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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

제104회 큰 별이 떨어지며 한나라 승상은 하늘로 돌아가고(죽고), 나무 상을 본 위나라 도독은 간담이 서늘해지다.

by 최인표 2021. 12. 31.

第一四回隕大星漢丞相歸天見木像魏都督喪膽

104회 큰 별이 떨어지며 한나라 승상은 하늘로 돌아가고(죽고), 나무 상을 본 위나라 도독은 간담이 서늘해지다.

 

卻說姜維見魏延踏滅了燈,心中忿怒,拔劍欲殺之孔明止之曰:「此吾命當絕,非文長之過也。」維乃收劍孔明吐血數口,臥倒床上,謂魏延曰:「此是司馬懿料吾有病,故令人來探視需實汝可急出迎敵。」

각설하고 강유는 위연이 등불을 밟아 꺼트리는 것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분노하여 검을 뽑아 죽이려하였다. 제갈공명이 그를 제지하여 말하기를 이는 내 명이 다한 것이지 문장(위연)의 잘못이 아니다.”하니 강유가 곧 검을 거두었다. 제갈공명이 몇 번이나 피를 토하고 침상 위에 누워 위연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는 사마의가 나에게 병이 있다고 생각하고 사람을 시켜 허실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너는 급히 나가 적을 맞이하라.”했다.

 

魏延領命,出帳上馬,引兵殺出寨來夏侯霸見了魏延,慌妄引軍退走延追趕二十餘里方回孔明令魏延自回本寨把守

위연이 명을 받고 군막을 나가 말에 올라 군대를 이끌고 영채를 쇄도해 나갔다. 하후패가 위연을 보고는 황망히 군대를 이끌고 물러났다. 위연이 이십 여리를 뒤쫓다가 돌아왔다. 제갈공명이 위연으로 하여금 본 영채로 돌아 가 지키게 했다.

 

姜維入帳,直至孔明榻前問安孔明曰:「吾本欲竭忠盡力,恢復中原,重興漢室;奈天意如此,吾旦夕將死吾平生所學已著書二十四篇,計十萬四千一百一十二字;內有八務七戒六恐五懼之法吾遍觀諸將,無人可授,獨汝可傳我書切忽輕忽!」

강유가 장막에 들어 가 제갈공명의 침상 앞에 이르러 문안하였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나는 본래 충성을 다하고 힘을 다해 중원을 회복하여 한나라를 중흥시키려 하였는데 하늘의 뜻이 이와 같아서 내가 조만간에 죽을 것이다. 내 평생 배운 바로 이십사편을 지었는데 계산하면 십만 사천 일백 일십 두 자이다. 안에는 팔무’, ‘칠계’, ‘육공’, ‘오구의 법이 있다. 내가 두로 여러 장수들을 관찰해보니 받을만한 사람이 없고 유직 너만은 내 글을 받을 수 있다. 소홀히 하지 말라.”했다.

 

維哭拜而受孔明又曰:「吾有連弩之法,不曾用得其法矢長八寸,一弩可發十矢;皆畫成圖本汝可依法造用。」維亦拜受孔明又曰:「蜀中諸道,皆不必多憂,惟陰平之地,切須仔細此地雖險峻,久必有失。」又喚馬岱入帳,附耳低言,授以密計;囑曰:「我死之後,汝可依計行之。」

강유가 울면서 절하고 받았다. 제갈공명이 또 말하기를 나에게 연노의 법이 있는데 일찍이 사용하지 못하였다. 그 법은 화살의 길이가 팔촌()인데 한 번에 열 발의 화살을 발사할 수 있는데 모두 그림으로 도면을 만들어 두었으니 너는 법에 의하여 만들어 쓸 수 있다.”했다. 강유가 또한 절하며 받았다. 제갈공명이 또 말하기를 촉 안의 여러 길은 많이 근심할 필요가 없지만 오직 음평의 길만은 반드시 자세히 해야 한다. 이 땅은 비록 험준하지만 오랜 후 반드시 잃음이 있을 것이다.”하고, 또 마대를 불러 군막에 들어오자 귓속말로 소리를 낮추어 비빌 계책을 주어 부탁해 말하기를 내가 죽은 후 너는 계책에 의하여 행하라.”했다.

