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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쌍녀분(雙女墳)

by 최인표 2024. 6. 19.

崔致遠傳

최치원전

 

崔致遠, 字孤雲, 年十二西學於唐. 乾符甲午, 學士裵瓚掌試, 一擧魁科, 調授溧水縣尉. 嘗遊縣南界招賢館, 館前岡有古塚, 號雙女墳. 古今名賢遊覽之所. 致遠題詩石門曰:

최치원은 孤雲이고, 나이 12세에 서쪽으로 당나라에 유학하여 건부 갑오년(경문왕14, 874) 학사 배찬이 주관하는 시험에서 단번에 魁科에 합격하고, 율수현 위에 임명(調授)되었다. 일찍이 율수현 남쪽 초현관에서 놀았는데, (초현)관 앞산에 옛 무덤이 있어 쌍녀분이라 불렀다. 고금의 이름이 알려진 어진 이(名賢)들이 여기저기 구경하던 곳으로 최치원이 시를 지어 석문에 붙였다.

 

誰家二女此遺墳? 뉘 집 두 딸이 여기에 무덤을 남겼는가?

寂寂泉扃幾怨春? 쓸쓸한 저승 문에서 얼마나 봄을 원망 하였으리오?

 

形影空留溪畔月, 형체와 그림자 부질없이 시냇가 달빛 아래 머물고

姓名難問塚頭塵. 먼지 쌓인 무덤에 이름 묻기 어려워라

 

芳情徜許通幽夢, 꽃 같은 애절한 마음 아련한 꿈속에서 만난다면

永夜何妨慰旅人. 긴긴 밤 나그네 위로함이 무슨 허물되리오.

 

孤館若逢雲雨會, 외로운 여관에서 운우의 정을 나눈다면

與君繼賦洛川神. 그대와 더불어 낙천의 신을 이어 읊으리라.

 

題罷到館. 是時, 月白風淸, 杖藜徐步. 忽覩一女, 姿容綽約, 手操紅袋, 就前曰: “八娘子·九娘子, 傳語秀才. 朝來特勞玉趾, 兼賜瓊章, 各有酬答, 謹令奉呈.” 公回顧驚惶. 再問: “何姓娘子?” 女曰: “朝間拂石題詩處, 卽二娘所居也公乃悟. 見第一袋, 是八娘子奉酬秀才. 其詞曰:

시 짓기를 마치고 관(초현관)이 이르렀다. 이 때 달은 밝고 바람이 서늘하여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거닐다 홀연히 한 여자를 보았다. (여자의)모습이 가냘프고 아름다우며 손에 붉은 주머니를 가지고 앞으로 와 말하기를 팔 낭자와 구 낭자가 수재(최치원)에게 말을 전하라 하였습니다. ‘아침에 와 특히 발걸음을 수고롭게 하고, 겸하여 구슬 같은 문장을 내리셨으니 각기 화답함이 있어 삼가 받들어 올리게 하였습니다.’”했다. (최치원)이 놀라고 당황하여 돌아보며 다시 묻기를 어떤 성씨의 낭자입니까?”하니 여자가 말하기를 아침 사이에 시를 지어 돌을 쓸고 놓아둔 곳이 곧 두 낭자가 거처하는 곳입니다.”했다. 공이 이에 깨달았다. 첫 번째 주머니를 보니 이는 팔 낭자가 수재(최치원)에게 받들어 화답한 것이었다. 그 글은 다음과 같다.

 

幽魂離恨寄孤墳, 혼백은 이별의 한을 품고 외로이 무덤에 기대었는데

桃臉柳眉猶帶春. 복사 꽃 같은 뺨과 버들눈썹은 아직도 봄빛을 띠는구나.

 

鶴駕難尋三島路, 학이 끄는 수레는 신선의 길을 찾기 어렵고,

鳳𨥁空墮九泉塵. 봉황비녀는 헛되이 저승의 먼지 속에 떨어진다.

 

當時在世長羞客, 살아 있을 때는 몹시도 나그네를 부끄러워하였는데

今日含嬌未識人. 오늘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짐짓 아름다운 채 하는구나.

 

深愧詩詞知妾意, 시의 말이 나의 마음을 아는 듯하여 몹시 부끄러운데

一回延首一傷神. 한편으로 고개 길게 늘여 기다리고, 한편으로 마음 아픕니다.

