆谷」。
그 때 제갈공명은 승리를 거두고 진영 안으로 돌아 와 정문을 베어 죽이게 하고 다시 위수 남쪽을 취할 계책을 의논하였다. 매일 군대로 하여금 도전하게 하였다. 위나라 군대는 나오지 않았다. 제갈공명은 스스로 작은 수레를 타고 기산 앞으로 가 위수 동쪽과 서쪽을 걸으며 지리를 살펴보았다. 홀연히 한 골짜기 입구에 이르러 그 형상을 보니 호로병과 같은데 안에는 천여 명을 수용할만하고, 두 산이 또 하나의 골짜기에 합하는데(이루는데) 사오백 명을 수용할 만한데 뒤에는 두 산이 고리처럼 싸고 있어 한 사람, 한 기병만 통할 수 있었다. 제갈공명이 보기를 마치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향도관에게 물어 말하기를 “이 골짜기의 이름은 무엇인가?”하니 답하여 말하기를 “이는 상방곡이라 이름하고, 또 호로곡이라 이름합니다.”했다.
孔明回到帳中,喚裨將杜叡、胡忠二人,附耳授以密計。令喚集隨軍匠作一千餘人,入葫蘆谷中,製造「木牛流馬」應用:又令馬岱領五百兵守住谷口。孔明囑馬岱曰:「匠作人等,不許放出:外人不許放入。吾還不時自來點視。捉司馬懿之計,只在此舉。切不可走漏消息。」馬岱受命而去。杜叡等二人在谷中監督匠作,依法製造。孔明每日自來指示。
제갈공명이 군막으로 돌아와 비장 두예, 호충 두 사람을 불러 귓속말로 비밀 계책을 주었다. 따라 온 무기 장인을 일천여 명을 불러 모으게 하여 호록곡 안에 들어가 ‘목우유마’를 만들어 쓸 수 있게 하였다. 또 마대로 하여금 오백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골짜기 입구를 지키게 하였다. 제갈공명은 마대에게 부탁하여 말하기를 “장인들은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밖의 사람들은 글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말라. 내가 불시에 돌아 와 점검할 것이다. 사마의를 잡을 계책은 이 일에 달려 있다. 절대로 소식이 누설되어서는 안 된다.”했다. 마대가 명을 받고 갔다. 두예 등 두 사람이 골짜기 안에 머물며 장인들을 감독하면서 법에 의해 만들게 하였다. 제갈공명이 매일 스스로 가서 지시하였다.
忽一日,長史楊儀入告曰:「即今糧米皆在劍閣,人夫牛馬,搬運不便,如之奈何?」孔明笑曰:「吾已運謀多時也。前者所積木料,並西川收買下的大木,教人製造木牛流馬,搬運糧米,甚是便利。牛馬皆不食水,可以搬運晝夜不絕。」眾皆驚曰:「自古及今,未聞有『木牛流馬』之事。不知丞相有何妙法,造此奇物?」孔明曰:「吾已令人依法製造,尚未完備。吾今先將造木牛流馬之法,尺寸方圓,長短闊狹,開寫明白,汝等視之。」眾皆大喜。孔明即手書一紙,付眾觀看。眾將環繞而視。其造木牛之法云:
홀연히 하루는 장사 양의가 들어와 고해 말하기를 “지금 식량 살이 모두 검각에 있는데 인부와 우마가 운반하기 불편하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했다. 제갈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이미 계책을 낸 것이 오래 되었다. 앞서 쌓아 놓은 나무와 아울러 서천에서 큰 나무를 거두어 사들여 사람으로 하여금 목우유마를 만들게 하였으니 군량미를 운반할 때 매우 편리할 것이다. 우마는 모두 먹고 마시지 않으니 (군량미)운반하기를 밤낮 끊이지 않게 알 수 있다.”했다. 무리들이 놀라 말하기를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목우유마의 일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승상께서 무슨 신묘한 법이 있어 이 기이한 물건을 만드셨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사람을 시켜 법에 의거하여 만들게 하였으나 아직 완전히 갖추지 못하였다. 