 

岱領計而出少頃,楊儀入孔明喚至榻前,授與一錦囊,密囑曰:「我死,魏延必反;待其反時,汝與臨陣,方開此囊那時自有斬魏延之人也。」孔明一一調度已畢,便昏然而倒,至晚方甦,便連夜表奏後主後主聞奏大驚,急命尚書李福,星夜至軍中問安,兼詢後事李福領命,趲程赴五丈原,入見孔明傳後主之命問安畢,孔明流涕曰:「吾不幸中道喪亡,虛廢國家大事,得罪於天下我死後,公等宜竭忠輔國國家舊制,不可更易吾所用之人,亦不可輕廢吾兵法皆授與姜維,他自能繼吾之志,為國家出力吾今命已在旦夕,當即有遺表上奏天子也。」

마대가 계책을 받고 나갔다. 잠시 후 양의가 들어 왔다. 제갈공명이 불러 침상 앞에 이르자 하나의 비단 주머니를 주면서 비밀리 부탁하여 말하기를 내가 죽으면 위연이 반드시 배반할 것이다. 그가 배반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네가 진을 무주하게 되면 비로소 이 주머니를 열어보라. 그 때 스스로 위연을 베어 죽일 사람이 있을 것이다.”했다. 제갈공명이 하나하나 상황에 맞게 처리하기를 마치고 혼절하였는데 저녁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어나 밤을 새워 표로 후주(유선)에게 아뢰었다. 후주가 아뢰는 것을 듣고 크게 놀라 급히 상서 이복에게 명하여 밤을 새워 군중에 가 문안하게 하고, 겸하여 뒤의 일을 묻게 하였다. 이복이 명을 받고 길을 재촉하여 오장원으로 달려 가 들어 가 제갈공명을 뵙고 후주의 명을 전하였다. 문안을 마치자 제갈공명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내가 불행히도 중도에 죽게 되어 국가 대사를 저버렸으니 천하에 죄를 지은 것이다. 내가 죽은 후 공들은 마땅히 충성을 다하여 나라를 보좌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의 옛 제도는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쓴 바의 사람을 또한 가벼이 폐해서도 안 됩니다. 나의 병법은 모두 강유에게 주었으니 그는 스스로 나의 뜻을 이어 국가를 위해 힘을 낼 것입니다. 내가 지금 목숨이 이미 조석에 달렸으니 마땅히 곧 유언을 담은 표를 천자(황제)에게 올려 아뢸 것이 있습니다.”했다.

 

李福領了言語,匆匆辭去孔明強支病體,令左右扶上小車,出寨遍觀各營,自覺秋風吹面,徹骨生寒乃長歎曰:「再不能臨陣討賊矣悠悠蒼天,曷此其極!」歎息良久回到帳中,病轉沉重,乃喚楊儀吩咐曰:「馬岱王平廖化張翼張嶷等,皆忠諒死節之士,久經戰陣,多負勤勞,堪可委用我死之後,凡事俱依舊章而行緩緩退兵,不可急驟汝深通謀略,不必多囑姜伯約智勇足備,可以斷後楊儀泣拜受命孔明令取文房四寶,於臥榻上手書遺表,以達後主表略曰

이복이 말을 듣고는 황급히 하직하고 갔다. 제갈공명이 억지로 병든 몸을 지탱하며 좌우의 도움을 받아 수레에 올라 영채를 나와 두루 각각의 진영을 살펴보는데 가을바람이 얼굴에 불어오자 쇠약한 몸에 한기가 들었다. 이에 길게 탄식하며 말하기를 다시 진을 마주하여 적을 토벌할 수 없겠구나! 너르고 너른 푸른 하늘은 어찌하여 이리도 무심한가!”하고 탄식하기를 오래하였다. 돌아와 군막 안에 이르렀는데 병이 더욱 중해지니 이에 양의를 불러 분부해 말하기를 마대, 왕평, 요화, 장익, 장의 등은 모두 충성스럽고 믿을 만하고, 목숨을 바쳐 절개를 지키는 선비인데 오래 동안 전쟁을 겪어 많은 수고로움을 졌으니 믿고 쓸 만합니다. 내가 죽은 후 모든 일들은 옛 법에 의하여 행하라. 천천히 군대를 물리고 급히 달려서는 안 됩니다. 너는 깊이 모략에 통달하니 많이 부탁할 필요가 없다. 강백약(강유)는 지혜와 용기를 충분히 갖추었으니 뒤를 맡길만 하다.”했다. 양의가 눈물을 흘리며 벌하고 명을 받았다. 제갈공명이 문방구를 가져오게 하여 침상에서 남기는 표를 직접 써서 후주(유선)에게 전하게 하였다. 표를 요약하면

 

伏聞生死有常,難逃定數死之將至,願盡愚忠臣亮賦性愚拙,遭時艱難;分符擁節,專掌鈞衡;興師北伐,未獲成功;何期病入膏肓,命垂旦夕;不及終事陛下,飲恨無窮伏願陛下清心寡慾,約己愛民;達孝道於先皇,布仁恩於宇下;提拔幽隱,以進賢良;屏斥奸邪,以厚風俗