 

次見第二袋, 是九娘子. 其詞曰:

다음 두 번째 주머니를 보았는데 이는 구 낭자(가 화답한 것이었다.)였다. 그 글은 다음과 같다.

 

往來誰顧路傍墳? 오고가는 사람 누가 길옆의 무덤 돌아 보리요?

鸞鏡鴛衾盡惹塵. 거울과 원앙금침은 모두 먼지만 쌓였구나.

 

一死一生天上命, 한번 죽고 한번 태어나는 것은 하늘의 운명이요,

花開花落世間春. 꽃 피고 지니 이 세상은 봄이라네.

 

每希秦女能抛俗, 늘 진나라 여자(농옥)처럼 속세를 버리고자 하여

不學任姬愛媚人. 임희처럼 다른 사람에게 순종하는 사랑을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欲薦襄王雲雨夢, 양왕처럼 꿈속에서 운우를 올리고자 하나

千思萬檍損精神. 천만가지 생각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오.

 

又書於後幅曰:

또 뒷장에 글을 써 말하기를

 

莫怪藏名姓, 이름과 성 감추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지 마소서.

孤魂畏俗人. 외로운 혼이 세속의 사람을 두려워해서입니다.

 

欲將心事說, 마음속 일을 말하고자 하니

能許暫相親. 잠시 가까이할 것을 허락하소서.

 

公旣見芳詞, 頗有喜色. 乃問其女名字, : “翠襟.” 公悅而挑之. 翠襟怒曰: “秀才合與回書, 空欲累人?” 致遠乃作詩付翠襟, :

공이 아름다운 글을 보고 자못 기뻐하는 얼굴색이 있었다. 곧 그 여자의 이름을 물으니 말하기를 취금 입니다.”했다. 공이 기뻐하며 그를 유혹하니 취금이 노하여 말하기를 수재(최치원)께서는 답장을 주는 것이 합당한데 공연히 사람을 고달프게(얽매려) 하십니까?”했다. 최치원이 이에 시를 지어 취금에게 주었다. 시는

 

偶把狂詞題古墳, 우연히 마음대로 쓴 글로 옛 무덤을 읊었는데

豈期仙女問風塵? 어찌 선녀가 풍진세상을 물을 줄 알았겠는가?

 

翠襟猶帶瓊花艶, 푸른 옷깃에 구슬 달아 꽃처럼 아름다우니

紅袖應含玉樹春. 붉은 옷소매 그대는 아름다운 나무의 봄을 머금었구려.

 

偏隱姓名寄俗客, 이름을 숨기고 세속의 나그네에게 시 써 붙이니

巧裁文字惱詩人. 공교로운 문자에 시인의 번뇌 쌓인다.

 

斷腸唯願陪歡笑, 애끊는 마음은 오직 기뻐하고 웃고자 하여

祝禱天靈與萬神. 하늘의 신령과 온갖 신에게 기도합니다.

 

繼書末幅云:

글을 이어 마지막 장에 이르기를

 

靑鳥無端報事由 파랑새가 뜻 밖에 일의 까닭 전하니

暫時相憶淚雙流 잠시 서로 추억하며 두 줄기눈물 흘린다.

今宵若不逢仙質 오늘 밤 신선을 만나지 못한다면

拚却殘生入地求 남은 삶 버리고 땅에 들기를 구하렵니다.

 

翠襟得詩還, 迅如飇逝. 致遠獨立哀吟, 久無來耗, 乃詠短歌. 向畢, 香氣忽來, 良久, 二女齊至, 正是一雙明玉, 兩朶瑞蓮. 致遠驚喜如夢, 拜云: “致遠海島微生, 風塵末吏, 豈期仙侶, 猥顧風流? 輒有戱言, 便垂芳躅.” 二女微笑無言. 致遠作詩曰:

취금이 시를 얻어 돌아가는데 빠르기가 폭풍이 부는 것 같았다. 최치원이 홀로 서서 애절히 시를 읊기를 오래하여도 소식이 없자 이에 짧은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마치는데 홀연히 향기가 나고, 조금 있다가 두 여자가 나란히 이르렀다. 이들은 바로 한 쌍의 밝은 옥 같고, 두 줄기 늘어진 상서로운 연꽃과 같았다. 최치원이 꿈인가 놀라고 기뻐하여 허리 굽혀 절며 말하기를 저는 섬나라의 미천한 태생으로 보잘 것 없는 말단 관리로 어찌 선녀들이 외람되이 보통사람을 돌아보기를 기대하겠습니까? 문득 희롱하는 말(농담)을 하여 아름다운 발걸음을 하였군요.”하니 두 여자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최치원이 시를 지어 말하기를

 

芳宵幸得暫相親 아름다운 밤에 다행히 잠시 서로 가까이였는데

何事無言對暮春 무슨 일로 말없이 늦봄을 대합니까?