내가 지금 먼저 목우유마를 만드는 법을 크기와 방원. 길고 짧음, 넓고 좁음을 명백히 써서 너희들에게 보여주겠다.”했다. 무리들이 모두 크게 기뻐하였다. 제갈공명이 곧 글 한 통을 써서 무리들에게 주어 보게 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둘러서서 보았다. 그 목우유마를 만드는 법에 말하기를
方腹曲脛,一腳四足:頭入領中,舌著于腹。載多而行少:獨行者數十里,群行者三十里。曲者為牛頭,雙者為牛足,橫者為牛領,轉者為牛腳,覆者為牛背,方者為牛腹,垂者為牛舌,曲者為牛肋,刻者為牛齒,立者為牛角,細者為牛鞅,攝者為牛鞦軸。牛御雙轅,人行六尺,牛行四步。人不大勞,牛不飲食。
배는 네모나고 정강이는 굽었으며, 한 다리에 발이 네 개 이다. 머리는 목 안에 들어가 있고, 혀는 배에 붙어 있다. 많은 것을 실으면 조금 가고, 홀로 걸으면 수십 리를 가고 무리지어 가면 삼십 리를 간다. 굽은 것은 소머리가 되고, 쌍으로 된 것은 소발이 되며, 가로로 한 것은 소 목이 되고, 구르는 것은 소 다리가 되고, 덮은 것은 소 등이 되며 네모난 것은 소 배가 되며 늘어뜨린 것은 소 혀가 된다. 굽은 것은 소의 갈비이며 새긴 것은 소의 이빨이며 세운 것은 소 뿔이다. 가는 것은 멍에가 되며 당기는 것은 소 후 걸이이다. 소를 부리는 것은 한 쌍의 끌채로 사람이 여섯 자를 갈 때 소는 네 걸음을 간다. 사람은 크게 수고롭지 않고 소는 마시고 먹지 않는다.
造流馬之法云:
유마를 만드는 법은
肋長三尺五寸,廣三寸,厚二寸五分;左右同前。前軸孔分墨去頭四寸,徑中二寸。前腳孔分墨去頭四寸五分,長一寸五分,廣一寸。杠孔去前腳孔分墨三寸七分,孔長二寸,廣一寸。後軸孔去前杠分墨一尺五寸,大小與前同。後腳孔分墨一寸二分去后軸孔三寸五分,大小與前同。后杠孔去后腳孔分墨二寸七分,后載克去後杠孔分墨四寸五分。前杠長一尺八寸,廣二寸,厚一寸五分。後杠與等。板方囊二枚,厚八分,長二尺七寸,高一尺六寸五分,廣一尺六寸:每枚受米二斛三斗。從上杠孔去肋下七寸:前后同。上杠孔去下杠孔分墨一尺三寸,孔長一寸五分,廣七分:八孔同。前後四腳廣二寸,厚一寸五分。形制如象,軒長四寸,徑面四寸三分。孔徑中三腳杠,長二尺一寸,廣一寸五分,厚一寸四分。
갈빗대 길이는 세자 다섯 치, 넓이는 세치 두께는 두 치 오푼인데 좌우는 앞과 같다. 앞 축 구멍의 먹줄은 머리에서 네 치 떨어져 있고, (구멍)지름은 두 치이다. 앞 다리 구멍의 먹줄은 머리에서 네 치 오푼 떨어져 있고, 길이는 한 치 오푼이며 (구멍)넓이는 한 치이다. 막대구멍은 앞 다리 구멍의 먹줄로부터 세치 칠푼 떨어져 있고, 구멍의 길이는 두 치이며, 넓이는 일 촌이다. 후축 구멍은 앞막대의 먹줄로부터 한 자 다섯 치 떨어져 있고, 크고 작음은 앞과 같다. 뒷다리 구멍의 먹줄은 한 치 이푼으로 뒷축 구멍으로부터 네 치 오 푼 떨어져 있다. 앞 막대 길이는 한 자 여덟 치, 넓이는 두 치, 두께는 한 치 오 푼이다. 뒷 막대는 같다. 네모난 널판자 상자는 두 장인데 두께는 팔푼이고, 길이는 두 자 일곱 치로 앞과 뒤가 같다. 위 막대 구멍은 아래 구멍 먹줄로부터 한 자 세 치떨어져 있고, 구멍의 길이는 한 치 오푼, 넓이는 칠 푼인데 여덟구멍이 같다. 앞 뒤 네 다리는 넓이가 두 치이고, 두께는 한 치 오 푼이다. 형상은 코끼리와 같고 처마(창)의 길이는 네 치이고 지름은 네 치 삼 푼이다. 구멍 안의 세 개 다리 막대는 길이가 두 자 한 치이고, 넓이는 한 치 오푼, 두께는 한 치 사푼이다.