제가 들으니 삶과 죽음은 항상함(정해져)이 있어서 정해진 운수를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죽음이 장차 이르렀으니 저의 충성을 다하기를 원합니다. 신 량(제갈공명)은 받은 성품이 어리석고 졸렬한데 어려운 때를 만나 부절을 나누어 안고 인재 평정을 맡아 군대를 일으켜 북벌하였으나 아직 공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어찌 병이 고황에 들어 목숨이 조석에 달려 끝내 폐하를 섬기지 못하게 되어 한이 끝이 없게 될 줄 알았겠습니까? 엎드려 폐하께 바라건데 맑은 마음으로 욕심을 적게 하고, 자기에게 엄격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선황(유현덕)에게 효도를 다하는 것이고, 어짐과 은혜를 천하에 펴는 것입니다. 숨어있는 이를 추려 뽑는 것으로서 어질고 선한 이들을 등용하고, 간사한 이를 막는 것으로서 풍속을 두텁게 하십시오.

 

臣家有桑八百株,田五十頃,子孫衣祿,自有餘饒至於臣在外任,隨身所需,悉仰於官,不別治生產臣死之日,不使內有餘帛,外有餘財,以負陛下也

신의 집에 뽕나무 팔백 그루, 밭 오십 경이 있어 자손의 의식이 스스로 풍요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신이 조정 밖에 있을 때는 몸에 필요한 것이 있을 때는 모두 관청에 의지하여 별도로 생산을 다스리지 않았습니다. 신이 죽는 날 안으로 남은 비단이 있고, 밖으로 남은 재물이 있게 하지 않는 것으로서 폐하(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孔明寫畢,又囑楊儀曰:「我死之後,不可發喪可作一大龕將吾屍坐於龕中;以米七粒,放吾口內;腳下用明燈一盞;軍中安靜如常,切勿舉哀則將星不墜吾陰瑰更自起鎮之司馬懿見將星不墜,必然驚疑吾軍可令後軍先行,然後一營一營緩緩而退若司馬懿來追,汝可布成陣勢,回旗反鼓等他來到,卻將我先時所刻木像,安於車上,令大小將士,分列左右懿見之必驚走矣

제갈공명이 쓰기를 마치고 또 양의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은 후 (내가)죽은 것을 알려서는 안 된다. 하나의 큰 감실을 만들고 감실 안에 내 시신을 앉힌 다음 쌀 일곱 알을 내 입 안에 물리고, 다리 아래에 밝은 등 한 개를 켠 후 군대 안에 고요히 안치하여 평상과 같이하고 절대로 상복을 입고 슬퍼하지 않으면 곧 장수의 별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내 넋이 다시 스스로 일어나 그것을 지킬 것이다. 사마의는 장수이 별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놀라고 의아해 할 것이다. 우리 군대는 뒤의 군대로 하여금 먼저가게하고, 그 후 한 진영, 한 진영이 천천히 물러나야 한다. 만약 사마의가 쫓아온다면 너는 진의 형세를 이루고 깃발을 휘두르며 군사를 돌려 반격하라. 그들이 와서 이른다면 내가 앞서 깍은 바의 목상을 가져다 수레 위에 안치하고 대소 장사들로 하여금 나누어 좌우에 열지어 서게 하라. 사마의가 그것을 보면 반드시 놀라 달아날 것이다.”했다.

 

楊儀一一領諾是夜孔明令人扶出,仰觀北斗,遙指一星曰:「此之將星也。」眾視之見其色昏暗,搖搖欲墜孔明以劍指之,口中念咒咒畢,急回帳時,不省人事

양의가 하나하나 응락하였다. 이날 밤 제갈공명이 사람으로 하여금 부축하게 하고 (군막 밖으로)나와 북두를 우러러 관찰하다 멀리 한 별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것이 장수의 별이다.”했다. 무리들이 그것을 보니 그 색이 어둡고 흔들흔들하여 떨어지려 하는 것을 보았다. 제갈공명이 검으로 가리키고, 입으로는 주문을 외웠다. 주문 외우기를 마치고 급히 군막으로 돌아갔을 때 사람의 일을 살피지(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였다.(인사불성에 빠졌다.)

 

眾將正慌亂間,忽尚書李福又至;見孔明昏絕,口不能言,乃大哭曰:「我誤國家之大事也!」須臾,孔明復醒,開目遍視;見李福立於榻前,孔明曰:「吾已知公復來之意也。」福謝曰:「福奉天子命,問丞相身後,誰可任大事者適因匆遽,失於諮請,故復來耳。」孔明曰:「吾死之後,可任大事者蔣公琰其宜也。」福曰:「公琰之後,誰可繼之?」孔明曰「:費文偉可繼之。」福又問:「文偉之後,誰當繼者?」 孔明不答