 

將謂得知秦室婦 장차 진나라 황실의 지조있는 부인을 알았다고 말하려하나

不知元是息夫人 원래 이가 식부인인 줄은 알지 못하였네.

 

於是, 紫裙者恚曰: “始欲笑言, 便蒙輕蔑. 息嬀曾從二壻, 賤妾未事一夫.” 公言: “夫人不言, 言必有中.” 二女皆笑. 致遠乃問曰: “娘子居在何方, 族序是誰?” 紫裙者隕淚曰: “兒與小妹, 溧水縣楚城鄕, 張氏之二女也. 先父不爲縣吏, 獨占鄕豪, 富似銅山, 侈同金谷. 及姉年十八, 妹年十六, 父母論嫁, 阿奴則定婚鹽商, 小妹則許嫁茗估. 姉妹每說移天, 未滿于心, 鬱結難伸, 遽至夭亡. 所冀仁賢, 勿萌猜嫌.”

이에 자줏빛 치마를 입은 이가 성내어 말하기를 처음에는 웃으며 말하려했는데 곧 업신여김을 당하였습니다. 식교 부인은 일찍이 두 남편을 따랐지만, 나는 한 지아비도 섬기지 않았습니다.”했다. (최치원)이 말하기를 대저 사람은 말하지 않을지언정 말을 하면 반드시 법도에 합당함이 있어야 한다. 했습니다.”하니 두 여자가 모두 웃었다. 최치원이 이에 물어 말하기를 낭자께서는 어디에서 살며, 친족은 누구입니까?”하니 자줏빛 치마를 입은 이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나와 동생은 율수현 초성향 장씨 집안의 두 딸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현의 관리가 되지 않고, (세력을)독점하여 마을의 호족이 되어 부유하기로는 동산과 같고, 사치하기로는 금곡과 같았습니다. 언니의 나이 18, 동생의 나이 16세가 되자, 부모가 시집가는 것을 논의하였는데, (阿奴)는 소금장수와 혼인하기로 정하였고, 동생은 차 장수와 혼인하기로 정하였습니다. 언니와 동생이 매번 이 말을 하면서 날을 보냈습니다만 마음에 차지 않아 우울하게 맺힌 것이 펴지기 어려워 마침내 일찍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바라는 바는 어질고 현명한 이께서는 의심하지 마십시오.”했다.

 

致遠曰: “玉音昭然, 豈有猜慮?” 乃問二女: “寄墳已久, 去館非遙, 如有英雄相遇, 何以示現美談?” 紅袖者曰: “往來者, 皆是鄙夫. 今幸遇秀才, 氣秀鼇山, 可與談玄玄之理.” 致遠將進酒, 謂二女曰: “不知俗中之味, 可獻物外之人乎?” 紫裙者曰: “不食不飮, 無飢無渴. 然幸接瓌姿, 得逢瓊液, 豈敢辭違?” 於是, 飮酒各賦詩, 皆是淸絶不世之句. 是時, 明月如晝, 淸風似秋.

최치원이 말하기를 옥 같은 목소리가 분명한데 어찌 의심함이 있겠습니까?”하고는 두 여자에게 물어 말하기를 무덤에 묻힌 것이 이미 오래되었고, 초현관에서 멀지 않으니 영웅과 서로 만남이 있었다면 어떻게 아름다운 얘기를 드러내 보이겠습니까?”했다. 붉은 소매의 여인이 말하기를 오가는 자들은 모두 비루한 사내들이었습니다. 지금 다행히 수재(최치원)를 만나니 기품이 빼어나 금오산 같아 더불어 현묘한 이치에 대해 말 할 수 있습니다.”했다. 최치원이 장차 술을 올리며 두 여자에게 일러 말하기를 세속의 맛을 세속을 벗어난 사람에게 올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했다. 자줏빛 치마를 입은 이가 말하기를 먹고 마시지 않아도 배고프고 목마르지 않으나 다행히 훌륭한 사람을 만나 경액을 만날 수 있었으니 어찌 감히 사양하여 어기겠습니까?”했다. 이에 술을 마시며 각기 시를 읊었는데 모두 밝고 절묘하여 세속의 글귀가 아니었다. 이 때 달이 밝아 낮과 같고, 맑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 가을과 같았다.