眾將看了一遍,皆拜伏曰:「丞相真神人也!」過了數日,木牛流馬皆造完備,宛然如活者一般:上山下嶺,皆盡其便。眾軍見之,無不欣喜。孔明令右將軍高翔,引一千兵駕著木牛流馬,自劍閣直抵祁山大寨,往來搬運糧草,供給蜀兵之用。後人有詩贊曰:
무리들이 두루 살펴보고 모두 절하며 엎드려 말하기를 “승상(제갈공명)은 참으로 신 같은 사람입니다.”했다. 며칠이 지나 목우유마가 모두 완성되었는데 흡사 살아있는 것 같았다. 산에 오르고 고개를 내려가는데 모두 그 편함을 다하였다. 여러 군사들이 그것을 보고 즐거워하지 않음이 없었다. 제갈공명이 우장군 고상으로 하여금 일천의 군대를 이끌고 목우유마에 멍에를 지워 검각에서 바로 기산의 큰 영채에 이르고 왕래하면서 식량과 말먹이 풀을 운반하여 촉 군대의 쓰임에 공급하게 했다. 후세 사람이 시로 기려 말하기를
劍閣險峻驅流馬,斜谷崎嶇駕木牛。後世若能行此法,轉輸安得使人愁?
“검각의 험준한 땅에서 목우유마를 몰고, 야곡의 험준한 산에서 목우유마에 멍에 지웠다. 후세에 이 법을 실행할 수 있다면 수송에 어찌 사람을 근심하게 할 수 있겠는가?”했다.
卻說司馬懿正憂悶間,忽哨馬報說:「蜀兵用木牛流馬轉運糧草。人不大勞,牛馬不食。」懿大驚曰:「吾所以堅守不出者,為彼糧草不能接濟,欲待其自斃耳。今用此法,必為久遠之計,不思退矣。如之奈何?」急喚張虎、樂綝二人分付曰:「汝二人各引五百軍,從斜谷小路抄出:待蜀兵驅過木牛流馬,任他過盡,一齊殺出:不可多搶,只搶三五匹便回。」
각설하고 사마의가 근심하고 번민하고 있을 때 홀연히 정찰병이 보고해 말하기를 “촉의 군대가 목우유마를 써서 식량과 말먹이 풀을 운반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크게 수고롭지 않고, 우마는 먹지 않습니다.”했다. 사마의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내가 굳게 지키고 나가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식량과 말먹이 풀을 조달하지 못하여 저절로 죽기를 기다렸던 것이었다. 지금 이 법을 쓰니 오래 할 계책이 되어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고는 급히 장호 악침 두 사람을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너희 두 사람은 각각 오백 명의 군대를 이끌고 야곡의 작은 길을 따라 나가 촉의 군대가 목우유마를 몰고 지나는 것을 기다리다 그들이 모두 지날 즈음 일제히 쇄도해 나와 많이 빼앗지 말고 서너 필만 빼앗아 돌아오라.”했다.