여러 장수들이 당황하여 혼란스러워할 때 홀연히 상서 이복이 또 이르러 제갈공명이 혼절한 것을 보고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이에 크게 소리 내어 울며 말하기를 내가 국가의 대사를 그르쳤구나!”하였다. 잠시 후 제갈공명이 깨어나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다 이복이 침상 앞에 서있는 것을 보았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공이 다시 온 뜻을 알고 있습니다.”했다. 이복이 사례하며 말하기를 제가(이복) 황제의 명을 받들어 승상께서 돌아가신 후 누가 대사를 맡을 만한지를 묻습니다. 바쁘게 서두는 바람에 자문을 청하지 못하였으므로 다시 왔을 뿐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죽은 후 대사를 맡을만한 자는 장공염이 마땅합니다.”했다. 이복이 말하기를 장공염의 뒤는 누가 이을 만합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비문위가 이을만합니다.”했다. 이복이 또 묻기를 비문위 뒤는 누가 있는 것이 마땅합니까?”하였으나 제갈공명이 답하지 않았다.

 

眾將近前視之,已薨矣時建興十二年秋八月二十三日也壽五十四歲後杜工部有詩歎曰

여러 장수들이 앞으로 가까이 가 그를 보니 이미 죽어 있었다. 때는 건흥 십이년 가을 팔월 이십삼일이니 나이는 오십사세였다. 후에 두 공부(두보)가 시를 지어 기려 말하기를

 

長星昨夜墜前營,訃報先生此日傾虎帳不聞施號令,麟臺誰復著勳名空餘門下三千客,辜負胸中十萬兵好看綠陰清晝裡,於今無復近斤為改牙歌聲

어젯밤 큰 별 진영 앞에 떨어지니 이날 선생의 부음 들렸다. 위엄서린 군막에서 명령내리는 소리 들리지 않고, 인대에 누가 다시 큰 이름 붙이랴. 문하 삼천 식객을 헛되이 남기고, 가슴 속 십만 군대를 져버렸다. 아름다운 녹음 우거지고 맑은 날에도 이제 다시 노래 소리 가까이 할 수 없겠구나!”

 

白樂天亦有詩曰

先生晦跡臥山林,三顧欣逢賢主尋魚到南陽方得水,龍飛天外便為霖託孤既盡慇懃禮,報國還傾忠義心前後出師遺表在,令人一覽淚沾襟

백낙천이 또 시를 지었는데

선생이 산림에 누워 자취를 감추고, 어진 군주가 세 번이나 찾자 기쁘게 만났다. 물고기는 남양에 이르러 비로소 물을 만났고, 용이 하늘 밖을 날자 장맛비가 내린다. 외로운 아이 부탁하여 은근한 예를 다하였고, 나라에 보답하고자 충의의 마음을 다하였다. 전후 출사표를 남겨 한 번 본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 흘려 옷깃 적시게 한다.

 

,蜀長水校尉廖立,自謂才名宜為孔明之副,嘗以職位閒散,怏怏不平,怨謗無已於是孔明廢之為庶人,徙之汶山及聞孔明亡,乃垂泣曰:「吾終為左衽矣!」李嚴聞之,亦大哭病亡蓋嚴嘗望孔明復收己,得自補前過;度孔明死後,人不能用之故也後元微之有贊孔明詩曰

처음 촉의 장수교위 요립은 스스로 재능과 명성이 제갈공명에 부합한다고 말하였는데, 일찍이 직위가 보잘 것 없어 불만에 차 불평하며 원망하고 비방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에 제갈공명이 그를 폐해 서인으로 삼고 문산으로 옮기게 했다. 제갈공명이 죽었다는 것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내가 끝내 왼쪽으로 하겠구나!(오랑캐가 되겠구나!)”했고, 이엄이 그것(제갈공명의 죽음)을 듣고 또한 크게 소리 내어 울다 병들어 죽었다. 대개 이엄은 일찍이 제갈공명이 자기를 거두어 자신의 앞 허물을 씻어 줄 것을 바랐으나 제갈공명이 죽은 후 다른 사람이 등용하지 않을 것임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후에 원미지가 제갈공명을 기리는 시를 지었는데

 

撥亂扶危主,慇懃受託孤英才過管樂,妙策勝孫吳凜凜出師表,堂堂八陣圖如公存盛德,應歎古今無

위태로운 군주를 도와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아 다스리고, 정성으로 외로운 아이 부탁을 받았다. 꽃다운 재능은 관중과 악의보다 낫고, 신묘한 계책은 손빈과 오기보다 낫구나. 출사표는 늠늠하고 팔진도는 당당하다. (제갈공명) 같은 성대한 덕은 고금에 없음을 한탄한다.