 

其姉改令曰: “便將月爲題, 以風爲韻.” 於是致遠, 作起聯曰:

그 언니가 노래를 바꾸자하며 말하기를 ()을 가지고 제목으로 하고, 바람()으로서 운을 삼자.”했다. 이에 최치원이 첫 聯句를 지어 말하였다.

 

金波滿目泛長空. 금빛 물결은 눈에 가득 먼 하늘에 떠있고,

千里愁心處處同. 근심스러운 마음은 천리 곳곳이 같구나.

 

八娘曰:

8랑이 말하기(읊기)

 

輪影動無迷舊路, 달그림자 움직여도 옛 길을 헤매지 않고,

桂花開不待春風. 계수나무가 꽃을 피우는 것은 봄바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九娘曰:

9랑이 말하기(읊기)

圓輝漸皎三更外, 달빛은 점점 밝아지고 때는 삼경을 지나는데,

離思偏傷一望中. 이별할 생각에 한번 바라보는 중에도 마음 아프구나.

 

致遠曰:

최치원이 말하기(읊기)

 

練色舒時分錦帳, 비단 빛 달빛 퍼져 비단 휘장에 비추니,

珪模映處透珠櫳. 아름다운 나무 그림자 구슬주렴 늘인 창에 스며든다.

 

八娘曰:

8낭자가 말하기(읊기)

 

人間遠別腸堪斷, 인간 세상에서의 먼 이별은 애간장 끊는 듯하고,

泉下孤眠恨莫窮. 저승에서 홀로 잠자는 한은 다함이 없어라.

 

九娘曰:

9낭자가 말하기(읊기)

 

每羨嫦娥多計較, 늘 항아의 꾀 많음을 부러워하였는데,

能抛香閣到仙宮. 규방 버리고 신선의 궁전에 이르렀다오.

 

公歎訝尤甚. 乃曰: “此時無笙歌奏於前, 能事未能畢矣.” 於是紅袖乃顧婢翠襟, 而謂致遠曰: “絲不如竹, 竹不如肉. 此婢善歌.” 乃命訴衷情詞. 翠襟歛袵一歌, 淸雅絶世. 於是三人半酣. 致遠乃挑二女曰: “嘗聞盧充逐獵, 忽遇良姻, 阮肇尋仙, 得逢嘉配. 芳情若許, 姻好可成.” 二女皆諾曰: “虞帝爲君, 雙雙在御, 周郞作將, 兩兩相隨. 彼昔猶然, 今胡不爾.” 致遠喜出望外, 乃相與排三淨枕, 展一新衿, 三人同衿, 繾綣之情, 不可具談.

(최치원)이 더욱 탄복하고 칭찬하였다. 이에 말하기를 이런 때에 앞에서 생항을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름이 없으면 일을 아직 마친 것이 아닙니다.”했다. 이에 붉은 옷소매(紅袖)가 곧 여종 취금을 돌아보며 최치원에게 말했다. “현악기()는 관악기()보다 못하고, 관악기는 육성()보다 못합니다. 이 여종이 노래를 잘 합니다.”하고는 곧 마음속의 사랑을 노래하게 하였다. 취금이 옷깃을 여미고 노래 한 곡을 하였는데 맑고 아름답기가 세상에 없는 것이었다. 이에 세 사람이 술이 반쯤 취하였을 때 최치원이 두 여자를 유혹하여 말하기를 일찍이 들으니 노충은 짐승을 쫓다가 갑자기 좋은 인연을 만났고, 완조는 신선을 찾다가 아름다운 짝을 만났다. 합니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허락하신다면 좋은 인연을 이룰 수 있습니다.”했다. 두 여자가 허락하여 말하기를 순 임금은 임금이 되어 쌍쌍(두 여자를)을 임금 옆에 있게 하였고, 주유는 장수가 되었을 때 두 여인이 서로 따랐습니다. 저들이 옛날에도 그러했는데 지금은 어찌 그렇게 하지 못하겠습니까?”했다. 최치원이 뜻밖(의 일)을 기뻐하며 곧 서로 함께 세 개의 깨끗한 베개를 나란히 두고, 한 채의 새로운 이불을 편 뒤 세 사람이 같은 이불을 덮었는데, 곡진하고 정다운 정을 이루 다 얘기할 수 없었다.