二人領命,各引五百兵,扮作蜀兵,夜間偷過小路,伏在谷中,果見高翔引兵驅木牛流馬而來。將次過盡,兩邊一齊鼓噪殺出。蜀兵措手不及,棄下數匹,張虎、樂綝歡喜,驅回本寨。司馬懿看了,果然如活的一般,乃大喜曰:「汝會用此法,難道我不會用!」便令巧匠百餘人,當面拆開,分付依其尺寸長短厚薄之法,一樣製造木牛流馬。不消半月,造成二千餘只,與孔明所造者一般法則,亦能奔走。遂令鎮遠將軍岑威,引一千軍驅木牛流馬,去隴西搬運糧草,往來不絕。魏營軍將,無不歡喜。
두 사람이 명을 받고 각각 오백 명의 군대를 이끌고 촉의 군대로 분장한 다음 밤에 몰래 작은 길을 따라 골짜기 안에 숨어 있었다. 과연 고상이 군대를 이끌고 목우유마를 몰고 오는 것이 보였다. 모두 지나갈 때쯤 양쪽에서 일제히 북을 울리며 쇄도해 나왔다. 촉의 군대가 손을 쓰지 못하고 몇 필을 버리고 달아나니 장호와 악침이 기뻐하며 (목우유마를)몰고 영채로 돌아 왔다. 사마의가 살펴보니 과연 살아 있는 듯하여 이에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 방법을 쓰는데 내가 쓰는 것이 어렵겠는가?”하고는 곧 공교로운 장인 백여 명으로 하여금 즉시 분해하여 그 척수, 길고 짧음, 두껍고 얇은 법에 의하여 같은 모양의 목우유마를 만들도록 분부하였다. 반 달이 되지 않아 이천여 개를 제갈공명이 만든 것과 같은 방법으로 만드니 또한 달릴 수 있었다. 마침내 진원장군 잠위로 하여금 일천 명의군대를 이끌고 목우뮤마를 몰아 농서에 가 식량과 말먹이 풀을 운반하게 하니 왕래하는 것이 끊이지 않았다. 위나라 진영의 군사와 장수들이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卻說高翔回見孔明,說魏兵搶奪木牛流馬各五六匹去了。孔明笑曰:「吾正要他搶去。我只費了幾匹木牛流馬,卻不久便得軍中許多資助也。」諸將問曰:「丞相何以知之?」孔明曰:「司馬懿見了木牛流馬,必然仿我法度,一樣製造。那時我又有計策。」
각설하고 고상은 돌아 와 제갈공명을 뵙고 위나라 군대가 목우유마 각 오육필을 빼앗아 갔다고 말하였다. 제갈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바로 그들이 빼앗아 가기를 바랐다. 나는 몇 필의 옥우유마를 잃었으나 오래지 않아 군대 안에 많은 재물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했다. 여러 장수들이 물어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어떻게 아셨습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사마의가 목우유마를 보면 반드시 우리의 법도를 모방하여 같은 모양으로 만들 것이다. 이 때 나에게 또 계책이 있다.”했다.
數日後,人報魏軍也會造木牛流馬,往隴西搬運糧草。孔明大喜曰:「不出吾之算也。」便喚王平分付曰:「汝引一千兵,扮作魏兵,星夜偷過北原,只說是巡糧軍,混入彼運糧軍中,將運糧之人,盡皆殺散:卻驅木牛流馬而回,逕奔過北原來。此處必有魏兵追趕,汝便將木牛流馬口內舌頭扭轉過來,牛馬就不能行動,汝等竟棄之而走。背後魏兵趕到,牽拽不動,扛抬不去。吾再有兵到,汝卻回身再將牛馬舌扭過來,長驅大行。魏兵必疑為怪也」
며칠 후 사람이 보고하기를 “위나라 군대가 목우유마를 만들어 농서에 가 식량과 말먹이 풀을 운반하고 있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나의 헤아림(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하고는 곧 왕평을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너는 일천 명의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 군대로 분장한 후 밤에 몰래 북원을 지나 다만 순량군이라 말하고 그들의 식량을 운반하는 군대 안에 섞여 들어 가 식량을 운반하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흩어버린 후 목우유마를 몰고 돌아오는데 지름길로 달려 북원을 지나오라. 이곳에는 반드시 위나라 군대가 추격할 것이니 너는 곧 목우유마 입 안의 혀끝을 비틀어 돌리면 목우유마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니 너희들은 마침내 그것을 버리고 달아나라. 뒤에 위나라 군대가 이르러 끌어도 움직이지 않아 메고(끌고)가지 못할 것이다. 다시 우리 군대가 이르면 너는 몸을 돌려 다시 목우유마 혀를 돌리고 길게 몰아 크게 행진하라. 위나라 군대는 반드시 의심하고 괴이하게 여길 것이다.”했다.