 

是夜,天愁地慘,月色無光,孔明奄然歸天姜維楊儀遵孔明遺命,不敢舉哀,依法成殮,安置龕中,令心腹將卒三百人守護;隨傳密令,使魏延斷後,各處營寨一一退去

이날 밤 하늘과 땅이 슬퍼하고, 달은 빛을 잃었는데 제갈공명이 갑자기 하늘로 돌아갔다. 강유, 양의가 제갈공명의 유명에 따라 감히 상복을 입고 슬퍼하지 못하고 예법에 따라 염을 한 후 감실 안에 안치하고 심복 장수, 병졸 삼백 명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고, 비밀리 명령을 내려 위연으로 하여금 뒤를 끊게 한 뒤 각 곳의 영채로 하여금 하나하나 물러나게 하였다.

 

卻說司馬懿夜觀天文,見一大星,赤色,光芒有角,自東北方流於西南方,墜於蜀營內,三投再起,隱隱有聲懿驚喜曰:「孔明死矣!」即傳令起大兵追之方出轅門,忽又疑慮曰:「孔明善會六丁六甲之法,今見我久不出戰,故以此術詐死,誘我出耳今若追之,必中其計。」遂復勒馬回寨不出,只令夏侯霸暗引數十騎,往五丈原山僻哨探消息

각설하고 사마의가 밤에 천문을 보니 하나의 큰 별이 보였다. 색은 붉고 빛 줄기가 모퉁이에 있고, 동북쪽으로부터 서남쪽으로 흐르다 촉의 진영 안으로 떨어지는데 세 번 튕기는데(세 번 던져지고 두 번 일어남) 은은한 소리가 있었다. 사마의가 놀라고 기뻐하며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죽었구나!”하고는 곧 명을 내려 큰 군대를 일으켜 추격하게 하였다. 막 원문을 나가는데 홀연히 의심하여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육정육갑의 법을 잘하는데 내가 오래 동안 출전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 술법으로 죽은 척하여 나를 나오도록 유인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만약 뒤 따라 간다면 반드시 그 계책에 빠지게 될 것이다.”하고는 마침내 다시 고삐를 당겨 말을 돌려 영채로 돌아 가 나오지 않고, 다만 하후패로 하여금 몰래 수 십기를 이끌고 오장원에 가 소식을 살펴보게 하였다.

 

卻說魏延在本寨中,夜作一夢,夢見頭上忽生二角,醒來甚是疑異次日,行軍司馬趙直至,延請入問曰:「久知足下深明易理吾夜夢頭生二角,不知主何吉凶煩足下為我決之。」趙直想了半晌,答曰:「此大吉之兆;麒麟頭上有角,蒼頭頭上有角,乃變化飛騰之象也。」延大喜曰:「如應公言,當有重謝!」直辭去,行不數里,正遇尚書費褘褘問何來直曰:「適至魏文長營中,文長夢頭生角,令我決其吉凶此本非吉兆,但恐直言見怪,因以麒麟蒼龍解之褘曰:「足下何以知非吉兆?」直曰:「角之字形乃刀下用也今頭上有角,其凶甚矣。」褘曰:「公且勿洩漏。」

각설하고 위연은 본 영채 안에 있었는데 밤에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머리 위에 갑자기 두 개의 뿔이 돋는 것을 보았다. 꿈을 깨고 나서 매우 의심하고 이상하게 여겼다. 다음 날 행군사마 조직이 이르자 위연이 들어 올 것을 청하여 물어 말하기를 족하(그대)가 역의 이치에 매우 밝다는 것을 안지 오래되었습니다. 내가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나는 꿈을 꾸었는데 길흉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겠습니까? 번거롭지만 그대는 나를 위해 결단하여 주십시오.”했다. 조직이 잠시 생각하고는 답하여 말하기를 이는 크게 길한 징조입니다. 기린의 머리 위에는 뿔이 있는데 푸른 두건을 쓴 머리 위에 뿔이 있으니 곧 변화하여 날아오르는 상입니다.”했다. 위연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만약 공(조직)의 말과 같다면 마땅히 큰 사례가 있을 것입니다.”했다. 조직이 하직하고 나가 몇 리가지 않아 바로 상서 비위를 만났다. 비위가 어디서 오는지를 물었다. 조직이 말하기를 위문장(위연)의 진영에 갔는데 문장(위연)이 머리에 뿔이 났다는 꿈을 꾸고는 나로 하여금 그 길흉을 결단(해석)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본래 길한 조짐이 아니지만 정직하게 말하였다가 의심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기린과 창룡(기린과 창룡의 예)으로서 해석하였습니다.”했다. 비위가 말하기를 그대는 어떻게 길한 조짐이 아닌 것을 아는가?”하니 조직이 말하기를 “‘의 글자 모양은 아래에 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머리 위에 뿔이 있으니 그 흉함이 심한 것입니다.”했다. 비위가 말하기를 (조직)은 누설하지 마십시오.”했다.