 

致遠戱二女曰: “不向閨中, 作黃公之子婿, 翻來塚側, 夾陳氏之女奴. 未測何緣, 得逢此會?” 女兄作詩曰:

최치원이 두 여자를 희롱하여 말하기를 규중(여인의 방)에서 황공의 사위가 되지 못하고, 도리어 무덤가에서 진씨의 여자를 안게 되었으니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만나게 되었는지를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모르겠습니다.)” 했다. 언니가 시를 지어 말하기를

 

聞語知君不是賢, 말을 듣고 그대가 어질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應緣慣與女奴眠. 인연이라면 여종과 잠자도 마땅한 것을

 

弟應聲續尾曰:

동생이 화답하여 尾句를 이어 말하기를

 

無端嫁得風狂漢, 이유 없이 미친놈에게 시집갔다가

强被輕言辱地仙. 경솔한 말로 地仙을 욕보이는구나.

 

公答爲詩曰:

(최치원)이 시를 지어 말하기를

 

五百年來始遇賢, 오백년에 비로소 어진 이를 만나

且歡今夜得雙眠. 또 기쁘게도 오늘 밤 짝지어 잠자는구나.

芳心莫怪親狂客. 아름다운 마음으로 미친 나그네 가까이 한 것을 괴이하다 하지 마소서

曾向春風占謫仙. 일찍이 봄바람에 귀양 온 신선이 되었으니.

 

小頃, 月落鷄鳴, 二女皆驚, 謂公曰: “樂極悲來, 離長會促. 是人世貴賤同傷, 況乃存沒異途, 升沈殊路? 每慙白晝, 虛擲芳時, 只應拜一夜之歡, 從此作千年之恨. 始喜同衾之有幸, 遽嗟破鏡之無期.” 二女各贈詩曰:

얼마 지나지 않아 달이 지고, 닭이 우니 두 여자가 모두 놀라 공(최치원)에게 일러 말하기를 즐거움이 지극하면 슬픔이 오고, 이별이 길면 만남을 재촉합니다.(만남이 가깝습니다.) 이는 사람의 세상에서 귀한 이, 전한 이가 모두 애달파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삶과 죽음은 길이 다르니 오르고(저승) 빠짐(이승)은 길이 다름에 있어서이겠습니까? 매번 대낮을 부끄러워하여 헛되이 아름다운 때를 던졌습니다. 다만 하룻밤의 즐거움을 누리고 이로 천년의 한을 지을 뿐입니다. 처음 이불을 같이하는 행운을 기뻐하였는데 갑자기 기약 없는 이별을 탄식하게 되었습니다.”하고는 두 여자가 각각 시를 지어 주었다.

 

星斗初回更漏闌, 북두성은 처음으로 돌아가고 물시계 물이 다하니

欲言離緖淚闌干. 이별을 말하고자 하니 눈물이 쏟아지네.

從玆更結千年恨, 이를 따라 다시 천년의 한을 맺으니

無計重尋五夜歡. 깊은 밤의 기쁨을 다시 찾을 길 없네.

 

又曰:

또 말하기를

 

斜月照窓紅臉冷, 기운 달 빛 창에 비치니 발그레한 뺨 차가워지고

曉風飄袖翠眉攢. 새벽바람 옷소매에 불어오니 푸른 눈썹 찡그려진다.

辭君步步偏腸斷, 그대 하직하는 발걸음마다 애간장 끊어지고

雨散雲歸入夢難. 비 흩어지고 구름이 돌아가니 꿈에 들기 어려워라.