王平受計引兵而去。孔明又喚張嶷分付曰:「汝引五百兵,都扮作六丁六甲神兵,鬼頭獸身,用五彩塗面,妝作種種怪異之狀:一手執繡旗,一手仗寶劍:身挂葫蘆,內藏煙火之物,伏於山旁。待木牛流馬到時,放起煙火,一齊擁出,放出煙火,驅牛馬而行。魏兵見之,必疑是神鬼,不敢來追趕。」
왕평이 계책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갔다. 제갈공명은 또 장의를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너는 오뱍 명의 군대를 이끌고 모두 육정육간의 신병으로 분장하는데 귀신의 머리에 짐승의 몸을 하고, 다섯 색을 써 얼굴에 발라 여러 가지 괴이한 형상으로 꾸미라. 한 손에는 수놓은 깃발을 들고 한 손에는 보검을 잡고, 몸에는 호로를 걸고 (호로)안에 연기나는 물건을 넣고 산 옆에 매복하라. 목우유마가 이를 때를 기다리다 연기와 불을 놓으며 일제히 몰려나가 연기와 불을 놓으면서 목우유마를 몰고 가라. 위나라 군대가 그것을 보면 반드시 귀신인가 의심하여 감히 추격하지 못할 것이다.”했다.
張嶷受計引兵而去。孔明又喚姜維、魏延分付曰:「汝二人同引一萬兵,去北原寨口接應木牛流馬,以防交戰。」又喚廖化、張翼分付曰:「汝二人引五千兵,去斷司馬懿來路。」又喚馬忠、馬岱分付曰:「汝二人引二千兵去渭南搦戰。」六人各各領令而去。
장의가 계책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갔다. 제갈공명은 또 강유, 위연을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너희 두 사람은 함께 일만의 군대를 이끌고 북원 영채 입구에 가 목우유마에 대응하는 것으로서 싸우는 것을 막으라.”했다. 또 요화, 장익을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너희 두 사람은 오천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사마의가 오는 길을 끊으라.”하고 또 마충, 마대를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너희 두 사람은 이천의 군대를 이끌고 위수 남쪽에 가 싸움을 걸라.”했다. 여섯 사람이 각각 명령을 받고 갔다.