 

直別去費褘至魏延寨中,屏退左右,告曰:「昨夜三更,丞相已去世矣臨終再三囑付,令將軍斷後以當司馬懿,緩緩而退,不可發喪今兵符在此,便可起兵。」延曰:「何人恣(?)理丞相之大事?」褘曰:「丞相一應大事,盡託與楊儀;用兵密法,皆授與姜伯約此兵符乃楊儀之令也。」延曰:「丞相雖亡,吾今尚在楊儀不過一長史,安能當此大任他只宜扶柩入川安葬我自率兵攻司馬懿,務要成功豈可因丞相一人而廢國家大事耶?」褘曰:「丞相遺令,教且暫退,不可有違。」延怒曰:「丞相當時若依我計,取長安久矣吾今官任前將軍征西大將軍南鄭侯,安肯與長史斷後!」褘曰:「將軍之言雖是,然不可輕動,令敵人恥笑待吾往見楊儀,以利害說之,令彼將兵權讓與將軍,何如?」

조직이 이별하고 갔다. 비위가 위연의 영채 안에 이르러 좌우를 물리치고 고하여 말하기를 지난 밤 삼경에 승상께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음에 임하여 두 번, 세 번 부탁하여 장군으로 하여금 뒤를 끊는 것으로서 사마의를 막고, 천천히 물러나되 상(제갈공명이 죽었다는 것)을 발표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병부가 여기에 있으니 곧 군대를 일으키십시오.”했다. 위연이 말하기를 누가 승상의 대사를 대리합니까?”하니 비위가 말하기를 승상의 모든 대사는 모두 양의에게 부탁하고, 군대를 운용하는 것과 비밀의 법은 모두 강백양(강유)에게 주었습니다. 이 병부는 곧 양의의 명령입니다.”했다. 위연이 말하기를 승상이 비록 죽었으나 내가 지금 아직 살아 있습니다. 양의는 일개 장사에 지나지 않는데 어찌 이 큰 임무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다만 (제갈공명의) 영구()을 모시고 천()에 들어가 안장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군대를 거느리고 사마의를 공격하여 힘서 공을 이루겠습니다. 어찌 승상 한 사람으로 때문에 국가의 대사를 폐할 수 있겠습니까?”했다. 비위가 말하기를 승상께서 명령을 남겨 잠시 물러나게 하셨으니 어겨서는 안 됩니다.”했다. 위연이 노하여 말하기를 승상께서 당시에 만약 나의 계책을 따랐다면 장안을 취한 것이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내가 지금 관직이 전장군 정서대장군 남정후를 맡고 있는데 어찌 기꺼이 장사와 뒤를 끊을 수 있으리오!”했다. 비위가 말하기를 장군의 말이 비록 옳으나 가벼이 움직여 적의 비웃움을 사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가 가서 양의를 만나 이해로서 설명하여 그로 하여금 병권을 장군에게 양도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했다.

 

延依其言禕辭延出營,急到大寨見楊儀,具述魏延之語儀曰:「丞相臨終,曾密囑我曰:『魏延必有異志。』今我以兵符往,實欲探彼之心耳今果應丞相之言吾自令伯約斷後可也於是楊儀領兵扶柩先行,令姜維斷後;依孔明遺令,徐徐而退

위연이 그 말을 따랐다. 비위가 위연을 하직하고 진영을 나와 급히 큰 영채에 이르러 양의를 만나 위연의 말을 모두 진술하였다. 양의가 말하기를 승상께서 죽음에 임하여 일찍이 비밀리 나에게 부탁하여 말씀하시기를 위연이 반드시 다른 뜻이 있을 것이다.’하셨습니다. 지금 내가 병부를 가지고 가는 것으로서 실제 그의 마음을 탐지하려 했을 뿐이었는데 지급 과연 승상의 말이 맞았습니다. 내 나신이 백약(강유)으로 하여금 뒤를 끊게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했다. 이에 양의는 군대로 하여금 (제갈공명의)영구를 운구하여 먼저 가게한 뒤 강유로 하여금 뒤를 끊게 하고 제갈공명이 남긴 명령에 의하여 천천히 물러났다.

 

魏延在寨中,不見費褘來回覆,心中疑惑,乃令馬岱引十數騎往探消息回報曰:「後軍乃姜維總督,前軍大半皆退入谷中去了。」延大怒曰:「豎儒焉敢欺我我必殺之!」因謂岱曰:「公肯相助否?」岱曰:「吾亦素恨楊儀,願助將軍攻之。」延大喜,即拔寨引本部兵望南而行

위연이 영채 안에 있는데 비위가 가서 돌아오지 않자 마음속으로 의심하고 이상하게 여겨 곧 마대로 하여금 수십 기를 이끌고 가 소식을 알아보게 하였다. 돌아와 보고해 말하기를 후군은 곧 강유가 총 감독하고 있고, 전군은 태반이 모두 물러나 골짜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했다. 위연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한갓 선비가 어찌 감히 나를 속일 수 있는가! 내가 반드시 그를 죽일 것이다.”하고는 마대에게 일러 말하기를 공은 기꺼이 도울 줄 수 있습니까?”하니 마대가 말하기를 내가 또한 평소에 양의를 원망하고 있었으니 장군을 도와 그를 공격하고자 합니다.”했다. 위연이 크게 기뻐하며 곧 영채를 거두어 본부의 군대를 이끌고 남쪽을 향해 갔다.