 

致遠見詩, 不覺垂淚. 二女謂致遠曰: “徜或他時, 重經此處, 修掃荒塚.” 言訖卽滅. 明旦, 致遠歸塚邊, 彷徨嘯咏, 感歎尤甚. 作長歌, 自慰曰:

최치원이 시를 보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두 여자가 최치원에게 일러 말하기를 혹 다른 때에 거듭 이곳을 지나거든 황폐한 무덤을 고쳐 주십시오.”하는 말을 마치고 곧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 최치원이 무덤 가로 돌아가 방황하며 쓸쓸히 읊조리고, 깊이 탄식하며 긴 노래를 지어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草暗塵昏雙女墳, 풀 우거지고 먼지로 어두운 두 여자의 무덤

古來名迹竟誰聞? 옛날부터 이름난 자취, 누구에게 들었소?

 

唯傷廣野千秋月, 넓은 들판의 천년 달빛에 내 마음 애달프고,

空鎖巫山兩片雲. 부질없이 두 조각구름 무산에 걸렸네.

 

自恨雄才爲遠吏, 큰 재능으로 먼 지방의 관리된 것을 스스로 한탄하다,

偶來孤館尋幽邃. 우연히 외로운 초현관에 가 깊고 고요한 것을 찾았네.

 

戱將詞句向門題, 장난삼아 시를 지어 석문에 붙였더니

感得仙姿侵夜至. 감동한 선녀 깊은 밤에 이르렀네.

 

紅錦袖紫羅裙, 붉은 비단 소매, 자줏빛 비단 치마 입은 두 여인이

坐來蘭麝逼人薰. 와서 앉으니 난초 향 사향 향 사람에 풍겨오는구나.

 

翠眉丹頰皆超俗, 푸른 눈썹 붉은 뺨은 모두 속세를 벗어났고,

飮態詩情又出群. 술 마시는 모습과 시적 정취는 무리보다 빼어났네.

 

對殘花傾美酒, 지는 꽃 마주하고 좋은 술잔 기우리니

雙雙妙舞呈纖手. 두 여자 신묘한 춤사위는 가녀린 손을 드러낸다.

 

狂心已亂不知羞, 미친 마음은 이미 어지러워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고

芳意試看相許否. 아름다운 뜻이 허락할지 말지를 시험한다네.

 

美人顔色久低迷, 아름다운 사람의 얼굴색이 오래도록 땅 밑에서 헤매었으나,

半含笑能半含啼. 반은 웃고 반은 울음 머금었네.

 

面熟自然心似火, 얼굴이 익으니 자연히 마음은 불과 같고,

臉紅寧假醉如泥. 붉은 뺨은 차라리 취한 듯 진흙 같구나.

 

歌艶詞打懽合, 아름다운 노랫말로 노래하고, 즐거움이 합하니

芳宵良會應前定. 아름다운 밤, 좋은 만남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纔聞謝女啓淸談, 잠시 사씨 딸이 맑은 얘기하는 것을 듣고

又見班姬推雅詠. 또 반희가 아름다운 시 읊조리고 펴는 것을 보았다.

 

情深意密始求親, 정이 깊어 마음으로 깊이 가까워질 것을 생각하니

正是艶陽桃李辰. 바로 이때는 늦봄의 복숭아, 오얏 꽃 필 때라.

 

明月倍添衾枕恩, 밝은 달은 이불과 베개의 은혜를 배로 더한다.

香風偏惹綺羅身. 향기로운 바람은 비단 옷 입은 몸으로 불어오고

 

綺羅身衾枕恩, 비단 옷 입은 몸과 이불, 베개의 은혜

幽歡未已離愁至. 그윽한 기쁨 끝나지 않았는데 이별의 슬픔 이르네.

 

數聲餘歌斷孤魂, 몇 갈래 소리, 남은 노래는 외로운 혼을 끊고,

一點殘燈照雙淚. 한 점 희미한 등은 두 줄기 눈물 비춘다.

 

曉天鸞鶴各西東, 새벽하늘의 난새와 학은 각각 동서로 날아가고

獨坐思量疑夢中. 홀로 앉아 생각하니 아마도 꿈속인 듯하구나.

 

沈思疑夢又非夢, 깊이 생각하니 꿈인 듯 꿈이 아닌 듯

愁對朝雲歸碧空. 쓸쓸히 푸른 하늘로 돌아가는 아침 구름 마주하네.

 

馬長嘶望行路, 말은 갈 길 바라보며 길게 우는데

狂生猶再尋遺墓. 미친 사람은 오히려 다시 남은 무덤 찾는다.