且說魏將岑威引軍驅木牛流馬,裝載糧米,正行之間,忽報前面有兵巡糧。岑威令人哨探,果是魏兵,遂放心前進。兩軍合在一處。忽然喊聲大震,蜀兵就本隊里殺起,大呼:「蜀中大將王平在此!」魏兵措手不及,被蜀兵殺死大半。岑威引敗兵抵敵,被王平一刀斬了,余皆潰散。王平引兵盡驅木牛流馬而回。敗兵飛奔報入北原寨內。郭淮聞軍糧被劫,疾忙引軍來救。王平令兵扭轉木牛流馬舌頭,皆棄于道上,且戰且走。郭淮教且莫追,只驅回木牛流馬。眾軍一齊驅趕,卻那裡驅趕得動?郭淮心中疑惑。
각설하고 위나라 장수 잠위는 군대를 이끌고 목우유마를 몰아 식량 쌀을 싣고 가고 있을 때 홀연히 앞쪽에 군대가 있는데 식량 운반을 순시하다고 보고했다. 잠위가 사람으로 하여금 정찰하게 하였더니 과연 위나라 군대였다. 마침내 마음 놓고 전진하였다. 두 군대가 한곳에서 합해졌다. 홀연히 함성이 크게 울리며 촉의 군대가 본 대열에서 빠져나오며 크게 외치기를 “촉의 대장 왕평이 여기에 있다!”하니 위나라 군대가 손을 쓰지 못하고 촉 군대에게 죽임을 당한 자가 태반이었다. 잠위가 패한 군대를 이끌고 적을 막다가 왕평의 한 칼에 베어져 죽고 나머지는 모두 무너져 흩어졌다. 왕평이 군대를 이끌고 목우유마를 몰아 돌아갔다. 패한 군대가 달아나 북원의 영채에 들어 가 보고하였다. 곽회는 군량을 약탈 당하혔다는 것을 듣고 빠르게 군대를 이끌고 구원하러 갔다. 왕평이 군대로 하여금 목우유마 혀끝을 돌리고 모두 길 위에 버리고 싸우며 달아났다. 곽회는 추격하지 못하게 하고, 다만 목우유마를 몰아 돌아가려 하려 할 뿐이었다. 여러 군사들이 일제히 몰고 가려는데 어찌된 일인지 몰아도 움직이지 않았다. 곽회는 마음속으로 의혹에 빠졌다.
正無奈何,忽鼓角喧天,喊聲四起,兩路兵殺來,乃姜維、魏延也。王平復引兵殺回。三路夾攻,郭淮大敗而走。王平令軍士將牛馬舌頭,重復扭轉,驅趕而行。郭淮望見,方欲回兵再追,只見山後煙云突起,一隊神兵擁出,一個個手執旗劍,怪異之狀,驅駕木牛流馬如風擁而去。郭淮大驚曰:「此必神助也!」眾軍見了,無不驚畏,不敢追趕。
어쩔 수 없어 하는데 홀연히 고각이 하늘에 울리고, 함성이 사방에서 일어나며 두 길로 군대가 쇄도해 오니 곧 강유와 위연이었다. 왕평이 다시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세 길로 협공하니 곽회가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 왕평이 군사로 하여금 우마의 혀끝을 다시 돌리게 하고 (목우유마를)몰고 갔다. 곽회가 멀리서 보고 막 군대를 돌려 다시 추격하려는데 산 뒤에서 연기구름이 갑자기 일어나며 한 부대의 신병이 나오는데 한 각각 손에 깃발과 검을 잡고 괴이한 형상을 하고 목우유마에 멍에를 하여 몰아 바람같이 달려갔다. 곽회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신이 돕는 것이구나!”했다. 여러 군사들이 보고는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어 감히 추격하지 못하였다.
卻說司馬懿聞北原兵敗,急自引軍來救。方到半路,忽一聲炮響,兩路兵自險峻處殺出,喊聲震地。旗上大書:「漢將張翼,廖化」。司馬懿見了大驚。魏軍著慌,各自逃竄。正是:路逢神將糧遭劫,身遇奇兵命又危。未知究竟如何,且看下文分解。
각설하고 사마의는 북원의 군대가 패하였는 것을 듣고 급히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구원하러 갔다. 막 반쯤 이르렀을 때 홀연히 한 소리 포가 울리고 두 길로 군대가 험준한 곳으로부터 쇄도해 나오는데 함성이 땅을 진동하였다. 깃발에 ‘한장장익요화’라 쓰여 있었다. 사마의가 보고 크게 놀랐다. 위나라 군대가 당황하여 각각 도망하였다. 바로 이러하다. 길에서 만난 신장이 식량을 약탈하였는데 몸은 기습하는 군대를 만나 목숨이 또한 위태롭다.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겠다.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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