 

卻說夏侯霸引兵至五丈原看時,不見一人,急回報司馬懿曰:「蜀兵已盡退矣。」懿跌足曰:「孔明真死矣可速追之!」夏侯霸曰:「都督不可輕追可令偏將先往。」懿曰:「此番須吾自行。」遂引兵同二子一齊殺奔五丈原來;吶喊搖旗,殺入蜀寨時,果無一人懿顧二子曰:「汝急催兵趕來,吾先引軍前進。」

각설하고 하후패가 군대를 이끌고 오장원에 이르러 살펴보았는데 한 사람도 보이지 않자 급히 돌아 가 사마의에게 보고해 말하기를 촉의 군대는 모두 물러갔습니다.”했다. 사마의가 발을 구르며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참으로 죽었구나! 속히 추격해야 한다!”했다. 하후패가 말하기를 도독께서는 가벼이 추격해서는 안 됩니다. 보좌하는 장수로 하여금 먼저 가게 해야 합니다.”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이번에는 반드시 내가 스스로 갈 것이다.”하고는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두 아들과 함께 일제히 오장원으로 쇄도해 갔다. 함성을 지르고 깃발을 흔들며 촉의 영채에 쇄도해 들어갔는데 과연 한사람도 없었다. 사마의가 두 아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너는 급히 군대를 재촉하여 쫓아오라. 나는 먼저 군대를 이끌고 전진할 것이다.”했다.

 

於是司馬師司馬昭在後催軍;懿自引軍先行,追到山下,望見蜀兵不遠,乃奮力追趕忽然山後一聲較響,喊聲大震只見蜀兵俱回旗返鼓,樹影中飄出中軍大旗,上書一行大字曰:「漢丞相武鄉侯諸葛亮懿大驚失色定睛看時,只見中軍數十員上將,擁出一輛四輪車來;車上端坐孔明綸巾羽扇,鶴氅皂絛懿大驚曰:「孔明尚在,吾深入其重地,墮其計矣!」急勒回馬便走背後姜維大叫:「賊將休走你中了我丞相之計也!」

이에 사마사, 사마소는 후군에 있으면서 군대를 재촉하고, 사마의 스스로는 군대를 이끌고 먼저 가 추격하여 산 아래 이르러 촉의 군대가 멀지 않은 것을 바라보고는 곧 힘을 떨쳐 추격하였다. 홀연히 산 뒤에서 한 소리 포 소리가 울리고 함성이 크게 진동하며 촉의 군대가 모두 깃발을 돌리고 북을 두드렸는데 숲 그늘 안에서 중군의 큰 깃발을 흔들며 나오는데 한 줄의 큰 글자로 한승상무향후제갈량이라 쓰여 있었다. 사마의가 크게 놀라 얼굴빛이 변하였다. 눈 여겨 보니 중군에 수십 명의 상장군이 한 대의 수레를 둘러싸고 나왔다. 수레 위에는 제갈공명이 단정히 앉아 있는데 윤건에 우선을 들고 학창의를 하고 있었다. 사마의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아직도 살아 있는데, 내가 깊이 그 중지에 들었으니 그 계책에 빠졌구나!”하고는 급히 고삐를 당겨 말을 돌려 곧 달아났다. 뒤에서 강유가 크게 외치기를 적장은 달아나지 말라! 너희들은 우리 승상의 계책에 빠졌다!”했다.

 

魏兵魂飛魄散,棄甲丟盔,拋戈撇戟,各逃性命,自相踐踏,死者無數,司馬懿奔走了五十餘里,背後兩員魏將趕上,住馬嚼環叫曰:「都督勿驚。」懿用手摸頭曰:「我有頭否?」二將曰:「都督休怕,蜀兵去遠了。」懿喘息半晌,神色方定;睜目視之,乃夏侯霸夏侯惠也;乃徐徐按轡,與二將尋小路奔歸本寨,使眾將引兵四散哨探

위나라 군대가 혼비백산하여 갑옷과 투구를 벗고 창을 던져버린 후 각자의 목숨을 위해 달아나는데 서로 밟아 죽은 자가 헤아릴 수 없었다. 사마의가 분주히 오십여 리를 달아났을 때 뒤에서 두 명의 위나라 장수가 쫓아 와 말굴레를 끌어 세우며 외쳐 말하기를 도독께서는 놀라지 마십시오.”했다. 사마의가 손을 써서 머리를 더듬으며 말하기를 나에게 머리가 있는가?”했다. 두 장수가 말하기를 도독께서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촉의 군대가 멀리 갔습니다.”했다. 사마의가 숨을 헐떡이기를 잠시 한 후에야 신색이 비로소 안정되어 시선을 집중하여 바라보니 곧 하후패, 하후혜였다. 곧 천천히 말고삐를 잡아 두 장수와 함께 작은 길을 찾아 두 장수와 함께 본 영채로 돌아 가 여러 장수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사방으로 흩어져 정탐하게 하였다.

