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太師侍中狀
태사 시중에게 올리는 장(문서)
崔致遠
伏以東海之外有三國,其名馬韓、卞韓、辰韓。馬韓則高麗,卞韓則百濟,辰韓則新羅也。高麗、百濟全盛之時,強兵百萬,南侵吳、越,北撓幽、燕、齊、魯,爲中國巨蠹。
삼가 아룁니다. 동해의 밖에 세 나라가 있는데, 그 이름은 마한, 변한, 진한입니다. 마한은 곧 고려(고구려)이고, 변한은 곧 백지이며, 진한은 곧 신라입니다. 고려(고구려), 백제가 전성했을 때 강한 군대가 백만으로 남쪽으로 오, 월을 침범하고, 북쪽으로는 유주, 연연, 제나라, 노나라를 흔들어 중국의 큰 악당이 되었습니다.
隋皇失馭,由於征遼。貞觀中,我太宗皇帝親統六軍渡海,恭行天罰。高麗畏威請和,文皇受降回蹕。我武烈大王,請以犬馬之誠,助定一方之難,入唐朝謁,自此而始。後以高麗、百濟踵前造惡,武烈王請爲鄕導。至高宗皇帝顯慶五年,勑蘇定方統十道強兵、樓船萬隻,大破百濟。乃於其地,置扶餘都督府,招輯遺氓,莅以漢官。以臭味不同,屢聞離叛,遂徙其人於河南。總章元年,命英公李勣破高句麗,置安東都督府。至儀鳳三年,徙其人於河南、隴右。
수나라 황제가 통제력을 잃은 것은 요동을 정벌하였기 때문입니다. 정관 연간에 우리 태종황제께서 직접 6군을 통솔하여 바다를 건너 공경히 하늘의 벌을 행하니 고려(고구려)가 위엄을 두려워하여 강화를 청하였습니다. (당나라)문황제(태종)께서 항복을 받으시고, 황제의 수레를 돌리셨습니다. 우리 무열대왕께서 개와 말의 정성으로 한 지방의 어려움을 도와 안정시켰는데 당나라 조정에 들어 가 뵙는(朝謁) 것은 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후에 고려(고구려), 백제가 앞서 자취를 따라 악을 지으니 무열왕께서 향도가 되기를 청하였습니다. 고종황제 현경 5년(660) 소정방에게 명하여 10도의 강한 군대와 누선 만 척을 통솔하여 크게 백제를 깨트렸습니다. 이에 그 땅에 부여도독부를 두고, 남은 백성을 모아 漢官(중국의 관리)로서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臭味가 같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번 반란을 일으킨다는 것을 듣고 마침내 그 사람들을 하남으로 옮겼습니다. 총장 1년(668) 영공 이적에게 명하여 고구려를 깨트리게 하고, 안동도독부를 두었고, 의봉 3년(678)에 이르러 그 사람들을 하남, 농우로 옮겼습니다.
高句麗殘孼類聚,北依太白山下,國號渤海。開元二十年,怨恨天朝,將兵掩襲登州,殺刺史韋俊。於是明皇帝大怒,命內史高品何行成、大僕卿金思蘭發兵,過海攻討。仍就加我王金某爲正太尉,持節充寧海軍事、鷄林州大都督。以冬深雪厚,蕃、漢苦寒,勑命廻軍。至今三百餘年,一方無事,滄海晏然,此乃我武烈大王之功也。
고구려 잔얼(잔당)들이 무리를 모아 북쪽으로 태백산 아래에 기대 나라 이름을 발해라 하였습니다. 개원 20년(732) 天朝(당나라 조정을)를 원망하여 군대를 이끌고 등주를 掩襲(불시에 습격)하여 자사 위준을 죽였습니다. 이에 명황제(현종)가 크게 노하여 내사고품 하행성, 태복경 김사란에게 명하여 군대를 동원하여 바다를 건너 공격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우리 왕 김아무개를 승진시켜 정태위를 삼아 절부를 가지고 영해군사 계림주대독의 임무를 수행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깊고 눈이 쌓여 번국과 한(당나라)가 추위에 괴로워하니 황제의 명으로 군대를 돌리게 하였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300여 년 동안 한 지방이 무사하고, 푸른 바다가 편안한 것은 이는 곧 우리 무열대왕의 공입니다.
今致遠儒門末學,海外凡材,謬奉表章,來朝樂土,凡有誠懇,禮合披陳。伏見元和十二年,本國王子金張廉,風飄至明州下岸,浙東某官,發送入京。中和二年,入朝使金直諒爲叛臣作亂,道路不通,遂於楚州下岸,邐迤至楊州,得知聖駕幸蜀。高太尉差都頭張儉監押,送至西川。
지금 치원(저는)은 儒門의 末學이고, 해외이 평범한 재능으로 외람되게 표장을 받들고 樂土에 조회하러 왔으니 무릇 진실로 간절함이 있고, 생각을 숨김없이 말하는 것이 예에 부합할 것입니다. 삼가 보건대 원화 12년(817) 본국(신라)의 왕자 김장렴이 심한 풍랑으로 명주에 이르러 상륙하였는데 정동의 어떤 관리가 보내 서울에 들어가게 한 일이 있습니다. 중화 2년(882) 입조사 김직량이 배반한 신하가 일으킨 반란으로 길이 통하지 않아 마침내 조주에서 상륙하여 이리저리 헤메다가 양주에 이르러 황제의 수레가 촉으로 가신 것을 알았습니다. 고 태위가 도두 장검을 차출하여 호송해 보내 西川(촉)에 이르렀습니다.
已前事例分明,伏乞太師侍中俯降台恩。特賜水陸券牒,令所在供給舟船、熟食及長行驢馬、艸料,幷差軍將監送至駕前。(此所謂太師侍中,姓名亦不可知也。) 不度涯分,冒瀆嚴威,下情不任攀恩戀德,兢惕戰懼之至。(《孤雲集》卷一, 狀)
이전의 사례가 분명하니 삼가 태사 시중께서는 굽어 큰 은혜를 내려주실 것을 청합니다. 특히 수륙의 권첩을 내리시어 있는 바 마다(가는 바 마다) 배, 익힌 음식과 길게 가는 나귀와 말, 말 먹이 풀을 공급하게 하시고, 아울러 군대 장교를 차출하여 임금의 수레 앞에 이를 수 있도록 호송해 주시기 바랍니다.(여기의 이른 바 태사 시중은 성명을 또한 알 수 없다.) 본분을 헤아리지 않고 엄한 위엄을 무릅쓰고 번거롭게 하려 하니 아랫사람의 실정으로 은혜를 잡고 덕을 그리워하고, 두려워하며 떨리는 마음이 지극함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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