 

不逢羅襪步芳塵, 비단 버선으로 꽃 먼지 밟아 걸어오는 것 만나지 못하고

但見花枝泣朝露. 다만 꽃가지에 맺힌 아침 이슬을 보고, 눈물 흘릴 뿐이라.

 

腸欲斷首頻回, 애간장 끊어질 듯하여 머리 자주 돌려보니

泉戶寂寥誰爲開. 쓸쓸한 무덤 누가 열어 주리오.

 

頓轡望時無限淚, 말고삐 부여잡고 바라보며 끝없이 눈물 흘리고

垂鞭吟處有餘哀. 채찍 늘어뜨리고 읊조리는 곳에 남은 슬픔 있다.

 

暮春風暮春日, 늦은 봄바람, 늦은 봄 햇살

柳花撩亂迎風疾. 버들강아지 봄바람 맞아 어지럽게 흩날리네.

 

常將旅思怨韶光, 항상 봄빛을 원망하는 것은 나그네 생각인데

況是離情念芳質. 하물며 이 이별의 정으로 아름다운 선녀를 생각함에 있어서랴.

 

人間事愁殺人, 인간세상에서 느끼는 근심은 몹시도 사람을 근심하게 하니

始聞達路又迷津. 처음 도달하는 길을 들었으나 또 나루를 잃어버렸네.

 

草沒銅臺千古恨, 풀은 동대에 우거져 천고의 한이 되고

花開金谷一朝春. 금곡에서 피는 꽃도 하루아침의 봄이라네.

 

阮肇劉晨是凡物, 완조와 유신도 평범한 사람이요

秦皇漢帝非仙骨. 진나라 시황제와 한 나라 무제도 신선의 골격은 아니라네.

 

當詩嘉會杳難追, 당시의 아름다운 만남은 아득하여 따라 하기 어렵고

後代遺名徒可悲. 후세에 이름만 남기니 다만 슬프기만 하네

 

悠然來忽然去, 아득히 왔다가 홀연히 가시니

是知風雨無常主. 바람 불고 비 내리는 일이 일정한 주인이 없음을 알겠네

 

我來此地逢雙女, 내가 이 땅에 와 두 여자를 만난 것은

遙似襄王夢雲雨. 아득히 양왕이 雲雨를 꿈꾼 것과 같다.

 

大丈夫! 大丈夫! 대장부여! 대장부여!

壯氣須除兒女恨, 씩씩한 기상으로 여인의 한 풀어주었건만

莫將心事戀妖狐. 마음의 일로 요사스러운 여우를 그리워하지는 말라.

 

後致遠, 擢第東還, 路上歌詩云:

후에 최치원이 과거에 급제하고 동쪽(신라)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를 노래하였다.

 

浮世榮華夢中夢, 부질없는 세속의 영화는 꿈속의 꿈이요,

白雲深處好安身. 흰 구름 깊은 곳에서 내 한 몸 편안하게 하리.

 

乃退而長往, 尋僧於山林江海, 結小齋, 築石臺, 耽玩文書, 嘯詠風月, 逍遙偃仰於其間. 南山淸凉寺, 合浦縣月影臺, 智理山雙溪寺, 石南寺, 墨泉石臺, 種牧丹, 至今猶存, 皆其遊歷也. 最後隱於伽倻山海印寺, 與兄大德賢俊, 南岳師定玄, 探賾經論, 遊心沖漠, 以終老焉.

出典: 成任, <太平通載> 68

 

곧 물러나 속세를 떠나 은둔하였다. 산림과 강, 바다에서 스님을 찾고, 작은 집을 짓고, 돌로 대를 쌓고, 글에 빠져 즐기며, 풍월을 읊으며 그 사이에서 소요하고 머물렀다. 남산의 청량사, 합포현 월영대, 지리산 쌍계사, 석남사, 묵천 석대에 모란을 심은 것이 지금에도 오히려 남아있으니 모두 그가 노닐며 지나간 곳이다. 최후에 가야산 해인사에 숨어 형인 대덕 현준, 남악 정현스님과 오묘한 경론을 탐구하여, 마음으로 깊고 넓은 곳을 노닐다 늙어 생을 마쳤다.

출전 : 성임, 태평통재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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