 

過了兩日,鄉民奔告曰:「蜀兵退入谷中之時,哀聲震地,軍中揚起白旗孔明果然死了,止留姜維引一千兵斷後前日車上之孔明,乃木人也懿歎曰:「吾能料其生,不能料其死也!」於是蜀中人諺曰:「死諸葛能走生仲達。」後人有詩歎曰

이틀이 지나 향민(현지 백성)이 고하여 말하기를 촉의 군대가 물러나 골짜기 안으로 들어갔을 때 슬퍼하는 소리가 땅에 진동하고 군중에 흰 깃발이 나부꼈으니 제갈공명이 과연 죽었고, 다만 강유가 뒤에 머물러 일천의 군대를 이끌고 뒤를 끊고 있었을 뿐입니다. 지난날 수레 위의 제갈공명은 나무로 만든 사람이었을 뿐입니다.”했다. 사마의가 탄식해 말하기를 나는 그가 살았을 때는 (계책을)헤아릴 수 있었으나 그가 죽었을 때는 헤아리지 못하였구나!”했다. 이에 촉 사람들의 속담에 죽은 제갈공명이 산 중달(사마의)을 달아나게 하였다.”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기려 말하기를

 

長星半夜落天樞,奔走還疑亮未殂關外至今人冷笑,頭顱猶問有和無

한 밤 중에 혜성이 천추(북두칠성)에 떨어졌는데, 달아나며 제갈공명이 아지 죽지 않았을까 의심했네. 밖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비웃고 아직도 머리를 만지며 머리가 붙어 있는지를 물어보네!”했다.

 

司馬懿知孔明死信已確,乃復引兵追趕行至赤岸坡,見蜀兵已去遠,乃引還,顧謂眾將曰:「孔明已死,我等皆高枕無憂矣。」遂班師回一路見孔明安營下寨之處,前後左右,整整有法,懿歎曰:「此天下奇才也!」於是引兵回長安,分調眾將,各守隘口懿自回洛陽面君去了

사마의는 제갈공명이 죽은 것을 확신한 후 곧 다시 군대를 이끌고 뒤를 쫓았다. 행군하여 적안파에 이르니 촉의 군대는 이미 멀리 간 뒤였다. 이에 군대를 이끌고 돌아 와 여러 장수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이미 죽었으니 우리들은 보두 베개를 높이 하여도(편안하게 잠을 자도) 근심할 것이 없어졌다.”하고는 마침내 군대를 돌려 돌아갔다. 가는 길에 제갈공명이 진영을 만들었던 곳을 보니 전후좌우가 잘 정돈되어 법도가 있었다. 사마의가 탄복하여 말하기를 이는 천하의 기이한 인재로다!”하고는 이에 군대를 이끌고 장안으로 돌아가며 여러 장수를 나누어 각각 요충지를 지키게 하였다. 사마의는 낙양에 돌아 가 임금을 뵈러 갔다.

 

卻說楊儀引姜維排成陣勢,緩緩退入棧閣道口,然後更衣發喪,揚旛舉哀蜀兵皆撞跌而哭,至有哭死者蜀兵前隊正行到棧閣道口,忽見前面火光沖天,喊聲震地一彪軍攔住去路眾將大驚,急報楊儀正是已見魏營諸將去,不知蜀地甚兵來未知來者是何處兵馬,且看下文分解

각설하고 양의와 강유는 진의 형세를 배열해 이루고 천천히 물러나 잔각도 입구에 들어 간 후 옷을 바꾸어 입고, (제갈공명의 죽음)을 발표하고, 깃발을 걸고 상복을 입은 후 장례를 거행했다. 촉의 군대가 모두 머리를 치고 발을 구르며 소리 내어 우는데 울다가 죽는 자도 있었다. 촉의 군대 앞 부대가 행군하여 잔각도 입구에 이르렀다. 홀연히 앞 쪽에서 불빛이 하늘에 치솟으며 함성이 땅을 진동하며 한 떼의 군대가 가는 길을 막았다. 여러 장수들이 크게 놀라 급히 양의에게 보고하였다. 바로 이러하다. 이미 위나라 진영의 여러 장수들이 간 것을 보았는데 촉 땅에서 어떤 군대가 온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온 자들이 어느 곳의 병마들인지 알지 못하니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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